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

악어

최진영

 
 

한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달력을 쳐다보았다. 생리 날짜가 보름이나 지났다. 생리주기를 통해서나마 짐작할 수 있었던 한 달이 대책 없이 길어지고 있었다. 아랫배 한 가득 송곳이 들어찬 것처럼 끔찍한 진통이 지친 내장을 파고들었다. 두통 역시 만만치 않았다. 똥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몸이 통째로 무거웠다. 나와야 할 것들이 나오지 않고 이 안에 들어앉아 시간까지 입 안으로 끌어들였다. 난폭한 허기와 갈증은 깊은 잠을 방해했고 뱃속의 텅 빈 공간은 밤새 꺽꺽 고함을 질러댔다. 한밤에 일어나 냉장고 앞에 주저앉아 뱃가죽이 터질 만큼 마른 빵을 씹어 먹은 뒤 나머지 밤은 변기 위에서 보냈다. 그래도 똥은 나오지 않고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팔과 다리의 연약한 피부부터 야금야금 잡아먹던 부스럼이 질긴 얼굴 거죽까지 올라왔다. 긁으면 메마른 딱지가 대번에 돋아났다. 들쩍지근한 핏물은 손톱 밑을 떠나지 않았다. 생리불순과 악성변비와 편두통과 위장질환과 아토피피부염은 스낵 이름처럼 쉽게 불리고 아삭아삭 씹혔다. 변기 위에 앉아 가랑이 사이를 들여다보며 엉덩이를 긁어대던 유월의 어느 새벽, 나는 불현듯 깨닫고 말았다. 내 안 가장 낮은 곳에서 굶주린 채 투명한 눈알을 굴리고 있는 악어 한 마리를.
세 개의 아스피린을 송곳니로 으깨어 씹으니 내장이 벌렁벌렁 구역질을 해댔다. J가 혀를 차며 말했다. 통증은 네 몸이 보내는 SOS야. 몸에 하자가 생겼으니까 어서 치료해 달라는 신호라고. 진통제는 병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통증을 잠재울 뿐이야.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사람 시끄럽다고 입 틀어막는 셈이지. 숟가락으로 푹 퍼내면 푸딩처럼 덜어질 것 같은 통증과 현기증과 복통 사이로 J의 건조한 목소리가 뱀처럼 지나갔다.
병원에 가.
똑똑한 J는 그럴듯한 대책을 내놓았다. 나는 턱 주변의 딱지를 손톱으로 잡아 뜯으며 우물우물 중얼거렸다.
악어 때문이야.
J는 고개를 저으며 낮은 소리로 비아냥거렸다. 무슨 말인지 제대로 들리진 않았지만 짧은 문장 속에 미친년이란 단어가 두어 개쯤 들어 있었을 것이다.
너도 마찬가지야. 너도 악어를 알잖아.
나는 J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말을 꼭꼭 씹어뱉었다.
그걸 왜 모르겠어.
J가 실실 웃으며 대꾸했다.
멸종되지 않고 본래의 형태와 성질 그대로 가장 오래 생존한 파충류. 악어의 혀는 쪼그라들어 목구멍을 막고 있지. 맛을 느껴야 하는 혀가 목구멍이나 막으려고 존재하는 거야. 왜겠어?
그 악어가 아니야.
왜겠냐고.
그 악어가 아니라니까.
중요한 건 맛이 아니라 배를 채우는 거야. 미각 따윈 생존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 이거지. 악어가 멸종되지 않고 지금껏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겠냐?
그 악어가 아니라고. 내 얘길 좀 들어 봐.
맛 따윈 신경 쓰지 말고 배부터 채우라 이거야.
J는 컵 가득 담긴 물을 꿀꺽꿀꺽 마셔댔다. 나일 강을 통째로 들이마시듯 오랫동안, 우렁차게. J가 물을 마시는 동안 벽시계의 초침은 시침처럼 느리고 느리게 움직였다. 빈 컵을 식탁에 꽝 내려놓으며 J가 말했다.
병원 가고 약 먹고 고쳐. 고치고, 움직여. 그럼 고통도 사라진다. 고통 따위, 한가해서 느끼는 거야. 한가하니까 너처럼 헛소리나 지껄이는 거라고.
J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드드드득, 식탁 의자가 괴성을 질렀다. 나는 귀를 막았다.

