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좋아하세요?

 

쇼핑 좋아하세요?

 

표명희

 

 

 

 

 

늦은 밤, 한산한 도로 위를 차들이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다. 지영은 마트로 가는 중이었다. 밤 외출이 절실해지는 때가 올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한 듯, 지영이 이사 오고 마트 영업시간은 차츰 연장되었다. 처음 11시까지 하던 영업시간이 한 달 뒤에 자정으로 늦춰지더니 석 달 뒤에는 새벽 2시로 늘어났다. 내후년이면 편의점처럼 24시간 영업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 대형 용광로 같은 소비 도시는 수요만 있다면 하루를 25시간으로 늘여 공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 닫은 상점들이 늘어선 어둑한 보도를 걷고 있으니 백 미터 앞쪽에 있는 지하도 입구가 등대처럼 보였다. 거리의 불빛이란 불빛이 모조리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모여 있는 것 같다. 그 지하도로 다시 백여 미터를 가면 1천 대의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공용 주차장이 나오고 지하도 한쪽에 전철역과 대형 마트 매장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다.

지하도 계단을 내려서자 탁한 공기가 몰려왔다. 하수구 냄새와 어우러진 음습한 바닥의 곰팡내, 미세먼지, 자동차 배기 가스, 타이어 고무 등 온갖 오염 물질이 뒤섞인 냄새다. 이런 지하도 공기에 지영은 별 거부감이 없었다. 직장 생활의 영향일 수 있었다. 그녀는 일류 호텔 마케팅부에서 일했다. 7백여 개의 객실과 옥상에 수영장까지 갖춘 한강 조망권의 초특급 호텔이었다. 호텔 구조가 으레 그렇듯 사무실은 지하층에 있었다. 10년을 하루 8시간 이상 지하에서 보낸 셈이었다. 초현대식 건물 지하는 자연채광만 없을 뿐 지상 층과 크게 차이가 나는 환경도 아니었다. 적절한 조도(照度)를 가진 조명은 차분해 일에 집중할 수 있었으며 온갖 첨단기술 시스템으로 근무 환경도 쾌적했다. 급여는 물론 사원들 복지까지 따져 볼 때 여러 모로 괜찮은 직장이었다. 가끔 직원들에게 할당된 패키지 상품을 팔아야 하는 고달픔만 뺀다면. 아니, 한 가지 더 있다. 엉덩이는 지하 사무실에 붙이고 있으면서 눈은 스카이라운지에 머물게 마련인 호텔리어들의 고질적인 직업병, 그것도 뺀다면…….

대기업 회장 부인이 경영하던 호텔이었다. 세계 각국의 유명 호텔과 고급 리조트에 머물면서 명품 백화점과 갤러리, 미술품 경매장, 그랑 크뤼급 와인만 취급하는 와인 샵을 수시로 오가며 특화된 소비를 즐기는 일이 일상인 재벌가 사람들에게 패션 사업이나 고급 리조트, 호텔 경영은 그들의 관심사와 적성에 맞는 일이었다. 호텔 오너인 그녀는 객실 내 욕실에 비치된 타월의 감촉에서 벽에 걸린 그림 한 점까지, 숱한 경험과 빼어난 안목으로 세세한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전문가였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기업이 도산하면서 자기 소유의 호텔마저 외국 기업에 매각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는 분의 불행은 지하층에서 일하는 직원들 삶까지 뒤흔들어 놓았다. 지영의 10년 호텔리어 생활은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웠던 건 회장 부인이 왜 폭군이자 바람둥이였던 남편과 일찍 이혼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었다. 부자 남편을 둔 여자들의 맹점은 의외로 많았다.

전철에서 내린 사람들이 지하주차장 출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도심과 연결된 마지막 전철역인 이곳에 내린 사람들은 공영 주차장에 세워 둔 자신의 자동차로 갈아타고 집으로 향한다. 도심 지하철로의 마지막 전철역과 그 위에 올라선 마트 건물, 그리고 지하 주차장에서 지상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떠올려 보면 그곳은 척추동물의 어느 관절 부위를 연상시켰다. 뼈와 연골과 근육으로 이루어져 체액의 순환과 근육 운동이 동시에 일어나는 관절 부위 말이다.

마트 매장으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서자 거대한 로봇 같은 주차 발권기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옆으로 놓인 기다란 탁자 위에 경품 응모권 수거함이 있다. 오늘도 수많은 쇼핑객이 기대를 품고 넣은 응모권이 두 개의 투명 플라스틱 함에 빼곡하다. 지영은 자신이 지금껏 한 번도 그 응모권을 써본 일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세상의 숱한 일 가운데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 어디 그뿐일까. 국경일 태극기도 내거는 사람만 걸고, 심야 라디오 방송 엽서도 보내 본 사람만 보내고, 가로수에서 떨어진 은행알도 줍는 사람만 줍고, 로또 복권도 사는 사람만 사듯.

“어서 오십시오 손님!”

매장 직원의 활기 찬 인사와 함께 입구에 면해 있는 과일 코너가 눈에 들어온다. 알록달록 다채로운 빛깔과 싱그러운 향기가 온몸을 감싸온다. 심신이 깨어나는 느낌이다. 코너별 위치와 상품의 진열 순서와 동선 방향까지, 매장 내 모든 것은 소비 심리를 부추기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라는 사실쯤이야 이제는 시식 코너 음식에 맛들인 아이도 아는 상식이 돼버렸다. 이 시간대의 쇼핑객이라야 뻔하다. 다른 사람의 카트와 얽히고 싶지 않거나 시식 코너의 기름 냄새에 방해받지 않고 여유롭고 쾌적하게 쇼핑하고 싶은 사람, 또는 늦은 귀갓길의 직장인이나 학생들이다. 그들은 귀가 도중 전철에서 갑자기 걸려 온 엄마나 아내의 전화를 받고 장 볼 때 빠뜨린 물건을 사기 위해 들르곤 했다. 그날 마지막 전철의 승객이기 일쑤인 그들은 피로에 지친 기색으로 이곳을 찾지만, 상품의 거대한 저장고인 이곳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면 표정부터 달라진다. 그들의 몸과 마음은 반사적으로 풍요로운 물질세계에 동화된다. 먹을거리로 가득 찬 냉장고를 들여다볼 때처럼 피로가 말끔히 가시는 듯한 청량감과 만족을 느끼게 된다.

