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도서관

 

너와 나의 도서관




표명희




내가 진짜 같아 보여?

반드르르한 이파리가 도발하듯 묻고 있다.

누구든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을 터였다. 진짤까, 아닐까? 호기심 어린 눈빛에 으레 손이 따랐을 것이다. 안스리움만 봐도 그렇다. 솟아오른 노란 꽃술과 그것을 접시처럼 받치고 있는 빨간 꽃과 초록 잎사귀 모두, 에나멜 칠이라도 한 듯 윤기 나고 매끈해 도무지 생화 같지가 않다. 이 실내 정원을 이루고 있는 관상용 식물 거의가 그렇다. 실물을 감쪽같이 본뜬 이미테이션, 시쳇말로 ‘짝퉁’처럼 보인다. 그래서일 테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잘한 손톱자국투성이다. 녹색 이파리나 붉은 꽃잎 가장자리가 살짝 찢겨 있고 그 부위에 어김없이 엷은 갈색 얼룩이 번져 있다. 완벽한 때깔과 모양을 갖춘 식물의 태생적 오만함이 자아낸 상처…….  

 

 

준서 자신도 처음에 그러지 않았던가. 가짜와 진짜를 도무지 분간하기 힘든, 신의 손에 가까운 기술 문명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 역시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손톱 끝으로 초록 이파리를 살짝 눌러 보았다. 연한 잎이 금세 찢어졌다. 상처 난 이파리의 눅진한 기운이 손가락 끝에 묻어났다. 코끝에 갖다 대니 풋비린내가 희미하게 풍겼다. 산 것이었구나! 하는 깨달음과 동시에 가슴 한 켠이 아릿했다. 의심의 대가였다.

희한하네. 사내 자슥이 우째 이런 풀이파리에 관심이 많노.

사강의 거칠고 구수한 사투리가 초록 풍경 위로 불쑥 날아들곤 했다. 휴게실 복도를 그득 메우며 충만함에 사로잡히게 하던 중저음의 목소리……. 이곳으로 발길이 자주 끌렸던 것도 그 영향이 컸다. 꿈같은 시간이었다. 이 실내 정원이 없었더라면, 지난 3개월은 지루하고 무미건조했을, 아니 애당초 있지도 않았을 시간이었다. 열망으로 가득 차게 해주었던, 동시에 한바탕 꿈이었음을 일깨워 주기도 했던 꿈의 화원…….

맨 처음 이곳에 실내 정원을 제안한 이는 U사서였다.


“우물이 어떨까요?”

그날 아침 회의 분위기를 뜨악하게 만든 한마디가 발단이 되었다. 정보화 시대에 그것도 하루 이용객이 수천 명에 달하는, 호텔로 치자면 오성 급에 해당하는 수도 서울의 대표적인 공공 도서관 마당 한복판에 뜬금없이 우물이라니.

“아무리 전복적 상상력이 대세라지만, ‘전설의 고향’도 아니고 ‘우리 것을 찾아서’를 실천하는 시범 관공서도 아니고…….”

사서 A의 뼈 있는 우스갯소리에 슬렁슬렁 웃음이 번져 가는가 싶더니 분위기는 이내 싸늘해졌다. 그는 U의 제안에 우회적으로 찬물을 끼얹으려다 자충수를 둔 셈이었다. 예술 관련 잡지에나 마르고 닳도록 쓰일 법한 ‘전복적 상상력’은 젊은 관장의 십팔번 멘트였고 더욱이 관장이 참석하는 월례회의 자리였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감돌더니, 기회는 다시 U에게로 돌아갔다. 그녀는 사적 제 몇 호로 지정된 도서관 건물의 역사적 의미에서 시작해 요즘 건축 경향과 정원 조경에 관한 미학적 문제까지 밀고 나간 다음, 다시 도서관 마당 한복판으로 돌아왔다.

“6,70년대 공원을 방불케 하는 분수대만 없어도 전체 조경의 도식적인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들지 않을까요.”

관장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도식’이나 ‘권위’ 또는 ‘구태’같은 말이었으므로 그는 U의 다음 말에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U는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녹슨 분수대 대신 왜 우물이 적격인지를, 우물의 상징과 풍수상의 의미, 정원 조경과의 미적 조화까지 곁들이며 조목조목 늘어놓았다. 직원회의인지 학술회의장인지 헛갈릴 정도로 심도 깊고 조리 있는 의견에 관장은 시종일관 눈을 빛냈으나 막상 그녀가 대안으로 내놓은 우물 앞에서는 별로 목말라 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 문제는 시간이 있으니 차차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그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관장이 다음으로 내놓은 안건은, 휴게실 조성에 관한 것이었다. 이용자 대상의 설문조사에서 가장 큰 불만으로 꼽힌 게 휴식 공간이었다. 두 번째 안건에서도 다수의 침묵으로 썰렁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U가 다시 구원 투수로 나섰다.

“정보 도서관 이미지에 걸맞게 우리 도서관의 허브라 할 만한 곳에다 친환경 개념의 휴게실을…….”

