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증

현기증

 

 

 

박금산

 

 

 

음악은 누군가의 욕망이었다. 나는 체 게바라를 생각하고 있었고, 아프리카풍의 쿠바 음악을 틀어 놓고 있었다. 소파가 많은 거실에서는 아프로쿠반 음악이 아프리카와 쿠바, 그리고 체 게바라로 나뉘어 떠돌고 있었다. A가 도착할 시각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소파들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 그럴 거라고 예측한 시각에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등받이 없는 소파를 골라서 눕고 다리를 뻗었다.

A는 금, 토, 일, 3일 동안 해변의 펜션에서 지내다 오는 길이었다. 휴가 기간은 경유지에서 보낸 밤과 하늘에 떠서 보낸 시간까지 합하면 6일이었다. 바깥 현관문이 열렸다 닫혔다. 자동으로 불이 켜졌다. A가 신발장 여는 모습이 실루엣으로 보였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 마치 문틈으로 몸을 녹여 들어온 것 같았다. A는 신발 수를 세어 보며 나의 6일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녀와 나는 신발장을 따로 썼다. 거실 쪽 문을 연다 싶어진 순간이었다. 나는 몸을 돌렸다. 눈에 음반 재킷이 들어왔다. 현관을 마주하고 있는 흔들의자 위에 세워 둔 것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A가 다가와 먼저 보는 게 나의 등일까, 여가수의 사진일까.

A는 병을 달래러 나갔다 오는 길이었다. 처음 계획은 일본, 태국 정도로 가까운 곳이었다. 그런데 항공사가 그녀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녀는 반환된 티켓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대기 순번이 가장 빠른 건 프랑크푸르트 행 노선이었다. 그녀는 별로 생각해 보지 않고 그곳을 택했다. 말은 짧았다. “바다에 좀 다녀오려고.” 프랑크푸르트라……. 따라올 수 없이 먼 곳으로 가겠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프랑크푸르트로 날아가 거기에서 시간에 이어지는 티켓을 끊을 거라 했다. 종종 어느 나라 해안에 점을 찍고 올지 궁금할 때가 있었다. 6일이나 혼자 지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동행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가 그녀를? 누구를 그녀가? 알아보려면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었다. 경찰이나 항공사 직원을 통하면 탑승객 명단을 뽑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태여’라는 말이 떠올랐다. 치사하고 구차해지는 것 같아 생각도 하기 싫었다. 티켓을 반환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A는 마루에 배낭을 벗어 놓고 옷 방으로 들어갔다. 실내화를 끄는 소리가 오래 들려왔다. 나에게 들려주려고 만드는 소리 같았다. 나는 음악을 바로크 것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구차하지만 물어 봐 버릴까. 누구랑 간 거야?

 

내게 야트막한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미리 얘기했었다. A와 지금의 생활을 시작할 때였다. 그녀는 동거와 결혼 사이에 있는 이 이상한 생활을 시작하는 기념으로 해외여행을 가자고 졸랐다. 나는 조금 재치 있는 말로 거절했다.

“나한테 뭐가 있어. 비행기를 탈 수는 있겠지만 어떻게 될는지 몰라. 죽을 수도 있거든.”

A는 남방셔츠 속으로 손을 넣고 등을 간질였다. 여름이었다. 나는 말했다. 여드름이 있으니까 너무 세게는 긁지 말아 줘. 그녀는 잘 웃었다. 그리고 나를 잘 믿었다. 17층 자기 아파트로 가자는 말은 그 뒤로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아파트를 전세 놓고 내 집으로 왔다. 외할아버지가 살던 집을 외동인 어머니가 물려받았고, 이제는 외동인 내가 살고 있었다. 150평 정도 된다고 한다. 정확한 건 구청 민원실에 가서 건축물대장을 뽑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A도 처음엔 자기 아파트로 가자는 말을 몇 번 했었다. 나는 케이블카를 타지 못한다. 엘리베이터도 타지 못한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대신 법은 무섭지 않았다. 입대를 앞두고서는 헌법 소원까지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고소공포증을 가진 사람은 군인이 될 자격이 없다. 나를 장애인으로 등록해 달라. 안 그러면 헌법 소원을 내겠다. 정상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반납하면 국가는 나에게 지웠던 의무를 제거해 주어야 한다. 나는 면제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사회주의자였고 용기가 없었다. 소원을 떠올리자 금방 다른 장애인들에게 미안해졌다. 고소공포증이 국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중증인 장애인가? 국가가 헌신해야 할 대상은 따로 있었다. 스스로 집을 구할 수 없는 자들. 스스로 수저를 들지 못하는 자들. 그러다 보니 살 길이 있겠지 싶은 생각이 들었고 입대를 하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 못 참겠다 싶어지면 관심 사병이 되어 줄 생각이었다.

뜻밖의 순간에 희망이 찾아왔다. 첫날 군복과 전투화를 지급 받고, 사제에서 입고 간 옷을 벗자 기분이 최고조로 달아오르는 것이었다. 이건 완전히 껍데기네……. 전쟁 나가 죽은 게릴라의 유품 같네……. 장례식을 치르는 기분이 유쾌했다. 옷을 소포로 싸서 그 위에 어머니 주소를 적고 있자니 새로운 생이 열릴 것 같았다. 그 기분이 상큼해서 나는 그냥 군 생활을 열심히 해보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하다가 안 되겠으면 아버지께 연락을 할 것이다. 아버지는 원 스타였다. 자발적으로 앞일을 생각하면서, 나한테는 굉장히 드문 경험이었다. 20대 초반에 앞날을 자발적으로 생각한다는 것 말이다. 훈련소에서의 첫 아침을 맞았다.

국기 게양식으로 하루가 열렸다. 예복을 입은 위병 셋이 국기 함을 경건하게 받들고 나타났다. 모든 게 절도 있는 동작으로 이어졌다. 한 사람은 함을 들고 빳빳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이 함에서 태극기를 꺼냈다. 호흡을 맞춰 깃대의 줄을 당기자 깃발이 블라인드처럼 출렁, 출렁, 하면서 올라갔다.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잡아당길 수는 없는 걸까. 왜 저런 이상한 방식으로 줄을 당기는 거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기가 중간 이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하자 뒷머리에서 물풍선이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깃대 끝에 달린 철제 도르래에서는 삑삑 호루라기 소리가 났다. 깃발은 하늘로 펄럭, 펄럭, 올라가면서 내 눈을 잡아당겼다. 가슴은 철렁, 철렁, 내려앉고 있었다.

쓰러질 의도는 아니었다. 줄이 휙 하고 내려와 목을 휘감고 공중제비를 돌리는 것 같았다. 참을 수 없어서 무릎을 구부리고 바닥에 앉았다. 오바이트가 나왔다. 눈꺼풀도 펄럭! 펄럭! 놀이공원 옆 미술관에 갔을 때, 롤러코스터를 탄다는 초등학생들의 말에 자극을 받아 코끼리 열차 위에서 오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A와 두 번째 만났을 때였다. 누구에게나 돈으로 치료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쓰러졌다가 일어나 보니 두 시간이 흘러 있었다. 침상 밑에는 소포로 쌌던 옷 뭉치가 놓여 있었다. 의무실의 한 사병이 군복을 벗어 놓고 집에 가라 했다. 나는 어리둥절하게 옷을 갈아입었고 굽 낮은 운동화를 신었다. 도대체 이 귀가는 뭐냐. 터덜터덜 위병소를 통과할 때 클랙슨 소리가 짧게 울렸다.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했든 그 시각 즈음에는 귀가 조치를 받기로 누군가와 약속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내게 돈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여겼을 것이다. 속되고, 속되고, 또 속된……. A가 그런 속물은 아니었다. 그녀에겐 부담 없이 돈을 빌리고 갚을 사람이 필요했다. 그녀도 넉넉했다. 아버지가 다른 나라에서 매달 달러를 입금해 주고 있었다. 대개 사람을 부리라는 돈이었는데 그 돈을 받아서 그녀는 자기를 부리고 다녔다. 여행지에다 자기 몸을 갈고 다니는 것이었다. 돌아오면 녹다운이 되는 여행은 내가 보기에 소모적인 행위였다. 헌법재판소 공무원이라 휴가 날짜는 미리 계획해서 결제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왜 그러는지 목적지는 날짜가 코앞에 닥쳐야 결정을 내렸다. 프랑크푸르트처럼 말이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가장 멋지게 방랑자적인 자유를 누리는 방법이었다. 어디론지는 중요하지 않아. 가는 게 중요한 거야. A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것 같았다. 돈이 부족해 보이면 나는 카드를 빌려 주었고 A는 달러가 오는 날이나 월급이 나오는 날 갚았다.

