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국수

 

 

 

박진규

 

 

1

 

그 국숫집으로 말하자면 눈발이 하얗게 날리던 겨울에 찾아 들어간 곳이었다. 성탄절은 지났지만 새해가 밝기 전이었으니까 쓸쓸함과 설레는 마음이 휘휘 섞이는 그런 때였다. 날씨는 제법 쌀쌀해서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들이마시면 차가운 바람이 목구멍으로 잘도 넘어갔다.

나와 어머니가 들어간 국숫집은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포장마차는 아니었다. 그 시절의 여성치고는 키가 컸던 어머니가 고개를 숙인 채 들어가야 하는 작은 구멍가게였다. 가게의 출입문은 미닫이문이었고 작은 유리창에는 ‘국수’라는 글자가 붉은 페인트로 쓰여 있었다. 이제는 사라진 동네 목욕탕 출입문에 쓰여 있던 ‘남탕’ ‘여탕’이라는 글씨체와 비스무리한 붓글씨체였다. 국수를 먹으러 갔던 그날은 어머니와 목욕을 하고 돌아오던 길이었으니 내가 여탕에 다니던 시절인 대여섯 살 무렵이었을 거다.

여탕에 대한 기억은 탕 안에 감도는 부연 수증기처럼 희미하기만 하다. 탕 안의 광경은 거의 기억나지 않고 어떤 소리들만이 가물거린다. 아주머니들의 까르르한 웃음소리와 엄마들에게 찰싹찰싹 얻어맞아 울어대는 아이들의 울음소리 같은 것들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여탕은 고로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붙잡고 다녔던 마을 어귀의 시장과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시장에 있는 여인들이 모두 벌거벗은 채 큰 엉덩이를 내놓고 배추를 고르는 상상을 하며 킥킥댔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삼십대 중반을 훌쩍 넘긴 지금은 가끔 대형 마트에 혼자 가더라도 장을 보는 여인들이 모두 벌거벗고 있는 상상 따위는 하지는 않는다. 그건 좀 지구 최후의 재난처럼 느껴진다.

수증기와 웃음소리 그리고 울음소리보다도 더 확실한 기억이 있다면 물방울이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온몸이 벌겋게 되도록 때를 밀고 나면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는 잠시 바닥에 드러눕곤 했는데 그때 천장에서 물방울이 똑 떨어지곤 했다. 가끔 물방울은 이마에도 떨어져 내렸는데 그 차가움의 감촉이 겨울 날씨의 차가움과는 사뭇 달랐다.

때를 미는 것, 울고 웃는 것, 떨어지는 물방울.

이것은 국숫집과 더불어 기억 한구석에 겨우 자리를 차지하는 어떤 얼룩들이다. 그러니까, 어찌 말하면, 쓸쓸하게 들러붙은 덩어리 같은 것. 대가리와 꼬리가 댕강 잘린 생선 토막과 별로 다르지 않은. 요즘에는 잠들기 전 아주 잠깐 자살이란 단어를 우물거려 보는데 그때 가끔 생선 토막이 툭 떠오른다. 내가 죽는다고 한들 이 세상에 생선 토막만큼의 의미도 남기지 못하리라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일 거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아버지를 따라 남탕에 갔다. 남탕 천장에도 물방울은 맺혀 있었을 테지만 이런저런 기억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남탕은 남자들이 딱딱해지지 않는 유일한 장소라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래서 그런지 물에 젖은 사내들은 아무리 목청을 높여도 어딘지 모르게 유순해 보인다.

다시 국숫집 이야기로 돌아가면 나는 대여섯이었으니까 어머니는 스물아홉이었을 거다. 우리는 발그레한 얼굴로 목욕탕에서 나와 싸늘한 겨울바람을 즐겼다. 어머니는 겨울바람을 깔깔대고 맞을 만큼 아직 생기발랄한 나이였다.

지금의 나는 스물아홉의 어머니를 떠올리려 해도 잘 그려지지가 않는다. 어떤 밝은 기운 같은 것은 느껴지지만 구체적인 얼굴 표정이나 이목구비 따위는 흐지부지하다. 한 번은 안마방 아가씨에게 별 생각 없이 나이가 몇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간호사 복장의 아가씨는 제복이 너무 낡아서 포르노 속의 주인공이 아니라 업무에 찌든 직업인에 더 가까워 보였다. 어쨌든 그녀는 스물아홉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조금 놀랐는데 놀란 마음이 가라앉자 쓸쓸해지기도 했다. 하여튼 그녀가 말한 스물아홉은 허스키한 목소리 덕인지 구겨진 담뱃갑과 비슷한 숫자로 느껴졌다.

“그러니까, 정말, 올해로 스물아홉이라는 거야?”

“맞다니까. 스물아홉으로 안 보여요? 그럼 서른둘로 하던가.”

“왜 나이를 속여? 사람이 진실해야지.”

