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태고지

 

수태고지1)

1) 〈기독교〉 마리아가 성령에 의하여 잉태하였음을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알린 일.

 

이경

 

 

 



 

 


 

   “우리 앞에 있는 이 처녀, 소마와 관계한 자가 있느냐? 이 처녀에게 생명의 씨앗을 뿌린 자, 여기 있느냐?”

   전도사가 신도들을 향해 두 팔을 쭉 뻗었다. 성단에 오른 소마는 실눈을 뜨고 주위를 살폈다. 신도들은 죄 지은 사람처럼 두 손을 얌전히 가슴께에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파리가 소마의 콧등을 치고 날아갔다. 천막 밖 수챗구멍에는 시금치국과 부추 겉절이, 계란말이가 불어터진 밥풀 찌꺼기와 함께 어우러지고 있을 것이다. 십여 명의 기도원 신도들이 끼니때마다 돌아가면서 쭈그리고 앉아 설거지 봉사를 하는 곳이다. 파리 떼는 거기서 태어난다.

   “눈을 뜨고 보라. 나서는 자가 없다. 열일곱 처녀가 임신을 했으니, 신의 아이가 아니면 누구의 아이겠느냐?”

   은박지 같은 시선들이 전도사를 향해 한 점으로 모여들었다. 아멘, 아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아멘이란 말인가. 알고 싶은 게 바로 그거라는 뜻인지, 그게 아니면 지금 정해 달라는 건지, 소마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맨 앞자리에 꿇어앉은 백발 노파의 초록색 플라스틱 핀과 무심히 나자빠진 짝퉁 크록스 샌들 한 짝, 기도제목을 써놓은 현수막 아래로 길게 늘어진 노끈 자락……. 소마의 시선은 어수선하게 천막 안을 떠다녔다. 그때 천막 입구에 몸을 반쯤 들이밀고 안을 기웃대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양호였다. 어쩌다 잡힌 사설 와이파이처럼 아무런 기미나 신호도 없이 양호는 와 있었다. 소마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전도사의 손이 그녀의 머리를 꾹 눌렀다. 아멘, 웽, 아멘, 웽웽웽……. 정수리가 뜨뜻했다. 소마의 아빠이자 전도사의 손이 뜨거운 은총을 내리는 중이었다.

 

   소마 아빠는 수원천변에서 철공소를 운영했다. 고개만 들면 맞은편에 방화수류정이 올려다 보이는 곳이었다. 손에는 철근 절단기를 들고 있었으나 영혼의 직업은 집사였다. 주일예배는 물론이고 새벽예배, 수요예배, 구역예배 등에 빠짐없이 참석하느라 철공소 문은 닫혀 있는 날이 더 많았다. 하루 일과를 마친 뒤, 천주교신자였던 정약용 선생이 수원 화성 방화수류정 바깥담에 새겨 놓은 하얀 십자가를 쳐다보며 사춘기 딸을 키우는 고단함을 위로받곤 했다.

   철공장이의 단조롭고 가난한 삶은 의도치 않은 사건으로 위기를 맞았다. 팔달산 아래 다세대주택 밀집지역에서 잡힌 살인마는 길 가는 여자를 다짜고짜 집으로 끌고 들어가 살점을 토막 냈다고 했다. 뉴스가 나온 저녁부터 철 대문과, 철 방범창, 철 난간과 철 계단 등의 주문이 쏟아졌다. 예배를 빼먹는 날이 많아졌다. 철공장이는 방화수류정 담벼락의 십자 문양을 올려다보며 회개했다. 몸의 양식이 마음의 양식보다 자주, 빨리 소화되는 것에 몸서리를 치면서.

   그날 소마가 철공장이에게 수태 사실을 털어놓은 것은 사소한 우연들이 끈질기게 가담했기 때문이다. 대나무돗자리를 파는 노파가 철공소 앞에 노점 자리를 내주어 고맙다는 인사로 콩국수 한 그릇을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그걸 굳이 입맛 없는 소마에게 권하다 마지못해 철공장이가 젓가락을 들지 않았더라면, 콩국수에 들어간 콩이 설익지만 않았더라면, 하필 그 시각에 소마가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철공장이가 곧바로 뛰어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느닷없이 뒷덜미가 잡히고 나서야 소마는 임신진단키트를 양변기 위에 그대로 두고 나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 몸으로 학교는 어찌 다니겠느냐. 아이는 절로 자라느냐. 기저귀, 분유 값은 너 혼자 힘으로 어찌 감당하겠느냐. 임신한 몸으로 알바를 뛸 수 있을 것으로 여기느냐? 어느 후레자식으로 말미암아 그리 되었는지 이 아비에게 속히 밝혀라.”

   말해 뭣 하리오. 그 자식은 진정 아비 노릇할 주제도 되지 못할뿐더러 소문만 무성히 퍼뜨릴 것을. 소마는 그것만은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렇다고 미리 작정해 둔 말이 있을 리 없었다.

   “월식이 있던 밤, 홀로 잉태를 했어요.”

   소마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해 버렸다.

   “네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냐. 사내 없이 어찌 여인 홀로 임신을 하느뇨?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은 마리아 이후로 없는 일이로되, 진정 니가 처녀 잉태라도 했단 말이냐?”

