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멜 마끼아또

카라멜 마끼아또

김설아

 
 

그는 서른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애 같은 면이 있었다. 생김새도 소년 같고 술과 담배를 즐기지 않기 때문인지 누구나 그를 보면 귀여움이나 보호본능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자신이 나이만 먹은 모조어른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그에게는 그 나이의 남자에게서 보기 드문 반짝이는 감각이 있었고 자신만의 취향이 확고했다. 이것이 그를 순수하게 만들어 주는 것도 같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옷을 너무나 좋아했고, 자라서 하고 싶은 것도 옷 만드는 일밖에 없었다. 때문에 다른 일상적인 일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기는 했다.
그는 한 번도 소위 말하는 정규직을 가져 본 적은 없었지만 끊임없이 직종을 바꿔가며 일을 해 왔다. 대학의 의상디자인과를 다니던 시절부터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패션 아트디렉터, 잡지 모델까지 겸할 정도로 소질도 능력도 있었다. 단점이라면 쉽게 싫증을 느끼고 조금만 일이 힘들어지거나 책임자가 되면 도망쳐 버리는 것이었다. 결국 영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모처럼 빈둥거리며 여유를 느껴 보려 했으나 유명 패션스쿨의 디자이너를 알게 되어 편집 매장의 숍마스터까지 하게 되었다. 또 편하고 재밌어 보여 패션 잡지의 해외통신원으로 일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경력도 쌓고 개인적인 인간관계망까지 만들게 되었다. 몇 년 후 귀국한 그는 연예인 스타일리스트와 의상 디자이너로 활약하며 방송도 하게 되었다. 그가 속한 세계는 활력과 환상과 꿈을 파는 곳이었기 때문에 휘황찬란하고도 아름다워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질투하고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 자신은 글쎄. 어린 시절부터 간절하게 바라 왔던 일이라서 대부분의 일이 대체로 즐겁기는 했지만 가끔 모든 것이 지긋지긋했다. 그가 방송에서 입버릇처럼 말하는 ‘투 머치(too much)’가 너무 강해서 감각의 마비가 올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스물다섯처럼 무작정 다 접고 떠날 수도 없었다. 자기 이름을 딴 브랜드까지 생긴 마당에 도망은커녕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 ‘모조어른’에서 벗어나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하는 시기였다. 스스로도 그러한 사실을 막연하게나마 깨닫고 있었으나, 자극과 흥미 위주로 살아가는 것은 여전했다. 게이라는 오해를 자주 받기 때문인지 모델이나 연예인 지망생, 클럽과 파티에서 만난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변하지 않았다.
달라진 점이라면 지겨움을 느끼는 주기가 점점 짧아진다는 점이었다. 주기는 서른을 넘기자 더 짧아져만 갔기 때문에, 이제까지 만나 오던 여자들이 문제인가 싶어 그들과는 전혀 다른 현실적인 여자를 만나 보기까지 했다. 그렇게 만난 것이 바로 이 여자였다.

