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59

 

심상대

 

 

 


 

 

 

 

   “마녀는 다섯이었습니다. 알록달록한 고깔모자를 쓴 키 작고 오동통한 마녀가 초록색 페인트칠 한 나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

  잠깐 숨을 멈추고 말끔하게 면도한 인중과 턱을 매만지던 산딸기는 다시 입술을 열었다.

   “황금색 머리칼을 가슴까지 드리운 채 구석에 앉아 있던 처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지요. 다 왔네. 그러고는 두 손을 쳐들었어요.”

   산딸기는 젓가락을 모아 쥔 오른손과 빈 왼손을 식탁 위로 들어올렸다. 시인과 소설가, 희곡작가와 동화작가가 그를 바라보았다. 시인은 둘, 소설가는 셋, 그리고 산딸기까지,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은 모두 여덟이었고 한창 저녁 식사 중이었다.

   “교수님은 콧수염을 쓰다듬고 있었죠. 모과 바구니가 놓인 공구 선반 아래 철제 의자에 앉아.”

   산딸기를 제외한 일곱으로서는 이제껏 한 번도 그 교수님을 본 적 없었지만 교수님이야말로 그의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교수님의 정체는 천 년 묵은 여우이며 그래서 오직 그만이 마녀들의 파티에 가담하고, 가끔은 그의 아틀리에에서 마녀의 파티가 열린다고 한다.

   “아까 말했죠? 황금색 머리칼을 기른 처녀 마녀는 도롱뇽이라고. 노란색 아이섀도를 한 에스라인 몸매의 마녀는 백 년 묵은 지네, 키티 머플러를 두른 베이글녀는 능구렁이, 검정 부츠를 신고 풍선껌을 씹고 있는 마녀는 오소리의 변신입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알록달록한 고깔모자를 쓴 마녀는 오백 살이나 먹은 흰 염소였습니다. 교수님이 이들을 불러 모아 티파티를 연 까닭은 제니 때문이었어요. 한 달이 지나도록 제니가 딸꾹질을 멈추지 않았거든요.”

   젓가락으로 찐가지무침 접시 위 허공을 긁으면서 그는 제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흰둥이 암캐의 딸꾹질에 대해 설명했다.

   “한 달 전 교수님은 보리빵을 구워 개울가 벽돌집에서 혼자 사는 옴두꺼비 마녀를 불렀습니다. 보라색 가죽재킷을 입고 검정색 쫄바지를 입은 옴두꺼비 마녀가 초콜릿 상자를 들고 보리빵을 먹으러 왔는데, 빵을 다 먹은 뒤 커피 잔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교수님 작업장 천장에 매달린 도르래를 봤어요. 그러곤 떼를 쓰기 시작했죠. 자신이 아끼는 춘란과 도르래를 맞바꾸자고 말입니다. 안 된다고 교수님이 거절했죠. 그 도르래는 소형 비행기와 모터보트 작업을 위해 교수님이 직접 제작한 도구였고 주물이 아니라 절삭 연마한 강철재였거든요. 강철 재료와 베어링은 교수님이 독일 여행길에 우연히 들른 소규모 제철공장에서 어렵게 구한 소재였어요. 그렇지 않더라도 줄 수 없었답니다. 그때 한창 제작 중인 일인용 비행기 본체를 그 도르래를 이용해 날마다 들어 올렸다 내렸다 했기 때문에 절대 없어선 안 되는 도구였거든요. 하지만 옴두꺼비 마녀는 막무가내 앙탈을 부렸어요. 구체적으로 그 장소를 가르쳐줄 순 없지만 강원도 동북부 어느 깊은 산중 신갈나무 군락지에서만 자란다는 자신의 춘란을 자랑하면서, 그 춘란과 도르래를 맞바꾸자고 말입니다.”

   이 창작 레지던스 사무국장인 소설가 앞에 놓여 있는 우엉채조림 접시를 젓가락 끝으로 당겨 제 앞에 놓인 애호박무침 접시 곁까지 옮기며 산딸기는 계속 말했다.

   “그래서 그 마녀가 제니에게 마술을 걸었다고 교수님은 믿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한밤에 옴두꺼비 마녀가 자신의 벽돌집을 통째 들고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거든요. 강아지 적부터 애지중지 키운 제니가 연방 딸꾹질하며 먹이를 먹지 못하자 교수님은 화가 났어요. 그래서 마녀들을 불러 모은 거예요. 어떡하든 딸꾹질을 멈추도록 해! 하고 교수님이 다섯에게 소리쳤어요. 잔뜩 노한 눈으로 콧수염을 매만지면서.”

   아줌마 소설가와 문예창작학과 교수인 시인은 건성으로 듣는 척하며 김장김치와 찐가지무침을 집어먹었다. 의뭉스런 그들과 달리 신인 동화작가 아가씨와 환갑이 다 된 소설가는 강낭콩 섞인 쌀밥을 씹으면서도 두 눈으로 그의 말을 골똘히 듣고 있었다.

   “교수님의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다섯은 우선 커피를 마셨어요. 지네가 원두를 가는 동안 능구렁이는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죠. 긴장하고 있는 마녀는 도롱뇽뿐이었습니다. 그녀는 교수님 작업실 뒷산에 살고 있어 자주 교수님과 마주쳐야 하는 처지였고 제니 오줌으로 피부병을 고치고 있었거든요. 커피를 마시며 그녀가 나머지 마녀들에게 말했어요. 어쩔래? 옴두꺼비를 어디서 찾지? 그러나 능구렁이는 제니의 딸꾹질은 옴두꺼비의 마술 때문이라기보단 제니가 날달걀을 삼킨 탓이라고 말했습니다. 뭐든 먹는 버릇이 탈이야, 하고 흰 염소가 제니의 식습관을 나무랐지요. 하지만 커피 잔 받침에 올려 뒀던 풍선껌을 다시 입에 넣으며 오소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냐, 옴두꺼비 짓이 맞아! 지난여름 내내 골 안 청개구리가 딸꾹질하는 소릴 들으며 우리 할머니가 말했거든. 저건 옴두꺼비년 짓이다, 하고.”

   “그래서요?”

