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레나

 

로레나

 

김혜나

   




 

1

 

로레나. 그녀는 나에게, 로레나, 라고 말했다. 나는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혓바닥을 잔뜩 말아 “로레에나.”라고 발음해 보고는 객쩍어 웃었다. 로레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용희 삼촌은 그런 내가 우스웠는지 푸핫, 하는 소리를 냈다. 내 옆자리의 은정은 “웬 혀를 그렇게 부담스럽게 굴려, 언니.” 하며 표정을 찡그렸고, 우리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로레나는 그저 가만히 웃었다.

용희 삼촌은 오른쪽 팔을 탁자에 올려 두고 왼손으로만 소주병을 집어 종이컵에 따르며 “비밀 하나 알려줄까?”라고 말했다.

“한국 사람들, 발음 때문에 자꾸만 고민하는데 말이야, ‘아르[r]’와 ‘엘[l]’, 사실 아주 간단히 구별할 수 있어. ‘엘[l]’일 때는 앞에 ‘을’만 갖다 붙이면 되거든. 예를 들어 ‘러브love’를 읽을 적에는 ‘을러브’ 이렇게 발음해야 원어민에 가까운 소리가 나.”

필리핀 좀 살다 왔다고 잘난 체를 하는 말투긴 했지만 나름대로 쓸 만해 보였다. 나는 입 꼬리를 넓게 벌려 “을러브.” 소리를 내보았다. 제법 그럴싸한 발음이 혀끝에서 퍼져 나왔다. 삼촌은 자기 자랑을 성공스럽게 마친 사람마냥 의기양양한 몸짓을 해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로레에나’가 아니라 ‘을로레나’라고 발음하는 거야. 을로레나lorena. ‘레’가 아니라 ‘로’ 앞에서 글라이딩 하는 거라고.”

나는 “을로레나.” 하고 소리 내 보았으나 어쩐지 어색하고 밋밋한 느낌이 났다. 그래서 자꾸만 ‘레’ 앞에서 혀를 굴렸다. 로레나는 꿍얼꿍얼 하는 말투로 은정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했고, 나는 계속 “롤레나, 로울레나, 로올레나.” 하며 시답잖은 발음을 되풀이해 보았다. 그러는 사이, 용희 삼촌은 테이블에 놓인 소주병을 집어 연신 술을 기울였다. 마주앉은 엄마는 그런 삼촌을 마뜩찮은 눈길을 쏘아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며 입을 열었다.

“그만 밥이나 먹자.”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러자 은정이 내 뒤로 따라붙었다. 그 사이에 앉은 로레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끔벅이며 용희 삼촌과 엄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삼촌은 다시금 종이컵에 소주를 채우며 말했다.

“야, 가서 뭐 안주거리나 좀 퍼와 봐라.”

한국어로 내뱉는 것으로 보아 은정에게 내뱉는 말일 터였지만, 시선은 딱히 그 애를 향해 있지도 않았다. 은정이 팔을 뻗어 눈꺼풀만 껌벅거리고 있는 로레나 몸을 잡아끌었다. 엄마는 한숨을 훅 내쉬며 한마디 덧붙였다.

“이런 데까지 와서 꼭 저렇게 술을 마시니 원…….”

오늘은 사촌언니의 아이가 돌을 맞이한 날이었다. 외갓집 식구들뿐만 아니라 사돈들까지 모여 있는 자리니 사람들 시선이 어지간히도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이 자리에, 용희 삼촌은 검은 피부의 필리핀 여자를 데리고 나타났고, 자리에 앉자마자 소주병부터 기울이고 있으니 그를 바라보는 가족들 표정은 자연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중얼댄 혼잣말은 나와 은정에게 또렷이 들렸다. 짜증과 역겨움이 묻어난 표정 또한 로레나의 동그란 눈동자 속에 고스란히 박혀 들어갔다. 이런 자리에 와서 술을 마시는 삼촌이 보기 좋을 것은 없지만, 은정과 로레나 앞에서 짜증을 부리는 엄마 모습도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휘황찬란한 뷔페 음식을 마주한 은정의 고개가 그새 푹 수그러들어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필리핀 새엄마와 아빠에 대한 사람들 시선 때문에 고개를 빳빳이 들지 못하는 아이였다.

올해로 마흔네 살인 용희 삼촌은 나보다 꼭 열여덟 살이 많았다. 그는 엄마의 여섯 형제자매 중 막내로 큰 키에 다부진 몸매 그리고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필리핀 뜨거운 햇빛에 익은 구릿빛 피부 탓인지 얼핏 보면 이국 남자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내 기억 속에서 용희 삼촌은 언제나 군복을 입고 있었다. 삼촌은 항상 군복을 입고 우리 집에 들어섰고 엄마가 차려 준 밥상에서 혼자 점심을 먹었다. 내가 아직 유치원에 들어가기도 전이었을 것이다. 나는 젊은 삼촌이 있다는 것이 무척 좋아서 “삼촌, 삼촌.” 하고 부르며 쫓아다니곤 했다.

