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미국에서

 

옛날 옛적 미국에서

 

박민정

 

 



 


 

 

  “이거, 알아보시겠어요?”

  기자와의 세 번째 만남이었다. 그가 내미는 물건을 보는 여자의 마음이 무너졌다. 아이 대신 물건만 돌아온 것이었다. 흡사 아이의 부고를 듣는 것 같았다. 그 물건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입학 기념으로 사준 선물이었다. 고정 스트랩이 팽팽하게 당겨진 가죽 노트는 두꺼워 보였다.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여자는 노트의 표면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아이의 손때가 묻은 가죽이 번들거렸다. 소중히 간직하겠다고,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 거라고, 아이는 거듭 말했었다. 그날도 아이를 꾸짖었던가. 첫 장에 씌어 있는 문장은 분명 아이의 필체였다. 여자는 한 줄만 더 쓰고 끝내라고 윽박질렀던 날들을 생각했다. 아이는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여자는 흡사 필적 감정을 하듯 면밀하게 아이가 쓴 글자를 살폈다. 차라리 아이의 물건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나 물건은 손에 만져졌다. 물건은 실체였으며 취재화면 속 아이의 얼굴보다 확실했다. 여자는 아이가 잘못되었다는 분명한 예감에 몸을 떨었다.

  아버지는 나를 구타했고, 어머니는 그걸 방관했지요.

  어머니는 나를 구타했고, 아버지는 그걸 방관했지요.

  두 분은 공범입니다.

  그것 역시 아이의 필체가 분명했다. 여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구타, 방관, 공범. 종이를 뚫고 튀어오를 것 같은 글자들이었다. 아이가 왜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일까. 여자는 남편을 바라봤다. 남자는 눈을 감고 있었다. 여자의 머릿속에 아이에게 노트를 건네던 순간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그때, 아이는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여자와 남자를 갈마보던 기자가 불쑥 말했다.

  “보신 대로, 두 분이 공범이라고 하더군요. 그건 저에게 직접 한 말이기도 합니다.”

  다른 집 아이 이야기인 것처럼. 어쩌면 저렇게 함부로 지껄일 수 있을까. 여자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앞선 세 번의 만남에서 기자는 한결같이 조심스러웠다. 오늘 기자의 태도는 전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여자와 남자를 이미 범죄자 취급하고 있었다. 아이의 부모가 아니라, 아이에게 해를 가한 사람들을 보고 있는 듯했다. 당장 벙긋대는 저 입을 후려쳐서 더 이상 함부로 지껄이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걸까. 여자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참담한 기분으로 남편의 손을 잡았다. 내내 부동자세로 앉아 있던 남자는 여자의 손을 뿌리쳤다. 남자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커피숍 전체가 금연구역이었다.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난 뭐, 처음부터 끝까지 도저히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고. 확실한 건 하나. 그 여자가 우리 애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거. 지금으로선 할 말이 없습니다. 그 여자를 만나 보기 전까지는.”

  남자는 덧붙였다.

  “아이를 찾는 게 목적이라구요. 우리는. 누가 그딴 얘기 듣고 싶다고 했습니까?”

  남자는 몇 모금 빨지 않은 담배를 끄지도 않은 채 테이블 아래로 거칠게 집어던졌다. 여자는 남편의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교양 없는 태도였다. 앞에 앉은 사람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기자일 뿐, 경찰이 아니었다. 기자는 남자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듯 묵묵부답이었다. 남자는 이제 더 할 이야기가 없다는 듯 외투를 챙겨 일어섰다. 여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기자에게 물었다. 매번 같은 대답이 돌아왔지만 도무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아이가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는 것.

  “다른 아이들도 전부 제 부모에게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던가요?”

  “돌아가지 않겠다는 건 모든 아이들의 공통된 생각인데, 다만…….”

  여자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런데요?”

  “제나는 부모님을 폭행 및 성추행 혐의로 고소하겠답니다.”

  남자는 기자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악마의 령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여자는 제나의 다음 문장을 숨죽이며 읽었다.

 

  이상한 동네였다, 고 여자는 기억했다. 마치 세상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처럼. 건물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자는 그곳에 처음 제나를 데려간 날을 떠올렸다. 삼 년 전 겨울이었다. 서울과 가깝다고도, 멀다고도 할 수도 없는 경기 외곽에서 건물을 발견하던 순간을 여자는 어제처럼 기억했다. 저곳인가요. 고가도로에서 여자는 외쳤다. 멀리 보이는 것은 붉은 벽돌 건물이었다. 트리니티 국제학교. 고딕체로 쓴 글자였다. 뒷좌석에서 내내 꾸벅꾸벅 졸던 전도사가 눈을 번쩍 떴다. 어, 금방 왔네. 조수석에 앉은 제나가 흘끗 창밖을 내다보는 듯했다.