그녀가 제안한 골자는 실내 정원을 겸한 웰빙 휴게실을 디지털 열람실 앞 복도 공간을 활용해 만들자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우물만큼 황당해하지는 않았으나 선뜻 수긍하지도 않았다. 장서 규모 외에 그들 도서관의 자랑거리가 수목원을 연상시키는 넓은 정원이었다. 거대한 정원을 가진 도서관 건물 안에 굳이 애들 소꿉장난 같은 미니 실내 정원이 필요할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딴죽 거는 이도 없었다. 다수의 무관심과 게으름에 힘입어 U의 제안은 현실화할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렇게 되었다.

U가 일하는 디지털 정보 열람실 앞 넓은 복도에 작은 실내 정원을 가진 휴식 공간이 만들어졌다. 창가 벽을 따라 나직한 펜스가 둘러진 화단이 길게 이어졌고 가운데 넓은 공간에는 원형 화단이 조성되고 실내에서 잘 자라는 관엽 관상용 식물이 그득 심어졌다. 그 화단을 빨간 벨벳 패브릭 소파가 둥글게 에워싼 형상이, 언뜻 보면 화환 또는 하트 모양을 연상시키면서 ‘도서관의 허브’로 상징될 만했다.

U가든. 

누군가에 의해 실내 정원은 그렇게 명명되었다. 그 일을 떠맡고 싶지 않은 이의 속내가 담긴 아이디어라는 걸 알면서도 U는 만족스러워했다. 초록 식물의 생기가 그녀의 얼굴에 감돌았다. 그때부터 U 곁에는 식물도감과 원예 관련 잡지와 단행본 책들이 쌓이기 시작했고, 잉글리시 아이비, 안스리움, 협죽도, 포인세티아…… 주워섬기기도 어려운 이국 식물들 이름이 그녀의 입을 통해 주문(呪文)처럼 흘러나왔다. 실내 정원을 향한 U의 관심과 애정은 모성애에 가까웠다. 그녀의 피부는 풋풋하고 싱그러웠고 목소리에서는 상큼한 풀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친환경 개념으로 새로이 조성된 휴게실은 U에게는 물론, 미래를 담은 도서관의 새로운 상징과 자부심으로 떠올랐다. 그 일이 있기까지는…….

  

                                    *


오후 2시, 휴게실 창으로 흘러들어온 햇빛이 빨간 원형 소파에 닿기 시작하는 시간, 준서는 마지막 계단을 올라섰다. 벽의 원형 시계가 오늘도 정시 출근임을 알려 주었다. 영어 학원이 끝나면 그는 곧장 이 도서관으로 와서 밤 10시까지 사서 보조로 일했다. 제대 후 다음 학기까지 남은 시간을 활용해 신청한 공공근로였다. 창가 구석 쪽 소파에 앉아 잠든 한 사내가 준서의 눈길을 끌었다. 역 앞 비둘기처럼 지난겨울부터 도서관을 끈질기게 맴돈다는 홈리스 사내다. 그는 자신이 가진 전부로 보이는 검은 륙색을 안은 채 잠들어 있었다.

“혹시, 저 아저씨, 아닐까요?”

준서는 입구에서 마주친 U사서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그날도 탐정 놀이 같은 과제와 함께 일과가 시작된 것이다.

U는 유리문 너머로 흘끗 사내를 일별했다.

“추리극에서 저렇게 티 나는 범인 본 적 있어?”

U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기야, 범인이 뻔히 짐작되는 추리물이 어디 추리물인가. 준서는 자신의 넘겨짚기가 안이하고 어설펐다는 자책이 들었다.

“더군다나 그 범인이 홈리스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 삶에 대한 기대나 의욕이 별로 없는 사람이 무슨 분노가 있겠어.”

U의 지적에 준서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보통 사람 눈높이로는 이해하기 힘든, 속된 말로 극도의 ‘귀차니스트’ 경지에 올라 있는 이들이 그들 아닌가. 그들이 뭔가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 같았다.

잠든 사내가 지금 필요로 하는 건 엉덩이를 걸칠 수 있는 소파 한쪽 귀퉁이였다. 추운 날이면 열람실 안 따뜻한 구석자리에 앉아 뒤적이던 책 위에 그대로 엎드려 잘 수 있는, 꼭 그만큼의 자리가 그가 필요로 하는 공간이었다. 행동반경과 존재감을 최소화할 것. 그의 몸은 세상의 보이지 않는 요구에 적응해 있는 것 같았다. 지저분하고 남루한 행색이, 보는 이의 시선을 불편하게 하는 것 외에 사내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었다. 그런 치들은 도서관의 핵심 재산인 자료를 교묘한 수법으로 빼내 가는 일도, 빌려간 책을 반납하지 않아 직원들 골머리를 앓게 하는 일도 없었다. 뭇시선을 피해 공공 시설물에 감쪽같이 손상을 입혀 놓는 민첩한 손놀림 같은 건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저, 15분만 연장해 주시면 안 될까요?”

DVD 전용 좌석에 앉아 있던 이용자가 준서 앞에 다가섰다. 푸른 터키석 귀고리가 한쪽 귓불에 살짝 올라앉은, 볼 때마다 바뀌는 귀고리 덕에 쉽게 낯을 익힌 이십대 남자다. 그를 볼 때면 준서도 한쪽 귀에 귀고리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곤 했다.

