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열쇠

천국의 열쇠
정지아
 

 

쿵쿵 벽이 울린다. 말없는 아버지의 말이다.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는 지팡이로 벽을 두드린다. 목이 마르다는 말일 때도 있고 배가 고프다는 말일 때도 있고 요강이 찼다는 말일 때도 있다. 크고 작은 ‘쿵쿵’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저 소리를 어머니는 늘 정확하게 읽어 냈다. 어머니는 삼 년 전 세상을 떴다. 지난 삼 년 동안 그는 가갸거겨, 글자를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아버지의 언어를 읽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언어는 여전히 해독불가다. 그는 어린아이의 장난질에 다리를 뜯긴 개미처럼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제 몸 하나 일으켜 세우는 일이 그에게는 우주를 들어 올리는 것만큼이나 힘겹다. 눈 뜨는 순간부터 고난의 시작이다. 그의 선택이나 의지는 아니었다. 태어나 보니 이런 몸이었을 뿐이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제 맘대로 요동치는 제 몸을, 남의 것인 양 무덤덤하게 응시하는 그를 볼 때마다 어머니는, 정신까지 반편인 게 너한테는 차라리 나았을 텐데, 마른 눈물을 떨궜다.

희끄무레 날이 밝는다. 산등성이를 경계로 어둠과 빛이 한지에 묵이 번지듯 뒤섞이고 있다. 머지않아 안개가 산등성을 휘감고 점차 강해진 빛이 그 안개를 삼키면 또 다른 아침이 밝을 것이다. 그는 온몸을 휘저으며 아버지의 방으로 간다. 벌컥 문을 열자 도둑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있던 알코올 냄새와 지린내가 좁은 방을 뛰쳐나온다. 어둠 속에서 아버지의 탁한 두 눈이 번득인다. 언젠가 우물에 빠진 개구리를 본 적이 있다. 우물 벽에는 진녹색 이끼가 무성히 자라 있었다. 그 이끼 틈으로 무언가 팔짝팔짝 뛰어올랐다. 우물의 어둠에 눈이 익은 다음에야 그것이 개구리인 것을 알았다. 제풀에 지친 것인지 개구리는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그 자세 그대로 개구리는 죽음을 맞았다. 아버지를 볼 때마다 그는 우물의 어둠 속에 쪼그린 채 미동도 하지 않던 개구리를 떠올린다. 아버지도 그 개구리처럼 이 방 안에서 최후를 맞을 것이다.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어머니와 그가 병원으로 옮기려 했으나 의식을 잃은 채 아버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는 쓰러진 아버지를 늘 있던 그 자리에 눕혀 둔 채 한의사를 불러야 했다.

뭔가를 툭 치는 소리가 들리고 양철 두드리는 소리가 이어진다. 막걸리 주전자가 비었다는 뜻이다. 아버지의 방에는 밤도 낮도 없다. 벽에 기댄 채 아버지는 성한 왼팔로 지팡이를 뻗어 막걸리 주전자를 들어 올리고, 야금야금 막걸리를 마시고, 취하면 그 자세 그대로 잠이 든다. 잠이라기보다 혼절에 가깝다. 깨어나면 다시 반복이다. 아버지는 벽에 기댄, 말라비틀어진 정물이다. 아버지를 방에 정물로 유폐시킨 것은 바로 그다. 아니 아버지의 운명이다. 어쩌면 아버지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는 주전자 팔부쯤 막걸리를 담는다. 그래도 가는 길에 쏟기 일쑤다. 버텨 온 세월만큼 여기저기 부딪쳐 만신창이가 된 주전자가 그의 손 안에서 요동친다. 가까이 끌어당기려 안간힘 써도 그의 손은 자꾸만 멀어진다. 얘야, 포기하면 안 된다. 이를 악물고 살아야 해. 살아남아야 해. 걸음마를 시키며, 연필을 손에 쥐어 주며, 옷을 입히며,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는 이를 악문다. 어머니 말이 옳았다. 이를 악물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길의 막바지에 다다르곤 했다. 부엌에서 십여 미터 떨어진 아버지 방은 금세 닿을 것이다.

