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달리다

나는 달리다

Mix-and-Match1)5

 

 

 

원종국

 

 

 

택시를 타기 위해 걸음을 내딛다가 달리는 뒤를 돌아보았다. 뭔가 놔두고 온 게 있는 것 같았다. 백화점에 왔을 때부터 짐은 없었다. 물론 백화점에서 뭔가를 구입하지도 않았다. 놔두고 올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뭔가, 조금 허전했다. 시간이라도 도둑맞은 것처럼. 택시 문을 닫을 때 백화점 귀퉁이의 커피 전문점이 눈에 들어왔다. 커피콩 모양의 벽돌들로 외관을 장식한. 혀끝에 군침이 살짝 감돌았지만 이미 택시 문을 닫은 뒤였다. 알 수 없게도 코끝으로 커피 향이 스쳤다. 선팅을 짙게 해 그런지 택시 안은 어둑했다. 슬쩍 곁눈질해 바라본 기사는 말처럼 긴 두상의 사내였다. 손가락 한 마디쯤 가지런히 자란 턱수염에 블루블랙의 선글라스가 제법 잘 어울렸다.

 

달리가 자리를 잡고 한숨을 폭 내쉰 뒤에도 기사는 한동안 출발하지 않았다. 승차 거부는 아니었다. 앞쪽으로 차가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이윽고 앞차가 쿨렁 움직이자 기사는 끙 소리와 함께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렸다. 차는 십오 년은 족히 굴러다녔을 듯한 구형이었다. 요즘 출시되는 차에는 사이드 브레이크는 고사하고 사이드 미러조차 없는 것들이 많았다. 어쩌면 기사는 구하기 힘든 구형 모델을 소장하고 있다는 자부심만으로도 어깨에 힘을 주는 축일지도 몰랐다. 아무려나 시트는 아늑했다. 낮잠 자기 딱 좋을 만큼.

차는 세 바퀴를 굴러가고 나서 십 초쯤 정차하는 식이었다. 아쉽게도 커피 전문점이 인도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으로 바투 다가왔다. 커피 향이 좀 더 진하게 감돌았다. 어차피 차도 밀리는데 커피 한 잔 사 와도 될까요, 물어볼까 싶어 기사를 바라보았다가 달리는 고개를 바로 했다. 페테르부르크에 있다는 청동 기사의 표정이 저럴까 싶었다. 기사는 묵묵히 삼보일배를 거행하는 수도승처럼 앞차의 뒤꽁무니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브레이크,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브레이크…… 달리는 커피 향을 깊이 들이켜고 나서 차창을 끝까지 밀어 올렸다.

차는 다시 오랫동안 멈춰 서 있었다. 그 사이 맞은편의 고층 빌딩에 가려져 있던 해가 나타났다가 이내 옆 건물의 옥상에 반쯤 걸린 채로 줄타기를 하더니 천천히 가라앉았다.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서, 해는 길었다. 이제 곧 노을이 저쪽 아파트 숲 위를 발갛게 물들여 놓을 터였다. 그렇지만 달리는 눈이 시어서 자꾸만 인상을 찡그려야 했다. 기사는 고개 한 번 돌리는 법 없이 묵묵히 전방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선글라스에 눈썹 모양의 태양이 달처럼 고여 있었다. 차가 다시 미끄러지기 시작했을 즈음 달리는 문득, 내가 기사에게 행선지를 얘기했던가, 의구심이 들었다. 이 양반은 대체 내가 어딜 가는 줄 알고…….

그런데 참, 내가 지금, 가려는 곳이…… 어디더라?

 

어머니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아흔 넘은 나이에 뼈가 일곱 군데나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데다, 그 사고로 육십 년 넘게 해로한 남편을 잃었고, 게다가 그 피의자로 아들이 지목되어 경찰 조사까지 받았으니 심리적인 충격도 적지 않았을 것이었다. 의사가 환자의 장기 몇 가지를 복제해 이식해 보자고 제안했을 때 달리는 고개를 어머니는 왼쪽 집게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장례를 마친 뒤에 달리는 인천에서 출발해 목포로, 그리고 부산을 거쳐 외금강까지 U자를 그리는 자전거 여행을 했다. 물론 발을 굴러 체인을 돌려 본 적은 없었다. 인터넷에서 자전거 여행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아이폰(eyephone)에 연결했을 뿐이었다. 아무려나 본 적 없는 세상은 넓었고, 가 본 적 없는 인생은 아득했다. 계획했던 여행은 아니었지만, 키스캠벨2)에서 사무실을 비워 달라는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다면 함흥을 거쳐 청진이나 백두산까지 올라갔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복제 상담을 해주는 따위의,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건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그렇지만 그 사무실을 떠나야 한다는 건 썩 내키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심지어 두렵기까지 했다. 처음 키스캠벨 신촌점에 발령을 받았을 때, 달리는 집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에, 아니 부모님과 더 이상 얼굴을 마주 보고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었다. 사무실 뒤쪽에 달린 작은 쪽방에서 먹고 자면서 달리는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희열을 만끽했었다.

