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리
가족
지난 밤 비에 물이 불었나 보고 오라 하니
아이는 나무의 키를 보고 왔다
물에 비친 나무의 키가 더 커졌다고
수척한 물 위에 왜 나무의 키가 더 커 보이는지
그 아이 비오는 날 마당에 나가 화분에 물을 준다
우산 쓰고 물을 준다
아이의 말을 알아들은 화분의 꽃들은
그것이 약속이란 걸 안다
비가 왔으니 물이 불었을 거라는 건 어른의 말
비가 와도 화분에 물 줘야 하는 건 아이의 약속
그 아이 통통 뛰어다니며
현관문이나 창문을 죄다 연다
비가 자꾸 안으로 들어오려 한다고
바깥에 젖고 있는 풍경들
자꾸 안으로만 들고픈데
안에 들고 나면 더 이상 그리움 아니니
젖는 마음은 밖에 두어야 하나
자라도 어른이 아닌 어른과
어려도 좀처럼 아이가 아닌 아이가
한 집에 산다
꽃 피고 비 온다
저수지
무심히 산과 나무, 고요까지 수면이 복사한다
한 생을 거꾸로 박아 넣는다 해도
대저 말이란 게 없다
몸이 조금씩 마르는 걸로 대답은 충분한 거지
물 위에 젖어 엉긴 나뭇잎 건지려 집게로 수면을 집어 올리자
일가(一家)
잘 다려 놓은 긴장이 집게 끝에 쭈욱 딸려 나온다
일사불란, 통념이란 그렇게 움직이는 거다
산이 슬쩍 박아놓은 외눈동자
백내장 젤라틴 엷은 막 걷히자
참 맑은 감잣국 한 솥 잘 식어 하늘 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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