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능소화 




김이정




지루한 장마가 한 달째 계속되고 있었다. 중국대륙에서 형성된 저기압 기단이 서해를 사이에 두고 한반도와 중국을 오락가락하고 있다고 했다. 큰 산으로 둘러싸인 데다 바다가 멀지 않은 남쪽 도시, J시는 올 여름 따라 유난히 비가 잦고 습도가 높아 도시전체가 습지라도 된 것 같았다.

 

 

경주는 갑자기 생각이라도 난 듯 치약을 찾았다. 그리곤 끈적이는 흰 목에 걸린 목걸이를 풀어 치약을 묻힌 화장솜으로 닦기 시작했다. 장마철의 습기 때문인지 신주로 만든 팬던트는 유난히 윤기가 죽어 보였다. 경주는 화장솜에 묻은 치약을 팬던트 표면 앞뒤로 바른 뒤 새 화장솜 하나를 꺼내 다시 정성껏 닦았다. 화아, 입김까지 불어 닦고 나니 검은 빗살무늬가 새겨진 노란 팬던트는 얼룩 하나 없이 반짝반짝 윤이 났다. 경주는 팬던트에 14K 줄을 끼워 목에 걸었다. 손가락 마디 하나 길이의 노란 팬던트 목걸이가 목에서 빛났다. 경주는 그제야 안심한 듯한 표정으로 거울을 보았다. 오늘도 빛나는 경주의 부적, 경주는 이 부적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닦았다.

“나중에 내가 돈 벌면 그땐 이런 가짜가 아니라 진짜 금으로 해줄게.”

그날 명수는 손바닥만 한 작은 물방울무늬 종이봉투를 쭈뼛거리며 내밀었다. 가느다란 14K 줄에 이 신주 팬던트가 매달린 목걸이였다. 그날 이후 목걸이는 경주의 부적이 되었고 경주는 그것을 매일 치약으로 닦기 시작했다. 부적이 윤기를 잃으면 뭔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카페 볼가는 아직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경주는 푸른 담쟁이 사이로 능소화가 붉게 핀 창가자리에 앉았다. 햇살에 환히 드러난 능소화가 눈부셨다. 유난히 짙은 진홍빛의 꽃이 너무 화려해서 오히려 외로워 보이는 꽃이다.

“옛날에 임금에게 하룻밤 안긴 궁녀가 다시 오지 않는 님을 기다리며 담장을 서성대다 죽어 그 밑에 묻혔는데 그 여자의 정한이 저렇게 붉게 피는 거래. 행여 올 님의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이느라 꽃이 나팔처럼 둥글어지고 님이 오시는지 보느라 담을 타고 위로 오르는 거래.”

이 카페에 처음 왔던 날 진이가 말해주었다. 그날 이후 경주는 능소화만 보면 마음이 아렸다. 빨강색을 칠한 한옥의 창문 프레임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이 갑자기 난 햇살 때문인지 사진 속 장면처럼 정지된 듯 보였다. 그 정지된 화면을 깨트리며 멀리서 진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약속시간이 30분이나 지나 있지만 서두르는 기색도 없다.

좀처럼 입지 않는 치마 탓인지 진이의 걷는 모습이 부자연스러웠다. 무릎이 언뜻언뜻 드러나는 보라색 쉬폰 치마가 햇살에 비쳐 더 하늘하늘해 보였다. 언제 저런 옷을 산 것일까, 늘 청바지에 운동화만 신고 다니던 진이의 여성스러운 옷차림이 눈에 설었다. 진이는 한 발을 떼고 다시 반대편 발을 떼다가 말고 갑자기 박자를 잃은 아이처럼 한참을 서 있더니 느리게 또 같은 발을 뗐다. 큰 키에 유난히 가는 발목이 위태로워 보였다. 그 발목으로 진이가 경주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경주는 뭉개져 있던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진이가 문을 열고 들어와 갑자기 어두워진 실내를 더듬어 경주가 앉은 자리로 다가왔다. 꼭 다문 입술로 경주를 향해 만들어 보이는 진이의 미소가 끝내 일그러졌다.

“갑자기 해는 나고 지랄…….”

의자에 앉으며 나지막이 내뱉는 진이의 목소리가 건기의 대지처럼 갈라져 있었다. 밤새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눈도 충혈돼 보였다. 경주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실내와 바깥의 햇살이 확연히 구분되는 게 마치 세상이 둘로 나눠진 기분이 들었다.

“비 오면 좋을 텐데…….”

경주 역시 오늘만큼은 장마철 반짝 난 해가 반갑지 않았다. 진이는 앉자마자 탁자 위에 놓인 경주의 담배갑으로 손을 뻗었다. 무심코 꺼내 하나를 입에 물다 황급히 담배를 빼 탁자 위에 놓았다.

“제기랄.”

진이가 담배를 부러뜨리며 중얼거렸다. 경주는 슬며시 담배갑과 라이터를 가방에 넣었다. 어쩌다 술 마실 때 한 대씩 피우는 담배가 요즘 부쩍 늘었다.

“여기 대추차 좋잖아, 우리 그거 마시자. 몸살기가 있는지 대추차 생각난다.”

경주는 언젠가 감기에 걸렸을 때 이 카페에서 마셨던 직접 끓인 진한 대추차를 떠올리며 서둘러 메뉴판을 진이 앞으로 내밀었다. 사실은 아까부터 진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미리 주문해 마실 걸, 후회가 될 정도로 커피 생각이 간절했다.

“저희 대추차 둘 주세요.”

