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病)의 밤(夜)

 

 

 

이신조

 

 

 
 

  

 

 

그날 밤, 노인이 병원의 복도에 나타났다.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A병원 본관 2층 감염내과 외래진료실 앞의 대기좌석은 낮 시간대와는 달리 모두 비어 있었다. 깊은 밤이었다. 복도 천장의 형광등 조명은 일부 소등된 상태였다. 정적과 공백과 어둠이 공기 속에 소독액처럼 스며들어 있었다. 정적과 공백과 어둠 속에 낮게 엎드려 숨을 죽이고 있는 무엇, 가만히 도사리고 있는 무엇, 정적도 공백도 어둠도 완전하지 않았다. 당연히 무엇도 끝난 게 아니었다. 밤의 병원은 낮의 병원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했다.

이면, 노인이 병원의 복도에 나타났다.

그 곳이 병원인 만큼, 그것은 그렇게까지 놀랍거나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노인의 출현이 불편한 환기(喚起)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사소할지언정 무시할 수 없는 통증의 자각처럼, 외면하고 부정할수록 마땅하다는 듯 드러나는 치부처럼, 수시로 엄습하는 망각불가의 나쁜 기억처럼, 깊은 밤 노인이 병원의 복도에 나타났다.

노인은 키가 작았고, 말랐고, 후줄근한 환자복 차림이었다. 많은 환자들이 그러하듯 안색이 나빴고, 표정은 어두웠고, 동작은 느리고 위태로워 보였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노인은 ‘환자’가 아니었다.

노인은 병에 걸린 사람이 아닌, 병, 그 자체였다.

링거액 주머니를 매단 스테인리스 거치대를 밀며 노인이 감염내과 외래진료실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낡은 거치대의 낡은 바퀴들이 피로한 소음을 내며 복도 바닥을 힘겹게 굴렀다. 너무나 오랜 시간 너무나 지쳐버린 바퀴들. 그리하여 이제 더 이상 구르는 것은 무리라고 호소하듯 안타까운 소음을 내는 바퀴들. 예의 소음은 결코 크지 않아 참을 수 없이 신경을 긁어대는 것은 아니었지만, 쉼 없이 이어지는 신음 소리나 울음 소리를 들을 때처럼 끝내 무력하고 슬픈 느낌에 젖게 만들었다. 노인의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노인의 걸음걸이를 묘사하기란 어쩐 일인지 불가능하게 여겨졌다. 노인의 그림자에 대해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발소리와 걸음걸이와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짐짓 낡은 거치대가 노인을 끌고 가는 것인지도 몰랐다.

병, 그 자체. 누구라도 노인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누구나 노인을 본 것은 아니었다.

감염내과 외래진료실을 지나 정수기와 손소독제가 구비된 급수대를 지나 오른쪽 코너를 돌면 외과계 중환자실이었다. 차례로 이어지는 제1수술실과 관계자외출입금지 팻말이 붙은 두 개의 문과 수술환자 현황을 고지하는 대형 벽걸이 티브이. 그리고 티브이를 에워싸듯 디귿(ㄷ)자로 길게 줄지어 놓인 의자들. 얼핏 공원 벤치와 비슷해 보이지만 결국은 꽤나 다르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의자들. 공원의 벚나무 아래가 아닌 병원의 수술실 앞에 놓인 의자들. 몸을 잔뜩 웅크린 불편한 자세로 그중 두 칸의 의자를 차지하고 한 남자가 잠들어 있었다. 피로와 긴장에 겨운 졸음. 그러나 결코 깊이 잠든 게 아니었다. 남자는 언제든 깨어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외과계 중환자실 9번 침대에 남자의 아버지가 누워 있었다. 남자의 아버지는 일 주일 전 위(胃)로부터 전이된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해 간(肝)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의식을 회복했던 남자의 아버지는 닷새 전 돌연 혼수상태에 빠졌다. 다급히 여러 조치가 취해졌지만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주렁주렁 덩굴처럼 엉긴 튜브들과 색색의 숫자와 그래프가 점멸하는 모니터와 다분히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복잡한 기계장치들이 남자의 아버지를 겹겹 둘러싸고 있었다. 금식, 감염주의, 절대안정, 면회시간 엄수, 혈액주사, 생리식염수, 포도당, 항생제, 소변주머니, 대변패드, 물티슈, 알코올솜, 묽은 눈곱, 성긴 수염, 손등의 반창고와 검버섯, 마른 입가의 흰 침 자국, 그 와중에 자란 손발톱, 그리고 거즈와 붕대에 두껍게 감겨 위태롭게 들썩이는 흉부와 복부. 그제 아침 담당 의사는 굳은 표정으로 남자의 가족에게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다며 계속 병원 근처에 대기할 것을 권했다. 일 주일 전 다섯 시간에 걸친 수술이 끝났을 때 의사는 가족을 불러 잘라낸 간을 직접 보여주었다. 피투성이 수술복 차림에 의료용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검붉은 간덩어리를 받쳐 들고 이게 바로 암세폽니다 말하던 의사의 표정은 꽤나 상기되어 있었다.