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녀가 물었다. 신혼여행 삼아 했던 등산이었다.

“고소공포증. 언제부터 그런 거야?”

“왜?”

“언제부터였냐고.”

내게 있는 공포증은 병인지 아닌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로 하여금 이렇게, 철학적인 말을 하게 만들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언제부터 인생이 피곤해지기 시작했는지 그 시점을 콕 집어 말할 수 있나, 우리가?”

그녀는 절벽 위에 서 있는 나를 봤다고 했다. 당연히 의심이 들었을 것이다. 내 심장은 이상했다. 바람이 만들어 준 것들 위에서는 정상으로 뛰었다. 파도가 만들어 준 것들 위에서도 그랬다. 산의 절벽에서는 고소공포증이 나타나지 않았다. 바닷가에도 가 보았는데 마찬가지였다. 참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산에 매달린 케이블카, 바다 위의 현수교, 이런 건 거기 매달린 줄만 봐도 땅이 흔들리고 무릎이 꺾여 오바이트가 나왔는데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말하자면 혈소판이 혈관 벽을 긁는 소리 비슷한 거야. 상상의 소리일 수도 있어. 심해지면 고막 근처에서만 반복적으로 그런 소리가 들려. 물을 반쯤 채운 풍선이, 무거운 물풍선이 뒷덜미에 붙어 있는데 그걸 매달고 걸어간다고 생각해 봐. 걸을 때마다 휘청 휘청 머리통이 어떻게 되겠어? 내가 밟고 간 땅이 나를 잡아당기는 거지. 부정기적으로. 꿀렁, 꿀렁, 하는 거야. 파도 만난 배처럼. 높은 걸 보면 그래. 바닥에 바짝 엎드리면 괜찮아지는데, 그러면 물풍선을 배로 안아 터트린 것처럼 온몸이 땀에 젖어.

텅 빈 에스컬레이터를 두고 계단으로 걷는 사람을 보면 은근히 동료 의식이 느껴졌다. 나는 그런 것들을 일일이 다 얘기할 수가 없었다. A가 내게, 정말로 고소공포증을 앓는 것 맞느냐고 물었던 말이 비행기를 타자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얘기가 흘러가다 보니 나는 그 상황을, 내게 있는 이상한 병인지 아닌지 모를 그것의 실체를 증명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이렇게 말한 건 정말 진한 농담이었다.

“수면제를 먹고 타 볼까? 잠을 자 버리면 될 거잖아.”

 

그녀는 나를 오해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머니처럼 말했다. 비행긴 혼자 죽는 게 아니야. 사고 나면 전멸이야. 너도 죽고, 나도 죽고. 그러니까 덜 억울하지. 예전에 어머니가 외국으로 가자고 할 때 했던 말이었다. A는 들떠 있었다. 나는 나를 테스트해 보고 싶어졌다. 그녀가 고층의 전망을 버리고 내 집으로 옮겨 오는 수고로움을 지불했으므로, 그녀를 위해 희생해야 할 게 있다고 믿어야 예의인 것 같았다. 티켓은 그녀 아버지가 직항 노선 비즈니스 클래스를 예약해 주었다.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마친 다음이었다. 남들이 면세점에서 쇼핑을 하는 동안 우리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나는 A가 담아 온 물로 수면제를 먹었다. 멀리서 비행기들이 뜨고 가라앉고 있었다. 마치 입체 영상 고글을 끼고 바라보는 스크린 같았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렀다. 롤러코스터 철길을 볼 때처럼 심장이 굳어 갔다. 보지 않기로 하자. 안 보면 될 거다. 껌을 씹으면서 탱고를 들었다. 수면제 효과는 아주 느리게 오고 있는 중이었다. A에게 부탁했다.

“약국에 가서 잠잘 때 쓰는 안대 좀 사다 줬으면 좋겠어.”

A가 빠르게 뛰어갔다 왔다. 나는 소파에 엎드려 그것을 끌어안다시피 하고 있었다. 잠은 오지 않았다. 평면에 경사가 생기더니 점점 가팔라지고 있었다. 바닥이 서서히 일어서면서 나를 미끄러뜨리는 것이었다.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소파의 단추를 손톱 끝으로 잡았다.

비행기가 뜨고 가라앉는 소리가 이어폰 사이로 들려왔다. 보지 않으면 될 것이다. A의 도움을 받아 안대를 했다. 검은 사람들이 나를 앞질러 갔다. 하이힐 소리, 신사용 구두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시디플레이어의 볼륨을 높였다. 언젠가는 기차역 계단에 주저앉아 20여 분 운 적이 있었다. 거구의 남자가 쿵쿵거리며 나를 앞질러 뛰어 내려갔을 때였다. 기차가 도착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남자는 장난으로 그러는 것 같았다. 나는 남자의 몸무게를 발바닥에 전해져 오는 진동으로 느끼다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쿵, 쿵, 뛰는 소리가 계단을 무너뜨리고 나를 붕붕 날려 보내고 있었다. 너 때문에 내가 죽겠다. 난간에는 녹 기운이 많아 손을 댈 수가 없었다. 타야 할 기차가 도착했다가 출발하는 게 보이자 정신이 서서히 들었다.

“가자. 이제.”

A가 말했다. 그녀는 시각 장애인을 안내할 때처럼 팔을 사뿐히 건네 왔다. 나는 안대를 한 채 그녀에게 걸음을 맡겼다. 비즈니스 클래스는 앞쪽 입구에서 가까웠다. A가 앉으라는 자리에 앉았다. 엉덩이가 시트에 닿자 목숨이 10년쯤 당겨지는 기분이 찾아왔다. 당장 죽을 것 같지는 않더라는 뜻이다. A가 말했다.

“창문 가리개 내렸어. 바깥 안 보이니까 벗어도 돼.”

“아니야. 괜찮아.”

나는 안대를 그대로 두고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음악의 볼륨을 좀 더 높였다. 잠시 후, 안전한 출발을 위해 휴대용 전자 기기를 꺼달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A가 멈칫 하면서 시디플레이어를 꺼야 하는데 어떡하겠냐고 말했다. 이어폰을 귀에서 떼자 호흡이 급작스럽게 빨라졌다. 심장이 벌떡벌떡 뛰면서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심장이 툭 그것을 튕겨 내는 것 같았다.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프로펠러 굉음과 활주로의 노면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덜컹거리는 기차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오그라들었다. 몇 천 미터 상공에서 기차의 속도로 달린다면 우리는 그대로 추락한다. 떨어지기 전에 더 먼저 날아가 다른 지점으로 이동해 있어야 한다는 게 비행의 전략이다. 수면제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거란 말인가.

정상 항로에 올랐으니 안전벨트를 풀어도 좋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나는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엎드렸다. 땅이 없으니 바닥에라도 배를 대야 했다. A가 스튜어디스를 불러 담요를 달라고 했다. 그녀는 나를 덮어 주고, 남은 담요를 접어 깔고 앉았다. 몸을 돌려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그녀는 부모님을 오랜만에 만난다면서 치마 정장을 입고 있었다. 손을 뻗으면 그녀의 여기저기를 쓰다듬을 수 있었다. 안대를 벗어도 좋을 것 같았다. 아.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 비어 있는 우리 좌석을 보면서 A의 무릎을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내 이마를 쓰다듬어 주었다. 가끔씩 그녀가 내 손을 끌어가 자기 배를 쓰다듬게 했다. 그녀가 임신을 했고, 내가 그녀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수면제의 효과가 나타났다. 잠이 눈에 잡힐 듯한 형체를 이루어 우리 자리에 와서 앉았다. 이건 마치 기차처럼 덜컹거리는구나. 기분이 편안해졌다. 이때의 기차는 바다 위도 달리고 우주도 나는 전천후 만능 기차였다. 기류와 선체의 만남에서 만들어지는 덜컹거림을 등으로 느끼면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 너도 죽는다는 신념에서 위로를 받는 것. 살아남아서 나를 기억해 달라고 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 혁명적 정치이다.

