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모기

 

김재영

 



  

  

 

1

 

세린은 기어코 도쿄로 떠났다. 지난봄이었다. 원전 사고가 나서 뒤숭숭한 나라로 하나밖에 없는 조카를 떠나보내기가 싫어 나는 끝까지 만류했다. 하지만 아이는 막무가내였다. 하필 이때, 세린이 어렵게 일본 대학에 합격해 마냥 기뻐야 할 때 거대한 쓰나미가 일본을 덮치다니. 생각할수록 기막히고 억울한 일이었다.

쓰나미가 덮쳤을 때, 세린과 나는 백화점에서 옷을 고르고 있었다. 입학을 앞둔 세린은 들떠 있었고, 그런 세린을 지켜보는 나는 봄 햇살처럼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라디오를 켜니 일본의 동북연안이 거대한 쓰나미에 휩싸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 방송매체마다 미나미산리쿠초를 비롯한 해안가 마을들이 삽시간에 무너지고 물에 잠기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내보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지만,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원전이 파괴되어 핵물질이 누출되고 있다는 끔찍한 소식이 뒤를 이었다. 후쿠시마 원자로 냉각 시스템 고장, 격납용기 파손, 수소 폭발, 노심용해, 방사성 세슘 오염, 플루토늄 방출…….

세린과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일본에 체류하던 외국인들이 특별기를 타고 출국한다는 소식이 연일 들려왔다. 그런 판인데 오히려 일본으로 들어가야 한다니 기막힐 노릇이었다. 출국을 하루 앞두고 저녁을 함께 먹는 자리에서 나는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을 말했다. 유학을 포기하자는 내 말에 세린은 펄쩍 뛰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어, 얼마나 힘들게 준비해 왔는데 포기해, 라며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나는 울음을 참으려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간곡하게 말했다.

“도쿄 시내는 이미 물과 공기가 오염되어 난리야. 그런 곳에 내 유일한 혈육인 널 보낼 순 없어. 그러지 말고 자, 우리 미래를 생각하자.”

그러자 세린이 갑자기 정색을 하며 대꾸했다.

“지금껏 미래만 보며 달려왔는데, 또 미래라고? 난 현재를 살고 싶어.”

순간 정전으로 캄캄해진 일본의 야경이 생각났다. 수많은 불빛들이 미친 듯이 명멸하던 밤 풍경은 순식간에 암흑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흥분을 가라앉힌 뒤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의 행복 따위가 문제야? 너하고 네가 앞으로 낳게 될 아기의 건강이 문제지.”

세린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아기를 낳는다고? 그런 경험은 한 번으로 족해. 내 아기를 버린 이모가 어떻게 이제 와서…… 우습지 않아?”

무섭도록 파란 빛을 내며 쏘아보는 눈길 앞에서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잊고 있었던 죄의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고개를 숙인 채 나는 식어버린 밥을 떠서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결국 세린은 사월 중순, 벚꽃이 한창인 때 홀리듯이 짐을 싸 도쿄로 날아갔다. 먼 길을 떠나는 세린을 나는 집 앞 정류장까지도 배웅하지 않았다. 세린은 현관에서 마지막 눈인사를 하고 말없이 돌아섰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곧 문이 닫혔고, 아이는 거짓말처럼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제야 나는 새끼 잃은 어미소처럼 허둥대며 베란다로 뛰어가 창문 너머로 멀어져 가는, 점점 더 작아져 가는 세린을 흐린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날은 종일 비가 내렸다. 젖은 꽃잎이 길 위로 하얗게 떨어져 내렸다. 평소라면 너무 고와서 걷고 싶었을 꽃길이, 그날은 하얀 벌레로 얼룩진 것처럼 보였다. 방사성 요오드와 세슘이 녹아 있는 비……. 방송에서는 인체에 별 영향이 없으니 안심하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비 한 방울이라도 맞을세라 넓은 우산을 펼쳐 들었다. 빗물에서 독초 삶는 냄새가 났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어떤 사람은 쇳내가, 어떤 사람은 피비린내가 난다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화학공단에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가 난다며 속상해했다. 하지만 정말로 안타까운 사실은 방사능 성분이 눈에 보이거나 냄새로 맡아지는 게 아니라는 거였다. 냄새가 난다고 호들갑 떠는 건 오히려 순진한 착각이었다.

늦은 밤까지 잠 못 이루다가 세린이 상처 입은 짐승처럼 힘들어하며 나를 찾아왔던 어느 오후를 생각했다. 그때로부터 어느 새 삼 년이 지났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세린 덕분에 하루하루를 사는 것같이 살았다. 하지만 이제 다시 덧없이 해가 떴다가 쓸쓸히 저무는 나날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그 아이가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가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봐야 하는, 혹은 언제 여진 피해를 입을지 몰라 불안에 떨어야 하는 나날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다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걸까. 도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2

 

열여섯이 된 세린이 만취해서 나를 찾아왔을 때, 현관 앞에서 굽 높은 구두를 벗다가 균형을 잃고 말았을 때, 그 애의 길고도 빨간 머리카락이 현관 입구에 왈칵 쏟아져 내렸을 때, 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위태로운 열여섯의 나이테에 걸려 넘어진, 작고 여린 몸이 풀어 놓은, 반항기로 빨갛게 물든 머리카락들은 거실 바닥 위에서 거칠게 꿈틀대고 있었다. 사악한 뱀처럼 독기를 품은 머리카락을 가만히 쓰다듬으며 한동안 나는 먹먹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술내가 진동하는 실내로 저물녘 햇빛이 카프리 맥주처럼 노랗게 비껴들었다. 황후의 머리에 향유를 듬뿍 발라 손질하는 시녀가 된 양 나는 정성을 다해 세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한참을 매만지자 거칠게 꿈틀대던 조카의 증오와 절망이 차차 누그러지면서 촉촉하고 부드럽게 되살아났다.

