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타주

 

몽타주 

― 슬로셔터 no.2



배지영




501호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문 앞을 지나는 발자국 소리가 멀어질 무렵 눈을 감았다. 드디어 소리가 사라졌다. 낯선 침묵이 방안을 메웠다. 몸이 눅진하게 녹아드는 듯했다. 옆집 남자가 집을 나간 다음에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또 다른 소리가 신경을 자극할 때까지 얕은 잠에 빠져 있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초인종을 눌러댔다. 내가 안에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듯했다. 어지간히 끈질겼다. 

 

 

“누구요?”

불쾌함을 담고 인터폰을 들었다. 모니터 위로 낯선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경찰입니다.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문을 열었다. 플래시가 터졌다. 눈이 부셨다. 나는 놀라서 얼른 문을 닫았다.

“걱정 마세요. 옆집을 찍는 거니까.”

사내는 문고리를 잡아 당겼다. 자신을 경찰이라고 밝힌 사내는 그러나 제복을 입지도 않았고 내게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 주지도 않았다.

“옆집 남자 알고 계시죠?”

빨간 불이 켜진 카메라의 렌즈가 나를 향하고 있었다.

“잠깐만요, 이게 무슨 짓이죠?”

범죄자라도 되는 양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경찰은 뒤를 돌아보더니 손짓했다. 카메라를 든 사람이 카메라를 내렸다.

“잠시 이쪽으로 나와 주시겠습니까?”

나는 슬리퍼를 신으면서 현관 앞 신발장 위에 붙어 있는 거울을 보았다. 손가락으로 머리를 대충 쓸어내렸다. 자다 깬 얼굴 치고 그리 흉한 몰골은 아니었다. 경찰이란 작자의 뒤를 따랐다.

501호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흰색 가운을 입은 남자와 여자가 입구에 쳐 놓은 노란색 폴리스 라인을 넘어 다녔다. 카메라가 연신 플래시를 터트리고 있었다. 제복을 입은 세 명의 남자가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막아서고 있었다. 구경하는 이들 대부분은 오피스텔 주민인 듯했다. 그들 가운데에는 긴 생머리의 4층 여자도 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통화하는 내용을 들은 바로, 그녀는 홈쇼핑 텔레마케터인 듯했다. 최근에 E조를 맡으면서 그녀와 자주 부딪히는 걸로 봐서 그녀도 야간조인 듯싶었다. 이십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그녀는 화장을 거의 하지 않았고 자주 미간에 주름을 만들었다. 그녀는 볼보 1589와 비슷한 인상이었다. 볼보 1589는 의상실 사장인데 에스프레소를 마시기 위해 오전 열시 무렵이면 호텔을 찾았다. M조에 있을 때 볼보 1589는 내 담당이었다. 그녀의 독특한 주차 습관을 포착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녀는 늘 멀찌감치 차를 세워 놓고 걸어오곤 했는데 입구에 도착하기 전에 달려가 키를 받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경찰은 복도 중간에 있는 비상구를 턱으로 가리켰다.

“저리로 가실까요?

그는 키에 비해 다소 큰 보폭으로 앞서 걸었다. 그가 비상구 철제문을 열려고 할 때 문이 먼저 열렸다. 경찰은 뒤로 물러섰다. 초라한 차림의 한 사내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어깨를 잔뜩 구부린 채 두리번거렸다. 501호를 구경하러 온 오피스텔 사람인 듯했다. 낯은 익었지만 어디서 봤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스쳐 지나가는 그의 몸에서 은단 냄새가 풍겼다. 나는 사내를 돌아봤다. 사내는 501호 주변에 서 있는 무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오피스텔 주민이 아닐지도 몰랐다.

경찰은 비상구 앞에 있는 풀다운 형식의 창문을 열었다. 그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더니 내게도 권했다.

 “여긴 금연 구역인데요.”

나는 그가 건네는 담배를 물리쳤다. 경찰은 피식 웃으며 자기 담배에 불을 붙였다. 키가 작고 어깨도 좁아 더 말라 보였지만 얼굴은 강단 있어 보였다. 쏘는 듯한 얇은 눈매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게 했다. 그의 얼굴을 응시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501호 남자 말요, 평소엔 어땠소?”

반말과 존대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말투였다. 나는 침을 얕게 삼켰다. 501호는 희미한 인상의 남자였다. 가장 외우기 힘든 인상착의라고나 할까. 분위기도 키도 얼굴도 행색도 그저 그런 느낌의 사람.

“옆집 남자에게 무슨 일이라도?”

경찰은 느긋하게 담배 연기를 품어냈다. 나는 기침을 했다. 사내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나의 얼굴을 뜯어보듯 살폈다.

“뉴스는 보시죠?”

경찰은 눈빛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할 듯싶었다.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그렇죠, 매일 보진 못해도.”

“사람들을 죽였지. 지금 은행에서 잡혔소.”

참으로 이상스럽게도 그의 말이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어쩐지.”

내가 말했다. 경찰의 눈에선 순간 빛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는 검지로 담뱃재를 털며 윗입술을 비죽거리며 물었다. 

“왜요? 수상한 점이라도 있었소?”

“특별히 그런 건 아니지만 제 개인적인 상황 때문에요.”

언제 왔는지 단발머리 여자가 늘어난 내 옷 목덜미에 핀 마이크를 집게처럼 꽂았다. 마이크의 줄 끝에는 검정 소형 녹음기가 매달려 있었다.

“이게 뭐죠?”

“주변인들 진술 자료를 모아야 하거든요. 그나저나 무슨 개인적인 상황이라는 거요?”

그는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곧이어 콩알만한 점들이 얼굴에 드문드문 박힌 남자와 카메라를 든 쑥색 잠바를 입은 남자가 다가왔다.

“왜 저를 찍으시는 건가요?”

“범인은 잡혔고 선생께서 옆집에 사셨으니 인터뷰 좀 부탁드렸으면 해서요.”

“제 인터뷰가 왜 필요하죠?”

“시간 좀 내주세요. 다른 분들도 다 했는걸요.”

머뭇거리자 내 옷에 마이크를 꽂은 단발머리 여자가 생글거리며 말했다.

“구체적으로 어떻다는 건가요?”

얼굴에 점이 난 남자가 재우쳐 물었다. 한두 사람 내 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두 대의 카메라가 나를 향하고 있었다. 기자들은 손바닥만한 수첩을 들고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개중엔 오피스텔 주민이 아닌 사람도 있었다. 아까 나를 스쳐 지나갔던 사내도 카메라 기자 뒤에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까만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무슨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할 말은 실로 보잘 것 없었다.

