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들

 

테러리스트들

― 암살자 3




손홍규




누나의 방은 어김없이 축축했다. 책장이 서 있는 벽 위쪽부터 천장까지 곰팡이 먹은 벽지가 부풀어 올라 있었다. 냉장고에서 흘러나온 물이 식탁 아래까지 적시고 있었다. 창문틀에서 벽을 타고 흘러내린 빗물은 침대 발치까지 이르렀다. 현수는 수백 년 동안 심해에 잠들어 있다가 발견되어 방금 인양된 보물선의 선실 같은 누나의 방을 조심스럽게 거닐었다. 그래도 양말이 젖었다. 그는 개수대로 다가가 수도꼭지를 완전히 젖혔다. 한 방울씩 떨어지던 물이 그쳤다. 젖은 양말을 벗어 욕실에 던져 놓고 마른 걸레를 찾아 물이 흥건한 식탁 아래와 냉장고 앞, 그리고 침대 주변을 닦았다. 걸레를 쥐어짜니 더러운 물이 주르륵 나왔다. 누나는 이런 곳에서 죽으려고 했다. 

 

 

그는 책상 앞에 다가가 펼쳐진 잡지를 집어 들었다. 왜 펼쳐 놓았을까. 자신이 주검으로 발견되었을 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펼쳐져 있는 쪽은 화려한 의상을 입은 여자 연예인들의 화보로 채워져 있다. 연예인이란 맨몸이 더 화려하다는 걸 잘 아는 사람들이다. 현수는 누나의 꿈이 연예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다 고개를 저었다. 누나는 한 번도 그런 꿈을 가져본 적이 없다. 잡지에는 메시지가 없다.

그는 침대 위 이불을 아무렇게나 둘둘 말았다. 그걸 베개 삼아 누웠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노라니 지구가 움직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누나가 자살을 결심했던 건. 이처럼 지구가 분주한데도 한가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존재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곳이 누나의 유허지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눅눅한 침대에서 누나의 냄새가 엷게 피어올랐다. 그의 이마에 주름살이 잡혔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은 불투명 유리창에 막혔다. 한동안 그곳을 노려보던 그는 이내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바깥쪽 창문까지 열 필요는 없었다. 맞은 편 옥상 난간 위에 적갈색 개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창문 맞은 편 건물은 반지하가 없는 3층 건물이었고, 누나의 방이 있는 건물은 반지하가 있는 4층 건물이었다. 누나의 방은 4층이라 맞은 편 옥상과 얼추 눈높이가 맞았다. 누나가 말한 개가 바로 저 개구나. 그는 바깥쪽 창문도 열었다. “몰라, 그냥 개와 눈길이 마주쳤어.” 그가 왜 죽지 않았냐고 비꼬았을 때 누나는 이렇게 말했다. 죽기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누나에게는 꼭 그렇게 말이 엇나가곤 했다. 그는 개? 하고 되물었다. “그래, 개. 불개였어.” 그가 보고 있는 개는 오래 전부터 맞은 편 건물 옥상에 살았다. 그러니 인사를 해야 하는 건 개 쪽이 아니라 현수 쪽이다. 개는 낯선 사람을 보았을 때 으레 드러내기 마련인 경계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개가 자신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쪽에 사람이 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할 만큼 무언가에 골몰해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사색하는 개라. 그는 멍멍 소리를 낸 뒤 창문을 닫았다. 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짐승은 사람과 달리 얼굴만으로 암컷인지 수컷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표정을 읽을 수는 있다. 저 무심한 얼굴은 간섭하지 말라는 뜻일 게다. 그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는 잠을 청할 때마다 무의식에 처박혀 있는 기억이 떠올라주기를 바랐다. 불행히도 그는 다섯 살 이전을 기억할 수가 없다. 그게 불행한 이유는, 다섯 살 때까지는 그의 집안이 부유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흔한 몰락의 길을 걸어 내려갔다. 빚보증을 섰다가 집을 날렸고, 사업이 망해 어머니가 감옥에 갔다. 어머니 앞으로 회사를 명의이전 해 둘만큼 용의주도했던 아버지는 결국 재기의 기회를 잡지 못한 채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다. 감옥에서 풀려나온 어머니는 딸과 아들을 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유치장에서 칵 목매달아 죽지 못하고 살아 돌아온 건 다 너희들 때문이다.”

그 뒤로 세 식구는 길이 내려다보이는 방에 살아 본 적이 없다. 지구의 틈새에서만 살았다. 반지하방으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갈 때면 지구의 틈새로 내려가는 기분이 들곤 했으니까. 지금도 그의 누나는 손전화가 걸려오면 자신도 모르게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연다고 했다. 반지하방에서 살던 시절 몸에 밴 습관이다. 그 점에서는 현수도 마찬가지다. 그가 똑바로 앞을 보고 있어도 사람들은 그에게 턱을 치켜들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반지하방에서 살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는 없었다.