그는 아버지 곁에 주전자를 놓는다. 벽에 기댄 채 잠들어 있는 것 같던 아버지가 번쩍 눈을 뜬다. 술 주전자를 향한 눈빛이 기괴하게 번득인다. 그는 빈 사발에 막걸리를 따라 아버지 입에 댄다. 꿀떡꿀떡 아버지가 게걸스럽게 술을 들이켠다. 아버지에게는 술이 밥이다. 술이 물이다. 술이 생명이다. 어머니 간 뒤로 아버지는 밥을 먹지 않는다.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며 겨우 끓인 미역국도 된장국도 아버지는 지팡이로 멀찌감치 밀어 놓았다. 그리고는 시도 때도 없이 물을 마시듯 술을 마신다. 그 속내를 그로서는 짐작할 길이 없다.

그는 어둑어둑한 방 안을 정리한다. 아버지의 사물은 지팡이가 닿는 딱 그 거리에 모두 놓여 있다. 모두라고 해봐야 요강과 담배, 술 주전자, 사방이 찌그러진 스텐 사발, 물 주전자, 땀 닦을 수건 정도다. 라이터는 그가 줄에 묶어 아버지의 목에 걸어 놓았다. 헌 수건 대신 새 수건을 놓고 그는 아버지의 방을 나선다. 헌 수건을 세탁기에 넣기 전에 그는 코를 박는다. 시큼털털한 아버지의 체취다. 아버지는 그를 한 번도 안아 준 적이 없다. 갓난 그를 품에 안았다가 기이하게 버르적거리는 꼴을 보고는 기겁을 하고 솜이불 위에 내동댕이쳤다는 말을 할머니에게 들었다. 자신의 유전자로 빚어진 괴물을 아버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신의 운명마저 제 발로 자근자근 짓밟았다.

산허리를 휘감은 안개가 걷히고 있다. 그는 서둘러 밥을 짓는다. 급한 마음에 팔다리가 평소보다 더 제멋대로 움직인다. 이제 막 아침이 밝았으나 그는 하루를 다 산 것처럼 피로하다. 손짓이 더딜수록 마음은 더 바빠진다. 어제 반 정도의 헛개나무가 새하얀 꽃망울을 터뜨렸다. 봄볕이 나머지 꽃봉오리도 서둘러 터뜨릴 것이다. 일 년에 단 며칠밖에 허락되지 않는 장관이다. 달그락달그락 밥 짓는 소리가 요란하다. 소리 없이 가만가만 그릇을 내려놓는 일이 그에게는 쉽지 않다. 일을 마친 어머니는 골목에서부터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함박웃음을 지은 채 한달음에 달려왔다. 아이고, 내 새끼, 여기 있는가. 그의 시선이 부엌문께를 더듬는다. 함박 웃는 어머니가 거기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부엌문 앞에는 눈부신 햇살이 어룽거릴 뿐이다. 신새벽, 여느 때처럼 그의 방에 군불을 지피러 나왔던 어머니는 심장마비로 쓰러져 눈을 감았다. 어머니가 떠난 그날 새벽, 난생 처음 그는 추위에 눈을 떴다. 등골 시린 그 추위가 바로 어머니의 부재였다.

