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웬즈데이

 

더 웬즈데이

 

오한기

 

 

 



 

 


 

  아버지가 죽었다. 아버지는 경기도 성남의 컴컴한 모텔 방에서 민수라는 여배우와 성관계를 갖던 도중 사망했다. 주간지 《더 웬즈데이》는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사실들을 세세하게 가르쳐주었다. 사건 당일, 아버지와 민수는 선 그린 모텔 403호에 묵었다. 일곱 평가량의 평범한 모텔 방이었다. 그날 밤 그들이 나뒹굴었던 원목 침대 위에는 새하얀 담요가 깔려 있었다. 그 외에도 《더 웬즈데이》는 민수의 사진을 게재하는 데 두 면을 할애했다. 민수는 몸에 붙는 자주색 원피스를 입은 채 한껏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슴이 밋밋한 게 흠이었지만 도시 근교의 야산을 떠도는 노루처럼 청아하고도 불안해 보이는 미인이었다. 하긴, 상업 논리로 따져 볼 때 미인이 아니라면 지면을 할애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더 웬즈데이》는 아버지를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십여 척의 어선을 소유한 포항 출신의 재력가다.

  인생이 소거된 채 지방 유지로만 그려진 아버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을까? 확률은 낮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내가 궁금한 건 다음과 같다.

  돈도 많다면서 왜 변두리의 허름한 모텔에 숨어들었을까?

  나는 의문을 풀기 위해 거리 가판대에서 다음 호 《더 웬즈데이》를 사 보았다. 《더 웬즈데이》가 이십여 년을 남남처럼 지내온 나보다 아버지를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나는 의문을 풀 수 없었다. 아버지가 지면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민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자리를 다른 여배우들이 대체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민수 역시 몇몇 시시껄렁한 독립영화에 얼굴을 내밀었을 뿐 인지도가 낮아서 《더 웬즈데이》의 바람대로 한 주 분 이상의 화제가 되기에는 무리였던 것이다.

  나는 민수가 출연한 독립영화 〈세입자들〉을 보고 나서야 의문을 풀었다. 해외 영화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몇몇 독립영화 탓에 정책적으로 독립영화 살리기 열풍이 일고 있을 때였다. 〈세입자들〉이 집 근처 영화관에서 개봉한 것도 그 영향이었다. 〈세입자들〉은 존 카사베츠를 왜곡하여 베낀 듯한 졸작이었다. 민수는 대부분의 독립영화가 그렇듯 백 분 남짓한 시간 내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섹스를 남용하는 여타 예술영화들처럼 허름한 모텔에서 이름 모를 사내들과 무분별한 섹스를 했다. 한동안 민수의 알몸에 시선을 빼앗겼던 나는 어느 순간 스크린 속의 모텔 방이 낯익다고 생각했다. 그곳은 선 그린 모텔이었다. 〈세입자들〉을 본 뒤 성욕에 달아오른 아버지가 민수에게 선 그린 모텔에 들어가자고 제안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더 웬즈데이》를 다시 본 건 일 년이 흐른 뒤였다. 어느덧 아버지의 일주기가 다가와 있었다. 아버지가 남긴 어선을 호시탐탐 노리던 친척들은 도리를 운운하며 나를 납골당으로 내몰았다. 나는 납골당행 버스를 기다리던 중 《더 웬즈데이》를 발견했다. 《더 웬즈데이》는 먼지를 뒤집어쓴 채 신문 가판대 구석에 꽂혀 있었다. 나는 선 채로 잡지를 훑어보았다.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가슴을 다각도로 분석한 기획기사가 눈에 띄었다. 선정적인 사진만 가득할 뿐 그 기사는 맞춤법이 엉망인 데다 내용도 너무 추상적이었다. 《더 웬즈데이》는 금발 여자들을 뒤쫓기 전에 기사 작성법부터 배워야 할 것 같았다.

  납골당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만원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탔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했다. 성남 갈현동에 위치한 납골당에 도착했을 때 나는 녹초가 돼버렸다. 나는 마당의 벤치에 앉아 한동안 숨을 골랐다. 마당에서는 성남 구시가지가 내려다보였다. 척박한 땅 위에 철근 골조들이 옮겨 심은 가로수처럼 바르다 못해 인위적으로 박혀 있었다. 그 풍경은 재개발지역이 흔히 그렇듯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아버지의 영정 앞에는 이미 누군가가 와 있었다. 믿기지는 않았지만 민수가 확실했다. 민수는 아버지의 사진을 바라보며 훌쩍이고 있었다. 《더 웬즈데이》나 영화에서 봤던 것보다 얼굴도 예뻤고 가슴도 풍만했다. 환히 웃고 있는 사진 속 아버지와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흰 국화 다발, 그리고 죽은 남자를 잊지 못하는 여자…… 통속극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었다. 나는 한동안 넋을 놓고 민수를 바라봤다. 문득 그녀가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해졌다. 민수의 퉁퉁 부은 눈과 마주친 건 그때였다. 당황한 나는 얼떨결에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소개하고 말았다. 민수는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더듬더듬 위로의 말을 건네자 민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덫에 걸린 노루처럼 측은해 보였다. 위로받고 싶은 거겠지. 수가 빤히 보였지만 왠지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공범이 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마르크스 붐에 대해 몇 마디 해야겠다.

  마르크스 붐은 1965년 프랑스 리옹에서 개최된 제4회 세계볼링챔피언쉽 우승자다. 65년은 전 세계적으로 볼링이 인기를 누리던 해였다. 서울 워커힐호텔에 네 개의 레인을 갖춘 볼링장이 생긴 해이기도 했다.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 마르크스 붐 역시 대다수의 40년대 생처럼 볼링을 즐겼다. 그는 야영장의 경비로 밤새 일했고 퇴근한 뒤에는 빌리모어 볼링장에서 친구들과 어울렸다.