어린 남매를 두고 죽을 수 없다던 어머니는 정말로 죽지 않고 악착같이 살았다. 그 억척스러움을 대신할 수 있는 건 ‘개처럼’이라는 말뿐이다. 어린 시절, 그는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어머니를 보며 정말 자신 때문에 죽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 덜컥 겁이 나곤 했다. 그러니까 그는 차라리 어머니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늘 그랬던 건 아니다. 돈 때문에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모욕을 받았던 날이거나, 군것질을 하기 위해 몰려가는 친구들 무리를 슬그머니 빠져나와 홀로 돌아왔던 날이거나. 그런 날이면 현수는 몇 푼의 용돈조차 주지 못하는 어머니가 가소로웠다. 미워하지는 않았다. 미움은 금세 연민으로 바뀐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우리 걱정 하지 말고 그냥 편히 눈 감으세요. 이렇게 말하고 싶은 날도 많았다. 언젠가는 그 말을 입 밖에 꺼내기도 했다. 어머니는 놀라 펄쩍 뛰지도 않았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지도 않았다. 다만 잇새로 침을 뱉듯이 빌어먹을 자식이라고 날카롭게 대꾸했을 뿐이다. 그가 고등학생일 때, 어머니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 어디선가 거렁뱅이처럼 목숨을 연명하고 있으리라 여겼던 남편이 다른 여자와 버젓이 살림을 차려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어머니는 부리나케 방을 뛰쳐나갔다. 조금 뒤 어머니는 되돌아와 그에게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자고 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앞세워 옛 남편의 마음을 붙잡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현수는 십 년 넘게 잊고 살아 온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아버지 역시 죽고 싶으나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일 게 뻔했으니까. 며칠 만에 돌아온 어머니는 아무도 없는 반지하방에서 쥐약을 먹었다. 그는 병원 응급실에서 누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거봐, 내 말이 맞지? 우리 때문에 사는 게 아니었어.” 누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의 뺨을 때렸다. “이번만 봐 줄게. 하지만 다시는 내 몸에 손대지 마. 그 손목을 분질러 줄 테니깐.”

설핏 잠이 들었던 그는 누군가 앓는 소리에 뒤척이다 눈을 떴다. 그는 창문을 보았다. 닫았다고 생각했는데, 안쪽 창문이 열려 있었다. 끙끙거리는 소리는 그쪽에서 들려왔다. 바깥 창문을 열자 소리가 좀 더 분명해졌다. 강아지들이 젖 달라고 떼쓰는 소리다. 암컷이구나. 어쩌면 누나는 저 개의 모성을 간파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 모성이 지구와는 전혀 상관없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걸 섬광처럼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핑계로는 너무 유치하지 않은가.


그가 어머니에게 걱정 말고 편히 눈 감으시라고 말했던 날 혹은 어머니가 그에게 빌어먹을 자식이라고 말했던 날로부터 며칠 뒤, 그는 자신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떠돌이 개를 보았고, 그 개가 어머니를 닮았다는 걸 깨달았다. 공포이거나 적의이거나, 개는 어머니처럼 송곳니 부위의 윗입술만 살짝 들어 올린 채 으르렁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어린 현수는 개처럼 살아남겠다던 어머니가 정말 개가 다 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현수는 주먹을 쥐었다. 개를 때리고 싶었다. 어머니일지도 모르는 개다. 떠돌이 개는 때려도 된다. 그래도 이 개가 만약 어머니라면. 이처럼 머뭇거리고 있을 때 현수 또래의 사내 녀석들이 나타났다. 녀석들은 다짜고짜 개를 발로 찼다. 그냥 찬 게 아니라 퍽 소리가 나도록 되우 찼다. 현수는 가혹하달 수도 있는 일방적인 구타 장면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희열을 느꼈다. 개가 도망친 뒤 녀석들은 밀림에서 조난자를 구한 사람들처럼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괜찮냐고 물었다. 짜아식, 개 따위한테 쩔쩔매고 있어. 이렇게 말한 녀석은 아마도 종호일 것이다. 그들과 친구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들은 친구다.

중국집 배달원인 종호는 ‘한 놈만 골로 보낼 거야, 딱 한 놈만’을 입에 달고 살았고, 휴학생 재남은 ‘한 방으로 여러 놈을 쓸어버리는 방법이 꼭 있을 거야’를 달고 살았다. 그들이 여태 아무도 죽이지 못한 이유는, 반드시 저 세상으로 보내 버려야 할 만큼 악독한 한 놈을 찾지 못해서이고, 단 한 번에 여러 명을 골로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해서이다. 방위산업체에 다니는 용접공 석우는 ‘너희들이 하면 나도 한다’를 입에 달고 살지만,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역시 아무 일도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 외에도 몇 명 더 있었지만, 지금 만날 수 있는 친구는 이 셋뿐이었다.

