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을 용서하라

냉면을 용서하라

 

 

 

명지현

 

 

 

 

그 남자하고 잘 안 되니? 뭐가 문제야? 엄마의 간섭이 핵심에 접근했다.

휴대전화기 있으니 집 전화기는 없애라, 옷장 좀 정리해라, 저게 왜 저 자리에 있니? 좁은 원룸을 구석구석 살피며 보이는 족족 트집을 잡는다. 한편으로 이해는 가지만 사적 영역의 과도한 침범은 혈연 지간이라도 용납할 수 없다. 아무것도 손대지 말라고 외쳤다. 집 전화기는 집 안에서 휴대전화기를 찾을 때 유용하며 음식물 쓰레기는 꽉 채운 다음 버릴 것이고, 철에 맞지 않는 옷은 곧 제철이 돌아오니 가만히 놔두시라. 그런데 그 남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휴대전화기가 없어지면 전화를 걸어 위치 확인을 하는데 가끔은 사라져 버린 다른 물건들에게도 전화를 걸고 싶다. 정작 전화해야 할 사람에게는 연락도 못하면서. 방금도 하마터면 오이에게 전화를 걸 뻔했다. 자동차 열쇠나 리모컨이 안 보일 때도 나도 모르게 전화기를 집어 들게 된다. 그런데 여기 있던 오이가 정말 어디로 갔지?

그 남자가 좋아하는 냉면을 만들어 볼 생각에 엄마에게 한 수 가르쳐 주십사 요청했다. 내 딴에는 인생이 걸린 문제인데 엄마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소개를 받았으면 주말에 데이트를 해야 진도가 나가지. 이걸 왜 혼자 해먹고 있어.”

“낼모레 다 같이 만나기로 했어. 그 남자의 은사님이랑 막내이모도 다 같이.”

엄마는 세탁기에 빨래를 집어넣으며 여럿이 만나서 좋을 게 없다고 충고한다. 나도 알고는 있다. 알고 있기에 난감한 것이다.

지난주, 가까스로 용기를 내 그 남자에게 전화했었다. 전홧줄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꼬아 가며 공짜 영화표에 대해 조심스레 얘기했는데 그는 몹시 애석해하며 다급한 업무에 얽매인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나도 내 처지가 한탄스러웠다. 거절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전화기를 던져 버리고 싶었다. 낙심천만, 홀로 자학의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지난 금요일, 그 남자는 새로 섭외한 냉면집 위치와 모임 날짜를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그래봤자 다 같이 와글거리는 모임에 머릿수 보태 달라는 것. 그 남자가 나중에 둘이서만 영화를 보자고 말은 했다. 그런데 언제?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마침내 냄비에 든 물이 비등점에 도달해 바글바글 끓는다. 봉지를 찢어 기다란 면발을 꺼내면서 고개를 갸우뚱, 철사처럼 가느다란 면발이 얼마나 불어날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저 엄마의 경험을 믿고 도전해 볼 뿐. 제자로서 선생에게 묻는다. 이만큼이면 2인분이야? 엄마는 보지도 않고 빨리 집어넣으라고 한다. 끓는 물에 들어간 뻣뻣한 면발이 서서히 주저앉는다. 기다림에 지치면 나도 이런 꼴이 될 것이다. 슬슬 무력해지고 슬슬 엉켜 버리고.

면이 익는 동안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인터넷에서 출력한 비빔냉면 조리법을 다시 꼼꼼하게 읽는다. 계란을 삶아야 하고, 오이채와 비빔양념을 준비해야 한다. 순서는 간단한데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이미 두 번의 실패를 경험했기에 엄마가 나서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실은 뒷짐 지고 섰다가 완성된 냉면만 날름 먹고 싶다. 순서를 점검하면서 요리법에 삽입된 비빔냉면의 먹음직스런 사진에 빠져든다.

빨간 양념을 얹고 있는 냉면의 앙큼한 자태라니. 연두색 오이채, 노란 달걀과 붉은 양념, 색상의 조화가 산뜻하다 못해 인공적인 느낌까지 든다. 무절임 위에 얹힌 둥근 달걀 반쪽은 위대한 태양의 상징인가. 화려한 것들을 이고 앉은 면발 덩어리는 안에 숨어 잘 보이지도 않는다. 나는 이렇게 우직한 것들이 좋다.

도마 밑에 깔려 있는 오이를 간신히 찾았다. 어떻게 자를까 칼을 들고 주춤거리자 엄마가 서랍에서 채칼을 꺼내 주며 타박을 한다.

“냉면 광신도들 따라다니면서 조리법도 못 배웠니?”

“먹기만 하지 배우는 모임이 아냐. 그런데 할아버지가 그렇게 냉면을 좋아하셨다며? 막내이모가 그러던데. 이북 사람이라서 사흘 걸러 한 끼는 꼭 드셨다고.”  

“일본에서 자란 애가 아버지 식성을 어떻게 알아? 오사카 큰삼촌 얘기겠지. 그래, 다들 냉면 귀신이었어. 사람이 어디를 가든 식성만은 못 버리지. 가만 보니 너도 냉면 귀신이 붙었네.”

