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없는 이야기

 

혀 없는 이야기

 

박진규

 

  

 
 

 

 

1.

 

대한민국 시골마을 구석구석까지 새마을운동의 물결이 일던 시절이었다. 한 시골마을의 야산이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하룻밤 사이에 반토막 났다. 노인들과 아이들은 물론 동네 개들까지 해가 뜨자마자 큰길로 나와 붉은 흙이 흐르는 장관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누군가 담배를 꺼내면서 슬며시 말문을 텄다.

“김가네 고명딸 결국 목을 맸다면서?”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던데…….”

“학교선생하고 야반도주했다 붙잡혀 왔다면서?”

“아비란 작자가 목 매달라고 동아줄까지 손수 마련해 줬다는 이야기 들었나?”

김가네는 이 작은 시골마을의 토지 대부분을 갖고 있던 지주였다. 마을을 빙 둘러싼 야산 역시 그의 개인 소유여서 마을 사람들은 땔감 하나 마음대로 베지 못했다. 야산 자락에 만들어 놓은 채소밭에도 감시를 붙여 무, 배추 하나 서리하지 못하게 했다. 젊은이들은 누가 야산에 불이라도 질렀으면 좋겠다며 종종 이를 갈았다.

“이제 이 동네서 못 살지. 이삿짐 싸느라 바쁘더니 아예 저 야산까지 팔았나 보구만.”

“그나저나 왜 멀쩡한 산은 뭉개고 그런데.”

산을 뭉개는 까닭에 대하여 설왕설래가 오갔으나 마땅한 결론을 못 내린 마을 사람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다음날 아침 포크레인 두 대와 회색 옷을 입은 인부들이 마을로 들어왔다. 그들은 무너진 야산 자락을 평평하게 다지고 철조망으로 울타리를 쳤다. 그 자리에 한 달 만에 임시 가건물이 지어졌다. 공사가 끝나자 삼십여 명의 외지인이 마을로 몰려들었다. 모두 커다란 여행 가방이나 보따리 따위를 들거나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을 사람 둘이서 논두렁에 앉아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았다. 낯선 이방인들은 열을 지어 산 위의 가건물로 향했다.

“전쟁 또 터졌나. 라디오에서는 아직까진 조용하던데…….”

“이야, 저기 맨 뒷줄에 오는 아가씨 봤어? 문희 뺨 석 대는 내리 치겠는데.”

그 후로 며칠 동안 아름다운 여인들의 행렬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흙길 위에 하이힐 자국이 착착 패는 만큼 남정네들의 가슴팍엔 연정의 구멍이 송송 뚫렸다. 한번은 막 마흔 줄에 접어든 노총각 한 명이 패랭이꽃을 들고 그 행렬 가까이로 다가갔다. 노총각은 꽃을 들고 뒤를 따랐으나 여인들은 곁눈질 한 번 없이 묵묵히 앞만 보고 걸었다. 홀린 사람처럼 하늘을 바라보는 그녀들의 눈동자는 공허하였다. 노총각의 때 묻은 손에서 꽃이 툭 떨어졌다. 그는 진흙으로 더러워진 검정고무신 옆에 떨어진 패랭이꽃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다른 젊은이들이 배를 잡고 한참을 킬킬댔다. 노총각은 바지춤을 치켜올리고 고개를 돌려 비석 하나 없이 버려진 무덤가 바위 같은 표정으로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노총각의 어설픈 사랑고백이 실패로 돌아간 뒤로 아름다운 여인들이 무리지어 몰려오는 날은 드물었다. 어떤 날은 노인들이 몰려왔고, 일가친척으로 보이는 이들이 함께 오기도 하고, 언젠가는 온몸이 때에 전 걸인들 몇 명이 무더기로 들어왔다. 외제차로 보이는 검은 승용차 몇 대가 부연 먼지를 일으키면서 시골길을 내달리는 날까지 있었다.

그 해 여름 내내 거의 백여 명의 외지인들이 임시 가건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매일 새벽 다섯 시면 무리지어 마을로 내려왔다. 그들은 흰 체육복 차림으로 열을 맞춰 마을을 다섯 바퀴나 돌았다. 앞줄은 남자들이었고 뒷줄은 여자들이었다. 그들의 목덜미와 어깨로 땀이 흘렀지만 인상을 쓰거나 숨을 헐떡대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세 바퀴 정도 돌면 다들 움직임이 둔해지고 발까지 잘 맞지 않았다. 인솔자로 보이는 건장한 사내가 우렁찬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면 다들 따라 외쳤다.

“바른 마음으로 바르게 바로 사니 바로느님.”

어느 날엔가 마음씨 좋은 마을 노인 하나가 그들 곁에 다가와 얼음 동동 띄운 막걸리 주전자를 내밀었다.

“우리는 그 더러운 물을 마시지 않습니다.”

다부지게 생긴 인솔자가 그 한 마디를 내뱉고는 노인을 밀쳐냈다.

“차암, 별난 인간들이네. 막걸리에 똥물이라도 탔을까 봐?”

텔레비전이 흔치 않은 시절이라 동네 노인들은 특별한 구경거리가 없었다. 새벽잠이 없는 그들은 새벽마다 마을 어귀 버드나무 아래 앉아 손가락으로 흰옷 입은 남녀의 무리를 세며 무료한 시간을 달랬다. 물론 다섯 바퀴를 도는 동안에 똑같은 옷을 입은 외지인들의 머릿수를 세는 일이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사내가 사십육 명이요, 계집이 마흔네 명이라.”

“웃기지 마시게. 사내가 사십팔 명이었고, 계집이 마흔여섯이었어.”

“그런데 바르…… 바로, 듣기만 해도 어지럽네, 그려.”

외지인들이 야산에 모두 올라간 지 며칠 만에 그들의 정체는 마을에 다 까발려졌다. 몇 번씩 바로느님을 부르는 우렁찬 기도 소리가 들려왔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매미 울음 소리와 뒤섞여 묘한 이중창곡처럼 들리는 기도 소리는 온 동네에 울려 퍼졌다.

마을 사람들은 야산의 신자를 몰아내기 위해 마을회관에 모여 대책회의를 벌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김가보다야 더 나은 인간들 아니겠어?”

“그 사람들 예의 하나는 바르대. 아홉 시만 되면 쥐죽은 듯 조용해지잖아.”

만일 야산의 신자들이 마을 사람들에게 포교하려 했다면 사정이 조금 달라졌을지 몰랐다. 유달리 여름 모기와 쇠파리가 많아서인지 마을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귀찮은 일을 싫어했다. 누군가 열성을 다해 가르치거나 설득하려 들면 귀를 막고 화부터 내기 일쑤였다. 새마을운동 역시 이 마을에서는 이상하게 맥을 못 추고 지지부진해졌다. 산 너머 동네에서 이들을 소 마을 사람들(곧이곧대로 옮기자면 귓구멍에 여물통이 박힌 소새끼들)이라 부르는 데에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야산의 신자들 역시 마을 사람들을 소 닭 보듯 쳐다보기만 했다. 신자들의 포교 활동은 마을을 넘어 각 지방의 중소 도시와 대도시로 파고들었다. 이 조용한 시골마을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신자들의 거주지와 더러운 이들이 아귀다툼을 하며 사는 대도시 사이의 완충지대인 셈이었다.