보름 전, 한 명이 귀환했다. 일병 정기휴가를 나온 운전병 승준이다. 승준을 이틀 동안 친구들은 먹여 살렸다. 사흘째부터는 돈이 별로 들지 않는, 피시방이나 만화방에서 함께 시간을 죽였다. 현수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열흘이 지나자, 그들은 휴가병이 부대로 복귀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그 사이 현주가 자살을 시도했고, 그에게는 친구들 사이를 빠져 나올 수 있는 이보다 훌륭한 핑계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우르르 몰려와 병실을 점거한 뒤 냉장고를 뒤져 주스를 마시고 사과를 깎아 먹었다. 승준은 현주의 손목이나 이마를 쓰다듬으며 지분거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날짜를 꼽아보니 승준이 부대에 복귀해야 할 날이 하루 지나 있었다. 지난 보름 동안 ‘다음에 나오면 제대로 한번 노는 거야!’를 입에 달고 살았던 승준이다. 처음에는 그들도 승준을 달래보았다. ‘복귀 안 할래 정말? 너 이 새끼 내가 말로만 하는 줄 알지? 내가 죽어도 너만은 골로 보내고 말 테야!’, ‘개새끼, 나랑 함께 가자. 너희 중대원들까지 한방에 보내줄 테니깐.’, ‘얘네들 한다면 진짜 하는 거 알지? 그럼 나도 어쩔 수 없다. 따라가야지 뭐.’ 현수는 누가 한 말인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루 동안 꼬박 그들에게 시달린 승준은 두 팔을 번쩍 들고 선언했다. “한 번만 더 복귀하라고 말하면, 너희들 다 죽여 버리고 나도 죽어 버릴 거야.” 그들은 입을 딱 벌리고 승준을 바라보았다. 군 생활 하는 동안 제법 근육이 붙은 승준이다. 근육이라면 그들도 남 못지않다. 하지만 승준은, 가난한 그들 속에서도 더욱 돋보이는 가난뱅이다. 가난뱅이 중의 가난뱅이. 그들은 문병을 간 게 잘못이었다고 투덜댔다. 죽음을 너무 쉽게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종호는 자신과 함께 지내는 사람들이 많아서 안 된다고 했다. 재남은 휴학생이라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모두들 혼자 자취하고 있는 석우를 보았다. 석우는 자신이 출근하고 나면 심심할 테니 안 된다고 했다. 현수가 끼어들어 친구들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었다. 헌병이 가장 먼저 찾아갈 곳은 승준의 집이고 그 다음이 바로 종호 너의 방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우리들의 방은 가장 안전하지 못한 곳이다. 그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은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승준의 전역 축하 파티를 열었다. 국방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민간인이 되기를 선택한 승준이를 위하여! 눅눅해져 똑바로 서지 못하고 고꾸라지는 종이컵처럼 그들도 하나 둘 허리를 꺾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누군가 저길 봐! 라고 외쳤다. 그들은 엉금엉금 기어 옥상 난간 쪽으로 다가갔다. 난간을 잡고 몸을 일으켜 지는 해를 보았다. 태양은 방금 총구에서 빠져 나온 탄환 같았다. 나란히 붙어 해 지는 서쪽 하늘을 보는 그들은 황야의 무법자 같기도 했다. 노을빛은 스란치마처럼 대지의 구석구석을 톺으며 달려와 그들을 외설적으로 뒤덮었다. 그 안에는 누설된 천기가 있을지도 모른다. 종호가 물었다. “붙잡히면 몇 년이지?” 승준이 대답했다. “몇 년은커녕 군기교육대나 다녀오면 끝일 걸?” “그럼 되도록 오랫동안 붙잡히지 않아야겠구나.” “그걸로는 부족해. 삼 년 이상 실형을 선고받으면 불명예제대와 동시에 일반 교도소로 이감되거든.” “확실한 거야?” “몰라, 그렇다고들 하대.” “그럼 몇 가지 사고를 쳐야겠네.” “그런 셈이야.”

그들은 고개를 돌려 일제히 현수를 보았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묵계가 있었다. 자신들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현수만은 무사해야 한다는. 그건 아마도 학생 시절에 그들 가운데 현수의 성적이 가장 좋았기 때문일 테지만, 어떤 이유로 생겨났는지는 잊힌 채 하나의 통과의례로 굳어졌다. 현수는 성가셨다. 그의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지 뻔히 알면서도 친구들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그는 주홍빛으로 물든 친구들의 얼굴을 보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삶은 우리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들이대고 있는 암살자와 같은 거야. 하지만 보통의 암살자와는 다르지. 결코,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니까. 단지, 시늉을 할 뿐이지. ……우리는 끊임없이 살해의 위협에 시달리면서 암살자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어. 암살자의 뜻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 암살자는 방아쇠를 당기고 말 테니까. 하지만, 아무도 몰라. 정말 그 총에 총알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 공포를 견딜 수 없거나, 혹은 꼭두각시처럼 살기 싫어졌을 때, 우리는 방아쇠에 들어 가 있는 암살자의 집게손가락에 자신의 집게손가락을 올려놓게 되지. 지금이 그 순간일지도 몰라.”