남자의 가족 중 직업이 없는 사람은 남자뿐이었으므로, 남자는 이틀 내내 병원에 머물렀다. 남자는 직업이 없었고, 배우자와 자식도 없었다. 한때는 직업과 배우자와 자식이 있었다. 남자는 지난 몇 년간 가족 중 누구도 만나지 않고 지내 왔다. 아버지의 입원 후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한 모든 서류에는 직업과 배우자와 자식이 있는 남자의 형제가 사인을 했다. 남자는 어머니가 없었다. 역시 있던 적도 있었다. 이제 아버지 차례인가 남자는 생각했다. 있다가 없어진 것에는 젊음도 있었다. 다른 가족이 모두 돌아간 늦은 저녁, 옥외주차장 흡연구역에서 담뱃불을 빌린 누군가 장기 입원 환자의 가족이 자주 이용한다는 병원 근처 찜질방의 위치를 일러준 참이었다. 남자는 자정쯤 그 곳에 가서 샤워를 하고 잠시 눈을 붙여야겠다 마음을 먹고는 다시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다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예의 노인이 천천히 거치대를 밀며,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발소리와 걸음걸이와 그림자와 함께, 잠든 남자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느닷없이, 외과계 중환자실의 커다란 자동문이 덜컹거리며 양옆으로 열렸다. 잠옷과 비슷한 모양새의 헐렁한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젊은 남자가 슬리퍼를 끌며 밖으로 나왔다. 그는 A병원에서 일한 지 막 한 달을 넘긴 신참 간호조무사였다. 젊은 남자 간호조무사는 빠른 걸음으로 비상계단 쪽을 향해 걸어갔다. 시선은 손에 쥔 휴대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 그는 노인을 보았지만, 더욱 짧은 순간 그는 자신이 노인을 보지 않은 거라 생각했다.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는 단호하고 반사적인 결정이었다.

중환자실에서의 지난 한 달, 그는 이미 병과 노인과 깊이 병든 노인에게 넌더리가 나 있었다. 물론 간호조무사 교육을 받으며, 자격증 시험을 치르며, 현장 실습에 임하며 짐작은 한 터였다. 각오는 한 터였다. 그러나 피와 고름과 가래와 똥오줌의 색깔과 소리와 냄새, 그것을 받아낸 후 깨끗이 비워내야 하는 용기(容器)들의 색깔과 소리와 냄새, 주름진 피부와 뻣뻣한 관절과 늘어진 페니스, 부질없는 헛소리와 집요한 몸부림, 통증과 공포에 희번덕거리는 음울한 눈동자들. 극적인 격앙과 냉담한 지루함이 널을 뛰는, 이십사 시간 한순간도 불이 꺼지지 않는 마흔 개의 병상. 그는 진저리를 쳤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병의 실체에 꼼짝없이 익사할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사명감이나 자부심은 오직 의사나 간호사 들만의 단어처럼 여겨졌다. 때문에 깊은 밤 복도에서 만난 환자복 차림의 노인은, 중환자들과는 달리 걸어다니기까지 하는 노인은 그에게 그저 부딪치지 말고 바삐 지나쳐야 하는 장애물일 뿐이었다. 신참 간호조무사에게는 필사적으로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야간근무 수당이 합쳐졌음에도 처음 받아 본 급여는 불만스럽기만 했고, 거의 매 순간 자신의 미래가 밝지 않음을 예감해야 했으며, 그럼에도 당장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처지를 씁쓸히 곱씹어야 했다. 그는 당직 간호사실로 배달된 팔인분의 야식을 가지러 가는 중이었다. 병원 관계자들은 간호조무사의 이름에 의사나 간호사에게처럼 꼬박꼬박 선생이란 호칭을 붙였지만, 더없이 치밀하고 효과적으로 궂은일과 심부름을 떠맡겼다. 비상계단을 내려가며 그는 깊은 숨을 토해냈다. 그럼에도 중환자실 밖으로 나오는 일은 언제나 기꺼웠으므로. 그는 며칠 전 금액의 부담을 무릅쓰고 고가의 최신 휴대폰을 장만했다. 그리고 비슷한 처지의 지인들과 강박적으로 잡담과 험담을 나누었다. 기계처럼 움직이고 기계처럼 무신경해지라는 것이 그들의 강령이 되어 있었다. 야식을 먹은 다음 그는 산더미처럼 쌓인 거즈를 일 회 사용분씩 나눠 삼백 회분으로 종이 포장해야 했다. 내일은 욕창 방지 처치를 하는 날이었다. 꿈속에서까지 비위가 상하는 일이었다.

젊은 신참 간호조무사는 복도에서 만난 노인을 기억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는 이내 노인을 잊었다. 완전히 잊었다. 당직실로 향하는 제 발걸음보다 빠르게, 휴대폰의 데이터가 전송되는 속도보다 빠르게 노인을 잊었다. 이로써 젊은 신참 간호조무사는 노인을 본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누구라도 노인을 볼 수 있었지만, 과연 누구나 노인을 본 것은 아니었다.

대기실의 남자는 눈을 뜨고 몸을 추슬러 의자에 바로 앉았다. 자신이 잠을 깬 것은 경보선수처럼 잰걸음으로 사라진 간호조무사의 기척 때문이라 생각했다. 남자는 벽시계를 올려다보았고, 하품을 하며 머릿속으로 찜질방의 위치를 가늠해 보았다.

