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압록강

 

겨울, 압록강




정도상




집안(集安)에 가서 여자를 찾아야만 했다.

영하 25도의 아침이었다. 칠보산 호텔 주변을 산책하는데, 만주 봉천의 칼바람이 옷자락을 마구 헤집고 들어왔다. 귀는 떨어져 나갈 듯이 아팠고, 코끝은 빨갛게 얼어 따끔거렸다. 아직 행사가 끝나지 않은 것이 가시처럼 마음을 쿡쿡 찔렀다. 어제 밤, 단골 안마사인 미나한테 말만 꺼내지 않았어도 좋았을 걸. 언제나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입이 먼저 방정을 떠는 것이 문제였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미나가 덜컥 같이 가겠다고 해버렸다. 아차 싶었지만 주워 담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키도 작고 몸매도 가녀린 미나는 집안이 고향인 조선족 처녀였다.

 

 

 곧 미나가 호텔 앞으로 올 시간이었다. 서둘러 호텔로 돌아가 가방을 쌌다. 가방을 끌고 호텔을 나오자마자 후회가 칼바람처럼 밀려왔다. 그 여자의 전화번호는커녕 심지어는 주소도 모르고 있다는 게 영 찜찜했다. 내가 아는 것은 그 여자가 집안에 살고 있다는 것뿐이었는데, 그것도 지난 초가을의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쪽지에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받은 기억은 나는데, 그걸 제대로 챙기지 않았던 것이다. 칠보산 호텔 앞에서 인민해방군의 어린 병사들이 눈을 치우고 있는 것을 무심히 보면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미나가 택시에서 내리지도 않고 나를 불렀다. 미나는 칠보산 호텔이라면 칠색팔색이었다. 

집안 행 버스를 타는 곳은 상상 밖의 장소에 있었다. 버스터미널이 아니라 여기저기 골목에 장거리 버스들이 행선지 별로 드문드문 서 있었다. 가방을 질질 끌면서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리다가 간신히 집안 행 버스를 찾았다. 차장한테 돈을 치르고 버스에 올랐더니 공중변소에 들어온 듯한, 큼큼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나는 이방인이었다. 드러내놓고 냄새를 탓할 수는 없었다. 헛기침을 하고 뒤쪽의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영하 25도의 추위 속에서 갑자기 난방이 잘 된 버스 안에 들어오니 온몸이 근질거렸다. 얼굴이 퉁퉁 붓는 느낌이 나면서 눈이 아팠다. 손바닥을 비벼 열을 낸 뒤에 눈두덩을 꾹꾹 눌렀다. 손바닥이 눈을 가리자 문득 기묘해졌다.

‘가지 마!’

망막 깊은 곳에서 외마디 절규가 울려나왔다. 어둠 저편의 철로 위로 거대한 빛이 달려오고 있었다.

‘가지 마!’

단말마의 비명처럼 소리쳤으나 지하철의 하얀 빛 속으로 작은 그림자 하나가 뛰어들었다. 빛은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끄응, 가슴 저 밑바닥에서 신음소리가 올라왔다.

“괜찮아요?”

미나가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고개를 끄덕여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길게 내뿜기를 여러 번 되풀이했다. 미나가 목덜미를 주물렀다. 미나의 손을 가만히 밀어낸 뒤에, 눈을 떴다.

이마에 진땀이 끈적하게 배어났다. 다시 호흡을 길게 가져가며 손바닥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찰나의 악몽으로 연탄불처럼 뜨거워진 머리는 좀체 식지 않았다. 버스는 예정된 시간을 넘겼는데도 출발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남아 있는 빈 자리를 모두 채울 요량으로 보였다. 때에 찌든 두툼한 코트를 입은 차장이 버스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호객행위를 했다. 잠시 후, 머리에 큼직한 보따리를 이고 아이를 손에 잡은 아낙네가 허겁지겁 뛰어오는 게 보였다. 그 뒤로 노숙자 차림의 늙은 남자 하나가 손에 검은 봉지를 들고 뛰고 있었다. 혹시 버스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과 다급함이 뜀박질에 담겨 있었다.