그는 밥이 끓는 사이, 마른 새우를 우려낸 국물에 된장을 풀고 쑥국을 끓인다. 며칠 전 산에 간 김에 여린 속살로만 쑥을 끊었다. 야지 쑥은 벌써 쇠었지만 산 쑥은 아직 먹을 만했다. 혼자만의 상을 위해 그는 새 국도 끓이고 콩나물도 무친다. 어려서부터 그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은 채 어깨너머로 밥하는 것도 배우고 요리하는 것도 배웠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오직 어머니의 맛이다. 그렇게 급히 갈 줄 몰랐던 어머니가 남기고 간 고추장, 된장, 간장이 다 떨어지면 이제 다시는 어머니의 맛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된장은 겨우 한 달분 정도 남았다. 올겨울에는 된장이나 담가 볼까. 까짓것 못 할 것도 없다. 콩 삶는 솥에 하루 왼종일 불을 지핀 것도, 그 콩을 빻은 것도, 메주를 빚은 것도 그였다. 절굿공이가 두 번에 한 번은 엉뚱한 데를 찧기 일쑤였지만 어머니는 아이구 잘하네 내 새끼, 서툰 공이질에 맞춰 장단을 넣었다. 어머니는 없지만 어머니가 일러준 말들은 머릿속에 훤하니 올겨울에는 정말 된장을 담가 볼 생각이다. 벌써 뒷집 영수네에 메주콩도 닷말이나 부탁해 놓았다. 어머니 가고 난 뒤 무엇이든 가르치려 했던 어머니의 마음이 더 절절하다.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다 넘어져 무릎을 깨도, 이가 나가도, 빨래를 삶다 봄볕에 자울자울 새 내의를 다 태워 먹어도, 아이고 내 새끼, 함박웃음을 짓던 어머니는 한마디 유언도 남기지 못 한 채 눈을 감았다. 얘야, 이를 악물고 살아야 해, 죽은 어머니가 밤낮으로 그의 귀에 속삭였다. 어머니의 속삭임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는 얼룩 하나 없이 새하얀 행주로 상을 닦는다. 엊저녁 삶아 놓은 것이다. 자기부텀 자기를 대접해야 남한테도 대접을 받는 법이여. 그래서 어머니는 입고만 나서면 흙투성이가 되고 마는 옷을 그악스럽게도 갈아입히고, 사과 하나 귤 하나도 예쁘고 좋은 것으로만 골라 먹였다. 그래봐야 남들에게는 병신이었을 테지만 어머니만큼은 그를 부잣집 도련님처럼 위했다. 그는 보란 듯이 밥상을 차린다. 언젠가 어머니 간 뒤 군청 복지과라나 사회과라나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에 병신 아들 사는 꼴이 안타까워 누가 민원이라도 넣은 모양이었다. 마침 밥을 먹으려던 차였다. 군불 지피고 나온 숯으로 구워 낸 고등어자반까지 떡하니 놓인 밥상을 본 여직원이 어머, 호들갑스럽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어머, 저보다 훨씬 낫네요. 여직원은 염치도 좋게 자반을 손으로 죽 찢어 맛을 보았다. 어머머, 아저씨 진짜 솜씨 좋다. 여직원은 마루에 놓인 걸레에 자반 기름 묻은 손을 닦았다. 어머머머, 이게 행주야? 이틀 걸러 삶는 걸레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의 밥상이 그들의 염려를 깨끗이 종식시킨 모양이었다. 어머니의 평생이 담긴 몇 개의 통장 때문에 생활보호 대상자로 지정하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그냥 놔두기에는 민망했던 차에 저 정도의 밥상을 차릴 수 있는 자라면 국가가 보호할 필요는 없겠다고,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돌아갔다. 아무 데나 뻗지르는 팔로 허공을 휘저으며 그들을 돌려보낸 뒤 그는 어쩐지 뿌듯했다. 그들의 가벼운 발걸음이 마치 어머니의 바람대로 그가 살아남았다는 하나의 명료한 증거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날 그는 잘 붙지도 않는 입술을 씰룩거리며 휘파람도 불었다.

그는 상을 들고 마루로 나온다. 최고의 난코스다. 아무리 조심해도 흘리기 일쑤라 국이나 찌개는 늘 절반밖에 담지 않는다. 그래도 종종 국물을 흘린다. 다행히 오늘은 아무 탈 없이 상을 마루에 내려놓는다. 일진이 좋은 날이다. 쑥 냄새가 향긋하다. 막 숟가락을 든 찰나,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온갖 세간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이어진다. 마음은 이미 옆집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의 팔은 이제 겨우 마룻장을 짚은 채 버둥거리고 있다. 숟가락을 든 채 그는 담 밑을 서성인다. 멋모르고 달려갔던 날, 호아는 평소보다 더 오래 맞았다.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달려가 봤자 호아의 매만 벌어 줄 뿐이다. 호아는 베트남 여자다. 칠 년 전 길호 형에게 시집을 왔다. 길호 형은 그를 부러워한 유일한 사람이다. 어린 시절 길호는 틈만 나면 그의 집으로 달려왔다. 어머니 얼굴도 모르고 자란 길호는 그의 어머니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그의 어머니가 아이고 내 새끼, 그를 향해 함박웃음을 지을 때마다 길호는 기를 쓰며 장작을 나르고 나물을 다듬었다. 아무리 잘해도 자신에게는 그렇게 다정하게 웃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뒤로 길호는 다시는 그의 집에 오지 않았다. 나도 너 같은 병신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그를 부러워하던 길호는 그의 집에 발길을 끊은 후 걸핏하면 병신이라고 그를 괴롭혔다. 길호가 괴롭히는 건 참을 만했다. 주먹을 휘두르는 길호의 눈빛에 감출 수 없는 질투가 번득였기 때문이다. 그를 제일 많이 괴롭힌 게 바로 길호인데도 그는 외려 길호에게 늘 고맙고 미안했다. 퍽퍽, 둔탁한 소리가 아침의 고요를 깨뜨린다. 호아는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않는다. 어린 그가 그랬듯 팔로 머리를 감싸 쥔 채 묵묵히 견디고 있을 것이다. 제풀에 지친 길호 형이 나가떨어질 때까지. 주먹질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이 아침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하다. 그는 몇 번이고 대문을 나선다. 길호 형네 대문은 굳게 닫혀 있다. 호아가 시집 온 후로 좀처럼 열리는 법이 없는 문이다. 길호는 호아가 자신의 어머니처럼 집을 나갈까 봐 두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호아를 지키기 위해 길호는 그 문 안에 자신마저 가뒀다. 그는 차마 문을 흔들지 못한다. 억, 숨이 멎은 듯한 소리와 함께 마을에는 다시 정적이 깃든다.