  마르크스 붐은 전에도 몇 차례 예선에 참가했었지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그런 마르크스 붐이 결승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언론이 호들갑을 떨 이유는 충분했다. 우승 후 마르크스 붐 앞에는 영웅의 탄생을 알리기 위한 수많은 마이크들이 드밀어졌다. 마르크스 붐은 길게 기른 흑발을 매만지며 간단한 소감을 말했다. 그리고 기자들이 소감을 받아 적는 사이 귀에서 귀마개를 빼 만지작거렸다. 그 순간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기자들은 귀마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별 이유 없어요. 시끄러웠을 뿐이에요. 집중이 더 잘 되더라고요.

  마르크스 붐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듯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볼링협회는 추후 규정집을 검토했지만 귀마개에 대한 규정은 명시돼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마르크스 붐의 인기가 치솟을 대로 치솟아 우승을 무를 수 없었다. 볼링협회는 소리 역시 볼링의 구성요소라며 다음 대회부터 귀마개 착용을 금지했다.

  마르크스 붐은 티셔츠에 수없이 인쇄됐고 걸개나 액자로 제작돼 전 세계 볼링장에 내걸렸다. 프랑스 혁명 당시 일부 젊은이들은 그의 이름을 차용한 “BOOM”이라는 구호를 내세우기도 했다. 마르크스 붐은 그 후에도 두어 차례 대회에 출전했지만 귀마개를 착용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는 사람들의 관심이 시들해질 무렵 홀연히 사라졌다.

  십 년 후, BBC 방송은 〈우리를 흥분시킨 사람들〉이란 다큐멘터리를 기획해 마르크스 붐의 행적을 추적했다. 그러나 마르크스 붐은 어디에도 없었다. 빌리모어 볼링장에 색이 바랜 그의 대형 사진이 걸려 있을 뿐이었다. 가까스로 그의 누이를 찾았지만 그녀는 동생이 죽었다는 말만 반복할 뿐 제작진을 문전박대했다. 후문에 의하면 폐렴에 걸려 죽을 때까지 마르크스 붐의 귓가에는 볼링공이 굴러가는 이명이 들렸다고 한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채 요양원에서 쓸쓸히 죽어갔다지. 머리맡에 찬란한 시절의 트로피를 놓은 채 말이다.

  마르크스 붐은 내가 일하는 볼링장 출입구에도 걸려 있다. 리옹 대회 결승 당시 사진이었다. 전광판에는 마르크스 붐과 앤디 로저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마르크스 붐이 전년도 챔피언 앤디 로저와 십 프레임까지 동점을 이루고 있던 순간이었다. 마르크스 붐은 무표정한 얼굴로 레인을 등지고 서 있었다. 레인 위에는 마르크스 붐의 공이 굴러가고 있었다. 원경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관중들은 환호성을 지르는 것처럼 양손을 치켜들고 있었다. 잠시 후 마르크스 붐은 스트라이크를 기록해 앤디 로저를 역전하게 된다. 승부를 결정짓는 순간이라 흥분할 법도 한데 귀마개를 착용해서 그런지 몰라도 마르크스 붐은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 어쨌거나 지금 우리 볼링장에 드나드는 이들은 아무도 마르크스 붐을 모를 것이다.

  나는 손님이 없을 때면 마르크스 붐을 보거나 소설을 구상한다. 지난 삼 년 동안 볼링장에 딸린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며 얻은 습관이다. 퇴근 후에는 집에서 포르노 소설을 쓴다. 세 권의 책을 냈지만 내 소설을 읽은 사람은 드물었다. 불만은 없다. 누가 요새 소설로 욕정을 풀겠는가.

  지금 저 앞 다섯 군데의 레인 위에서 게임이 진행되는 중이다. 레인 위를 굴러가는 색색의 볼링공들이 핀을 쓰러뜨리고 사라졌다. 남은 핀 수에 따라 사람들의 환호성과 야유가 교차됐다. 다섯 팀이 동시에 볼링공을 굴리고 있었으므로 그 소리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그리고 그 소리보다 더 큰 소리가 밖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작년 이맘때부터 시내 곳곳에 대규모 쇼핑몰 단지가 들어선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고 공사는 계획대로 진행되는 중이었다. 집과 일터를 빼앗긴 주민들이 시위를 벌였지만 시의회가 얽혀들어 있어 공사는 인정의 여지없이 신속하고 과감했다. 시내에는 외계인처럼 낯선 작업복 차림의 인부들이 가득했다. 때론 너무 시끄러워서 마르크스 붐의 귀마개라도 빼앗아 끼고 싶은 심정이었다.

  “햄버거 두 개만 줘.”

  그때 정이 햄버거를 주문했다. 정은 볼링장 근처에 위치한 신발가게 사장이었다. 쇼핑몰이 가게를 짓이기는 바람에 요샌 볼링장에서 빈둥거리는 처지였지만 말이다. 호리호리한 체형의 정은 힘이 부족한지 늘 10파운드짜리 볼링공을 사용했다. 나는 정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곤 동그란 빵 위에 양상추와 양파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노릇하게 익은 패티 위에 기름진 감색 소스를 뿌려 빵 사이에 끼워 넣었다. 햄버거를 만드는 것만큼 간단한 건 없다. 내용물을 층층이 쌓기만 하면 된다. 햄버거 속까지 신경 쓰는 사람은 내 소설을 읽은 사람만큼이나 드물었다.

  나는 오천 원을 받은 뒤 정에게 햄버거 두 개를 건넸다. 정은 그중 하나의 포장지를 벗기고 햄버거를 베어 물었다. 정의 입가에 묻은 소스가 형광등 빛에 반사돼 번들거렸다. 정은 매일 햄버거를 두 개씩 먹어 치웠다. 그는 입버릇처럼 허전한 것보다는 꽉 찬 게 낫다고 말하곤 했다.