지금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여자, 그보다 세 살 어린 여자 한지은. 언뜻 보면 앞머리를 내린 단발과 마른 체구 덕분에 10대로도 보이는 외모지만 가까이서 보면…… 여자의 얼굴에 세월이 드러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차라리 나무처럼 나이테가 있다면 편리하고 좋을 텐데. 지은의 얼굴에 나이테를 그리기 시작했다. 아홉 개쯤 그렸을 때 지은이 입을 열었다. 눈을 내리깐 채로 시선도 마주치지 않았다.
“오빠.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열. 열하나. 열둘.
“내 말 듣고 있어?”
열셋. 열넷. 입에서 반사적으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아니.”
“뭐?”
날카로운 목소리에 정신이 든 그는 지은에게 되물었다. 그녀가 말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느냐고.”
“몰라.”
그는 건성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디까지 셌더라. 아, 맞다.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 윤곽이 흐려졌다. 저건, 뭐지? 볼을 타고 맑은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잖아. 눈물인가.
“자, 여기. 휴지.”
그는 테이블마다 놓인 휴지꽂이에서 냅킨을 몇 장 꺼내 지은에게 내밀었다. 지은은 눈물을 닦고 코를 팽 풀더니 울먹거렸다. 열여덟. 이대로 멈추어라.
“오빤 나랑 왜 만나?”
난감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난처했던 것은 세고 있던 나이테 수가 기억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인상을 쓰며 고심하는 척했다. 떠오르는 말은 이것뿐.
“편하니까.”
지은은 이어지는 말을 기다리는 것 같았으나 그가 입을 다물고 있자 말했다.
“편해? 그게 다야?”
“아무래도 그렇지. 꽤 오래 만났으니까.”
“얼마나 만났는지는 알아?”
“모르겠는데. 한 2년 됐나?”
지은은 침이라도 뱉을 것 같은 표정으로 그를 보더니, 벌떡 일어나며 테이블을 쾅 쳤다.
“3년이라고, 3년! 바로 오늘이 3년째 되는 날이라고! 진짜 너무한 거 아냐 오빠는…….”
지은은 선 채로 엉엉 울었다. 아가씨답지 않게 너무 큰 소리로 울었기 때문에, 당황한 그는 그녀를 앉히려고 했으나 지은은 고함을 빽 질렀다.
“왜! 왜 그래! 내가 쪽팔려? 내가 이러는 게 쪽팔려?”
오므라이스 전문점 안 사람들 대부분이 그들을 보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외면했다. 커다란  눈으로 그를 노려본 그녀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는 밥값을 치르고 따라가면서 한편으로는 황금 같은 주말에 왜 이따위 짓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예컨대 친구들이 여는 호텔 파티에 가거나, 개인적으로 아는 밴드 공연에 가서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었을 텐데. 일 때문에 못 봤던 영화나 각종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를 보거나, 하다못해 소파에 틀어박혀 감자 칩을 먹으며 쌓아 둔 잡지책을 볼 수도 있을 터였다. 그 어떤 것도 지금 이 짓보다는 나았다. 어찌나 빨리 걷는지 간신히 따라잡았을 즈음 그는 말했다.
“미안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미안하다고. 화 좀 풀어라.”
지은은 멈춰 서서 기가 차다는 듯이 그를 보더니 또다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따라가자 그녀는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따라오지 마. 이제 오빠 같은 사람 필요없어. 오빠 같은 이기주의자에게는 아무도 필요없을 거야. 다른 편한 여자나 찾아봐. 이제 나한테 연락하지 마.”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물론 그도 인간인 이상 서운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는 3년이나 되었다는 말에 놀랐었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졌고, 지은처럼 집착을 보이는 경우도 없었다. 그가 만났던 여자들은 대개 자기 직업 외의 인생의 다른 부분에서는 간단하게 살자는 경향이 강했고, 그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성실하기만 한 그녀의 성격이 그로서는 집요하게 느껴졌다. 거기에다 센스 없는 그녀의 차림새와 맨얼굴에 가까운 화장은 날이 갈수록 눈에 거슬렸다. 잊을 만하면 꺼내는 결혼 이야기도 부담스럽기만 했다. 그는 멈춰 선 채로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집을 향해 차를 몰며 신호대기에 걸려 있던 도중 휴대폰을 보던 그는, 지은의 번호가 뜨자 약간 놀랐다. 연락도 하지 말라더니. 이어폰을 꽂고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속 목소리는 반쯤 울면서 말했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대략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가란다고 진짜 가냐? 이 나쁜 놈아.”
그는 잠자코 있었다. 지은은 여전히 울먹거리며 말했다.
“나랑 헤어지기 싫으면 꿀단지에 빠진 아기 곰으로 와. 거기 어딘지 알지? 기다릴게.”
대답하지 않자 그녀는 코를 팽 풀더니 말했다.
“안 오면 아버님한테 다 말해 버린다. 아버님하고 나하고 친한 거 알지? 그럼 끊는다.”
뚜―우. 뚜―우. 전화는 끊어졌고 그는 계속해서 가던 길을 갔다. 그러나 집이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말이 체증처럼 걸렸다. 아버지에 대한 말. 그는 아버지와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처음 봤을 때부터 아버지는 시체처럼 말이 없었으며 오로지 돈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 같았다. 뭐에라도 씐 사람처럼 악착같이 일만 하고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않을 정도로 외모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늘 같은 흰 셔츠에 불그죽죽하고 어중간한 너비의 타이, 검은 정장과 낡아 빠진 갈색 구두에 모서리가 너덜너덜한 가죽가방. 아버지에게는 취미도 없었고 여자도 없었다. 돈 버는 기계 같았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그는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돈은 못 벌어도 가능하면 많은 경험을 하려고 애썼다. 실은 집에 있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검고 어둡고 썰렁한 집. 존재감도 없고 감정도 없는 아버지와 함께 있노라면 숨이 막혀 아무도 모르게 죽어버릴 것 같았다. 무조건 밖으로 뛰쳐나가 가능한 화려하고 근사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을 속에 담아 와야 했다. 그런 그를 아버지는 말없이 원조해 주었다. 탐탁찮아하는 것이 역력했으나 굶어죽는 것도 못 보겠다는 식이었다. 그가 유일하게 가족애를 느낄 때는 계좌에 돈이 입금될 때뿐이었다.
아버지가 어떤 식의 표현이라도 하는 시간이 있다면 그것은 지은이 올 때뿐이었다. 지금껏 집에 데려온 여자도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전까지는 그의 가족사에 관심을 가진 여자도 없었고 집에 가자는 말이 우스울 정도의 가벼운 관계들뿐이었다. 그러나 지은은 달랐다. 그의 집에 무척 오고 싶어 했다. 그런 데 관심 없는 그라도 그것이 무언의 결혼 약속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 어떻게든 데려오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은 오고 말았다. 그녀는 천연덕스럽게 잘도 떠들어댔다.
“어머, 둘이 하나도 안 닮았네요. 아버님이 더 미남이신데요?”
그 말에 아버지는 웃었다. 그는 놀랐다. 아버지도 저렇게 웃을 수 있구나, 아버지도 인간이었구나. 그 날 이후 지은은 그가 없을 때도 집에 놀러 와서 아버지랑 잘도 놀았고, 아버지는 그녀가 오지 않으면 안부를 물었다. 그때가 그들이 가장 편하게 대화하는 순간이었다. 젠장. 그는 결국 차의 핸들을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그곳은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후미진 골목에 위치해 있었다. 그는 간판을 올려다보며 웩 하는 소리를 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징그러울 정도로 귀여운 간판이었다. 이름 그대로 꿀단지에 빠진 곰이 빠끔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입구까지 왔다가도 지은 혼자 커피를 마시게 하고 근처 피시방에서 기다리고는 했다. 주차한 채 그는 지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번의 신호 끝에 그녀가 받았다.
“어디야?”
“나 지금 거기 앞인데…….”
“거기라니 어디?”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제기랄. 손발이 오글거려 욕보다 더 읽기 힘든 이름이었다.
“꿀단지에 빠진 곰돌이.”
그녀는 풋, 하고 웃었다.
“아기 곰이겠지.” 
“그래. 거기. 근처에 있을 테니까 볼일 다 보고 나와라.”
대답이 없었다. 잠시 후 그녀가 말했다.
“싫어.”
“싫다니?”
“왜 매번 들어오지 않는 거야? 나랑 같이 좀 마셔 주면 안 돼? 커피숍에 혼자 오는 여자가 흔한 줄 알아? 남자들이 커피숍 싫어하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날 좋아한다면, 그렇다면 같이 마셔 줄 수도 있는 거잖아. 난 꼭 같이 마시고 싶단 말이야.”
그녀는 전화를 뚝 끊어 버렸다. 휴대폰을 든 채로 그는 또다시 밝게 빛나는 간판을 보았다. 얼씨구. 게다가 최면 카페이기까지 하다. 사주 카페나 타로카드 카페는 들어 봤어도 최면 카페는 처음이었다. 그는 차에서 내려 잠시 주저하다가, 간판 아래 계단을 올라갔다.