경주는 멍하니 메뉴판만 바라보고 있는 진이를 무시하고 대추차를 주문했다. 하는 수 없다는 듯 진이가 메뉴판을 덮었다.

“괜찮지?”

경주는 가능한 한 무심한 표정과 심상한 말투로 표 나지 않게 진이를 살폈다.

“너무 애쓰지 마라. 괜찮아.”

진이가 쓴웃음을 지었다. 보름새 얼굴이 드러나게 상해 있었다.


“나, 임신했어.”

보름 전, 진이의 집에서 와인을 마시던 그녀가 말했다. 할인마트에서 사온 칠레산 레드와인을 둘이서 한 잔씩 마신 다음이었다. 만이천원짜리를 팔천원에 판다고 자꾸 권하는 바람에 산 것이었다. 텁텁하고 떫은맛이 혀 깊숙이 진하게 배어들었다. 임신이라니. 순간 경주는 입에 막 넣으려던 슬라이스치즈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두 달 지났대. 어제 병원 갔다 왔어.”

발간물이 배어들던 경주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정지되었다.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을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진이를 쳐다보았다. 그제야 경주는 진이의 유난히 흰 얼굴에 살비듬 같은 각질이 언뜻언뜻 보이고 턱이 뾰족한 게 한층 여위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랑 병원 같이 가줘.”

진이가 꺼져가는 목소리를 겨우 살려내 경주를 마주보며 말했다. 경주는 와인 잔을 든 채 진이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해독 불능의 암호처럼 들려왔다. 경주는 더 이상 해독할 수 없는 언어를 피해 빈 와인잔을 채우려 병을 들었다. 그때였다. 대리석처럼 단단한 진이의 얼굴로 느닷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방울져 있다 흐르는 눈물이 진주알이라도 굴러 떨어지는 것 같았다. 놀라웠다. 진이를 알게 된 이후 단 한 번도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고인 물같이 갑갑한 이 도시를 벗어날 유일한 방법인 서울의 4년제 대학 사진학과에 떨어졌을 때도 진이는 울지 않았다. 아니 중학교 2학년 때 간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 이야기를 할 때도 진이는 그저, “사람이 그렇게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더라”면서 쓴웃음만 지었다. 이야기를 듣던 경주만 한참을 훌쩍거리다 ‘독한 년’하고 중얼거렸었다.

경주는 와인 잔을 상 위에 놓고 일어섰다. 더 이상 그녀를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어서 집에 가고 싶었다. 아니 집이 아니라도 어디든, 진이의 집만 아니라면 어디든 괜찮았다. 어서 그 자리를 피하고만 싶었다. 경주는 갑자기 가방을 들고 허둥대며 현관을 향해 몸을 돌렸다. 진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꼼짝없이 앉아 있었다. 어쩌면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신음 같은 소리가 새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탁할 사람이…… 너밖에 없어.”

진이가 도망치려는 경주의 발목에 족쇄라도 채우듯 말했다.


“나, 임신했어.”

하필이면 그때 맞은편에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이가 오고 있었다. 엄마 손을 뿌리치고 뒤뚱거리며 뛰어왔다. 바람을 팽팽하게 넣은 고무공이 튀는 것 같았다. 경주의 말은 어쩌면 그 아이를 보며 무심코 튀어나온 것인지도 몰랐다. 시장통 입구였다. 학교 앞에 있는 명수의 방에 나란히 누워 책을 보다가 갑자기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어서 그의 손을 끌고 근처 떡볶이 집에 가던 길이었다. 며칠째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속만 메슥거렸다.

“무슨 말이야?”

명수가 자동차의 급브레이크라도 잡듯 멈춰 섰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명수는 한눈팔며 걷는 아이를 칠 뻔한 사람처럼 소리쳤다. 호통에 가까웠다.

“아기가 생겼다고.”

경주는 절대로 차선을 침범한 적이 없는 아이처럼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말했다. 아이가 생겼다고. 명수가 갑자기 손을 빼는 바람에 그의 외투 호주머니 속에서 꼭 잡고 있던 경주의 손이 찬 겨울바람 속에 노출돼 덜렁거렸다. 경주는 성난 그의 호통보다 갑자기 빼내진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그날 경주는 혼자서 떡볶이를 먹었다. 명수가 곧바로 뒤돌아 그의 방으로 가버리고도, 아니 찬바람 속에 시린 손이 혼자 남겨지고도 경주의 속에선 맹렬한 식욕이 사라지지 않았다. 경주는 그 길로 혼자 떡볶이 집 문을 열고 들어가 떡볶이 3인분을 모두 먹어 치웠다. 걷잡을 수 없는 허기였다. 그날, 고추장 뒤범벅인 마지막 남은 떡살을 포크로 찍어 들고 입에 넣으려는 순간 경주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삐져나왔다. 염치도 모르는 허기가 무참했다.

떡볶이를 다 먹고 어묵국물까지 모두 마신 경주가 천천히 걸어 명수의 옥탑방에 다시 갔을 때 그는 이미 온몸이 떡볶이보다 더 벌게져 있었다. 소주를 병째 들이부은 듯 안주도 없는 상 위에 빈병만 댕그라니 놓여 있었다. 갑자기 소주 냄새를 맡은 경주는 화장실로 달려가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먹은 떡볶이가 단숨에 식도를 되짚어 올라왔다. 예측할 수 없는 몸의 변화가 당황스럽기만 했다.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곤…… 정말 생각 못했어.”