그 순간 내가 열여섯 되던 해 가을, 초라한 양철지붕 밑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보게 된 한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감독이나 배우가 누군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제목조차 희미했다. 〈작아지는 사람〉이었던가. 분명한 건 한없이 작아지는 사내가 등장하는 영화라는 거였다.

그 영화를 처음 본 건 ‘주말의 명화’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였다. 그 무렵 ‘주말의 명화’를 시청하는 건 내 인생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우리 집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보이는 국립극장에선 공연이 줄을 잇고 시내 극장가마다 영화 포스터가 현란하게 나붙어 있었지만, 한 번도 그런 곳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극장에 드나들기엔 우리 집 형편이 너무 어려웠다. 내게는 주말 저녁에 세계의 명화를 보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 재미마저 없었다면, 사춘기 내내 감기처럼 찾아오곤 하던 자살 충동에서 헤어나지 못했을지 모른다. 어쩌면 지금과는 아주 다른 삶을 살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여동생 혜순도 마찬가지였다. 나보다 한 살 어린 혜순과 나는 늘 아옹다옹 다투곤 했는데, 주말의 영화를 볼 때만큼은 뜻이 잘 맞는 다정한 자매였다. 우리는 좋아하는 영화가 거의 비슷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든지 〈해바라기〉 같은 영화를 보면서 우리들의 유방은 부풀었고 엉덩이는 벌어졌다. 남대문시장에서 밤늦도록 녹두빈대떡을 팔다 돌아온 어머니가 코를 골며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살며시 일어나 텔레비전을 켜는 건 언제나 혜순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두려워 차마 그러지 못했다. “아직도 안 자고 뭣들 해. 돈이 남아 도냐?” 어머니는 코를 골다 말고 갑자기 일어나 버럭 소리를 지르곤 했다. 재빨리 텔레비전을 끄는 것도 혜순이었다. 맏이라는 이유로 잘못이 있을 때마다 야단을 맞던 나는 적어도 그 일만은 동생에게 미루고 싶었다. 어머니는 하필 주인공들이 열정적으로 키스하거나 포옹하는 장면에서 깨곤 했다. “계집애들이 하라는 공부는 않고……. 전기세 많이 나오니까, 당장 꺼!” 어머니는 혀를 찼다. 그럴 때면 나는 어둠 속에서 빨갛게 달아오른 뺨을 손바닥으로 식히며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브래지어로 꼭꼭 싸매는데도 멋대로 부풀어 삐져나오는 유방이 부끄러워 등을 굽히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어머니의 감시와 지청구에도 굴하지 않고 영화를 본 다음날이면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잠을 잤다. 휴일 대목을 놓치지 않으려고 새벽부터 시장으로 간 어머니에게 우리는 도시락을 싸서 가져가야 했다. 전날 밤에 어머니가 한 번도 깨지 않아 기분 좋게 영화를 본 경우엔 오이와 달걀, 어묵, 당근 등속을 넣은 김밥을 보기 좋게 담아 내가곤 했다. 하지만 자다 말고 몇 번씩 깨어 우리를 방해한 다음날이면 맨밥에 묵은 김치, 그리고 무장아찌만 달랑 들고 갔다.

“뭐 하느라 이제 오냐, 이년들아. 해가 똥구녕을 치받도록 자다 왔냐?” 아버지와 사별한 뒤 혼자 살림을 꾸리던 어머니는 점점 더 시장 사람들을 닮아 갔다. 대위로 제대한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투병 끝에 생을 마친 뒤에도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로부터 대위댁 사모님이라 불렸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자 내 이름을 붙인 혜영 어머니라 불렸고, 심지어 시장에서는 빈대떡 아줌마로 통했다. 어머니는 그런 호칭에 점차 익숙해졌다. 게다가 행색마저 허술해졌고 말투와 몸짓도 거칠어졌다. 살아남기 위해 삶의 마지막 선을 넘어버리면서, 그나마 간직하고 있던 젊음과 고운 태마저 내던져버린 것 같았다.

나는 변해 가는 어머니를 상대하기가 싫어 도시락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어머니는 “독한 년!”이라며 노여워했다. 내가 늘 혜순을 데리고 시장에 간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혜순은 야단을 맞아도 그다지 심하게 반발하지 않았다. 천성이 낙천적이어서 그런지 어머니가 하는 욕 따위는 잊고 금방 콧노래를 부르거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시장을 훑어보곤 했다. 무뚝뚝한 어머니 앞에서 쓸데없는 말을 재잘거리기도 하고 코미디언 흉내를 내기도 했다. 그런 혜순을 어머니는 은근히 귀애했다. 나는 때때로 서운했지만 지금 와 생각하면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동생마저 나처럼 차가웠다면 그 시절의 어머니는 무슨 낙으로 살았을까.

그런데 〈작아지는 사람〉이 나오는 영화를 본 다음날엔 달랐다. 혜순은 시장으로 가면서 내내 심각한 얼굴을 하고 땅만 보며 걸었다. 어머니 앞에서도 조용히 있다가 건성으로 몇 마디 건넨 게 다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던 시장 구경도 마다하고 일찍 집으로 향한 것도 여느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혜순이 물었다. “어제 본 영화 말이야, 좀 이상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영화임에 틀림없었다. 그때까지 우리가 보았던, 〈애수〉나 〈로마의 휴일〉, 〈에덴의 동쪽〉이나 〈칠인의 신부들〉과 달랐다. 하다못해 〈황야의 무법자〉나 〈오케이목장의 결투〉와도 크게 달랐다. 사람이 자꾸만 작아지는 괴상한 이야기라니!

