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에 묻힌 분네

홍진에 묻힌 분네
이청해
 

 

멀리에서 보면 그 아파트는 공동 주택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성 같았다. 중첩된 산의 연봉들이 새가 내려앉듯 끝나는 지점에 신기루처럼 서 있는 점이 그러했고, 타워 형으로 입체감을 주며 올라가다 꼭대기쯤에 이르러 종이학의 날개마냥 이리저리 지붕을 접은 꼴이 그러했다.

허기진 낙타 몰골의 중년여자가 아파트 앞에 나타난 것은 가을이었다.

그녀는 등산복 차림인 채로 불타는 단풍을 배경으로 지고 어정어정 걸어가서는, 여기에 왜 이런 건물이 있지? 하는 얼굴로 8층짜리 아파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각 집의 베란다며 화단에 심겨진 나무들, 놀이터에 앉아 있는 어린아이들에 유심히 눈길을 주었다. 한참 만에 도리질을 치고 그녀는 진입했던 곳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걸음을 떼 놓았다. 모퉁이를 돌아서자마자 아파트 옆구리에서 약수가 철철 솟아나고 있었다. 그녀는 또 한 번 놀라 잠시 그 자리에 말뚝처럼 서 있었다. 이윽고 물가로 다가간 그녀가 죽 늘어 놓여 있는 플라스틱 바가지들 중 주황색 바가지를 골라 약수를 꿀컥꿀컥 떠 마셨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을 때, 여자가 2톤 트럭의 조수석에 타고 다시 나타났다. 그녀의 품에는 스파니엘 종의 강아지가 한 마리 안겨 있었다. 그녀는 그 성의 702호에 소리 없이 입성했다.

얼마간은 아무 일이 없었다.

여자는 별로 외출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사람들 눈에 띄는 일도 없었다. 나날이 짙은 갈색 털로 갈아입는 강아지와 더불어 여자는 무위하게 하루하루를 흘려보냈다. 아침이면 일어나서 강아지 밥을 주고, 자신을 위해서는 커피를 타 마시고, 사과나 오이를 우적우적 씹기도 하고, 빵 조각이나 국수, 라면 같은 것으로 허술하게 끼니를 때웠다. 여자는 의식적으로 책을 읽지 않았다. 애초에 그 따위에 코를 박은 자신의 인생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토록 목을 맸건만 끝내 응답하지 않은 대학사회에 이제 분노마저 일지 않았다. 현관 구석에 쌓아 놓은, 차마 버리지 못 하고 가져온 몇 권의 전공 서적을 볼 때마다 귀가 크고 명치 밑에 점이 있는 남자의 모습이 어른거리곤 했다. 그는 오랜 동안 그녀의 연인이었었다. 적어도 십오륙 년 동안. 그러나 그는 그녀와는 달리 가까스로 응답을 받았고, 태도가 사뭇 달라졌고, 야릇하게도 책을 사 모으는 일을 죄악시하는 나이어린 여자와 결혼했다. 글씨를 가끔 읽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책이라는 물건을 돈 주고 사다가 책장에 꽂아 놓는 건 지식을 남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이 아니냐고 나이어린 여자는 순진하게 물었단다. 집에 책이 많으면 생활하는데 불편하고 이사할 때도 골칫거리 아니냐고. 그 발상이 귀엽다며 박장대소하던 그가 책 대신 옷과 화장품으로 무장한 앙큼한 매력에 푹 빠지고 만 것을 그녀는 책 속에서 떠돌아다니느라 너무 늦게 알았다. 아니,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아마 꽃다운 나이 앞에 무릎을 꿇었으리라. 그녀는 도저히 그의 새로운 사랑을 인정할 수 없었고, 갖은 짓을 다해 그를 되돌리려 했고, 자살소동까지 벌이며 그를 협박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는 더욱 냉랭해졌다. 안 되는 일은 아무리 용을 써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해가 다 진 뒤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고 창피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관 뚜껑을 닫을 때 일생 중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일을 고르라면 아마도 당시에 벌인 추태를 꼽을 것이었다. 그녀는 끌까지 다 가 봤고, 후회할 무엇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몇 달 간격으로 통째 잃은 그녀는 보따리장수를 내팽개쳤고, 마른 나무뿌리처럼 되었고, 생의가 사라졌다. 몸에 수액이 다시 돈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 지경에서, 우연히 길을 걷다가, 쇼윈도에 웅크리고 있는 강아지를 보았다. 여러 마리가 털실 뭉치처럼 뭉쳐 서로 얹고 베고 장난스럽게 자고 있었는데, 그들과 동떨어져 오직 한 마리가 이쪽 끝에서 바들바들 떨며 움직거리고 있었다.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그 순간 앙가슴에서 물방울 같은 것이 몽글몽글 솟았다. 그것이 솟고 또 솟아 내를 이루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손끝 발끝이 저리고 정신이 혼미한데도 물방울은 멈추지 않고 점점 더 솟아나 그녀의 신체 전부를 잠식했다.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이상한 정감이 그 동안 대상을 찾지 못하고 갇혀 있던 농축된 애정이요 간절한 소통의 욕구라는 것을 그녀는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다. 무의식이란 놈이 나락의 끝에서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배반할 리 없는 대상을 때맞추어 찾아낸 셈이었다. 눈도 못 뜨고 바들거리는 강아지에 눈을 준 채 그녀는 저절로 가게로 들어갔고, 사겠다는 의식도 없이 녀석을 품에 안고 집으로 왔다. 거실에 내려놓고 나서야 자기가 얼마나 큰일을 저질렀는지, 앞으로 얼마나 골치 아픈 일들이 속출할 것인지 걱정이 되었다. 그 걱정으로부터 그녀의 삶은 깨어났다. 최소한의 움직임이 매순간 그녀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녀는 느릿느릿 강아지 똥을 치우고, 아침저녁으로 밥을 주고, 녀석이 물어뜯어 놓은 신발들을 신장 위로 올렸다. 드디어 강아지를 훈련시키지 않을 수 없었고, 개 사육에 관한 책을 사러 서점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애완견 기르기』라는 책을 사 가지고 나오다 서점 계단 위에 걸린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을 하늘에서는 코발트색 물감이 뚝뚝 묻어났다. 그 짙푸름이 그녀의 몸에도 듬뿍 묻었다. 예기치 않은 자연의 방문에 거북해서 그녀는 허리를 뒤틀었다. 동작을 멈추었을 때, 오목렌즈에서처럼 세상이 보였다.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박진감 있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 너머로 가을 과실들이 향기를 풍겨 왔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시장에 들러 사과와 배와 감을 샀다. 과일을 이가 시도록 먹고 나서, 등산복을 찾아 입고 산행에 나섰다. 산은 온통 단풍으로 불타고 있었다. 중첩된 산의 연봉들이 새가 내려앉듯 내려앉은 지점에 하얀 건물이 우뚝 솟아 있었다. 세상과 동떨어져 홀로 솟은 모습이 신기루 같았고, 추리 소설에나 나옴직한 모습이었다. 저게 실물일까 환상일까 의아해 하며 여자는 첨탑 가까이로 갔다. 그 것은 놀랍게도 사람이 사는 아파트였다. 조붓하게 솟은 건물을 둘러보고 나서 여자는 이 건물이 지은 지 얼마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여기에서라면, 하고 여자는 생각했다. 여기에서라면 얼마가 될지 모르는 여생을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소리 없이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귀찮은 과정을 몇 단계 거치고 여자는 이사 왔다.