“최근엔 샤워를 자주 하는 거 같았어요.”

나는 목을 긁었다. 목에 난 뾰루지를 건드려 따가웠다. 

“오, 그래요?”

여자가 진지하게 되물었다. 그녀의 진지함이 어쩐지 나를 비웃는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런 걸 ‘수상하다’고 말하는 자신이 소심하게 느껴졌다.

“하수구가 다 이어져서 말이죠.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도 옆방에선 다 들리거든요.”

나는 우물거리며 허둥지둥 말을 이었다.

“제가 불면증이에요. 불면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시죠?”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이들이 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불면의 밤들을 그들에게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시도 때도 없이 청소기를 돌리질 않나, 하루에도 몇 번이나 양치질을 해댔고요. 결벽증에라도 걸렸는지 샤워도 자주 하는 거 같았어요.”

“그거, 전기톱으로 시체를 절단하느라 그랬을 거요.”

경찰은 지극히 평범하고 사무적인 어조로 잘라 말했다. 순간 머리가 아뜩해졌다.

“전기톱? 절단이요?”

경찰은 고작 이 정도로 놀래선 안 된다는 듯 입술을 비죽거렸다.

“혹시 옆집을 가 보셨거나 들여다보신 적은 없으신가요?”

그러고 보니 끔찍한 순간이 떠올랐다. 왜 처음부터 이게 생각나지 않았을까.

“있어요. 한번은 몇 시간째 계속 물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한테 그게 거슬리지 않을 수 있겠지만요. 전 잠들 수 없었죠. 문득 옆집에서 물을 틀어 놓고 외출한 것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확인이라도 할 겸 옆집에 가 봤죠.”

모두들 숨을 죽이고 나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의 몰두에 차츰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나 역시 501호 남자처럼 희미한 인상의 사람이었다. 난 호텔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었지만 그건 순전히 제복 때문이었다. 같은 근무자들끼리도 제복을 벗고 있으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나는 앞니로 아랫입술을 씹으며 사람들을 둘러봤다. 그들은 제복을 입지 않은 ‘나’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초인종을 눌렀죠. 남자가 문을 열더군요. 남자 뒤로 창문이 보이고 바로 아래엔 앉은뱅이책상이 있었어요. 다른 사람이 방 안에 있는 거 같진 않았어요. 제가 물었죠, 물소리가 계속 나서 혹시 외출한 게 아닌가 싶어 확인차 누른 거라고. 남자가 말했어요, ‘죄송합니다. 물소리가 시끄러웠던 모양이죠.’, 너무 공손하게 나오니까 내가 고약한 이웃이라도 된 느낌이었어요. 사실 전 굉장히 화가 나 있었어요. 하지만 뭐라고 하긴 좀 그랬죠. 제 성격상 싫은 소린 잘 못하거든요. 그래서 돌아왔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물소리는 그쳐 있었다.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일은 없었나요?”

단발머리 여자가 물었다.

“제가 여기 산 지 3년짼데요. 그동안 옆집은 수도 없이 이사 들고 나갔어요. 잘 몰라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그럴 거예요. 501호 남자…….”

“살인범 정현철이요.”

“네, 그 살인범이 이사 온 것도 얼마 안 될 걸요?”

“석 달 됐다고 하네요.”

“맞아요. 제 불면증도 그 정도 됐으니까.”

“그렇다면 옆집 소음 때문에 석 달째 불면증을 가지게 됐다는 말씀인가요?”

“몇 년 전에도 불면증이 있다가 사라지긴 했지요. 제가 예민한 탓도 있지만 옆집이 그 전에 살았던 사람보다 조금 더 시끄러웠죠. 그래서 신경 쓰였던 건데 어쨌든 불면증이 다시 시작된 건 석 달쯤 됐어요.”

그쯤 말하고 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때 누군가 경찰에게 와서 귓속말을 전하자 그는 급히 마무리를 지었다. 경찰이 가자 이번엔 기자들이 비슷한 질문을 시작했고 나는 별로 다를 바 없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말은 조금 더 보태어지기도 했고 어떤 부분은 생략되기도 했다. 사실 옆집 남자에 대해 알고 있는 건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기자들의 이 질문, 저 질문에 답하다 보니 실타래 풀리듯 이어져 나왔다.

평일 낮 출입구로 이어지는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고 집으로 들어가는 그의 모습이 내가 아는 그에 대한 최초의 기억이었다.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하는데 그가 피웠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 것도 같았다. 복도의 흐릿한 형광등을 따라 공중에 떠 있는 담배 연기를 바라보다가 501호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정신없이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나의 8평 오피스텔 방 안으로 들어왔다. 잠시 비워 둔 사이 방안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침대 위에 뭉쳐 놓은 얇은 면 이불은 조금 더 나른해져 있었고 창문에 후줄근하게 걸려 옆으로 밀어 놓은 낡은 커튼은 지루해 보였다.

나는 슬리퍼를 벗고 침대 위에 반듯하게 누웠다. 날벌레들이 천장 형광등 갓 속에 갇힌 채 죽어 있는 걸 발견했다. 벌레들은 무수한 검은 점들이 되어 들어차 있었다. 자세히 보니 벌레들의 조그만 날개들이 바스러져 있었다. 오랜 시간 벌레들은 갓 속으로 날아들어 죽어 왔던 것이다. 침전물이 가라앉듯 쌓여 있었다.

긴장을 해서 그런지 온몸 구석구석 뻐근하게 쑤셔 왔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귀찮아졌다. 벽에 걸린 시계를 봤다. 1시 50분이다. 4시까지 가려면 3시엔 나서야 했고 지금부터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허나 자꾸 늘어졌다. 살인범이 옆집에 살았다는 게 그리 중요하지 않게 생각됐다. 그는 잡혔고 모든 것은 끝이 났다. 지난 몇 개월 간 나를 괴롭히던 소음은 이제 사라진 것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몸을 짓누르는 듯 했다. 현관문을 잠그지 않은 게 떠올랐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묘한 안도감에 졸음이 몰려왔다. 복도와 옆집에선 사람들의 분주한 발소리, 흩어지는 말소리, 간혹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런 소음들이 오히려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딱 30분만 누워 있자, 그리곤 눈을 감았다.


잠에서 깼을 때 창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건너편 건물의 네온사인 불빛만이 선명하게 창문으로 흘러 들어왔다. 수족관이라도 된 듯 방 전체가 푸르게 물들어 있었다. 복도도 조용했고 벽 너머 501호도 잠잠했다.

