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 제인 오스틴

 

모텔 제인 오스틴

 

 

김선재

 

 

 

이것이 무엇인지 아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 내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것이 내가 잠든 사이에 일어난 일이 분명하다는 사실뿐이다. 막 잠에서 깨어난 나는 내 손바닥 위에 놓인 유치를 들여다보던 옛날의 그날처럼 어리둥절해진다. 누군가 우편함에 고지서를 꽂아 놓듯 내 손에 무엇인가를 쥐어 놓았다. 분명히 느슨하게 말아 쥔 내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것은 흰 바탕에 검은 줄이 쳐진 메모지다. 곰곰이 지난 시간을 되짚어 보지만 떠올릴 만한 것이 있을 리 없다. 나는 단지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이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일을 끝낸 다음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첫차 시간을 기다렸고, 첫차에 타는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자리에 앉자마자 녹슨 씨(=이제니의 시 「녹슨 씨의 녹슨 기타」에서 따옴)를 다리 사이에 낀 채 습관적으로 눈을 감았고 곧 잠이 들었다. 그 외의 일은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서너 번쯤은 누군가의 어깨로 몸이 기울어지기도 했고 또 두어 번쯤은 고개가 뒤로 넘어가기도 했지만 그것조차 별일은 아니다. 그렇게 졸다가도 내가 내려야 할 곳을 한 번도 놓쳐 본 적이 없었고 오늘 또한 그랬다. 막 출발하려는 전동차에서 녹슨 씨를 안고 허둥지둥 내린 것까지 다른 날과 같았다.

전동차는 오래전에 굴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승강장에는 메모지를 쥔 나만 남았다. 그리고 음모처럼 어두운 굴속 저편에서 다시 전동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대체 누구냐고, 뭐냐고 나는 묻지 않는다. 대답할 리 없다. 정작 궁금한 것은 혼자 이해하고 해결해야 한다. 생각해 보면, 나는 무엇인가를 오래 쥐어 본 적이 없다. 내가 손에 쥐게 되는 것들은 대부분 얼마 못 가 나를 떠났다. 연은 단순히 건망증일 뿐이라고 나를 위로했지만 그것은 내 의지였고 내 손의 의지였고 떠난 것들의 의지였다. 나는 걸으며 커피를 마시는 대신 그 자리에 서서 훌훌 마셨고 지갑이나 가방을 드는 대신 주머니가 많이 달린 옷을 선택했다. 그나마 녹슨 씨가 여태 내 곁에 남아 있는 것은 내가 언제나 녹슨 씨를 어깨에 메고 있기 때문일 테고 연이 떠난 것은 내가 그녀를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떠내려가는 나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때 나는 바닥이 없는 급류에 휘말렸다. 산과 하늘과 사람들이 시야에서 오르락내리락거렸다. 본능적으로 모든 색들이 회오리 사탕처럼 빙글빙글 돌다가 한 점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느꼈다. 산다는 것이나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때였으므로 살아야 한다거나 죽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물살이 나를 거칠게 잡아채 어디론가 끌고 가고 있었고 숨을 몰아쉴 때마다 흙탕물이 입속으로 들어왔다. 발버둥을 칠 때마다 조금씩 어둠이 깊어졌다. 무엇인가를 잡아야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인가를 손으로 그러쥐었다. 일행 중 누군가가 던진 등산용 로프였다. 물 밖으로 끌려나온 나는 로프를 감아 쥔 내 손을 보았다. 그때까지 로프를 손에 쥔 내 손이 덜덜 떨고 있었다. 손바닥에서 피가 배어나왔다. 나는 9살에 산에서도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누군가는 그 일을 기적이라고 했지만 그건 순전히 내 손의 의지였다. 나는 그 손이 다시는 간절히 무엇인가를 잡으려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는 것을 50개쯤의 우산을 잃어버리고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평생 할 일을 몇 분 동안 안간힘을 다해 완수했어. 그러니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고 손이 내게 얘기한 적은 없지만 말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는 이해했고 동의했으므로 내 손이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행위들을 제외하고는 시계추처럼 마음껏 흔들리게, 쉬게, 연주하게.

  

나는 쥐고 있던 손을 펼쳐 구겨진 메모지를 바라본다. ‘누군가가 구걸의 방편으로 이용하는 종이였던 것일까’라고 잠시 생각도 했지만 그런 사연은 대개 구구절절하기 마련이다. 또한 그들이 이걸 그냥 쥐고 내리게 내버려 두었을 리 없다. 나는 작은 메모지를 다시 바라본다. 종이는 반으로 접힌 사개가 살짝 들려 있기까지 하다. 마치 윤기가 좔좔 흐르는 핑크색 립스틱을 바른 여성의 반쯤 열린 입술처럼 말이다. 그 안을 보아야 할 이유도 없지만 보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 사실 별일도 아니다. 나는 녹슨 씨를 어깨에 둘러메고 드디어 종이를 펼친다. 젠장, 가슴이 조금 두근거린다.