그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현수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침묵을 지킨 것이지만, 어쨌든 그들도 현수가 비겁하게 자신만 빠지겠다고 말한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현수는 누나를 떠올렸다. 그는 알 수 있었다. 누나도 아직 그 총에 총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그들이 들뜬 마음으로 계획을 세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으로 그럴듯한 명분이 생겼다. 그들의 기억 속에서는 까맣게 지워졌지만, 오래전 그들의 첫 테러 대상은 개였다. 어린 현수가 떠돌이 개와 마주쳤던 날, 그들은 개에게 물린 친구의 복수를 위해 무작정 아무 개나 찾아 떠돌고 있었던 거다. 애완견은 주인과 너무 가까이 있거나, 혹은 덩치가 커서 건드릴 수 없었다. 떠돌이 개를 찾아 그들도 떠돌이가 되었고, 마침내 현수와 맞닥뜨린 개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은 떠돌이 개를 지칠 때까지 때려주었으나 얼마 안 되어 그 기억은 사라졌다. 누군가를 때렸다는 사실만 잊는 게 아니라 그들은 종종 자신들이 누군가에게 맞았다는 사실도 잊었다.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의 계획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종호가 가장 최근에 죽인 사람은 중국집 사장이다. “골목길에서 말야 갑자기 차가 튀어나오는 거야. 내가 운동신경이 좀 좋냐? 잽싸게 미끄러졌지. 마후라 찌그러지고 철가방은 날아가고, 정강이는 대패로 밀어버린 것처럼 까지고. 피를 철철 흘리며 돌아갔는데 우리 사장 새끼 눈도 깜짝 안 하더라.” 재남은 나흘 전 오후 세 시 무렵 녹번역과 불광역 사이를 달리던 지하철 다섯 번째 칸에 탄 사람들을 죽였다. “어떤 아줌마가 내 앞에 서잖아. 비켜달라는 거겠지. 대한민국 박카스 청년이 모른 척 할 수야 없지. 헌데 이 아줌마가 중얼중얼 기도를 하는 거야. 뭐라고 했는지 알아? 자신이 앉아서 갈 수 있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어쩌구 하더라. 배알이 꼴려서 가만히 앉아 있었지. 내가 자리를 비켜줘도 나한테는 눈곱만큼도 고마워하지 않을 거잖아. 그랬더니 더 큰 소리로 기도를 하는 거야.” 석우는 중국집 사장도 죽였고, 3호선 지하철 다섯 번째 칸에 탄 사람들도 모두 죽였다. “그 새끼 차에다 시한폭탄이라도 설치해 둘까? 내가 지하철에 가서 그 문짝 다 용접해 버릴까?”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 오직 그들의 계획 속에서만 죽을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실행하지 못한 계획들이 실행한 계획들보다 훨씬 많았다. 그들은 몰랐지만, 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분노는 반 가까이 사그라졌다. 나머지 반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이번에도 시작은 예전과 다를 게 없었다. “국회에 가서 싸가지 없는 새끼 한 놈만 골라 족쳐  버리는 거야!” “미친 새끼, 도토리 키 재는 게 낫겠다. 그냥 다 쓸어 버려!” “한 놈만 족치든 전부 다 족치든 말만 해.” 이런 식으로 그들은 실행에 옮기지 못할 계획들만 늘어놓았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러다 결국 공중전화 박스나 지구대의 입간판을 부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리라는 것을. 승준이 이 지리멸렬한 모의에 비수를 박았다. “나는 강간을 하고 싶어.” 그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의 귀에는 ‘나는 사랑을 하고 싶어.’로 들렸지만 하고 싶으면 하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그들은 한번도 ‘강’으로 시작하는 말을 내뱉은 적이 없다. 강도, 강간, 강탈……. 강력밀가루라는 낱말이 주는 어감 때문에 국수를 앞에 두고 정말 먹어도 되나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는 그들이다. “너 이 새끼 군대 가더니 간뎅이만 커졌구나.”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야유를 보냈다. “그거면 삼 년 아니라 오 년도 충분하지.” 하지만 그들의 귓가에는 ‘강간’이라는 낱말이 끈덕지게 들러붙어 있었다. 현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승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누군데?” 승준은 얼굴을 붉혔다. “있어. 그러고 싶은 애가.” 그들은 자신들이 ‘강’으로 시작하는 낱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쓸 수 있다는 데 놀랐으며, 쓰면 쓸수록 그 낱말이 주는 미묘한 힘에 붙잡히는 걸 어쩔 수 없었다. ‘강’이라는 부드러운 음과 ‘간’이라는 단절의 느낌을 주는 음이 어울려 부드럽고도 단호한 힘으로 그들을 잡아당겼다. 이제 누구도 ‘강’자를 머뭇거리며 내뱉지 않았다. ‘강’의 홍수라고나 할까. 그러면서 그들은 왜 지금까지 자신들이 그런 생각을 못했는지, 기껏해야 코흘리개의 사탕을 뺏고, 노점상에서 과일을 훔치고, 고장 난 공중 전화기에서 동전을 빼 내는 것으로 만족했는지, 그런 과거의 자신들이 한심하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그들은 이미 강간을 한 사람들처럼 기뻐했고, 자신들 속에 자신도 모르던 악마가 있다는 사실에 흡족해 했다. 해는 꺼지고 아파트 단지는 켜졌다. 그들은 들킬세라 발소리를 죽여 계단을 내려왔고, 한꺼번에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들이 보폭을 넓게 하여 걷는 건 심장이 달리는 말처럼 뛰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려는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들은 불량배로 보이길 원하지 않아 두 명, 세 명 짝을 지어 거리를 두고 걸었으나 아파트 단지 모퉁이 놀이터에 이르러 결국 한 무리가 되고 말았다. 앞서 걷고 있던 종호와 석우가 시소를 타고 있는 아이들의 과자를 뺏어먹느라 멈춰 선 탓이었다. 다섯 명의 사내가 놀이터에 모이게 되었고, 아이들은 지니고 있던 과자를 하나도 남김없이 그들에게 뺏겼다. 그들은 즐거웠다. 자신들이 이 세상을 놀라게 할 수도 있는 사람들이라는 데 자부심까지 느꼈다. 그때 석우가 누구에게랄 것 없이 모두를 돌아보며 물었다. “근데, 강간도 테러라고 할 수 있냐? 그건 양아치 새끼들이나 하는 짓이잖아.” 그들은 과자 씹기를 멈추고 그네에, 시소에, 벤치에 앉았다. 이윽고 그들은 나 역시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며, 사실 그런 질문을 하고 싶은 건 나였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모두 현수를 보았다. 그는 오래 전부터 이런 문제를 도맡아 해결해 왔다. 공중전화 박스를 부수면 세금이 축나고, 세금이 축나면 국가 경제가 어려워지고, 국가 경제가 어려워지면 사회가 혼란해지고, 그게 바로 테러라는 걸 가르쳐 준 사람도 현수였다. 물론 현수나 그들 모두 테러 이후 어떤 세상이 올 것인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번에는 그들도 현수의 말에 쉽게 수긍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론은 쉽게 났다. 그들이 스스로를 양아치라고 인정하면 되는 것이었다. “별 걸 가지고 다 고민했네. 머리에 쥐난다. 그래, 우리 같은 자식들이 양아치지 양아치가 따로 있냐?” 이제 그들을 가로막는 질문은 없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반드시 강간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생각해 내려 하지 않았다. 삶은 누구에게도 호의적이지 않다는 말은 사람은 누구나 죽게 마련이라는 말처럼 무의미했다. 강간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뒤로, 그들을 이끄는 것은 계획 그 자체였지, 강간의 참된 목적이나, 숨겨진 의미 따위가 아니었다. 물론 그들은 헤어진 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생각에 잠길 것이다. 과연 인간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어떤 본성이 있는지, 본성이라는 게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심장처럼 부록으로 달려 있는 것이라면 강간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본성의 발로인지 따져 볼 것이다. 이 물음에는 끝이 없으므로, 그들은 마침내 더 이상 자문하길 그만두고 쓸쓸하게 뒤척이며 잠이 들었다가 악몽을 꾸고 소스라치며 깨어나기도 할 것이다. 자신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고는 중얼거릴 것이다. 자신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알고 싶다고. 그들은 범죄를 계획하는 것만으로도 탈진하기 쉬운, 겨우 혹은 간신히 스물 하나의 청년들이니까. 그들은 다음 날 만나기로 약속한 뒤 현수와 승준을 여관방에 던져놓고 뿔뿔이 흩어져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갔다. 지난밤은 유난히 어둠이 깊었다.


