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

 

연희

 

조헌용

 

 



 

  


 

힐끔힐끔 엿보이는 치마 속 빨간 속옷을 생각하며 김ㄷ연은 침을 꼴깍 삼켰다. 빨간이라면 눈썹을 기꺼이 맡겨도 좋았다. 햇살 좋은 풀밭을 떠올렸다. 혹은 작은 방 침대 위가 좋을까. 예수처럼 펼쳐진 연의 두 팔을 빨간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쭉 빠진 두 다리로 지그시 누를 터였다. 숨 막힐 듯 다가서는 분꽃 내음에 취해 배시시 웃음을 흘릴 때쯤 날아드는 지청구. 나쁜 새끼, 니가 날 두고 딴 년을 만나, 이번에는 또 어떤 년이야, 응, 응? 나쁜 새끼. 넌 내 꺼야, 내 꺼라고. 빨간의 입에서 술처럼 달콤한 욕이 튀어 나왔다. 빨간이 고운 손을 들어 연의 앞머리를 뒤로 넘기고 준비해 둔 일회용 면도기로 눈썹을 쓰윽 쓱 밀기 시작했다.

꼭 일회용이래야 해요. 것도 양날로다가. 그게 근방 털이 꽉 차거든. 그럼, 잘 안 밀려요. 그때부터 손에 힘이 들어가 살도 좀 찢어지고, 그래야 부들부들 온몸이 짜르르해사?

아랫도리로부터 스멀스멀 떨려 오는 간지러움을 참지 못해 연은 오줌을 싸고 돌아서는 남자처럼 온몸을 조심 흔들었다. 그깟 눈썹이야 없어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도 생각이 더 이어지지 않았다. 왜일까? 곰곰 생각하다가 연은 그것이 머리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숱이 많지 않은 머리를 연은 언제나 모자로 숨기며 다녔다. 빨간이 이번에는 연의 앞머리 대신에 모자를 넘겼다. 훤히 드러난 이마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빨간이 다른 여자들처럼 연을 노려보다가는 어디론가 달아날 터였다. 너, 대머리였어? 그런 한 마디를 어쩌면 내뱉을지도 몰랐다. 오래 전에 이마와 얼굴이 같은 크기로 변해버렸다. 그게 다 잘난 일꾼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연의 손에 숟가락보다 삽을 먼저 쥐어주었다.

이걸 먼저 잡아야지 밥 굶을 일이 없는 거드메.

워낙 산골이었고 또래 친구들이 모두 집안 허드렛일을 도와서 연은 그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기며 자랐다.

이 어깨가 없으면요, 용형, 우린 일을 안 해도 되지 않겠어요? 난, 정말, 이 어깨를 뽑아버리고 싶었드래요.

술잔을 내려놓은 연이 자신의 어깨를 두 손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아버지는 소 한 마리만 생기면 더 이상 일을 시키지 않겠노라며 연의 어깨에 비잡이를 걸고는 했다. 좁은 비탈길에 소 한 마리 되어 연은 우줄우줄 하루 종일 쟁기질을 했다. 친구들이 하나둘 대처로 배움을 떠나고 스스로도 무엇인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길 때쯤 연은 왜 그렇게 일만 죽어라 해야 하는지 비로소 궁금했다. 쟁기를 끌고 지게를 지고 꼴을 나르고, 모두 어깨가 하는 일이었다. 일이 하기 싫을 때마다 연은 욱신거리는 어깨를 뽑아버리고 싶었다. 떡진 머리에 땀이 스몄다. 일에 지쳐 머리를 감지 못하고 잠든 날들이 많아졌다. 숱 많은 머리칼이 햇볕과 땀에 비루먹어 듬성듬성 빠질 때쯤 소가 생겼다. 일은 멈추지 않았다.

아부지, 나 인제 일 안 해요. 문학을 할 거란 말예요.

문학, 그게 뭐에니? 소보다 귀한 거니, 씨앗처럼 예쁘거니?

옥수수 씨앗을 심다 말고 아버지는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니가 만날 헛 생각만 하므 코앞만 보고 먼 산을 못 보니까 쟁기질이 이리 삐뚤 저리 끼우뚱거리는 거 아님, 쯧쯧.

강릉에 있는 대학에 원서를 넣고 돌아왔다는 말에 아버지는 담뱃불을 거푸 빨아들였다. 거 대학에는 어찌 돈을 대누? 일 없으니 그냥 한 해만 더 열심히 하믄 내 대학 보내 줄 거마. 아버지는 말했지만 한 해가 지나고 다시 한 해가 지나도 돈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에이 씨, 자꾸 그러믄 내 이 소 팔아 버릴 거예요. 진짜래요, 거짓말 아니에요!