채칼에 대고 오이를 쓱쓱 밀자 빗줄기처럼 가느다란 채가 그릇에 수북하게 쌓인다. 채칼을 발명하신 분께 감사.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다니. 엄마는 고춧가루와 식초를 집어넣고 설탕과 다진 마늘을 버무려 비빔양념을 만든다. 슬쩍슬쩍 맛을 봐 가며 순식간에 뚝딱 해치운다.

“막내이모는 그 모임에서 인기 최고야. 일본 여자 말투도 그렇고 애교가 넘치니까.”

칭찬을 하면서도 괜히 심사가 비틀어져 채칼이 엇나간다. 엄마의 반응을 예상하고 이모는 배포도 좋게 계산을 척척 하더라고 덧붙였다.  

“흥, 돈 걱정 없는데 그걸 왜 못해. 죽을 때까지 놀고먹는 팔잔데. 저 혼자 받아 처먹어서 배가 터지겠다.”

막내이모 얘기만 나오면 반드시 따라 붙는 후렴이다. 엄마는 이모가 그 남자를 소개해 준 걸 고마워하면서도 습관처럼 험담을 한다. 이모만 외할아버지 유산을 물려받은 게 여태 배가 아픈 것이다. 명절 때면 친지들은 아직까지 잠실의 상가에 대해 얘기한다. 시세가가 얼만데 어쩌고, 하며 이모를 왕따시키고 끼리끼리 쑤군쑤군. 그나마 제일 맏이인 엄마만 막내이모를 챙겨 주며 가끔 밑반찬을 해 보낸다. 한국 음식이 서툰데다 혼자 살면 제대로 해먹을 리 없다는 게 그 이유다. 뒤에서는 저렇게 욕을 해대면서 말이다.

예전 같으면 이모 편을 들며 반박했겠지만 나도 달라졌다. 어디서나 주목 받고 칭찬 받는 이모 때문에 내가 힘들다. 달걀에 노른자와 흰자가 있듯 눈부신 인생이 있으면 들러리 인생도 있다. 그런데 내가 흰자 신세가 되고 보니 엄마의 욕 퍼레이드가 이해된다. 이모가 모임에서 좀 빠져 주면 좋겠는데 그럴 일은 없겠고 내가 피하자니 자존심이 상한다.

그 남자가 이모를 보며 웃을 때면…… 처음에는 나도 따라 웃었지만 요즘은 얼어붙은 가슴이 쩍 쪼개져 버린다. 이모가 말만 붙이면 그 남자는 한껏 달아오른 얼굴로 더듬거리기 일쑤였다. 짝사랑하는 선생님 앞에 선 소년의 표정이었다. 설마, 설마하면서도 그때 그 상황을 떠올리면 죽을 것처럼 화가 난다. 모임이고 뭐고 다 귀찮다. 냄비에 든 면발이 바글바글 끓는 소리를 낸다. 왜 이리 눈치가 없을까. 꺼내 달라고 보채는 것처럼 다급하게 바글바글. 미워 죽겠네. 김이 설설 나는 냄비 속을 응징하듯 가만히 내려다본다. 뿌연 국물이 용암처럼 들끓는다. 언젠가는 되갚아 줄 날이 오겠지. 두고 보자.

 

경기도 구리라니. 그렇게 먼 곳은 갈 수 없다고 계속 사양하다가 결국 택시를 잡아탔다. 이제는 냉면 모임이 시들하다. 서울 시내라면 몰라도 황금 같은 주말을 그렇게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감사 받는 시즌이라 자잘한 숫자들과 씨름하며 지난주 내내 강행군이었다. 그 남자의 전화를 받는 순간에도 계속된 야근으로 눈꺼풀이 무거웠다. ‘쉬고 싶다, 쉬게 해줘’라고 부르짖으며 택시 안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비몽사몽간에 택시비를 치르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왜 여기 온 거지?

신축 건물 공사장을 헤매다가 행인들의 도움으로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 끝에 허름한 회색 시멘트 주택이 보였다. 하늘색 페인트칠이 절반 벗겨진 나무 대문에 낙서처럼 휘갈겨 쓴 냉면집 상호가 붙어 있었다. 시멘트 담장을 타고 오른 능소화 넝쿨에 주황색 꽃 무리가 드문드문 피었다. 줄기에 조롱조롱 달린 꽃보다 바닥에 수북하게 떨어진 주황 꽃잎들이 더 아름답다.

주차장의 미니버스는 그들이 타고 온 것이다. 안쪽에서 시끌벅적 웃음소리가 들린다. 이럴 때는 정말 안으로 들어가기가 싫다.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자리를 잡고 앉아 안면을 익힌 사람들과 반가운 척 인사를 나눠야 하는 과정을 예상하며 주춤주춤 발걸음을 옮긴다.