3.12 모텔 제인 오스틴 1207 저녁 8 부디.

적잖이 실망스럽다. 내용은 있지만 나와 상관없는 내용이 분명하다. 약속을 휘갈긴 사적인 메모 같다. ‘젠장, 별것도 아니잖아’라고 내뱉고 나니 정말 별것도 아니다. 젠장.

남자 같잖아, 하지 마.

연은 내가 젠장, 하고 말할 때마다 화들짝 그렇게 말했다. 남자만 그 말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연은 유난히 그 단어에 예민하게 굴었다.

네가 쓰는 젠장은 정말 남자의 그것보다 훨씬 더 남자 같이 들려.

연은 내 머리카락을 자신의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감아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내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휘라는 말이었다. 누군가 내 머리에 손대는 것은 정말 싫었지만 나는 그녀가 긴 머리를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으므로 잠자코 있었다. 어쩌면 연은 나보다 내 머리카락을 더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아주 느리게 자랐다. 그걸 연은 게으른 머리카락이라고 표현했다. 그 게으른 머리카락은 숱도 적고 명주실처럼 가늘어 여름이 되면 가뭄에 말라 가는 옥수수수염처럼 끝이 노랗게 타들어 갔다. 덕분에 연은 언제나 짧은 헤어스타일을 고수했다.

연은 가끔 거울 앞에서 한숨을 내쉬며 자신을 향해 말했다.

정말 남자 같아.  

사내들이란, 나는 중얼거린다. 메모를 쥐어 준 누군가가 남자라고 단정 짓는 것은 모텔이라는 단어가 주는 퇴폐적인 어감 때문일 수도 있고 나의 상투적인 통념일 수도 있다.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사연인 것은 분명하다. 나는 모텔에서 만나는 사이가 생면부지의 사이인지 아주 친밀한 사이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메모지를 구겨 철로 사이로 던진다. 이것은 아마 비밀일 것이다. 그렇다면 쓰레기통보다 철로 사이가 비밀을 지키기에는 더 안전하겠지. 목숨을 걸고 철로에 내려가서 종잇조각을 뒤적거릴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불특정 개인의 비밀이므로 딱히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입이 무거운 편이다. 이건 내 장점 중의 하나이다. 아니, 단지 무관심한 것이다. 나는 재미있는 얘기를 들어도 그 자리에서 웃고 잊어버리고 흥미로운 가십거리를 들어도 그 자리에서 잊어버린다. 이 말은 모든 얘기가 언제나 새로우면서 모든 얘기가 별로 재미없다는 말이다. 나는 말하거나 듣는 것에 별로 소질이 없다. 그렇다고 다른 어떤 것에 소질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듣고 잊어버리고 말할 때는 머뭇거리다가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언제나 새날이었다.

  

집은 더 이상 땅 위에만 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하에 집을 지은 사람들은 햇볕을 포기한 대가로 밤을 낮처럼, 낮을 밤처럼 지낼 수 있는 능력을 부여 받는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의 일터는 밤이고 나의 낮은 어두웠다. 다시 어두운 낮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상으로 올라선다.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숙인다. 나에게 지상은 언제나 어디선가 어디로 가기 위한 이동 통로일 뿐이다. 언젠가 연과 함께 갔던 거대한 수족관의 수중 통로처럼.

출입구를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매다 입장했던 바다 속 체험관이었다. 인공적으로 설계된 도시 위의 거대한 물탱크 안을 헤매고 있었을 뿐이었지만 나는 낭패스러웠다. 9살 이후로 절대 바닥이 확인되지 않는 물속에는 들어가지 않았던 내가 자진해서 깊은 물속으로 걸어 들어온 꼴이었다. 나는 주저앉았고 연은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상어와 가오리, 거북이 따위의 바다 생물들이 우리 주위의 유리벽 너머로 몰려들었다. 낯선 종에 대한 경계와 흥미를 잃은 것은 오히려 연과 나였다. 나는 그곳을 빠져나와 연을 기다리며 앞으로는 공중목욕탕에도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뒤따라 나온 연은 거북이를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실제로는 별로 귀엽지 않더라.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실재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사실이었다. 시각은 정직하지만 똑똑하지는 못하다. 그것 때문에 비유나 은유는 당분간 건재할 것이었다. 비유와 은유는 보는 것 이외에는 보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장치였다. 그것은 연이 밴드에 들어온 이유이기도 했다. 연은 자신의 상상력을 경청해줄 누군가를 필요로 했다. 적잖이 실망스러운 이유였다. 우리는 혼자 있을 때도 울거나 웃을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을 때 알게 되는 것들이 있기는 하다. 처음에 나는 연의 연주로 그녀를 상상했다. 동아리 신입 오디션을 보는 자리였다. 기껏해야 오래된 팝송을 연주하는 정도였지만 누군가의 반주로 인해 기타를 치는 내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내 손은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듯이 섬세한 소리를 냈고 핑거링은 사랑 받는 여자처럼 교태스러웠으며 자신감에 차 있었다. 마치 서로 다른 몸이 만나 하나의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 내듯이 누군가의 건반과 내 기타가 하나의 새로운 악보를 그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내 손은 그때 진심으로 기뻐했다. 마치 전생을 기억해 낸 건반과 기타처럼 우리의 악기는 단번에 서로의 내면을 읽었다. 이것은 연이 나에게 고백한 말이기도 했다. 처음부터 내 기타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별것도 아닌 대학교 동아리 오디션이었는데 말이다. 가슴이 떨렸다고 우리의 악기들은 서로에게 말해 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언어와는 별개였다.