현수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는 상한 음식들을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강아지들은 계속 낑낑거렸다. 개가 난간에서 옥상으로 뛰어내린다. 이윽고 낑낑거리는 소리가 그쳤다. 그는 발바닥에 와 닿는 선득한 느낌에 우뚝 섰다. 냉장고에서 또 물이 흘러내렸다. 이 방은 물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와 같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한 모금씩의 물을 뿜어낸다.

누나는 대학 시절 내내 친구들의 방에 얹혀살았다. 현수도 몇 번 누나의 것이 아닌 누나의 방에 가 본 적이 있다. 그 방의 분위기가 원래 어땠는지 알 수 없었으나, 누나가 머무는 곳은 세 식구가 함께 살던 반지하방과 흡사했다. 누나의 친구들은 한결같이 축축해서 못 살겠다고 말했다. 그는 상상할 수 있었다. 머리를 감은 뒤 물기가 뚝뚝 듣는 채로 방안을 서성이는 누나를, 그런 누나를 차츰 견디기 힘들어 하는 그 방들의 진짜 주인들을. 아무도 모른다. 수도꼭지를 잠가도 왜 매번 헐거워지는지, 새로 산 냉장고에서 왜 물이 흘러나오는지, 창문을 꼭꼭 닫아도 왜 빗물이 창틀로 스며드는지……, 누나가 왜 그러는지. 현수도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어린 시절, 남매는 어머니 없는 방에서 서로를 껴안고 잠드는 날이 많았다.

어느 해 장마였다. 비가 내렸고, 또 내렸다. 어머니는 오지 않았고 반지하방으로 통하는 계단으로 콸콸콸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현관문 아래로 스며든 물은 이내 현관 바닥을 채운 뒤 마루로 기어 올라왔다. 그래도 남매는 깨어나지 않았다. 물은 싱크대 아래까지 흘러 들어갔고 이내 문턱을 넘어 방 안까지 침입해 들어왔다. 대자리가 젖었고 남매를 덮고 있던 홑이불이 젖었다. 먼저 현수가 눈을 떴고, 조금 뒤에 그의 누나가 눈을 떴다. 누나는 눈을 비비며 동생에게 물었다. “여기가 어디야?” 현수도 궁금했다. 정말 여기가 어디일까. 사람이 사는 곳이 맞는 걸까. 정녕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지구의 틈새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걸까. 남매는 까치발로 집 안을 돌아다녔다. 물은 쉬지 않고 흘러들어왔다. 그때 어린 남매를 사로잡은 건 이 물이 자신들을 삼킬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아니었다. 남매는 앞으로도, 어쩌면 죽을 때까지, 이처럼 무례하게 밀려드는 물을 퍼내는 데 온 생을 허비할지도 모른다는 예감 때문에 두려웠다. 현수는 누군가 누나에게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은 공포의 원인이 되는 대상을 피하지 않고 맞닥뜨리는 것이라고 조언해 줬을 것이라 믿고 있다. 누나는 그렇게라도 물과 친해지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다시 축축해진 누나의 방을 조심스럽게 거닐었다. 그래도 물은 사방 벽에서 흘러나오기라도 하듯 방바닥을 적셨다. 그는 침대 끝에 앉았다. 방이 젖는 속도가 조금 줄어든 기분이었다. 공포를 피하지 않고 대면하여 극복할 수 있었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도 극복할 수 없었다면, 누나는…… 이 방이…… 얼마나…… 두려웠을 것인가. 극복할 수 없는 공포를 날마다 대면하며 살아야 했던 누나. 그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아귀에서 붉은 색 티셔츠가 구겨졌다. 누나는 자신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던 게 아니라 미래의 유허지에서 스스로 기록이 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자고, 겨우 그렇게 살기 위해 지상에서 방을 얻었단 말인가. 그의 손전화기가 울렸다. 승준이다. “여관에서 쫓겨났어. 어디로 가야 하지?” 그는 승준과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창문 밖으로 동살이 잡힐 무렵 쓰러진 승준을 내버려 두고 누나의 방으로 왔던 것이다. 정오가 지났다. 퇴실 시간이 지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로 와.” 그는 승준에게 길을 알려주었다. 친구들은 각자의 일이 있다. 일을 마친 뒤에야 모일 수 있을 테니, 아직 시간은 넉넉했다. 그는 누나의 책상을 정리했다. 쓰다 만 시나리오도 읽어 보았다. 사랑을 다룬 이야기다. 누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들. 섹스를 염두에 두지 않고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소나기의 주인공들뿐이다. 하지만 소나기는 자주 내리지 않는다. 그리고 손에 우산이 없어야 한다. 그 비에 젖지 않고서는 소나기라 부를 수 없을 테니까. 누나는 차라리 자신의 이야기를 써야 했다.