알코올이 온통 머릿속을 적셨다가 겨우 어딘가로 날아가던 터라 머리가 멍했다.

“서른둘이든 스물아홉이든 아저씨하고 상관은 없잖아요.”

“나한테 스물아홉이란 숫자는 중요해. 그럴 일이. 그러니까, 그래, 왜 중요하지. 중요한데 말이야.”

그녀는 취객의 구린내 풍기는 하소연은 진력이 났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됐고, 이제 엎드려요.”

“친절 서비스가 형편없군.”

“이 정도면 만족하겠어요?”

그녀는 푹 퍼진 서른일곱의 엉덩이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하지만 곧이어 뾰족한 손톱으로 긁기 시작했다. 나는 스물아홉에서 서른둘 사이를 밤마다 방황하는 그녀가 내 살덩이에 화풀이를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물론 그때 손톱의 감촉을 느끼면서 국숫집을 기억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병원놀이를 떠올렸더랬다. 병원놀이를 할 때도 나는 의사보다는 늘 환자 역할을 좋아했다. 아프면 침대에 드러누워 달콤한 복숭아 통조림이나 먹고 있는 게 환자의 하루라고 생각하던 나이였다. 그 때문에 소꿉친구였던 옆집 친구는 이미 세상을 다 아는 여인의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곤 했다. 하긴 아무리 일곱 살 소녀라도 환자 남편보다는 의사 남편이 훨씬 바람직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을 테니까.

안마방에서 살짝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나는 국숫집이 아닌 술집을 보았다. 맥주를 시원하게 쭉 들이켰는데 미지근한 청주 맛이 났다. 그 꿈은 아주 짧았지만 깨고 나서 뒷맛은 그리 좋지 못했다. 시원해야 맥주는 기가 막히고 뜨끈해야 청주의 맛이 나는 법인데. 이도저도 아니게시리. 하긴 살다 보니 그런 일이 한둘이 아니기는 하지만서도.

 

2

 

눈발이 하얗게 날리는 겨울에 찾아 들어간 곳이었다. 미닫이문을 열자 좁지만 그다지 답답한 느낌은 주지 않는 뜨끈한 공기가 우리를 반겨 주었다. 볼이 발그레한 어머니가 양손을 마주 비비던 보드라운 소리가 기억난다. 그것은 새 편지지를 접을 때 들리던 사소하고 정겨운 소음과도 비슷했다. 내가 처음 쓴 편지는 부모님에게 어버이날 썼던 것은 아니었고 군인들을 위한 위문편지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이었으니 이 역시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에 다니던 때였던 것 같다. 나는 그 무렵 텔레비전에서 까까머리의 군인들이 얼음물 속에 들어가 이를 악물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군인 아저씨들은 목욕탕에 안 가요?”

나는 아마도 그렇게 물었던 것 같다.

“응, 얼음물에 들어갔다 나와야 씩씩한 남자가 되는 거야.”

어머니는 깨금발을 들고 총채로 창틀의 먼지를 털어 내며 대답했다.

다음날 마당에 나가 세숫대야에 찬물을 받아 세수를 했고 호된 감기에 걸렸다. 콧물을 훌쩍이며 앓는 동안 나는 군인아저씨에게 위문편지를 보내고 싶어졌다. 떠오르는 건 '날이 너무 추워요'라는 문장만 하나. 물론 편지를 썼던 기억은 남아 있지만 우체통에 집어넣었던 기억은 물론 하얀 봉투에 넣은 기억까지 하얗게 지워져 있다.

다만 '너무 추워요'라는 첫 문장은 생생하다. 내가 군에 있던 시절 똑같은 문장으로 쓰인 위문편지를 받은 덕이다. 대학 신입생 시절 만나 사귀었던 첫 여자 친구는 일 년 정도 꾸준히 연애편지를 보내 주었다. 그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게 유행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위문편지를 경어로 써서 보내 주었다. '너무 추워요'란 문장은 그렇게 해서 튀어나온 것이었다. 게다가 동그란 얼굴에 앳되어 보이는 외모의 그녀는 손가락마저도 초등학생처럼 짧고 통통했다. 나는 그녀가 쓰는 글씨체가 초등학생처럼 삐뚤빼뚤했던 까닭이 혹 손가락이 조금 짧아서는 아닐까라고 생각만 하고 묻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 손가락의 길이만큼 우리의 사랑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하리란 불길한 예감에 자꾸 휩싸인다는 말도.

돌이켜보니 감기에 걸린 채 썼던 위문편지는 아예 없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썼다고 생각한 위문편지는 그녀가 쓴 편지일 가능성이 더 높은 것 같다. 나는 열에 들떠서 군인아저씨에게 위문편지를 쓰리라고 다짐만 하다 까무룩 잠이 들지 않았을까.