보따리를 버스 옆구리에 넣고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버스에 올랐다. 두리번거리며 빈 자리를 찾는 여자는, 윗입술이 쭉 찢어진 언청이였다. 반면에 아이는 네댓 살쯤으로 보이는 여자애였는데 이목구비가 뚜렷했고, 탐이 날 정도로 아주 귀여웠다. 맞춤한 자리가 없어 그들은 바로 내 옆에 함께 앉았다. 이어 때에 절어 기름기가 반들반들한 늙수그레한 남자가 버스에 탔다. 얼굴에는 주름살이 자글자글했고 수염엔 밥알이 붙어 있으며 앞니는 빠져 있었다. 손에는 찐 고구마 두 개와 생수병이 들려 있었다. 그 남자는 언청이 어미 품에 안겨 있는 아이에게 찐 고구마를 들려 주었다. 손톱 가득 검은 때가 낀 손으로 아이의 볼을 어루만져 주는 그 남자의 눈길에는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가슴이 뭉클했고 아팠다. 아이의 볼에는 바람이 거칠게 할퀴고 간 흔적이 가득했다. 바람은 아이의 양 볼에 붉은 사과처럼 동상의 흔적을 남겨 놓았다. 

언청이 아내가 남편에게 어서 돌아가라고 손짓했다. 이어서 무어라고 말을 했는데 그것은 말이 아니라 바람이었다. 쪼개진 언청이의 윗입술 사이로 빠져 나와 말이 되지 못하는 바람 소리에는 알아듣기 힘든 조선말이 섞여 있었다. 살짝 얼음이 밴 딸의 볼에 깊은 뽀뽀를 하고 돌아서는 아비의 눈에 슬쩍 눈물이 비쳤다. 머루처럼 깊고 예쁜 눈을 가진 딸은 늙고 못난 아버지를 향해 작은 손을 예쁘게도 흔들어 주었다. 두어 걸음 걷던 남자는 돌아서서 주머니 속에서 꼬깃꼬깃하게 꿍쳐 놓았던 십 위안짜리 지폐 몇 장을 아이의 손에 쥐어 주었다. 낡은 옷과 거친 음식을 먹으며 어린 딸을 위해 육신을 고단하게 하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세상의 저 숱한 아비 중의 하나였던 남자가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가 움직이자 언청이 아내는 조용히 눈물을 찍어냈다. 남편은 버스 밖에서 하염없이 손을 흔들며 코를 팽 풀어 바지에 슥슥 닦았고, 어린 딸은 버스 안에서 흘러내리는 누런 코를 들이마셨다.

버스가 심양을 벗어나자 언청이 어미의 품에 안겨 있던 어린 딸이 칭얼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좌석을 가득 채운 승객들은 어미와 딸의 소란을 잘도 참아주고 있었다. 언청이 어미는 딸을 토닥토닥 달랬지만, 딸은 마냥 울기만 했다. 미나가 가방에서 사탕을 꺼내 주었다. 꼬마는 사탕을 받아 손에 쥐었다. 그러면서 배를 잡고 징징거렸다. 언청이 어미가 무어라 웅얼거리자 딸도 웅얼거렸다. 조선말이었지만, 주변 사람들과는 통하지 않는 그들만의 언어가 따로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마침내 언청이 어미가 버스 통로에 신문지를 깔고 겹겹으로 입힌 딸의 옷을 벗겨냈다. 세상에, 여기서? 설마 그럴 리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언청이 어미는 단호하게 딸의 엉덩이를 까 놓고는 신문지 위에 앉혔다. 어린 딸은 기다렸다는 듯이 응가를 했다. 버스 가득 지독한 구린내가 퍼졌다. 그러나 누구 하나 언청이 어미와 그 어린 딸을 나무라지 않았다. 응가를 마치고 밝게 웃는 아이를 미나가 번쩍 안아 올렸다. 그 사이에 언청이 어미는 딸의 뒤처리를 깔끔하게 해냈다. 내게도 한 때는 자식의 똥이 전혀 더럽지 않던 적이 있었다. 가슴 깊은 곳에 묻혀 있는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침 열 시쯤에 심양에서 출발한 버스는 오후 네 시를 넘겨 집안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머리가 지징징 울렸다. 바람 속에 칼날이 섞인 느낌이었다. 영하 25도의 심양은 차라리 따뜻한 셈이었다. 집안의 냉랭한 공기는 고드름처럼 살에 쩍쩍 달라붙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를 잡기 위해 집안반점(集安飯店)으로 택시를 타고 곧장 갔다. 방은 두 개가 필요했다. 내가 비록 미나를 마음에 두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애인이 아니어서 한방에 묵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미나와 함께 집안에 온 것은 무슨 흑심을 품어서도 아니었다. 정말이지 나는 그 여자를 찾고 싶었다. 여권을 내주고 수속을 밟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는지 미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잠시 후, 미나의 얼굴이 빨개져서 돌아섰다.

