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치 外 1편

송기영

발치


그이가 난 이래로 나는 죽 더부살이를 했어요. 남들은 운명이라 그러더군요. 기쁠 때나 슬플 때에도 그이는 나를 위해 일했지요. 가끔 단단하게 박힌 못을 뽑거나 소주병을 따 주기도 했고요. 또 옆집의 그녀를 씹을 때면 기꺼이 힘을 빌려 주기도 했어요. 그이는 참,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이는 강했어요. 그래서 그이와 그렇게 끝날 줄 생각지도 못했죠. 기생한 지 고작 삼십 년밖에 안 되었는데. 그이는 너무 닳아 납작, 엉그름졌죠. 의사는 그이의 사랑이 다 됐다고 내게 이야기했어요. 그래도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진 아직 남은 이가 있으니 괜찮겠죠. 생각보다 이별은 쿨해서 좋았어요. 그이에게서 어렵지 않게 쏙 빠져나왔으니까. 혼자 남은 그이, 먼발치에서라도 한 번 볼 걸 그랬나요.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이와 마주했던 곳에 자꾸 피가 배네요.



Pin


안전핀이 있어야 해
뽑을 수 있으니까
배달 나갈 때마다, 늘
그 생각뿐이지

핀을 뽑아 삐걱대는
담장 너머로 던지고
셋을 세는 거야
하나, 두울
좀 더 기다려 볼까?

밀가루 반죽에서도 뽑고,
작은 텃밭에서도 뽑을 수 있지
아침 신문과 목욕탕 굴뚝에서, 네 팔뚝의
힘줄에서도 뽑을 수 있어
흔적도 없이
탕, 탕 소리를 내며

달의 뒤편으로
날아가 버린 새들
안전핀이 있어야 해
너를 붙들어 둘 수 있으니까
우리 집 담장 밑에서
함께 기다려 보기로 할까, 아니
셋을 믿어 보기로 해
하나, 두울  《문장웹진 9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