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어린이

 

오은



21세기 어린이




버릇이 없다고 하더군요. 눈이 또랑또랑하다는 사람도 있고 벌써부터 싹수가 노랗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른들의 안목은 왜 이리 차이가 날까요? 나는 그냥 아름다운 게 아름다운데. 골치 썩는 일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이런 식이라면 맑고 푸르게 자랄 수가 없어요. 비단 매연이나 폐수 때문만은 아닙니다. 차라리 숨을 참고 물을 마시지 않겠어요. 다부지다는 사람도 있고 개념 없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그냥 할 말을 할 뿐인데요. 억울한 일을 열거하자면 열 줄짜리 일기장이 모자랄 지경입니다. 넉살이라는 사람도 있고 엄살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배운 단어로 표현하자면, 딜레마에 빠진 거라고 할 수 있죠. 똘똘하다는 사람도 있고 말세란 사람도 있습니다. 왜 세상 망한 책임을 나한테 뒤집어씌우는지 당최 모르겠어요. 사는 게 쉽지가 않아요. 잘 아시잖아요.


지하철을 탑니다. 초록색은 2호선, 빨간색은 3호선. 어렵지 않아요. 대가리가 있다면요. 학원에 가는 시간은 지루할 새가 없어요. 어른들이 벌이는 쇼를 보고 있노라면 킥킥 웃음만 터집니다. 대낮부터 코를 골지 않나, 하얀 속살만 보면 군침을 흘리지 않나, X자로 손을 꼬고 Y자로 앉아 있지를 않나. 누가 자기가 남성이라는 거 몰라요? 개인적으로 참 못났다고 생각합니다. 꿈이 없는 것 같다는 거죠. 저 사람들도 소싯적에는 대통령이 되고 싶었을까요? 머리가 지끈거리고 다리가 쑤십니다. 정신도 아프고 몸뚱이도 아픈 거예요. 어떡해야 할까요? 아저씨, 자리 좀 양보해 주세요. 저는 미래의 희망이라고요! 아무도 들어 주지 않습니다. 클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이건 정말 아니라고 봐요.


백화점에 가서 안구를 정화합니다. 나는 하이힐도 신고 싶고 핸드백도 메고 싶어요. 소꿉놀이가 유행한 게 대체 언젠데요. 바비인형은 대리 만족도 되지 않아요. 명랑하다는 사람도 있고 맹랑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난 단지 나를 가꾸고 싶을 뿐인데 말이죠. T팬티를 한 기분이 어떨지 지금 당장 알고 싶단 말입니다. 조숙하다는 사람도 있고 당돌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콧수염 난 피터 팬보다는 애늙은이가 백배쯤 낫지 않나요? 어리다고 점원이 무시합니다. 서비스에도 정신이 있는 법인데, 아주 본때를 보여 줘야겠어요. 눈을 홉뜨고 골드 카드를 들어 보입니다. 그제야 등이 좀 구부러지네요. 이거 보세요, 나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에요. 아니, 그래도 소비자보호법은 있어야 합니다.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거든요. 이기고 맘에 드는 물건을 삽니다. 카드 읽히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짜릿합니다. 이래봬도 엄마한테 맞아 죽을 각오도 해본 사람이에요. 따봉이라는 사람도 있고 킹왕짱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나의 이름은 과연 몇 개나 될까요? 나의 표정은, 나의 감정은, 나의 인격은. 세상의 모든 이름과 법칙을 배우려면 얼마나 더 성장해야 할까요? 기특하다는 사람도 있고 꿈도 야무지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할까요? 지식인에게 물어보면 속이 좀 시원해질까요? 하루하루 의심만 늘어 갑니다. 이러다 확 늙어 버리면 누구한테 하소연하죠? 나는 제대로 된 입맞춤도 아직 못 해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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