 

반듯하고 널찍한 길이 옥수수 밭 사이로 나 있었다. 여자는 날마다 거실에서 베란다를 통해 내다보이는 그 길에 눈길을 주었다. 사람들도 별로 다니지 않는데 포장이 되어 있었다. 아파트를 지으려고 건설 회사에서 기초공사한 것일까? 몇 백 명인지 모르는 주민들을 위하여 정부 당국에서 해준 것일까? 반듯하고 단아한 길이 그녀의 마음에 둥지를 틀었다.

소파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부드러운 구름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저게 이베리아 반도인가…… 짙푸른 물결 위에 이비사와 마요르카, 조금 더 큰 코르시카 섬이 떠 있고, 긴 장화와 장화 코가 나타나고, 신들의 나라와 크레타 섬이 보였다. 넙적한 주머니 같은 터키 상공에서 끈으로 잘록 졸라맨 보스포러스로 날아갈 즈음 구름들이 모양을 바꾸며 꽃송이로, 조개더미로 흩어졌다.

바람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그것이 수천 킬로미터 아래 땅에서도 물결처럼 감지되었다. 그녀는 비행기를 타고 지중해 상공을 떠돌던 환각에서 깨어났다. 자신의 몸은 거실 소파에 해삼처럼 녹아 붙어 있었다. 그녀는 머리, 등, 허리 순서로 몸을 떼어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는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쓸데없는 망상에 질식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아직도 온몸이 구름 파편들 사이로 너울너울 흘러가는 것 같았다. 지중해는 흩어져 버렸고, 아쉬움이 여운으로 남았다. 이 아쉬움의 정체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과 지중해라는 지명이 동시에 의식으로 들어오면서 씁쓸해졌다. 우울함이 빠른 속도로 그녀를 휩쌌다.

거울 앞으로 버적버적 걸어가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흘러가는 구름 따위를 보며 지중해를 연상하다니, 나약한 마음을 짓이겨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 마음이 틈만 나면 자신을 잠식했고, 그것이 사실은 그녀 자신이었다.

지중해.

그녀는 그곳에 가 본 적이 없었다.

신혼여행을 가리라고 둘이서 약속했던 이비사 섬. 모처럼 유럽에 갔을 때도 일부러 가지 않고 아껴 두었던 곳이었다.

그녀는 옷을 입었다.

옥수수 밭 사이 길로 나갔다. 또 하나의 자기가 거실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어깨를 젖히고 똑바로 걸었다. 초록 대열이 꾸물꾸물 다가왔다. 그녀는 길옆으로 비켜섰다. 얼굴에 흙칠을 한 군인들이었다. 철모에 나뭇가지를 꽂고 완전무장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옥수수 밭을 지나 건너편 산길로 꿈틀꿈틀 올라갔다. 마지막 병사가 나무들 사이로 완전히 모습을 감출 때까지 그녀는 멈추어 서서 바라보았다. 그들의 행렬이 보이지 않게 산을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한참만에야 그녀는 아, 아하, 저기에 부대가 있었군, 하고 깨달았다. 산의 정수리에 매일 밤 굵은 불빛들이 몇 개 켜졌었고, 열두 시쯤 그 불이 꺼졌었다. 거기에 병사들이 있었다는 깨달음은 망망대해에서 배를 만난 것만큼 반가웠다. 내 반경 몇 킬로미터 지점에 집을 떠난 병사들이 식구들을 그리워하며 고된 잠을 잔다는 사실이 어쩐지 위안이 되었다. 여자는 한참 동안 병사들의 산등성이를 바라보았다.

아랫동네로 향했다.

한적한 들판을 십오 분가량 내려가자 철물점이 나타났다. 라면 봉투에 못을 싸 주던 집이었다. 이사 온 다음날 못을 사러 갔었는데, 그 집 딸인 듯한 아가씨가 모아 둔 라면 봉투 중 하나를 꺼내 그 안 은박지 부분에 못을 넣어 접어주었었다. 라면 봉투를 이렇게도 이용하네, 참 알맞은 이용이야, 못이 녹슬지도 않고 좋겠어, 그러면서도 웃음이 나서 입을 틀어막고 철물점을 나왔었다. 라면 봉투에 못이라니, 원.

방앗간과 문방구와 푸줏간이 띄엄띄엄 지나갔다. 노란 햇빛이 길에 머물러 있었고, 조용했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여자는 길 끝까지 갔다. 거기엔 허름한 슈퍼마켓이 가로막고 있었다. 지갑을 가지고 나오지 않은 것을 뒤늦게 알았지만 그냥 들어가서 둘러볼 참이었다. 이사 온 뒤 몇 번 들러서 생필품을 샀던 곳이었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셔터 문이 닫혀 있었다. 셔터 가운데에 종이쪽지가 붙어 펄럭였다. 여자는 다가가서 읽어 보았다.

‘저희는 4월 28일부로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용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선의가 느껴졌다. 그동안 이용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서너 번밖에 이용 안 했지만 자신도 고맙다는 인사의 대상이 되는 것 같아 숙연해졌다. 쩌르르 가슴에서 물기가 솟으려고 했다. 4월 28일이라면 그저께였다. 그저께 문을 닫았구나…… 허전했고, 아쉬웠다. 이건 폐업했다는 얘기였고, 안 해도 좋을 인사였다. 대개 이런 인사는 영업소를 이전할 때, 그 옮겨가는 장소를 알리기 위해 씌어지기 마련이었다. 옮겨 간 그곳으로 와서 또 물건을 사 달라는 잠정적인 부탁 없이 순수하게 고맙다고 하는 인사는 처음 보았다. 여자는 단어들 사이에서 더 하고 싶은 말, 여의치 않음, 회한, 쓸쓸함 등등을 느꼈다. 지하의 슈퍼마켓 안을 떠올려보았다. 음습했었고, 좁고 길었고, 영업이 잘 안 된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건어물은 오래되어 누렇게 절었고, 야채와 과일은 시들시들 말라 가고 있었다. 싱싱함을 잃은 물건들을 애써 매일 다시 진열하던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평이한 인사말처럼 묵묵하고 수굿한 남자였다. 아마도 열심히 일했겠지만 필경 이 장사에서 망한 것이리라. 실패……. 오후의 햇살을 밟고 돌아오며 여자는 실패자의 얼굴을 되새겨보았다.