 

2박 3일간의 리조트 휴가를 끝내고 우리는 돌아와야 했다. A의 휴가 기간이 짧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A의 부모님이 사는 집에 가서 아버지가 운영한다는 쇼핑몰의 규모와, 집안의 품격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수면제를 먹어 보자는 농담을 실현시키기 위해 A가 자기 부모님과 여러 통화들을 할 때, 기왕 가기로 했으니 그때 신나게 간섭을 좀 했어야 했다. 리조트에서 만날 것이 아니라 그분들의 홈그라운드, 진짜 적나라한 홈으로 찾아가는 게 좋겠다고 말이다. 즐기는 사람의 종류와, 방을 치우는 사람의 인종과, 눈앞에 펼쳐진 바다만 다를 뿐 음식과 시설은 여기의 것과 하나도 다를 것 없는 그 나라 리조트에서 시간을 보낼 게 아니라 어디든 돌아다니다 왔어야 하는 것이었다. 일생일대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해외여행이었다. 나는 비행의 공포를 상상하느라 앞으로의 계획은 머릿속에 넣을 수가 없었다.

A는 자기가 직장에 다닌다는 사실을 숨겨 달라고 했다. 그녀는 공무원이라 정해져 있는 일이 많았다. 그녀 아버지는 딸이 중세 식으로 우아하게 살길 바랐다. 리조트를 택한 것도 그였다. “저 사람이 한국에서 좀 바빠요.” 그녀는 상식적인 거짓말로 핑계를 댔다. 나는 잘려도 걱정 없는 백화점 방송실 일을 하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는데 그쪽에서 나를 계속 원했다. 기분에 따라 트는 음악이 매출에 도움이 되는 모양이었다. 시이오(CEO)가 음악 마케팅 이론을 새로 공부하고 있는 중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음악을 층마다 다르게 틀었다.

대화가 끊어지면 고소공포증 얘기로 돌아갔다. A의 식구들은 한 번 해봤으니까 두 번째는 쉬울 거라고 했다. 나도 돌아가는 길엔 비행을 즐길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주제넘게 말하곤 했다. 간혹 돌아갈 길이 걱정이었다. 수면제가 두 번째는 말을 안 들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내게 날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도 그 나라에 살고 있었다.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였다.

아버지는 원 스타로 제대를 했다. 군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별 치고 높은 자리에 있었던 건 아니었다. 제대를 한 다음 해외로 자유롭게 갈 수 있었던 걸 봐도 누설할 만한 국가 기밀을 가지고 있거나 하지도 않은 것 같았다. 사병도 기밀문서를 다룬 사람이면 제대 후 몇 년간 해외여행에 제한이 있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새 생활은 외국에서 하나 국내에서 하나 마찬가지라고 판단했다. 연금을 사기 당하기는 외국에서나 국내에서나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외국에서는 교포에게 당할 것이고 국내에서는 인척들에게 당할 것이다. 아버지의 말이 맞았다. 사업을 제안해 오는 인척이 있었다. 사면 좋을 주식을 포트폴리오로 만들어 오는 사람도 있었다. 아버지는 외국을 선택했다. 망해도 모르는 사람 많은 데서 망하겠다. 나는 비행기 때문에 남기로 했고 어머니는 내가 다 컸으니 기꺼이 아버지를 따른다고 했다. 가끔 의심이 들 때가 있었다. 아버지가 아직도 비밀리에 군대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스키장에 가지 못한다. 스케이트 날 위에서도 가끔 심장 판막이 뇌수로 옮겨 가 펄럭이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다.

이름도 꺼내 부르기 싫은 그 나라 남쪽 도시의 공항에서 나는 떠날 때와 같은 방식으로 수면제를 먹었다. 출국 수속을 한 다음이었다. 공항 시설은 몇 가지 사소한 점이 달랐다. 개인용 팔걸이들이 소파를 칸칸으로 나누고 있어서 누울 수가 없었다. 1인용으로 구획 지어진 소파에 앉으니 보고 싶지 않은 창을 마주하게 돼 있었다. 눈 아래에서 화물차들이 컨테이너를 싣고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뜨는 비행기, 가라앉는 비행기, 선회하는 비행기들이 장난감처럼 보였다. 바람이 불면 휙 날개가 꺾일 것이다. 그것을 보면서 앉아 있을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첫 번째에 비해 많이 침착해져 있었다.

A는 안대 필요하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나를 놀렸다. 나는 눈을 뜨고 게이트로 들어갔다. 기절할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히 기내로 이어질 줄 알았던 게이트의 끝에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던 것이다. 거길 내려가 땅을 디뎌야 하는 것이었다. 땅을 보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A는 나의 반응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난 다음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 생각했지 타는 과정에서 어떤 발작이 진행되리라고는 생각 못했을 것이다. 나는 심장이 뛰기 시작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참는 수밖에 없다고, 죽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A의 손을 꽉 쥐었다. 거기서 또 버스를 타게 될 줄은 진정 몰랐다. 저상형 버스를 타고 나니 드넓은 활주로가 보였다. 그리고 비행기 바퀴가 덜컹거리는 게 눈에 보였다.

버스에서 내려, 트랩을 걸어 올라갔다. 나는 A를 앞세우고 두 계단 아래에서 이마를 그녀의 엉덩이에 붙인 채 걸었다. 치맛단이 넓었으면 그것으로 눈을 가렸을 것이다. 아래도 보기 싫었고 위도 보기 싫었고 옆도 보기 싫었다. 기내에 도착하자마자 A에게 말했다.

“이번엔 좀 힘들 것 같아. 나 죽을 것 같아.”

“괜찮아. 그냥 절벽에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잖아. 저번에 잘했잖아.”

“너무 달라. 수면제를 좀 더 먹을까?”

“이거 안 떨어져. 떨어지면 다 죽는 거야. 걱정 마.”

둘 다 죽는다고? 모두가 죽는다고? 나는 비행기가 뜨기 전에 죽을 건데? 음악을 못 듣게 되자 점점 더 화가 났다. 시간이 지나자 울음이 터졌다. 비행기가 떨어지지 않으면 너네는 다 살고 나만 죽는 거란 말이다. 중앙 통로 건너편의 달걀 모양 창으로 빈 하늘이 보였다. 비행기의 날개도 보였다. 거기 앉은 승객에게 가리개를 내려 달라고 요구할 형편이 못 되었다. 어쩌면 좋을까. 심장이 뛰면서 맥박이 빨라지고, 날카로운 기계음이 혈관을 빠르게 돌았다. 수건으로 입을 막고 울었다. 입을 열면 내 안의 창자들이 와락 쏟아져 하늘에서 분산될 것 같았다. 내 안의 연한 것들이 빠져나오려고, 꽉 문 이 사이사이를 벌리며 틈을 비집고 있었다.

정상 항로에 올라선 다음 나는 무릎 사이에 머리를 넣고 울었다. 덩달아 A가 울었다. 스튜어디스가 찾아왔다. A는 아스피린 같은 진통제라도 있으면 좀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뭐든 먹어야 했다. A는 뭐든 먹이고 싶어 했다. 알약 세 개를 한꺼번에 삼킨 다음 바닥에 배를 대고 납작 엎드렸다. 이번엔 A의 무릎베개도 소용이 없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A를 타박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도대체 이게 뭐냐고, 왜 가기 싫다는 걸 억지로 가게 했냐고, 눈물에 애원이 섞여 나왔다. 어머니 아버지가 떠올랐다. 엄마, 나 죽어……. 비행기가 노면 거친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느껴질수록 심장은 더욱 거세게 뛰었다. 나는 지금 떨어지고 있구나. 전속력으로 떨어지고 있구나. 도움이 될지 몰라서 마신 위스키 한 잔은 진통제와 수면제와 섞여서 뱃속을 뒤틀고 있었다.

같은 상태로 두 시간이 지났다. 스튜어디스가 흥분 억제제를 가져왔다.

“뭐예요?”

“도움이 될 거예요.”

