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말의 저편에서
수제비 혹은 아메바처럼 물렁물렁한
뭉게구름 속의
저 고요는 137억 년 전
아니, 그 이전에도 있었던 고요
말의 저편에
있었던
고요
텅 빈 채
이미 사라진 언어들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말들을 감싸고 있는
고요
죽일 수 없는
절대 죽지 않는 고요
그 고요의 폭발처럼
떠 있는 오후의 뭉게구름들을
나는 고요의 자식들, 이라고 불러 본다
밀
눈알 희디흰 귀뚜라미 한 마리
사나운 눈발 속에 길을 잃었네
길,
마침표가 없는
시작이 없는
길,
그걸 밀이 아니라
길이라고 말해야 하나
눈알 희디흰 귀뚜라미 한 마리
사나운 눈발 속에 길을 잃었네
백발 더듬이를 뒤흔들던 긴 눈보라 그치고
어린 별 눈뜰 때
내 마음의 하수도에 얼어붙은 은하수가
다시 흐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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