그때 나는 연이 사실은 여자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연이 여자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여자로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신입 회원 환영회에서 연을 처음 보게 되었을 때 나 또한 연을 남자로 오해했었다. 거의 발육이 안 된 납작한 가슴에 짧은 헤어스타일, 쉰 듯 낮은 목소리를 가진 연은 누가 봐도 소년이었다. 소년 같은 소녀였던 연은 사물들에 이름 붙이는 것을 좋아했다. 녹슨 씨에게 녹슨 씨라는 이름을 지어 준 것도 그녀였다. 이름을 붙여 주면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정말로 마시는 물에게 말을 걸었으며 자신의 악기와 대화했다. 가끔 거울을 보며 우는 연습을 하기도 했는데 연은 눈물로 타인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먼저 우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관객을 울리기도 전에 울다니. 미친 건 참을 수 있었지만 얼간이처럼 구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웃기니까 울지 마.

연이 거울을 보며 울거나 울 준비를 할 때마다 나는 웃음이 터졌다. 스스로에게 도취되어 울고 있는 모습은 희극적이기까지 했다. 감동은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잘 계산된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지점에서 우리는 의견을 달리했다.

차라리 헤드뱅을 하는 쪽이 나을 거야.  

내가 이렇게 언쟁에 마침표를 찍을 때마다 연은 눈물을 닦으며 응수했다.

왠지 나는 너에게 속은 느낌이야.   

연이 그런 말을 할 때면 또 나는 내가 사실은 여자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여자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연과 같은 여자가 아닌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연처럼 레이스와 꽃 자수가 만발한 속옷을 입어 본 적도 없고 사춘기 때도 또래의 계집아이들과 손을 잡고 화장실에 가 본 적도 없다. 나는 다만 내 손이 자유롭게 쉬도록 내버려 두며 걸었으며 녹슨 씨와 내 손이 연주하기 쉽도록 악보를 읽어 주었다. 그럴수록 머리카락과 키는 빨리 자랐고 가슴과 엉덩이가 커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실재로 연과 나는 그랬다. 이렇듯 우리의 어떤 부분은 과장되었고 또 어떤 부분은 은폐되고 축소되었다. 그저 보이는 대로 보도록 내버려 두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비유나 은유는 똥통에 빠지지 않는 한 당분간 건재할 것이다. 사는데 그리 불편하지 않았으므로 상관없었다.  

 

3달 치 입금 바람. 주인 백.

문 앞에 서서 열쇠를 찾던 나는 철문에 붙은 메모지를 떼어 낸다. 독촉의 메모치고 간결하다. 정확한 금액도 명시되어 있지 않고 정확한 독촉의 문구도 없다. 그러나 주인은 그런 간결함이 훨씬 더 나를 긴장시키리라는 것을 아는 듯하다. 현관에 두고 나갔던 적막은 여전히 그 자리에 놓여 있다. 햇빛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곳으로 또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한다. 화장실에 물이라도 조금 틀어 놓을걸.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손에 든 메모지를 고장 난 텔레비전 화면 위에 붙여 놓는다. 연체 시점과 연의 부재 시점은 맞닿아 있다. 연이 떠난 지 이제 겨우 3달이다. 항상 집세며 자질구레한 공과금을 해결하던 것은 연이 떠났으니 이제 해결할 사람은 나뿐이다. 나는 녹슨 씨의 딱딱한 케이스를 베고 메모로부터 돌아누워 통장 잔고와 3달 치 집세를 가늠한다. 젠장, 물이라도 틀어 놓을까. 머리 위 어디선가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무거운 무엇인가가 떨어지고 연달아 거친 발자국 소리가 머리 위를 돌아다니지만 그것은 옛날이야기처럼 멀고 아득한 일이다. 천장이 뚫려 저 옛날이야기가 폭삭 내 앞에 쏟아져 내리기 전까지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지금 이곳에는 먼지와 나와 녹슨 씨뿐이다. 나는 딱딱한 녹슨 씨의 케이스를 머리에 벤 채 모로 눕는다. 다시 집 주인의 메모가 보인다. 3달 치 입금 바람.

3.12 모텔 제인 오스틴 1207 저녁 8 부디.

