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손님

 

김숨

 

 

 
 

 

 


 

손님들이 그녀의 식당에 들어선 것은 밤 여덟 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술 한잔 걸치려는 저녁 손님들로 북적북적할 시간이었지만 홀에는 그녀뿐이었다. 그녀는 졸음에 겨워하면서 센베이를 우두둑우두둑 베먹고 있었다. 센베이 가루가 묻은 입을 털린 콩깍지처럼 벌리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손님들을 쳐다본 것은 그 때문이었다. 센베이에서 날린 푸르스레한 파래가루가 그녀의 얼굴 주변에서 떠돌았다. ‘여기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평화를’이라는 구절을 십자수로 수놓은 액자가 그녀의 머리 위에 걸려 있었다. 식당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설 때 언뜻 서너 명은 돼 보이던 손님은 고작 둘이었다. 비몽사몽 중에 착각한 것이리라 하면서도 그녀는 혹시나 손님이 한둘 더 들지 않을까 미닫이문을 바라보았다. 막 식당으로 들어선 손님들은, 손님이 자신들뿐임을 그녀에게 단단히 일깨워 주듯 미닫이문을 꼭 닫았다.

그녀가 메뉴판을 가져다주기 전에 손님들은 감자탕 중(中)자와 공깃밥 하나, 소주를 시켰다. 그녀는 물병과 물수건을 쟁반에 받쳐 손님들에게 내갔다. 사십 후반쯤? 둘 다 말끔한 양복 차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온종일 막노동판을 구르다 온 행색도 아니었다. 물수건을 테이블에 내려놓던 그녀는 세 개인 걸 깨닫고 얼른 한 개를 집어 들었다.

“밥은 나중에 남은 국물에 볶아서 드시지 그러세요.”

물수건 포장을 뜯다 말고 손님이 그녀를 흘끔 쳐다봤다.

“손님들이 볶아먹는 게 더 맛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알아서 주세요.”

또 한 손님이 잔에 물을 따르면서 건성으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미리 드릴까요?”

“미리요?”

물을 마시려다 말고 손님이 시큰둥하게 물어 왔다.

“공깃밥 말이에요. 볶아 드시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손님이 더러 있더라고요. 다 똑같은 손님이지만…… 어디 다 똑같나요?”

손님이 물수건으로 손을 훔치면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손님마다 입맛이 다르니까요.”

손님들 입맛이 똑같은 것 같지만 천차만별이 아니던가.

“알아서 달라니까요.”

손님이 짜증스럽게 중얼거리고 물을 들이켰다. 공깃밥을 미리 달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그녀는 손님들에게서 물러나 주방으로 갔다. 대형 냉장고를 열고 들통을 꺼냈다. 들통 속 한 차례 삶은 돼지등뼈와 국물을 국자로 퍼 중(中)자용 냄비에 옮겨 담았다. 허둥지둥 식칼을 챙겨들고 주방 구석에 쪼그려 앉았다. 별 생각 없이 감자 상자를 열던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며칠 전까지도 멀쩡하던 감자마다 보라색 싹이 무성하게 돋아 있었다. 언제 이렇게 싹이…… 하긴 장마철도 아닌데 나흘 내내 비가 오지 않았나. 아무리 그래도 보름 전 트럭을 몰고 다니는 장사치로부터 들여놓은 해남 햇감자였다. 그러고 보니 감자탕 주문이 닷새 만에 처음이었다. 감자탕 단일 메뉴로 식당을 개업했지만, 그녀는 메뉴를 하나 둘씩 추가했다. 날이 더워지면서 ‘유천 칡냉면’이라고 쓴 종이까지 내붙이지 않았는가. 냉면 전문 식당도 아닌데 점심 때 냉면만 두 그릇 팔았다. 감자탕이 아니라 칼국수 전문 식당이나 낼 걸 그랬나? 손님이 도대체 들지 않으니…… 칼국수라고 어디 만만한가, 국숫발도 직접 뽑고 하려면…… 씨가 마른 듯 손님이 좀체 안 드는 게 어디 메뉴 선택을 잘못해서겠는가.

금방이라도 천장을 뚫고 오를 듯 기세등등한 보라색 싹들을 손으로 헤치고 그녀는 알 굵은 감자를 골라 들었다. 그렇게 대여섯 알 골라 주방 바닥에 늘어놓고 한 알 한 알 싹을 도려내고 베어냈다. 감자마다 싹이 족히 너덧 개는 움트거나 자라 있었다. 벽돌장만 같은 검정 통굽 슬리퍼를 신은 그녀의 발 위로 싹이 떨어졌다. 그녀는 자신의 두 발이 싹에 파묻히는 줄도 모르고, 갓 돋은 싹에 식칼을 들이댔다. 그녀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그녀의 발을 뒤덮은 싹들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감자탕을 손님들에게 내고 그녀는 자판기에서 밀크커피를 한 잔 뽑았다.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식당 밖으로 나갔다. 길가에 어정쩡하게 서서, 상가 건물을 바라보았다. 다닥다닥 붙은 부동산 간판들은 진즉에 꺼져 있었다. 아직 아홉 시 전인데 상가 건물에서 불이 꺼지지 않은 간판은 ‘구구치킨’과 ‘굿모닝슈퍼’ 그녀의 식당인 ‘원주감자탕’뿐이었다. 그녀는 구구치킨에서 풍기는 기름 냄새에 낯을 찌푸리고 식당 안 손님들을 바라보았다. 손님 하나가 뼈다귀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파마가 풀려 자꾸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쓸어올리고 그녀는 아파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201동이 가까운 듯 멀게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워낙 거대하기 때문이고, 멀게 느껴지는 것은 아스라이 어둠에 휩싸였기 때문이리라. 이십팔 층인 201동에서 불 켜진 창은 고작 세 개였다. 201동 뒤로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아파트들이 유령처럼 줄지어 서 있었다. 어서 분양이 이루어지고 입주가 끝나야 아파트 단지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장사가 돼도 될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뉴타운으로 불리면서 조성된 그 아파트 단지는, 아홉 시 뉴스에서 보도할 만큼 미분양 사태가 심각했다.

그녀가 상가 점포를 분양받고 감자탕 식당을 낸 것은 일곱 달 전이었다. 이천 세대가 넘는 아파트 단지 안에 들어선 상가였다. 경쟁률이 육십 대 일이라던 상가를 분양받았을 때 그녀는 로또를 맞은 것처럼 기뻐했다. 경쟁률이 센 만큼 분양가는 비쌌다. 오 년 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남편의 피 같은 보험금을 죄 털어넣고 은행에서 융자까지 얻어 분양금을 가까스로 맞추었다. 한 사오 년 열심히 일해 은행 융자를 다 갚으면 세를 놓아 다달이 월세나 받아먹으면서 편히 살 계획을 세웠다. 그녀의 점포였지만, 다달이 백만 원이 넘는 은행 이자를 갚아야 했기 때문에 월세를 내고 장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자 맞추기도 빠듯해 원금은 아예 갚을 꿈도 못 꾸었다.