 

 

2.

 

바른 마음으로 바르게 바로 사니 바로느님.

바로느님을 외치는 야산의 신도들은 스스로를 새영광세대라 불렀다. 신도들이 바로느님으로 부르는 새영광세대의 교주는 백승민이란 사내였다. 그는 사십이 훨씬 넘은 나이였지만 입가의 주름을 제외하고 잔주름 하나 없이 피부가 팽팽했다. 눈썹은 청수했고 쌍꺼풀이 짙은 눈은 충혈된 곳 하나 없이 맑고 투명했다. 믿음직한 미소를 짓는 그는 마가린처럼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로 신자들에게 구원의 미래를 약속했다.

대신 악역은 백승민을 보좌하는 건장한 체격의 보물 신도들이 도맡았다. 믿음이 약한 신자들을 골방으로 데려가 일주일간 정화의 고행으로 이끄는 이들도 그들이었다. 깊은 밤 보물 두어 명이 검은 복면을 쓰고 나타나 믿음이 약한 신자를 체포해 골방으로 끌고 간다. 보물들은 진한 욕설과 거침없는 발길질로 가련한 신자를 힘껏 두들기고 사라진다.

오촉 전구만 덩그러니 켜진 골방에선 퀴퀴하고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 홀로 남겨진 신자는 울음을 터뜨리거나 헛구역질을 하기 일쑤였다. 마음이 진정될수록 벽에 스민 악취가 그의 후각을 자극했다. 그것은 골방의 역사에서 풍겨오는 체취였다. 이 방에 홀로 남겨진 이들은 오줌을 지리거나 심한 경우 똥을 쌌다. 다부진 사람들은 반항을 하다 얻어터져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오줌, 피, 똥. 그 모든 것이 발효되며 뒤섞인 악취가 짧은 시간 내에 굴욕적인 역사의 체취로 골방에 스며들었다.

지친 사내는 벽에 몸을 기댄 채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물론 참회의 눈물이 아니다.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지탄에 가까운 훌쩍임이었다.

나는 병신인가 봐. 왜 저런 놈들에게 속아 여기까지 왔을까?

발길질 두 번, 주먹질 일곱 번. 골방은 무너지지 않는다.

울다 지친 그에게 이제 갈증이 모래로 만든 어마어마한 파도로 밀려온다. 그제야 골방 한 구석에 삐죽이 붙어 있는 수도꼭지를 발견한다. 수도꼭지는 겨우 바닥에서 한 뼘 정도 올라붙었을 뿐이었다. 물을 마시려면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몸을 버둥거려야 했다. 가끔은 수도꼭지에서 쏟아진 물이 코로 들어가 재채기를 하거나 쉽게 사레가 들렸다. 끼니를 가져다주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는 매일 불편한 자세로 물을 마시며 허기를 달랬다. 동시에 그는 바닥에서 기는 습성까지 재빨리 익혀 갔다.

하지만 정화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의 양은 매일매일 줄어들었다. 사흘이 지나면 전립선에 문제가 있는 노인의 오줌줄기 마냥 맥없이 흘렀다. 나흘째에 접어들면 그마저 멎었다.

골방에 갇혀 고통 받는 남자는 탈출하려 머리를 굴리는 대신 축 늘어져 천장만 보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큰 창문 크기의 백지가 한 장 붙어 있는 천장은 말이 없었다. 그는 슬며시 백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은 약간 배가 고프면 분노가 치민다. 하지만 허기가 겹겹이 층을 쌓으면 사고의 체계가 달라진다. 허기는 그의 나약한 내부에 들러붙은 마지막 자존심마저 갉아먹는다.

남자는 천장에 붙은 흰 종이로부터 환각을 본다. 흰 종이의 가운데가 점점 붉게 물들더니 어느새 묵직한 덩어리로 변해 아래로 내려온다. 허기를 채워 줄 음식이 아닌 군침을 질질 흘리는 커다랗고 붉은 혀의 모습으로. 바닥에 드러누운 남자는 얼굴 위로 뚝뚝 떨어지는 환각의 침을 맞으며 기뻐한다. 골방에서 남자는 식욕을 지닌 인간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먹히기를 기다리는 하나의 음식으로 변해 간다. 거대한 혀가 아래로 내려와 그를 맛보기 시작한다. 환각의 혀가 굶주린 육체를 샅샅이 건드릴 때마다 팔과 다리를 가볍게 떨며 그는 희열에 빠진다. 몸의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 자기의 의지인지 타인의 의지인지 의식마저 희미해진 채로. 맹수들에게는 맛난 한입거리 먹이에 불과한 갓 태어난 새끼짐승처럼.

일주일 후, 잠긴 문이 조심스럽게 열린다. 백승민이 은쟁반에 모시수건, 죽그릇과 물그릇을 올려놓고 나타난다. 백승민은 건치가 드러나도록 환하게 웃으며 갓난아기로 태어난 정화된 자를 바라본다. 입술을 오므린 채 옹알대던 그는 울먹울먹한다. 눈물로 탁해진 눈에 백승민은 완전무결한 성자로 보인다.

“나의 품으로 오라. 연약한 사람이여, 내가 그대의 번민을 씻겨 주리라.”

백승민은 물그릇에 손을 적신 다음 손가락을 내민다. 신자는 입을 벌리고 물에 젖은 손가락을 쪽쪽 빨며 지독한 갈증을 달랜다. 백승민은 여러 번에 걸쳐 그렇게 그의 입안에 맑은 물을 흘려넣는다. 다음 코스로 작은 은수저로 신자에게 죽을 떠먹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당신은 이제 더러운 세상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새영광세대의 교리에 따르면 세상은 혼탁하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마귀들이 나타나 인간을 농락하고 더러운 악귀의 오수를 뿌려대는 곳이 대한민국이었다.

“저는 이제 깨끗한가요.”

“아닙니다. 갈 길은 멀지 않으나 가깝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오물은 아닙니다.”

새영광세대 신도의 첫 단계는 오물이다. 그들은 밖에서 묻혀온 더러운 죄부터 먼저 씻어야 했다. 대가 없는 노동이야말로 죄를 씻고 머리를 맑게 하는 좋은 명약이었다. 오물들은 매일 아침 정화의 물로 쓰일 약수를 야산에서 길어왔다. 아무리 목이 타도 약수터에서 이 물을 마셔서도 안 되고 또 손조차 씻지 못했다. 그들 주변에는 이미 오물의 단계를 벗어난 영광의 형제단이 매서운 눈초리로 감시했다.

그렇다면 언제 오물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바로 백승민이 인정해야 오물에서 벗어나는 일이 가능했다. 물론 모든 신도들이 다 오물을 거치는 건 아니었다. 자기의 죄를 과감하게 투척하면, 그러니까 더러운 재산을 쾌척하면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일이 가능했다.