명수가 취하지도 못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안해. 네가 안 보여. 내 앞에 벌어진 일만 보여.”

명수는 정말 경주를 보지 않았다. 붉은 얼굴을 웅크린 몸 위에 말아 넣고 그는 경주를 쳐다보지 않았다. 경주의 몸속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묻지 않았다. 자기 안의 두려움만 응시한 채 방안에 빈 나무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경주를 보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손이 내쳐졌을 때보다 더 시린 한기가 몰려 왔다. 


진이는 대추차를 달게 마셨다. 사발만한 큰 잔에 담긴, 탕약처럼 진한 찻물을 다 마시고 채 썬 대추까지 티스푼으로 말끔히 건져먹었다. 쨍쨍히 해가 난 여름날 먹기엔 아무래도 적당한 음료가 아니었다. 경주 앞의 대추차는 반쯤 마시다 그만 둔 채로 식어가고 있었다. 경주는 냉수를 두 잔째 마셨다. 커피생각이 더 간절했지만 끝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우습지? 곧 수술하러 갈 거면서 대추차는 왜 마시는 건지…….”

진이가 끝내 모른 척하지 못하고 한 마디를 내뱉었다. 진이는 늘 그런 식이다. 그냥 말없이 넘어가도 좋을 일을 이렇게 입 밖으로 내뱉어야 직성이 풀리는 건 진이의 결벽증이었다.

“혼자 가보려고 했는데 무서웠어. 혹시 안 깨나면 어쩌나 싶어서…… 엄마도 나랑 둘이 있을 때 혼수가 와 영영 깨나지 않았거든.”

말을 마친 진이가 입을 꼭 다물면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야무진 입매가 조개껍질처럼 단단히 닫혀 있었다. 얼마나 어렵게 뗀 입인지 굳게 다문 입술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도 죽는 건 무서운가봐.”

진이가 입술을 비틀며 싸늘히 중얼거렸다. 경주는 환한 햇살 아래서 혼자 알몸으로 피 흘리고 있는 진이를 보는 기분이었다. 누구 하나 손 내밀어 엄살 부릴 사람도 없이 홀로 서서 날카로운 쇠붙이로 연한 제 살을 찔러대는 것만 같았다. 

“그만해.”

그런 진이를 보다 못한 경주가 겨우 한마디 했다. 상처 입은 짐승이 제 손으로 상처를 덧내고 있었다. 경주는 만개한 능소화로 고개를 돌렸다. 햇살에 비친 꽃잎이 레이스 속옷처럼 투명하게 비쳤다. 손톱만 살짝 갖다 대도 상처자국이 선명히 새겨질 것 같은 연한 꽃잎 속으로 노란 줄기들이 환히 보였다. 저 연한 꽃잎 속에 치명적인 독이 숨어 있다던가. 꽃가루가 눈에 묻으면 눈이 상하고, 향기를 많이 맡으면 뇌의 신경세포가 파괴된다는 말도 있었다. 언제나 아름다운 것들은 치명적인 독을 숨기고 있었다. 어쩌면 그 독 때문에 능소화가 더 아름다운 건지도 몰랐다.

“네 앞에서 엄살이라니…… 가자.”

진이가 든 쇠붙이는 끝내 경주의 연한 살마저 찔렀다. 어쩌면 이걸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경주는 자기 몸을 찌르며 피 흘리고 있는 것은 진이뿐만 아니라 자신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경주 역시 어떤 식으로든 자기 살을 찌르며 상처를 덧내고 있었다. 경주는 순간 강한 의문에 사로잡혔다. 너는 왜 도대체 진이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거지?


그날도 점심때부터 만난 진이와 함께 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사진전시회를 본 후 지쳐 커피 전문점에 앉아 있었다. 경주가 좋아하는 노래, 피오나 애플이 부르는 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나른한 목소리는 우주를 가로지르는 일이란 어쩌면 산책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하필 왜 그때 그 감촉이 떠올랐던 걸까. 경주는 문득 처음으로 남자의 입술이 자신의 입에 닿던 그 순간을 떠올리고 있었다. 몸의 긴장이 풀리며 경주는 손가락 끝으로 아랫입술을 만지작거리다가 무의식적으로 첫 키스의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일어나 바람꽃처럼 떨리며 곧 다가올 무언가를 기다리던 그 순간의 팽팽한 긴장과 설렘이 새삼스레 나른한 몸을 파고들었다. 

서울행 밤기차 안이었다. 밤이 깊어가면서 제각기 떠들던 기차안 사람들도 하나둘 잠이 들기 시작하고 마침내 어둠 속을 달리는 기차의 바퀴소리만이 심장소리처럼 규칙적으로 들려올 때 명수는 자신의 어깨에 기댄 경주의 머리를 조금씩 눕히기 시작했다. 그의 손길이 너무 조심스러워 경주는 내처 자는 척하지 않을 수 없었고 마침내 경주를 제 무릎에 눕힌 명수가 조금씩 어깨를 숙여왔다. 파르르 떨리는 그의 심장박동소리가 증폭기라도 댄 듯 생생하게 전해졌다. 마침내 문풍지처럼 떨며 그의 입술이 경주의 입술에 닿았을 때, 밤새 어둠 속을 달려온 기차 차창으로 푸르스레 어둠이 걷히고 있는 도시가 보였다. 

“한강이 보여.”

명수가 안개라도 낀 음성으로 나직이 속삭였다. 입술이 까칠했다.

“넌 키스할 때 기분이 어땠어?”