협박을 해도 아버지는 콧방귀를 뀌며 온갖 달콤한 말로 연을 달래 놓았다. 연이 더 참지 못해 작은 트럭에 소를 싣고 달아나던 밤, 멀리서 소도둑을 외치는 아버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소 기침을 뱉던 아버지 것이라고는 도무지 믿기 힘든 목소리였다. 덜컹거리는 자동차 엔진 소리에 묻혀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연은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그 봄, 연은 소를 닮은 아버지의 눈이 떠올라 우시장에 가보지도 못하고 소와 함께 며칠 꽃 아래를 떠돌았다. 그걸 소설이라고 썼더니 어느 새 영화가 되어 돌아왔다. 맙소사,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이라나. 남자 주인공처럼 숱 많고 찰랑거리는 머리를 가졌다면 공효진처럼 예쁜 여자가 바람 피운 연을 나무라며 나쁜 새끼, 니가 날 두고 딴 년을 만나, 나쁜 새끼, 씨발 새끼, 욕을 하며 눈썹을 밀었으려나. 장가를 들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년 하나 얻었으려나. 그랬다면 연도 아버지처럼 일에만 죽어라 매달렸겠지.

돌아온 아들을 보고 아버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트럭에 실린 소를 보며 우엉우엉 울음을 흘렸던가? 그해가 가기 전에 아버지는 연 앞에 누런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한동안 소 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사람은 어차피 일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들이라는 걸 대학에 들어가서 알게 되었다. 태초에 오직 신들만 이 세계에 존재했을 때 고급 신들을 위해서 일만 하던 하급 신들이 있었다. 해도 해도 그리고 또 해도 또 하고 또 해도 하급 신들의 일은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반란을 일으켰고 모두 몰살당했다. 하급 신들의 우두머리인 웨일라는 온몸이 수만 조각으로 찢기는 형벌을 받았다. 웨일라의 조각난 살과 피에 흙을 섞어 신들은 일꾼을 만들었다. 사람이었다. 그러니 사람은 모두 일꾼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으로 태어나 일하지 않고 사람을 부리기만 하는 이들은 신일까, 사람일까? 소를 부리지 않고 소를 먹기만 하는 존재들은 사람일까 신일까? 연은 태초의 신화라는 길가메시 서사시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나마 소를 부릴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을까? 소 닮은 눈을 하고 우엉우엉 눈물을 흘리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연이 소설가라는 이름을 얻고도 고향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아버지의 눈빛 때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삽 들고 논두렁에 나가야 마음이 편해 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살아간다면 평생 제대로 된 글 하나 쓰지 못하고 늙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솟아나곤 했다. 아버지를 피해 도망치듯 연희에 찾아든 것도 그런 무서움 때문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연은 숱 없는 머리가 고마웠다. 빨간 속옷이 눈썹을 밀어 주지 않는 것이, 눈썹을 밀며 욕을 해주지 않는 것이 고마웠다. 아직 장가들지 못한 스스로가 참 많이도 고마웠다.

니그럴, 그니까 말야 성형. 성형의 눈썹은 말예요, 그 빨간 팬티가 그랬다 이 말예요.

연은 다짐하듯 말을 욱대기며 쩝쩝 입맛을 다셨다. 몇 잔 술이 알싸하게 연을 달래 주었다.

 

이제 눈썹이 검은 테를 두르고 자리를 잡았다. 눈썹처럼 사라졌던 달이 다시 차오른 것도 오래전이었다. 그런데도 다시 또 그 이야기다. 눈썹을 만지며 이ㅎ성은 한숨을 내뱉었다. 도무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이놈의 글쟁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다고 성은 생각했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조그마한 텃밭 하나 갈아 보자고 모여서 한다는 것이 대낮부터 술질이었다. 술을 마시는 거야 나무랄 일이 아니었지만 몇 잔 술에 얼굴이 불콰하게 달아올라 한다는 것이 또 눈썹 타령이다.

오래 머무르지 않는 곳에서 소문은 더 많이 생기고 더 많이 떠돌았다.