점원도 쓰지 않은 채 달리는 하루 열두 시간씩 이 년 넘게 꼬박꼬박 사무실에 나와 동물 복제 상담을 해주었다. ‘당신의 사랑을 더 오래 간직하세요.’ 사무실 바깥 창에 걸린 채 종일토록 깜빡이던 광섬유 전광판이 눈에 선했다. 사이사이 깜찍한 쌍둥이 마스코트가 등장해 춤을 추던. 일이 엄청나게 많았던 건 아니었다. 하루 예닐곱 명의 손님이 상담을 받았고, 그중 한두 건의 계약이 성사되었다. 체세포를 복제하고 착상시켜 임신을 시키고 분만을 하기까지, 당장의 슬픔에 비하자면 치러야 할 비용과 기다려야 될 시간이 만만치 않았다. 손님들은 비통한 표정으로 달려왔다가 굳은 표정으로 일어섰고, 그중 몇몇 만이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동물 병원이 밀집한 곳이라서 손님이 끊이는 날은 거의 없었다. 달리는 그저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고 체세포를 적출해 급랭시킨 뒤에 계약서를 첨부해 본사로 보내는 업무를 했을 뿐이었다.

다시 돌아간 옛집은 고즈넉했다. 아버지의 꾸중도 어머니의 잔소리도 없었다. 고요했다. 마치 남의 집에 온 것처럼. 달리는 문틈으로 빈방을 흘끔거리다가 천장과 벽지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훑어보곤 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무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지만, 복도와 계단참에서 소리가 날 때마다 달리는 벌떡벌떡 일어나 현관을 바라보곤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 달리는 한두 가지씩 살림살이들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사진이 든 액자와 앨범을 들어내 분리수거함에 집어넣었다. 누구의 것인지 분명치 않은. 장난감과 학용품, 책과 메모리칩들을 들어냈고, 이어서 옷가지와 주방 용품들을 들어냈다. 그리고 이불과 가전제품들도 하나씩 들어냈다. 들어낸 것들은 분리수거함에 넣기도 하고, 쓸 만한 것들은 동네를 돌면서 그것들을 필요로 할 법한 데 쌓아 두기도 했다. 어떤 건 몇 시간 만에 사라졌고, 어떤 것들은 사나흘이 지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 일이 지나자 집 안엔 속 빈 가구들만 남았다. 낡고 오래되고 큼직한. 그것들은 혼자서 들어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달리는 철물점에서 톱과 장도리를 사다가 그것들을 조금씩 뜯어냈다. 간혹 아랫집과 옆집 사람들이 무슨 소린가 싶어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집수리를 하는가 보다 싶었을 것이다. 그들은 오랜만에 나타난 이웃집 아들과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아주 천천히 일을 했는데도 한낮엔 온몸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집 안을 비우면서 그제야 달리는 진짜 노동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집 안을 비운 후, 간혹 덜 바랜 벽지의 흔적들이 옛 일을 떠올리게 만드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명주 형의 사진이 걸렸던 자리가 그랬다. MIT에 입학하던 날 그곳 캠퍼스에서 찍었다는, 젊은 시절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들꽃처럼 웃고 있는 열네 살의 천재 물리학도. 칠십오 일 뒤에 명주 형은 사진을 찍었던 자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뒷골목에서 갱들이 쏜 총에 맞았다고 했다. 그의 영광은 거기까지였다. 흔적은 그렇게 네거필름으로 남아서 과거를 무한 재생시키고 있었다.

집이 텅텅 비고 나자 달리는 휑한 거실과 안방을 산책하듯 맴돌다가 아무 데서나 쓰러져 잠들곤 하는 버릇이 생겼다. 문이란 문을 모두 열어 두었더니 낮에는 시원했고, 밤에는 으스스한 한기가 돌았다. 간혹 매미가 들어와 거실 벽에 붙어 서럽게 울다가 포르르 날아갔고, 박쥐가 들어와 거실 천장을 휘젓고 다니다가 한순간 사라지기도 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매미의 울음소리가 귓속에서 울렸고, 박쥐의 시커먼 그림자가 천장을 휘젓고 다니는 환상이 보였다. 아니, 그것들이 정말 수시로 다녀갔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매미나 박쥐가 아니라 귀뚜라미나 큼직한 나방이였을지도.

그날, 달리는 배가 너무 고파서 현관 앞까지 기어갔었다. 뭔가를 먹어 주지 않으면 정말로 헛것이 보일 것 같았다. 그런데 거기, 현관 앞에, 자신의 구두가 홀로 동그마니 놓여 있는 게 보였다. 노리끼리하게 곰팡이가 슨 구두에는 거미줄까지 쳐져 있었다. 거미집은 엉성했다. 이렇게 집을 지어 놓고 먹잇감을 노린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얼기설기, 마치 가구 틈새에 먼지가 잔뜩 뭉쳐 있는 것처럼. 탄광 막장처럼 우멍해서, 구두 안쪽은 잘 들여다보이지도 않았다. 달리는 어떤 놈이 집을 지었는지 궁금했다. 그렇지만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집주인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구두 뒤축을 톡, 톡톡 두드리고 나서야 쌀알 반 토막만한 새끼 거미 한 마리가 머리를 내밀었다. 녀석은 조심스레 사냥감의 두 번째 몸부림을 기다리고 있다가 달리가 후― 입김을 불어 주자 구두 안쪽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이놈은 얼마나 기다렸던 걸까. 애초에 너무 불리한 자리에서 알을 깨고 나왔던 건 아닐까. 그동안 목구멍에 거미줄을 치지는 않았을까. 거미집 어디에도 생명체가 다녀간 흔적은 보이지 않는데…… 달리의 급조된 상상력은 자꾸만 거미줄을 늘였다. 그러다 말고 달리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놈도 배가 몹시 고파지면 사람들처럼 이성적인 판단이라는 걸 하게 될까. 먹잇감을 좀 더 기다려 보는 게 좋을지, 아니면 다른 장소에 새로운 집을 짓는 게 더 좋을지. 그 판단을 내리는 기준은 뭘까. 동물적인 본능일까, 계산된 행동일까. 그 조그마한 거미의 보잘것없는 뇌세포들이. 달리는 거미가 어떤 판단을 언제 내리게 될지 궁금해서 현관 앞에 한참을 엎드려 있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어둑어둑 땅거미가 질 무렵,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똑, 똑똑 울렸다. 엉거주춤, 달리가 고개를 치켜들고 올려다보는 사이 현관문이 열렸고, 이어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불쑥 집 안으로 들어섰다.