혼자 회상에 빠져들었던 경주는 난데없이 진이에게 그렇게 물었다. 갑자기 지리산 골짜기에 있다는 시골집에 간다며 일주일째 연락이 없는 명수의 전화를 기다리다 지쳐 경주는 진이를 만났다.

아프다며 나오지 않으려는 진이를 찾아가 투정 같은 푸념을 늘어놓다가 차라리 밖으로 나가자는 진이를 따라 영화를 본 후 크지 않은 도심을 두 바퀴쯤 돈 후였다. 아마도 연락이 없는 명수에 대한 서운함과 불안감이 난데없이 진이에게 자랑을 늘어놓고 싶게 만든 건지도 몰랐다. 경주는 명수와의 첫 키스 장면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묘사했다. 진이에게 말하다보니 그때의 떨림이 다시 몸속으로 파고드는 기분이었다.

“키스 좋아하니? 난 섹스보다 키스가 더 좋더라.”

“키스?”

진이가 마른 찰흙처럼 굳은 얼굴로 되물었다. 진이는 결국 이 도시의 유일한 전문대 사진학과에 들어간 첫해 같은 과 동기와 좀 싱거운 연애를 한 경험이 있었다.

“해봤을 거 아냐.”

늘 함께 출사를 나가 시내의 남쪽에 있는 한옥마을을 누비는 걸로 데이트를 대신 한다고 툴툴거렸었다. 아무래도 자기보다는 사진에 더 미쳐 있는 것 같다고 진이는 한 학기 동안만 사귀고 나서 그만 두었다. 남자친구라는 과목을 한 학기동안 수강한 것 같다며, 학점은 재수강이라고 웃었었다.

“너무 두려웠어.”

진이는 두려움이라고 했다. 경주의 상투적인 수식과 달콤한 묘사가 무색하리만치 굳은 얼굴로 진이는 두려웠다고 했다. 진이의 입술이 다시 굳게 여며졌다. 뜻밖의 대답에 경주는 말문이 막혔다. 진이의 목소리에는 남자와 첫 키스를 하는 소녀의 떨림에서 오는 두려움이 아닌 뭔가 어둡고도 비밀스러운 분위기가 묻어났던 것이다. 불현듯 경주는 투정과 푸념을 가장한 자신의 자랑이 유치하고 부끄러워졌다. 그 부끄러움 탓인지 혹은 진이에게서 전해지던 뭔지 모를 두려움 탓인지 경주는 진이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병원은 한산한 간선도로 가에 있었다. 간판에 여의사라고 써놓은 것이 호객 행위처럼 불순해 보였다. 진이가 사는 동네와는 정반대 편인 동쪽 끝 신도시 주택가였다. 낯선 동네에서 병원을 찾아 혼자 헤맸을 진이의 가는 발목이 떠올랐다. 버스를 타고 무작정 반대편 동네로 와 눈선 길목을 걷다가 눈에 띄는 산부인과 간판을 홀로 바라보며 멈춰선 발길의 흔들림이 경주의 몸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누구한테도, 절대로 말하지 마.”

진이가 병원이 보이는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서서 다시 한 번 다짐받듯 말했다. 비장한 얼굴이 마치 유언이라도 남기는 것 같았다.

“그럼 나한테도 끝까지 말하지 말았어야지.”

비장하기 짝이 없는 진이의 말이 경주를 자극한 걸까, 대답이 화살처럼 튀어나갔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먼저 화살이 튀어나갔다. 경주는 후회했지만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장소로 자신을 데려온 진이에게 화가 난 것인지도 몰랐다. 

“너무 서러울 것 같아서…… 한 존재가 이 세상에 왔다가는 걸 아무도 모른 채 지나간다면 너무 서러울 거 같아서……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그걸 알아준다면 넋이라도 위로가 될까 싶어서…….”

진이의 눈이 바람 부는 호수처럼 흔들렸다. 곧 넘칠 듯 위태로웠다.

“그게 왜 하필 나니?”

흔들리던 호수는 결국 경주의 눈에서 넘쳐버렸다.

“너한테 말 안 하고 지나가려고 했어. 그래, 죽어도 너한테만은 안 하려고 했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같이 있어 줬으면 싶은 사람이 아무리 생각해도 너 밖에 없었어. 너만 옆에 있어주면 돼.”

진이가 흔들리던 눈길을 거두고 다부지게 다시 입술을 다물었다.

“잔인해.”

경주는 산부인과 간판을 바라보았다. 어쩌다가 다시 진이와 함께 저 낯익은 병원 앞에 서 있는 것일까. 상처 난 무릎으로 다시 넘어져 전의 상처까지도 패여 피가 흐르는 것 같았다.

“알아.”

진이가 경주의 쓰린 속을 들여다보고 있기라도 하듯 대답했다. 정말 진이는 알까. 경주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진이는 알까. 경주는 갑자기 진이를 처음 만나던 때가 떠올랐다. 어색한 분위기가 미처 깨지지 못한 고등학교 1학년 새 학기 교실이었다. 이어폰을 낀 채 점심을 먹다가 옆자리에 앉은 진이와 장난삼아 이어폰을 바꿔 꽂았다.


하고픈 일도 없는데

되고픈 것도 없는데

남들은 뭐든 돼보라 하네

나 이상한 걸까

어딘가 조금 비뚤어진 머리에는

매일 매일 다른 생각만 가득히

나 괜찮은 걸까

지금 이대로 어른이 돼버린 다음에는

점점 더 사람들과 달라지겠지


같은 음악이 두 개의 이어폰에서 동시에 나오고 있었다. 나 괜찮은 걸까. 순간 경주는 진이가 자신에게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나도 그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오래 외롭던 떠돌이별이 자신과 꼭 닮은 또 하나의 별을 만난 기분이었다. 나란히 서서 함께 흐르면 평생 외롭지 않을 것 같았다.