*

나와 J는 같은 이름을 가졌다. J는 유명한 대학을 졸업한 뒤 유명한 일을 하고 유명한 거리를 걸었다. J의 유명한 것들 중 하나만 말해도 사람들은 단번에 J를 알아보고 칭찬했다. J와 나는 십 년 넘게 친구도 애인도 아닌 어정쩡한 관계로 가끔 만나 밥을 먹거나 술을 마셨다. 스스로 모나거나 싸가지 없는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내겐 친구가 없었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가 없어서 부끄럽고 쓸쓸했지만 나이 들수록 그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언제나 부끄럽고 언제나 쓸쓸해서, 그건 어떤 감정이 아닌 허파나 콩팥 같은 내 안의 기관(器官)처럼 느껴졌다. 척박한 인간관계 속에서 가장 독보적인 존재였던 J는 친구이자 연인이자 형제이자 가장 철저한 타인의 자리를 꿋꿋이 지켜냈다.
악어 따위엔 관심도 없던 과거에, 나는 병원에서 환자들의 혈압과 체온을 재고 주사를 놓고 식사량과 링거액을 체크하며 좀 따끔하세요, 진통제 좀 놓을 거고요, 고통을 숫자로 표시한다면 고통이 없는 건 1이고 가장 큰 고통은 10이고 중간을 5로 잡았을 때 몇 정도인 것 같으세요, 라는 말을 반복했다. 환자들은 고통의 정도를 숫자로 표현하기 곤란해했고 나는 그들이 신중하게 내놓은 숫자에 관계없이 진통제를 주사했다.
당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고 자주 악몽을 꿨다. 얼굴이 안 보이는 건장한 남자에게 강간당하는 꿈이었다. 섹스와 관련된 꿈은 길몽이라지만 좋은 일은 단 하나도 생기지 않았다. 꿈이기에 내 마음대로 감정을 조절할 수 없었고, 그래서 끔찍했다. 꿈속에서 나는 반항하지도 발버둥치지도 않았다. 깨어난 뒤엔 언제나 수치스럽고 불쾌했다. 강간당하는 꿈을 꿔서가 아니라, 그것을 태연하게 감내하던 꿈속의 나 때문에. 더불어 하얀 막과 같은 불투명하고 비릿한 이미지가 자꾸 떠올라 내내 불안하고 찝찝했다. 악몽이란 무섭거나 끔찍한 꿈을 말할 텐데, 꿈속의 나는 그 상황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깨어난 뒤에야 치를 떨었으니 이건 악몽도 뭣도 아닌 그냥 개꿈일 뿐이라고 가볍게 넘겼다. 아무 생각 없이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며 무작정 빨리 잊으려고만 했다.
벚꽃이 만개한 오월이었다. 나이트 근무를 마치고 정오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기다렸다는 듯 꿈을 꿨다. 나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었다. 맨살이 거친 바닥에 쓸려 따갑고 쓰렸다. 문득 꿈이란 것을 깨달았고, 정신이 차차 현실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낡은 문을 열고 건장한 남자가 들어왔다. 오늘도 역시 얼굴은 못 보겠지. 꿈과 현실에 발 하나씩 걸친 채 생각했다. 남자의 거친 손이 내 다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깨어나자고 생각했지만, 가위에 눌린 듯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뜨려고 안간힘을 썼다. 정신이 현실로 온몸을 기울였을 때 불쑥.
남자의 얼굴이 선명히 드러났다.
꿈에서 깬 나는 미친 듯이 소리 질렀고, 울었고, 싱크대로 달려가 식칼을 잡았다. 얼마나 더 울고 소리 지르고 발악했는지 모르겠다. 손이 벌벌 떨렸다. 바닥이 피로 흥건했다. 회색 트레이닝 바지가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J에게 전화를 걸어 제발 좀 와달라고 울며 사정했다.
병원 관계자는 내가 내 허벅지를 찔렀다는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J를 의심했다.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내가 나를 찔렀다고 증언하는 것이었다. 소문은 빨리 돌았다. 병원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이후 두어 번 더 칼을 들었다. 모두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저지른 일이었다. 그 때마다 J는 나를 떠메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꿈을 꾸고 피를 보고 J의 등에 업히는 동안 계절이 서너 번 바뀌었다. 아무 특징 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재미 삼아 내 몸의 흉터를 늘려 갔다. 문득 창밖을 보니 다시 봄이었다. 나는 J의 옷을 입고 J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지난 일들이 황망히 떠올랐다. 새로 핀 봄이 고인 바람처럼 스러지고 있었다.