하고 사무국장이 말을 잘랐다. 평소엔 조용하던 사람이 일단 말문이 터지면 허황된 이야기가 좌우로 늘어져 줄기와 가지를 가늠할 수 없게 갈래갈래 뻗어 나가며 저만이 좌중 한가운데서 그들을 압도하려는 그의 말버릇을 잘 아는 사무국장이 산딸기의 요설을 수습하고자 했다. 그러나 산딸기는 이미 식욕 따위, 점잖은 타박에 대한 수치심 따윈 내동댕이친 뒤였다.

   “네, 그래요. 다섯은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제니의 딸꾹질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다섯이 주문을 외며 검지를 맞세워 할미꽃을 피우긴 했지만 할미꽃은 금방 픽 거품처럼 터져 사라지고 말았거든요. 다섯의 염력으로 가능한 비법 도출 가능성이 오십 퍼센트를 넘지 않는다는 증거였어요. 이 맹추 같은 다섯 마녀는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도망질하고 배가 고파도 굶주리며 춤추고 노는 데 골몰할 뿐이었거든요. 그래서 도시도 심산유곡도 아닌 이 산 아랫마을에서 빈둥거리며 살고 있답니다. 오늘 할미꽃이 활짝 피어나긴 틀렸다고 판단한 교수님이 결론 내렸죠. 머리 양쪽에서 흘러내린 머리칼을 불룩한 젖가슴 사이에서 외가닥으로 땋아 정강이까지 내리 드리우고 푸푸 풍선껌을 불어대는 오소리 마녀를 지적해 교수님이 말했어요. 넌 지금 집으로 돌아가 할머니한테 비방을 물어보고 돌아와. 할머니도 몰라요, 하고 오소리가 눈썹을 일그러뜨리고 미간을 좁혔어요. 그러자 도롱뇽이 말했습니다. 나랑 같이 가! 내가 살아남은 청개구리한테 알아볼게. 펑! 하고, 그렇게 그들 둘이 사라지자 교수님은 나머지 셋을 향해 이렇게 명령했어요. 그동안 너희는 제멋대로 춤을 추어라. 염소야, 넌 세상에서 가장 목마른 새들의 슬픔을 부기우기로 춤춘댔지? 내게도 그런 슬픔이 전해지도록 지금 춤을 춰보아라. 그리고 너희 둘도 날 좀 슬프게 해보렴. 내가 구름 위에서 하늘을 쳐다볼 때보다 더 슬픈 기분에 빠져들기만 한다면 너희 셋에겐 땅 속에서 썩어 짓무른 배추뿌리 즙을 먹고 자란 고양이의 피를 거름으로 꽃 핀 양귀비 열매를 똑같이 나눠줄 테다.”

   “그게 다예요?”

   잠시 말을 멈춘 그에게 두 눈으로 그의 말을 듣던 동화작가 아가씨가 물었다.

   “아니죠!”

   “그럼, 그 마녀들이 어떻게 춤췄는지 말해 봐요.”

   늙은 소설가가 그렇게 청하자 산딸기는 젓가락을 던지고 의자에서 일어나 세 마녀의 춤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우선 흰 염소는 아지랑이로 변해 자신의 고깔모자 위에 올라섰어요.”

   늘 이런 식이었다. 자욱이 안개가 내리는 날이나 비바람 휘몰아치는 날이면 산딸기는 레지던스를 벗어나 들로 산으로 휘돌다가 바람과 물기에 흠뻑 젖은 몸으로 통유리 현관문을 열고 층계를 올랐다. 휴게실과 식당에 앉아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기다리던 동료가 그런 그에게 말했다.

   “오늘은 어디서 뭘 봤나요? 말해 봐요.”

   “그래요, 오늘은 앞산 너머 저기 저 뒤편 해산(亥山) 중턱에서 목욕하는 선녀들을 봤어요.”

   그는 말을 멈추고 좌중을 둘러보며 그들의 긴장을 즐긴 뒤 이윽고 선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난 바위 뒤에 숨어 물 위에 뜬 그들의 둥근 젖가슴을 다 봤지요. 몽땅!”

   이곳에서 밥 먹고 자고 방에 틀어박혀 지낸 지 석 달이 지났지만 그가 소설을 쓰는지 마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레지던스 동료들은 단지 그의 이야기와 이야기 한 대목을 마칠 때마다 그가 터뜨리는 한바탕 기이한 웃음보와 유치한 거드름을 기꺼이 즐겼다. 그는 결코 다른 사람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으며 자기 생각이 아닌 타인의 생각에는 유념치도 않았다. 숨을 고른 산딸기는 들어 올린 두 손을 날렵하게 움직여 선녀의 뾰족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와 동그란 엉덩이와 지름을 줄이며 매끄럽게 뻗어 내린 다리를 그들에게 그려 보였다.

   “이렇게 말할 수밖엔 없어요. 진정 평화로운 장면이었습니다.”

   그해 늦여름 얼렁뚱땅 소설가 자격으로 이 창작 레지던스에 들어온 그는 곧 ‘육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자신에 대해 말할 적엔 모든 사물과 사건을 늘 ‘6’이란 숫자와 연관시키는 그의 독특한 말버릇 때문이었다. 그는 산 여섯 개가 둘러싸고 있는 산골 마을에서 여섯 형제의 막내로 유월에 태어났다고 자신을 소개했고, 여섯 살 먹던 해 봉우리 여섯 개가 나란히 늘어선 뒷산 개울가에서 여섯 개의 가지를 펼친 뽕나무에 올라가 오디 여섯 개를 따먹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산골 초등학교 육학년 육반 반장을 할 때 친한 친구는 여섯이었고, 해군 병졸로 근무할 적에도 6함대에 소속돼 있다 여섯 달 만에 제6 해역사로 파견근무 하게 됐으며 다음 해 유월에 전역했다고 말했다. 소설가도 시인도 그런 그를 좋아했고, 덩달아 ‘6’이라는 숫자에 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그는 여섯 명의 여자를 사랑했고, 그 여자 여섯 명에게 차례로 배신당했다면서 그럴 때마다 엿새 밤을 꼬박 새우며 하루에 여섯 번씩 대성통곡했노라고 털어놓았다.

   “그래요. 언제나 인생은 엿새가 부족하거든요.”