어쨌든 경어로 쓴 위문편지가 쌓일 때마다 제대하기 전에 우리가 헤어지리란 믿음이 깊어졌다. 삐뚤빼뚤한 경어 밑에는 날렵한 바늘 같은 것이 숨겨져 있다는 의심도 들었다. 풍선처럼 모든 불만이 서로에게 벅차올랐을 때 한순간에 푹 찌를 수 있는.

외풍이 차가운 여관방에서였다. 술에 취해 있었고 서로를 보듬었다. 방 안에 있던 흰색의 얇은 이불 한가운데에는 대형 해파리를 푹 눌러 놓은 듯 어마어마한 누런 얼룩도 있었다. 나와 여자 친구는 얼룩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말 그대로 얼룩 같은 '이런저런'이었고 둘 사이에 오갔던 대화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녀는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우리가 사랑을 나눈 뒤에는 꼭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다. 나의 두근두근이 자기 방에 있는 커다란 곰 인형의 두근두근과 거의 똑같다고 했다. 내가 입대를 하기 전 우리는 꽤 유치했었는데 그녀는 가만히 심장 소리를 듣다가 손가락으로 톡톡 명치를 두드렸다. 그러면 나는 인형 같은 목소리로 'I love you'를 속삭이곤 했다. 젊은 시절의 연애는 유치하지 않으면 외고집의 길로 들어서는 것 같다. 게다가 유치한 기억은 이상하게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끝까지 들러붙어 있으니 난감하기도 하고 껄껄하기도 하다.

“이상해. 두근두근이 이상해. 왜 그래, 넌 어디 있니. 너 변했어? 너 나 사랑해?”

만일 내가 술에 취하지 않았더라면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도톰한 이마에 입을 맞추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술에 취하면 남들에 비해 더 솔직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덜컥 치솟는 유형에 속했다.

“그러니까, 이유는 모르겠는데, 솔직히 아닌 것 같아.”

그녀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뜨듯한 숨결이 맨살에 닿았는데도 나는 그저 이불의 얼룩에만 신경이 쓰였다. 어쩌면 술에 취해서가 아니라 해파리 같은 이불의 얼룩이 워낙 도드라져서 솔직해지고 싶었던 것인지 몰랐다. 그녀는 천천히 하지만 힘주어서 내 젖꼭지를 비틀었다.

여자 친구와 헤어진 후로도 종종 왼쪽 가슴에 손을 얹어 보곤 했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던 버릇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충성을 다해 굳게 다짐할 만한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다만 너무 어이없는 상상이지만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이 정말 진실할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가슴속 두근거림이 정말 나의 감정을 반영하는 걸까 아리송해졌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내 첫 여자 친구는 그 짧은 손가락으로 나의 순수성에 대한 믿음을 캐 갔는지도 몰랐다. 물론 나는 철딱서니 없는 이빨로 그녀의 어떤 부분을 잔인하게 물어뜯었겠지만.

결혼식장에서도 눈앞의 신부가 아름답고 가슴은 두근거렸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믿을 수는 없었다. 그 두근거림이 사랑에 대한 설렘인지 미래에 대한 불안인지 혹은 파투에 대한 미련이었는지 나도 확답은 할 수 없었다.

신혼 여행지에서 나와 아내는 호텔방에서 가운만 입은 채로 와인을 마셨다. 가운 사이로 드러난 보드라운 속살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녀는 와인 한 잔을 마시고 미묘하게 지성적인 눈으로 물끄러미 이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면을 보고 와이프에게 더 끌렸었다. 나는 일상을 계획해서 끌어가는 능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인간이었지만 그녀는 꽤나 수학적으로 삶을 분석하고 이끌었다.

“그러니까 난 그래. 취해서 하는 이야기지만 잘 모르겠어. 행복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목소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과 닮아 있었다.

“무슨 초치는 소리. 그럼 우리가 여기 왜 와 있나?”

다행히 나는 실수할 만큼 취하지는 않았다. 사회생활에 익숙해진 남자란 대개 눈치 빠른 헛소리가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튀어나오는 법이었다. 물론 가끔 헛다리를 짚을 때도 있지만.

“그래, 당신은 늘 그런 식으로 둘러치지. 다 알아.”

아내는 내 두꺼운 허벅지에 작은 발을 올려놓았다. 얼굴은 별로 붉어지지 않았는데 희한하게 발바닥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내와 헤어진 지 제법 오래되었는데도 그 발바닥만은 아직 선명하다. 평소 그녀가 보여 주던 모습과는 달리 지극히 나약한 발이었다. 나는 아내의 작은 발을 손으로 감싸 쥐고 주물러 주었다. 직장에 다니느라 하이힐을 자주 신는데도 참 보드라웠다. 아마 그때 두 손으로 주무르던 내 손길만은 진심이었을 거다.