손님이 네댓 명 앉아 있는 식당 안은 어두침침하고 시멘트 바닥에 물이 흥건하다. 육수 우리는 누린내와 후텁지근한 공기. 낡은 텔레비전에서는 축구 중계가 한창이다. 이렇게 형편없이 지저분한 식당은 처음이다. 이름난 곳은 다 돌아다녀서 이제는 이런 곳인가. 안에서 막내이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글동글 꼬불꼬불 말아 쥔 것 같은 유별난 콧소리. 발걸음이 멈칫하다가 아예 멈춰 섰다. 어쩐지 들어가고 싶지가 않다. 돌아가려면 다시 택시를 불러야 하는데. 내가 여기에 온 이유와 오기 싫었던 이유가 서로 충돌을 한다.

언젠가 식당 화장실에서 막내이모가 립스틱을 고쳐 바르며 내 의사를 타진했을 때 나는 예스는 아니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 남자, 멀쩡한 외모에 직업도 괜찮다. 시간이 자유로운 번역가라서 일을 할 때만 바쁘다.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좋은데다, 이문동 32평 아파트 소유자라고 했다. 나이가 많아 백점 만점은 아니어도 어디서든 빠질 인물이 아니라는 이모 말에 동의한다.

그런데 여자에게는 직감이란 게 있지 않나. 그 남자는 나에게 반하지 않았다. 먹자마자 음식의 맛이 있는지 없는지 대번에 알게 되는 것처럼 사람의 감정 역시 정직한 것이다. 아무리 연막을 쳐도 결국엔 드러난다. 그럼에도 그 남자는 자꾸만 나를 냉면집으로 불러냈다. 그게 바로 문제다. 이왕이면 여럿이서 먹고, 여럿이 어울려야 재미있다는 남자의 주장에 반박도 못하고 끌려 다니는 중이다. 진정한 소개팅이라면 단둘이 만나야 정상이 아닌가.  

이모는 엇나간 립스틱 라인을 휴지로 닦아 내며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다.

“막대기처럼 뻣뻣하게 굴지 말고 방실방실 웃어 봐라. 그래, 그렇게 웃어. 너 잘되라고 내가 냉면을 몇 그릇이나 먹었는지 아니?”  

결국 나 때문에 이모가 노력 봉사하신다는 말씀. 정말 그럴까. 그간 숱한 안타를 쳤던 연애계의 진정한 선수인 이모는 지금 만루 홈런을 노리고 있다. 이모는 자신의 인기를 만끽하며 남성 회원들 모두에게 골고루 애정을 표시했는데 식당에서는 늘 교장선생 옆에 앉았다. 그 남자의 은사인 교장선생은 아는 게 많아 화제가 풍부했고 손수 만든 서화첩을 회원들에게 선사하기도 했다. 이모가 그 솜씨에 깜빡 넘어가자 교장선생은 사 년 전 부인과 사별했다는 정보를 슬며시 흘리며 자신이 소유한 제주도 별장을 자랑했다.

이모에게 회원들 중 누가 제일 그럴듯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날아오는 공을 잘 파악해야 홈런을 날릴 것이 아닌가.

“한 살이라도 젊으면 섹스는 잘하겠지. 그거 잘하면 다른 건 필요 없어. 그래도 영혼이 통해야 하지 않겠니? 얘기가 통하기로는 그 교장선생인데…….”

부정확한 발음에 끄트머리가 흐려져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다다익선이라고 했던 것 같다. 다다익선. 이것, 저것 다 갖겠다고?

이모에게는 정확한 목표가 있으므로 모임에 빠지지 않는다. 빠질 수가 없다. 아마 냉면 동호회에서 개근상을 받을 것이다. 이모는 누구라도 건질 것이 분명하고 아마 나는, 그 남자와 만에 하나 결혼한다면 빌어먹을 동호회 사람들이 신혼집에 함께 살거나 그와 나의 침대에 줄줄이 누울 것이다. 그 남자가 다 불러들일 테니까. 이왕이면 여럿이 즐겁게, 여럿이 사는 게 둘만 있는 것보다 좋아요, 사양 말고 들어오세요! 알고 보면 그 남자도 다다익선 신봉 주의자다. 여러 군데 불려 다니느라 다다익선도 참 피곤하겠다.  

쟁반을 든 종업원은 나를 보고도 인사는 커녕 축구 경기에 정신이 팔려 소리만 지른다. “아, 저런! 아랍 애들 쥐약 먹었어!” 이 식당은 장사 개념과 위생 관념이 마이너스 백점이다. 기름때가 덕지덕지 붙은 탁자, 손님을 무시하는 불친절. 동호회 회원들이 든 방에서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잠잠해지자 이모의 콧소리가 들린다. 핀셋으로 집어내는 것처럼 유독 선명하다. 타고난 콧소리는 어쩔 수 없다지만 귀국한 지 십 년인데도 어눌하고 흐릿한 발음은 변함이 없다. ‘격렬한’과 같이 복잡하고 강한 발음은 아예 흉내도 못 냈고 ‘습니다’ ‘이랬어요’처럼 받침이 붙은 말은 코맹맹이 소리로 대충 뭉개 버린다.

무슨 얘기가 나왔는지 일순 조용해진다. 이모의 목소리가 띄엄띄엄 이어진다.