*

결국엔 J를 사랑하게 되었다. J도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사랑해’라고 말하진 않았으나 그와 비슷한 의미였다. ‘내 옆에 있어’였던가, ‘나한테 말해’였던가. 아니, ‘그만 좀 울어’였는지도 모른다. J를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했던 지난해 겨울. 나는 횟집에서 받은 영수증인가 주차권인가에 열여섯 개의 글자를 닥치는 대로 휘갈겨 썼다. 사랑을 해야 해. 파괴하는 사랑일지라도. 목숨을 담보로 건 빚 문서에 사인을 하는 심정이었는데, 무수한 사랑 중 어떤 사랑은 그런 각오로 시작되기도 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영수증을 입 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빳빳했던 영수증은 곧 아스피린 한 알만큼 작아졌다.

*

J가 유명한 약품회사의 영업직 사원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동안, 나는 방안에 처박힌 채 하루에도 몇 번씩 세제를 풀어 주방과 화장실을 청소했다. 가구와 바닥과 벽지를 반복하여 닦고 J의 옷을 모조리 꺼내 다린 뒤 색깔과 용도를 구분하여 정리했다. 덕분에 집안은 늘 깨끗하고 질서정연했으며 고요하고 차분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곳에 스며드는 불안의 음흉한 성격을 깨닫기까지, 나는 사소한 것 하나라도 깨끗하게 만들어 제자리를 찾아 주는 일에 사력을 다했다. 결국 모든 것이 완벽해졌는데, 더없이 훌륭한데도 나는 계속 불안해했다. J 역시 처음에는 깔끔한 집안을 만족스러워했지만 계절의 체온이 바뀌기도 전에 나를 심각한 강박증 환자로 몰아 버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끊임없이 뭔가를 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손과 발과 감각이 정지하는 순간부터 머릿속에선 거대한 톱니바퀴 세 개가 맞물려 돌기 시작했다. 끼그덕 끼그덕. 톱니바퀴가 돌면 뇌와 혈관과 근육 같은 것이 맷돌 밑의 삶은 콩처럼 짓이겨지면서 참을 수 없는 두통이 몰려왔다. 머리통을 감아쥐고 그 고통을 담담히 견디다 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분노와 증오가 솟구쳤다. 그 때마다 나는 주문처럼 읊조렸다. 사랑을 해야 해. 파괴하는 사랑일지라도. 내 안에서 만들어진 문장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디서 듣거나 본 것도 아니고 그냥, 그냥 솟아난 건데 나는 그 문장의 의미보다 소리에 집중했다. 속사포처럼 다다다, 열여섯 개의 글자를 뱉어낼 때의 질감 같은 것. 그 문장을 읊어댈 때마다 사라졌던 악어가 나타나 딱딱하고 징그러운 꼬리를 휘둘러 심장인지 마음인지 모를 것을 딱, 딱, 내려쳤다.
J는 늘 바빴고 힘들어했고 피곤해서 죽을 것 같단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얼굴은 나날이 야위어 갔고 입에선 자주 군내가 났다. 감각이 점점 퇴화되는지 짜고 매운 음식만 찾았고 자극적인 음식을 끝없이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밥그릇의 밥이 바닥나지만 않는다면 그 자리에 앉아 배가 터져 죽을 때까지 음식을 뜨고 삼키는 과정만 반복할 것 같았는데, 그건 식탐이라기보다 기계적 행위나 만성화된 습관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J는 자꾸 야위어 갔다. 똬리를 튼 채 먹잇감의 목을 물고 있는 뱃속의 악어가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J는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문득 중얼거리기도 했다. 최 차장 새끼는 밥을 너무 빨리 먹어. 그 인간이랑 밥 먹다 보면 밥을 씹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삼킬 수밖에 없어. 그러면서 나한테는 계집애들처럼 밥알이나 깨작거린다고 욕지거리야. 개새끼. 세상사람 전부 자기 속도에 맞춰야 된다고 믿는 지랄 엿 같은 새끼. 너도 지금 음식을 삼키고만 있다고, 나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J는 자주 넘어지고 다치고 멍들고 상처를 만들면서도 아파하지 않았다. 집으로는 자주 압류통고장이나 강제집행착수예정문 따위의 우편물이 날아왔다. J는 그것들을 북북 찢어 쓰레기통에 던지며 알아들을 수 없는 욕을 지껄였다.
그래, 너도 악어 때문이지.
나는 결국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내 머리를 꾹꾹 눌러 내 입을 자기 성기로 몰아 가던 J가 감은 눈을 떴다. 나는 J를 올려다보며 간신히 말했다.
내가 이러면, 너는 행복해?
J는 다시 내 머리를 힘주어 눌러댔다. J의 커다란 성기가 목젖에 닿자 구역질이 올라왔다. 악어는 먹이를 잡으면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 질식시킨 뒤 씹지도 않고 그냥 삼킨다. 나는 질식할 것만 같고 J는 집어삼켜 버리기엔 너무 크고, 이런 식으로 둘 중 하나라도 행복해진다면 입 안이 헐어 버릴 때까지 J의 성기를 빨아댈 수도 있겠지만 찰나의 희열과 쾌락 따위론 그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으며 심지어 포악한 악어를 만족시킬 수도 없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자주 고통스러웠다.