어둠 속에서 형광으로 빛나는 시계 바늘과 숫자를 봤다. 11시다. 나는 화들짝 놀라 일어섰다. 휴대폰 위로 부재중 전화가 다섯 통이나 들어와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프런트와 안전 관리실 번호였다. 음성과 문자도 들어 와 있었다. 캡틴이었다. 나는 불도 켜지 못한 채 침대 모서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왼쪽 손바닥으로 이마를 감쌌다. 낭패다. 어렵게 얻은 자린데 이러다가 또 잘리면 어떡하나, 면목이 서질 않았고 무슨 말로 변명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조부모 상을 당했다고 할까, 아니면 교통사고가 있었다고 할까. 벨이 울렸다. 캡틴의 번호가 휴대폰 창에 떴다. 벨소리가 너무 커서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놀랐다. 이런 소릴 듣고도 잠에서 깨질 못했다니 정말 이상했다. 나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자네 어딘가?”

캡틴은 대뜸 물었다.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여기가…….”

“뉴스에서 봤네. 경철선가 보지?”

“네? 그게 아니라……. 지금은 집입니다.”

“얼마나 끔찍하겠나? 살인마가 옆집에 살았다니.”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텔레비전에서 봤네. 아무리 경황이 없어도 그렇지, 전화 한 통이라도 했어야지.”

어쩐지 캡틴의 목소리는 너그럽고 자애롭게 느껴졌다.

“죄송합니다.”

“자세한 이야긴 내일 와서 해 주게. 나도 궁금한 게 많으니.”

캡틴은 자신이 경찰을 몇 번이나 지원했다가 떨어졌다고 했다. 처음 들어보는 얘기였다. 캡틴은 호텔에서도 그렇듯 이번 사건에도 자신이 총체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텔레비전을 켰다.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리모컨을 여러 번 눌러 24시간 뉴스가 나오는 케이블 채널을 찾았다.

살인범 정현철이 검거되는 장면이 나왔다. 시체가 묻힌 장소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보여 줬다. 정현철의 오피스텔도 나왔다. 얼핏 봤던 방안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깨끗하게 정리된 앉은뱅이책상이라든가 내 오피스텔과 똑같은 위치에 있는 창이라든가, 그리고 그가 그렸다는 여자의 알몸 그림과 잡다한 낙서를 써 놓은 연습장도 보였다. 하얀색 냉장고도 있었다. 냉장고 안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지퍼가 달린 일회용 비닐 팩이 냉동고에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비닐 팩엔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그 안엔 그가 죽인 사람들의 오른쪽 귀와 둔부의 살을 오려 놓았다고 했다. 나는 귀를 긁었다. 화장실도 나왔다. 나의 오피스텔과 똑같은 모양과 구조였지만 훨씬 더 깨끗해 보였다. 카메라는 타일 사이 낀 검은 때와 천장의 검붉은 얼룩을 보여 줬다. 피해자의 ‘피’라고 했다. 그는 욕조 안에 자신이 살해한 시체를 구겨 넣은 다음 전기톱으로 토막치고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손가락과 발가락의 지문을 도려냈다. 그리고 컬렉션이라도 하듯 귀와 둔부를 도려내어 일회용 비닐 팩에 넣어 냉동실에 차곡차곡 얼려 놓았다. 속이 울렁거렸다.

뒤이은 화면에 내가 나왔다. 당연히 모자이크 처리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얼굴이 그대로 나왔다. 더구나 화면 하단엔 내 이름이 자막으로 떠 있었다. 잠에서 막 깬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나는 어눌하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말한 내용이 그대로 나오는 게 아니었다. 띄엄띄엄 편집되어 있었다. 족히 한 시간은 넘게 말한 거 같은데 편집한 내용은 불과 삼십 초도 못 되었다.

“정말 인상이 나쁜 남자였어요. 여자와 싸우는 소리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지요. (흥분하며) 불면증까지 생겼다니까요. 물소리가 너무 나서 따지기도 했는데 아주 불쾌했어요.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워대는 고약한 이웃이었죠. 끔찍합니다. 앞으로 여기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기가 막히게 편집이 되어 있어서 한 번에 주욱 이어 말한 것처럼 들렸다. 내 얼굴을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니 무척 낯설었다. 거울로 보던 얼굴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던 내 얼굴보다 조금 더 넙데데해 보였고 피부는 상당히 울긋불긋했으며 탄력 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특히 목 주변에 듬성듬성 솟은 뾰루지는 끔찍하게 느껴질 만큼 불결해 보였다.

뉴스는 계속 이어졌다. 내게 경찰이라 말했던 사내의 인터뷰도 나왔다.

“범인은 묵비권을 행사 중입니다. 현재까지는 단독범이 확실시되나 공범 여부는 수사 중입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았습니다.”

오줌이 마려웠다. 나는 일어나 방안에 불을 켜고 화장실로 갔다. 바로 이 벽 건너편에선 다섯 명의 여자(그중 최초 피해자는 남자의 옛애인이었으며 세 명의 여자는 인터넷 채팅으로 유인해 온 이였으며 나머지 한 명은 새벽녘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여자를 때려 실신케 한 후 데려온 여자라고 했다)가 불과 석 달 만에 죽어 나자빠졌으며 그들의 시체가 난도질당하고 냉동실에 보관되기도 했다.

오줌 줄기가 가늘어졌다. 몸을 부르르 떨며 추리닝 바지를 올렸다. 손가락에 오줌 방울이 묻었다. 나는 세면대에서 손을 꼼꼼히 닦았다. 위층 어딘가 배수구에선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고 쿵쿵 천장을 울리는 발자국 소리도 들렸다. 거울 옆 귀퉁이가 벗겨져 있는 걸 보면서 수돗물을 잠궜다.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턱을 들어 올려 목에 난 뾰루지를 보다가 목을 돌려 귀를 봤다. 거울에 귀를 가만히 댔다. 오른쪽 귀가 서늘해졌다. 위윙윙 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냉동실에 들어 있던 비닐 팩 안의 ‘귀’들을 떠올려 봤다. 그것들은 모두 국과수로 옮겨졌을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501호 냉동고 안에 그대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냉각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때 그 말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공범이 있을지도 모른다.’


버스를 기다렸다.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있었지만 어지럽게 부는 바람 때문에 비가 머리며 옷을 그대로 적셨다.