연이 처음 빨간 속옷이라고 했을 때 성은 그게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연희에 찾아온 몇 안 되는 사람들 가운데 짧은 치마는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 이야기하고 나서야 성은 보름쯤 전 술자리에 찾아온 후배를 생각해 냈다. 연희에서 일하던 직원 하나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고 했다. 촌장까지 찾아와 벌인 송별 술자리에 후배 하나가 찾아오긴 했었다. 연은 후배를 보며 믿~어도 될까요, 당신이 하신 마알씀, 사랑한다는 그 마알을, 제가 믿어도 될까요, 임희숙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었다. 긴 생머리를 하고 작고 예쁘장한 얼굴, 연극판에서 제법 주가를 올리는 후배였다. 후배는 그러나 짧은 치마가 아닌 진한 청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짧은 치마는 외레 그만둔 직원이 입고 있었다. 그녀의 속옷이 빨간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혹여 두 사람의 이미지가 연에게 합쳐 나타난 것은 아닐까 성은 생각해 보았다. 때때로, 아니 자주 사람들의 기억은 제멋대로 망가지고 일그러진다. 성은 요즘 그걸 너무도 자주 느끼고 있다. 그러니까 연이 용을 바라보며 어깨를 끊어버리고 싶다고 했던 것이 텃밭을 갈던 아침이거나 혹은 아주 오래전 일처럼만 여겨졌다. 밥을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파 왔고 잠을 자다 깨어 보면 전혀 낯선 곳에 머무르기 일쑤였다. 어느 사이 세계는 그렇게 알 수 없는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세계가 아닌 연희가 가지고 있는 힘인지도 몰랐다. 연희에 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생겼을 터였다. 성이 들어오기 한참 전부터 연희에 들어와 작업을 하는 후배 작가 몇이 귀신을 봤노라고 했다. 가위 눌리는 일이 다반사였고 이층 창문 밖에 서성거리는 그림자가 많았노라고 했다.

연희에서는 눈썹이 사라진 것도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인지 몰랐다.

아 참, 아니래도 그러네. 그냥 미스터리라니까. 아니 그 후배가 내 눈썹을 밀 이유가 전혀 없다니까요. 그리고 나는 잘 때 문을 잠그고 자니까 다른 사람은 절대 들어올 수 없다니까. 그냥, 이건 수수께끼예요. 초현실이라니까. 초현실.

달리 생각할 도리가 없었다. 성은 다른 날처럼, 아니 더 가뿐한 마음으로 일어나 세면대 앞에 섰다. 면도를 하고 세수를 하고 스킨과 로션을 발랐다. 무언가 다른 날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이상한 기분에 거울을 한참 동안이나 들여다보고서야 간밤에 눈썹이 모두 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귀신을 보았을 때보다 더욱더 놀란 마음이었다. 귀신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알 수 없었지만 분명 그런 기분이었다.

지난 밤 술자리를 떠올렸다. 술이 적지 않았지만 눈썹이 사라지는 것을 모를 만큼 많지도 않았다. 배우에서 극작가로 변신해 쓴 몇 편의 희곡이 제법 좋은 성과를 거뒀다. 성은 뒤이어 다른 희곡 하나를 써나갔다. 진흙빵을 구워먹는 아이들을 티브이에서 보고 나서였다. 한쪽에서는 살을 빼기 위해 러닝머신에 오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먹을것이 없어 흙을 구워먹어야 하는 세상 속에서 성은 살고 있었다.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이 일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연은 말하지만 성은 알 수 없었다. 도무지 누가 신이고 누가 사람이란 말인가? 해석이 불가능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성이 새로운 희곡을 쓰면서부터였다. 무슨 복인지 〈살〉이란 제목의 희곡이 창작팩토리 대본공모에 선정되었다. 극을 준비하면서 성에게 찾아든 미스터리는 사라졌다. 다시 그 알 수 없는 그림자가 달려들기 시작한 것은 연희에 들어오면서부터였다. 소나무 숲을 걷다 보면 어느 새 남대문시장 한가운데서 물건 파는 노파들과 노닥거리고 있었다. 주머니에는 동전 하나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몇몇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차비를 꾸어 오곤 했다. 희곡을 써보겠다고 컴퓨터를 열면 도무지 기억에 없는 글자들이 화면에 가득했다. 그런 날이면 진흙빵을 씹어 먹은 것마냥 목 안이 컬컬하게 잠겨 왔다. 눈썹이 사라진 것도 그저 그런 미스터리의 하나로 생각하기로 했다. 누가 몰래 방에 든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누군가 눈썹을 밀었다면 눈썹 몇 올은 주위에 흩어져 있어야 했다. 방은 오히려 다른 날보다 한결 더 깨끗했다. 사람들은 믿지 않을 터였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눈썹이 없어졌다. 누가 그 말을 믿어 줄 것인가? 성은 옷장을 뒤졌다. 모자가 보이지 않았다. 가까운 시장으로 가는 길이 멀기만 했다. 한동안 성은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다녀야만 했다.