그리고 남자는 노인을 보았다. 링거액 주머니가 달린 거치대를 밀며 환자복 차림의 노인이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해 느리게 다가오고 있었다. 노인의 발소리 대신 낡은 거치대의 낡은 바퀴에서 기운 없이 피로한 소음이 들려왔다. 길게 디귿자로 놓인 의자들, 노인은 남자와 대각선 위치의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남자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남자를 바라보지 않았다.

이틀 밤을 병원에서 보낸 남자는 밤늦게 병원 이곳저곳에 출몰하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어디론가 다급히 불려가는 듯한 의사나 간호사, 뒷짐을 지고 천천히 주위를 살피는 경비직원, 불면과 운동을 핑계로 로비를 어슬렁거리거나 몰래 담배를 피울 만한 곳이나 긴 전화통화를 할 만한 곳, 티브이를 켜둔 대기실을 찾는 권태롭고 소침하고 조용한 환자들, 또 자신처럼 비상대기 중인 위독한 환자의 가족들, 그 심란한 얼굴들, 병원 내 편의점 간이테이블에 캔커피나 컵라면을 올려놓고 우두커니 독백을 삼키며 앉아 있는 사람들.

그러나 노인은 아니었다. 노인은 그들 중 누구도 아니었다.

어쩌면 노인은 그들 모두일 수 있었다. 그들 모두에 속한 무언가를 각각 한 줌씩 떼어내 그것을 다시 한데 뭉쳐 얼기설기 빚어 놓은 듯한 형상, 간신히 이루어졌지만 확고히 자리매김하게 된 존재, 그들 모두가 아니면서 그들 모두로부터 비롯된 우리 모두, 바로 노인이었다. 늙고 작고 마른 노인, 젊고 크고 살진 세상 모든 것의 종착점인 노인. 발소리와 걸음걸이와 그림자 없이 밤의 병원에 나타나는 노인. 남자는 자신이 잠에서 깨어난 것이 바로 노인 때문이란 것을 알았다.

몇 년 만에 만난 아버지는 병석에서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천천히 두 번을 반복해서 불렀다.

그 쇠약한 부름은 그러나 긴 침묵으로 이어져 어떠한 판결명령처분도 내리지 않았다. 그 순간, 남자는 자신이 판결과 명령과 처분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오래도록 자신이 그것을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남자는 비로소 자신이 생으로부터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요컨대 명쾌한 판결과 단호한 명령과 엄중한 처분. 그러나 판결과 명령과 처분 대신 고열과 구토와 호흡곤란으로 가득 찬 긴 괄호 같은 침묵. 아버지의 고열과 구토와 호흡곤란이 잦아든다 해도 남자는 판결과 명령과 처분을 받지 못할 게 분명했다. 영원한 유예. 뜨뜻미지근하고 흐지부지한 삶의 저주. 숨 막히는 모호함이, 진창 같은 혼돈이, 황폐한 모순이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호함과 혼돈과 모순이 언제까지고 자신을 속속들이 갉아먹을 터였다. 누구나 생으로부터 명쾌한 판결과 단호한 명령과 엄중한 처분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감히 그럴 수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혈액형이 같은 남자는 수술 전 두 차례에 걸쳐 피를 뽑았다.

깊은 밤 A병원 본관 2층 외과계 중환자실 앞 어느 의자에 앉아 남자는 얼어붙을 듯한 서글픔과 고립감에 빠져들었다.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자는 노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남자는 노인을 따라 일어서고 싶었다. 어디로든 노인이 가는 곳을 쫓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남자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꺼풀과 목울대의 뜨거운 경련을 고스란히 느끼며 붙박인 듯 자리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노인이 거치대를 밀며 걷기 시작했다. 거치대가 노인을 끌고 가는 것인지도 몰랐다.

노인이 남자의 이름을 불렀던가. 천천히 두 번을 반복해서 불렀던가.

남자는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판결과 명령과 처분 없이 아버지 차례가 당도했다. 이제 곧 중환자실 문이 열리고, 남자는 제 이름 대신 아버지의 이름에 보호자라는 호칭이 덧붙여 다급하게 불릴 것이다. 판결과 명령과 처분 없는 끝. 영원한 유예. 뜨뜻미지근하고 흐지부지한 삶의 저주.

노인의 모습이 멀어져 갔다. 불이 꺼진 채 셔터가 내려진 수납계 쪽을 지나자 노인의 모습은 베일에 싸인 듯 희미해졌다. 잠도 함께 사라졌다.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대신해 불릴 아버지의 이름을 두려움 속에 기다리기 시작했다. 때문에 노인을 부를 적당한 이름을 떠올릴 여력이 없었다. 유령이나 요정이란 단어는 단연코 우스울 것이다. 그러나 환영(幻影)이나 정령(精靈)이란 단어는 남자가 떠올리기엔 확실히 낯설고 어려운 말이었다.

그러나 이제 분명, 남자는 노인을 본 사이 되었다.

 

*

 

노인은 밤에만 나타났다. 노인은 밤에만 걸었다.