지영은 공산품 진열대로 구획된 통로를 지난다. 조경이 잘된 숲 사이로 난 반듯한 산책로를 걷는 기분이다. 카트 바퀴를 굴려가면서 이 속을 걷는다는 건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겐 분명 일상의 작은 위안이자 축복이다. 결핍이란 단어 따윈 끼어들 여지가 없는 압도적인 풍요, 그것을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다.

오늘 하루 이 공기를 가르고 지나다닌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그들의 카트에 실려 나간 물건은 또 얼마나 될까. 진열대는 그런 상상이 무색하도록 상품들로 빼곡하다. 주먹 하나 비집고 들 틈이 없다. 이렇듯 견고해 보이는 여유와 안정감 또한 이곳을 거니는 즐거움이다. 매장은 오늘 따라 유난히 한산했다. 과일 코너 한쪽에 있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 지영의 걸음은 반사적으로 그들 쪽으로 향했다. 늦은 시간 함께 장 보러 나선 어린 아들과 엄마였다. 그들은 더미를 이루고 있는 방울토마토 판매대 앞에 서서 토마토를 골라 담고 있었다. 남매를 둔 부부로 이루어진, 이상적인 네 식구 가정을 떠올리게 하는 이들이었다. 두 모자(母子)의 다정한 작업을 바라보던 지영은 뜻밖의 광경에 멈칫했다. 그들은 방울토마토를 꼼꼼하게 선별해 담는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었다. 녹색 꼭지를 일일이 떼어내고 알맹이만 비닐봉지에 담고 있었다. 빠르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떼어낸 토마토 꼭지는 판매대 모서리에 어른 주먹만큼 쌓여 있었다. 꼭지 무게를 제하려는 속셈이었다. 여자는 몰상식해 보이지도 않았고 궁색한 차림도 아니었다. 새싹 같은 어린 자식과 함께라는 것, 손놀림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태연하다는 것이 여자의 얌체 짓을 더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했다. 근근이 살아가는 영세민 가정의 주부로 이해해 주기에는 여자의 행색이 너무도 번듯했다. 은밀하게 지켜보던 지영의 시선이 어린 아들의 눈과 마주쳤다. 초등학교 2, 3학년쯤 되었을까. 녀석의 맑고 검은 눈동자는 당당함을 넘어 저돌적이었다. 얼굴에는 어린애답지 않은 웃음이 느물거렸다. ‘너라고 우리랑 다른 줄 알아?’ 녀석의 쏘아보는 눈빛이 그렇게 말했다. 지영은 화끈 얼굴이 달아올랐다. 도망치듯 그곳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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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수입 식재료 코너에서 올리브유를 살펴보고 있었다. 스페인 발렌시아 지방의 알코이 올리브유가 눈에 띄더니 그 옆에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와 움브리아산(産)도 있었다. 반가움보다 놀라움이 앞섰다. 백화점도 아니고 수입 전문 식료품점도 아닌 이 대형 마트에서 이런 제품들과 맞닥뜨리게 되다니. 엑스트라 버진 등급에 산도 낮은 제품이다. 맛과 향이 풍부한 이런 고급 올리브유는 그대로 먹는 게 좋다. 발사믹 식초와 섞어 빵에 찍어 먹으면 올리브 오일의 순수한 맛과 영양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다. 그녀는 신맛이 나는 토스카나산(産)은 제쳐 두고 스페인의 알코이와 이탈리아의 움브리아, 둘 사이에서 어떤 걸 고를지 고민했다.

2년 전, 스페인 여행 때가 떠올랐다. 지중해와 접해 있는 남동부 발렌시아 지방은 365일 중에서도 300일 이상 태양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곳이었다. 그 찬란한 빛을 받으며 올리브나무 숲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져 있었다. 거대한 올리브나무 농장과 포도원을 둘러본 다음 일행과 유적지로 향했다. 까떼드랄 대성당 종탑이 보이는 2층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자리가 여의치 않아 일행과는 따로 앉은 그녀에게 주방장이 다가와 유난히 살갑게 굴며 요리에 관해 자세한 설명을 들려주었다. 그중에서도 올리브에 관한 이야기가 특히 많았다. 젊은 주방장은 자신이 ‘올리브오일 테스터’ 자격증까지 갖고 있다고 자랑했다. 360여 종의 올리브나무 열매에서 추출한 다양한 올리브유 맛을 시음해 평가하고, 그것들과 잘 어울리는 재료를 찾아 요리하는 것이 그의 주된 관심사라고 덧붙였다. 그것이 식당 홍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검은 머리 동양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주방장의 개인적 ‘작업’이었음은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계산을 마치고 그곳을 나오기 직전, 젊은 주방장은 자신의 연락처가 적힌 메모지를 그녀에게 은밀히 건네주었던 것이다. 열정적 눈빛의 젊은 주방장의 매력에 끌리긴 했지만 그녀는 더 이상의 욕심을 내진 않았다. 직업의식 때문이 아니라 왠지 그 지방을 다시 찾게 될 것 같지 않아서였다. 눈부신 지중해의 태양이 이상하게도 불편했다. 뙤약볕에 바랜 토양은 건조하고 척박해 보였고 현기증이 나도록 희었다. 그와 사랑에 빠지더라도 그녀는 그 고장에서 3개월 이상을 버텨내기는 힘들 것 같았다.

