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진

 

가족사진 


  


이은조

 

 


아버지는 감색 양복에 아메바 무늬 넥타이를 맸다. 큰언니가 벨벳 정장을 입고 나왔을 때 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도 가장 아끼는 옷이 양복일지도 몰랐다. 오빠는 회색 점퍼와 청바지 차림이었다. 학원에 갈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점퍼의 지퍼를 채우지 않았고 무스를 발라 머리카락을 뾰족하게 세웠다는 것이다. 엄마는 남대문 시장에서 산 검은 폴리에스텔 바지를 입고 거울 앞에 섰다. 그 바지는 세 번이나 바꿔온 거였다. 남대문 상인은 바지 팔아 봐야 점심값도 나오지 않는다고 투덜댔지만 엄마는 왕복 차비를 내놓으라고 맞섰다.

 

 

엄마가 꽃분홍색 점퍼까지 걸치고 나왔을 때 나는 눈에 힘을 주고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점퍼에 달린 조악한 복주머니 모양의 주머니 때문에 애써 누르고 있던 불쾌한 대사들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엄마가 아니라 할머니 아냐? 반 아이들의 놀림이 귓가에 맴돌았다. 

“역시 내 새끼, 너무 이쁘다.”

엄마가 내 엉덩이를 두드렸다. 가끔 엄마는 나에게 ‘내 강아지’ 라고 말하고 나는 엄마가 ‘할머니’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34cm 청미니 스커트에 검정색 칠부 레깅스, 후드 티셔츠에 아이보리색 니트. 캔버스화만 신으면 요즘 초등학생들의 패션 아이콘이다. 내가 입는 옷은 아이들이 금세 따라 입고 내가 쓰는 펜도 아이들은 좋아라 하며 갖고 싶어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나는 유행을 타고 태어났으니까. 오빠가 태어난 지 팔 년 만이었다. 큰언니와 작은언니는 세 살, 작은언니와 오빠는 일곱 살 터울이다. 갑자기 피자가 먹고 싶고 먹어본 적 없는 망고가 먹고 싶었던 엄마는 내가 생겼다는 걸 안 순간 입술을 깨물었다.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은 9시 뉴스 덕분에 해결되었다. 요즘 늦둥이 출산이 붐이라는 뉴스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엄마는 태몽도 꾸었다. 엄마 품에 주홍색 털인형이 쏙 들어왔다. 인형을 폭 감싸 안자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다. 햇빛 때문에 인형이 주홍색으로 보인 것 같다며 엄마는 말끝을 흐렸다. 엄마는 정말 내 태몽을 꾼 것일까. 언니들과 오빠 태몽은 뒤죽박죽이다. 큰언니 태몽이 딸기라고 하더니 또 어떤 날엔 그건 작은언니였다고 하고, 오빠였다고도 한다. 내 태몽은 한 번도 헛갈린 적이 없는데 그건 큰언니가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큰언니는 엄마 대신 팔베개를 해주고 나를 무릎에 앉혀 놓곤 한다. 엄마가 할머니로 느껴질 때마다 큰언니에게선 내가 그리는 엄마의 체취가 느껴진다. 꽃향기, 비누향기, 과자냄새 같은 행복한 냄새가 난다. 그렇다고 큰언니의 모든 것을 다 사랑할 수는 없다. 큰언니는 기어코 가방에 옷들을 챙겼다. 커다란 분홍 리본이 달린 모자만은 안 된다고 했지만 가방 밖으로 비죽 얼굴을 내밀고 있는 건 그 모자가 분명했다.

한 달 전, 작은언니는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결혼 날짜를 받아왔다고 했을 때 엄마는 입을 쩍 벌린 채 큰언니 눈치를 살폈다. 큰언니는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이별을 앞둔 드라마 주인공 때문이 아니었다. 큰언니는 작은언니를 부러워했다. 작은언니는 무조건 양보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을 먼저 생각했다. 큰언니와는 딴판이었다. 엄마가 작은언니를 나무랐다.

“어차피 다 알게 될 텐데 뭐. 그건 그렇고, 예식 중에 어린 시절 사진들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게 있어. 될 수 있는 대로 단란한 모습들로 좀 찍어와. 놀이동산이라면 배경으로도 나쁘지 않잖아. 모처럼 막내도 놀이기구도 타고.”

요는, 작은언니 결혼식 프로그램에 신랑 신부의 성장 과정을 영상으로 꾸미는데 사진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언젠가 우리 가족이 거리로 내몰렸을 때 앨범을 잃어버렸다. 앨범뿐만이 아니었다. 그때 잃어 버린 것들은 더 있었다. 작은언니가 나까지 끌어들이는 걸 보니 큰언니를 의식한 게 틀림없다. 나와 큰언니는 한통속이니까. 나를 어르면 큰언니의 마음일랑 풀어지는 건 시간문제니까. 역시 작은언니의 계산기는 치밀하다. 작은언니가 큰언니에게 봉투를 내밀며 말했다.

“언니도 미리 미리 사진 찍어 놔. 결혼이라는 게 갑자기 들이닥치는 거드라구.”