노인은 병원의 모든 장소를 알았고, 병원의 모든 시간을 알았다. 병원의 모든 사람이 노인을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노인은 병원의 모든 사람을 알았다. 노인은 병원의 모든 사람의 내력병의 내력도 알았다. 노인은 결코 눈을 감지 않았으며,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A병원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종합병원이었다. 상이군인, 참전군인, 경찰유공자, 특정 분야 종사 공무원과 그와 유사한 지위와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의료 혜택을 받는 곳이었다. 치료비는 환자의 등급별로 계산되어 국가기관에 청구되었다. 정기적으로 전문가 집단으로 이루어진 환자 등급 심사위원회가 열렸다. A병원의 환자들은 관련 법률에 의거해 정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누리고 합당하게 대가를 지급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권리는 병에 걸려야만 누릴 수 있고 그 대가는 육체의 고통을 전제로 지급된다는 점에서 일말의 구차함을 수반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때문에 A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그러한 생각이 드는 순간,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늦은 밤이었다. 운동부하검사실과 물리치료실이 있는 A병원 신관 3층 복도는 온전히 비어 있었다.

중사(中士)는 전동휠체어의 컨트롤러 손잡이를 바짝 잡아당겼다. 휠체어 바퀴가 빠르게 회전하며 빈 복도를 미끄러지듯 내달렸다. 종일 병실과 검사실을 오가며 느꼈던 갑갑증이 다소 누그러지는 듯했다. 조용히 비어 있는 공간을 마음 내키는 대로 휘젓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내달리고 있는 것은 자신의 몸이 아닌 고가의 전동휠체어임을 중사는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다. 방금 전 휠체어에 앉는 것을 도운 아내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중사를 따라나서겠다고 했다. 중사는 그런 아내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내는 풀이 죽은 얼굴로 입원실 야트막한 보조 침대에 다시 누웠다. 휠체어가 잠시 불균형하게 흔들렸다. 중사는 컨트롤러 손잡이를 더듬어 속도를 줄였다. 오른손이 아닌 왼손을 사용한 작동은 아무래도 능숙하지 못했다. 별것도 아닌 일에 이내 등줄기에서 땀이 솟았다. 휠체어에서 떨어져 아무도 없는 복도에 널브러지는 자신의 모습이 바로 떠올려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무척이나 곤욕을 치를 게 분명했다. 오른발과 오른다리는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고, 오른손은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앰뷸런스에 실려 응급실로 들어온 이후 모든 것이 심각하기만 했다. 넉 달 전 처음 검진을 받으러 병원을 찾았을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입원 직후 혈전용해술 등의 처치를 통해 중사는 큰 고비를 넘겼다. 상태가 다소 호전된 뒤로는 원인 질병의 검사와 치료, 혈소판억제제 투여와 식이요법과 운동요법 등의 길고 지난한 과정이 이어졌다. 늦은 밤 병원 복도는 조용히 비어 있었다. 중사는 자신도 모르는 새 다시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속력을 낸다 한들, 내달린다는 표현을 쓴다 한들, 작동법이 서툰 전동휠체어의 달리기일 뿐이었다. 중사는 무릎 위에 고깃덩어리처럼 늘어져 있는 제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누구를 향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여움이 치솟았다.

중사의 병명은 허혈성 뇌졸중, 즉 뇌경색이었다. 식사 도중 입에 떠 넣었던 찌개 국물이 갑자기 턱 아래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오른쪽 얼굴이 마비된 것이었다. 누군가의 ‘풍을 맞았다’는 표현을 듣는 순간, 중사는 아닌 척 충격을 받았다. 풍을 맞았다는 말이 ‘총을 맞았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군복무 시절 그는 사격에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스나이퍼 권(權)’이 그의 별명이었다. 그는 총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단숨에, 재빨리, 치명적으로, 돌이킬 수 없이. 풍을 맞았다는 것은 당연히 총을 맞았다는 말이 아니었지만, 중사는 자꾸만 자신이 총에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증세는 의사의 경고가 그대로 실현된 것이었다. 술과 육식을 즐기는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중사는 평소 지인들에게 자신이 산악회와 조기축구회의 회장임을 강조하며 건강을 자신했다. 그러나 다혈질에 체구가 크고 다분히 고압적인 태도로 타인을 대하는 중사에게 고혈압과 고지혈증은 제법 잘 어울리기까지 하는 질병이었다.

중사는 복도를 내달리는 전동휠체어에 앉아 신경과 주치의의 말을 떠올렸다. 의사는 현재와 같은 편측마비 증세는 물론 구음장애, 감각이상, 실인증, 시야장애와 의식소실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상태가 심각해지면 말이 어눌해지고 엉뚱한 감각을 느끼고 치매환자처럼 사리분별을 할 수 없으며 갑자기 눈앞이 하얘지거나 의식을 잃고 쓰러질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빌어먹을, 어디서 겁을 주고 지랄이야, 평소 겁이 날 때면 중사는 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괴팍하게 성질을 부리거나 했다.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두려움을 처리해 왔다. 그러나 주치의에게는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 의사는 중사에게 중사의 뇌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부분이 바로 괴사된 조직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게 되는 일, 자신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누군가로부터 설명을 듣게 되는 일, 자신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일. 혀까지 마비된 것은 아니었지만, 중사는 좀처럼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노인이 중사 곁을 지나쳤다. 중사는 휠체어를 멈추었다. 갑작스러운 반동에 휠체어가 흔들렸다.