처음에 우린 주인공 남녀가 보트 위에서 키스하는 장면을 보면서 멜로 영화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여행지에서 돌아온 사내의 키가 갑자기 줄어드는 데서부터 헷갈리기 시작해 마침내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사내가 계속 줄어들어, 고양이와 거미의 공격을 받을 때는 심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공포물인가? 마침내 사내가 자벌레처럼 작아지자 차라리 울고 싶어졌다. 비극인가? 하지만 사내는 작아지기만 했을 뿐 죽지는 않았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내가 “나는 무엇인가. 여전히 인간인가?”라고 묻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는 몸이 작을 뿐 여전히 인간이었다. 인간의 지능으로 매 순간 닥쳐오는 위험을 극복했다. 먹을 것을 구하고, 적을 물리치느라 몹시 지친 그는 마침내 방충망 구멍을 통해 건물 밖으로 나왔다. 모기만큼 작아진 그가 광대한 하늘 아래 홀로 섰다. 멀고 먼 우주로부터 내려오는 푸른 달빛이 그의 몸을 비추었다. 작고 작은 그의 눈에 비친 달이나 내가 평소에 바라보는 달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지친 육체를 달빛 아래 세워 둔 채로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사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마지막 대사를 혜순은 듣고 나는 듣지 못했다. 때마침 어머니가 코를 골다 말고 벌떡 일어나 소리쳤기 때문이었다. “지금이 몇 시냐? 엉? 니들이 미쳤냐?” 새벽 두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이불을 덮어썼다. 하지만 혜순은 마지막 장면을 봐야겠다는 일념으로 볼륨을 줄인 채 끝까지 버텼다. 결국 어머니의 매운 손바닥이 등짝을 내리치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도 혜순은 얼마쯤 더 버티다가 영화가 끝나 엔딩 음악이 나온 뒤에야 텔레비전을 껐고, 방 안은 비로소 조용해졌다.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걸까, 그 영화는?” 시장 입구에 다다랐을 때 혜순이 다시 물으며 내 눈을 깊이 쏘아보았다. 동생의 눈망울이 그토록 크고, 까맣고, 맑은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 “언니는 공부 잘하잖아. 머리도 좋고. 난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혜순이 그토록 집요하게 하나의 생각에 사로잡힌 걸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글쎄다, 그러니까… 힘을 키워야 한다는 거겠지 뭐, 그 사내처럼 작아져서 힘든 삶을 살지 말고 큰 인물이 되어 당당하게 살라는 뭐, 그런 교훈?” 나는 짐짓 영화를 다 이해한 양 말했다. 혜순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시원스런 끄덕임은 아니었다. 몇 발자국 가다 말고 다시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마침 김칫거리를 사다 절여 놓으라는 어머니의 말이 생각나 채소가게에 들러 얼갈이배추와 쪽파를 골랐다. 혜순은 계속 걸어갔다. 무거운 김칫거리를 두고 혼자 가면 어쩌냐고 큰 소리로 불러대는데도 듣지 못하고 걸어갔다. 노란 해바라기 무늬가 프린트된 낡은 치마 자락을 팔락이며 앞만 보고 나아갔다. 한낮의 햇볕이 뜨겁게 내려쬐고 있었다. 그 햇볕이 혜순을 녹여 수증기처럼 사라지게 할 것 같았다. 비쩍 마르고 키가 또래보다 작은 동생이 가여웠다. 나는 속으로 스칼렛 오하라가 그랬듯이 주먹을 꼭 쥐고 다짐했다. ‘절대로 우린 비루하게 살지 않을 거야. 모기처럼 앵앵거리며 살 순 없어!’

 

 

3

 

나는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어머니 대신 살림하랴, 시장에 나가 일 도우랴, 늘 시간이 부족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좋은 여건에서 공부만 하는 친구들에게 뒤처졌다. 결국 장학생으로 명문대학에 입학하겠다던 내 포부는 실현되지 않았다.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대신 나를 아끼던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꽤 유망한 중소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다. 나는 상사들로부터 야무지다는 칭찬을 들었고 점차 실력을 인정받아 학력에 비해 높은 임금을 받게 되었다. 공부에 관심이 없던 혜순은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런데 그 애는 뭘 하든 악착같은 데가 없었다. 변변한 자격증도 없이 졸업한 뒤 개인 사무실에 들어가 보조업무를 봤는데, 그나마 꾸준히 다닐 수도 없었다. 갑자기 생겼다가 금방 사라져버리는 불안정한 직장이 대부분이었고 월급 떼이는 게 다반사였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혜순은 차라리 장사를 배우겠다며 남대문 의류상가를 찾아갔다.

우리 세 식구는 각자 열심히 벌었고, 점차 살림이 나아질 거라 믿었다. 때때로 통장에 쌓여 가는 현금을 보면 곧 부자가 될 것 같기도 했다. 하나 우리 집은 커지기는커녕 점점 작아져만 갔다. 우리가 모은 돈은 냉장고가 되거나 세탁기가 되거나 싱크대가 되었다. 살림이 늘어갈수록 단칸방은 점점 더 옹색해졌다. 그렇다고 남들 다 있는 거 우리만 없이 살 순 없었다. 게다가 전셋값은 해마다 폭등했다. 나는 어떻게든 집부터 장만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온 가족의 수입을 모아 알뜰하게 관리했다. 그런데 하필 혜순이 사고를 쳤다.