“증명해 줄 수 있어? 실은 아까 심장 뛰는 소리를 듣고 생각했어.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나는 다시 첫 여자 친구가 꼬집었던 오른쪽 젖꼭지가 쓰라려 오는 기분이 들었다.

나와 아내는 삼 년을 겨우 넘기고서 헤어졌다. 우리가 이혼한 이유는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우리는 노력했다. 내가 생각한 노력은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한 요령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한 노력은 무언가를 향한 태도였다고 생각한다, 내 짐작으론.

까마득하게 잊었던 국숫집을 처음으로 떠올렸던 것은 아내와 이혼한 후였다. 국숫집의 좁은 실내에는 손님이 둘 있었다. 연인처럼 보이는 남녀가 국수 한 그릇을 두고 마주보고 있었다. 여자는 겨우 국수를 먹는 둥 마는 둥이었고 남자는 잔에 거푸 소주만 따랐다.

이혼 서류를 접수한 후, 국숫집에서 소주를 마시던 남자와 내가 닮았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포장마차의 불편한 의자에 앉아 정말 그 초라한 남자처럼 초라하게 소주를 들이켰다. 술이 달다는 말이야 일찌감치 깨달았지만 술이 인간의 깊숙한 곳을 제법 긁는다는 기분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다지 놀라울 것까지는 없는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마침 건너편 자리에 앉은 여자는 혼자서 국수를 먹고 있었다. 얇고 새치름한 긴 머리카락의 그녀는 귀밑에서 목덜미까지 장밋빛으로 붉었다. 나는 거푸 다섯 잔의 술을 들이켜고 살짝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녀는 두루마리 휴지로 서둘러 입술을 닦더니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빈 잔에 다시 맑은 소주를 채워 넣었지만 맑은 술에 무지갯빛 기름이 둥둥 떴다. 국숫집의 남녀가 헤어지기 전이었는지 막 사랑을 시작하려던 차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물론 그건 여섯 살이었을 때도 알아차렸을 턱이 없었다. 여섯 살은 인간이 아니라 그저 소리 내어 말을 할 줄 아는 신기한 강아지와 다를 바가 없다. 그 말이 너무 편협하게 들린다면 어쨌든 나는 그랬다.

어머니는 젊은 남녀를 빤히 바라보는 내 뺨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퉁 쳤다. 아마도 남을 빤히 바라보는 일이 동방예의지국의 시시한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걸 가르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어머니와 나는 젊은 남녀와 멀찌감치 떨어진, 그래봤자 겨우 테이블 하나 건너이지만, 그 자리에서 국수 두 그릇을 시켰다. 국수를 시키기 전 어머니는 빤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한 그릇 다 먹을 수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수하고 찝찌름한 국물 끓는 냄새와 연탄난로에서 풍기는 매캐한 탄내 탓인지 나는 조금 졸렸었다.

따로 주문 받는 사람이 없었기에 어머니는 낭랑한 목소리로 국숫집 여주인을 불렀다. 카운터 겸 주방과 홀의 경계를 짓는 칸막이 안쪽에 앉아 있던 여주인이 고개를 들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제대로 떠오르지는 않지만 그리 친절한 인상은 아니었다. 주문을 받고서도 고개만 살짝 까닥였을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칙칙한 무늬의 블라우스에 털실로 짠 투박한 갈색 카디건 차림이었다. 머리카락은 대개 중년의 그녀들이 그러하듯 잔뜩 부풀린 파마머리였는데 뒷머리가 붕 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목구비는 지금은 모두 까맣게 지워져 있고 떠오르는 건 눈썹뿐이다. 초승달 모양으로 그려진 눈썹 문신은 오른쪽이 유달리 삐쭉하게 위로 치솟아 있었다. 짝짝이 눈썹은 어린 내 눈으로 봐도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조금 무섭기도 했다.

“눈썹이 짝짝이야.”

“저건, 그려서 그래.”

“근데 왜 안 지워?”

“아마 못 지우는 눈썹일 거야.”

어머니는 낭랑하던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사귀거나 짧게 만났던 여자들의 눈썹을 장난스럽게 어루만지는 버릇이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그런 행동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머리카락을 매만지거나 발가락에 입을 맞추는 것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눈썹을 유심히 보는 건 질색들이었다. 한번은 뺨까지 얻어맞았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그때도 겨울이었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많게는 열 살까지 훌쩍 많은 유부녀들과 함께 노닥였다. 다른 이들과 달리 유달리 몸집이 작고 앙증맞아 보이는 입매의 사람이 있었는데 재수 좋게도 나와 눈이 맞았다.