“죄송합니다. 더 이상은 곤란한데요. 다른 이용자가 있어서…….”

준서가 예의바르게 거절했다. 최대 이용 시간 2시간이 지나면 컴퓨터는 자동 종료하도록 프로그램 돼 있었던 것이다.

“내 자리 다음 시간에는 아직 예약자가 없던데요.”

“실시간 이용자도 많거든요. 내일 와서 다시 보시죠.”

이렇게 말하면 대개는 선선히 물러간다. 하지만 푸른 귀고리의 눈빛은 완강했다.

“10분 남은 영화 보러 내일 또 여길 오란 말인가요?”

준서가 당혹해하는 사이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상황에 따라 담당자가 융통성 있게 조절해 줘야죠. 기계적으로 원칙만 내세우려면 로봇을 갖다 놓지 왜 사람이 앉아 있습니까.”

그때, U의 시선이 모니터 화면을 벗어났다.

“저희도 이런 경우는 정말 로봇이 앉아 있는 게 낫겠다 싶어요. 늘 예산 부족에 시달리는 공공시설만 아니라면 말이죠. 우리 인건비야 로봇에 비하면 거저나 다름없으니까요. 공공 도서관과 사설 비디오방 이용자의 자세가 달라야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 아니겠어요.”

차분한 목소리에 담긴 U의 일침에 상황은 간단히 해결되었다.

푸른 귀고리는 분노와 수치심에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 돌아섰다.

“난 사실, 저 남자, 좀 의심스러워.”

U가 멀어져가는 남자를 보면서 나직하게 말했다.

“매번 컬트영화만 골라 보는 것도 그렇고…….”

그녀는 남자가 반납한 DVD를 재킷에 집어넣으며 덧붙였다.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사소한 일에도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었다. 준서와 U사서는 물론, 다른 직원도 마찬가지였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였다.


“준서 학생, 들어오면서 휴게실 소파 봤어?”

그날 팀장의 첫마디는 자못 심각했다.

그의 한마디에 이끌려 간 휴게실에서 준서는 섬뜩한 광경과 맞닥뜨렸다. 새 벨벳 소파에 누군가 잔인하게 칼질을 해 놓았던 것이다. 빨간 벨벳 천 위에 그어진 예리한 칼자국 사이로 누런 스펀지가, 동물의 찢긴 가죽 사이로 비져나온 내장처럼 보였다. 칼날이 준서의 심장을 쓰윽 내리 긋듯 전율이 일었다. 피비린내 나는 살해 장면이라도 목격한 기분이었다.

평소 디지털 열람실을 마지막으로 나서는 이가 준서였다. 전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정직원 한 명과 열람실 문을 잠그고 복도 휴게실까지 둘러본 다음 퇴근했다. 그때까지 휴게실은 아무 이상 없었다.

일명 ‘소파 난자 사건’의 해결을 위해 몇 차례 임시 회의가 소집되었다. 도서관으로서도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실내 정원에 빨간 벨벳 소파, 롤 블라인드까지 관공서 냄새 전혀 안 나게 최신 인테리어 감각으로 심혈을 기울여 조성한 휴게실은, 나날이 변화 발전하는 도서관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 깊은 곳에서, 앉기도 조심스러운 새 소파에 흠집 낼 생각을 하다니. 그것도 흉기로 잔인하게……. 충격적 일인 만큼 평소 회의 때와는 달리 온갖 의견이 쏟아졌다. 사건을 널리 알려 이용자들의 공공질서 의식을 환기시키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자는 제안도 있었고,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범인을 색출하고 앞으로의 일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누구는 말썽의 소지가 있는 휴게실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7,80년대식 주장까지 했다. 제안은 풍성했으나 늘 그렇듯 예산과 인력 부족이라는 굳건한 벽에 가로막혀 어느 하나 실현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보다 현실적인 해결책이 U에게서 나왔다. 그녀의 손을 거친 뒤처리는 끔찍한 기억을 희석시켜줄 만큼 애교가 깃들어 있었다.

‘CC 카메라 작동 중’

굵직한 견고딕 글자가 A4 용지 한 장을 가득 메우며 프린트되어 나왔다.

“공갈이긴 해도 효과는 분명 있을 거야.”

휴게실 어디에도 CC 카메라로 볼 만한 것은 없었지만 U는 당당하게 가짜 문구가 담긴 용지를 벽면 여기저기 붙여 놓았다.

흉물스럽게 변해 버린 소파에 대한 직원들의 우려와 안타까움도 말끔히 해소되었다. 칼질 당한 소파가 감쪽같이 재탄생한 것이다. 바나나?딸기?고양이?돌고래 문양이 칼자국을 대신해 아플리케 처리되어 예쁘고 귀여운 소파로 태어나 있었던 것이다.

“역시 U다운 아이디어야.”

“아플리케 솜씨는 어떻고, 핸드 메이드 소파 같잖아.”

“웬만한 명품 저리 가라네.”