“나… 아무래도 결혼해야 할 것 같아.”

해바라기꽃무늬 치마를 흔들며 눈앞에서 멀어져 간 동생은 결국 나를 앞질러 혼인했다. 앞질러 간 이유가 먼저 시집가기 위해서였다는 듯이. 인조 구슬이 소박하게 장식된 웨딩드레스를 입은 혜순은 수많은 신부들이 걸었을 낡은 양탄자 위를 조심조심 걸었다. 이미 새 생명이 자라기 시작한 아랫배를 숨기려 애쓰면서. 혜순보다 내가 더 부끄러웠다. 게다가 한껏 차려입고 왔지만 여전히 초라하고 볼품없는 행색의 신랑 측 하객이 눈에 거슬렸다. 나는 어서 예식이 끝나길 바라면서 속으로 다짐했다. ‘난 이렇게 초라한 결혼식은 치르지 않겠어, 절대로!’

그날 나는 아주 오랜만에, 열여섯 이후 처음으로 〈작아지는 사람〉이 나오던 영화를 생각했다. 내가 보기에 혜순의 신랑은 분명 신혼여행지에서 돌아오자마자 더 작아질 게 분명했다. 그는 손바닥만 한 옷가게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줄줄이 동생들과 병든 노모까지 딸린 사람이었다. 그나마 벌어 놓은 돈을 혼인 비용으로 썼으니, 머잖아 다시 바닥으로 내려앉을게 뻔한 사내…….

혜순은 이듬해 딸을 낳았다. 순산이었다. 아이는 나무랄 데 없이 건강하고 예뻤다. 퇴근길이면 조카를 보려고 혜순네 단칸방부터 들렀다. 거기서 한참 아기와 놀다가 밤늦게야 집으로 돌아왔다. 아기 이름은 세린이라 지었다. 내가 꼭 가지고 싶었던 이름이었다. “언니도 시집 가. 생각보다 좋아. 신랑도 잘해 주고.” 혜순은 얼굴을 붉혔다. 동생이 부끄러워하는 건 난생처음 보았다. 나는 혜순네 부부가 잘 지내는 걸 다행으로 여기면서도 여전히 그들 삶에 대해 불안한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어느새 내 나이는 서른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어머니는 어서 시집을 가야 한다며 주말마다 나를 들볶았다. 성화에 못 이겨 가끔 선을 보긴 했지만 매번 실패였다. 내가 괜찮다 싶으면 저쪽이 피했고 저쪽이 좋다고 몰아붙일 땐 내가 싫었다. 나는 늘 회사 일로 바빴기 때문에 사무실 가까이 있는 레스토랑에서 맞선을 보았다. 간단한 식사 뒤에는 근처 시민의 숲을 함께 걸었다. 시민의 숲에는 개천을 끼고 나 있는 멋진 산책로가 있었다. 길가에 늘어선 벚나무들이 봄이면 하얗게 흐드러졌고 가을이면 빨갛게 물들어 눈부셨다. 무엇보다 나는 그 길 근처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 단지가 좋았다. 그곳은 내가 존경해 온 직장 상사가 사는 동네이기도 했다. 언젠가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하는 상사와 우연히 마주쳤는데, 부럽도록 행복해 보였다. 그날 이후 내 꿈은 그 동네 주민이 되는 거였다. 하지만 내가 만난 남자들은 그런 고급 아파트를 장만할 능력이 없었다.

눈에도 안 차는 남자와 결혼하는 대신 차라리 대학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시시한 남자 등에 업혀 사느니 스스로 능력을 키우는 게 낫겠다고, 언젠가는 아름다운 벚나무숲이 있는 그 동네에서 살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혼례비용으로 준비해 둔 목돈은 학자금이 되었다.

는 상상하고 또 상상했다. ‘봄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 조깅을 하면서 꽃망울이 부풀어 하얗게 터지는 걸 지켜볼 테야. 더운 여름 저녁엔 선선한 바람을 쐬면서 조용히 노래를 부르고, 가을날 오후에는 벤치에 앉아 햇살과 커피를 즐기며 책을 읽어야지. 눈 내리는 겨울이면 싸늘하고 투명한 공기 속에서 볼이 빨개지도록 눈싸움을 할까? 깔깔 웃어대면서 말이야.’

일하고 공부하느라 세월 가는 줄 몰랐다. 학교와 직장을 오가는 동안 차곡차곡 나이가 쌓였고 눈가에는 하나 둘, 잔주름이 늘었다. 그 사이에 세린도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다. 나는 레이스가 화려한 원피스와 빨간 구두, 그리고 초코케이크를 사 들고 입학식에 참석했다. 멋진 이모로 보이고 싶어 평소보다 화려하게 차려입었다. 그날 내가 세린에게 주려고 마련한 선물은… 말하자면 ‘허영’이었다. 조카가 비록 소란스러운 시장통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화려한 세계를 꿈꾸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마음으로 준비한 선물이었으니까. 농부가 이른 봄에 씨앗을 뿌리듯 그날 난 세린의 어린 영혼에 ‘허영’을 심어 놓았다. 선물이 맘에 들었는지 세린은 제 부모는 제쳐 두고 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올 때는 따라가겠다고 떼를 쓰며 울었다. 조카가 눈에 밟혀 며칠 동안 일이 손에 안 잡혔다.

