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케팅 & 타게팅 - 배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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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케팅 & 타게팅

 

배명훈

 


  


   이상한 언니

 

   “그래서, 너 일하는 데가 어디라고?”

   명절에 가끔 집에 들르면 엄마가 그렇게 묻곤 했다. 하지만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원래 비밀이기도 했지만, 나도 거기가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잠수함에서 일했다. EU군에 소속된 거대한 핵잠수함. 한번 잠수하면 몇 달이고 조용히 물속에 틀어박혀서 한 번도 고개를 내밀지 않고 바다 밑 어딘가를 정처 없이 떠다니는 무시무시한 전략무기.

   물론 나는 핵무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사실 군대 자체와 관련이 없었다. 나는 그저 좀 수상한 연구를 하는 연구소에 소속된 평범한 기술자일 뿐이었다. 어찌나 수상한 연구였던지 연구 자체가 금지되어 있는 나라가 대부분이어서 지상에는 도저히 연구시설을 세울 수 없는, 무시무시하고 비밀스러운 연구. 그래서 우리 연구소는 어느 나라의 영토도 아닌 곳으로 기어 들어가야만 했다. 독일 땅도 아니고 프랑스 땅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토나 유엔의 규제를 받지도 않으며 오로지 EU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복잡한 국제무대의 알려지지 않은 사각지대로. 거기가 바로 내 직장이었다.

 

   150명이나 되는 잠수함 승무원들 중에 민간인은 나를 포함해 딱 열 명이었다. 그중에는 내가 엘레나 언니라고 부르는 독일 과학자가 있었는데, 하도 수상한 잠수함이다 보니 실제 임무가 뭔지는 알 수 없지만, 표면상으로는 그냥 평범한 해양생물학자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정체가 뭐가 됐든 엘레나 언니는 절대 그냥 평범한 해양생물학자일 수가 없었다. 아니, 그 잠수함 전체를 통틀어 제일 이상한 사람이 틀림없었다. 엘레나 언니는 주로 고래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연구했는데, 그냥 가만히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잠수함 복도나 식당 같은 데를 돌아다니면서 수시로 그 노래를 큰 소리로 따라 부르곤 해서 언제나 군인들의 시선을 잡아끌곤 했다. 제발 그러지 좀 말라고 충고라도 몇 마디 했다가는 오히려 “아니, 이게 요즘 얼마나 핫한 노랜데. 요새 이 바다에서 이 노래 안 부르면 암컷들이 아주 거들떠도 안 봐. 그러니까 너도 이거 배워 봐. 좀 길기는 해도 별로 안 어려워” 하면서 나에게 그 노래를 가르치려 드는 통에 곤란하기가 아주 이를 데가 없었다.

   “됐네요. 나도 암컷이거든요” 하고 아무리 사양을 해봐도 그 공세를 막아내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곳이 잠수함이었기 때문이다. 도망갈 데도 딱히 없고, 연구 말고는 할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어서 뭐라도 하나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매달리게 되어 있는 곳이었으니까.

   그렇게 3개월을 시달린 끝에 나는 드디어 역습을 결심하게 되었다. 내가 남태평양 혹등고래 노래 세 편을 완창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번에는 엘레나 언니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부를 차례가 된 것이었다. 물론 엘레나 언니는 그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 아니, 그럴 마음도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엘레나 언니를 팬으로 만들었다. 그것도 보통 팬이 아니라 나보다 훨씬 지독한 광팬으로 만들었다. 3개월 단기속성코스로.

   그리하여 아무도 정확한 위치와 임무를 알지 못한다는 EU군 소속의 수상한 핵잠수함 안에는 최소한 세 명의 한국 아이돌 그룹 광팬이 탑승하게 되었다. 나와 엘레나 언니, 그리고 이번 항해 때 새로 들어온 날씬한 스페인 작전장교 한 사람. 게다가 그 셋 중 하나는 남극과 태평양 사이를 오가는 혹등고래들에게 JYJ의 노래를 가르쳐 그들의 신곡이 그야말로 온 바다에 울려 퍼지게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울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잠수함이 오랜만에 바다 위로 고개를 내밀고, 헬기로 날아온 무슨 특수요원인가를 태웠다가 내보낸 날 오후의 일이었다. 엘레나 언니가 우리 연구실 문을 열더니 인사도 생략하고는 대뜸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유히, 너 JYJ 콘서트 가본 적 있어?”

   “유히 아니라니까요. 주희 해봐요 주희.”

   “쥬우우흐이. 콘서트 가봤어?”

   “못 가봤죠. 왜요?”

   “콘서트 좋대?”

   “환상이래요. 걔네가 워낙 라이브가 되니까. 근데 왜요?”

   “가고 싶다.”

   “가세요. 안 그래도 유럽 콘서트 한댔는데. 근데 갑자기 그건 왜요?”

   “아, 작전실 신참 빠순이가 그러더라고. 낮에 왔다 간 연락관이 자기 친구의 친군데, 그 사람이 자기 친구가 전해 주라고 했다면서 그러더래. 걔네 이번 독일 콘서트 티켓 예매 사이트가 다음 주 화요일 아침에 오픈한다고.”

   “화요일이요?”

   “오전 10시래. 콘서트 하는 주가 우리 배 정박해 있는 기간이어서 시간은 여유 있게 될 것 같은데 티켓을 살 방법이 없네.”

   “그렇죠, 여기는 인터넷 같은 거 안 되니까.”

   엘레나 언니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얼굴을 한참이나 말없이 들여다보았다. 체념한 얼굴이 틀림없었다. 체념. 다행이었다. 그런 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나았다. 가고 싶다고 다 갈 수 있는 공연이 아니니까.

   하지만 문제는 생각처럼 간단하지가 않았다. 그날 밤부터 엘레나 언니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역시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 모양이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엘레나 언니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니, 사실은 위로의 말인지 희망의 싹을 아예 싹둑 잘라버리려는 말인지 잘 구별이 안 되는 말들이었다.