“왜?”

“내 호구를 증명하는 게 없어서 방을 못 준다고.”

“나는 괜찮고?”

“예.”

순간, 마음이 검어졌다. 어쩌다가 증명서를 두고 왔느냐고 묻지 않기로 했다.

“그럼 내 방에서 같이 자지 뭐?”

“그것도 안 된대요. 부부가 아니라고…….”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호텔 직원의 태도는 촌스럽게도 완강했다. 미나가 조선족이 운영하는 여점(旅店)도 괜찮으냐고 물었다. 미나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추위 속에서 한참을 기다려 간신히 택시를 타고 조선여점에 도착했다. 여인숙처럼 초라한 숙소였다. 미나는 의외로 방을 하나만 잡았다. 다행히 침대는 두 개였다.

집안의 밤은 깊었다. 저녁을 먹고 노래방에 가서 술을 마셨다. 미나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나는 노래에 집중하지 못했다. 무엇을 하든 즐겁지 않았고 자주 허탈해지곤 했었다. 노래방의 휘황한 조명을 보면서, 깊은 어둠 속을 달려오던 하얀 빛이 생각나 괴롭고 아팠다.


나를, 버리고 싶었다.


고비사막의 어느 언저리에 늑대가 뜯어먹다 만 낙타의 뼈처럼 바람 속에서 오래오래 풍화작용을 하며 버려지고 싶었다. 마유주를 마시고 겔을 나섰다가 대초원의 강추위에 심장이 파열되어 죽는 유목민 사내들처럼 혹은 대지의 마지막 남은 몇 오라기의 풀을 찾아 나섰다가 얼음물에 거꾸로 처박혀 죽은 말처럼 온통 버려져 해체되고 싶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항문으로 작은 들쥐들이 들락거리며 내장을 파먹고, 늑대며 독수리가 달려와 머리통과 뼈만 남기고 모두 해치우고 나면, 바람이 내 슬픔의 뼈를 하얗게 표백시켜 주기를……. 그것을 나는 벽제의 화장터에서 자식의 뼈를 만지며 간절히 소망했었다.

춥고 어두운 집안의 밤, 미나는 노래했고 나는 망연히 바라보았다. 감정을 건드리지 못하는 낯선 언어의 노래 속에서 나는 외로웠다. 여점으로 돌아와 각자의 침대에 누웠다. 술기운이 오른 미나는 약하게 코를 골며 잠에 빠져들었지만,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잠이 오지 않으니 온갖 망상이 가뭇없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 중에서도 제일 괴로운 것은 빳빳하게 발기하여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 내 물건이 미나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상상이었다.

결국, 나는 옷을 벗고 미나의 침대로 슬그머니 건너갔다. 이부자락을 들추고 들어가자 잠결에 미나가 엉덩이를 움직여 자리를 좀 내주었다. 천천히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미나의 옷자락을 헤쳤다. 브래지어 속의 젖가슴은 자두처럼 작았다. 약간 실망스러워 젖가슴에서 손을 뺐다. 문제는 청바지였다. 몸에 꽉 끼는 청바지라 벗기기가 맨손으로 밤송이 까기처럼 어려웠다. 간신히 혁대를 끌러 내고 지퍼를 살짝 내렸다. 약간의 틈이 보이자 그 손으로 손을 쑥 밀어 넣는데, 미나가 내 손을 잡았다.

“한 번만.”

“싫어요.”

“한 번만 하자 응?”

“싫다니까요.”

“돈 줄게.”

미나가 벌떡 일어나 나를 쏘아 보았다. 실수를 깨달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미나는 헝클어진 옷을 추슬렀다.

“여기서 자요.”