근데 말이야, 연형. 진짜 누가 형 눈썹을 밀어 주면 좋겠어요? 내가 후배 불러 줄까, 짧은 치마 입고 오라고.

에이, 농담이래요. 나, 그럼 진짜 장가 못 가요. 그나마 머리도 없는데, 흐, 흐흐……. 하긴 장가도 못 가고 이러고 있으니 소설이나 쓰지 안 그럼 논지렁이밖에 천상 더해요.

성이 한 손을 들어 이제 막 자리를 잡아 가는 눈썹을 쓰다듬었다. 까칠까칠 참 좋았다.

 

지가 밀어 놓고 혼자 생쇼를 다 하고 있어요. 목구멍까지 차오른 소리들을 술 한 잔 털어넣고서야 안ㅎ미는 겨우 갈무리할 수 있었다. 꼭 있다니까, 꼴값을 떠는 것들이. 모두 입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것들이었다. 자리라는 게 사람을 만들었다. 무작정 날 잡아 잡수, 사는 것은 아니었지만 웬만해서는 참아야 했다. 손톱밑 가시처럼 신경 쓰이지 않으면 웃어야 하는 게 매니저라는 직책이었다. 처음 창작촌이 생기고부터 이 일을 시작했으니 벌써 한 해가 훌쩍 지났던가. 석 달에 한 번씩 입주 작가들이 바뀌었다. 다섯 번이 넘는 동안 미는 백 명이 넘는 작가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함께 부대끼며 흘러가는 일이 나쁘지 않았다. 처음 한두 번 헤어지는 게 영 아쉽고 쓸쓸하더니 이제 그렇지도 않았다. 다만, 하루하루가 아무런 탈 없이 흘러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어느 날에는 집필실을 하나 달라고 작가 하나가 달려왔다. 막무가내였다. 신청 기간이 끝났으니 다음 해를 기약하자고 했다. 작가는 서울시장이 자신의 후배라며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고 했다. 네네, 좋은 소리를 하던 미가 그럼, 시장한테 가서 말하세요? 짜증을 섞어 말을 토해 놓았다. 그제야 작가는 시설이 어떻다느니, 응대가 어떻다느니, 생난리를 치며 돌아갔다. 그런 날이면 민원이 들어왔다며 서울시 다산콜센터로부터 지청구가 날아들었다. 차라리 나은 편이었다. 인터넷이 먹통이라며 새벽 3시에 손전화를 걸어 신경질을 부리는 작가가 있었고, 술 마시고 들어와 열쇠가 열리지 않는다는 작가가 있었고, 소나무 밭에서 똥을 싸는 작가도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집을 향해 욕을 내뱉는 작가도 있었다.

씹새야 니가 예수냐! 떡 다섯 쪼가리하고 물고기 두 마리도 아니고 말야, 이 씹새야! 무슨 이십구만 원으로 팔순 잔치를 해, 이 씨발 넘아. 응. 응 이 씹새, 너 가만히 있어, 응. 내가 총 가지고 말야, 내가 총 가지고 말야. 대대, 대한민국 만세, 자유주의 만세, 민주화 만만세.

아침이 되면 귀신이 외치기라도 했다는 듯 아무도 내가 그랬느니 나서는 작가가 없었다. 그래 귀신이 있기는 할까? 가위 눌렸다거나 평범한 귀신을 보았다는 것은 다반사였다. 귀신이 소나무 속으로 숨어드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어디서 왔는지 예쁜 여자 몇이 야외공연장에서 밤새 놀다가 아침이면 여우로 변해 뒷산으로 달아난다고 했다. 최근에는 미디어랩이나 작가 쉼터에서 놀고 있는 하얀 소복을 보았다고 했다.

성의 눈썹도 그들이 가져갔을까? 이빨을 가져가는 까치처럼 귀신이 성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기 위해 눈썹을 가져갔을까? 설마! 아무렴! 그 많은 귀신이 왜 자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인지, 미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ㅎ성 작가님, 그러니까 눈썹이 어느 아침에 사라졌다, 이 말이죠? 근데 그게 말이 안 되잖아, 솔직히 말해 봐요. 술 먹고 혼자서 밀어 놓고는 괜히 무안하니까 그러는 거죠?

어느 연극판 뒤풀이였을 것이다. 그보다 꽁무니를 쫓는 새침데기와 술자리가 더 어울리겠다. 연극적 인생이 어쩌니저쩌니 썰을 풀어도 새침데기는 도통 넘어올 기미가 없다. 새침데기는 금세 일어섰고 술자리 끝에 뱉은 말들이 성을 괴롭혔다. 삶이 미치도록 허무하게만 여겨지는 날이었다.

