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이네 복덕방〉 아줌마는 손이 컸다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는 손이 컸다
김연경
 
 
 

 

1988년, 우리 가족은 월세 단칸방에서 방이 세 칸이나 되는 전셋집으로 이사 갔다. 우리 동네에는 〈뭉치 슈퍼〉, 〈구슬동자〉, 〈승리반점〉, 〈대포 마을〉, 〈익돌이 피아노〉 등 없는 게 없었다. 하나같이 우리 삼남매에게, 아니면 엄마 아빠에게 꼭 필요한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 골목 어귀에 있는 〈훈이네 복덕방〉은 아무리 봐도 뭘 하는 곳인지 통 알 수 없었다. 아무것도 사고팔지 않고 뭘 가르쳐 주지도 않는 이상한 가게였다. 그 집 큰아들은 이미 직장에 다녔고 작은아들도 내년에 제대하면 얼마 안 있어 졸업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다 크면 어른들은 저렇게 놀아도 되는 모양이고 〈훈이네 복덕방〉은 어른들의 놀이터라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었다.

〈훈이네 복덕방〉의 아줌마와 아저씨는 아침 9시면 2층에서 내려와 문을 열었다. 문이 닫히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았다. 날이 어둑해지고 손님들이 일어나는 시간이 곧 하루 일과를 접는 시간이었다. 그곳에는 늘 한두 명, 많으면 서너 명쯤 되는 사람들이 낡은 소파에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오구작작 수다를 떨기도 했지만 아무 말 없이 장기를 두거나 각자 신문이나 잡지를 읽기도 했다. 탁자 위에는 늘 요깃거리가 있었고 때로는 밥상이 차려져 있기도 했다.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가 손이 큰 것은 동네 사람들이 다 알았다. 때문에 아예 작당을 하고 배를 채우러 오는 사람도 있었다. 아줌마는 아주 추울 때가 아니면 미닫이 유리문을 항상 반쯤 열어 두고 손님을 기다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삼남매도 〈훈이네 복덕방〉의 손님 아닌 손님이 되었다. 아들딸이라고 하기엔 많이 어리고 손자손녀라고 하기엔 제법 큰 우리를 〈훈이네 복덕방〉은 참 예뻐해 주었다. 우리 부모가 부전시장에서 과일 도매상을 한다는 걸, 그 때문에 아이들을 방치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난 뒤에는 더 그랬다. 부전시장 갈 일이 있으면 꼭 〈성득상회〉, 즉 우리 가게에도 들러 주었다.

 

새 학년이 시작된 지 두 달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는 봄볕을 쬐며 복덕방 앞을 서성였다. 저쪽에서 낡아빠진 추리닝에 면 티셔츠를 입은 형우가 걸어오고 있었다. 가방 끈이 양쪽 모두 거의 팔꿈치까지 내려와 있었지만 바로잡을 마음도 없었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고 텅 빈 집 안으로 들어설 생각에 벌써부터 힘이 쫙쫙 빠졌다.

“형우야, 인자 오나?”

“예.”

“점심은?”

형우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큰누나는 아직 안 왔제?”

“중학생이 지금 집에 오면 쓰나? 작은누나는?”

가게 안에 있던 아저씨가 끼어들었다.

“작은누나도 6학년이라서 늦게 와요.”

“놀아도 밥은 먹고 놀아야제.”

아줌마의 손에 이끌려 형우는 〈훈이네 복덕방〉 안으로 들어갔다. 탁자 위에는 온기가 느껴지는 고등어조림이 놓여 있었다. 붉은 양념을 머금은 탓에 고등어의 푸른 빛깔이 더 선연해 보였다.

“야한테는 좀 매울라나…….”

“계란이라도 하나 부쳐 주지 그라나?”

아저씨가 신문 너머에서 한마디했다.

“아, 맞네. 형우 니 일단 먹고 있으래이.”

아줌마는 후다닥 2층으로 올라가더니 금방 노른자에 따뜻한 윤기가 흐르는 계란 프라이를 갖고 내려왔다. 형우는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걸신들린 것처럼 허겁지겁 먹어댔다. 아줌마는 형우한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한창 클 때라서 엄청 먹네, 엄청! 어여, 훈이 아빠, 우리 정훈이랑 성훈이도 저 나이 때는 이래 잘 먹었는데……. 갈라고? 여, 물 마셔라.”

아줌마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뽀얗고 고운 손으로 형우에게 물을 따라 주었다. 형우는 물 한 컵을 또 벌컥벌컥 들이켰다.

“잘 먹었습니다!”

“그래, 그래. 아가 인사성이 참 밝대이.”

꾸벅 절을 하고 나가는 형우를 보며 아줌마가 말했다. 형우는 가방을 한 손에 들고 후다닥 골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5분도 안 돼, 딱지 주머니를 든 형우가 〈훈이네 복덕방〉 앞을 쏜살같이 지나갔다.

“형우야, 니 숙제 안 하고 어딜 가노?”

아줌마가 소리쳤다.

“딱지요!”

그러곤 대답을 해주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 얼른 내빼 버렸다.

“자가 착하긴 착한데 공부를 너무 안 하는 거 같네요.”

아줌마의 말에 아저씨는 보던 신문을 내려놓았다.

“아직 어린데 착하면 됐지, 뭐. 저녁때는 두루치기 좀 해봐라.”

“왜요? 돼지 먹고 싶어요?”

“뭐 그것도 그렇고 소주 한 잔 할 일이 있을 거 같아서…….”

아저씨의 기대대로 오랜 벗들이 찾아왔다. 그날 〈훈이네 복덕방〉은 11시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다음날 아침, 그 집 앞에는 오랜만에 소주병 몇 개가 얌전히 서 있었다. 〈뭉치 슈퍼〉보다 더 신이 난 건 고물장수 할아버지였다.