“아버지가 나를 보러 올 수가 있겠어요? 오사카까지 여비가 얼만대요…… 정말 가난하게 산댔어요…… 한국에 남은 형제들은 빚 때문에 굶주리고 학교도 못 보낸다기에 정말 그런 줄 알았는데…… 내가 원통한 건 조총련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던 게 아니라…….”

훤히 아는 내용이라 얼굴이 뜨듯해진다. 북한에 가지 않으려고 열아홉 살에 늙은 목각장이에게 시집갔던 이모. 여건이 좋았다면 뭘 하든 유명한 인물이 되었을 텐데. 가파른 인생을 굽이굽이 지나 지금은 재벌 사모님 못지않은 품위가 흐르건만 뭐가 아쉬워서 저런 하소연인가. 저 안에서 얘기를 듣고 있을 그 남자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어. 그게 싫다. 그게 제일 싫은 거다.

이모의 콧소리를 피해 복도로 되돌아 나왔다. 방금 아랍에미리트가 한 골을 허용해 한국이 우세한 상황. 이기고 있는 경기에는 관심이 증폭하는 법이라 식당 안은 응원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냉면 동호회 회원들만 방에 틀어박혀 냉면에 대한 예의를 다하고 있는 셈이다. 빈대떡 굽는 기름 냄새에 슬슬 배가 고프다. 오도 가도 못하고 이게 뭐하는 짓인지.

그간 찾아다녔던 유명한 냉면집들은 방송에 등장했던 장면이나 유명인들의 사인, 신문 잡지 기사를 주렁주렁 걸어 두었는데 이 식당 벽에는 소주 광고 포스터와 가족사진뿐이다. 메뉴랍시고 달력 종이에 매직으로 삐뚜름하게 쓴 글씨 〈비냉, 물냉 다 됩니다〉 밑에는 메밀 포대가 수북하게 쌓였다. 이모의 신세타령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구경한다. 여러 장의 사진임에도 비슷한 배경에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만든 포즈가 판에 박은 듯 같다.

막내이모는 오랜 동안 사진으로만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사촌들이 일본이모라 불렀던 검정 치마에 하얀 저고리를 입은 앳된 여학생은 고궁을 배경으로 양산 속에서 웃고 있는 여자였고 기모노에 기묘한 머리 장식을 한 어린 신부이기도 했다. 결혼사진 속 이모는 탐스런 백합 같았는데 나이 든 신랑의 구릿빛 웃음은 화가 날 정도로 징그러웠다. 둘은 삼 년 만에 헤어졌다던가. 이모는 첫 결혼 생활에 대해 얘기할 때면 반드시 목을 움츠리며 ‘신혼방을 차렸던 오타루는 눈이 많고 징글징글하게 추웠어’ 하며 입김이라도 불듯이 손바닥을 싹싹 비볐다. 그 이모부에 대해서는 좋게도 나쁘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추웠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모는 숱한 남자들과 시시한 정분을 나누며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외가 친지들이 이모의 남성 편력을 입에 올리며 도화살 운운할 때마다 나는 몹시 흐뭇했다. 한동안 고위층 스캔들로 떠들썩했던 린다김이나 역사 속의 마타하리를 떠올리며 걸걸한 목소리에 당찬 모습을 그려 냈다. 내 상상 속의 막내이모는 나의 흠모를 먹고 자라 점점 대단한 여걸이 되었다. 카르멘처럼 탐욕스럽고 거친 매력을 발산하면서 유디트처럼 적장의 목을 베고 끝내는 잔 다르크처럼 순교해야만 했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사진이 아닌 막내이모를 처음 만났던 건 십삼 년 전, 내가 고3 때였다. 나라가 거덜이 나 IMF 구제 금융을 받던 때라 손님 방문이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는데 하필이면 막내이모가 한국으로 패키지 관광을 온 것이다. 엄마는 “우리가 걔를 양녀로 보낸 것도 아닌데 죄책감을 가질 이유가 없잖아?” 친척들에게 전화로 투덜거리면서도 신경이 쓰이는지 날마다 쓸고 닦고 무지막지하게 음식을 해댔다. 이모의 몸 치수도 모르면서 비싼 한복까지 구입해 놓았다.

대문 밖에 서 있던 막내이모는 사진 속 모습보다 훨씬 작고 여려 보였다. 마흔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자녀가 없어서 그런지 몸매도 날씬하고 처녀처럼 보였다. 적장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커녕, 누가 재미삼아 놀리면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위태위태해 보였다. 형제와 조카들 앞에서 수줍어 어쩔 줄 몰라 하며 “자르 부탁, 함미다” 그렇게 몇 번이고 말하며 구십도 각도로 공손하게 인사했다. 어른들이 뭐라고 덕담을 해도 잘 못 알아들었고 그저 집 안의 가구들이나 자질구레한 것들을 신기해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

한국 드라마를 보며 한국말 연습을 했다고 대사를 흉내 내다가 집 안 구조가 드라마에서 본 것과 똑같다며 진지한 분위기에서 철없이 혼자 웃음을 터트렸다. 엄마가 차려 내는 음식을 대할 때면 몹시 미안해하면서 손님처럼 조심조심 칭찬했다. ‘스미마센’ 대신 ‘미안해요, 미안하무이다’라고 연신 읊조리던 그 소심했던 목소리와 막내이모의 수줍어하는, 진심으로 미안해하던 그 순한 표정이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아 있다.   