 

‘오늘 저녁 정각 여덟 시에 401호에서 반상회가 있습니다. 한 집도 빠짐없이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 번이나 거듭 방송이 있은 뒤 그것도 모자라 경비에게서 인터폰이 왔다. 반상회에 참석할 거냐는 확인 통화였다.

참석하겠다고 여자는 책임 없이 대답했다.

대답할 당시에는 물론 갈 생각이 아니었다. 안 가겠다고 하면 얘기가 길어지고, 권유와 참석해야만 하는 이유 같은 것들이 지루하게 들먹여지는 게 싫어서였다.

강아지 밥을 주고 티브이를 틀었다. 모든 프로가 재미없었다. 권태란 놈이 가슴으로 파고들어왔다. 반상회에나 가 볼까? 간지럽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산 위의 병사들과 슈퍼마켓을 폐업해 버린 남자의 모습이 은은하게 그녀의 가슴을 데웠다.

이 동네도 다 사람 사는 동네야.

아파트의 입주자들은 죽을 때까지 자신과 상관없을 것 같았었다. 그러나 한편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일까? 그녀 자신이야 그러저러해서 이곳을 찾아왔지만 애초 이곳에 둥지를 튼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어떤 일들을 하고 살며, 어떤 형편에 처해 있을까?

아파트의 왼쪽은 큰 산의 자락이었다. 산 속에서 버섯을 따거나 약초를 캐는 사람들이 여기에 살 것 같지는 않았다. 아파트의 오른쪽과 앞쪽은 황토 흙이 벌건 들녘이었다. 비닐이 하얗게 덮인 밭에서 농작물이 자라고 있었지만 아파트의 주민 대부분은 농사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주변 경관에 아랑곳없이 아파트가 우뚝 솟아있는 점이 처음부터 이상했었다. 그녀로서는 그 조건이 마음에 들어 찾아온 터이므로 다른 건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택시로 십여 분 거리에 은산 읍이 있었지만 대중교통이 불편하고 걸어가기에는 꽤나 멀었다. 은산 읍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 아파트에 입주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은산 읍에도 아파트가 많으니까. 여자는 불현듯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개인사에 관심이 갔다.

정각 여덟 시에 401호에서 반상회가 있겠다는 방송이 다시 두 번 되풀이해서 흘러나왔다.

여자는 겉옷을 걸쳤다. 강아지는 가물가물 제 방석 위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이사 온 이래 화장을 해본 적이 없었으므로 맨얼굴로 현관을 나섰다.

4층으로 내려가 보니 401호의 문이 빠끔히 열려 있었다.

여자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순간 등줄기가 뻣뻣해지며 가슴이 졸아들었다. 일종의 위압감이었다. 현관에서 마주 보이는 벽에 어마어마한, 그런 느낌이 드는! 장식장이 버티고 있었다. 십여 명의 얼굴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여자는 목례를 하고 거실 구석에 가 앉았다.

“저, 이사 오신 분?”

생쥐 같이 생긴 여자가 물었다.

“네.”

“몇 호에?”

“702호요. 지난 달 말에 이사 왔어요.”

“아, 그랬구나!”

여자들의 시선이 물러갔다. 여자는 집 안을 훑어보았다. 장식장뿐만 아니라 거실 한 벽을 완전히 채우고 있는 소파도 장식장과 마찬가지로 어마어마한 느낌을 주었다. 어마어마하다고 느낀 것은 그것들이 내뿜고 있는 요란함 때문이었다. 장식장과 소파의 테두리를 장식하고 있는 조각의 현란함, 대형 규모, 진갈색 칠의 광채, 녹록치 않은 질감 같은 것들이 그것을 선택한 이의 천박함에도 불구하고 무시할 수 없는 위세를 풍겨 왔다. 이 집에 들어오는 사람은 입을 다물라는 선언 같았다.

여자는 자신이 이들을, 이들의 생활을 은연중 얕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촌구석에! 하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스며 있었다. 그래서 짐짓 여유까지도 있었고, 반상회에 와 보자는 생각도 했음이 분명했다.

여자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좌중을 훑어보았다.

이들의 여유는 땅에서 비롯된 것임이 곧 감지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읍내 남쪽의 농경지 주인들이었는데, 거기에 공장이 들어서면서 대대적인 보상을 받은 모양이었고, 이 아파트도 보상의 일환으로 지어져 분양된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공원 묘원을 하거나 주말 농장 등을 경영하면서 땅으로 조상 덕을 톡톡히 보는 사람들이었다.

첫 번째 안건은 불우이웃 돕기였다.

이상한 것은 ‘불우이웃 돕기’라는 것이 무슨 병역 의무 비슷한 것으로, 절대 이의를 달아서는 안 되는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땅으로 경제적 여유를 얻었으니 남을 돕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거기에는 잔소리 말라는 강요와, 훈장을 타고 싶은 집행자의 야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 중심축은 물론 생쥐였다. 반원 전부가 그녀의 입김에 감히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돈을 걷어서 어디다 쓰는데요?”

여자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트집 잡는 듯한 말투를 숨기느라 딸기를 한 점 집어 먹었다.

“불우이웃을 돕지요. 어디다 쓰다니요?”

기가 막히다는 듯이 생쥐가 기분 나쁘게 웃었다.

“어떤 불우이웃이요?”

“불우이웃이 불우이웃이지 어떤 불우이웃이 어디 있어요? 우리보다 불쌍한 사람들요.”

“요번 돈을 걷어서 어디다 쓰느냐구요?”

“요번이요? 그러니까…….”

생쥐는 말이 막히는지 한참 생각하다 상 위의 공책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러니까…… 지난번에 알뜰시장 개최해서 번 돈하고 합쳐서…… 그게 뭐더라, 그래, 맞아요. 급식아동 도울 차례예요.”

“번번이 다른 대상을 돕나요? 누구를 도울 건지 정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매번 돈을 먼저 걷나요?”

“급식아동이라니까요! 저 아래 학교요!”

생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여자는 입을 다물었다. 모든 반원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불우이웃 돕기에 대해서 따지다니, 하는 얼굴들이었다.

“근데요, 그 알뜰시장이요. 좀 조용히 하라고 하면 안 될까요? 너무 시끄러워서 아기가 자꾸 잠을 깨요.”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은 새댁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 사람들도 물건 팔아야 하니까 이거 저거 사라고 좀 소리 지르겠지요. 그렇지만 우린 하나라도 더 그런 사람들을 불러들여 수입을 올려야 하잖아요. 한 점포당 서비스방송 해주고 하루 7만 원씩 받는데 그게 어디에요? 그냥 거저 생기는 건데. 가만히 앉아서. 아, 땅을 죙일 파 봐요. 돈 한 푼이 생기나. 돈을 자꾸 모아야 불우이웃을 돕지. 부녀회에서 다 통과된 거라구요.”