한 달 전 그녀는 급기야 부동산에 점포를 내놨다. 하지만 보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육십 대 일이던 분양률이 믿기지 않게, 절반이 넘는 점포가 텅텅 비어 있었다. 2019년 아파트 단지 바로 앞으로 구청이 이전해 오려던 계획이 무산되었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마을버스를 타고 이삼십 분을 나가야 지하철역이 있는 데다 일대가 온통 허허벌판이었다. 밤이 늦어 식당 문을 닫고 마을버스에 흔들흔들 실려 갈 때마다 그녀는 조용히 반찬가게나 하고 있을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괜히 덥석 상가는 분양받아 가지고 뭔 고생인가 싶었다. 실내 인테리어를 한답시고 천만 원 넘게 헛돈을 쓰지 않았나. 식당을 내기 전 그녀는 반찬가게를 했다. 십 년 넘게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해 단골도 여럿 있었다. 상가를 분양받아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이왕 고생하는 거 식당을 해 돈을 벌고 싶었다. 쉰다섯 살. 언제까지 몸뚱이를 소처럼 부려 먹고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녀는 아파트 단지 오른편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들을 바라보다 식당 안으로 들었다. 주방으로 가 한 무더기 도라지와 과도를 소쿠리에 챙겨들고 나왔다.

“도라지네요.”

화장실에 가는 길인지 그녀 앞으로 지나가던 손님이 말을 걸어 왔다.

“국산이라고 해서 반 관 샀는데 아무래도 중국산인 것 같지 뭐예요.”

그녀는 손으로는 도라지를 까면서 티브이에 시선을 둔 채 중얼거렸다. 하긴 국산 도라지가 그리 쌀까.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사지 않았나. 이틀 뒤가 시아버지 제사였다. 손님상이 아니라 제상에 올리려고 산 도라지였다.

“중국산이요?”

“국산 도라지가 이렇게 크겠어요.”

그녀는 껍질을 벗기던 도라지를 손님에게 들어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도라지가 어찌나 큰지 웬만한 수삼 같았다.

“국산이라고 했다면서요.”

“손님도 참, 장사꾼 말을 어떻게 믿어요,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냥 속고 사는 거지…….”

그녀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손님은 식당 밖으로 나갔다. 국산이면 어떻고 중국산이면 어떤가, 돌아가신 양반이 국산 중국산을 알까.

순영이 그녀를 찾아온 것은, 다섯 개째 도라지 껍질을 벗겨냈을 때였다. 자리를 비운 손님이 돌아오나 싶었는데 순영이었다. 순영은 구구치킨 여자였다. 화장실에 다니러 간 것인지 아니면 먼저 가버린 것인지, 손님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언니…….”

순영이 슬리퍼를 헐떡헐떡 끌면서 그녀 옆으로 오더니 의자에 몸을 앉혔다. 그녀의 엉덩이에 의자가 드르륵 밀렸다.

“벌써 가게 문 닫았어?”

“그게 아니라…….”

평소 경상도 억양이 섞여 빠르고 새된 편인 순영의 말소리가 짓무른 오이지처럼 퍼지고 늘어졌다. 하얗게 질려서인가, 얼굴이 찜통 속 찐빵처럼 부어 보였다. 삼백안(三白眼)인 눈의 초점이 풀어진 데다 아이라인이 멍처럼 번져 어딘가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했다.

“굼벵이를 한 솥 삶아먹었나 말이 왜 그렇게 느려 터져?”

“우황청심환을 두 덩어리나 먹어서 그래요…….”

순영이 어깨를 떨면서 히죽 웃었다.

“우황청심환? 그건 왜 먹었대.”

“언니…… 말도 마요…… 어찌나 놀랐는지…… 애 떨어지는 줄 알았지 뭐예요…….”

“왜? 뭔 일 있었어?”

“강도가…… 들었지 뭐예요…….”

순영은 그녀가 아닌 손님을 빤히 쳐다보고 말했다. 아무 소리도 안 들렸는데 강도라니……. 그녀는 오싹 소름끼쳐 어깨를 움츠리고 순영과 손님을 번갈아 쳐다봤다. 문자를 주고받는지 손님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경찰에 신고는 했어?”

그녀는 정색을 하고 물었다.

“언니도 참…… 신고를 어떻게 해요…….”

“뭔 소리야, 당장 신고해야지.”

그녀는 정신 차리라고 순영의 등짝을 찰싹 때렸다.

“겨우…… 겨우요…… 언니…… 만 원 한 장 뜯겼는걸요.…… 괜히…… 신고했다…… 소문만 나쁘게 나면 어떡해요…… 소문 때문에 가게가 안 나가면…….”

듣고 보니 것도 그랬다. 딱히 다친 데가 없는 걸 보면 작정을 하고 들이닥친 강도는 아닌 듯했다. 강도가 아니라 좀도둑이 들었던 게 아닐까. 별일 아닌 일에도 호들갑스럽게 유난을 떠는 여편네가 아닌가. 아니면 남편이 다녀갔나. 언젠가 백수건달인 남편에게 그날 장사한 돈을 죄다 뜯기고 강도가 들었다면서 난리법석을 떨지 않았는가. 정말 강도가 든 줄 알고 ‘굿모닝슈퍼’ 남자가 경찰에 신고까지 하지 않았나.

손님이 소주를 달라는 표시로 빈 소주병을 들어 보였다. 그녀는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손님에게 가져다주었다. 빈 소주병을 챙겨 돌아서려다 말고 손님에게 물었다.

“먼저 가셨대요?”

“……?”

새 소주병을 따면서 손님이 멀뚱히 그녀를 올려다봤다.

“손님 말이에요…….”

“손님이요……?”

“아까 함께 오신 손님이요…….”

손님은 그러나 그녀가 하는 말을 도대체 못 알아듣는 표정이었다.

“왜…… 함께 오셨잖아요.”

그녀는 말끝에 갑갑증이 욕지기처럼 확 치밀어올랐다. 온종일 얹힌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 저녁을 먹다 말고 콜라를 다 따 마시지 않았나. 평소 입도 안 대는 콜라 때문에 헛배가 불러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함께…….”

“함께요?”

손님이 건성으로 그녀의 말을 받았다.