조금 더 커서 부모님과 함께 삼촌을 만나러 간 적이 있었다. 아버지 차를 타고 봉천동 골목길을 세 시간이나 헤맨 끝에 찾아낸 후미진 단칸방에는 낯선 여자만 앉아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잔뜩 움츠린 채, 임신 7개월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진 게 없던 삼촌은 결혼식을 올릴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살고 있던 것이었다.

외삼촌이나 이모들 중에 용희 삼촌을 도와줄 만큼 형편이 넉넉한 집은 하나도 없었다. 아무런 희망도 대책도 없이 그저 살아가고 있던 용희 삼촌 부부가 결혼식이라도 올릴 수 있게 물질적 도움을 준 사람은 아버지였다. 삼촌은 그런 매형이 눈물 나게 고맙고 또 존경스러웠던 모양인지, 집안 돌림자를 과감히 버리고 아버지 이름인 ‘동진(東珍)’을 본떠 ‘동준(東俊)’이라고 아들 이름을 지었다. 오 년 뒤에 태어난 딸아이 이름이 ‘은정(恩晶)’이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을 것이다. 내 이름인 ‘예정(藝晶)’의 뒤를 잇는 것처럼 은정의 이름을 지었으니 말이다.

삼촌은 은정을 낳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한국을 떠났다. 필리핀에서 한동안만 유유자적하게 지내다 돌아올 거라면서 말이다. 한데 삼촌이 한국을 떠난 뒤로는 도무지 연락이 되질 않았다. 그렇게 십 년 동안이나 연락 없던 용희 삼촌이, 일 년 전 쥐도 새도 모르게 한국으로 돌아와 있었다. 십 년 세월은 그에게 누구보다 더 혹독했던 모양이었다. 부인도 없이 두 아이와 로레나만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용희 삼촌. 새카맣게 타들어간 얼굴과 풀이 잔뜩 죽은 두 아이의 모습이 지나간 세월을 모두 말해 주는 것만 같았다.

새하얀 플라스틱 접시 세 개를 집어 은정과 로레나에게 하나씩 넘겨주었다. 엄마는 이미 접시를 들고 회초밥과 LA갈비를 내어주는 선반 앞에 가서 줄을 서 있었다. 로레나는 양상추와 셀러리, 옥수수 알갱이 따위가 즐비해 있는 야채 선반 쪽에 가 있었고, 은정은 내 옆에 바짝 붙어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쟁반 위로 김밥과 유부초밥부터 채우기 시작했다. 은정은 갖가지 색깔의 날치 알을 얹은 캘리포니아 롤을 올려다보며 “언니, 이거 맛있어?”라고 물었다. 나는 무심히 먹어 보라고 대답하고는 족발, 홍어회 무침, 육회 같은 것들이 자리한 선반으로 갔다. 그러자 은정은 내 뒤만 쪼르르 쫓아왔다. 다시 자리를 옮겨 육회와 족발 등속을 접시에 담고 냉동 참치와 훈제 연어를 이어 담았다. 은정은 내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언니, 이건 뭐야? 맛있는 거야?” 하고 물었다. 나는 내 음식과 겹치지 않도록 은정이 접시에 과자와 과일, 떡과 케이크 같은 것들을 올려 주고 자리로 돌아갔다. 로레나는 용희 삼촌 옆에 앉아 있었다. 용희 삼촌은 마뜩찮은 눈길로 로레나의 접시를 쏘아보다가, 은정이가 자리에 앉자 접시에 담아온 음식들을 내려다보았다.

“에휴, 어떻게 된 게 한 년은 푸성귀만 담아오고 한 년은 과자 부스러기만 담아오냐. 야, 누구 술안주 될 거 가져온 사람 없어?”

삼촌의 시선이 자연 나에게로 쏠렸다. 김밥과 유부초밥을 제외하면 내 접시는 거의 안주 일색이었다.

“역시 예정이 쟤가 뭘 좀 안다니까. 한잔할래?”

삼촌이 나에게 소주병을 들이밀었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느새 내 옆에 앉은 엄마의 눈총이 따갑게 달라붙고 있어서였다. 그 사이 은정의 고개는 더 깊이 수그러들었다. 나는 내 음식 접시를 용희 삼촌 앞으로 밀어 두고 로레나가 가져온 샐러드 접시를 끌어당겼다.

“다 같이 먹자.”

그제야 은정은 겨우 포크를 들어 양상추부터 먹기 시작했다. 풀죽은 야채의 는적거림이 그 애 입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로레나는 동그란 눈을 끔벅이며 셀러리와 오이를 차례로 입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나는 은정의 접시에 담긴 캘리포니아 롤을 집었다. 은정은 고개를 번연히 들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롤을 입안 가득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보기보다는 맛이 별로였다. 날치 알은 비릿하고, 마요네즈 소스는 느끼했다.