   “언니, 그거 어차피 해봐야 티켓 구하기 힘들어요. 손만 빠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완전 운이거든요. 어느 가수는 티켓 오픈 5분 만에 전석 매진됐다고 자랑하고 그러던데, 얘네 콘서트는 그것보다 더해요.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서 매진되는 데 거의 30분이나 걸리거든요.”

   “30분 만에 매진되는 게 사람이 더 많이 몰리는 거야?”

   “5분 만에 매진되려면 적어도 5분 동안 인터넷이 별 탈 없이 잘 되기는 해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사람이 더 몰리면 손 빠르기고 뭐고 없어요. 일단 화면에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10시 오픈이면 10시 1초 딱 되자마자 흰 화면밖에 안 뜬다니까요.”

   “그래? 그래도 뭔가 방법이 없을까? 누군가 티켓을 사기는 살 거 아니야. 아무것도 못해 보는 거하고 해봤는데 안 되는 거하고는 기분이 전혀 다를 것 같아.”

   “아니 뭐, 별로 그렇지도 않은데……. 계속 새로 고침을 하다 보면 그렇게 흰 화면만 계속 보이다가 운 좋게 연결이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 사람이 표를 사가는 거예요. 그래서 확률이 그렇게 높지는 않은데…….”

   그렇게 말하면서 엘레나 언니의 얼굴을 살폈다. 전혀 내 말을 듣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하던 말을 멈추고 가만히 내 방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마음 한구석에 잠재해 있던 안타까운 생각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말았다. 한참 열을 올려 설득하기는 했지만, 나 역시 설득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언니 말대로, 해보고 안 되는 것과 처음부터 시도조차 못해 보는 건 엄연히 차이가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 콘서트가 어떤 콘서트였던가. 멤버 중 한 명이 군대 가기 전에 하는 마지막 콘서트 아니었던가. 이번에 놓치면 다음은 언제가 될지조차 알 수 없는, 진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소중한 기회.

   ‘이건 감옥이야! 아, 인터넷도 못 하는 잠수함이라니.’

   사실 잠수함 생활이 원망스러웠던 적은 별로 없었다. 지상에 있어 봐야 어차피 사교성 있는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시도조차 한번 못해 보는 상황이라니.

   물론 티켓을 구해서 콘서트를 보는 것만이 팬 활동은 아니었다. 티켓을 구하는 데 실패하는 것도 엄연히 팬 활동의 일부였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하지 않는 건, 그건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게 분명했다.

 

 

   이상한 고래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흘렀다. 이틀이 지나자 엘레나 언니도 상태가 조금은 호전되는 것 같았다. 속마음까지야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일이라는 걸 다시 하기 시작한 걸 보면 일단 위험한 고비는 넘긴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고 그저 누가 오후라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잠수함 속 어느 눈금 없는 시간대에, 엘레나 언니는 잠수함의 진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바로 고래들이었다. 평소와는 다른 고래들의 움직임. 엘레나 언니의 말에 따르면 잠수함 주위를 헤엄쳐 다니던 고래 무리들이 요 며칠 새 갑자기 어느 낯선 고래에 관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낯선 고래라는 건……?”

   군인들이 묻자 엘레나 언니가 대답했다.

   “그것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예를 들면 물 위로 안 나가는 고래 같은 거겠죠. 일반적인 고래라면 자다가도 한 번씩 숨을 쉬러 수면 위까지 올라갔다 오는 게 정상이거든요. 그러니까 낯선 고래라는 건 보통은 죽은 고래 이야긴데, 여기서는 아마 이 잠수함을 말하는 걸 거예요.”

   “그래서 고래들이 이쪽을 주시하고 있다는 거군요. 그런데 그게 작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위치가 노출될 수 있다는 거잖아요.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혹시나 상대 쪽에 저 같은 사람이 하나 더 타고 있다면. 상대가 잠수함이든 그냥 연구 목적으로 떠다니는 배든, 아무튼 위치가 노출될 수 있어요. 근방 수천 킬로미터에 있는 고래들이 전부 이 잠수함에 관한 노래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요. 게다가 수컷들 중 몇 마리는 아마 멀리서 우리를 따라오고 있을걸요.”

   그 말에 다른 군인 한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노래가 한번 시작되면 얼마나 가죠?”

   “이런 건 적어도 한 사흘은 계속될 것 같은데요. 길면 한 달. 유행하면 내년까지 갈 수도 있어요. 남반구 고래들이 전부 남극에 모였다가 흩어질 때까지만 살아남는다면.”

   “너무 긴데요. 벗어날 방법은 없습니까?”

   “아마도요. 아예 이 일대를 벗어나는 방법밖에는.”

   그리고 그날 밤부터 당장 잠수함이 예정에 없던 항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고래들을 따돌리기 위한 기동인 듯했다. 밤에는 우리 팬덤의 일원인 작전실 신참 아가씨가 임무교대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언니와 나를 찾아와, 이삼일 지켜보고 진전이 없으면 이번 항해 자체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갔다. 그 말에 엘레나 언니가 눈을 번뜩였다.

   “유히, 저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글쎄요, 회항한다는 건가요?”

   “그런 것 같아. 이번 항해, 주 임무가 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위치가 발각되면 안 되는 수상한 임무인 게 분명해. 매번 그랬겠지만. 아무튼 이건 하늘이 도우시는 거야.”

   “뭘요?”

   “위치가 노출돼서 회항을 한다는 건 하루 종일 물속에 들어가 있을 필요가 없다는 소리잖아.”

   “그래도 잠수는 하지 않을까요?”

   “그러기야 하겠지만, 민간통신망 정도는 개방해 줄지도 모르고…….”

   “그건 아무래도 안 될 것 같다던데요. 아까 스페인 아가씨가 그랬어요. 또 무슨 수상한 일을 벌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아주 빡빡한가 보더라고요.”

   “그래? 그게 안 된다면, 어쩌면 정박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건 또 왜요?”

   “글쎄,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

   “어디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거예요?”

   그러자 엘레나 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글쎄, 확실하지는 않지만, 한번 믿어 봐야지.”