두 번째 단계는 미물의 단계다. 새영광세대의 미물들은 죄는 없지만 아직 구원의 길까지는 갈 길이 먼 신도들이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구원을 위한 끊임없는 기도와 자기 신념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애쓰는 단련이었다. 하지만 여성이란 신념이 약하고 흔들리기 쉬운 촛불 같은 존재이기에 그들을 위해 백승민이 직접 나섰다. 미물 여성들은 백승민 앞에서 모두 옷을 벗은 채 백합 한 송이만 들고 기도했다. 그러면 백승민은 그들에게 일일이 정화 의식을 베풀어 주었다. 그들을 품에 안고 다정한 목소리로 정화의 합일 기도를 올렸다. 온몸을 적시는 흥건한 땀과 함께 기도가 끝나면 백승민은 미물 신도의 몸을 쓸어 주며 죄가 씻겼음을 통보한다. 신성함의 의미로 어떤 미물 신도들도 백승민과의 정화 의식을 통해서는 임신하지 않았다.

미물의 단계를 거치면 비로소 보물의 길에 다다른다. 보물 단계에 이른 사람들은 이제 구원의 덕을 쌓기 위한 선행을 베풀어야 했다. 보물들은 전국의 도시로 파견되었다. 그곳에서 교회를 다니던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일이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바른 마음으로 바르게 바로 사니 바로느님. 새영광세대의 신도들은 언제나 보물에 오르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반성하지 않는 오물들도 야산에는 있었다. 그들은 다음 단계로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는, 그래서 종종 똥물이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듣는, 오물들이었다.

이들은 스스로 새영광세대의 일원이 된 것이 아니었다. 주로 전국의 역이나 터미널에 흩어져 있는 부랑자들을 밥으로 꼬드겨 데리고 들어왔다. 이들은 새영광세대에서 청소나 식사준비 같은 자질구레한 일들을 도맡았다. 건장한 보물들은 대놓고 이들을 구타했다. 특히 몰래 도망치려다가 붙잡힌 오물들에겐 정화의 골방 따위는 필요없었다. 그들은 철조망 바로 아래에서 바로 구둣발로 짓밟혔다.

더러운 오물들은 기도회 시간에도 맨 뒷자리를 배정받았다. 방석이 없어서 대신 신문지를 깔고 앉아야 하는 자리였다. 오물들은 새영광세대의 신도들이 목청껏 기도 소리를 높이며 울부짖건 말건 신경 쓰지 않았다. 기도 시간 내내 보물들의 방을 청소하다 몰래 훔친 과자를 호주머니에서 꺼내 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보물과 미물이 바로느님을 외치며 기도의 달콤함에 흠뻑 젖을 때 뒷자리의 오물들은 남아 있는 어금니가 하나둘 썩어 갔다.

 

 

3.

 

햇볕이 따사로운 유월의 캠퍼스, 두 명의 아가씨가 벤치에 앉아 있다. 하늘색 헤어밴드를 한 청순한 여대생이 손가방에서 유인물 한 장을 꺼낸다. 식빵의 흰 부분을 세로로 찢어 입에 넣고 있던 다른 한 명이 친구가 내민 유인물을 받아든다. 갓 구운 푸짐한 식빵덩어리 같은 몸집의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집에서 눈칫밥만 먹는데도 자꾸만 살이 올랐다.

헤어밴드는 머리카락을 귓바퀴 뒤로 쓸어넘기다 눈물 한 방울 똑 흘렸다.

“나 있잖아. 학교 떠나려고 해.”

“아니, 갑자기 왜? 여대생처럼 멋진 직업이 어디 있니.”

식빵은 말똥말똥한 눈으로 친구를 바라본다.

“젊음과 지성의 상아탑인 대학마저 너무 타락했단 생각이 든단 말이야. 나의 맑은 마음 역시 더럽혀지고 있어.”

“그럼, 나하고 같이 일요일에 성당에 나가자. 신부님께 모든 죄를 다 고백하는 거야.”

“친구야, 내 말 들어 봐. 더 좋은 곳이 있어. 나하고 함께 가지 않을래?”

헤어밴드는 새영광세대의 보물 신도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를 식빵에게 속닥거렸다. 식빵은 친구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오래도록 유인물을 들여다보았다. 새영광세대의 교리보다 백승민의 인자하게 미소 짓는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식빵은 읽고 이해하기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서 상상하고 느끼는 사람이었다. 평범한 이들보다 조금 과도하게. 아담과 이브, 유혹자 뱀, 모세, 다윗, 야곱, 예수와 성모마리아. 어린이용 그림성경 속 주인공들은 잠자리에 들 무렵이면 살아 있는 모습으로 머리맡에 찾아왔다. 그녀의 종교적인 환상 속에 어느새 백승민의 인자한 미소가 덧붙었다.

“좋아, 나도 갈래.”

“정말? 친구야, 너무 기쁘다. 이 마음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다음날 식빵은 일찌감치 신촌에 있는 한 다방으로 나왔다. 코코아를 마시며 삼십 분을 기다렸지만 헤어밴드는 나타나지 않았다. 식빵은 다방 카운터 전화로 헤어밴드에게 연락했다.

“친구야, 미안해. 온몸에 열꽃이 피고 식은땀이 흘러. 다방 안에 유리로 만든 물병을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아주머니가 있을 거야. 내 이름을 대고 친구라고 말하면 돼.”

“알았어, 너도 꼭 올 거지?”

“그럼, 약속할게. 기침이 자꾸 터져서 끊어야겠다.”

그 전화 통화가 헤어밴드와 식빵의 마지막 통화였다. 헤어밴드는 감기에서 회복된 이후, 마지막이라고 작심하고 나간 미팅에서 만난 남학생과 사랑에 빠졌고 새영광세대 따윈 까맣게 잊어버렸다.

어쨌거나 헤어밴드의 말대로 다방 구석 자리에 턱이 뾰족한 중년여인이 모래시계 모양의 유리물병을 갓난아기처럼 품에 안고 앉아 있었다. 여인은 식빵을 위아래로 쳐다보다가는 물병 속의 물을 여러 번에 걸쳐 나눠 마셨다. 여인은 사레가 들려 헛기침을 했고 기침을 멈추려고 할수록 얼굴이 점점 붉게 변했다.

 

새영광세대에 발을 디딘 식빵은 큰 눈을 말똥말똥 뜬 채로 백승민의 판결을 기다렸다. 백승민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식빵이었다.

“전 사랑을 믿어요. 그리고 어마어마한 사랑이 고여 있는 호수 같은 그 얼굴을 알아요. 저는 당신의 얼굴에서 사랑과 구원, 또 믿음의 표지를 읽었습니다. 이곳은 아름다운 영광의 배로군요. 죄인들을 인도하는 위대한 뱃사공이여, 어서 저를 이끌어 주세요.”

식빵은 백승민을 향해 퉁퉁하고 뭉툭한 손을 내밀었다.

“젊은 그대…… 새싹처럼 맑은…….”

말을 더듬는 백승민을 바라보던 보물 신도들이 눈썹을 몇 번 찡그렸다. 백승민은 헛기침을 하고 잠시 숨을 골랐다.

“눈에 보여요. 호수 위에 배 한 척이 놓여 있어요. 그것은 사랑으로 충만한 아주 커다란 배예요. 지금껏 저는 믿음 없는 더러운 세상에서 살았어요. 저를 당신의 배로 인도하세요.”