한바탕의 소동이 끝난 후에도 그는 좀처럼 대문 앞을 떠나지 못 한다. 어쩌면 호아가 길호의 주먹을 피해 골목으로 도망을 나올지도 모른다. 호아를 처음 만난 것은 오 년 전 겨울, 함박눈이 쌓인 골목에서였다. 호아는 눈사람인 양 소복히 눈을 뒤집어쓴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쌓이는 눈 위로 붉은 피를 떨구면서. 피 젖은 눈에서 더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어디를 가는 중이었던 그는 가던 길도 잊고 안절부절 대문을 들락거렸다. 그의 요란한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움츠린 호아의 등이 움찔거렸다. 그는 몇 해 전 어머니가 비싼 돈을 주고 마련해 준 털 점퍼를 내밀었다. 쭈그려 앉은 호아는 발소리가 제 앞에서 멈추었는데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별수 없이 그는 버둥거리는 손을 뻗어 가녀린 어깨에 털 점퍼를 덮어 주었다. 호아는 뭘 하는 것일까. 한바탕 요란하던 옆집은 쥐 죽은 듯 고요하다.

차갑게 식어 버린 국을 그는 물인 양 훌훌 들이마신다. 참기름 들들 부어 맛깔스럽게 무쳐 놓은 콩나물도 당기지 않는다. 그는 밥솥에 소금과 참기름과 깨소금을 들이붓는다. 대충 버무린 것을 김에 싼다. 빈 부대에 연장과 도시락을 챙겨 넣고는 부대의 양쪽에 매 놓은 줄을 허리에 야무지게 동여맨다. 산은 경사가 급하다. 때로는 네 발로 기어야 한다.

그는 길호 형 집 앞에서 발을 멈춘다. 꼰지박을 선 채 조심스럽게 담 너머를 기웃거린다. 깨진 세간들이 마당에 널브러져 있다. 길호 형도 호아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기척이라도 느낀 듯 안방에서 자지러지게 아이가 운다. 아이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호아가 집에 있다면 아이가 저렇게 울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몸조차 가누지 못할 만큼 맞은 것일까. 아니면 호아도 길호 어머니처럼 집을 나간 것일까. 어머니가 떠난 날처럼 등골이 서늘하다. 드르륵, 문이 열린다. 저 거침없는 손길은 호아가 아니다. 그는 재빨리 고개를 돌린다. 뒤통수에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길호 형의 마음을 그는 알 것 같기도 하다. 동네 아이들에게 병신 소리를 듣고 온 날이면 아버지는 그를 때렸다. 맞는 것은 그였으나 괴로운 것은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주먹이 향한 것은 그가 아니라 아버지의 어긋난 유전자, 그러니까 곧 아버지 자신이었다. 호아를 때리는 길호 형의 주먹도 어쩌면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인지 모른다. 그게 아버지가 견디는 방식이란다. 막막해서, 하도 막막해서 그러는 거야. 네가 이해하렴.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맞은 상처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길호 형도 아버지처럼 막막한 것일까.