변신한 소파 앞은 칭찬의 임시 무대였다. 평소 U의 적극성에 ‘저렇게 살고 싶을까’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직원들도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다들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아쉬운 건 그들의 시선이 눈앞의 결과에만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었다. U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책과 잡지를 뒤적이며 고민했는지, 재료를 구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발품 팔고 다녔는지, 아플리케 작업하느라 휴일도 없이 보냈는지…… 이면의 진실을 아는 이는 준서뿐이었다. 그 일에 임했던 U의 자세가 준서에겐 변신한 소파 이상의 감동이었다.

“사서라는 직업도 괜찮을 것 같아요. 문헌정보학 같은 걸 전공해서…….”

자신의 진로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도 U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사내 자슥이 웬 사서는, 인생 갑갑하게스리.”

사강 선배의 반응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고시생의 눈에는 고시 패스 외의 어떤 성취나 직업도 매력적으로 비치지 않을 것 같았다. 도서 분류 번호를 매기고 책을 대출해 주거나 먼지 나는 서고에서 반납해 온 책을 꽂거나 하는 게 사서 일의 전부로 알고 있는 그에게는 더더욱……. 준서도 이곳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그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사서’라는 직업을 떠올리면 숫자와 글자가 두서없이 뒤섞인 복잡한 도서 분류 기호가 먼저 연상되었다. 책 표지의 등에 달라붙어 수십 수백만 책들 가운데 하나의 기호로 존재하는, 안정적이지만 지루하고 무미건조한 직업.

“그래, 앞으로 우얄찌 구체적으로 생각은 해봤나?”

기대치 않았던 한마디가 준서를 일깨웠다.

“편입도 있고 전과도 한 방법이에요.”

준서가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펼쳐 놓자 사강은 선배다운 여유와 관심으로 귀 기울여 들었다. 

사강은 준서와 대학 동아리 선후배 사이였다. 선우사강. 프랑수아 사강을 연상시킬 정도로 이국적인 이름에 어울리게 도회풍의 댄디하고 지적인 외모였으나 어투와 성격은 ‘월드컵 4강전’ 할 때의 ‘사강’에 가까웠다. ‘사내 자슥이’를 입에 달고 사는, 경상도 출신 특유의 보수성과 다소 거친 매력이 있는 다혈질의 남자로 학교 시절 동아리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준서와는 무려 다섯 학번이나 차이가 나는 바람에, 아쉽게도 학교에서 친할 기회는 없었다.

“제5열람실 장기수, 그게 요새 내 처지 아이가.”

공공근로 시작하던 날, 준서는 졸업한 그와 3년 만에 마주쳤다. 그는 세 번째 도전하는 행정 고시 준비생이었다. 서른을 코앞에 둔 고시생 선배는 캠퍼스에서의 풋풋했던 모습이 많이 바래 있었다. 탁해진 피부에, 웃으면 눈가의 주름이 잔물결을 이루었고 머리숱도 훌쩍 줄어 있었다. 준서는 그런 모습이 오히려 친근감 있어 좋았다.

“어린이 열람실 소파, 리폼할 거야.”

어느새 DVD 목록 정리 작업을 끝낸 U는 새 일거리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지난번처럼 아플리케 처리할 패브릭이었다. 소파 사건 때 U의 솜씨에 감탄한 어린이 열람실 사서가 부탁한 일이었다. 그걸 위해 U는 휴일도 시장을 헤집고 다녔을 터였다. 남들 같으면 외출의 좋은 명분이 될 일도 U는 퇴근 후나 쉬는 날, 자신의 개인 시간을 써 가면서 했다. 일하는 재미를 왜 포기하나,라는 식이었다. 전형적인 일 중독자인 U를 바라보는 다른 직원들의 냉소 어린 시선처럼, 준서도 한 번씩은 ‘저렇게 살고 싶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U는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았다. 그 외로움을 일로 달래는 것인지, 워낙 사교에 취미가 없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준서가 공공근로를 시작하고부터 U와 가장 절친한 관계는 준서였다.

“가위도 역시 일제야. 손의 느낌부터 다른걸.”

U가 천을 자르며 감탄했다. 준서의 일제 커터 칼을 빌려 써 본 다음부터 U는 ‘메이드 인 저팬’ 제품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바느질 도구 일체를 일본 제품으로 장만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 자랑의 핵심은, 재래시장에서 중국산을 피해 모든 도구를 일본 제품으로 장만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에 관한 것이었다.

소파 사건 이전까지 U는 실내 정원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녀 곁에 있던 준서도 그 정보의 수혜자였다. U는 정원 디자이너로 변신해 요즘 유행하는 정원 스타일과 전 세계 유명 모델 정원 현장을 두루두루 보여 주었다. 그때마다 도서관의 위력은 십분 발휘되어, 잡지와 대형 컬러 화보, DVD까지 동원되었다. 준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첼시의 플라워 쇼를 영국 왕실 초청으로 가서 직접 보고 온 느낌이었다.

그녀의 관심사는 끝이 없었고 그와 관련한 정보는 무궁무진했다. 준서에겐 그녀가 ‘걸어 다니는 네이버’로 보일 정도였다. 수십, 수백만 권의 장서 곁에서 십 년 일해 온 내공 같아 보이기도 했다.