30여 분 만에 온 버스는 만원이었다. 갑자기 내린 폭우로 다리가 잠기는 바람에 돌아오느라 늦었다며 운전사는 변명했다. 사람들은 항의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앞문과 열린 뒷문으로 끼여들어 탔다. 밥을 눌러 담듯 사람들은 스스로를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나도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내 뒤에 서 있던 남자가 배로 엉덩이를 눌러 대고 있었다. 몸을 옆으로 빼고 싶었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앞에 있는 여자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누르고 있었으니까. 여자의 말랑말랑한 둔부가 허벅지에 밀착되어 있었는데 기분이 야릇해졌다. 문득 501호 남자도 이런 기분 때문에 여자의 엉덩이 살을 오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흘금흘금 돌아보며 인상을 썼다. 그녀의 하얀 귀엔 보송보송한 솜털이 보였다. 

‘어쩔 수 없잖아. 난 치한이 아니라고.’

나 역시 유쾌하지 않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속엣말을 중얼거렸다. 마치 그렇게라도 하면 생각이 흘러넘쳐 여자에게 전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차가 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여자 엉덩이가 나의 사타구니 아래에 바짝 밀착된 채로 머물렀다 떨어졌다. 아찔한 기분에 눈을 감았다.

경찰은 오후에 잠시 들러 달라고 했다. 캡틴은 걱정 말고 협조하라고 했다. 그가 이렇게 관대했던 적이 있었던가, 생각하며 혹시라도 이번 건을 ‘근무태만’이라는 명목으로 궁지에 넣으려는 술책이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아니다. 어제의 무단결근을 만회하기 위해 오전 출근하는 성의를 캡틴도 알아 줄 것이다. 더구나 경찰을 지망했던 사람이었다니 정말 이번 일이 잘 해결되길 바라는 것인지도 몰랐다.

‘저 남자, 연쇄살인범 옆집에 살던 사람 맞지? 뉴스에 나왔잖아.’

누군가 수군댔다. 나는 눈을 뜨고 둘러봤다. 누구 입에서 나온 건지, 과연 누가 그런 말을 하기는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버스 안 사람들의 검은 눈동자들이 동굴 속 박쥐 떼처럼 일제히 나를 향해 달려들 것 같았다. 마치 내가 살인마라도 되는 것처럼, 아니 공범자라도 되는 것인  양 부끄러워졌다. 나는 얼굴을 붉혔다.

‘살인하는 소리를 들었대.’

‘지독한 이웃이었다며.’

소곤대는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현실성 있게 들렸다. 나는 머리털이 주뼛 섰다. 내가 그렇게 말했던가, 누가 이런 말을 버스 안에서 지껄이는 거지. 난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고 내가 했던 말은 너무 많이 편집되어 나온 거라고 변명하고 싶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얼굴 모르는 이웃인 것처럼 그 역시 마찬가지라고. 누군가 나에 대해 말한다 해도 역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거라고 말하고도 싶었다.

그때 새로운 기억 하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기억이란 골몰할수록 탈색되고 윤색되지만 그럴수록 정교하고 확실하다는 느낌은 강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떠오른 남자의 얼굴은 너무도 뚜렷해서 과연 이 기억이 실제적이며 온당한 것인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니까 한 달 전쯤 토요일 오후였다. 난 실로 오랜만에 여자를 소개 받았다. 옷까지 빌려 입었다. 제복을 입어 그런지 일자리를 옮긴 이후론 옷도 잘 사 입지 않았다. 아니다. 직장이 일정치 않다는 이유로 3년 전 헤어진 여자를 마지막으로 옷을 거의 사지 않았다. 옷차림에 신경 쓴다는 건 인간관계에 신경 쓴다는 건데 난 어떤 관계나 누구의 시선에 관심 둘 수 없었다. 번번이 직장에선 잘렸고 겨우 들어간 회사는 부도를 맞거나 월급이 밀리기 일쑤였다. 헌병대 출신인 작은 아버지 후배가 캡틴인데 그가 다리를 놔 줘서 호텔에 취직할 수 있었다. 군대에서도 눈썰미와 기억력이 좋아 주로 장교나 대장의 운전병을 도맡았다고 자기소개서에 썼다. 공채로 들어간 게 아니라 간단한 면접과 암기력 테스트만 받고 일할 수 있었다. 정규직은 아니었다. 많지 않은 돈이지만 다달이 월급을 받게 되자 숨통이 트였다. 여자는 그럴 때 필요했다. 나는 빌려 입은 옷을 현관 앞 거울을 보며 매무시를 살핀 다음, 현관문을 열었다. 그때까진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문을 잠그고 있는데 반대쪽 복도 끝에서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한쪽 발소리가 조금 더 크게 울렸고 다른 발소리는 약간 작게 들렸다. 새로 복사한 열쇠가 잘 들어가지 않았다. 내 방은 복도 끝 두 번째 집이다. 그 남자가 503호에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오고 있었으니 내게 볼 일이 있거나 옆집 501호에게 볼 일이 있을 터였다. 겨우 문을 잠그고 돌아섰을 때 걸어오는 남자를 정면에서 볼 수 있었다. 남자는 걸어오면서 줄곧 나를 쳐다본 것 같았다. 남자의 눈썹은 유독 짙었는데 오른쪽 눈썹 끝이 회오리 모양으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키는 나보다 5센티 정도 작아 보였다. 스포츠형으로 짧게 친 머리카락은 억세 보였고 입술은 얇은 편이었는데 윗입술이 아랫입술보다 조금 더 두꺼워 보였다. 눈매는 날카로웠다. 그런 인상은 대개 시비를 잘 거는 스타일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남자는 나를 지나쳐 옆집 문에 열쇠를 꽂아 열었다. 원래부터 열쇠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남자를 맞이하는 옆집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이렇게 늦었어? 벌써 냄새가 나잖아.”라고 말했다.

옆집 문 앞엔 어제 먹다 내 놓은 것이 분명한 자장면 그릇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아무 것도 덮어 놓지 않아 그릇에선 들큼한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서 그땐 그가 그릇을 찾아 가는 배달원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의 손엔 분명히, 아무 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남자가 ‘공범’이란 말인가. ‘냄새가 난다’는 것은, 시체에서 부패가 시작됐다는 말인가.

그러는 사이 나는 내려야 할 정류장을 놓치고 말았다. 한 정류장을 지나치고 나서야 사람들을 밀쳐내며 뒷문으로 갔다. 나는 컨테이너 벨트에서 떨어지는 공산품처럼 겨우 내릴 수 있었다.