당시에도 이모는 부자였고 가까이 볼수록 우리 사는 수준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한동안 일본과 한국을 오가다가 십 년 전부터는 아예 서울에 눌러앉았다. 이모가 아주 어릴 적에 살았던 구파발의 낡은 집을 사들인 것이다. 이모의 주거 목적이라기보다는 추억이 많은 그 집을 외할아버지에게 사 줬다는 말이 맞지만.  

“슛! 슛! 아이고 저런 것도 못 넣냐!”

방금 우리 선수가 헤딩한 골을 상대 골키퍼가 아슬아슬하게 막아 냈기에 식당 안은 한층 더 수선스러워졌다. 방 안으로 향한 복도로 들어가자 안에서도 와르르 웃는 소리가 들린다.

신발장에 이모의 페레가모 구두와 그 남자의 등산화가 나란히 놓였다. 두 신발을 멀리 떨어뜨려 놓고 그 사이에 내 하이힐을 끼워 넣는다. 갑자기 방문이 열리더니 아는 얼굴이 튀어나온다.

“지금 왔어요? 우린 벌써 다 먹었는데, 다들 기다려요.”

방문을 열자 회원들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중이다. 역시 화제는 축구다. 현재 상황의 득점을 알려 주자 다들 흥분해서 중계방송을 보러 나가고 방에는 이모와 그 남자, 교장선생까지 넷만 남았다. 앉자마자 비빔냉면과 물냉면을 반 인분씩 맛보는 동호회만의 특권인 ‘반반’을 주문했다.

이모는 노을에 물든 것처럼 불콰한 얼굴로 아휴, 미안하다, 내가 낮술 했어. 미안으로 시작해서 미안, 미안을 줄곧 말하면서도 교장선생이 권하는 술잔을 연거푸 비웠다. 오는 길이 멀지 않았어요? 축구야 나중에 스포츠 채널에서 볼 수 있어요, 그 남자는 내 잔을 채워 주며 제법 다정하게 말을 붙였다. 그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담배 냄새와 남성 화장품이 뒤섞인 아련한 사내 냄새가 풍겼다. 이 냄새를 차지하려고 휴일, 먼 길을 달려온 것이다. 피로감은 냉큼 도망가고 그와 달콤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이모와 교장선생은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개인사를 풀어냈다.

버림받는 게 무서워 결혼은 실패 연속, 덧정 없는 친아비에게 받은 건 고작 상가 하나, 기껏 돈일뿐…… 나는 이제 늙었어요, 우리 조카 좀 봐요, 얼마나 예쁘고 젊은가. 두 남자는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고운데 무슨 말씀이냐고 이모를 위로하려 든다.

“이모는 아직 매력이 넘치잖아요. 누가 그 나이로 보겠어요?”

나도 질세라 입에 발린 위로를 하자 이모는 술기운이 넘실거리는 눈매를 찌그러뜨리며 말했다.

“그래도 너에 비하면 나는 완전히 할망구인걸.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나를 보는 것 같아 눈물이 나. 얼마를 들이면 너처럼 될 수 있을까. 한국은 성형 비용이 싸지?”

이모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 입이 쩍 벌어졌다. 내 나이 이제 서른셋. 시들어 가는 꽃. 그래도 낙엽이 아닌 엄연한 꽃. 어째서 나와 비교를 하는 걸까. 찌그러진 양은주전자를 기울여 육수를 따랐다. 따끈해진 컵을 들어 곧장 벌컥벌컥 마시며 혼자 중얼거렸다. 십억을 들여도 안 될 겁니다. 파우스트 박사가 괜히 영혼을 팔았겠어요? 식당 주인이 담근 구기자술과 뜨거운 육수가 만나자 빈속이 찌르르 요동을 친다. 반격의 칼을 뽑았다.

“틈틈이 고치셨잖아요. 보톡스 자주 맞는다고 하시고는.”

시시한 폭로를 하면 내 자신이 저렴해진다는 걸 안다. 알면서 했다. 반응은 신통치 않다. 움푹 팬 눈가에 보톡스를 두 방이나 맞았다고 교장선생이 대수롭지 않은 양 고백한 것이다. 젊어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농익은 아름다움은 오십 세를 지나 봐야 드러난다. 두 남자가 서로 질세라 내면의 아름다움 운운하며 맞장구를 치는, 낙엽 왕비님 떠받드는 구차한 분위기에 술잔만 바빴다. 마침내 ‘반반’ 냉면이 도착했다. 내 앞에 놓인 두 그릇의 비빔냉면과 물냉면을 보자 웃음이 픽 나왔다.