미나는 나를 남겨 두고 내 침대로 가 버렸다. 잠시 고민하다가 나는 다시 미나 곁으로 가서 자꾸만 품속으로 파고들며 옷을 벗기려 했고, 미나는 다리를 꽉 오므려 나를 밀어냈다. 미나가 밀어낼수록 나는 오히려 더 우악스럽게 여자의 몸을 탐했다. 때로는 애원하고 때로는 협박했지만, 미나는 끝내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아침을 맞았다. 서로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어색했다. 미나가 먼저 밥을 먹으러 가자며 어색함을 쓸어냈다. 짐을 두고 밖으로 나가 허름한 식당에서 만두 몇 개와 멀건 죽으로 아침을 때웠다. 다른 음식들도 있었지만 특유의 향 때문에 먹질 못했다. 어쨌든 일 위안짜리 치고는 훌륭한 아침식사였다. 식당에서 나오며 미나는 광개토왕비를 보러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고개를 저었다. 내 관심은 광개토왕비가 아니라 그 여자였다.

  

내가 그 여자를 만난 것은 ‘2005 국제고구려학회’가 열렸던 작년 초가을이었다.

북의 사회과학원 학자들, 남의 여러 대학에서 온 학자들, 그리고 일본과 중국의 교포학자들이 심양에 모여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심포지엄이 끝나자 집안으로 고구려 유적 답사를 떠나게 되었다.

나는 애초부터 불청객이었다. 북의 보장성원으로 참가한 민족화해협의회 참사인 박이 심양에서 서울로 전화를 걸어, 보고 싶으니 와 달라고 했던 것이었다. 나 또한 박에게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던 터라 두말없이 심양으로 날아 왔었다.

심양에서 환인, 통화를 거쳐 집안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마음을 다해 남북관계의 진전에 대해, 또한 그것을 위해서 서로가 어떤 신뢰를 쌓아야 하는지에 대해 박에게 아주 오래 이야기했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말로 진심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 때야 비로소 알았다.

사실, 당시의 나는 북을 미워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뻔뻔함이 싫었고, 문건 협상 때마다 마주치는 문장의 수준에 절망했다. 내 만년필은 북의 문장이나 어휘에 밑줄을 긋고 테두리를 만들어 가차 없이 지워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들에 의해 ‘악질반동’이 되었다. 남에서는 주사파로 몰려 오래토록 왕따를 당해 왔는데, 북에서는 악질반동이 되는 순간을 자주 감당해 내야만 했었다. 내가 쓴 평화와 그들이 쓴 평화라는 어휘는 매번 그 뜻을 달리하고 있었다. 그 고민을 어느 선배에게 말했더니 미움이 절정에 오르다가 나중에 다시 애정으로 바뀌게 된다며 크게 웃었다.

아무튼 박과 이야기하며 답사를 따라 다니는데, 집안에서 광개토왕비로 가는 길에 남측의 답사 주최자가 다가와 내게 참가비를 요구했다. 심포지엄 참가비 전체와 답사비 전체를 합해 500달러 정도를 내라는 것이었다. 나는 심포지엄 장소에 들어가 본 적도 없고, 그 호텔에 묵은 적도 없으며 기껏 버스 뒷자리에 끼어 앉아 세 끼니를 얻어먹었을 뿐인데 500달러는 부당하다고 했다. 그러나 고구려대학 교수라는 그 자는 완강했다. 나는 그동안 먹은 밥값과 버스비를 넉넉히 계산하여 90달러를 그의 얼굴에 뿌리고는 버스에서 내려 버렸다.

버스는 떠났고, 나는 낯선 도시에 남겨졌다. 중국말을 전혀 못했고, 아는 사람도 없는 곳이었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고적함이 꽤 마음에 들어 나는 배회를 즐겼다. 오래 되어 거무튀튀한 아파트 단지 사이에 들어선 시장을 느긋하게 구경했고, 운동장에서 히히덕거리며 체조를 하고 있는 고중학교 학생들도 훔쳐보면서 걷고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니 불쑥 강물이 나타났다. 강변을 따라 걷는데 표지석이 서 있었다.

압록강(鴨綠江).

갑자기 어느 텅 빈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 침묵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선 느낌이었다. 한 번도 고구려의 국내성과 압록강이 동일한 공간에 존재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국내성 앞으로 압록강이 흐른다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니,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 둔중해지고 말았다.

한참 후에 눈을 들어 압록강을 바라보았다. 강 건너 편에는 낡고 오래된 도시가 이국적인 풍경으로 낮게 엎드려 있었다. 바보가 아니어도 북한의 어느 도시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갑자기 배회의 즐거움이 사라지고 말았다.