  여자는 운전을 하는 틈틈이 룸미러로 딸을 관찰했다. 뒷좌석에 앉은 제나는 말없이 치마 솔기를 뜯어내고 있었다. 여자는 그런 딸이 못마땅했다. 뭐가 잘못된 아이는 아닐까. 열여섯 살이었다. 그 나이가 되도록 그대로였다. 제나가 어린아이였을 적부터 내내 가슴을 옥죄던 불안이 다시금 밀려오는 듯했다. 결코 먼저 입을 여는 법이 없는 아이였다. 때로는 묻는 말에도 대답하지 않아 여자의 억장을 무너지게 했다. 영어는 물론이고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던 아이. 그렇다고 일기를 열심히 쓰는 것도 아니었다.

  저 머릿속에 과연 몇 개의 어휘나 제대로 입력되어 있는 걸까.

  여자는 간혹 생각했다. 입을 꾹 다물고 앉은 아이의 얼굴은 아주 어릴 적부터 내내 우거지상이었다. 그런 표정으로만 살아온 제나의 이마에는 벌써부터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다. 여자는 숨을 몰아쉬었다. 제나의 그런 얼굴만 보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간혹 여자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제나는 잘못한 것도 없이 기가 죽어 눈을 끔벅거렸고, 그런 모습이 여자를 더욱 화나게 했다. 전도사가 없었다면 그날도 갓길에 차를 세워 놓고 제나를 꾸짖었을 것이었다. 너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는데. 너를 위해서 이런다는 걸 알고는 있니? 여자는 그 말을 삼켰다.

  트리니티 국제학교. 여자는 자신의 손으로 아이를 그곳에 데려갔었다. 선뜻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주춤거리던 제나의 모습을 여자는 기억했다. 빨리 오라고 채근하며 아이의 손을 잡아채 끌고 간 것도 자신이었다. 교장실 문을 열고 아이의 등을 떠밀던 순간이 떠오르면 여자는 그만 아찔해지는 듯했다.

  많이 잡아 봐야 서른이나 되었을까, 앳된 얼굴에 생머리를 늘어뜨린 교장이 미소를 지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듯 젊은 아가씨가 교장이라니, 여자는 전도사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정말 제대로 된 학교가 맞아요?

  여자는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살아오면서 그토록 간절하게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없었다. 그때 여자는 멍하니 선 제나의 뒤통수를 쥐어박으며 교장에게 인사를 시켰다. 다른 아이들은 이맘때라면, 부모가 시키지 않아도 넉살좋게 웃으며 인사를 할 텐데, 생각하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난 그런 적 없어. 당신이 그랬어?”

  남자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여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뭘 말이야?”

  남자는 외투를 거실 바닥에 집어던졌다.

  “얼어죽을. 폭행 및 성추행.”

 

  남자는 아이가 감금 상태에 처했으리라는 믿음을 쉬이 버리지 않았다. 기자가 처음 찾아온 날에도 남자는 그의 멱살을 잡았다.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이라는 타이틀을 본 남자는 언성을 높였다. 돌아오지 않다니, 돌아오지 못하는 거지. 당신 자식이어도 이렇게 말할 수 있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멱살 정도는 수시로 잡혀 봤을 기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 제작팀은 이미 트리니티 국제학교 아이들 전부를 취재했고, 그들의 분명한 입장을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정확한 발음으로 말했다.

  “저희가 있을 곳은 이곳입니다. 저희는 선생님과 떨어져 어디에도 갈 수 없습니다.”

  그건 제나의 말이기도 했다. 제나는 도수 높은 안경알 너머 작은 눈동자를 굴렸다. 제나의 오랜 습관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취재화면 속 제나의 모습에 경악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작은 눈동자 외에 무엇도, 자신들이 알아 온 딸의 모습이 아니었다. 누군가 말을 걸면 귀까지 온통 붉어져 고개를 숙이고 더듬거리며 대답하던 제나였다. 여자는 울음을 터뜨렸다. 부부와 마주앉은 기자가 셔츠 단추를 풀었다. 남자는 전부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화면에 떠오른 저 모습은 믿을 수 있는 것일까. 빌어먹을 교장이라는 여자가 앞에서 스크립트를 들고 서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남자도 인정해야 했다. 그토록 절대적인 확신에 찬 표정과 말투는 누군가 지시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부부가 제나에게 만들어 주고 싶었던 가장 간절한 것이기도 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이 생각한 바를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 아이가 보내오는 편지들을 통해 부부는 아이가 ‘나아지고 있다’고 느꼈다. 제나가 자신들이 원하는 아이의 모습에 차츰 가까워진다고도 생각했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우울한 표정으로 기숙사에 들어간 제나가 ‘더없이 행복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을 때, 부부는 뿌듯했다. 그런 점에서 취재화면 속 제나는 완벽해 보였다. 상대가 누구든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분명한 발음으로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것. 클리닉의 마지막 단계까지 무사히 수행한 듯 제나는 마치 달변의 연사처럼 말했다.

  “저희는 부모님에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기자는 그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화면을 바라본 채 부부에게 말했다.

