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캡슐 1994

 

타임캡슐 1994




윤고은




1994년, 사람들은 서울의 현재를 담아 남산골 뿌리 밑으로 내려 보냈다. 사백 년을 더 흘러가 서울 정도 천 년을 기념하는 날, 속을 내보일 증거물이었다. 그러나 캡슐은 예정을 다 채우지 못하고 다시 열렸다. 십사년만이다. 이제, 남산골 타임캡슐은 지상에서 가장 위험한 맨홀처럼 뚜껑이 열려 있다. 

 

 

 

크레인은 지하 십오 미터에 묻혀 있던 타임캡슐을 끌어올린다. 유통 기한이 지나기 전에 썩어 버린 타임캡슐이 들것에 실린 환자마냥 실려 나간다. 환자를 실은 트럭은 영구차처럼 움직이고, 몇 대의 카메라가 타임캡슐이 사라진 자리를 겨눈다. 나는 푸른 천으로 구덩이 위를 덮는다. 환부를 가리듯이. 타임캡슐이 실려나간 원형광장에는 이제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조문객으로 서 있을 뿐이다. 폭설은 암나무와 수나무 사이, 교분의 통로마저 차갑게 얼려 놓았다. 바람도 장송곡을 부르는 자리,  ‘서울 시민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기념사는 벽에 붙은 그대로 비문(碑文)이 된다. 


서울시는 부랴부랴 타임캡슐 담당자들을 불러 모았지만 십사 년 전의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은 1/3에 불과하다. 그새 은퇴를 한 사람도 있고, 멀리 이민을 간 사람도 있다. 아예 죽어 버린 사람도 있다. 내 전임자가 그런 경우로, 그는 타임캡슐의 때 이른 장례식을 보지 못했다. 너무 나이가 많아서 타임캡슐에 대한 기억이 흐릿한 사람부터, 너무 나니가 적어서 타임캡슐의 존재가 생소한 사람까지 십여 명의 사람들이 ‘타임캡슐 담당자’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녹슨 타임캡슐은 응급실이 아니라 영안실로 간다. 아니, 도축장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흰 가운을 입고, 얇은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쓴다. 폭설이 휩쓸고 간 자리에, 사소한 지문과 입김을 남기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최대한 말을 아끼고 숨을 고른다.

타임캡슐은 보신각을 닮은 형태로, 그 안에 네 개의 수장 용기가 서랍처럼 들어가 있다. 기계가 잠금 장치를 절단하자 캡슐은 완두콩이 벌어지듯이 내부를 드러낸다. 네 개의 수장 용기 위에도 녹물이 가득하다. 타임캡슐은 능숙하게 분해되었지만, 어디 하나 멀쩡한 부위는 없다. 수장 용기 네 개를 빼낸 타임캡슐은 산달이 되기 전에 아이를 잃은 자궁처럼 쓸쓸하다.

계장이 사인(死因)을 발표한다. 습기에 의한 부식이었다. 폭설이 타임캡슐의 판석을 뒤덮고, 지하 십오 미터로 스며들었다. 습기나 이물질을 차단하기 위해 본체 외부에 코팅했던 실록시레인이 오히려 독이었다. 대량의 산성 물질 앞에서 코팅재는 오히려 부식을 촉진시키는 요소로 변해 있었다. 타임캡슐 본체로 스며든 습기는 곧 첫 번째 수장 용기의 노즐 부분을 파고들었다. 몇 겹의 보호막도 거대한 폭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여기 이 고드름처럼 생긴 거 보이시죠? 이게 석회석이 굳어진 종유관의 한 종류입니다. 회색빛이고, 딱딱하죠. 콘크리트는 보통 강알칼리성이지만, 산성비 때문에 산성화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용접한 노즐 사이로 새 들어갈 정도로, 이번 폭설이 아주 강한 산성을 띠고 있었던 겁니다.”

계장은 보고문을 읽으면서 ‘산성’에 강세를 둔다. 누군가가 묻는다. 고강도 특수강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래도 부식이 되는 겁니까? 또 다른 누군가가 묻는다. 극한 실험을 하지 않았습니까? 두 달 동안 환경가속화 실험을 한 걸로 아는 데요, 극한을 실험했는데도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겁니까?

“지금이 극한이야. 우리가 상상한 범위 이상, 그게 극한 아니겠어.”

추위 속에서도 땀을 흘리는 계장 대신, 누군가가 대답을 한다. 그는 십사 년 전에도 이 자리에 있었던 용접의 명장이다.

“자연을 이기는 건 없어. 우리가 하는 건 모두 방부제일 뿐이야. 방부제를 넣었다고 안 썩나? 부식을 미룰 뿐이지.”