쓰다 만 쪽에서, 혹은 그게 정말 끝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낯익은 구절을 만났다. 비련의 여주인공이 또한 비련의 남자 주인공에게 이별을 선언하면서 하는 말이었다. “누가 너를 육삼빌딩 꼭대기에서 던진다면, 바닥에 떨어져 온몸이 으깨어지는 순간까지 눈 감지 않고 버틸 자신 있어?” 남자 주인공이 머뭇거리자 여자 주인공이 덧붙인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눈은 세상을 볼 수 있대. 난 어둠 속에서 죽고 싶지는 않아.” 현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누나가 그에게 했던 말이다. 자살에 실패했던 어머니의 병실에 아버지가 딱 한 번 나타난 적이 있다. 아버지는 잠든 어머니 침대 옆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저 중년의 사내가 아버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내는 고개를 들어 창문 쪽을 보았다. 그곳에는 막막한 하늘밖에 없었다. 사내는 끝내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어머니의 침대에서 다섯 걸음 떨어진 빈 침대에 눈 아래까지 이불을 끌어당긴 채 누워 있었다. 제법 규모가 있는 병원이었지만, 그곳에 입원한 사람들은 대개 보험금을 노린 가벼운 교통사고 환자들이었다. 그들의 침대는 명패만 걸린 채 늘 비어 있었다. 사내가 병실을 나간 뒤 그는 사내가 한동안 눈길을 주었던 그 하늘을 보았다.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울해지는 하늘이었다. 조금 뒤 누나가 숨을 헐떡이며 병실로 들어왔고, 그에게 아버지를 보았노라 말했다. 그는 사내가 아버지였다는 걸 확신했지만, 그 사내가 병실에 들렀노라 말하지는 않았다. 가끔은 아비와 아들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게 삶에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누나는 창가로 다가가 하늘을 향해 팔을 내밀었다. “저 사람이 바로 우리 아버지야. 현수야, 이리 와서 봐. 응?” 그는 창가로 다가가는 대신 화를 냈다. “목소리 좀 낮춰. 엄마 자고 있잖아.” 누나는 그를 흘겨보았다. “너, 무서운 거지? 보고 싶지 않은 거지?” 그리고 시나리오의 여자 주인공처럼 말했다.

누나도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게다. 현수는 누나에게 시나리오를 읽었다는 걸 내색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누나는 이렇게 처음으로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근처에 도착했다는 승준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그는 대충 바닥을 걸레로 닦고 창문을 닫았다. 나가려다 우뚝 멈춘 그는 되돌아와 냉장고를 뒤졌다. 그의 손에는 마른 오징어가 쥐어져 있었다. 그는 창문을 열고 맞은 편 옥상에 오징어를 던졌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승준은 여태 베개자국이 남아 있는 얼굴로 그를 맞았다. “아무도 전화를 안 받아.” 그는 고개를 끄덕인 뒤 승준을 해장국 집으로 이끌었다. 승준은 숟가락으로 국을 뒤적거리기만 할 뿐 먹지는 않았다. “휴가 나와서 이틀 동안은 정말 밥이란 게 이렇게 하얀 거구나 싶었어. 군대에서는 보리가 섞인 밥을 주잖아. 근데 이제 그런 느낌이 사라졌어. 내가 정말 군인이던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야.” 현수는 친구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시간이라는 거, 정말 괴물인 거 같아. 그토록 벗어나고 싶은 군대였고, 이번에 나오면 정말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작정이었는데, 조금은 그립기도 하거든. 아, 씨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밥이나 먹자.” 승준은 언제 깨작거렸느냐는 듯이 허겁지겁 숟가락질을 했다. 그는 언제부터 승준과 알고 지냈는지를 떠올려 보았다. 가물거린다. 기껏해야 십 년 안쪽의 일일 텐데, 떠돌이 개를 구타하던 녀석들 가운데 승준만을 따로 떼어 낼 수가 없다. 사실 모든 게 그랬다. 그들이 친구가 된 뒤 계획을 세웠다가 취소하기를 반복하면서, 그 계획을 맨 처음 꺼낸 게 누구였는지, 취소하자고 말한 건 누구였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들은 무리가 되었을 때, 낱낱의 개인이 아니라 무리 그 자체일 뿐이었다. 어쩌면 신이 허락한 유일한 희망은 친구일지도 모른다. 무리 속에서 그들은 위안을 찾았고, 그걸 위해 무리를 이루었다. 가끔은 친구들 가운데 부자가 한 명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다른 사내들처럼 오로지 여자를 후리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파출소에 끌려가더라도 고개를 뻣뻣이 든 채 난장판을 벌이기도 하고, 적당히 분노하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들은 함께 있을 때 유쾌해 본 적이 없다. 누군가에게 축하할 만한 기쁜 일이 생기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위로해 줘야 할 일은 끝이 없이 생겨났다. 누군가의 누나가 자살을 시도하고, 누군가의 동생이 가출하고, 누군가의 부모가 이혼을 하고, 누군가의 애인이 변심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한 가지씩을 파괴했다. 손으로 꼽을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지구대의 입간판과 자동차의 후사경이 그들의 발길질에 깨지고 날아갔다. 또 그만큼의 상처를 입었다. 종호는 손목 인대를 상해 비 내리는 날마다 고통을 호소했고, 석우는 발등이 찢어져 두 달 동안 슬리퍼만 신고 다닌 적도 있으며, 발목을 삔 재남과 발가락뼈가 부러진 승준은 한동안 깁스를 하고 다녀야 했다. 그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방식도 진화했다. 누군가의 동생이 아직까지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음을, 누군가의 누나가 아직도 가출하지 않았음을, 누군가의 부모가 여전히 부부임을 축하해 주고 기뻐해 줬다. 이것이 가난한 자들이 사는 방식이라는 걸 모르면서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스스로 체득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들도 자신들이 왜 가난한지를 잊게 될 것이다. 그래야 살 수 있을 테니까.