그는 버둥거리며 산으로 접어든다. 알싸한 농약 냄새가 진동한다. 영수네 고추밭에 농약을 치는 모양이다. 그는 바람을 살핀다. 다행히 계곡 쪽으로 바람이 불고 있다. 몇 해 전에는 산 위로 바람이 치밀어 그 바람을 타고 영수네 농약이 그의 밭까지 침범했다. 그해 가을, 그는 헛개나무 열매를 몇 번이나 물에 씻어 말려야 했다. 잎은 아예 따지 않았다. 헛개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 때문이다. 아니 어머니 때문이다. 술독에 빠져 사는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는 해마다 가을이면 산을 탔다. 어디서 헛개나무 열매가 간에 좋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헛개나무 열매 달인 물을 먹으면 술이 다 헛것이라는 말이 사실이었는지 알코올성 지방간이던 아버지의 거무죽죽한 얼굴색이 제대로 돌아왔다. 효험을 본 어머니는 가을만 되면 죽자 살자 산을 탔다. 헛개나무가 많지 않은데다 열매가 달리지 않는 것도 많아 어머니의 걸음이 고달팠다. 걸음이 불편해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던 그는 혹시나 싶어 열매를 밭에 뿌렸다. 이듬해 봄, 잡초만 무성했다. 그 잡초 속에서 그는 딱 두 개의 헛개나무 새싹을 찾아냈다. 그는 불편한 걸음으로 매일같이 산에 올라 새싹을 보고 또 보았다. 헛개나무가 잘 알려져 있지 않던 때라 재배 방법을 물을 곳도 마땅치 않았다. 이듬해, 삼십여 개의 헛개나무 싹이 고개를 내밀었다. 헛개나무 열매는 발아하는 데 2년이 걸린다는 것을 그때의 그는 알지 못했다. 그는 삼십여 그루의 헛개나무를 위해 매일 산 밑 밭에서 살았다. 높은 산에 절로 자라는 나무라 퇴비나 농약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대신 늦가을, 낙엽을 주워 발목이 푹푹 잠기게 뿌려 놓았다. 내버려 두어도 헛개나무는 쑥쑥 잘 자랐다. 싹을 틔우기가 어렵지 싹 튼 후에는 별로 손 가는 일도 없었다. 일이라고는 여름내 풀 베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그는 헛개나무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가물 때면 빈 부대에 물을 채워 하루에도 몇 번씩 산에 올랐다. 부대를 질질 끌고 왔으니 어렵사리 산에 올라 봐야 남은 물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종일 부대에 물을 채워 다리가 후들거리도록 산에 올랐다. 때로는 뾰족한 것에 찔려 부대가 터지기도 했다. 어머니와 그는 달밤에도 물을 날랐다. 피곤한 팔다리가 평소보다 더 사방으로 날뛰었지만 물기 머금어 더욱 검어진 땅을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났다. 그게 그의 나이 열일곱 때였다. 그렇게 정성으로 키워도 헛개나무는 꽃을 피우지 않았다. 당연히 열매도 맺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숟가락 젓가락질을 배우듯 그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 산에 올랐다. 스물다섯 되던 어느 봄날, 그는 무심히 허리를 폈다. 바로 머리 위에서 하얀 꽃봉오리가 톡, 하고 벌어졌다. 그날 그는 다닥다닥 매달린 꽃봉오리가 죄 벌어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건 그가 피워 낸 꽃이었다. 아버지에게조차 용납 받지 못한 병신이 오롯이 피워 낸 꽃이었다.

그는 가파른 경사길 초입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오르막 끝에 전망대인 듯 너럭바위가 있다. 그 너럭바위를 목표 삼아 그는 다시 길을 재촉한다. 어머니와 그는 너럭바위에서 한숨 돌리며 시원한 바람을 맞곤 했다. 그는 네 발로 기어 경사진 길을 오른다. 군데군데 박힌 돌에 쓸리는 것쯤이야 아무렇지 않다. 십오 년 넘게 산을 오르는 동안 손바닥에도 무릎에도 심지어 정강이에도 굳은살이 박였다. 이력이 붙으면 뭐든 견딜 만하다. 아버지는 병신 자식 하나 낳아 놓고 살 수 없게 됐지만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사는 게 지옥이었던 그는 살다 보니 사는 일에도 그럭저럭 이력이 붙었다. 사는 일이 만만치 않은 것임을 제일 먼저 알려 준 것은 아버지였다. 쯧쯧, 칠순의 영수네 어머니는 벌레처럼 꿈틀꿈틀 산에 오르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찰 것이다. 영수네 어머니는 신경통이 심해 다리를 전다. 언젠가 산길을 오르다 절뚝이며 앞서 가는 영수 어머니를 만났다. 절뚝이며 다가오는 그를 보고 영수 어머니는 나이답지 않게 배시시 웃었다. 쯧쯧, 평생 혀를 차며 바라본 그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 쑥스러운 듯했다. 산 타는 데 이력이 붙은 그는 사지를 뒤흔들면서도 이내 영수 어머니를 따라잡았다. 아가, 병신이면 어떠냐. 네가 젤이다. 사지육신 멀쩡하지 않아 언제든 품어 줘야 할 아이로 보이는 것일까. 마흔 가까운 그를 영수 어머니는 ‘아가’라고 불렀다. 웬일인지 눈물이 핑 돌았다. 헛개나무가 첫 꽃을 틔웠을 때처럼 그의 가슴속에서 톡톡, 어여쁜 꽃망울이 터지는 느낌이었다.