오래전 본 영화 한 대목, 눈썹을 미는 핑크 플로이드처럼.

난, 지금 무감각해요. 좋아요. 주사를 놓죠. 이제 기다릴 수 있어요. 조금 따가울 거예요. 참을 수 있겠죠? 아마 효과가 있을 거예요. 좋아요. 공연을 끝까지 해낼 수 있을 거예요. 어서, 공연에 가야 해요. 고통은 없어요. 당신도 멀어지겠죠, 저 멀리 수평선 위 배의 연기처럼. 당신도 그 파도 속에 있겠죠. 입술은 움직이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노랫말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아름다워서 아플 수 있을까? 그런데 감히 핑크 플로이드를 흉내 내어 눈썹을 밀다니. 하여간 꼭 있다니까, 작가입네 꼴값을 떠는 것들이 하고 보니 미는 핑크 플로이드를 질투하던 어린 날들이 떠올랐다.

뼈까지 스미는 아픔을 어쩌지 못해 미는 머리를 밀었다. 벌써 십 년이 훌쩍 지난 일이었다. 새삼 시간이 쏜살같음을 느꼈다. 시인처럼 살고 싶었다. 시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는 도무지 견딜 자신이 없었다. 시인이라는 이름을 감히 얻고 보니 더 견딜 수가 없었다. 부끄러웠다. 가위를 들어 싹둑싹둑 긴 머리를 잘랐다. 비뚤배뚤 엉망인 머리가 못난 시와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미는 일회용 면도기를 사다가 아주 조금씩 머리를 밀어냈다.

아주 오래 지나고서야 그 모든 것이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떨었던 꼴값임을 알게 되었다. 시만 쓰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시를 썼다. 버렸던 직장을 다시 얻었다. 창작촌 매니저가 되어 작가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이별에 대해, 이별의 재구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때쯤 비로소 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이별의 재구성』을 엮었다. 고맙게도 상까지 받았다. 껍데기는 가라던 시인의 이름으로 된 상이었다. 껍데기를 벗을 수 있을까, 미는 다시 한 번 두려웠다.

미는 성의 눈썹 언저리를 조심 바라보다가 자신의 머리를 쓸어넘겼다. 길게 자란 머리가 고마웠다.

 

또, 또 나야. 나 아냐, 아니라니까. 내가 왜? 내가 성 눈썹을 왜 밀어?

이ㅁ랑은 날아든 화살에 놀란 토끼처럼 눈을 커다랗게 뜨며 손사래를 흔들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아닌 밤중에 눈썹이었다. 어느 날 밤 눈썹이 없는 성이 모자를 푹 눌러쓰며 연희를 오갔다. 그걸 처음 본 사람이 랑이기는 했다. 어, 성, 얼굴이 왜 그래? 랑이 물었다. 랑은 최초의 목격자라는 까닭으로 때때로 범인으로 지목 받았다. 뜬금없었지만 이상하게 재미있기는 했다.

나였다면 말이야, 눈썹만 밀지 않아. 머리 한가운데 고속도로도 몇 줄 남겨 두지. 히히.

설픈 웃음을 흘리며 랑은 성을 바라보았다. 도무지 저 남자는 어디서 눈썹을 흘리고 다니는 것일까? 어쩌면 내기를 했을지도 몰랐다. 이제 막 모집한 배우 가운데 예쁘장한 계집아이 하나 있었겠지. 야, 쟤, 이쁘지 않냐, 내가 꼬신다. 누군가 먼저 그렇게 말했겠지. 이어서 아니야 쟤 내가 먼저 찜했다, 누군가 말을 이었겠지. 한때 잘나가던 배우며 지금은 전도유망한 극작가 성이 가만 있을 수가 있나. 어어, 왜들 이래. 쟤 내 꺼야. 그렇게 시작된 말장난이 다른 스태프들과의 내기가 되었다.

넘어올 듯 말 듯 계집아이는 속만 썩였다. 연습을 하고 공연을 하는 동안 계집아이는 작은 새처럼 포롱포롱 세 사람 사이를 날아다니며 귀여운 웃음을 흘렸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장난처럼 시작된 사랑이 깊어졌다. 마지막 공연이 끝났을 때 계집아이는 셋 모두를 두고 훌쩍 떠났다. 승자는 없었다.