나는 큰언니의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들을 상상했다. 꿈과 낭만의 세상! 판타스틱한 모험의 세계! 나 역시 독자들을 위한 새로운 공간이 필요했다. 봉투에는 놀이동산 자유이용권 티켓 다섯 장이 들어 있었다.

엄마는 여전히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매만지고 화장을 덧발랐다. 허리에 손을 얹었다 떼었다, 전후좌우를 살피며 어떻게 사진에 찍힐 것인가 연구하는 눈치였다. 큰언니가 준비한 가방은 몇 개 더 있었다. 새벽부터 준비한 김밥과 과일, 커피까지. 큰언니는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늘 많았다.

“녹차도 좀 타라.”

아버지가 큰언니에게 말했다.

“단무지도 넣었지?”

아버지가 엄마에게 말했다.

“어제 구두 닦았더니 반짝반짝해. 파리도 미끄러지겠어.”

아버지가 현관에서 운동화를 신는 오빠에게 말했다. 큰언니와 엄마, 오빠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엄마와 큰언니에게 아버지의 말을 전했다.

“녹차도 타고 단무지도 넣으래.”

“어떡하지? 보온병이 하나밖에 없어.”

큰언니가 난감해했다.

“녹차는 무슨 녹차야. 커피 마셔 커피. 단무지는 김밥 안에 들어 있어.”

엄마는 화장품을 검정 가방에 던져 넣으며 쏘아붙이듯 말했다.

“아, 그렇지?”

아버지가 멋쩍어하면서 돌아섰다. 아버지의 등이 흐릿했다. 아버지에게도 먼지가 되는 방법을 알려줄까.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투명한 목소리를 가졌다. 그러다 아버지 몸까지 투명해질까 봐 걱정된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나만 들을 수 있다. 아버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다정하게 이야기해도 나 말고는 듣지 못한다. 아버지의 말은 암호화 되어 있는 것일까. 아버지가 밥 먹자, 라고 말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안단테 피아니시모’로 들리는지도 모른다. 음악 기호를 모르는 사람들은 결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처럼. 아버지가 손톱깎이는 어디 있느냐고 물어도, 된장찌개가 맛있다고 말해도 ‘안단테 피아니시모’ 라고 들린다면 할 수 없다. 나는 아버지의 입을 본다. 아버지가 말하면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입모양을 따라간다. 잘 들려요, 아버지. 크게 말하지 않아도 돼요. 아버지가 뒤를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엄마는 검정 가방을 얼싸안고 맨 마지막에서야 나왔다. 가스를 잠그지 않은 것 같다며, 전화 코드를 뽑아 놔야 한다며 여러 번 들락거렸다. 우리는 엄마가 성에 찰 때까지 문과 문 사이를 들락거리는 걸 지켜보았다.

두 달 전이었다. 근처 대형할인마트에서 888번째 방문객에게 드럼 세탁기를 선물한다고 했다. 엄마는 솔깃했다. 공짜라는 것, 줄만 잘 서면 되는 것이었으므로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막 퇴근해 돌아온 큰언니는 엄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녀는 부리나케 할인마트 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는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온 가족을 마트로 불러 모았다. 모녀의 이런 극성쯤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한때 엄마는 경품 타는 데 열을 올렸다. 번번이 실패하는데도 큰언니는 엄마를 응원했다. 한 번도 엄마의 사연은 방송을 탄 적 없고 행운권 추첨에서도 예외였다. 엄마와 큰언니가 애원하는 통에 아버지와 오빠는 번갈아가며 방문 고객 행세를 하였다. 아버지는 이번 기회에라도 엄마를 고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줄을 섰다. 오빠와 나는 아버지 혼자 두고 갈 수 없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마침내 엄마가 드럼 세탁기 티켓을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데이트 약속이 있다며 엄마의 청을 거절했던 작은언니가 넋이 빠진 얼굴로 현관에 서 있었다. 무언가 낌새를 차린 아버지가 작은언니를 밀치고 현관문을 열었다. 문은 종잇조각처럼 힘없이 열렸다. 엄마가 비명을 질렀다. 거실에는 내장이 터진 베개에서 흘러나온 메밀이 흥건했고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현관 신발장에 놓아둔 묵직한 돼지저금통은 물론이고 돈이 될 만한 것들은 남아 있지 않았다. 엄마가 다급하게 쌀통에 손을 넣었다. 엄마 손에 검은 봉지가 딸려 나왔다. 아빠와 결혼할 때 받은 오팔반지, 집문서, 기념주화, 적금통장 따위가 바닥에 쏟아졌다.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는 낡은 검정색 합성 피혁 가방에 그것들을 주워 넣었다.

“없어진 거 있나 잘 찾아 봐라.”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엄마는 부들부들 떨면서 114에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가 아무리 112라고 해도 엄마의 손은 114를 눌렀다. 큰언니는 새 옷이 없어졌다며 울먹였고, 작은언니는 서랍을 통째로 꺼내 커플링을 찾느라 혼비백산이었다. 오빠는 조금 놀란 듯 했지만 벽에 기댄 채 mp3를 들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다시 한 번 말했다. 잃어버린 물건 없니?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도둑은 아버지의 목소리마저 훔쳐간 것일까.