알코이 올리브유를 집어 들어 바구니에 담으면서 그녀는 그곳을 그리워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한번쯤 안부 메일을 보내 그 남자와 연결고리라도 만들어 놓을걸 그랬나……? 부질없는 상상에 그녀는 싱거운 웃음을 지었다. 남자는 그 레스토랑을 떠났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결혼을 했거나……. 한창때의 젊은 남자에게 2년이란 세월은 충분히 변신 가능한 시간이다.

꿩 대신 닭,이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그때 같이 여행했던 사람들과 조만간 모임을 한번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모처럼의 만남을 그들도 반길 것이다. 그들 역시 그녀를 만나면 서울 시청 앞이 산마르코 광장 같고 종로 뒷골목이 베니스 골목길 같고, 한강이 센 강처럼 보인다고 했다. 이번에는 그들과 함께 스페인의 알코이 분위기를 만끽하게 될 것이다. 명동 성당 근처에 있는 스페인 식당에서 만나면 될 것 같았다.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스페인 음식을 먹으면 발렌시아의 그 레스토랑 분위기와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테지. 올리브유 드레싱을 듬뿍 뿌린 상큼한 샐러드를 떠올리며 그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엑스트라 버진의 향과 맛이 혀끝에 감돌았다. 그녀는 알코이산 외에도 움브리아산과 신맛이 나는 토스카나산 올리브유까지 장바구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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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은 비닐 쇼핑백에서 물건을 식탁 위에 하나씩 꺼내 놓았다. ‘투컵 두부’가 제일 먼저 나왔다. 바구니 주인이 나홀로족인 게 분명했다. 두부 한 모가 반으로 나뉘어 담겨진 이 포장용 두부를 처음 발견했을 때 지영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독거인 식습관을 날카롭게 파악한 점도 그랬지만 ‘투 컵’이라는 포장 방식 자체가 적적한 삶에 위안을 주는 것 같았다. 반쪽짜리 두부가 개별 포장된 물속에 잠겨 서로 마주하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보르도산 와인과 까망베르 치즈, 폴리페놀이 함유된 카카오 70퍼센트의 다크 초콜릿, 지중해 지역의 검은 올리브가 세트메뉴처럼 따라 나온다. 나머지는 다 과일이다. 포도는 캠벨, 사과는 아오리, 귤은 하우스 감귤…… 하나같이 친환경 인증 마크가 붙어 있다. 지난번 장바구니의 주인이 맞아 보인다. 깐깐하고 섬세한 미각을 지닌, 남들과 차별화된 소비 취향을 고집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갖춘 삼십대 전문직 여자. 마지막으로 커피, 이것이 결정적 단서다. 커피 열 잔을 만들 수 있는 70그램짜리 커피콩을 택하는 마트 이용자는 흔치 않다. 원두 종류도 지난번 것과 같다. 예가체프 G1. 볶은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신선한 원두를, 그것도 희귀종에 속하는 원두를 마트에서 발견한다는 건 흔치 않은 행운이다. 지난번에도 이 커피 때문에 선뜻 택했던 바구니였다. 과일의 상큼한 신맛과 단맛의 향미를 가진 것으로, 생두 표면이 연하여 로스팅이 유난히 까다로운 원두였다. 균일한 열로 볶지 않으면 자칫 쓴맛이 강하게 나는 게 이 원두의 특징이었다. 커피 전문점이나 호텔 공급용이던 커피가 어느새 마트 판로를 뚫은 모양이었다. 한때의 직업 덕에 그녀도 식음료에 관한 한 적지 않은 정보와 나름의 미각을 갖고 있다.

마지막에는 엉뚱하게도 오버나이트 생리대가 나왔다. 내용물을 주의 깊게 보지 않아 가끔 이런 실수를 했다. 그렇더라도 계산대에서 발견하곤 했건만, 이번에는 계산 도중에도 정신이 완전히 나가 있었던 모양이다. 주의력 부족 탓이다. 그만큼 몸이 안팎으로 낡아 가고 있다는 증거다. 생리 주기도 불규칙해졌고 양도 많이 줄었다. 이런 오버나이트용은 앞으로도 영영 쓸 일이 없어 보였다. 지영은 우연히 발견한 옛 애인의 편지나 사진처럼 그걸 들고 잠시 망설였다. 행주나 걸레 대용으로 쓸까 하다가 결국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지영은 식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집안 깊숙이 밴 구수하고 누릿한 동물 뼈 냄새에 그녀의 코가 새삼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 역겨움은 냉장고 속의 흰 우유를 보는 순간 절정에 달했다. 지난번 장바구니는 노부모에 어린애까지 딸린 가정의 것으로 보였다. 그때는 무슨 마음으로 그걸 선뜻 집어 들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꽃샘추위가 불러일으킨 향수(鄕愁)였을까. 겨울 끝자락, 봄이 오는 길목에 들어설 무렵이면 할아버지는 연례행사처럼 자전거를 타고 우시장을 찾았다. 돌아온 할아버지의 자전거 짐칸에는 돌덩이가 든 것 같은 묵직한 종이 포대가 실려 있었고, 거기서 사골과 우족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들은 커다란 고무 함지에 담겼다. 아이들은 벽돌색 함지 주변에 쪼그리고 앉아 뼈의 절단면과 그것이 토해 놓는 핏물을 신기해하며 들여다보았다. 온종일 핏물 우려낸 뼈를 엄마는 커다란 들통에 담고 바가지로 물을 가득 부었다. 그것은 연탄불 위에서 밤낮없이 고아졌고 삼탕 사탕을 거친 뼈 국물은 삼대가 둘러앉은 밥상에 한 달 내내 올랐다. 가족 모두가 잔병치레 없이 한 해를 보낼 수 있는 건 할아버지가 장 봐온 우족과 사골 덕이라는 말이 그것을 먹는 내내 되풀이되었다. 그 보양식의 효능은 뇌리에 깊이 박혀 탁월한 플라시보 효과를 냈다.