오르막을 올라서자 축축하게 땀 젖은 등줄기로 시원한 바람이 스친다. 손을 탁탁 털며 일어나던 그의 시선이 한 군데 못 박힌다. 너럭바위에 몸을 기댄 채 여자가 부들부들 떨고 있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호아다. 무릎을 감싸 안은 양손이 까무잡잡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온 것일까. 아침의 매질이 심상치 않았음이 분명하다. 들키지 않을 데를 찾다 이 높은 산중까지 올라온 것일 게다. 그는 가만히 호아의 정수리를 바라본다. 가마가 두 개다. 그의 가마도 둘이다. 아이고, 내 새끼. 장가 두 번 갈란갑네. 어머니는 머리를 감길 때마다 그를 놀리곤 했다. 마흔이 낼모레지만 두 번은커녕 한 번도 못 갔다. 장가는 고사하고 여자를 만나 본 적도 없다. 무릎과 정강이에 굳은살이 박이고 사방팔방 제멋대로 나대는 몸이지만, 누구의 손길은 고사하고 눈길 한 번 탄 적 없는, 순결하디 순결한 몸이다. 몸뿐이랴. 그의 마음 또한 누군들 잠시 잠깐 머무른 바 없는 처녀지다.

잠깐 잠이라도 들었던 것인지 호아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든다. 주먹만큼 부어오른 뺨 위로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다. 그가 황급히 무릎을 꿇는다. 목에 묶고 있던 수건을 풀었으나 어찌할 방법이 없다. 찢어진 곳은 눈두덩이다. 그는 수건으로 눈두덩을 힘주어 누른다. 맥을 놓고 있었는지 호아의 몸이 휘청 뒤로 기운다. 그가 재빨리 호아의 머리통을 받친다. 제풀에 당황하여 그는 황급하게 손을 뺀다. 호아가 멍한 눈길로 그를 바라본다. 검고 푸른 멍들이 여기저기 얼룩져 있다. 그는 호아의 멀쩡한 얼굴을 알지 못한다. 양수가 터지는 바람에 허둥지둥 그의 집으로 달려왔을 때도 호아의 얼굴에는 검푸른 멍이 군데군데 꽃처럼 돋아 있었다. 타고난 반점인 양 친숙한 멍이다. 수건이 이내 피로 젖는다. 그는 수건을 떼어 내고 찬찬히 상처를 살핀다. 족히 대여섯 바늘은 꿰매야 할 상처다.

“병원 가요. 꿰매야 돼요.”

어눌한 발음을 알아들은 모양이다. 생기 없던 호아의 눈빛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술에 젖어 사는 길호 형네 형편이 좋을 리 없다. 호아는 그의 어머니처럼 돈을 손톱 밑에 그러쥐고 살아간다. 두부 한 모 사 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병원비가 아까워 호아는 세차게 고개를 흔든다. 그 바람에 핏방울 몇 개가 그의 티셔츠 위로 튄다. 붉은 핏방울이 흰 셔츠에 번진다. 어쩐지 부끄러워 그는 얼굴을 붉힌다.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는 듯 상체를 일으킨 그는 수건을 호아의 머리에 묶는다. 짧아서 잘 묶이지 않는다. 게다가 눈을 가린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러닝셔츠를 벗는다. 땀에 젖긴 했지만 삶아서 입은 것이니 그닥 더럽진 않을 것이다. 그는 러닝셔츠가 눈을 가리지 않도록 꼼꼼하게 상처를 묶는다. 호아는 인형처럼 그에게 몸을 맡기고 있다. 호아의 몸에서 희미한 비린내가 풍긴다. 젖비린내다. 그는 맨살 위에 티셔츠를 되입는다. 호아의 멍한 시선이 산등성을 향해 있다. 호아의 시선이 가닿은 그곳에 헛개나무 꽃이 한창이다.

“꽃, 예뻐요.”

호아의 목소리를 듣기는 처음이다. 담장 너머로 억, 하는 비명을 서너 번 들었을 뿐이다.

“내 이름, 호아, 꽃이에요.”