사서 경력 십 년쯤 되면, 책 꺼풀만 봐도 무슨 내용인지 대충 알 수 있어. 사실 책이란 게 끊임없는 다른 책의 반복이거든.

그녀는 준서의 찬사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사진, 요리, 악기 연주, 공예, 바느질……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U는 관심뿐 아니라 재능까지 보였다. 눈썰미와 손재주가 빼어나 남들 수준을 따라잡았나 싶으면 어느새 훌쩍 한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런 재능과 열정을 펼쳐 놓을 장이 있으면 금상첨화일 테지만, 하느님도 분배의 문제에 까다로운지라 누구에게든 결코 다 주는 법이 없었다. U는 그때까지 연애 한 번 못해 본 서른 중반의 싱글이었다.


“내사 마, 연애 해본 지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사강은 고시생의 비애가 묻어나는 듯한 푸념을 한 번씩 늘어놓았다.

그는 준서의 일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휴게실을 곧잘 찾았다. 그 시간이면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맘껏 담배를 피울 수 있는 데다, 단조로운 생활에 말 상대도 절실했을 터였다. 대학 시절 그의 곁에는 언제나 사람이 들끓었다. 3년 고시생 생활은 그로부터 많은 것을 앗아간 모양이었다. 윤기 나던 피부도, 짙고 풍성한 머리칼도, 친구도 연애 상대도……. 그에게서 엿보이는 결핍이 오히려 준서는 보기 좋았다.

“느거들 인자부터 실력발휘 한 번 해봐라.”

그는 옆의 식물들을 손으로 몇 번 쓰다듬더니 담배를 꺼내 들었다. U가 안다면 까무러칠 만한 일이다. 그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준서는 사강이 내뿜는 담배 연기가 휴게실을 부옇게 흐려 가는 모습이 싫지 않았다. 벽의 ‘금연’ 문구가 흐릿해져 가는 것도, 초록 식물들이 운무에 휩싸이는 것도.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스르르 허물어지면서 준서를 몽환의 세계로 이끌었다.

독을 조심해야 해.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는 게 많아.

U의 경고였다.

사냥이나 전쟁 때 이 나무의 수액을 화살촉에 묻혀 독화살을 만들어 썼다지.

그녀는 길쭉한 협죽도 이파리를 손끝으로 천천히 훑어 내렸다.

물론 약으로 쓰기도 해. 모든 약은 독이고 또한 모든 독은 약효가 있으니…….

U는 그곳을 ‘힐링 가든’으로 불렀다.

이 싱그러운 풀들이 다 독초라니…… 준서는 놀랐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것들이 한결같이  온화하고 다소곳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가증스럽다고? 천만에. 그건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달렸지. 우리가 이것들을 입으로 가져가지 않는 한, 이들은 우리에게 영원히 이롭고 사랑스러운 이웃이라고.

그녀의 손길은 잉글리시 아이비와 디펜바키아를 거쳐 포인세티아로 넘어갔다.

귀 기울여 봐. 이 녀석들한테서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아?

위잉- 위잉- 바람을 닮은 소리였다. 공기를 정화하는 소리 같기도, 독을 만드는 소리 같기도 했다.

준서는 U와 함께 그들의 사랑스러운 이웃 속을 거닐었다. 풀들이 쑥쑥 자라 울창한 숲을 이루는가 싶더니 숲은 이내 미로가 되었다. 준서는 그 황홀한 숲 속을 하염없이 헤매 다녔다. 기꺼이 그 속에 갇히고 싶었으나 미로에는 운명처럼 출구가 있었다. U는 어느새 사라지고, 출구에서 그를 맞은 건 사강이었다.

“이 도서관 말이라, 일제 때 지어진 다 낡아빠진 시멘트 건물을 왜 안 털어 짓나 궁금했는데, 인자 알겠다.”

하루는 창밖을 내다보던 사강이 대단한 비밀이라도 알아낸 듯 말했다.

“건물 높아지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인간이 어데 한둘이겠나……?”

생뚱맞은 대답에 준서는 프싯 웃음부터 나왔다. 하지만 점점 뒤끝이 서늘해 왔다. 그건 고시생의 비애나 푸념에 그치는 말이 아니었다.

짠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준서는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메마른 분수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물줄기가 언제 뿜어져 나왔는지 알길 없는 녹슨 금속관과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벗겨져 나간 바닥이 황량하게 펼쳐져 있었다.

“오늘, 보라, 결혼한 날이었는기라. 상채랑.”

그가 우울해한 이유가 드러났다. 

전상채-나보라-선우사강. 관계의 트라이앵글이 선히 그려졌다. 긴 한숨을 담배 연기에 실어 하염없이 뿜어내는 그의 뒷모습이 준서의 눈을 가득 채웠다. 상실과 체념으로 무기력해진, 서른을 코앞에 둔 남자의 등……. 준서는 하마터면 그 등을 감싸 안을 뻔했다. 화단의 펜스에 발이 걸려 주춤하는 바람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때였다. 준서의 뇌리에 어떤 생각이 번개처럼 스친 건. 혹시, 사강 선배가……? 하는 생각과 동시에 칼질 당한 소파가 그의 뒷모습과 겹쳤다. 상실과 자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제5열람실 장기수의 일탈!