뼈는 손끝에서 비스킷처럼 부스러졌다. 약한 불에 몇날며칠 고아지면서 골수와 진액을 모조리 토해 놓은 흰 사골 뼈는 화산석처럼 송송 구멍이 나 있었다. 뼈까지 녹여낸 국물은 유백색으로 진하고 걸쭉해졌다. 지영은 자신이 골골거리는 뒷방 늙은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더는 참기 어려웠다. 들통에 반쯤 남은 진한 사골 국물을 개수대에 모두 쏟아버렸다. 잠까지 설쳐 가며 우려냈던 묽은 젤 상태의 희끄무레한 진액이 뭉글거리며 개수대에 고였다. 그것은 서서히 개수대 구멍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창이란 창은 다 열어젖혔다. 실내에 밴 냄새까지 말끔히 없애고 싶었다. 사월의 밤바람이 흠씬 몰려왔다. 봄기운이 묻어나는, 건조하면서도 훈훈한 바람과 함께 창밖 야경도 따라 들어왔다. 정면으로 보이는 백화점 건물이 유서 깊은 성(城)을 보는 것 같다. 짙은 그린 계열의 입체 조명이 건물의 중후한 멋을 더 부각시켰다. 낮에는 사선 방향으로 보이는 한강이, 밤에는 고성 같은 백화점 건물이 그녀의 창 전경을 장식했다. 지영이 다녀온 마트는 백화점 바로 옆 건물이었다. 그것은 10층짜리 백화점의 허리 정도 높이에서 소박하고 친근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멀리 보이는 한강 다리 조명과 백화점 건물을 비추는 불빛, 그리고 주변 상점들 네온사인까지 어우러지면 전경은 성탄전야처럼 화려했다. 그 휘황한 빛에 이끌려 그녀는 늦은 밤, 산책 나서듯 마트를 찾곤 했다.

 

 

*

 

대형 수조에는 팔뚝만 한 크기의 캐나다산 랍스터가 빽빽하게 들어앉아 있었다. 넓적하고 두툼한 집게발을 바닥에 척 붙이고 굵직한 더듬이를 양쪽으로 길게 뻗은, 육중한 갑각류의 느긋한 움직임이 위엄 있게 보였다. 심해 밑바닥에 서식하는 놈들의 특성상 니카라과에서는 그것을 잡는 어부들이 잠수병으로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녀는 수조 앞에 어린아이처럼 붙어서서 그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커다란 수조가 마트의 수산물 매장 한쪽을 차지하던 때를 그녀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그녀 자신의 일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미국 발 금융위기가 몰아닥치면서였다. 귀족의 음식으로 오래 명성을 누려 온 이 랍스터가 미국 내 수요가 줄면서 우리 식탁에 오르기 시작했다. 부자가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되면서 그 기회가 서민들에게 밀려 내려온 셈이었다.

그녀는 캐나다 셰디악 해변에서 먹던 랍스터 요리를 떠올렸다. 부드러운 버터와 치즈를 곁들인 랍스터의 고소하고 부드럽게 감겨드는 맛을 잊을 수 없다. 모래 해변에 부서지는 파도의 하얀 거품을 닮은 맛이었다. 식당 창으로 보이는 풍경과 맛이 우연의 일치처럼 맞아떨어졌다. 그녀는 북미나 북유럽 여행이 적성에 맞았다. 기후부터 마음에 들었다. 춥고 스산한 날씨의 그곳에 내리면 이방인으로서의 설렘과 흥분이 온몸을 엄습해 왔다. 일이 아니라 여행을 즐기러 왔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동남아는 날씨부터 체질에 맞지 않았다. 불쾌지수만큼이나 여행객과 현지인들과의 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많았다. 앞으로는 기회가 오더라도 동남아 쪽 일은 거절할 생각이었다. 그런다 하더라도 필리핀 팔라완의 랍스터 사시미의 유혹은 떨치기 어렵다. 열대바다인 만큼 그곳의 랍스터는 빛깔도 화려했다. 야들야들한 육질에서 배어나오는 달작지근하고 상큼한 육즙의 맛이 혀끝에 감돌았다.

“손님, 잠시만요.”

흰 가운을 입은 점원이 손님과 함께 그녀 곁으로 다가섰다. 뒤로 물러나며 그녀는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너무 오래 수조 앞에 붙어서 있었던 모양이다. 두 사람은 수조 속을 들여다보며 랍스터를 골랐다. 점원이 랍스터 두 마리를 뜰채로 건져 올렸다.

“조리하는 데 20분 정도 걸리니까요, 그 후에 오시면 됩니다.”

주문을 접수한 점원이 말했다. 고객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철제 카트를 밀고 다른 코너로 향했다. 랍스터 두 마리가 빠져나간 수조는 별 다른 변화가 없었다. 밑바닥의 어느 랍스터 등 위에 다른 놈이 올라탄 채 짝짓기 자세로 있는 것도 그대로였다. 아래에 깔린 놈은 갑각류의 단단한 외피를 바닥에 붙인 채 여전히 수조 바깥쪽을 무심히 내다보고 있었다. 20분이면 바뀌는 운명 따위엔 관심 없다는 듯. 경쾌하게 피어오르는 공기방울 사이로 더듬이의 굼뜬 움직임은 무심함 그 자체였다. 단단해 보이는 저 갈색 껍질은 화사한 주황빛으로 물들고, 반투명의 속살은 탄력 있는 하얀 살로……. 꿀꺽 군침이 넘어갔다.

“저기요.”

그녀는 멀어져 가는 하얀 가운의 점원을 돌려세웠다. 그리고 앞서 고객이 한 것과 똑같은 주문을 그에게 했다. 셰디악 해변에서 맛보았던 랍스터의 살 맛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

 

커피가 화근이었다. 덜미를 잡힌 것이다. 꼬리가 길어서가 아니라 짙은 향 때문이었다. 어설프게 매장 내 분쇄기를 이용하다니, 더욱이 이런 시간대에. 원두가 가루로 변하면서 뿜어내는 신선한 커피 향에 취해 분별을 잃은 것이다. 여자도 그 냄새에 이끌려 온 게 분명했다.