제발 마약 같은 것이었으면. 나는 알약을 먹고 하나부터 백까지 세며 기도했다. 감사한 일이 벌어졌다. 마약이었으면 했던 그 약은 실제로 마약 같은 것인 모양이었다. 마취 주사를 맞았을 때처럼 몽롱한 상태로 빠졌다가 어느샌가 모르게 잠이 들었다. 도착했다고 A가 깨웠다. 일어나 보니 A 앞에 휴지가 많았다. 내 입가에서 연신 침이 흘렀던 것이다. 나는 정신없이 뛰어나갔다. 발정난 개나 돼지에게 놓는 주사약 성분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선장이 배 위에서 선원을 처형할 수 있듯이 비행기의 기장은 그런 처방을 내릴 권리와 자격을 가지고 있다. 고소공포증 때문에 울고불고 하는 손님은 정상 운항에 위험한 물건이었다. 다른 승객들이 받은 불쾌를 보상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처방했어야 한다. 방치했으면 내가 어떤 일을 벌였을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었다. 전기 충격기를 맞았더라도 내겐 할 말 없었을 것이다. 정말 대단한 마약이었다.

 

그 나라에 다녀온 뒤 우리는 각방을 썼다. 묘한 신혼기였다. A가 침실을 따로 쓰자고 했던 말은 헤어지자는 뜻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인사불성이 돼서 무슨 말로 그녀를 할퀴었을까. 나로서는 기억해 낼 수 없었다. 외할아버지가 쓰던 동쪽의 큰 방을 침실로 꾸며 줄 일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침실이 꾸며지는 동안 그녀는 거실의 소파에서 밤을 보냈다. 그녀가 먼저 출근하고, 내가 출근하고, 그녀가 먼저 퇴근하고, 내가 열 시 넘어서 집에 들어가고, 아침은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함께 보내는 휴일은 없었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었다. 나는 월요일에 쉬었고 그녀는 주말에 쉬었다.

A는 불쑥불쑥 해외로 떠났다. 말은 짧았다. “좀 나갔다 와야겠어.” 내게 있는 고소공포증 같은 거라 했다. 새로 생긴 것인지 그 전부터 있었던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병을 이야기하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금, 토, 일 혹은 토, 일, 월을 활용해서 나갔다 왔다.

그녀가 병인지 아닌지 모를 그 마음을 달래러 나갈 때가 있었던 것처럼 나도 혼자 다니는 데가 있었다. 체 게바라, 쿠바, 모스크바. 쿠바는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맥주와 위스키를 날라 주는 바였다. 모스크바는 맥줏집인데 과격한 대학생들이 화를 내며 휴대폰을 던지곤 했다. 체 게바라는 배달을 하지 않는 만두집이었다. 멋진 접시에다 만두를 알알로 담아 팔았다. 한 접시에 한 알이었다. 점원은 접시 개수를 세서 계산을 했다. 멸치국수는 두 종류를 팔았다. 하나는 로자 룩셈부르크이고 하나는 체 게바라였다. 여성용, 남성용, 양에 따른 차이라고, 처음 온 손님들을 위해 메뉴에 설명이 되어 있었다. 가격은 같았다. 소위 말하는 이데올로기 상품이었다.

체 게바라에는 주로 20대 커플들이 왔다. 번화가에 있어서 소개팅을 한 후 서먹서먹한 사이를 풀러 오는 남녀들도 있었다. 개인 접시를 사용하는 건 서로에게 편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연인이 되면 접시를 함께 쓰면서, 처음 만나던 때의 서먹서먹함을 농담으로 주고받게 될 것이다. 체 게바라가 아닌 어디에서든. 혼자 온 남자들은 로자 룩셈부르크와 만두 두어 알을 먹곤 했다. 혼자 온 여자들은 체 게바라와 만두 한 알을 먹곤 했다. 어떤 날은 온라인 카페의 오프 모임이 열리는 것도 보았다. 나는 점심엔 만두, 저녁엔 맥주, 2차는 위스키, 그렇게 투어를 한 날도 있었다. 법이나 체계나 조직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 특히 그랬다. 체계화시킬 수 없는 대상인 사랑이라는 관념이 생각 속으로 끼어들려고 하면 『공산당선언』을 읽었다. 백화점 방송실 일을 하게 되면서 생긴 취미였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오면 죽고 말겠다고 작심한 날이 있었다. 운전면허증에 표시돼 있는 적성 검사 기간은 늘 지갑에 들어 있었건만 절대 내 소유로 들어올 수 없는 시간이라 생각되었다. 스물두 살에 면허증을 땄을 때는 7년 후라고 표기되어 있는 적성 검사 기간을 보며 피식피식 웃었다. 너무 까마득한 미래였다. 그런 날이 온단 말이야? 하지만 실제의 그 연도(年度)는 다가왔다. 어디다 터뜨려야 좋을지 모를 분노가 그 위에 얹혀 있었다. 그동안 음주 운전, 졸음운전, 접촉 사고, 추돌 사고, 주차 사고, 해볼 만한 경험은 다 했다. 그런데 정작 7년이 지나 버리자 시간이 너무 서러웠다. 스물아홉. 이룬 것은 너무 이르게 한, 결혼 같지 않은 결혼뿐이었다.

이룬 것이라니. 결혼도 이룬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스물다섯에 대학을 졸업하고, 법사회학을 한다고 사회학과 대학원에 들어가 석사 과정을 다니다 만 것. 집을 개조해 카페를 차리려다 만 것. 그래서 의자 전시관처럼 많은 소파와 협탁이 거실에 놓여 있게 된 것. 그러다 나는 화를 냈다. “왜 내가 뭔가를 해야 했었고, 뭔가를 이루었어야 하는 거지? 왜 앞날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하는 거지? 7년, 넌 왜 와서 나한테 앞날을 생각하게 만드는 거야!” 어느새 혼잣말도 입 밖으로 꺼내 중얼거릴 줄 알게 돼 있었다.

적성 검사 기간은 우편으로도 안내되어 왔다. 하필이면 생일이 들어 있는 달이었고, 생일은 백화점이 쉬는 월요일이었다. 그날 아침 A에게 말했다.

“오늘 적성 검사 받는 날이야.”

“되게 신경 쓰시네. 나이 적은 거 자랑해?”

A는 나보다 네 살이 많았다. 그녀는 예수가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삶을 살며 인류를 구원했던 서른세 살을 살고 있었다. 그녀는 출근하면서 음식 그릇을 들고 나갔다. 대문 앞에 놓아두면 배달부가 와서 가져갔다. 내 아침 식사는 식탁에 포장을 열지 않은 채로 놓여 있었다. 살림 도와줄 사람을 쓰지 않는 대신 우리는 설거지 거리를 만들지 않았다. 청소와 빨래는 그녀가 사람을 불러 했다.

점심으로 체 게바라에 들러 만두를 먹고 면허 시험장으로 갔다. 7년을 맞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복도는 시끌벅적하고 분주했다. 안내원은 한 명도 없었다. 눈치껏 줄을 서서 호명을 기다려야 했다. 이윽고 이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문 안으로 들어갔다. 경찰관인지 간호사인지 모를 검사관이 지휘봉을 들고 서 있었다. 딱 보니 시력 검사였다. 발자국이 그려져 있는 자리에 구두를 포개고 서서, 숟가락 같은 걸 왼쪽 눈에 댔다. 검사관이 이거, 이거, 하는 식으로 기호를 탁탁 짚었다. 나는 보이는 대로 숫자와 영어 알파벳을 읽었다. 시력은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지휘봉으로 검사 판을 툭툭 치는 검사관의 포즈가 옷을 벗겨 놓고 나무 막대기로 쿡쿡 찌르면서 “넌 뭐야!” “넌 뭐야!” 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순간 바지 지퍼가 내려가 있지 않은지 고개를 숙여 확인했다. 내가 그녀를 수치스럽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해서였다. 지퍼는 잠겨 있었다. 이번엔 내 안에서 수치심인지 적개심인지 모를 것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다음 차례는 색맹 검사였다. 이번 검사관의 포즈는 침묵이었다.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책을 펼쳐 놓고 손가락으로 툭, 툭, 했다. 두 자리 숫자가 써져 있었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떠올랐다. 물안경 없이 잠수를 하면 풀장의 바닥이 그렇게 보였다. 숫자를 읽자 검사관이 페이지를 넘겼다. 두어 개만 더 읽었으면 무난히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나를 내가 알 수 없었다. 왜 내가 이렇게 자발적 개가 된 것이지? 당신들이 왜 내게 이래라 저래라지? 7년, 네가 나를 개로 만든 거야? 이봐, 국민이 나라의 개야?