경주는 지금도 가끔 그때의 일기장을 펼쳐보곤 했다. 온통 설레임과 흥분으로 들떠 종이가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날 시작된 이야기는 수업이 끝나고도 계속 되다가 결국은 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와 밤을 꼬박 새우고도 끝이 나지 않았다. 전생에 우린 쌍둥이가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설명하지 않아도 척척 알아듣던 그 신기한 일치감은 사춘기 내내 꿈꾸던 소울메이트를 드디어 찾았다는 확신을 주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진이는 나무처럼 경주의 속에서 뿌리내리고 가지를 뻗어 이제는 결코 다른 장소로 이식할 수도 없는 존재가 돼 버렸다는 걸, 진이는 알고 있을까. 혹 이식하면 둘 다 제대로 살지 못할 거 같아서 지새운 불면의 시간들을 진이가 알까. 경주의 마음속에서 진이는 여전히 한 치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래, 나도 네가 다른 사람하고 여길 왔다면 그것 역시도 못 견뎠을 거야.”

경주는 더 버텨내지 못하고 스스로 항복했다. 진이의 가늘고 긴 손을 잡고 푸른 불이 들어온 횡단보도를 향해 발을 떼었다. 최수자 산부인과라는 입간판이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운명이 오해한 거야.”

명수는 절대로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했다. 대학입학 후 끊임없는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대기도 힘든 처지에 난데없는 아이라니. 군대도 다녀와야 하고 대학원만은 서울로 가 지방대학의 설움을 씻어보겠다는 계획이 휴학 탓에 늦어진 게 그가 말한 이유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명수는 아직 누군가의 아비가 될 마음의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다. 그는 운명이 뭔가를 오해해서 잘못 보낸 것이라고 거듭 중얼거렸다. 경주는 마치 잘못 배달된 택배를 들고 어쩔 줄 모르는 사람처럼 명수를 바라보았다. 명수는 난데없는 시험대에 오른 자신의 운명과 일을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한 경주에 대한 분노가 뒤섞인 얼굴로 파르르 떨고 있었다. 경주는 겁먹은 그를 어서 빨리 안심시키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속에서 중력을 거스르듯 역류하며 자기 존재를 온몸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는 그 또렷한 생명도 외면하지 못했다. 양치질을 하다 말고 갑자기 올라오는 흰 거품을 욕실거울에 쏟아내면서 경주는 철지난 오이처럼 말라갔다.

“안 돼.”

명수는 더 이상 경주를 안아주지 않았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빈속에서 넘어오는 것들을 참지 못하고 찾아간 경주를 그는 핏발선 눈으로 외면했다. 명수는 등 뒤에서 팔을 감아 담요처럼 포근히 감싸주는 포옹도 하지 않았고 모든 날선 것들을 허물어뜨리던 부드러운 키스도 더 이상 해주지 않았다. 경주는 무엇보다 그런 그를 견딜 수 없었다. 그가 곧 떠나버릴 기차에 올라타기라도 한 듯 초조해졌다.

경주 역시 두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너만 생각해. 너 자신한테 좋은 것만.”

진이는 어깨를 쓸어주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진이 역시 더 이상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병원에서 수술 시한을 넘기지 말라며 주의를 주었던 삼 개월의 마지막 날, 경주는 명수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흔들리기만 할 뿐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하는 자신이 역겨워질 때마다 경주는 차라리 단호한 명수가 고마웠다. 병원 밖 찻집에서 기다리겠다는 그를 억지로 병원 안까지 데리고 갔으며 간호사가 내미는 수술동의서에 직접 서명하게 했다.

하나, 둘, 셋……. 곧 의식이 사라질 수술대에 다리를 벌리고 누워서도 경주는 안심했다. 혼자가 아니라서, 명수라는 공범과 함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그 불빛 환한 수술조명 앞에 홀로 누워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 외로움은 생각만 해도 견딜 수 없었다. 죄책감도 반으로 나누니 한결 견딜 만했다.


진이는 수술동의서의 아버지 란에 경주의 이름을 써 넣었다. 서진이, 자신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쓴 진이는 빈칸으로 남겨진 아버지 란을 경주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사이 갑자기 익숙한 글자들을 쓰기 시작했다. 민경주. 진이의 손끝에서 망설임 없이 써내려지는 자신의 이름을 보며 경주는 당황했다. 동의는커녕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진이는 미리 생각이라도 하고 온 듯 거침없이 써나갔다. 과연 무얼 동의한다는 걸까. 경주는 자신이 동의해야 하는 일이 무언지조차 알 수 없어 당황했다. 하지만 진이는 그런 경주를 쳐다보지도 않고 수술동의서를 간호사에게 건넸다. 간호사 역시 민경주라는, 아이의 아빠 이름을 더 이상 확인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서진이 씨.”

수술실 간호사가 나와 진이를 불렀다. 나란히 앉아 있던 진이가 경주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두 눈이 두려움으로 굳어 있었다. 진이가 두려웠다고 말했던 첫 키스도 이런 얼굴로 했던 걸까. 경주는 첫 키스를 하는 진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지금과는 다른 표정일 것만 같았다. 두려움 속에서도 별빛처럼 명멸했을 열정과 떨림. 경주의 온몸이 굳어졌다.