 

차는 아주 멈춰 선 거나 마찬가지였다. 기사는 파킹 버튼을 누르고 나더니 끙 소리를 내며 사이드 브레이크까지 잡아당겼다. 그의 선글라스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처음엔 노을 때문이려니 했다. 그런데 뒤쪽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들이 떼를 지어 몰려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달리가 탄 택시 옆으로 벌떼처럼 지나가기 시작했다. 역주행이었다. 길을 트기 곤란한 곳에선 소리들이 고여서 에엥에엥 소용돌이를 이뤘다. 그러고 보니 저 앞쪽 야트막한 언덕배기 너머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언저리 어디쯤, 좀 더 밝은 불빛이 은은하게 퍼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뭘까? 몇몇 차에 미등이 켜지는가 싶더니 오래지 않아 도로는 자동차의 발간 불빛들로 가득 찼다. 어둠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표식 같군, 생각하다 말고 달리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다시 묵묵히 삼보일배를 하던 기사가 갑자기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바깥쪽 차선으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른쪽 깜빡이를 켠 택시는 한두 대가 아니었다. 모두들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백화점 뒤편으로 연결된 지하 주차장 입구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돌아보니 커피 전문점은 불과 이십여 미터 뒤쪽에 있었다. 뭐지? 삼십 분 동안 겨우 이만큼밖에 못 왔다는 건가? 그때, 앞뒤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고 있을 때, 하얗거나 시커먼 재를 옴팡 뒤집어쓴 몇 사람이 차들을 헤치며 백화점 후문 쪽으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그들 주변으로는 구조대원 복장을 한 사람들도 여럿 끼어 있었다. 누더기 같은 옷을 그나마도 풀어헤친 사람과 사염화탄소 액을 뒤집어쓴 사람, 그리고 소방 헬멧을 벗어 든 구조대원이 달리가 탄 택시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화상을 입었는지 그들은 모두 살갗이 발갛게 들떠 있었다.

기사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전면과 오른쪽 사이드 미러를 번갈아 쳐다보며 백화점 지하 주차장 쪽으로 차를 몰았다. 아니, 몰았다기보다는 끌려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자석 근처에 있는 쇠붙이처럼. 택시들은 망설임 없이 자기 자리를 찾아 줄을 맞추며 앞으로 미끄러졌다. 두 개의 차선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차선으로 합쳐졌다. 그 와중에도 왼쪽 다리를 심하게 저는 여자와 얼굴을 감싸 쥔 채 정수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남자가 택시 앞을 지나 백화점 후문 쪽으로 달려갔다. 손에 피를 묻힌 남자는 택시 앞을 지나가다가 기우뚱, 보닛을 짚을 것처럼 흔들리기도 했다. 순간, 기사의 상체가 조금 앞으로 쏠렸을 뿐,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불이…… 무슨, 큰 사고가, 난 모양이죠? 달리가 입을 뗐을 때도,

기사는 말없이 고개만 두 번 끄덕거렸다.

이윽고 택시는 지하 주차장 입구로 진입을 시작했다. 작은 요철 두 개를 툰 탁, 툰 탁, 타넘으며 우회전을 할 때, 주차장 입구 빈터에 비상등을 켠 채 멈춰 서 있는 택시가 보이고, 그 옆으로 교복을 입은 한 여학생이 쪼그려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여학생은 울고 있는 것처럼, 자꾸만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 옆으로 비둘기 여남은 마리가 모이를 쪼아 먹고 있었다. 그리고 커피 전문점 유리창 안쪽에 머그컵을 든 채로 활짝 웃고 있는 여자와 남자…… 길은 여전히 자동차 불빛들로 빼곡하고, 드문드문 고여 있는 소방차와 경찰차, 환하게 불을 밝힌 건너편 상가들과 어둠에 물든 검은 가로수들…… 노을마저 사라진 언덕배기 너머에선 뭉클뭉클 연기가 솟아오르고,

앞쪽이 푹 가라앉는 느낌이 드는 순간, 택시는 어느새 지하 주차장 진입로 안쪽으로 들어가 있었다. 기사는 왼손으로 회전 폭을 조절하며 시계 방향으로 돌아 내려가는 진입로를 따라 익숙하게 차를 몰았다. 지하 1층을 지날 때 기사는 깜빡 잊었다는 듯 헤드라이트를 밝혔다. 용수철처럼 휜 주차장 진입로는 지하 2층으로 이어져 있었다.