그는 1994년 남산골 타임캡슐을 용접한 뒤에도 수많은 타임캡슐을 봉인했다. 밀레니엄을 전후로 타임캡슐을 땅에 묻는 것이 유행처럼 퍼져 나갔다. 조그만 땅 곳곳에 크고 작은 타임캡슐이 묻혀 있다. 그들만의 약속을 피해 가느라 포클레인이 몸을 사릴 지경이다. 지뢰처럼 타임캡슐이 심어진 도시에서 가장 웅대한 타임캡슐 하나가 부식되었다. 이제 곧 나머지 타임캡슐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질지도 모른다.

시간의 흐름에 맞서 무언가를 박제하는 일은 어쩌면 쓸모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타임캡슐을 묻고, 시간을 저장한다. 그러나 완벽한 밀봉은 어디에도 없다.

  

타임캡슐이 사라진 원형 광장 앞에는 출입 금지 푯말이 붙었다. 그러나 매일, 사람들이 찾아왔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안전선 밖에 서서 흰 국화를 던진다. 광장 앞에는 꽃을 파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 송이 이천 원이면, 타임캡슐의 부식을 위로할 수 있다. 혹은, 흉조로부터 액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때 원형 광장에서 침샘이 고갈될 정도로 입을 맞추던 연인들이 함께 국화를 던진다. 판석 표면이 철렁 내려앉도록 쿵쿵 뛰었던 아이들도 국화를 던진다.

부식된 타임캡슐을 들어 올리던 날, 나는 한 사람의 조문객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타임캡슐이 묻혀 있던 구덩이에는 물이 차 있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땅이 운다고 말했다. 그 순간 장례식을 떠올렸던 사람은 나뿐이었을까. 원형 광장은 남편의 장례식을 하던 그때 그 순간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한 사람이 죽은 자리와, 중도에 개봉된 타임캡슐의 자리는 비슷했다.

남편과 다녔던 거리들은 이미 대부분 멸종하고 없다. 도시는 많이 변했다. 우리가 결혼을 말했던 장소는 남산 식물원이었는데, 지금은 건물의 주춧돌 하나 남아 있지 않다. 우리의 단골 극장은 세 번의 개명 끝에 결국 횟집이 되어 버렸다. 우리를 기억해 주던 카페의 주인은 은퇴했다. 도시는 재개발과 복원으로 늘 시끄러웠지만, 남편과 내가 있었던 자리는 그 어느 축에도 들지 못했다. 우리가 만났던 시기는 어중간했고, 함께 걸었던 거리는 흔했다. 우리가 멸종 직전의 건물들만 찾아 들어갔던 것은 단지 우연이 아니었다. 남편도 나도, 무언가가 철거된다는 소식이 들리면 갑자기 없던 추억도 생겨난 것처럼 그곳을 그리워했다. 추억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만들기 위해 시한부 선고를 받은 장소들을 찾아갔다. 우리의 지도 위에는 늘 멸종 직전의 공간들이 묘비처럼 빛나고 있었다. 곧 문을 닫게 될 극장과 점포 정리를 앞둔 가게, 공원으로 바뀌게 될 체육관, 철거 직전의 아파트를 헤매는 동안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 둘 중 누군가가 곧 멸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와 나는 사 년을 살았다. 사 년은 너무 억울할 만큼 짧은 결혼 생활이었다. 남편은 나보다 열두 살이 많았고, 확률적으로 보자면 나보다 남편이 먼저 죽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그 유예 기간이 겨우 사 년일 줄은 몰랐다. 사라지기 직전의 것들을 찾아다녔기에, 내게는 그와의 삶을 증거할 만한 것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단 하나, 아이만 빼고.


남편과 결혼했을 때, 그가 살던 집의 모든 문턱은 사라져 있었다. 그렇게 문턱을 터놓은 것이 전처의 취향이었는지는 몰라도, 사적인 공간들이 줄어든 것은 불편했다. 방문과 바닥 사이에 1~2cm 정도의 틈이 있었다. 그 틈으로 밤마다 빛과 소리가 새어나가고, 거실을 통해 모든 방이 공유되었다. 내 짐을 그의 집에 풀기 전에 먼저 문틈부터 메웠다. 재료를 사다가 문턱을 높이고, 네 귀가 잘 맞도록 문을 닫았다. 아마추어가 급히 완공한 티는 숨길 수 없었다. 방문은 부드럽게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를 틀어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뻑뻑하게 열리고, 방과 거실을 답답할 만큼 완벽하게 막아 냈다. 방문을 열려면 힘을 주고 세게 문고리를 비틀어야 했는데, 요령대로 하지 않으면 벽 전체가 문짝을 따라 뜯겨 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분명 부실 공사였지만, 내가 방 안을 심하게 밀폐시키는 문턱을 좋아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남편의 딸아이 때문이었다.