  “두 분께서는 여기서부터 시작하셔야 합니다. 아이들의 자발적인 선택이라는 것. 제나 역시 마찬가지고요. 아이들은 지금, 교장 선생과 함께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이루어 지내고 있어요. 본인의 의지에 따라서요. 아이들의 말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그 여자, 교장의 인터뷰는 없습니까.”

  남자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힘겹게 말했다. 여자는 교장의 모습을 떠올려 보려고 애썼다. 제나를 데려가던 그날의 풍경 모두 선했지만 교장의 얼굴만은 쉬이 떠오르지 않았다. 둥그스름하고 선한 눈매를 가졌다는 것만 얼핏 떠오를 뿐이었다. 겨우 기억나는 것은 입술에 하얀 각질이 오글오글 올라붙은, 화장기도 없는 앳된 얼굴이었다. 여자는 제나를 입학시킨 이후 그 또래 젊은 여자만 보면 교장을 생각했다. 대체 그런 젊은 여자가 교장이라니, 제나를 보내고도 한동안 불안한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곳이 어디에서도 공인받지 않은 “가짜 학교”였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여자는 처음 가졌던 불안을 떠올렸다. 젊은 여자에게 갖는 선입견이겠거니, 스스로를 타일렀던 날들이 무색해지는 것 같았다. 전도사가 소개한 바, 교장이 직접 말한 바는 전부 거짓이었다. 교장은 자신이 미국에서 나고 자랐으며 아이비리그의 명문대에서 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고 말했다. 교장은 평택 미군부대 근처에서 나고 자랐으며 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교장은 자신의 아버지가 미국 대형 교회의 목사라고 말했다. 교장의 아버지는 십 년 전에 충북 당진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교장은 트리니티 국제학교가 아버지의 교회와 연계되었으며 미국의 교육기관으로 등록되어 모든 교육과정이 미국의 고등학교와 동일하고 졸업 후 미국 고등학교 졸업과 같은 학력을 취득할 수 있다고 했다. 트리니티 국제학교는 지구상의 어느 기관에도 등록되지 않았고 어느 곳과도 연계되지 않았다. 경기 외곽의 붉은 벽돌 건물일 뿐이었다. 삼 년간 아이들은 그저 학원에 다닌 셈이었다. 좋게 생각해 봐야 스파르타식 영어학원이었다. 그곳에 아이를 보낸 부모들은 매 학기 대학 등록금보다 비싼 등록금을 지불해 왔다. 곧 스무 살이 될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하려면 검정고시를 봐야 했다. 부모들은 교장을 고소했다.

  그러한 사실들이 밝혀진 후, 처음 국제학교를 소개해 준 전도사는 연락을 끊고 사라졌다. 부부는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나갈 필요가 없었다.

  남자와 여자는 자신들이 굳게 믿어 온 것에 대해 생각했다.

  교장실에는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노년의 사내가 금테를 두른 커다란 액자 속에 박제되어 있었다. 초기 대통령의 초상사진 같은 이미지였다. 그 옆에는 나란히 영어로 쓰인 각종 문서들이 걸려 있었다. 여자는 당연히, 그 내용을 읽어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각종 인증서와 학위기, 표창이겠거니 그렇게 생각했다. 여자는 교장과의 첫 만남에서 그것들을 올려다보며 무심코 말했었다.

  “저희도 잠시 미국에 살았었는데. 제나가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요.”

  여자의 말끝에는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취재화면 속 교장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저와 함께 있고 싶어 합니다.”

  교장은 당당하게 말했다.

  남자는 낮게 욕설을 뱉었다. 여자는 분에 겨운 남편이 화면을 주먹으로 내리치지 않을까, 잠시 걱정했다. 남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할 뿐이었다.

  남자는 클리닉의 첫 번째 결과물을 받아들듯 기껍게, 그보다 더할 수 없이 뿌듯한 마음으로 제나의 편지를 읽던 날을 떠올렸다. 입학한 후 처음으로 편지를 보내온 날이었다.

  이게 제나가 쓴 글이라고?

  남자는 만면에 웃음을 달고 외쳤었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제나가.

  이곳에서 보내는 첫 번째 편지입니다. 불편한 곳 없이 잘 지내고 계신지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뵙지 못한 지 두 달이나 되었네요. 봄꽃들이 만개하고 있습니다. 어느새 봄이 코앞으로 성큼 다가온 것 같네요. 어머니, 아버지가 저를 믿고 집에 돌아가시던 날은 가만히 있어도 손가락이 전부 곱아들 만큼 쌀쌀했는데요.

  그로부터 지금까지, 계절이 지나는 동안 두 분을 뵙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걱정하셨을까요. 게다가 저, 제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한참 모자라 유독 걱정을 끼쳐 드린 아이였으니까요. 그러나 어머니, 아버지,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정말 잘 지내고 있으니까요. 제 17년 인생,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합니다. 혹시 서운하실까요. 그렇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이곳은 저에게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곳이 될 것만 같습니다. 이해해 주시기를 바라요. 이곳, 트리니티 국제학교는 또한 저에게 가장 큰 깨달음과 의미를 주는 곳입니다. 지금까지 배운 것이 이토록 엄청난데, 앞으로는 얼마나 더 큰 것을 주실지 가늠할 수도 없습니다.