“또 한 손님하고…….”

“손님?”

손님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숟가락을 집어들었다.

“손님이요…… 손님.”

“나요?”

감자탕 국물을 뜨려다 말고 손님이 숟가락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찌르듯 가리켜 보였다.

“손님 말고…… 왜…… 또 한 손님하고 함께 오셨잖아요.”

“손님이라…….”

손님이 소주를 잔에 따르더니 한 입에 털어넣었다. 

말귀도 어지간히 못 알아듣네, 그녀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손님으로부터 돌아섰다. 손님과 그녀가 나누는 이야기를 엿들었는지, 순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쳐다봤다.

“언니…… 왜 그래요……?”

순영의 큰일이라도 난 듯 들뜨고 겁에 질린 목소리가 식당에 울렸다.

“아니야 아무 일도…….”

“언니……?”

“아무 일도 아니라니까.”

그녀는 쌀쌀하게 내뱉었다.

“언니…… 언니하고 나 사이에 말 못할 게 뭐가 있다고 그래요…….”

그녀는 미간에 주름이 잡히도록 인상을 쓰고 순영을 쳐다봤다. 저하고 나하고 뭔 사이라고……. 그렇잖아도 그녀는 순영이 누가 있든 없든 친자매처럼 굴면서 엉겨 붙는 게 못마땅했다. 바보스러운 건지 천진난만한 건지, 순영은 첨부터 간이고 쓸개고 죄다 빼줄 것처럼 굴었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도 자기보다 나이가 많다 싶으면 무조건 언니오빠였다. 부담스러울 만큼 애교가 철철 넘치는 순영과 달리, 그녀는 무뚝뚝한 편이었다. 순영이 열 마디를 하면 그녀는 한 마디 겨우 할까 말까였다. 더구나 그녀는 쓸데없이 말 많은 사람은 체질적으로 질색이었다. 그래도 동병상련이라고, 처지가 비슷하다 보니 서로 언니동생 해가면서 의지하고 지냈다. 비록 순영이 자신의 점포가 아닌, 권리금을 내고 임대받은 점포에서 장사를 하는 임차인 처지이기는 했지만. 그래 봤자 저하고 나하고 알고 지낸 지 일곱 달밖에 더 되나, 십 년 이십 년을 친동기간처럼 지내도 모르는 게 사람 속인데…….

“언니…….”

순영이 애처럼 보챘다.

“가만 좀 있어.”

그녀는 티브이에 시선을 둔 채 팔꿈치로 순영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지 말고요…… 언니…….”

“뉴스나 봐.”

그녀는 리모컨을 집어들어 소리를 키웠다.

“아이 참…… 지금 뉴스가 중요해요…… 언니…… 그러지 말고…….”

“사람이면 그래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할 거 아니야. 뉴스나 봐야 겨우 알지…….”

“뉴스는 봐서 뭐하나…… 언니나 내가 안다고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그러지 말고요…… 언니…… 나한테 다…… 다 털어놔 봐요…… 응? 언니…….”

“글쎄 아무 일도 아니라고 했잖아.”

“아무 일도 아닌 게…… 아무…… 아무 일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으니까…… 내가 이러지요…….”

손님이 그녀와 순영을 흘끗 쳐다봤다.

“언니…… 언니하고 나 사이에 말 못할 게 뭐가…….”

“자기하고 나하고 뭔 사인데?”

그녀가 팩 쏘아붙였다.

“언니…… 그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는 듯 순영이 두 팔을 부들부들 떨었다.

“막말로 자기하고 나하고 피 한 방울이 섞였어, 성씨가 같기를 해? 자기는 박 씨고 나는 오 씨 아니야.”

“언니…….”

“피를 나눈 형제끼리도 나 몰라라 사는 세상인데, 남은 오죽할까. 다 소용 없지…….”

그녀는 너무했나 싶었지만 그렇게라도 순영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풀이 죽은 순영이 조용해지자 티브이 소리가 공허하게 식당에 떠돌았다.

“언니…….”

“…….”

“언니 말이…… 맞아요…….”

“…….”

“다 소용 없어요…….”

순영이 끙 소리를 내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만 가려나 했는데, 손님과 그녀 사이에 석고상처럼 버티고 서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순영의 뒤룩뒤룩 살찐 몸에 가려져 손님이 그녀에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식당에 손님이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여기 들어…… 오는 모든 이에게 평화를…….”

순영의 발음이 부정확한 목소리가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처럼 식당 안에 울렸다.

“평화는 무슨 얼어 죽을!”

순영의 고개가 푹 숙여지는 동시에, 손님이 날카롭게 내질렀다. 순간 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했다. 손님은 여전히 순영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순영이 두 팔을 고무줄처럼 늘어뜨리고, 슬리퍼를 끌면서 식당 안을 휘젓듯 어슬렁거렸다. 정수기로 가더니 잔이 넘치도록 물을 받아 허겁지겁 들이켰다.

그녀는 곁눈질로 손님을 살폈다. 손님은 고개를 외로 꼰 채 입속으로 손가락을 찔러넣고 이 사이에 낀 음식물을 빼내려 애쓰고 있었다. 입주민인가? 손님은 어쩐지 입주민 같지는 않았다. 분양가가 워낙에 비싸 입주민이면 웬만큼 사는 사람일 텐데, 딱히 그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부동산 업자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부동산 업자는 대개 고급 승용차를 몰고, 일행을 두셋은 달고 나타났다. 입주민이 아니면 뭔 일로 이 외진 데까지 들었을까.

순영이 터벅터벅 그녀 옆으로 오더니 이불 더미가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노란색 마을버스가 식당 앞으로 미끄러져 와 섰다. 논밭뿐이던 일대가 뉴타운으로 조성되면서 노선이 생긴 마을버스는, 삼십 분 간격으로 아파트 단지와 지하철역을 오갔다. 아파트 단지에서 십 분쯤 걸어 나가면 버스정류장이 있었지만, 고속도로로 진입하려는 차들이 무섭게 내달리는 탓에, 입주민들은 주로 마을버스를 이용했다. 그녀는 식당 미닫이문 너머로 마을버스를 바라보았다. 실내등을 환하게 밝힌 마을버스에는, 환갑이 넘은 늙은 기사밖에 타고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하철역에서부터 손님을 한 명도 못 태우고 달려온 듯했다. 산골오지도 아니고 마을버스는 종종 빈 차로 지하철역과 아파트 단지를 오갔다. 저 영감님이야 손님이 아무리 없어도 월급은 꼬박꼬박 나오니 나보다 백 배 낫지……. 그녀는 괜히 마을버스 기사와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다 한숨을 쉬었다. 자판기에서 커피라도 한 잔 뽑아다 줄까 하다 귀찮아 관두었다.