승준은 양말이 젖어도 무심했다. 그가 양말을 벗으라고 일러줬어도 승준은 어깨를 으쓱했을 뿐이다. 그 사이 친구들은 하나 둘 현수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지금은 바쁘니 일이 끝나면 연락하겠다는 내용들이었다. “생각보다 좋은 걸. 현관에는 금줄이 쳐져 있고 바닥에는 혈흔이 낭자하고 숨만 쉬어도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그런 곳일 줄 알았는데.” 승준은 멋쩍다는 듯 싱겁게 웃으며 침대에 앉았다. “누가 청소했나 봐. 피 한 방울 흘린 자국이 없네.” 현수는 무심히 대답했다. “글쎄, 어머니가 다녀가셨는지도 모르지.” 이렇게 말을 해 놓고 나니 정말 어머니가 왔다 간 게 아니었나 싶었다. 그는 말을 돌렸다. “지금쯤이면 너희 부대도 비상이 걸렸겠지. 집에서도 걱정이 많으시겠다.” 승준은 침대에 윗몸을 뉘고 두 발을 덜렁거렸다. “그런 생각 안 하려고 해. 생각이라는 거 말야, 사실을 과장하는 힘이 있어. 그래 봐야 나는 아직 아무런 사고도 안 쳤고, 지금 끌려가도 영창에 며칠 처박혔다가 나올 거니까. ……그런데 저 소리는 뭐지?” 그는 창문을 열었다. 승준이 그의 옆에 섰다. 개는 다시 난간에 올라와 있었다. 이번에는 개도 그들에게 관심을 보였다. 서쪽을 향하고 있던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보았다. “누나를 살려준 개야.” 그의 목소리가 웅웅거렸다. 건물과 건물 사이, 혹은 어떤 균열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틈으로 낙하하면서 이쪽 벽과 저쪽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그는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보았다. 쓰레기장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더럽고 좁은 공간으로 그의 시선이 추락했다가 탄성으로 튀는 고무공처럼 되돌아왔다. 승준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가래를 뱉었다. “이것도 병인가 봐. 난 저런 곳만 보면 침을 뱉고 싶다니깐. 근데 꼭 침을 뱉고 나면 그 침에 내가 맞은 기분이 들어.” 개는 잠시 그들에게 보여 줬던 관심을 잃고 다시 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개는 일몰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하루가 저무는 것이 일생이 저무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옆집도 저렇게 옥상에서 개를 길러. 그 개는 한 번도 옥상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어. 흘레를 붙고 새끼를 낳아 기르는 게 개가 하는 일이야. 새끼가 자라면 개장수가 오지. 그런 날이면 새벽부터 개가 짖어. 예감이라는 거겠지. 저 개도, 그런 개일 거야.” 승준의 목소리도 웅웅거렸다. 누나는 저 개를 불개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해를 삼키는 개처럼 파란만장한 삶이 저 좁은 옥상에서 펼쳐지리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개의 얼굴이 밝아졌다. 햇살이 개와 부딪히며 산산조각이 났고 그 파편들이 개 주위를 천천히 떠돌았다. 저물고 있다. 이제 친구들도 일을 마칠 테고, 밤이 이슥해지면 그들은 난생 처음 흥분하며 세웠던 계획을 실행에 옮기게 될 것이다. “봐, 개가 울고 있어.” 승준이 손가락으로 개를 가리켰다. 난간에 붙이고 있던 엉덩이를 일으킨 개는 그곳에서 네 다리로 버티고 섰다. 터럭들이 곤두섰다. 그 사이로 햇살들이 미끄러져 다녀 한 올 한 올 셀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니 제법 불개처럼 보였다. 그들은 이제 창턱에 팔을 괴고 개를 감상했다. 개가 정말 해를 먹을지, 혹은 그저 한두 번 짖는 것으로 끝내고 말지 알 수 없지만, 개가 해와 대결하려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는 해와 대결한다는 건, 그들이 강간을 하겠다는 것만큼 덧없어 보였다. 개는 난간에서 옥상으로 뛰어내렸다. 그들에게는 꼬리와 등이 보일 뿐이다. 조금 뒤 개는 다시 난간에 올라왔다. 개는 입에 강아지를 물고 있었다. 이내 강아지는 건물과 건물 사이, 혹은 세상의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들의 귀에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 역시 이쪽 벽과 저쪽 벽을 왔다 갔다 하며 솟구쳤기 때문에 웅웅거렸다. 개는 주저하지 않았다. 단호하고 결연한 어미 개는 자신의 새끼들을 어둠 속으로 차례차례 던져 넣었다. 그들이 소리를 쳐도 소용이 없었다. 학살은 순식간이었다. 여전히 주홍빛 햇살이 개의 몸에서 부드럽게 부서지고 있었다. 개의 터럭은 광합성을 하듯이 그 빛을 빨아들여 붉게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정말, 불개가 맞구나. 승준이 그에게 물었다. “저걸 뭐라고 설명해야 돼? 저게 ……진짜 테러지?”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게 진짜 테러야.” 불개는 태양을 향해 한 번 짖고, 인간들이 사는 마을을 돌아보며 한 번 짖고, 마지막은 아마도 자신을 위해, 자신이 학살한 새끼들을 위해 그러듯이 하늘을 보며 짖었다. 그리고 지구의 균열 속으로 뛰어들었다. 틈새는 지상에도 있었다. 이내 조금 더 묵직하고 커다란 파열음이 들려왔다. 그들은 다리에 힘이 풀려 창문 아래 주저앉았다. 전율스러운 건 아니었다. 오히려 현요한 광경이었다고 표현하는 게 어울릴 듯했다. 그들은 불개의 절망이 무엇인지 몰랐다. 미처 불개의 입장이 되어보기도 전에 모든 일이 벌어졌다. 승준은 무릎을 끌어당겨 두 팔로 그러모은 뒤 고개를 꺾었다. 현수는 쥐약을 먹고 쓰러져 있던 어머니를, 아니 그 방을 떠올렸다.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어머니, 기어이 죽는구나 싶었다. 그가 서러웠던 건, 어머니가 죽음 직전에 이르렀는데,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시게 밝은 햇살이 어머니 옆에 부려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반지하방, 저 햇살은 어디로 들어왔을까. 사람들이 그 방을 반지상방이 아니라 반지하방이라 일컫는 이유를 알 수 있을 듯했다. 흰자만 가득했던 어머니의 눈에서 방금 그가 보았던 불개의 눈에서 읽은 것과 같은 어떤 결심을 보았다는 기억도 났다. 이제야 그는 인정할 수 있다. 어머니는 그와 누나를 버리고 도망갈 수도 있었다. 혹은 그와 누나에게 쥐약을 먹일 수도 있었다. 구급차가 올 때까지 그는 어머니 옆에 앉아 경련을 일으키는 손을 잡고 있었다. 어머니가 발휘할 수 있는 용기는 거기까지였던 셈이다. 현수는 자신도 어머니와 누나처럼 될까봐, 아니 병실에 찾아왔던 사내처럼 될까봐 두려웠다. 그는 누나에게 물어 볼 것이다. 살아남은 자의 쓸쓸함을 말하는 건 낯 뜨거우니, 아마도 그는 살아남은 자의 억울함에 대해 말하게 될 것이다.

