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블랙씨

 

클럽 블랙씨

안광

 
 

나는 오랫동안 세상을 떠돌았다. 처음엔 그리 긴 여행을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한 두 달 정도면 내가 죽을 장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서너 달 정도가 지나면 이 세상에서 내 육신과 영혼은 바람같이 사라져 버리리라 생각했었다. 아무도 내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는 이국의 모래사막 한 언덕 즈음이나, 푸른 물결이 파도치는 지중해의 어느 가파른 단애(斷崖)에서나, 아니면 열대림 우거진 어느 습한 밀림 속에서 조용히 몸을 던져 버리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쉽게 생각한 것이, 인천공항에서 챙이 큰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쓰고 출국수속을 밟았던 때가 벌써 작년 9월, 그때부터 일 년이 다 돼 가도록 난 모질게도 아직 살아 있었다.
그동안 내 육신을 조용히 누일 자리를 찾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낙타몰이꾼을 고용하여 사막 깊숙이 들어가 사방이 모래와 바람으로 막혀 있는 사구(砂丘) 한 곁에 며칠간 차양을 드리우고 앉아 있었던 적도 있었고, 아프리카 어느 바닷가에서 높은 절벽에 올라 하얀 포말을 거칠게 해안으로 밀어올리는 파도를 바라보며 며칠 동안 온몸을 찌릿찌릿 관통하는 긴장감 속에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발가락을 꼬물거렸던 시간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결심을 뒤로 미뤘다. 죽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죽음이 두려웠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미 세상을 살 만큼 살아 본 사십여 년의 세월을 가지고 있었다. 한때 길거리에 나서면 나를 알아보고 사인을 부탁하러 사람들이 몰려드는 인기도 누려 봤으며 갑부 소리를 들을 만큼 돈도 만져 봤으며 결혼도 해서 자식도 가져 봤으며 심지어 감옥조차 다녀온 경험이 있었다. 죽음을 두려워한 것은 분명 아니었다. 다만 마음 한구석에서 지금 이 순간 이 장소에서 죽는다는 것은 무언가 억울하다는 느낌이 서러움처럼 울컥울컥 치밀어올랐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사막을 점차점차 붉게 물들이는 석양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는지, 몇 단계의 푸른 빛깔이 청옥빛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바닷속으로 이 낡고 냄새나는 육신을 구겨넣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죽기엔 세상이 너무 아름다웠다. 더 솔직히 말한다면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죽기 싫었는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버티던 어떤 억울함이 서서히 가라앉은 것은 오랜 여행으로 말미암아 이제 남루하고 때가 묻은 내 바지가 낡고 낡아 무릎 근처나 주름졌던 부근이 허벅지가 힘없이 북 찢어질 때처럼, 그 억울하다는 감상도 그와 같이 퇴색하고 낡아지고 힘없어지고 풀이 죽어 갔던 시간부터였다. 그리고 이제는 죽음을 생각하며 지내는 일 년 가까운 여행 자체가 이미 과도한 하중으로 정신과 육신을 피폐하게 만들어 지치고 쇠약하고 힘들어졌고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돈이 떨어져 더 이상 아무데고 갈 수가 없게 되었다.
그때 지치고 병약한 육신을 끌고 도착한 곳이 러시아 남쪽 흑해 근처의 바투미였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페레스트로이카 시절 구소련 체제에서 독립한 그루지아의 흑해 연안 작고 아담한 항구 도시였다. 나는 그때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볼고그라드를 거쳐 흑해에 도착했고, 무덥고 냄새나고 답답한 작은 연락선을 타고 바투미에 도착했던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받은 그루지아 비자는 삼십 일짜리였다. 하지만 나의 상황은 삼십 일까지 버틸 만한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피곤하고 지친 내 육신도 그러했지만, 서울 남대문시장 뒷골목 허름한 심부름센터에서 오백만 원을 주고 만든 위조여권의 만료 기간이 채 이십 일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는 위조여권이 이토록 오래도록 나를 증명해 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머니에 남아 있는 돈이 미화 천 팔백 불 정도밖에 없는, 이제야말로 물리적으로도 꼼짝할 수 없는 막바지가 다가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는 어찌되었건 이곳에서 죽어야 한다. 나는 엷은 미소를 띠고 바투미의 부둣가를 천천히 거닐었다. 먼 바다를 헤치고 바투미에 입항한 커다란 화물선이 몇 척 부둣가에 정박해 있었고 방파제엔 수염 허연 노인과 맨발의 아이들이 푸르고 맑은 바닷물 속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부둣가를 따라서 파라솔을 씌운 노천 까페의 탁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금발의 아가씨들이 오후 3시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맥주병을 앞에 놓고 깔깔대며 비누방울 같은 웃음을 바다 쪽으로 터뜨리고 있었다. 파라솔과 파라솔 사이를 꽃을 파는 노파가 한아름의 프리지어와 릴라꽃을 들고 꽃처럼 환하게 웃으며 지나갔다. 고향 마을에 온 듯 마음이 평화스럽고 푸근하게 가라앉아 나는 모처럼만에 온몸에서 피곤함과 긴장이 사라졌다. 나는 이곳에서 죽으리라. 