얼른얼른 먹고 일어설 것이지…… 그녀는 못마땅한 얼굴로 손님을 쳐다봤다. 죽치고 앉아 있어 봐야 뭘 더 시켜먹을 것도 아니었다. 손님만 아니면 그녀는 식당 셔터를 내리고 마을버스에 올랐을 것이었다. 집에는 어느 세월에 가나…… 열 시쯤 식당 문을 닫고 마을버스에 올라도 집에 도착하면 자정이었다. 가봐야 누가 눈 빠져라 기다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뜨고, 딸이 직장이 멀다는 핑계로 따로 방을 얻어 나간 뒤로 그녀는 내내 혼자 살았다. 지방으로 대학교를 보낸 뒤로 아들과 한 달 이상 함께 살아 본 적이 없었다.

“언니…… 저게 뭐래요……?”

어째 조용하다 싶더라니…….

“언니 발에…….”

발? 발에 벌레라도 붙었나,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자신의 발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퀴벌레 따위 벌레가 아니라 보라색 싹이었다. 아까 감자를 다듬을 때 발등에 들러붙은 싹이 그때까지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었던 것이다. 발등에 붙어 있어서인가, 그녀는 싹이 자신의 발등에서 피어오른 것만 같았다.

저게 독(毒)이지…… 독…… 악착을 떨며 먹고사느라 몸속에 생겨난 독이 발등을 찢고 저리 싹을 틔운 것이지.

그렇게 보려고 해서 그런지 몰라도, 싹은 감자에 붙어 있을 때보다 생명력이 왕성해 보였다. 회오리치듯 뻗어나간 형상이 살아 꿈틀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발등 위로 흉하게 불거져 나온 심줄들마저 싹 같았다. 미처 살갗을 찢고 나오지 못한 싹들만…… 언제든 살갗을 찢어발기고, 잔뜩 독 오른 뱀의 대가리만 같은 눈을 내밀 것 같았다.

“언니…… 저게 뭐래요?”

“싹이지 뭐야…….”

“싹…… 이요?”

순영은 그것이 감자 싹이라는 걸 짐작조차 못하는 것 같았다.

“생으로 무쳐 먹을 수도, 데쳐 먹을 수도, 들기름에 들들 볶아 먹을 수도, 국을 끓여 먹을 수도 없는 싹…….”

그녀는 허탈하게 중얼거리면서 손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세상에나…… 각질 들러붙은 것 좀 봐…….”

순영이 갑자기 실성한 여자처럼 자지러져라 웃었다. 발뒤꿈치를 보고 저러는 것이리라. 슬리퍼 밖으로 튀어나온 발뒤꿈치에는 보나마나 촛농이 덕지덕지 들러붙은 듯 각질이 앉았을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리 호들갑일까, 제 발은 얼마나 만질만질하다고……. 하긴 멋부리는 걸 좋아해 삼백육십오일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고 다니는 여편네가 아닌가, 오죽하면 ‘굿모닝슈퍼’ 남자가 쥐 잡아먹은 손이라고 놀릴까. 온종일 펄펄 끓는 기름 앞에서 닭이나 튀기는 여편네가 화장은 또 오죽 잘하고 다니나…… 화장과 기름, 땀이 뒤범벅되어 반들거리는 순영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녀는 비누질을 해 씻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고는 했다.

“언니…… 언니는 생전…… 발에 로션도 안 바르나 봐…….”

“얼굴에 처바를 로션도 없는데 발에 바를 로션이 있을까!”

화장품을 사본 게 언제인지 그녀는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았다. 지하철역에서 무더기로 파는, 구천 원짜리 영양크림을 산 게 마지막이었다. 스킨과 로션이 떨어진 뒤로는 밤낮으로 그것만 발랐다.

“언니…… 왜 그렇게 살아요……?”

“……?”

“왜 그렇게 사냐고요…….”

“그렇게…… 라니?”

“여자는 아무리 늙어도 여자라는데…… 로션 하나 못 사 바르고…… 왜…… 왜 그렇게 사냐고요…….”

남이야 로션을 사 바르든 말든!

“왜 그렇게…….”

저는 얼마나 잘산다고…… 그녀는 쏘아붙이려다 참았다. 오죽 놀랐으면 우황청심환을 두 덩이나 먹고도 안정이 안 되어 날 찾아왔을까. 그녀는 발등에서 싹을 거두기 위해 내뻗던 손을 거두어들였다. 어디 한번 붙어 있어 보라지, 하는 심정이었다. 거머리도 아니고 붙어 있어 봤자 얼마나 악착같이 붙어 있겠는가.

“정말…… 왜 그렇게 사는 거야…… 언니…… 응……?”

 

껍질을 싹 벗겨 놓은 도라지들은 그새 누렇게 색이 변하고 있었다. 그녀는 도라지 하나를 들고 쪽쪽 찢었다. 정신머리 좀 봐…… 모레가 벌써 십오일이 아닌가. 그녀는 매달 십오일마다 아들에게 학원비와 월세 낼 돈을 부쳐야 했다. 십오일이 어찌나 빨리 돌아오는지 그녀는 한 달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녀의 아들은 경찰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으로, 서울 신림동에서 반지하방을 얻어 생활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들만 생각하면 양잿물을 들이켠 듯 목구멍이 타들어갔다. 사법고시도 아니고, 아들은 사 년 넘게 신림동 고시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삼백 명이 못 되게 뽑는데 육천 명이 넘게 응시를 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잖아도 그녀는 전날 열무김치를 한 단 담아 택배로 부쳤다. 고추장과 마늘장아찌무침, 오징어채볶음도 챙겨 보냈다. 그녀는 늘 아들이 밥을 잘 챙겨 먹는지 걱정이었다. 택배를 벌써 받았을 텐데 아들은 그녀에게 전화 한 통 없었다. 저는 속이 더 터지겠지, 젊은 놈이 붙으리라는 보장도 없는 시험에 매달려 살려니……. 그녀는 딱 한 번 아들의 자취방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식당 개업을 앞두고 정신이 없을 때였다. 식당을 개업하고 나면 시간을 아예 못 낼 것 같아 작정을 하고 다녀왔다. 아들은 대학교 동기생과 방을 얻어 지내고 있었다. 아무리 사내 둘이 사는 자취방이라지만 돼지우리가 따로 없었다. 아들은 그녀를 자취방에 데려다 놓자마자 학원에 수업을 받으러 갔다. 학원 수업이 끝나고 아들이 동기생과 돌아올 때까지, 그녀는 물 한 잔 마실 새 없이 일했다. 세탁기를 돌리고, 먼지를 쓸어내고, 냉장고 속을 청소했다. 그녀가 택배로 올려 보낸 반찬들은 냉장고 속에서 곰팡이가 허옇게 낀 채 썩고 있었다. 아들과 동기생에게 삼겹살을 사 먹이고 내려오는 내내 어찌나 눈물이 흐르던지…… 그녀는 돼지고기주물럭이라도 두어 근 부치지 못한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언니…….”