식빵은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몸에 꽉 끼는 블라우스는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식빵의 그림자가 거대하게 밀려오자 백승민이 손을 뻗어 앞을 가로막았다. 늘 인자하던 백승민의 얼굴에 겁먹은 건지 감탄한 건지 당최 아리송하기 짝이 없는 표정이 드리워졌다.

“그대여, 그대는 정화 받을 필요가 없소.”

“아니요, 저는 맑아지고 싶어요. 사랑이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할 거예요.”

“방금 그 말씀이 내게 말했소. 여러분, 우리들의 어머니 성모가 우리 앞에 있소. 일어서시오. 그녀는 태고의 모습 그대로 완결한 성녀요. 우리 모두 그녀를 추앙합시다.”

스무 살의 식빵은 그날 이후로 새영광세대의 성모로 이름 지어졌다. 그녀는 방도 따로 배정 받았다. 지금껏 이 비좁은 숙소 안에서 백승민을 빼고 독방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성모는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열심히 기도회에 참석했다. 단 미물 여신도를 깨끗하게 만드는 정화의 시간에만 참석하지 못했다.

매일 밤 성모는 백승민을 찾아와 하소연했다.

“부탁이에요, 저도 정화 받고 싶어요.”

“그대는 정화 받을 필요가 없소. 그대는 성모라고 말했잖소.”

“저는요, 당신과 함께 밤새 기도하고 싶어요. 기도는 나를 뜨겁게 해요. 수많은 나의 신도들이 양떼가 되어 내 가슴에 안겨 젖을 달라고 울부짖는 것처럼…….”

백승민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성모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보시오, 성모. 우리가 왜 아홉 시 이후에 기도를 하지 않는지 압니까? 밤은 우리를 흥분시킵니다. 거대한 기도의 물보라가 밀려오면 감정의 홍수가 일어나고, 그러면 그건 하늘의 목소리를 따르는 게 아니야. 스스로를 귀머거리와 장님으로 만드는 거지. 그게 바로 광신입니다. 성모, 그러니 밤에는 기도하지 말고 마음을 가라앉히시오.”

성모는 고개를 모로 젖히고 눈을 깜빡였다.

“그러면 왜 정화의 기도는 꼭 밤에 하는 거죠?”

백승민은 건치를 드러내며 호탕하지만 부드럽게 웃었다.

“정화는 단순한 기도가 아니오. 청소의 기도지. 당신은 너무 순결해서 더러움이라곤 티끌 만큼도 없는 성모이고.”

“아니요, 전 더러워요. 사춘기 때부터 부모님 몰래 집에서 담근 포도주를 마셨어요.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지고 사랑 받는 아이의 기분이 드니까요. 딸 다섯 중 사랑 받지 못하는 넷째 딸, 나라도 날 좋아해야 할 것 같았어요. 난 잘못 태어난 나쁜 아이예요.”

백승민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성모의 뺨을 어루만졌다.

“당신에게 선물을 하지. 내 마음의 기도를 담은 특별한 성수를. 당신의 밤을 편안하게 잠재울.”

다음날부터 성모를 위한 알코올이 새영광세대에 들어왔다. 백승민은 직접 술병을 열고 성수병에 옮겨 담았다.

건장한 보물 신도들은 백승민과 성모를 모두 탐탁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성모는 새영광세대의 암묵적인 규칙에 흠집을 내기 시작했다. 식사의 조용함을 미덕으로 삼아 온 이곳에서 성모는 유일하게 쩝쩝 소리를 내며 음식을 씹었다. 알코올이 금지된 곳에서 밤새도록 몇 병씩 술을 해치웠다. 밤 아홉 시 이후에 기도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깨고 밤새도록 기도했다. 미물 집단은 몰래 성모를 험담했고 오물 집단은 대놓고 손가락질하며 비웃었다.

마을의 논이 모두 황금빛으로 변해 가던 초가을 무렵이었다. 아침부터 새영광세대가 시끄러웠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분주함을 틈타 도망치려던 오물 한 명이 붙잡혔다. 건장한 보물들 둘이 들러붙어 그의 뺨을 때리고 홀쭉한 배를 걷어찼다. 다른 보물이나 미물들은 모두 식당에 앉아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취사장 앞에 있던 오물들만 얼굴을 찌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떤 오물은 새끼손가락을 입안에 집어넣어 앞니 없는 잇몸을 만져 보며 울상을 지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선뜻 나서 건장한 보물들을 말리지 못했다.

“아이고, 선생님들 잘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뭐냐, 그 물로 그냥 저를 씻어만 주세요. 그러면 다 회개할 테니까. 아이고, 이러다 저 죽어요.”

오물은 돌돌 말려 팽개쳐진 양말처럼 몸을 웅크리고 발길질을 피했다.

“아니면 차라리 저를 그 골방에다 데려다 줘요. 거기 가면 다 회개한담서.”

보물들이 발길질을 멈추었다. 오물 남자는 보물들을 피해 재빨리 무릎걸음으로 기어갔다. 안전거리가 확보되자 그는 슬그머니 뒤돌아보았다. 성모가 팔짝팔짝 뛰면서 양손에 쥔 머리핀의 뾰족한 부분으로 보물들의 목덜미를 찔러댔다.

“어디 내가 있는 곳에서 이럴 수가 있나요. 당신들이 깡패예요? 그러고서도 아름다운 배에 올라탈 수 있을 거 같아요? 당신들, 우리의 바로느님께 부끄럽지 않아?”

성모는 건장한 보물들에게 삿대질을 했다. 부엌 앞에 옹기종기 모인 오물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거기 뭐 좋은 구경났어요? 수건이라도 하나 가져와 봐요.”

성모는 흙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오물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피투성이 얼굴을 치마로 닦아 주었다. 눈물 콧물 핏물이 뒤섞인 액체가 그녀의 치마에 얼룩을 만들었다.

한편 머리핀에 찔린 보물 둘은 다른 건장한 보물 신도들과 함께 백승민의 방으로 몰려갔다. 문은 잠겨 있었다. 보물들은 주먹과 발로 문을 걷어찼다.

“왜 그래, 왜 무슨 일이야?”

안에서 신경질적인 백승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소매 없는 원피스를 입은 한 여신도가 문 밖으로 나왔다. 손에는 머리빗을 들고 있었다.

“아직 식사 시간이 아닐 텐데 무슨 일로 몰려오셨지요?”

콧김을 씩씩 내뿜는 건장한 보물들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오늘은 미물들이 아니라 보물 여러분들이 직접 식사라도 가져오시게요?”

여신도는 보물들 앞에서 태연하게 머리를 빗었다.

보물들은 여신도를 밀치고서 우르르 백승민의 방으로 들어갔다. 하소연하는 보물들의 목소리는 들소들의 외침 같았다. 여신도는 문지방에 기대어서 코웃음을 쳤다.

“아니, 그깟 뚱보 여자에게 겁먹어서 그러는 거예요? 마음에 안 들면 당신들이 지하에 있는 도살장으로 끌고 가면 되는 거 아닌가? 혹시 성스러운 여인한테 진짜 저주라도 받을까 무서운 거예요?”

그녀가 허리에 손을 짚고 엉덩이를 씰룩댈 때마다 어깨에 새긴 작은 전갈 문신이 꿈틀거렸다.

 

 

4.