“이게 다 당신 때문이야. 이렇게 허술한 집에 도둑이 안 들어온 게 이상했지.”

엄마가 대성통곡했다. 엄마의 신세 한탄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아버지는 입맛을 다시며 주머니가 터진 양복바지에 손을 넣고 손가락을 까딱였다. 아버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어서는 아닌 것 같았다.

아버지가 한꺼번에 지하철 티켓을 끊어왔다. 우리는 차례대로 티켓을 넙죽 받았다. 엄마는 자동차를 타고 가지 않아 힘들다며 불평했다. 아버지는 긴 팔을 뻗어 등을 긁적였다. 아버지가 미안해, 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툴툴거릴 뿐이었다. 엄마가 아버지 눈을 보며 말한 것은 언제였을까. 한 달 전 아버지가 음주 운전에 걸렸을 때도 엄마는 아버지의 안부보다 자동차를 먼저 걱정했다. 엄마는 간혹 사람과 물건을 비교한다. 아버지와 자동차가 그렇다. 1997년생 소나타와 쉰을 넘긴 아버지가 같은 칸에 서서 엄마의 비판을 받는다. 기능성과 안전성에서 아버지는 소나타보다 두 칸 아래로 내려간다. 아버지와 소나타가 막상막하인 지점은 디자인. 아버지는 왼쪽 범퍼가 살짝 찌그러진 자동차에 비하면 호남형에 롱다리를 갖고 있다. 동네 아줌마들도 아버지를 법 없이도 살 호인이라며 엄마를 부러워한다. 엄마도 그런 점에선 아버지의 손을 들어준다. 작은언니가 외모지상주의는 없어져야 할 사회적 병폐라고 말한다면 엄마는 어려운 말이라 꼼짝 못할 테지만 좋은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라도 아버지가 엄마의 좋은 의미가 되기를 바랐다.

놀이동산 티켓은 며칠이 지나도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나는 꼭 놀이동산에 가야만 했다. 첫 번째는 가족사진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름방학 숙제로 가족신문을 만들었는데 가족사진이 없어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앨범을 잃어버린 탓도 있었지만 그나마 남아있는 몇 장의 사진에는 꼭 한 사람씩 빠져 있었다. 두 번째는 판타지 소설 때문이다. 나는 우리 학교 5학년들이 인정한 판타지 소설 작가다. 내 소설 ‘브릿보이bridge boy’ 덕분에 아침마다 내 자리는 소설을 읽으려는 독자들로 붐빈다. 나는 전날 밤을 꼬박 새워 글을 쓴다. 하루에 한 번씩 마술을 부려야만 살 수 있는 나라에 브릿보이가 나타났다. 브릿보이는 자신이 주워온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절망에 빠져 집을 나왔다. 엄마가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한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브릿보이는 자신이 버려져 있던 다리를 찾아 떠돌던 중이었다. 의무적으로 마술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지쳐 있었고 마술을 쓰지 않아 죽어가는 사람들도 보였다. 브릿보이에게 명령이 떨어졌다. 그동안 사람들이 미뤄온 마술을 한번에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나라는 사라질 것이라 했다. 그만큼 강력한 마술이란 어떤 것인지 브릿보이는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슬픈 눈으로 브릿보이를 지켜보았다. 브릿보이는 마침내 그 다리가 지구가 아닌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마술을 부려도 그 다리는 나타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거기에서 멈췄다. 놀이동산에 간다면 브릿보이의 선택을 결정지을 그 무엇을 찾게 되지 않을까. 나는 절박했다. 독자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오빠는 그런 나를 비웃었다. 나는 입을 다문 채 책상을 가리켰다. 오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 서랍에 오빠의 살색 명작들이 들어 있다는 걸 깜박했었는지 오빠는 일요일에 놀러가자며 엄마를 졸라댔다. 오빠의 살색 명작, 즉 여자들이 벌거벗고 나오는 DVD는 내 서랍에 있다. 내가 그것을 세상에 내놓는 한 오빠는 엄마에게 무사할 수 없다. 무엇보다 엄마의 미역국 레퍼토리가 시작되면 그날 잠은 다 잔 거다. 엄마는 아들을 낳기 위해 백일기도를 올렸고, 허리가 꺾인 미역으로 끓인 미역국은 입에도 대지 않았으며, 오빠가 열 살 때까지 무병장수하라고 손수 수수팥떡을 만들어 온 동네에 돌렸다. 엄마는 주먹이 꽤 센 편이라 한 대 맞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거라며 오빠는 진저리를 쳤다. 엄마가 일요일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리며 놀이동산, 이라고 썼다. 아버지가 그날은 우리 직원 모두 휴일이네, 하며 웃었다. 아버지는 건강 서적, 책마다 ‘빨간 동그라미에 갇힌 19’가 찍혀 있는 책들을 만들기 위해 일요일에도 출근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겨우 엄마의 지갑을 두둑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며 오빠는 제법 진지하게 말했었다. 오빠는 살색 명작이야말로 모든 인류가 사랑해야 하는 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왜 그 책은 엄마만 보는 것이며 장롱 서랍에 있는 이유는 무엇이냐 물었다. 모든 인류가 사랑하는 책이긴 하지만 모두가 볼 수 있다면 그 책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라나. 오빠는 취향이 맞지 않아 아버지가 만든 책은 보지 않는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분명한 건, 아빠가 만든 건강 서적을 세계 소년소녀 명작동화가 차지하고 있는 책꽂이 자리에 내줄 수 있다는 거다. 오빠만 좋다면 살색 명작 DVD도 함께.