그런 결심이 차분하게 모아졌다. 이곳을 찾기 위해 그토록 먼 길을 떠난 것이구나. 나는 나의 길고 긴 여행에게 고마움과 감사를 표했다. 바닷가에 접한 노천 까페에서 맥주 한 잔을 시켜 놓고 난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비로소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내가 이번 생(生)에서 저지른 잘못들과, 이번 생에서 축복 받았던 것들에 대해 경의를 표하면서 술 한 잔을 들이켰다. 또한 바투미의 부둣가에 한국 사람이 한 명도 눈에 띄지 않는 것에 혼자 스스로 기뻐하는 건배를 올렸다. 거의 두 달 동안 한국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않았다는 것은 축하할 만한 일이었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웠다. 그 사람이 내가 누군가를 알아볼까 봐 두려웠다. ‘혹시 ○○○氏 아니세요?’ 하는 질문을 여행 다니는 일 년 동안 십여 차례나 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능청스럽게 ‘그 사람은 왜 나랑 비슷하게 생겨서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느냐’는 둥 또는 ‘이런 얘기를 하도 들어서 우습지도 않다’는 둥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내 심장은 섬뜩했다. 굳이 한국을 빠져나와 멀고 먼 타국 땅에서 이름 모르게 죽어 가려는 결심 또한 그런 이유였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바람처럼 사라지겠다는 것이 나에 대한 마지막 예의며 내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생각했다. ‘왕년의 스타 ○○○ 자살’이라는 기사가 국내 신문에 한 삼 단짜리로 보도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그 기사를 보고 혀를 차며 독한 놈이라든지 불쌍한 인간이라든지 수군댈 것도 싫었다. 특히 이혼한 아내가 그런 기사를 접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떠나온 여행이었고 그 판단은 지금도 옳았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낯선 곳에서 신원불명의 객사자(客死者)로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여행의 목표였다. 여행 기간이 점차 늘어나면서 수염도 제멋대로 자라 버리고 내 신장이 한국 사람치곤 큰 편이고 이목구비가 북방 계통의 영향을 받아 또렷또렷한 편이어서 혹 만나는 외국인이 터키나 아랍인이 아니냐고 물으면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 어떤 이는 유럽계와 동양계의 혼혈종 정도로 생각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아맞히지 못했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 내 국적을 숨겼고 되레 내가 어느 나라 사람 같으냐고 반문하면서 은근히 화제를 돌리곤 했다. 여행객들이 없는 오지로 방향을 잡는 이유의 하나도 번잡스러운 만남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바투미 역시 관광객이 없어 마음이 놓이는 도시였다. 나는 황혼녘까지 부둣가 노천 까페에 앉아 있었다. 흑해의 노을은 뭔가 강렬한 것이 있어 마음에 들었다. 보통우리가 볼 수 있는 노을 빛깔에 적포도주 한 병을 풀어놓은 듯한 조금은 짙고, 강하고, 붉은 기운이 온몸을 주홍빛으로 물들였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크고작은 선박들도, 부둣가에 낮게 늘어서 있는 까페와 어구상점과 꽃가게들도 모두 지는 햇빛에 술 취한 듯 젖어 붉게붉게 물이 들어 있었다. 서쪽으론 크고 또렷한 태양이 난로 한가운데서 막 꺼내 놓은 갈탄처럼 이글대며 하늘과 바다를 온통 붉은 물감으로 적셔 놓고 있었다. 꽤 여러 잔의 맥주와 보드카를 마신 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기운 때문에 취했는지 노을 때문에 취했는지 내 뺨은 온통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기분 좋은 바람이 귓가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나는 바닷가를 끼고 선창가를 천천히 걸어갔다. 우선 오늘은 어디선가 그리 비싸지 않은 숙소를 잡고 지금까지 수백 번도 더 생각해 온 구체적인 죽음의 실행 방법에 대해 곰곰이 결정해 봐야 했다. 권총을 한 자루 구했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 옆으로 펼쳐진 흑해는 이제 막 넘어간 석양이 마지막 잔광을 검붉게 퍼뜨리며 크고 잔잔하게 고여 있었다. 흑해의 바다는 호들갑스럽지 않아 좋았다. 고요하고 잔잔하여 꼭 죽음을 앞둔 노인의 숨결처럼 조용하고 깊으며 검은빛이었다. 취기 때문이었을까. 부둣가를 걷던 발걸음이 잠시 꼬여 휘청거렸을 때 나는 문득 이상한 언어를 들었다. 나의 온몸에 찌르르하고 전율이 흘렀다.
“오빠, 이리 와”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분명 한국어였다. ‘오빠’라는 단어. 오빠. 오빠. 나이 어린 누이동생이 남자 윗동기에게 부르는 호칭. 한국에서 수많은 남자 연인을 친근하게 부를 때, 여자의 그 애정 어린 마음이 담겨 있는 말. 오빠. 술집에서 아가씨가 나이가 많건 적건 손님을 부르는 일반적인 그 말. 나는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것은 내 의지와도 상관없는 행동이었다. 그러면서 머리 한구석에선 이건 혹시 실수가 아닐까 했지만 이미 나는 나를 부른 사람을 향해 서 있었다. 키가 작고 통통한 금발의 한 중년여인이 나를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이빨이 빠진 듯이 아랫턱이 윗입술을 덮어 합죽이의 모습이라 언뜻 보면 나이가 들어 보이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한 사십대 중반으로 들어 보였다. 커다란 가슴이 아랫배까지 축 처져 있었다.