 

아버지는 전갈의 뺨을 연달아 두 번 때린다. 말해 봐, 잘못했어 안 했어! 고등학교 주임교사인 그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두꺼운 돋보기안경 너머로 딸을 바라본다. 딸은 입을 꾹 다문 채 아비를 노려본다. 귀는 멍해지고 통증과 수치심이 번갈아 몸을 휘감는다. 아버지는 묻는다. 왜 상대가 잘못했는지 어떻게 반성할 것인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다. 전갈의 아버지는 그런 방법으로 제자들을 길들였다. 한국전쟁에 장교로 참전하고 전쟁 후에는 고등학교 교사가 된 그 남자의 교육관이었다. 개망나니 같은 인간을 길들이려면 때리고 수치를 주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선생에게, 선임에게, 상관에게 얻어터지면서 터득한 인생관이었다. 더불어 그는 제자들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까지 똑같은 방법을 적용했다. 전갈의 어머니가 먼저 아들을 들쳐 업고 멍든 얼굴로 집을 나갔다. 잠이 깨 어머니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전갈을 매정하게 외면하고서. 전갈의 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는 딸을 잘 키우려고 마음먹는다. 슬프게도 그는 농담이나 숨고르기 같은 것은 잘 모르는 남자였다. 상대가 복종하지 않으면 더 강한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또 뺨을 때린다.

전갈은 뺨을 맞고 나면 이를 악다물었다.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나를 인식하기 위해 애썼다. 떠밀리지 않도록. 그녀는 뺨을 갈기는 손바닥에 놀아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죄를 짓지 않았으니까, 자기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 거니까. 그래서 전갈은 학창시절 내내 자유로웠다. 여고시절 가발을 쓰고 음악다방을 들락거렸고, 통금시간이 간당간당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아버지에게 뺨을 맞았다. 대학생이 되고 한창 멋을 부릴 나이였으나 뺨을 맞았다. 수업이 일찍 끝난 어느 날이었다. 그녀는 소문으로 들은 불법문신술사 히피 청년을 찾아갔다. 어깨에 전갈을 새겨 줘요. 어차피 난 사대문 안에 있는 사막에 살고 있으니까 독침 정도는 가져도 괜찮잖아요? 장발의 히피 청년은 입에 청자담배를 물고 도사연하는 얼굴로 고개를 까닥거렸다.

“실패하셨어요.”

전갈의 아버지는 뺨을 때리려던 손을 멈칫거린다. 지금껏 딸이 용서를 빈 적은 없었지만 맞으면서 말대꾸를 하진 않았다. 그가 쌓아 온 역사에 작은 흠집이 생겨났다.

“뺨을 맞으며 배운 것은 뺨을 때리지 않고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방법이니까요.”

전갈의 아버지는 이를 악물고 딸을 노려보았다.

“어디서 말대꾸냐? 대학에 보내 줬더니 나쁜 물이 들어 되바라지기만 했구나.”

서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던 부녀 간의 대화는 잠시 중단되었다. 갑작스레 전갈의 고모가 집으로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양손에 커다란 물병 두 개를 들고 흔들었다.

“오랜만이야. 내가 무얼 가지고 왔는지 알아. 세상에서 제일 깨끗하고 성스러운 물이야. 수돗물 마음먹고 마실 수 있…… 근데 집안 분위기가 왜 이래?”

“아빠한테 물어 봐요.”

전갈은 문을 쾅 닫고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전갈의 아버지는 여동생 앞에서 담담하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물론 그가 상습적으로 아내와 딸의 뺨을 때렸다는 이야기는 꾸지람이란 단어 아래 감추어졌다.

“요즘 대학생들 문제 많다는 이야기는 내가 들었어요, 오빠. 장발에 미니스커트 바람에, 아휴 남우세스러워. 하지만 우리 착한 조카는 잠깐 나쁜 바람이 든 거야. 나하고 경건한 곳에 있으면 다시 깨끗해질 거예요.”

전갈의 고모는 오라비를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결국 전갈의 아버지는 종교의 힘에 의지해 딸을 다시 정갈한 여자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고모의 말을 들은 전갈은 선선히 그녀를 따라나섰다.

“물맛 좋네요. 어디 약수예요?”

전갈의 고모는 이글이글 불타오르나 괴이쩍게 멍한 눈으로 조카를 바라보았다.

“아주 좋은 곳.”

 

바른 마음으로 바르게 바로 사니 바로느님. 새영광세대로 들어가자마자 전갈은 정화의 기도에 참석해야 했다. 전갈은 구석에 앉아 손에 쥔 백합을 만지작거렸다. 백승민이 진지한 얼굴로 추행하는 모습이나, 백합을 들고 부들부들 떨면서 그 순간을 기다리는 여신도들이나 우습기는 마찬가지였다. 소름끼치는 일이 하나 더 있었는데 구석구석에서 건장한 남자들이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는 사실이었다. 백합을 손에 쥔 채로 빙빙 돌리면서 전갈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어떻게 이곳을 탈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도대체 왜 이런 집단이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멀쩡한 남자라도 여자들이 넋을 놓고 몸을 맡길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백승민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녀의 고민은 점점 호기심으로 변했다. 전갈은 백승민의 목덜미를 유심히 관찰했다. 어느새 백승민은 전갈의 코앞에 있었다. 그가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하얗고 말끔한 치아를 드러냈다. 어떤 여자라도 눈멀게 할 법한 신비로운 미소와 눈빛이긴 했다. 전갈은 문득 그 남자를 더 깊게 파헤치고 싶어졌다. 그녀는 손을 뻗어 독처럼 맹렬하지만 백합처럼 부드럽게 백승민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턱을 어루만지면서 유혹의 눈길을 보냈다. 백승민의 입에서 탄식인지 신음인지 판별하기 힘든 야릇한 소리가 비어져 나왔다. 다리 힘이 풀린 지도자는 낯선 여신도 앞에서 무릎 꿇었다. 전갈은 백승민의 머리에 백합을 올려 두고 기도회장 밖으로 빠져나와 숙소로 돌아갔다.

그날 밤 늙은 노파 보물이 전갈을 찾아왔다. 전갈은 노파를 따라 길고 어두운 복도를 지났다. 복도 끝에 있는 방에 도착하자 노파가 조심스럽게 방문을 노크했다. 방문이 열리자 가운 차림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환하게 웃는 바로느님이 있었다. 노파는 문을 닫고 발뒤꿈치를 들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백승민은 미소를 지은 채 팔을 벌려 그녀를 품에 안으려 했다. 전갈은 손을 내밀어 냅다 백승민의 뺨을 갈겼다.

“뭐예요, 왜 이렇게 늦게 나를 불렀죠?”

백승민이 아무 말도 못하고 뺨을 움켜쥐고 있는 틈을 타, 전갈은 다시 한 번 반대쪽 뺨을 때렸다.

“말 좀 해보라니까. 잘못했어, 안 했어.”

“미안해. 아, 미안하다니까. 젊은 여자가 왜 이렇게 손이 매워.”

그날 밤 이후 새영광세대를 이끄는 바로느님은 공처가로 변했다.

 

전갈은 보물 노파를 따라 매일 밤 백승민의 숙소를 찾아갔다. 자정이 넘어가면 또 다른 방문자가 요란하게 노크했다.