딸랑. 문에 달린 종이 울리고 커피 냄새가 폐 속으로 가득 밀려들었다. 머리가 띵하고 가슴이 답답해서 일단은 화장실에 들어갔다. 벽에 특이한 그림이 붙어 있었다. 빈티지 스타일로 그려진 포스터에는 아지랑이 모양의 콧수염에 턱시도를 입은 호리호리한 남자와 우아한 레이스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점잔을 빼면서 고풍스러운 커피 잔을 막 들어 올리고 있었다. 마치 불륜이라도 저지르는 자들처럼 비밀을 품고 있는 미소. 그것은 불가해한 스핑크스의 미소와도 같았다. 그림 아래에는 이렇게 써져 있었다.
‘커피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림의 문구는 카페 곳곳에 붙어 있었다. 지은은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란히 앉는 자리라 옆에 앉자, 웨이터가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지은에게 판을 내밀며 물었다.
“뭐 마실래?”
지은은 그를 보았다. 어느새 차분해진 모습이었다.
“난 카라멜 마끼아또(Caramel Macchiato).”
그는 웨이터를 불렀다. 기분이 이상해질 정도로 다정하게 웃는 남자에게 메뉴판을 주면서 말했다.
“카라멜 마끼아또 한 잔 주시죠.”
웨이터는 그윽한 목소리로 물었다.
“손님은요?”
“저요? 전 됐습니다.”
이때 옆에서 지은이 끼어들었다.
“같은 걸로 주세요.”
웨이터는 빙긋 웃었다.
“알겠습니다, 손님.”
“저기, 저기요! 아악!”
멀어지는 웨이터를 부르려고 하자 지은이 허벅지를 인정사정없이 꼬집었다. 그는 너무 아파 비명을 질렀다.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나 커피 안 마시는 거 몰라?”
“알아.”
“알면서 왜?”
지은은 그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여기 커피는 보통 커피가 아니야.”
“뭐?”
지은은 대단한 비밀이라도 말하는 것처럼 귓가에다 대고 속삭였다.
“커피로 최면을 걸어.”
잠시 멍해진 그는 발작적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브라보! 하고 외치며 박수를 짝짝 치고는 지은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너 영화 많이 봤구나.”
그녀는 두 눈을 깜빡거리더니 이렇게 물었다.
“오빠는 왜 커피 안 마셔?”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쓰니까.”
“쓴 건 다 싫어?”
“어. 굳이 그런 걸 먹을 필요가 있냐? 세상엔 달고 부드러운 것도 많은데.”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때 웨이터가 커피 두 잔을 들고 다가왔다.
“카라멜 마끼아또 두 잔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동그랗고 흰 받침대와 찻잔이 놓였다. 그는 잔을 들여다보았다. 하얀 우유거품 위에 빛나는 갈색 곰이 그를 보며 생긋 웃었다. 질릴 정도로 귀여워 마실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경악한 표정으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지은이 말했다.
“귀엽지?”
그는 무의식적으로 대꾸했다.
“귀여운 척 하네.”
지은이 말했다.
“뭐?”
정신이 든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냐.”
의아하게 쳐다보던 지은이 물었다. 
“마셔는 봤어?”
“한 번 마셔 본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나.”
“그걸로 싫은지 좋은지 어떻게 알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선입견을 가지는 것은 손해인 것 같아. 뭐든 제대로 해 보는 게 좋지 않아?”
맞는 말 같았다. 그렇지만.
“게다가 이건 전혀 안 써. 여자들이 제일 좋아할 정도로. 쓴 걸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걸로 많이들 시작해.”
꼭 시작해야만 하나. 결정적으로.
“최면에 걸리면 자기도 모르게 비밀을 다 말해 버리거나 꼭두각시처럼 되는 거 아냐?”