그 무렵 나는 직장에서 외로운 처지였다. 회사의 온갖 비리를 잘 알고 있는 나를 사장을 비롯한 간부들은 늙은 이무기 보듯이 슬슬 피했다. 나는 더 늦기 전에 다른 직업을 준비해야 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다. 물살에 떠밀리지 않으려면 물고기가 쉼 없이 헤엄을 쳐야 하듯이, 살아남으려면 작은 잠자리도 대양을 건너야 하듯이, 나도 어떻게든 궁리를 하고 애를 써야 했다. 힘들게 대학을 졸업한 뒤, 이번에는 세무사 시험을 준비하기로 했다. 주말에는 학원에 다녔고 일하는 틈틈이, 밤잠을 줄여 가며 공부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세린은 가끔 혜순이 데리고 나오면 만나곤 했다. 언제 보아도 눈에 띄게 예쁘고 영리한 아이였다. 당시 혜순네는 옷가게가 망해서 할 수 없이 변두리로 이사 가 힘들게 살고 있었다. 세린은 도심의 거대한 빌딩 숲에서 일하는 이모를 자랑스러워했다. 게다가 이모를 만나면 이국적 향미의 스테이크나 파스타를 먹는다는 걸 알기에 부르기만 하면 기꺼이 찾아왔다.

몇 년간의 고생 끝에 나는 시험에 합격했다. 드디어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세무사 법인에 들어갔다. 그 뒤 몇 년쯤 지나 동료 세무사와 따로 사무실을 차렸다. 그 무렵 어머니는 급격하게 쪼그라들고 있었다. 키도, 머리숱도, 이빨 수도. 기억하는 단어의 숫자조차 눈에 띄게 줄었다. 어머니는 이제 나의 보호자가 아니었다. 내가 오히려 어머니를 보호하는 처지가 되었다. 어느 새 내 나이도 마흔이 넘어 있었다. 어쩐지 알 수 없는 공허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심각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미래에 대해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고 현실을 헤쳐 나가는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하면 아름다운 벚나무 길을 아침저녁으로 산책하며 행복하게 살게 될 거라 믿었다.

 

 

4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었던 어머니의 육신은 한 줌 흙이 되었다. 작은 화분에 담으면 수선화 몇 포기 키울 만큼의 양이었다. ‘그렇게라도 생명을 키울 수 있다면 행복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불쾌한 생각이었다. 내 몸은 여태 겨자씨만 한 생명 하나도 키워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마음을 아프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리려 고개를 흔들었다. 딴 생각을 하려 애썼다. 다음 달이면 입주하게 될, 내 소원이었던 새 아파트를, 그곳에서의 생활을 상상했다.

초여름 더위가 시작될 무렵에 드디어 나는 원하던 아파트에 입주했다. 새벽에 일어나 조깅을 하고, 저녁이면 음악을 들으면서 느긋하게 산책했다. 원두커피를 들고 가을볕을 쬐며 벤치에 앉아 책을 읽기도 했다. 하지만 눈 내리는 날 볼이 빨개지도록 눈싸움을 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에겐 함께 놀아 줄 상대가 없었다. 겨울 공원은 춥고 썰렁했다. 눈사람을 만들거나 눈싸움을 하는 이들이 더러 눈에 띄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었다. 갑자기 고독이 밀려왔다. 작아지지 않으려고 내 삶의 외피를 키워 왔지만, 결국 함께할 가족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 아프게 심장을 찔렀다. 뼛속 깊이 스며드는 한기가 느껴져서 나는 산책을 중단하고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다.

겨우내 산책을 하지 않았다. 몸이 잔뜩 불어나 입던 옷이 맞지 않았다. 어딜 가든 아줌마 소리를 들었다. 처녀가 아줌마 소리를 들을 때의 처참한 기분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거다. 그건 강제로 처녀성을 빼앗긴 것처럼 화나고 또 비참한 일이다. 게다가 생리마저 불규칙해졌다. 이른 폐경의 조짐이었다.

사월이 되자, 훈풍 부는 길목마다 나무들이 간지럼 타는 어린애 웃음처럼 환한 꽃봉오리들을 일제히 터뜨렸다. 시민의 숲은 다시 벚꽃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봄기운에 힘입어 나도 다시 산책에 나섰다. 흰 꽃으로 가득 뒤덮인 벚나무들이 바람 불 때마다 꽃잎을 살랑살랑 떨어트리고 있었다. 땅바닥 위에도 온통 꽃잎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웃으며 지나가는 연인들이며, 가족들의 머리 위에도, 어깨 위에도 꽃잎이 사뿐사뿐 내려앉았다. 자리를 깔고 앉아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이들도 있었다. 사람들이 흘깃거리며 나를 훔쳐보는 것 같았다. 사람들 시선을 피해 숲의 안쪽으로 점점 더 깊이 파고들었다.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숲에는 갓 피어난 꽃들이 나뭇가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얗게 붙어 있었다. 수분을 기다리는 꽃들이 갑자기 괴이하게 보였다. 온통 자궁을 드러내고 있다니! 자세히 들여다보니 창백하다 못해 파리한 꽃잎들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꽃들이 내뿜는 서늘한 기운에 으스스 몸이 떨려 와 옷깃을 여몄다. 또다시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온 나는 침대 위에 쓰러져 펑펑 울었다. 한참 만에 울음이 잦아들자 안개 걷힌 뒤 드러나는 풍경처럼 희망 하나가 떠올랐다. ‘그래, 세린이가 있었어. 나의 세린이가!’