비는 여전히 요란하게 쏟아 붓고 있었다. 나는 정류장의 가림막 아래 서서 우산을 폈다. 우산살 하나가 부러져 있었다. 버스에서 이리저리 채이면서 누군가의 가방인지 옷인지에 걸렸다가 억지로 잡아 당겼는데 그때 부러진 모양이었다. 나는 꺾인 우산살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한쪽이 푹 꺼져 버린 우산을 쓰고 호텔을 향해 걸었다. 우산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한쪽 어깨를 그대로 적셨다.

3분쯤 걸었을까. 나를 돌아보게 한 건 냄새 때문이었다. 낯설지 않은 박하 냄새가 먼저 다가왔다.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옆을 돌아봤다. 낯선 남자였다. 남자는 내게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검정 삼단 우산을 쓴 채 나를 앞질러 바삐 걸어갔다. 그는 주름이 많이 진 허름한 바지를 입고 있었고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있었다. 바지는 무릎께까지 검게 젖어 있었다. 그는 신발이 불편하기라도 하듯 한쪽 발을 끌며 걸었는데 걸음 속도가 빠른 편이었다.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돌아보니 배전실에서 근무하는 미스 리였다. 미스 리는 녹색 땡땡이 무늬 우산을 두 손으로 꼭 붙든 채 숨을 헐떡이며 다가왔다. 미스 리는 키가 작았고 비가 와서 그런지 파마머리가 심하게 곱슬곱슬했다.

“어제 텔레비전 봤어요.”

숨을 한번 몰아쉬더니 미스 리가 말했다.

“무섭지 않으세요?”

“뭐가 무서워? 이미 잡혔는 걸.”

“그런 이웃하고 같이 살았다는 게. 납량특집이 따로 없다니까.”

그러면서 미스 리는 몸을 부르르 떠는 시늉을 했다. 그녀는 내 옆으로 바짝 붙어 걸었는데 시큼한 땀 냄새가 올라왔다. 미스 리는 이제 스무 살이 됐는데 아직도 고등학생 티를 벗지 못하고 있었다. 목욕도 자주 안 하는 거 같았고 멋내는 건 도무지 몰랐다. 옷 하나를 일주일 넘게 입기도 했다. 미스 리는 그 옷이 제복인가, 라고 말하면 흐흐흐 웃을 뿐이었다. 치마를 입고도 아무렇게나 앉는 바람에 팬티가 보이기도 했는데 전혀 섹시하지 않았고 짜증만 났다. 얼마 전엔 성숙하게 보여야 한다며 머리를 볶았는데 그게 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파마가 쉽게 풀리면 안 된다며 며칠 째 머리를 감지 않고 있었다.

“아까 같이 가던 분은 누구세요?”

“누구?”

내 어깨를 슬며시 치고 갔던 남자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모르겠는데, 누굴 말하는 거야? 나 혼자 왔어.”

“이상하다.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김 주임님 보고 줄곧 따라왔거든요. 저 앞으로 가셨잖아요. 한 아저씨가 주임님이랑 한참 같이 가는 거 같아서 두 분이 이야길 하고 있는 줄 알았어요.”

“그래? 모르겠어, 전혀.”

“아무튼 그런 역사적인 현장에 계셨다니 정말 자랑스러워요. 친구들한테도 막 자랑했거든요.”

그녀는 히히 웃었다. 자랑스러울 것도 참 많다, 고 퉁박을 주려 했지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그 얼굴 때문에 난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미스 리는 멍청하고 순한 눈길로 나를 올려다봤다.

“어디 몸이 안 좋으세요?”

“아니, 아니 괜찮아.”

나는 진땀을 흘렸다.


“그러니까 자기가 공범이라고 떡하니 전화를 걸어 와서는 자수할 테니 서울역으로 와라, 부산역으로 와라, 이러면서 우릴 뺑이 치게 했다니까.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강력부 형사라고 소개한 사내가 윽박지르듯 투덜거렸다.

“그렇다면 공범이 있다는 건가요?”

나는 이마에 흘러 내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척하며 땀을 닦았다.

“아직 확실한 건 없어요. 혹시 거기 드나들었던 남자 본 적 있나요?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실은, 오늘 아침에야 생각난 건데 말예요.”

나는 한 달 전 옆집에 방문했던 남자에 대해 설명했다.

“아무래도 그 사람이 현재로선 가장 유력하겠군요. 근데 그 얼굴이 오늘 아침에 갑자기 기억났다고요?”

강력부 형사가 나를 노려봤다. 나는 어쩔 줄 몰랐다. 마치 그의 의심을 받는 것 같았고 어처구니없게도 난 혐의에서 벗어나고만 싶어졌다.

“제가 명색이 도어맨인데 다른 건 몰라도 한 번 본 얼굴은 절대 잊질 않아요. 제가 외우는 차량번호만 해도 삼백 개가 넘고요, 운전기사 얼굴까지 다 구분한다고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말까지 할 필욘 없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말했다.

“더구나 그 남자가 오늘 아침엔 뒤를 쫓아왔다?”

형사는 혼잣말 하듯 중얼거렸다.

“다리 한쪽을 조금 절었어요. 버스에 내려서도 한참이나 절 따라왔고요.”

“공범이라면 그렇게 접근하지 않을 텐데.”

여전히 내 말에 수긍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쯤 되니 나는 슬그머니 자신이 없어졌다.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었다.

“일단 그 남자 얼굴로 몽타주를 작성해 보죠.”

생각에 잠겼던 형사는 얼굴에 생기를 띄우며 전화기의 스피커 폰 버튼을 눌렀다.

“몽타주 작성 준비하도록 해.”

형사는 그렇게 말하더니 내게 잠시 앉아 있으라고 손짓을 했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 선 채로 서랍에서 두툼한 서류 봉투를 꺼냈다. 코를 킁킁거리고 뒤적이며 몇 장의 종이를 빼내더니 책상 뒤편 문으로 나갔다. 나는 천천히 수사계 안을 둘러봤다. 전화기마다 연신 벨이 울려대고 있었으나 아무도 먼저 받으려 하지 않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암호처럼 책상 위에 놓인 무전기에선 웅얼거리는 소리들이 계속해서 울려나오고 있었다.

“공범을 보셨다고요?”

뒤를 돌아봤다. 삼십대 후반쯤 돼 보이는 남자가 내게 악수를 건넸다.

“기억나시죠? 어제 말예요, CBS 노컷뉴스의 최형후 기잡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얼굴에 난 점들이 화들짝 일어나 있는 것 같았다.

“공범을 본 거라고 확신할 수 없지만요. 옆집을 방문했던 남자 얼굴이 기억나서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요.”

“그렇군요.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으세요?”