놀라운 건, 그 사건에 대한 준서의 시선이 완전히 달라져 있다는 점이었다. 사건의 주체가 바뀌니 바라보는 시각도 백팔십도 바뀌었다. 사고 현장을 처음 목격하던 순간의 끔찍함은 온데간데없었다. 거침없는 칼질, 빨간 천 조각들이 허공에서 경쾌하게 흩날리는 장면이 떠올랐다. 가을바람에 만국기 펄럭이듯 신나고 힘차게. 빨간 패브릭은 묵직한 소파를 감싼 외피가 아니라 허공을 맘껏 날아다니는 가벼운 천 조각이었다. 한 인간의 파괴적 충동을 대신해 순교한 핏빛 조각 천. 비장하고 아름답고 깃털처럼 자유로운……. 그의 뒷모습은 ‘이유와 명분이 있는 가학’을 보여 주었다.

그를 두고 떠날 수 없어.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공근로를 이틀밖에 남겨두지 않은 날, 또 다른 작별을 그에게 알린다는 건 가혹해 보였다. 그건 연민도 당위도 아닌, 열망이었다, 그의 곁에 머물고픈……. 참았던 열망이 준서의 가슴에서 솟구친 것이다. 녹슨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처럼, 칼자국 사이를 비집고 나온 소파의 속처럼……. 비로소 준서는 그에게서 비집고 들 틈을 찾은 기분이었다. 

그로써 준서의 공공근로는 3개월 더 연장되었고 복학은 한 학기 미뤄졌다.


*


“세상에, 또 일어났어. 먼젓번과 똑같은 사건이.”

한 달 만이었다. 수법도 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지난번 사고를 피해 간 다른 소파가 희생되었다는 것이었다. 직원들 사이에 또다시 긴장이 감돌고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범인은요, 예상 밖의 인물일지도 몰라요. 여리고 치밀하고 낭만적인…….”

추리 전문가 흉내라도 낸 것 같은 준서의 말에 U가 고개를 돌렸다.

“아얏!”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녀는 손을 감싸 쥐었다. 왼손 약지에 붉은 핏방울이 맺혔다. U는 손톱을 다듬던 중이었던 모양이다.

준서는 재빨리 티슈를 뽑아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가방에 있는 소독약을 꺼내 상처 부위를 소독한 다음 일회용 밴드를 붙여 주었다.

“준서, 간호사 해도 되겠다. 준비성 좋고 세심하고, 손도 이쁘고…….”

그의 처치에 손을 내맡기고 있던 U가 말했다.

준서는 준서대로 그녀의 손에 감동해 있던 참이었다. 상처를 감싸느라 가까이서 들여다본 U의 손은 부지런하고 일 욕심 많은 사람의 손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우아하고 고왔다. 투명한 분홍빛 손톱은 건강해 보였고 손가락은 가늘고 길었으며 살결은 희고 매끄러웠다. 그 손의 매혹에 이끌려 준서는 엉뚱한 약속까지 하고 말았다.

“이번 휴관일에 나와서 도와드릴까요?”

그녀의 소파 리폼 일을 거들겠다는 말이었다.

U는 반가워하며 밴드가 둘러진 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해.”

준서는 그녀의 오른손 약지에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 손짓이 신호라도 된 듯, 갑자기 열람실 한쪽이 소란스러웠다. 37, 38번 좌석에 나란히 앉은 이용자 둘이 다투는 소리였다. 준서는 급히 그곳으로 다가가 그들을 바깥 휴게실로 이끌었다. 이십대 청년과 ‘무기수’ 사내였다. 청년의 이어폰에서 흘러나온 음악 소리가 다툼의 원인이었다.

“난 아저씨한테서 나는 냄새도, 다리 떠는 것도 참고 있었단 말예요. 그런데 이어폰에서 음악소리 좀 흘러나온 것 가지고 그렇게 사람을 면박 줄 수 있냐고요!”

청년은 억울하다는 듯 참았던 말까지 내뱉었다.

준서도 사내에게서 풍겨나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언젠가 맡아 본 듯하면서도 정확히 뭔지 알 수 없는 거슬리는 냄새였다. 직원들 사이에서 ‘무기수’로 통하는 그를 준서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일명 ‘삐삐’로 불리던 호출기에 얽힌, 중3 때 있었던 일화가 사내를 준서의 기억에 또렷이 들어앉게 했다. 친구 만나느라 열람실 좌석을 잠시 비웠다 돌아왔을 때, 가방에 넣어둔 호출기가 보이지 않았다. 가방을 샅샅이 뒤지고 책상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호출기는 없었다. 체념하고 가방을 꾸려 일어서는데 누군가 준서의 어깨를 툭 쳤다. 어떤 남자가 준서의 호출기를 내밀었다. 진동으로 해놓았던 그것이 가방 안에서 계속 울리는 바람에 그가 문제의 호출기를 압수하듯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리에 꽤 예민한 사람 같았다. 진동으로 해놓은, 그것도 가방 속에서 울리는 남의 호출기를 꺼내 압수할 생각까지 한 걸 보면……. 그의 좌석은 한눈에 고시 준비생 자리임을 알 수 있었다. 칸막이를 누런 종이서류철로 덧대 가린 데다 책상 밑에는 낡은 책들과 방석, 사전 등이 놓여 있었다. 준서가 중3이었으니 그때만 해도 남자는 이십대 후반 아니면 삼십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그 후로도 그는 도서관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준서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군 입대와 제대를 하고 복학을 앞둔 지금까지도……. 삐삐가 단종 되고 휴대폰이 대중화되고 그 휴대폰이 카메라폰, MP3폰, 위성 DMB폰으로 끊임없이 변신, 진화해 가고 있는 지금도 그는 이 도서관에 머물고 있었다. 변화라면 이십대 청년이었던 그가 이제는 희끗한 머리의 중년 아저씨로 옮겨 앉은 사실이었다.