‘오빠, 이리 와, 싸다. 싸.’
여인은 눈을 반짝거리며 한 손을 열렬하게 나를 향해 흔들며 다시 외쳐댔다.
‘오빠, 사랑해. 이리 와.’
나는 상황을 파악했다. 약간 혀가 말려 들어가며 내는 저 모국어의 발음은 누군가에게 몇 마디 배운 것임에 틀림없다. 이곳 바투미의 부둣가 선술집엔 한국인들이 꽤 드나드는 곳이며 그들을 호객하기 위해서 저 여인은 한국말을 배운 것이다. 한국 사람을 피해다니면서도 모국어가 주는 흡인력은 나의 발길을 꼼짝도 못하게 붙들었다. 가슴 한구석이 뭉클하게 짓뭉개지며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오랜 여행으로 말미암은 외로움에 나는 길 한복판에서 코끝이 싸해지는 것을 참아내느라 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다시 “오빠, 이리 와” 손을 흔들며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확신으로 얼굴을 환하게 펴고 소리 질러대는 금발의 중년여인을 향해 비척비척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나는 비실비실 입가에 웃음을 띠고 있었나? 여인은 내 한쪽 팔을 힘있게 자신의 물컹이는 가슴에 껴안고 영어로 말했다.
“너는 한국 사람이지? 술 한잔 마시고 가. 멋진 저녁 메뉴도 있다. 음식값은 아주 싸다.”
여인에게서 물씬 땀냄새가 느껴졌다. 여인에게 이끌려 술집으로 들어가며 나는 입구에 붙어 있는 아크릴 간판을 보았다. <클럽 블랙 씨 훠 인터내셔날 마리너(Club Black Sea for International Mariner)> 그리고 옆에는 마도로스 모자를 쓴 선원이 한 아가씨와 입 맞추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두 사람의 입술 사이로 붉은 색 하트 모양이 헬륨 풍선처럼 금방 하늘로 튀어 올라갈 듯 커다랗고 풍만하게 그려져 있었다.

클럽 블랙씨의 오픈 시간은 12시. 벌써 일주일째 나는 이곳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난 이곳에서 총을 한 자루 구입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먹게 된 것은 이곳을 드나드는 선원을 제외하고 많은 사내들이 뒷주머니나  허리춤에 권총을 찔러넣고 다니는 것을 빈번하게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술을 마시다가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권총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담배를 피워물거나 카드패를 돌렸다. 휴대용 전화기처럼 일상적이며 무심하게 권총을 소지하고 꺼내 놓았다. 권총을 탁자 위에 올려놓는 이유는 술에 취해 오발할 위험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은근히 자기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강력한 힘에 대한 과시도 일부분 섞여 있었다.
클럽 블랙씨의 사장인 마담 니노 역시 권총을 가지고 있었다. 정오에 맞춰 클럽이 문을 열 때부터 새벽이 되어 문을 닫을 때까지 마담 니노는 남들의 서너 배는 될 듯한 큰 몸집을 카운터 뒤에 고정시키고 별 움직임 없이 하루 종일 서 있었다. 양팔로 카운터를 짚고 여자 레슬러처럼 어깨를 부풀어 올린 채 대담하고 자신 있는 눈초리로 클럽 안의 술 취한 손님들과 춤추는 아가씨들을 한눈으로 장악하는 니노는 한 조직의 보스로서 시원시원하고 위압적이었다.
이곳에 도착한 첫날이었던가? 여기저기 권총이 드러난 사내들을 보며 내가 여기 사람들은 저렇게 자유스럽게 총을 가지고 다니냐고 영어로 묻자 그 뜻을 알아먹은 니노는 피둥피둥 살이 찐 거구를 천천히 움직여 ‘그게 뭐 대수냐’는 듯이 술잔이 늘어서 있는 진열장 서랍을 열고 자신의 총을 보여주었다. 신고만 하면 누구나 자유롭게 총을 구입할 수 있다며 그루지아에서 총기 소지는 불법이 아니라고 그녀는 두툼한 입술을 오므려 권총 끝에 연기를 훅 불어대는 시늉을 하며 빙그레 웃었다.    언젠가 밤 늦게 술 취한 러시아 선원 하나가 싫다는 아가씨를 마구잡이로 끌고 나가려 하자 니노는 서랍에서 권총을 꺼내 그 선원의 머리를 겨냥하면서 클럽 안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네 머리통을 날려 버리기 전에 어서 내 집에서 꺼져 버려.”
술 취한 선원은 뭐라고 욕설을 퍼부었으나 기가 꺾여 비틀거리며 클럽 밖으로 사라졌다. 마담 니노는 클럽 블랙씨의 중심이며 기둥이며 선장이며 보스였다. 포주인 마야나 이 클럽의 예닐곱 명의 아가씨나 술 마시러 오는 선원들이나 가끔 돈을 걷으러 오는 경찰과 깡패들조차 모두 니노를 존경했다.