*

아버지도 어머니도 다르지만 호적상 형제였던 남자가 있었다. 그는 나보다 세 살이 많았고 키가 아주 컸다. 싸움도 잘하고 친구도 많았다. 제법 온순한 성격이었으나 가끔 섬뜩할 만큼 사나워질 때도 있었다. 새엄마는 돈을 버느라 매일 집을 비웠고 아버지는 돈을 쓰느라 집에 들어올 시간이 없었다. 새엄마는 나를 잘 보살피다가도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내게 퍼붓곤 했다. 그 때마다 나는 혼자 울면서 엄마 엄마 하고 중얼거렸다. 슬프거나 무섭거나 아프거나 서러울 때면 ‘엄마’라는 말이 본능적으로 나왔는데, 그 때의 ‘엄마’는 새엄마를 가리키는 것도 친엄마를 가리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비명처럼 터지는 외마디였다. ‘엄마’라는 말이 가진 무의미성을 깨달은 뒤엔 병아리나 강아지나 고양이나 작은 새가 내는 모든 소리가 ‘엄마’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친엄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돈밖에 모르는 노랑이 할망구라며 매일 친엄마를 욕했고 졸업하면 집을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란 말을 입버릇처럼 했으며 습관처럼, 나를 범했다. 초경을 시작하기 전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어느 인기 없는 진화론자의 주장에 따르면 습관도 본능이 된다. 오 년 넘게 지속된 그의 강간이 습관이었는지 진즉 굳어 버린 본능이었는지 모르겠다. 그건 어쩌면, 내가 무섭거나 놀랄 때마다 무의미하게 ‘엄마’라는 말을 내뱉던 것과 비슷한 행동 아니었을까.