 

   그리고 다시 이틀 뒤에, 정말로 회항 명령이 잠수함 전체에 하달되었다. 물론 군인이 아닌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명령 대신 지금 회항해도 연구 일정에 차질이 없겠냐는 조심스러운 어조의 질의서가 전달되었다. 나는 물론 별 문제 될 게 없다는 내용의 답장을 보냈다. 대환영이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엘레나 언니는 그 반대였다. 지금 연구를 중단하고 회항하면 연구에 큰 차질이 생기리라는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나는 엘레나 언니를 찾아가서 이렇게 물었다.

   “왜요? 뭐 중요한 거 하고 있었어요?”

   “아니, 중요한 게 뭐가 있다고. 그냥 우겨 보는 거지 뭐. 연구를 중단해도 될지 안 될지 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니까 일단 위에다 연락을 좀 해봐야겠다고 했어.”

   “네? 설마 상륙하려고요? 겨우 그런 걸로 상륙을 시켜 줄까요?”

   “그냥 되는 데까지 해보는 거야. 어차피 중간에 상륙 안 하고 기지까지 쭉 가는 건 우리한테는 아무 의미도 없잖아. 기지에 도착하면 티케팅이고 뭐고 이미 다 끝난 다음일 테니까.”

   나는 못 말리겠다는 의미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것도 다 팬질이겠다 싶어서였다. 그리고 복도로 나가려다가 다시 뒤돌아서서 언니에게 물었다.

   “아 참,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회항할 거라는 거? 혹시 그 스페인 아가씨가 손 쓴 걸까요?”

   그러자 엘레나 언니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나도 확실하지는 않은데, 한 명이 더 있어. 갓 들어온 신참 말고 항로를 변경할 수 있을 정도의 결정권을 가진 누군가가.”

   “그래요? 그게 누군데요?”

   “나도 모르지. 근데 높은 사람일 거야.”

   “왜요?”

   “이 잠수함이 회항을 결심했다는 것 자체가 증거야. 고래들이 따라오고 있는 거 판단하기가 참 애매한 일이거든. 진짜로 큰일이 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또 어쩌면 아무 일도 없이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 일인데, 그 보고가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반응이 온 걸 보면 누군가 우리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단 말이지.”

   “우연이겠죠.”

   “아니야, 누가 있어. 동물학자로서 하는 말인데, 함교에 분명히 수상한 암컷이 있어. 반년 전부터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 눈치 못 챘어?”

   “못 챘는데요.”

   “쟤네들 말이야, 저 군인들, 요새 교대조 암호명이 돌고래, 코끼리, 토끼, 그렇잖아. 토끼는 가끔 쥐로도 바뀌고. 딱 멤버 세 명 상징동물이라고. 그게 다가 아니에요. 점심에 가끔 오므라이스라는 게 나오잖아. 오믈렛도 아니고 우리는 생전 본 적도 없는 오므라이스가. 그거 누가 생각해 냈겠느냐고. 조리실에 동양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건 진짜 이상한 거야. 나도 유천이 나오는 그 드라마 보기 전에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고. 이건 분명히 영역 표시야. 그런 건 아무리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가 없거든. 게다가 영역 표시의 강도를 보면, 우두머리급이 틀림없어요. 함부로 굴었다간 그냥 목이 달아날 것 같은 페로몬이 느껴지지 않아?”

   “뭐 별로……. 언니, 너무 나가는 거 아니에요? 늘 그러기는 했지만.”

   “그렇게 냄새를 못 맡아 가지고서야, 초원에 풀어 놓으면 반나절 만에 홀라당 잡아먹히겠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언제부터인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엘레나 언니 때문인 줄 알았는데, 어쩌면 그게 다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누굴까요?”

   언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며, 그게 누가 됐든 그 제4의 인물이 분명히 결단을 내려 줄 거라며, 독백처럼 주문을 외워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언니가 상륙을 요구하는 건 바로 그 사람한테 보내는 메시지인 셈이군요. 망설이지 말고 결단을 내리라는.”

   내 말에 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을 보면서 나는 ‘이 언니야말로 정말로 미친 빠순이가 틀림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광팬이어도 그렇지 핵미사일이 실린 핵잠수함을 그런 사적인 이유로 움직일 만큼 정신없는 사람이 그 정도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상한 작전장교

 

   하지만 다음날 오전에 우리 연구실로 배달된 함선 정박에 관한 서한을 받아 보고는 나는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틀 뒤, 그러니까 화요일 새벽에 잠수함을 EU 소속 모 군항에 정박시키겠으니, 민간 연구소 책임자들은 그때를 이용해 지상에 상륙해서 잠수함 안에서는 이런저런 보안 문제로 해결하기 어려운 행정적인 절차들을 자유롭게 마무리하고 오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지령이었다. 그리고 또한 거래이기도 했다. 기회는 보장해 주겠으니 반드시 결과물을 획득해 오라는 무언의 압박. 엘레나 언니가 말했다.

   “자기 티켓도 구해 오라는 건가? 우리 것도 어떻게 된다는 보장이 없는데. 몇 장이 됐든 티케팅에 성공하면 자기 것부터 우선 챙겨 두라는 거겠지?”

   “그런 거예요? 부담되네요. 두 장 이상을 챙겨야 우리 게 한 장 떨어지는 거군요. 그건 좀 과한데.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버리고 가나?”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야.”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사람의 요구는 결과적으로 볼 때 그렇게 무리한 요구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쪽에서도 거래 조건이 너무 불공평하다 싶었는지 예상치도 못했던 조력자 한 사람을 붙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바로 이번에 새로 들어온 스페인 작전장교 아가씨였다.

   “셋이서 갔다 오래요.”

   해맑게 웃고 있는 신참을 보면서 엘레나 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잠수함에 타고 있던 150명 중 JYJ의 팬인 게 확실한 세 사람이 모두 모이고 나니 의심의 여지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것은 분명히 지령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티켓을 구해 오라는! 그런데 그렇게 티켓을 구한다 쳐도 도대체 누구에게 바쳐야 하는 걸까.

   작전장교 아가씨에게 물었다.

   “누가 보낸 거예요?”