  입학한 후 두 달 동안은 선생님께서 일부러 편지를 쓰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곳에 온전히 적응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 저희는 예배당에 모두 모여 편지를 쓰고 있어요. 선생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앞으로는 한 달에 한 번, 이렇게 모두 예배당에 모여 부모님께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갖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어요. 편지를 쓰기 전, 더없이 깨끗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 저희를 보내주신 주님, 주님의 말씀을 충실히 전하여 저희를 낳아 주시고 지금껏 보살펴 주신 부모님을 부디 어여삐 여겨 주시기를요. 저희는 진심을 다해 기도드렸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평소에는 수없이 기도를 드립니다. 어떤 상황이든 어떤 기분이든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선생님께서 일러주셨어요. 즉 기도가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따르려고 합니다.

  이곳에서 선생님은 오직 한 분입니다. 각 교과목과 영어를 담당하시는 교사들이 계시지만, 저희가 스승으로 믿고 따르는 분은, 교장 선생님 한 분뿐입니다. 앞으로 편지에서 제가 지칭하는 선생님, 역시 오직 그분뿐이라는 것을 미리 일러드립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혼동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저희는 매일 새벽 같은 시간에 일어나 기도를 드리고, 같은 시간에 식사를 합니다. 일곱 시간 동안 수업을 듣고 네 시간 동안 자율학습을 합니다. 그리고 두 시간 동안 선생님의 집도 아래 예배를 드립니다. 이런 일정은 평일 내내 변함이 없습니다. 주일에는 더욱 다채로운 활동을 하지만, 결코 단독으로 움직이는 일은 없습니다. 저희는 선생님과 함께, 항상 모든 것을 함께합니다.

  기적을 경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또 그것은 어떤 순간으로 다가올까요. 조금은 알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저는 얼마 전에 기적의 일부를 목격한 것 같아요. 그것을 회상하는 즉시, 가슴이 벅차올라 그만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어머니, 아버지, 다음 편지에서 제가 이곳에서 첫 번째 목격한 기적을 알려드릴게요.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제나가 부모님과 떨어져 얼마나 충만하게 지내고 있는지는 이미 아셨으리라 믿어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주님과 부모님의 딸

제나

 

  제나의 문장은 그 애 입으로 한 번도 발음하지 않은 말들뿐이었다. 어머니, 아버지라니. 부부가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호칭이었다. 제나는 깍듯한 경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여자는 제나가 장문의 글을 쓴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것이 부모에게 부치는 평범한 내용의 편지일지라도. 부부는 모두 아이가 ‘나아지고 있다’는 첫 번째 징후라고 생각했다. 편지는 총 세 장이었다. 부부는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제나의 글자 하나하나를 읽어냈었다.

  공영방송에서 트리니티 국제학교를 소재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한다고 했을 때, 부부는 다소나마 안도했다. 부부는 카메라의 시선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될지, 그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기획의도, 그런 것에는 관심 없었다. 아이들이, 제나가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드라마도 코미디프로그램도 아닌 다큐멘터리라면,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인식해 보도하고 당면한 사태를 해결하는 데 일조하리라 믿었다. 부부가 만난 다른 부부들의 생각도 그와 같았다.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문제의 본질은 트리니티 국제학교가 사기꾼 여자가 만들어 놓은 가짜였다는 것. 당면한 사태는 기숙사에 살던 아이들이 부모에게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부모들이 교장을 고소한 후, 돌연 아이들과의 연락이 두절됐다. 그 아이들 중에 제나도 있었다. 부부는 벌써 반 년 가까이 제나를 만나지 못했다. 어떤 종류의 연락도 취할 수 없었다. 부부는 기자를 만나기 전까지 제나가 감금되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신체에 관련한 감금이든 의식에 관련한 감금이든, 교장이 제나를 포함한 아이들을 가둬 둔 것이 분명하다고 부부는 생각했다.

  공영방송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부부는 짐작할 수 없었다. 다른 부모들로부터 일부 소수의 아이들만 그곳에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부부는 그것이 아이들의 선택이리라고 짐작하지 못했다. 기자와의 거듭된 만남에서 부부는 깊이 상처받았다. 남자는 이런 식이라면 더 이상 취재에 응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아이가 있는 그곳에 관련한 일이었다.