 

형우가 5학년이 되고 해수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여름, 〈훈이네 복덕방〉에는 경사가 났다. 지난봄에 결혼한 작은아들이 아이를 낳은 것이었다. 손바닥만 한 동네엔 일찌감치 작은아들이 속도위반을 해서 결혼을 서둘렀다는 소문이 돌았더랬다. 하지만 〈훈이네 복덕방〉은 사람들의 쑥덕거림을 듣는 둥 마는 둥 마냥 즐거워했다. 나이 찬 아이들이 둘이 좋아 애부터 만들었는데 그게 뭐 그리 흉이냐는 투였다. 이게 또 옳은 소리여서 동네 사람들도 그들의 즐거움에 동참했다. 다만, 맞은편에 있는 〈구슬동자〉 아줌마만은 끝까지 눈을 흘겼다. 〈훈이네 복덕방〉이 날을 잡기 위해 이웃 동네에 있는 〈천상선녀〉를 찾은 탓이었다.

작은아들 내외가 갓난애를 안고 부산에 온 날, 〈훈이네 복덕방〉은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시끌벅적했다. 마침 그 옆을 지나던 형우가 호기심에 안으로 들어갔다.

“우아, 벌레 같다!”

형우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형우 니 갓난아 처음 보제? 니도 엄마 뱃속에서 나왔을 때는 딱 요렇게 생겼을 긴데.”

이 말에 형우는 인상을 팍 썼다. 얼굴이 불그죽죽하고 쭈글쭈글한 것이 영락없이 벌레였다. 벌레는 팔다리 같지도 않은 몰랑몰랑한 살덩어리를 치켜 올리는 시늉을 하고 마디도 보이지 않는 작은 손발을 희한하게 꼼지락거렸다. 형우는 이 벌레가 신기해, 오랫동안 그 옆에 붙어 있었다. 그 사이에 젊은 아줌마가 건네준 노랗고 길고 몰랑몰랑하고 부드러운 과일을 씹어 먹었다. 왜 아빠는 이런 건 사 오지 않는 걸까. 이렇게 귀한 걸 남한테 선뜻 주는 걸 보면 이 벌레의 엄마 아빠는 분명히 부자일 것이라고 형우는 생각했다.

“얘가 바나나를 처음 먹나 봐요, 어머니. 하나 더 먹을래?”

형우는 또다시 냉큼 바나나를 거머쥐며 생각했다. 부자는 예쁘고 착한데다가 서울말을 쓴다고. 〈훈이네 복덕방〉의 작은아들 내외는 다음날 오전에 서울로 올라갔다. 멸치젓, 명란젓, 깻잎과 콩잎 장아찌, 고들빼기김치 등 차 안의 트렁크로도 모자라, 많은 짐들이 차의 뒷좌석에 실렸다.

“매실즙은 배 아플 때 물에 타서 먹으래이. 그게 위에 그리 좋다 안 하나.”

“얼른 다 먹을 테니까 다음에 오면 또 주세요.”

“그래, 그래. 조심해서 가고.”

〈훈이네 복덕방〉 내외는 웃으며 아들 내외와 손녀를 배웅했다. 차가 동네에서 사라진 뒤에도 아줌마는 여전히 작고 뽀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눈에는 눈물마저 글썽였다. 아저씨가 아줌마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나지막하게 훈수를 두었다.

“암탉도 병아리가 꽁지가 나면 옆에 오지 말라고 부리질을 안 하나. 원래 자식은 나이 들면 다 저래 떠나는 기다.”

물론 아저씨도 가슴 한 구석이 쓸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큰아들도 경상남도를 떠돌며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데다가 작은아들마저 멀리 있으니 말이다.

 

식구라고는 단둘뿐이었지만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는 여전히 손이 컸다. 비 오는 날 부침개를 만들어도 온 동네 사람이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육개장을 끓여도 한 솥 가득이었다.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도 부전시장에 갖다 놓고 하루 종일 팔아도 될 만큼 잔뜩 쪘다. 두 내외의 수입과 두 아들이 주는 용돈이 모두 식비로, 그것도 남의 식비로 들어가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낙이기도 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왁자지껄 떠들면서 〈훈이네 복덕방〉 앞을 지나가는 해수와 친구들을 보자, 아줌마는 또 유혹의 손길을 뻗쳤다.

“해수야, 여 들어와서 수박 좀 먹고 가래이.”

“야들은요?”

“아이고, 딸아들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다 들어와라!”

아이들이 안으로 들어오자 아줌마는 선풍기를 그쪽으로 돌려 주었다.

“이거 너거 집에서 산 수박이니까 실껏 먹으래이. 너거 아빠가 너거 먹여 살리려고 그래 고생을 한다 아이가. 날도 이리 더운데.”

형우라면 모를까 해수는 아빠가 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하는 게 딱히 부끄럽지 않았다. 더러 2반 반장은 과일장수 딸이라고 놀리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생선이나 연탄을 파는 것보다는 과일을 파는 것이 낫다는 게 해수 생각이었다. 냉장고에서 막 꺼낸 달달한 수박이 해수의 생각에 맞장구를 쳐 주는 것 같았다.

“좀 있으면 쌍꺼풀도 만들어 준다던데.”

“해수 니, 나중에 진짜로 할 기가?”

“아이고, 야들이 지금 무슨 소리를 이리 하노? 해수 니 눈이 어떻다고?”

“아줌마, 나 못생겼죠? 언니도, 형우도 다 쌍꺼풀 있는데 나만 없어요…….”

“아이고, 야 좀 봐라, 니 얼굴이 얼마나 귀여운데.”

“사람들은 보통 안 예쁜 여자한테 귀엽다고 말해요.”

해수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 와중에도 입 안에서 맴도는 수박씨를 혀를 놀려 추려선 톡톡 뱉어냈다.

“아이고, 훈이 아빠, 야 말하는 것 좀 봐요. 이것들은 지금 자기들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니까요.”

“치이, 아줌마는 아줌마니까 그렇죠.”

진영이가 끼어들었고 다른 소녀들도 깔깔댔다. 기미로 뒤덮인 누리끼리한 얼굴에 뱃살이 두툼하게 찐 아줌마도 한 시절엔 열다섯 살 소녀였다는 걸 알기엔 다들 너무 어렸던 거다.

“아이고, 요것들아, 옛말에 말이다, 머리 좋은 여자 얼굴 예쁜 여자 못 따라가고, 얼굴 예쁜 여자 팔자 좋은 여자 못 따라간다 안 하나. 사람은 다 타고난 복으로 사는 기다.”