나는 색맹 테스트 북에다 침을 탁 뱉어 버렸다. 그리고 검사관이 어떤 대항을 하기 전에 돌아서 나왔다. 거대한 장갑이 따라와 뒷머리를 휙 낚아채 내 몸을 바닥에 패대기칠 것 같았다. 나는 가능한 한 빠르게 걸었다. 검사관 당신이 나를 고발한다면 죄목은 인격 모독죄뿐일 것이다. 당신이 인격을 모독당했다고 고발한다면 나는 더 큰 모독을 증명해 보일 수 있다. 우리는 서로 양보했어야 하고 서로 정중했어야 한다. 그랬으면 죄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방금 전의 이래라 저래라를 생각하며 차선을 이리저리 마음대로 바꾸며 운전을 했다. 뒤차가 빵빵거리면 급정거를 해줄 참이었다. 월요일이어서 고궁들은 닫혀 있었다. 갤러리 골목의 사립 박물관들도 마찬가지였다. 백화점이 쉬는 월요일은 문화의 휴일이었다. 차를 이리저리 몰다가 석사를 다니다 만 대학으로 들어갔다.

박물관에서 제국의 칼 전시회를 열어 두고 있었다. 유명한 제왕의 칼들이 많았다. 나폴레옹의 칼도 있었다. 사무라이의 칼, 장비의 칼도 있었다. 무희의 칼, 무당의 칼도 있었다. 국내 각종 사립 박물관 소장품과 개인 소장품, 외국의 박물관에서 임대해 들여온 것들이 모여 있었다. 적어도 두 시간은 생각 없이 걸을 수 있겠다. 나는 화살표의 도움을 받아 전시장을 천천히 돌았다.

지팡이 속에 숨긴 칼, 비녀 속에 숨긴 칼 등은 호신용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이게 공격용일지 호신용일지 누가 아냐. 공격과 호신은 누가 먼저 개시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암살용으로 숨긴 칼을 호신용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거대한 군인들의 칼을 스치다가 숨긴 칼이 생각났다. 그곳으로 돌아갔다. 칼 하나 숨기지도 못하고 살아온 나는, 왜 내게는, 아무것도 없는가. A가 가장 먼저 거추장스러워졌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내가 헌법 소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 판결 선고를 견학 나가서였다. 그녀는 거기의 속기사였다. 왜 함께 살고 있는 거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나? 아침에 어머니가 전화를 해서 생일 선물로 뭘 가지고 싶냐고 했었다. 굳이 칼이 아니더라도 좋다. 누군가 생일 선물로 박물관의 물건 하나를 사서 꺼내 줬으면 싶었다. 어머니를 불러 고미술품을 사러 다녀 볼까. 시간이 굳어 있는 유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미래는 떠올리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유물의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간다. 그대로 둔 게 미래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가치 있게 되어 있을 무언가를 나도 하나 가지고 싶다.

전시장에서 나와 교정을 거닐었다. 지도 교수를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 공부를 다시 하겠다고 말하겠어.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말겠어. 우연에 의지해서 일을 저지르는 거야. 만만한 게 우연이었다. 학생들이 분주히 나를 스쳐갔다. 지도 교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여전히 바쁠 것이다.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오면 신생 학문이라 쓰일 데가 있을 거라고 얘기했었다. 시대가 하이브리드를 원하는 걸 보면 법학과 사회학을 혼종시킨 법사회학 전공자도 조만간 많은 곳으로 불려 다닐 것이다. 아버지는 늦지 않았으니 실용 법을 공부하라고 했었다. A와 살고 있다는 걸 알면 아버지가 뭐라고 하실까. 곧 A의 생일이다. 거기서 조금만 지나면 크리스마스다. 지도 교수 연구실을 찾아가 볼까. 우연인 것처럼.

A가 퇴근해서 호텔로 출발한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생일을 위해서였다. 침실을 따로 쓰면서 우린 몸이 필요해지면 호텔을 예약하곤 했다. A는 욕구의 크기보다 임신과 관련된 몸의 주기를 더 먼저 챙겼다. 약속이 이루어지면 먼저 도착한 사람이 객실로 들어가 쉬면서 기다렸다. 나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먼저 들어가 있어. 금방 갈게. A를 생각했다. 고소공포증이 없는 사람을 만났더라면 당신은 오늘 호텔의 고층 객실에서 전망을 즐기면서 사랑을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해외여행을 혼자 다니지 않아도 될 것이다. A야, 왠지 당신을 누군가에게 양보하고 싶어진다. 기껏해야 3층 정도에나 투숙할 수 있는 나보다 근사한 누군가에게.

미적거리는 동안 퇴근길 러시가 절정에 닿아 있었다. 갑자기 호텔까지 가는 게 귀찮아졌다. 우린 왜 함께 사는 거지? 뭘 위해서지? 너를 통해서 내가 어디에 가 닿을 거지? 거대한 짜증이 밀려왔다. 뭘 위해서라니! 한 번도 그렇게 살지 않았는데. 7년이 자꾸만 미래를 생각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미래를 잊어야 했다. 그냥 사는 거다. 그냥 사는 거란 말이다. 아일랜드 음악을 틀었다. 희한하게도, 잊고 싶으면 잠깐 잊을 수 있는 게 있었다. 미래는 보이지 않으니 잊을 수 없어도 부정할 수 없는 현재는 눈을 감으면 잠깐 잊을 수 있었다. 7년이 훌쩍 지났다는 사실, A가 있다는 사실, 호텔에 가야 한다는 사실……. 나는 방향을 쿠바로 바꿨다.

 

위스키를 마시고 집에 들어갔더니 A가 선물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널 죽이고 싶어. 써 놓은 쪽지가 그것이었다. 나는 전시회에서 사 왔던 도록을 A의 흔들의자에 올려놓았다. 거기엔 내가 보지 못했고 기억하지 못하는 칼들까지 들어 있었다. A야, 찌르고 싶은 칼을 골라라. 그 칼은 역사 속에 있는데 어떻게 현재로 가져 올 거니. 『공산당선언』의 말이 떠올랐다. 의식이 어린 시절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가 아니라 생산 수단 그 자체에 폭력을 가했다. 그들은 노동을 강요하는 기계를 부수거나 공장에 불을 지르거나 경쟁사의 상품을 파괴했다.

독서용 소파에 앉아 『공산당선언』을 펴고 방금 떠오른 그 구절을 찾았다. 정확히 내가 기억해 낸 그대로였다. 가지지 않은 것을 빼앗을 수 있는 능력은 어느 누구에게도 있지 않다. 노동자에겐 국가가 없다는 대목을 설명하는 각주의 내용이었다. 감동적이었다. A의 분노에 대해 생각했다. 염세는 실패의 승인이 아니라 적극적 방어이다. 증오가 상대에 대해서 얼마나 큰 관심을 가지게 하는가. 보라. 부르주아를 증오한 코뮤니스트들이 얼마나 정교하게 자신의 적들을 분석했는지를. A는 『공산당선언』의 시제를 좋아했다. 미래를 향해 있는 책. 허망하지만 꿈이 있어 좋다고 했다. 그들은, 미래가 암담했다기보다는 미래가 보이지 않아 두려워서 혁명을 꿈꾼 것이라고 A는 말했다. 나를 죽이고 싶다고 쓴 A의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손으로 볼펜 글씨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A야. 나를 통해 너는 무엇을 생산하겠느냐. 너와 나는 기계가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관계이다. 나를 통해 너는 어디에 닿고 싶은 거냐? 나를 죽이고 싶다고? A야. 너는 생산 수단을 파괴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계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나의 나이와, 올 것 같지 않던 7년 후의 운전면허 적성 검사를 받으러 가서 당한 모욕의 관계를 너도 들어 보아야 한다. 그녀의 침실로 가서 불을 켰다. 그녀가 말했다.

“나가 줘. 그냥 자면 좋겠어.”

나는 이렇게 운율을 맞춰서 말했다.

“그래? 나는, 하면, 좋겠, 는데?”

그녀가 침대 머리맡의 스위치를 눌러 불을 껐다. 나가라는 뜻이었다. 어둠 속에 서서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그녀가 고풍스럽게 중얼거렸다.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워 왔어…… 천박하게…….”