“나예요. 너무 인자하고, 풍족한 마음을 지닌 바로느님. 할 말이 있어요.”

“돌아가시오, 성모. 체통을 지키고 마음속으로만 기도를.”

속옷 차림으로 앉아 있던 백승민은 얼굴이 붉어진 채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전갈은 백승민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채로 미군부대에서 가져온 초콜릿을 살살 녹여먹으면서 깔깔거렸다. 문 밖에서 성모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오물들은 너무 불쌍한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베풀어 주셔야죠.”

“성모, 벌써 술이 떨어졌소?”

백승민이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갈은 그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붙잡았다.

“왜 저 여자를 그냥 여기 내버려 두는 거지?”

“보물 놈들 열 받으라고. 저 여자 때문에 골치 깨나 썩고 있을걸. 보물들이 다른 곳에 신경이 예민해져 있어야 날 귀찮게 안 하거든.”

“그럼, 왜 오물들은 여기에 그냥 두는 거야?”

“마찬가지야. 필요악이라 할 수 있지. 그들이 있어야, 여전히 세상이 더러움을 알 수 있고, 그러니까 미물들은 더더욱 적극적인 기도를 할 테고…….”

“그렇게 말하니까 꼭 사기꾼 같네.”

“어쩔 수 없어. 눈속임과 주먹질이 없으면 아무도 진실을 믿지 않지. 하지만 진실은 분명해. 신은 분명 존재해. 나, 바로느님은 그분께서 내려 보낸 청소부야. 세상의 혼탁에서 선인들을 구해 낼 노아이고. 그건 변하지 않지.”

“당신의 씨앗은 진정한 순결의 완성체지. 죄악을 타고나는 자손을 만들지 않으니……. 의학적으로 말하면 물론 무정자증이란 이야기겠지만.”

전갈은 초콜릿색으로 변한 치아와 혀를 드러내고 깔깔대고 웃었다.

“그런데 왜 고작 청소부야? 혹시 신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는 거야?”

“그분은 오직 한 분, 하늘에 있지. 바로느님은 그분의 말씀을 바르게 따르는 뱃사공에 불과해.”

“남자로 태어나서 그 정도 포부밖에 없다니 창피하지 않아. 그거 무정자증 때문에 생긴 콤플렉스 아닌가?”

백승민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분은 하늘에 계시고, 인간은 땅에 있는 미혹한 존재이고, 바로느님은 신을 대신해 죄를 씻어내는 청소부고. 그게, 내 사명이지.”

“차라리 우리 성모가 신이 될 아이를 임신하는 걸 기다리는 게 훨씬 낫겠네.”

백승민의 비밀을 알게 된 전갈은 문득 욕심이 생겼다. 새영광 사업도 꽤 괜찮은 사업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갈은 매일 밤 백승민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신도들에게 환상을 불어넣는 은밀한 방법을 곶감처럼 빼먹었다. 사랑에 빠진 남자가 다 그렇듯 백승민은 그가 평생에 걸쳐 키워 왔던 사업의 노하우를 술술 털어놓았다.

“많은 방법이 있지만 결론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는 거야. 세상은 더럽고 무섭고 야비한 곳이지만, 반대로 바르게 살았다고 믿는 당신은 늘 순결하고 아직까지 희망이 남은 존재라는.”

“왜 나한테는 순결하다 말하지 않지?”

“왜냐면 당신은 너무너무 더러운 존재니까. 그래서 난 당신을 사랑하는 거야. 위대한 청소부라도 가끔은 혀끝까지 더러워지고 싶은 게 남자니까.”

전갈은 알몸으로 실실거리는 백승민이 충분히 더러운 데다 멍청하기까지 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있는 시간이 따분하거나 지루하진 않았다. 지금은 뺨을 맞는 대신 뺨을 때리는 위치에 있으니까. 그녀는 사랑이 때론 감정의 게임이 아니라 권력의 게임이란 걸 새영광세대에서 배웠다. 권력을 잃은 자는 떠벌린다. 동정과 관심을 더 갈구하기 위해. 어느덧 백승민은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지난한 시절의 사연까지 모두 전갈에게 털어놓았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막내아들이었던 백승민은 한국전쟁 이후 하우스보이로 미군들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영어를 배웠다. 전쟁이 끝나자 유창한 영어 실력 덕에 한국에 들어온 미국인 기독교 선교 단체 목사의 비서 자리를 꿰찼다. 그는 미국인 목사를 존경해서 그의 손짓과 말투와 시선과 미소를 그대로 베껴 나갔다. 뒤늦게 자신보다 성스럽게 보이는 도플갱어를 발견한 미국인 목사는 소름이 끼쳐 백승민을 쫓아냈다. 먹고살 길이 없어진 그는 서울에서 한창 잘나가던 카바레에서 삶의 활로를 찾았다. 마침 수많은 제비들이 한가해진 사모님들의 돈으로 배를 불려 가던 때였다. 백승민은 잘난 외모와 화려한 춤 솜씨, 목사 같은 언변으로 카바레를 빛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곳에서 형사의 아내를 유혹했다 덜미가 잡혀 교도소 신세를 졌다. 교도소에서 그는 다른 동료들처럼 성기를 째고 그 안에 날카로운 칫솔 조각을 집어넣는 대신 다시 성경을 읽으며 사모님들을 돌리고 돌리던 시절을 뉘우쳤다. 그곳에서 머리를 때리는 깨달음을 얻고 세상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노아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무정자증이라는 건 언제 알았어?”

“카바레 생활을 청산하고 반듯하게 살려고 순둥이 여자하고 살림을 차린 적이 있었어. 아무리 용을 써도 애가 안 생기더라고. 그때는 한탄했지만 나중에서야 하늘의 깊은 뜻을 알았지. 아, 그분께서 나를 평범한 애아버지가 아닌 큰일을 하라고 내려 주신 거구나, 라고.”

 

 

5.

 

봄비가 비밀스러운 소문처럼 소곤소곤 내리는 날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새영광세대는 줄을 맞추어 마을을 뛰었다. 바른 마음으로 바르게 바로 사니 바로느님. 일 년여 사이에 마을 노인들은 달리기 구경에 싫증이 나 쳐다보지 않았다. 대신 한 젊은 청년이 손에 대본소 만화책을 든 채 일주일 가까이 그들을 지켜보았다. 이제 막 스물을 넘긴 청년답게 얼굴은 뽀얗고 항상 눈가가 촉촉한 미남자였다. 청년은 논두렁에 만화책을 내던졌다. 바람에 책장이 휘휘 날리고 남자 주인공이 다리에 서서 한강을 내려다보는 장면에서 페이지가 멈춰졌다. 배낭을 짊어진 청년은 세영광세대의 신도들을 따라 묵묵히 달렸다. 청년은 야산까지 올라와 백승민 앞에 무릎까지 꿇었다.

“오래 전부터 지켜보고 있었고요. 저도 깨끗하게 정화되고 싶어요. 깨끗한, 다시 깨끗한 사람이 될래요.”