우리는 자정을 훌쩍 넘겨서 나이트클럽을 나와 근처 모텔로 들어갔다. 방이 이층이라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대신 계단으로 올라갔다. 토사물 냄새인지 썩은 맥주 냄새인지 알 수 없는 찝찌름한 악취가 붉은 카펫에서 흠씬 풍겼다. 그녀가 잠깐 발을 헛딛는 바람에 나는 가볍게 어깨를 붙잡아 주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땀과 담배 냄새로 축축해진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허리에 손을 감고 내 쪽으로 끌어당겨 입을 맞추려는데 문득 문신한 눈썹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의 눈썹 문신은 너무 길고 뾰족한 느낌이었다. 피식 웃음이 터져 버렸다.

“어쭈, 문신이군요?”

몸집이 작은 그녀는 매울 정도로 힘껏 뺨을 후려갈겼다. 그리고는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갑자기 술이 깨는 기분이 들며 이게 뭔가 싶어서 그 길로 바깥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여자는 욕실 바깥으로 나와 다시 침대에 걸터앉았다. 나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침대 모서리에 겨우 엉덩이만 걸쳤다.

눈썹 문신은 내 옆으로 살짝 옮겨 앉았다. 그녀는 손을 뻗어 면도한 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까칠하게 수염이 자란 내 턱을 어루만졌다. 가까이에서 보니 화장도 들뜨고 눈가와 입가엔 주름이 자글거리는데도 손길만은 부드러웠다. 나는 언제나 부드러운 것이 좋았다. 부드러운 밤, 부드럽게 내리깔리는 한숨, 누군가를 안은 채 잠이 드는 부드러운 오후의 낮잠. 하지만 부드러움의 가장 큰 유혹은 그것을 뜨듯하게 녹여 버리고 싶다는 묘하고 거친 감정을 불러오는 데 있었다.

우리는 침대에서 엉겨 붙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면서 긴 시간이었고 멍하게 후룩 흘러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있지, 아까 뺨 때린 건 너무 미안해.”

우리는 물에 녹아 둘로 나누어진 하얀 비누들처럼 벌거벗은 두 덩어리인 채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뒤늦게 사과는 무슨. 벌써 잊어버렸는데요, 뭘.”

나는 엄지손가락을 구부려 눈가에 흘러내린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그녀가 장난스럽게 손바닥으로 내 몸의 땀을 위에서 아래로 훑으며 닦았고 나는 간지러워서 웃음이 나왔다.

“귀엽게 웃네. 남자들은 왜 잘 안 웃어? 웃어 봤자, 징그럽게 웃기나 하고. 왜 가슴이라도 건드려 본 다음에야 이렇게 사랑스럽게 웃니.”

그녀는 가볍게 내 아랫배에 입을 맞추었다.

“사냥은 경건해야죠.”

“미치겠다. 그럼, 내가 멧돼지나 노루니.”

“무슨 멧돼지예요. 이렇게 조그마한 멧돼지가 어디 있어. 카나리아로 할까요?”

“말을 말아야지. 그런데 눈썹 말이야.”

“맞아, 눈썹. 여기 눈썹 끝이 약간 족집게처럼 휜 거 알아요?”

“어디 가서 눈썹에 대해 말하지 마.”

“왜요?”

“묻지도 말고. 뺨은 안 때릴 테니까 눈썹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 그냥 지금은 웃기만 해.”

그녀의 목소리는 자그마한 체구와 달리 내리깔리는 알토 톤이었다. 나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우선은 계속 웃어 주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어루만졌다.

“짧은 가시가 돋은 꽃잎 같네. 젊은 남자 입술이란. 그래서 젊은 게 좋은 거지.”

그 밤이 지난 후로도 몇 번의 연락이 왔지만 나는 더는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 나 또한 밤의 일은 낮의 일과 연관시키지 않았다. 게다가 그 무렵에 나는 한참 결혼 준비를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사실 나보다 더 바쁜 건 아내와 곧 시어머니가 될 나의 어머니였지만 두 사람을 위해서라도 조금은 성실한 인간이고 싶었다.

 

3

 

겨울에 찾아 들어간 곳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목욕을 끝내고 뜨끈한 국수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울 작정이었다. 우리는 곧 나올 국수를 기다리며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인아주머니는 주문한 음식을 내놓기 전에 테이블 위에 종지에 담긴 김치와 단무지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단무지를 집어 씹었는데 국숫집이 떠오르면 동시에 그 무의 질감 역시 또렷이 떠오른다. 아삭하게 씹히는 게 아니라 물컹하게 씹히는 그 감촉. 나는 앞니가 빠질까 봐 서둘러 단무지를 뱉었다. 그 물컹대는 공포가 아직까지도 또렷하게 떠오른다.

여섯 살 무렵에 나는 어머니 아니면 아버지 혹은 친척 어른에게 늙은 개와 삶은 무에 대해 들었다. 늙은 개에게 통째로 삶은 무를 던져 주면 그게 고깃덩이인 줄 알고 덥석 문다. 하지만 뜨거운 삶은 무를 깨물면 개의 이빨은 몽땅 빠져 버리고 만다.