  “허전한 것보다는 꽉 찬 게 낫지.”

  정은 어김없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또 어김없이 쇼핑몰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나돌 때 진작 가게를 팔았어야 한다는 둥, 보상금이 보잘 것 없다는 둥, 신세한탄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정의 얘기를 흘려들으며 마르크스 붐에게 눈길을 던졌다. 마르크스 붐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볼링공이 열 개의 핀을 모조리 쓰러뜨려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에도 같은 표정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무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 나가던 정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눈을 도로 돌렸을 때 내가 본 건 탁자 위에 놓인 햄버거 포장지뿐이었다.

 

  포르노 소설을 쓴다고 우리가 방탕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내가 아는 포르노 소설가들은 하나같이 비실비실한 샌님이었다. 나와 동년배인 한상경 또한 그의 데뷔작 『열 명의 아내 서른 명의 딸』과는 무관한 인물이었다. 그는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의 난해하기 짝이 없는 독백극에 열광하는 전형적인 예술지상주의자였다. 낯을 심하게 가려 여자를 사귀어 봤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러나 포르노 소설을 쓰기 위해선 연애를 멀리할수록 유리하다는 게 정설이다. 불가능의 영역을 모르니까. 나는 꾸준히 여자가 있었으므로 예외였다. 물론 내 소설에 나오는 체위를 전부 해보진 못했지만 말이다.

  한상경은 재작년에 있었던 누군가의 출판기념회 이후 자취를 감췄다. 그 행사는 우리가 공식적으로 모였던 마지막 자리였다. 포르노 소설의 간행 부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소설을 쓰는 것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어졌고 볼링공에 부딪힌 핀처럼 뿔뿔이 흩어져 삶의 아득한 곳으로 추락해 버렸다.

  한상경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간단한 안부가 적힌 엽서를 보내왔다. 답장을 원하지 않는 듯 발신자의 주소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듯했다. 종종 신작에 대한 구상을 적어 보내올 때도 있었는데, 그럭저럭 볼 만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장문의 편지를 보내온 적도 있었다. 미구엘 페레의 장편소설 『하차장의 창녀들』이 필사돼 있는 편지였다. 미구엘 페레는 칠레의 포르노 소설가로 현대 포르노의 대부였다. 우리는 예전부터 페레에게 열광했다. 특히 한상경은 『하차장의 창녀들』을 성서처럼 지니고 다녔다. 『하차장의 창녀들』은 페레의 대표작으로, 70년대 칠레 혁명기 쿠데타 군부에 대항하는 정부군의 투쟁을 창녀 하켈리네의 시점으로 그린 소설이다. 페레에게 하켈리네는 정부군의 투사이자 성모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편지에는 『하차장의 창녀들』 외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한상경은 필사본 자체로 내게 무슨 말을 전하고 있는 듯했는데, 나는 단지 그가 소설을 손에서 놓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었다.

  한상경이 마지막으로 보낸 엽서에는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가 인쇄돼 있었다. 그는 그 엽서에 충남 홍성에서 백숙 전문 식당을 하기로 했다며 다시는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포르노를 쓰는 작가들은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쓰고 있는 쪽이다. 서른 살이 될 무렵 디자인 회사에서 잘리고 궁핍과 허무에 허덕일 때부터 줄곧 소설을 써왔다. 내게 소설을 쓰다는 건 전쟁통의 폐허에서 나누는 마지막 섹스만큼이나 절박했다. 내 소설을 정독한 독자라면 남성 인물들이 모두 조루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조루에 내가 겪은 궁핍과 허무라는 두 가지 요소를 담아낸 것이다. 『암사자의 동굴』, 『축축한 팔꿈치들』, 『검은 숲속을 거닐다』. 세 소설 모두 그렇게 읽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정액에 젖은 채 어딘가에서 라면 깔개로 쓰이고 있겠지. 딱 한 번 〈활자 포르노가 살아남는 법〉이라는 글에서 어느 평론가가 포르노 소설의 종언을 고하며 “곧 소진될 것들”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내 소설을 언급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계약금 없이 작품을 보고 출판 여부를 결정하는 게 관례가 돼버렸다.

 

  퇴근 후 책상 앞에 앉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네 번째 소설을 구상 중이다. 비좁은 책상이 불편했고 모니터에서 나오는 빛 때문에 눈이 피로했다. 나는 백지 상태인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창밖을 내다봤다. 서향 특유의 강렬한 석양빛이 시선을 붙잡았다. 저 멀리 서울을 향해 길게 뻗은 고가도로 위에 자동차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고가도로 너머에는 쇼핑몰의 웅장한 골조가 솟아 있었다. 이렇게 나는 소설이 안 써질 때면 창밖을 보곤 한다. 이연의 퇴근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연은 내 애인으로 이태째 같이 살고 있다. 볼링장 단골들이 감탄해 마지않는 미인이지만 내 이상형은 아니다. 나는 이연을 상상하며 소설을 쓴 적이 없다. 영감을 주는 유형은 아니란 말이다. 어쨌든 이연은 감이 좋아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 격으로 힌트를 주곤 했다.

  섹스를 하거나 헤어진다. 크게 볼 때 포르노에서 중요한 건 이 두 가지다. 이번에 이연에게 물어볼 건 섹스에 관한 것이다.

 

  ? 남녀가 죠리퐁을 먹으면서 섹스를 한다.

  ? 남녀가 오렌지를 먹으면서 섹스를 한다.

 

  사소한 것 같아도 죠리퐁이나 오렌지를 삽입하면 많은 의미를 내포할 수 있다. 죠리퐁과 여자의 성기…… 오렌지와 포퓰리즘……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것들을 꿰맞추고 있을 때였다. 문이 벌컥 열렸다. 이연일 것이다. 어느덧 노을이 사라지고 창밖에는 어둠이 내리깔려 있었다. 야간작업 중인 쇼핑몰은 창녀촌의 조명처럼 부푼 불빛을 훤히 밝히고 있었다.