늙고 작고 마른 노인이, 후줄근한 환자복 차림의 노인이 링거액 주머니가 달린 거치대를 밀며 자신의 곁을 지나쳐 간 것이다. 중사는 노인이 언제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불쑥, 기척도 없이. 왠지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풍을 맞았다는 말이 총을 맞았다는 말로 들린 이래, 중사는 이런 느낌에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있었다. 그 어떤 돌발 상황도 달갑지 않았다. 더구나 노인은 휠체어에 부딪힐 듯 아슬아슬하게 제 곁을 지나갔다. 늦은 밤 병원의 복도를 모조리 혼자 차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갑작스러운 노인의 등장이 중사는 못마땅하기만 했다. 중사는 노인을 돌아다보았다. 느리고 쇠약한 동작의, 걷고 있지 않는 듯한 이상한 걸음걸이. 지나치던 순간 노인의 얼굴을 보았던가. 노인의 표정을 읽었던가. 중사는 자신이 필요 이상 불쾌한 감정에 빠져 있음을 인정했다. 오른손과 오른발이 제대로 움직인다면 얼마든지 그러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중사는 다시 휠체어의 컨트롤러를 작동시켰다. 왼손으로 작동시켰다. 중사는 노인을 등지고 앞으로 나아갔다.

노인이 다시, 중사 곁을 지나쳤다. 속도를 줄인 상태였지만 중사는 이번에도 노인의 기척을 감지하지 못했다. 하릴 없이 등줄기에서 땀이 솟았다. 오른쪽 등이 아닌, 왼쪽 등에서 솟은 땀만 느끼고 있는지도 몰랐다. 중사는 어리둥절했고 짐짓 짜증이 났다. 신관 3층 복도는 커다란 미음(ㅁ)자 구조였다. 중간에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반대편으로 향한 두 사람은 다시 마주칠 수 있었다. 그러나 중사가 노인을 등진 것은 불과 수십 초 전, 노인은 너무나 짧은 시간 만에 다시 중사 앞에 나타난 것이다. 불편한 동작으로 거치대를 밀며 느릿느릿 걸어서가 아니라, 마치 단거리 육상선수처럼 전력질주로 긴 복도를 한 바퀴 달려온 것처럼. 물론 노인의 달리기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불쑥, 벽이라도 통과한 걸까. 중사는 휠체어를 멈춰 세웠지만, 노인을 불러 세우진 못했다.

중사는 다시 컨트롤러 위에 왼손을 올려놓았다. 복도를 맘껏 내달리고 싶던 마음은 어느새 시들해져 있었다.

더욱 짧아진 간격으로 노인이 세 번째 제 앞에 나타났을 때, 중사는 소리쳐 아내를 부르고 싶었다. 재방송되는 티브이 화면처럼 노인이 다시 휠체어 곁을 지나쳐 가는 순간, 중사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오른손과 오른발을 마구잡이로 버둥대고 싶었다.

야자수 이파리, 늙고 작고 마른 노인의 머리 위로 커다란 야자수 이파리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눈이 부셨다. 눈부신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다른 여름의 다른 햇살. 오래 전, 중사는 제가 알던 여름과는 다른 여름이 존재하는 나라에 갔었다. 총을 들고 갔었다.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던 해변 마을, 자신이 알던 햇살이 아니었고, 자신이 알던 마을이 아니었다. 중사가 그토록 많은 야자수를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총으로 사람을 쏜 것 역시 그날이 처음이었다. 커다란 야자수 이파리 아래에서였다. 중사는 일곱 발을 명중시켰다. 달리 말해 전공(戰功)을 세운 것이었다. 중사는 바닥에 떨어진 탄피를 남김없이 찾아내 군복 주머니에 넣었다. 얼마 뒤 중사는 하사에서 중사로 진급했다. 눈부신 햇살이 물러가자 오래도록 비가 내렸다. 역시 자신이 알고 있던 비와는 다른 비였다.

A병원 신관 3층 복도에 야자수가 늘어선 해변 마을이 펼쳐졌다. 중사는 전동휠체어 방향을 돌려 노인을 뒤쫓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꼭 베트콩을 닮았네. 누구를 향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던 갑갑함과 두려움과 노여움이 오롯이 노인을 향하고 있었다. 중사는 휠체어의 속력을 올렸다. 그러나 노인의 뒷모습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병원 복도가 해변 마을이 되어버린 탓이리라. 중사는 야자수 이파리가 머리 위로 드리워진 노인을 향해 계속해서 휠체어를 달렸다. 민첩하게 방아쇠를 당기던 오른손은 제 것이 아닌 양 무릎 위에 놓여 있었다. 눈부신 햇살, 예전처럼 덥고 습한 바람이 불어왔다. 땀에 전 군복, 뜨겁게 달구어진 철모, 밀림의 진창에 잠기는 군화, 그리고 총 소리, 탄피 냄새, 얼얼한 뺨과 어깨, 피가 밴 이빨. 다른 여름이 있는 나라에서 돌아와 중사는 상사가 되지 못하고 전역했다. 노인의 뒷모습은 가까워지지 않았다. 감각이상, 시야장애, 의식소실. 이렇게 눈이 부시다간 눈앞이 하얗게 멀어버릴지도 몰라,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질지도 몰라. 그러나 아직은 아니었다. 중사는 노인과 다시 마주치게 될 터였다. 중사가 중사였던 것은 41년 전의 일이었다.

 

*

 

병든 육체, 병든 시간, 병든 기억. 병, 육체에 깃든 시간을 기억한다는 것.