어느 날 그리 술에 취하지 않았던 오후 나는 카운터로 다가가 잠시 뜸을 들였다가 니노에게 물었다.
“권총을 한 자루 구입하고 싶다. 가능하겠느냐?”
니노는 나의 의도를 파악하겠다는 듯 내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시선을 홀 안으로 던져 버렸다. 긍정도 아니고 부정도 아닌 니노의 반응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거친 사내들에게 술을 파는, 반쯤은 폭력배 보스 같은 여사장이라 해도 처음 보는 동양인이 총을 사고 싶다고 하면 쾌히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더군다나 니노의 영어 구사력은 단순해서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나는 테이블로 돌아와 술기가 가라앉을 만하면 한 모금씩 보드카를 목젖 안으로 흘러넣었다.
‘오빠, 이리 와’라는 모국어로 나를 불러 술집 안으로 끌어들였듯이 클럽 블랙씨의 앞거리에 나가 선원이나 사내들을 불러모으는 역할을 하는 삐끼 겸 포주인 마야는 길가에 사람들이 없으면 홀 안으로 들어와 내가 시켜 준 맥주와 안주를 집어먹었다. 마야는 몹시 급하게 햄을 넣어 만든 샐러드를 포크로 서너 차례 끌어넣듯이 입 안에 집어넣고 맥주를 꿀꺽꿀꺽 삼켜 음식물과 함께 식도로 쓸어넣었다. 지금 빨리 배를 채워 놓지 않으면 배를 곯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배어 있었다. 체구보다 훨씬 풍성한 미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축 늘어진 젖가슴과 툭 튀어나온 아랫배의 윤곽이 땅딸하고 뚱뚱한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티셔츠의 앞자락은 언제 묻었는지 음식물 자국이 몇 점 회색빛 먼지와 섞여들고 있었고 은색 샌들은 앞끈 하나가 끊어져 있었다. 몹시 빠른 속도로 음식을 먹고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가 내가 알 수 없는 몇 가지 언어로 지나가는 선원이나 수병이나 낭인을 불러들였다. 그녀는 어금니가 몹시 아파 어서 돈을 벌어 무엇보다도 먼저 이빨 치료를 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가 시켜 놓은 음식들을 몹시 맛있게 먹어치웠다. 언제나 배가 고픈 것 같았다. 빵조각으로 접시에 남아 있는 샐러드를 싹 쓸어 입 안에 넣는 마야를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을 어떻게 알았지?”
“흠, 아는 방법이 있지. 나처럼 오랫동안 부두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면 대강 어느 나라 사람인지 한눈에 알 수 있어. 한국 사람들은 약간 뻐기는 듯한 게 있어. 러시아 사람들은 무뚝뚝하고 일본 사람들은 항상 주위를 살피지. 필리피노는 실없이 웃고 다니고 미국인들은 어딜 가나 약간 겁을 먹고 있지.”
마야는 자기가 5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영어, 러시아어, 독일어, 터키어, 그리고 그루지아어였다. 그래서 온갖 인종이 드나드는 바투미 항구에서 자기처럼 유능한 포주는 없노라고 깔깔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영어를 들어 보면 그렇게 유창한 실력은 아닌 게 단숨에 느껴졌다. 그녀는 다변이었고 유쾌하고 항상 바빴다. 나와 얘기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바깥 거리의 동정에 신경을 쓰고 있어 누군가 지나가는 사람의 기척이 있으면 얼른 일어나 문 밖으로 나가 술집으로 들어오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맨 처음 클럽 블랙씨에 들어온 날 마야는 내 옆에 넬리라는 금발의 아가씨를 앉혔다. 마야는 넬리를 소개하며 말했다.
“너는 넬리와 술을 마셔야 한다. 네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넬리는 너를 기다려왔다. 네가 인정하듯이 넬리는 클럽 블랙씨에서 가장 예쁜 아가씨다. 선원들에게 제일 인기 있는 아가씨다. 하지만 그 특혜를 너에게 주겠다. 그것은 넬리도 원하는 일이다.”
넬리는 별 말이 없는 아가씨였다. 그러나 이목구비는 놀랍도록 또렷해서 강한 인상을 풍겼다. 무엇보다 짙은 눈썹과 깊은 눈동자가 강렬했다. 정면에서 바라보는 앞모습보다 비스듬히 옆에서 바라보는 프로필의 윤곽이 굵고 뚜렷해서 보기 좋았다. 누구라도 이 클럽에 들어오면 눈에 확 뜨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넬리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아주 더듬더듬 서툰 영어로 의사를 표현했다. ‘빨리빨리’나 ‘사랑해’ 같은 몇 마디 짧은 한국말도 할 줄 알아 흥미로웠다. 나는 넬리에게 물었다.
“이 클럽에 한국 사람이 많이 오나?”
넬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일 년에 한 번이나 두 번쯤.”
“그런데 한국말은 어떻게 배웠나?”