지하철을 타고 놀이동산 역에 내렸을 때 우리 가족은 일렬종대로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키가 큰 아버지라는 깃발은 눈에 잘 띄었다. 큰언니는 간혹 뒤를 돌아보긴 했지만 엄마 손을 잡지는 않았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갑자기 오빠가 내 뒤에 바짝 붙어 섰다. 오빠는 나와 나란히 걷던 두 명의 남자아이들을 순식간에 밀쳐냈다. 남자아이들이 주춤거리다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왜 그래?”

“저 자식들이 너 엉덩이 만지려고 했어. 개새끼들.”

오빠의 얼굴에 살기가 드리워졌다. 여드름 자국과 마른버짐은 외려 오빠의 화난 얼굴을 돋보이게 했다. 오빠는 작은 일에도 크게 화를 내곤 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아빠는 출판사에 다녔다. 명퇴 후 퇴직금으로 정수기 사업을 시작했다. 동업자였던 아빠의 친구가 정수기를 팔기도 전에 돈을 갖고 튀었다. 우리 가족은 거리로 내몰렸다. 나는 그때 알았다. 무더운 여름밤이 한겨울 못지않게 춥다는 것을. 봄처럼 따스했던 오빠에게 한겨울 기온이 스며들어 방출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방 두 칸, 좁은 마루가 딸린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했다. 오빠의 방은, 없었다. 부엌의 일과가 끝나는 시간, 오빠는 독서실에서 시간을 때우고 돌아와 싱크대 아래에 이불을 펴고 누웠다. 오빠는 몸을 말고 이마를 찡그린 채 잠이 들었다. 굳게 닫힌 문과 문 사이에서 오빠는 지독한 꿈만 꾸었던 걸까. 어느 날 낡은 노트북이 생기면서 오빠는 DVD에 푹 빠졌다. 대학에 떨어진 날에도 오빠는 여자들을 불러냈다. 모두 잠든 한밤중, 오빠는 벌거벗은 여자들과 교신한다. 음음. 오오. 우우. 아아. 오빠의 소리가 더 높이 울려 퍼지지 못하고 천장만 맴돌았다. 나는 오빠의 소리를 들으며 판타지 소설을 썼다. 오빠의 소리에는 글자들이 떠돌아다녔다. 나는 손을 뻗어 허공에 떠다니는 글자들을 잡았다. 글자들은 내가 글로 쓸 때까지 내 머릿속에서,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다. 글자들은 쓸수록 더 많이 늘어났다. 오빠의 소리가 내게 글자들을 보내고 있었다.

지하철역을 벗어나자 맑고 푸른 하늘이 우리 가족을 맞이했다.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하늘에서 제일 예쁘고 고운 얼굴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착각은 나의 행복이다. 나는 착각한다. 아버지가 고급 양복을 입고 열대 과일을 사들고 들어오는 착각, 엄마가 아침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클래식 음악을 듣는 착각, 큰언니가 웨딩드레스를 입을 거라는 착각, 작은언니가 매달 내게 용돈을 주는 착각, 오빠가 어깨를 펴고 거리를 활보하는 착각, 나의 판타지 소설이 실제가 되는 착각. 나의 착각은 멈추지 않는다.

아무리 둘러봐도 양복, 투피스 정장 차림의 사람은 없다. 벙거지 모자에 멜빵바지, 가벼운 점퍼와 후드티를 입은 소풍객들 사이에서 막 결혼식장에 다녀온 듯한 우리 가족의 옷차림은 빛이 난다, 빛이. 티켓 판매소에서 우리 가족들은 손목에 자유이용권 팔지를 찼다. 당당하게 입구를 통과했다. 광장을 지나자 세 개의 표지판이 나타났다. 놀이동산은 미래의 나라, 환상의 나라, 동화의 나라로 나뉘어 있었다. 멀리서 공중 관람차가 보였다.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느릿느릿 움직이는 관람차 주위에 줄을 선 사람들은 대부분 연인들이었다.

“얘, 우리 이거 타자.”

엄마는 들떠 있었다. 엄마의 눈과 발은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갈 기세였다. 

“싫어.”

나는 한 발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왜? 무섭지도 않고 전망도 구경하고 좋을 것 같은데?”

“이건 애인들이나 타는 거야.”

“사진부터 찍자.”

큰언니가 엄마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큰언니는 가방에서 숄을 꺼냈다. 그러고는 오빠에게 카메라를 건넸다. 엄마는 마지못해 큰언니 손을 맞잡았고 나는 ‘김치’ 를 외치며 아버지 손을 잡았다.