철로 사이로 던져 버린 메모가 다시 떠오른다. 제인 오스틴이라는 모텔에서 3월 12일 8시에 일어났을 일을 상상해 본다. 그러나 내 상상력은 음란한 동영상물 속에서 벌어지는 체위들과 비슷하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이렇게도 저렇게도, 그러나 결국 그래도 그랬다. 다양하지만 결국 동어반복이다. 모텔이라는 어감이 환기하는 상투적인 상상 때문이다. 나는 십대처럼 조금 키득거리다가 신선하지도 건전하지도 못한 나를 자책하기도 하고 그런 불쾌한 메모를 쥐게 된 것에 대해 내 손에 미안해했다가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는 끈적끈적한 관음의 욕망을 지우려 얼굴을 쓸어내린다. 이제 자야 할 시간이다. 내 시간은 밤과 낮, 약속의 유무만으로 흘러간다. 나는 주문처럼 뇌까린다. 자야 한다. 오늘은 도대체 며칠인지 알 수 없다. 밤을 낮처럼, 낮을 밤처럼 지낼 수 있는 능력을 부여 받은 나에게 하루하루 날짜를 확인하는 것은 오랫동안 별 의미 없는 행위였다. 나는 몽롱하게 일어나 아직 잔설이 남아 있는 2월 달력을 걷어 낸다. 햇볕이 힐끔 집 안으로 기어들어 온다. 오늘은 3월 12일, 목요일이다.

그리고 지금은 3월 12일 목요일 오전 9시 21분이다.

나는 메모를 쥐었던 손을 바라본다. 막연히 유통 기한이 지난 사적인 메모일 것이라고 생각한 그 시간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관한 일이었다. 그것이 왜 내 손에 쥐어진 것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누군가가 나에게 수작을 건 것일까’라고 생각해 보았지만 졸고 있던 내 상태가 그리 매력적인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 상상력은 좀처럼 확장되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그 메모를 내가 쥐게 된 것이 내 의지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것뿐이다. 나는 2호선 홍대입구에서 첫차를 탔고 2호선 성수에서 잠에서 깨었다. 그 한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내가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눈을 감았다 뜬 것이 전부다. 나는 점점 내가 구겨버린 그 비밀이 온전히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게 된다. 젠장, 메모지에 적힌 날짜가 2월 12일이었거나 4월 12일이었으면 이렇게까지 진지해질 필요는 없다. 1달이란 기간은 무엇인가를 잊어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메모지에 적힌 날짜가 오늘로부터 1달 전이었다면 적당히 음란한 상상을 하다 키득거리고 말 일이었고 1달 후라고 해도 사정은 그리 크게 다르지 않았을 터였다. 유명 여배우의 죽음이나 간통, 혹은 생존권을 위해 싸우다가 소방차 옆에서 타 죽은 사람들의 기막힌 뉴스도 1달이면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터다. 그러므로 이 사소한 메모지의 내용 따위는 1달이 아니라 이틀이면 깨끗하게 잊어버릴 수 있었다. 그저 어쩌다 보니 이렇게도 저렇게도 그러나 그래서 결국 그래도 그랬겠지, 정도로 치부해 버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고 하필 오늘이다. 혹시 1년 전이거나 1년 후가 아닐까? 나는 이렇게 중얼거려 보지만 인생이 그렇게 우스울 리 없다.

인생은 거울을 보며 운다고 해결될 수 있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나는 연에게 그렇게 어줍지 않은 인생론을 펼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나는 조금 울고 싶은 기분이지만 운다고 방세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울지 않기로 한다. 아니, 사실은 피곤할 뿐이다. 나는 나를 보며 울 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내 손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또한 1년 전 오늘 나는 울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지만 1시간 전의 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  

정적은 불안하다. 좁은 거실을 서성거리다가 벽에 기대 놓았던 녹슨 씨가 발길에 채여 쓰러진다. 드러누운 녹슨 씨가 음 하나를 낮게 떨기 시작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기타의 현 하나하나는 각자 독자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G마이너, 굳이 인간의 언어로 해석하자면 불쾌함 정도일 것이다. 음산한 울림이 한참동안 이어진다. 숨기거나 남기지 않고 자신의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일관된 솔직함은 나에게 없다. 악보에 충실하면 좋겠어. 리더는 나에게 애드리브를 줄이라고 요구했다. 원본과 너무 다르면 반응이 반감된다는 이유였다. 애드리브는 순간의 철학이다. 리더는 나에게 철학을 버리기를 요구한다.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요구였다.  

클럽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야의 영화가 끝나고 출구를 향해 모여드는 군중이 아니라 영화를 보기 위해 입구로 모여드는 군중들과 같다. 등받이에 눌린 머리 모양을 정리하며 팝콘 봉지를 내팽개치고 가뿐하게 일어서는 사람들이 아니라 어둠을 틈타 연인의 팔목 너머 그 어디쯤까지 더듬으려는 흑심으로 눈이 반짝거리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극장도 이런 형국인데 논리와 이성을 팽개치고 헤드뱅을 하기 위해 모인 그들의 머리 위에 생수병은 던지지 못할망정 원판불변의 법칙을 고수한다는 것이 도대체 가당키나 한가.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는 대신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 손이 게을러지는 것을 리더가 모른 척하는 한, 나는 계속 고개를 끄덕여 줄 것이다. 일당을 받아 챙기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녹슨 씨가 곁에 있어서 다행이야.