“누군가 가르쳐 주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넬리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나는 여자가 옆에 앉아 있는 것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없이 술잔을 비우고 넬리도 말없이 내 속도에 맞춰 술잔을 비웠다. 이런 속도로 술을 마시면 곧 취기가 머리 위로 올라올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난 오랜 여행 끝에 비로소 맘 편히 죽을 수 있는 자리를 찾은 느낌이었고 그런 날 하루쯤 술에 취해도 좋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죽음을 생각하자 사물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창문 너머로 막 넘어간 석양이 구름 몇 조각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풍경이나, 클럽 안에 함부로 놓여 있는 탁자와 의자들의 낡고 오래된 갈색, 구석에서 담배연기를 뿜어올리는 진한 화장의 아가씨들, 막 바다에서 돌아와 싱싱한 파도 냄새를 피우는 선원 두어 명의 껄껄거리는 웃음 소리, 내 앞에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놓여 있는 생선 스튜, 이런 것들이 또렷한 빛깔을 띠며 내 시야에 들어왔다. 넬리가 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당신은 선원은 아닌 것 같고 무엇 하는 사람이냐?”
나는 잠시 생각하다 ‘여행자’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또다시 말이 끊어졌다. 몇 사람의 선원들이 왁자하니 들이닥쳐 클럽 안은 돌연 활기에 넘치기 시작했다. 구석에서 우울하게 담배를 피우던 아가씨들도 가운데 플로어로 나와 음악에 맞춰 선원들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느새 어둠이 내려 창 밖은 캄캄했다. 넬리가 “왜 안주를 하나도 먹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또 술 한 잔을 마셨다. 그녀가 입은 가슴이 파인 원피스의 레이스가 때에 절고 금방 떨어질 듯 나달나달했다. 어느 순간 탁자에 앉은 포주 마야가 팔꿈치로 나를 꾹꾹 찌르며 말했다.
“넬리를 데리고 가서 자라. 그루지아 최고의 아가씨다.”
나는 넬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짙은 눈동자엔 아무 감정이 없었다. 나는 마야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나는 돈이 많지 않다. 얼마를 줘야 하나?”
마야가 다소 뻐기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 오십 불만 줘라. 그럼 모두 행복하다.”
나는 주머니에서 오십 불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미안하다. 자러 가고 싶진 않다. 하지만 이것을 넣어 둬라. 내 선물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야와 넬리가 나를 양쪽에서 부축했다. 마야가 내 턱 밑에서 합죽이 입을 환하게 벌리며 말했다.
“그럼 오늘은 그냥 들어가라. 하지만 내일 꼭 다시 와야 한다.”
넬리도 나직하게 덧붙였다.
“내일 꼭 다시 와라. 기다리고 있겠다.”
나는 고개를 무의식적으로 끄덕이며 클럽 블랙씨를 나왔다.
나는 그날 술에 취한 채 숙소로 돌아왔다. 낡은 호텔 맞은편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싸구려 보드카를 한 병 사서 침대에 던져 놓은 다음 희미한 전구 불빛 아래 멍하니 앉아 나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목선처럼 이리저리 출렁거렸다. 침대 위엔 색 바랜 배낭 하나, 팬티 한 장, 양말 한 켤레, 바지와 티셔츠 한 장, 공책 한 권, 연필 한 자루, 반토막 난 지우개, 우의와 영어사전, 숟갈과 촛불 한 자루, 미화 몇 백 불, 위조여권. 이것들이 내 세간이었다. 내 등에 짊어져 이 세상 저 세상 떠도는 내 살붙이들이었다. 페인트가 벗어진 침대 다리는 쥐가 갉아먹은 듯 이빨 자국이 드러나 보이고 전구 불빛 아래 미세한 먼지들이 고요히 부유하고 있었다. 생각의 편린들은 두서없이 불쑥불쑥 머릿속에 떠올라 한동안 부연 공간을 유영하다 침몰선처럼 조용히 가라앉았다. 침대 깊숙이 어딘가에서 이국인의 살 냄새가 났다.
술은 독주가 좋아.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며 술기운 때문에 불현듯 차오르는 식욕으로 며칠 전 배낭 안에 처박아 두었던 딱딱한 빵을 뜯어먹으며 중얼거렸다. 다 받아들이면 된다. 그게 내 운명이겠지. 정해진 길을 가고 있을 뿐이야. 보드카 한 병이 거진 다 비워졌을 때 침대 옆에 한 아이가 서 있었다. 그 아이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 아들아, 이제 왔니? 아이는 웃지도 않고 손을 내밀지도 않고 입을 열지도 않았다. 그래 안다, 아빠가 싫겠지. 나는 허공에 내밀었던 손을 슬그머니 거두어들이고 아이를 찬찬히 살폈다. 막 중학교에 입학한 열세 살 소년. 근육이 조금씩 야물어 가고 팔과 다리가 쑥쑥 커가던,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커다란 눈망울이 촉촉이 빛을 내던 아이였다. 언젠가 내 생일날에 자신의 꿈과 미래에 대한 설계를 백지에 가득 적어 선물로 주던 아이. 내가 훌륭하게 되는 게 아빠에겐 제일 큰 선물이지? 그 아이가 이제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만 서 있었다. 그곳은 춥지는 않냐? 그곳이 무섭지는 않더냐? 곧 아빠가 가마. 갑자기 아이의 얼굴이 쩡 하고 금이 가며 고통으로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괜찮아. 괜찮아. 곧 괜찮아질 거야. 나는 숨이 막혀 다급하게 손을 허공에 대고 허우적댔다.