압록강을 따라 천천히 무겁게 걸었다. 한참을 걷는데 시끄러운 중국어 사이에서 귀에 익은 조선말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지지리도 못난 어느 아낙이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려 그 아낙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그 아낙네는 자기는 무식해서 안내 같은 것은 할 줄 모른다며 뒤로 뺐다. 나는 집안이 처음이고, 심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중국말을 전혀 몰라 도움이 필요하다며 다시 부탁하며 안내비를 주겠다고 했다. 그 아낙네는 쑥스러워하며 맨 먼저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언뜻 얼굴로 봐서는 오십은 족히 넘겨 보이는 아낙이었다.

먼저 심양 행 버스 시간을 알아보고 싶다고 했다. 아낙네는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더니 시간을 알아보았다. 심양 행 막차는 정오에 있다고 했다. 정오라면, 이미 막차는 떠난 뒤였다. 무슨 막차가 그리 일찍 떠나냐며 따졌더니, 그걸 어찌 아느냐며 아낙이 부끄럽게 웃었다. 하루를 더 묵으면서 집안을 살펴볼 것인지, 아니면 택시라도 타고 심양으로 돌아갈 것인지 결정해야만 했다. 집안에서 심양까지 일곱 시간 이상 걸리는 장거리 치고는 택시비 천 위안은 싼 셈이었다. 아낙은 택시를 타는 것에 반대했다. 하루를 묵는다고 해도 버스를 타면 삼백 위안은 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돈을 그렇게 허투루 쓰면 안 된다는 아낙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변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못생겼지만 아낙의 얼굴에는 귄이 있어 보였다. 의외로 아낙은 조선족이 아니라 북조선 출신의 화교였다. 지금은 중국 국적을 회복한 한족이기 때문에 자주 강 건너 만포를 들락거린다고 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아 집안의 고구려 유적에는 아무런 관심도 생기질 않았다.

“통행증만 있으면 간단해요.”

아낙은 씨익 웃었다. 아낙과 나는 근처 맥주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낙의 나이는 서른여덟이었다. 만주의 찬 바람이 얼굴에 거친 흔적을 남겨서 그렇지 자세히 보니 주름도 별로 없었다. 나는 묻고 아낙은 대답했다.

강 건너 만포에 살 때, 열네 살에 열세 살인 배구 선수를 만나 첫사랑에 빠졌다. 배구 선수라 남자는 늘씬했고 잘 생겼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만나가며 사랑을 키우다가 만난 지 두 해가 지나 열여섯에 압록강의 갈대 속에서 처음으로 몸을 섞었다. 아낙은 압록강의 갈대숲을 가리키며 쑥스럽게 웃었다. 어찌나 몸 상태가 좋은지 몸을 섞으면 어김없이 아이가 들어섰다. 아이를 지우려고 의사들한테 뇌물도 숱하게 바쳤다.

그렇게 세 번쯤 낙태를 했고 또 임신하자 스물에 결혼했다. 하지만 배구 선수 출신인 남편은 달콤한 신혼시절이 지나자 옆 마을의 처녀들에게 눈독을 들이더니 길고 긴 바람 행각에 빠져들었다. 집을 나서는 순간, 남편은 총각으로 행세했다. 배구 선수였기 때문에 처녀들에게 인기도 좋았다.

“북조선에는 호텔이나 여관이 없을 텐데? 어떻게 바람을 피우나?”

내가 물었다.

“참 나,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어디에서든 못 하겠어요? 마음이 문제지 장소가 문제겠어요? 창고도 있고, 산간도 있고, 보리밭도 있고, 빈 교실도 있고, 호호호 갈대밭도 있는 걸요.”

아낙과 나는 크게 웃었다.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은 참고 참았으나 두들겨 패는 것은 끝내 참을 수 없어 이혼을 제기했다. 만일 화교가 아니었다면, 이혼이 아주 어려웠을 터인데 북조선 국적이 아니라 아주 쉽게 이혼을 하게 되었다며 아낙은 쓰게 웃었다. 지옥 같은 결혼 생활을 하면서 아이는 사내 아이 둘을 낳았다. 이혼을 하자마자 만포에서 혼자 사는 것이 버거워 집안으로 건너왔다며 깨진 이 사이로 피식 웃음을 내보였다. 슬픈 이야기를 할 때에도 웃을 줄 아는 여자였다.  

“한국엔 가봤어요?”

내가 물었다.

“아니요. 가 보고 싶지 않아요.”

아낙이 도리질을 쳤다.

“왜요?”