   “글쎄요. 그건 알 수가 없어요. 화요일에 정박할 데가 군사기지라 민간인이 상륙하려면 인솔자 한 사람이 따라붙어야 되거든요. 그런데 그런 일은 어차피 제가 다 하게 돼 있어서 누가 시켰는지는 알 수 없어요. 지금 그분의 정체를 노출시켜 봐야 우리한테나 그쪽이나 서로 좋을 게 없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우리는 내일 일에나 집중하자고요.”

   스페인 아가씨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곧이어 작전지시가 이어졌다.

   그때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 잠수함 팬덤의 세 번째 멤버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었다. 어찌나 유능했던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름조차 밝혀서는 안 될 만큼 중요한 위치에까지 올라가 버려서 그 항해 이후로는 감히 얼굴조차 보기 힘들어져 버린, 장차 EU 해군을 이끌 엘리트 중 하나로 꼽히던 인물.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아가씨가 밝힌 티케팅 전적이었다. 다섯 번 시도해서 다섯 번 모두 성공. 게다가 그중 하나는 VIP석. 그 말은 곧, 짧은 팬 경력이기는 했지만, 갈 수 있는 콘서트나 팬 미팅은 전부 참석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왜 나는 그렇게 못 했던 걸까. 그냥 듣기만 해도 황송할 정도의 브리핑을 들으며 엘레나 언니와 나는 그저 제때 끄덕이는 것 말고는 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그중 반 정도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조차 없는 복잡한 이야기였다. 브리핑이 끝나고, 멍한 얼굴로 입을 반쯤 벌린 채 앉아 있는 나에게 작전장교 아가씨가 다시 한 번 물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셨죠?”

   “아, 네, 그러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는 거죠?”

   성공확률 100%인 티케팅 절대강자의 노하우. 마치 사관학교를 졸업한 것조차도 모두 그날의 티케팅을 위한 치밀한 계산이었다고 말해 버릴 것만 같은, 과학적이고도 치밀하며 안정감 있는 전략전술.

   “물론이죠. 계획대로만 하세요. 자의적인 판단은 절대 하지 마시고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허리가 곧게 펴지고 무릎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곁눈질로 흘끔 쳐다보니 엘레나 언니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생태계 저 아래쪽에 있는 가련한 초식동물들.

 

   그리고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아 왔다. 엘레나 언니와 나는 아침식사를 건너뛰고 곧장 상륙할 준비를 했다. 그 말을 듣고 작전장교 아가씨가 핀잔을 주었다.

   “식사는 하시는 게 집중력이나 지구력에 좋은데.”

   “집중력은 모르겠고, 체해서요. 그리고 꼭 손 빠르기가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그 말은 변명이 아니었다. 티켓 오픈 시간이 한 시간 안으로 다가오면 나는 언제나 내장이 꼬이는 고통을 느끼곤 했다. 이번에도 역시 다를 리 없었다. 모르긴 해도 엘레나 언니 또한 마찬가지일 게 분명했다. 작전장교 아가씨가 체념한 듯 대답했다.

   “손 빠르기, 중요하거든요. 내내 바쁘게 손을 움직일 필요는 없지만, 인터넷 연결이 된 순간에는 헛손질 안 하고 정확하게 클릭을 해야 0.1초라도 아낄 수 있다고요. 그래도 체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좋아요. 그럼 준비되셨죠? 0815시에 상륙합니다. 어제 이야기한 준비물 다시 한 번 확인하시고요.”

   “넵! 8시 15분! 신용카드 두 장 이상 확인 완료!”

   능력자 아가씨를 따라 잠수함 밖으로 빠져나갔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숨겨진 구조물들을 지나 민간인 구역까지 꽤 먼 길을 걸어가야 하는 코스였다. 중간중간에 신분을 확인하는 지점이 있었지만 다행히 시간이 지연될 만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8시 45분. 군사시설을 벗어나 민간인 구역으로 들어서자 작전장교 아가씨가 우리를 재촉했다.

   “저 건물 뒤에 있어요. 문을 열어 두라고 전화를 해두긴 했는데…….”

   뛸 듯이 빠른 걸음으로 그쪽을 향해 걸어갔다. 오래된 건물 2층 계단을 올라가자 다행히도 깔끔해 보이는 출입문이 나타났다. 인터넷 카페였다. 스페인 아가씨가 문을 두드리며 자기네 말로 뭐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자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서로 꽤 친한 사이인지 우리의 신참 작전장교는 가게 주인에게 짤막하게 인사를 건네고는 곧바로 우리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자, 어서 손 푸세요!”

   컴퓨터는 깔끔한 편이었지만 인터넷은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한국 같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손맛을 보고 나니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군용시설도 마찬가지일 거야. 장비 문제가 아니라 네트워크 문제니까.”

   엘레나 언니가 모니터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작전장교 아가씨도 비슷한 생각인 듯했다.

   “어차피 10시가 되면 어디에서 하든 다 먹통이 될 거니까 장비 탓은 해봐야 소용없을 거예요. 그보다 예행연습부터 시작하세요. 자, 여기 이걸로.”

   우리는 스페인 아가씨가 시키는 대로 그 예매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다른 공연 하나를 예매했다가 곧바로 취소하기를 서너 번 반복했다. 그 사이트에서 날짜와 시간을 고르는 절차와 결제 정보 처리 방식에 익숙해지기 위해서였다. 또한 결제 과정에서 발생할지도 모르는 문제 상황에 대비해서 전체 예매절차를 문제없이 정리해 두는 과정이기도 했다.

   “환불규정 체크하는 걸 자꾸 빠뜨리네. 저거 클릭해야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니까 빼먹지 말고 잘들 챙겨.”

   9시 25분. 모든 준비가 끝나고, 긴장감이 서서히 감도는 순간이었다. 손바닥에서 땀이 나고 다리가 달달 떨리기 시작하는 시간. 콘서트 예매 페이지를 즐겨찾기로 등록해 두고, 10시 오픈 예정이라는 안내문을 몇 번씩이나 신경질적으로 클릭했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소화기가 완전히 마비되기 직전이었다, 스페인 아가씨가 다시 한 번 작전 브리핑을 시작했다.