모든 일들은 그렇게 계획처럼 그날을 향해 진행되었다. 서른 살이 넘으면서 영화계에서 점점 밀려나 일 년 동안 아무 섭외도 들어오지 않고 지방 카바레에서 잘 부르지도 못하는 노래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을 때부터, 몇 년 사이 아파트 평수는 점점 줄어들고 마지막엔 스무 평짜리 임대 아파트에 들어갈 때부터, 친구의 권유로 내 이름을 앞세운 상가분양 사업에 뛰어들 때부터, 그리고 친구의 돌연한 잠적과 내 앞에 던져진 수십억대의 부채와 미친개처럼 달려들던 채권자들의 분노와 풍비박산 난 살림들, 근 한 달이 넘게 집으로 몰려와 욕설과 거친 몸싸움을 벌이던 빚쟁이들. 식구들을 어디 다른 곳으로 보내지도 못하는 내 주변머리에다 그날, 열세 살난 아들이 나에게 욕을 퍼붓던 채권자에게 몽둥이를 휘두르고, 나에게 뺨을 맞고 그리고 그 아이는 십일 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 미안하다, 아이야, 내가 얼마나 죄가 많은지. 울컥울컥 끝없이 흘러나오는 핏물들, 비명 소리와 아득하게 흔들리던 하늘과 온통 검붉은 뻘흙과도 같은 시간들.
나는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가 오줌을 누고 그리고 무릎을 꺾고 먹은 것을 토해냈다. 침실로 돌아왔을 때 아이는 가고 없었다. 침대에 누웠지만 온통 어지러울 뿐 잠은 오지 않았다. 나는 내가 지은 모든 죄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처음엔 사기라는 것을 알지는 못했지만 결국 내가 사기를 친 셈이 되어서 수많은 돈을 날려 버린 채권자들에게, 이혼한 아내에게. 그녀는 평생 나로 인해 괴로워했다.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방종의 시간을 보냈던가. 연예인이란 허울에 뭇 여성들과 수많은 잠자리를 가졌었다. 남창과도 같았던 시절들. 난교와 도박과 마약. 대마초의 나른한 향기. 걸을 때마다 땅 속 깊이 무릎이 빠져드는 듯하고 한 발짝 힘을 주면 하늘 위를 나는 듯 높이높이 솟구쳐올랐지. 그 모든 타락과 허위와 방종이 그 아이를 죽였다. 나라는 놈의 잘못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배우라는 허위의 삶을 꿈꾸던 시간부터였을까? 남의 삶을 연기하다 나의 삶은 어디론가 없어져 버린 가짜였다. 나는 대체 누구일까? 신이란 대체 어디에 붙어 있는 똥덩어리 같은 존재란 말인가? 신을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은 참 행복할 것이다. 그들의 영혼은 얼마나 평온할까? 나는 한없이 중얼거리고 출렁거렸다. 어서 침몰하여 깊이깊이 가라앉고 싶었다. 새벽녘에 나는 잠깐 잠이 들었다.
점심때 나는 클럽 블랙씨에 들렀다. 그곳은 내가 총을 입수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했고 문득 넬리가 보고 싶기도 했다. 그녀에게는 무언가 나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야는 나를 열렬히 환영했다. 총을 구입할 수 있느냐 같은 얘기는 꺼낼 분위기가 아니었다. 술집 주인 니노는 나를 위해 바투미를 관광시켜 주라고 차 한 대를 내주었고 마야와 넬리에게 외출을 허락했다. 주방에선 샐러드와 튀긴 닭과 보드카를 포장해 주었다. 갑자기 바닷가로 소풍을 나서게 된 뜻밖의 선물은 간밤에 건넨 50불 탓만은 아닌 듯싶었다. 보스인 니노가 선원이 아닌 이 낯선 여행자에게 그루지아를 대표해 환영의 시간을 베풀어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우리는 바닷가에 파라솔과 의자를 빌리고 편안하고 안락한 자세로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흑해는 갯내가 나지 않았다. 고요하고 거대한 호수처럼 잔잔하고 검푸른 물결만을 모래사장으로 조용히 밀어올릴 뿐. 몇 마리 갈매기들이 부드러운 바람을 타고 날갯짓도 없이 공중에 떠 있었다. 뚱뚱한 마야는 셔츠를 입은 채로 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 멀리까지 헤엄을 치곤 물방울을 뚝뚝 흘리며 돌아와 차가운 닭을 보드카와 함께 뜯어 먹었다.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죽기로 결심한 며칠간의 이 평화로움을 세상이 내게 준 마지막 은총처럼 생각하며 햇살과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지구, 너는 왜 이리 아름답니? 나는 넬리와 마야가 그루지아 말로 무언가 빠르고 유쾌하게 떠드는 소리를 귓가로 들으며 조금씩 촉촉이 술에 젖어 갔다. 그러다 문득 나는 눈앞이 흐려졌다. 바닷가 저쪽 편에 한 가족이 단란하게 모여 노는 것을 바라보던 중이었다. 허름한 러닝셔츠를 입은 아버지와, 품이 널찍하고 수수한 원피스를 입은 어머니와, 금발의 열 댓 살 들어 보이는 딸아이와, 삐쩍 마른 사내아이가 모두인 가족이었다. 바닷가에서 조개를 주워와 엄마와 아빠에게 자랑하는 아들과 다정히 아빠 어깨에 머리를 기댄 딸과 바구니에서 빵과 햄을 꺼내 물과 함께 먹는 가족들의 모습이었다. 딸아이가 과묵한 아빠 입에 빵 한 조각을 넣어주고 아빠는 빙그레 웃으며 그것을 우물우물 씹어 먹는 모습을 본 순간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돌리고 헛기침을 했다. 일 년 동안 지구 이곳저곳을 방랑하면서 가족들이 단란하게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울컥 감상적이 되곤 했다.