*

꿈속의 얼굴을 본 순간부터 내 인생은 가짜가 되었다. 멀쩡한 얼굴로 멀쩡히 밥 먹고 일하고 잠자던 지난날들이 끔찍해졌다. 그중에서 가장 끔찍한 건 멀쩡히 살아 있는 나였다. 꿈을 꿀 때마다 내가 자꾸 죽으려 했기 때문에 J도 나를 계속 사랑할 수가 없었다. 죽으려던 게 아니라 다만 꿈을 꾸었을 뿐이라고 거듭 말해도 J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J는 끊임없이 나를 원망하고 증오하고 걱정했다. 확 뒈져 버리라고 소리 지르면서도 틈만 나면 전화를 걸어 내가 무사한지 확인했다. 집안의 날카로운 물건을 모두 없앤 뒤에야 지친 표정으로 출근하는 J의 뒷모습은 부활한 예수처럼 처량하고 애처로웠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사랑한다는 말과 사랑해 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 말을 삼키느라 혀로 목구멍을 몇 번이나 틀어막아야 했는데, 그 때마다 퇴화된 악어의 혀가 생각났다. 악어의 혀가 퇴화된 이유는 그것이 불필요해서가 아니라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말을 안으로 삼켜야 했기 때문 아닐까. 악어가 참고 참아야 했던 말은 도대체 무엇이었나. 그런 대화를 J와 나누고 싶었다. 우리가 잊고 사는 것. 참고 있는 것. 외면하고 폐기해 버린 것. 그러나 끝내 저버릴 수 없는 수많은 것들에 대하여. 하지만 J는 늘 바빴고 매일 피곤해했으며 나는 타인과의 대화에 익숙하지 못했다. 속에 든 말을 꺼내려고 하면 숨이 턱턱 막혔다. 있잖아, 라는 단어 뒤에 덧붙는 불가피한 침묵을 J는 묵묵히 견뎌내지 못했다.
폭우로 시작된 장마가 몇 개의 도시를 집어삼키던 어느 밤, 나는 J 옆에 누워 작은 목소리로 우리의 이름을 몇 번이고 불렀다. J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는 옛 일을 떠올려 담담하게 뱉어내는 연습을 시작했다. 우리 어릴 때, 열네 살인가 열다섯 살인가 그 때 너 우리 집 대문 앞에 자주 왔었잖아. 기억나? J는 반쯤 눈을 떴다가 창을 두드리는 거센 빗줄기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베란다로 걸어가 열린 창을 닫으며 나를 잠시 쳐다봤는데, 자신을 깨운 것이 나인지 폭우인지 가늠하는 것 같았다.
담벼락 너머에서 서성거리던 J의 두 발. 감나무 밑에 쪼그려 앉아 있던 나는 대문 아래로 보이는 J의 낡은 운동화를 눈여겨봤다. 까만색 죠다쉬 운동화. 세로로 하얀 줄무늬가 세 개 그려져 있고 발목 부분이 심하게 해져 낡은 천이 나풀거리던. 그렇게 낡은 운동화를 신고도 당당히 돌아다닐 수 있던 사람은 전교생 중 J뿐이었다. 나를 놀리는 다른 아이들을 향해 대신 욕을 하면서도 나와 눈을 맞추지 않으려고 애쓰던 사람도. J가 대문 앞을 서성이며 자기 것이기도 하고 내 것이기도 한 이름 석 자를 입 안으로 굴릴 때마다, 나는 흙을 파헤쳐 감나무의 뿌리를 쿡쿡 쑤셔대며 울음을 참았다.
잠이 다 깨버렸어. 침대로 돌아와 내 옆에 누우며 J는 중얼거렸다. 그런 순간의 J가 좋았다. 나에 대한 어떤 원망도 분노도 애증도 담기지 않은, 무심코 혼잣말을 뱉어낼 때의 나직한 목소리.
오늘 신문에 실린 기사 얘기해 줄까.
어둠 속에서 껌벅이던 J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나는 두 손을 가슴 위에 얹고 차분히 말했다.
어떤 여자가 산에서 굶어죽었는데, 굉장한 미인이었대.
나는 왼손을 쫙 펴서 J의 눈앞에 흔들어 보였다. J의 감은 눈두덩이 움찔거렸다.
여자 방에 가보니까 사방이 다 거울이더래. 바닥만 빼고 전부 다. 이미 굉장한 미인인데도 더 예뻐지려고 빚을 지면서 계속 수술을 했나 봐. 결국 자기 원래 얼굴도 까먹고, 자기가 원하던 아름다움도 까먹고, 거울을 볼 때마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만 보이고. 나중엔 거울 보는 것조차 끔찍했겠지. 기자는 성형중독의 심각성에 대한 기사를 썼지만 내 생각은 달라.
J의 가슴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렸다.
악어 때문이야.
J는 모로 누우며 내게 등을 보였다.
그 여자뿐만 아니야. 사람들 모두 다.
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죄다 악어 때문이야.
도대체 그게 뭔데!
J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 질렀다. 오랫동안, J가 그렇게 물어봐 주길 바랐다. 다른 사람이 아닌 J가.
그 여자는 아름다움을 원했던 게 아니야. 아름다움은 일종의 수단일 뿐이야. 악어를 위한 수단 말이야.
환장하겠네.
J가 다시 등을 돌려 누웠다. 고해소 문을 두드리듯 조심스럽게 J의 야윈 등을 턱턱 두드렸다.
악어는 말이야.
잠 좀 자자. 제발. 잠이라도 자자. 좀.
J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며 중얼거렸다. 나는 J의 등을 매만지며 있잖아, 악어는 말이야, 라는 말만 반복했다. J가 벌떡 일어나 텔레비전을 켜더니 볼륨을 한껏 높였다. 버라이어티쇼의 웃음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댔다.
네가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고 늘 짜증을 내면서도 매일 어쩔 수 없이…….
야.
텔레비전 속 깔깔 웃어대는 연예인을 보며 J가 짜증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함부로 말하지 마.
J의 말과 방청객의 웃음 소리가 겹치며 어떤 말은 그저 파편으로 흩어져 버렸다.
내가 아무리 개떡 같은 상사에 좆같은 고객에 지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아는 졸라 싸가지 없는 후배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때려치우고 싶어도.
J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씨발, 나는 졸라 열심히, 진짜 곧 죽을 만큼 일하는데도 만날 욕이나 처먹고 내 모가지 쥐고 장난질이나 치는 씹새끼들 뒤나 닦아 주면서 살지만. 야, 너.
J가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니가 그 경건함을 알아?
나는 J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무섭고 마음이, 아팠다.
개똥철학이나 늘어놓으면서 고상하게 정신 놀음이나 하는 인생만 진짜 같지? 그래야 뭐라도 되는 것 같고 뭔가 있어 보이는 것 같지? 악어? 악어가 뭐? 그렇게 한가해? 한가해서 뒈져버릴 것 같아?
나는 J 손에서 리모컨을 뺏어 0이 될 때까지 볼륨 버튼을 꾹 눌렀다.
맘 편히 잠이라도 자게 해 줘야 할 것 아냐. 잠이라도.
텔레비전 불빛이 방안에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고 감췄다.
그런 게 아니야.
나는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눌러 텔레비전을 끄며 말했다.
얘기를….
J는 모로 누워 귀를 막아 버렸다.