 

달리는 시커먼 그림자를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마치 자벌레처럼 머리를 치켜들고. 잘 보이지는 않았다. 현관 센서 등은 작동하지 않았고 어둑한 창밖은 그나마도 아름드리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었으니까. 잠깐 놀라기는 했지만, 대단치는 않았다. 며칠 보이지 않기에 그도 이젠 부모님을 따라서 영영 사라졌나 보다 싶었었다. 그런 그가 며칠 만에 다시 나타난 것에 불과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집은 그의 집이었다. 그렇게 되어야 마땅했다. 사진과 메모리칩들을 모두 버린 게 미안한 일이긴 했지만, 그렇지만…… 빌어먹을 새끼, 어머니 장례식엔 코빼기도 안 비치더니만.

……

그런데, 좀 이상했다. 근처에서 배회하던 그 그림자와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구두 옆에 쪼그려 앉아 달리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심지어 그를 품에 안아 주기까지 했다. 좋은 냄새가 났다. 언젠가 맡아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한.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달리를 품에 안은 그 그림자가 어깨를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아마도 울음을 속으로 삼키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엔 달리가 그를 안아 주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

 

유리는 균형을 잃고 현관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짊어진 짐이 많은데다 한 손엔 화분까지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바람에 한 손으론 달리의 구두를 짚고 말았다. 좀 전에 그가 코를 박고 들여다보던.

거긴…… 아직, 그 녀석이…….

달리가 뭐라고 웅얼거리는 순간, 현관의 센서 등이 뒤늦게 불을 밝혔다. 유리는 노랗게 곰팡이가 핀 구두를 내려다보며 탁탁 손을 털었고, 달리는 그런 그녀를 멀거니 올려다보았다. 커다란 배낭과 화분을 현관 한쪽에 내려놓고, 텅 빈 그의 집을 둘러보는 동안, 다시 불이 꺼지고 어둠이 켜졌다.

이사라도 나간 것처럼 그의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밖에서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물. 돌멩이를 던지면 하나 둘 셋을 세고 나서야 ‘폭’ 소리가 들리던, 시골의 아주 오래된 우물처럼 괴괴했다. 모든 소리와 빛을 빨아들이고 나서 겨우 일렁이는 물빛만 조금 보여 주는. 그의 부모가 평생 모은 재산을 천재 아들 이명주를 복제하는 데 모두 탕진하고 겨우 그거 하나 남겼다던, 바로 그 빌라인 모양이었다. 그들의 꿈은 여기, 이렇게 고여 있는 셈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다시 찾은 달리의 사무실엔 범생이 스타일의 직원 두 명이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홍보용인지 테이블 위엔 돌리 인형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들에게 ‘여기 근무하던 달리 씨’의 행방을 묻자 한 사람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퇴직했습니다. ……혹시, 에이에스가 필요하신가요? 그 직원이 신상에 문제가 좀 있었거든요. 저희한테 말씀을 하시면……까지 듣고 유리는 발걸음을 돌렸다.

달리가 살았다던 빌라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동네 풍광에 대해서는 전에도 가끔 달리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50년도 더 된 느티나무들이 3층짜리 빌라를 완전히 뒤덮고 있어서 안에서 보면 꼭 밀림 같다는 곳. 단지 안에 있는 마트에서 주전부리 몇 가지를 산 뒤 얼마 전 뉴스에 자주 나왔던 복제 인간을 묻자, 어렵지 않게 그의 집 동 호수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가씨가 거긴 왜?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유리에게 칠십 줄의 중노인 하나가 혀를 쯧쯧 찼다. 듣자니까 그놈, 완전히 불쌍놈이더만. 오늘내일 하는 부모를 계단 위에서 떠다밀었다니 원, 세상이 말세는 말세여…….

 

지하 3층엔 빈자리가 더러 있는 듯했지만, 기사는 계속 아래로 차를 몰았다. 바로 앞차의 뒤꽁무니가 보였다 안 보였다 했다.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는지 차 밑바닥에서 물이 똑 똑 똑 떨어져 말없음표를 만들고 있었다. 지하 4층엔 빈자리가 꽤 많은 듯했고, 지하 5층은 거의 텅 빈 듯했지만, 기사는 주차장 쪽으로 핸들을 돌리지 않았다. 어두운 곳에서 보니 그의 표정은 더욱 견고해 보였다. 블루블랙의 선글라스는 이제 완연한 블랙이 되었다. 이 양반 혹시, 맨 아래층을 좋아하는 별난 취미가 있는 게 아닐까. 주차를 하기엔 그게 편할 수도 있겠지만…… 자동 주차 시스템을 설치하는 데 몇 푼이나 든다고…… 달리는 눈을 감고 의자 깊숙이 몸을 뉘었다. 노곤한 피로가 몰려왔다. 숙면을 취해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주차를 하고 나면 캔 커피라도 뽑아 마셔야겠군, 생각하며 깜빡 잠이 들었었던가,

어떤 여자의 비명 소리가 저 아래쪽에서 들려온 듯하기도 했고, 택시가 한참 동안이나 멈춰 서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눈꺼풀이 한없이 무거웠다.