해질녘 넬리는 자기는 아이가 하나 있다고 말했다. 그 아이의 애비는 원양선에서 일하던 한국인 선원이었다고 덧붙였다. 보름 정도의 황홀했던 시간. 첫눈에 벼락처럼 자신의 운명을 바꿔 버린 남자. 다시 돌아온다고 그 한국인은 다짐하고 떠났지만 아이가 일곱 살이 되었어도 연락이 없다고 했다. 수첩에 적어 준 전화번호와 주소를 향해 수십 번 전화를 걸어 보고 편지를 띄웠지만 아무 소식이 없다며 넬리는 빙그레 웃었다. 마야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그래도 넬리는 부두에 배가 들어오면 그 한국인이 오기를 기다리며 술집에 들어오는 선원들에게 어디를 거쳐서 오는 배인지 꼭꼭 물어 본다고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어떤 배가 들어왔냐고? 필리핀 배냐? 러시아 배냐? 코리아노 배냐? 한국 사람은 그 배에 없냐고?
그날 밤 나는 넬리와 같이 잤다. 내 몸은 술기운에 발기했지만 사정은 하지 못했다. 넬리는 오랫동안 나를 사정시키려고 애를 썼지만 내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넬리는 ‘빅 프로블럼’이라고 한숨을 쉬다 지쳐서 잠이 들었다. 나는 새벽까지 깨어 있었다.
나는 일 주일이 넘게 클럽 블랙씨에 나와 앉아 있었다. 밤이 깊어 술이 취하면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며 술을 마셨다. 가끔은 그들에게 총을 구해 달라고 주절거렸다. 러시아 선원이건, 바투미의 뒷골목 건달에게건. 이상하게도 그들은 총들이 많았다. 아마 소연방(蘇聯邦)이 해체되면서 군부대로부터 무질서하게 풀려 나온 무기들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내 요구에 고개를 흔들었다. 의심스럽게 나를 바라보며 꺼내 놓았던 권총도 도로 집어넣었다. 술좌석에서 한번 권총을 만져 본 적이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한 친구가 몇 시간 나와 술을 마시더니 실탄을 뺀 권총을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총구를 창문으로 돌리고 빈 방아쇠를 철컥 당겨 보았을 뿐, 그들은 내게 총을 팔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총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일 주일 동안 나는 클럽 블랙씨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수중에 현금은 이제 천 오백 불 정도 남아 있었고 돈이 줄어들수록 내가 일을 실행할 결정의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천 불로는 권총을 살 수 있을 것이고 오백 불로는 닷새 정도 지낼 여유가 있었다.
넬리는 나의 고정 파트너가 되어 내가 술집에 들어서면 자연스레 옆에 앉아 술을 따르고 자리를 지켰다. 한번은 넬리로 인해 싸움이 벌어진 일도 있었다. 중국인 선원이 넬리의 미모에 반해 자꾸 옆에 앉은 그녀에게 집쩍거렸다. 나는 술집 여자로 인해 다툼이 벌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넬리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것마저도 지켜 주지 못한다면 난 이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실 자격도 없는 자였다. 내가 그 중국인에게 넬리의 어깨에서 손을 치우라고 말했을 때 먼저 주먹을 휘두른 것은 중국인이었다. 그는 내 얼굴에 몇 번 주먹질을 해댔다. 죽을 자리를 찾아다니는 인간에게 가해진 주먹 몇 대쯤은 되레 왈칵 웃음이 나오게 근지러웠다. 나는 그를 노려보았지만 입가엔 자꾸 빙그레 웃음이 띠어졌다. 그 모습이 기괴했는지 중국인은 움찔 물러났지만 술집 주인 니노는 한풀 더 그의 기를 꺾어 놨다. 진열장 서랍에서 권총을 꺼내들고 거구의 몸을 비척비척 이쪽으로 옮기더니 내 손에 권총을 쥐어 주었다. 나는 중국인의 미간에 총구를 맞췄다. 중국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그는 몇 발짝 뒷걸음치더니 황급히 밖으로 도망쳐 버렸다. 조금 늦게 중국인이 달아났다면 난 그를 정말 쏘아 버렸을지도 몰랐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니노는 내게 왜 총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슨 생각에선지 니노는 서랍 열쇠를 나에게 주었다.