나는 이빨 빠진 늙은 개가 안쓰럽기보다 무서웠다. 아내와 이혼하고 직장에서의 승진도 물먹어 버린 그해 겨울에 홀로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여행을 갔다. 술김에 떠난 여행이었는데 있지도 않은 방랑벽이 그때만 잠깐 들어왔다 나갔던 모양이었다.

좌석에 짐짝처럼 누운 채 선잠이 들었다 잠에서 깼다. 잠깐 어떤 꿈도 꿨는데 별 꿈은 아니었다. 쪼그만 사내 녀석이 눈 내리는 대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있다 되돌아가는 꿈이었다. 나는 아니었고 이혼한 아내와 이목구비가 조금 닮은 것도 같았지만 확실히 그렇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꿈이 이러니저러니 오래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가 꿈을 꾸건 술에 취했건 간에 기차는 힘차게 움직였고 나는 소변이 급했기에 화장실로 향했다.

기차간의 화장실은 좁은 데다 덜컹거리고 악취까지 풍겼다. 나는 벽을 짚고 소변을 보았는데 오줌줄기가 자꾸 소변기 바깥으로 튀었다.

그때 한 번 더 이빨 빠진 개를 기억했다. 어머니가 애완동물이라면 질색하는 분이라서 그 무렵에 내가 알던 개들은 모두 골목을 어슬렁대는 놈들이었다. 다들 골목에 똥을 싸대거나 전봇대를 오줌으로 적시기 일쑤였는데 이빨 빠진 개라면 소변도 제대로 못 지릴 것 같았다.

병신 같은 이빨 빠진 늙은 개새끼로군.

소변을 보고 나와 작은 세면대 앞에서 세수를 하다 그 말을 떠올렸다.

나는 거울에 비친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불빛이 침침한 탓인지 두 눈은 한층 붉어 보였고 모공은 컴퍼스로 쿡쿡 구멍을 뚫은 듯 징글맞았다. 서른을 넘긴 뒤로 나날이 더 깊어만 가는 입가의 주름 덕에 어딘지 모르게 인상도 주접스럽게 변했다. 나는 입을 벌리고 손가락을 집어넣어 어금니와 앞니를 만지고 두드렸다. 어금니는 금니로 해 넣었지만 아직 이는 튼튼했고 구취도 그리 심하지 않았다.

그래, 아직 내가 삶은 무를 씹은 건 아니지.

그날 새벽 부산에 도착했다. 해운대까지 가서 바다를 보았지만 아무런 재미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바닷바람이 차가워서 발바닥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가슴 설레는 사건도 없었고 눈물 섞인 감상의 시간도 없었다. 그날 밤에 술을 먹었는지 여자를 샀는지 아니면 밤차로 올라왔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너무 일상적이라서 까마득하게 사라지는 사건은 너무 많아 툭툭 발에 차인다. 하지만 반대로 분명 특별한 사건임에도 기억에서 툭 떨어져 지워지는 사건도 있다. 나에겐 국숫집에서 후루룩 먹었던 뜨끈한 국수가 그러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국숫집에 갔고 어머니는 두 그릇의 국수를 주문했다. 하지만 그때 먹었던 국수의 맛은 물론 그 따뜻한 느낌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결혼식장에서 먹었던 그 똑같이 밍밍하고 배도 부르지 않은 잔치국수의 맛은 너무 생생해서 이젠 좀 잊고 싶을 정도인데 말이다.

다만 국수를 주문하고 기다리던 짧은 시간이 무료했던 것까지는 또렷하다. 나는 너무 지루해서 아마 노래를 불렀을 거다. 만화 주제가는 아니었고 할머니가 가끔 콧노래로 흥얼대던 흘러간 가요였다. 그 노래는 코끝을 간질일 만큼 슬프게 들려서 좋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아버지가 억지로 흐느끼던 곡소리보다도 훨씬 더 서글픈 가락이었다. 할머니는 그저 담담하게 슬픈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내가 슬픈 노래를 따라 부르면 한 번 코웃음을 치거나 아니면 허리가 끊어지게 기침을 했다.

왜 국숫집에서 갑자기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랐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흥얼거렸다. 하지만 한 소절을 부르자마자 어머니가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는 무서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안 돼, 여기선 노래 부르지 마.”

“왜 안 돼?”

“여긴 우리 집이 아니잖니."

무슨 우연의 장난인지 모르겠으나 마침 테이블 건너 앉아 있던 남자가 노래를 한 곡조 뽑았다. 술기운이 올라 쉰 목소리로 목청까지 한껏 드높여서. 국수를 먹던 여자는 잠시 고개를 돌려 나와 어머니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목례를 했다.

“저 아저씨도 노래 불러.”

“아저씨는 그래도 돼.”

“왜?”

“어른들은 울고 싶어질 때가 있어. 하지만 어른이 되면 우는 게 창피하단다. 그러니까 노래라도 불러야지. 우리가 이해해 드리자. 국수 나오기 전까지는 그만 부르시겠지.”