 

살아 있다는 건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유리는 달리의 가슴에 귀를 붙이고 생각했다. 살아 있다는 것. 그의 가슴 안쪽에서 쿵 쿵 쿵 규칙적인 울림들이 들려왔다. 유리는 삐쩍 마른 몸에 핏발 선 두 눈이 퀭하게 들어가 있던 달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흘 전, 유리가 그를 찾아왔을 때 그녀를 멀거니 쳐다보던 사내와 지금 여기 그녀 옆에 누워 쿵 쿵 쿵 힘차게 혈액을 순환시키고 있는 사내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내가 만약 달리를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는 어쩌면……. 유리가 배낭을 뒤져 빵과 우유를 그의 손에 쥐어 줬을 때, 달리는 게 눈 감추듯 그것들을 먹어치우다 말고 어느 순간부터인가는 꺽꺽 울음을 삼켜대기만 했었다. 살아 있다는 건, 대체 무얼 의미하는 걸까.

유리는 살그머니 일어나 창가로 가서 섰다. 달리는 벌거벗은 채로 누워 가볍고 느리게 코를 골고 있었다. 그의 성기는 왼쪽 허벅다리 위로 축 늘어져 있었다. 느티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푸르렀다. 땀내가 풀풀 나는 달리를 잡아끌어 욕조에 집어넣고 거품을 잔뜩 내 씻겨 주었던 사흘 전부터 두 사람은 벌거벗을 채로 지냈다. 온종일. 부둥켜안고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고 나면 늘어지게 잠을 잤고, 잠이 깨면 다시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배가 고프면 유리의 배낭을 뒤져 뭔가 먹을 만한 걸 꾸역꾸역 뱃속으로 집어넣었고, 먹다 지치면 다시 늘어지게 잠을 잤다. 매미들이 숨넘어갈 듯 울어댔다. 바람이 불 때마다 느티나무 이파리가 반짝반짝 빛났다.

유전자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들락거릴 즈음, 유리는 언론 보도를 통해 달리의 소식을 접하곤 했다. 한동안 그는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였었다. 첫 뉴스는 그가 패륜 범죄를 저질러 노부모가 중상을 입었다는 보도였고, 두 번째 뉴스는 위성사진 판독 결과 그가 혐의를 벗게 되었다는 보도였다. 아무려나 세상 사람들은 그의 무죄보다는 그의 개인사에 관심이 훨씬 더 많았다. 아이큐가 이백을 넘었다는 천재 물리학도 이명주 군이 삼십 년 만에 재조명을 받았고, 그의 부모들이 이명주 군을 복제하기 위해 치렀던 경제적인 손실들이 빠짐없이 계산되어 낱낱이 공개되었다. 그리고 제2의 이명주 군이 다녔던 학교와 동창생들의 증언을 통해 시시콜콜한 에피소드들이 도마에 올라 토막토막 절단 났다. 자신을 달리라 불러 주길 원하는 복제 인간 이명주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사이 온 국민은 복제 인간 전문가가 되었고, 애꿎게도 ‘제2의 이명주 군’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세 명의 복제 인간과 한 명의 대리모, 그리고 두 명의 난자 제공자가 비관 자살을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학교가 파했는지 초등학생들이 와글와글 빌라 단지 안으로 몰려왔다. 몇은 벌써부터 아이폰을 쓰고 사이버 공간 속으로 빠져든 모양이었다. 딴 세상에 가 있는 아이들 사이로 한 임산부가 유모차를 밀고 천천히 지나가는 모습이 느티나무 잎사귀 새로 보였다.

지금쯤 판도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유리는 문득 자신의 아바타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졌다. 성주(城主) 레벨까지 올라갔다가 패전의 책임을 물어 좌천을 당했고, 기사 레벨로 강등되어 전투 때마다 선봉에 섰다가 결국 전사해 이제는 다시 평민으로 돌아가고 만…… 흣, 유리는 뒤를 살짝 돌아보며 프흣, 웃음을 흘렸다. 조금 전 한 아이가 느티나무 꼭대기를 향해 사탕을 던졌을 때는 일제히 침묵했던 매미들이 그 아이가 지나가고 나자 다시 요란하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곁눈질로 슬쩍 돌아보니, 언제부터 깨어 있었는지 달리가 거실 한쪽 벽면에다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유리가 서 있는 이쪽을 슬금슬금 쳐다보면서. 허리를 굽힌 자세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한 여자의 뒷모습이 점점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엉덩이가 유난히 강조되고 이쪽저쪽에서 남성의 성기들이 치근대는 형상의. 그림은 점점 〈자신의 순결에게 자동 능욕 당하는 젊은 처녀〉를 닮아 가고 있었다.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안개가 자욱한 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보고 있는 곱슬머리의 여자와 코뿔소 뿔 형상의 우람한 성기들…… 유리는 모른 척 창밖에 계속 눈길을 준 채 그가 그림을 마저 그릴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감상하는 것만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달리는 그림 그리는 솜씨도 꽤나 수준급이었다.

나는…… 달리다? 마침내 달리가 그림 옆에 사인을 하고 있을 때, 유리가 다가가 거기 씌어 있는 걸 읽었다. 그의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제목이야? ……나는 달리다.

아니, 내 이름. 난 사인을 이렇게 하기로 했어. 나는, 달리다!