“생각해 봤는데 말야, 내가 어떤 년 사타구니를 조져서 내 인생도 조진다는 게 좀 억울하지 않냐. 사실 그 년이 누군지는 몰라도 이 세상에서 꼭 없어져 버려야 할 악독한 년이라는 자신도 없고 말야.” 종호는 이렇게 에둘러 변명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너무 시시해. 삼천 명쯤은 가둬 놓고 해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준비가 부족해. 안 그러냐?” 재남의 대답이었다. “너희들이 꼭 하겠다면 당연히 나도 할 거지만, 그러니까 내 말은 너희들이 정말 할 건지 안 할 건지 그게 궁금하다는 거지.” 석우는 이렇게 내뺐다. 현수는 그들에게 승준과 함께 목격한 것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불개가 있었는데, 자기 새끼들을 다 던져 버리고 자살을 했어.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승준이가 부대로 복귀하겠대. 터미널에서 보자.”

그들은 버스터미널 분식집에서 물만두와 쫄면, 국수, 라면을 먹었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하루 만에 살이 내려 핼쑥해진 얼굴들이었다. 더는 강력밀가루라는 낱말에 가슴 한쪽이 섬쩍지근해지는 풋내기는 아니었지만, 그들은 눈을 자주 깜박거렸고, 자꾸만 헛손질을 했다. 그들에게 지난밤은 유난히 깊고 어두웠다. 잠든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 수 없다.

그들은 가난뱅이들의 왕인 승준의 어깨를 주물러주고 괜히 계급장을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어쨌든 작별의 의식을 치렀다. 승준은 ‘다음에 나오면 제대로 한번 노는 거야!’라고 말한 뒤 버스에 올랐고, 누가 말했는지 굳이 알아볼 필요도 없이, 괴롭히는 놈 있으면 그 새끼만은 꼭 족쳐 버려, 수류탄 까서 내무반에 던져 버려, 출동대기 중이니까 언제든 전화 해, 라는 말들이 버스 창문에 던져졌다. 승준은 창문에 얼굴을 대고 입을 쫙 벌려 웃었다. 저 새끼 돼지 같잖아, 라고 중얼거리며 그들은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들은 터미널을 빠져 나올 때는 으레 그래야 한다는 듯이 양쪽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건들거리며 걸었다. 방금 포경수술을 마치고 병원을 나선 소년들처럼. 당분간은 다시 넷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허락된 미래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까짓 거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간신히 혹은 겨우 스물 하나의 사내들이 서울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허청허청 걷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막 암살자의 집게손가락 위에 자신들의 집게손가락을 올려놓았다. 아직 그들이 발휘할 수 있는 용기는 여기까지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계획하고 무엇을 하든, 그들에게 허락된 것들이 사람이라는 존재에게 허락된 것들의 최대치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쏘아 보냈으나 끝내 찾지 못했던 탄환 하나가 유성처럼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나고 있다.《문장 웹진/200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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