사내는 고함을 지르고 테이블을 주먹으로 두들기며 노래를 불렀다. 미소를 짓고 있던 어머니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아니, 이것은 지금 내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어머니의 얼굴인지도 모른다. 고작해야 여섯 살짜리가 뭐가 어두운 건지 어떻게 알랴? 어쩌면 나는 아내의 얼굴과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겨울 날 늦은 밤 아홉 시 나는 야근을 끝내고 지하철역 승강장으로 들어섰다. 구겨진 정장에서는 담배 냄새라는 말로 간추리기 힘든 답답한 냄새가 풀풀 풍겼다. 참 우연한 일이었지만 승강장 플라스틱 의자에 이미 남의 여자가 된 헤어진 아내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빤히 텅 빈 지하철 철로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꽤나 지치고 어두운 표정이었다. 품에 안긴 갓난쟁이 아기는 곤히 잠들어 있는지 아무 소리 없이 조용했다. 오히려 얼굴만 보면 곧 울음을 터뜨릴 사람은 아기 엄마인 듯 보였다.

아내가 재혼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다가가 인사를 할까 말까 고민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옆에 미끈하고 늘씬한 애인이라도 있다면 개미허리에 팔을 두른 채 참깨 냄새 나는 야비한 웃음이라도 날렸겠지만 말이다. 안타깝게도 마음 놓고 주무를 수 있는 건 호주머니 속 담배와 라이터가 전부였다. 나는 짧게 고민하다 쉽게 결정했다. 아내가 울기 시작하면 다가가서 말을 건네고 그 전에 지하철이 오면 그대로 타고 떠날 생각이었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지하철이 들어왔다. 문이 열리고 몇몇 사람들이 서둘러 내렸다. 그중에는 나와 비슷한 남자도 한 명 있었다. 얼굴이 닮은 건 아니었다. 다만 키나 몸집도 어중간히 비슷했고 입고 있는 양복은 같은 브랜드였으며 솔직히 피곤에 절은 얼굴은 끝내 주게 판박이였다.

아내는 갑자기 환하게 밝아진 표정을 지으며 남자 옆으로 다가갔다. 남자는 처음에는 다소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가볍게 그녀의 뺨을 꼬집었다. 행복한 부부의 모습이었다. 다만 나는 아내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특유의 표정 하나는 잘 알았다. 자신이 노력한다는 것을 드러내려 할 때 입꼬리를 살짝 당겨 유달리 행복한 미소를 짓곤 했다. 게다가 아내의 새 남자 또한 나보다는 훨씬 연기력이 뛰어난 녀석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나는 몸이 피곤하면 아내가 노력하건 말건 늘 하품만 해대거나 짜증만 냈으니까.

그렇군. 이 몸이 부족했던 건 행복하게 살기 위한 연기력이었군.

아내는 승강장 계단을 올라가기 전 나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 특유의 노력하는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무언가 좀 불쌍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대상이 아내인지 나인지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누군가를 향한 것인지 잘 알 수는 없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잠들기 전에 맥주 두 캔을 먹어치웠다. 한 달이 지나자 잠들기 전에 입가심으로 소주 한 병 비우는 일쯤은 별것 아닌 일이 되었다. 술은 고스란히 아랫배와 옆구리와 엉덩이는 물론이거니와 머릿속까지 흐물흐물하게 만들었다. 잠들기 전에 술김에 혼자 무술 동작 비슷한 걸 해보기도 했는데 나름대로 ‘낙지권법’이란 이름을 붙여 보았다.

4

 

겨울이었다. 길바닥은 얼어붙어 차갑고 머릿속으로 찬바람이 술술 들어오는 기분이 든다. 뒤통수가 깨져 피가 철철 흐르는지 단순히 뇌진탕인지 나는 모르겠다. 어쩌면 단순한 쇼크인지도 모른다. 다만 내 몸을 일으킬 수가 없다. 밤이 지나가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았는데 황당할 노릇이다. 손발에 감각이 없는 것 같더니 이제는 온몸이 점점 싸늘해진다.

지금껏 내가 살아온 인생은 대수롭지 않았다. 먹어도 금방 배가 꺼지고 금방 퉁퉁 불어 맛없어지는 국수 한 사발의 팔자였다고 볼 수도 있겠다. 여섯 살엔 세월의 한방 따위는 몰랐으니 그때 먹은 국수 맛이 떠오를 턱이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섯 살은 두 발로 걷는 강아지나 다름없다.

바닥에 누워 있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지난 세월에 대한 수많은 생각들이 자꾸 풀풀거렸다. 별것 아닌 일들이 제멋대로 뒤엉켜서 끓다 잠시 식더니만 하염없이 부글부글.