“한국 사람들 나빠요. 특히 선교사들은 정말 나빠요. 비디오카메라 같은 거 주고 만포 가서 뭐, 못 사는 사람들 찍어 오면 돈을 준다고도 하고, 탈북자라고 하기만 하면 돈도 생기고 집도 생긴다고 그러고, 집안에 와 있는 탈북자들 찍어 달라고 하고, 순 저질들이에요. 그런 사람 많이 만나 봤어요. 뭐 인권 그러는데, 순 입에 발린 거짓말이에요. 한 때는 여기도 그런 사람들 바글바글 했어요. 그리고 우리 어머니가 지금도 만포에 살아요. 가난하지만 집안보다도 만포가 좋다네요. 집안은 복잡하고 답답해서 싫대요.”

아낙은 압록강이 흐르는 강변의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해서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명절 때면 만포로 건너가 새끼들도 만나고, 두고 온 어머니도 만나는 것이 낙이라고 했다.

“남편은요?”

“재혼해서 잘 살고 있어요.”

“만포 가면 만나요?”

“애들 보려면 만나야지요.”

“다른 여자랑 사는 남편인데, 혹시 증오하진 않아요?”

“첫 남자인데…… 밉지 않아요.”

콧등이 시큰하게 아파왔다. 불현듯, 못난 이 아낙네가 사랑스러웠다. 아낙은 집안의 여기저기를 안내해 주며 언뜻언뜻 북조선에서 보냈던 한 시절에 대해 회고했다.

아낙과의 이야기 여정에 점점 빠져들고 있는데, 심양에서 박이 득달 같이 전화를 해댔다. 그렇게 불쑥 내려 버리면 미안해서 어쩌냐며 당장 심양으로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너무 늦었으니 내일 보자고 해도 내일 새벽 열차로 평양으로 돌아가니 아무리 늦더라도 심양으로 돌아와 술 한 잔 하자고 졸랐다.

나는 아낙과 더 있고 싶었지만 박에게 아직 못 다한 말이 남아 있었다. 평양으로 돌아가기 전에 소주라도 한 잔 같이 하면서 가슴 깊은 곳에 숨겨진, 날 것의 생간처럼 피가 뚝뚝 묻어나는 이야기를 끄집어 내고 싶었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타기로 했다. 아낙이 아는 사람을 통해 팔백 위안으로 택시비를 깎아 주었다. 택시에 오르자 아낙은 다음에 꼭 오라는 말과 함께 전화번호와 이름을 적은 쪽지를 내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겨울 압록강, 강물 위에서는 물안개가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영하 30도의 허공으로 올라온 물안개는 즉시 얼어서 안개눈이 되어 펑펑 쏟아져 내렸다. 강가의 줄지어 선 버드나무 가지마다 눈꽃이 하얗게 피어 있었다. 바람이 불면 하얀 버드나무가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압록강은 안개눈 속에서 조용히 흘렀다. 지난밤의 실갱이 때문인지 압록강으로 나온 이후 미나는 일체 입을 열지 않았다. 집안이 고향이라면서 집에 가 보겠다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나는 그 여자를 찾겠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멀리 중국의 집안에서 북조선의 만포(萬浦)로 들어가는 철교가 보였다. 그 위로 트럭 한 대가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었다. 내린 눈 위에 또 다시 함박눈이 쌓인 압록강의 풍경은 온통 하얀 설국(雪國)이었다. 깊은 눈 속에 갇힌, 오갈 데 없는 남녀의 연애가 아스라하게 펼쳐질 것만 같은 풍경의 압록강에 함박눈이 노래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함박눈은 순식간에 세상을 하얗게 덮었다. 눈사람이 되어 걸으며 식당마다 들러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을 살피며 그 여자를 찾았으나 도무지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름도 성도 모르고, 주소도 없이 사람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짓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무모를 감당해야만 했다.

압록강을 따라 줄 지어 선 식당을 다 뒤지니 점심때가 훨씬 지난 뒤였다. 배가 고팠다. 몸이 얼어 얼큰한 국물이 먹고 싶어서 미나한테 신라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집안에 한국 신라면이 어디 있겠냐며 미나가 싫은 소리를 했다. 하는 수 없이 조선족 식당을 찾아가자고 말했다. 미나는 조선족 식당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며 또 얼굴을 찌푸렸다. 집안이 고향이라면서 그것도 모르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마침 눈길에 슬슬 기어가는 택시가 있어서 무조건 탔다. 미나한테 집안에서 제일 유명한 조선족 식당에 가자고 말하라고 시켰다. 미나가 무어라 말을 하자 택시는 집안 시내 방향으로 겨우 한 모퉁이만 돌더니 어느 식당 앞에 멈춰 섰다. 걸어서 오 분도 미처 걸리지 않는 거리여서 짜증이 났다. 게다가 한 눈에 보기에도 식당은 지저분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무슨 쓰레기장에 온 기분이 들었다.