   “아직 긴장 푸세요. 벌써 긴장하시면 오래 못 버텨요. 다시 한 번 정리할게요. 정각 10시가 되면…….”

   나는 마음속으로 그 절차를 떠올려 보았다. 정각 10시에 예매 사이트가 열린다. 오차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으니 9시 58분부터 반복해서 새로 고침을 하면서 정확한 오픈 시간을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오픈되는 순간 사이트가 마비되고 할 수 있는 게 거의 아무것도 없어질 텐데, 이때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계속해서 예매 과정을 진행해야 한다. 혹시 중간에 멈추더라도 아쉬워하지 말고 처음부터 다시.

   그런데 그 순간 문득,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왔다. 여기는 어디일까. 이 뜬금없는 섬의 뜬금없는 PC방. 나는 어쩌자고 여기에 이러고 앉아서 저 팬클럽 회장 언니 같은 처자가 하는 말을 거의 새길 듯이 머릿속에 각인시키고 있는 걸까.

   갑자기 뜬금없이 엄마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래서, 너 일하는 데가 어디라고?”

 

 

   이상한 합동작전

 

   팬덤 안에 있는 사람이나 밖에서 관찰하는 사람이나 모두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팬질이란 참 이상한 짓이다. 정상적인 인간의 선호체계와는 조금 다른 맹목적인 선호체계를 내면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보통 공연장에서 제일 좋은 자리는 1층 약간 앞쪽 가운데 어딘가다. 정확히 어디인지는 콕 집어서 말하기 어렵지만 아무튼 맨 앞자리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팬덤이 생각하는 좋은 자리는 무조건 무대에서 제일 가까운 자리다. 여기서부터 비극이 시작된다. 전날 밤 작전장교 아가씨가 한 이야기도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열성적인 팬들은 티케팅이 어려워요. 그런데 팬 아닌 사람한테 부탁하면 의외로 어렵지 않게 표를 건져 오거든요. 저도 사실 팬으로 시작한 게 아니고 부탁받아서 티케팅하다가 팬이 돼버린 경우인데, 자, 여기 이 그림을 보세요. 여기가 무대고 이 앞이 객석이에요. 사이트가 마비되는 경우에는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게 쉽지 않지만, 마비가 안 되고 5분이든 10분이든 매진될 때까지 한 번에 쭉 진행되는 콘서트를 보면 티켓이 팔려 나가는 게 눈으로 보여요. 빈자리 클릭해서 결제 버튼 눌렀다가, ‘다른 고객님이 이미 선택하신 자리입니다’ 하는 안내문이 떠서 다시 자리 선택 화면으로 돌아와 보면 조금 전보다 몇 줄 더 뒤로 밀려나 있거든요. 무대에서 가까운 맨 앞줄부터, 마치 들불 번지듯 뒤쪽을 향해 예매 가능한 좌석의 한계선이 쭉 밀려 나가는 모양이 보이는데, 우리 티케팅도 원리는 마찬가지예요. 이건 결국 남아 있는 자리 중에서 제일 좋은 자리를, 그러니까 무대에서 제일 가까운 자리를 골라서 결제 화면으로 빠르게 넘어가는 싸움인데, 서버가 다운돼서 눈으로 확인은 못 해도 서버 안 어딘가에서는 분명히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 거라고요. 들불 번지듯 자리가 뒤로 밀려 나오는 현상이요. 이 선을 파악하는 게 중요해요. 현재 시점에서 예매 가능한 영역의 경계선이 어디까지 밀려와 있는지. 이건 별다른 요령이 있는 게 아니고, 사실 누구나 파악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열성팬들은 이걸 못 해요.”

   “왜요?”

   “꼭 실제 경계선보다 살짝 앞쪽을 클릭하거든요. 한 칸이라도 더 앞에서 보려고.”

   “나는 안 그런데. 안전하게 하려고 하는 건데요.”

   “본인은 안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현재 그 불길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파악하는 순간에 이미 객관적인 판단이 안 되는 거예요. 마음이 앞쪽으로 쏠려 있으니까요. 이쯤이면 안전하겠지 생각하는 거기가 사실은, 1초 전에는 안전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이미 확률이 낮아진 지점일 수 있거든요. 그 한 칸 차이가 승패를 가르니까. 빈자리가 보였는데 내가 클릭해 들어가는 순간, 다른 누군가가 딱 0.001초쯤 빨리 클릭해 버린 거죠. 그러면 거의 손에 들어왔다가 놓쳤다는 생각에 정신이 혼미해지는데, 게다가 그런 일을 한 번만 하는 게 아니라 두 번 세 번 자꾸 반복하는 거예요. 결과는 역시 실패일 거고, 그때부터 사기가 꺾이는 거예요. 실수가 나오고 비합리적인 선택이 많아지고, 그럼 그냥 그날은 루저가 되는 거죠.”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딱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였다. 비합리적인 선택, 팬이니까 하게 되는 빤한 실책, 좋은 자리에 욕심을 내지 않고 그냥 티켓을 구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는 사람은 좀처럼 범하지 않는다는 바보 같은 실수들.

   어쩐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미 눈이 객관성을 잃어버려서 남들은 다 파악할 수 있는 단순한 패턴을 몇 번을 반복해도 또 파악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는 그 말이. 어떻게 보면 참 어리석은 선택이지만 그 어리석음이 곧 팬심 그 자체라는 말이.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 거죠? 어떻게 해야 티케팅에 성공할 수 있나요?”

 

   9시 45분. 긴장감이 서서히 고조되어 갔다. 혹시라도 사이트가 조금 일찍 열릴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므로, 누군가 한 명은 컴퓨터 앞에 붙어서 최소한 10초 간격으로 계속해서 새로 고침을 하고 있어야 했다. 엘레나 언니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사이, 스페인 아가씨가 그날의 전략목표를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었다. 팬이면 당연히 하게 된다는 그 비합리적인 선택을 우회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은 분업이었다. 제1목표, 제2목표, 제3목표. 전략 목표를 세 등급으로 확실히 구분해서 세 사람이 각자 자기가 맡은 구역만 확실하게 책임지는 전략이었다.