꽃이라는 호아의 목소리는 깃털처럼 가볍고 상쾌하다. 억, 하는 비명 뒤에 저렇듯 가냘픈 목소리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가 볼래요?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을 어쩌지 못 하고 그는 얼굴을 붉힌다. 뜻밖에 호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킨다. 순간 어지럼증이 이는지 몸을 휘청거린다. 버둥거리는 팔을 뻗어 그가 재빨리 호아의 손을 잡는다. 손을 잡은 채 두 사람은 산을 오른다. 혼자서는 사방팔방 뻗지르던 왼팔이 호아의 손을 맞잡고 잠잠해진다. 닥치는 대로 꿰고 나온 것인지 앞도 막히지 않은 호아의 여름용 슬리퍼가 자꾸 미끄러진다. 그때마다 그는 맞잡은 손에 힘을 준다. 쓸모없이 버둥거리는 그의 팔을 의지 삼아 호아는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내딛는다.

구불구불 산으로 이어진 길 끝에 웅장한 철문이 막아선다. 철문 옆으로는 높은 철조망이 둘러져 있다. 헛개나무가 간에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부터 열매는 물론이고 나무껍질까지 벗겨 가는 일이 잦아졌다. 그는 어머니가 남기고 간 통장 하나를 털어 삼천 평 밭에 철조망을 치고 문을 달았다. 문을 단 뒤로 아무도 이곳에 침입하지 못 했다. 그는 허리띠에 묶어 놓은 큼지막한 열쇠를 꺼낸다. 철조망 안 삼천 평의 헛개나무 밭이 그의 천국이다. 육중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솔잎보다 상쾌한 향기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진녹색의 잎 사이로 하얀 꽃이 하늘하늘 바람을 타고 있다. 꽃향기에 정신이 아득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그는 마음 한구석 거미줄처럼 질기게 엉겨 있던 아버지를 떨쳐 낸다. 이곳은 아버지의 삶에는 허락되지 않았던, 아니 스스로 허락하지 않았던 그만의 천국이다.

그는 호아를 밭 가장자리 자그만 원두막으로 데려간다. 헛개나무 꽃이 피는 유월이면 그는 원두막에서 밤을 지새우곤 했다. 만월이 휘영청 산등성에 걸린 봄밤에는 꽃향기에 취한 듯 시간이 날아갔다. 세상만물 가리지 않고 골고루 내려앉는 달빛은 버둥거리는 그의 사지에도 고요히 내려앉고, 꽃향기 또한 아버지가 버린 못난 육신 곳곳에 가리지 않고 스며들었다. 그곳에서 그는 비로소 온전한 존재였다. 그를 온전하게 만든 그곳을 만든 것은 바로 그였다. 그가 헛개나무 농장을 만들었고, 헛개나무 농장은 그를 온전하게 만든 것이다.

호아는 그가 시키는 대로 원두막에 올라선다. 맨발이 흙투성이다. 그는 목에 두른 수건을 풀어 정성스레 흙을 닦는다. 일순간 멈칫했으나 호아는 그의 손길에 발을 내맡긴다. 아무도 눈여겨봐 주지 않던 발이다. 베트남에서 호아는 맨발일 때가 많았다. 맨 땅과 맨살로 마주쳤던 발은 여기저기 상처투성이고 굳은살투성이다. 그 발을 그는 떨리는 한 손으로 받쳐 들고 구석구석 흙 알갱이 하나 남김없이 정성들여 닦는다. 그 와중에도 정처 없이 흔들리는 그의 머리를 호아는 물끄러미 바라본다. 윙윙거리며 벌들이 한창 꿀을 빠는 중이다. 꿀로 배를 불린 후에야 벌은 꽃에서 떨어진다. 윙윙, 벌들의 날갯짓에 노곤한 잠이 몰려온다. 볼품없이 생긴 헛개나무는 향기로 벌을 유혹한다. 꽃도 나무도 잎도 달큰한 향기를 품고 있다. 꽃이 피기 전에는, 껍질을 벗겨 보기 전에는, 잎을 으깨 보기 전에는, 좀체 상상하기 어려운 향기다.

자울자울, 호아는 앉은 채 잠이 든다. 아이가 태어난 이래 그녀는 밤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다. 그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아기는 울지 않는 그녀를 대신해 밤새 울었다. 아무리 젖을 물려도 그때뿐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밀린 졸음이 쏟아진다. 꽃향기만큼 달큰한 잠이다. 그녀를 깨울세라 그는 조심조심 낫을 들고 걸음을 옮긴다. 삼천 평 밭에서 그는 여름내 잡초를 벤다. 그에게 여름은 잡초와의 전쟁이고 삶은 맘대로 되지 않는 제 몸과의 전쟁이다.