  “불도 안 켜고 뭐해?”

  이연이 불을 밝히며 툴툴거렸다. 나는 눈부신 빛 때문에 실눈을 뜨고 뒤를 돌아봤다. 꾀죄죄한 작업복을 걸친 이연은 몹시 초췌해 보였다. 이연의 부친은 대기업 간부였다. 그러나 그녀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집을 나와 이곳으로 내려왔고 인근 휴대폰 부속품 제조 공장에 취직했다. 머지않아 그 공장 역시 쇼핑몰에 자리를 빼앗길 위기였다. 이연은 두어 달 전부터 시위를 하러 다니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든든한 백그라운드에 익숙해져 있어서 밥그릇 빼앗기길 싫어하는 철부지에 불과했다.

  “물어볼 게 있어.”

  나는 이렇게 말하곤 이연의 눈치를 살폈다. 이연은 작업복을 입은 채 침대에 걸터앉았다. 요새 이연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생리가 끊이지 않는 듯 날카로웠다.

  “나중에. 피곤해.”

  돌아온 건 예상대로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항상 내게 관심을 기울이던 이연은 시위를 시작한 이후 달라져 버렸다. 나는 다시 뒤로 돌아앉았다. 그리고 민망함을 감추려 괜히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훑어보았다. 『하차장의 창녀들』이 눈에 들어온 건 그때였다. 나는 한상경의 성서를 빼들었다. 밤새워 가며 『하차장의 창녀들』을 베껴 쓰는 한상경이 떠올랐다. 한상경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페레에 대해 이야기 나눴던 것도 생각났다. 그렇게 수십 번을 거듭해 읽은 『하차장의 창녀들』을 뒤적거리며 추억에 잠겨 있을 때였다. 뒤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연이 옷을 갈아입는 소리일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그 소리만 들어도 발기하곤 했지만 지금은 이연의 나체를 수도 없이 봤기 때문인지 별 감흥이 없었다. A컵도 못 채우는 젖가슴, 숱이 많은 거웃, 연기하는 듯한 신음…… 차라리 자위를 하고 말지…… 그녀와 섹스를 한다는 건 인터넷 시대에 포르노 소설을 읽는 것만큼이나 따분했다.

  나는 『하차장의 창녀들』을 아무 곳이나 펼쳤다.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쿠데타 군 간부 살인사건 수사차 창녀들의 집결지인 하미네즈 하차장에 들른 형사가 하켈리네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대목이었다. 형사는 유력한 용의자로 정부군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하켈리네를 꼽았다. 그럼에도 형사는 하켈리네에게 숙녀를 대하듯 예의를 갖췄고, 하켈리네 또한 농담을 섞어 가며 그의 질문을 받아 줬다. 나는 낙천적인 하켈리네가 마음에 들었고, 낭만이 통용되는 그 시대가 부러웠다. 그때였다. 이연이 주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고 연이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커피를 타는 거겠지. 그녀는 인도네시아산 커피를 즐겨 마셨다. 백만 원이 넘는대나…… 어쨌든 나는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어디에서 돈이 생기는지 모르겠지만 이연은 그 호사스러운 커피를 아낌없이 마셔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연이 커피를 들고 침대에 걸터앉아 텔레비전을 틀었다. 내 월급과 맞먹는 커피 향이 방 안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거 좀 봐.”

  등 뒤에서 이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텔레비전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뭔데?”

  나는 심드렁한 목소리를 꾸며냈다.

  “민수라는 배우 안다고 하지 않았어?”

  이연이 물었다. 나는 무관심한 척하며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이연 옆에 앉았다. 이연은 텔레비전에 눈을 고정시킨 채 내 손을 잡아끌었다. 이연은 나와 텔레비전을 보며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이연의 체온을 느끼며 텔레비전으로 눈을 옮겼다. 기자회견장에 경직된 자세로 앉아 있는 민수가 보였다. 검은 원피스 차림의 민수는 화장이 다소 진해졌을 뿐 여전히 아름다웠다. 화면 밑에는 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세계증시가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는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섹스 스캔들에 관한 기자회견이었다. 민수는 외교통상부 장관 비서의 차남, 그리고 국립예술대학 영상이론과 교수와 어울려 쓰리썸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도대체 그들과 관계를 맺어서 무슨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화제는 금세 민수의 임신으로 옮겨갔다. 뱃속에 있는 아이의 아버지가 동료 배우라는 사실이 언론의 집요한 추적에 의해 드러난 것이었다. 민수는 훌쩍이며 자신을 변호했다. 납골당에서 만났을 때도 민수는 그랬었다. 아는 사람이 나와 흥미롭다 뿐이지 《더 웬즈데이》에나 실릴 법한 평범한 스캔들이었다. 시청자들은 세 명이 아니라 대여섯 명이 난교를 벌였다 해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무감해질 것이다. 민수의 아이가 세 개의 성기를 지닌 괴물이라면 또 모를까.

  나는 문득 허무해졌다. 이연은 커피를 홀짝이며 민수가 고양이 상이라 그럴 줄 알았다는 둥, 민수의 옷이 유명 브랜드라는 둥, 평을 해대기 바빴다. 나는 슬며시 이연의 손을 놓고 일어섰다.

  “어디 가?”

  이연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고갯짓으로 책상을 가리켰다.

  “네 머릿속에는 그저 여자의 벗은 몸뿐이지?”

  이연이 윽박질렀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민수의 흐느낌은 점차 높아지고 있었다.