   “…… 아시겠죠? 상황이 상황이고 하니, VIP석은 노리지 않습니다. 제1전략목표는 포기하고 셋이서 제2, 제3전략목표만 확실하게 노린다고 보시면 돼요. 두 분은 제3목표를 노리세요. 앞쪽 자리 넘보지 마시고 뒤쪽에서부터 확실하게. 생각보다 훨씬 뒤쪽을 노리셔야 돼요. 아예 맨 뒤에서부터 경쟁해 들어오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너무 뒤쪽 말고 적당히, 안전을 우선으로. 딱 보시면 감으로 아실 거예요. 이 정도, 아시겠죠? 이 정도 위치를 노리시는데, 상황 봐서 최대한 안전하게 선택하세요. 그리고 제2목표는 제가 노릴게요. 자리 배분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고요. 저는 어차피 자리에는 큰 욕심 없으니까. 오케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스럽게, 자꾸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업, 전략목표, 동료에 대한 신뢰. 나는 내가 비로소 그 핵잠수함의 일원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같은 배를 탄 공동운명체의 일원이 된 느낌. 느슨하기만 했던 내 잠수함 생활에 난데없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랜만에 되살아난 야생의 감각, 진짜 승부가 펼쳐지는 일촉즉발의 상황. 그 한가운데에 내가 있었다. 비록 최상위 포식자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긴장감이 어느새 온몸을 결박해 들어왔다. 다리가 됐든 손끝이 됐든, 어딘가 한 군데는 계속해서 일정한 리듬을 반복하고 있었다. 점점 빨라지기만 하는 심장박동과는 전혀 다른 리듬. 내 안에서 퍼져 나가는 고삐 풀린 박자를 가리기 위해, 내 안에서 비롯되지 않은 규칙적인 박자를 나도 모르는 새 어디선가 끌어온 듯한 느낌.

   작전장교 아가씨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는 게 느껴졌다. 9시 52분. 서서히 말수를 줄여야 할 시간. 엘레나 언니가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혹등고래들의 노래였다. 나도 몇 소절을 따라 부르다가 다시 잠자코 모니터를 응시했다. 클릭, 클릭, 그리고 또 클릭.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9시 58분. 이제 곧 운명을 걸어야 할 시간.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만이 조용한 인터넷 카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다시 9시 59분으로 숫자가 바뀌고, 10초, 20초, 마음속 초침이 잰걸음으로 시간을 재촉했다.

   그리고 마침내 10시 정각.

   “시작됐어.”

   엘레나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첫 번째 클릭을 했다. 사방이 온통 고요해지고, 인터넷 연결속도가 갑자기 느려졌다. 예상대로였다. 당황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화면 넘어가는 속도가 한없이 느려지자 초조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느릿느릿 천천히. 공연날짜 선택 화면이 간신히 나타났다. 어차피 하루뿐인 공연, 날짜를 고르고 시간을 고르는 건 어차피 군더더기에 불과했지만,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 우리에게는 나쁘지 않은 절차였다. 세상 어딘가, 대비하고 있지 않던 누군가는 그 순간 무슨 동작을 취해야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는지 몰라 한순간이라도 더 머뭇거리게 될 테니까.

   날짜와 시간을 선택한 다음 좌석 선택 아이콘을 클릭했다. 중복클릭이 되지 않게 정확히 딱 한 번. 다시 화면이 느려졌다. 작업진행을 알리는 작은 막대기가 천천히 오른쪽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튕기지 말고 그대로 조금만 더! 간절한 마음으로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 마음이 통했는지 화면이 넘어갔다. 그러자 눈앞에 공연장 좌석이 펼쳐졌다.

   위쪽이 무대 쪽. 이미 불길이 번져오기 시작한 모양인지 무대 주변 좌석 수백 개가 이미 하얀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누군가 이미 좌석을 선택한 다음 결제 화면으로 넘어가 버린 좌석이라는 의미였다. 아직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보라색, 녹색, 노란색 구역에도 이미 가운데부터 크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늦었어!’

   한순간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러나 다음 순간, 한결 침착해진 내 눈에 다른 광경이 보였다.

   ‘아니야, 승부는 이제부터야. 이 정도면 생각보다 많이 남은 거야!’

   머릿속에 공연장 풍경이 펼쳐졌다. 그 넓은 공연장 한가운데에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디든 달려가 앉기만 하면 될 것 같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와 있는 좌석들.

   모험을 걸 만한 광경이었다. 그래도 무리는 하지 않았다. 부채꼴 모양으로 번져 가는, 하얀색 좌석과 색깔 있는 좌석들 사이의 예리한 경계선. 그 선이 보였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임무대로 그 선 훨씬 뒤쪽에 있는 좌석 두 개를 클릭했다.

   “하나씩 클릭하는 게 확률은 높겠지만, 우리한테 필요한 티켓은 세 장. 그래도 두 개씩은 클릭을 해야 돼요.”

   작전장교 아가씨의 말이 떠올랐다. 순식간에 두 자리를 클릭한 다음, 재빨리 ‘선택완료’ 아이콘으로 마우스를 옮겼다. 그리고 클릭!

   대화창이 떴다.

 

   ─ 다른 고객님께서 이미 선택하신 좌석입니다!

 

   실패였다. 숨이 턱 막혔다. 다시 좌석 선택 화면이 떴다. 몇 초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하얀색 영역이 좀 더 뒤쪽까지 밀려나 있었다.

   다시 좌석 두 개를 클릭하고 화면이 바뀌기를 기다렸다. 1초, 2초, 3초……. 그러나 이번에는 화면이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흰색 화면! 연결이 끊어졌다. 실패였다. 새로 고침 키를 눌렀으나 먹히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접속해 들어가야 했다.

   클릭, 클릭, 클릭, 클릭, 클릭. 시간이 한참이나 흘렀다.

