파적 外 1편

신덕룡

 

파적

 

 

아직도 투표를 하지 않았느냐는

전화가 왔다.

 

허리가 반으로 꺾인 노인이 걸어간다. 기표(記標)하듯 지팡이로 따박따박 땅을 짚으며 걷다 쉬다를 반복하는데

 

어촌횟집 닫힌 문 앞에서 졸고 있던 발바리 한 마리, 컹컹 짖더니 뒤를 따른다. 몇 걸음 걷고 돌아볼 때마다, 꼭 그만큼 물러선다.

 

슬로비디오로 보는 술래잡기 같다.

 

낮은 자세로 길을 살피던 조심스런 마음이 엉켰다 풀어 놓는 헐렁한 손짓, 저 헐렁 헐렁이 파적(破寂)이다.

 

진보와 보수, 어떤 패가 내 손에 쥐어지는 행운이나 불운이겠느냐만 셈이란 늘 뜻밖의 일이니

저렇듯 주고받는 장단이 때론 그립다.

 

 

술병들

 

 

아파트 복도에 내놓은 빈병들 많다.

소주병 맥주병들 틈에 양주병도 섞여 있는데

제 키와 상관없이 들쭉날쭉

작고 좁은 주둥이를 벌리고 있다.

 

굳게 문 닫아건

옆집 사정이야 알 길 없으나

할 일 마쳤으니

집 안에 있을 필요 없다는 듯 내몰려

 

한때는 춥고 외진 삶에 지피던 불이라

불씨들 꺼내

쓰린 속 풀어 주던 친구였으니

저 입들 모두 마음의 문이 아니었나.

 

여름 한철 내내 목이 터져라 울던

매미의 울음 껍질 같은 것,

울음 밑바닥에 깔려 있었을 침묵들이

휘적휘적 저렇듯 아침햇살에 걸려 있다.

 

스스로 비워 버렸으니 발이 가벼워

휘휘 휘파람 불며

금방이라도 일어설 듯 먼 데를 바라보지만

술이 덜 깼나, 눈자위가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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