맞선에서 번번이 실패하는 큰언니는 결혼 하고 싶어 한다. 그저 평범하게,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 큰언니는 구인광고 정보지를 보고 시멘트 공장 사무실에 취직했다. 퇴근해 돌아온 큰언니가 휴지에 코를 풀면 검은 먼지가 섞여 나왔다. 매일 같은 분식집에서 비빔밥을 시켜먹고, 막돼먹은 사람들에게 성희롱을 당하고, 흰 블라우스는 절대로 입을 수 없는 사무실 경리였던 큰언니는 작은 아버지의 도움으로 은행 창구로 자리를 옮겼지만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 지갑을 들고 점심을 먹으러 나갈 뿐 메뉴는 늘 같았다. 큰언니가 동화 나라 표지판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큰언니가 어린 시절 꿈꾸었던 동화는 어떤 이야기였을까. 호박 마차의 마법이 풀리지 않는 이야기. 초콜릿으로 만든 집에 마녀는 없는 이야기. 튼튼한 동아줄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한 시간이 흘렀다. 큰언니는 새로운 장소를 찾으면 포즈를 취했다. 모자를 썼다 벗었다 하며 사진 찍는 데 열을 올렸다. 엄마도 큰언니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새로운 놀이기구를 발견할 때마다 짧은 소감도 잊지 않았다. 줄이 길어서 통과, 옷이 젖을 것 같은 놀이기구도 통과, 유치해서 통과, 위험해 보여서 통과, 통과, 통과……. 나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모두 함께 놀이기구를 타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큰언니는 왜 사진에만 집착하는 걸까. 브릿보이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지구를 떠나야 하는 것일까. 지구를 구해야 하는 것일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환상의 나라 입구에서 엄마의 휴대폰이 울렸다. 작은언니였다. 작은언니는 남자친구와 놀이동산에 올 거라고 했다. 맛있는 저녁은 해결되었지만 작은언니를 기다려야 한다는 부담이 늘었다. 그게 참 그렇다. 기다림이 한 줄 생기면 그쪽으로만 시선이 모아진다. 지난겨울 갤러리 참관기 방학숙제를 위해 친구들과 인사동에 간 적이 있다. 한 친구가 오겠다며 연락해 왔다. 우리는 인사동을 헤매며 친구를 기다렸다. 그 친구가 햄버거를 싫어한다고 해서 패스트 푸드점엔 가지 않았다. 분식집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오지 않는 친구를 위해 모든 것을 배려하고 있었던 셈이다. 아, 왜 안 오지?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고 어느새 지치기 시작했다. 결국 친구는 갑자기 전화를 걸어왔던 것처럼 갑자기 일이 생겨 못 온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작은언니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작은언니는 곧 도착해, 라고 말하지만 보통 2시간이 지나야 나타났고, 거의 다 왔어, 라고 말하지만 그 반대일 때가 더 많았다.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환상의 나라에 도착한 우리는 어떤 놀이기구를 탈 것인가 하는 문제와 작은언니를 기다려야 하는 중압감에 떠밀려 허둥거렸다. 아빠가 오빠와 내 등을 떠밀었다. 그리하여 선택한 놀이기구는 우주요격대. 표지판에는 놀이기구를 탈 자격이 적혀 있었다. 키 120cm 이상, 임신부나 노약자는 사절. 우리에게 딱 맞는 조건이었다. 빠른 속도로 높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우주요격대는 위험해 보이지도 않았다. 고만고만한 아이들 틈에서 선인장 가시처럼 떨어져 서 있는 오빠와 나는 차례를 기다렸다. 아버지는 큰언니와 엄마를 벤치에 앉혀 놓고 사진을 찍었다. 큰언니가 분홍리본이 달린 모자를 꺼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에이씨, 왜 이렇게 인간이 많은 거냐?”

내 또래로 보이는 야구 모자가 빈정거리며 오빠와 나를 훑어보았다. 깡마른 얼굴에 청점퍼를 걸친 아이가 야구 모자 어깨에 손을 얹으며 내뱉듯 말했다.  

“어른들이 이걸 타서 뭐할 거냐? 존나 웃겨요.”

청점퍼가 한 술 더 떴다. 그때였다. 오빠가 야구모자와 청점퍼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니들 나한테 말한 거냐?”

야구모자가 딴전을 피웠다. 청점퍼는 휴대폰을 꺼내 뭔가를 확인하는 척했다. 오빠는 어떤 준비를 할 태세였다. 벤치 쪽을 보았다. 아버지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엄마는 큰언니와 수다 삼매경이었다.

“나한테 말한 거냐고!”

오빠는 야구모자의 모자를 벗겨 버렸다. 야구모자는 입을 앙다물며 오빠가 가로챈 모자를 뺏으려 들었다.

“내 모자거든요? 줘요!”

“이 자식들이 어디서 까불어?”

청점퍼가 오빠 앞을 가로막아 섰다.

“왜 그래요? 모자 주세요, 씨팔.”