다음날 아침, 출근도 하기 전에 나는 혜순에게 전화해 세린을 데리고 놀러 오라고 청했다. 그랬더니 혜순은 전에 없이 펄쩍 뛰며 공장에서 받아 온 일감이 밀렸다면서 강하게 거절했다. 그럼 세린과 통화라도 하게 해달라고 했더니 그마저도 거절을 했다. 아이가 공부하느라 바쁘다면서. 아무리 그렇더라도 전화 통화할 시간도 없느냐며 끝내 화를 냈다. 혜순은 그제야 세린이 가출을 했다고 고백했다.

세린은 겨우 열여섯이었고,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였지만, 이미 삶에 대해 절망하고 있었다. 누추한 현실에 절망한 사춘기 아이들이 종종 선택하는, 위태로운 길을 가고 있었다. 나는 세린의 휴대전화에 대고 하루 종일 문자와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세린아. 이모는 너밖에 없어. 세상 천지에 유일한 혈육은 너뿐이야. 이모가 대학도 보내 주고, 원하는 건 다 해줄 수 있어. 내 말 알아듣지, 세린아? 연락해, 제발!”

나는 물에 빠져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세린을 붙잡았다.

빨간 머리에 하이힐, 그리고 짙은 화장을 한 세린이 술에 취해 나를 찾아온 건 그로부터 두어 달쯤 지나서였다. 그 애는 너무 일찍 어른 흉내를 내는 걸로 세상에 반항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열여섯 살 이후 두 번째로 〈작아지는 사람〉이 나오는 영화를 생각했다. 내 무릎에 엎드려 우는 세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다가 문득 그 영화를 떠올린 것이다.

‘세린마저 작아지게 할 순 없어. 내가 키울 테야, 내가. 그 누구보다 크고 멋지게!’

가슴 속에 새 희망이 부풀기 시작했다. 쉼 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며, 저물어 가는 실내에서 나는 허공을 향해 남 몰래 웃었다. 소리 없이 웃었다. 마치 남의 딸을 훔쳐 온 여자라도 된 듯 소리 없는 웃음이 계속해 흘러나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5

 

세린의 짐은 곧 내 집으로 옮겨졌다. 혜순에게 처음으로 감사했다. 혜순이 작아지는 선택을 함으로써 얻은 생명체가 세린이니까.

세린을 내 집으로 데려와 근처 학교에 입학시켰다. 다행히 쉽게 적응을 했다. 어린 세린의 가슴에 뿌려 둔 허영이라는 감정이 이번에는 좋은 쪽으로 그 애를 움직이는 것 같았다. 희망을 되찾자 아침 운동과 저녁 산책이 다시 즐거워졌다. 삶이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새벽부터 밤늦도록 일을 했다. 나 혼자라면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모을 필요가 없었지만 세린이가 있는 한 사정은 달랐다. 그 애는 미처 내 것으로 잡지 못한 행복, 내가 가 닿지 못할 미래를 대신 누리고 살아 줄 나의 씨앗이니까.

그런데 가을이 되면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세린이 점점 살이 쪘다. 겨울방학을 앞둔 무렵엔 몸이 몰라볼 정도로 불어버렸다. 특이한 먹성과 비만의 원인이 설마……. 어느 날 난 목욕을 마친 세린의 몸을 문틈으로 훔쳐보다가 배의 중앙을 가르는 짙은 임신선을 발견했다. 눈앞이 노랗게 무너져 내렸다. 가출해 지내는 동안 누군가 그 애 몸에 몹쓸 짓을 한 게 분명했다.

산부인과에 가보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요양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가짜 진단서를 떼어다 학교에 제출하고는 곧바로 아이를 집에 들어앉혔다. 세린은 겨울이 다 가도록 방 안에 갇혀 지내야 했다. 세상에 세린과 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들이 쌓여 갔다. 나는 세린이 몸을 풀 때까지 혜순마저 찾아오지 못하게 했다. 공부하는 애 마음 흔들면 안 된다는 이유를 대면서 호통까지 쳤다. 너처럼 지지리 궁상으로 살길 바라는 거 아니면, 얌전히 시키는 대로 해, 알겠어?”

그해 겨울은 참으로 길었다. 힘들게 찾아온 봄이 꽃봉오리를 터뜨릴 즈음에야 세린도 산달을 맞았다. 나는 꼼꼼히 출산 준비를 했다. 봄이 한창인 어느 날, 드디어 세린이 산통을 호소했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오랫동안 준비해 온 대로 탯줄을 자를 가위를 펄펄 끓는 물에 소독하고, 광목천과 거즈, 소독약과 위생장갑, 비닐 등속을 꺼내왔다. 입에 수건을 문 세린은 얼굴이 하얘지도록 힘을 줬지만 아기는 쉽게 머리를 드러내지 않았다. 아침나절에 시작된 진통은 다음날 새벽녘이 가까워서야 끝났다. 숨을 거두기 전의 가시나무새처럼 세린이 찢어지는 비명을 지른 뒤에야 아기는 세상으로 나왔다. 세린은 곧바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침착하게 뒷수습을 했다. 어쩐 일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이 또렷해지고 더욱 차분해졌다. 속으로 의사가 되었어도 잘해 냈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양수와 피로 얼룩진 천과 거즈들을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아기를 보자기에 둘둘 말았다. 아기와 눈을 맞추지 않으려 고개를 돌린 채로. 그러다가 실수로 아기를 떨어뜨렸다. 보자기가 벌어지면서 일순 벌거벗은 빨간 핏덩이가 보였다. 이어 눈에 들어온 아기의 새까만 눈동자……. 본능적으로 어미를 찾고 있었다. 놀란 나는 아기 얼굴에 수건을 덮은 뒤 한참을 눌렀다. 심장이 벌벌 떨리고 정신이 혼미했다. 하지만 곧 마음을 진정시키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기는 다시 낳을 수 있어. 세린이 멋진 신랑을 만나면, 아기는 곧 다시 태어날 거야. 얼마든지……. 한 열 명쯤 낳으라고 할까.’ 그 순간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세린이 아기들을 주렁주렁 매단 엄마나무가 되는, 동화적 상상이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무효야. 처음부터 반칙이었다고.’ 가냘프게 울어대던 아기의 울음소리는 차차 잦아들다가 이윽고 완전히 멈추었다. 아기를 커다란 비닐가방에 넣어 밖으로 나왔다.