남편의 아이는 여덟 살부터 열두 살까지를 나와 함께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남편의 집안 어른들은 아이를 앞에 두고 ‘엄마’ 라는 말을 가르쳤다. 여덟 살짜리 아이는 엄마가 있는 채로 사 년을 살았고, 또 엄마가 없는 채로 사 년을 살았다. 이제 또 다시 엄마라는 존재가 생기니 혼란스러울 법도 했다. 엄마라고 부르기 어려우면 연습하지 않아도 돼, 네가 부르고 싶을 때 그렇게 부르렴.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말에 감동한 것은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나는 강요하지 않는 내 모습에 만족했다.

그러나 한 달이 채 지나기 전에, 나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게 되었다. 내가 길들이고자 했던 것은 ‘노크’였고, 그것은 내게 있어서 ‘엄마’보다 더 중요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엄마’란 말을 강요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보류하고 싶었던 것이다. ‘노크’는 모녀지간을 보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아이는 밤의 불청객이었다. 아이는 형광등을 켜 둔 채 잠이 들었다. 음악을 틀어 놓은 채로 잠이 들기도 했다. 어둡고 조용한 밤을 견딜 수 없는 아이는 새벽녘에 ‘엄마’를 부르며 방에서 뛰쳐나오곤 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아이의 걸음이 이미 안방 문 앞에 당도해 안간힘을 쓰며 문고리를 비틀고 있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매일 일어났던 것은 아니고, 번갈아 일어나거나 어느 날은 아예 일어나지 않기도 했다. 즉, 아이의 밤은 예측하기가 힘든 것이었다.

아이에게는 이미 오래된 습관이었다. 우리가 함께 보낸 사 년 동안 밤이 오는 것을 두려워한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오히려 나였다. 아이의 그 갑작스러운 침입은 나를 당혹케 했다. 나는 아이에게 자다가 안방 문을 열 때는 꼭 노크를 해야 한다고 일렀다. 아이가 천진한 얼굴로 ‘왜요’라고 물을 때는 그게 매너라는, 아무래도 여덟 살 아이에게는 조금 어려운 답을 해야 했다.

아이는 노크하지 않았다. 매너는 분명 의식의 영역이었고, 밤마다 아이를 내 방 앞까지 달음질치게 하는 것은 무의식의 영역에 있었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허무는 것은 반복 습관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나는 사 년간 같은 말을 반복했다. 밤에 다른 방문 앞에 갈 때는 노크를 해야 해. 벌컥 문을 열면 매너가 아닌 거야, 알았지? 네가 부르면 엄마가 대답할 시간을 줘야지.

일주일에 며칠 쯤, 나는 미리 잠금 장치를 눌러 두게 되었다. 내가 걸어 놓은 빗장은 우리의 가쁜 숨소리가 고르게 돌아온 후 남편이 풀었다. 방문의 잠금 장치가 톡, 하고 풀어지는 소리는 여자의 브래지어 호크가 풀어지는 소리보다도 더 자극적으로 들렸다. 우리 방문이 허술해지는 순간, 아이에게 노출될 위험이 커지는 순간이 내게는 가장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한 번도 그 흥분을 밖으로 표출할 수는 없었다. 침대 위의 텁텁한 공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아이가 베개를 들고 찾아와 제 아빠 옆에 누웠다.

남편과 내가 빗장을 걸어 놓는 시간은 해가 바뀌면서 조금씩 짧아졌다. 우리의 침대는 둘이 누웠다가, 어느새 셋이 되었다가, 그 셋 중에 하나가 일어나 다시 둘이 되는 형태를 반복했다. 내 동침자는 어둠이 가시기 전에 좀 더 젊고 여리고, 더 하얗게 바뀌곤 했다. 나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는 이 가냘픈 동침자를 보며 불편함을 느꼈다. 아침, 한 침대에 누워서 눈을 뜨는 아이와 나의 모습은 모녀지간이라기보다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자매에 가까웠다. 

  

계장은 열두 개의 파일을 내 몫으로 넘겼다. 영상물을 복원하고, 관리하는 것이 내가 맡은 임무다. 가장 많은 문제가 생긴 부분은 첫 번째 용기다. 시디나 마이크로필름 등의 영상물이 담겨 있던 곳이다. 시디롬을 작동시키고, 재생 버튼을 누른다. 오렌지족, 10대 미혼모, 대학로의 거리 풍경, 광화문의 교통 상황, 유행하던 가수의 앨범, 그렇게 엄선된 시간들이 유기물과 기포로 얼룩져 있다. 화면이 군데군데 끊어진다. 어떤 화면은 반으로 분할되기도 한다. 목표 지점까지 가지 못하고 멈춰 버린 타임캡슐은 고장 난 라디오처럼 구식 전파를 내보내고 있다.