   “지브라상어와 망치상어도 처녀생식을 하고 줄기세포 1번도 처녀생식을 해요. 저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어딨어요?”

   철공장이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헛되도다. 이 아이와 말을 더 섞어 무엇하리요. 철공장이는 눈물을 삼키며 방화수류정에 올라 천장을 향해 기도했다. 정약용 선생은 천장의 대들보도 붉은 십자가 모양으로 축조해 놓았다. 밤은 침묵을 축조했고 방화수류정 아래 수원천은 시간을 축조하고 있었다. 철공장이는 위대한 축조물들의 한가운데 무릎을 꿇었다. 새벽이 돼서야 방화수류정에서 내려와 소마의 손을 잡고 반석 산부인과로 갔다.

   “임신 5주차로군요.”

   반석 의사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선생님, 이 아이가 진정, 사내와 잤습니까?”

   처녀 잉태했다는 말 따위는 믿고 싶지 않았지만 미처 여물지 않은 딸의 몸에 사내의 손이 닿았다는 것은 더더욱 믿고 싶지 않았다.

   “굳이 그렇게 물으신다면, 그렇다고 말씀드려야겠지요.”

   반석 의사는 콧등을 찡그려서 흘러내리는 안경을 치켜 올렸다.

   “선생님은 마리아의 처녀 잉태를 믿지 않으십니까?”

   의사의 뒤통수 위에는 병원 개업을 기념해 철공장이가 특별히 제작해 선물한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의사는 매주 화요일 저녁 철공장이와 구역 예배를 함께 드렸다.

   “제 입장에서는 정자가 따님의 자궁에 들어갔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는 철공장이를 딱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사내는 아내 없이 홀로 애지중지 키운 딸이 목하 미혼모가 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소마 엄마는 반석 산부인과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했다. 혀가 약간 짧은 것을 빼고는 나무랄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딸의 이름을 ‘소망’이라 지어 놓고 한 번도 그렇게 불러 보지 못했다. 앙증맞은 발이 땅에 닿는 것도 아까워해서 늘 아이를 업거나 안고 다니면서 소마, 소마, 노래를 부르고 살았기 때문에 동네 사람 누구나 소망이를 소마라 불렀다. 3년 전 장대비가 컴컴하게 내리던 날, 소마 엄마는 수원 천을 건너다 급류에 휩쓸렸다. 시신은 화홍문을 지나 성 안으로 흘러 들어가 팔달문 근처까지 떠밀려 내려갔다. 바위틈에 팔이 끼이지 않았더라면 영영 못 찾았을 수도 있었다. 넋이 나간 철공장이를 대신해 반석 의사는 구역의 신도들에게 일일이 연락하고 장례 예배를 이끌었다. 요단강 건너에서 우리 모두 만나리, 만나리……. 어린 딸은 고개를 축 늘어뜨린 채 찬송가를 따라 불렀다. 소녀의 얼굴에는 주근깨가 하루살이 떼처럼 앉아 있었다.

   “신의 아이도 정자로써 잉태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신이 못 하실 일이 뭐란 말입니까?”

   철공장이가 고지식한 얼굴로 되물었다. 의사는 얕은 숨을 내쉬었다. 부부는 닮는다고 하더니, 미련할 정도로 하나밖에 모르는 성정도 꼭 닮지 않았나. 병원으로 전화 한 통화만 했어도 소마 엄마는 출근을 위해 수원 천을 건너지 않아도 됐었다. 폭우로 수원 일대는 정전이 되어서 병원 문을 열 수 없었다. 반석 의사는 사내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사내는 단지, 자신이 알고, 믿는 곳에 몸을 누이고 싶은 것이다.

   “형제님, 신이 취하신 방식을 제가 알 도리가 없습니다.”

   의사는 부녀가 낙태를 원할 것으로 짐작했다. 두 사람의 뜻이 그렇다면 우선 뱃속의 생명을 지키도록 설득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 원한다면, 오, 주여……. 반석 의사가 양심과 온정 사이를 오가고 있을 때 철공장이가 뭔가 결심한 듯 의자에서 일어나 딸의 손을 잡고 진료실을 나갔다. 반석 의사는 회전의자를 빙글 돌려 십자가를 향해 두 손을 모았다.

   집에 돌아온 철공장이는 주일 예배도 가지 않고 철공소 문도 열지 않았다. 행여 딸이 딴 마음을 먹을까 종일 곁을 지켰다. 학교는 데려다주고 데려왔다. 쉬지 않고 자라날 뱃속의 것을 생각하면 째깍째깍 심장이 조였다. 초조한 것은 소마도 마찬가지였다. 산부인과에 손목이 잡혀 갈 때만 해도 소마는 아빠가 어쩔 수 없이 수술동의서에 사인할 것으로 여겼다. 들키지만 않았다면 어떻게든 선배 언니들의 민쯩을 빌리고 보호자를 물색해 병원에 갔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래서 순순히 산부인과에 따라간 거였다. 설마 아빠가 처녀 잉태를 확증 받으려 할 줄은 몰랐다. 좁은 방에 부녀의 숨소리가 시소처럼 번갈아 오르락내리락 했다.