*

나는 그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알았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사랑하지 않고서야 그토록 오랫동안 나와 몸을 섞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설득했다. 살아남기 위한 설득이었다. 설득하지 않고서는 나를 가득 채운 모멸과 수치와 분노와 증오 따위를 견뎌낼 수가 없었다. 그 모든 폭력의 실체가 사랑도 뭣도 아닌 강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절감할 때마다 가장 먼저 나를 엄습하는 건 분노도 증오도 아닌 배신감이었다.
그는 한 달에 두어 번 내 방에 들어와 문을 잠갔다. 반항하지 않으면 제법 다정한 목소리로 내 기분을 맞춰 주려고도 했다. 어차피 우린 남남 아니냐는 말도 했다.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애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고도 했고 엄마 아빠가 저모양이니 우리끼리라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고도 했다. 가끔은 그가 정말 숨겨 둔 애인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 느낌이 내 마음을 좀 더 편하게 했다.
그는 가해자이기도 했지만 내겐 하나뿐인 보호자이기도 했다. 내가 아파서 누워 있으면 약을 사다 주었고 병원에 데려가기도 했다. 가끔 용돈도 쥐어주었고 새엄마와 싸워 내 교복이나 가방 등을 얻어내기도 했다. 밥 먹었냐고 물어봐 줬고 왜 울었느냐고 물어 줬으며 아픈 데가 있으면 말을 하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그 아닌 다른 사람이, 이를테면 아버지나 새엄마나 다른 어른이 나를 보살피고 보호했다면 나는 그를 완벽한 가해자로 기억했을 것이다. 온전히 증오만 했을 테고 스스로를 더러운 창녀라고 몰아세우는 짓만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가정은 부질없는 짓이다. 현재를 더 최악으로 만들 뿐이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가정한다. 가정에 가정을 거듭하다 보면 찰나일지라도, 진짜 과거는 희미해진다. 그 순간에 잠시 숨을 쉬는 것이다. 살아 있는 게 죄스러워 몰래 숨어 쉬던 숨을 몽땅 토해내고, 속을 텅 비우듯 깊고 깊은 숨을.