   뭐 그런 소리에 크게 감동하거나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인이든 소설가든 동화작가든 희곡작가든 레지던스에 입주한 그들로서는 청탁원고 마감이 닥치면 누구나 그와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인생은 늘 엿새가 부족하다는 그의 말에 침묵으로 동의하면서 다함께 북엇국을 떠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육이는 또 다른 별명을 가지게 됐는데, 그 기원은 그가 혼자 흥얼거리는 동요 탓이었다.

   “잎새 뒤에 숨어 숨어 익은 산딸기. 지나가던 나그네가 보았습니다. 딸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갑니다.”

   그는 또 이런 노래도 불렀다.

   “온 세계에 모든 사람 다정한 이웃. 사랑하는 친구 되어 함께 살고파. 사과나무 가지마다 꿀벌 나르고 산비둘기 꿈을 꾸는 사랑의 집에. 산뜻한 그 맛 목말라 애타게 찾는. 사랑하는 우리 세계 다정한 이웃. 생활 속의 참맛! 노래하자 우리 세계 산뜻한 그 맛! 오직 그것뿐! 코카콜라 코카콜라.”

   〈산딸기〉라는 동요는 익히 알았으나 〈코카콜라〉라는 시엠송에 대해선 알지 못했던 레지던스 동료들이 그를 ‘코카콜라’가 아니라 ‘산딸기’라 부르기로 하면서 ‘육이’라는 별명을 내버린 결정은 당연했다.

   “산딸기 씨.”

하고 시인 아줌마가 그를 불렀다.

   “다시 한 번 소리 내 불러 봐요.”

   그러면 그는 소곤소곤 그 동요를 불렀고 감상적인 여류시인은 ‘딸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갑니다.’란 노랫말의 은유에 감동하곤 했다. 추위가 닥치고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겨울날 아침 산딸기는 아침 식사가 끝나 갈 무렵 이번 동절기 자신의 거취에 대해 말했다. 오스카 와일드의 무덤을 찾아 프랑스로 간다는 그의 말에 안식년 내내 시를 짓느라 방구석에서 뒹굴던 문예창작학과 교수 시인이 눈을 치뜨며 물었다.

   “어디로 가신다고요?”

   흠, 하고 코로 숨을 내쉰 뒤 산딸기가 대답했다.

   “파리에 있는 페르라셰즈 공동묘지에요.”

   “그래요?”

   시인이 거듭 물었다.

   “왜?”

   “키스하려고요.”

   그렇게 떠난 산딸기는 다음해 이른 봄 다시 이 창작 레지던스로 돌아왔고 사무국장 지정석인 식탁 상석에 앉은 소설가가 그에게 물었다.

   “어때요? 오스카 와일드 묘석에 키스하고 왔나요?”

   그는 한 손으로 코끝을 긁어대고, 다른 손으로는 연두색 남방의 깃을 매만지면서 빙긋이 웃기만 했다. 사무국장이 채근했다.

   “말해 봐요.”

   그러자 산딸기는 맹맹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뇨. 그런 공동묘지는 없었어요.”

   “그럴 리가 있나요?”

하고 사무국장이 턱을 당기고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디에도 없었어요.”

   그러고는 끝이었다. 봄이 다 가고 여름이 다가올 때까지 산딸기는 간간이 예의 〈산딸기〉라는 동요를 입안에서 웅얼거리며 레지던스 복도를 걸어 다닐 뿐, 다시 그의 특징인 침묵으로 침잠했다. 그가 불현듯 입을 열어 마녀의 파티와 선녀의 목욕과 도깨비 힘자랑과 벙어리 남매의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때는 산과 골짜기와 논밭에 내려앉은 안개가 태양의 발기를 방해하던 어느 여름날 아침나절이었고, 동료들이 귀를 기울여 다시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 때는 비를 흩뿌리는 바람이 종횡으로 몰아쳐 레지던스 사방의 활엽수 둥치를 뒤흔들며 초록의 잎새를 너울너울 춤추도록 부추기던 여름날 저녁 무렵이었다. 우중의 여름날 종일, 창가에 서서 산후박나무 잔가지를 흔들고 그 잎새를 훌러덩 뒤집어 솜털에 덮인 잎새 뒷장을 들춰 보이는 바람결을 구경하며 자연의 에로티시즘에 젖어 있던 시인이 흠뻑 비에 젖은 꼴로 산에서 돌아온 그에게 물었다.

   “산 속에서 무얼 보았소? 말해 봐요.”

   파르르 떨며 뒷장을 여민 뒤에도 잦아드는 바람결에 할딱이던 산후박나무 잎새의 욕정을 못내 잊지 못한 시인은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며 그렇게 물었고 비에 젖은 산딸기는 핏기로 물든 연홍의 입술을 열어 자신이 목도한 경이로운 세계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세 개의 산을 넘자 안개는 더욱 짙어지고 비는 가늘게 변해 산자락을 어루만지고 있었어요.”

   그의 흰 목덜미와 가는 팔뚝은 비에 젖어 있었다.

   “해산 중턱 산중 호수에서 목욕하는 선녀들을 봤어요. 부슬비가 안개를 적시고 있었지요. 안개가 호수를 감싸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그 호수가 선녀의 몸을 더듬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어디에 있었소?”

   “난 빗속에 서 있었습니다.”

   “무얼 봤나요?”

   “안개를 봤지요.”

   “선녀를 봤다면서요? 목욕하는 선녀들 말이오.”

   “그래요. 그들은 안개에 묻혀 있었어요.”

   그 다음다음날은 투명한 햇살이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들을 진초록으로 채색하면서 그 위에서 빛났고 해질녘이 되자 커다랗고 빨갛게 변한 해가 하늘가에서 이글거렸다. 어느덧 해가 산 뒤편으로 꼴까닥 잠겨버린 뒤 산딸기는 땀을 닦으며 산기슭에서 돌아와 저녁 식탁에 앉았다. 건물 그늘에서 하루를 지낸 동료들이 그를 맞으면서 그중 하나가 물었다.

   “오늘은 무얼 봤는지 말해 주세요.”