여태 먹었던 냉면과는 아주 다른 녀석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건 경애하는 냉면님이 아니라 녀석이라 불러야 맞다. 녀석들은 벌거벗은 맨몸으로 그냥 나왔다. 반달 모양의 배 조각이나 달걀과 무절임, 종잇장처럼 얇게 썬 수육 꾸미는 기본이라 생각했는데 이 냉면은 특이하다. 아무 치장도 없이 둥글게 만 갈색 면발이 스테인리스 사발에 우직하게 담겨 있다. 기운 센 동네 아저씨가 웃통 벗고 나온 것처럼 야생미가 철철 넘친다. 비빔냉면도 시뻘겋고 걸쭉한 양념을 이불처럼 뒤집어쓴 채 곁들인 것은 전혀 없다. 식당의 외관하고 비슷하게 겉치레 없는 모양이라 맛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양 또한 푸짐하다.

“너무 많아 두 그릇은 못 먹겠네요.”    

“이건 내가 먹어 줄까?”

이모는 안주로 빈대떡을 먹느라 냉면은 손대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야 구미가 당긴다며 비빔냉면 그릇을 끌어간다.

“어머나, 이 색깔 좀 봐요, 불처럼 활활 타네.”

매운맛에 약한 이모는 면발 위의 붉은 양념을 덜어내도 고생할 판에 종지에 든 여분까지 듬뿍 떠 넣는다.

“그렇게 많이 넣으면 혼이 날 겁니다. 굉장히 매워요. 저런, 저런.”

이모가 술김에 일을 저지른다고 판단한 교장선생이 조바심을 낸다. 이모가 흐물흐물 웃으며 비비던 젓가락 한 짝을 떨어뜨리자 교장선생은 냉면 사발을 제 앞으로 끌어당겨 정성껏 비벼 준다. 아, 하며 비빈 면을 이모 입에 넣어 주고 이모는 응석을 부리며 받아먹고, 내 옆의 남자는 공연히 인상을 구기며 “선생님, 소맷자락에 묻겠어요.” 엄숙한 경고를 한다. 이모는 철없이 오물거리며 배시시 웃고 교장선생은 이모의 붉은 입술을 냅킨으로 토닥토닥 닦아 주는, 노년의 한 쌍이 주책 떠는 광경이라니. 어쨌든 바람직하다. 둘이 오순도순 모범을 보이면 내 옆의 남자도 부화뇌동할지 모른다. 보고 배워라, 좀.

나는 물냉면에 식초와 겨자를 부어 뒤섞은 다음 대범하게 입에 집어넣었다. 면발은 두툼하니 건장하고 국물은 더없이 진하다. 씹기가 무섭게 선명한 메밀 향이 왁 덤빈다. 노골적으로 진한 향미에 취해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로지 맛에 집중하며 무아지경, 꾸미를 제외시킨 이유를 알아차렸다. 승부처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려는 전략이다. 다시 양껏 면발을 빨아들이고, 우물우물 씹고, 국물을 들이마시고, 빼앗길세라 젓가락질을 서두른다.     

이모는 혀를 내밀고 후후 열기를 뱉는다. 가뜩이나 상기된 얼굴이 더욱 시뻘겋게 달아올라 콜록콜록 기침을 하다가 허겁지겁 찬물을 마신다. 교장선생은 어쩔 줄 모르며 종업원을 불러 사이다를 달라, 뜨거운 육수를 달라며 수선을 피운다. 어지간히 매운 모양이라 내 그릇과 바꾸려 했더니 이모는 그 와중에 손을 내젓는다. 당장 울 것처럼 눈시울이 붉어져서는 아, 죽을 것 같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몸을 들썩거린다. 나는 차가운 메밀 향에 젖어들며 그 남자를 힐끔거렸다. 그는 호된 고문에 시달리는 이모를 황홀한 눈빛으로 훔쳐보고 있다. 나는 그를 보고, 그는 이모를 보고, 엇갈린 시선이 면발처럼 엉켰다. 나의 차가운 눈길은 달아오른 그들을 식히지 못한다. 그저 나 혼자 무참하게 얼어붙고 있다.

“냉면이 참 맛있네요, 이런 식당은 어떻게 알아내셨어요?”

주위를 환기시키려 말문을 열었으나 아무 반응이 없다. 아, 아, 이모의 신음 소리가 점점 높아 간다. 다급한 신음을 내지르며 몸을 위아래로 연신 들썩거린다. 상위 체위의 들썩임이 연상되는 에로틱한 동작이다. 이모는 다시 젓가락을 들어 비빔냉면을 먹는다. 다들 만류해도 중독이 된 것 같다며 조금 집어먹다가 또 혀를 내민다. “아, 매워, 매워! 끔찍하게 매워.” 이모가 고통스럽게 앞섶을 쥐어뜯자 풍만해서 늘어진 젖가슴이 출렁거리며 깊은 골을 드러냈다. 민망해서 더는 볼 수가 없다. 두 남자는 코가 닿을 듯이 이모에게 다가 앉았다.

“아, 그것도 못 넣네, 집어넣어! 집어넣어! 슛, 슛! 찬스야, 찬스!”