   옆자리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나는 즐겨찾기 주소를 클릭해 다시 예매 사이트에 접속했다. 적어도 3분은 소요된 것 같았다. 연결 상태는 아까보다 훨씬 더 나빠져 있었다. 이제 속도는 무의미해진 시간. 몇 번을 다시 시도한 끝에 겨우겨우 날짜 선택 화면으로 넘어갔다. 다시 몇 번을 시도한 끝에 좌석 선택 화면을 불러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다시 또 새하얀 화면!

   그곳은 온통 눈밭이었다. 색깔 있는 좌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이미 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듯 남아 있는 거라곤 온통 하얗게 불타버린 잿더미뿐. 맨 구석에 색깔 있는 자리들이 몇 개 보였다. 나는 재빨리 그곳으로 마우스를 옮겼다. 그리고 클릭.

   “아, 좌석 표시는 왜 이렇게 작게 해놓은 거야!”

   ‘선택완료’ 아이콘을 클릭했다.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다시 대화창이 떴다. ‘다른 고객님께서 이미 선택하신 좌석입니다!’

   내 입에서도 탄식이 터져 나왔다. 모니터에는 도로 좌석 선택 화면이 펼쳐져 있었다. 이제는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은 하얀색 화면. 마지막 남은 녹색 좌석 몇 개로 마우스를 갖다 댔다. 표적이 몇 개밖에 남지 않았다는 건 아직 좌석을 차지하지 못한 사람 모두가 그 몇 개를 향해 달려들 거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 다른 고객님께서 이미 선택하신 좌석입니다!

 

   다시 숨이 콱 막혔다. 끝이었다. 이제 남은 좌석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실패였다. 익숙한 패배감이 새삼스럽게 엄습해 왔다.

   “아직 끝난 게 아니죠.”

   그때 스페인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긴장한 탓인지 잔뜩 가늘어진 목소리였다.

   그 말대로였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몇 분간 해오던 동작을 기계적으로 반복했다. 우리 작전장교가 제시한 두 번째 필승전략, 그것은 바로 리바운드였다.

   나는 여전히 느려 터진 인터넷 화면을 바라보며 새로 고침 키를 계속 눌러대고 있었다. 느릿느릿, 그 갑갑한 화면을 열 번이 넘도록 반복하자 하얗기만 하던 화면 한가운데에 녹색 자리 하나가 갑자기 생겨났다. 얼음을 뚫고 자라난 작은 풀잎처럼. 나는 그곳을 클릭해 들어갔다. 좌석 크기가 너무나 작아서 한 번에 정확히 집어내는 건 무리였다. 두 번 만에 좌석을 클릭한 다음 재빨리 선택완료 버튼을 눌렀다.

   실패였다. 어디선가 난생처음 들어 보는 이상한 감탄사가 들려왔다. 독일어인지 스페인어인지 구별조차 할 수 없는 이상한 말이었다. 나는 눈꺼풀을 닫듯 귀를 닫고 내 눈앞에 펼쳐진 화면에 집중했다. 그리고 다시 클릭. 몇 번이고 반복해서 새로 고침을 눌렀다. 싸움에 지친 삶, 그러면서 자연히 승부의 세계를 멀리하게 된 몸. 평화주의자가 되겠다는 결심, 순간의 승부에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걸지 않겠다는 선언. 느긋해진 신경반응. 안식에 익숙해진 삶. 난데없이 떨어진 핵잠수함이라는 공간. 난데없이 떨어진 이상한 타겟. 그리고 전장.

   새로 고침 속도가 조금 더 빨라졌다. 네트워크가 빨라진 것인지 신경반응 속도가 빨라진 것인지 둘 다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 모든 게 연결된 듯한 무아의 경지. 화면에 초록색 표적 하나가 나타났다. 공략할 수 있는 유일한 표적. 타겟이 시야에 들어오는 동시에 마우스가 그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크루즈미사일처럼 빠르고 정확한 동작이었다. 클릭해야겠다는 판단마저 생략된, 오로지 표적과 나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완전한 합일의 순간.

   타겟을 이해했다. 내가 곧 타겟이 되고 타겟은 곧 내가 되었다. 그것은 바로 나였다. 나는 이미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분명 그런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결제 화면이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것이었다.

   나는 호흡을 멈추고 결제 정보를 입력했다. 스페인 아가씨가 한 말이 떠올랐다.

   “일단 좌석을 선택하고 나면 속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결제과정이 진행되는 동안은 자리를 맡아 둔 걸로 생각해도 좋으니까. 하지만 안심하기는 일러요. 왜냐하면 여기서 오류가 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오류가 나면 어떻게 되는데요?”

   “끝이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리바운드가 필요한 거예요. 다른 사람들도 분명히 오류가 나게 돼 있으니까. 좌석이 하얀색으로 변해 있다고 예매가 끝난 건 아니라는 뜻이에요. 누군가는 결제 중간에 문제가 생겨서 다시 좌석 밖으로 튕겨 나가게 돼 있거든요.”

   “끔찍하네요.”

   “끔찍하죠.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에요. 그러니까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말고 마지막까지 끈기 있게 기다리라는 거예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아셨죠?”

   조심조심, 카드 정보를 입력하고 틀린 숫자가 없는지 번호를 확인했다. 티켓수령 방법을 ‘현장수령’으로 선택하고, 예매 사이트에 저장된 개인정보를 확인한 다음 카드 비밀번호를 또박또박 입력한 후 중복클릭이 되지 않게 조심조심 전송 버튼을 클릭했다. 달칵.

   시간이 완전히 멈춘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운명적인 순간이었다. 다시는 없을 기회, 할 수 있는 건 전부 끝마치고 서버의 선택만을 남겨 둔 순간.

   ‘그래, 이만하면 충분히 했어. 이래도 안 되면 인연이 아닌 거지.’

   땀이 났다. 최근 5년간 겪었던 것 중 가장 스릴 넘치는 순간이 틀림없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하지만 동시에, 더할 나위 없이 후련한 기분에 온몸이 가벼워졌다.

   ‘아무튼 진짜로 미친 짓이야. 내가 이 시간에 이런 데서 이런 거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우리 연구소 소장님이 참 기특해하시겠구나, 에휴.’