“여기서 기다릴게.”

경주는 굳은 얼굴을 애써 다림질이라도 하듯 진이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잡고 있던 진이의 손이 축축했다. 필사적으로 만든 태연한 얼굴로 앉아 허리에 손을 받치고 당당한 팔자걸음으로 지나가는 만삭의 산모들의 싸늘한 눈길을 견디고 있던 진이는 온몸으로 열을 내뿜고 있었다. 경주는 잡고 있던 진이의 손에 힘을 주었다. 두 개의 손바닥이 틈 하나 없이 포개졌다. 공모하고 있는 자들의 은밀함과 홀로 감당해야 할 죄책감들이 뒤엉켜 땀이 마르지 않았다.

“고마워, 경주야.”

진이가 갑자기 경주를 껴안았다. 진이의 몸에서 가는 진동이 전해졌다. 그새 살이 내려 뼈만 남은 듯 튀어나온 진이의 어깨뼈가 경주의 팔을 찔렀다. 마른 몸에 불룩 솟은 진이의 가슴이 경주의 밋밋한 가슴에 물큰, 와 닿았다. 보기 좋던 진이의 가슴이 임신으로 더 팽팽히 부풀어 있었다. 그곳에 탯줄이라도 연결된 듯 심장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한 생명의 존재증명. 경주의 심장 한가운데서 시작된 통증이 전신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미안해.”

느닷없이 튀어나온 말이었다. 자신의 아이를 지우러 들어가는 경주에게 명수는 그렇게 말했었다. 정확히 무엇이 미안하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경주는 다만 명수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홀로 수술실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무엇이 미안하다는 걸까. 뜬금없이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경주는 당황했다. 어쩌면 경주 혼자 중얼거리는 말인지도 몰랐다. 아니면 진이 뱃속의 태아에게 하는 말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누군가의 말을 대신 전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었다. 경주는 온몸이 헝클어진 기분이었다. 

“너, 미워.”

진이의 팔에 안긴 경주가 끝내 참았던 숨을 토하듯 중얼거렸다. 진이가 더 힘주어 경주를 껴안으며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환한 조명 아래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을 진이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아니 경주는 수술용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이 진이가 아니고 경주 자신인듯 한 착각마저 들었다. 눈을 뜰 수 없도록 환한 조명 아래 무참히 벌어진 하체와 곧 자신의 몸속을 헤집고 들어올 반짝이는 수술용 집게들, 경멸을 숨기고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무표정한 얼굴들. 곧 사라질 생명이 마지막으로 내지르는 비명인 듯 치밀어 오르는 구토증.

경주는 마취도 없이 그 모든 장면들을 생생하게 혼자서 재연하고 있었다. 때로는 피 묻은 손으로 농담 섞인 대화를 주고받는 의사와 간호사로, 때론 단숨에 숨이 끊긴 채 긁혀 나와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태아로, 때로는 정신을 놓은 채 벌린 자궁벽으로 피 흘리고 있는 진이로. 경주는 수술실 앞 의자에 꼼짝없이 앉아 고문이라도 당하듯 그 모든 장면들의 배역을 맡아 차례대로 재연해 나갔다. 일어나려 해도 몸이 의자에 묶이기라도 한 듯 일어날 수 없었다.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틀어놓은 실내에서 경주의 등 뒤로 진땀이 흘러내렸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인지 수술실 문이 열리고 의사와 간호사가 말끔한 얼굴로 나왔다. 손을 씻었는지 채 마르지 않은 손을 비비며 40대 중반의 여의사가 나왔다. 앳돼 보이는 간호사도 링거액이 든 비닐팩 하나를 들고 나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해 보이는 얼굴들이었다.

“서진이 씨는 회복실로 갔어요.”

일어서는 경주에게 처음 진이를 불렀던 간호사가 아는 체를 했다.

“괜찮은가요?”

고문에서 깨어난 경주는 간호사를 잡고 물었다.

“네. 회복실로 가보세요. 수술실 바로 옆문이에요.”

간호사가 눈으로 회복실 문을 가리켰다. 경주는 몇 발자국 떨어진 회복실 문을 쳐다보았다. 선뜻 떨어지지 않는 발을 끌고 분홍색 칠이 깔끔한 회복실 문을 열었다.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화사한 빛깔이었다.


진이는 버려진 물건처럼 회복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마취에서 아직 깨나지 않은 몸은 간호사가 부려놓은 자세에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진이는 다리와 양팔을 벌린 채 누워 있었다. 유난히 찰랑거리며 가지런하던 머리카락이 부챗살처럼 펴진 채 흩어져 있었다. 손등에는 주사바늘이 꼽혀 있고 노란 포도당액이 링거줄을 타고 진이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수술 후 영양주사 맞으실 건가요?”

수술 전 간호사가 물었다.

“아뇨.”

진이는 생각해볼 새도 없이 대답했다. 자신을 위해 영양주사를 맞는다는 걸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경주는 진이가 수술실로 들어간 직후 간호사에게 다시 가 영양주사를 꼭 놓아달라고 부탁했었다. 말하고 나니 주사액 한 봉지가 상처 난 모든 것들을 회복시켜줄 수 있을 것 같은 절박한 심정마저 되었다.

더러운 베이지색 체크무늬 고무줄치마가 복숭아 과육처럼 흰 진이의 아랫도리에 걸쳐져 있었다. 치마 한 구석에 진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이었던 듯 마른 핏자국이 손톱 크기만큼 묻어 있었다. 이미 진이에게선 끊어졌을 구토증이 경주의 속에서 새삼 치밀었다.