오빠는 모자를 바닥에 던져 버리고 청점퍼의 멱살을 잡았다.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나는 오빠의 팔을 잡아당겼다.

“오빠, 우리 순서야. 얼른 타자, 응?”

“어라. 이 자식들, 아까 그 자식들 아니야?”

아뿔싸. 지하철 계단에서 스친 녀석들이었다. 요격대에 탑승해야 할 차례였다. 나는 오빠를 재촉했다. 불쾌했지만 일을 벌이고 싶지는 않았다. 놀이동산 직원이 무슨 일인가 하여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오빠의 주먹이 쥐어졌다. 긴박한 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직원이 우리 곁에 다가왔을 때 오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청점퍼를 손아귀에서 살포시 놓았다. 오빠가 내 손을 잡고 요격대 줄에서 빠져나왔다.

휴게실은 소란스러웠다. 김밥은 맛이 없었다. 커피는 미지근했고 과일은 시들했다. 큰언니는 사진 찍느라 힘이 들었는지 군소리 없이 김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과일을 먹었다. 큰언니는 내 입에 김밥을 넣어 주고 물도 먹여 주었다. 아버지가 재채기를 하자 재빨리 휴지를 꺼내 아버지 손에 쥐어 주었다. 오빠와 엄마는 머리를 조아리며 왼쪽 테이블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김밥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다 큰 딸을 잘도 챙기네 그려. 엄마 새, 아기 새 모냥 다정해 뵈는 게 참 좋구먼.”

오른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큰언니와 나를 보며 말했다.

“우리 딸도 일찍 시집가서 말만 한 손녀가 둘이나 있어. 아주 엄마 아빠를 쏙 뺐구먼?”

할머니는 큰언니와 아버지, 나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할머니의 수다가 이어질수록 큰언니 얼굴은 발개졌고 나는 멍해졌다. 햄버거를 우적거리던 엄마가 할머니 쪽으로 눈을 흘겼다.

“김밥 좀 드세요.”

큰언니가 할머니에게 김밥을 내밀었다. 할머니가 손을 저었다.

“아유, 됐어요. 배불러. 맘씨도 이쁘고 인상도 좋으시네. 우리 딸은 결혼도 일찍 하더니 이혼도 일찍 했어. 어린 것들이 무슨 죄가 있겠어. 아빠 정 모르고 할미 정만 알고 큰 게 가슴 아퍼.”

할머니는 손등으로 눈물 콧물을 찍었다. 나는 휴지를 감췄다. 아버지는 헛기침을 하고는 식은 커피를 마셨다. 엄마가 콜라를 벌컥 들이켰다.

“저기들 왔네. 쟤들이 내 손녀들이라우. 이쁘지? 그럼 다녀들 가요. 잘 살아요.”

할머니는 배낭을 어깨에 메고 손을 흔들고 있는 여자들 쪽으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아니. 저 할머니가 노망이 났나? 누구더러 엄마라는 거야?”

가만히 듣고 있던 엄마가 도시락 뚜껑을 테이블에 팽개치며 말했다.

“노인네들이 그냥 하는 말이지 뭐.”

큰언니는 엄마를 달래듯 말했지만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니가 문제야. 여기 오면서 정장 입고 오는 사람이 어디 있냐? 젊디 젊은 게 그러고 다니니까 매일 퇴짜나 맞지. 이까짓 것들이 무슨 소용 있어.”

엄마가 벌떡 일어나 언니의 쇼핑백 가방을 발로 찼다. 큰언니 옷가지들이 바닥에 쏟아졌다.

“니가 아무리 연지 곤지 찍고 있어 봐. 어느 누구 하나 널 쳐다보기나 하나. 왜 그렇게 촌스러워? 너도 좀 꾸미고 살아야 할 거 아니야?”

엄마는 참아 왔던 울분을 토하듯 큰언니에게 거침없이 퍼부었다. 큰언니가 고개를 떨군 채 김밥을 우겨 넣었다.

“매일 에미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니 무슨 연애를 해? 경품 챙길 생각만 하면서 무슨 연애야, 연애가?”

큰언니는 김밥을 모조리 다 먹고 숨도 안 쉬고 음료수를 마시기 시작했다.

“너 때문에 도둑 든 거야. 온 가족이 피해가 막심해, 아주.”

“이 옷 사 준 사람은 엄마잖아. 내가 언제 이런 거 사 달라고 했냐고.”

큰언니가 벌떡 일어났다. 테이블이 휘청했다. 주위의 시선들이 느껴졌다.

“난 뭐 이렇게 살고 싶은 줄 알아? 할인마트는 엄마가 가자고 했잖아. 왜 나한테만 그래? 내가 뭘 잘못했어?” 

큰언니가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았다. 사람들이 수군거리거나 기웃거렸다. 나는 우리를 보는 시선을 향해 힘껏 노려보았다. 조용히 앉아 있던 아버지가 일어나 바닥에 팽개쳐진 큰언니의 옷들을 챙겨 넣기 시작했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 모자를 주워들었다. 오빠도 큰언니의 구두와 숄을 집었다. 멀리서 북소리가 들렸다. 놀이동산 퍼레이드 행렬이었다. 아버지가 큰언니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우리 저거 구경하러 가지 않을래?”