   다른 날과 달리 산딸기는 밥을 다 먹고 사과와 호두 빵을 후식으로 먹은 뒤 커피 잔을 들고서야 자신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그들에게 유연한 손짓으로 열 손가락을 활짝 펴거나 윗몸을 앞뒤로 그리고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이며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해산으로 오르는 길은 세 갈래입니다. 그중 오른쪽 가장 가파른 돌투성이 비탈길을 오르다 보면 너덜겅이 있고 그 너덜겅 곁 잣나무 숲 어귀에 무덤 한 장이 있지요. 그 무덤가에서 그들을 봤어요.”

   모두 잠자코 있었지만 해산이란 산은 인근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아는 사무국장은 혀끝을 아랫입술에 올린 채 흐흐흐, 하고 웃었다.

   “무덤가 잔디밭에 그들이 있었어요. 두 손으로 무덤의 밑동을 짚고 두 다리로 잔디밭을 딛고 선 누나는 둥근 엉덩이를 높이 쳐들고 있었습니다. 암노루처럼 어깨보다 엉덩이가 더 높게 솟은 자세였어요. 하지만 폭 너른 치마를 뒤집어 치마폭을 허리부터 머리끝까지 덮어쓴 모양이라 그녀의 몸은 가는 허리에서 튀어나온 둥근 엉덩이와 그 엉덩이 두 개를 떠받치는 튼실한 허벅지로 드러나 햇살 속에서 빛나고 있었답니다. 조끼 러닝셔츠만 입은 동생은 다 벗은 아랫도리를 누나의 엉덩이에 붙이고 서서 그녀의 허리를 움켜쥔 채 뻘뻘 땀을 흘리고 있었어요. 잔뜩 종아리에 힘을 주면서 좀 더 엉덩이를 들어 올리려 까치발 하느라 누나는 두 엄지발가락을 잔디밭에 꽂았습니다. 동생은 어금니가 드러나 보이도록 입을 열었고 누나는 뒤집어쓴 치맛자락을 들치더니 한쪽 손을 허공으로 쳐들어 잔디밭 위로 피어오르는 열기를 두드리듯 거칠게 허우적거렸어요. 그러자 동생은 이남박만 한 손바닥으로 그런 누나의 소원을 들어 주었어요. 한 번 두 번 이쪽저쪽 열 번 스무 번……. 누나의 엉덩이는 붉은 손가락 자국이 겹치고 겹쳐 곧 벌겋게 부어올랐어요. 떡갈나무 이파리 그림자가 그 붉은 엉덩이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요.”

   벙어리 남매의 성교를 묘사하느라 산딸기는 어깨를 옹송그리고 눈시울을 조리며 소곤소곤 말했다. 소설가와 시인 그리고 문학평론가는 그의 눈과 손끝이 이끄는 침묵의 세계로 몰입해 그곳에서 벌어지는 성의 향연을 만끽하느라 그의 몸짓 자체를 능수능란한 수화로 정교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키만 껑충한 떡갈나무 가는 가지에 앉은 뻐꾸기가 부리를 열었다간 닫았습니다. 흔들, 뻐꾸기가 중심을 잡는 사이 떡갈나무 가지는 아래로 굽었다 제자리로 돌아가고 떡갈나무 잎은 갸웃갸웃 까불어댔어요. 누나의 엉덩이를 잡고 우뚝 선 자세로 동생은 콧구멍을 크게 열고 앞니를 맞물면서 한껏 몸을 젖혔어요. 커다란 활처럼 둥글게 젖혔어요. 그러면서 입술을 벌리고 활짝 눈을 떴지요. 그의 양쪽 입가로 맑은 침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두 다리를 부들부들 떨어대던 누나는 펄럭, 치맛자락을 젖히고 성난 살쾡이 눈으로 그런 동생을 돌아보았답니다. 누나는 성이 차지 않았거든요. 그녀는 길고 빨간 혀를 내밀어 햇살을 핥으며 곰배 모양으로 구부린 왼손을 이리저리 흔들어댔고 동생은 오른손 검지를 자신의 오른쪽 볼에 대고 살짝살짝 비틀어 누나의 보조개를 형용했어요. 예쁘다는 뜻의 수화랍니다. 그러고서도 동생은 눈동자를 크게 뜨고 콧구멍과 입을 한껏 벌리고 열 손가락을 한데 모았다 꽃봉오리처럼 펼치며 누나를 칭찬했건만 누나는 치켜든 엉덩이를 요란하게 흔들며 재촉을 멈추지 않았어요. 동생은 하는 수 없이 그런 누나의 엉덩이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자신의 얼굴을 그녀의 땀에 젖고 핏빛으로 멍들어 얼룩진 두 둔덕 사이에 파묻었습니다.”

   그날 밤 산딸기는 자신의 거짓말이 생시처럼 펼쳐지는 꿈속에서 몽정을 하고 새벽녘 잠에서 깨어 희미하게 웃다간 다시 잠들었다. 그러나 그는 아침이 되어 잠과 꿈에서 깨어난 뒤, 한 송이 꽃을 쳐들고 애처롭게 홀로 선 수행자의 쓸쓸한 표정으로 아무도 자신의 거짓말을 용인하지 않으리라는 회의적 심정에 빠져들었다. 태양이 작열하는 긴 하루가 저물어 가고 대낮의 열기로 미지근하게 단 테라스가 평면의 그림자에 덥힐 무렵, 레지던스에 기숙하는 시인과 소설가와 문학평론가는 무리지어 때 이른 술판을 벌였으며, 하나는 〈봄날은 간다〉를 부르고 다른 하나는 〈섬바디 댓 아이 유스드 투 노〉를 노래하느라 목에 핏대를 세우고, 그리고 그들은 연기설과 유일신론과 두 남녀가 눈을 마주보며 영원히 사랑하겠노라 언약하는 사랑의 맹세를 비웃으며 문학에 대한 심각한 토론의 시간을 마련했다. 술판에선 아무도 산딸기의 노래를 들으려 하지 않았으며 그에게 저 산 너머 해산에서 보고 온 이야기를 들려 달라 청하지도 않았다. 거짓말이라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듯 일직선으로 반듯한 위아래 입술을 열어 그들이 술 마시고 웃고 노래 부를 때 산딸기의 눈과 입술은 외로움과 슬픔으로 몹시 일그러졌다. 그는 곧 슬그머니 일어나 환호작약하는 그들 사이에서 사라져 버렸다.

