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물은 피를 요구한다

 

최치언



어떤 선물은 피를 요구한다




우리는 모두 우측으로 걷고 있었다. 그때 좌측에서 소리가 들렸다 

듣지 마라

소리는 계속해서 우리들의 귓전을 때렸다

귓속에서 시뻘건 태양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좌측은 연필의 힘을 믿는다

나무의 치졸함을 믿고 

의사당의 순결을 믿는다

좌측은 형제들의 오만을 믿는다

그러므로 좌측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우리가 늙는다는 것도

너희들이 여자이었다가 남자가 되고 그리고 여자로 사랑하는 나약한 방식을 믿는다 


귀를 도려내라


그리고 우리는 귀 없이 계속 걸었다. 그때 좌측에서 움직였다

보지 마라

움직임은 계속해서 우리들의 눈꼬리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담장의 덩굴이 눈알을 휘감아 낚아채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걸었다


좌측은 우리들 반대쪽으로 기울어 있다

높은 담장을 드리우고 좌측은 아무것도 치료하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좌측의 말이

칼처럼 우리 몸을 찌르고 들어왔을 때 우리들은 어처구니없게도 많이 순진해졌다

우리가 더 이상

선한 꿈을 꾸지 못한다는 건 좌측에게 우리들의 악몽을 맡겼기 때문이다  

움직일 수 있을 때


눈알을 파라


눈알 없이 우리들은 우측으로 걷는다. 

좌측이 우측이 될 때까지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우리는 우측하고만 싸웠다 

그리고. 

모두 죽었다


이것이 좌측이 준 선물이다.




매장된 아이*




나는 누군가를 찔렀다 아무도 보지 못했으므로

나는 누군가를 사정없이 찔렀다 광장의 후미진 골목에서

나는 그 누군가를 만났다 그의 안경알은 분수대의 햇살처럼 튀어 올랐다


나는 중얼거린다 

비둘기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엄마는 그네에 앉아

자꾸 아득한 허공으로 발을 차셨다 나는 그 발길에 차이면서

“엄마, 제가 죽여 드릴게요. 다 죽여 드릴게요.”


튀어 올랐던 햇살이 그 누군가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오른손으로 그는 내 멱살을 움켜잡았고

아무도 보지 못했으므로 나의 왼손에 들려 있던 과도는

기차처럼 비명을 지르며 그의 목을 불쑥 통과해 버렸다


엄마는 허공에 발목만 남겨 놓고

지상으로 내려와 검은 아스팔트 위를 한들한들 걷는다

나의 중얼거림은 끝이 없고

“엄마, 제가 죽였어요. 다 죽였어요.”


콸콸 쏟아지는 붉은 피. 나는 누군가를 들쳐 업고

시립 매립지로 간다 이곳에선 죽은 이들과 죽어갈 이들이

나와 함께 묻혀 있다


나는 중얼거린다, 끊임없이


“죽일 수 있을 때 까지 다 죽이고 죽을 수 있을 때 까지 죽겠어요.”


정오는 조용히 부패하기 시작한다.


 

 

* 샘 셰퍼드의 『매장된 아이』 제목 인용.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