*

언젠가 J에게 나를 왜 버리지 않느냐고 물어봤었다. 세 번째 자해를 했던 밤이었나. J는 대답 대신 미친년아, 정신 차려. 하고 중얼거렸는데 목소리가 너무 작고 애처로워 욕이 아니라 애원이나 기도처럼 들렸다. 나를 사랑하는 거니, 내가 불쌍한 거니. J에게 다시 물었다. 사랑은. 씨발. J가 너무 또박또박 말했기 때문에 사랑은 곧 씨발이란 정의처럼 들렸다. 나는 씨발해, 씨발해, 하고 중얼거리면서 혼자 낄낄 웃어댔다. 그런 나를 보고 J는 메마른 표정으로 미친년, 미친년, 중얼거렸다. 진정제 때문에 눈앞이 까맣게 변하던 순간, 뭐든 상관없으니까 죽지만 말라는 J의 낮은 목소리가 깔때기 모양으로 들려왔었다.

*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물에 빠져 죽었다. 무더운 여름에 동네 강에서 수영을 하다가 그리 되었다고 했다. 한창 가물었을 때라 물이 깊지도 않았고 물살이 세지도 않았다. 강가에서 친구들과 고기를 구워 먹다가 물속으로 첨벙첨벙 들어간 뒤 다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물속에서 쥐가 난 건지 물귀신에 뒷덜미를 잡힌 건지 모르지만 그는 맥없이 죽어버렸고 나는 증오할 대상을 잃고 말았다.
내 손으로 죽이지 못했기에 나는 슬퍼했고, 그가 무책임하게 죽어버렸기에 나는 분노했다. 그가 죽은 후 나는 타락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고 싶었고, 충분히 그래도 될 것 같았고, 나는 이미 타락한 것 같았으며 타락했으므로 남은 인생 따위 버려진 개처럼 사는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여겨졌다. 내가 어떤 짓을 하든 남들이 내게 어떤 짓을 저지르든 모두를 위한 변명은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마음껏 죄를 짓고 아무와 자고 무엇이든 훔치고 더러워지고 도망가도 되었다. 하지만 더러워지는 것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고, 아무리 더러워져도 내 인생은 구원받지 못했으며 엉망진창이 된 몸과 마음의 밑바닥에는 케케묵은 고통만 차곡차곡 쌓여 갔다.
악어는 그것을 먹고 자랐다.
내 안에 들끓는 감정의 찌꺼기를 바닥내기 위해 나는 서서히 기억을 지우는 연습을 했다. 기억을 자극하는 모든 것에서 도망쳤으며 과거 따윈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인조인간처럼 행동했다. 평당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 서울에 거처를 마련하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 중 나 같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느냐는 생각을 하면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내가 애정과 온기에 얼마나 취약한 사람인지 알았다. 때문에 아무와도 가까워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가까워지면 쏟아내고 싶고 원망하고 싶고 화를 내고 싶었다. J는 오랫동안 내 곁을 서성였고 그것만으로도 나를 몇 번이나 살렸다. 모든 사랑은 파괴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파괴되는 게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J와 나는 이미 충분히 파괴되어 있었기에 깨어진 조각처럼 서로의 모난 부분에 덜컥, 제 몸을 끼워 맞췄다.