약간 알코올 기운이 느껴졌다. 어느 순간 욕구를 위해 나를 기다렸을 그녀의 수치심이 이해되었다. 천박하다는 말의 원래 방향이 자기의 욕구를 향해 있었음을 나는 알아 버렸다. 그녀는 내 생일을 맞아 다음에 신청해 놓은 6일의 휴가 계획에 대해 얘기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자동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여행을 제안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저 멀리 있는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해 얘기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A야, 너 지금 나를 죽이고 싶다고 했니? 이상했다. 몸에서 점점 더 욕구가 자라는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이불을 들추면 그녀가 온전히 알몸으로 누워 있을 것만 같은 것이었다. 손에서 땀이 났다. 이 여자는 지금 나의 완력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라고 있는 몸의 욕구가 폭력으로 돌변하기 전에 거실로 나왔다. 오디오실 문을 열고 들어가 정격 고전 음악을 틀었다. 음악 감상 소파에 앉으니 쿠바의 맘보가 더 적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읽는 소파로 옮겨가 『공산당선언』을 펼쳤다. 욕구가 진정이 되지 않았다.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발이 허전해졌다. 정원에 있는 다듬잇돌이 생각났다. 박물관에서 떠올린 돌이었다. 칼을 보며, 하얀 그 돌을 숫돌로 삼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익은 감이 떨어지면 홍시가 될 때까지 올려놓곤 하던 돌이었다. 여름엔 앉아서 발바닥을 말리기도 했다. 책을 덮고 정원으로 나갔다. 다듬잇돌은 흙에 묻혀 있어서 들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거의 캐내는 수준에 가까웠다.

힘을 쓰니 욕구가 사라졌다. 다듬잇돌을 씻고 닦아 독서 소파 앞에 놓았다. 슬리퍼를 벗고 맨발을 올렸다. 차가운 온도가 몸을 적당히 긴장시켰다. 의자를 앞뒤로 흔들기 편해 발받침의 높이로 딱이었다. 『공산당선언』을 읽었다. 이제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 데나 펼쳤는데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공산주의자가 공인하려 한다는 여성 공유제에 대해 부르주아가 고결한 도덕가인 체하며 분개하고 있는 것만큼 가소롭기 짝 없는 일은 없다. 여성 공유제는 거의 기억할 수 없을 정도의 태고부터 존재해 왔다.” 부르주아도, 공산주의자도, 이론적 분석에 의하면 여성 공유제를 욕망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럼 프롤레타리아트의 결혼관은? 학습된 공산주의자에 의해 강요받은 게 아니라 살면서 은연중에 터득된 프롤레타리아트의 결혼관은? 그건 무엇이지? 프롤레타리아트는 더 사유해야 한다. 사유의 즐거움은 얼마나 큰 것이냐. 가난은 강요된 무소유이다. 외할아버지, 어머니를 거쳐 가지게 된 이 집을 그대로의 소유로 두고, 내가 가진 부모님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혁명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7년이 내게만 의미심장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3일 동안 말을 안 하고 지내면서 전혀 불편하지가 않은 것에 대해 서로 놀라고 있던 참이었다. 내가 쿠바에서 위스키를 마시는 동안 그녀는 호텔 지하에서 칵테일을 마셨다. 그리고 경미한 사고를 냈다. 주차를 하려다가 차 옆구리로 에스유브이의 운전석 쪽 범퍼를 살짝 쓸었던 것이다. 술을 마신 걸 들키면 문제가 커질 것 같아서 그녀는 메모를 남기고 들어왔고 연락이 온 것은 사흘 뒤였다. 부분 도색을 해야겠는데 20만 원이 든다는 것이었다. A는 업무 중에 경황없이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하면서 송금할 계좌를 문자 메시지로 받았다고 했다. 20만 원이면 좀 과한 금액이었다. 퇴근해서 주차를 하려고 보니 에스유브이의 상처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았다고, A가 나를 기다렸다가 말했다. 나는 화해의 계기가 되는 것 같아 사고가 반가웠다.

“이십만 원은 좀 심하잖아. 깎아 달라고 해보지 그래?”

“그렇지. 좀 심하지?”

A는 가격을 깎아 보려고 몇 번 통화를 했다. 돈은 부치지 않고 있었다. 나는 매일 매일 경과를 물었다. 며칠 지나 10시 가까운 밤이었다. 그녀는 알았어요, 보낼게요, 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조금도 못 깎았어? 너무 과한 것 같은데?”

“위자료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나름대로 신경 쓰고 마음 상하고 그랬을 거니까. 처음처럼 똑같이 해 놓으라고 안 하는 게 어디야.”

A의 말처럼 에스유브이가 범퍼를 새로 갈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견적은 더 많이 나올 것이었다. 당황하게 했던 건 위자료라는 말이었다. 나는 이혼을 떠올렸다. 헤어지잔 말인가. 처음으로 돌려놓고 싶다는 뜻인가. 그녀에게는 업무상 익숙한 말일 수 있었겠으나 위자료는 내게 끝내고 싶다는 그녀의 마음이 담긴 말로 들렸다.

나는 법의 도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거기는 지정된 주차장이 아니다. 이면 도로 한켠에서 생긴 주차 사고는 한쪽이 일방으로 당할 수 없는 것이다. 너무 과한 요구를 해 온다면 그 사람이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녀에게 법을 말하다 보면 한없이 미안해졌다. 주차장을 넓혀 주었으면 생길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 부모님을 만나러 가기 전까지는 주차장 공사를 계획했었다. 담을 트고 마당을 조금 내려앉히면 내 차와 나란히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비행기에게 상처 받은 후 침실을 각자 쓰면서 그 계획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 공사를 서두를 수가 없었다. 그녀는 길가에 차를 대면서 얼마나 많은 횟수로 나를 포기해 왔을까. 나의 주차장을 보면서…….

송금을 하고 1주일이 지났다. 나는 A의 입에서 욕이 나오는 걸 그때 처음 보았다. 개새끼! 소름이 끼쳤다. 나는 나를 생각했다. 호텔 지하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얼마나 많은 개새끼를 나에게 부어 날렸을까. 나는 왜냐고 물었다. 그녀가 말했다. 에스유브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긁힌 자국을 그대로 달고 다니더라는 것이었다. 나도 확인을 해보았다. 주인은 범퍼를 걸레로 살짝 닦아 놓고 있었다. 20만 원을 받아먹고. 너도 참 더티한 인류구나. 나는 다시 법에 대해 생각했다. 저 저질스러움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으로는 뭐가 있을까.

한 달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왜 수리를 하지 않는 거야! 그녀의 분노는 점점 더 크게 자라났다. 덩달아 나도 그를 욕하고 있었다. 개 닮은 인류야. 왜 자꾸 그날을 상기시켜서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거냐. 그 뒤로 자국은 자꾸만 작아졌다. 여드름 짜고 남은 흉처럼 사소해 보이기까지 했다. 2만 원만 주고 말았어도 좋았다는 생각이, 상처 난 자리에 바르는 마데카솔이나 후시딘 같은 복합 연고제 값만 줘도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수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돈을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A와 나는 여러 시나리오를 상상했다. 바빠서 못했다는 식으로 나오면 어쩔 것인가. 곧 할 거라고 둘러대면 할 말이 뭐 있겠는가. 보험회사에 연락을 했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거였으면 영수증을 달라고 한 다음 그 금액을 지불했어야 한다. 너무 서둘러 송금을 했다. 그러나 편법은 막지 못할 것이다. 에스유브이는 안면 있는 정비소에 가서 20만 원 상당의 허위 영수증을 발급 받아 보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비소의 영업주를 만나 사실 확인을 해야 한다. 허위로 영수증을 발급했다면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면 영업주는 벌금을 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벌금은 우리에게 상환되지 않는다.

“올 때 못하고 망치 좀 사다 줘.”

쉬엄쉬엄 그녀의 생일이 되어 있었다.

“왜?”

“박아 버리려고.”

“내가 그렇게 못마땅해?”

그녀가 웃었다.

“아니. 에스유브이에다 박을 거야.”

“펑크를?”

그녀가 웃었다.

그녀는 처음 만날 때처럼 예뻐져 있었다. 활기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웃었다. 겨우 그 정도의 귀여운 분노라니. 펑크를 낼 거라면 송곳으로도 될 텐데? 못을 박으려면 나사못과 드라이버가 편할 거잖아. 못이라니. 망치라니. 타이어에서 튕겨 나오면 어쩌려고? 나는 못과 망치를 사면서 나사못과 드라이버도 함께 샀다. 그녀가 못을 못 박아서 낭패스러워 하면 도구를 바꿔 보라고 내밀 생각이었다. 못과 망치라. 낫과 망치는 소비에트 연방의 세기적 상징이었다. 농노와 공장 노동자의 생산 수단. 우리는 간단하게 생일 파티를 한 다음 위스키와 칵테일을 마셨다.