백승민은 손으로 턱을 받치고 청년을 내려다보았다. 콧날이 얇고 반듯한 청년에 비해 바로느님의 코끝은 뭉툭해서 약간 투박해 보였다. 더구나 전갈에게 물린 다음부터 백승민은 하루가 다르게 늙어 보였다. 맑은 피부는 거칠어지고 눈밑은 시커멓게 변했고 가끔 입가에 허옇게 침버캐가 꼈다.

“청년이여, 청년은 왜 깨끗해지고 싶소?”

“사랑…… 가슴 아픈 사랑이 내 가슴에 멍을 만들고…….”

우물대던 청년은 갑자기 서럽게 울어댔다. 아무리 섧게 울어도 아무도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차거나 비웃지 않았다. 갑자기 실내는 고요해졌고 청년의 울음 소리만 뎅뎅 울렸다. 묘한 울림이 있는 울음이었다. 젊은 여신도들 몇 명은 손에 쥔 백합의 꽃잎을 뜯어 청년의 눈가를 닦아 주고 싶은 충동마저 느꼈다.

“울지 말아요.”

어느새 성모가 다가와 청년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청년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성모를 바라보았다. 콧물과 눈물이 범벅이 되고 코끝은 사이렌처럼 붉었다.

“아니, 울어요. 더 울어요. 당신의 눈물엔 어마어마한 힘이 있어요. 당신의 울음 소리는 우리의 찬송가. 우리 새영광세대는 모두 대환영이니까. 눈물의 왕자님이여, 인자한 바로느님 앞에서 맘껏 우소서.”

성모가 그 자리에서 내려 준 청년의 별명은 사람들의 가슴팍에 고스란히 꽂혔다.

“젊은 청년, 오늘부터 그대는 오물이요.”

백승민이 손가락으로 오물들을 가리켰다.

눈물의 왕자는 오물들에게 내던져졌다. 그날 밤 오물들의 숙소에서까지 그의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밤이 되면 배낭에서 첫사랑 여인이 보낸 편지들을 꺼내 들춰 보며 베개를 적셨다. 한 방을 쓰던 과격한 오물들마저 머리통을 쥐어박지 못할 만큼 그의 눈물에 묘한 위엄이 있긴 했다. 한 오물은 울고 있는 그를 향해 욕지거리를 날렸다가 다른 이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할 뻔했다. 눈물의 왕자는 하룻밤 만에 오물 신도들을 모두 눈물로 다스렸다. 오물들은 알아서 눈물의 왕자의 베개 옆에 깨끗한 수건 열 장씩을 가져다 놓았다. 젖은 수건에선 달콤한 눈물의 냄새가 풍겼다.

그렇다고 눈물의 왕자가 오물들 사이에 군림하려 든 건 아니었다. 그는 다른 오물들과 마찬가지로 아침에 일어나서 약수터에서 물을 떠 오고 밥 짓는 일을 도왔다. 그 와중에 간간이 마을 아래를 내려다보며 울음을 터트렸지만.

“나 무너진 거 알아?”

어느 기도회 시간, 오물 한 명이 옆사람을 툭툭 치며 말했다.

“왜 잇몸이라도 내려앉았어?”

“마음. 요기 한 곳이 빡빡했는데 눈물의 왕자가 우는 소리를 들으니까 우르르 무너졌어. 처자식이 보고 싶어, 우리 어머니한테 불효한 것도 생각나고……. 내가 왜 요 모양 요 꼴인지 한심스럽다.”

“아, 그나저나 저 앞에 저 새끼는 만날 똑같은 이야기만 씨부렁씨부렁이냐. 씻어서 천국 가자고? 한여름엔 아침에 씻어도 밤만 되면 몸에서 썩은 내가 풀풀 풍기는데.”

일과 시간이 끝나면 오물들은 눈물의 왕자 앞에 모였다. 눈물의 왕자는 자기의 첫사랑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사랑했고, 부자에 개기름이 번들대는 라이벌이 나타났고, 순백의 민들레 청년은 차였다. 하지만 오물들은 따라 울었다. 눈물의 왕자의 추임새처럼 넘나드는 울음은 꽤 전염성이 강했다. 특히 그를 따라 한바탕 울고 나면 오물들은 마음의 찌끼를 다 퍼낸 듯 개운해졌다.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두 여인이 있었다. 성모와 전갈이었다.

성모는 밤마다 기도하는 일을 중단했다. 백승민의 방문을 하염없이 두들기는 일 또한 그만두었다. 대신 오물들의 처소로 내려가 직접 밥을 짓고 물을 길렀다. 술을 줄이고 밤마다 눈물의 왕자가 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오물 여인들과 어깨를 감싸안고 함께 울었다. 독방으로 쓰던 성모의 방은 어느새 전갈의 차지로 돌아갔다.

성모는 눈물의 왕자를 유달리 잘 보살폈다. 눈물의 왕자 역시 성모의 친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둘은 서로 엇비슷한 나이였지만 말을 놓지 않았다.

“여기에만 있으니까 답답하지 않아요, 눈물의 왕자님?”

“아니요, 밖으로 나가면 또 눈물이…… 나고 그러면 또 슬퍼지고…… 죄송합니다.”

“자, 그만 울어요. 내가 당신의 눈물을 닦아 줄 테니.”

철조망 울타리 안은 이제 두 젊은이에게 펼쳐진 아늑한 동화책이었다. 둘은 그 안에서 시름에 젖은 왕자와 자비롭고 성스러운 여인으로 변해 함께 사랑의 왈츠를 추었다. 둘만의 무도회 장소는 점점 비밀스럽고 어두워졌다.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 숨을 장소는 차고 넘쳤다. 타인의 시선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사랑에 눈먼 자는 보지 못하기에. 하지만 보물들과 전갈은 각기 다른 이유로 청춘남녀의 비밀스러운 만남을 관찰하기만 했다.

 

“당신하고 나, 꽃 같은 스물한 살. 참 좋은 나이의 아가씨들인데.”

어느 날 화장실 앞에서 성모에게 전갈이 말을 건넸다.

“정말 그렇긴 해요.”

성모가 땅이 꺼지도록 깊은 한숨을 쉬었다.

“가끔 내 방에 놀러오지 그래요. 어차피 그 방 주인은 당신이잖아요.”

성모가 전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실 난 좀 미안하기도 해. 일부러 내가 그 방을 뺏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무언가 좀 보답할 기회를 줘요. 오늘밤에 내 방, 아니 우리 방에서 만나요.”

“하지만 당신은 밤이면…….”

“요즘은 잘 안 가요. 그 인간 알고 보니 맹탕이라서.”

그날 밤 성모는 전갈의 방을 찾아갔다. 방문을 열자마자 성모는 양손으로 입을 가린 채 방안을 둘러보았다. 벽지는 장밋빛이었고 원목으로 만든 나무 옷장이 벽 한 면을 다 차지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반대편 벽에 붙어 있는 전신거울이었다. 새영광세대의 숙소에서 거울이라고는 공동세면장에 있는 서류봉투만 한 사각거울 하나가 전부였다.

전갈은 옷장을 열어 유행하는 나풀나풀한 여성복들을 성모에게 보여주었다.

“살만 조금 빼면 치수가 맞을 텐데…… 그리고 눈도 커질 거예요. 이제 막 화장하고 얼굴을 꾸밀 나인데, 이런 칙칙한 곳에서 오물들과 살고 있으니, 참 가슴이 아파요.”