*

나는 그래도 힘내라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
잔뜩 취한 J가 말했다.
낼 수 있었음 벌써 냈지!
사형선고라도 받은 사람처럼 원망과 체념 가득한 눈빛이었다. 동기 두 명과 선배 한 명이 회사에서 잘렸다며 새벽 다섯 시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이었다. J는 꼭두새벽까지 술을 마신 날에도 사우나에서 자지 않고 꼭 집에 들러 내가 잘 있는지 확인한 뒤 출근했다. 신발을 벗고 남의 집 보듯 방안을 휘이 둘러보던 J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나는 컵 가득 물을 따라 J에게 내밀었다. J는 반 넘게 흘리며 물을 들이켰다.
공부만 잘하면 뭐든 다 된다 그래서 공부만 열라 열심히 했는데 씨발. 진짜 졸라 열심히 했는데 그런데도 겨우 이 정도야. 최 차장 개새끼가 억울하면 성공하라는데 야, 성공이 뭐냐?
나는 J의 하얀 손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씨발, 할 줄 아는 거라곤 남이 다 해 놓은 일 가로채는 거랑 공금 삥땅치는 것밖에 없는 새끼가 어디서 더러운 훈계야. 개새끼.
J의 입술 밑으로 걸쭉한 침이 뚝뚝 떨어졌다.
애비란 작자는 뒈지면서 자식한테 빚이나 떠넘기고!
J는 시뻘건 눈을 부릅뜨며 쓰레기통을 엎어 갈기갈기 찢겨진 종잇조각을 찾아냈다. 무릎 꿇은 채 그것들을 하나하나 맞춰 보던 J가 실실 쪼개며 말했다.
야. 그 인간이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뭔 줄 알아?
J는 벌 받는 아이처럼 두 손을 번쩍 들며 소리 질렀다.
내가 한 건 하고야 말겠다고오!
좁은 방 가득 J의 목소리가 쩡쩡 울려댔다.
어릴 때 학교에 써내는 장래희망 같은 거에, 내가 뭐 썼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우―자.
J가 낄낄 웃으며 내 사타구니로 폭 고꾸라졌다.
근데 실은 농구 선수 되고 싶었다. 열라 좋은 신발만 신는 농구 선수.
J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일으켰다.
……근데 뭐 부자도 못 되고 농구 선수도 못 되고 존나 좋은 신발도…….
침대 위에 J의 상체만 겨우 올려놓고 양복 윗도리를 벗기려는데, 껌딱지처럼 함부로 버려진 꿈에도 절박한 이유가 있는 거야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 뭐라고? 나는 두 손으로 J의 창백한 얼굴을 감싸며 물었다. 금방 또 출근해야 되니까 벗기지 말라고. J가 이불에 얼굴을 문대며 말했다. 움푹 들어간 J의 눈을 빤히 쳐다봤다. 그 안에서 잿빛 먼지를 마시고 있을 악어가 언뜻 느껴졌다. 투명한 두 눈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J의 심장을 딱, 딱, 내려치고 있을 무자비한 악어. 자신의 분노에 무관심한 사람의 마음속엔 실은 상상도 못 할 공포가 도사리고 있음을 나는 안다. 나는 J가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라서 좋았고 불평하고 비난하고 슬퍼할 줄 아는 사람임에 감사했다.
돈 많이 벌고 싶었어.
이불이 J의 침인지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으로 축축해졌다.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비겁해지긴 싫었는데.
새벽빛이 방안을 스멀스멀 채우기 시작했다.
야, 넌?
J가 풀린 눈으로 나를 봤다.
넌.
J의 눈이 점점 감겼다.
넌 말야. 넌.
눈을 감은 채 J가 계속 물었지만 목소리는 이미 무의식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 가고 있었다.
난.
J 옆에 얼굴을 누이며 대답했다.
복수하고 싶었어.
……나도. 나도.
J가 희미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리고.
J의 거친 숨소리가 서서히 규칙적으로 바뀌었다.
착각하고 싶었고.
여명이 우리의 발끝을 데웠다.
이해받고 싶었고.
J가 아이처럼 칭얼거리며 몸을 뒤챘다.
……사랑하고 싶었고.
울컥 눈물이 났다. J가 건성으로 내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아. 괜찮아. 뭉개져 가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가장 낮은 곳에서 목구멍을 틀어막고 있던 악어가 꼬리를 휘둘러 딱, 딱, 심장을 때렸다.

《문장웹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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