거기, 지금 달리가 그림을 그린 거실 벽면엔 전에도 큼직한 액자가 걸려 있었던 모양이었다. 색이 바래지 않고 유난히 하얀 그곳에 금세 그림 한 점이 새로 붙었다. 벽 바깥을 내다보고 있는 여자. 나는 달리다. 그 때문에 거실엔 창문이 하나 더 생겼다. 이제, 막.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태어나기 삼 년 전에 죽은 형의 이름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고 했다. 그의 이름을 들으면, 그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연민이 생긴다는 남자. 유리는 달리를 품에 안고 젖을 물려 주었다. 이제야 넌, 할 일을 찾은 모양이로구나.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유리는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려. 가슴속에 있는 걸 다 끄집어내서 이 집 벽에다 그려 놓으렴. 지난봄에도 달리는 명주 형의 기일 날, 그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는 납골 묘역에 다녀오는 게 싫어서 체머리를 흔들어댔었다. 나중에 불미스런 사고가 생겨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에야 국선 변호사가 공개한 내용이지만, 그는 명주 형의 영정 사진에서 쿨럭쿨럭 쏟아져 나오는 검은 그림자를 해마다 보아 왔고 언젠가는 자신의 몸속으로 영원히 들어와 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고 했다. 검은 그림자.

 

탕, 탕탕. 보닛을 손바닥으로 내려치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울부짖음이 지하 주차장 진입로를 따라 튕겨 올라왔다. 아마도, 몇 층 아래인 듯했다. 지하 7층이거나 8층쯤……? 달리는 깜빡 잠이 들었다가 화들짝 깨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비상등을 켰는지 앞차의 후미가 깜빡깜빡 점멸하고 있었다. 비상등을 깜빡이고 있기는 달리가 타고 있는 택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뒤에 따라오고 있는 차들 역시…… 아래층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차들은 오래도록 멈춰 서서 앞쪽의 상황이 빨리 해결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눈치였다. 깜빡깜빡. 차에서 내려 아래층으로 내려가 봐야 되는 거 아니냐는 뜻으로 기사를 바라보는 찰나, 앞차의 비상등 점멸이 꺼지고 이내 움찔움찔 차들이 다시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하 6층을 지나고 7층으로 접어들 때쯤, 마침내 보닛을 두드렸던 여자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진입로 가장자리 좁은 난간을 타고 위쪽으로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양손엔 하이힐 한 짝씩을 들고, 맨발인 채로. 엘리베이터를 놔두고 왜 저 고생을 하고 있나 싶어 그녀를 쳐다보고 있자니 그녀 역시 달리가 타고 있는 택시를 지나치면서 안쪽을 뚫어질 듯 들여다보았다. 선팅 때문에, 게다가 안쪽이 더 어두우니 잘 보이지는 않았을 테지만, 어쨌든 이쪽에서는 그녀가 잘 내다보였다. 눈물을 흘렸는지 시커멓게 번진 아이섀도며 헝클어진 머리와 찢어진 하얀 블라우스 옷깃…… 하지만 묘하게도, 그녀는 활짝 웃고 있었다. 피에로처럼. 그녀의 하이힐이 택시 측면을 긁기라도 할까 봐, 기사는 유심히 사이드 미러들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무려나 그녀는 지하 6층 쪽으로 총총 사라졌다.

지하 9층을 지날 때 비상등을 깜빡이며 택시 한 대가 빈터에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 기사인 듯 보이는 검은 형체가 앞유리에 언뜻 비쳤을 뿐 다른 승객은 없는 듯했다. 이제 차들은 밀리지도 않고 아래로 아래로 잘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택시는 지하 15층을 지나 16층을 통과하고 17층, 18층, 19층…… 뱅글뱅글 돌아 아래로 아래로 자꾸만 내려갔다. 그런데, 이 양반이 이젠 주차하는 걸 아예 포기한 건가,

아니, 참! 그런데…… 이 건물에, 언제부터 지하 26층이 있었던 거지?

 

유리가 잔뜩 사다 부려 놓은 물감과 붓들을 바라보며 달리는 처음으로 웃음다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니, 그때부턴 웃음이 그의 얼굴에서 종종 일렁이곤 했다. 캔버스 따윈 필요 없었다. 달리는 색색의 물감들을 풀어 거실 벽면 가득 그림들을 그려댔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건 일정한 순서도 없이 대강 칠하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어느 순간 붓끝에서 어떤 형상들이 도드라져 올라온다는 거였다. 맨 처음에 그린 것은 〈기억의 영속〉이었다. 세상은 죽은 것처럼 적막해 보이고, 시계는 축축 늘어져 있었다. 밖은 한여름이었고, 느티나무 숲에선 매미들이 줄창 울어댔다. 달리는 마치 딴 세상에 사는 사람처럼 그림 그리는 데 몰두했다. 때론 벽 앞에 서 있는 그의 벌거벗은 뒷모습조차 그림의 오브제가 된 듯했다.

달리의 그림 그리는 속도는 놀랍도록 빨랐다. 어느 순간 〈욕망의 수수께끼,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가 한쪽 벽면을 채웠는가 싶더니, 오래지 않아 다른 쪽 벽면에 〈나르시스의 변모〉가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온몸을 구부리고 앉은 나르시스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죽음의 손가락, 그리고 알을 깨고 피어오른 꽃송이…… 그가 그려놓은 그림들은 붓 터치 하나까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을 빼닮아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그의 그림들을 들여다보고 살았으면…… 유리는 놀랍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그림이 하나하나 완성될 때마다 그를 오래도록 품어 주었다. 물론 그림들마다 그렇지는 않았다. 살바도르 달리의 연인이었다는 갈라의 초상을 그릴 때면 유리를 세워 놓고 모델을 삼곤 했는데, 나중에 보면 그림 속 여인은 갈라 같기도 하고 유리 같기도 했으며, 두 사람이 뒤섞인 것 같기도 했다.