첫 번째 용기에서 자료의 20% 정도가 손상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모두 새로운 수장품으로 교체해야 한다. 만약에 타임캡슐이 손상될 경우를 대비해 십사 년 전에 준비했던 복본이 있다. 그 ‘만약’이 현실이 된 것뿐인데, 담당자라고 모인 사람조차 그 사실에 완벽하게 적응하지는 못했다. 타임캡슐이 멈춰 있던 십사년을 다시 진단하는 일은 더디고 어려웠다. 누구도 1994년을 다시 진단하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이미 인터넷에는 총 600점의 수장품 목록이 떠올라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었다. 그 목록이 하나하나 다시 회자되면서, 대중의 재판정이 이루어졌다. 타임캡슐이 봉인된 후에 거짓으로 밝혀진 업적들, 그리고 몇 년 후에 표절로 밝혀진 노래들이 거론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600점의 타임캡슐  수장품을 새로 정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1994년에 우리가 믿었던 진실이 진실이 아니었다면 그것을 빼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또 다른 사람들은 말했다. 2008년에 밝혀진 진실이 거짓이어서 다시 1994년에 알았던 진실이 진실이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고. 십사 년 후에 회상하는 1994년과, 그 당시 사람들이 말했던 1994년은 조금 달랐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산산조각이 난 타임캡슐은 말이 없다.

사백 년까지 가지 못하고 미리 개봉된 미라의 무덤 속에서 사람들은 무언가 거창한 것이 발견되기를 기대한다. 시험관 아기의 영상이 지하 십오 미터의 기운을 받아 심장 뛰는 기운으로 살아난다든지, 정체불명의 머리카락이 라푼젤의 것처럼 길게 자라나 지하로 가는 동아줄이 된다든지, 아니면 미리 도굴되어 먼지만 가득하다든지. 그러나 십사 년은 전설을 만들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아기의 울음소리도, 라푼젤의 머리카락도 아니지만 예기치 않은 일은 전혀 엉뚱한 경로로 다가왔다. 십팔 분의 재생 시간이 다 돌아가도록 고요한 화면을 내뿜는 CD 한 장. 이 무명의 기록은 수장품 목록에 없는 것이다. 복본도 있을 리 없다. 애초에 무엇을 담았던 것인지 기억하는 사람도 없으며, 어떻게 목록에 없는 것이 캡슐에 담겼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원래 없어야 정상인 물품이 분명 타임캡슐 안에서 나왔다. 텅 빈 CD를 다시 작동시킨다. 화면은 열심히 무언가를 읽어 내려고 하지만, 우리가 읽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둠뿐인 화면을 한참 틀어 놓고 있으니, 막연한 어둠 속에도 명암이 있고 무늬가 있는 것이 보인다. 무언가가 나타날 것만 같아 화면을 틀어 놓고 있지만, 재생되는 것은 영상물이 아니라 내 기억 저편의 것들이다.

뭐가 나온다고 그러니?

잠들기 전, 내가 아이 방의 불을 끄면, 아이는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나타날 것만 같다고 말했다. 무섭다고. 그런 아이에게 나는 몇 번이나 ‘너는 이 방의 주인이야. 무서울 거 하나도 없어’라고 말했다. 그 말을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네 방은 여기니까, 여기를 벗어나지 마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아이는 방문을 닫고 내가 돌아서면, 불이라도 켜 달라고, 무섭다고 말했고, 결국 나는 십오 분 후에 자동으로 꺼지는 스탠드를 켜 두고, 방문을 닫았다. 아이는 필사적으로, 빛이 사라지기 전에 잠들었다. 그러나 불안했는지 새벽에 자주 깨어났고, 비명을 지르거나 방에서 뛰쳐나왔다. 아이를 붙들고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아이의 대답은 늘 같았다. 무언가 나올 것만 같아서.

아직 무언가가 나타난 것도 아닌데, 혹시 그럴지 모른다는 상상만으로 아이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신경정신과에 가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묻자, 남편은 펄쩍 뛰었다. 혼자 잠 못 드는 것만 빼면 모든 게 다 멀쩡한 아이인데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느냐고. 우리의 대화를 들었던 것인지 아이는 그 후 며칠간 새벽에 깨어나지 않았다. 아침까지 형광등을 환히 밝혀 둔 채였다. 아이는 그 밑에서 충혈된 눈동자를 숨기고 잠들어 있었다.


텅 빈 CD는 어느새 멈춰 있다. 1994년의 수장품 목록에는 없고, 2008년의 수장용기 안에는 있는 수장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러니까 이름은 없고 실체는 있는 수장품인 셈이다. 읽히지 않는 영상물이 있다고 말하자 계장은 이렇게 묻는다. 몇 번인데?