알뜰시장을 아파트 마당에 유치해 자릿세를 받는 것까지는 이해가 갔다. 생쥐 말마따나 가만히 앉아서 거저 수입이 생기는 거니까. 그리고 그 대단한 불우이웃돕기를 해야 하니까. 그렇지만 그걸 유치함으로 해서 갓난아기가 시끄러워 자꾸 깬다지 않는가. 그렇다면 주민들에게 주는 피해와 자릿세의 이득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또 아파트에 들어와 물건을 파는 상인들은 결국 아파트 주민들에게 물건을 팔수밖에 없을 것이고, 물건 값에는 자릿세가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중보다 비싼 물건을 눈앞에 들이대 충동적으로 과소비하도록 유도하는 건데, 그게 주민들에게 이로운 일인가.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것이 아무리 좋은 덕목이라 해도 여긴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결성된 단체가 아니라 아파트 주민들이 안락하게 살아야 할 생활 터전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가만히 있었다. 아직은 사정을 자세히 모르니까, 중뿔나게 나설 처지가 아니었다. 가슴속에서 피가 넘실대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어제와 달라진 변화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녀는 남의 삶에 관심이 없었다. 자신의 삶도 포기한 처지였다. 그러나 부당한 것, 맹목적인 강요 앞에서 그것을 뒤집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일었다. 철벽을 뚫었을 때의 쾌감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근질거렸다.

“그리고 개 말인데요. 이번 달부터 벌금 받읍시다. 이미 공고했으니까요.”

여자는 귀를 세웠다.

“5만 원씩 받는 거요. 그러니까 몇 집이더라?”

“101호하고 502호하고 두 집이에요. 오늘 두 집 다 참석 안 했네.”

“그 집들이 늘 참석을 안 해.”

“반상회 참석 안 한 벌금하고 같이 받아 버려요.”

반상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얼마인지 벌금이 있는 모양이었고, 개를 키우면 한 달에 5만 원씩 벌금을 내는 모양이었다.

“잘 받을 수 있을까요?”

자신 없는 목소리가 물었다.

“무조건 받아요! 아파트에서 무슨 개를 키워?”

“거 받아씁시다! 우린 돈이 많이 필요해요. 여름에 경비 보너스도 줘야 하고 부녀회 수입도 계속 올려야 하고. 5만 원은 너무 적어요. 7만 원으로 올리든가 아예 10만 원으로 하든가.”

여자는 어이가 없다 못해 화가 났다. 경비 보너스 같은 경상비를 주민의 벌금으로 충당하려 하다니? 부녀회 수입을 올리기 위해 벌금을 받아내겠다는 발상이 놀라워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러나 이의를 제기할 단계가 아니었다. 모두들 합세해서 아파트에서 개 키우는 행위에 대해 성토하고 있었고,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마땅히 주택으로 이사 가야 한다고 한 입으로 몰아붙이고 있었으니까. 개에 대해, 아니 개 키우는 사람에 대해 거의 증오 수준의 감정을 지니고들 있었다. 이건 놀라운 발견이었다. 어찌나 침을 튀기며 목소리들을 높이는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떠드는 축은 고작 서너 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그저 듣고만 있었다. 떠드는 이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개란 놈은 짐승이고 더럽고 시끄럽게 짖고 냄새가 나며 수시로 똥오줌을 싸고 털을 풀풀 날리는 비위생적 존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집 안에서 사람과 함께 살 수 없으며 더구나 아파트에서는 절대 불가하다는 것. 그들은 나이 든 오륙십 대의 아주머니들이었는데, 어떤 형태로든 개에게 원한이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알고 있는 개는 옛날 농촌에서 집 지키라고 매 놓았다가 복날 잡아먹는 개였다. 그들이 본 것은 평생 목줄에 묶여 앉은자리에서 똥 싸고 오줌 싸다가 어느 날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는 고기용 개였다. 애완용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들에게는 없었다.

“개한테 물리신 적 있지요?”

여자는 느닷없이 물었다.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생쥐를 지목해 쳐다보았다. 떠들던 축들은 물론 참석한 이들 모두가 여자를 바라보았다.

“개를 그렇게 싫어하시니 말예요. 저는 개를 키웁니다. 그리고 지금 얘기를 들었는데요,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개에 대한 상식은 모두 고정관념이고 잘못된 선입견입니다. 요즘 집 안에서 키우는 개는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저는 벌금 못 냅니다.”

“못 내다니, 우리가 다수결로 정했는데?”

“그 다수결 저 없을 때 하신 거잖아요. 저는 못 냅니다.”

여자는 일어섰다. 이렇게 선언하고 가지 않으면 나중에 곤란해질지도 몰랐다. 당신이 있는 자리에서 의결했지 않느냐고 족쇄를 채우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대체 몇 살이에요?”

굵은 목소리가 갈고리를 걸었다.

“못 밝힐 것도 없지요. 저는 마흔 둘입니다.”

여자는 떳떳이 고개를 들었다. 먹을 만큼 먹었다는, 나를 애로 보았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세상을 향한, 오랜만의 대항이었다.

그녀가 차분한 동작으로 신발을 신고 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 좌중은 조용했다. 그러나 현관문이 스르르 닫힐 즈음 험악한 분위기가 쫓아 나와 등짝을 덮쳤다.

“저거 고등학교나 나왔겠어? 다수결이 뭔지도 모르니.”

“여기가 어딘데 공식석상에서 함부로 대들어? 교양 없이.”

“싸가지 없는 것 같으니라구. 마흔둘밖에 안 처먹은 게 백여덟 살은 되어 보이잖아?”

그 다음은 웃음바다였다. 여자는 걸음을 떼 놓았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천천히 걸어 올라가 702호의 현관문을 지긋이 땄다. 쇠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를 울림까지 다 듣고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괴괴했다.

그녀는 거울 앞에 섰다.

초췌한 얼굴에 퀭한 눈, 움푹한 볼, 생기 없는 피부…… 할머니처럼 앞으로 수그러진 자세…… 거울 속의 자신은 정말 나이 들어 보였다. 스스로 보아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사십대 말이라고 해도, 오십대라고 해도 믿을 판이었다. 잠시 잠깐 삶의 끈을 놓아 버린 결과일까……. 그녀는 눈을 크게 치뜨고 입을 미키마우스처럼 벌려 생긋 웃어 보았다. 역시 마흔 둘이었고, 아니 마흔 둘보다 젊었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티가 표정이며 동작에 살아 있었다. 이런 나를 백여덟 살이라고? 악담도 유분수지! 분한 마음이 뒤늦게 솟구쳤다. 철벽을 뚫고 싶은 심사에 분한 감정까지 겹쳐 심장이 화끈거렸다. 더운 기운이 손끝 발끝으로 퍼져 나갔다. 온몸에 화색이 돌았다. 오징어를 이송할 때 천적을 한 마리 넣는다고 했던가. 그러면 스트레스 때문에 한 마리도 죽지 않고 목적지까지 간다고 했지. 반목과 대치, 그것이 생물의 생존 조건인지도 몰랐다.