“맛없다.”

내가 인상을 찌푸렸는데도 은정이는 롤을 집어 입에 넣었다. 나는 은정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하나만 먹고, 다시 가서 다른 거 가지고 오자.”

은정은 입에 넣은 롤을 빠르게 우물우물 씹었다. 로레나도 은정이를 따라 롤을 입안에 집어넣었다. 은정과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로레나는 입을 우물거리며 우리를 올려다보았다. 아마도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를 따라오려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로레나와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해 그 시선을 외면한 채 은정이의 손을 붙잡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탕수육과 닭날개 구이, 새우튀김 따위를 접시에 담아 자리로 돌아왔을 때 삼촌은 소주 두 병을 다 비워 가고 있었다. 불덩이를 집어삼킨 듯 얼굴이 불콰해져 있고, 눈에는 붉은 실핏줄이 그물처럼 일어서 있었다. 삼촌은 술잔을 채우고 또 비우며 계속해서 “한잔할래?”라고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고 로레나만 바라보았다. 그녀는 묵묵히 삼촌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걱정과 근심이 잔뜩 서린 얼굴. 그녀 입가에 돋아난 새하얀 버짐들이 파삭파삭 흩날릴 것만 같았다. 소주 두 병을 다 비운 용희 삼촌은 말릴 사이도 없이 세 병째 소주를 땄다. 로레나의 눈자위가 점점 더 깊이 파여 가는 것이 또렷이 보였다.

“삼촌, 그만 좀 마셔.”

목소리를 높이며 삼촌 손에서 소주병을 떼어 놓으려 하자 그는 고개를 바깥쪽으로 돌리며 “아이 씨…….” 하고 짜증을 뱉었다. 그러고는 다시금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그만 가라.”

어느새 엄마가 우리 옆에 와 명령하듯 말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엄마는 장롱 밑에서 기어 나온 벌레를 보듯 삼촌을 쏘아보았다. 나는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은정이도 나를 따라 일어섰고, 삼촌은 가득 채워져 있던 잔의 술을 단숨에 들이켠 뒤 안주도 집어먹지 않고 일어섰다. 삼촌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로레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족들은 식당 출입구에 서서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촌언니 부부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답례품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용희 삼촌은 탁자 위에 오른 답례품 수건을 여러 개 챙겨 옆구리에 끼워 넣으며 로레나에게 턱짓을 했다. 그러자 로레나는 청바지 주머니 속에서 반으로 접힌 흰 봉투를 꺼내어 허리를 잔뜩 수그리며 사촌언니에게 내밀었다. 그러고는 어설픈 한국어 발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고맙, 슴미다.”

사촌언니는 짐짓 놀라는 눈치였다. 하기야, 제 한 입 먹고살기도 버거운 용희 삼촌이 부조금을 낼 줄은 나 역시 꿈에도 몰랐다. 사촌언니는 봉투를 준비한 삼촌에게 미안함을 느꼈던지 쑥스러운 얼굴로 “아니 이런 걸 다…….”라고 말했다. 사촌언니가 조심스럽게 봉투를 받자, 로레나는 우리 모두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검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다. 나는 “바이, 씨 유.”라고, 작게, 아주 작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나에게로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 왼쪽 뺨에 쪽, 소리가 나게 키스를 했다.

 

 

2

 

나는 종종 로레나가 나에게 해주었던 키스에 대해 생각했다. 친구들끼리 인사로 키스를 나누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보았던 일이지만, 실제로 내가 인사의 키스를 받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날, 로레나의 입술이 내 피부에 닿았는지 닿지 않았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오던 “쪽.” 소리만큼은 분명하게 뇌리에 남아 있었다. 이상하고, 모호하고, 낯선 느낌의 소리. 그것은 자꾸 내 안의 한구석으로 흘러들어 빠져나오질 않았다. 갯벌에 서 있을 때,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흙 속으로 스멀스멀 가라앉는 양발과 같았다. 검고, 더럽고, 들어가고 싶지 않은 갯벌. 그러나 발목이 모두 빠져들었을 때 느껴지는 물컹한 질감이…… 좋은 것인지 싫은 것인지 잘 알 수 없었다.