 

  어영부영 세 달이 흘러갔다. 볼링장 부지에는 곧 해외 명품 브랜드 매장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그동안 내가 한 거라곤 미구엘 페레의 전집을 다시 한 번 읽은 것뿐이었다. 소설은 여전히 백지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 점심을 먹고 볼링장에 들어섰다. 쇠락한 우리의 영웅 마르크스 붐이 나를 맞이했다. 폐관이 얼마 남지 않아 그런지 어둠침침한 볼링장에 박제가 된 채 걸려 있는 마르크스 붐은 유난히 우울해 보였다. 나는 한동안 마르크스 붐 앞에 서 있다가 불을 밝혔다. 그러자 텅 빈 볼링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빈 공간을 메우기라도 하듯 공사장의 소음이 끊임없이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철거가 확정된 이후 사장은 서울을 오가며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 중이었다. 정 역시 소리 소문 없이 동네를 떠났다. 볼링장에는 살 길을 찾아 각지로 흩어진 단골들을 대신해 소일거리를 찾는 인부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내 신변에도 변화가 생겼다. 공장이 문을 닫는 동시에 이연이 나를 떠나버린 것이었다. 나는 요새 침울해져 있었다. 이연과 헤어진 게 전부는 아니었다. 고작 실연 따위로 고민하고 있는 나 자신이 못마땅했기 때문이었다. 페레는 73년 사회주의 정부가 자본주의 쿠데타에 의해 무너질 때까지 갖은 고초를 견디면서도 산티아고 저항군 기지에서 밤새 소설을 써냈다. 페레의 포르노는 고난의 반증이므로 자연스럽게 아이러니와 알레고리가 생성되는 것이었다. 나는 근본적으로 페레를 흉내 낼 수 없었고, 나약한 나 자신과 거기에서 비롯된 쓸모없는 문장들이 부끄러워졌다.

  민수가 출연한 영화의 포스터가 마르크스 붐의 맞은편에 붙어 있는 것을 본 건 그때였다. 〈알 수 없는 해후〉라는 영화의 포스터였다. 최근 시내 상영관에서 개봉한 영화로 야간 근무자가 붙여 놓은 모양이었다. 포스터 속 민수는 잿빛 밀실에 웅크리고 앉아 망연한 시선을 벽면 너머에 두고 있었다. 사실 〈알 수 없는 해후〉는 몇 년 전 흥행에 참패한 영화로 요새 민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재개봉한 것이었다. 기자회견 이후 언론은 심리학자처럼 민수에게 섹스중독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여자들은 섹스중독을 애정결핍과 연관시키며 민수를 동정했고, 남자들은 민수의 나체를 기대하며 극장에 몰려들었다. 불현듯 마르크스 붐조차 민수를 흘끗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봐, 햄버거 하나.”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고개를 돌리자 언제 들어왔는지 하관이 빤 인부 하나가 실실대고 있었다. 하관이 빤 사내들은 페레 소설의 단골 악역이었다. 그들은 오랜 시간 삽입하면 여자들이 무조건 좋아하는 줄 아는 남성우월주의자였다. 페레는 쿠데타 군부의 고문인 친형의 이름을 빌려 악인들을 루벤이라 이름 지었다. 루벤은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부터 산티아고 가톨릭대학 정치학부 교수로 명망이 높았다. 프로이트에 중독된 일부 평자들은 페레가 정부 편에 선 건 루벤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나 역시 눈앞에서 건들대고 있는 루벤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켈리네를 꼭 닮은 농염한 여인을 옆에 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발그레한 볼, 두툼한 입술, 정념이 깃든 고동색 눈동자…… 그녀는 페레가 묘사한 하켈리네 그대로였다. 어디서 흘러들었는지 몰라도 얼마 전부터 쇼핑몰 근처에 창녀들이 들끓고 있었다. 하켈리네 역시 그런 여자이리라. 나는 하켈리네를 제대로 감상할 틈도 없이 루벤의 재촉에 못 이겨 햄버거를 만들어야 했다. 게다가 교대시간을 맞은 인부들이 몰아닥쳐 햄버거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볼링장은 폐관 계획이 무색하게 예전처럼 소란스러워졌다.

  그렇게 열댓 개의 햄버거를 연달아 만들고 나서였다. 숨을 돌리기 위해 고개를 들어 보니 하켈리네가 앞에 앉아 있었다.

  “커피도 되나요?”

  하켈리네가 물었다. 그녀는 너울거리는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블라우스 안으로 가슴골이 엿보였다. 하켈리네는 내 시선을 의식한 듯 가슴께를 추켜올렸다.

  “탄산음료뿐인데요.”

  민망해진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그녀에게서 서둘러 눈을 뗐다.

  “그럼 좀 앉아 있어도 되죠?”

  그녀가 부루퉁하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고개를 뒤로 돌려 루벤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루벤은 레인 위에서 우악스런 자세로 공을 굴리고 있었다. 그가 굴린 공은 아홉 개의 핀을 쓰러뜨렸다. 루벤은 남은 핀 하나를 보며 아쉬운 듯 탄성을 내뱉었다. 루벤 일행은 창녀들을 옆에 낀 채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저렇게 무거운 걸 왜 굴릴까요?”

  그녀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물어 왔다. 나는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해 입을 열지 못했다.

  “볼링 말이에요.”