여자는 거울에서 물러나 부엌으로 갔다. 착실하게 식사 준비를 했다. 그들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 그들은 다수고, 강자고, 어쨌든 권한을 쥐고 있으니까.

여자는 인터폰을 들어 아까 설핏 들었던 101호와 502호와의 통화를 시도했다. 개를 키운다던 집들이었다. 그녀는 결국 개를 키우는 집들끼리의 협동 라인을 만들었다. 그녀는 오늘 반상회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전하고, 그동안의 정보를 전해 듣고, 개 키우는 사람의 입장을 정리해 피력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작전을 시사했다. 101호 여자는 적극적으로 투쟁을 약속했지만 502호 여자는 한 발 뒤로 물러나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유는 자기네 개가 자기들이 없는 사이 너무 짖어 사람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었으므로 액수만 좀 낮춰주면 차라리 벌금을 내고 실컷 짖게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502호 당신의 자유지만 우리가 투쟁할 동안 보조를 맞추는 척 해주어야 벌금액이 낮아질 수 있을 거라고 얘기했다.

502호의 어중간한 입장이 마음에 걸렸다. 502호가 일단 벌금을 내면 그 경우가 선례가 되어 걸림돌이 될 터였다. 그러나 뭐 별수 없는 일이었다. 101호하고 두 집만이라도, 아니 혼자서라도 이 전쟁에서 싸워 이겨야 했다.

여자는 늦은 저녁상을 차렸다. 새로 지은 밥을 푸고, 찌개와 김치, 나물, 생선구이를 올려 제대로 된 밥상을 자기 자신한테 진상했다. 실로 몇 달 만의 일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십여 년 만의 일이었다. 그동안 학위를 하느라, 보따리장수를 하느라 늘 바쁘고 여유 없어서 밥상의 격식 같은 것은 내팽개쳐버리고 간편하고 값싼 인스턴트로 자신을 대접했었다. 이제 적과의 대치 상태에 들어갔으니 잘 먹어야 했다. 어쩐지 이 싸움은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한 부모와의, 인정사정없는 대학들과의, 방자한 학생들과의, 떠올리기도 싫은 옛 남자와의 싸움과는 달라서 여기서는 그녀도 악을 써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상대를 거꾸러트렸을 때의 쾌감이 온몸을 흥분시켰다. 신이 존재하는데 설마 모든 싸움에서 지게 할 리는 없었다. 저쪽은 다수지만 나는 교육 수준이 높지 않느냐는 자만이 고개를 들었다. 제대로 싸움을 벌여 백여덟 살이라고 악담을 퍼부은 마귀할멈들에게 앙갚음하고 싶었다.

설거지를 끝내고 컴퓨터를 켰다. 그녀는 정보의 바다를 헤엄쳐 다녔다. 컴퓨터 안에서라면 노딩들보다 그녀가 월등 우세했다. 세상의 지혜는 지금 다 이 안에 있는 것이다. 비슷한 갈등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와 있었다. 여자는 개를 키우는 사람들과 소통하느라 날이 밝는 줄 몰랐다.

 

급습이로구나!

문을 열자 그런 느낌이 확 끼쳤다.

반상회에서 돌아온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나 빨리, 이런 형태로 쳐들어올 줄은 몰랐다.

다섯 명의 여자들이 여자네 집 현관문을 빙 둘러싸고 살벌한 기세로 포진해 서 있었다. 한 판 하러 온 것임이 분명했다. 차갑고 냉랭한 눈빛, 악다문 입매, 말뚝 같은 자세들…… 선전포고였다. 여자는 솔직히 겁이 났다. 그러나 물러설 수도 없었다.

“무슨 일이세요?”

평상의 어조로 물었다.

“아빠 있으세요?”

생쥐가 안에 남편이 있느냐고 턱짓으로 조용히 물었다.

“네.”

순간적으로 여자는 그렇게 방어했다. 5대 1의 대치 상황에서 남편이 없다는, 결혼하지 않았다는, 혼자 살고 있으며 지금 집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없었다.

“그럼 얘기 좀 하게 잠깐 이리 나와 봐요.”

나이 든 아주머니들이라 남편이 있는 데서는 다투기가 꺼려지는 모양이었다.

“그냥 말씀하세요. 여기서요.”

여자는 발치에서 맴도는 강아지를 들어 품에 안고 한 손으로는 현관문을 단단히 잡았다. 두 다리도 알맞게 벌려 안정감을 확보했다.

“우리 아파트에서는 개를 안 키우도록 돼 있어요. 그러니까 개를 꼭 키우려면 주택으로 이사 가야 해요.”

“이사가 장난이에요? 작은 사정이 있다고 해서 금방 이사 갈 수 있어요? 제가 이 아파트를 얻어 올 때 어떤 안내문이나 서류에도 개를 키울 수 없다는 단서가 없었어요. 부동산에서도 그런 얘기 하지 않았구요. 그런데 이제 와서 개를 키우지 말라니, 그럼 키우던 개를 갖다 버려요?”

“그건 댁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 우린 다수결로 정했어. 다수결로 말야.”

“다수결이면 다인가요? 다수결이면 살인을 해도 돼요?”

‘살인’이라는 뜻하지 않은 단어에 그들은 놀라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난감함이 그들의 얼굴로 옮아 다녔다. ‘다수결’이라는 말은 이 민주 국가에서 남을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최고의 무기였다. 그런데 그 말이 ‘살인’이라는 흉측스런 단어를 만나자 피식 바람이 빠져버렸다. 그러나 모두들 그 매력적이고 완전무결하고 절대적인 힘을 가진 단어를 놓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럼 벌금을 내. 다수결로 정했으니까.”

“아, 참! 다수결이 성립되려면 저도 그 투표에 참석했어야죠. 주민 전부가 참석해서 개를 키우면 벌금을 낸다는 사안에 전부 찬성했어야죠. 이런 건 과정이 문제잖아요. 주민 백 프로가 참석해서 백 프로 모두가 동의해야 효력이 생기는 거라구요. 제가 이사 오기 전이었다 하더라도 개 키우는 사람들은 벌금 내는 데 찬성하지 않았을 거 아녜요? 그러니까 무효지요. 더구나 제가 이사 오기 전 일인데요. 지금 이사 온 저는 적용 받지 않는 거지요. 당신들이 어디에도 명시해 놓지 않았으니까.”

“그 사람들은 반상회에도 안 나오는데 뭐.”

“분위기가 이 지경인데 어떻게 나오겠어요?”

“우리가 직접 선거는 하지 않았잖아. 그냥 부녀회에서 정했지.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어쨌든 정한 거잖아. 그게 다수결이지.”