“아니, 세상에 이런 파렴치한 여자가 다 있어? 남이 장 봐 논 걸…….”

그녀는 직감적으로 ‘미지의’ 그 여자라는 걸 알아챘다. 음악 애호가들이 연주곡을 들으며 연주자의 성별이나 나이를 알아맞히듯 오롯이 자신의 혀끝에서 만들어졌던 여자. 커피라면 에스프레소처럼 독한 열정을 가진 서른 초반의 싱글, 거기다 잘나가는 직종의 커리어우먼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흥분해서 따지고 드는 여자의 모습에서 상상으로 빚었던 미지의 여자는 오간 데 없었다. 격앙된 하이 톤 목소리부터 그랬다. 비호감형 얼굴은 아니었으나 전문직 여성다운 세련미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중소기업체 여직원 아니면 보험설계사, 그도 아니면 서비스업 종사자처럼 보였다. 커피 향 때문인가. 발각되고 나서도 그녀는 눈앞의 일들이 도무지 현실감 있게 와 닿지 않았다.

“이 일을 어떻게 책임질 거예요.”

여자는 매장 관리 직원에게 먼저 따지고 들었다. 남자 직원은 난처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목소리를 낮춰 줄 것을 간곡하게 청했다.

“이 아저씨 좀 봐. 지금, 목소리가 문제예요, 도둑맞은 사람한테?”

도발적 표현이 계산대 앞에 줄지어 선 사람들 시선을 일제히 끌어모았다.

“손님, 말씀이 좀 지나치신…….”

남자 직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게 도둑질이 아니면요? 남이 애써 장 봐논 바구니를 슬쩍하는 게 도둑질 아니면 뭐냐고요?”

“그래도 물건 값이야 본인이 치르는 거니까…….”

“이 보세요. 장 봐논 물건에는 내 노력과 시간이 들어 있는 거예요. 이 사람은 남의 귀한 시간과 노동력을 훔친 거라고요.”

여자의 지적은 너무도 적절했다.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음을 깨달은 남자는 당사자들을 사무실이 있는 비상계단 쪽으로 이끌었다.

“벌써 세 번째예요. 처음엔 뭔가 착오가 있었나 보다 했어요. 그런데 이거 완전히 상습적이잖아요.”

“손님, 물증도 없이 지난 일까지 덮어씌우시는 건 좀…….”

“아저씨, 이 마트 직원 맞아요?”

여자의 말에 남자 직원의 표정도 신랄해졌다. 두 사람의 감정싸움으로 치달을 조짐이었다.

“죄송합니다. 보상해 드릴게요.”

마침내 지영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자신의 부주의를 단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 일에 빠져들어 중독돼 버린 자신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처음엔 불가피한 일이었다. 도저히 장 볼 시간이 없었다. 긴 실업생활 끝에 간신히 구한 영어학원 강사로 나가면서였다. 야간 수업에 사무실 관리까지 맡느라 항상 맨 끝에 학원을 나와야 했다. 마지막 전철에서 내려 허겁지겁 달려가면 마트는 문 닫기 직전이었다. 번번이 매장 입구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날은 라면만 사들고 나오리라 생각하고 매장 안으로 급히 들어섰다. 폐점 5분을 남겨 놓은 시간. 마침 지영의 눈에 보관대에 놓인 바구니 몇 개가 눈에 띄었다. 단순 변심으로 장 본 물건을 포기하고 가는 손님도 더러 있어 임자 없는 장바구니려니 생각했다. 지영은 그 가운데 적당한 것 하나를 챙겨들고 급히 계산대로 향했다. 그 첫 번째 바구니에 제대로 낚인 것이다. 야채와 생선류의 신선식품이 대부분인 그것은 1+1 상품이거나 할인 품목들로 채워져 있었다. 물건 값이 예상 외로 적게 나왔다. 요모조모 따지고 산 알뜰 장바구니라는 건 집에 와서 더 절감할 수 있었다. 포기하고 간 장바구니가 아닌 게 분명했다. 식재료가 요리로 변해 식탁에 놓이자 자취생 끼니는 하루아침에 엄마가 차려 준 밥상으로 올라섰다. 장바구니 주인에 대한 미안함은 혀끝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다. 첫 성공이 두 번째 장바구니를 불렀고, 세 번째부터는 익숙해졌고 마침내 그 일을 즐기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상해 주실 건데요?”

여자가 눈을 살짝 치켜뜨며 반문했다.

지영은 선뜻 답을 내놓지 못했다. 얼떨결에 내뱉은 말이었다. 장 본 물건 값을 대신 치러 주겠다고 할까, 아니면 여자에게 자신의 요구 조건을 말해 보라고 할까, 그래서 만약, 터무니없는 요구라도 나온다면…… 생각이 또다시 실타래처럼 엉켰다.

“어떻게 보상해 줄 거냐고요?”

여자가 다그치듯 말했다.

“손님, 웬만하면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시죠.”

남자 직원이 목소리를 내리깔며 흥정하는 투로 나왔다.

“우리도 다 생각이 있어서 하는 소립니다.”

직원 남자의 말이 묘한 뉘앙스를 띠었다. 그는 장갑을 벗어 종이 박스 위에 툭 집어던졌다. 상대를 압박하는 제스처로 보였다.

“우리, 매장 관리 그렇게 허투루 하지 않아요. 곳곳에 CC카메라 다 설치돼 있고요. 고객 블랙리스트도 있어요.”

으름장 놓는 남자 직원의 말이 의외로 먹혀들었다. 여자는 교무실로 불려온 학생처럼 갑자기 다소곳해졌다. 그들 사이에 뭔가 속사정이 있어 보였으나 지영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이 여자도 남의 장바구니를 슬쩍한 전력이 있다는 얘긴가.