순영이 불렀지만, 또 뭔 헛소리를 지껄이려고 저러나 싶어 그녀는 무시해버렸다.

“손님이…….”

“……?”

“손님이요…… 언니…….”

그녀의 도라지 쥔 손을 순영의 손이 슬그머니 움켜잡았다. 순영의 손은 살이 쪄 물렁거리는 데다, 방금 해동한 고깃덩어리처럼 차갑고 축축했다. 저녁 내내 닭을 튀긴 손이라 미끄럽기까지 해서인지 느낌이 영 이물스러운 게, 그녀의 등에 소름이 돋았다.

“손님이…….”

하도 떨려 순영의 목소리는 차라리 흐느낌에 가까웠다. 그녀가 손을 빼내려 하자 순영의 흐늘거리는 손가락들이 깍지를 껴왔다.

“손님이 뭐?”

그녀는 순영의 손을 뿌리쳤다. 그 바람에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도라지가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손님이 부르잖아요…….”

“……?”

“아까부터 언니를…… 손님이…….”

바닥에 떨어진 도라지를 주우려다 말고 그녀는 손님을 바라봤다. 손님은 잔을 들어 그 안의 소주를 입에 털어넣고 있었다. 그녀는 손님이 부르는 소리를 못 들었다. 티브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밖에 그녀의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손님이요…… 언니…….”

“손님이?”

그녀가 묻기 무섭게 손님이 그녀를 쳐다봤다. 인상을 찌푸리고 뜻 모를 고갯짓을 했다. 아들 생각을 골 빠져라 하느라 손님이 부르는 소리를 깜박 못 들었는지 모르지…… 심사가 사나워 잠깐 두 귀가 까맣게 멀었었는지도…….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도라지를 주워 놓고 손님에게 다가갔다.

“뭐 필요한 거라도 있으세요?”

그녀가 애써 상냥하게 묻는 말에 손님은 별 대꾸를 해오지 않았다.

“부르시지 않았어요?”

“뭐요?”

손님이 물었다.

“부르시지 않았냐고요?”

“부르긴 누가 불렀다고 그래요?”

“전 또 부르신 줄 알고…….”

손님의 얼굴에 웃음인지 비웃음인지 애매한 표정이 번졌다. 그녀는 민망해서 국자를 들어 냄비 속을 뒤적뒤적했다. 식당이 운동장만 한 것도 아니고 순영이 하는 말을 손님도 똑똑히 들었으리라는 생각이 그녀는 불현듯 들었다. 다 들어 놓고 시치미 떼긴, 손님이 자기 말고 또 있나?

“밥 좀 볶아 드릴까요?”

“밥을 볶아요?”

손님이 황당해했다. 그럴 만한 게, 뜯은 뼈다귀보다 뜯지 않은 뼈다귀가 많았다. 벌건 기름이 엉긴 감자는 냄비 속 여기저기 바위처럼 처박혀 있었다.

“별로 안 드셨네…….”

얼른얼른 뜯지 않고 여태 뭘 했대…… 가버린 게 틀림없는 손님의 수저를 챙겨들던 그녀의 얼굴이 구리처럼 누렇게 굳었다. 먼저 가버린 손님이 한 명이므로 당연히 한 벌이어야 할 수저가 글쎄 세 벌이나 되었다. 세 벌 다 감자탕 국물을 떠먹은 흔적이 있었다. 이 수저 저 수저로 먹은 모양이지, 간혹 그런 손님이 있지 않은가. 깔끔 떠느라 그런 것인지 정신머리가 없어 그런 건지 수저를 두세 벌 늘어놓고 먹는 손님이 어쩌다…… 그렇게 생각하려 애쓰면서도 그녀는 도대체 혼란스러웠다. 식당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설 때 서넛으로 착각했던 게 떠오르면서, 손님이 원래 둘이 아니라 넷이었나 싶은 생각마저 그녀는 들었다. 다른 손님들은 다 가고 저 손님만 남아 저리 궁상떨고 있는 게 아닌가. 설마 그럴 리가…… 그녀는 손님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고개를 저었다. 기껏 챙겨든 수저들을 테이블 한쪽에 놓아 두고 그녀는 손님으로부터 돌아섰다.

손님이 불렀다면서 안달하던 게 언제였나 싶게, 순영은 식당 미닫이문 너머만 멀거니 바라보았다. 식당 밖으로는 사람 그림자 하나 지나가지 않았다. 마을버스는 그새 가버리고 없었다. 그녀는 도라지가 담긴 소쿠리를 들어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언니…… 손님이 부르잖아요…….”

그녀는 못 들은 척했다.

“손님이…… 언니를…… 부른다니까요…….”

“부르라고 그래.”

“손님이 부르잖아요…… 손님이…….”

“부르든지 말든지.”

“언니…….”

“부르다 지치면 말겠지.”

“손님이 언니를……”

“부르다…….”

그녀는 소쿠리를 들고 손님을 지나쳐 주방으로 갔다. 개수대에서 손을 씻고 밑반찬들을 정리했다. 열 시가 넘은데다, 손님이 또 올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젓가락으로 꽈리고추볶음을 뒤적뒤적했다. 밑에 가라앉은 양념이 꽈리고추에 묻어 올라왔다. 반지르르 윤기가 돌면서, 까맣게 쪼그라든 늙은이 입에 꿀을 바른 듯 이물스러웠다. 그녀는 허옇게 볶은 어묵볶음을 한 점 젓가락으로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유통기한이 나흘이나 지난 어묵은 껌처럼 질겼다.

“손님이 부르잖아요…… 언니…….”

순영의 간절하다 못해 애를 끓이는 목소리가 식당에 울려 퍼졌다.

“손님이 언니를…….”

 

식당 전화기가 울린 건 그녀가 고춧가루를 물에 개고 있을 때였다. 하릴없이 노느니 냉면 양념장이나 만들까 해서였다. 눅눅해져 언제 벌레가 생길지 모르는 고춧가루는 벽돌을 빻은 가루처럼 거칠고 거무스름했다. 아들 전화인가 싶어 그녀가 주방을 나서려는데, 순영이 허우적허우적 카운터로 걸어갔다. 그녀가 말리고 어쩌고 할 새 없이 송수화기를 덥석 집어들었다. 고개를 주억이면서 “네네……” 하더니 “맛있게 해드릴게요……” 하고 송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무슨 전화야?”