아파트 단지에서 벗어나 무작정 걸었다. 새로 솟는 해가 대지를 찢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빠르게 걷다 보니 어느새 벚나무 숲이었다. 가능한 인적이 드문 곳까지 깊이 들어갔다. 그곳 벚나무 중에서, 가장 많은 꽃을 피워낸 나무 밑을 파헤쳐 아기를 묻었다. 검고 축축한 흙이 아기를 순순히 받아 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조깅을 하는 선량한 시민처럼 가볍고 규칙적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몇 미터쯤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나무에서 떨어져 내린 벚꽃이 그새 아기 무덤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발이 허공을 딛는 기분이었다.

세린의 내신 성적은 좋지 않았다. 중학교에 다니는 내내 공부를 하지 않은 데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한 탓이었다. 하지만 일본어만큼은 남들보다 잘했다. 중학생 시절에 공부를 하지 않는 대신 일본 만화와 영화에 빠져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애가 현실을 회피하고자 빠져들었던 일본어가 이번에는 현실을 구제하는 힘이 되어 주었다. 세린은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치른 다음 본격적으로 유학 준비를 하기로 결정했다. 주변에선 좋은 생각이라며 부추겼지만 어쩐지 불안했다. 자칫 실패하면 중학교 졸업장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내가 망설이자 세린은 나를 학원으로 데려가 성공적으로 유학길에 오른 사례들을 접하게 했다. 불안을 떨치고 세린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그뒤 이 년 반 동안 세린은 최선을 다했다. 그러고는 마침내 일본의 명문대학으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았다. 우리는 서로를 얼싸안으며 환호했다. 불행 끝, 행복 시작!” 설마 천 년에 한 번 온다는 쓰나미가 우리 앞을 가로막으리라곤 꿈에서조차 상상할 수 없었다.

 

 

6

 

한 달쯤 전, 세린을 떠나보낸 뒤 혼자 생일 밥을 챙겨먹다가 나는 세 번째로 〈작아지는 사람〉이 나오는 영화를 떠올렸다.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궁금했다. 도대체 그 영화는 무얼 말하고 싶었던 걸까?” 오래 전에 혜순이 했던 질문을 나는 사십대 중반에야 하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작아지는 사람〉이 나오는 영화를 검색했다. 아이가 작아졌어요, 라는 영화에 대한 정보가 가장 많이 올라와 있었고, 걸리버 여행기도 소개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보았던 그 영화에 대해선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세린이라도 있었다면 영화 전문 사이트에 들어가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세린은 이미 내 말을 듣지 않는 나이가 되어버렸고, 그나마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내 기억에 의하면 젊은 남녀가 여행 중에, 그러니까 여행지의 바다 위에서 갑자기 표류하는 안개구름에 노출되었고, 그 뒤로 남자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안개, 그 안개……. 그것의 정체가 뭐였더라?

어렵게 수소문한 끝에 영화를 찾아냈다. 제목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조금 달랐다. 〈놀랍도록 줄어든 사나이〉. 리처드 매드슨의 원작 소설을 잭 아놀드 감독이 1957년에 만든 영국 작품이었다. 핵폭탄에 대한 공포가 커지던 시대 상황에서 방사능이 몸에 침입해 유전자 변형을 일으킨다는 설정으로 만들어진 여러 영화 중 수작으로 뽑히는 거라던가.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영화 포스터와 주요 장면들을 살펴보았다. 거대한 고양이, 끔찍한 거미에 맞서 바늘과 실로 무기를 만들어 자신을 지키는 사나이……. 유심히 살펴보고 있자니 잊혔던 내용들이 하나 둘 기억났다. 그 안개… 그것은 바로, 방사능에 오염된 안개였다. 나는 어떻게든 그 영화를 구해 세린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면 당장이라도 세린이 되돌아올 것만 같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에 나는 전화상으로 세린과 심하게 다퉜다. 그 철없는 것이 방학을 해도 귀국하지 않고 그곳에 남겠다질 않는가.

너 미쳤니? 첫 학기라 할 수 없이 보낸 건데……. 당장 들어오지 못해?”

이모, 도쿄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거리는 깨끗하고 시민들도 잘 지내. 절전으로 냉방이 덜 되지만 다들 잘 견디고 있어. 신문 방송마다 절전을 외치기 때문에 정전 사태는 없을 거야. 차라리 이모가 여기로 놀러 와. 내가 경치 좋은 곳 구경시켜 줄게.”

세린의 어이없는 말에 화가 나서 나는 버럭 언성을 높였다.

뭐라고? 나더러 놀러 오라고? 기가 막혀. 그새 다 잊었나 보지? 그 위험한 걸 잊다니, 말도 안 돼. 십 년, 이십 년 뒤엔…… 그때 가서 걱정하면 이미 늦어, 이 멍청한 계집애야!”