어느 깊은 밤 넬리는 내게 아이의 아빠 노릇을 한번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자기는 애아빠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그러나 아이의 아빠가 그렇게 무심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이에게 알려 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빠는 한국에 살고 있으며 항상 가족을 생각하고 가족을 위해 돈을 벌려고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모처럼 어렵게 가족을 보기 위해 이번에 바투미에 왔으며 또 이번 만남 후엔 오랫동안 오지 못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한번은 아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다고, 어렵지만 그 일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 다음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할 것이라고 했다. 그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자신의 남은 인생이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일은 내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로 느껴졌다. 나는 일평생 연기를 혐오해 왔지만 이번은 잘해 낼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나도 한때는 한 아이의 애비였으므로.     
며칠 후 난 넬리와 시장에 들러 선물을 샀다. 학용품을 사고, 초콜릿을 사고, 장난감 자동차를 샀다. 낮은 지붕이 연하여 머리를 맞댄 동네, 넬리의 집 대문 옆 화단엔 글라디올러스가 피어 있었다. 넬리가 큰 소리로 아이의 이름을 부르자 한 소년이 나를 바라보며 재빠르게 달려왔다. 일곱 살 정도 먹은 검정 머리의 사내아이였다. 나는 그 아이의 키에 맞춰 무릎을 굽혀 앉으며 양팔을 벌렸다.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철없는 애비처럼, 죽음에서 부활한 나자로처럼, 일순 멍해지면서, 언젠가도 이렇게 누군가를 안기 위해 양팔을 벌리고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아이를 가슴 속으로 받아들였다. 아이는 작은 팔로 내 목을 세게 안았다. 물큰 아이의 머리에서 단내가 났다. 뺨을 부비는 아이의 포동포동한 피부에서 미끈한 물기가 느껴졌다. 훌쩍이며 아이는 파파, 파파, 하며 내 목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네가 왔구나. 저 먼 곳에서 여기에 왔구나. 나를 만나러 왔구나. 그러나 가슴 속에 가득 찬 그 말은 뱉어내지 않은 채 오래도록 그 아이를 안고만 있었다.
남은 돈의 일부는 마야에게 주었다. 어서 이빨 치료부터 하라고 당부하자 마야는 합죽이 입을 비죽거리며 울음을 터뜨릴 듯했다. 클럽 블랙씨를 나오는데 넬리가 “내일 또 오라”고 나의 손을 꽉 잡으며 오래된 아내처럼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 배낭 속에는 니노의 서랍에서 꺼낸 권총이 들어 있었다. 나는 바닷가 한적한 곳을 찾아 석양이 질 때까지 오늘 하루 종일 걸을 생각이었다. 나는 몇 걸음 걷다가 뒤로 돌아 클럽 블랙씨를 바라보았다.
 
클럽 블랙씨. 흑해를 끼고 있는 그루지아 서쪽 휴양지 바투미 뒷골목에 위치해 있는 작고 허름한 선술집. 오랜 항해를 마친 뱃사람들이 단골로 드나드는 싸구려 클럽. 모두 다섯 개의 테이블. 가파른 목조 계단 위로는 붉은 비로드 커튼이 쳐진 다락방이 있다. 사람들은 그 다락방을 특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긴 소파가 누워 있는 그 방은 술에 취해 즉석으로 사랑이 이루어지기도 하는 장소였다. 그럴 때면 마야가 실내 음악 볼륨을 있는 대로 크게 틀어 놓았다. 어떤 때는 십여 명의 선원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 들어와 술을 마시고 아가씨들과 춤을 추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썰물처럼 빠져나가 그 적요함에 문득 쓸쓸해진 아가씨들끼리 남은 술과 안주를 먹으며 담배를 피우고 춤을 췄었지. 춤을 추는 중앙 홀의 바닥은 시멘트가 조금씩 마모돼 사막같이 모래가 버석거렸다. 시간이 멈춰 버린 지구 안의 한 공간. 천 년 전에도 있어 왔고 천 년 후에도 그대로 있을 듯한, 낡고 허물어질 듯한 그 술집. 벽에 걸려 있는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이나 일본 국기들, 각종 배의 깃발들, 색이 누렇게 변해 있는 세계지도. 태평양, 대서양, 아라비아 해, 지중해, 그곳들의 푸른 바다를 헤치고 오랜 항해를 거친 선원들은 이곳 클럽 블랙씨에 잠시 정박한 거지. 뿌우뿌우 무적(霧笛)이 우는 안개 낀 한밤중 항구에서 들려오는 고래 울음 같은 기적 소리에 탁자에 눕힌 무거운 머리를 들어 취한 눈꺼풀을 게슴츠레 올려 보면 자욱한 담배연기 사이로 스탠드 안쪽에 빨간 네온 불빛으로 ‘클럽 블랙씨’라고 반짝거리는 시그널을 발견하게 되는 거지. 마치 고향에 온 듯이 한없이 풀어진 마음과 함께.
내 생(生)에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기항지(寄港地), 다시 갈 수 없는 곳. 클럽 블랙씨.  《문장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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