설날이 되어 아침 일찍 일어나 차례를 지내고, 엄마와 함께 큰외삼촌 집으로 갔다. 현관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신발이 출입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외삼촌과 숙모들, 이모와 이모부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또 그들의 아이들까지, 대가족이 32평 아파트 안에서 복작대고 있으니 그곳이 마치 개미들의 소굴처럼 느껴졌다. 나는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 내팽개친 뒤 안으로 쑥 들어갔다. 와, 예정 언니다, 고모 오셨어요, 예정이 왔니, 하는 소리들이 한데 뒤엉켜 들려왔다. 머리를 숙여 대충 인사한 뒤 고개를 들어 올리자, 마루 한 구석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로레나의 까만 얼굴이 보였다. 그녀의 입가에는 여전히 새하얀 버짐들이 피어 있었다. 나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외숙모들이 차려 준 점심밥을 먹은 뒤 거실 소파에 앉아 외삼촌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았다. 차례를 지낸다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데다가 점심까지 배부르게 먹은 탓인지 떠들썩한 설 특집 방송을 보는데도 내리 졸음이 쏟아졌다. 나는 몸을 일으켜 작은방으로 다가갔다. 안에는 다리를 곱게 접고 앉은 로레나와, 그녀 허벅지에 머리를 베고 누운 용희 삼촌이 있었다. 삼촌은 눈을 감고 있었고, 로레나는 검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삼촌의 이마와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내가 안으로 성큼 들어서자, 로레나는 용희 삼촌의 어깨를 툭툭 치며 머리를 들어 올렸다. 삼촌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고 로레나는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나는 한쪽 벽에 등을 기댄 채 바닥에 앉았다. 마주앉은 삼촌은 거푸 하품을 해댔고, 나도 덩달아 하아, 하품을 쏟아냈다.

한쪽 벽에 등을 대고 누워 눈 붙일 자리를 잡으려는데 로레나가 조그만 주머니를 들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나에게 다가와 앉더니 내 다리를 훅 끌어당겼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나는 깜짝 놀랐다.

“페디큐어 해주려는 거야.”

용희 삼촌이 말했다.

“페디?”

내가 되묻는 사이 그녀는 내 발에서 양말을 벗겨냈다. 나는 다리를 오므리며 “아아아, 싫어.”라고 말했다. 용희 삼촌은 내 발을 끌어당기는 로레나에게 “쉬 해이트.”라고 말했다. 로레나의 새까만 얼굴 가득 서운한 기색이 서렸다.

“투명한 색으로라도 하든가. 그럼 이렇게 돼.”

용희 삼촌이 손바닥을 펼쳐 손등을 내밀어 보였다. 손톱 주변이 굳은살 하나 없이 깨끗하게 다듬어진 데다가 손톱 역시 둥글고 예쁘게 깎여 있었다. 그 위로 투명한 네일래커가 덧발려 맑게 빛나는 것이었다.

“우와, 예쁘다.”

나도 모르게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래. 손톱에라도 해.”

나는 알았다고 대답하고 로레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씨익 웃으며 다리 사이에 끼워 둔 주머니를 열어젖혔다. 안에서는 손톱을 다듬는 줄과 푸셔, 쪽가위 그리고 여러 개의 네일래커가 쏟아져 나왔다. 그녀는 먼저 큐티클 오일을 집어 손수건에 조금 따른 뒤 그것으로 내 손톱 안쪽을 닦아 나갔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내 손을 끌어당겨 두 손으로 꾹 움켜잡았다. 그 상태에서 손가락 관절을 부드럽게 꺾으며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조금 아프긴 했지만, 그 손길에 따라 손가락 마디가 점점 물렁해지고 따뜻해졌다. 손끝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따뜻한 기운에 내 몸이 다 녹아나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앉아 내 손을 만져 주는 로레나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참 못생겼다, 라는 생각만 들게 하는 얼굴이었다. 이제까지 보아 온 사람들 중 가장 까맣고, 가장 마르고, 가장 못생긴 여자인 것만 같았다. 그녀가 내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더 깊이 몸을 수그렸다. 그녀의 옷 앞섶이 벌어지며 콩알만 한 가슴이 드러나 보였다. 어쩌면 가슴도 저렇게 작을까. 삼촌은 도대체 이 여자의 무엇에 반한 걸까? ‘용희는 볼수록 특이한 구석이 많은 아이야.’라던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엄마 말은, 용희가 아무래도 자기 핏줄이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외할머니는 엄마가 열 살 되던 무렵에 노름에 빠진 외할아버지와 이혼을 했다. 다른 형제들은 외할아버지를 따라가고, 넷째인 엄마와 둘째 삼촌만 외할머니와 살게 되었다. 그렇게 세 식구가 전라도 군산에 가서 살았는데, 외할머니가 거기서 요릿집을 열었다. 할머니 음식은 모두 다 기가 막히게 맛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게장 맛이 빼어났다.

“서너 달에 한 번씩, 산 게를 직접 대주는 뱃사람이 왔다. 그 사람이 왔다 가면 늬 할머니 몸에서 바닷물 냄새가 어찌나 진동을 하던지……. 그렇게 한 칠 년을 살았다.”

그러니까 칠 년 동안, 서너 달에 한 번은 뱃사람이 찾아왔다는 거였다.

“늬 할머니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는지, 온갖 호사는 그때 다 누려 봤다.”