   물뱀이 지나다니는 깊은 산 속 골짜기 개울가에 늘어진 산딸기 넝쿨에서 삐져나온 가지 하나가 맑은 물 위에서 흔들리며 물에 비치는 자신의 자태마저 시기하던 성하의 계절이 지나고, 가시투성이 그 잔가지 겨드랑에 열려 마지막으로 익은 탐스런 산딸기 한 알 역시 잔뜩 짓물러 툭, 하고 물 위에 떨어진 날 그 다음날 이른 아침이었다. 사방천지가 어둠에 잠기더니 억수비가 쏟아졌다. 흰 반소매 면 티셔츠를 입고 쥐색 얇은 폴라폴리스 천으로 된 긴 바지 차림에 트레킹화를 신은 산딸기는 천둥과 번개가 번갈아 내리치는 어두운 하늘 아래로 나서서 들길로 달려갔다. 시멘트로 포장한 농로를 지나 사차선 차도를 가로지르자 좁은 논둑길이 웃자란 벼 포기 사이로 숨어 있었다. 그 끝에서 산은 시작되었다.

   해산은 마을 앞산을 넘고 그 산 뒤편의 산을 넘고 다시 그 뒷산을 넘고 넘은 다음에야 저편 멀리 아스라이 바라 보였다. 해산 발치에 이르자 장대비가 그치고 천둥과 번개도 잦아들더니 몽근 알갱이로 촘촘히 짜인 짙은 산안개의 너울이 앞을 가로막았다. 산딸기는 두터운 안개 속을 더듬으며 숨차게 산길을 걸어 올랐다. 폭넓은 안개 자락이 울울창창한 활엽수 둥치에 연이어 걸쳐 있어 그로서는 단지 오르막 비탈을 더듬으며 방향을 잡는 도리밖에 없었고, 해산도 안개도 원시 밀림도 마찬가지로 기어이 기어오르는 그에게 산의 정상을 온전히 숨길 별다른 재주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해산의 산정은 오르막 끝에 부끄러운 모양을 하늘 아래 드러내며 다소곳이 숨죽이고 있었다. 더 이상의 세계는 보이지 않았다. 수평시정거리는 자신의 손이 가닿을 만한 거리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곳은 그림자도 타인도 분간도 없었다. 자신만의 세계, 미망과 혼돈의 세계, 곧 안개의 세계였다. 그는 발길을 돌려 다시 사람이 북적이는 곳, 그림자가 있는 세계, 질문보다 대답이 난무하는 세계, 유사한 삶이 반복되는 세계, 복제품이 더미지어 쌓여 있는 태양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산을 내려올수록 안개는 차츰 엷어졌다. 비탈진 삼나무 군락지와 금강송 숲 위에서 해지고 찢긴 안개의 폭이 산밤나무 계곡으로 빠르게 흘러내리는 광경이 발아래로 내려다보였다. 그리고 그 안개의 조각 사이로 호수의 물결이 모양을 드러냈으며 그가 산중 호숫가에 도달했을 때,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거짓말 속에서 보고 또 보았던 그들을 보았다.

   “아오!”

   호숫가에 줄지어 선 찔레나무 넝쿨 위에 그들의 날개옷이 찔레꽃 더미인 양 하얗게 널려 있었다. 정녕 꿈이 아니었다.

   “진짜 선녀로군!”

   단풍나무와 찔레 넝쿨과 키 작은 버드나무가 호수의 물결을 내려다보며 머리 숙이고 있는 경치와 물결 위에 서려 있던 짙은 안개가 슬그머니 떠오르는 아찔한 풍광이 눈앞에 펼쳐졌다. 안개가 공중으로 떠오르자 호수 중심을 향해 보습처럼 튀어나온 기다란 바위 끝, 마침표의 점과 같은 백색의 둥글고 커다란 돌 위에 올라앉은 선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녀는 금빛 찬란한 얼레빗으로 먹빛 기다란 머리채를 빗어 내리는 중이었다. 그녀의 무릎녘에서 머리칼은 물결 아래로 잠겨들며 흔들렸다. 산딸기는 단단한 윗니로 혀 밑으로 말아 넣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숨을 멈추고, 두 손을 배꼽 부위에서 포개 잡고, 그리고 산딸기는 딱딱하게 서 있었다. 또 하나의 선녀는 흰 손바닥으로 물결을 쓰다듬고 있었으며 한 줄기 안개의 잔해가 그녀의 어깨를 스치면서 공중으로 솟아오르느라 천천히 반원을 그렸다. 그녀의 앵둣빛 젖꼭지와 그를 감싼 홍륜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가는 잠기고 그 아래로 잠겼다가는 또 드러났다. 선녀는 여섯이었다. 장마 지난 논가 개울물에 쓸려 흐느적거리는 물풀의 순결, 물풀의 초록 빛깔을 꼬집으며 그 주변에서 반짝이는 햇살의 교태, 고슬고슬 그 햇살에 말라 가는 물 삔 모래톱, 그 모래톱 가장자리를 툭툭 건드리며 뱅글뱅글 맴돌고 있는 한 송이 메꽃의 욕정과 같이, 복사뼈를 물에 잠근 채 호숫가 안개 속에서 두 손으로 뺨을 누르고 가늘고 새하얀 팔뚝으로 자신의 젖가슴을 가리고 선 키 작은 선녀의 아랫배는 고요히, 그러나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양을 산딸기는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만히 중얼거렸다.

   “난 어떡하면 좋지?”