“그래도 예뻤으면 좋겠다!”

“흠, 지금은 얼굴이 문제가 아니고 공부를 할 때 아이가? 중학생이 이래 놀아서 쓰겠나, 어?”

아저씨가 양손에 들린 신문을 살짝 내리며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소녀들은 이때다 싶었는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 말을 남긴 채 소녀들이 떠나자 아줌마는 수박 껍질을 치웠다.

“저녁엔 콩국수 어떻노?” 아저씨가 양쪽으로 펼쳐진 신문 뒤에서 말했다.

“그거 좋겠네요, 손도 많이 가고.”

“니도 참, 손이 많이 가서 좋을 건 또 뭐 있노?”

“그게 말이에요, 요새는 시간이 남아돌아서 딱 죽겠어요.”

“그래도 조금만 해라. 인자 먹을 사람도 없는데.”

“방금 왔던 얼라들은 뭐예요? 어차피 콩만 좀 많이 갈면 되는데.”

다음날 동네 사람들은 거의 다 〈훈이네 복덕방〉의 콩국수를 먹었다. 쫄깃쫄깃한 면이야 흔하다 쳐도, 입 안에서 아작아작 씹히는 고소한 콩가루가 이렇게 많이 든 콩국수는 돈 주고 사 먹으려 해도 힘든 거였다.

 

다음 해,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됐다. 동생들도 다 한 살씩 먹었고 또 한 학년씩 올라갔다. 키도 조금씩 컸고 체중도 늘었다. 아니, 조금씩이 아니었다. 해수는 언제부터인가 나랑 키가 비슷해지더니 요 일 년 사이에 부쩍 커 버려서 누가 봐도 언니처럼 보였다. 나는 기어코 150센티조차 넘지 못한 키를 원망했고, 해수는 키가 크면서 덩달아 불어 버린 체중을 원망했다. 밤마다 ‘아이참’을 붙여도 도무지 생길 기미가 보이지 않는 쌍꺼풀을 또 원망했다. 형우는 공부에 통 취미를 붙이지 못해 밖으로만 나돌았다. 마땅히 이 때문은 아니었지만 아빠는 주기적으로 술을 마셨고 그때마다 엄마는 바가지를 긁었다. 변변찮은 가재도구가 날아다녔고 엄마가 울부짖었고 아빠가 고함을 질러댔다. 우리는 나이를 잊고 엉엉 울었다. 때문에 집안은 늘 시끄러웠다.

하지만 우리 집과 겨우 몇 발짝을 사이에 둔 〈훈이네 복덕방〉은 조용하다 못해 고즈넉했다. 그곳은 숫제 시간을 먹지 않은 공간 같았다. 수험생이 된 나에게는 특히나 더 그렇게 여겨졌다. 엄마와 아빠는 새벽별을 보며 시장에 나갔고, 나는 그 새벽별이 사라지고 해가 뜰락 말락 할 때 아직도 자고 있는 두 동생을 버려두고 학교에 갔다. 그렇게 하루 종일을 학교에서 보내고 야간 자율학습까지 마친 뒤 집에 오면 거의 자정이었다. 나와 친구들이 세낸 봉고차는 정확히 〈훈이네 복덕방〉 앞에 섰다. 그 시각이면 복덕방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래도 토요일엔 9시면 집에 오는 날도 있었다. 〈훈이네 복덕방〉이 슬슬 문 닫을 채비를 했다. 아줌마는 안쓰러운 듯 혀를 끌끌 찼다. “인자 오나? 아이고, 공부가 뭐라고, 아를 잡네 잡아…….” 내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자, 목소리를 죽여 가며 아저씨에게 속닥댔다. “이래 캄캄한데 딸아 마중도 안 나오고 진수 엄마는 잠이 오는가……. 나는 저런 딸 있으면 밖에도 못 내놨을 거 같아요.” “오죽 피곤하면 그렇겠나?” “하긴…….” 두 내외는 서글픈 눈길을 주고받으며 느릿느릿 집으로 들어갔다.

학력고사를 치기 위해 서울에 다녀왔던 그날, 나를 맞아 준 것도 〈훈이네 복덕방〉이었다. 코끝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날씨가 매서웠다.

“진수야, 야야, 시험 잘 봤나? 여 들어 와서 따뜻한 커피라도 한 잔 먹고 가래이. 엄마는? 엄마가 같이 안 갔더나?”

아줌마는 나를 안으로 들이며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복덕방 안의 훈훈한 공기 때문에 안경에 뽀얗게 서리가 끼였다. 나는 안경을 벗어 소맷자락으로 렌즈를 닦았다.

“같이 갔었는데요, 역에서 곧장 시장으로 갔어요.”

“그래, 너거 엄마가 억척이다, 억척. 몸보다도 마음이 더 피곤할 긴데. 우리 훈이 시험 볼 때도 내가 서울까지 안 갔나. 시험 보는 날은 해마다 와 이리 춥노! 택일을 영 잘 못하는 기라.”

“참, 여편네, 미신하곤. 어차피 다 끝난 거니까 진수 니도 오늘은 고마 푹 쉬래이. 진인사대천명이라고 그만큼 공부했으면 결과도 안 좋겠나.”

아저씨, 그만큼 공부 안 한 아이들이 어디 있어요!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기어 올라왔지만 커피만 꿀꺽 삼켰다. 열아홉 살의 겨울은 그런 거였다. 어차피 아직 내 것도 아닌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애가 끓었다.

이듬해, 봄이 오기 전에 나는 조그만 배낭을 짊어진 채 집을 나섰다. ‘상경’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내 짐도, 집안도 썰렁했다. 아빠는 사과를 사러 김천인지 상주인지 어디 산골에 가 있었고 엄마는 시장에서 어제 떼 온 과일을 팔고 있었다.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춘기를 겪고 있는 동생들은 일찌감치 어디론가 놀러 가 버렸다. 골목을 나와 큰길로 들어섰을 때 〈훈이네 복덕방〉의 유리문이 열렸다. 아줌마가 기다렸다는 듯 조그만 꾸러미 하나를 들고 튀어나왔다.

“오늘 가제? 어제저녁에 너거 가게에 갔었다 아이가.”

