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外 1편

김혜순

 

눈사람

 

 

엄마가 숨이 멎자

덮었던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주었다

 

흐느끼는 하얀 입술

흐느끼는 하얀 터널

 

별채의 어둔 방에서 아기 엄마는 누에고치처럼 묶였다

 

흐느낌 한 소절이 공중에 떴다

 

배불뚝이 눈사람 하나가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본 사람이 있었다

 

눈발에 튀겨져 흐느끼는 하얀 기와들

 

배불뚝이 눈사람을 산으로 옮길 장정들이 나타났다

눈보라를 품은 배부른 천둥에 실려 사람 냄새가 왔다

상여 밑바닥에 붙은 아기가 울었다

 

아기 엄마는 눈발을 풀어 하얀 실을 자았다

아기의 베개를 짜고 이불을 짜고 무덤을 짜고

 

 폐병 환자의 가래 같은 흰 국화들이 수북한 그 아래

 

엄마의 속에서만 눈뜨고

엄마의 밖에서는 눈 감은 그 아기

 

그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은 사람은 누구?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의 나라에서 이미 출발한

아기는 도착할 곳이 없었다

 

이렇게 풀기 힘든 봉분은 처음이에요

인부들이 삽을 들고 침을 칵 뱉었다

 

눈사람의 아기가

눈사람의 뱃속에서 울고 또 울었다

 

(출토된 미라는

아기의 머리는 몸 밖에

아기의 몸은 몸 안에 둔 채

두 팔로 멈춘 시간을 안고 있었다)

 

 

 

식당 여자

 

 

아무도 먹으러 오지 않는 식당이 있습니다

혹시 누가 오려나 하고 정릉 뒷산을 세 시간 걷다 와도

아무도 먹으러 오지 않는 식당이 있습니다

수영장을 몇 번 왕복하고 와도

사우나에 가서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와도

고인 물속처럼 조용히 썩어 가는 식당이 있습니다

냄비에 불이 닿지도 않고 컵에 입술이 닿지도 않고

홀 바닥에 신발 자국이 남지도 않고

엎어진 컵이 바로 세워지지도 않는 식당이 있습니다

어서 오세요 말하는 것도 잊어버린 식당 여자가 지키는 식당

거름망에 먼지가 소복하고

매일 매일 설거지하고 앞치마에 손을 닦아 보지도 못한

빈 컵에 물을 붓듯이 목소리를 끌어올려

혼자 노래를 불러 보면 거품만 뽀글거리며 올라오는

어항처럼 조용한 식당

그릇에 감자 같은 덩어리를 넣어 본 적도 없지만

냉장고의 상한 야채를 매일 버리고 다시 채우고

식당 여자조차 그곳에서 밥을 해먹지 않습니다

나는 다른 식당에 가서 혼자 사 먹습니다

그래도 문을 열어야 할까요 하늘에는 구름도 떠가고 비행기도 떠 있고

힘차게 날아올라라 동사도 부사 뒤에다가 붙일 줄 알지만

문을 열어 놓고도 누가 올까 봐 두려워

마음껏 드세요 할 것도 없이

접시를 들어 얼굴을 비춰 보는 나날

햄버거집에서 하얀 빨대와 하얀 숟가락과 하얀 냅킨을 훔치는 게 취미인 여자

그것들로 못 먹는 생선도 만들고 과일도 조각하고 손님도 만들어 보는 여자

집에만 들어오면 죽은 쥐새끼처럼 까만 쥐똥만 싸는 여자

매일 식탁을 닦고 꽃을 사 오기도 하지만

권태가 시오리는 뻗쳐 나가 동네 길들이 다 돌아누운 것 같은

컵에 담가 놓은 양파는 무섭게 자라고

밤바다 밑에서 해초는 너울거리지만

당신만을 위해 끓어 보겠어요라는 말을 생각하고 큭큭 웃어 보는

비 오는 소리를 내며 튀겨지는 기름 냄비의 파닥거리는 생선을 상상하다가

생선 바구니를 들고 생선 신발을 신고 길바닥에 미끄러져

비 오는 거리에 생선을 다 방생해 버린 그런 여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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