   호수 한가운데 수면 위에 젖가슴을 띄우고 선 네 번째 선녀는 손을 뻗어 마주한 선녀의 두 손을 잡았다. 물결을 헤치며 그녀를 향해 다가오던 여섯 번째 선녀의 엉덩이 사이로 물이 스며들었고 배꼽 안으로 물이 들이찼다. 그러자 그녀는 몸으로 물을 저으려 이쪽으로 저쪽으로 어깨를 비틀었다. 물살이 일면서 그녀의 가슴골로 물의 가지가 돋았다간 아물고 다시 돋았다간 아물었다. 두 손바닥을 서로 맞댄 채 스무 개의 손가락을 나란히 엇꼰 둘에게 다가간 그녀는 네 번째 선녀의 등으로 달려들어 그녀의 가슴을 감싸 안으며 자신의 젖가슴을 그녀의 등에 포갰다. 그 사이에서 물이 으깨어졌다. 그럴 때까지 키 작은 선녀는 단지 한쪽 발을 들어 물결 위에서 잠깐 물을 휘저어 보았을 뿐이고, 금빛 얼레빗으로 머리채를 빗던 선녀는 자신의 숱 많은 먹빛 머리칼 다발을 쓰다듬으며 호수를 에워싼 초목의 풋내에 코를 맡긴 채 위아래 속눈썹을 맞대고 있었다. 산딸기는 여전히 이 한 마디만 되뇌었다.

   “난 어떡하면 좋을까?”

   다시 산을 내려오던 산딸기는 세 갈래 길 가운데 쉬운 길과 편한 길을 버리고 험한 길을 택했다. 그런 탓에 몇 해나 겹겹이 쌓인 가랑잎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노각나무 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청미래덩굴 가시에 손등을 베고, 후려치는 옻나무 가지에 뺨을 얻어맞고, 너덜겅을 뒤덮은 청태를 밟고 꼬꾸라져 붉은 살이 달아나고 흰 뼈가 드러날 만큼 상처 입은 무릎을 싸안은 채 돌무더기 사이에 주저앉았다. 그래서 그는 그곳에서 너덜겅 한쪽, 잣나무 숲 발치의 무덤가, 금잔디로 덮인 동그란 봉분 곁에 마주앉아 있는 벙어리 남매의 알몸뚱이를 만날 수 있었다. 애달픈 욕망에 달뜬 그들이 눈빛과 손짓으로 주고받는 거칠고 달콤한 욕정의 수작을 그는 다 훔쳐보았다.

   이제 막 절정의 정사를 끝낸 둘은 상대의 어깨를 잡고서 뺨을 핥고, 땀에 얼룩진 목을 젖혀 안개에 잠긴 잣나무 숲을 바라보며 입을 벌리고, 그러고선 손바닥으로 상대방의 종아리를 후려치며 애욕의 탄식을 침묵 속에서 토해 내고 있었다. 누나가 싸리나무 가지로 가슴을 후려치자 얻어맞은 동생은 몸을 세우며 일어나 누나의 사타구니로 오줌줄기를 겨누었다. 진보랏빛 작은 꽃송이와 푸른 이파리 흐벅지게 열린 싸리나무 가지가 그런 동생의 사타구니에서 태질하고, 싸리나무 이파리에 부딪힌 오줌방울은 안개 속에서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다시 제자리에 주저앉아 오줌에 젖은 누나의 이마를 바라보던 동생은 종주먹을 쳐들어 누나의 눈앞에서 뱅글뱅글 돌렸다. 깊고 좁은 동굴 끝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딱딱하고 매끄러운 돌기를 가리키는 수화였다. 누나는 젖가슴 사이에 고인 땀을 훔치며 웃음 짓고 동생은 그런 그녀의 뺨을 때렸다. 그러고 동생은 손가락 모아 쥔 두 주먹을 직렬하더니 열 손가락을 동시에 펼쳤다간 조몰락거리며 오므리고 다시 펼쳤다간 조몰락거리며 오므리기를 거듭했다. 돌기가 기다리는 좁고 매끄러운 동굴 벽에 달라붙어 꼼틀대는 지렁이 떼의 용틀임을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고, 그 앞에서 누나는 허벅지를 활짝 펼쳐 애액에 젖어 숨죽은 거웃이 어지럽게 뒤엉킨 검은 진창을 내보이며 아랫도리에 힘을 줘 음부의 근육을 조이느라 콧대에 주름을 잡았다. 그녀가 콧대에 주름을 잡으며 아랫도리를 돌릴 때마다 검은 진창은 또다시 맑고 근기 있는 물을 흘려냈고 동생은 그곳에 침을 뱉었다. 퉤! 퉤! 퉤! 퉤! 사타구니와 배, 목과 입술, 눈과 이마에 침을 뱉을 때마다 그는 외가닥 줄기에 홀로 열린 박보다 크고 둥근 누나의 젖가슴을 두터운 손바닥으로 후려치며 웃었다. 존재하지 않은 웃음소리를 대신해 누나의 젖은 젖가슴 양쪽에서 일어난 물기 밴 고격(敲擊)의 음향이 척, 척, 척, 척 하고 무덤가에 울려 퍼졌다. 너덜겅 돌무더기 사이에 주저앉은 산딸기는 그 소리를 고스란히 들었다. 바람과 비와 눈과 산짐승과 햇살과 어둠과 안개와 이슬만이 지나다니는 너덜겅에 널린 무수한 돌덩이 또한 그와 같이 꼼짝도 하지 못했다.

   동생은 커다란 주먹과 굵고 딱딱한 손목을 자신의 미간 앞에 쳐들고선 부릅뜬 눈으로 주먹과 손목을 힘주어 끄덕이며 위쪽으로 치밀어 박는 동작을 반복했다. 요동치는 누나의 몸속에서 연거푸 천장을 후려쳐 기어이 맹물을 뿜어 올리는 자신의 요령을 그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자 누나는 동생의 한쪽 발을 당겨 발가락 다섯 개를 몽땅 자신의 붉은 입에 우겨넣었다. 절정의 순간마다 바지락처럼 물을 뿜어 동생의 거웃과 잔디밭을 흠뻑 적시는 누나는 그렇게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육신의 진동에 감사를 표하면서 구름장을 열고 쏟아지는 황금빛 기둥 속으로 빨려들어 승천하는 환락의 순간을 되새김질했다. 이제 입술을 늘여 웃으면서, 동생은 양쪽 손바닥을 모아 손가락을 꽃잎처럼 벌린 뒤 두 손을 허공으로 펼치면서, 콧김을 신호로 분수처럼 물을 뿜어대는 누나의 시오후키[潮吹き]를 흉내 냈다. 잠깐 눈까풀을 연 소쩍새가 한 걸음 왼쪽으로 옮겨 앉았다. 두릅나무 꼭대기에서 날아오른 무당벌레는 안개 알갱이 알알이 열린 왕거미 줄에 머리를 처박았고 왕거미 줄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오갔다. 소쩍새는 다시 눈을 감았다.