   보름 뒤, 철공장이는 수해로 떠내려간 집터에다 말뚝을 박고 천막을 세웠다. 상습 수해지역의 집터를 사려는 사람이 없어서 몇 년째 공터로 남아 있는 곳이었다. 천막 입구에는 기도원 팻말을 달았다. 같은 교회를 다녔던 허가와 송가가 개원 축하 화분을 들고 찾아왔다. 두 사람은 철공장이가 꼬박 1년을 공들여 전도한 사람들이었다. 철공장이는 수건도매상을 하는 허가에게서 매일 수건을 한 장씩 사서 이발소를 하는 송가에게 선물했다. 보름쯤 지나자 허가는 수건이 하나씩 팔릴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건 수건이 쌓이는 쪽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마다해도 철공장이는 그만둘 기미가 없었다. 마침내 그들이 주일 예배에 쭈뼛쭈뼛 나타났을 때 철공장이는 기도에 응답을 받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허가와 송가로 말하자면, 오로지 수건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팔거나 받은 수건의 장 수만큼 기도원에 출석 도장을 찍을 셈이었다. 하지만 한 달쯤 지나자 다시 교회로 돌아가기에도 멋쩍게 돼버렸다. 송가는 그동안 철공장이에게서 받은 수건을 들고 허가의 가게로 갔다. 허가는 수건에 ‘방화수류정 수태고지’라는 글자를 박아서 사이좋게 둘로 나누었다. 수건도매상과 이발소에 찾아온 손님들은 기도원 판촉물을 선물로 받았다.

   방화수류정에서 계시를 받고 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처녀를 보러 사람들이 기도원에 하나 둘 모여들었다. 불임 부부가 돌부처의 코를 갈아 마신다는 심정으로 오기도 했고, 단순히 호기심에 기도원 천막을 들추는 사람도 있었다. 그중엔 반석 의사와 담임 목사도 있었다.

   “형제님, 형제님이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설마 진짜 그렇게 믿는 건 아니시죠?”

   반석 의사가 철공장이의 두 손을 부여잡았다.

   “집사님, 전도사 고시는 치르셨습니까? 자격증도 없이 함부로 직책을 가지시면 안 됩니다. 옳지 않은 일을 하시는 겁니다.”

   반석 의사는 틈을 주지 않고 형제와 집사와 전도사를 한꺼번에 다그쳤다. 목사는 반석 의사 뒤에 서서 침묵을 지켰다.

   “저는 신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철공장이가 대답했다. 신의 목소리를 듣고도 목사라 하지 않고 전도사라 한 것은 철공장이가 그나마 스스로를 낮추었기 때문이란 걸 반석 의사는 꿈에도 몰랐다.

   철공장이는 콩국수를 먹고 배탈이 나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던 차에 딸의 임신 소식을 들었다. 안 그래도 후들거리던 무릎이 단박에 꺾였다. 간신히 방화수류정에 올라 두 손을 모았으나 몸뚱이가 까마득히 가라앉는 것 같았다. 눈앞이 캄캄하고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러다 성곽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에 그만 바닥에 쓰러졌다. 엎드린 채로 철공장이는 딸의 미래를 그려 보았다. 1년 후, 3년 후, 10년 후, 그 이후까지도 검은색 하나로 모든 것을 그릴 수 있었다. 아내를 잃은 충격에 철공장이는 한동안 철공소에서 쇠만 두드렸다. 어미를 잃고 하루하루 엇나가는 딸을 붙잡지 못했다. 모두 내 탓이오, 내 탓이었다. 그때 성곽을 타고 가느다랗게 올라오는 소리가 있었다. 작지만 큰 광명의 소리였다.

   “그걸 증명할 수가 있겠습니까?”

   잠자코 있던 목사가 앞으로 나섰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이 참된 믿음이라고 목사님께서도 분명 그러시지 않으셨습니까?”

   철공장이가 고지식한 얼굴로 되물었다. 목사 뒤로 물러나 있던 반석 의사가 질색하며 눈을 감았다.

 

   부흥회의 절정은 소마가 신자들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순서였다. 소마는 신자들을 향해 돌아섰다.

   “정자무력증이래요. 남편은 발전소 밤 근무를 하고, 저는 할인점에서 낮 근무를 하니 그것이 밤낮을 구분 못 해서 그러는지……. 사람 사는 게 이게 아닌데 싶어서 직장도 그만두고 있는 돈 없는 돈 끌어 모아서 인공수정만 두 번째예요. 병원에 갈 때마다 구멍이 숭숭 뚫리는 기분, 아시겠어요?”

   인근에서 본 적이 없는 여자였다. 멀리서 찾아온 모양이었다. 머리칼이 듬성듬성해서 두피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여자는 소마의 배에 입술을 꾹 누르더니 좌우로 비볐다. 진달래색 루주 자국이 하얀 치마에 빨판 자국처럼 묻어났다. 소마는 당황한 나머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그만 양호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양호가 주춤주춤 천막 안으로 들어오려 했다. 여기 와서 무슨 짓을 하려구. 이 와중에 양호가 자신이 아이의 아빠라고 손을 든다면 일만 더 커지게 될 터였다.

   “아이를 낳는다 해도 키울 수가 있어야죠. 전단 돌리기에 서빙에 아르바이트를 두세 탕씩 뛰어도 당장 생활비가 빠듯해요. 소파수술만 벌써 세 번을 했어요. 죄 많은 자궁을 벌해 주세요. 그게 아니면 축복을 내려주시던가요.”