   바로 그때, 운명의 대화창이 나타났다. 처음 본 대화창이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내가 숨을 멈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갑자기 한숨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런 말이 함께 튀어나왔다.

   “저, 성공한 것 같아요!”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마지막 대화창을 확인했다.

 

   ─ 예매가 완료되었습니다.

 

  오전 10시 16분 30초 언저리. 영원과도 같았던 어느 찬란한 아침에 전달된 승전보였다.

 

 

   이상한 핵잠수함

 

   “뭐? 회항해도 되냐고? 그쪽에서 하겠다면 해야지 뭐. 그렇다고 회항 못 하게 막고 있을 것도 아니잖아.”

   보안 회선을 통해 연구소에 직접 연락을 취했다. 모두가 예상했던 것처럼, 그런 걸 왜 묻느냐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나도 그런 걸 왜 물어보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대답해 주었다. 콘서트도, 티케팅도, 제4의 팬도, 그리고 우리의 기막힌 거래도, 그 어떤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잠수함으로 돌아왔다. 등줄기가 온통 땀에 젖은 데다, 갑자기 긴장이 풀린 탓에 온몸이 기진맥진 녹초가 되었지만,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날 우리는 모두 네 장의 티켓을 구했다. 내가 한 장, 우리 에이스인 작전장교 아가씨가 두 장, 거의 10시 30분까지 매달린 끝에 엘레나 언니가 겨우겨우 한 장. 엘레나 언니는 그날 내내 물도 한 잔 제대로 못 마실 정도로 완전히 지쳐 있었다.

   “두 번은 절대로 못 하겠다. 한 시간 만에 5년은 늙은 것 같아.”

   다시 잠수함에 실려 기지에 도착할 때까지 엘레나 언니는 내내 몸살을 앓았다. 물론 표정은 내내 밝아 보였다. 우리의 스페인 작전장교 아가씨는 다시는 우리 방을 찾아오지 않았다. 직접 대화를 나눠 본 건 아니지만, 아마도 그날 우리가 저지른 일을 영원히 비밀로 해두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티켓 배분은 어렵지 않았다. 엘레나 언니와 나는 어차피 각자 본인이 산 티켓을 챙기면 되는 거였고, 스페인 아가씨가 산 두 장의 티켓은 본인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결정적 조력자에게 각각 한 장씩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엘레나 언니나 나로서는 더 이상 궁금해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말하자면 그건, 군인들이 알아서 할 일이었으니까.

 

   워낙 비밀스러운 작전이었기 때문에 엘레나 언니와 나는 기지로 돌아가는 내내 환호성을 최대한 아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끼리 있을 때만 축가를 불렀다. 그것도 사람 노래가 아니라 고래들의 노래로 대신해서 불러야 했다. 바다는 여전히 시끄러웠고, 고래들은 끈질기게 잠수함을 따라왔다. 나도 잘 아는 노래가 온 바다에 울려 퍼졌는데, 그 사이에는 우리 두 사람의 목소리도 끼어 있었다.

   그 노래에 한껏 취해 있다가, 나는 문득 철이 들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건 또 뭐하는 짓일까. 내가 왜 이 시간에 여기에 앉아서 고래 노래 따위를 따라 부르고 있는 거지? 그나저나 이 미친 핵잠수함은 제대로 돌아가는 게 맞기나 한 걸까.’

   하지만 또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타겟이 있는 삶. 그건 정말로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쓸데없이 무모하기만 한 걸까. 누군가는 말한다. 그렇게 힘들게 티켓을 구해 봐야, 그래서 결국 콘서트에 가봐야, 그냥 그 자리를 가득 메운 수천 명 팬 중 하나밖에 더 되는 거냐고. 심지어 어느 팬은 이렇게도 말했다. 가수가 자기를 봤다고 주장하는 팬들은 언제나 등장하기 마련이지만, 사실 그 가수는 그런 거 안 본다고. 새우젓 먹을 때 새우랑 눈 마주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지만 그들도 이건 몰랐을 것이다. 그 아무렇지도 않은 새우젓 몇 마리가 고래보다 더 큰 핵잠수함 한 대를 완전히 바보로 만들기도 한다는 걸.

   항해 마지막 날 저녁에는, 언제나 그렇듯 거의 모든 승무원이 식당에 모여 그동안 아껴 두었던 비장의 식재료들을 털어 마지막 만찬을 떠들썩하게 즐겼다. 항해 일정이 예상보다 훨씬 짧아져서 그 어느 때보다도 풍족한 만찬이었다. 그 식사 중간에 호기심을 참지 못한 엘레나 언니가 식당 대형 모니터에 JYJ 멤버 셋이 함께 출연한 광고를 띄웠는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광고를 바라보는 130여 명의 사람들 중에는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미소를 떠올리며 서로를 향해 알 듯 말 듯한 신호를 흘리고 있는 네 명의 열성팬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 엘레나 언니, 작전장교 아가씨, 그리고 그날에야 비로소 정체를 드러낸 우리의 든든한 고위층 조력자. 나는 남들이 못 알아볼 정도로 고개를 살짝 숙여 부함장의 결단에 경의를 표했다.

   ‘부함장이었다니! 아무튼 참 미친 잠수함이야.’

 

 

   이상한 해피엔딩

 

   임무가 끝나고, 우리는 모두 무사히 육지로 돌아갔다. 각자의 나라로, 혹은 저마다의 위치로. 세상은 한동안 평화로웠다. 핵잠수함이 미사일을 발사할 일은 당분간 일어날 것 같지 않았고, 그에 따라 내 수상한 연구도 차질 없이 착착 진행되어 갔다. 엘레나 언니는 정말로 고래에게 노래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성공 여부를 말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우리 스페인 작전장교 언니의 초고속 승진에 관한 이야기인데, 아쉽게도 이 이야기는 전부 비밀로 묶여버려서 더는 할 말이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물론 말할 필요도 없이, 그해 독일 콘서트는 대단히 훌륭했다.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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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 허세

엄청난 작가의 엄청난 작품, 혀를 내두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