일련번호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서류에 수장품 목록 있잖아. 거기 없어? 계장은 목록에도 없고, 담아낸 내용도 없는 빈 내용물을 한참 들여다본다. 복본도 없는 거네, 그럼?

네. 그런데 현장에서 나온 건 맞아요.

들어가지 말았어야 할 물품, 필요하지 않았던 물품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그러나 계장의 목덜미를 따라 흐르는 것은 서늘함이 아니라 땀이다. 계장은 추위 속에서도 연신 땀을 흘리고 있다. 목록대로 해. 목록을 기준으로 해서, 거기 없는 건 빼고, 있는 것만 넣고. 부식이 보도된 후, 타임캡슐에 대한 인터뷰만도 수십 번을 한 계장이다. 언론에 시달린 만큼 그는 노련해졌다. 그거 공CD 말이야, 다른 것들하고 따로 버려. 혹시 또 누가 수장품 쓰레기들 뒤지면 골치 아프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는데, 계장이 다시 한 번 당부한다. 우리한테는 이 서류가 정답이다. 여기 있는 건 넣고, 없는 건 빼고. 알겠지?

1994년을 의심하게 만들던 것들에 대한 해답은 이 서류 안에 담겨 있다. 서류야말로 1994년을 현재와 연결 짓는 타임캡슐이다. 기록에 없으니 공CD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공CD는 내 서랍 안으로 들어간다. 십사 년 중의 십팔 분, 서류에 없는 십팔 분이 블랙홀 같은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계장의 지시에 따라 손상된 영상물들을 붉은색 천 위에 올린다. 카메라로 몇 장을 찍는다. 원본이었던 것이 쓰레기가 되고, 복본이었던 것이 이제 원본이 된다. 꼭 범죄 도구 사진 찍는 것 같네, 계장이 말한다.

범죄 도구들은 사진 몇 장으로 최후를 기념한 후, 일곱 가지 절차에 따라 폐기되었다. 몇몇 사람들이 타임캡슐 속에 들어가 있던 물품들에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곧 시들해졌다. 십사 년은 희귀품이 되기에는 너무 가까운 시간이다. 


케이스에서 꺼낸 공CD는 번쩍이는 표면으로 내 얼굴을 비춘다. 표정이 각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린다. 어쩌면 이 수많은 공CD 안에도 무언가 이야기가 실려 있지 않을까. 다만 우리가 읽을 수 없을 뿐.

남편과 내가 보낸 마지막 주말은 지금도 종종 나를 찾아온다. 아이가 문고리를 돌리는 기척이 들린다. 날카로운 금속을 쥐가 갉는 것처럼. 아이는 조금씩 문고리를 잡고 돌린다. 잠금 장치가 된 문고리가 삐걱대는 소음을 만든다. 왜 이 소리는 늘 내게만 들리는 것일까. 나는 두 팔로 남편의 목을 끌어안는다. 남편의 귀를 내 체온으로 틀어막는다. 아이가 실낱같은 목소리로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남편을 내 자궁 안으로 끌어당긴다. 아이는 방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아이가 노크할 수 없는 곳으로 남편을 숨겨야 한다. 아이의 노크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내가 그곳으로 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을 때 문이 열렸다. 진공 상태가 갑자기 풀어지듯이, 엄청난 노크 소리와 함께 방 안의 진공 상태는 깨져 버렸다. 이 방의 모든 것이 저 문을 따라 거실 밖으로 빨려 나갔다.

다음날 아침, 여자 둘만 남은 우리의 침대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내 것이 아니었다. 아이가 깨자마자 나는 아이를 두고 ‘여기다가 이러면 어떡하니’라고 말해 버렸다. 물론 아이는 몰랐을 것이다. 아이가 여덟 살일 때 우리는 처음 만났고, 엄마 역할은 내가 해야 했고, 내가 그것을 잊고 지나갔으니 아이는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나는 다른 엄마들이 그러한 것처럼 ‘이러이러한 일이 생기면 당황하지 말고 말해라,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라고 미리 말해 두지 못했다. 그리고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어 버린 어느 아침, 급습한 초경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은 아이가 아니라 오히려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의 표정을 살필 수 없었던 것은 내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나는 당황한 낯빛을 그대로 들켜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명절 준비를 하는 것처럼 오래 장을 보았다. 뒤늦은 사후 수습이었는지도 모른다. 생리 전용 팬티부터 시작해서 용도별로 다양한 생리대, 그리고 생리 증후군을 풀어 줄 아로마 오일과 배에 붙이는 쑥 패치까지. 나는 한 번도 써 보지 않은 그 물건들을 사면서 또 깨달았다. 이런 행동이 어쩌면 또 다른 영역 표시일 수도 있겠다는. 나는 아이에게 ‘이 집에서 너의 생리 냄새를 풍기지 말라, 너의 생리 혈을 흘리지 말라’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박스 가득 채워진 물건을 받으며 마치 학습지를 받아드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달마다, 조금씩 그것들을 소비했고, 고양이처럼 흔적 없이 치웠다.   