  그녀는 고개를 바로 해 나를 보며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왜 저 무거운 공을 들고 스스로에게 고문을 가하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곤 레인으로 시선을 옮겼다. 루벤은 15파운드짜리 암갈색 공을 닦으며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하켈리네를 찾는 눈치였다. 그러던 중 나는 루벤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계속해서 이쪽을 노려보다가 하켈리네를 향해 손짓했다. 하켈리네는 루벤을 흘끗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불안한 마음을 숨기고 싶어 하는 사람 특유의 과장된 태도였다. 루벤은 턱을 죽 내민 채 계속 하켈리네를 쏘아봤다. 하켈리네는 그에게 불만이 있는 듯 아예 등을 돌려버렸다. 한동안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켈리네는 심심했는지 핸드백에서 잡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것은 놀랍게도 《더 웬즈데이》였다. 나는 《더 웬즈데이》를 흘끗거렸다. 《더 웬즈데이》는 어느새 경제전문지로 바뀌어 있었다. 하켈리네는 어느 경제학자가 쓴 칼럼을 읽고 있었는데, 그 학자는 경제민주화니 유럽 발 금융위기니 요새 화제가 되는 용어들을 세 문장에 한 번씩 내뱉고 있었다. 여배우들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는 것과 겉은 다르지만 근본은 같았다.

  “읽을 만해요?”

  내가 물었다.

  “심심풀이죠, 뭐.”

  하켈리네가 《더 웬즈데이》를 건성으로 넘기며 대답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흥미가 떨어졌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더 웬즈데이》를 핸드백에 집어넣었다. 외모만 닮았을 뿐 환생한 하켈리네는 소설 속 하켈리네와 확연히 달랐다. 활기차지 않을뿐더러 허무해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소설 속 하켈리네를 상상하며 울적한 기분에 잠겨 있는 동안 어느새 루벤이 다가와 있었다.

  “재미 좋나?”

  하관이 빤 남자 특유의 끈적이는 목소리였다. 그는 하켈리네의 젖가슴을 주무르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갑자기 표정을 구기더니 하켈리네를 몰아붙였다.

  “너도 내가 우스워?”

  하켈리네는 루벤을 무시하듯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루벤이 하켈리네를 떠밀고 스트레스를 푸는 것처럼 사정없이 짓밟기 시작했다. 언젠가 인부들이 시의회의 농간에 놀아나 몇 달째 임금을 못 받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페레는 『하차장의 창녀들』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포르노는 고환과 음문에 투영된 현실입니다.

  페레에게 포르노는 현실의 반영이며 뒤틀린 욕망의 투사이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페레의 포르노론을 떠올리자 눈앞의 광경이 강자와 약자가 뒤엉킨 현실을 포착한 포르노처럼 야릇하면서도 부조리하게 보였다. 어둠 속에 퍼지는 쇼핑몰의 불빛처럼 내게 우울한 감정이 스며들고 있었다. 마르크스 붐은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인간사의 희극을 지켜보고 있었다.

 

  볼링장이 문을 닫은 건 계절이 바뀐 뒤였다. 나는 퇴직금 조로 삼 개월 치 월급을 받았다. 그리고 무너져 내린 볼링장에 나뒹굴던 마르크스 붐을 주워 방에 걸어 두었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곳곳이 찢기고 팬 마르크스 붐이 애처로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귀마개를 비집고 들어오는 소란을 외면하는 듯한 특유의 무표정은 여전했지만 말이다.

  나는 미래에 대한 결정을 미룬 채 집에 남아 소설을 쓰기로 했다. 어차피 집주인의 요구만큼 전세금을 올려 주는 건 무리였으므로 계약이 남은 한 달 만이라도 마음 놓고 창작에 몰두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백지는 메워지지 않았다. 아니, 메울 틈이 없었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아버지가 안치된 납골당에서는 갑자기 이전 소식을 통보했다. 최근 납골당 부근에 건설된 신도시의 분양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납골당에서는 내달까지 각종 서류를 제출하고 서명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해 어선의 소유권에 대해 지껄였다. 내 친척 몇 사람과 소송 중이라는데 여태 해결이 안 된 모양이었다. 이연 역시 술에 취해 사흘에 한 번 꼴로 전화기 너머에서 흐느꼈다. 이건 그나마 나았다. 내가 어느 정도 관련된 일이니까 할 말이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나를 방해하는 건 죠리퐁과 오렌지가 아니라 빌어먹을 전화였다.

  그 무렵 한동안 연락이 없던 한상경에게도 엽서가 왔다. 프랑크푸르트의 푸른 하늘이 그려진 엽서였다. 그는 다시 소설을 쓰고 있다고 밝히며 이례적으로 전화번호를 남겼다.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 봤지만 연결된 곳은 웬 낚시터였다. 몇 번을 걸어도 마찬가지였다. 혹시나 해서 물어봤지만 한상경은 거기에 없었다. 왜 전화번호를 남겼는지 의문이었다. 출판사를 통해 알아보니 한상경이 얼마 전 자신의 소설을 들고 나타나 난동을 부렸다고 했다. 편집장은 한상경이 아직도 행패를 부리고 있는 듯 미간을 구기더니 그의 소설을 내밀었다.

  “그 이상주의자가 완전히 돌았더라고. 아직도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모양이야.”

  이렇게 말한 편집장은 내게 에로영화 시나리오를 각색해 볼 생각은 없냐고 슬며시 물었다. 소설에 비할 수 없는 고료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한상경에 대해 수소문해 보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한상경은 나 외에도 몇몇 동료들에게 꾸준히 연락을 취해 오고 있었다. 소설을 포기하고 생업에 뛰어든 동료들은 한상경에게 돈을 빌려줬다 떼였다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한산경이 식당을 하고 있다던 홍성군 갈산면은 알고 보니 돌산과 말라붙은 개울뿐인 개발제한구역이었다. 온천이 들어선다며 한때 투기열풍이 일었다가 흐지부지됐다는 후문이었다. 투기업체에 속아 땅을 산 사람들이 큰 피해를 봤다고 한다. 한상경도 피해자 중 하나일지 모른다. 나는 이제 어느 정도 한상경의 기행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달까. 줄기차게 야한 문장을 써내도 인터넷이나 비디오 산업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불현듯 《더 웬즈데이》의 기자들이 담배 연기가 자욱한 편집실에 모여 판매부수를 올리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정오의 하늘은 공들여 닦은 볼링공처럼 윤이 났다. 시내로 나가는 길은 흑인의 성기처럼 기다랗게 뻗어 있었다. 고가도로에서는 확장공사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바리케이드 안에 갇힌 채 부서지고 있는 건물들은 신체가 훼손된 인질처럼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 너머로 개장이 임박한 쇼핑몰이 발기된 듯 우뚝 서 있었다. 백지를 피해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지만 나는 왠지 모를 위화감 때문에 시선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편집장에게 받아 책상 위에 던져 둔 한상경의 소설이 눈에 뜨인 건 그때였다. A5용지 크기로 견고하게 제본을 뜬 것이었다. 제목은 『원수들의 나체』였다.