“감자탕 대(大)자…… 주문이에요…….”

순영이 흥분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 히죽 웃었다.

“주문을 받았단 말이야?”

순영이 움찔하도록 그녀는 새되게 쏘아붙였다.

“지금 주문을 받으면 어떻게 해.”

그녀는 시간을 보라는 듯 시계를 손으로 가리켜 보였다.

“언니…….”

순영이 부들부들 어깨를 떨었다.

“이 시간에 무슨 배달이야, 곧 문 닫아야 하는데…….”

그녀는 일부러 손님이 들으라고 그렇게 말했다.

“벌써 닫으려고요……?”

손님이 있든 없든 그녀가 평소 열한 시까지는 식당 간판 불을 끄지 않는다는 걸, 순영은 알고 있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누가 배달을 하라고 주문을 받아?”

“언니도 참…… 배달할 사람이 없어 배달 못 가요……? 내가…… 내가 있잖아요…… 내가…… 순영이…… 얼른 다녀오면 되잖아요…….”

“자기가?”

“언니…… 그깟 배달 한 번 대신 다녀온다고 발이 닳아 없애진대요…… 발목이 부러진대요…….”

“그렇진 않겠지만…….”

그녀는 순영이 배달을 대신 다녀와 주면 좋기야 하지만, 횡설수설 제정신이 아니면서 뭔 배달을 하겠다고 저러나 싶었다.

“언니…… 언니하고 나 사이에 그거 한 번 못해 줄까…….”

“그거야…….”

“우리가 어디…… 보통 사이예요……?”

저 여편네가 근데 저하고 나하고 뭔 대단한 사이나 된다고 아까부터 자꾸.

“언니…… 언니나 나나…… 공깃밥 하나라도 배달해야 하는 처지잖아요…….”

“그걸 누가 몰라?”

그녀는 카운터를 떡하니 가로막고 서 있는 순영을 밀치고 송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송수화기에 저장된 통화목록을 살피다 재발신을 눌렀다. 신호음이 가는 동안 카운터에 너저분하게 흩어진 메모지와 볼펜을 정리했다. 신호음이 뚝 끊기고 나이 든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혹시 감자탕 주문하셨어요?” 그녀가 묻자마자 남자는 빨리 가져다주기나 하라면서 짜증을 냈다.

열한 시 십 분까지는 마을버스가 있었다. 서두르면 얼추 마을버스를 타고 나갈 수 있을 것이었다. 열한 시 사십 분까지는 지하철이 있으니까……. 공깃밥 하나라도 군말 없이 배달해야 할 판에, 그녀가 아무 죄 없는 순영을 닦달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더구나 얼마 만에 들어온 배달 주문인가.

닷새 전 감자탕 대(大)자 주문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 아홉 시쯤이었다. 그날 하루 종일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소(小)자도 아니고 대자 주문이 어쩌나 반갑던지, 서비스로 계란말이까지 만들어 배달을 나가지 않았던가. 계란을 다섯 알이나 풀고, 당근에 양파에 피망을 잔뜩 다져넣고 두툼하게 부쳐서는……. 209동 1903호. 그녀는 동과 호수를 아직도 정확히 기억했다. 209동은 단지 가장 안쪽에 자리해 있었다. 마을버스가 그곳까지 들어갔다 나올 정도로 아파트 정문에서 꽤 걸어 들어가야 했다. 십 킬로는 나가는 배달 쟁반을 머리에 이고, 그녀는 209동을 찾아갔다. 곳곳에 가로등이 있었지만,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어 아파트 단지는 스산하고 황량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녀가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대꾸가 없었다. 그녀는 쟁반을 길바닥에 내던지고 싶을 만큼 터지는 복장을 간신히 달래고 식당으로 되돌아왔다. 식어버린 감자탕을 넋 놓고 쳐다보고 있는데 전화기가 울렸다. 감자탕을 시킨 게 언젠데 여태 안 오냐는 항의 전화였다. 그녀가 몇 번이나 배달을 갔었다고 말해도 저쪽에서는 도대체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따질 수도,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성질대로 하다 아파트 단지 안에 나쁜 소문이 돌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초인종을 열 번도 넘게 눌렀다니까요.”

“한 번도 울리지 않은 초인종을 열 번이나 눌렀다는 거야?”

저쪽은 숫제 반발이었다.

“209동 1903호 맞잖아요?”

“1903호? 1803호라고 했잖아.”

하지만 그녀가 메모해 놓은 종이에는 분명 1903호라고 적혀 있었다. 취소시키기 전에 당장 가져오라는 으름장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209동을 다시 찾아갔다. 1803호 초인종을 눌렀다. 그런데 1903호처럼 아무 대꾸가 없었다. 초인종을 서너 번 더 누르고서야 그녀는 장난전화라는 걸 깨달았다. 쟁반을 머리에 이고 허탈하게 서서 자신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쳐댔다. 뒀다가 다른 손님에게 낼 수도 없어 순영과 ‘굿모닝슈퍼’ 남자를 불러 먹어치우지 않았나. 남 속 탄 것도 모르고 좋다고 뼈다귀를 뜯는 모습이 어찌나 꼴 보기 싫던지. 주방으로 들어서려다 말고 그녀는 순영을 돌아다보았다.

“몇 동 몇 호야?”

“몇 동이요……?”

“주문한 집 말이야.”

“202동…… 아니지…… 200…… 203동…… 1702호요.”

“203동 1702호?”

순영이 멍청히 표정을 흐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삼십 분이 지났는지 마을버스가 식당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얼른 자판기커피를 한 잔 뽑아들고 식당 밖으로 나갔다. 혹시나 배달 때문에 조금 늦더라도 기다렸다 태우고 나가 달라는 부탁을, 마을버스 기사에게 하기 위해서였다. 마을버스를 놓치면 콜택시를 불러 타고 나가야 했다. 이곳 아파트 단지까지 택시를 부르면 미터기요금에 이삼 천 원을 더 얹어 주어야 했다. 거기다 할증까지 붙으면 배달한 게 헛수고가 되었다. 화장실에 갔는지 운전석은 비어 있었다. 마을버스 뒤쪽에 앉아 있는 웬 남자를 보고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굿모닝슈퍼’ 남자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언뜻 먼저 가버린 손님만 같아 그녀는 유심히 남자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 손님일 리 없었다. 그 손님이 자리를 뜬 지 족히 두 시간은 지난 것이다. 그 손님이 자리를 뜨고 조금 있다 순영이 찾아왔으니까…… 강도가 든 게 그럼 손님이 자리를 뜨고 조금 있다가…… 그녀는 복잡해지려는 머리를 내젓고 마을버스에서 돌아섰다. 강도는 무슨, 그 여편네 말을 어떻게 믿으라구…… 그녀의 고개가 저절로 ‘구구치킨’ 쪽으로 향했다. 주황 불빛 아래 튀긴 닭 조각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누가 그렇게 사먹는다고 저녁 내내 닭 튀기는 냄새가 진동하지 않았나. 닭이란 닭은 죄 잡아다 털을 뜯고 토막을 내 튀기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어쩐지 기름이 펄펄 끓고 있을 것만 같았다. 닭을 하도 튀겨 석유처럼 거무스름해진 기름이 쇳덩이라도 튀겨낼 것처럼.