집을 나가던 연이 나에게 했던 말이다.

그 말은 사실이다. 나는 기타 케이스에서 녹슨 씨를 꺼내 넥을 잡고 중얼거린다.  

당신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대답처럼 녹슨 씨가 떤다. 그 떨림은 벚꽃이 지는 소리처럼 아주 미세하다. 사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건 감각의 차원이 아니라 세월의 차원이기 때문이다. 소리를 감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 소리의 뜻을 알아듣는 것은 많은 시간과 정성과 애정을 필요로 한다. 연은 종종 피아노 건반 위에 엎드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조율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사람의 숨소리로 그 사람의 상태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소리를 가진 모든 것들의 소리를 살피는 일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연이 과연 피아노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나도 연을 따라 많은 시간을 조율의 자세로 보냈다. 음파와 음파가 만나 새로운 소리가 되었다. 절대 음감의 능력은 생기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우리에게는 그런 조율의 의식이 필요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악기에 기대 앉아 있었고 가끔 서로의 그 모습에 키득거렸다.

나는 더 이상 키득거리기만 할 수는 없다. 점점 그 메모의 내용에 집착한다. 비록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 메모는 누군가 내 손에 쥐어 준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내 손은 스스로의 의지로 그것을 놓지 않았다. 그것은 조금쯤 놀라운 일이지만 반가운 일은 아니다. 방세를 걱정해야 하는 내가 공연한 일에 신경을 쓰게 된 것이 적당히 짜증스럽기도 하다.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을 내 손을 본다. 중지와 검지의 굳은살 따위를 상관하지 않는 자유로운 손을.

젠장, 나는 나를 잊어버릴 그 무엇인가가 필요할 뿐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은 끝없이 일어나지만 그것이 내 탓은 아니다.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물에 젖어 떨고 있던 나에게 강변하던 부부로부터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이다.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이렇게 와 있는 것이다.

제인 오스틴. 어쩐지 익숙한 어감이다. 한 번쯤 묵었던 모텔의 이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리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기억날 리 없다. 무엇인가를 기억하는 것은 횟수의 문제가 아니라 관심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다. 어딘가에 있는 그곳에 가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딘가에 있는 그곳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이름이 무엇이든 상관없는 시간이 있기 마련이다.

어디인지 모를 그곳에서의 오늘 저녁 8시는 어떤 시간일까. 한동안 잠잠하던 위층에서 다시 요란한 인기척이 오고간다. 녹슨 씨가 들뜬 듯 울림통과 넥을 떤다. E플랫, 미움과 원망의 사이 어디쯤, 이 세계를 움직이는 동력의 주요한 부분이다. 어떤 언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을 단번에 설득할 수 있는 힘은 비단 음악만이 가진 능력은 아니다. 나는 머리 위의 요란한 인기척으로 그들을 읽으며 식탁 위에 놓은 뿌연 조화 송이가, 벽에 걸린 시계의 분침이, 벽에 기대앉은 녹슨 씨의 현들이 위층의 지칠 줄 모르는 비명과 고함으로 겨우 숨을 쉬는 것을 보고 있다. 연이 떠나고 내가 얻는 얼마 안 되는 실감들이다. 이른 태풍이 지나갔으니 곧 나비가 날아올 것이다. 오전 11시다.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 지금 내가 우선 할 일은 잠을 자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여전히 아이들은 태어나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며 잠이 든다.

 

*

  

컴퓨터 앞에 앉아 제인 오스틴 모텔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한 나는 당황한다. 도대체 2세기를 넘어온 여자 소설가의 이름이 왜 도심에 있는 모텔의 이름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셀 수도 없는 사이트들이 끝도 없이 늘어선다. 지루하다. 새로움에 대한 병적인 탐닉으로 넘쳐나는 터널 같은 밤 동안, 연주하고 노래하는 사람들은 예명으로 자신들의 평범함과 지루함을 숨겼다. 영희나 철수는 아직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실재하지는 않는다. 지난 밤 내가 연주했던 밴드의 이름은 나비메리앤드커즌이고 그 멤버 중 한 명의 이름은 이곁이었지만 실제의 그는 철수였다.    

나는 나비고 영희고 철수고 톰이고 메리야.