식당에 들어가 두부찌개와 된장찌개 중에서 고민하다가 두부를 광적으로 좋아하던 아들이 떠올랐다. 견뎌 보기로 하고 두부찌개를 주문했다. 기억은 언제나 기습적으로 나를 덮쳤다. 아무런 연관이 없는 엉뚱한 곳에서 느닷없이 치밀어 오르는 추억 때문에 내 가슴에 자리 잡은 열네 살 아들의 무덤엔 풀이 자라지 않았다. 멸치를 듬뿍 넣어 우려낸 국물에 두부를 반 모 크기로 큼직하게 네댓 덩이나 넣고 고춧가루와 마늘을 듬뿍 넣은 찌개는 일품이었다. 나는 내 옆에 앉은 아들과 속엣말을 주고받으며 두부찌개를 먹었다. 식당의 겉모습과는 전혀 딴판인 음식 맛에 놀라며 대체 요리사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땀을 뻘뻘 흘리며 밥을 두 그릇이나 해치웠다. 한 그릇은 아들 몫이었다. 먹을 때는 몰랐는데 밥을 다 먹고 나니 슬픔이 목구멍까지 가득 차 있었다. 잠시 수저를 들고 먹다 남은 두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찌개 그릇 안으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요즘 들어 눈물이 너무 헤펐다. 서둘러 손등으로 눈물을 찍어내고 담배를 입에 물고 두리번거리는데, 네댓 살쯤 된 여자 아이가 재떨이를 들고 쪼르르 달려왔다. 세상에, 아이는 버스에서 응가를 하던 그 꼬맹이었다. 너무 반가워 번쩍 안아들고 볼에 입맞춤을 했다. 아이가 부끄러워하며 주방으로 뛰어갔다. 뒤를 따라 가 보니 언청이 아낙이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어미 품으로 안겨 나를 쳐다보았다. 아이의 눈은 흑진주처럼 반짝거렸다. 예뻤다. 데려다 키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다시 그 여자를 찾아 나섰다. 어느 식당에서 강 건너 만포가 잘 보이는 철교 아랫마을에 가 보라는 소식을 들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그곳으로 갔다. 택시에서 내렸지만 마을의 어느 집으로 들어가 그 여자의 흔적을 뒤져야 하는지 몰라 참으로 답답했고 막막했다. 그저 택시를 기다려 달라고만 하고 강변으로 나갔다.

강변에 서니, 강 건너에 만포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보였다. 뿌연 안개눈 속에서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집집마다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오르고 있었고 멀리에서 기적소리가 아스라했다. “어이, 여봅세! 김 씨~!” 라고 부르면 길을 걷던 김 씨가 금방이라도 손을 흔들어 줄 것만 같았다. 흐르는 강물의 중간을 국경선으로 정해 놓는 바람에 삶의 공동체와 순환이 깨져버린 만포와 집안의 아득한 풍경 속에 나는 오래오래 서 있었다. 그 사이 미나는 압록강으로 내려가 물에 얼굴을 비추며 앉아 있었다. 나는 혼자 상상했다.

고구려 시절, 강을 사이에 두고 두 마을이 있었으리라. 마을 사람들은 서로 왕래하며 연애하고 혹은 연애에 실패하며, 상처 받고 상처 주며, 노동과 음식을 나누고, 어린 것들을 결혼시켜 자손을 낳으며 살았을 터였다. 저 강은 국경이 아니라 함께 빨래를 하고, 고기를 잡고, 논에 물을 대는 공동의 재산이었으리라. 강 건너편의 농부 총각과 고구려 왕이 살았던 국내성의 어느 고관 집 하녀였던 언청이 처녀가 만나 결혼을 했고, 앞니 빠진 총각은 남편이 되었고 언청이는 아내가 되어 어여쁜 딸을 키우며 행복하게 웃었던 풍경에 대해 오래오래 생각했다.