쌓이는 재산만큼 주변 사람도 늘어나는 법이라 외할머니는 늘 분주했다. 뱃사람의 발길이 뜸해지고, 외할아버지가 자식들을 이끌고 외할머니 집으로 들어왔다. 어째서였을까. 할머니는 여전히 노름판에서 손을 떼지 못한 외할아버지를 밀어내지 않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요릿집을 정리한 뒤 다시 서울에 와 살기 시작했다.

“아버지랑 살림을 합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엄마가 막내를 낳았다.”

진실이란 외할머니 혼자만 품고 있을 테지만, 엄마는 아무래도 용희가 그 뱃사람 아이가 아닐까 싶다고 했다. 생김새가 다른 형제들과 특별히 달라 보이지는 않지만, 타고난 성향만큼은 아무리 봐도 다르다는 것이었다.

나는 로레나가 다듬고 있는 손끝을 바라보았다. 손톱의 뿌리 가죽이 적당히 붇자 로레나가 손톱가위를 들어 그것을 잘라냈다. 큐티클 오일에 불어나 부드러워진 살들이 술렁술렁 잘려 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눈을 감았다. 로레나의 손길이 내 안 깊은 곳으로 번져들었다. 딱딱하게 굳은 손톱의 뿌리 가죽이 잘리고, 손톱 끝 각진 부분들이 다듬어지는 게 다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손톱가위에서는 딱, 딱 소리가 났다. 곧이어 부드러운 감촉의 붓이 손톱 위를 스르륵 훑고 지나갔다. 괜찮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만 있으면 돼. 마음속 깊은 곳에서 로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순간, 손이 공중에 붕 떠오르는 느낌이 났다. 놀랍도록 가벼운 느낌에 나는 그만 눈을 떴다. 로레나는 고개를 수그린 채 내 손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래로 치켜뜬 그녀 눈가에 시커먼 주름이 번져들어 있었다.

나는 로레나의 시선을 쫓아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하얗게 일어나 있던 손톱 사이의 각질들이 어느새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손톱 끝의 각진 모서리도 둥글게 다듬어졌고, 그 위에 발린 투명한 에나멜은 먼 우주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고개를 들어 로레나를 바라보자, 그녀는 잔잔한 들꽃처럼 수줍게 미소 지었다. 나는 손톱 위에 발린 에나멜이 잘 마르도록 손가락을 쭉 펼쳐 놓은 채 벽에 기대어 앉았다. 그러고는 맞은편 벽에 붙어 앉아 졸린 듯 하품을 하는 용희 삼촌에게 물었다.

“삼촌, 로레나는 이걸 언제 다 배운 거야?”

“배우긴 뭘 배워.”

“이런 거 하려면 네일 아티스트 과정 다녀야 되잖아.”

삼촌은 픽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표정에서 ‘배부른 소리 하고 자빠졌네.’라는 말들이 묻어 나오는 듯했다.

“필리핀 여자들한테는 이게 취미가 아니라 일이다, 일. 모녀나 자매들끼리 서로서로 이거 해주는 게 생활이야. 부인이 남편한테도 수시로 해주고……. 우리 옛날 시골에서 베틀 짜고 바느질하는 것처럼 기본으로 다 하는 일인가 봐. 그래서 그 나라 가보면 사람들 손톱이 다 깨끗하고 반질반질해.”

결혼한 사촌언니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 아이와 함께 등장한 그들을 맞이하는 가족들 소리가 방 안쪽까지 들려왔다. 이내 작은방 문이 열리고, 언니들이 인사를 했다. 로레나도 고개를 들어 언니들을 올려다보며 “하이.”라고 인사했다. 언니들은 문턱에 서서 나를 빠끔히 바라보며 “뭐 해? 매니큐어 하는 거야?”라고 물었다. 나는 “응, 언니도 해.” 하고 대답했으나 언니는 “됐어.”라고 말하며 가족들이 몰려 있는 거실로 나갔다. 여중생인 사촌동생 민아만 어느새 들어와 자기도 해달라며 내 옆으로 달려들 뿐이었다. 로레나는 민아와 마주앉아 조금 전 나에게 해준 것과 같이 그 애 손을 닦아 주고 주물러 주고 또 다듬어 나갔다.

이제 갓 돌을 지난 아이들을 보고 즐거워하는 외삼촌들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새치름한 표정으로 온갖 짜증을 다 부리지만 이제 막 할아버지가 된 삼촌은 그마저도 달가운 모양이었다. 까르르 웃어젖히는 웃음소리와 텔레비전 소리가 뒤엉켜 집 안은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럼에도 로레나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네일래커만 바르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과 어깨가 드넓은 바다의 표면처럼 잔잔히 움직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자니, 내 몸이 넓은 바다 위에 두둥실 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 사이 사촌언니들이 불쑥, 맨발 차림으로 다가와 있었다.

“언니들도 할 거야?”

언니들은 설레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가만 보니까 이게 장난이 아닌 것 같아서.”

큰언니가 대답하자, 옆에 앉은 둘째 언니도 연이어 말했다.