“부녀회에서 정했든 반상회에서 정했든 결과적으로 개 키우지 않는 사람들끼리 모여 개 키우는 사람들한테 벌금을 물리자고 의결한 거잖아요. 그건 말도 안 되지요. 예를 들어서요, 피아노를 치지 않는 집들끼리 모여 피아노 치는 집들한테 벌금을 물리는 거나 똑같잖아요. 아이들이 없는 가정들끼리 모여 아이들이 있는 가정한테 벌금을 물리는 거나요.”

“어디 애들하고 개를 비교해?”

“남에게는 똑같죠.”

“저런! 저런!”

부엉이처럼 생긴 아주머니가 주먹으로 마구 여자를 쥐어박는 시늉을 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아이들을 개와 동급으로 비교하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거 보세요. 난 동 대표인데, 듣자 듣자하니 딱하기 그지없네. 공동 주택에서는 개를 못 키우는 걸 어찌 모른단 말이에요?”

지금까지는 입을 다물고 있던, 비교적 점잖은 아주머니였다. ‘공동 주택’이라는 문자를 쓰는 걸 보면 가방 끈이 조금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간단치가 않지요. 전국민의 육십 프로가 아파트에 사는데요. 그 사람들 모두가 아무것도 못 하나요? 남에게 피해를 주느냐 안 주느냐를 따져야지 개 키우는 것 자체를 문제 삼으면 안 되잖아요.”

“건교부에서도 키우지 못하도록 공문을 내려 보냈어!”

‘건교부’, 즉 ‘건설교통부’에다 ‘공문’이라는 말까지 튀어나왔다. 이건 가방 끈 차원이 아니라 관공 분위기였다. 통장을 했는지 공무원 가족을 두었는지 관공에 익숙한 인물인 것 같았다. 여자는 쓱 칼을 들이밀었다.

“아, 그 공문, 제가 정확히 알아요. 공문이 아니라 시안이지요. 말하자면 법령이요. ‘공동 주택 관리령’이라는 거요. 제5조 3항 중 네 번째 ‘가축을 사육함으로써 공동 주거 생활에 피해를 미치는 행위’라는 대목 말이지요? 거기서는 ‘공동생활에 피해를 미치는 행위’가 주요 관건인데, 무식한 놈들이 ‘가축을 사육함으로써’라는 수식어만 따로 떼내 제멋대로 해석해서 문제 삼는 거요. 그것 때문에 건교부에서도 뒤에 해명안을 붙여 놓았어요. 그런 뜻이 아니라구요. 잘 읽어 보셨으면 아실 텐데요.”

“무식한 놈들이라구?”

동 대표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가축을 사육함으로써’라는 수식어를 임의로 해석한 장본인인 것 같았다.

“법 박사 나왔다!”

“우리가 우리 아파트에서 다수결로 정했다는데도!”

“그건 ‘규약’인데요, 상위법인 ‘공동 주택 관리령’에 근거가 없으므로 효력이 없어요. 원래 서면결의를 하도록 돼 있기도 하구요. 그렇게 하시지 않았잖아요? 독일 같은 곳에선 아예 건물을 지을 당시 인허가 단계에서 개를 키울 수 없다든지 아이들이 있는 사람은 입주할 수 없다든지 부대조건을 명시하고 그것이 전국의 모든 부동산 정보에 상세히 실려 있어요. 이름표처럼이요. 그걸 보고 사람들은 자기가 살 공동 주택을 선택하는 거지요. 개를 못 키우는 공동 주택보다 아이들을 못 키우는 공동 주택이 더 많아요.”

“아이들을 못 키우는 데가 더 많대!”

아주머니들이 서로 쳐다보며 말도 안 된다는 듯 웃었다.

“꼭 벌금을 받고 싶으시면 아파트 이마에라도 써 놓으셨어야죠. 모든 부동산에도 알려 놓았어야 하구요. 등기부등본에도 써 놓았어야 하지 않나요?”

“등기부등본에 그걸 어떻게 써?”

“그럼 이 아파트에 이사 오는 사람들이 개 못 키우는 걸 어떻게 알아요?”

“지금 우리가 이렇게 알리잖아!”

“제가 또 이렇게 부당하다고 맞서잖아요? 서로 충돌했을 때는요, 규약에서 해결이 안 되면 조례로 가는 거고, 조례에서도 해결이 안 되면 법령으로 가는 거고, 법에서도 안 되면 결국 가장 상위법인 헌법으로 가는 건데요. 헌법이야말로 모든 법을 다스리는 가장 강한 법이잖아요. 거기에 ‘개인의 행복추구권’이란 게 있어요. 저는 이 집 현관문 닫고 제 집 안에서 무엇이든 할 권리와 자유가 있어요. 구렁이를 키우든 앵무새를 키우든 제 마음이라구요. 단지 현관문 밖으로 나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면요. 제게 벌금을 기필코 받으시려면 우리 개가 당신들을 물었다든지, 그런데도 제가 치료도 안 해주고 못 본 체한다든지, 우리 개가 석 달 열흘을 쉬지 않고 짖어 누가 정신병에 걸려 의사가 그 병의 원인이 우리 개 때문이라고 진단한다든지, 우리 개가 복도며 마당에 똥오줌을 마구 싸고 제가 치우지를 않아 악취와 벌레로 이웃들이 불쾌해서 살 수 없다든지 하는 걸 증명하세요.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 여러 번으로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요. 그래야만 문제 삼을 수 있을 걸요.”

“세상에나, 말이 청산유수네.”

“말로는 이길 자가 없겠어.”

“네, 전 말 잘해요. 말로 벌어먹고 살았으니까요. 그래요, 말 나온 김에 말해 보지요. 솔직히 이웃이란 게 뭐예요? 저는 처음 이사 왔다고 기대를 걸고 반상회에 갔는데 보자마자 벌금을 내라고 호통이었잖아요? 그것도 모자라 이렇게 떼로 돈을 받으러 오고. 세상에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요. 이웃이 개를 키우든 피아노를 치든 또 노모를 모시든 그 프라이버시를 인정해 줘야 하는 게 아닌가요? 약간의 피해가 있더라도 이웃이니까 참아 줘야 하는 게 아닐까요? 윗집의 학생이 피아노과에 입학하기 위해 얼마간 피아노 소리가 난다고 해서 당장 고발을 하거나 벌금을 물리나요? 옆집 노모가 치매에 걸려 냄새도 좀 나고 귀찮은 일이 생기더라도 이웃이니까 봐 줘야 하는 게 아닌가요? 그래서 그 노인이 돌아가셨을 때 잘은 모르지만 명복도 빌고 병구완한 그 집 여주인의 어깨를 쳐 주며 수고했다고 다독거려 주는 게 아닌가요? 물론 그런 것들을 꼭 기대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프라이버시는 존중해 줘야지요. 자기들과 다르다고 해서 이렇게 떼로 벌금을 받으러 다니셔야 해요?”

“떼로 다닌대.”

“우릴 아주 깡패로 취급하는구만.”