오지랖 넓고 인정 많은 아줌마는 꾸러미를 건네며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아줌마의 뽀얗고 작은 손은 마냥 따뜻했다. 하지만 정작 아줌마는 스웨터 하나만 달랑 걸친 채 잔뜩 움츠린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집 떠나는 게 애초 꿈꾸었던 것과는 달리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았던지, 나는 어젯밤부터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어색하게 고맙다는, 어서 들어가시라는 말만 하고서 얼른 몸을 돌렸다. 봄은 언제 오려는지, 바람은 차기만 했다.

통일호가 밀양을 지났을 때 꾸러미를 풀어 보았다. 삶은 계란 세 개, 종이에 곱게 싼 소금, 반짝반짝 윤이 나는 사과 하나. 말로는 싱싱한 과일을 싸게 사려고 우리 가게에 간다고 했지만, 그 역시도 같은 동네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돈벌이를 해주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음식과 술 냄새로 가득 찬 시끌벅적한 객실 안에서 나는 계란을 까서 소금에 찍어 먹었다. 세 개를 연거푸 먹고 나자 목이 메서 사과를 아작아작 씹어 먹기 시작했다. 아빠가 김천인지 상주인지 어디 산골에서 사 온 사과를.

 

내가 졸업반이 됐을 때 해수는 부산에 있는 한 사립 대학교에 입학했다. 드디어 해수의 전성시대가 시작됐다. 초등학교 친구들, 중학교 친구들, 고등학교 친구들에 덧붙여 해운대 백사장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친구들이 또 새로 생겼다. 그 사이에 해수의 주량은 웬만한 남자를 능가할 정도가 됐다. 엄마 말대로 “조상의 핏속에 술독이 들어 있다더니” 해수는 누가 김씨 집안 딸내미 아닐까 봐 수시로 음주가무를 즐겼다. 한번은 새벽 2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왔다가 아빠한테 호되게 야단을 맞기도 했다. 여름 방학 때는 〈롯데리아〉에서 아르바이트해 번 돈으로 기어코 쌍꺼풀 수술을 하고 덤으로 머리까지 갈색으로 물들였다.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아빠는 “신체발부수지부모!”를 외치며 일장 훈계를 늘어놓았고, 해수는 애써 눈물까지 짜내며 깊이 반성하는 척 했다. “아빠, 다시는 안 할게요!” 이렇게 말해서 일단 사태를 수습한 뒤, 나중에 또 제 뜻대로 하는 게 해수의 깜찍한 처세술이기도 했다. 반년 뒤 해수의 머리카락은 짙은 밤색이 되었고 집안이 또 뒤집어졌다. 하지만 이번엔 ‘발칵’이 아니라 그냥 ‘살짝’이었다. 해수의 깜찍한 말썽은 형우가 벌인 소동에 비하면 콩국수 위에 얹힌 풋풋한 오이 채 같은 것이었다.

형우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명실상부한 문제아로 거듭났다. 일단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긴 갔지만, 그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가장 편한 곳이 학교였기 때문이다. 학교를 파한 뒤에는 친구들과 함께 유흥가를 전전했다. 엄마 아빠가 새벽에 책상 위에 얹어 두는 용돈은 담뱃값, 술값으로 나갔다. 오다가다 〈훈이네 복덕방〉 내외와 마주쳐도 인사만 할뿐, 얼른 어디론가 내빼 버렸다. 이젠 밥을 준다 해도, 바나나 한 송이를 통째로 다 준다 해도 머리가 굵어진 형우를 붙잡아 둘 수 없었다.

내가 서울에서 직장을 잡았던 해, 〈훈이네 복덕방〉의 아줌마가 칠순을 맞이했다. 설 연휴를 맞아 집에 내려갔더니 해수가 아줌마한테 목도리라도 사 드리자는 말을 꺼냈다. 연일 용돈 타령을 하며 완전히 개념을 놓고 사는 것 같았던 형우도 웬일인지 5천원이라는 거금을 내놓았다. 아줌마는 목도리를 목에 둘러 보며 수줍게 웃었다.

“아이고, 코 묻은 돈으로 이런 걸 다…….”

그러면서 사람 사는 집엔 사람이 들끓어야 되는데, 요즘은 너무 조용해서 병이 날 정도라며 가볍게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사실 〈훈이네 복덕방〉의 쓸쓸함은 누구나 다 알만한 것이었다. 결혼 초에는 그래도 두세 달에 한 번씩은 부모를 찾던 자식들도 이젠 명절이나 되어야 얼굴을 봤다. 어쩌다 두 내외가 함께 거제도의 큰아들 집, 서울의 작은아들 집을 찾기도 했지만 길어야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방학이면 더러 손자손녀들이 〈훈이네 복덕방〉에 오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부산의 누추한 달동네는 따분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또 거제도라도 번화가에 사는 아이들의 눈에도 이곳은 촌구석이나 다름없었다. 〈훈이네 복덕방〉 앞의 〈뭉치 슈퍼〉는 아이들이 가장 경멸하는 곳이 되었다. 과자라곤 새우깡밖에 없고 아이스크림이라곤 돼지바가 전부였다. 도무지 고를 수 있는 즐거움이라는 게 없었다. “아저씨, 마가레트 없어요?” “에이, 아이스크림이 다 찌그러졌잖아! 아저씨, 월드콘 없어요?” 아이들은 〈뭉치 슈퍼〉 아저씨를 골려 주기 위해서라도 꼭 없는 것만 찾았다.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가 정성껏 만든 콩국수도 손자손녀들에게는 냉대를 받았다. 아이들은 차라리 해수 이모의 손을 잡고 서면 구경 가는 걸 더 좋아했다. 시끌벅적한 시내에서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를 먹으며 아이들은 또 〈뭉치 슈퍼〉를 비웃었다.