골목에 사람들이 없을 시각에 대문을 나섰다. 에스유브이의 범퍼는 아직 수리되지 않고 있었다. 나는 망을 봐 주면서 A의 동작을 살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녀가 못을 대는 곳은 타이어가 아니라 유리창이었다. 그녀는 웃으면서 아이를 다독이듯이 살살살 망치로 못을 쳤다. 그러자 못이 유리창에 박혔다. 쩍, 금 가는 소리가 났지만 크지 않았다. 창은 비닐 코팅이 되어 있어서 한 번에 박살나지 않았다. 그녀는 박는 데에 익숙해지자 한 번의 망치질로 한 개의 못을 박았다. 소음기 단 권총으로 사격을 하는 소리가 났다. 망치로 못을 탁 치면 틱하고 박혔다. 기막힌 일이었다. 그녀는 30개짜리 콘크리트 못 한 박스를 다 쓰고야 멈췄다. 앞, 옆, 뒤, 모든 유리창이 적의 심장이었다.

“이 자식 황당해 하겠지?”

그녀가 웃었다. 우리 관계는 즉각 회복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내 이마에 못을 박는 상상도 잠깐 했었던 것이다. 스물아홉이 뭐 대단한 나이인가. 7년 흐른 걸 과하게 슬퍼했던 건 분명 엄살이었을 것이다. 미안하다. 서른세 살의 A야. 그녀가 웃으며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도 덩달아 킬킬거리면서 그녀를 따랐다.

그러나 1주일 뒤, A가 출근하다 말고 들어와 시간이 급하니 내 차를 좀 써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가 보았더니 A의 흰색 승용차 유리창에 못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똑같이 당한 것이었다. 수법이 한층 업그레이드돼 있었다. 못이 박혀 있는 게 아니라 탄두가 뚫고 지나간 것처럼 구멍만 뚫려 있었다. 소리가 제거된 이미지는 강렬했다. 창이 성에 낀 것처럼 온통 하얀색이었다. 그래서 구멍이 검게 보였다. 에스유브이네 집을 올려다보았다. 넌 도대체 어떤 종류의 인류야? 차에 돌을 던져 줄까. 에스유브이를 바라보았다. 새로운 게 있었다. 범퍼는 그대로였는데 경보기의 경광등이 반짝이면서 전자시계 초침처럼 점?멸?점?멸하고 있었다. A는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수리를 부탁했다. 그리고 에스유브이와 똑같이 경보기를 달았다.

심리 게임을 하다 보면 상대를 알게 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게 된다. 자기한테 못을 친 상대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똑같이 경보기를 다는 것밖에는 없었다. 사회주의자의 시선에 의하면 둘 다 처벌을 받아야 했다. 정비소 사람들은 이익을 보았겠지만 그것은 사회적인 낭비였다. 나는 A가 다시 냉랭해져서 마음이 불편했다.

“오늘 봤는데 에스유브이 재미있게 생겼더라.”

A의 입에서는 그 사람이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A는 확인하고 싶어 했다. 왜 에스유브이가 유리창에 못을 박은 게 자기라고 생각했는지에 대해서. 같은 방식으로 삶을 대하는 사람들끼리의 연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 사람 혹시 봤어? 은근히 좀 군내 나지 않아? A는 나에게 묻곤 했다. 나는 그를 보지 못했다. 그녀를 통해 듣자 하니 그 사람은 여행사를 가지고 있었다. 체 게바라 여행사라고, 주로 혁명가들의 유적지를 탐방하는 루트를 패키지 상품으로 가지고 있는 회사였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개발한 품목이었다. 그냥 적당히 좌파 성향을 상품화하는 데에 재주 있는 80년대 학번쯤일 거라고 생각했다.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좌파에 대해 내가 물을 수 있는 것은 이런 말뿐이었다.

“어떻게 알게 됐어?”

A는 고상하게 대답했다.

“죄를 지어야 눈빛을 교환하게 되는 시대를 살고 있어 우리는.”

가끔씩 밤이 깊었을 때 경보기가 울렸다. 소리가 똑같았으므로 A는 잠을 자다 말고 대문 밖으로 나가 차의 안전을 살폈다. 에스유브이를 만났거나 그의 아내와 마주쳤을 것이다.

나는 현장을 잡아 간통죄로 그들을 고발하고픈 유혹에 시달렸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법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법과 포르노는 저작재산권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면에서 지위가 동등하다. 하나는 국민의 것이어서, 하나는 국민의 정신 건강을 해치는 것이어서 그렇다. 나는 다듬잇돌 있던 자리를 깊이 파고 그곳에 그 자식을 묻어 버리고 싶었다. 둘 사이에 오갔을 신경전, 상대의 마음을 떠 보는 문자 메시지 교환, 자연스런 전화 통화, 그러다가 이어진 술자리, 빠르게 합의되었을 불륜이 떠올라 치가 떨렸다.

 

에스유브이는 휴가 기간 내내 같은 자리에 주차되어 있었다. 범퍼를 짓밟으면 경보음이 쏟아졌다. 리모컨을 들고 나와 소리를 잠재우는 사람은 그 집 여자였다. 그 여자에게 성큼 다가가는 방법이 없진 않았다. 돌을 던지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 유럽에 갔어요……. 차 수리는 돌아오면 얘기해요.” 남의 출장에 자신의 일정을 맞출 정도로 A가 자존심 없는 여자였던가. 나는 매일 에스유브이를 밟았고 차의 상태를 확인하며 경보음을 잠재우는 여자를 골목에 숨어서 바라보았다.

휴가 기간 내내 『공산당선언』을 읽었다. 앞에서 말했지만 그 책을 읽는 건 취미였다. 계급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부르주아지를 A로 프롤레타리아트를 나로 바꿔 읽어 보았다. 맥락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나를 부르주아지로, A를 프롤레타리아트로 바꿔 보았다. 그래도 문맥은 어색했다. 테마를 성욕으로 바꾸면 문맥에 어울렸다. 둘 중 하나를 남자로, 하나를 여자로 바꿔보면 이렇게 된다. 남자(여자)는 성적 수단을 전유함으로써 여자(남자)를 착취한다.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은 모든 사유제의 폐지가 아니라 기계와 공장 같은 생산 수단의 사유를 폐지하고 그것을 공유하자는 것이었다. 생산 수단의 공유.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의 결혼관은 부인의 공동 소유제가 된다. 이게 무슨 말일까. 혼자 생각으로 얼굴이 붉어지면 마르크스가 주장한 하루 8시간 노동을 지키기 위해 침실로 들어가 8시간의 잠을 잤다.

책을 읽으며 자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가끔 욕구가 생기면 그것은 거추장스러웠다. 『자본론』을 펼치면 욕구가 사라졌다. 마르크스는 <상품> 장에서 말하고 있었다. 모든 가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거지의 구걸도, 교수의 강의도, 사회적 관계가 없다면 제로 가치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관계가 있어야 가능한 우리들 노동의 가치는 동등한 것이다. 자위에 대해서, 사회주의자들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성욕을 가진 자 중에서 완벽한 혼자란 있을 수 없다. 누군가의 무엇을 상상하면서 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위하는 자는 상상 속의 대상에게 혐오를 제공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상상의 영향력 없음을 먼저 생각한다. 그건 상대에게 가 닿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가령 내가 A를 상상한다거나 에스유브이의 아내를 상상한다거나, 문득 들은 목소리의 주인을 상상한다거나 할 때, 상상의 대상이 누구였는지 공개하지 않으면 전혀 문제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더러운 자유주의자들은.

 

어쨌거나 A는 돌아왔다. 나는 소파에 누워 있었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곧장 침실로 들어가 곯아떨어졌다. 내일이면 A가 떠난다. 그런 생각이 찾아왔다. 여행에서 돌아왔으니 이제 떠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우리가 함께 산 건 2년이었다. 2년이 지났으니 그녀의 아파트 전세 계약도 만료되었을 것이다. A는 2년이 지나길 기다리면서 불쑥불쑥 비행기를 탔는지도 몰랐다. 나는 독서 소파로 옮겨가 『공산당선언』을 펼쳤다. 스포트라이트는 천장의 골프 홀 같은 구멍에서 직선으로 내려왔다. 다른 전등은 다 끄고 그것만 남겼다. 빛을 받고 글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오늘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독하기로 하자. 이것은 취미일 뿐이다.