아니 고구려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었다. 한국 정부가 중국에 나와 있는 북조선 사람들 중에서 고위급으로 판단되는 인사를 골라서 서울로 데려오면서 어마어마한 선전공세를 퍼부었던 그 순간부터 이 공동체는 깨지고 말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만포의 아낙네가 함지박 가득 콩을 머리에 이고 집안으로 건너와 옥수수며 양말 혹은 돼지고기 반 근으로 바꿔 다시 돌아가 식구들의 저녁을 해 주었을 터였다. 혹은 집안의 총각이 만포의 처녀네 처마 밑에서 강둑으로 나와 달라고 수작의 휘파람을 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통행증이나 여권 혹은 비자가 필요한 국경이 아니었다면, 강을 사이에 둔 두 마을 사람들은 삶과 운명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강은 국경이 되고 말았다. 국경이 되어 운명을 함께 나누던 발걸음을 막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물안개는 피어오르고, 허공으로 솟아오른 물안개는 영하 30도의 추위에 순식간에 얼어 안개눈이 되어 하늘하늘 내려와 속절없이 쌓였다. 강변을 따라 늘어선 버드나무 가지마다 안개눈이 쌓여 황홀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풍경 속에는 그러나 상처가 가득했다. 미나가 압록강에서 올라왔다. 두 눈이 벌겋게 부어 있었다. 울었느냐고 묻자 고개를 돌렸다.

그 여자는 어디로 갔을까?

강변에서 조금 들어온 거리에 자리 잡은 식당마다 들러 그 여자를 찾았다. 이름도 성도 모른다는 것이 절망스러웠다. 나의 부주의만을 탓하기에는 그 여자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 깊었다.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했지만 영혼과 육체에 드리운 온갖 상처에도 불구하고 첫 남자를 잊지 못하겠다는 촌 아낙네의 풋풋함을 끝내 찾지 못했다. 


심양 연변가(延邊街), 허름한 아파트의 더러운 유리창으로 보는 세상은 그러나 아스라했다.

사람처럼 늙어가는 아파트 뒤로 새로운 건물이 솟아오르고 있다. 언젠가는 낡고 더러운 이 유리창도 산산이 깨어져 기억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고 말 운명이었다. 집안에서 돌아오자 미나는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그 여자를 찾지 못하고 다음 날 첫차를 타기 위해 조선여점에서 잘 때, 미나는 자신을 탈북자라고 말했다. 머리카락이 쭈볏 섰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집안이 고향이란 말은 거짓말이었고, 함흥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고 했다.

미나는 한성안마로 일을 하러 나갔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국에 갈 수 있다는 미나의 말은 절박했다. 내가 전화를 하면 곧 출장안마를 나올 터였다. 이 아파트는 한 달만 동거하면 미나를 한국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어느 한국인 사업가가 빌린 것이라고 했다. 한성안마에 전화를 걸어야 하는데, 나 역시 그 한국인 사업가와 다를 바 없는 수컷이 아닌가 싶어 자꾸만 망설여졌다. 아니 나는 정확히 수컷이었다. 미나한테 함흥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듣기 위하여 출장안마비를 지불해야 했다. 바람이 불었고 유리창이 흔들렸다.

더러운 유리창 사이로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응시했다. 곧 함박눈이 쏟아질 듯 하늘은 흐렸고 사람들의 발길은 끊어져 있었다. 자전거들이 잔설 속에 서 있다. 꿈의 마을로 달려갈 수 있는 자전거 한 대를 미나한테 선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저 건너 아파트의 창문마다 사람들이 살고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하니 콧등이 시큰하게 울렸다. 어둠과 함께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나는 끝내 한성안마로 전화하지 않았다. 미나를 더 이상 기만하고 싶지 않았다. 이 아파트에 더 있을 이유도 없었기에 가방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눈 내려 어두워서 길을 잃었네.’1)

나는 조용히 노래를 부르며 눈 속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그 때, 불쑥 미나가 나타났다. 

“신라면 사 왔어요. 먹고 싶댔잖아요.”

라면이라는 말에 바보처럼 돌아섰다. 다시 아파트로 들어가면서 미나한테 아무 것도 묻지 않기로 했다. 미나는 주방에서 라면을 끓였고 나는 창가에 서서 눈 내리는 저녁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라면 끓는 냄새가 풍겨 왔고, 배가 몹시 고팠다.《문장 웹진/2008년 2월호》


1) 정호승의 「맹인부부가수」중에서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