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의 최종지

 

고현정



라면의 최종지




도서관 열람실 모양으로 칸막이가 되어 있는 1인실 식탁에서 라면을 먹는다. 장소는 시부야 이치란. 일곱 가지 색다른 맛으로 승부한다는 붉은 글씨의 표어가 벽에 비뚤게 걸려 있다. 큐슈 잔가라 라면 쿠폰을 자판기에서 뽑아 들고 지하로 내려오는 좁은 계단과 계단참에서 30분 넘게 기다렸다. 이제야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답답하다. 텁텁한 냄새가 코를 마취시킨다. 가로 세로 30센티미터 정도 되는 탁자 위 오른편에 작은 수도꼭지가 달려 있다. 사무라이 복장을 한 남자가 커튼을 걷고 내밀어 준 컵을 대고 꼭지를 누른다. 쫄쫄쫄 시냇물 소리를 내며 물이 컵 속으로 빨려들어 온다. 돼지비계 냄새가 좁은 지하의 실내를 소용돌이친다. 속이 울컥거린다. 여기저기서 젓가락질하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온다.


사무라이가 내민 주문표에 한글로 뭔가가 적혀 있다. 나는 ‘코리언’이라고 이미 말했다. 그는 말없이 번호들에 마음대로 동그라미를 친 다음 커튼 뒤로 사라졌다. 야채와 고기의 양, 국물의 진함을 선택하는 항목들이다. 수타를 확실하게 느끼게 해주는 면발. 지금까지 내가 먹은 라면은 가짜다. 깔끔함과 느끼함을 동시에 느낀다. 최종지에서 먹는 라면은 친구와 나란히 앉아 먹을 수 없다. 입구 벽에 걸린 번호에 붉은 불이 들어오는 곳으로 순서대로 가서 앉아 먹는다. 친구가 먼저 왼쪽 열 5번으로 들어갔다. 3분 후 나는 오른쪽 열 9번으로 가서 앉았다. 친구나 가족도 함께 라면을 먹을 수 없다. 누구도 같이 먹겠다고 빡빡 우길 수 없다. 유명 가이드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다. 창작 라면들의 메뉴가 벽을 장식하고 있다. 창작이라는 말은 내가 붙인 것이다.


이곳에서는 라면도 창작을 하고 있다. 라면의 최종지에서 나는 창작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자비로운 지식의 거룩한 백과사전

― 윌킨스




황제에게 속한 동물

방부 처리된 동물

훈련된 동물

젖먹이 돼지

인어

전설상의 동물

길 잃은 개

이 분류에 포함된 동물

무수히 많은 동물

고운 낙타털 붓으로 그린 동물

기타 동물

방금 꽃병을 깬 동물

멀리서 보면 파리를 닮은 동물

        ?

        

        ?


윌킨스의 동물 분류 목록표를 보면 생각난다

내재한 리듬과 비정상적 아름다움들이

선형적 개념을 흐트러뜨린다

낯섦과 친밀함과 동시에 같음과 다름이 있는

서로 다른 생명체 간의 깊은 유사함

그러나 인위적이다


최초의 생명체는 고립되어 고대의 망망한 바다에서

혼자 물 위를 떠다녔을 것이다

이후로 생명은 한 번도 홀로인 적이 없었다

분열하고 경계선을 긋고 짝을 찾고

에너지와 균형을 이루어 생명의 춤을 이끌어낸다


나는 <방금 꽃병을 깬 동물>로 분류되고 싶다

곰팡내가 섞인 젖은 흙냄새

햇빛 아래 으깨어진 풀 위에 누워

저 먼 반대편 세상을 떠올린다


바닷가재는 머리에 있는 두 개의 유연한 더듬이로 해류 속에 떠다니는 죽음의 냄새를 맡는다

어두운 물밑바닥에서

그들은 코로 삶을 살고 코로 사랑을 한다

나는 그들을 <황제에게 속한 동물>로 분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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