밖에서는 손님들이 단체 응원을 하고 방 안의 두 남자는 마른침을 삼키며, 이모가 매운 오르가슴에 도달하기를 응원했다. 옷만 입었다 뿐이지, 남자 둘이 한 여자와 섹스를 하는 것 같다. 교장선생과 그 남자는 욕정의 날 끝으로 이모를 갈기갈기 뜯어내고 찢어발긴다. 달아오른 몸이 상상의 최고치까지 도달했음을 저 벌건 눈빛이 말해 준다. 이모의 고통을 바라보는 두 사내의 눈빛.

“골인! 골인! 우와아아!”

드디어 득점을 했나 보다. 엄청난 박수 소리와 한호성이 동시에 터진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면발을 건져 먹는다. 뜨거운 공기 속에 앉아 차가운 냉면을 먹는구나.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교성을 내지르며 후끈 달아올랐는데 나만 춥다.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마음도, 머리도 차갑게 식어 점점 담담해진다. 반쯤 남은 비빔냉면은 지나친 붉은색 때문인지 선혈이 흐르는 살코기처럼 보였다.

       

새 옷을 산 날은 기분이 복잡하다. 큰마음 먹고 카드를 긁었는데 생각보다 몸에 딱 맞으면 체중을 고민하게 되고 옷이 그럴듯하게 어울려도 우울하다. 다시 입고 거울을 본다. 이렇게 비싼 코트를 걸치고 회사밖에 갈 데가 없다니. 이런 내 마음을 알 턱이 없는 엄마는 뱃살을 줄이라는 둥, 어째서 매번 칙칙한 브라운 색만 고르냐고 참견이다. 끝이 없는 잔소리, 잔소리. 요 몇 주간은 입덧으로 고생하는 올케를 봐주느라 엄마가 바빴는데 내 복은 거기까지인가 보다.

엄마는 청소기부터 돌린다.

“게을러 터져 가지고 이 먼지를 다 들이마시니, 원.”

청소기를 사방으로 휘젓고 다니며 동시에 총체까지 휘두르니 청소 로봇이 따로 없다. 환기를 하려고 창문을 활짝 열자 잿빛 하늘에 싸락눈, 깨알만한 눈이 방 안으로 들어온다. 올해의 첫눈인가.  

창가에 서서 눈 내리는 밖을 내려다본다. 주말의 오피스텔 거리는 아직 한산하다. 날이 포근해 눈은 쌓이지 않을 것 같다. 야자수 전광판이 붙은 모텔 주차장으로 연두색 경차가 들어가고 있다. 언젠가 그곳을 드나드는 남녀의 숫자를 세 본 적이 있다. 내 자신이 한심해서 반나절 만에 관둬 버렸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남녀들이 몹시 바쁘다는 걸 알아챘다.

청소를 끝낸 엄마는 김장김치를 플라스틱 통에 나눠 담는다.

“절반은 너 먹고 나머지는 이모 갖다 줘라.”

이모는 구파발에 없다고 하자 주소 알아내서 꼭 보내라고 성화다. 귀찮은 일거리만 던져 준다. 그렇게 미워하면서 반찬까지 해주는 이유가 뭐냐고 엄마에게 물었다. 미운 년 떡 하나 더 먹으라는 거지 뭐야, 머쓱해하다가 돌연 소리를 지른다.

“그러니까 시집을 가서 애를 낳아 봐야 해. 부모 된 심정을 알아야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지. 그저 주둥이만 살아 가지고.”

부모 정을 못 받고 자란 막내이모를 이해해 줘야 한다면서 속이 허하니까 이놈 저놈 갈아치우는 욕심쟁이가 된 거라고 한다.

“막내이모가 힘들 때 이모들이랑 삼촌이 도와준 건 없잖아? 야박하기는 마찬가지지 뭐.”

“다들 먹고 살기 힘들었어. 너희들은 상상도 못할 거다.”

“안대, 다 알고 있대. 그러니까 이모는 다 용서한댔어.”

“흥, 누가 할 말을 지가 해?”

편을 들어 주는가 싶더니 이내 습관대로 욕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돈도 많은 주제에 형제들과 십 원 한 장 나누지 않았다! 아버지 병수발을 들 때부터 계산을 했겠다! 앙큼한 년!

엄마는 씩씩하게 욕을 하면서 반찬들을 통에 담아 야무지게 갈무리했다. 혹시나 국물이 샐까 봐 몇 번이고 비닐로 동여매고, 동여매고. 저렇게 정성을 다해도 막내이모가 최근에 눈이 튀어나오게 비싼 밍크코트를 구입했다는 걸 안다면 대번에 그악스러운 욕을 퍼부어댈 것이다.