지은은 웨이터를 불렀다. 그러곤 그가 했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말했다. 웨이터는 저편 벽에 걸린 액자를 가리켰다. 갈색 프레임의 액자 안에는 외국 공인 최면교육기관에서 취득한 최면치료사 자격증이 들어 있었다. 우측 상단에는 타원형 사진이 붙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그를 보며 웃고 있었다. 최면사는 말했다.
“최면을 그런 식으로 왜곡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스벵가리 효과’라고 부르죠. <스벵가리>라는 영화에서 최면으로 상대방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사악한 자가 등장하는 데서 유래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영화적 재미를 위해서 최면이 도구로 사용된 예일 뿐, 실제로 최면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최면과 같은 상태를 경험하니까요.”
최면사는 말을 멈추고 그를 보았다. 이런 질문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일상에서요?”
최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뭔가 고민하느라고 누가 불러도 듣지 못하거나, 영화나 책에 푹 빠져서 시간가는 줄도 모를 때 있죠? 그때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면에 걸려도 원하지 않는 일은 거부할 수 있고, 원하면 깨어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제 꼭두각시가 될 가능성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오히려 잠재의식이 활성화되어 평소보다 민감한 상태가 되지요.”
그게 정말이라면 손해 볼 것은 없었다. 그가 물었다.
“그럼 요즘 유행한다는 자각몽과 비슷하군요. 루 뭐라던데.”
“루시드 드림 말씀이시군요. 예, 비슷합니다. 본질적으로는 스스로의 무의식으로 들어가서 몰랐던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된다는 점이 같지만, 루시드 드림이 자가최면이라면 최면은 제가 도와 드리는 것이지요. 실제로 최면에 잘 걸리는 분, 최면 감수성이 높은 사람은 그렇게 흔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처음에는 도움을 받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자, 어떻습니까. 한번 해 보시겠습니까?”
최면사는 지그시 그를 바라보았다. 위험하지 않을 것 같았고 듣다 보니 호기심이 생겼다. 그는 최면을 통해서 뭘 하냐고 물었다. 최면사는 스스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풀 수 있다며 어떤 문제를 겪고 있냐고 물었고, 그는 커피를 못 마신다고 했다. 최면사가 물었다.
“왜 못 마십니까?”
“써서요."
최면사가 말했다.
“쓴게 싫으십니까?”
“고통스러우니까요.”
“고통스러운 건 다 싫으십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할 필요도 없는 고생을 할 필요가 있나요.”
최면사가 빙긋 웃었다.
“과연 그럴까요? 당신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무의식적으로 피해 왔던 것, 애써 잊거나 외면해 왔던 것과 현실과의 부조화 사이에서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어떤 것인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혹시 그 간격이 점차로 짧아지고 있는, 끔찍한 지루함이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무엇 때문인가. 그는 설마 하면서도 묘한 기대감을 가지며 최면을 걸어 달라고 했다. 최면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커피 잔을 응시하세요.”
“계속 응시하세요. 눈이 아파질 때까지.”
시간이 흘러갔다. 최면사가 말했다.
“눈이 따가워지면서 점점 감기게 됩니다. 나도 모르게 깊―은. 편안한 상태가 됩니다.”
그는 웃었다. 최면사가 말했다.
“아. 기분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편안해집니다.”
그는 여전히 킥킥거리며 웃었다. 지은은 웃음을 참으며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고 최면사는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다.
“커피를 마셔 본 적이 있나요?”
그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최면사가 말했다.
“그게 언제죠?”