그는 연신 눈동자를 굴리며 내게 물었다. 나는 오늘 아침 버스에 내려서 그를 만났더란 얘기는 하지 않았다. 정확한 게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다. 내 이야긴 금방 끝났다. 형사가 가까이 오자 기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 형사, 잘하면 건수 하나 잡겠는걸. 게다가 눈썰미 좋으신 도어맨이라시니.”

나와 형사를 번갈아 보며 그는 눈을 찡긋했다. 형사는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오른쪽 귓불을 잡아 당기다가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볐다.

“이리로 오시죠.”

정 형사는 내 팔을 잡아끌었다. 나는 그를 따라 복잡한 사무실의 미로 같은 책상 사이를 걸어 구석에 있는 파티션 뒤로 돌아갔다. 거기는 서너 평 되는 공간에 컴퓨터 두 대가 있을 뿐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근사하고 과학적인 분위기도 아니었는데 파티션 위엔 ‘과학 수사계 몽타주 출장반’이란 팻말이 걸려 있었다. 거기엔 땀에 전 듯 숱 없는 머리카락이 갈라져 있는 왜소한 남자가 모니터 앞에 구부정하게 앉아 있었다. 정 형사는 그 남자 옆에 있는 철제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의자 바닥은 솜이 빠져 있어 딱딱했고 경사가 져 있어 기우뚱거렸다.

모니터 화면에는 여러 개 얼굴형이 번호가 매겨져 있는 채 떠 있었다. 

“가장 근접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골라 주면 됩니다. 너무 신중하실 필욘 없어요. 어차피 몽타주니까.”

그 많은 세상 사람들의 얼굴형이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정리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선택은 쉽지 않았다. 2번과 6번에서 망설여졌다. 호텔 도어맨은 눈썰미가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다고 했던 말들이 무색해졌다. 눈은 그런대로 쉬웠지만 눈썹이나 입매를 선택하는 것은 어려웠다. 눈썹이 달라질 때마다 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눈썹의 소용돌이가 어디쯤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자꾸 확신이 없어졌다. 귀는 되는 대로 골랐다. 과연 이렇게 만든 몽타주가 도움이 될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기야 과연 그런 사람을 만나기는 한 건지조차 몽롱해졌다.

“그거요, 아니요. 죄송해요. 그게 아니라 이거 같아요.”

몇 번의 선택 뒤 그는 ‘수상한 얼굴’을 화면에 띄워 놓았다. 확실히 수상해 보였고 살인마의 공범이 확실할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내가 본 남자의 얼굴은 아니었다.

“어떤가요?”

남자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그를 꽤 오랫동안 고생시켰기 때문에 열렬히 동의하고 기뻐해 줘야 될 것 같았다. 그러고도 싶었다.

“이상하네요. 눈 코 입은 맞는데, 이 얼굴은 아니에요.”

나는 의자에 비죽 나온 누런 솜을 손으로 뜯으며 대답했다.

“그래요?”

남자는 꽤 실망스런 얼굴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 있어요. 막상 끔찍한 살인범 얼굴이라고 생각하면 기억이 잘 안 나기도 하거든요.”

남자는 마치 자신에게 말하기라도 하듯 내게 위로를 건넸다. 그는 끈기를 갖고 얼굴형부터 바꿔 달기 시작했다. 헤어스타일을 조금 바꿔 보기도 하고 내가 헷갈려 했던 부분에선 더욱 신중했다.

조금 더 얍상한 눈으로 골라 바꿔 달았다. 눈썹은 마우스로 일일이 결을 그려 넣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할수록 도려낸 눈과 코와 귀와 입을 비닐 팩에 넣고 흔들어 섞기라도 한 듯 머릿속은 뒤죽박죽 엉켜들었다.

시간은 흘러가고 있는데 기억은 힘들어졌다. 자신이 없어졌다. 남자는 편평했던 얼굴에 명암을 주었다. 밋밋하던 광대뼈가 살아나고 볼이 움푹 패었다. 그렇게 해서 조금 달라진 얼굴 두 개를 더 만들었다. 얼핏 보면 세 얼굴 모두 비슷한 느낌이기도 했다.

“어떤가요? 이 세 얼굴 가운데 근접해 보이는 게 있나요?”

남자는 다시 나를 돌아봤다. 나는 눈을 감고 아침에 봤던 사내의 얼굴을 더듬었다. 다시 눈을 뜨고 모니터 위에 떠 있는 세 개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기억 속의 얼굴과 그나마 가장 비슷하게 생각되는 얼굴은 세 번째로 조합된 것이었다. 나는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남자는 목소리 톤을 높였다.

“그래요? 이 얼굴이 맞나요?”

그가 재차 묻자 또 슬그머니 자신이 없어졌다. 하지만 또 다른 얼굴은 더 이상 나올 거 같지도 않았다.

“네, 그런 거 같아요.”

남자는 나의 얼굴과 모니터 위의 몽타주를 번갈아 쳐다봤다.

“맞아요, 이 얼굴이에요. 정말 많이 비슷해요.”

나는 조금 더 목소리 톤을 높여 말했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불안하던 마음이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보면 볼수록 아침에 본 사내와 가장 근접해 보였다. 그는 내가 가리킨 얼굴을 데이터로 다시 저장시켰다. 남자는 피곤한지 주먹을 쥔 채 눈자위를 꾹꾹 눌렀다.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

나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곱창집 살인사건 아시죠? 용의자들 몽타주 만드느라 밤을 샜거든요. 어쨌든 수고 많으셨어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악수를 받았다. 일이 끝나자 남자는 검은 재를 뒤집어쓰기라도 하듯 총기 어린 눈빛은 사라지고 원래대로의 초라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남자는 파티션 위로 머리를 조금 내밀더니 정 형사를 불렀다.

“정 선배니임, 정 선배님.”

감기에 걸린 건지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했다. 손나팔까지 했지만 그 정도 목소리가 서너 개의 책상 건너에 앉아, 게다가 맞은편에 앉은 중년여성과 언성을 높이고 있는 그에게까지 전해질 리 없었다.

“괜찮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그래 주실래요? 제가 몸이 안 좋아서.”

남자는 자신의 발을 내려다봤다. 나도 그의 시선을 좇았다. 그의 발엔 깁스가 돼 있었다.

“그저께 빗길에 넘어졌거든요.”

남자는 희미하게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나는 가려다 말고 뒤돌아서서 남자에게 말했다.

“저기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뭐죠?”

그는 미리부터 난처하다는 듯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뭐 곤란하시면 할 수 없지만요, 몽타주 만든 거 말예요. 기념으로 한 장만 출력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자 그는 모든 의혹이 가신 환한 얼굴이 됐다.