   빨판 입술 뒤에는 라면 가닥처럼 깡마른 여자였다. 어딘가 모르게 뼈와 거죽이 한데 붙어 배배 꼬인 느낌이었다. 어디서 이런 뜨내기들만 꼬여드는지. 아르바이트를 하던 장터국수 주인이 뭘 해도 입지가 중요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게 괜한 말이 아니었다. 기도원이 흥하기는 글러버린 것 같았다. 소마가 슬쩍 몸을 틀려 하자 여자가 소마의 배를 와락 껴안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자매님, 이 처녀의 몸에서 당신의 아이가 태어날 겁니다. 우리 모두의 아이입니다.”

   전도사가 여인을 진정시켰다. 여인이 겨우 성단을 내려가자 양호의 차례가 한 발 더 가까워졌다. 소마는 눈물 콧물로 축축하게 젖은 옷을 갈아입는다는 핑계를 대고 성단을 황급히 내려갔다. 천막 뒤를 돌아나가려는데 등짝이 화끈했다. 양호였다.

   “그거, 그날 너 그렇게 된 거 아냐?”

   양호가 손가락으로 소마의 배를 가리켰다. 파리가 왱 날아올랐다.

 

   석 달 전, 월식은 한 시간 일찍 소마의 가슴에서 일어났다. 티셔츠 아래 두 개의 크고 환한 달이 둥실 떠오르자 양호의 떨리는 손이 소마의 가슴을 덮었다.

   학생부 예배가 끝나자 소마는 곧장 교회를 빠져나왔다. 소마는 주일에도 장터국수에서 알바를 뛰었다. 주일 예배가 끝나면 철공장이는 흐뭇한 얼굴로 얼마간 용돈을 쥐어주었지만 색조 화장품은 고사하고 기초 화장품 사기에도 모자랐다. 바디 샴푸며, 풋 크림, 헤어로션 같은 건 철공장이의 안중 밖이었다. 막 예배당 문을 나서려는데 양호가 허둥지둥 따라 나와 대뜸 등짝을 때렸다. 깜짝 놀란 소마가 고양이처럼 등을 바짝 세우는 통에 가느다란 허리가 쏙 들어가고 엉덩이가 봉긋 튀어나왔다. 양호가 말을 더듬었다.

   “미, 미안. 하, 항상 빨랑 도망가니까 그렇지.”

   단둘이 용연에서 월식을 보자는 말이었다. 용연은 방화수류정 아래 있는 연못이었다. 철공장이가 방화수류정에 수시로 오르내리던 터라 약간 망설였지만 성곽 위 방화수류정에서 내려다보면 용연은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질지 모른다. 더구나 밤이라면. 더구나 월식이 있는 밤이라면. 소마의 눈썹이 빳빳하게 치켜 올라갔다. 장터국수 아줌마가 화장을 하지 않으면 청승맞아 보인다고 해서 평소 비비크림 정도야 바르긴 했지만 주일에는 정성껏 마스카라까지 칠했다. 양호 때문이었다.

   양호가 소마의 눈에 들어온 것은 설계도를 가지고 철공소로 찾아온 날부터였다. 소마는 철공소에 딸린 가겟방에 엎드려 새우깡을 똑똑 분지르고 있었다. 새우깡 한 봉지를 뜯어 중간쯤 먹다가 남은 과자를 똑똑 부러뜨리는 건 엄마가 없어진 후에 생긴 버릇이었다.

   양호는 도면을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철공장이에게 열심히 설명했다. 휴대폰 케이스였다. 철공장이는 휴대폰 케이스를 철로 만드는 놈이 어디 있냐고 핀잔을 주었다. 소량 주문은 힘은 힘대로 들고 돈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저씨, 강철 말고 알루미늄이나 양철 같은 걸로 해주셔도 돼요. 암튼 저 말고 아무도 못 보게요. 예? 예? 요기 아주 중요한 게 있거든요. 부탁드려요. 예? 예?”

   “중요한 게 뭔데?”

   “그게 말이에요, 하나님 말고는 아무도 몰라야 하는 거거든요.”

   양호는 철공장이를 꼼짝 못하게 하는 말이 뭔지 알고 있었다.

   “일주일이면 돼.”

   철공장이가 도면을 뜯어보며 말했다.

   일주일 후, 양호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휴대폰 케이스는 금장 도금되어 있는 데다 가운데 십자가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아저씨, 이거 도면하고 다르잖아요. 이렇게 눈에 띄면 안 된단 말이에요.”

   양호가 울상이 되었다.

   “너한테는 성물인데, 이 정도는 돼야지.”

   그때부터 소마는 교회에서 양호를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철통같이 지키기 위해 철공소를 찾아온 남자애. 양호에게도 고지식한 면이 있었던 것이다. ‘고지식하다’는 것은 소마 몸속에 잠복되어 있는 수두 바이러스와 같았다. 새우과자를 똑똑 부러뜨려 먹었던 엄마는 고지식한 면으로 보자면 철공장이 못지않았다.

   월식은 자정께나 일어날 거라고 했다.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용연의 밤은 맑았다. 아직 달은 환했다. 월식이 있는 밤에 용연에 나와 있는 사람은 없었다. 바위도, 풀도, 물 위에 생뚱맞게 떠다니는 야쿠르트 병도 저마다 연못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다. 둘은 연못가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네 성물 좀 봐도 돼?”