“응. 이건 정말 전문가 수준이잖아. 언제 이런 걸 다 배웠대?”

그러자 삼촌은 또다시 귀찮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야, 필리핀 여자들은 이걸 원래 다 할 줄 안다니까.”

삼촌 목소리에 짜증이 역력히 묻어 나왔다. 나는 서둘러 말했다.

“거기선 이게 그냥 집안일이래. 어릴 때부터 서로서로 해주고 그러면서 배운 거라 다 전문가 뺨 친다 그러네.”

“그렇구나. 어쩐지 미국 가면 네일숍은 필리핀 애들이 꽉 잡고 있더라.”

나는 큰언니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언니는 내가 있던 자리에 등을 대고 앉았다. 그러고는 로레나가 끌어당기기도 전에 그녀 허벅지 위에 발을 턱하니 얹어 놓았다.

“발톱 하려고?”

큰언니는 만사가 귀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난 숍에서도 페디밖에 안 해. 손톱은 잘 마르지도 않고 신경 쓰여서 못하겠더라. 케어 받은 지도 오래됐는데 잘 됐다, 오늘.”

로레나 허벅지 위에 발을 올려놓은 큰언니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정말로 돈을 지불하고 숍에 앉아 있는 고객 같았다. 로레나가 큰언니의 발톱 주변을 다듬기 시작했다. 거실에서 한참 시끄럽게 울리던 텔레비전 소리가 조금 잦아들더니, 이모와 이모부, 사촌오빠가 연이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모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로레나와 사촌언니들 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게 다 뭐 하는 거냐?”

“매니큐어 발라요.”

사촌언니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이모부가 로레나를 바라보며 “나도 이거 해주는 거냐?”라고 물었다. 큰언니가, 다들 대기하고 있으니 조금 기다리시라고 말했다. 네 명이나 대기자가 생기자 가족들은 갑자기 너도 나도 기다리겠노라며 양말을 벗고 방 안으로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나는 사람들의 발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촌오빠 방 침대에 가 누웠다. 그러고는 네일래커가 잘 마르도록 손등을 펼쳐 얼굴 가까이에 대고 입김을 후후 불었다. 네일래커 특유의 알싸한 냄새가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손톱 위에 발린 투명한 에나멜이 누군가 떨어뜨린 눈물처럼 둥글어 보였다.

깜박 졸다 깨어 다시 작은방으로 건너갔다. 방 안은 로레나와 삼촌들, 외숙모들까지 뒤섞여 여전히 복작거렸다. 로레나는 큰외숙모 발톱을 손질하는 중이었다. 허벅지 위에 큰외숙모의 발을 올려 둔 채 작업을 하느라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고개를 푹 수그린 구부정한 자세였다. 그 앞에서, 가족들은 새하얀 각질과 시커먼 때가 잔뜩 낀 맨발을 내놓은 채 으하하 웃고 떠들고…… 용희 삼촌은 어디로 갔는지 아예 보이질 않았다.

“아이고, 작작들 좀 하지. 저러다 애 병나겠다.”

어느새 엄마가 내 옆에 다가와 중얼거렸다. 큰외숙모는 순간 기분이 상했는지 양미간을 크게 찡그리며 엄마를 노려봤다.

“얘, 이거 내가 해달라고 한 거 아니야. 얘가 좋아서 해준다고 한 거지.”

옆에 앉은 언니들과 이모, 이모부, 큰외삼촌도 쌍수를 들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래, 자기가 좋아서 해준다고 하는 건데 왜 네가 난리야?”

“그러는 고모도 아까 다 하셨잖아요.”

로레나는 한 사람의 손톱이나 발톱을 다듬어 주고 나면 옆에 앉은 사람에게도 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면 너도 나도 하겠다고 나섰고, 로레나는 모두에게 “예스.”라고 대답했다. 하나 지금껏 똑같은 자세로 앉아 손톱, 발톱을 다듬어 준 지가 어림잡아도 세 시간은 된 듯했다. 잔뜩 구부린 어깨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눈에 또렷이 보였다. 나는 방 밖으로 나와 용희 삼촌을 찾았다. 그는 안방에서 다른 남자 형제들과 화투를 치고 있었다.

“용희 삼촌, 좀 나와 봐.”

“아, 왜. 그냥 말해.”

삼촌은 화투 패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삼촌. 로레나, 저러다 병나겠어. 벌써 세 시간도 넘게 매니큐어 해주었는데, 아직도 하겠다는 사람이 더 있단 말이야. 가서 그만 하라고 좀 말려, 응?”

나는 씩씩대며 말했다. 삼촌의 왼쪽 눈썹이 조금 씰룩였지만,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진 않았다.

“알았어. 이것만 치고 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용희 삼촌은 여전히 화투 패에만 두 눈을 박아 둔 채였다.

“지금, 지금 가서 말해야 된단 말이야 삼촌, 응?”