손자손녀들이 떠나면 〈훈이네 복덕방〉 내외는 한동안 허함에 시달렸다. 그 허함을 잊으려는지 아줌마는 더 열심히 음식을 만들었다. 뽀얗고 곱던 자그마한 손에 굵은 주름과 거뭇거뭇한 반점이 생기기 시작했음에도, 아줌마는 여전히 손이 컸다. 하지만 우리 앞에 내놓은 아줌마의 음식은 뭔가가 이상했다. 부침개에는 소금이 너무 많이 들어갔고, 고구마는 덜 익었고, 김치에서는 풋내가 났다. 부침개와 함께 나온 간장에는 지금껏 늘 넣어온 다진 파가 보이지 않았다.

“어떻노, 맛있나?”

“그럼요. 그런데 조금 짠 거 같아요, 헤헤.”

해수의 말에 아줌마는 기다렸다는 듯 자아비판을 시작했다.

“짜다고? 요새 내 혀가 미칬는갑다. 통 간을 못 보네.”

“아니에요, 맛있어요, 아줌마. 원래 해수가 좀 싱겁게 먹어요. 건강에 예민하거든요.”

이렇게 말하는 나도 좀처럼 부침개에는 다시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래, 건강은 젊었을 때 지켜야지. 우린 이제 늙어서…….”

“안 그래도 여 훈이 엄마가 요즘 노망났다 아이가. 잠바에다가 다리를 집어넣질 않나…….”

아저씨가 신문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전에 없던 돋보기안경이 아저씨 코 위에 걸쳐져 있었다.

“이 양반도 참, 그냥 웃자고 장난친 걸 갖고 괜히 또 이란다.”

“생로병사 두려울 거 뭐 있나, 자연의 이치지.”

아저씨는 그윽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옛날과 다를 바 없는 몸짓, 표정이었지만 어느새인가 아저씨의 머리가 하얗게 세 버렸다. 전에 없이 말수도 많아진 아저씨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직 내 발로 변소도 가고, 이래 살 집 있고, 또 이래 죽을 집도 있고……. 그래, 진수 니는 인자 돈을 번다고?”

나와 해수는 우리의 근황에 대해 좀 더 얘기한 뒤 〈훈이네 복덕방〉을 나왔다. 소금에다 밀가루 반죽을 섞어 넣은 것 같은 파전과 설익은 고구마가 우리가 그곳에서 먹은 마지막 음식이었다.

 

우리 삼남매는 밥벌이 문제를 두고서 제각기 고군분투했다. 해수는 3년 동안 학문의 상아탑 안에서 원 없이 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수학능력시험을 다시 봤다. 그렇게 덜커덩 교대에 입학했고, 뭘 잘못 먹었는지 머리에 물도 안 들이고 화장도 전혀 안 하고 4년 동안 공부만 했다. 결국 해수는 우리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서 교사가 되었다. 한편, 형우는 경찰서와 병원을 들락날락하며 부모 속을 태우다가 급기야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그러고도 한동안 코뼈와 이빨을 부러뜨리고 남의 차를 부수고 남의 오토바이를 훔쳐 타고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스물다섯을 넘기면서 그나마도 잠잠해졌다. 그렇게 간신히 철이 들었을 때 형우는 이미 환갑을 코앞에 둔 아빠의 사업을 슬슬 물려받는 중이었다. 명함도 따로 팠다. 사과와 포도 그림이 칼라로 촌스럽게 들어간 명함엔 〈성득상회 사장 김형우〉라는 이름이 들어갔다. 이건 사실 엄마와 아빠가 형우의 미래를 상상하며 가장 바라지 않았던 모습이었다. 형우는 바싹 여윈 몸을 트럭에 실은 채 연일 산지를 오갔다. 갈 때는 말짱해도 부산으로 내려올 때는 술에 절어 있었다. 그렇게 트럭 안에서 잠을 잔 뒤에는 밤새도록 과일 선별을 했다. 형우의 얼굴은 뙤약볕에 시커멓게 그을린데다가 늘 푸석푸석했다. 형우가 안쓰러웠던 엄마는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가 오면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우리는 이래 시장 바닥에서 살았어도 우리 아들만은 몸 쓰는 일 안 하고 펜대 굴리며 살았으면 싶었는데……. 그게 참 뜻대로 안 되네요.”

“아이고, 변변찮은 직장보다 장사가 훨씬 낫다. 그라고 아 착하면 됐지, 또 뭘 바라노? 이제 참한 딸아 구해서 장가만 잘 보내면 되겠구먼. 진수 엄마가 애 셋 데리고 이리로 이사 온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 봐라, 얼마나 좋노. 옛날엔 우리가 와도 이래 앉아서 노닥거릴 여가도 없었다 아이가. 진수 엄마가 그만큼 마음이 편하다는 기라. 시장도 그냥 놀기 삼아 오면 안 되나.”

〈훈이네 복덕방〉 내외는 그만 일어났다. 별로 크지 않은 토마토 상자였지만 두 노인이 들기엔 꽤나 무거워 보였다. 형우가 좀 있다가 집까지 갖다 주겠다고 해도 한사코 마다했다. 두 노인이 사라졌을 때 엄마가 형우를 보며 말했다.

“팔아 줘서 고맙긴 하지만 저 많은 걸 노인 둘이서 우째 다 묵을라노? 요새는 〈훈이네 복덕방〉도 한산하던데.”

사실이 그렇기도 했다. 〈훈이네 복덕방〉의 큰아들 내외가 부산으로 전근을 오긴 했지만 먹을 입이 크게 늘어난 것 같지는 않았다. 어느덧 중학생, 고등학생이 돼 버린 손자들은 얼굴을 보기도 힘들었다. 어쩌다 거실에 함께 있게 돼도 다들 텔레비전에 코를 박아 두었다. 친구들은 늙고 죽어서 떠나 버리고 그 많던 동네 아이들은 자라서 떠나버렸다. 〈훈이네 복덕방〉 내외는 간판에 붙은 두 글자 ‘복’과 ‘덕’을 어떻게든 나눠 주려고 고심했다. ‘복’과 ‘덕’은 무릇 음식의 양에 있다고 생각했는지 아줌마는 요즘도 음식을 하면 옛날처럼 가득이었다. 손자들한테 냉대를 받아도 꿋꿋했다. 남은 음식은 대개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노숙자나 길거리 점쟁이들 차지가 됐다. 그들을 먹이기 위해, 아니 음식을 만들 명분을 찾기 위해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는 수시로 서면 일대를 순례했다. 〈성득상회〉에서 사 온 토마토도 하나씩 끼워 넣었다. 그러는 동안 유리문을 모자이크 벽지처럼 뒤덮은 종잇장들은 빛이 바래 갔다. 아저씨가 펜으로 멋을 부려 가며 써 놓은 전세, 월세, 매매 등의 문구와 숫자도 고색창연하기만 했다.