   “성, 성물이라니……?”

   양호가 엉덩이를 주춤 뒤로 뺐다.

   “철공소에 가져와서 만들어 달라고 한 거, 네 성물이라며.”

   “아, 그거? 안 돼. 절대 안 돼!”

   “왜?”

   소마가 눈을 치뜨자 양호는 그녀의 속눈썹이 가슴에 날아와 박힌 것처럼 찡했다. 휴대전화를 쥔 손을 소마에게 잡힌 건 순식간이었다. 양호는 기를 쓰고 손아귀를 움켜쥐었다. 소마도 악착같았다. 양호가 지키고 싶어 하는 게 뭔지 정말 궁금했던 것이다. 소마의 손톱이 양호의 손등에 깊숙이 파고든 순간, 양호는 그만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성, 성물이 아니라 성인물이야…….”

   휴대폰 안에는 과연 성인들의 성물이 가득했다.

   “지, 지난번에 담탱이한테 휴대전화를 압수당해서…….” 

   소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액정화면을 집게손가락으로 휙휙 넘겼다. 소마의 얼굴이 진주 가루를 뿌려 놓은 것처럼 빛났다. 양호는 소마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니 얼굴에서 빛이 나…….”

   “펄 베이지. 토니 모리슨. 6800원.”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소마가 말했다.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는데……. 난 그저…….”

   내숭이라고는 없는 순진한 아이라서일까. 아님, 진정 뼛속까지 쿨해서일까? 양호의 눈길이 저도 모르게 그녀의 가슴 위로 내려앉았다. 소마가 양호의 눈길을 따라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티셔츠 아래 감춰 놓은 것은 금방이라도 둥실 하늘로 떠오를 것만 같았다. 소마가 티셔츠를 가슴 위로 끌어올렸다. 두 개의 달이 떠올랐다. 믿을 수 없을 만큼, 한껏 부푼 달이었다. 양호는 떨리는 손으로 달을 움켜쥐었다.

 

   수챗구멍에서는 끊임없이 파리가 날아올랐다. 소마는 손을 홱홱 저어서 파리를 쫓았다. 소마가 손을 가로젓자 양호가 눈을 똥그랗게 떴다.

   “그날 그렇게 된 게 아니면, 그럼, 양다리였어?”

   어쭈. 애초에 아이 아비는 없다 쳤으되, 양다리라니. 소마는 기가 막혔다.

   “봤잖아. 사람들이 내 배를 붙잡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우기는 거.”

   “그게 말이 돼?”

   학교는 니 아빠한테 등 떠밀려 다니는 모양인데 그래 봤자 임신했다고 저렇게 대놓고 떠드니 교무실로 호출당하는 건 시간문제다. 담탱이 앞에서도 통할 줄 아냐. 넌 당장 퇴학이다. 천막 안에 있는 열 명 정도야 네 편에 서서 우겨 주겠지만 누가 믿겠냐. 작심하고 쏟아냈지만 마지막 말은 양호의 목구멍에 걸려 있었다. 이제라도 병원에 가서 어떻게 좀 해.

   “말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뭐?”

   “이 청승맞게 치렁치렁한 치마, 내 스타일이라서 입고 있는 거 같니? 너 하루에 알바 몇 개 뛸 수 있어? 너네 가게에서 알바 뛰면 사장님이 알바 비 얼마 쳐줘?”

   양호 아빠는 돈이 많다. 오로지 마누라 손맛만 믿고 1층 셋집을 내보내고 갈빗집을 냈는데 그게 입소문을 탔다. 개발제한구역에 묶여 가게 평수를 늘리지 못하자 살림집으로 쓰고 있는 2층의 세간을 한 방에 몰아넣고 손님 테이블을 들였다. 양호는 가게 문을 닫은 뒤 의자를 붙여 놓고 한동안 거기서 자다 얼마 전부터 연탄창고로 쓰던 곳을 대강 치우고 들어가 잤다. 대로변으로 외짝 문이 나 있고 문을 열면 바로 방바닥을 디뎌야 하는 곳이었다. 벗은 신발은 주워서 선반에 올려놓아야 했다. 들고 나는 걸 일일이 챙기는 사람이 없으니 양호는 언제부터인가 도둑처럼 살금살금 제 방에 숨어들었다. 양호 아빠는 아들 방보다 손님 테이블 하나가 더 급한 사람이니 아들이 아들을 낳았대도 땡전 한 푼 내놓을 리 없다.

   양호가 꼬박꼬박 주일 예배에 나가는 이유도 주말이면 가게가 더 붐비기 때문이다. 고기 철판을 닦으라는 잔소리도 교회 담장을 넘지는 못했다. 본래 양호 엄마는 착실한 교인이었는데 남편 등살에 주일도 못 지키고 주방에서 묵묵히 갈비를 재웠다. 양호 엄마가 남편에게 큰 소리를 낸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한창 바쁜 일요일에 번번이 내빼는 양호를 잡으러 남편이 예배당으로 돌진하려 할 때 양호 엄마가 남편의 허리춤을 날쌔게 잡아챈 것이다. 양호 아빠는 물기 있는 바닥에 철푸덕 미끄러졌다. 어리둥절한 것도 잠시, 양호 아빠는 발딱 일어나 아내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싸움은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입을 양푼인지 주머닌지 모르게 달고만 다녔던 양호 엄마가 갈비를 가득 재운 고무대야를 끌고 와 바닥에 훌러덩 뒤집었다. 붉은 고깃덩이와 육즙이 바닥에 흥건했다. 남편이 충격에서 채 벗어나기 전 양호 엄마가 쐐기를 박았다. 양호를 예배당에서 끌고 나오면 앞으로는 갈비를 절대 재우지 않겠노라고.