나는 어느새 어머니 말투를 닮아 있었다. 신경질적으로 욕하고 고함지르던 중년의 어머니가 내게 숨어 있었다. 아니, 여성이기를 포기한 절망감과 혈육에 대한 질긴 미련이 나를 채우고 있었다. 세린은 더 이상 아무 대꾸도 않더니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뒤로 한동안 세린은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세린의 룸메이트를 통해 가끔 그 애의 소식을 듣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7

 

세린은 고집불통이었다. 세린의 친구마저 며칠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궁금했다. 궁금했지만 화가 나서 나 역시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더운 날 오후에 갑자기 비보가 날아왔다. 세린의 친구는 전화기 너머에서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울먹이며 겨우 말문을 열었다.

“함께 여행을 갔었어요. 갑자기 지진이 났는데……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뒤돌아보니 세린의 머리 위로 샹들리에가 떨어지고 있었어요. 순식간이었어요. 바로 병원으로 옮겼지만 출혈이 너무 심해서…….”

그러고는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속이 타서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안 돼, 세린아. 기다려. 지금 당장 이모가 갈게. 세린을 데려와야 해, 어떻게든. 그런데 어쩌지?” 나는 미친 사람처럼 방 안을 서성이면서 중얼거렸다. 수소문 끝에 다음날 새벽 비행기를 예매했다. 그러고 나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심장이 심하게 요동쳤다. 참을 수 없는 불안에 떠밀려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세린이 열여섯이 되어 나를 찾아왔을 때처럼 노랗게 사위어 가는 햇살이 도시의 벽을 물들이고 있었다. 내 발걸음은 어느새 시민의 숲으로 향했다. 노을이 세상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숲의 안쪽 가장 깊숙한 곳으로 갔다. 까만 아기 눈동자 같은 버찌들이 바닥에 수없이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서산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해가 하늘과 땅을 온통 빨갛게 물들였다. 이윽고 땅거미가 내리자 숲은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어둠 속에 한참을 서 있었다. 멀리 우주 공간에 떠 있는 하얗고 둥근 달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달빛 아래 서 있던 한없이 작아진 사내…… 그가 지금의 나보다 더 힘들고 절망적이었을까. 그는 무슨 말을 했던 걸까. 나무 아래 주저앉아 숨을 헐떡이다가 혜순한테 전화를 걸었다. 혜순은 반갑게 받으며 세린이 잘 지내느냐고 물었다. 대답 대신 다짜고짜 혜순에게 물었다.

“혜순아. 너는 들었지?”

“뭘?”

“그 왜, 작아지는 사람이 나오는 영화에서 사내가 마지막에 내뱉은 대사 말이야. 뭐였지?”

“글쎄? 하도 오래되어서……. 왜, 뭐 때문에 그러는데?”

“그럴 일이 있어. 암튼 기억해 봐. 뭐라고 했지? 그 모기만 한 남자가?”

“그러니까… 아, 맞다, ‘그래도 난 아직 존재하고 있어. 비록 작아져 있을지라도’ 했던 것 같아. 그 대사, 정말 죽였지. 내 말 듣고 있어?”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일순 귀가 먹먹했다.

“너… 너, 그 얘길 왜, 왜 이제야 해주는 거야, 엉?”

나는 생떼를 썼다. 혜순이 어이없다는 듯이 거칠게 대꾸했다.

“무슨 소리야. 언니도 들었잖아. 같이 그 영화 봤잖아. 잊었어?”

“난 못 들었어. 하필 그 말을 듣지 못하다니……. 처음부터 들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무슨 말이야?”

“그 말을 열여섯 나이에 들었다면, 지금과는 다르게 살았을까? 세린이도 괜찮았을까? 비록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아졌더라도, 응? 대답해 봐, 응?”

나는 아무 영문도 모르는 혜순을 다그쳤다. 심하게 다그쳤다. 마치 상황을 이렇게 만든 게 다 혜순의 책임이라는 듯이. 내 고함 소리는 벚나무 우거진 숲을 흔들어댔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빠져나가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하지만 공허한 울림이었다.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는 무기력한 울림일 뿐이었다. ‘그래도 난 아직 존재하고 있어. 비록 작아져 있을지라도, 난 아직 존재하고 있어. 비록 작아져 있을지라도, 난 아직 존재…….’

모기만큼 작은 생명체들이 내는 소리가 메아리 되어 돌아왔다. 알락다리모기, 노랑초파리, 무늬하루살이, 팥바구미, 애물진드기……. 귀가 찢어질 듯 아파 왔다. 나뭇가지를 주워다 비밀을 묻어 둔 나무 밑을 팠다. 나뭇가지가 뚝, 부러졌다. 할 수 없이 맨손으로 팠다. 달빛 속에서 아기 무덤을 파헤쳐 인육을 먹는 마녀처럼, 나는 미친 듯이 땅을 파헤쳤다. 미안하다, 아가야. 용서해 다오, 제발 세린을 돌려다오, 아가야. 벚나무에 매달려 있던 검은 아기 눈망울들이 내 어깨와 머리 위로 까맣게 떨어져 내렸다.

‘난 아직 존재하고 있어, 비록 작아져 있을지라도, 난 아직 존재…….’ 귀를 찢는 작은 벌레들의 소리에 홀려 나는 미친 듯이 숲을 뛰어다녔다. 까만 아기 눈망울들이 발밑에서 심하게 으깨져 보랏빛 눈물을 흘렸다.

 

《문장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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