다시 밤이었고, 다시 노인이 나타났다. 그것이 노인의 몇 번째 등장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밤이 지나면 다시 모습을 감출 노인이 링거액 주머니를 매단 낡은 거치대를 밀며 천천히 병원 복도를 걸었다. 낡은 바퀴들이 피로한 소음을 냈다. 노인의 발소리와 걸음걸이와 그림자는 밤의 안쪽으로 가리워져 있었다.

밤은 위독하다. 밤은 고비다. 밤을 무사히 넘긴다는 것, 그것을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기도와 기적이 필요하다.

밤의 병원은 낮의 병원의 침전물을 깊숙이 빨아들인다. 잠복 중인 바이러스가, 피 묻은 솜이, 깨진 약병이, 살균된 시트가, 묵직한 통증이 밤의 깊은 곳으로 스며든다. 불길한 악몽이, 막막한 기다림이, 안타까운 인내가, 외로운 하소연이 어둠 속에 뿌리를 뻗는다. 노인의 발목에도 검은 뿌리가 감긴다. 노인의 발소리와 걸음걸이와 그림자를 남김없이 휘감는다. 노인은 그토록 질긴 뿌리를 끌며 병원 복도를 걷는다.

밤의 병원, 정적과 공백과 어둠 속의 사람들, 몇몇 사람들, 노인을 본 사람과 노인을 보지 못한 사람과 노인을 보려 하지 않는 사람과 노인을 보고도 잊은 사람. 어쩌면 애써 노인을 찾으려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노인은 병원 로비의 게시판 앞을 지나고 있었다.

셔틀버스 증설공지, 금연상담, 웃음치료, 노래교실, 특선영화상영, 입원환자를 위한 이미용 자원봉사서비스, 통증클리닉, 암환자 식이요법 교육, 체외충격파쇄석실 이용안내, 쾌차기원 법회, 수요성경공부, 독감예방접종, 저희 A병원은 환자분들을 가족처럼 섬기고 있습니다, 친절 불친절 신고카드, 친절은 녹색 불친절은 노란색.

노인은 계속해서 걸었다. 밤의 병원. 병원의 밤. 밤은 위독하다. 밤은 고비다. 오늘밤 응급실에서, 본관 618호 병실에서, 심혈관계 중환자실에서 몇몇의 병이 죽음으로 넘어간다. 병원에 노인이 가지 않는 곳은 없다. 병원에 노인이 알지 못하는 곳은 없다. 그러나 결코, 노인은 병원의 시체안치소와 장례식장을 찾지 않는다.

노인은 병, 그 자체다. 결코 죽음이 아니다. 병들어 죽은 사람은 있지만, 병든 죽은 사람이란 없다. 죽은 사람은 결코 병들어 있지 않다. 병은 오롯이 살아 있다. 오직 살아 있는 사람만이 병들 수 있다. 노인은 죽음 앞에서는 걸음을 멈춘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노인이 걷는다. 오늘 밤, 병원의 모든 육체와 모든 시간과 모든 기억을 밤의 복도에 붕대처럼 풀어 놓는다.

 

*

 

간병인 여자는 분홍색 유니폼 조끼를 벗었다.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고 병상의 침대에 누웠다.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몸에 밴 습관대로 조심조심 움직였다.

빈 병실을 얻을 수 있었으니 오늘은 운이 좋은 셈이었다. 4인실 네 개의 침대 중 하나만 차 있으니 더욱 운이 좋은 셈이었다. 건너편 침대의 동료 간병인 여자는 일찌감치 잠이 든 모양이었다. 침대 주위를 두른 얇은 커튼 너머로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가운 면 시트의 감촉이 잠시 선득한 느낌을 주었다. 여자는 반대편으로 돌아누우며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한 것에 대해 잠시 죄책감을 느꼈다. 오늘 낮에 여자가 한 달 가까이 간병했던 노인이 죽었다. 일반 병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진 후 이틀 만이었다. 모든 상황은 의사들의 예측과 맞아떨어졌다.

노인은 폐암 말기였다. 이런저런 합병증도 진행된 상태였다. 누구라도 병상의 노인을 보는 순간 노인이 돌이킬 수 없이 심각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노인은 칠십대 후반이었고, 과거 꽤 높은 직급의 공무원이었으며, 아내와는 몇 년 전 사별했다고 했다. 모두 노인의 며느리에게서 띄엄띄엄 전해 들은 내용이었다. 길어야 한 달, 며느리는 최대한 불경해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며 의사들의 예측을 간병인 여자에게 귀띔해 주었다. 오랜 투병생활에 노인과 노인의 가족 모두 지칠 대로 지친 모양이었다. 그간 여러 사정으로 여러 병원을 전전했고, 여러 번의 수술이 거듭됐고, 간병인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고. 노인의 자식들 중 몇몇은 외국에 살고 있다고 했다. 가장 자주 병원을 오가는 노인의 며느리는 중학교 교사였다. 길어야 한 달, 요는 간병인 여자의 간병이란 것이 치료와 회복을 위한 직간접의 도움이 아닌, 언제 닥칠지 모르는 마지막 순간에 대비해 이십사 시간 노인 곁을 지켜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간병인 여자는 그렇게 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갔다.