   “내, 내가 언제 알바 뛴대?”

   양호가 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럼 스마트폰으로 애니팡이나 해.”

   양호가 돌아가고 부흥회도 끝난 저녁, 소마는 혼자 방화수류정에 올랐다. 마리아 흉내도 하루 이틀이지, 흰옷 꼬락서니만 봐도 입덧이 올라왔다. 신도들은 열 명에서 좀처럼 늘지 않았다. 헌금은 영혼의 무게만큼 미약하여 기도원을 운영하는 데 턱없이 모자랐다. 생활비 충당은커녕 매달 제자육성비조로 오십만 원 정도가 꼬박꼬박 들어갔다. 연쇄 살인범이 열두 쌍둥이로 출몰해서 철 방범창과 철 난간, 철 대문의 주문이 쏟아지지 않는 한 애가 태어나기도 전에 굶어죽을 판이었다. 요샌 철공소 문은 거의 닫아 놓다시피 하고 있으니 열두 쌍둥이도 아무 소용이 없을지 모른다. 성곽 아래서 담뱃불을 빨갛게 태우는 아이들이 시시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날이 밝자 소마는 몰래 기도원을 빠져나와 반석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보호자는 물론 민쯩도 미처 구하지 못한 소마는 반석 의사의 온정에 기대 보는 수밖에 없었다. 진료대기실에는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소마는 소파에 앉아 혼잣말을 했다. 아, 빡쳐. 대기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진료실에는 뜻밖에 철공장이가 앉아 있었다.

   소마가 병원으로 찾아왔을 때 반석 의사는 성도들을 삿된 길로 이끄는 악마의 씨를 제 손으로 거둘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반석 의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법전을 샅샅이 뒤졌으나 이 한 줄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미성년자는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단다.”

   더 들어 볼 것도 없이 소마는 그대로 진료실을 뛰쳐나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얼마 못 가 철공장이에게 뒷덜미를 잡혔다.

   “성도들이 너를 찢어 죽일 것이로되. 고난을 참고 견디면 따르는 자가 강물같이 흐르고 너를 손가락질하는 자는 강물에 쓸려갈 것이로되.”

   철공장이는 소마의 손목을 움켜잡고 기도원을 향해 뚜벅뚜벅 걸었다.

   “천막 밖으로 한 걸음만 나가도 사람들은 다 알아요. 내가 미혼모라는 거.”

   “천막을 크게, 크게 펼쳐 세상 모두를 덮을 것이로되!”

   소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수원천변의 철공소 주인은 정말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다.

   하루하루 쏟아 붓는 복음으로 소마의 배는 조금씩 차올랐다. 학교는 그만뒀다. 자퇴와 휴학 사이에서 갈등했지만 출산을 한 후에도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우리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의 기적이 이 처녀의 몸에 임하셨음을 우리가 압니다. 우리의 죄를 장차 대신 속죄하게 하려 하심을 압니다. 세상은 새 생명을 잉태할 수 없을 만큼 병들어 있나이다. 우리의 죄를 무릎 꿇고 고백하오니…… 엎드려 회개하지 않으면 반드시 죄를 받을 것이로되, 죽어서도 반드시 지옥 불에 떨어지리라!”

   전도사의 뒤로 기도 제목이 적힌 현수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늦기 전에 회개하라.

   양호는 소마를 만난 뒤로 거의 매일 기도원에 왔다. 처음 올 때는 믿기지 않아서 왔고, 두 번째는 설마해서 왔고, 세 번째는 정말인가 싶어서 왔다. 부흥회가 거듭될수록 양호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회개하라, 회개하라, 전도사가 귓속 달팽이관을 타고 뱅뱅 도는 것 같았다. 견디다 못한 양호는 전도사가 된 철공장이를 찾아갔다.

   전도사는 부흥회에 쓰일 별 딱지를 오리는 중이었다. 예배 참가 횟수에 따라 별을 주려는 거였다. 별 딱지를 오리는 전도사를 보자 양호는 전에 없던 용기가 솟았다. 제 아빠가 계산대에서 단골손님이 내미는 쿠폰에 마지못해 도장을 찍는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조만간 공짜 냉면을 갖다 바쳐야 한다는 생각에 살짝 짜증스런 얼굴, 그걸 감추려는 억지 미소. 갈빗집을 드나들 때마다 양호는 남몰래 중얼거렸다. 내 인생이 저 인간보다야 낫겠지.

   엉뚱한 데서 용기를 얻은 양호는 담대하게 고백했다. 실은 소마와 관계한 장본인이 이 몸이라고.

   “네 까짓 게 신의 자식을 넘보느냐!”