  남자는 숨을 거듭 내쉬며 흥분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그런데 이제 와 폭행 및 성추행이라니. 이건 예의도 아니었고, 말 자체가 말 같지 않은 소리였다. 흥분 상태에서 아내에게 윽박지르긴 했지만, 아내를 의심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가정에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남자는 자신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쉽게 흥분했고 쉽게 가라앉았다. 꾸물대는 제나를 보며 속 터지긴 했지만 아이에게 손을 댄 적은 없었다. 성추행이라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이를 추행하다니, 남자의 생각에 그건 자신의 몸을 추행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아내가 성마른 여자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가 아이를 폭행한 적은 없었다. 간혹 쥐어박거나, 제나가 어린아이였을 때 손바닥을 때리는 등의 체벌을 한 적은 있었어도 ‘폭행’과는 상관없는 일들이었다. 성추행이라니, 아내와 딸 사이에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남자 생각으로는 그랬다.

  남자는 무엇보다 아이가 그런 단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가슴 아팠다.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아이가 왜 그런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남자는 제나의 노트를 펼쳤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제나는 꼬박꼬박 편지를 부쳤다. 줄곧 잘 지내고 있으며,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라는 내용뿐이었다. 이 물건에 모든 단서가 있다는 듯, 기자는 은근한 눈빛으로 노트를 건넸다. 부모님께 전해 드리라고 하더군요. 제나의 편지를 모두 꺼내 들춰 봐도 이상한 내용은 없었다. 그간 남몰래 복식부기 비슷한 뭔가를 한 것일까. 남자는 아내에게 말했다.

  “편지에 이상한 내용은 없었잖아.”

  여자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없었어. 그런 내용.”

  “그런 내용?”

  “……그, 폭행 및 성추행. 우리가 그랬다고 했다며. 애가 그런 생각 하고 있는지는 꿈에도 몰랐어.”

  “교장이라는 여자가 주입했겠지? 그런 생각.”

  “아마 그랬을 거야. 그 여자가 그 학교의 전부였으니까.”

  “……대체 그 여자가 뭔데?”

  “제나가 그 여자를 따르기는 했어. 편지에서도 계속 그랬잖아. 존경하고 믿는 유일한 스승이라고. 자기가 말하는 선생님은 오직 그 여자뿐이라고. 처음부터 그랬잖아.”

  “그 여자가 뭐야? 애들도 전부 알게 됐잖아. 미국은 가본 적도 없는 시골 여상 출신 그 여자가 여전히 애들에게 교장이야?”

  “여전히 애들에게는 선생님인가 봐. 그렇게 말하고들 있었잖아.”

  “뭘 어떻게 한 거야, 애들에게.”

  남자는 뇌까렸다. 부지불식간에 머릿속을 스쳐간 어떤 정황이 있었다.

  “재림예수 노릇이라도 한 건가?”

  여자는 문득 제나가 말한 ‘기적의 일부’를 떠올렸다. 남자도 아내와 같은 생각을 했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제나가.

  기적같이 아름다웠던 봄날이 다 지나간 것 같아요. 주일 내내 내린 비로 꽃들이 다 죽어버렸어요. 주님은 꽃을, 아주 잠시만 보여주셨어요. 제가 특별히 좋아한 수양벚꽃이 전부 다 지고 말았습니다. 이곳 책상에 앉아 창밖을 보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들이 마치 손짓을 하는 듯 너울거렸는데요. 비를 맞아 꽃들이 전부 죽어버리고 말았어요.

  누군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그런 말을 했어요. 꽃은 인간을 위해 피는 게 아니라 벌레를 위해 핀다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주님의 역사하심에 대해 인간이 감히 판단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 사실로 명명하는 것은 우리의 오만일 뿐이겠지요. 봄날의 꽃은 주님께서 인간에게 보여주는 축복, 기적 같은 축복이에요. 제가 믿는 바 오직 그것뿐입니다. 그리고 기적은 믿는 이에게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 그것의 일부만 목격했을 따름이지만요.

  어머니, 아버지. 제나를 이곳에 보내 주신 분은 물론 주님이겠지만, 어머니, 아버지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와 이곳의 인연은 없었으리라는 것을 잘 압니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감사드립니다. 어리숙하고 늦된 아이를 위해 항상 애써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니,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잘 몰랐습니다.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며 이곳과 선생님의 은혜로운 가르침 안에서 저는 온전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를 위해 애써 주신 것과 종국에 저를 이곳으로 보내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공립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저는 늘 기죽어 지냈습니다.

  토론과 발표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교사들이 그곳에는 많았지요. 대부분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과거 과격한 시위를 벌이다 수감되었던 경력을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듯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교과 내용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변적인 이야기로 수업 시간의 대부분을 때우곤 하는 교사들이었지요. 대단한 정의라도 역설하는 듯 목에 핏대를 세웠지만 제가 보기에 그건 그저 게으른 모습일 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잘 아시겠지요.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요. 나라 팔아먹은 데모쟁이 자식들. 물론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근면한 생활인은 아니었어요. 항상 민주적인 방식이라고 떠들어댔지만 결국 수업의 대부분을 학생이 주도하는 토론과 발표로 때운 것은 교사의 직무유기가 아닐까요.