 

건조하고 쌀쌀한 탓에 투명한 햇살이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겨울날이었다. 남자 친구는 〈부전역〉을 나오자마자 “완전히 시골이라더니 있을 거 다 있는데?”라고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전철역 근처에 닥지닥지 붙어 있던 추레한 가게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대형 마트, 유명 제과점, 유명 음식점이 들어섰다. 학창 시절 고무신 공장이 있던 자리엔 아파트 단지가 터줏대감마냥 버티고 있었다. 남루한 차림의 노동자나 노점상들 대신 말쑥한 회사원들이 거리를 채웠다. 아파트 단지 주변에는 조그만 정원도 조성되어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자 눈에 익은 파출소가 나왔다. 각종 범죄자의 몽타주나 사진이 붙어 있는 건 여전했다. 그 맞은편엔 기어코 또 다른 아파트 단지가 자리를 잡았다. 그와 함께 편의점, 사설 학원, 피트니스 클럽 등도 잔뜩 들어왔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2, 3미터 떨어진 곳의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뭉치 슈퍼〉, 〈구슬동자〉, 〈승리반점〉, 〈대포 마을〉……. 오직 〈익돌이 피아노〉만이 〈예쁘제 머리방〉으로 바뀌어 있었다. 〈익돌이 피아노〉의 주인공인 익돌이, 즉 해수의 초등학교 동창 가족이 얼마 전에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간 탓이었다.

골목 어귀, 〈훈이네 복덕방〉은 문이 닫혀 있었다. 두어 걸음을 떼자 골목 안쪽에 전에 없던 검정색 가죽 소파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소파 한쪽에 복덕방 아줌마, 아니 할머니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한 손에는 조그만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책장이 노랗게 바랜, 활자가 세로로 이어지는 오래된 책이었다.

“안녕하세요?”

하지만 나의 인사에 할머니는 묵묵부답에 무표정이었다. 주름과 백발로 덮인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눈동자가 몹시 영롱했지만, 예전과 같은 다정스러운 생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줌마, 저 진수요, 기억 안 나세요?”

할머니의 눈동자는 여전히 어딘가에 고정된 채 꿈쩍도 안 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가벼운 겨울바람에 낡은 책장이 팔랑거리자, 할머니는 책을 쥔 손에 아주 약간 힘을 주었다. 그 순간, 할머니의 눈에는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맛있는 것을 뺏기지 않으려는 어린애의 욕심 같은 것이 어리었다. 내 시선은 다시 할머니의 손으로 향했다. 뽀얗고 곱던 자그마한 두 손에 충격처럼 내려앉았던 굵은 주름과 누르스름한 반점이 이제는 어엿한 주인처럼 보였다. 저 두 손이 형우에게 점심을 차려 주고 해수와 친구들에게 수박을 잘라 주고 먼 길 떠나는 내게 계란을 삶아 주었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내 등 뒤로 나타났다. 백발도 이제 몇 가닥 남아 있지 않았다.

“어, 이게 누구고?”

할아버지가 반색을 표하자 나도 숨통이 좀 트였다. 할머니의 표정에도 미약하나마 떨림이 일었다.

“안녕하셨어요?”

“그래, 그래. 훈이 엄마한테는 인사해도 소용없다. 노망이거든, 허허, 내 여편네가 노망이 들다니, 참. 닭개장이 먹고 싶어 죽겠는데, 여편네가 이 모양이니 원. 그래, 니는 결혼 안 하나? 올해 몇 살인고?”

“서른셋요. 올봄에 이 사람이랑 결혼하려고요.”

남자 친구가 가볍게 목례를 했다.

“아이고, 인물이 훤하네. 그래, 아들딸 낳고 잘 살아야제. 요즘 세상에 위아래가 따로 있나, 어데. 언니가 못 가면 동생이라도 얼렁 가야제.”

이 말에 나는 곧장 웃음을 터뜨렸다. 아저씨한테 걸핏하면 동생보다 작은 언니라며 놀림 받던 일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성장기로 돌아갔다.

“에이, 아저씨, 제가 언니고 해수가 동생이라니까요! 키 작다고 무시하지 마세요!”

“무시는 무슨! 세상이 아무리 변했어도 시집은 언니가 먼저 가야 되는 법이다. 오빠는 요새 뭐 하노?”

“오빠요?”

이쯤 되자 나의 웃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자연스레 할아버지의 얼굴을 살피게 되었다.

“너거들 오빠가 맨날 추리닝 입고 안 다닜나. 고놈 참, 딱지 주머니를 들고 여 와서 점심 먹고 그랬는데 요새는 통 안 보이네. 그래, 니 시집은 언제 가는고?”

“지금 가려고요. 이 사람한테요.”

“아이고, 인물이 훤하네! 그래, 니라도 여 이래 있으니 안 좋나. 진수 서울 간 뒤로 너거 엄마, 아빠가 그래 허전해 하는데. 하긴 니도 언니가 없어서 심심하제? 근데 진수는 대학은 졸업했는가?”

“졸업도 하고 취직도 하고 이제는 좋은 사람 만나 시집가요…….”

나는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대문 안으로 들어설 때도 곁눈질을 하게 되었다. 이제 할아버지도 조용히 할머니 곁에 앉아 있었다. “훈이 엄마, 저어기 〈성득상회〉네는 이제 호강할 일만 남았어. 진수는 졸업을 하고 해수는 시집을 간다네. 아참, 가들 오빠 소식을 못 들었다. 글마 이름이 뭐였더라? 형우는 저어기 〈천상선녀〉네 집 손자고…….” 할아버지는 할머니 손을 꼭 잡은 채 종알종알 수다를 떨었고, 할머니는 멀뚱멀뚱 눈알을 굴렸다. 아무래도 겨울치곤 햇볕이 너무 좋은 날이었다.