“…….”

“반지랑 목걸이도 있는데 보여줄까? 실은 여기서는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가 없으니까 답답했어. 여기는 공식적으로 사치를 금하는 곳이잖아.”

전갈은 갑자기 말을 놓았다.

“맞아요. 사치는 안 돼. 지도자와 함께 배에 올라타려면.”

“왜 그래, 왜 그렇게 얼굴이 시무룩해?”

“이런 건 다 어디서 가져왔어요?”

“가져오긴. 우리의 청소부께서 쓸어 오신 거야.”

“바…… 바로느님께서요?”

성모는 두터운 양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꾹꾹 눌렀다. 전갈은 성모의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다.

“놀랐구나. 그래 나도 자기도 다 저놈들한테 속은 거야.”

“좋아, 어차피…… 이젠 상관없어요. 그냥 내가 너무 바보 같으니까…….”

“아이 참, 왜 자꾸 울고 그래. 눈물도 전염병이니? 눈물의 왕자한테 옮았어?”

전갈은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밑에 숨긴 무언가를 주섬주섬 찾아 꺼내들었다. 성수병에 담긴 술이었다. 전갈이 먼저 병에 든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성모에게 건넸다. 성모는 술병을 든 채로 주저했다.

“왜 그래? 괜찮아. 옛날에도 마셨으면서.”

“아니 저는요…….”

“아, 속이 좀 안 좋아? 아침에 보니까 식사 준비도 안 하고 부엌이랑 멀찍이 떨어져 있던데?”

“요새 좀 속이 그래요. 속이 안 좋아서 밥도 잘 못 먹는다니까요.”

“하긴 오물들 숙소가 워낙 악취가 진동하긴 하지.”

“맞아요, 너무 늦었네요. 이만 가봐야 할 듯…….”

성모는 술병을 탁자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갈은 성모의 손목을 잡아당겨 다시 자리에 앉혔다.

“난 다 알아. 네가 더 이상 성스러운 여인이 아니라는 걸.”

“상관없어요. 미스코리아도 일 년인걸요.”

“그게 문제가 아니야. 보물들이 눈치챘을걸. 성모가 아닌 널 가만 놔둘 것 같아? 그들이 벼르고 있어. 배가 불러 오면 널 골방으로 끌고 가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앨 거라고.”

“…….”

“원하면 몰래 좋은 산부인과에 데려가서 아이만 없앨 수도 있어.”

성모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 이 아이 없애고 싶지 않아요.”

“너 정말 성스러운 여인이 될 자격이 있구나.”

“무슨 말이에요?”

“내가 도와줄게. 무사히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말이야. 대신 조건이 있어. 그 아이를 나에게 줘. 신으로 키우고 싶어.”

“시, 시…… 인?”

“아니, 시 같은 거 끼적대는 인간 말고 진짜 사람들이 숭배하는 신. 나라면 정말 신이 될 수 있는 아이를 키울 수 있어. 아이에 대한 교육권을 내게 양도한다면 사람들을 다 삼켜버리는 아름다운 괴물을 키울 거야.”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어쨌거나 날 여기서 무사히 빼준다는 이야기죠?”

“당연하지. 약속만 한다면. 그리고 넌 바깥에서 다시 처녀로 살아갈 수 있어.”

성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눈물의 왕자도 같이 가나요?”

“절대 안 돼. 난 질질 짜는 남자로는 국도 안 끓이니까.”

며칠 후, 별도 달도 없는 흐린 그믐밤이었다. 전갈은 성모를 데리고 새영광세대를 몰래 빠져나갔다. 출입문을 지키고 있던 보물이 눈을 부릅뜨고 둘을 노려보았다.

“만일 이 여자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바로느님이 무정자증이라는 걸 사람들에게 확 떠벌릴 줄 알아요. 당신들이야말로 돌멩이 하나로 새 두 마리 잡는 거잖아요. 빡빡하게 굴지 말고 빨리 문이나 열어 줘요. 우리가 사라져 줘야 당신들 역시 해피하지 않겠어요?”

새영광세대를 빠져나간 두 여인은 바쁜 걸음으로 야산을 내려왔다. 전갈이 뒤에서 손전등을 비춰 주고 성모가 앞서 걸었다. 산을 거의 다 내려왔을 무렵 성모가 돌부리에 발이 걸렸는지 그만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배를 감싸고 낑낑대는 성모에게 전갈은 서둘러 달려갔다. 크게 다치진 않았는지 성모는 다리를 절뚝거리긴 했지만 금방 일어섰다. 전갈은 들고 있던 손전등으로 주변을 비추어 보았다. 성모를 넘어뜨린 건 돌이 아니었다. 땅 속에 반쯤 묻힌 채 썩지도 않고 단단하게 굳어버린 괴상한 무였다. 시커멓게 시든 그것은 어딘가 전갈을 노려보는 불길한 얼굴처럼 여겨졌다. 문득 전갈은 그녀의 뺨을 때리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어쩌면 저 산 아래의 세계는 오물 미물 보물에 상관없이 서로 뺨을 때리고 얻어맞는 이들이 수두룩한 곳일지 몰랐다. 전갈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하지만 밤바람이 아무리 매서운들 산중턱에서 걸음을 멈출 수는 없어 서둘러 성모를 데리고 산을 내려갔다.

 

 

6.

 

성모와 전갈이 떠난 이후로 새영광세대는 쇠퇴의 길을 걸었다. 새영광세대를 쥐고 흔든 두 여인이 사라졌지만 백승민의 인자한 미소는 부활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신도를 이끌던 바로느님이 사랑 대신 독을 품은 한 여인에게 마음을 전부 빼앗겼던 것이다. 건장한 보물들은 그들의 바로느님을 골방으로 끌고 들어가 기나긴 수련을 시켰다. 하지만 일주일 후 그들이 발견한 건 바지를 까 내리고 그리움에 젖은 얼굴로 자위를 하는 바로느님의 모습이었다. 화가 난 건장한 보물 한 명이 팔팔 끓는 죽을 한 바가지나 바로느님에게 들이부었다. 백승민은 얼굴과 성기에 화상을 입어 초라한 몰골로 변했고, 결국 사이비 종교 단체 새영광세대는 겨울이 오기 전에 무너졌다. 신도들은 모두 초췌한 모습으로 야산 자락을 내려왔다.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은 오랜만에 함께 모여 이곳을 떠나는 신도들을 구경했다.

“저 사람들이 하도 뛰어다녀서 마을길이 아주 잘 다져졌다면서요?”

“떠날 때 흰옷 입고 가는 사람 아무도 없네.”

 

 

7.

 

오랜 세월 소마을 꼬맹이들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할 때면 ‘바른 마음으로 바르게 바로 사니 바로느님’이라 외쳤다. 바른 마음으로 바르게 바로 사니 바로느님. 점점 빠르게 떠벌릴수록 입안에서 혀가 녹아내려 없어지는 기분이 드는 희한한 말이었다.

한편 독침을 품은 한 여인이 신으로 키울 작정이었던 아이에겐 어떤 운명이 펼쳐졌을까? 안타깝게도 그 일에 대해 혀를 놀린 이야기꾼은 아무도 없었다.

 

《문장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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