  저는 늘 의기소침했습니다. 교사들은 저에게 항상 말하기를 강요했어요. 그건 강요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데요. 명랑하게 발표하는 또래 아이들 가운데서 저는 더욱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업시간이 지옥 같았어요. 저는 등교부터 하교까지 내내 벌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교사들은 아무것도 가르쳐 준 것이 없어요.

  민주적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러나 그건 허상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아시겠지요. 위급상황에서 누구도 민주적일 수 없어요. 민주적인 방식이라는 게 결국 만들어내는 건 바보 같은 결과물일 뿐이고요. 독재가 왜 필요했는지 아버지는 아시잖아요. 저는 허울 좋은 민주적 방식을 외치던 공립학교의 교사들과는 너무나 다른 선생님의 방식에 항상 안도를 느끼고 행복을 느낍니다. 선생님께서는 결코 의견을 묻지 않으세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으시고, 저희 스스로 그걸 원하게끔 만들어 주십니다. 선생님이 지시하신 모든 것은 놀랍게도 저희가 원하는 모든 것이 되어 있어요. 저희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요.

  3월 초, 아직 쌀쌀하던 그때 한 선배가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옥상 난간에 위태롭게 서서 모두를 내려다보고 있는 거였어요. 바람결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이 이미 죽은 사람의 그것처럼 여겨져 소름이 끼쳤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고 저희들은 공포에 질렸습니다. 곳곳에서 울음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려왔어요. 제발 내려오라고, 이러지 말라고 아이들은 외쳤습니다. 고작 열여덟 살 먹은 그 선배는 무섭지도 않은지 멍한 표정으로 미동도 없이 서 있었습니다. 난간에 선 그녀가 한쪽 발을 들어 올렸을 때 저는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모든 세상이 제 감은 눈 안으로 까맣게 밀려 들어오는 것 같았어요. 별처럼 까무룩 죽는 느낌이었습니다.

  내려오거라.

  선생님의 목소리였습니다.

  저는 눈을 떴고 모든 세상이 다시 환하게 살아났습니다.

  전교생의 간곡한 외침과 울부짖음에도 내내 꿈쩍도 하지 않던 선배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난간 안쪽으로 물러나 주저앉았습니다. 엉엉 우는 선배가 비로소 열여덟 살 먹은 소녀로 보였습니다. 우르르 옥상으로 몰려갔고 선배는 살아났습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간 선배를 선생님이 구해 낸 것입니다. 단 한 마디 말로 말입니다.

  그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아니, 그건 기적 그 자체였습니다.

  선생님이 그걸 저희에게 보여주셨어요. 그러나 모두가 그걸 기적이라 여겼을지는 의문입니다. 볼 수 있는 사람들만 볼 수 있는 것일지도요. 급우에게 넌지시 물었더니 엉뚱한 소리를 하더군요. 선생님이 말씀하시기 전부터 내려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나요. 믿음이 부족한 아이입니다. 저는 거의 죽어 있던 선배의 모습을 봤고 그녀가 본래의 사람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제 믿음을, 그리고 제가 본 기적을, 사랑하는 부모님께 간략하게나마 전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주님과 부모님의 딸

제나

 

  두 번째 편지를 받은 남자는 제나의 문장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자는 까닭모를 불편함을 느꼈다. 부부가 갖는 공통의 감정은 아이가 잘 적응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안도와 뿌듯함이었지만, 그들은 모두 내심 뭔가 마뜩찮았다. 그 ‘뭔가’에 대한 복잡한 생각을 미뤄 두고 남자는 일갈했다.

  “별처럼 까무룩 죽는 게 대체 뭐야? 이건 좀 바보 같잖아. 글을 길게 쓰는 건 좋은데 이런 식으로까지 가는 건 아니라고 봐. 교장이 젊은 여자라서 그런가. 문장이 지나치게 여성 취향인데.”

  여자는 불편함의 정체를 깨닫고 싶지 않았다. 여자는 1/4분기의 등록금과 기숙사비, 급식비와 생활비를 생각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지불될 비용도 곧장 계산했다. 부부는 대학가에서 학기를 보내는 학생들에게 원룸을 대여하는 임대업으로 돈을 벌었다. 부부의 건물에 있는 원룸은 고작 열 개였다. 트리니티 국제학교의 학비는 소규모 오피스텔 임대업만으로는 충당하기 어려운 액수였다. 결국 남자의 형에게 또 신세를 지고 말았다. 하지만 제나가 스스로 말한 대로, ‘더없이 행복하다’면 그만이었다. 과거 두 달로 끝나버린 해묵은 아메리칸 드림을 만회하려는 듯, 부부는 그곳이 ‘미국 학력 인증기관’이라는 사실에 집착했다.

  남자도, 여자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제나가 기적을 운운하고 있다는 것이 불편했다. 그들은 신에 대해서도, 교회에 대해서도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 적 없었다. 부부의 생각에 트리니티 국제학교는 교회와 연계된 곳이지 교회 자체는 아니었다. 당시 부부는 애써 이런 생각들을 지웠다. 무엇이든 배워 가는 과정이리라고, 부부는 그렇게 결론 내렸다.