주변이 어두워졌다. 칠흑 같은 어둠 가운데 작은 반점 하나가 생겼다. 반점은 그가 있는 곳으로 점점 다가오면서 커졌다. 공중에서 너울너울 날아와 그의 앞에 선 것은 커다란 너구리 인형이었다. 너구리 인형은 그를 향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놀이공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제야 그것이 무엇인지 기억이 났다. 어떻게 못 알아볼 수가 있었을까. 그것은 그가 어린 시절 아주 환상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놀이공원의 마스코트였다. 어느새 어린 시절의 기분으로 돌아가서 뭐 이렇게 귀엽고 기분 좋은 것이 있나 여기는데 너구리가 말했다.
“자, 날 따라와.”
너구리는 사람처럼 걸어가면서 피리를 불었다. 그들은 여전히 어둠 속을 걸어가고 있었지만 너구리가 연주하는 음악에 그는 하나도 외롭거나 무섭지 않았다. 음악은 희한하게도 그가 잘 아는 음악이었다.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 음악에 맞춰 어둠 속에서 하나 둘 불이 밝혀지더니 놀이기구들이 생겨났다. 어느새 그들은 기구로 가득한 공원 한복판에 서 있게 되었다. 주변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왁자지껄하게 떠들거나 기구를 탄 채 환호성을 질러대는 검은 그림자들이어서, 그들이 누구인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기구들 사이를 걸어가는데 너구리가 멈춰 서더니 말했다.
“이곳에 타.”
너구리가 가리킨 것은 커다란 커피 잔이었다. 어릴 때부터 되도록 타지 않았던 기구 중에 하나였다. 그는 커피가 싫었고, 둥글게 빙빙 돌아가는 느낌이 꼭 커피를 마시는 것 같았다. 타고 싶지 않았지만 너구리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마지못해 빈 잔에 앉자 잔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음악이 점점 빨라지면서 잔이 빙글빙글 돌았다. 무척이나 빨리 돌아 튕겨져 나가는 것처럼 느낀 순간, 그는 다른 곳에 와 있었다.
그가 너무나도 잘 아는 곳이었다. 다섯 살 때부터 살아 왔던 그의 집. 그전에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는데 제대로 기억은 나지 않았다. 그는 다섯 살 때 아버지와 처음 만났고, 크고 썰렁한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집은 무척이나 넓었고 방도 여러 개였지만 가구도 별로 없고 그나마 있는 것도 무슨 호텔에 있는 것 같았다. 새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필 또 여기야. 그는 절망적인 기분을 느끼며 캄캄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딱 하고 스위치가 켜지는 소리가 나며 부엌 가운데 놓인 식탁이 보였다.
식탁에는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등을 돌린 채였는데, 구부정하고 추레한 어깨 너머로 희고 작은 잔에서 김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는 가끔 잔을 들어 마셨는데 홀아비 냄새에 섞여 진하고 고소한 향기가 났다. 일곱 살 때 식탁에 놓여 있는 잔을 발견한 그는 음료를 한 모금 마셔 본 적이 있었다. 검은 액체는 매력적인 향과는 달리 화약처럼 쓰고 뜨거워서 혀를 태워 버릴 것만 같았다. 심장이 벌컥벌컥 뛰면서 팔다리가 감전이라도 된 듯 제멋대로 덜덜 떨리고 눈꺼풀이 경련을 일으켰다. 토사곽란까지 한 후 그는 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향조차 맡기 싫었다. 그딴 걸 뭐 하러 마시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유학생활 때였다.
 