 

그해 가을, 해수는 오랫동안 사귀어 온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해수의 남편도 형우처럼 말하자면 가업을 이어받은 젊은 사업가였다. 하지만 얼추 같은 동네에 있는 가게라도 〈영진선루프〉는 〈성득상회〉와 급이 달랐다. 해수의 월급은 〈영진선루프〉 사장의 수입에 비하면 고급 레스토랑 음식의 팁에 불과했다. 물론 그래도 해수는 일을 그만 두지 않았다. 다음 해에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처럼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나이가 들면 남편의 도움을 받아 어린이집을 차리는 것이 해수의 꿈이었다.

그렇게 우리 애를 태우던 형우도 서른을 좀 넘긴 뒤에 제 짝을 만나 장가를 들었다. 올케는 형우보다는 제법 어렸지만 생활력이 강하고 허영심이라곤 없는 여자였다. 하긴 안 그랬다면 시장바닥에서 막일을 하는 남자의 아내가 되진 않았을 거다. 형우 내외는 〈훈이네 복덕방〉의 작은아들처럼 결혼식 거의 직후에 아이를 낳았다. 형우처럼 커다랗고 동그란 눈에 쌍꺼풀이 깊고 애 엄마를 닮아 얼굴이 뽀얀 딸아이였다. 88년에 전세로 들어온 집을 나중에 아빠가 완전히 샀기 때문에 이 집은 형우의 집이 될 것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시장 일을 슬슬 접고 손자 보는 재미로 살았다. 아래층에 사는 형우 내외는 오래전 엄마와 아빠가 그랬듯 새벽같이 일어나 별을 보며 시장에 나가고 또 별을 보며 집에 돌아왔다. 결혼 전엔 걸핏하면 농땡이를 치던 형우도 이젠 아이까지 생긴 터라 악착같이 일에만 매달렸다. 물론, 젊은 날의 아빠처럼 주기적으로 술을 마셔 마누라 속을 발칵 뒤집어 놓았지만, 역시나 젊은 날의 아빠처럼 술을 마신 다음날에도 머리통이 깨질 것 같은 통증을 참으며 시장에 나갔다. 아옹다옹, 옥신각신하는 와중에 그들의 아이는 무럭무럭 커 갔다.

 

서른일곱 번째 생일을 맞은 해수의 눈에 〈훈이네 복덕방〉은 참 새삼스러워 보였다. 앙다문 입술처럼 굳게 닫힌 미닫이 유리문 너머로 낡은 소파, 낡은 탁자, 낡은 난로가 보였다. 난로 위의 싯누런 주전자도 군데군데가 우그러져 주글주글했다. 복덕방의 유리문 위에 붙여진 종잇장들에서는 왠지 오래 묵힌, 벌레마저 슬기 시작한 폐지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너무도 낯익어, 오히려 작년인가에 고용한 젊은 직원의 모습이 낯설어 보였다. 해수는 곧 골목 안쪽으로 발길을 꺾었다. 오늘도 낡은 검정 소파가 보였다. 어김없이 거기엔 〈훈이네 복덕방〉의 노부부가 앉아 있었다. 이제는 노부부 없는 검정 소파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해수는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노부부는 모두 말이 없었고 얼굴 표정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겉표지도, 속지도 노랗게 바래다 못해 바스라질 것만 같은 책이 오늘도 할머니의 손에 들려 있었다. 할머니 옆에 음전한 신부처럼 다소곳이 앉아 있는 할아버지는 천연산 장식품 같기도 했다.

해수가 집을 떠날 때 엄마는 늘 그렇듯 골목 앞까지 배웅을 했다. 노부부는 여전히 자연의 손이 만들어 놓은 최고의 박제처럼 소파에 앉아 있었다. 할머니의 고개가 할아버지 쪽으로 약간 기울어졌다. 할아버지의 손이 할머니의 손을 살포시 쥐고 있었다. 그렇게 소파에 앉은 채로 노부부는 죽은 듯 잠을 자고 있었다. 그들의 목엔 큰아들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명찰이 걸려 있었다.

“좀 춥지 싶은데?”

엄마의 말에 해수는 〈훈이네 복덕방〉 안으로 들어갔다. 해수가 말을 꺼내자, 아까부터 그곳을 지키던 젊은 남자는 복덕방 한쪽에 개져 있는 담요를 내밀었다.

“괜히 깨우지는 마시고요.”

“자주 저러시나 봐요?”

“저 정도면 점잖죠. 접때는 두 양반이 손잡고 초읍까지 갔다 아입니까. 공원에서 간신히 찾았어요. 요즘은 멀리 나가 봐야 저 앞 파출소지만.”

해수는 담요를 껴안은 채 〈훈이네 복덕방〉을 나왔다. 담요를 덮어 줄 때도 노부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콧구멍과 살짝 벌어진 입에서는 웅장한 합창에 붙은 조용한 후렴구처럼 낮은 숨결이 뿜어져 나왔다. 그 따뜻한 숨결에는 성별을 구별할 수 없는 늙은 몸뚱어리의 향내가 배어 있었다.

“얼렁 가자.”

해수의 손을 당기며 엄마가 말했다.

“저 양반들, 그래도 곱게 늙었제. 저라다 하나가 죽으면 다른 쪽도 금방 죽을 기라. 나랑 너거 아빠도 저래 늙으면 좋겠구만.”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엄마도 이미 ‘늙으면’이라는 가정법이 별로 어울리지 않는 나이였다. 버스나 전철을 타도 경로우대증만 보이면 됐다. 그렇기에 엄마는 누가 자기를 ‘할매’라고 부르면 하루 종일 별일 아닌 것에도 짜증을 냈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미친 놈, 누가 할매라고!”하며 투덜대기도 했다.