식당 안으로 발을 내딛다 말고 그녀는 아파트들을 바라보았다. 까마득한 침묵과 어둠에 휩싸인 아파트들은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뛰어넘을 수도, 허물어뜨릴 수도, 그렇다고 엉금엉금 기어오를 수도 없는 벽들이 세상과 그녀 자신을 굳게 가로막고 저리 버티고 서 있는 듯했다. 아파트 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그녀의 머리칼을 쥐어뜯듯 헝클어뜨리고 지나갔다. 현기증을 느끼고 휘청거리는 그녀를 순영이 넋 나간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녹슨 못이 뽑혀 올라오듯 손님의 고개가 천천히 들리더니 순영을 향했다. 207동 1702호라고 했나. 그녀는 목을 빼고 단지 안쪽을 바라보았다. 207동은 205동과 204동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식당 안으로 들자마자, 205동에 떠돌던 불빛 한 점이 꺼져들었다.

주방에서 감자를 다듬는 그녀의 귀에, “입주민이세요……?” 어쩌고 하는 순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치가 어째 손님에게 묻는 소리이지 싶었다. 아까부터 입주민인지 아닌지 궁금해하던 터라 그녀는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순영의 목소리만 이어서 들려올 뿐 손님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입주민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지 뭐예요…… 이천오백 세대라는 말에 홀려 덜컥 장사를 시작했더니만…… 권리금 다 까먹고 빚더미에 앉을 판이니…… 어쩌나…… 닭 한 마리 팔아야 얼마나 남는다고…….”

“…….”

“닭값 떼고…… 양념값 떼고…… 절임무값 떼고…… 기름값 떼고 나면…… 술이나 팔아야 남을까…… 사람이 있어야 닭을 사먹든…… 술을 사먹든 하지…….”

“…….”

“듣자니까…… 분양가보다 오륙 천만 원이나 싸게 나온 물건도 수두룩하다던데…….”

그녀는 순영이 초면인 손님하고 뭔 얘기를 저리 나누나 싶었다. 하기야 사교성이 오죽 좋으면 아버지뻘인 마을버스 기사까지 오빠를 삼았을까.

“육천만 원이면 우리 집 전세금인데…… 순 빈집 천지인데 아무 집이나 한 집…… 우리 네 식구 조용히 들어가 살게 해주면 안 되나…….”

순영의 목소리는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계속 들려오는데, 손님의 목소리는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순영이 푸념하듯 혼잣말을 저리 늘어놓는 듯 들렸다. 하지만 얘기를 가만히 들어 보면 누군가 들으라고 지껄이는 소리이지, 마냥 혼잣말은 아니었다.

“가게 문 닫고 마을버스에 오를 때마다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만 굴뚝 같은 게…… 집에 가봐야 웃을 일이 있나…… 세탁기 돌리고…… 쌀 좀 씻어 안쳐 놓고…… 어질러진 살림 치우다 보면 새벽 서너 시…….”

어느 순간 그녀는 순영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손님 하나 없는 식당에서 그녀 혼자 한탄하듯 중얼거리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떠나고 싶어도 갈 데가 있어야 떠나든 말든 하지…… 세상천지 오라는 데 하나 없고…… 오라는 사람 하나 없으니…….”

순영의 이야기에 취해 그녀는 감자를 깎고 또 깎았다. 속으로 들어갈수록 감자는 싹을 무성하게 뻗었다. 싹에 영양분이 홀딱 빨려, 미더덕처럼 우글쭈글 쪼그라든 감자도 여러 알이었다.

“기름에 찌들어 집에 들어가도 자식새끼가 알아주나…… 남편이 알아주나…….”

어느 세월에 알아주기를 바랄까, 속이나 안 썩이면 다행이지…… 후렴을 넣듯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지난달도 마이너스…… 요번 달도 마이너스…… 마이너스 인생…… 언제까지 마이너스 통장으로 버틸 수 있을지…….”

감자가 달랑 한 알 남았을 때, 보라색 싹들이 그물처럼 뒤엉켜 그녀의 두 발을 덮고 있었다. 내 정신 좀 봐…… 하면서도 그녀는 감자를 마저 집어들었다. 싹을 쳐내고 껍질을 싹 깎고 났을 때 그녀의 손에는 밤톨만큼 작아진 감자가 들려 있었다. 실의감에 빠져 감자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거의 잃고 고만큼밖에 남지 않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쥐뿔도 없던 돈이든 빽이든, 잘살아 보고자 하는 의욕이든, 자식에게 걸던 기대든, 백오십 센티밖에 안 되는 몸뚱이에서 쥐어짜는 억척 같은 힘이든, 억지 희망이든 웃음이든……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감자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정신없이 감자탕을 안쳐 놓고 그녀가 주방에서 나왔을 때 마을버스는 가버리고 없었다. 입주민인지 아닌지 여전히 알 수 없는 손님은 갈 생각을 않고 죽치고 앉아 있었다. 어째 조용하다 싶더라니 순영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잠들어 있었다.

“순영아…….”

그녀는 순영의 어깨를 흔들었다. 단춧구멍이 벌어지듯 순영의 눈이 떠졌다.

“언니…….”

순영이 천장을 향해 들린 턱을 끌어당기고 눈곱이 엉겨 붙은 눈을 끔벅였다.

“자기가 정말 배달 다녀올 거야?”

“언니…….”

순영이 갑자기 경기하듯 온몸을 떨었다.

“순영아, 왜 그래?”

“저기…….”

“왜……?”

“저…… 저 손님 말이에요…….”

“저 손님이 왜?”

“그…… 남자예요…….”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그…… 그 남자라니까요…….”

순영이 말끝에 비명을 내질렀다.

“그 남자라니……?”

“그 남자요…… 우…… 우리 가게에 왔던…… 가…… 강도…….”