그러니까 세 사람이 모두 패배를 시인하고 술을 사기 시작했다 이거지. 일차는 누가 사고 이차는 누가 사고 삼차는 누가 사고. 그런데 아무도 진짜 벌칙을 시행하지 않는 거지. 술자리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성은 그게 또 억울해지는 거야. 아, 난 사랑을 한 게 아니었구나. 그냥 꿈을 꾸는 거였구나. 그러면서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면도기를 들고 가까운 화장실에 가서 쓱쓱. 그렇게 혼자 벌칙을 실행하는 거지. 그러니 방 안에 흔적이 남을 턱이 없지. 히히. 근데, 이거 제법 재밌다. 나 소설로 쓸래, 소설로 써도 돼?

성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랑은 다시 히히 설픈 웃음을 토했다. 소설을 생각하며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랑은 기억나지 않았다. 시를 쓰다가 소설을 처음 썼을 때 랑은 좋았다. 수만 가지 종류의 사탕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예쁜 사탕가게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언제라도 손만 뻗으면 그 사탕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햇살 아래 사탕을 빨아 먹으며 재미난 동화책을 읽는 기분이었다. 남들에게 남루해 보이는 엄마의 식당 이야기를 솔직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썼다. 『삼오식당』. 그곳을 드나드는 수많은 사람과 랑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랑에게 소설은 그렇게 왔다. 비참하고 슬픈 것이 아니라 기쁘고 행복한 것이었다.

어느 순간 랑은 기쁘게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렸다. 글을 쓰기 위해 아픔을 찾아야 했고, 글에 쫓겨 행복을 잊어버려야 했다. 대여섯 해 사이에는 그게 더욱더 심했다. 엄마가 언니의 보증으로 가게를 말아먹고 좁디좁은 랑의 집에 들어와 더부살았다. 남편의 눈치가 심했지만 모른 척 소설을 썼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랑은 글을 썼고,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글을 썼다. 소설이거나 청소년소설이거나 동화이거나 잡지에 실을 심심풀이 산문이거나 가리지 않았다. 글을 써야만 엄마의 빚을 갚을 수 있었다. 글을 써야만 몰려드는 빚쟁이들에게 한두 푼 돈을 쥐어주며 큰소리를 칠 수 있었다. 글을 써야만 좁은 집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몇 해 사이 서른 권이 넘는 책을, 그야말로 찍어냈다. 부끄러웠지만 부끄럽게 생각지 않기로 다짐했다. 부끄러울 까닭이 없었다. 부끄럽다면 오히려 글을 쓰지 않는 작가였다. 빠삐용의 어느 장면처럼 인생을 소비하는 것이야말로 죄라면 죄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헛헛할까. 엄마의 빚을 갚고 그토록 소원하던 큰 집으로 이사를 했다. 부러울 게 없었다.

그런데 왜?

부러 히히거리며 웃었지만 랑의 마음은 꺾인 가지처럼 스산스러웠다. 연희에 들어오면 좀 나아지려나, 그러나 외레 눈덩이처럼 더 커지기만 했다. 밤이 늦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이 와도 잠이 오지 않았다. 입고 있던 하얀 운동복 채로 새벽 안개가 내려앉은 솔 숲을 거닐다가 아무도 받지 않는 전화를 걸고는 했다. 신호대기음 사이로 랑은 혼자 주저리주저리 말을 토해 놓았다. 그래도 마음이 어지러우면 사동 지하에 있는 작가쉼터 깊은 어둠 속으로 스며들곤 했다. 불을 켜지 않은 채 러닝머신 위를 한참 달리면 돌개바람 같던 마음이 겨우 가라앉고는 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혼자 탁구공을 튕기면 깔깔 웃음이 나왔다.

연재를 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석 달, 랑은 웃고 떠들고 술 마시고 놀기로 했다. 술이 떨어지면 아무 때고 가까운 작가들에게 어디냐, 술 있냐? 문자로 물어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또냐? 대답을 하고 작가들은 와서 가져가라는 등, 안 그래도 술 마시고 싶었다는 등, 지금 이동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다는 등 대답을 해왔다. 그들에게 다가가 히히 웃으며 못난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다. 랑은 그러나 오늘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빠져버렸다는 성의 눈썹처럼 마음속 찌꺼기가 사라져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술잔 속에 담긴 달 하나를 랑은 가만히 들어올렸다.