  기적을 운운한 편지를 떠올리는 남자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어두웠다.

  “첫 번째 편지를 다시 생각해 봐.”

  남자는 아내에게 말했다.

  “이렇게 된 마당에, 인정할 건 인정하자고. 그게 제나가 쓴 글이 맞을까?”

  “무슨 말이야?”

  “우리는 의심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 하지만 어떻게 두 달 만에 그렇게 변할 수가 있어? 그런 문어체 말투, 제나는 한 번도 쓴 적 없었는데. 아니, 어떤 아이도 그딴 식으로 말할 수는 없어.”

  여자는 편지를 들췄다.

  “제나의 글씨잖아. 이건 제나가 쓴 글씨야. 전부.”

  “그러니까 제나가 쓰긴 썼다만, 그건 제나가 쓴 글이 아니야.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알고 싶지 않아. 그 여자가 옆에서 불러 줬든 판서를 했든 원본을 베껴 쓰게 했든, 어쨌든 제나가 직접 쓴 글들이 아니야.”

  “여보.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다른 아이들도 제 부모들에게 편지를 보냈어. 각자 다른 내용으로. 엄마들이 그랬다고.”

  “언제 엄마들이랑 그런 이야기를 나눈 거야? 어떻게, 어떻게 성추행이니 폭행이니 그딴 단어들이 나올 수 있냐고. 그건 아이 머릿속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야. 전부 잘못된 거야.”

  여자는 한숨을 쉬었다. 남자는 흥분하고 있었다.

  “노트에 쓰인 거 봤어? 죄다 우리가 악마라는 내용뿐이야.”

  여자는 남자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데려오면 되는 거야. 여보. 어떻게든 다시 데려오면 되는 거야.”

  “사랑하는 부모님과 악마의 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란 말을 동시에 쓸 수 있는 거야?”

  “어쨌든 둘 다 제나의 필체였어.”

  여자는 방학 중 간혹 집에 왔던 제나의 모습을 생각했다. 그 편지를 받은 이후부터 여자는 제나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여자는 그 편지에 대한 이야기를 입 밖에 낸 적 없었다. 제나와 여자만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여자는 그것을 받자마자 불태워버렸다. 여자는 남자가 그러는 대로 편지의 최초 발신인을 의심할 수 없었다. 여자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가 부러웠다. 여자는 전부 제나가 직접 쓴 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자는 가장 마지막에 타들어가던 문장을 떠올렸다.

  우리의 대공황 시절이었어요.

 

  왜 그런 행위는 서로 닮아 있을까요. 어머니, 아버지.

  이곳에서 만난 제 친구는 어릴 적에 친오빠에게 추행을 당했는데, 그때 사람의 온기를 느꼈다고 했어요. 이후 사람의 온기를 믿을 수 없게 되었다고. 어떤 사랑의 행위와 끔찍한 추행이 겉으로는 매우 닮아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그런 식의 사랑을 받아 본 적 없어요. 왜,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행위가 그토록 닮아 있는 걸까요. 저는 항상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사촌오빠들도 저에게 그랬어요. 뭘 하는 거냐고 제가 물었을 때, 사랑하는 거라고요. 어른들은 이렇게 사랑을 한다고요. 온몸에 다지류의 벌레가 기어가는 듯 소름이 끼쳤지만 저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아시잖아요. 그건 어머니, 아버지가 그들에게 용인해 준 것이었으니까요. 잊지 않으셨겠지요.

  아버지, 아버지는 망했어요. 처음부터 가망이 없는 사람이었죠. 언젠가 술에 취한 아버지가 부르신 노래가 생각나네요. 하늘에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에 유람선이 떠 있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언제 아버지에게 있었던가요? 아버지는 그저 형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지요. 큰아버지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사람이잖아요. 형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요.

  큰아버지가 주는 돈으로 빚을 갚고 사업을 했기 때문에, 제가 먹고살 수 있었던 걸 알아요. 감사한 분인지도 모르죠. 아니, 감사한 분이겠지요. 은인이겠지요. 우리 가족에게는. 저도 항상 고맙게 생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일만 아니었다면.

  그 시절만 아니었다면. 그러나 어머니, 아버지, 모르시겠지요. 저는 큰아버지보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더욱 원망스러워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해서도 안 되는 일이에요. 저는 고작 아홉 살이었어요. 우리 가족이 큰아버지에게 받은 도움이 아무리 크다 한들, 저를 그런 식으로 내어주시면 안 되는 것이지요. 어머니, 아버지가 큰아버지의 세탁소에서 일을 하는 동안 사촌오빠들이 제게 했던 짓을 생각하면 저는 아직도 몸서리가 쳐집니다.