같은 집에 사는 여자들은 호르몬이 닮아 간다. 생리 주기는 전염성이 강하다. 아마 남편이 죽지 않았다면, 나와 아이는 같은 몸의 규칙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두 여자의 호르몬보다 남편의 암세포가 훨씬 움직임이 빨랐다. 췌장암은 진단에서 결말까지가 가장 빠른 암이라고 했다.

남편은 아이와 나 사이의 유일한 교집합이었다. 남편이 죽고 나자 나와 아이는 참으로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지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아이 고모는 아이를 데려갔다. 시댁에서 내게 적의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수많은 친척들은 나를 동정하고 염려했다.

장례식을 마친 후 나는 며칠을 내리 잤다. 장례라는 것은 죽은 자보다는 산 자를 위한 행위였다.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어떤 관문이 필요한 법이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또 한 세상을 혼자 건너가야 할 관문이.

사흘 후, 나는 2인용 때로는 3인용까지 되던 침대에서 혼자 깨어났다. 몸을 일으키지 않고 그대로 돌려 남편의 베개를 코에 가까이 댔다. 분명히 아이의 냄새가 났다. 이불을 젖혀 보니 아이의 머리카락 몇 올이 흩어져 있다.

사흘의 시간은 분명 부활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많지 않았다. 침대에서 빠져나와 방문을 넘는 순간, 나는 한 번 휘청거렸다. 아무도 나를 방해한 것은 없었다. 내 걸음이 휘청거린 그 바닥에는 서투르게 세워진 문턱이 무표정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본 적은 없지만 나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첫 생리를 한 아이가 생리 흔적을 말끔하게 버리기 위해 까만 봉지에 담고, 또 한 번 더 비닐에 담고, 그러고도 내 시선이 닿지 않는 휴지통을 찾지 못해 집 밖에 나가서 버렸을 풍경들을. 내가 공CD를 버릴 곳을 찾지 못해 계속 가방에 품고 다녔던 것처럼 말이다. 아이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한 달에 한 번, 증거를 인멸하는 범인이 되라는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초경은 그 신호탄이었고, 그런 죄책감을 가르친 사람은 나였다.

집 안에서 버리는 법을 몰라 집 밖으로 쓰레기를 갖고 나간 아이처럼, 나도 땅 위에서 버리는 법을 몰라 땅속에 버리기로 한다. 네 개의 수장 용기는 완성되기 전, 며칠 동안을 귀가 찢어져라 울어댔다. 용접할 때 튀는 불꽃, 무언가 타는 냄새, 귀를 마비시킬 듯한 소음은 강할수록 타임캡슐에 대한 믿음을 갖게 했다. 거창하게 봉해지는 느낌, 그것이 많은 이들을 안심시킨다. 믿음은 굉음에 비례한다.

첫 번째 수장 용기를 작업대 위에 올리고, 그 안에 복본으로 교체된 수장품들을 집어넣는다. 나 외에 또 한 사람이 첫 번째 수장 용기를 점검한다. 그가 읽어 낼 수 있는 것은 영상물 표면에 붙어 있는 라벨과 목록의 일련번호뿐이다. 라벨과 일련번호를 대조하던 사람이 수장 용기 건너편에서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이어 붙인다. 첫 번째 수장 용기가 가득 찼다. 그것을 멸균기 안에 넣고 온도를 높인다. 오십도 씨의 열이 미생물과 곰팡이를 처리한다. 그 안에는 복원된 1994년이 있다. 그리고 그 틈에는 버려진 공CD도 있다. 멸균을 거쳐도 내용 복구가 되지 않아―사실 무엇이 훼손되었는지도 모르니 복구라는 말도 어색하다― 버려진 CD. 그것은 땅 위에서 폐기 처분할 방법을 몰라 며칠 동안이나 내 가방을 맴돌다가 결국 지하 십오 미터로 들어간다.

몰래 추가된 공CD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영상물 안이 텅 비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계장의 말대로, 우리에게 기준이란 목록에 있는지, 없는지, 하는 것이다. 목록 속에는 내가 새롭게 추가한 수장품이 버젓이 일련번호를 달고 있다. 끝까지 복원되지 못한 정체불명의 CD, 이름은 ‘복원’이다.