   쩔뚝대는 걸음걸이로 산을 내려가던 산딸기는 곧 안개의 늪에서 벗어났으며 산 아래 자드락길까지 이어진 넓은 잡목림 한가운데서 검은 하늘을 종횡으로 뛰어다니는 천둥과 번개를 다시 만났고 장대비 쏟아지는 물의 밀림 속으로 들어섰다. 비는 천지간을 죽통으로 만들어 놓고선 마구 휘저어대고 있었다. 그 잡목림을 벗어난 뒤 그가 다다른 곳은 산모롱이 한쪽에 패어 있는 옹달샘에서 비롯한 물길이 지나가는 단풍나무 숲 속에 버려진 짓다 만 빌라의 뒷마당이었고, 음산한 그 빌라의 한 방에서 담배를 피우며 회계에 골몰한 도깨비 녀석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는 얄궂은 계산법을 듣느라 옆방에서 벌어지는 도깨비 힘자랑은 구경하지도 못했다.

   “여섯 그루가 여섯 개.”

하고 한쪽 눈은 이마에 붙고 백태 낀 다른 눈은 뒤통수에 달린 도깨비가 중얼거렸다.

   “또 여섯 그루가 두 개.”

   도깨비는 던힐을 뻑뻑 피워대며 항문으로 담배 연기를 흘려 내고 있었다. 말벌에 쏘인 듯 검붉게 부어오른 머리는 불균형하게 컸으며 정수리에 외가닥 뿔이 솟아 있고, 앞뒤에 눈이 달렸고 한쪽에 입이 패었을 뿐 코와 귀는 없었다. 목은 길고 가늘며 두 팔은 짧고, 가슴은 없고 동그란 배와 다리는 헌데딱지투성이로 설피처럼 생긴 두 발의 발가락은 각각 열여덟 개씩으로 검은색이었다. 그는 셈하고 있었다.

   “여섯 그루가 여섯 개, 또 여섯 그루가 한 개, 나머지가 두 그루.”

   옆방에서 벌어지는 도깨비 경기의 부상이 대학로 가로수길 양쪽에 늘어선 플라타너스나무라고 그가 말했다. 이화네거리 홍익대학교 대학로아트센터 앞에서 혜화동로터리 우리은행 혜화동 지점까지 마흔여덟 그루, 길 건너편 동성고등학교 정문에서 청운예술극장 앞까지 마흔네 그루의 플라타너스나무가 서 있는데, 이번 경기에서 펼쳐지는 힘자랑과 씨름과 꾀 겨루기 종목에서 각각 우승한 도깨비 셋한테 그 플라타너스나무를 나눠줘야 한다며 그는 힘에 부치는 계산에 골몰해 있었다. 다른 도깨비가 하나 둘 헤아리는 데 비해 자신은 여섯까지 헤아리는 능력 탓으로 회계 담당자로 선출됐다고 그가 말했다.

   “모두 아흔두 그루 아닌가요. 그럼 셋이 서른 그루씩 차지하고 두 그루가 남는군요.”

하고 산딸기가 훈수를 뒀지만 전혀 알아먹지 못한 도깨비는 최종적으로 이렇게 셈하며 계산을 마쳤다.

   “여섯 그루가 다섯 개. 여섯 그루가 다섯 개. 여섯 그루가 다섯 개. 나머지가 두 그루. 한 그루가 없다.”

   부족한 플라타너스나무 한 그루가 그를 심각하게 했고 그는 다시 던힐 한 개비를 입술에 걸치고선 끄트머리부터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도깨비가 이마에 붙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산딸기에게 말했다.

   “이렇게 하면 되겠어요. 나머지 플라타너스나무 두 그루를 소설가 양반께 드릴 테니 소설가 양반께선 가짜 플라타너스나무 세 그루를 만들어 주시오. 그래야 상품이 공평하지 않겠소.”

   정수리에 솟은 제 뿔을 매만지면서 그가 앙청했다.

   “지금 당장 가짜 플라타너스나무 세 그루만 만들어 주시오.”

   산딸기가 거절했다.

   “싫소!”

   “왜?”

   “자연은 수많은 플라타너스나무를 복제하지만 소설가는 언제나 단 한 그루의 플라타너스나무밖엔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겠소? 난 복제하지 않아요. 예술작품은 언제나 유일해요.”

   도깨비는 거짓말로 만든 가짜이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우겼지만 산딸기는 그렇지 않다고 뻗댔다.

   “거짓말이기 때문에 유일해요.”

   담배개비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처량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도깨비에게 산딸기가 또 말했다.

   “내가 만들 수 있는 플라타너스나무는 유일한 한 그루뿐이오. 거짓말로 만들어야만 하는 플라타너스나무!”

   천천히 몸을 세운 산딸기는 플라타너스나무 한 그루 때문에 상심한 도깨비와 씨름판을 에워싸고 환호하는 그의 무리를 버려두고 빗속으로 나섰다. 비는 한창 독 오른 고추가 주렁주렁 매달린 고추 포기를 흔들며 좍좍 쏟아지기도 하고, 상추와 쑥갓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지붕을 도리깨질하며 미끄러져 내려 둔덕 아래 좁은 도랑에서 출렁거렸다. 산딸기는 둔덕 아래편으로 넓게 펼쳐진 논과 그 뒤편의 마을을 바라보았다. 비에 가려 반투명한 풍경 저편 논과 마을 사이에 고목으로 자란 회양목 숲이 있었고 그 숲 속에 솟아 있는 교수님의 아틀리에 건물 스테인리스 첨탑이 빗속에 바라보였다.

   스테인리스 철판과 합성 석영 유리로 이은 아틀리에 지붕은 맑은 빗소리를 지붕 아래로 쏟았다. 비구름이 몰려들면 그래서 교수님은 마녀를 불러 모아 빗소리를 즐기며 오만 가지 비약과 갖가지 들풀차를 나누어 마셨다. 교수님 자신이 불꽃 빛 털로 뒤덮인 여우로 변신한 뒤 저마다 변신술로 남을 속이라는 명령을 내리거나, 각자 새로 익힌 마법으로 이제껏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 그곳을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그들은 서양화 한 점을 앞에 놓고 커피를 마시며 이러쿵저러쿵 감상과 평가를 주고받는 중이었다.