“손님,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때는 응분의 조처를 취하겠습니다. 오늘은 처음이니, 이분께 사과하고, 가셔도 됩니다.”

남자가 결론을 정리해 지영에게 일렀다.

얼떨떨해하며 지영은 직원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 나머지 일은 그들 간의 문제려니 하고 먼저 그곳을 빠져나왔다.

 

 

*

 

지영은 빈손으로 매장을 나섰다. 그곳에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퇴근 시간 직후라 마트 주변 보도도 사람들로 붐볐다. 매장에서처럼 사람들을 피해 가며 걸어야 했다. 대로변을 벗어나 이면도로로 접어들면서 숨이 좀 틔었다. 사거리 모퉁이에 있는 작은 공원이 지영의 눈에 띄었다. 쥐똥나무 울타리가 낮게 둘러 있고 간단한 운동기구와 벤치 두 개가 놓인 작은 휴식처였다. 처음 보는 것이었다. 지영은 잠시 숨이나 돌리자는 생각에 벤치에 앉았다. 최근 들어 운동기구를 갖춘 이런 작은 공원이 유행처럼 생겨나고 있었다. 운동기구는 비닐 포장도 완전히 벗겨지지 않은 채였다. 새로 조성된 것 같기도 했고 닳아 반들거리는 나무 벤치를 보면 예전부터 있던 공원 같기도 했다. 그녀는 지난 일 년간 자신의 동선이 틀에 박힌 듯 일정했음을 떠올렸다. 오늘처럼 해가 있는 시간대에 나와 본 것도 퍽이나 오랜만이었다.

쥐똥나무 울타리 사이로 누군가 나타났다. 몸집이 자그마한 백발의 노부부였다. 똑같은 운동복에 똑같은 운동화를 신은 그들은 키도 비슷했고 얼굴마저 닮아 보였다. 부부라기보다는 다정한 오누이 같았다. 그들은 맨 먼저 허리운동 기구에 다가갔다. 원형의 선반에 발을 올려놓고 가운데 손잡이를 잡고 마주선 그들은 일정한 리듬으로 왼쪽, 오른쪽으로 허리를 돌렸다. 슬로모션을 보듯 단조롭고 느린 움직임이었으나 호흡이 잘 맞았다. 그들을 보면서 지영은 뭉근한 불에서 우려내는 사골 국물을 연상했다. 반투명 겔 상태의 진액이 뭉글거리며 개수대 속으로 빠져나가던 장면도 떠올랐다. 혹시 이들이 지난번 장바구니의 주인은 아닐까……?

“원수도 아닌데,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네요.”

난데없는 한마디에 지영은 움찔했다. 돌아다보니 아까 그 여자였다. 장바구니의 주인.

“놀라지 마세요. 피해 보상 해달라는 거 아니니까.”

여자는 농담처럼 던지고는 양손에 들고 있던 비닐 쇼핑백을 지영의 옆자리에 내려놓았다. 지영의 것이 될 뻔했던 장바구니 물건이 두 개의 비닐 쇼핑백에 담겨 그들 가운데 자리 잡았다.

“정일주라고 해요.”

여자가 먼저 자기소개를 하며 손을 내밀었다. 지영은 얼떨결에 그녀의 손을 잡았다. 차갑긴 했으나 매끈하고 부드러웠다.

둘은 노부부의 운동하는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 있었다. 간간이 신상 정보를 주고받으며……. 정일주는 나이는 서른셋, 직업이 프리랜서 티시TC라고 했다. 티시란, 투어 컨덕터 또는 투어 코디네이터의 줄임말이라는 설명도 따라붙었다. 지금까지 여행한 거리 다 합하면 지구 오십 바퀴는 돌았을 거라는 것, 그래서 붙은 그녀의 별명이 세계일주라는 사실까지 지영은 알게 되었다. 첫인상과는 달리 그녀는 붙임성 있고 소탈한 성격이었다.

허리운동을 마친 노부부는 걸음마 떼는 아이처럼 조심조심 운동기구에서 내려왔다. 할머니는 다시 자전거 페달 기구로, 할아버지는 철봉대로 천천히 자리를 옮겨갔다. 놀이터에 놀러 나온 아이들 같았다. 그런 그들을 지켜보며 앉아 있으니 지영은 자신이 그들의 보호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아까는 정말 미안했어요.”

지영이 일주에게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을 했다.

“뭐, 뭘요. 잘못은, 나한테도 있었는데…….”

난처한 목소리로 얼버무리듯 말하더니 일주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집 가서 같이 저녁 먹어요.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마침 장 봐논 것도 잔뜩 있고.”

급작스런 제안에 지영은 얼떨떨했다. 그리 내키진 않았음에도 거절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궁금증이 풀리지 않은 데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장바구니에 대한 미련과 유혹도 있었다. 두 사람은 마트 로고가 찍힌 비닐 쇼핑백을 하나씩 들고 걷기 시작했다.

“근데, 왜 하필 내 장바구니였어요?”

횡단보도 앞에 선 일주가 불쑥 물었다.

마침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지영은 일주의 장바구니를 떠올렸다. 익숙한 브랜드의 제품과 취향에 맞는 품목들로 그득한, 가장 친숙했던 바구니였다. 만만찮은 가격을 치러야 했으나 소비하는 내내 즐겁고 행복했던 바구니…….

“내 손으로 직접 본 장바구니 같았거든요.”

지영이 말했다. 자신의 황금기였던 호텔리어 시절을 되돌려준, 일종의 환각제 같은 것이었다.

“어쩐지, 나도 꼭 누가 시켜서 장 보는 것 같더라니까요.”

일주가 웃으며 받아쳤다.