어디선가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커피였나요?”
그는 잠시 후 대꾸했다.
“네. 에스프레소요.”
최면사가 물었다.
“맛이 어때요?”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웩웩거렸다.
“써요.”
최면사가 말했다.
“더 크게 말해 보세요. 써! 너무 써!”
“너무 써요! 아우 써! 너무너무 써!”
그는 애처럼 서럽게 엉엉 울기 시작했다. 지은이 손수건으로 그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가 눈물을 그치지 않자 최면사가 말했다.
“자, 이제 천천히 위로 올라갑니다. 점점 올라갑니다. 집이 아득하게 보이죠?”
그는 계속 울었다. 최면사가 말했다.
“더 올라갑니다. 이제 하늘 높이 올라갔습니다. 사방에 구름이 떠 있습니다. 구름으로 다가가서 한 입 먹어 보세요. 무슨 맛이죠?”
그는 우는 것을 멈추고 잔으로 다가가 커피를 마셨다.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우유 맛이에요.”

커피 잔에서 내린 그는 너구리를 따라갔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실내 풀장이었다. 주변은 새하얀 구름으로 가득 차 일렁거렸다. 구름은 우유 거품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가까이 다가갔더니 달콤한 냄새도 났다. 그는 구름을 조금 먹어 보았다. 구름은 달면서 그리운 맛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찔끔 흘렸다. 사방이 온통 둥글고 하얬다. 이 희고 포근한 세계의 모든 것이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특유의 온기로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그는 너구리와 함께 둥실둥실 떠다니며 마음껏 게으름을 부리다가 구름을 먹기도 하면서 한참을 유유자적하게 보냈다.
문득 구름이 걷히자 까마득하게 아래로 뻗은 미끄럼틀이 보였다. 연결된 알록달록한 여러 개의 미끄럼틀 아래에는, 어지러울 정도로 진한 향기와 김이 나는 거무죽죽한 물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는 점점 줄어드는 구름 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몸을 웅크렸다. 너구리가 연주를 멈추더니 말했다.
“이제 미끄럼을 탈거야.”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싫어.”
“타야만 해.”
“왜?”
너구리는 그를 빤히 보았다. 귀엽기만 하던 녀석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었다. 플라스틱으로 된 검은 눈동자는 너무도 깊어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너구리가 말했다.
“그래야 이 놀이가 끝나니까.”
“놀이…… 라니?”
자세히 보니 인형이었다. 인조 가죽은 때가 타서 꼬질꼬질했으며 모양새가 부자연스러웠다. 정체 모를 괴물이 뒤집어쓰고 있는 것처럼. 그는 뒤로 물러나며 중얼거렸다.
“가짜잖아.”
너구리가 말했다.
“너도 가짜잖아.”
“뭐?”
미끄럼틀 앞에 선 너구리는 준비운동을 했다. 돌아선 뒷모습은 대충 이어붙인 천의 솔기며 허공으로부터 이어진 피아노줄 같은 것이 보여서 으스스했다. 너구리가 엎드린 채로 몸을 던지면서 아래로 내려가자 피아노 줄이 탕 하고 튕기며 떨어져 나와 그를 향해서 날아왔다. 놀란 그는 휙 하고 줄을 피하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거무죽죽한 물 위에 떠 있는 천 쪼가리가 보였는데 너구리 아니 너구리였던 것의 잔해인 것 같았다. 피아노 줄이 날아와 그의 등을 세게 쳤다. 그는 준비도 없이 비명을 지르면서 기나긴 미끄럼틀을 타고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그때 부드러운 목소리가 말했다.
“왜 비명을 지르나요? 무서운가요?”
그는 외쳤다.
“떨어지고 있어요! 끔찍해요! 무서워요!”
최면사가 말했다.
“아래에 뭐가 있나요?”
“거무죽죽한 물이 있어요. 점점 다가오고 있어요. 곧 빠질 것 같아요! 으악!”