  처음 미국에서 본 건 아버지 키보다 큰 캔디머신이었어요. 커다란 사탕이 한참을 데굴데굴 굴러 제 손으로 떨어질 때, 그때 가진 설렘과 벅찬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예쁜 것도 많고 신기한 나라라고, 어머니가 말해 주셨지요. 말 그대로였어요. 어디를 가든 차를 타고 한참을 가야 했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동화책에서 보던 바로 그 원색의 자연이었어요. 이런 곳에 왔다는 것이 행복했어요. 큰아버지네와 어머니, 아버지의 퇴근길이 그만큼 길고 제가 갇혀 있는 시간 또한 길어지리라는 걸 저는 몰랐으니까요.

  너네 엄마, 아빠가 이렇게 해도 된다고 했어. 너네 집은 우리 아빠가 준 돈으로 먹고사니까.

  사촌오빠들이 제게 한 말이었어요. 제 뺨을 때리고 저를 자기들 몸 위에 올려놓으면서요. 그래요. 벌써 옛날 옛적의 일입니다.

  이곳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서로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저는 어디에서도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이곳에서 처음으로 털어놓았어요. 선생님께서는 눈물을 흘리며 저를 안아 주셨어요.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러니 더는 힘들어할 필요도 없다고 말해 주셨지요. 어머니, 아버지라면 어땠을까요? 저를 믿어 주셨을까요? 저를 꾸짖으며 별 소릴 다한다고 하셨겠지요.

  아직도 의혹은 풀리지 않았어요. 어떤 방식의 용인이었든 어머니, 아버지가 저에 대한 그들의 추행을 모른 척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촌오빠들은 겨우 중학생들이었는걸요. 미국에서의 두 달은 저에게 가장 끔찍한 시절이었어요. 아버지는 큰아버지의 신임을 얻지 못한 실패의 경험으로 기억하시겠지요. 우리 가족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했을 때 저는 눈물 날 것처럼 기뻤어요. 저는 다니던 학교로 돌아갔지요. 여름 한철의 짧은 여행일 뿐이었어요. 우리 가족의 미국 시절은. 덮어버린다고 없어지지 않아요. 어머니, 아버지가 저를 때리고 만진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라도 아셔야겠지요. 제가 전부 알고 있었다는 걸.

  우리의 대공황 시절이었어요.

 

제나

 

  제나는 이후 부모님의 딸, 이라는 추신을 쓰지 않았다.

  여자는 남자가 눈치 챌까 봐 내내 조마조마했다. 남자는 눈치 채지 못했다. 여자는 제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남자는 그런 사실을 몰랐다.

  “제나는 우리를 고발하지 않을 거야, 여보.”

  여자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네 번째 만남에서 기자는 카메라를 대동하지 않았다. 그는 운동복 차림으로 찾아왔다. 항상 마주앉던 카페에서 그는 목소리를 낮춰 질문했다.

  “두 분, 어쩌시겠어요?”

  “여전히 그 이야기를 하는 거요? 폭행이니 뭐니.”

  남자는 미간을 좁혔다. 남자는 주먹으로 탁자를 쳤다. 여자는 움찔했다.

  “아니, 여보. 그 이야기가 아니야.”

  기자는 부부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어머님께 말씀을 드렸었는데, 전달이 안 되었나 보군요. 아이를 보러 가시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여자의 아파트를 알아냈거든요.”

  남자는 여자를 쏘아보았다.

  “그 중요한 이야기를 왜 안 했어?”

  그런 말을 듣는 여자의 오금이 저렸다. 여자는 침착하게 말했다.

  “하도 가슴이 두근거려서. 미안해, 여보. 제나를 찾으러 가자.”

  남자는 담배를 피운다며 자리를 비웠다. 기자는 여자에게 말했다.

  “제나와 따로 이야기를 했어요. 부모님을 고소하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어쩌면 전부 오해였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덧붙였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자는 슬쩍 창밖을 본 후 말했다. 여자도 창밖을 봤다. 남자는 서성거리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

  “……어머니.”

  “죄송합니다.”

  “이해가 안 되는군요. 저도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지만. 그토록 끔찍하게 아이를 위하시는 분들이 왜 아이의 마음을 모르시나요?”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제나가 무슨 생각 하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오해가 있다면 풀어 줘야죠.”

  카페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기자는 서둘러 말을 중단했다.

  “어디요, 그 여자의 아파트가.”

  남자는 외투를 걸쳤다.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당신, 왜 그러고 있어. 일어나지 않고.”

  “여보.”

  “왜 그래?”

  “혼자 가는 게 좋겠어요. 난 안 갈래.”

  기자가 남자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홀로 집에 돌아온 여자는 제나의 노트를 펼쳤다. 아이 대신 돌아온 물건이었다. 여자는 노트를 한 장씩 차례로 정성들여 찢었다. 악마, 아버지, 악마, 어머니, 거짓, 사로잡혀, 전부, 미워, 선생님, 주님, 제나…….

  여자는 아이가 처음 글자를 배우던 때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먼저, 아이가 말을 배우던 때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제나가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문장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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