   양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전도사의 목구멍에서 불지옥이 열렸다. 불지옥 한가운데서 양호는 당혹과 모멸, 멸시와 천대, 저주와 재앙을 한꺼번에 뒤집어썼다. 그대로 있다간 몸뚱이를 홀랑 불태울 것만 같았다.

   “에이 씨, 아저씨가 회개하랬잖아!”

   어차피 불지옥으로 처넣을 거면 뭣 하러 회개하라 꼬드겼냐 말이다. 양호는 전도사가 제 육신을 활활 태우도록 내버려두고 기도원을 뛰쳐나왔다. 그대로 내처 달렸다면 양호는 영원히 달아날 수도 있었다. 기도원 입구에서 소마와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애니팡 하러 가냐?”

   싸구려 인간을 싸구려 인간이라 대놓고 씹는 표정. 양호는 갈빗집 주인을 보던 제 면상과 꼼짝없이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양호는 소마의 손을 잡고 뛰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주유소 알바를 그렇게 그만 두는 게 아니었다. 시급을 지 좆만큼 준다고 다른 알바와 시시덕거리다 들켜서 잘린 건 지금 생각해도 철딱서니 없는 짓이었다. 불은 라면을 가져왔다고 피씨방 알바 뒤통수를 때린 일도 후회되었다. 당장 갈빗집 주인은 인생 종쳤다고 비웃을 것이다. 꼭 이래야 할까? 주근깨를 옴팡 뒤집어쓴 이 계집애를 위해? 얼굴도 못 본 뱃속의 그것을 위해? 양호는 달아나면서 고민했다. 신실한 고민이었다.

   양호가 다짜고짜 잡아끄는 바람에 소마의 발에 치맛자락이 걸려 찢어졌다. 소마는 치마를 북 찢어냈다. 양호가 아니더라도 언제고 기도원에서 달아났을 거였다. 그게 지금이라 한들, 뭐.

   소마가 사라지자 그날 저녁 부흥회의 하이라이트가 생략되었다. 다음날부터는 아예 부흥회가 열리지 않았다. 철공장이는 경찰 지구대에 실종신고를 했다. 가출을 결심한 애가 치렁치렁한 치마를 입고 사라질 리 없었다. 경찰이 기도원 입구에서 찢어진 치맛자락을 발견하자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소마가 살인마에게 납치됐다는 거였다. 같은 날 양호도 사라졌지만 소마의 실종과 연관 짓는 사람은 없었다. 양호가 밖에서 자고 들어오는 일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양호의 부모조차 양호가 사라진 것을 몰랐다. 철공장이만은 달랐다.

   “박양호가 소마를 납치했을지도 모릅니다.”

   “박양호가 누굽니까?”

   한 달째 야근을 하고 있는 경찰은 팔꿈치를 책상에 고이고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살인마 사건이 마무리되었나 싶더니 삼일 전에는 인근에서 목 잘린 시체가 발견되었다. 모방 범죄일 가능성이 컸다.

   “딸이 사라진 날 박양호가 본인에게 찾아와 소마의 뱃속에 든 아이가 자기 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혼쭐을 내주었습니다. 거짓말이니까요.”

   “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경찰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커피는 차갑고 종이컵은 눅눅했다.

   “제가 한밤중에 방화수류정에서 기도를 하다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재에 한밤중에 함부로 올라가시면 벌금형을 받습니다.”

   도대체 이 코딱지만 한 지구대는 잠잠한 날이 없었다. 바글바글한 인구만큼이나 사건사고가 많았다. 중국 동포와 결혼한 남자가 여권을 빌미로 아내에게 돈을 벌어오라 강요하다 급기야 때려죽인 사건은, 피곤했다. 시간에 쫓긴 택배기사가 대문 앞에 놓고 간 참기름이 파손된 사건도, 피곤했다. 신의 아이를 가졌다 주장한 소녀가 실종된 사건은 정말, 피곤했다.

   “거, 거기서 제가 우리 딸이 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들었습니까?”

   경찰관의 말에 철공장이는 아차 싶었다. 뜨개 옷은 신의 날개옷이요, 올을 잡아당기는 것은 인간의 손이라. 한쪽 올이 풀리기 시작하면 술술 풀려 나가 나중에는 발가벗기게 될지 몰랐다. 인간의 손은 신의 알몸을 기어이 보려 할 것이다. 그 인간이 경찰이라면 특히 더 문제였다.

   “그, 그게 방화수류정에서 절실한 맘으로 기도하는데 성곽 아래서 홀연 목소리가 올라오는 게 아닙니까? 그냥 들리는 게 아니라 저를 향해 성벽을 기어 올라오는 소리였습니다.”

   경찰관의 어깨에 피로가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었다.

   “무슨 소리였습니까?”

   “그, 그야, 생명은 신이 주신다는 소리였습니다.”

   경찰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방화수류정 아래라면 용연이 있는 곳이었다. 방화수류정과 용연은 불임을 걱정하는 부부가 산책하다 서로를 위로하는 말이 들리고도 남을 거리였다.

   “경찰은 최선을 다해 수사하고 있습니다. 가출일 가능성도 있으니 돌아가서 기다리십시오.”

   철공장이는 이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풀린 올이야 이쯤에서 잡아맨다지만 소마는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

   “소마가 살인마에게 잡혀갔다면 어쩔 겁니까! 옷자락에 핏자국이 선명한데…….”