 

부러움인지 시샘인지 조ㅎ용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연은 장가를 가지 않아 좋은 글을 쓸 수 있노라고 말하고 있었다. 성은 이 세계와 저 세계의 숨어 있는 진실을 알아야만 진정한 작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미는 손목의 힘을 빼야 비로소 좋은 글을 쓸 수 있노라고 말하고 있었다. 랑은 너무 많은 글을 쓰다 보니 이제 지쳤노라고 엄살을 부리며 글을 쓰지 않는 것들은 그러니까 글쟁이가 아니라 삶을 허비하는 쓰레기 같은 존재라고 말하고 있었다. 맞는 말 같기는 했다. 모두 잘나가는 작가들이었고 성을 빼고는 모두 오랜 글동무들이었다. 글쟁이 13년차, 그러나 용이 가지고 있는 책이라고는 꼴랑 두 권이었다. 그것도 하나는 밥벌이를 위해 울며 밑 닦는 식으로 쓴 청소년평전이었다. 연희에 들어오기 위해서 써낸 신청서에는 지금까지 낸 책이랑 받은 상이랑 뭐 그 따위 것들을 적는 곳이 있었다. 먹먹했다. 한참 들여다보아도 쓸 말이 없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일찍이 시와 글씨에 열중했다면 작은 초가 한 칸으로 넉넉할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빈 여백으로 내미는 신청서가 부끄럽지 않았을까. 그래도 하루하루 밥 벌어 살아가는 일에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거짓이었다. 글을 쓸 때는 먹고사는 일이 좇아온다고 투정을 부렸고, 먹고사는 일에는 내가 그래도 작가입네 열심을 다하지 않았다.

나무이고 싶었다. 바람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실은 바람이었다. 바람이라 생각했으나 실은 바람도 아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나뭇잎 하나. 그것도 모르고 지랄을 떨고 다녔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일까. 거창하게 문학이랄 것도 없이 소설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스물일곱에 등단이라는 것을 했다. 세상을 다 알지도 못하고 세상을 다 겪지도 못하고 너무 이른 나이에 명함을 하나 받은 꼴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용은 목에 잔뜩 힘을 주고 다녔다. 등단작을 보고 몇몇 계간지에서 소설을 보자고 했다. 목에 들어갔던 힘이 어깨로 내려갔다. 선배들을 무시했고 동무들을 업신여겼다. 술을 마시면 아무나 붙잡고 싸움을 걸었고, 여자들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녔다. 함부로 사는 것이 자유라고 여기며 지냈다. 자유에 묶여 있는 줄도 모르고 용은 살아왔다. 그러면서 고귀한 척 똥폼은 다 잡고 다녔다. 용은 지난 며칠 전의 술자리에서 랑이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그때 내가 왜 니 얼굴에 물 끼얹었는지 알아? 모르지? 야, 너네 엄마만 식당 하냐? 우리 엄마도 식당 했다고. 그래, 임마, 삼오식당. 근데 말이야. 아줌마한테 심부름 좀 시키니까, 니가 그러더라. 왜 그렇게 함부로 하냐고. 지랄 씨발 놈. 그 아줌마들 그러라고 있는 거야. 그래야 돈도 받고, 씨발. 다 너 같으면 누가 그 아줌마들한테 일을 시키냐, 어? 그리고 말이야, 넌, 왜 모르는 사람한테만 친절한 척 지랄이야. 좆같이 사는 주제에. 근데 나는 씨발 지금 너보다 그때 니가 더 좋기는 하다. 쌈닭 같던 놈이 비실비실 뭐냐? 너, 사람 되면 소설 못 쓴다.

모른 척 지내 왔던 부끄러움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용은 차라리 성이 부러웠다.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눈썹처럼 지난날들이 깨끗이 사라져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혹은 눈썹을 밀면서까지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성의 사라져버린 눈썹을 용은 다짐이라고 여겼다. 곧 있으면 연극을 개봉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은 그동안 너무 게을렀다고 했다. 게으른 자신을 책망하며 성은 눈썹을 밀었다. 이제 한눈을 팔지 않을 것이다. 눈썹이 없으니 헛된 바람에 휘날리지도 않을 것이다. 비가 오면 그대로 눈으로 스미겠지, 그렇게 세상과 하나가 될 것이라고 성은 다짐했다.

연희에 들어오면서 한 번쯤 미친 것처럼 소설만 쓰겠다고 용은 다짐했다. 미뤄 온 장편을 끝내고 몇몇 단편을 써야지 마음먹었다. 용은 자신이 나무 끝에 매달린 나뭇잎이란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큰병을 얻었다. 병치레를 하다 보니 어느 사이 석 달이 훌쩍 흘러버렸다. 연희를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단 한 편의 소설도 쓰지 못했다. 그건 용의 잘못일까 게으름일까?