용희 삼촌 팔뚝을 붙잡고 흔들며 부추겼지만 그는 여전히 화투 패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러다 패가 잘 풀리지 않은 모양인지 버럭 화를 내며 성질을 부렸다.

“야! 알았으니까 나가라고!”

용희 삼촌의 고함에 놀라 나는 그만 내빼듯이 안방에서 나왔다. 그러고 작은방으로 가보니 큰외숙모 손톱 손질이 거의 다 끝나 가는 참이었다. 나는 얼른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로레나의 매니큐어와 손톱가위 등을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이제 그만 해. 그만 하란 말이야.”

“얘, 여기 큰삼촌까지는 해야 해. 여적 기다렸단 말이야.”

“안 돼, 그만 해. 그만 해야 돼. 이게 몇 시간째야. 이게 뭐야 정말. 이게 대체 뭐냐고.”

나는 계속 안 된다고 말하며 로레나의 물건을 챙겼지만, 그런 내 손길을 말린 것은 로레나였다.

“쟤도 뭔가 해주고 싶은 게 있어서 저러는 거겠지.”

이모가 그것 보란 듯이 말했다. 그 말에 큰외숙모가 맞장구를 쳤다.

“오죽 능력이 없으면 저거라도 한다고 지랄을 떨까……. 쯧쯧.”

큰외숙모는 그렇게 말하며 기어이 큰외삼촌을 자리에 앉혔다. 나는 큰외삼촌을 향해 말했다.

“큰삼촌, 삼촌이 직접 로레나한테 안 한다고 말해. 빨리.”

그러자 큰외삼촌은 떡하니 로레나 앞에 앉아 발을 툭 내밀었다.

“아 왜, 용희 한 거 보니까 예쁘더만 나는 왜 하면 안 되냐?”

“지금 너무 많은 사람들 해줬잖아. 그러니까 그만 하라는 거지 누가 큰외삼촌이라서 그래?”

“싫어, 할 거야. 용희 한 거 보니까 예쁘더만, 왜.”

큰외삼촌은 계속해서 똑같은 소리만 해댔다. 이내 로레나는 큰외삼촌의 한쪽 발을 허벅지에 올려 두고 그 사이에 낀 때부터 닦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뒤돌아 다시 안방으로 달려갔다. 마음이 너무 다급해 서둘러 안방 문을 열고 “삼촌!” 하고 소리치자 용희 삼촌은 “에이 씨발 진짜!”라고 소리치며 화투 패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중이었다. 둘째 삼촌이 그를 보며, “이 새끼가 어디서 패를 던지고 지랄이여 지랄이!”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용희 삼촌은 굴하지 않고 화투판을 아예 다 뒤집어엎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화투 패와 담요를 발로 퍽퍽 깔아뭉갰다. 그러고는 다시 담요를 집어 들어 “왜! 뭐, 어쩌라고 씨발!” 하며 벽에다 집어던졌다. 둘째 삼촌과 사촌오빠들은 그런 용희 삼촌을 피해 서둘러 방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 씨발 이게 다 네놈들이 패를 거지같이 줘서 그런 거잖아! 이 좆같은, 이, 이!”

삼촌은 괴물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나를 휙 쳐다보더니 “너는 또 뭐야 이 씨발, 저리 안 꺼져?”라며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나 또한 안절부절못하며 발만 동동 구르자 용희 삼촌은 또다시 “나오라고 이 씨발년아.” 하고 소리치며 나를 강하게 밀쳤다. 나는 중심을 잃어 뒤로 나자빠지고, 용희 삼촌은 밖으로 나가 작은방 쪽으로 쿵쿵 걸어갔다. 재빨리 몸을 일으켜 용희 삼촌을 쫓아 나갔다. 용희 삼촌은 손톱 손질을 받고 있던 큰외삼촌 등을 휙 떠밀고는 로레나의 옆구리를 발로 퍽 찼다.

“이 씨발, 그만 하라면 좀 그만 해야 될 거 아니야 이 좆같은 년아!”

그러면서 바닥에 부려 놓았던 매니큐어 도구를 발로 짓이겼다가 다시 집어 들어 베란다 밖으로 던졌다. 로레나는 그대로 등을 구부려 바닥에 엎드린 채 혹시나 또 맞을까 하는 몸짓으로 등을 둥글게 말았다.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큰외삼촌은 “이이이, 이노무 새끼가…….” 하는 말을 내뱉기는 했으나 아주 얕은 목소리일 뿐이었다. 사촌언니들만 “아우, 이놈의 집구석 진짜.”라고 신경질을 내며 방 밖으로 나갔고, 큰외삼촌과 외숙모들도 그제야 “아 그러게 그만 좀 하라니까 왜…….” 하며 꼬리를 내렸다. 성질이 잔뜩 난 용희 삼촌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피니쉬 허. 오케이?”