   가뜩이나 피곤한 경찰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살인마가 잡히기까지 지난 한 달간 경찰은 신문사와 방송국, 듣보잡 인터넷 방송국에서 몰려든 기자들에게까지 시달릴 대로 시달렸다. 모방 범죄만으로도 골치가 아팠다. 일이 번지기 전에 입을 막는 게 최선이었다.

   철공장이는 유치장에 감금되었다. 허위사실유포 죄였다. 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하고 집회를 주도해서 금품을 갈취했으며, 살인마가 나타났다는, 역시 근거 없는 주장을 해서 민심을 피폐하게 했으며,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찢긴 치맛자락에서 혈흔은 한 방울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다음날, 머리에 수건을 두른 십여 명이 새벽부터 지구대 앞에 드러누웠다. 수건은 허가의 가게에서 공수해 온 것이었다. 송가가 연락책을 맡았다. 빨판 입술 여인이 자신은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가 되지 않겠다며 선발대를 자처했다. 초록색 핀을 꽂은 노파는 짝퉁 크록스 신발을 신은 손자의 손을 잡고 왔고, 라면 가닥처럼 마른 여인도 빳빳이 등을 펴고 땅바닥에 누웠다. 장터국수 주인이 온 것은 의외였다. 알바를 제멋대로 그만둔 것은 괘씸했지만 애를 가진 애가 실종됐다니 우선 물에 빠진 애를 구하자 싶었던 것이다. 저마다 머리에 두른 수건에는 구호가 박혀 있었다. 허가가 가게 문을 닫고 밤새 박은 글자였다.

   우리 애를 살려내라!

   이들의 바람과는 반대로, 이 사건은 철공장이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다. 선량한 시민들을 유인해서 맹목적으로 추종하게 만든 사이비 전도사를 관내에 방치하는 것은 안 될 말이었다.

   철공장이가 유치장에 들어가 즉결심판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은 소마의 귀에도 들어갔다.

   도망친 양호나 따라온 소마나 앞으로의 계획 같은 건 없었다. 양호는 자신의 창고방으로 소마를 데리고 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숨어 있었다. 사실, 숨소리도 내지 않고 싸웠다는 편이 맞았다. 수원역으로 가겠다는 소마를 양호가 몇 번이나 주저앉히고, 그러다 보니 몸싸움이 시작되고, 어쩌다 보니 용연에서 일어났던 월식이 창고방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삼일째 되던 날 방문이 벌컥 열렸다. 뜻밖에 반석 의사였다. 반석 의사는 철공장이를 면회하러 갔다 오는 길이었다. 박양호를 찾아봐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갈빗집으로 갔더니 주인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어디 있겄슈, 지 방에 있것쥬.

   반석 의사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소마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빠가 수태고지니 뭐니 헛소리를 할 때 미리 알았어야 했다. 조용히 미혼모가 되는 편이 훨씬 나았다.

   “뭘 어쩌려구. 너도 유치장에 갇혀. 차라리 나랑 수원역으로 가.”

   양호가 소마를 붙잡았다.

   “양호 말이 맞다. 널 찾았다고 해서 허위사실유포 죄가 없던 일이 되지는 않을 거다. 더구나 기도원 신도들이 저렇게 떠드는데 경찰도 쉽게 물러설 수 없게 돼버렸다. 네가 거기 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니.”

   반석 의사도 만류했다. 하지만 소마에게는 재주가 있었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는 재주였다.

   “살인범에게 강간당해 임신했어요.”

   지구대에 들어가자마자 소마는 경찰관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경찰관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처녀를 토막 낸 살인범이 겨우 잡혔는데 이제는 소녀를 겁탈해 임신을 시켰다니.

   “신이 생명을 주셨다고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랬어요. 거짓말은 아니잖아요.”

   경찰관은 어떻게든 자기 선에서 마무리 짓는 게 옳은 일인 줄은 알지만 요 당돌한 계집애에게 호락호락 넘어가 줄 마음은 없었다.

   “부흥회에서 네가 한 일은 알고 있다. 너도 공범이라는 뜻이다.”

   “살인범의 얼굴을 봤어요. 당장 그릴 수도 있어요.”

   요것 봐라.

   “얼굴이 검고, 턱수염이 지저분하고 살집이 좀 붙은 50대 남자냐?”

   경찰관의 말에 소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매스컴이 요란하게 떠든 덕에 살인범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혹시나 했던 경찰은 어이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겁 없이 나불거리는 입을 쥐어박고 싶었다.

   “그래서, 네 뱃속에 있는 게 살인범 아이라는 거냐? 박양호는 네가 제 아이를 가졌다고 주장했다던데?”

   이번만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소마는 알았다.

   “틀림없이, 신의 아이를 가졌다니까요.”

   저녁 무렵 소마는 철공장이와 함께 풀려났다. 그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신도들이 수건을 흔들며 환호했다. 소마를 추궁하던 경찰이 두 손 들었다는 소식은 곧, 경찰이 수태고지를 인정했다는 사실과 다름없었다.

   부흥회가 다시 열렸다. 신도들은 다섯 배로 늘었다. 소마는 기도원 천막을 전보다 더 넓게 펼쳤다. 양호는 철공장이이자 전도사에게 특별히 별 딱지 스무 개를 받았다. 면죄부였다.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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