끈을 놓지 않고 겨우겨우 써온 글들을 그나마 연희에서 하나로 묶었다. 『햇볕 아래 춤추는 납작거북이』. 살아 줘서 참 고마웠다. 집안은 가난했고 어버이는 자주 싸웠다고 작가의 말에 용은 썼다.

싸움을 피해 친구 녀석의 집을 찾는 것이 더 이상 부끄러워 견딜 수 없을 무렵 용은 마루 밑이나 쪽방 농 뒤로 몸을 숨겨야 했다. 그 지루한 시간들을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쓴 낡은 책들을 읽으며 용은 견뎠다. 그것이 소설책이었는지 시집이었는지 혹은 삼류 주간지였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책’이라는 사실에 용은 감사했다. 이후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글은 유화 부인을 쫓는 햇살처럼 용을 감싸 주었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흐른 어느 날 글쟁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용은 고마워할 줄 모르고 아주 당연한 듯 시간을 흘려보냈다. 돌아보니 소설가라는 이름만 얻었을 뿐 여전히 부족하고 모자란 엉터리 글쟁이로 흘려보낸 시간이 십 년이었다. 그 즈음, 용은 소설을 버리려고 마음먹었다. 어차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소설이었다. 트럭을 개조해서 카페를 만들었다. 빚을 내어 트럭을 사고 서툰 솜씨로 안을 꾸몄다. 처음에는 인테리어를 하는 누군가에게 개조를 부탁하려 했는데, 아뿔싸, 트럭을 살 때보다 훨씬 많은 돈을 요구해 왔다. 더 이상 돈을 마련할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톱을 들고 망치를 들었다. 하나하나 땀을 흘리며 차 안을 꾸미다가 쓰러지듯 주저앉아 숨을 크게 들이켰을 때 땀 냄새 사이로 알 수 없는 향기가 은근하게 용을 잡아끌었다. 그건 나무에서 나는 향이었다. 아궁이 앞에서 누룽지를 기다리던 어린 날의 냄새, 혹은 첫사랑을 기억할 때 떠오르는 아련한 향기. 용은 향에 취해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땀을 흘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가 겨우 깨달았다.

소설을 멀리하고 용은 나무를 만지기 시작했다. 건축과 가구에 관한 수십 권의 책을 읽으며 용은 소설이라는 길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다. 집에서 태어나고 집에서 죽는 사람들, 어미의 자궁이 집이고 우리가 죽어 들어갈 무덤이 집이었다. 집 안에서 꿈을 꾸고 사랑을 나누고, 집 안에서 올망졸망 모여 내일을 꿈꾸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했다. 자신의 서툰 글이 단 한 번이라도 저들에게 따뜻함을 주었을까 생각할 때 용은 부끄러웠다. 뭉툭하고 못생긴 손으로 글을 쓰지 않고 집을 짓는 목수가 되었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했다. 비록 작고 허름한 집일지라도 그곳에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밥을 안치는 사람이 있을 터였다. 지친 하루를 달래며 고단한 몸을 누이는 사람이 있을 터였다. 집을 짓는 것이 소설을 쓰는 일 보다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땀을 흘리며 나무와 씨름하고 땅을 매만지는 일이 책상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일보다 가치 있는 것은 아닐까, 용은 생각했다.

아기를 잠 재우는 자장가처럼 달빛이 슬며시 술잔 안에 스몄다. 달빛처럼 슬며시 글이 다가왔던 날들을 용은 떠올렸다.

씨발, 문학이 도대체 뭐야?

뜬금없는 물음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멀뚱한 눈을 들어 용을 바라보았다. 아, 왜 김치공장 밖에 나와서 김치 이야기하는 거드래요. 연이 대답했다. 너, 취했냐? 미가 물었다. 술 한 잔 받어. 성이 술을 내밀었다. 히히, 이 새끼 오랜만에 지랄이네. 랑이 지청구를 놓았다. 씨발, 그게 어디서 오냐고. 용이 다시 한 번 누구랄 것도 없이 물었다.

용은 이제야 작가(作家)라는 이름 뒤에 집을 붙인 까닭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달빛이 점점 굵어졌다. 가만히 돌아보니 용은 한 번도 미쳐 보지 못했다. 살을 찢는 아픔에 한 번도 제대로 맞서지 못했다. 부끄러웠다. 용은 슬그머니 술자리에서 일어나 203호 자신의 작업실로 들어갔다. 미치도록 오줌이 마려웠다. 화장실 어둠 속에서 늙어버린 사내 하나가 면도기를 들고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저게 누구일까, 용은 자못 궁금했다.

 

《문장웹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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