오늘 오후 중환자실을 찾았을 때, 환자 명단을 적어 놓은 화이트보드에 노인의 이름이 지워지고 없었다. 이틀 전 중환자실로 옮겨가며 노인의 며느리로부터 그간의 간병비를 지급받은 터였다. 간병인 여자는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다. 병원 간병인들 사이의 불문율 같은 거였다. 간병인 여자는 노인의 마지막 모습이 어떠했을지 생각하며, A병원의 로고가 프린트된 담요를 턱 밑까지 끌어당겼다.

노인은 목을 절개하고 구멍을 내 기관에 인공호흡기를 삽입하고 있었다. 때문에 말을 할 수 없었다. 거칠고 불안정한 쇳소리만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식사 역시 튜브를 통해 유동식으로 섭취했고, 얼마 뒤 그마저도 영양액 주사로 대체되었다. 노인의 얼굴은 시간이 갈수록 검푸르게 변했고, 노인의 사지는 앙상하게 뼈를 드러냈다. 간병인 여자는 노인의 몸을 닦아내고, 대소변을 처리하고, 의료진의 처치를 보조했다. 이해할 수 없는 쇳소리에 고개를 끄덕여 주거나 무어라 말대꾸를 해주기도 했다. 밤이면 노인의 침대 옆 야트막한 보조 침대에서 잠을 잤다. 잠을 잘 때도 숨이 가쁜 노인과 한 달 가까이 함께 잤다.

어느 밤, , 무언가가 간병인 여자의 얼굴 위로 드리워졌다. 설핏 잠이 들었던 간병인 여자는 움찔 놀라 눈을 떴다. 그러나 소리를 지르며 몸을 일으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침대 밖으로 늘어뜨려진 노인의 이었다. 간병인 여자는 보조 침대에 누워 어둠 속 자신의 얼굴 위에 떠 있는 어두운 손을 올려다보았다. 손이 움직였다. 노인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무언가를 붙잡기라도 하려는 듯, 무언가 불러내기라도 하려는 듯. 길고 마르고 어두운 손이 알 듯 말 듯 손짓하고 있었다.

잠시 후, 간병인 여자는 가만히 제 두 손을 뻗어 그 손을 잡았다. 뒤틀린 나뭇가지처럼 거칠고 뻣뻣한 손이었다. 그러나 그토록 미미한 악력이, 그토록 희미한 온기가 남아 있는 손이었다. 도합 열다섯 개의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 개의 손이 천천히, 오래도록 움직였다. 느리고 내밀한, 어떤 춤의 안무 같기도 했다.

다음 날 밤에도, 어둠 속 간병인 여자의 얼굴 위로 손이 떠 있었다.

간병인 여자는 중국 길림성 연변자치구에서 온 조선족이었다. 한국에 온 지는 삼 년 반, A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한 것은 지난 일 년 남짓이었다. 한국에 들어와 오십대 나이를 맞았다. 초반에는 주로 식당 주방 일을 전전했고, 어렵게 간병인 교육을 받은 후 A병원에 들어올 수 있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A병원은 정책상 대부분의 간병인을 조선족 이주노동자로 고용했다.

간병인 여자는 자연스레 ‘병원생활자’가 되었다. 병원에서 일을 해 돈을 벌고, 병원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잤다. 식사와 잠자리는 공식적으로 제공되는 것이 아니었기에, 간병인 여자는 다른 조선족 간병인 여자들처럼 요령과 눈치와 변통을 급히 익혀야 했다. 병원생활자는 그림자처럼 눈에 띄지 않게 존재해야 했다. 환자 샤워실이 비는 시간에 몸을 씻었고, 병원 세탁장 구석에 빨래를 해 널었으며, 무엇이든 한 번 사용한 것은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원상태로 되돌려 놓아야 했다. 안전한 곳을 찾아 짐을 보관해야 했으며, 병원 의료진과 행정 담당은 물론 경비업체 미화업체 조리업체 용역직원들과의 친분도 필수였다. 환자 가족으로부터 일당으로 계산된 간병비를 받으면 간병업체에 수수료를 떼어 주고 연변의 집으로 송금했다.

삼 년 반 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 간병인 여자는 딸 내외와 함께였다. 그러나 딸과 사위는 조선족 이주노동자들이 발급받는 취업 비자로는 불허하는 일을 시작했다 이내 당국에 적발되어 추방을 당했다. 차명으로 가게를 내고 연변을 오가며 장사를 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한국행을 위해 딸 내외는 적잖은 빚을 졌지만, 다시 취업 비자를 받아 한국에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더구나 연변으로 돌아간 딸에게 바로 아이가 들어섰다. 여자가 다급히 간병 일을 시작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간병 초기 예상대로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일이 고된 것은 물론 문화와 정서의 크나큰 차이를 실감해야 했다. 말투와 억양을 구실로 괜한 멸시를 받기도 했다. 처음 치매 환자를 돌보게 되었을 때 옆구리를 얻어맞고 머리채를 휘어 잡힌 일도 있었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거구의 환자를 휠체어에 태워 밀고 다니는 일은 언제나 고역이었다. 병원 내 강박적인 살균 소독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간병인 여자는 차츰 병과 병자와 병원과 병원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CT 촬영과 MRI 촬영의 차이점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었으며, 버거씨병이나 셰그렌증후군 같은 어려운 이름의 병이 어떤 질환인지도 알게 되었다. 또한 항암 치료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루푸스가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병인지도 알게 되었다.