아무려나 거실 벽면이 그림들로 빼곡해졌을 즈음, 그의 그림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엔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을 작품별로 한 점 한 점 따라 그렸지만, 나중엔 작은 에피소드들이 마구 섞여서 배치되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품고 있는 〈새〉 옆에 ‘베르메르의 망령’이 와인 병을 세워 놓고 있기도 했고, 그 위쪽에 사자와 대화를 나누는 여자의 모습이 배치되기도 했다. 배가 고플 때면 〈빵 광주리〉를 그리고, 비가 오는 궂은날이면 〈꿈〉의 한 부분을 그렸다. 틈틈이 그림 위에 개미들을 바글바글 그려 넣는 건 유리의 역할이었다. 세 마디의 둥그스름한 까만 점과 여섯 개의 가느다란 다리, 그리고 두 개의 더듬이. 개미라면 유리도 자신 있게 그릴 만했다. 개미들. 그림이 다 그려졌다 싶으면 달리는 ‘나는 달리다’라고 적었고, 개미떼가 그려진 옆에는 유리가 ‘나는 유리다’라고 적었다. ‘나는 달리다’와 ‘나는 유리다’는 점점 많아져서, 이제 안방까지 그림으로 빼곡해졌다.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두 사람의 사인이 개미떼처럼 보이기도 했다. 달리는 유리의 아랫배에 사자를 그려 놓고 나서 ‘나는 달리다’라고 써 놓기도 했다. 이어 유리의 등과 오른쪽 허벅다리, 그리고 왼쪽 가슴 위도 ‘달리’가 되었다. 물론 달리 역시 그의 성기 위쪽 거웃 주위로 개미들이 바글바글 꼬이는 걸 피할 순 없었지만.

사인을 하고 나면 유리는 달리를 부둥켜안고 오래도록 사랑을 나눴다. 땀이 배면 사자와 개미들이 뒤섞여 한꺼번에 뭉개지거나 바스러지기도 했다.

어느 땐,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유리는 배낭에서 침낭을 가져다가 아랫배에 두른 채로 창밖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한두 장씩, 붉은색이 감도는 나뭇잎이 유리창을 톡, 톡톡 건드리기도 했다. 곤한 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유리의 잠든 모습이 벽면에 그려져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럴라치면, 유리는 잠결의 달리를 내려다보며 나직이 속삭이기도 했다.

우리, 이 집이 그림으로 가득 찰 때까지 여기서 살자. 아니, 그림이 가득 차면 그 위에 하얀 페인트로 덧칠을 하고, 그러고 나서 다시 그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또 하얀 페인트로 덧칠을 하고…… 그렇게 계속 그림이 쌓이면 벽도 점점 두터워질 테지. ……그러다가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면, 언젠가는 우리가 빠져나갈 통로마저 막혀 버리게 될 거야. 그러면? 그러면, 자연스럽게 여기가 우리 무덤이 되는 거지 뭐. ……멋지지 않아? 우리가 그린 그림들 속에, 그것들과 함께 순장되는 거.

유리는 어느 순간, 달리와 함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 더 이상 사이버 공간이 궁금하지 않았다. 그런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티베트 출신 장족 남자와 연분이 난 엄마도, 머리를 깎고 산으로 갔을 게 뻔했지만 아무튼 홀연히 자취를 감춘 이모도,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궁금해 하지 않기로 했다. 어느 땐, 어떤 기억이 실제의 기억이고 어떤 기억이 사이버 공간에서의 기억들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뭔가, 알 수 없는…… 세상 바깥의 일보다는 까닭 없이 찾아드는 나른함이 더 소중한 듯 느껴졌다. 뭘까, 이렇게 착 가라앉는 느낌은…… 땅바닥에 달라붙어 뿌리를 내릴 것만 같은…… 유리는 달리의 아랫배를 손바닥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며 창틀에 놓인 화분을 바라보았다. 저 호리호리한 녀석이 언제쯤 내 나이만큼 이파리를 내밀 수 있을까?

 

있잖아, 실은…… 널 찾아오기 전에, 개마고원엘 갔었어. 유전자 치료 받는 것도 너무 힘들었고, 문득…… 사는 게 지겨웠거든. 거기 가면, 자살 기계가 있다길래. 좀 비싸긴 해도, 아무것도 남김없이 세상을 뜰 수 있다더라구. 거긴 바람이 많이 부니까…… 캡슐을 하나 분양 받은 뒤에 안에 들어가 있으면 자살 기계가 모든 걸 알아서 해준대. 전화를 걸어서 가족들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도 있고,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영화나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있다 보면…… 그러다가 생체 리듬이 가장 차분하게 안정되는 순간, 자살 기계가 캡슐 안으로 조금씩 조금씩 가스를 뿜어 준대. 기분이 최고로 좋아지는 순간, 잠이 쏟아지겠지, 참을 수 없도록 달콤한 잠. 그러면? 그러면 끝이지 뭘. ……아니 참, 자살 기계가 고객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 있댔어. 그의 심장이 멈추는 순간, 캡슐에 열을 가해 통째로 태워 버리는 거지. 재만 남을 때까지. ……그리고? 그럼 정말로 끝이지 뭘. 자살 기계 문이 스르르 열리고 나면, 그다음은 개마고원의 바람이 알아서 처리해 줄 테니까.