김장김치와 반찬통은 당분간 우리 집에 숨겨 둘 것이다. 막내이모가 삿포로에서 엽서를 보냈다. 냉면 동호회 회원들과 삿포로의 눈 축제, 유키마츠리를 즐기러 장기간 여행을 간 것이다. 편하게 머물 곳이 있으니 두어 달 있다가 귀국할 거라 했다. 날씨와 건강에 관한 간단한 안부 인사가 세 줄 적혀 있었고 주소 대신 ‘마타하리로 부터’라고 흘려 쓴 글자가 인상적이었다. 속이 상해 공항에 나갈 수 없다는 문자 메시지만 달랑 보냈던 조카에게 엽서라.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하와이에서 보낸 이모의 편지를 받았었다. 가고시마의 검은 모래가 달린 엽서도 신기한 구경거리였는데 와이키키비치의 모래가 비닐팩에 담겨져있는 편지에는 내 이름이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사촌들 중 내가 유일하게 답장을 했기 때문에 막내이모가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서랍 안을 떠돌던 편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가벼워졌다.

몇 년이 지난 후에는 편지에 부착된 작은 비닐이 텅 비어 버렸다. 모래알이 편지를 탈출해 서랍 안을 떠돌았던 것이다. 서랍 바닥에 와이키키비치의 모래 알갱이가 깔려 있는 걸 보면 괜히 흐뭇했었다. 책상 서랍에 넣어 둔 하와이라니. 막내이모에게 정성껏 답장을 쓰면서 멋 좀 부리느라 ‘나의 마타하리에게’라고 적었었다. 수 년 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이번에 삿포로에서 보낸 편지에 그런 단어가 있어 참으로 뜻밖이었다. 둘만 간직한 비밀을 확인시켜 준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내 속에 뭉친 딱딱한 응어리가 언젠가는 풀리겠구나, 그런 예감이 들었다.

삿포로에서 온 엽서를 종이 상자에 집어넣다가 그 남자의 사진을 발견했다. 막내이모와 다른 냉면 동호회 일원이 함께 있음에도 내 눈에는 뒤쪽에서 흐릿하게 찍힌 그 남자의 얼굴만 보였다. 한참을 봤다. 사진을 찍어 줄 때 사양하지 않았더라면 이것보다 근사한 사진을 더 많이 얻었으리라.

그 남자는 삿포로 여행을 가자고 내게 몇 번이고 권유했었다. 들뜬 기분을 감추려고 애를 쓰는 목소리였다. 지금쯤, 다다익선을 즐기는 무리들은 전부 신이 나서 이모가 베푸는 호의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월급쟁이 입장으로는 시도도 할 수 없는 긴 여행인데다 그들이 함께 지낸다는 사실에 울화가 치밀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남자를 탓하지 않기로 했다. 마타하리에게 사로잡혔으니 어쩌겠는가. 열기가 많아 달아오른 몸뚱이, 냉면 정도로는 식지 않을 테니, 부디 추운 곳에서 열 좀 식히고 오시라.

이모가 한국에 돌아와 제일 사랑한 건 아랫목이었다. 뜨듯하게 몸을 지지자 긴 세월 차게 굳었던 몸이 노곤하게 풀렸다고 했다. 막내이모가 첫 결혼을 하고 오타루에서 신혼 생활을 할 때는 눈이 많은 고장이라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어릴 적 더부살이를 할 때부터 찬밥을 하도 먹어 차가운 음식은 딱 질색이었다고 했다. 눈이라면 징글징글해! 그런데 이제는 눈 축제를 보러 가고 차가운 냉면도 즐긴다. 아무리 싫은 것도 시간이 지나면 풀어지게 마련인가.

“이게 뭐냐?”

엄마가 목에 건 돋보기를 끼고 손가락에 쥔 것을 들여다본다. 내 이부자리에 흩어져 있는 작고 투명한 알갱이들을 엄마가 발견한 것이다.

“아, 그거 사리야. 이제는 몸에서 사리까지 나와.”

“지랄한다, 죽지도 않았는데 무슨 사리? 여기 껍데기 있네. 방습제 실리카겔이 터졌구만.”  

“내가 머리 긴 수도승이요, 회사 다니는 수녀잖아. 자고 일어나면 사리가 꾸역꾸역 나온다고.”

“이불에서 김 좀 까먹지 마.”

엄마는 매트리스를 번쩍 들어 툭툭 털어 낸다. 무시무시한 괴력이다. 엄마는 친구들한테 얘기해 두었다면서 곧 선 보러 나갈 준비를 하라고 한다. 친구들 동원해서 수소문하는 건 벌써 몇 년 전에 끝났다는 걸 안다. 알면서도 깐죽거리며 결혼 말고 연애 대상만 물색해 달라고 했다. 이제 와서 골 아프게 뭐 하러 결혼을. 인생은 저 싸락눈처럼 풀풀 날리는 건데. 저렇게 둥둥 떠다니다가 안착을 하기 무섭게 녹아사라질 것이다.

눈발이 약해 곧 멈출 것 같지만 기분만은 크리스마스다. 뜨듯한 집 안에서 귤이나 까먹으면 더 바랄 게 없다. 아무래도 갈색 니트 치마와 호피 무늬 구두는 바꿔야겠다. 교환을 할 때는 젊어 보이는 의상을 우선으로 선택하겠다고 마음먹는다. 대차게 카드를 긁어야지. 실연을 극복하려면 머리 스타일을 바꾸거나 돈을 왕창 쓰거나, 둘 중에 하나는 해야 한다. 올해의 첫눈을 보며 고작 이런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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