  『원수들의 나체』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다음과 같다.

 

  ? 남녀가 섹스를 하는 동시에 각각 그림을 그리고 곤충을 채집한다.

 

  페레는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메타포가 과하면 안 된다. 일례로 페레는 새로운 체위의 묘사조차 반대했다. 아이러니하게 그 시절에는 페레에게 반기를 든 신진 작가들에 의해 무수한 체위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신진 작가들 중 지금까지 읽히는 건 알프레드 파라몰트와 토마스 뷰얼 정도였다. 그 정신만 번지르르할 뿐 객관적으로 볼 때 완성도가 형편없었던 것이었다. 나는 페레의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이었다. 제멋대로 쓴다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다.

  『원수들의 나체』는 한상경의 소설 중에서도 유난히 난해했다. 동양화가인 주인공이 신윤복의 춘화를 재해석한 구절이 흥미로웠으나, 뜬금없는 문장이 불쑥불쑥 튀어나왔고 사유와 감정의 격차도 심해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나 난해한지 성교 대목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야해도 모자를 판에 난해하기까지 하다니…… 거룩한 문학의 신전에라도 오를 참인가. 한상경의 소설은 라면 깔개로도 쓰이지 못할 터였다. 나는 한상경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나 자신에게 놀랐다. 예전에는 누구보다 한상경의 소설을 좋아했던 것이었다. 곧 알 수 없는 외로움이 몰아닥쳤다.

  나는 위로해 줄 사람을 찾듯 주위를 살폈다. 가구는 그대로였지만 이연이 떠난 집은 휑했다. 텔레비전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커피 향도 나지 않았다. 누르께한 벽면에 마르크스 붐만이 덜렁 걸려 있을 뿐이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텔레비전을 틀었다. 지역 채널에 쇼핑몰 개장에 관한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다가 문득 이연의 손을 잡고 있는 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연의 체온이 그리워졌다.

  그때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감상에서 벗어나 문을 열었다. 현관 밖에는 낯익은 우체부가 서 있었다. 그는 모자를 벗어들고 내게 인사를 건넸다.

  “이 동네 어려워졌네요.”

  그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우체부는 시내에 들렀다 오는 길인데 쇼핑몰의 영향으로 행정구역이 바뀌어서 우편물을 배달하는 게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내가 딛고 서 있는 공간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이 들끓는 타국의 공항에 홀로 도착한 느낌이랄까.

  “편지예요?”

  나는 한상경의 엽서에 인쇄돼 있을 외국 도시들을 상상하며 물었다. 우체부는 대답 대신 자그마한 상자를 내밀었다. 나는 그 상자를 받아들었다. 상자에는 이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연이 주소지를 바꾸지 않아 값비싼 수입 커피가 여기로 배달된 것이다.

  “서명 좀 해주세요.”

  우체부가 서명 용지를 내밀었다.

  “저도 곧 떠날 겁니다.”

  나는 서명란에 이연의 이름을 써넣으며 말했다. 우체부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등을 돌렸다. 왜 그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나조차도 의문이었다.

 

  그로부터 열흘 후였다. 나는 그동안 소설을 미뤄 둔 채 편집장이 보낸 에로영화 시나리오를 각색하느라 정신없었다. 머릿속에 정사 장면이 반복 재생되는 영사기가 들어앉은 것 같았다.

  오늘은 쌓인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기로 한 날이었다. 우체국에 들러 이연에게 커피를 보내고 부동산에 집을 내놓느라 반나절을 허비했다. 늦은 점심을 먹은 뒤에는 영화관에 들러 〈알 수 없는 해후〉를 봤다. 에릭 로메르가 환생한다면 자신의 영화가 후대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에 대해 좌절할 법한 영화였다. 민수의 연기는 변함없이 진지한 척하는 것뿐이어서 관객들의 유별난 관심이 우스웠다. 나는 영화를 곱씹을 틈도 없이 터미널로 향해야 했다. 납골당에 가서 서류를 제출하고 이전에 동의하는 서명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거리는 인적 없이 고요했다. 공사가 끝났기 때문인지 하켈리네도 루벤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새 일자리를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났을 것이다. 가끔 폐자재를 담은 차량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오갔고, 나는 비대한 몸집의 쇼핑몰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쇼핑몰에 달린 수많은 유리창이 햇빛에 반사돼 번쩍거렸다. 입구에는 개장일을 알리는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터미널은 쇼핑몰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쇼핑몰 개장에 맞춰 매끈한 대리석으로 단장한 터미널에는 패밀리 레스토랑과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구획에 맞춰 들어서 있었다. 나는 무인 발매기에서 표를 산 뒤 편의점에 들렀다. 차 시간도 기다릴 겸 목을 축이기 위해서였다. 음료수를 골라 들고 계산대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가판대에 꽂혀 있는 《더 웬즈데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더 웬즈데이》를 뽑아들었다. 《더 웬즈데이》는 그새 그럴듯한 영화잡지로 바뀌어 있었다. 영화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증명하는 듯했다. 표지에는 묵시록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도시 사진이 인쇄돼 있었다. 우중충한 하늘과 낡고 부서진 건물들, 그 풍경을 바라보는 앙상한 소년…… 보나마나 “문명의 비문명화” 같은 빤한 의미를 담은 게 분명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영화잡지가 왜 이런 표지를 택했는지 의문이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면 적어도 나에게는 주효했다. 표지에 적혀 있는 주요 기사 중 민수의 인터뷰가 눈에 띄었던 것이다. 주요 기사들은 다음과 같다.