이 책을 광신하는 사람이 온다면 나를 저격하고 말 것이다. 저격을 떠올리자 마지막 생이 떠올랐다. 이 땅에서 가장 우아하게 외로운 사람이 된 듯했다. 이런 외로움이라면 근사한 것이다. 근사하게 죽고 싶다. 뭔가 생의 목적이 형성되는 기분이 들었다. 아예 외로움을 전시해 보기로 했다. 블라인드를 펼치자 옆집, 앞집의 불빛들이 정원을 거쳐 창으로 들어왔다. 저 집들에서 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스포트라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네 번째인 마지막 장 “기존의 여러 반정부당에 대한 공산주의자의 입장” 파트를 읽을 때였다. 창으로 경광등 불빛이 반짝반짝 들어왔다. 방음 장치를 설치해 놓은 창으로 삐뽀삐뽀 소리가 들어왔다. 작고 희미해서 먼 과거로부터 오는 소리 같았다. 책을 다시 보았다. 이런 책을 읽으면 경찰이 체포하러 왔을 때도 있었다고 들었다. 에스유브이는 그런 시대에 20대를 보냈을 것이다. 그를 떠올리자 긴장이 되고 흥분이 되었다. 체 게바라 여행사? 흥. 서가를 둘러보았다. 사회과학 서적, 법사회학 책들이 꽂혀 있었다. 실용 법전은 서가에 들이지 않았다. 내가 고민했던 건 법의 역할, 도덕, 법에 의한 행복이었지 법의 내용이 아니었다. 나처럼 보호해야 할 것이 있으나 힘이 약한 사람에겐 법이 엄격할수록 좋다.

경광등이 오랫동안 반짝거리고 있었다. 대문 밖으로 나가 보았다. 경찰차인 줄 알았는데 서 있는 것은 구급차였다. 에스유브이네 집에 무슨 문제가 있는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말을 걸어 볼 이웃은 아무도 없었다. A의 차에서 경보기의 경광등이 아주 작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남자가 들것에 실려 나왔다. 저 얼굴이 에스유브이이다. 그의 허벅지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는 간혹 고개를 들어 주위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어둡고 멀어서 얼굴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구급차가 소리를 내며 골목을 빠져나갔다. 사람들이 나누는 얘기를 들어 보았다. 말을 나누고 지내는 이웃이 없어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야 했다. 아내가 남편을 찔렀다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칼로? 상상해 낸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못 박힌 자동차 유리창이 떠올랐다. 그때의 경쾌함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 발 먼저 하는 사람이 있다. 시원스런 일은 내가 하기 전에 누군가가 먼저 해 버린단 말이거든……. 웃음이 났다. 그 집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A가 무언가를 했을 것이다.

나는 잠든 A에게 다가갔다.

“자기야. 저 에스유브이한테 뭘 한 거야?”

“왜?”

“사고가 난 모양인데? 구급차에 실려 가던데?”

“내일 얘기하자.”

A는 이불을 둘러썼다. 여행이 피곤했을 것이다. 여행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마루에 벗어 놓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에스유브이의 아내는 언제나처럼 출장 다녀온 남편의 짐을 정리하기 위하여 여행 가방을 풀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짐 상태를 보면서 타박을 하곤 했는데 가방에서 깜짝 선물을 찾아내곤 했다. 여자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여자는 선물 상자를 풀고 그 안에서 낯선 여자의 팬티와 브라를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샤워실에서 나오는 남편에게 물 대신 부엌칼을 들이밀었을 것이다. 내게 이로운 상상이 자꾸 싹을 틔우며 자라났다. A는 충분히 그런 식의 우회적인 방식으로 복수할 수 있는 여자였다. 나는 A를 깨우고 싶었다.

“자기야, 근데, 어디에 갔다 온 거야?”

A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모로코.”

모로코? 그 자식이랑? 모로코를 발음하는 톤이 꼭 서해 바다 하는 것처럼 평범해서 더 물을 수가 없었다. 나는 거실로 나왔다. 지구본을 돌려 모로코를 찾았다. 카사블랑카라는 항구 도시가 있는 아프리카 나라였다. 그 앞바다는 내가 듣고 있었던 아프로쿠반을 만들어 낸 대서양이었다. 체 게바라의 군대가 쿠바의 아바나에 들어갔을 때 유행하던 리듬은 차차차와 맘보였다. 체는 쿠바에서 아프리카로 혁명지를 옮겨 갔다. 체의 고향 아르헨티나 도시에선 그때 탱고가 카페마다 실황으로 연주되었다. 그 탱고는 내게 반도네온이라는 악기의 존재를 알려 주었다.

아프로쿠반을 다시 틀어 놓고 음반 재킷의 사진을 보았다. 모래사장의 바위에 기대어 서 있는 쿠바 여가수였다. 나는 A를 기다리면서 A가 40대가 되면 그런 모습으로 어딘가에 서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쓸쓸해지길 나는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여가수는 맨발이었다. 아래로 향한 발가락 끝은 모래 속에 들어가 있었다. A도 그런 모래를 밟고 있었을 것이다. 북위 25도 무렵의 아프리카 따뜻한 바다에서 맨발로 모래사장을 거니는 속도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내 눈으로 볼 수 없으므로 그녀의 속도는 감추어진 뿌리였다. 그녀는 뿌리가 자라는 속도로 천천히 걸었을 것이다. 걸으면서 에스유브이를 혼내 주기 위해 고민을 했을 것이다. 뭘 한 걸까. 내 상상처럼 속옷을 넣었을까. 도저히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A의 침실로 다시 들어갔다.

“자기야. 자기가 뭘 한 거지? 그렇지?”

“아이. 피곤해. 그냥 자자.”

A가 팔을 벌렸다. 나는 그대로 다가가서 품에 안겼다. 처음 잘 때처럼 쑥스럽고 부끄러웠다. 왜 이렇게 매력적인가. 내가 본 가장 멋진 모습이었다.

6일 동안 내내 아침에 눈을 뜨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지? 그런 질문이 들어왔다. 이상하게도 그녀가 떠난다고 생각하니 자꾸만 그 생각이 들었다. 그 답 없는 질문이 나를 망가뜨리겠다 싶어지면 부랴부랴 출근을 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 어쩌자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17층 아파트를 떠올리면 고민이 해결되었다. 나는 거기로 올라가지 못하는 환자이다. 문득 에스유브이가 들것에 누워서 고개를 자주 들던 모습이 떠올랐다. 무슨 말을 했었을까. 이 여자는 정말 에스유브이와 동행했던 것일까.

나는 A의 가방을 정리해 주기로 했다. 그녀와 살면서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부랴부랴 챙긴 흔적이 있어야 한다. 숨 가쁜 밀회였다면 짐은 더욱더 헝클어져 있어야 한다. 비밀번호로 자물쇠를 풀고 배낭을 열었다. 가방을 열어 놓고 보니 묘한 만족감이 찾아왔다. A가 문을 좀 닫아 달라고 했다. 나는 음악 소리를 줄이고 침실 문을 닫아 주었다. 책을 읽던 소파로 가서 스포트라이트 밑에 그녀의 가방을 놓았다. 짐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차곡차곡 그녀가 쓸쓸함을 쌓아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도 앞으로 어떻게 살지를 걱정했을까? 따뜻한 나라의 바다에서?

마테차가 들어 있었다. 체 게바라가 천식을 치료하기 위해 아버지로부터 공수 받아 마셨다는 차였다. 게릴라 대장이 전장에서 마신 차라고, 내가 마시고 싶다고 몇 번 말한 적 있었다. 티백 곽에 체 게바라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많은, 체 게바라 상품 중 하나였다. 문득 웃음이 나면서 에스유브이의 상처가 걱정되었다. 구급차가 떠난 뒤 경찰차가 오지 않은 걸로 보아 꽤나 정당한 방식으로 칼을 맞은 모양이었다. 나는 속옷의 개수를 세 보려다 말고 A의 침실로 들어갔다. 그녀가 꼭 빙글빙글 도는 음반 같았다. 꿈속에서 이삿짐을 나르는 사다리차가 나를 17층으로 쭉 밀어 올렸다.《문장 웹진/200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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