타임캡슐이 네 개의 수장 용기를 모두 품는다. 노즐을 잠근다. 수십 차례, 엑스레이 검사를 받는 동안 빛이 타임캡슐을 보이지 않게 할퀸다. 그렇게 타임캡슐은 복원되었다.


열두 살에 아버지를 잃은 아이는 제 고모 집에서 이 년을 더 살았다. 이 년 동안, 아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 집에 있던 가구처럼 잘 어울렸다. 어쩌면, 고모 집뿐 아니라 어느 집에나 잘 어울릴 만한 가구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년 후, 아이는 교복을 입은 채로 집을 나갔다.

아이의 목적지가 ‘엄마’였기 때문에 아이 고모는 내게 연락을 했다. 애가 집을 나갔어, 엄마 보고 싶다고. 그렇게 말하는 아이 고모도, 그리고 나도 그 엄마가 대체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게 육 개월 전의 일이다. 지금까지, 아이는 엄마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는 친엄마의 전화번호도, 바뀐 내 전화번호도,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고모의 말에 의하면, 아이는 새로운 집에서 아무 문제없이 잠을 잘 잤다고 한다. 불을 켜 둔 채 잠이 드는 일도 없었고, 밤에 소리를 지르는 일도 없었다. 베개를 들고 안방으로 침입하는 일도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지냈다고 한다. 아이는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잤고, 고모가 깨우기 전에 일어났다.

정작 편히 잠들 수 없는 것은 나였다. 아이의 가출 소식을 들은 날부터 잠을 설쳤다. 아이는 노크하고 있었다. 내 잠의 틈새에 대고 노크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꿈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킹사이즈 침대 한 귀퉁이를 차지하기도 했다. 마치 강아지가 주인 발밑에 웅크리고 자듯이 그렇게 몸을 쪼그리고 누웠다. 그리고 아침이 오기 전에 느슨해진 잠의 틈새를 비집고 다시 빠져나갔다.

어쩌면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집을 벗어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세 사람이 같이 살던 집에서 매일 혼자 잠들고 일어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은 예전 그대로였다. 집 구조도 가구도 모두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 집 명의가 내 앞으로 바뀌었다는 것뿐인데, 여전히 나는 이 집 어딘가에 얹혀사는 느낌을 받았다. 가구 중 일부가 남편의 전처에 의해 골라졌다는 것이 새삼 마음에 걸렸다. 벽지가 눅눅하게 느껴졌고, 바닥의 사소한 얼룩이 거슬렸다. 사 년 동안 늘 만지던 수도꼭지와 가스밸브에 다른 사람의 지문이 묻어 있는 것 같아 불편해지기도 했다. 불편함은 사스처럼, 단지 접촉했다는 것만으로도 퍼져 나갔다. 문고리를 돌리다가 낯선 체온을 느끼게 되던 날, 결국 나는 수도꼭지부터 좌변기, 전기 스위치까지 모두 바꾸게 되었다.

살림을 하나 둘 버리고 마지막으로 킹사이즈의 침대를 버리던 날, 거대한 스프링 한 구석이 푹 꺼져 있는 것을 보았다. 아파트 공터, 한물 간 살림들의 틈에 껴 있는 침대는 초라했다. 구불구불한 스프링 사이로 낯선 바람이 불었다.

며칠이 지난 후, 다시 공터로 내려갔을 때 이미 내 살림들은 다른 누군가의 집이 되어 있었다. 밤이 오면 고양이 몇 마리가 낡은 장롱의 문짝 속으로 귀가했다. 버려진 소파 쿠션은 거리의 냄새를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틀과 매트리스가 분리된 침대들은 만인을 위한 벽처럼 구부정하게 바람을 맞고 서 있었다. 그중 어떤 것이 내 것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집 안에는 내 것이 분명한 침대가 있다. 나 외에 누구도 올라와 본 적이 없는 나만의 침대다. 아직까지 새 냄새가 나는 싱글 침대는 폭이 좁아서 누우면 마치 관처럼 여겨진다. 도톰한 매트리스는 밤이 깊어질수록 신문지처럼 얇아졌다가, 해가 뜨고 나서야 다시 부풀어 오른다. 시간은 악보와 같이 흘러간다. 밤사이에도 수많은 마디가 있어서, 몇 마디를 흘러가는 동안 때로는 숨이 차오른다. 어쩌면 아이는 밤마다 이 길을 혼자 걸었는지도 모른다. 걷고 걷다가 어느 순간 격정적인 박자와 화음에 휩싸이면 그 마디를 헤어나기 위해 노크도 없이 내 방문을 두드렸는지도 모른다. 이 길에는 브레이크도, 정거장도 없다.