 

  ? 중국계 창녀를 사이에 둔 알랭 들롱과 폴 뉴먼의 대결 비화

  ? 허우 샤오시엔의 창작욕과 대만인의 거대한 성기

  ? 〈알 수 없는 해후〉의 히로인 민수 단독 인터뷰 : 섹스 스캔들 이후 심경고백

 

  미스터리나 에로틱을 끌어들어야 잘 팔린다. 《더 웬즈데이》는 이 세계의 불문율을 준수했다. 나는 이 사실을 새삼스럽게 되새기며 민수의 인터뷰를 찾아 잡지를 들춰 보았다. 민수의 인터뷰는 후반부에 게재돼 있었다. 서너 장가량의 사진도 함께였다. 민수는 긴 치마와 풍성한 티셔츠를 입어 만삭인 몸을 가렸고 시종일관 예술적으로 성공한 사람 특유의 냉소적인 태도로 인터뷰에 임했다. 재개봉한 영화와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민수는 요새 모란디의 정물화와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 경도돼 있다고 말했다. 남에게 말했을 때 별 탈 없이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그것도 살 건가요?”

  굵직한 음성에 고개를 들었다. 종업원이 나를 꼬나보고 있었다. 내가 계산할 차례였다. 뒤를 돌아보니 건장한 남자가 신문을 손에 든 채 계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더 웬즈데이》를 사들고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납골당에 가는 내내 민수의 인터뷰를 읽었다. 기자는 인터뷰 말미에 “물어도 될진 모르겠지만”이라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트며 스캔들과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직 도망치는 중이에요.

  이에 대해 민수는 아리송한 대답을 남겼다. 기자는 인터뷰를 마치며 그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배우로서 올바른 선택이길 바란다고 주를 달았다.

 

  녹색 점퍼를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납골당으로 올라가는 길을 점거하고 있었다. 그들은 “납골당 이전 반대”라는 내용의 글자가 박힌 현수막을 들고 있었다. 납골당 이전이 유력한 도시 주민들이 집값 하락을 우려하여 시위하고 있는 것이었다. 시위대가 움직일 때마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먼지투성이가 된 경비들이 시위대를 저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선 채 올라갈 길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바지 속에 든 휴대폰이 진동한 건 그때였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상대방은 말이 없었다. 나는 누구냐고 물었다. 대답 대신 휴대폰 너머에서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공사장의 소음 같기도 했고, 볼링공이 굴러가는 소리 같기도 했으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게다가 주위의 소음과 섞여들어 무슨 소리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한참을 들었는데도 그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장난전화라고 생각할 무렵이었다. 한상경의 기행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휴대폰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가 일종의 암호처럼 느껴졌다. 이런 짓을 할 사람은 한상경뿐이었다. 정체불명의 소리가 한상경의 소설처럼 난해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상경?”

  내가 물었다. 대답이라도 하듯 갑자기 소리가 멈췄다. 나는 목소리를 높여 한상경을 다시 한 번 불렀다. 잠시 후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얼마간 그 소리를 더 듣다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하차장의 창녀들』을 움켜쥔 채 미증유의 걸작을 찾아 낯선 장소를 헤매는 한상경을 상상하며 시위대 틈에서 벗어났다.

  납골당 사무실도 북적거리긴 마찬가지였다. 순서가 오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숨을 돌리기 위해 한적해 보이는 마당으로 향했다. 마당에서 내려다본 성남 구시가지에는 어느새 높다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었다. 칙칙한 빛깔의 아파트들과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곧게 뻗은 보도, 그 사이를 오가는 비슷한 색의 자동차들…… 눈앞의 풍경은 깔끔하다 못해 미래 도시처럼 비인간적이었다. 불현듯 그 풍경이 전에 비할 수 없이 황량하게 느껴졌다. 왠지 나를 둘러싼 세계가 공전과 자전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더 웬즈데이》의 표지와 눈앞의 풍경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 건 그때였다. 어쩌면 《더 웬즈데이》가 이 세계를 가장 정확히 포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헛웃음이 비집어 나왔다. 그때였다. 몇몇 사람들이 이전을 둘러싼 납골당의 구태의연한 행정 처리에 대해 투덜대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텅 빈 납골당은 밖과 달리 고요했다. 순식간에 차원이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한 느낌이었다. 아버지 앞에는 시들어버린 국화 다발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 왔다 간 모양이었다. 어선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던 중 불현듯 민수가 떠올랐다. 그리고 금세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속 아버지는 어딘가로 떠나게 될 운명도 모른 채 전과 다름없이 환히 웃고 있었다. 나는 밖이 조용해지길 기다리며 《더 웬즈데이》를 펼쳐들고 민수의 인터뷰를 다시 한 번 읽었다. 그러자 사진 속 아버지가 귀를 기울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민수가 온갖 방황을 마친 뒤 아버지 곁에 잠시 쉬러 온 것 같기도 했다. 민수의 인터뷰 뒤엔 여배우들의 무분별한 노출 풍토에 대한 기사가 이어졌다. 수치를 근거삼아 독자들을 설득시킨 뒤 사회학을 동원해 풍토를 비판하고 정신분석학을 인용해 여배우들을 동정하는 빤한 기사였다. 무엇보다 《더 웬즈데이》는 여배우들의 야릇한 사진을 구하는 데 집중했다. 기사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누가 그녀의 옷을 벗겼는가?

 

  《문장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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