“어차피 곧 나올 텐데.”

“신기하기도 하고. 기념이 될까 해서요.”

“알았어요.”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갖는 사람의 표정을 지으며 그는 출력을 눌렀다. 그러나 인쇄기에 종이가 들어 있지 않았다. 그는 책상 옆에 세워 놓았던 목발을 짚고는 캐비닛을 열었다.

“도와주실래요?”

나는 남자를 도와 캐비닛에서 박스 하나를 꺼냈다. 박스를 끌어낸 후 포장을 풀었다. 남자는 종이를 꺼내 인쇄기 박스 안에 집어넣었다.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나의 말에 그는 무표정한 얼굴이 되어 고개만 까딱했다.

출력을 누르자, 지지직 소리를 내며 몽타주가 나왔다. 인쇄된 몽타주는 더욱 더 불길하고 수상해 보였다. 나는 인쇄된 몽타주 종이를 들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그제야 남자는 조금 웃었다.

나는 지저분한 책상 서너 개를 지난 다음 정 형사에게 다가갔다. 정 형사는 곁눈질로 나를 보고도 본체만체하며 중년 여성과 계속 이야길 했다. 나는 이대로 서서 기다려야 할지, 아니면 그들의 대화를 중단시킨 후 인사하고 나와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정 형사는 나를 보자 일인용 소파를 가리켰다. 나는 앉았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네년 거짓말을 믿으라고?”

“아니라니까요. 이번엔 정말이에요, 형사니임.”

얼핏 봐도 열 살은 많아 보이는 여성에게 정 형사는 아무렇게나 반말을 지껄였고 여자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애교스런 눈웃음을 흘리며 깍듯하게 존대했다. 

시계를 봤다. 오후 3시 45분이었다. 5시에 테스트가 있어 서둘러야 했다. 

“저, 제가 회사에 들어가 봐야 해서요.”

나는 엉덩이를 들었다.

“다 끝났으면 들어가시고요. 다른 생각나면 또 연락 주세요. 전화번혼 알죠?”

“물론 외웠죠.”

“아, 숫자는 금방 외운댔지.”

정 형사는 피식 웃었다.

“저,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말씀하세요.”

“신변은 보장되는 거죠? 제가 몽타주 만드는 데 도움 줬다는 게 밝혀지진 않겠죠?”

“물론이죠. 그건 당연한 겁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살인범 옆집에 살고 있단 게 텔레비전에 나와서 사실 좀 그러네요. 얼굴이 그대로 나올지 몰랐거든요. 이름까지 나오고.”

“하여간 방송하는 새끼들이 다 그렇다니까요. 말로만 인권, 인권 하면서 우리 하는 일 쪼러 다니면서 지들 하는 짓이란 게. 그치만 뭐 걱정하실 필욘 없어요. 걱정할 만한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이웃에 사는 사람 인터뷰는 다 해 왔던 거고. 너무 예민하시네, 허허.”

“그렇죠?”

“걱정 마세요. 민중의 지팡이를 믿으세요.”

정 형사는 자기가 한 말이 재밌다는 듯 키득거렸다. 나는 인사를 하며 뒤로 물러났다. 수사계의 문을 나서면서 돌아봤다. 운전 면허장 같이 넓디넓은 사무실 안에선 음모와 범죄와 살인의 냄새가 물씬 풍겨 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이게 김 주임님이 말해서 만들어진 몽타주라는 거예요?”

미스 리가 코를 훌쩍거리며 말했다. 미스 리는 비염이 있었다. 경찰서에서 가져온 몽타주를 앞에 놓고 미스 리는 신기한 듯 내려다보았다.

“그렇다니까.”

“몇 장 더 복사해도 돼요?”

“어차피 내일이면 몽타주가 다 깔릴 거래.”

“그래도요.”

미스 리는 몽타주를 복사기로 가져가서 다섯 장이나 더 복사했다.

“우린 먼저 붙여 놓자고요.”

약간 검게 복사된 몽타주 속의 인물은 얼핏 보기만 해도 불길하게 느껴졌다. 컴퓨터 화면에 있었던 얼굴과는 아주 많이 달라 보였고 원본과 복사본이 또 다르게 느껴졌다.

“여기다 사인 좀 해 줘요.”

“사인?”

“제 주변에 텔레비전도 나오고 유명해진 사람은 김 주임님이 처음이거든요. 여기다요.”

미스 리는 몽타주 종이 위쪽 여백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나는 조그맣게 내 이름 석 자를 써 놓았다.

“에이, 사인 좀 만드세요. 후지게 이게 뭐예요? 글씨도 안 이쁘고.”

그러고 보니 몽타주 위에 쓴 석 자의 글자가 초라해 보였다. 미스 리는 내 사인이 들어간 몽타주를 책상 구석에 밀쳐 두었다.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근데 공범이 김 주임님한테 보복하진 않겠죠?”

“보복?”

“나쁘게 말씀하셨잖아요?”

“내가 뭘?”

“인터뷰 말예요, 나쁘게 말씀하셨어요. 고약한 이웃이라고.”

“그게 뭐 어때서?”

“이유도 없이 살인하는 사람인데 또 모르잖아요. 더구나 몽타주 만드는 데 협조도 하셨고.”

“내가 협조했단 건 아무도 몰라.”

“그럴까요?”

뒷말을 길게 빼며 미스 리가 말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에어컨을 켰다. 짧은 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밑단이 풀려서 실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에어컨 앞에서 티셔츠의 목덜미를 잡아당기며 펄럭였다. 

“아, 시원하다.”

나는 자리에 일어나서 미스 리 옆에 섰다. 티셔츠의 늘어진 옷 속으로 젖계곡이 드러나는 뽀얀 속살과 하얀 브래지어가 보였다. 미스 리는 조심성 없이 계속 그러고 서 있었다.

나는 눈길을 돌렸다.

“그럼 수고해.”

미스 리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나는 문을 닫고 텅 빈 복도를 걸었다. 발소리가 울렸다. 그때 또 한 남자가 떠올랐다. 얼굴이 아니라 그의 뒷모습이 떠올랐다고 해야 옳았다. 오피스텔 비상구 문을 열고 나왔던 남자, 인터뷰를 하고 있을 때 기웃거리던 남자. 그에게 은단 냄새가 났다. 생각해 보니 아침에 맡은 박하 향과도 비슷한 것 같았다. 같은 오피스텔 주민이었을 것이다. 비상구 계단을 이용했으니까. 아니다. 오피스텔에서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어쨌든 그 남자 얼굴은 모호했다.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불길했다. 최소한 이미지나 느낌조차 떠오르지 않았고 그래서 더욱 그 남자가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그가 다리를 조금 끌었던 것도 같았다. 소용돌이치는 검고 짙은 눈썹이었던 것도 같았다. 한 달 전 남자 얼굴은 기억나면서 하루 전날 본 남자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고 한심했다.