아버지가 퍼레이드 행렬을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가 고개를 돌려 눈물을 닦았다. 큰언니가 코를 팽 풀었다. 오빠와 나는 테이블에 널린 도시락을 챙겼다. 오빠와 나는 샴쌍둥이처럼 손발이 척척 맞았다.

큰언니 팔짱을 끼고 행렬을 이끄는 놀이동산 캐릭터 커플을 바라보았다. 엄마와 오빠가 슬그머니 우리 옆으로 와 섰다. 왕자 공주 분장을 한 배우들이 손을 흔들었다. 왕자가 모자를 벗고 무릎을 굽히며 공주에게 춤을 청했다. 공주는 토라진 얼굴로 왕자의 손을 잡았다. 행렬 가장자리에 서 있던 시종들이 박수를 유도했다. 왈츠가 흘렀다. 어릿광대가 막대풍선을 불었다. 빠른 손놀림으로 강아지, 꽃, 하트를 만들어 관객들에게 선물했다. 아이들이 아우성을 치며 몰려들자 어릿광대는 금세 사람들 무리 속에 갇혀 버렸다. 어릿광대가 키 작은 한 아이에게 하트를 건넸다. 키가 큰 아이가 하트를 가로채려다 놓치고 말았다. 하트는 마법에 걸린 것처럼 사람들의 손에 쉬이 잡히지 않았다. 하트가 우리 앞에 떨어지려는 순간 오빠가 팔을 뻗어 하트를 잡았다. 나는 내심 기다리고 있었다. 서랍 속 살색 명작을 안전하게 지키려면 나에게 줘야 마땅했다. 그러나 오빠는 엄마에게 하트 풍선을 내밀었다. 엄마는 풍선이 터질까 봐 조심스럽게 받았다. 꽃이라도 되는 것처럼 향기를 맡아 보고는 불쑥 큰언니에게 하트를 안겨 주었다.

미래의 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온 가족이 탈 수 있는 놀이기구를 타야겠다고 별렀다. 큰언니도 사진 찍는 데 지친 것 같았다. 작은언니는 아직 소식이 없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멀리 하늘에는 새털구름이 하얀 포말 같은 파도를 몰고 이동하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아무런 놀이기구도 못 타고 갈 게 뻔했다. 나는 근처에 있는 롤러코스터로 향했다. 브릿보이만 생각하기로 했다. 독자들은 내 소설을 읽기 위해 간식을 챙겨들고 올 것이다. 내 한 몸을 희생해서 독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못할 게 없다.

“그거 무서워 보이는데?”

등 뒤에서 호기심 어린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그게 장점이자 단점이지.”

“아이구, 그럼 난 안 탈란다. 너 얼른 막내랑 타고 와라. 우린 여기 있으마.”

엄마가 오빠의 등을 떠밀었다. 오빠가 쭈뼛거리며 앞장섰다.

오빠와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았다. 롤러코스터의 묘미는 맨 앞자리. 오빠와 내가 처음으로 의기투합한 셈이었다. 안전보호대가 조여지고 안내 방송이 나왔다. 안전보호대에 손을 올려놓는 순간, 나는 덥석 오빠 손을 잡았다.

“이거, 안……무섭……겠지? 그렇지?”

막상 자리에 앉고 보니 겁이 났다.

“니가 타자고 했잖아?”

“그랬지. 그랬지만…… 나, 내린다고 하면 안 되겠지?”

오빠가 싱긋 웃으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낮게 속삭였다.

“오빠만 믿어라. 오빠가 여기 있잖아.”

출발 신호와 함께 롤러코스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악마의 굴이 저기 있었다. 혼돈과 혼미의 세계, 짜릿한 스릴이 공포로 다가올지도 몰랐다. 롤러코스터가 급강하를 시작했다. 끝없는 나락의 세계가 우리를 괴롭혔다. 트위스트 2번, 곤두박질 7번. 롤러코스터는 정확했다. 드디어 롤러코스터가 긴 질주를 마치고 정차 역에 도착했다. 안전보호대가 올라갔을 때 오빠는 내 손을 꼭 잡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오빠가 계단 난간을 꼭 잡고 한 발 한 발 천천히 내려갔다. 뒤에서 사람들이 오는 소리가 들리면 난간 옆에 붙어 길을 터 주었다. 나는 오빠 뒤에 섰다. 오빠의 등은 작고 연약해 보였다. 나는 힘껏 오빠 등을 두드렸다.

“무서워? 무서운 척 하는 거지?”

오빠가 깜짝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너 안 무서워?”

오빠가 조금 전의 나를 떠올리고 있었다.

“무섭긴 뭐가 무서워?”

나는 손을 흔들고 있는 아빠를 보며 한달음에 달렸다. 롤러코스터는 두 번 다시 타지 않을 거라는 다짐을 하늘에 맹세하면서.

엄마가 대단한 것을 발견한 것처럼 내 팔을 잡아끌었다.