병원 창 밖으로만 계절의 변화를 확인하며 간병인 여자는 일 년의 시간을 보냈다. 눈치와 요령과 변통이 늘어 가끔 빈 병실의 넓은 침대에서 모처럼 곤한 잠을 청할 수도 있었다. 인심이 좋은 환자의 가족을 만나면, 유행이 지났지만 제법 고가임에 분명한 옷가지나 장신구를 얻기도 했다. 병원은 여자의 이 되었다. 잠시 연변에 다녀온 것은 간병 일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딸은 혼자 해산을 했고, 갓난쟁이 손녀의 모습은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 오늘 한 달 가까이 간병했던 노인이 사망했다. 조만간 다른 환자를 만나게 될 터였다.

간병인 여자는 조용히 병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림자처럼 움직여 5층으로 향했다. 왠지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본관 5층의 비상계단 옆, 커피자판기와 음료자판기, 커다란 화분과 긴 의자 등이 놓인 휴게 공간이 있었다. 오른쪽 옆은 병원 주차장이 내다보이는 유리벽이었다. 천장의 조명은 군데군데 꺼져 있었지만, 두 대의 자판기가 밝고 환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간병인 여자는 종종 사람이 없을 시간을 골라 이 곳을 찾았다. 병원 생활로 맛을 들인 인스턴트 커피를 홀짝이며 잠시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눈길을 주게 된 것이 맞은편 벽에 걸린 그림이었다. 병원 이곳저곳에는 꽤 많은 그림 액자들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간병인 여자가 유심히 보게 되는 그림은 오직 이 그림뿐이었다. 간병인 여자는 그와 같은 그림을 수묵담채화라 부른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명화 감상법 따위는 더욱 알지 못했다. 액자 아래 제목이나 화가의 이름조차 붙어 있지 않은 그림이었다. 숲 속 계곡의 물레방아를 그린 소박한 그림이었다. 실제로 어딘가에 그런 숲 속 계곡이, 그런 물레방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간병인 여자는 이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왠지 모를 아득한, 잠시나마 병원이 아닌 곳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숲 속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 빙글빙글 돌아가는 커다란 물레방아.

오래 전 간병인 여자는 아홉 살짜리 아들을 잃었다. 또래의 많은 아이들이 그러하듯 기나긴 겨울이면 아들은 얼어붙은 강 위에서 썰매를 타거나 연을 날리거나 하며 놀았다. 그 해 겨울, 분명 겨울이 한창이었음에도, 강이 완전히 얼어붙었음에도, 얼음이 깨졌다. 아들은 얼음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 세 시간 만에 꺼내어졌다. 차디찬 물 속에서 한참을 버둥거린 모양인지 온몸에 연줄이 감겨 있었다. 끊어진 연은 찾을 길이 없었다.

숲 속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 빙글빙글 돌아가는 커다란 물레방아. 간병을 맡았던 환자가 정말 죽음에까지 이른 것은, 그것을 직접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간병인은 장례식장을 찾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림에서 눈을 떼고 잠시 자판기 쪽으로 눈을 돌렸을 때, 간병인 여자는 노인을 보았다. 늙고 작고 마른, 후줄근한 환자복 차림의 노인이 링거액 주머니가 달린 거치대를 밀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간병인 여자는 노인의 얼굴을 보고 크게 놀랐다. 지금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노인은 오늘 낮에 숨을 거둔 자신의 환자 노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두 얼굴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간병인 여자는 노인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간병인은 장례식장을 찾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느릿느릿 자판기 앞을 지나쳐 노인이 멈춘 곳은 뜻밖에도 예의 그림 앞이었다. 노인은 마치 이 그림을 보기 위해 먼 곳에서부터 애써 걸어온 사람처럼 보였다. 노인은 간병인 여자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채 벽면의 그림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 그림을 그린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그림의 모든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노인은 그림을 바라보았다. 숲 속 계곡에 물이 흐르고, 커다란 물레방아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잠시 후, 노인이 가만히 손을 뻗어 그림을 가리켰다. 뒤틀린 나뭇가지처럼 거칠고 뻣뻣한 손. 간병인 여자는 노인의 손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노인의 길고 마른 손이 떠 있었다. 가만히 잡아 보았던, 어두운 손이었다.

 

*

 

밤이면, 노인이 병원 복도에 나타났다.

노인은 키가 작았고, 말랐고, 후줄근한 환자복 차림이었다. 많은 환자들이 그러하듯 안색이 나빴고, 표정은 어두웠고, 동작은 느리고 위태로워 보였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노인은 ‘환자’가 아니었다.

어느 밤, 병원의 복도를 서성이던 우리는 노인을 보았다.

아니, 노인을 보지 못했거나, 노인을 보려 하지 않았거나, 노인을 보고도 잊었을 수 있다. 또 다른 어느 밤, 우리는 애써 노인을 찾아나설지도 모른다.

링거액 주머니를 매단 낡은 스테인리스 거치대를 밀며 느릿느릿 밤의 병원을 걷는 노인. 노인의 발소리, 노인의 걸음걸이, 노인의 그림자.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발소리와 걸음걸이와 그림자와 함께, 병든 육체와 병든 시간과 병든 기억이 밤의 병원을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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