수많은 제인 오스틴을 스킵하며 나는 중얼거린다. 오만과 편견을 넘어 이성과 감성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누구에게도 설득 당하지 않을 냉정함을 유지하며 모텔 제인 오스틴을 찾을 뿐이다. 아직 그곳에 가기로 작정한 것은 아니다. 다만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낄 뿐이다. 나는 이미 꿈속에서 온갖 가능성에 대해 궁리했다. 그리고 그 메모는 매매에 대한 유혹일 거라 생각했다가 어쩌면 밀교 집단의 유혹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 세련된 상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떨치지 못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상술의 기본이며 완성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상술일까. 사방으로 머리를 흔들며 정신없이 자는 여자에게 매력을 느낄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며칠 전 전동차에서 처음 만난 여자와 모텔에 갔었다고 떠벌리던 드러머 연기군의 말이 기억났다. 비법을 묻는 우리들에게 연기군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눈을 마주치지 않게 조심하면서 몸이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면 돼.

나는 연이 버리고 간 수첩에 ‘나는 나비이고 영희이고 철수이고 톰이고 메리였네’라고 쓰고 망설이다가 ‘부디’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두 군데의 모텔 제인 오스틴을 찾아낸다. 하나는 이곳에서 가깝고 다른 하나는 너무 멀다. 두 군데의 주소를 수첩에 써 넣고 다시 망설이다가 ‘부디’라는 단어를 지운다. 아직 그곳에 가기로 작정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곳을 찾고 있는 이유는 내가 한 번도 써 보지 못한 ‘부디’라는 단어 때문이다. 꼭도 아니고 제발도 아니고 ‘부디’라니.

‘부디’라고 중얼거려 본다. 나는 너그러워진다. 간절한 것은 결코 가질 수 없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침이라도 뱉고 싶었다. 간절한 것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는 9살에 알았다. 그러나 올랜도까지 갈 수는 없으므로 다시 두 군데의 주소 중 하나의 주소를 지운다. 올랜도는 연과 처음 봤던 영화였다. 그것으로 족했다.

눈을 마주치지 않게 조심하면서 몸이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면 될 것이다. 내 손이 스스로 밧줄을 찾아 쥐었던 것처럼 말이다. 두 개의 문장이 지워지고 ‘나는 나비이고 영희이고 철수이고 톰이고 메리였네’와 하나의 주소가 남았다. 그 옆에 ‘1207 저녁 8 부디’라고 쓰고 수첩을 덮는다. 오후 4시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몸을 씻고 빨아 놓은 옷을 골라 입고 깨끗한 운동화를 찾아 신고 어스름한 거리로 나설 것이다.  

  

바람이 분다. 나는 무기력하게 버스에 앉아 있다. 처음 무작정 집을 나와 버스를 탔던 날, 나는 붉은색 하이힐을 신고 나와 어디로 갈 것인지 생각했다. 세상은 한 뼘쯤 낮아져 있었고 바람이 높고 낮은 가로수 사이로 휘파람을 불며 지나다녔다. 나는 한 번도 타 보지 않았던 번호의 버스를 탔다. 수많은 상황들이 내 앞에 멈춰 서서 입을 벌렸다. 그것은 운명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였다. 나는 낯선 곳으로 가는 버스를 탔고 버스는 나를 다른 길로 데려다 주었다. 햇살이 너무 뜨거웠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메리와 철수와 영희와 여러 개의 의미를 가진 올랜도였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쉬운 일이 아니었던 일이 어려운 일로 여겨지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곳에 가서 아무것도 사지 않을 것이며 아무것도 팔지 않을 것이다.

미친 짓이다. 그러나 모든 관계 또한 미친 짓이었다.

우리는 명명된 관계도 아니었으며 무엇이라 이름 붙일 수도 없는 사이였다. 마치 길에서 메리라는 명찰을 목에 건 강아지를 만났고 흰 털을 한 번 쓰다듬어 주었지만 메리가 나의 개도 아니었고 나 또한 메리의 주인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메리가 새벽을 지나가는 청소차에 치여 도로 한가운데서 무덤도 없이 말라 사라져 간다고 해도 나는 평균 이상으로 마음 아파할 수 없으며 메리 또한 그런 나를 원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부디’라고 적힌 메모지를 모른 척한다고 해도 아무 상관없으며 연이 떠난 것도 아니고 내가 남은 것도 아니니 괜찮은 것이다. 나는 정말 괜찮다. 그저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을 뿐이다. 처음 버스를 타고 그 버스의 끝까지 갔던 날, 폐업 정리라고 붙여 놓은 레코드 가게에서 랜디로즈의 마지막 레코딩 앨범을 빼 들었던 날처럼.

폐업 이유를 묻는 나에게 주인은 말했다.

쓰레기 동산에서는 아무도 꿈꾸지 않는단다.

그러자 바람을 타고 동산에서 냄새가 흘러왔다. 고인 냄새들이 썩고 있었다. 점점 냄새는 분명해졌다. 코를 막았다. 떠난 곳으로 다시 돌아올 때는 마땅히 뭔가 달라져야 했다. 그것은 하나의 교환 조건이었다. 나는 붉은색 하이힐을 쓰레기 동산에 던져 버리고 밑창이 벌어진 운동화를 하나 주웠다. 밤새 랜디로즈를 들었다. 음악은 끝없이 회전했다. 나는 바늘 끝에서 흘러나오는 랜디로즈를 낯선 지도 보듯이 들여다보았다. 현들이 바늘 끝에서 온몸을 떨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었을 때 내 손은 피곤한 나를 깨우며 기뻐했다. ‘나 기타 줄이 될래’라고 내 손이 말한 적은 없지만 나는 기타를 샀다. 그리고 다시는 하이힐을 신지 않았다.