아이는 수많은 곳에서 반짝, 하고 나타났다가 다시 반짝, 하는 순간에 사라졌다. 나는 아이의 교복 색깔도 무늬도 모르지만 지상의 모든 교복 입은 중학생만 보면 아이의 얼굴이 겹쳐졌다. 아이가 반짝, 하고 나타났다가 사라진 허공에는 그 교복 무늬 같은 구멍이 남았다. 어느새 사방은 모두 아이의 교복 자락으로 기워진 허공들이었다.

관처럼 좁은 침대에 누워 생각한다. 왜 나는 아직까지 이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을까. 왜 현관문의 비밀 번호조차도 바꾸지 않았을까. 이 비밀 번호를 아는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죽었고, 한 사람은 사라졌다. 나 혼자만 유일한 증인으로 이 집에 남았다. 지구상의 유일한 증인이 되는 것은 버거운 일이다. 그 짐을 벗어 버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숫자 몇 개만 바꾸면 되는데 나는 무엇 때문인지 계속 미루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아이가 집으로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원형 광장의 중앙이 다시 열리는 날, 도시 안의 몇몇 타임캡슐이 지뢰 터지듯 부식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몇 개의 새로운 타임캡슐이 땅속으로 묻혔다. 취악대의 공연도, 대통령의 축사도, 기념식수도, 떠들썩한 환호도 없이, 타임캡슐이 지하 십오 미터로 하강한다. 몇 명의 보도진이 카메라 셔터를 누를 뿐이다. 몇 사람이 돌아가며 한 삽 가득, 흙을 타임캡슐 위로 던져 넣는다. 무덤이 봉인되던 그 순간, 나는 누군가가 판석 주위를 맴도는 것을 본다. 나와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증인, 아이다. 아이는 점점 흐려지다가 마침내는 알아볼 수 없게 된다. 판석 위에 새겨진 수많은 암호들, 그 틈 어딘가에 반짝, 아이가 있다. 


원형 광장은 밖에서 보면 꼭 무덤처럼 생겼고,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달팽이의 관처럼 생겼다. 그 통로를 따라 움직이면 달의 분화구를 따라 만든 공간이 나타난다. 어떤 소리도, 어떤 바람도, 심지어 중력도 없다. 이곳에서는 시간도 느리게 간다. 운석이 떨어져 파인 구덩이가 수억 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것처럼.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로 등을 돌리고 있다. 아니다. 공기를 사이에 두고 서로 등을 맞대고 있다. 이곳에서는 곤두박질을 쳐도 먼 미래로 닿을 것 같고, 시체가 되어도 미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소심한 독백이나 확신 없는 명제들도 이 판석 위에서는 뿌리 깊은 활자로 새긴 서약이 될 것만 같다.

판석에 귀를 대면 아이가 내게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중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는 판석을 보며 읽어 낼 수 없는 글자들을 읽어 내려 한다. 아이가 내게 묻는다. 이건 암호인가요? 판석 위에 새겨진 깨알 같은 글씨들은 축전을 보낸 도시들의 이름이다. 그리고 우리의 박제를 기념하는 사람들의 서명. 그것이 동서남북 네 방위의 귀를 맞추고 있다. 아이가 묻는다. 얼마나 깊은 곳에 있어요, 타임캡슐은? 지하 십오 미터라는 말에 아이가 조그만 탄성을 지른다.

나요, 여기 들어올 때 노크했어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여기는 노크할 필요가 없어. 문이 없잖니.

아이가 말한다. 엄마가 있잖아요.

그 한마디에 내 모든 것이 무장 해제된다. 아이는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엄마가 있는 곳에는 노크를 해야 되잖아요, 대답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손목과 발목이 허전하다. 지나치게 짧아진 옷, 아이는 내 마음이 멈춘 동안에도 끊임없이 자랐다. 너 춥지 않니?

춥지는 않은데 졸려요. 자고 싶어요.

내가 먼저 판석 위로 올라가 눕는다. 원형 광장의 크기만큼 하늘이 동그랗게 보인다. 아이가 판석 위로 올라온다. 노크도 문턱도 잠금 장치도 필요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 꼭 그만큼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잠이 든다. 아이에게 달의 분화구를 닮은 이 판석은 그런대로 안락한 요람과 같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이곳에서 아이만은 쑥쑥 자라난다. 아이는 마치 조로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자라나 키가 판석의 지름을 넘어선다. 그래도 여전히 아이스크림 냄새가 난다. 우리는 사백 년 후까지도 깨어나지 않을 것처럼 잠을 잔다. 그리고 깨어난 시간, 아이의 자리는 축축한 어둠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가 누워 있던 자리는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다. 차가운 판석 위에 한쪽 귀를 기울인다. 심장이 펄떡펄떡, 뛴다. 이상한 오르가슴, 아마도 그것은 내 안에서 울리는 박동일 것이다.《문장 웹진/200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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