 

이듬해 여름, 엄마 말대로 〈훈이네 복덕방〉의 노부부는 거의 동시에 죽었다. 먼저 마지막 숨을 내쉰 건 할아버지였다. 골목 어귀 낡은 검정 소파의 한 귀퉁이를 할머니 혼자 지킨 시간은 일주일 정도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할머니는 말과 표정을 되찾는 일이 더러 있었다. 한번은 음식을 만들겠다며 하루 종일 부엌에서 부산을 떨었다. 예의 그 큰 손이 건재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무도 먹을 수 없는 미역국을 잔뜩 끓인 다음 사람들에게 나눠 주겠다고 국그릇에 하나하나 담았다. 손놀림이 서툴러 온 집 안이 미역국 천지가 됐다. 마룻바닥을 뒤덮은 미역을 닦아 내다가 며느리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그날 밤 〈훈이네 복덕방〉 2층은 초상집이나 다름없었다. 바로 그 뒤에 할머니는 목숨을 놓았다. 부산의 낮 기온이 30도를 훨씬 웃도는 후텁지근한 날이었다. 〈훈이네 복덕방〉은 청도에 있는 선산에 묻혔다. 시신은 화장을 할 것이며 유골함은 반드시 목재를 쓸 것이며 또 봉분도 만들 필요 없이 그냥 오래된 나무 밑에 묻어 달라는 것이 정신을 놓기 전 그들의 유언이었다.

지난 추석에 내가 집에 내려갔을 때 〈훈이네 복덕방〉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젊은 남자가 아예 그곳을 임대한 것이다. 그는 〈미래 공인중개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대표: 정원섭〉이라는 말까지 당당히 붙었다. 몇 발짝을 떼 놓기가 무섭게 공인중개소가 넘쳐났지만 그는 자신만만했다. 사실 우리 동네도 조만간 재개발 물살에 휩쓸리게 될 테니 영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훈이네 복덕방〉은 없어졌지만 골목 어귀의 검정 소파만은 그대로 있었다. 뜻밖에 그곳을 지키고 있는 건 엄마였다. 나도 모르게 할머니의 환영이 겹쳐지면서 소리를 질렀다.

“엄마! 뭐 할라고 거 앉아 있노?”

“니 마중 나왔다 아이가. 백서방은?”

“저 밑에 마트에 잠깐 들른다고.”

“그래, 그래. 세상 참 좋아졌제, 진수야. 서울역에서 기차 탔다고 전화한 게 언젠데 벌써 이래 왔네. 백지 차 몰고 올 필요도 없는 기라.”

“형우네는?”

“처가 갔다 아이가.”

“형우 얼굴 보기 진짜 힘드네. 희은이 엄마는 잘 지내나?”

올케의 안부를 묻자 엄마는 말이 길어졌다. 처음에는 “세상에 그만큼 똑똑한 며느리가 없다”라는 칭찬이었지만 슬슬 흉을 보기 시작했다. 입이 짧아서 마른 명태같이 빼빼 말랐다는 둥, 어른 말에 꼬박꼬박 말대꾸를 한다는 둥, 시답잖은 일에도 고집을 부린다는 둥……. 나는 맞장구를 쳐 주다가 요즘 시부모랑 같이 살아 주는 것 자체가 무조건 고마운 거라며 엄마를 타일렀다. 졸지에, 며느리 때리는 시어머니를 말리는 손위 시누이 역할을 맡자니 민망해졌다.

“소파 이거는 왜 안 치웠는고?”

“고마 이래 오가는 사람들 쉬라고 그냥 뒀겠지. 근데 진수야, 훈이네 복덕방 노인들이 저래 정신을 놓았어도, 신통방통하제, 아침이면 딱 7시 반에 일어나고 9시에 귀신같이 복덕방 문 열고 안 했나. 노상 둘이 손 꼭 붙잡고 다니고…….”

이 대목에서 엄마는 갑자기 거의 들릴 듯 말듯 목소리를 죽이며 속삭였다.

“근데 마지막엔 결국 간병인을 썼다 아이가. 저 집 며느리 그리 효부라도 나중에는 노상 얼굴을 찌푸리고 다니더만. 사실 구구절절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옆에 사람도 할 짓이 아니었던 기라. 장례식 때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더라. 나이 앞에 장사 없고 긴 병에 효자 없는 기라. 아무리 그래도 요즘 세상에 병원 안 가고 제 집에서 죽기가 쉽나, 어데?”

말을 쉬며 한숨을 내쉴 때는 눅눅한 감정이 섞여 나왔다. 행여나 자기에게 그런 일이 생겨도 병원에 갖다 버리지는 말아 달라고 애원하는 듯.

“제 집에 있어서 그런지 저 노인들 고마 자는 잠에 곱게 죽었다 아이가. 너거 아빠랑 나도 저래 죽어야 될 긴데…….”

“우리 좀 편하게 둘이 한날한시에 죽든가.”

나도 진담이었지만 엄마도 역정을 내지도 않고 진지하게 응수했다.

“그래 딱 죽으면 좀 좋겠나? 근데, 진수야, 아는 안 낳을 기가?”

큰사위 기다린다는 핑계 대고 엄마는 소파에서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나도 그냥 엄마 옆에 앉아 버렸다. 그간 비가 와도 몇 번은 왔을 텐데 누구 손을 탔는지 소파는 무척 깨끗했다.

“낳고 나면 니 때문에 내 하고 싶은 일도 못한다고 원망할 거 같은데.”

“아이고, 한 번 낳아 봐라, 그런 소리가 나오나. 아한테 더 못 해줘서 니를 원망하면 모를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낳아야제. 삼신 할매 노하면 큰일 난다. 피임하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해도 안 듣고.”

사위가 나타나자 엄마는 금방 입을 닫아 버렸다. 남편이 소파에 대해 묻자 엄마는 나한테 했던 얘기를 반복했다.

“아, 그럼, 저도 한 번…….”

남편은 그러고서 내 옆에 털썩 앉았다. 가을햇살이 따사로웠다. 적어도 마음만은 우리도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서 햇볕을 받으며 뛰노는 아이들 같았다. 집 안에서 큰딸 내외를 기다리다 지친 아빠가 급기야 골목 어귀로 나왔다. 때마침 반대쪽에선 해수 부부, 그리고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될 그들의 아들 모습도 얼핏 보였다.

“할머니, 할아버지! 승호 왔어요!”

녀석의 목소리가 어찌나 우렁찼는지, 쌀쌀맞기로 소문난 〈뭉치 슈퍼〉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까지 히죽 웃을 정도였다.  《문장웹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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