지난 일 년의 일들이 지영의 뇌리에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장바구니를 매개로 한 이웃 순례였다고나 할까. 일주의 것과 인연이 많긴 했으나 거의 매번 지영은 다른 바구니를 택했다. 그로써 식단은 주기적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한동안 지영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낙이었다. 누군가의 식사에 초대받은 것 같았다. 초대한 사람은 신혼부부거나 단란한 4인 가족 가정이거나 3대가 한집에 사는 대가족 가정이기도 했다. 때론 쓸쓸한 독거노인의 집일 때도 있었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었다. 초호화 크루즈 여행에서 발품 파는 오지 여행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여행……. 그마저 없었다면 메마르고 지루한 일상이었을 것이다.

일주는 지영의 오피스텔 건물 뒤쪽 재개발 결정이 난 동네에 살고 있었다. 옥상에 노란 물탱크가 있는 이층짜리 붉은 벽돌 슬래브 집들로 이루어진 동네였다. 틀에 찍어낸 듯한 집들이 역시 틀에 박힌 듯 구획된 골목을 끼고 들어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 집을 찾아가는지 신기할 정도로 그 집이 그 집 같아 보였다. 골목길을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두 번, 다시 왼쪽으로 한 번 꺾으면서 걸어 들어간 막다른 골목, 푸른 철 대문 앞에 일주는 멈춰 섰다.

“다 왔어요.”

일주가 손으로 가리킨 그녀의 보금자리는 저녁놀이 물들어 가는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 있는 옥탑방이었다. 아이보리색 패널로 지어진 그것은 ‘언덕 위의 하얀 집’을 연상시켰다.

“직업병인지 높은 곳에 있어야 안정감이 느껴지는 거 있죠.”

일주가 말했다.

지금의 오피스텔로 옮겨오기 전, 지영이 살았던 곳도 이렇듯 허공에 둥실 솟아 있었다. 실직생활 2년에 가장 끔찍했던 기억이었다. 자신의 보잘것없는 거처가 완전히 노출돼 있다는 사실에, 생활의 불편은 차라리 둘째 문제였다. 어학원 강사 자리를 구하고 지영이 제일 먼저 한 것이 이사할 집을 알아보러 다닌 일이었다.

완만한 S자 곡선의 철계단을 올라 실내로 들어서자 옥탑방치고는 꽤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방도 거실도 널찍했다. 벽면을 다 차지하고 있는 장식장들로 방안은 관광지 기념품 가게처럼 화려했다. 칸칸마다 세계 각지에서 사온 기념품들로 그득했다. 베니스의 가면 축제에 나오는 가면들에서 아프리카 나무 조각품, 러시아 인형, 에펠탑 모형, 페르시아산 수예품, 작은 열쇠고리에 이르기까지 각 나라, 온갖 재질과 다양한 모양의 기념품들이 모여 있었다. 눈이 부시도록 현란했다.

“한번은 열흘간의 지중해 여행에서 돌아왔는데, 집안이 온통 빗물에 잠겨 있지 뭐예요. 장마철인 데다 지하방이었거든요. 여행 가방을 한쪽에 세워 두고 바가지로 밤새도록 물을 퍼내는데, 나중에는 지중해 바닥을 짚고 헤엄치는 기분이더라고요. 그 지긋지긋한 지하 생활 청산하고 이곳으로 온 거예요. 지하에서 옥탑으로 가는 건 정해진 수순이라나.”

이야기를 풀어 놓으면서도 일주의 손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장 본 것들을 냉장고에 정리해 넣고 식탁도 차렸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금세 근사한 저녁이 마련되었다. 랍스터와 와인이 식탁에 놓였다. 메인 메뉴 하나만으로도 격조 있고 풍성한 상차림이었다.

“근사한 파티 상이네요.”

지영이 감탄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살림 거덜낼 취향 같죠?”

코르크 마개를 돌려 따며 일주가 말했다. 칠레 와인의 간판 격이라 할 수 있는 몬테스 중에서도 알파였다. 일주는 몬테스 알파 M을 맛본 경험까지 덧붙였다. 그럼에도 술 실력은 젬병이었다. 와인 몇 모금에 얼굴이 로제와인빛을 띠었다.

“이 랍스터가요, 한때 미국에서는 하층민들 음식이었대요. 가난한 사람이나 죄수들이 먹었다더라고요. 하기야 먹는 게 이렇게 번거로우니 부자들이 좋아했겠어요?”

앞다리 살을 조심스레 발라내며 일주가 말했다.

그녀의 뺨과 눈자위는 어느새 로제와인에서 레드와인빛으로 옮겨가 있었다. 그 빛깔에서 지영은 오버나이트 생리대를 떠올렸다. 적어도 일주는 그것이 필요한 나이였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을 자신의 거처로 스스럼없이 초대할 수 있는 자신감과 솔직함으로 넘치는 나이.

─ 메뚜기 한철인 건 이 바닥도 마찬가지예요. 학생들도 젊고 예쁜 여선생을 좋아하죠. 서른 중반 넘어서면서부터 나도 슬슬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마흔을 넘어선 고참 강사는 위험부담을 감수한 채 독립해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털어놓았다. 그녀의 말은 일 년 남짓 경력인 지영의 가슴에 바윗덩이처럼 얹혔다. 동네 어학원에서도 나이와 외모는 경쟁력에 속했다. 그녀 말대로라면 지영도 유효기간 끝자락에 매달려 버둥거리는 하루살이 신세에 지나지 않았다.

“프리랜서 티시 그거, 파도타기 같은 생활이에요. 신나지만 한 번씩 멀미가 나는…….”