그는 조심조심 풀을 벤다. 팔이 마음대로 제어되지 않는 탓에 낫질이 제일 고역이다. 낫에 다리를 벤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요즘은 오랜 낫질에 요령이 생겼다. 그는 팔에 힘을 빼고 가볍게 휘두른다. 제어하려 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제어라는 것을 터득한 것은 오래지 않다. 목적 없이 내뻗는 팔의 리듬에 익숙해지면 그 템포에 맞춰 풀을 베는 것이다. 연보랏빛 꽃을 피운 곽향을 한 움큼 잘라 낸다. 꿀을 빨던 나비가 안타까운 듯 잘린 풀 주위를 맴돈다.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인 잡초가 벌 나비에게는 소중한 생명줄이다. 잘린 자국에서 진한 풀 냄새가 풍긴다. 죽음의 냄새치고는 너무 싱그럽다. 그는 베어 낸 풀을 농장 끝으로 옮긴다. 여름내 잘 마른 풀은 겨우내 헛개나무 새 움을 틔우는 거름이 될 것이다. 윙윙 벌 나비가 부지런을 떨고 그들의 날갯짓에 맞춰 그의 낫질도 바빠진다. 웅얼웅얼 호아가 잠결에 노래를 부른다. 벌의 날갯짓처럼 헛개나무 꽃향기처럼 달큰한 발음이다. 당신의 눈은 별처럼 빛나고 오늘 밤 그대를 집에 데려다 주고 밤길에 나 혼자만……. 베트남어 가사를 그가 알아들을 리 없다. 다만 호아의 잠이 노래처럼 달콤하기를 바랄 뿐이다. 술 취한 아버지도, 길호의 패악도 꿈인 듯 아득하다.

소스라치며 호아는 짧은 잠에서 깨어난다. 그리고는 어리둥절 사방을 둘러본다. 저만치 팔다리를 휘저으며 풀을 베는 낯익은 등이 보인다. 어느 겨울 눈 퍼붓는 골목으로 뛰쳐나왔을 때 그녀의 앙상한 어깨에 털 점퍼를 씌워 준 것도, 술 취한 남편을 대신해 택시를 불러 주고, 진통하는 내내 복도에서 서성인 것도, 베트남과 한국의 피가 절반씩 섞인 아이를 젤 처음 보고 빙긋 웃어 준 것도 저 어설픈 몸이었다. 어설픈 그의 몸이 호아는 살붙이처럼 정겹고 서럽다. 앞섶이 축축하다. 젖이 흐르고 있다. 그제야 호아는 황급히 슬리퍼를 꿰찬다. 얼마나 지난 것일까. 몇 시간째 아이에게 젖을 물리지 못 했다. 호아는 허둥지둥 꽃향기 자욱한 길을 달린다. 아이가 울거나 말거나 남편은 술에 취해 잠들어 있을 것이다. 투박한 손이 호아의 옷자락을 붙든다.

“잠깐, 잠깐만…….”

다급한 외침에 호아가 걸음을 멈춘다. 다급할수록 떨리는 손이 제 허리춤을 더듬거린다. 손에 잡혀 나오는 것은 열쇠다. 버둥거리는 손으로 그는 허리춤의 쇠사슬에서 열쇠를 빼낸다. 정처 없이 흔들리는 손에 열쇠를 쥔 채 그가 손을 뻗는다. 그의 말없는 말을 호아는 알아듣는다. 조심스레 열쇠를 잡는다. 이제는 담벼락 아래서 멍든 얼굴을 가린 채 숨어 있지 않아도 될까. 이곳이라면 취한 남편도 찾아오지 못 할 것이다. 호아는 열쇠를 쥔 채 문을 열고 나선다. 끼이익, 돌아가야 할 곳의 냉혹함을 일러주기라도 할 듯 쇳소리가 귀청을 긁는다. 비탈길을 내달리기 전에 그녀는 마지막으로 뒤돌아본다. 눈송이 같은 하얀 꽃이 철조망 위로 조랑조랑 매달려 있다. 꽃송이가 바람에 살랑인다. 꽃송이를 흔든 바람이 향기를 안고 그녀의 품으로 달려온다. 그것은 그의 향기다. 열쇠를 꼭 쥔 채 그녀는 마을을 향해 내달린다.  《문장웹진 1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