그는 물속에 풍덩 빠졌다. 발버둥을 치며 위로 솟아올랐지만 또다시 가라앉았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을 피하지 마세요. 마셔 버리세요.”
“싫어요! 너무 써요! 어푸어푸.”
최면사가 말했다.
“괜찮아요. 마셔 버려요. 안 마시면 당신은 익사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한 모금만 마시고 나면 금방 다 마시게 될 거에요.”

그 말에 그는 억지로 검은 물을 몇 모금 들이켰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마실수록 진저리가 쳐졌다. 바로 그가 처음으로 마셨던 커피인 에스프레소였던 것이다. 그는 버둥거리면서 비명을 질렀다. 카페 안의 사람들이 하나둘 그들 쪽을 쳐다보며 수군댔고 최면사는 끈기 있게 몇 번이나 말을 걸었으나, 그는 커피 잔에 코를 박고 도와 줘요! 살려 줘요! 하고 외칠 뿐이었다. 급기야 숨을 참고 입을 앙다물더니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갔다. 지은은 이러다 접시 물에 코 박고 죽겠다며 어서 최면을 풀어 달라고 했다. 최면사는 그녀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군.”
지은이 반문했다.
“네?”
최면사는 대답 대신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그의 귀에다 대고 말했다.
“셋을 세면 편안하게 깨어납니다. 하나, 둘, 셋!”

눈을 뜬 그는 크악! 하고 고함을 지르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몇 번이나 양변기와 세면대를 오가며 한바탕 토사곽란을 했다. 속을 비우고 나자 다리가 후들거렸으나 정신이 맑아졌다. 어지러운 와중에 세상이 또렷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속이 진정되자 그는 입을 헹구고는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는 너구리 인형이 있었다. 그는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침과 눈물과 땀으로 뒤범벅된 자신의 경직된 얼굴이 보였는데 그것은 아버지와도 비슷했다. 그는 뒷걸음질치다가 바닥에 미끄러지면서 세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와중에 거울 속에 최면사의 얼굴이 보이자 그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최면사는 전혀 놀라지 않고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띤 채로 그를 지그시 내려다 볼 뿐이었다.
환각에서 깨어난 것은 그의 비명소리에 달려온 지은의 목소리 덕분이었다. 지은은 문가에 선 채로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미안해……. 카라멜 마끼아또라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처음 마시는 사람들은 고생하기도 한대. 다시 오자고 안할게. 내가 나빴어.”
그녀의 모습이 왠지 불쌍해 보였던 그는 말했다.
“아냐.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문득 고개를 돌리자 벽의 포스터가 보였다. 기분 탓인지 포스터 속의 남녀들이 그를 향해 격려의 미소를 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림 아래의 문구가 새삼 가슴에 와 닿았다.
‘커피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거울을 본 그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매일 보는 자신의 얼굴이 익숙하면서도 왠지 달라 보였다. 예전에 지인들과 모인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언제 어른이 된 기분이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누군가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을 때라고 말한 것이 기억났다. 어른이, 된 건가. 이 나이에. 그는 입 안에 남은 쌉쌀한 맛을 삼키면서 지은에게 쓴웃음을 지었다. 배가 몹시 고팠다. 《문장웹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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