일주가 두 번째 잔을 따르면서 말했다. 각국의 특급 호텔을 두루 다니다 인천공항에 내려 여행가방 끌고 자취방으로 향할 때면 그걸 부쩍 실감할 수 있다고 했다. 호텔리어였던 지영의 직업병과 비슷한 증상이 일주에게도 있었다. 그녀의 장바구니에서 느낀 친숙함은 그런 증상에서 온 것인지도 몰랐다. 몸은 여행사 건물에 있어도 눈은 3만 피트 허공을 늘 맴도는 TC의 고질적 직업병. 다른 점이라면 일주는 주거 공간에 대한 애착은 별로 많지 않아 보였다. 지영은 의식주 중에서도 ‘주’에 유난히 집착했다. 실직 생활 2년을 제외한다면, 사는 곳만큼은 늘 최고 수준이었다. 도심의 고급 오피스텔에 사느라 호텔리어 시절에도 월급의 절반은 월세와 관리비로 나갔다.

“그 장바구니…… 실은 내 거라고 할 수도 없는 거였어요.”

일주가 머쓱해하며 말을 꺼냈다.

“이 바닥도 요즘 불경기거든요. 최근 일 년간 일이 거의 없었어요. 허리띠 졸라매고 살아야 하는데 그놈의 쇼핑 습관을 버릴 수가 있어야죠. 실컷 주워 담고는 카운터 앞에 와서야 번쩍 정신이 들었죠. 번번이 장바구니를 보관대에 올려놓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어요.”

일주는 와인을 홀짝였다.

“누군가 내 장바구니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왠지 뿌듯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괜스레 심사가 꼬이더라고요. 그래도 결과적으로 잘됐잖아요. 이렇게 새로운 인연도 생기고…….”

“그럼, 그 장바구니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단 말인가요?”

지영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관찰되고 있었다는 불편한 사실을 떠올리며 물었다.

“항상 그랬던 건 아니고요, 어쩌다 한번……. 하지만 나 역시 감시당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마트 매장 남자와 일주 사이에 오가던 신경전에 얽힌 의문도 그제야 풀렸다. 다들 서로 엿보고, 감시하고 또 감시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혐의라면 지영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럼에도 생색내듯 이렇게 말했다.

“지금껏 나는 일주 씨 대리만족 역할을 해온 셈이네요.”

 

 

*

 

옥상 마당으로 연결해 만들어 놓은 테라스 창은 전망이 좋았다. 지영이 사는 오피스텔도 보였다. 재개발 동네에서 바라보니 그것은 마천루처럼 우뚝했다. 자신의 거실에서 바라보던 백화점처럼 높고 튼튼한 성 같았다. 철옹성 같은 외벽,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도, 자신이 그곳에 몸담고 살고 있다는 사실도 왠지 아득하게 느껴졌다.

학원 강사 자리를 구하면서 지영은 그 오피스텔로 옮겨올 수 있었다. 그것도 장바구니의 유혹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의 하나였다. 처음에는 시간이 없어서였고, 나중에는 돈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남의 장바구니는 두 가지 다 충족시켜 주었다. 유일한 예외가 일주의 것이었다. 그날은 외식하는 셈 쳤다. 화려한 파티에 몸을 맡겼다. 하지만 어떤 파티도 자정을 알리는 괘종 소리, 또는 새벽 첫닭이 어김없이 울게 돼 있다.

허지영 선생, 우리 학원이 자선단체라도 되는 줄 아세요? 강사들 월급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에둘러 말하는 원장의 지적에 지영은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네, 원장님. 하지만 A는 전혀 학원 체질이 아니고, 더 오래 다니면 오히려 우리 학원으로는 부담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둘러대면서도 군색하고 허술한 변명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눈치 없는 어느 학부형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다. 수강생 A는 학원 타입이 아니었다. 혼자 공부하는 게 훨씬 나은 아이였다. A의 엄마가 상담을 청했을 때, 지영은 솔직히 그렇게 조언했고 A는 다음 달 수강 신청을 하지 않았다. 원장이 무슨 사정인지 알기 위해 A의 집에 전화를 걸었을 때, A의 엄마가 지영의 말을 곧이곧대로 옮겨버린 것이다. 그 일 이후 지영은 원장과 같은 사무실에 있다는 것 자체가 죄스럽고 숨 막히는 일이 돼버렸다. 단단히 각오한 일이었으나 원장은 결정타를 날리진 않았다. 대신 지영의 야간 수업은 없어졌고 수입은 절반으로 줄었다. 잘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원장에게 감사해야 할 판이었다. 다른 학원을 알아본다는 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아무리 변두리 어학원일지라도 나이 많고 경력 적은 여강사를 반길 곳은 없었다.

“아, 저 멋진 오피스텔에 사시는구나. 그러니까 우린 마주보고 있는 이웃이네요.”

일주가 부러워하며 말했다. ‘마주보고’라는 말에 지영은 어이없게도 투컵 두부를 떠올렸다.

기분 좋은 취기를 느끼며 지영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는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일주는 와인 서너 잔에 취해 곯아떨어졌다. 주인의 코고는 소리를 뒤로 하고 지영은 현관을 나섰다. 상쾌한 바깥 공기가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왔다. S라인을 이루며 길게 나 있는 계단을 골목의 가로등이 비춰 주었다. 오렌지색 조명을 받으며 계단은 부드럽게 땅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영은 연극이 막 끝난 무대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언제 한번 놀러갈게요. 집도 구경할 겸.

기대에 부푼 일주의 말이 떠올랐다.

지영은 속사정을 털어놓지 못했다. 열흘 뒤면 오피스텔을 떠나야 한다는 걸……. 그 전에 일주를 초대해야 했다. 어떤 장바구니로 식탁을 차릴까? 마지막 만찬이 될 화려한 파티 상을 그려 보며 지영은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문장웹진 4월호》

 

 

 

 

낭독도움 / 이용숙(음악평론가, 방송인)

KBS 1FM, 평화방송, EBS 등에서 음악 해설을 했으며 연합뉴스 객원기자로 공연리뷰를 하고 있다. 저서로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춤에 빠져들다』 등을 펴냈고 『섹스북』, 『그녀들의 메르헨』 등 다수의 독일어 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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