난 캡슐 안쪽에 그림을 그려야겠군. 그런데, 그림을 그리다가 내가 그린 그림이 너무 맘에 들면 어떡하지? 내가 죽어서 재만 남는 건 하나도 아깝지 않지만, 그림이 타 버리는 건 아까워질 텐데…….

그럼 기계 작동을 멈추고 나오면 되지. 완전히 잠에 빠져들기 전까진…… 언제라도 자신이 선택을 할 수 있댔어. 그렇지 않으면 그게 자살 기계겠어? 살인 기계지. 그런데, 그거 괜찮다! 자살용 캡슐 안에 그려진 그림. 그거 경매 붙으면 꽤 비싸겠는데?

하핫, ……그런데, 왜 기계 작동을 멈추고 나온 거야?

아! 개마고원까진 가지도 못했어. 함흥에서 이틀을 묵었는데…… 자꾸 집에 두고 온 화분이 생각나더라구. 저거, 네가 준 은행나무 화분말야. 내가 저 녀석한테 내 나이만큼 이파리가 달리면 아파트 앞 화단에 옮겨 심어 주기로 약속을 했었거든. 저 녀석이 눈앞에 삼삼한 게,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져야 말이지. ……야, 웃지 마. 정말이라니까,

깜빡깜빡, 달리는 혼몽한 와중에도 문득 자전거를 타고 개마고원까지는 올라가 볼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거길 가면 뭐가 있을까? 고원…… 산처럼 정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황량한 벌판, 사막 같은. 야트막하고 깡똥한 나무나 억센 풀들이 검푸른 빛깔로 자라고 있으려나…… 한참 전부터 기사는 팔을 겯고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더 이상 속도가 빨라지지 않았고, 회전 폭을 조절해 주지 않아도 벽에 부딪치지 않았다. 지하 320층인가 330층인가를 지날 때까진 내가 어디에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었지만, 그 후론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심지어 어느 순간, 앞차와 뒤차의 불빛이 시나브로 약해지다가 완전히 어두워진 뒤부터, 그리고 계기판의 불빛들이 한순간 퍽 하고 꺼진 뒤부터…… 달리는 지금껏 나눴던 수많은 대화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조그맣게 바퀴 굴러가는 소리는 들려왔다. 지금쯤이면 560층쯤 내려왔을까? 아니면 650층쯤…… 대체 이 양반은 지하 몇 층에서 주차를 하겠다는 심보인 걸까. 혹시 운전을 하다 말고 잠이 든 건 아닐까…….

달리는 도무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팔을 들어 기사가 앉아 있는 쪽으로 팔을 뻗어 보았다.

 

*

 

공기 방울. 조그마한 공기 방울이 몸속에 달라붙은 느낌이었다. 여자는 침낭 속에서 얼굴만 내민 채로 오랫동안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뭘까? 이 느낌은. 공기 방울. 그리고 어느새 날이 추워졌다는 걸 느꼈다. 이제, 여름이 갔구나! 여자는 고개만 돌려 어둑해진 방 안을 둘러보았다. 남자가 보이지 않았다. 어딜 간 걸까? 화장실에 있나 싶어 가만가만 소리를 따라 그의 움직임을 잡아 보려 했지만, 조용했다. 우물 속처럼.

현관 앞에, 여자가 침낭을 허리에 둘둘 말고 서서 문 앞을 바라보았을 때, 남자의 구두가 보이지 않았다. 거기, 노란 곰팡이가 솜털처럼 오소소 피어 있던 남자의 구두가, 없었다. 앙증맞은 크기의 여자 운동화만 한 켤레 가지런히 놓여 있을 뿐이었다. 여름내 그는 집 밖으로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었는데. 여자는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나와서 다시 거실을 한 바퀴 휘둘러보았다. 빼곡하게 그려진 그림들. 그는 어딜 간 걸까? 여자는 입속에 고인 침을 삼키다 말고 인상을 찌푸렸다. 배가 고팠다. 여자는 뭔가 먹을 게 없을까 하고 배낭을 뒤지다 말고,

거실 벽면을 찬찬히 다시 둘러보았다. 그림들 사이사이…… 없어진 건 남자만이 아니었다. 그림들마다 붙어 있던 사인들이, 없었다. 남자가 적어 놓았던 사인들마다, 그 위에 하얀색 유화 물감이 덧칠되어 있었다. 그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여자는 배고픈 것도 잊은 채 거실 한복판에 서서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그림도 안 그리고 벽만 쳐다보고 앉아 있더니만. 바람이 불고 있는지, 반짝반짝 빛나는 느티나무 잎사귀 사이로 붉은 노을이 언뜻언뜻 비쳤고, 어디서 불이라도 났는지 소방차 몰려가는 소리가 아득하게 멀리서 들려왔다.

여자는 탁, 소리가 나도록 야무지게 창문을 닫았다.

 

 

 

1) 어울리지 않는 것끼리의 짝 지음.

연작 1·2·3은 소설집 『용꿈』(문학과지성사, 2006), 4편은 《문학과사회》2007년 가을호 참조.

 

2) Keith Campbell: 영국의 유전공학자. 1996년 영국 로슬린 연구소에서 이언 윌머트 박사와 함께 성장한 양을 최초로 복제시키는 데 성공, 돌리를 탄생시켰다. 여기서는 그의 이름을 딴 복제 회사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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