“그런 게 아니면 뭐예요? 지금 다섯 명이 함께 몰려오셔서 협박하시는 거잖아요?”

“협박?”

“협박하고 공포감 조성하는 거지 이게 뭐예요?”

“저것이 정말?”

“입을 그냥 콱 다물게 해!”

아주머니들은 흥분했고, 논리로는 대응이 되지 않자 비례해 억지와 막말과 욕설이 난무했다. 여자는 입이 말랐다.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는 신호였다. 어제 인터넷을 떠돌아다닌 덕에 참 잘도 많이 지껄였다.

“어째든 저는 벌금 못 냅니다. 그쪽에서 계속 그러시는 한 합치점을 찾을 수 없겠네요. 이제 문 닫겠습니다.”

여자는 문을 탁 닫았다.

“저래서 이 나라는 독재를 해야 돼. 입만 깠지 도대체 말을 들어 먹어야지 원.”

“개를 키우는데 어떻게 남에게 피해를 안 줘? 컹컹 짖고 위아래 집까지 냄새나고.”

“군사 독재 때가 좋았어. 그냥 딱 한 번 선을 그으면 그만이었잖아. 저런 것들 청송감호소에 보내고. 모든 게 질서가 잡히고 반듯했는데.”

“그나저나 큰일 났네. 대한민국에서 제일 깨끗한 아파트를 만들겠다는데 협조는커녕 저 따위로 구니.”

“아니 어떻게 다수결을 무시해? 저거 아주 미친 거 아냐?”

“괘씸하고 배워먹은 거 없는 것 같으니라구. 어른도 몰라보고. 예의범절 없이 고개 발딱 들고.”

그들이 분노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서는데 몇 명이 우중우중 서 있는 게 보였다. 생쥐를 비롯하여 어제 집으로 찾아온 아주머니들이 섞여 있었다. 여자는 모른 척 들어오려고 했다. 싸움은 사실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그녀는 문을 닫고 들어와서 중병 환자처럼 까부라졌다. 밤새도록 부들부들 떨리는 증세가 멈추지 않았고, 다음에 어떤 식으로 공격해 오면 이런 식으로 받아쳐야지 하는 궁리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까지 녹초가 된 상태였다. 그들도 자기 확신이 흔들렸다는 것을 분위기로 감지할 수 있었다. 끝판엔 막말과 욕설로 행패를 부렸지만 그들 대부분은 이쪽 논리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저, 이리 와 봐요. 엘리베이터에 오줌 싸 놓은 것 봤어요?”

생쥐였다.

“아, 그게 오줌이에요? 무슨 물이 엎질러져 있던데.”

“오줌이에요. 오전에도 그랬어요. 내가 청소아줌마더러 치우라고 했는데 지금 또 싸 놓은 거예요.”

“누가 싸 놓았을까요?”

그들은 대답 없이 모두 여자를 쳐다보았다. 여자는 뒤늦게 깨달았다. 여자네 개가 싸지 않았느냐는 얼굴들이었다.

“우리 개는 아니에요. 우리 개는 바깥에 나온 적도 없어요.”

그러나 그것으로는 미흡했다. 아주머니들 모두가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모르셔서 그렇지 애완용 개는 아무 데서나 오줌을 누지 않아요. 습관화된 자기 공간에서만 누지 이렇게 흔들리는 불안정한 공간에서는 일부러 누이려 해도 못 눠요.”

“…….”

“……”

“……” 

“사실 오줌인지도 확실치 않잖아요. 혹시 주스나 다른 것일지도.”

“오줌이에요!”

“그럼 애들 오줌인지도 모르잖아요? 애들이 장난으로 쌌거나 아니면 어른들이…….”

남자 어른이 그런 데서 바지 지퍼 내리고 오줌 누는 장면이 상상되지 않았지만 결과를 놓고 추리해 가자면 그런 일쯤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배달원이나 학생, 어느 집 청년이 일부러 그랬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게 정말 오줌이라면.

“사람이 쌌다면 옆에 튄 게 있을 거 아녜요? 근데 옆 벽면에 튄 자국이 전혀 없어요.”

“그런 건 모르겠구요. 하여간 우리 개는 아니에요. 우리 개는 나오지도 않았으니까.”

“그럼 101호가 쌌다는 말이에요? 그 집은 엘리베이터를 타지도 않는데. 개 혼자 여기 들어가 싼단 말예요?”

“그런 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모든 게 추측이고 억지잖아요. 정말로 저게 오줌인지, 또 개 오줌인지 사람 오줌인지, 옆으로 튄 자국이 육안으로가 아니라 현미경으로 봐도 없는지 확실히 모르잖아요. 정말 튄 자국이 없고 그게 사람 오줌이라면 여자 어린아이나 여자어른이 누었다고 할 밖에요. 남자도 어떤 방법으로든 안 튀게 눌 수도 있겠지요. 시시티브이 같은 것으로 잡아내지 않은 이상 누가 눴다고 지목할 수 없잖아요?”

“시시티브이가 바로 현관 입구에 있어요. 엘리베이터 안에만 없지.”

“그때 거기도 설치하자니까 반대들을 하더니…….”

“현관으로 드나든 사람들을 전부 조사해 보면 혹시 단서를 잡을지도 모르겠네요. 의심되는 시간 동안 우리 개는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않았으니 무조건 우리 개한테 덮어씌우지 마시고 테이프를 돌려 보세요. 자세히요. 그런 다음에 얘기하세요.”

여자는 다른 아주머니들한테 목례를 보내고 올라갔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다시 가슴이 뛰었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흑백 논리로 무장한 생쥐가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누가 무슨 누명을 씌울지 불안했다. 온몸의 피톨들이 비상사태에 돌입한 듯 마구 핏줄을 휘젓고 다녔다.

여자는 관할 파출소 전화번호를 알아내 전화기 옆에 적어 두고 인터넷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방법과 해답들이 명멸하고 있었다.

여자는 동물보호협회에 공문을 요청했다. 관리소장과 반장인 생쥐, 또 동 대표 앞으로. 그들의 공문에는 여럿이 세상을 함께 잘 살아가자는 회유가 서두에 깔리고,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이유로 벌금을 받으러 다니는 행위는 불법이며 오히려 이쪽의 고소를 당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고 했다.

 

안개가 자욱이 낀 숲 속을 생쥐가 걸어오고 있었다. 저승사자처럼 검은 옷을 입고 손에는 작은 핸드백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여자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생쥐를 기다렸다.

생쥐가 도포 자락을 펄럭이며 가까이 다가와 한 손을 내밀었다. 여자는 마지못해 악수를 하면서 생쥐의 다른 손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들려 있는 것은 핸드백이 아니라 끈 달린 깡통이었다. 그것을 알아보는 순간 섬뜩했다. 똥이구나! 여자네 집에 끼얹으려고 가져온 것임이 분명했다. 각오는 했지만 방법이 너무 무식했다. 끼얹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깡통을 빼앗아 멀리 던져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생쥐와 나란히 걸었다.

