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없는 날

 

곽재구



사랑이 없는 날




생각한다

봄과 겨울 사이에

무슨 계절의 숨소리가 스며 있는지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사이에

벌교 장터 수수팥떡과

산 채로 보리새우를 먹는 사람들 사이에

무슨 상어의 이빨이 박혀 있는지


생각한다

눈 오는 섬진강과 지리산 사이에

南과 北 사이에

은서네 피아노 가게와 종점 세탁소 사이에

홍매화와 목련꽃 사이에

너와 나 사이에


또 무슨

病은 없는지


생각한다

꽃이 진 뒤에도

나무를 흔드는 바람과

손님이 다 내린 뒤에도

저 홀로 가는 자정의 마을버스와

눈 쌓인 언덕길

홀로 빛나는 초승달 하나


또 무슨

病은 깊은지



죽순



액자 속에서

그가 웃고 있다

이마의 주름살과

흰 수염 사이로 스며든 햇살의 윤곽에서

그가 이승에서 건너려 했던

강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분향소의 사람들이

액자 속의 그와 짧은 눈맞춤을 하는 동안

상주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다

그의 등 위에 내려앉는 촛불의 어룽거림 속에

잠시 극락의 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다

곡성군 목사동면 연화리

나는 그의 마지막 이승의 주소를 안다

물앵두꽃 환히 피고

물안개가 밥솥의 김처럼 솟아오르는 강마을이다

물안개 십리 길을 따라 조각배를 타고 가며

그와 하루 종일

죽순을 꺾었던 날이 내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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