   “저 여자는 용서받고 싶은가 봐. 한 손은 내밀어 손등을 위로 하고 다른 손은 뒤로 돌려 손등을 엉덩이에 대고 있잖아.”

하고 오소리 마녀가 말했다. 그러자 오백 살 먹은 흰 염소 마녀가 그림 속 여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배신자는 즉시 단죄해야 돼. 그러지 않으면 인간의 모든 행위가 선악으로 구별되고 말아.”

   “그 위층 오른쪽에 서 있는 여자는 복수를 기다리고 있어. 문을 열고 나가려 하잖아.”

   황금색 머리칼 치렁치렁한 도롱뇽 마녀가 말했고 흰 염소 마녀가 덧붙였다.

   “그래, 저 여자는 관념을 향해 네 멋대로 해보라 선언하고 있네. 자신은 기꺼이 분별로부터 이탈하는 자유를 만끽하겠다는 거야. 이런 여자에게는 이해와 용서로 신의와 예절을 납득시키기 불가능해. 그래서 이러한 여자와 마주친 자 가운데 연민과 공포를 가진 자는 이해와 용서를 들먹이며 자신을 선(善)의 편에 세워. 그리곤 상대방 행동을 악(惡)이라 규정해버리지.”

   흰 염소 마녀는 요즘 새벽이면 잠에서 깨어나 네 시 사십사 분 매화나무 꼭대기에 뜬 새벽 하늘을 오려 창틀에 끼우고 그 곁에 앉아 멘델스존의 피아노곡을 듣는다. 그 두 가지가 염세적이던 그녀의 성격을 야릇한 낙천성과 명랑한 사악함으로 변모시켰다.

   “바보!”

   능구렁이 마녀가 입술을 내밀며 비약 심한 그녀의 논리를 나무랐다.

   “그럼 현실은? 현실이 있는 한 선한 자는 선한 자고 악한 자는 악한 자야.”

   앳된 얼굴의 능구렁이 마녀가 이처럼 냉정하리라고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선악의 간격을 메우기 위해선 용서와 이해가 필요해. 때론 분노하고 때론 회피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절충하고, 그러자면 두려움과 나약함도 중요해. 우리는 저 여자를 나쁜 여자로 규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용서하기 위해 저 여자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거야. 남을 속이는 여자, 천박한 여자, 어리석은 여자, 나약한 여자, 비겁하고 교활한 여자. 그래서 매혹적인 여자!”

   그러면서 능구렁이 마녀는 서양화 한가운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봐! 그림 중앙에 위치한 흰 장방형 탁자 위엔 단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왼손이 놓여 있을 뿐이야. 여자를 단죄하지도 용서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증거야. 색(色)으로 초탈하려 용을 쓰지만 그림 그린 화가도 그림 속의 여자도 여전히 구속 상태야. 붉은색 범벅 위 여기저기에 떠다니는 꽃송이와 구름을 봐. 이 그림에서 형(形)은 분열을 갈망하는 화가의 소원을 상징할 뿐이야. 태(態)가 없는 어셈블리지인 셈이지. 화가는 아직 허공이 두려운 거야.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상상이 완성되지 않은 거야.”

   며칠 전 일인용 비행기 제작을 끝낸 교수님은 그림을 보면서도 줄곧 구름과 바다 위의 비행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반백의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다섯 명의 마녀에게 말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오로지 풍기문란자의 영광을 원했단다.”

   오소리 마녀와 도롱뇽 마녀는 몸을 기울여 한 뼘쯤 그림 앞으로 다가서서는 저마다 그럼 관념은? 그럼 연민은? 하고 중얼거렸고, 흰 염소 마녀는 작지만 야무진 목소리로 어쨌든 자신은 용서할 수 없노라고 말했고, 능구렁이 마녀는 그런 그녀를 흘겨봤다. 그러자 백 년 묵은 지네 마녀가 능구렁이 마녀의 논리에 동조하며 교수님의 비유를 빌려 흰 염소 마녀의 논리를 옹호했다.

   “우리는 플로베르와 같은 영광을 상상할 수 없었어. 아무도 단두대에 목을 올려놓지 않았고, 누구도 광장의 포석과 포석 사이로 흐르는 피를 내려다보며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우리는 이 음산하고 불운한 시대에 이러한 그림을 그리고 이러한 그림 앞에 서 있을 수밖에 없어.”

   그 뒤 아틀리에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고 그 위로 처량한 빗소리가 후다닥거리며 쏟아졌다. 딸꾹질을 멈춘 뒤 이전처럼 날달걀을 즐기더니 이내 몸이 불어난 제니의 노란색 판잣집도, 생지황과 작약의 뿌리가 한창 약 오르고 있는 봉매(蜂梅)나무 아래 약초밭도, 차고 앞 철봉 선반 위에 올라앉은 소형 보트도 다 비에 젖고 있었다. 그들 곁을 지나 쩔뚝거리며 빗속을 걸어 레지던스로 돌아온 산딸기는 저녁 식탁에 둘러앉은 동료 틈에 자리했다. 검은 콩 넣은 현미밥과 미역된장국, 생마늘조림과 명이지, 어리굴전과 고등어구이, 시금치무침과 무채버무림을 주식으로 하고, 우유 듬뿍 넣은 커피와 함께 바나나와 토마토를 후식으로 먹은 뒤, 종일 방에 갇혀 있던 산딸기의 동료들은 빗속을 돌아치다 상처 입은 무릎을 앞세운 채 이제야 돌아온 그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그중 하나가 물었다.

   “오늘은 어디서 무얼 보았소?”

   며칠 동안 면도하지 않은 턱을 주무르며 잠자코 앉아 있는 산딸기에게 그가 재우쳐 물었다.

   “자, 말해 봐요, 어디서 무얼 보았는지.”

   그러자 산딸기는 천천히 일그러진 아름다운 입술을 열어 슬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곳에는 오래도록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문장웹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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