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딕시대와 낭만주의자들

 

강성은



고딕시대와 낭만주의자들




뾰족한 첨탑 위에 갇힌 누군가 구름에 편지를 써요

그럴 때 구름은 검은 빗방울을 뚝뚝 떨어뜨리지요

구름의 얼룩진 편지를 읽는 어떤 이들은

울음을 멈추고 검은 강물 속으로 몸을 던집니다

도시엔 무서운 전염병이 돌고

녹색의 박쥐 떼가 공중을 날아다닙니다

창백한 입술을 잃은 자들은

곧 두 손과 머리털을 잃고 두 눈알과 심장을 잃었지요

점점 희미해져 우리는 우리를 잃었지요

당신과 나의 비밀 이야기는 입 속에서 입 속으로

공기와 밤의 중얼거림을 통과하고

얼룩진 편지는 얼룩 고양이가 물고 밤의 담장 너머로 사라집니다

우리는 내일의 날씨를 예측할 수 있지만

내일의 악몽을 점칠 수는 없었어요

빗방울은 때로 격렬하게 내립니다

한 방울 뒤에는 수천만 우주의 모든 물방울들이 

뾰족하고 오래된 첨탑 위의 편지는

전해 오는 이야기 속에서 날마다 더 아름다워져 갑니다

우리는 첨탑 위로 답장을 보내는 법을 모르고

얼음이 어는 순간과 얼음이 녹는 순간 슬픔의 음역을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뤼미에르 공장 문을 나서는 사람들




녹슨 철문을 열고 공장을 나서는 사람들에게 가족사진이 발급된다 사진에 입을 맞추는 소중한 의식, 바람이 분다 사람들은 푸른색 외투의 옷깃을 여미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회색 보도를 걸을 때마다 고인 빗물이 철벅거렸다 머리 위로는 낮게 비행기가 지나간다 닫힌 창문 틈으로 검은 눈들이 그들을 지켜본다 그들은 그 사이 또 얼마나 늙었나 공장 문을 나설 때마다 그들은 더 깊은 주름이 패였고 몸은 쪼그라들었다 기억은 더 집요해졌고 냄새는 더 고약해졌다


봄이 되자 여름이 되고 가을이 겨울로 변하는 마법의 시대는 지나고

무국적의 태양들이 떼를 지어 출몰하였으며

밤이 되어도 달은 나타나지 않았다


한 무리의 남녀 젊은이들이 징집되었다 녹슨 철문을 열고 차례로 공장으로 들어갔다 공장 안은 기다렸던 과거의 날들 여자들은 목욕을 하고 남자들은 흐느꼈다 여자들은 꿈을 꾸고 남자들은 몸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그리고 함께 도로를 건설했다 어디로 가는 도로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아무데서나 아이들이 태어났다 아무데서나 아이들이 버려졌다 아무데서나 아이들이 자라났다 여러 개의 태양이 떴을 때 그들은 그림자로 말하기 시작했다


봄이다, 누군가 소리쳤다 환호하던 사람들은 공장의 입구가 사라진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계절들은 순환했다 그림자들은 금지된 노래를 불렀다 너무나 고요해서 가끔 사람들은 밤에도 잠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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