머리통에는 이런저런 기억이 엉켜 생각이 가득했지만 얼어붙은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짧은 욕설 몇 마디가 전부였다.

뭐, 짧은 욕설 한마디야말로 남자들의 많은 말들이 녹아든 한 줄 시에 가까운지도 모르겠지만.

개새끼. 잡년. 부끄러워요. 무섭군. 어떡하지? 모르겠다. 사랑해요. 처졌네요. 흥분했습니다. 죽고 싶다. 완전 망했군.

하지만 혀마저 점점 굳어 가는 것만 같으니 툭 튀어나오는 욕설마저 언제 끊길지 모를 일이다. 그러면 완전한 침묵만이 밤거리에 남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술에 취해 밤거리를 홀로 걷고 있었다. 어두운 골목에 접어들었을 때 벽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는 무언가가 이쪽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말 그대로 그들은 '무언가'였다. 무언가들은 자박자박 서슴없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어둠 속에서 등장한 녀석들은 고등학생들로 보였지만 어쨌든 나에게는 무언가에 불과했다. 지금은 한밤의 어둠이 지 세상인 양 거들먹거리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삭막하고 씩씩한 세상에 한 방 먹을 것이 빤한 그런 놈들 말이다. 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위협 비슷한 걸 느꼈고 솔직히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나는 흥분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 그들이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 명의 무언가는 내가 얼굴을 붉히고 소리를 지르는데도 흥분하지 않고 침착했다. 내가 무언가였던 시절에 비해 상당히 기교적으로 안정적인 품위를 유지하는 것만은 분명했다. 이 점은 충분히 박수를 보낼 만하다고 생각한다. 둘은 내 팔을 재빠르게 붙잡았고 나머지 한 명은 불룩한 아랫배에 펀치를 날렸다. 나는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이내 녀석들을 제압하려고 발길질을 했다. 그때 잠깐 발을 헛디뎌 넘어진 것 같았는데 무언가 뾰족한 것이 뒤통수를 때리는 감촉이 선뜩했다.

이 부분에서 기억은 확실하지가 않다. 뒤로 넘어져서 뾰족한 돌이나 콘크리트 조각에 뒤통수가 찍힌 것도 같다. 아니 나는 똑바로 넘어졌는데 뒤에서 한 놈이 단단한 물건으로 머리를 내리친 것도 같다. 하지만 과정이야 어쨌건 결과적으로 나는 길바닥에 드러누웠고 녀석들은 버둥대는 한 남자의 몸을 뒤져 지갑과 휴대폰을 가져갔다.

그리고 나는 온몸이 싸늘해지면서 여섯 살 때 갔던 국숫집을 한 번 더 떠올렸다. 옷을 모두 입고 있고 잃어버린 것은 지갑과 휴대폰뿐인데도 벌거벗겨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망신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긴 이미 머리통이 깨졌는지도 모르는데 부끄러울 일이 또 뭐가 있을 텐가.

다시 국숫집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제는 더 말할 것이 없다. 도무지 국수의 맛은 떠오르지 않으니 어쩌면 나와 어머니는 분식집이나 중국집에 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도 아니면 목욕탕에서 나와 동장군의 칼바람에 연신 얻어맞으며 몸을 움츠리고 바로 집으로 돌아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이지 죽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천천히 쪼그라드는 바람 빠진 축구공 신세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하지만서도.

“어머니 국숫집 기억나세요?”

몇 달 전에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홀로 지내는 어머니를 찾아가서 데면데면 마주하다 그런 질문이나 던졌다. 혼자 남은 대개의 여인들이 그렇듯 어머니 역시 고요하면서도 바쁜 나날을 보내는 눈치였다. 친구들과 만나고 등산도 자주 다니고 넋을 놓고 일일 드라마를 보다 졸기도 하는 그런 생활.

“국수? 갑자기 무슨 국수? 끓여 줄까? 그러면 소면 사와야 하는데. 밖이 춥다. 그냥 라면 먹으면 안 되겠니?”

“그게 아니라 함께 국숫집에 갔었어요. 추운 겨울이었고.”

“신기하네. 나 밀가루 음식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때 어머니는 스물아홉이었다고요.”

“그래, 그땐 속병 때문에 고생하기 전이지. 네 아버지가 내 뱃속을 열댓 번은 뒤집어서 비틀어 짤 때도 아니고. 그래 그땐 나도 참 배시시 잘 웃었구나.”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요란스럽게 웃지는 못하고 잠깐 얼굴을 찌푸리고 그 뒤에야 겨우 작은 소리를 냈다. 하지만 수줍은 웃음은 아니었다. 찌푸린 얼굴 탓에 어머니가 겨우 웃기 전까지 쇳소리 섞인 기침을 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사라지면 어머니는 언제쯤 다시 웃게 되려나.

겨울이었고 나는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바닥이 차가운지 나의 몸이 차가운지 쉽사리 분간이 가지 않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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