테이블이 덩달아 흔들리도록 순영이 몸을 떨었다. 헛소리지 싶으면서도 그녀는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벼려진 바늘처럼 서는 것 같았다. 손님이 또 한 손님과 그녀의 식당에 든 것은 여덟 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순영이 겁에 질려 그녀를 찾아온 것은 아홉 시가 못 되어서였다. 저 손님은 화장실 한 번 안 다녀오고 줄곧 저리 붙박이장처럼 버티고 앉아 있지 않았나. 그렇다면 혹시…… 아무 말 없이 먼저 가버린 또 한 손님이 그녀의 머릿속에 저절로 떠올랐다.

“언니…… 저 손님 좀 내쫓아요.”

“……?”

“저 손님 좀…….”

“순영아!”

그녀는 순영의 등짝을 찰싹 때렸다.

“얼른…… 언니…… 내쫓아버려요…….”

“손님을 내쫓으라니…….”

“쫓아버리라니까요…… 언니…….”

겁에 질리다 못해 순영은 딸꾹질까지 했다.

“저 손님 좀…… 언니…….”

순영이 손으로 그녀의 팔을 붙잡고 흔들었다.

“이 여편네가 근데 미쳤나! 남의 귀한 손님을 내쫓아라 마라 난리야.”

그녀는 손님이 들으라고 부러 버럭 화를 냈다. 순영이 ‘손님’인 자신을 쫓아버리라고 안달하는데도, 손님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자신이 아니라 다른 손님을 두고 그렇게나 쫓아버리라고 떼를 쓰기라도 하는 양. 자기 말고 손님이 또 누가 있다고……. 그녀는 순영의 팔을 뿌리치고 손님 쪽으로 다가갔다.

“맛있게 드셨나 모르겠네…….”

그녀는 먼저 간 손님이 뜯다 만 등뼈를 뼈다귀 수거용 통에 쏟았다.

“왜 먼저 가셨대요?”

손님이 고개를 비틀어 그녀를 쳐다봤다.

“함께 오셨던 손님 말이에요…….”

“손님이요?”

손님의 입 한 끝이 일그러지면서 비웃음 섞인 소리가 새나왔다.

“급한 일이 있으셨나? 뼈도 뜯다 말고 가셨네…….”

그녀는 손님 앞에 지저분하게 널린 뼈다귀들과 물수건, 휴지를 손으로 마구 집어 통 속에 넣었다. 순영이 시키지 않아도 그녀는 손님을 쫓아버리고만 싶었다. 실은 아까부터 손님이 그만 좀 가주었으면 하고 바라지 않았는가. 손님이 지금은 일어나야 설거지를 대충 끝내고 마을버스에 오를 수 있을 것이었다. 손님이 손님을 불러온다고 혹시 아는가, 밉상에 진상에 우거지상인 이 손님이 어느 날 주렁주렁 손님들을 매달고 나타날지……. 알다가도 모르는 게 인생이 아니라 손님이 아니던가.

“시간이 벌써 열한 시네…… 입주민이신가?”

그렇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손님은 대꾸가 없었다.

“입주민이시면…… 돈을 많이 버셨나 봐요, 아직 젊으신 것 같은데…….”

손님은 역시나 묵묵부답이었다.

“몇 동에 사세요?”

손님이 입주민인지 아닌지 기어이 알아야겠기에 그녀는 대놓고 물었다.

“몇 동이요?”

그건 뭐 때문에 알려 하느냐는 투로 손님이 물었다.

“그냥 궁금해서요.”

“302동이요.”

손님이 인심 쓰듯 대뜸 대답하더니 소주를 들이켰다.

“302동이요…… 댁에서 사모님하고 아이들이 눈 빠져라 기다리시겠어요.”

손님은 그러나 당장 일어설 생각이 없는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언니…….”

어느 결에 뒤에 와 섰는지 순영이 그녀의 웃옷 자락을 잡아당겼다.

“언니, 얼른…….”

순영의 흐느낌과 섞여, 감자탕이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정신 좀 봐!”

그녀는 거머리나 되는 양 순영의 손을 떼어내고 주방으로 갔다. 그녀가 뚜껑을 열자마자 뜨거운 김이 그녀의 얼굴을 녹일 듯 확 끼쳤다. 감자가 빨리 익게 뚜껑을 닫아 둔 탓에 국물이 끓어 넘치고 사방으로 튀었다. 그녀는 들깨가루를 한 숟가락 뿌리고, 종잇장처럼 메마른 깻잎을 한 주먹 얹었다.

배달 나갈 쟁반을 들고 그녀가 주방에서 나왔을 때, 순영은 달력처럼 벽에 딱 붙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순영의 머리 바로 위 액자도 떨리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평화를’이라는 구절을 십자수로 수놓은 그 액자였다.

“순영아, 배달!”

그녀는 순영의 머리에 쟁반을 얹어 주었다.

“언니…….”

순영이 마지못해 손으로 쟁반 양끝을 그러잡으면서 딸꾹질을 했다.

“길바닥에 쏟지 말고 조심해.”

딸꾹질이 멎지 않는 순영의 등을 그녀는 억지로 식당 밖으로 떠밀었다. 순영이 마지못해 터벅터벅 식당을 나섰다.

“언니…….”

“헤매지 말고 얼른 다녀와.”

손님을 쳐다보려는 것인지 순영이 뒤를 돌아다보려 했다. 하지만 쟁반에 목이 눌려 그러지 못했다.

“늦어서 그릇은 내일 찾아간다고 해.”

쟁반을 쏟을 듯 불안하게 걷는 순영에게서 그녀는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순영아, 203동 1702호야!”

순영의 모습은 그러나 이미 어둠 속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마을버스가 오는가, 그녀는 도로 쪽을 바라보았다. 마을버스는 아직 오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배달을 다녀올 걸 그랬다는 후회를 뒤늦게 하면서 식당 안으로 들었다. 손님을 흘겨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쪼그려 앉아 주방 바닥에 어지럽게 널린 감자 껍질과 싹을 손으로 쓸어 상자에 담았다.

302동이면 어디야?

무심히 중얼거리던 그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녀가 알기로, 2단지인 그 아파트 단지에는 201동부터 209동까지밖에 없었다. 302동이면 3단지가 아닌가. 3단지는 그러나 아직 조성 중이었다. 2단지가 대거 미분양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손에 감자 껍질과 싹을 잔뜩 움켜쥔 채로 후들후들 떨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때까지 그녀의 발등에 들러붙어 있던 감자 싹이 시들 듯 홱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내내 꿈쩍 않던 손님이 조용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문장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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