연이 처음 하이힐을 신고 돌아오던 날은 내가 연을 마지막으로 본 날이었다. 드디어 꿈꿀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연은 연락하겠다고 말했고 나는 연락하라고 말했다. 나는 계속 연주할 거냐고 물었고 연은 내게 연주를 포기하지 말라고 말했다. 현관문을 여는 연의 팔을 붙잡고 나는 무엇이 문제냐고 물었다.

아무 문제도 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던 것 같아.

그리고 연은 홀가분하다는 듯이 등을 돌리고 나갔다. 문 밖에서 연이 신은 하이힐의 구두 굽 소리가 또박또박 멀어지는 동안 나는 내 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감아올리며 서 있었다. ‘부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 몸은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감아올리며 말없이 연의 노래를 듣는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분명 연이다. 연이 노래를 부른다.

우리는 한 번도 꿈에 대해 얘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이 문제였다. 클럽을 지나간 많은 가수의 배경 속에 숨어서 우리는 베이스기타와 건반악기를 연주했다. 우리의 머리 위로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진 적은 없었지만 한 번도 그 사실을 슬프게 얘기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우리의 악기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또한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믿었다.  

그런데 아니구나.

나는 차창에 머리를 기대며 연이 옆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중얼거린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잘 들어 주었지만 진심으로 들었던 적은 없다는 생각을 하다가 100년 동안의 진심에 대해 생각했고 마침내 나는 100년 동안 진심인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많은 시차를 두고 전해진 연의 노래는 이제껏 한 번도 알지 못했던 사람의 노래였고 그 노래는 소문처럼 담담하다. 한때 연이었던 가수의 노래는 곧 끝날 것이고 나는 잊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내려야 할 곳에 버스가 정차한다. 내가 내릴 정거장은 다음의 정거장을 위한 순서이고 징후다. 세상의 모든 정거장은 그 자체로 곧 지도가 될 것이다. 나는 일어섰고 문이 열렸고 나는 내린다.

안녕.

나는 편의점과 은행을 끼고 돌아 좁은 골목으로 걸어 들어간다. 골목 안을 굴러다니는 깡통처럼 두리번거리며 번쩍거리는 간판들 속에서 제인 오스틴을 찾았다. 불을 켠 간판들은 저마다의 빛깔로 반짝거렸지만 언제나 그런 것처럼 그것들은 모두 뒤섞여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았다. 아무도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나는 내 손이 원하는 것을 알 뿐이었고 녹슨 씨가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이었고 말이 가진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내가 그 메모를 읽었던 것은 꿈일지도 모른다. 꿈속이라는 공간이 대개 그렇듯이 모텔 제인 오스틴은 잘 보이지만 확신할 수 없는 공간에 위치한다. 메모지를 버린 철로의 마디를 기억할 수 없듯이, 있지만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나는 되돌아갈 수 없다. 나는 나비이고 영희이고 철수이며 톰과 메리라는 생각이 위로가 될 뿐이다.  

모텔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침묵이 축축한 해초처럼 발에 감긴다. 로비는 비어 있고 어둡다. 클럽 로비에서 로비라는 이름의 DJ를 만난 적이 있었다. 클럽 로비의 맥주는 싱거웠다. 일을 끝낸 후 문을 닫은 클럽 로비에서 로비와 싱거운 맥주를 마시며 또 다른 로비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나 무슨 얘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운동화 밑창에 효모가 된 맥주 찌꺼기가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었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쩍쩍하는 소리가 났다. 로비는 클럽 안을 쩍쩍거리며 돌아다녔고 틈틈이 찍찍 침을 뱉었다. 쩍쩍찍찍, 나는 웃었다. 로비는 버지니아로 갈 것이라고 말했고 나는 웃기만 했다. 로비는 그곳의 등대에 대해 아냐고 물었고 나는 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쩍쩍찍찍, 걸을 때마다 더러운 시멘트 바닥이 조금씩 갈라졌다. 아무래도 좋았다. 우리는 신발을 신은 채 옷을 벗었다. 로비는 테이블 위에 나를 눕히고 내 위로 올라왔다. 균열은 새로운 지형을 만들 것이다. 쩍쩍거리며 세상이 갈라졌다. 침묵보다는 그편이 나았다.

버지니아에는 등대가 없어.

나는 내 몸 위에서 한참 동안 늘어져 있던 로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의 머리카락에서 썩은 효모 냄새가 났다. 나와 로비는 테이블 위에서 내려와서 클럽 로비의 문을 열고 나왔다. 맥주 찌꺼기가 달라붙은 운동화 밑창에서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쩍쩍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게 될 때까지 걸었다.