씩씩거리던 용희 삼촌은 엎드려 있는 로레나에게 명령하듯 소리쳤다. 그러자 로레나는 수그리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려 용희 삼촌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마냥 볼품없이 쪼그라들어 있었다. 그녀는 용희 삼촌에게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수그리며 “오케이, 예스, 예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용희 삼촌은 “아유, 씨발 진짜.” 하고 소리치더니 뒤돌아 문을 쾅 차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 숨이 가득 차올라 있었다. 헉, 헉, 하는 거친 숨을 내뱉고 나서야 나는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로레나 또한 겨우 고개를 들어 어질러진 방 안을 휘휘 둘러보았다. 큐티클 용액과 네일래커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 쏟아져 버린 방 안은 그야말로 난장이었다. 엄마와 숙모들도 다들 넋을 빼고 있을 뿐 누구 하나 손을 대지 못했다.

로레나에게 다가가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나는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뒤돌아섰다. 그러고는 현관으로 나가 신발을 꿰어 신고 용희 삼촌의 뒤를 쫓아갔다. 삼촌은 승강기도 타지 않고 계단으로 뛰어 내려간 모양이었다. 서둘러 승강기를 잡아타고 아파트 현관에서부터 주차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용희 삼촌의 모습을 찾았다. 그는 놀이터 모래판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나도 그 옆에 나란히 앉아 담배를 달라고 말했다. 삼촌은 바지 주머니에 넣어 둔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내 입에 물리고 불을 붙여 주었다.

“정말 징글징글하다.”

삼촌이 라이터와 담배를 챙겨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그러게. 적당히들 좀 하지……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해. 내가 진짜 미안하다, 삼촌.”

“네가 왜.”

“나 하는 거 보고 민아가 한다고 나서고, 그거 보고 또 큰언니랑 둘째 언니도 한다고 나서고……. 그러다가 삼촌들, 오빠들까지 하게 된 거잖아.”

“야. 됐어. 여자들이야 처음부터 로레나가 해주고 싶다고 했던 건데 뭘. 다만 큰형이랑 매형까지 한다고 나서는데 내가 진짜 학을 뗐다, 뗐어.”

“다음부터는 케어 도구 절대 가지고 오지 말라고 해. 없어야 안 하지…….”

“이미 다 아작 났잖아.”

“미안해서 어떡하지…….”

“됐어. 그거 다 필리핀에서 사온 거라 비싸지도 않아. 거긴 워낙 싸고 많아서 뭐.”

“그래도 미안해 죽겠어.”

“됐다니깐.”

우리는 마주앉아 담배를 한 개비씩 더 태우기로 했다. 나풀나풀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에 코끝이 찡하게 달아올랐다. 나는 헛기침을 두어 번 내뱉은 뒤 용희 삼촌을 불렀다.

“막내 삼촌.”

“응?”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나도 잘 알지 못했다.

“괜찮을까?”

내가 묻자, 삼촌은 오래도록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리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알 듯 모를 듯 희미하게 대답했다.

“괜찮…… 겠지.”

나는 도대체, 무엇을 물어보고 싶었을까.

“잘, 살고 있을까?”

용희 삼촌은 아무런 말 없이 담배만 깊이 빨아들이고 또 내뱉었다. 담배를 알뜰히 다 태우고 나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잘, 살겠지.”

나는 그것이,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고, 어떻게 사는 게 정말로 잘사는 것이냐고, 묻고 싶었다. 하나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담배 연기만 버끔버끔 피워올렸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만 가라. 나는 여기 슈퍼에서 소주나 좀 마시고 들어가든가 해야겠다.”

용희 삼촌의 말에 따라 나는 그만 담배를 입에서 떼었다. 삼촌은 이미 불씨를 빼둔 채였다. 삼촌의 담배꽁초 안에서 툭 떨어져 나온 불씨가 모래 위에서 홀로 연기를 피워올렸다. 그 안에는 희미한 붉은빛이 여전히 꺼지지 않고 살아 있었다.

 

 

3

 

로레나가 보이질 않아 작은방 문을 열어 보았다. 불이 꺼진 방 안에는 로레나 혼자만 몸을 쪼그리고 누워 있었다. 어느새 저물 무렵이 되었는지 은은한 노을빛이 새어 들어와 방 안을 물들여 놓았다. 누가 정리했는지 모르지만, 군데군데 날아가 있던 네일 케어 도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방 안 곳곳으로 튀어나간 오일과 에나멜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흩뿌려져 있는 듯 보였다.

로레나는 팔과 다리를 잔뜩 구부린 채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누워 있었다. 그녀의 몸은 꼭 새우등 같으면서도, 아주 작고 여린 태아의 모습 같았다. 석양이 가장 붉게 빛날 때, 그녀의 눈에서 한 가닥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그 눈물은 바닥에 떨어져 내렸고, 석양과 어울려 보석처럼 빛났다. 나는 그 옆에 그녀와 같은 자세로 누워 로레나, 로레나, 라고 말했다.

 

《문장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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