“저 아저씨, 한동안 잠잠하다 했더니…….”

U가 중얼거렸다. 그 한마디에 담긴 연민과 힐난, 그리고 의심의 그림자를 준서가 모를 리 없었다.

무기수의 생활 리듬은 맞물린 톱니바퀴 같았다. 식사를 하고 나면 그는 어김없이 이곳을 찾아 정확히 30분 웹서핑을 하고 일어났다. 오후 1시와 7시에 각각 한 번씩 하루 두 번이었다. 똑같은 생활 반경, 예외 없는 일상의 되풀이였다.

내가 정년퇴직해도 저 친구는 여기 남아 있을걸.

‘무기수’라는 별명을 처음 붙인 최고참 사서가 말했다. 그에 따르면 지난 십 수년간 사내는 이 도서관을 떠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삶이라면, 옆자리 청년의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신나는 댄스 음악이나 눈부시게 화창한 날씨, 혹은 젊은 커플의 달콤한 속삭임, 또는 앉기 황송할 정도로 우아하고 깨끗한 소파…… 그런 것들이 견딜 수 없이 혐오스러울 때가 있지 않을까. 십 수년 같은 자리에 머물고 있는 저 무기수 사내라면, 더욱이 그 파괴적 일탈이 삶을 견디기 위한 몸부림 같은 것이라면, 돌이킬 수 없는 패륜이 아닌 이상 이웃의 도리로 한 번쯤 눈감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티격태격하던 두 남자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준서는 무기수 사내에게서 풍기던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다. 물이든 공기든 흐르지 못하는 것에서 나는 냄새 같은 그것은, 독거노인의 방 혹은 노숙자들한테서 흔히 풍기는 그런 익숙한 쾨쾨함과도 달랐다. 켜켜이 내려앉은 시간과 어우러져 내는, 그런 묘한 냄새……. 준서는 언뜻 박물관을 연상했다. 무기수 사내가 그의 앞을 스치고 갈 때, 준서는 이따금 그런 환상에 사로잡혔다. 자신은 까까머리 중3으로, 무기수는 이십대로 돌아가고 다른 이용자들은 그 상태로 박제화된다. 디지털 열람실을 가득 채운 컴퓨터는 단종 모델로 한쪽 코너에 전시된다. 빼곡히 꽂힌 저 CD와 DVD까지도……. 열람실은 순식간에 인류의 지나온 어느 시기를 보여 주는 박물관의 한 부스를 이루는 것이다.


“준서, 그 선배 좋아하지? ……아주 많이.”

U가 물었다. 뒷말의 여운이 길게 남는 말이었다.

사강을 떠올리는 말에 준서는 잠시 긴장했다. 비밀이 드러나서라기보다는 지금까지 그녀에게 진실을 터놓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녀를 좋아하고 따랐지만 그건 다른 문제였다. 지금껏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사실이었다. 자신이 남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걸 안, 열일곱 살 때부터…….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녀가 알게 될 거라는 믿음은 있었다. 그걸 깨닫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친구가 되고, 그러지 못하면 아는 사람에 머무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개인적 취향의 문제를 ‘고백’이라는 거창한 형식을 취한다는 것부터가 어색하고 촌스러워 보였다.

“언제 알았어요? 바느질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준서는 손을 멈추고 U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사서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아니. 조금 전, 바느질 솜씨 보고……. 그 전까지는 의심만 품고 있었는데, 그걸 보니 확신이 생기네.”

U가 농담처럼 던졌다.

처음, 준서가 직접 바느질을 해보고 싶다고 했을 때, U는 놀라는 눈치였다. 준서가 바느질 작업까지 도우러 나설 거라곤 예상치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준서의 의욕과 호기심을 인정해 주었다. 손수 시범을 보이고 난 다음, 준서에게 바늘을 건네주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U는 미심쩍어하는 눈치였다. 몇 번의 연습 끝에 준서가 아플리케 하나를 손색없이 완성하자 그녀는 주저 없이 준서 몫을 할당해 주었다.

“타고났어. 천상 여자야.”

U는 준서의 바느질 솜씨를 보며 감탄했다.

사실 U에 비한다면 걸음마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솜씨와 속도, 둘 다 그랬다. 그럼에도 준서는 그녀의 칭찬이 싫지 않았다.

“그 선배도 알아?”

U가 무심히 스치듯 물었다.