그리고 나는 제인 오스틴의 로비에 서 있다. 저녁 7시 57분, 나는 모텔 제인 오스틴 12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탄다.

1207호의 문은 열려 있다. 열린 문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긴장한다. 수없이 많은 장면을 상상했지만 문이 열려 있을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나는 불이 환한 실내에 귀를 기울인다. 문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노크를 하려다가 열린 문을 두드리는 짓이 어리석은 행위라는 것을 깨닫는다. 젠장, 너무 순조롭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 어쩌면 돌아간다는 말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말일지도 모른다. 돌아간다는 말은 ‘돌이킬 수 없다’의 오기다. 나는 열린 문의 틈 사이로 들어서면서 돌이킬 수 없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에 대해 생각한다.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 후회하거나 뻔뻔스러워지거나. 그래도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가 있다, 있었다.  

나는 잠시 잘못 옮겨진 악보처럼 불편해진다. 아무것도 살 것이 없었고 팔 필요도 없어 보일 뿐만 아니라 ‘그’가 아니라 ‘그들’이기까지 하다. 방 안에는 상반신을 드러낸 그들이 서로를 마주보고 누워 있다. 나는 재빨리 머릿속으로 시간을 확인했고 장소를 확인했고 호수를 확인한다. 그리고 문이 열려 있었음을 떠올린다. 뭔가 잘못됐지만 잘못됐을 리는 없다. 나는 온돌방에 누운 그들이 깨기를 잠시 기다린다. 방 안에서는 희미한 표백제 냄새 외에는 그 어떤 상투적인 불륜이나 금기의 냄새도 맡아지지 않는다. 두 사람의 신발과 현관 곁에 놓인 가방 두 개가 전부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잠들어 있다. 나는 잠시 뒤돌아본다.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 나는 다시 이 지극히 사적인 영역을 침범한 것에 대해 충분히 사과할 의도가 있으므로 잠시 그들이 깨기를 기다린다. 이것은 여전히 미친 짓이지만 어차피 누구든 조금씩은 미쳐 있기 마련이다.

 

그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들이 깨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는다. 마치 꼼짝도 하지 않는 자신들을 보아 주길 바란 것처럼. 나는 이 깨끗하고 조용하고 가지런한 상황이 의도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들에게 다가선다. 창백하게 누워 있는 그들은 반쯤 뜬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비현실적은 것은 아름답다. 대리석으로 조각된 눈동자 없는 고대의 조각상들처럼.

그들은 영영 깨지 않을 것이다.

나는 뒷걸음질 친다. 내 손이 내 입을 막아 주었다.

눈을 마주치지 않게 조심하면서 몸이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면 돼.

연기군의 말은 사실이었다. 내 몸은 나보다 먼저 신발을 꿰어 신고 방을 뛰쳐나온다. 미처 묶지 못한 운동화 줄이 발에 밟힌다. 문이 열려 있던 것은 의도된 것이다. 끝없이 이어진 모서리를 돌며 영국식 정원을 떠올린다. 영영 이 모서리들 속에서 헤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온다. 숨이 막혀 왔다. 1층에 멈춰 있는 엘리베이터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주저앉는다. 이제 왜 나이어야 했는지 궁금하지 않다. 나는 그들이 누구라도 상관없으며 그들 또한 내가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결과에 대한 원인과 과정을 궁금하게 여기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우리는 언제나 결국 서로 나비고 영희고 철수고 톰이고 메리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나는 그 문 안으로 몸을 숨긴다. 지상으로 내려서며 잠깐, 창백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고 있던 그들을 떠올린다. 어디쯤에서 나는 그들을 보았을지도 모르고 그들 또한 나를 보았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서며 나는 ‘부디’라는 단어를 버린다. 젠장, 그것이 모텔 제인 오스틴에서 내가 유일하게 한 일이었다. 그 단어는 거짓말이거나 사라진 사람들의 입버릇이다, 젠장.

  

모텔 제인 오스틴의 로비는 내가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어둡고 조용하다. 공중의 어느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지상에 내려앉을 때쯤이면 나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로비를 지나 출입문을 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거리의 불빛들은 견고하게 유지될 것이다. 싸늘한 봄바람이 지나가는 문 앞에 서서 나는 모텔 제인 오스틴의 12층을 바라본다. 나는 조금 덜 생각했어야 했다. 연이 누구든지, 그 메모가 무엇이든지, 나는 그저 나비고 영희고 철수고 톰이고 메리였다. 그리고 초봄의 밤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익명의 다수들로 소란스럽다.

두 손이 씩씩하게 허공을 휘젓는다. 녹슨 씨는 어둠에 귀 기울이며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모텔 제인 오스틴은 처음부터 거기에 없었다. 우리는 어디에도 있지만 누구든, 거기에는 없는 사람들이었다. 《문장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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