“저기 있다, 저기. 얼른 가서 줄 서자.”

“응? 뭐가? 뭐가 있다고?”

엄마가 내 어깨를 감싸 안으며 오빠에게도 손짓했다.

“저기 있어. 찾았어. 사람도 많지 않아.”

큰언니가 앞장서며 말했다. 역시 엄마와 큰언니는 명콤비였다. 나는 오빠를 앞질러 뛰어갔다. 

악. 어떻게 저런 유치하고 조악한 놀이기구가 다 있담. 엄마와 언니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은하열차’ 였다. 걸음을 멈춤과 동시에 어깨가 축 쳐졌다. 은하열차 주변에는 유치원생쯤 돼 보이는 아이들과 젊은 엄마 아빠들뿐이었다. 

“정말 이걸 타자고?”

오빠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엄마는 정색하며 오빠의 말을 되받았다.

“뭐가 어때서 그래?”

엄마는 대수로울 것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뭐야? 죄다 애들이잖아.”

“야, 잔소리 말고 얼른 줄이나 서.”

그리하여 우리 가족은 은하열차에 탑승했다. 트위스트, 곤두박질 따위는 없는, 회전목마처럼 빙글 빙글 돌며 위 아래로 움직이는 게 전부인 놀이기구였다. 놀이동산 직원이 안전점검을 하러 돌아다녔다. 엄마는 허리 앞에 내려진 안전보호대를 잡고 가방에서 요란하게 울고 있는 휴대폰을 꺼냈다.

“응, 여기가 어디냐면 미래의 나라에 있는 은하열차야. 잘 찾아와. 우린 지금 떠난다.”

들뜬 엄마의 목소리는 어린 아이들만 타는 놀이기구라는 걸 잊게 했다.

“고객님, 가방은 밑에 내려 놓으세요.”

안전요원이 심상한 눈빛으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가 꼭 껴안고 있는 검정 가방을 말하는 거였다.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엄마, 내려 놔. 아무도 안 가져가.‘

엄마는 꼼짝도 안했다. 직원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물러섰다. 은하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들이 환호를 질렀다. 아. 나도 어린 아이처럼 환호가 절로 나왔다. 오빠는 조금 전의 악몽은 잊은 듯 mp3을 켜고 이어폰을 꽂았다.

“어, 저기 둘째 왔다.”

엄마가 검정 가방을 흔들어 보였다. 작은언니가 은하열차 아래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손을 흔들고 서 있었다. 내 기다림은 보람 있었다. 큰언니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은하열차가 느린 속도로 하늘을 밀고 올라갔다. 금발 머리에 가죽 부츠를 신은 브릿보이가 멀리 보였다. 그래, 브릿보이가 은하열차를 탄 순간 은하열차는 지구를 떠나는 거야. 브릿보이가 찾던 그 다리는 외계에 있었어. 외계에서 아들을 잃어버렸던 엄마는 아들을 찾기 위해 마법을 참아야 했지. 그것만이 아들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거든…….

작은언니가 우리 쪽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유치한 놀이기구에 타고 있는 걸 찍으려는 건 설마 아니겠지. 그럼에도 나는 작은언니가 있는 쪽으로 은하열차가 다가가면 눈을 크게 뜨고 입꼬리가 올라가도록 웃었다. 나도 왜 그러는지 내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원을 그리며 돌던 은하열차에 서서히 속도가 붙었다. 뒷좌석에 앉은 아이가 숨이 넘어갈듯 울기 시작했다. 태양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나는 차양을 만들어 태양을 올려다보았다. 태양을 감싸고 있던 새털구름이 한 곳으로 모아졌다. 주홍빛 구름은 은하열차 쪽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그리고 그 구름을 사뿐히 밟으며 브릿보이와 브릿보이의 엄마가 서로를 향해 한 걸음씩 걸음을 옮겼다. 브릿보이는 죽어있는 사람들을 살리는 마술로 나라를 구했다. 잃어버린 엄마를, 형제를 다시 만나서 사람들은 기뻐했다. 그때 브릿보이를 키워준 엄마가 슬픈 얼굴로 나타난다. 브릿보이는 고민한다. 지상에서 브릿보이를 부르는 누나와 동생의 목소리가 들린다. 브릿보이가 그쪽으로 향한다. 나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오래오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은하열차에서 내려 작은언니에게로 다가갔다. 작은언니와 남자친구는 디지털카메라 액정 화면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언니가 카메라를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봐. 신기하지?”

참 이상한 사진이었다. 작은언니가 검지와 중지로 브이를 만들어 포즈를 취했을 때 우리가 탄 은하열차가 지나고 있었다. 얼굴이 흐릿하긴 했지만 한눈에 우리 가족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빠는 엄마의 어깨를 감싸 안았고 오빠는 겁을 먹은 표정이긴 했지만 두 손을 높이 올려 만세를 외치는 것 같았다. 내 얼굴은 하늘로 향해 머리카락만 보였다. 그리고, 작은언니의 브이 안에서 콩알만한 큰언니가 활짝 웃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처음으로 찍은 가족사진이었다.《문장 웹진/2008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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