경주는 기억할 수 없었던 장면을 완성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지난 해, 미처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았을 당시 자신의 모습을 새삼 꿰맞추기 위해 그 자리에 서 있기라도 하듯 경주는 회복실 바닥에 서서 진이를 내려다보며 빈칸으로 두었던 퍼즐의 조각들을 완성했다. 피할 길 없는 모멸감이 잘 달궈진 온돌처럼 서서히 온몸으로 번졌다. 경주는 그것을 고스란히 제 몫으로 받아들였다. 진이도, 경주 자신도, 긁어낸 아랫도리만큼이나 참혹해 보였다. 그제야 어디서랄 것도 없는 분노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모래주머니를 쌓아 막아내고 또 막아내어 이젠 모두 가라앉았다고 믿었던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와 경주를 향해 몰려왔다. 진이가 누워 있는, 전기장판이 깔린 방바닥에 경주는 무릎을 꺾고 주저앉았다.


“그 목걸이 이제 그만 닦아.”

몇 달 전, 열흘째 학교도 나오지 않고 휴대폰도 받지 않고 문자에도 답이 없던 명수의 옥탑방을 찾아갔을 때 그는 술에 취해 경주에게 그렇게 말했다. 경주의 목에는 여전히 그가 사준 목걸이가 불빛에 반짝이며 걸려 있었다. 지난 해 병원에서 아이를 지우고 온 날 밤 명수가 준 것이었다. 경주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혼란에 빠져버렸다. 목걸이를 닦지 말라는 말은 무슨 뜻이며 이토록 엉망으로 취해버린 그는 왜 그런 걸까.

“이 방에도 이제 그만 와.”

그는 소주잔을 다시 털어 넣으며 말했다. 처음 듣는 낯선 음성이었다.

“무슨, 말이야?”

그의 낯선 음성이 명치에 걸려 체하기라도 한 듯 순식간에 속이 꽉 막혀버렸다.

“진이를 만났어.”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검푸른 방안에 그의 옆모습이 조각배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망망대해에 조각배 하나로 떠 있는 그는 그러나 어떤 그림자 하나도 다가갈 수 없는 완강한 고립의 자세였다.

“진이를 왜?”

경주는 두려움에 질려 간신히 되물었다.

“진이와 잤어.”

그가 완강한 자세를 풀며 급격히 허물어졌다. 바다 속으로 침몰해 들어가는 배처럼 그가 방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입에서 그동안 틀어 막혀 있던 토사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진이도 취해 있었다.

“절대 나를 용서하지 마라.”

열네 평짜리 낡은 아파트 씽크대 앞에 웅크리고 앉아 소주를 마시던 진이가 말했다. 새 장가를 들어 부산으로 떠난 아버지가 남겨주고 간 집이었다. 현관문 키 번호도 알고 있을 만큼 경주가 내 집처럼 드나들던 집이었다. 빈 소주병이 두 개나 뒹굴고 있었다. 경주는 그녀가 마시던 술병을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불덩어리를 삼키는 기분이었다.

“너보다 내가 먼저였어. 그 사람 마음에 품은 게……. 같은 학교에 간 네가 먼저 말을 했고. 나는 말을 안 했으니 마음을 접으면 될 줄 알았어. 그럼 너와 나, 그 사람 다 괜찮을 줄 알았어.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어. 내 마음은 접힌 채로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한 달 전, 집에 가는 버스에서 우연히 그 사람 만났어. 내려서 술 한잔했는데, 결국 다 들켜버렸어. 그날이야.”

진이는 전혀 취하지 않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사투리 억양도 없이 누구보다 정확하고 야무지게 책을 낭독하던 진이의 입매도 여전했다. 고3때 석 달 동안 영어 그룹과외를 가르치던 대학생 명수가 늘 칭찬하던 정확한 발음이었다.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자고 했어. 너만 모르면 되는 일이니까. 그런데 그 사람이 도저히 그럴 수 없대. 전처럼 너를 볼 수가 없대.”

경주는 더 이상 진이의 말을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진이의 입에서 나오는 ‘그 사람’이라는 말부터 목에 걸려 침조차 넘어가지 않았다. 내장 가득 레미콘 더미가 들어찬 기분이었다. 경주는 진이의 냉장고에서 새 소주병을 따 물마시듯 들이켰다. 속에서 불꽃이 치솟았다.

 

그러나 경주는 목걸이를 풀지 않았다. 매일 아침 일어나 치약으로 팬던트를 닦는 의식도 멈추지 않았다. 목걸이는 이제 나쁜 일들을 막아 주는 액막이가 아니라 이미 일어나버린 일들을 감쪽같이 모두 아물게 해줄 부적이 되었다. 경주는 더욱 더 열심히 팬던트에 치약을 묻혀 닦았다. 경주는 도저히 목걸이를 뺄 수가 없었고 지문 하나라도 묻는 게 참을 수 없어 매일 극성맞게 닦아댔다. 그랬다. 경주는 할 수만 있다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가고 싶었다. 사고였다고, 단순한 교통사고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하면 못할 일도 아니었다. 적어도 명수와 진이와 헤어지는 일보다는 훨씬 견디기 쉬운 일이었다.

“그래, 사고였어.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진이도 다부지게 부정했다.

“나를 용서할 수 없어.”

명수가 거부했지만 경주는 무시했다.