“당신 대학 나왔지?”

생쥐가 물었다. 화법이 야릇했다. 말밑에 친근한 기운이 묻어있었다.

“당신이 오기 전까지 내 왕국엔 이상이 없었어.”

“왕국이라구요?”

“그래, 왕국. 저 아파트 말야.”

생쥐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그들의 아파트가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져 서 있었다. 불안하지 않았고, 똑바로 서 있을 때보다 멋있어 보였다. 화가가 그린 그림처럼.

“난 학굘 못 다녔어. 중학교를 다니다 말았지. 내가 배운 건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를 공격해야 한다는 사실이야.”

‘꼭 그렇지는 않을 텐데요’라고 말하려다가 여자는 참았다. 생쥐가 들고 있는 깡통을 곁눈질했다.

“내 인상이 어때? 내 첫인상이?”

생쥐가 생쥐처럼 웃었다. 그러나 생쥐 같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여자는 대꾸하지 않았다.

“난 못생기고 배운 것도 없었지. 게다가 가난하기까지 했어. 그런 사람은 어디 가나 업신여김 당하잖아. 그렇지만 난 나서기를 좋아했어. 지금도 남위에 올라서서 그들을 부리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려. 천성을 그렇게 타고났어. 내가 이 아파트에 와서 부녀회장이 된 건 나한텐 일생일대의 사건이야. 젊은 여자들은 애 키우느라고 아파트 일 안 하려하고 똑똑한 축들은 귀찮다고 외면했어. 그래서 내가 출마했는데 당선이 된 거야.”

“지금 부녀회장이세요?”

“아냐, 요 전번. 지금은 반장이고. 그땐 정말 황금기였지. 구청장이고 동장이고 모두들 내 앞에서 굽실굽실하고.”

여자는 생쥐의 깡통을 살며시 잡으려다 실패했다. 생쥐가 얼른 다른 손으로 옮겨 쥐었기 때문이다.

“내 뜻대로 해줄 수 없을까? 아무도 모르게. 아파트에 개를 키우지 못 하게 한 건 부녀회장 때의 내 작품이야. 실패하기 싫어.”

“실패라구요? 이게 실패예요?”

“그럼 실패지. 내 뜻이 밟아 뭉개지는데.”

“그런 게 실패라면 이 세상에 실패 아닌 게 어디 있어요? 모든 게 진화하는데요. 저야말로 진짜 실패한 사람이에요. 이 아파트에 이사 올 때 무릎 꺾고 죽기 직전의 낙타 같았죠. 제 별명이 고등학교 때 낙타였어요. 눈이 퀭하다고요. 낙타는 지나치게 참고 견디며 사막을 건넌대요. 그러다가 마지막 순간에 무릎을 탁 꺾고는 그냥 죽어 버린다나요. 미리 물을 달라거나 힘들다고 하지 않는대요. 저도 낙타 같았죠. 바보같이.” “낙타 같군. 말하니까 똑같애.”

“같이 잘살아 보자는 말은 정말 이상일 뿐인가 봐요. 아주머니들과 다투고 나서 오히려 팽팽하게 힘이 솟아나서 얼마나 이상했는지요. 제가 요새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을 챙겨 먹잖아요. 얼마 전까지는 한 끼도 제대로 안 먹었는데. 이러다가는 이 일을 계기로 단련되어 다시 대처로 나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어요.”

“개는 갖다 버려라. 더럽잖아.”

“더럽긴요. 사람보다 더 깨끗해요. 사람의 입에 사는 세균이 몇 종류고 몇 만 마린지나 아세요? 개는 훨씬 적어요.”

“우리 집에 와 봐. 얼마나 깨끗한가. 그게 사람 사는 거지. 당장 똑같이 하고 싶을 걸.”

“개 한 마리 키우지 않는 삶이 뭐 그리 훌륭하다고 그걸 꼭 따라 해요? 아주머니들이 순박하고 귀엽긴 했어요. 단순하고, 허술하고, 그것으로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무지함의 미덕이랄까요. 그렇지만 자기네들하고 똑같이 살지 않는다고 벌금을 내라니요. 우리 개는 제 식구예요. 다른 집의 아이들과 똑같다고요.”

“그럼 안 된다는 거야?”

생쥐가 똥이 든 깡통을 여자의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그 즉시 얼굴에 끼얹을 태세였다. 여자는 두 손으로 그것을 밀어냈다.

“이러지 마세요. 이건 테러예요. 아주 야만적인. 이렇게 해서는 문제가 해결 안 돼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

생쥐와 깡통을 사이에 두고 몸싸움을 벌이는데 오토바이가 달려오고 있었다. 어머, 어머, 어머머…… 현관 벨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여자는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 신문을 든 채로 자신은 소파에 누워 있었다. 현관 벨이 계속 요란하게 울렸다. 누굴까? 겁이 났다. 여자는 전화기 옆에 적힌 파출소 번호를 머리에 암기하고 휴대폰을 챙긴 뒤 문을 열었다.

“이 집은 그대로네? 저거 봐, 이 집 시계는 그대로잖아.”

“어디? 어디?”

두서없이 얼굴들이 몰려 들어왔다. 생쥐와 그 일당이었다. 생쥐는 꿈속에서처럼 사정조가 아니었고, 손에 깡통이 들려 있지도 않았다. 꿈속에서의 생쥐와 현실에서의 생쥐를 합치시키느라 여자는 여러 번 눈을 끔벅거렸다.

“무슨 일이세요?”

여자가 물었다.

“글쎄 시계가 모두 일그러졌어요. 오늘 아침 일어나니까 모든 집의 시계가 일그러져 있는 거예요. 현관문을 열면 곧장 보이는 벽시계들이요. 하도 이상해서 이 집에 와 봤는데 이 집은 그대로네. 이상도 하지.”

“살다 살다 별일을 다 봤어.”

“한 밤 자고 나면 도로 펴지지 않을까요?”

“펴지긴, 그게 쇤데…….”

여자는 어젯밤 지진이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그런 뉴스를 잠결에 들은 것도 같았다. 울산 근처 몇 킬로미터 바다가 진원지라는 것 같았고, 강도가 3이라나 4라나 아무튼 중부 지방인 여기까지 영향을 미쳤을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누구네 집에 불이 났나? 그 열기로 시계들이 일그러졌나?

자신의 상상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느끼며 여자는 온전한 자기 집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자세히 보니 자기 집 시계도 밑 부분이 조금 일그러진 것 같았다. 어쩐지 안심이 되며 마음 한편이 놓였다. 아, 시계라도 구부러져서 다행이다, 무엇이든 살벌한 현실을 가려다오…… 하얀 환상이 발치에 서리처럼 내려앉았다. 이건 분명 생시인데, 혹시 꿈의 연속이 아닐까 순간 멍해졌다.  《문장웹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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