준서는 말 대신 고개만 가로저었다. 그녀처럼 무심히.

가슴에 품은 장미 한 송이를 혼자 키워 가는 것. 언제부턴가 그것이 준서의 연애 방식이 되었다. 이번 경우도 일방통행의 운명이란 걸 알고 시작한 일이었다. 더 이상의 욕심은 파탄을 의미한다는 것, 마음을 비우면 적어도 자신의 감정만큼은 향유할 수 있다는 것……. 몇 번의 시행착오로 얻은 나름의 지혜였다. 준서 자신처럼 성적 소수자든 아니든, 만족스러운 사랑이 얼마나 드문 일인지는 주변만 둘러봐도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자의든 타의든 이 세상 청춘의 절반 이상은 나홀로족일 터였다. U처럼 아예 대상이 없거나 사강처럼 실연을 했거나, 또는 준서 자신처럼 짝사랑이거나 하는 경우를 보더라도 말이다.

“꼭 무인도에 와 있는 것 같지?”

U의 말대로 휴관일의 도서관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 같다. 바늘 움직이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적막한 섬. 또한 그곳은 세상에서 보이지 않던 것까지 훤히 보이는 신비의 섬이었다. 특수 렌즈라도 들여다보듯 자세하고 선명하게…….

칼자국을 덮는, 아니 그것을 감싸는 바느질을 손수 하면서 준서는 또렷이 볼 수 있었다. 칼날이 지나간 자리, 베어진 선들의 길이와 간격까지도. 그것은 감정의 일시적인 폭발이나 충동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가까이에서 찬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가느다란 바늘로 베어진 자국을 조심스럽게 따라가며 한 땀 한 땀 수놓아 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무자비해 보이던 칼자국은 빈틈없는 계산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길이었다. 고양이와 딸기와 돌고래가 서로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간격까지 염두에 둔 세심하고 치밀한 칼질……. 준서는 떨리는 손으로 바늘땀을 하나씩 만들어 가면서 새로운 진실을 깨우쳤다.

축하해, U사서. 이번에 정규직으로 결정 났다며.

사서 A,B,C가 차례로 U에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도서관 사서직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있다는 걸 준서는 처음 알았다.

“돌고래 말야, 위로 내뿜는 이 물줄기, 바닷물일까 체액일까……?”

그녀의 마지막 아플리케는 돌고래였다.

준서는 언뜻 돌고래의 눈물을 연상했으나 그녀는 달랐다.

“오줌 누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 돌고래답게 위로 쏘아 올리면서 누는 오줌…….”

그녀의 재치에 준서의 마음이 푸근해졌다.

하지만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돌고래의 왕관 같았다. 몸속 모든 것을 끌어올려 만든 영광의 왕관. 권위의 무게가 머리를 짓누르지 않는 경쾌하고 사랑스러운 꿈의 왕관…….

“둘이 하니 역시 빠르네.”

일은 한나절 만에 마무리되었다.

변신한 소파는 이전의 것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준서는 자신의 손길이 닿음으로써 일의 결과가 이렇게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내가 근사한 점심 살게.”

U가 준서의 노고를 치하하며 말했다.

그녀는 여기저기 널린 물품을 하나씩 챙겨 넣기 시작했다.

“아차, 이걸 잊을 뻔했네.”

U가 바느질상자에서 뭔가를 꺼냈다.

준서한테서 빌려갔던 문구용 일제 칼이었다. 그녀는 커터 날 끝을 테이블 바닥에 대고 힘껏 눌러, 닳은 부분을 날렸다.

“그동안, 잘 썼어.”

그녀는 깔끔하게 정리한 칼을 준서에게 내밀었다.

“가지세요. 그 칼 좋아하시잖아요.”

준서는 그것이 자신보다 U에게 더 요긴할 거라고 생각했다.

“필요할 때가 있을 거야. 잘 챙겨 둬.”

그녀는 준서에게 기어이 그걸 건네주었다.

손에 잡히는 길고 단단한 칼의 느낌이 너무도 생생해 준서는 잠시 전율이 일었다. 그것으로 U와 내밀하고 끈끈한 유대라도 맺는 기분이었다. 아니, 이미 맺어져 있었는지도 몰랐다. 처음 그것을 U에게 빌려 줄 때부터…….

엄밀히 말해 칼은 준서의 것도 아니었다. 휴게실 어딘가 굴러다니던 걸 주운 것이었다.

원래 주인은 누구였을까?

홈리스 사내, 사강, 팀장, 푸른 귀고리 청년, 무기수 아저씨, 도서관장, 사서 A, B, C……. 이곳에서 만난 얼굴들이 하나하나 스쳤다. 그들은 차례로 등장했다 사라지는가 하면 다시 나타나 하나의 얼굴로 겹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U마저 보이지 않았다. 준서는 무인도에 혼자 남았다.

위잉- 위잉- U의 힐링 가든이 활발하게 호흡을 시작했다. 준서를 위로하기라도 하듯.

윤기 나고 매끈한,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잘한 상처투성이인 초록 이파리들이 너도나도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준서를 빤히 올려다보며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우리가 진짜처럼 보여?《문장 웹진/200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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