“이미 내가 용서했다잖아.”

경주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명수의 말이 궤변처럼 들렸다. 팬던트를 닦듯이 그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헌신만이 명수의 궤변을 되돌릴 수 있다고 믿었다. 경주는 진이를 다시 찾았고 아무 일 없었던 듯 그녀의 집을 드나들었다.

“너를 보는 게 힘들어.”

현관 키 번호를 바꿔버린 진이가 문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던 경주에게 하는 수 없이 현관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변한 건 없어.”

경주는 극구 부인하며 진이의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두 사람 다 잃을 수 없다는 생각만 흔들리는 파도 위에서 또렷하게 각인됐다. 명수와 진이, 그 두 사람을 제외한 삶을 경주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상처는 언젠가 낫게 돼 있다는 게 경주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어릴 적 헤아릴 수 없이 까졌던 무릎이 지금은 흉터도 못 알아 볼 정도로 말끔히 낫지 않았던가. 경주는 제발 혼자 있게 해 달라는 명수와 진이의 집을 번갈아 드나들며 상처 난 무릎에 부지런히 약을 발라댔다.

“넌 성녀라도 되려는 거니, 아니면 이런 식으로 나를 고문하면서 복수하는 거니?”

진이가 견디다 못해 쏘아붙였다. 복수라는 어감이 섬뜩했다. 경주는 세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도대체 뭘까. 경주는 그제야 자신을 돌아보았다. 상처를 감춘 발이 더 음험해 보였다.

“너한테는 내가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니었니?”

그제야 경주는 진이를 제대로 마주보았다. 두려워 차마 눈길을 피하던 얼굴이었다. 훼손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고집이 늘 시선을 비껴가게 만들었다.

“차라리 이게 나아.”

진이 역시 경주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잘난 척 그만해.”

경주의 눈에서 불꽃이 피어났다. 

“네 집착이 징그러웠어.”

진이가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중얼거렸다.


진이가 진저리를 치듯 떨더니 두 팔로 몸을 감쌌다. 마취가 깨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진이는 몸을 달팽이처럼 말아 옆으로 누웠다. 작아진 몸이 애벌레처럼 보였다. 마취가 깰 때 오던 한기를 진이도 똑같이 겪고 있었다. 홀로 다시 깨어난 세상에서 기다렸다는 듯 몰려오던 지독한 한기는 어떤 죄의식보다 더 가혹했다. 경주는 그런 진이를 무릎 꿇고 마주보았다. 진이가 한참 만에 가만히 눈을 떴다. 흰 얼굴이 더 창백해져 밀랍인형처럼 보였다.

두 사람을 떠날 수 있었다면 일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석 달 넘게 홀로 집에 틀어박혀 있던 경주가 다시 진이를 찾아가지 않았다면.

“너를 잃는 게 더 힘들어.”

석 달 만에 찾아간 경주는 스스로에게 백기를 들었다. 진이 역시 더 이상 경주를 거부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동안 휘청거리며 몇 번 찾아온 명수를 막아내기 위한 방패였는지도 몰랐다. 진이는 밤늦게 취해서 찾아온 명수를 끝내 돌려보내지 못했다.

경주는 진이를 마주보며 똑같은 자세로 나란히 누웠다. 두 개의 텅 빈 달팽이집이 마주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때 갑자기 진이가 링거가 꼽히지 않은 팔을 뻗어 경주의 손을 잡았다.

“미안해.”

마주보고 누운 경주를 향해 침전물 가득 낀 목소리로 진이가 말했다. 눈썹 끝에 주사액 같은 물기가 매달려 있었다.

“뭐든…… 전부 다…….”

진이는 속이 텅 비어버린 뱀껍질처럼 전혀 부피감이 없었다. 어디서도 존재감을 찾을 수 없는 텅 빈 몸이었다. 경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득 경주는 자기 몸속을 전부 갉아먹은 독충은 결국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진이 역시도.

“나도 내 욕심이 징그러워.”

경주는 더 가까이 다가가 진이의 몸을 이불로 덮듯 껴안았다. 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 주었다. 기름이라도 바른 듯 매끄러운 머릿결이 손가락 사이로 감겨왔다. 앞머리를 정리해 귀 뒤로 넘기고 나니 말간 진이의 얼굴이 남김없이 드러났다. 단정하고 단단하던 얼굴선이 드러나게 무너져 있었다. 지난 몇 달간 무수히 앓고 난 얼굴이었다. 아프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을 진이의 입술에 경주는 가만히 자신의 입술을 댔다. 마취기운이 다 풀리지 않은 진이의 입술이 둔중하게 와 닿았다. 까칠한 입술 거스러미가 바늘 끝처럼 경주의 혀를 찔러왔다. 경주는 고스란히 그것들을 받아들였다. 혀끝에 난 상처들이 쓰렸다. 마취가 깨고 진이의 몸에서 일기 시작한 통증이 경주는 비로소 자신의 몸으로 전해져오는 기분이었다. 미안해. 너를 너무 오랫동안 고문하고 있었어. 경주는 다시 한번 진이의 입술에 키스했다. 진이의 입술이 한결 부드러웠다. 진이가 링거 꼽힌 팔까지 뻗어 경주를 안았다. 주사기를 뽑아버리지 않는 진이가 고마웠다. 안심이었다. 경주는 이제 누구든 떠나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경주는 가만히 손을 돌려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풀어냈다. 목걸이가 없는 빈 목으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와 감겼다. 어디선가 능소화 꽃송이가 통째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문장 웹진/200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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