“보복할 게 뭐 있어? 내가 뭘 했다고?”

누가 들으라는 식으로 나는 돌연 큰소리로 말했다.

“바보 같은 년.”

내 목소리가 음산하게 복도를 채우며 울렸다.


전날 본 테스트 결과를 발표하기 앞서 구술 테스트가 이뤄졌다. 캡틴은 우리 다섯 명을 일렬로 세웠다. 그는 일지와 볼펜을 들고 우리 앞을 절도 있는 걸음으로 걸었다.

“8924?”

내 가슴을 볼펜 끝으로 꾹 찔렀다.

“우리엔그룹 김병훈 회장, 씨에트롱.”

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캡틴은 볼펜으로 내 이마를 찔렀다.

“8924라니까.”

나는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서울 마 8924, 우리엔그룹 김병훈 회장, 씨에트롱이 확실하다. 그는 VIP 중에서도 가장 신경 쓰는 고객 중 하나다.

“네가 대답해 봐.”

캡틴은 내 옆에서 긴장한 채 잔뜩 얼어 있는 막내의 가슴을 볼펜으로 찔렀다.

“서원무역 강소희 사장, 틴팅 그랜저 경기 나 8924 입니다.”

순간 짙게 선팅한 그랜저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걸어 나오던 오십대 강소희 사장 얼굴이 떠올랐다. 김병훈 회장은 틴팅 서울 마 8014다. 사흘 전에 내가 접견했다. 식은땀이 등 뒤로 흘러내렸다.

캡틴 책상 서랍에 수표를 꽂아 놓은 호텔 브로슈어를 넣는다는 걸 잊었다. 하필 시험을 치르면서 그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서 더욱 허둥댔는지도 몰랐다.

시험 문제는 평소와 같았다. 서른 개의 고객 사진 밑에 직책, 이름, 차종, 차량 번호를 적는 거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돌연 이상한 생각이 번졌다. 이 사람의 코를 저 사진에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 사진의 눈을 저 사람의 눈으로 바꾼다면. 그렇게 얼굴이 달라지지 않을 것도 같았다.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사진 속 얼굴들이 다 비슷해 보이기에 이르렀고 개성 넘치고 구분이 확실했던 인상이 흐릿해졌다. 차츰 사진이 낯설어져 갔다. 하나의 얼굴로만 보였던 사진 속 인물들이 눈과 코와 턱과 귀와 얼굴형이 따로따로 번호가 매겨진 채 뒤섞였다. 구구단보다 더 쉽게 줄줄 외웠던 차량 숫자들이 머릿속을 휘휘 저으며 섞여 갔다. 

“똑바로 하란 말이야.”

캡틴은 자기 자리로 가더니 시험지가 들어 있는 서류 봉투를 꺼냈다. 그 가운데 내 시험지도 있을 것이다.

“지난 번 말했지, 80점 이하는 각오하라고.”

그러면서 그는 시험지 한 장을 옆으로 밀어 놓았다. 옆에 서 있는 막내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내게까지 들렸다.

“여기가 원랜 무궁화 다섯 개였단 말이지. 이런 새낀 발도 못 붙이던 곳인데.”

그는 빨간 빗금이 여러 개 그어져 있는 시험지를 흔들며 말했다. 도어맨 수준이 떨어진 것 때문에 호텔 수준이 떨어진 거라고 캡틴은 믿고 있었다.

호텔은 계속 낡아 가고 있었다. 주변에 새로운 호텔이 생기면서 호텔의 무궁화도 하나씩 떨어져 갔다. 열 명이나 됐던 도어맨도 다섯 명으로 줄었고 오전과 오후로 두, 세 명씩 파트를 나눠 입구를 지켰다. 두 명은 더 잘릴 거란 소문이 돌았다.

“다들 복귀하고 자네는 남지.”

캡틴은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와 동시에 주위에선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떠나자 캡틴이 아무 말 없이 시험지를 내게 건넸다.

서른 개의 문제 가운데 내가 맞춘 건 단 두 문제뿐이었다.

“다니기 싫어?”

캡틴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나는 시험지를 들여다봤다. 머리가 벗겨지고 안경을 쓴 이 노인네는 누구였더라, 얇은 입술을 꼭 다물고 있는 이 젊은 여자는 누구였지. 시험지 속 사진들이 낯설었다. 그나마 내가 맞춘 두 문제의 사진이건만 생경해 보였다.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빠져 가지고선.”

캡틴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나는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시험지를 휴지통에 구겨 버렸다.


나는 과연 호텔의 간판답게 입구에 서 있었다. 낯선 얼굴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기도 했고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차에서 내리기도 했다. 막내는 자주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택시 운전사 한 명이 유리창을 열어 내 이름을 부르며 뭐라고 소릴 쳤다. 처음 본 사람인데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을까 불안해 하다가 제복에 명찰이 있음을 떠올렸다.

볼보 한 대가 입구 저만치 앞에서 미끄러지듯 섰다. 검게 선팅한 창문이 내려가더니 인상을 찌푸린 여자 얼굴이 나타났다. 막내가 뭐라고 하더니 뛰어갔다. 여자는 막내에게 키를 맡기고는 나를 노려보더니 어깨를 치며 지나갔다. 자동문 안으로 또각또각 걸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제야 내가 사람들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몽타주를 주머니에서 꺼내 자주 들여다봤다. 유리문 옆에 붙어 있는 거울을 바라보며 모자챙을 바로 잡았다. 자꾸 보니 몽타주 얼굴은 나와도 조금 닮은 것도 같았다.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훑어 내렸다. 시계를 봤다. 아직 교대 시간은 10분 정도 남았다. 나는 화장실을 갔다. 정장을 말쑥하게 입은 중년의 남자가 나오면서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신경이 곤두섰다. 몽타주 속의 인물과 조금 닮은 것도 같았다. 그는 내게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그냥 나를 지나쳐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구두 속에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의 얼굴을 기억해 보려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문득 나는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 버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공범은 없다, 고 했다. 최종적으로 모든 것이 드러났다. 단독 범행이었다. 자신을 공범이라고 경찰에 전화를 걸어 왔던 남자는 노숙자였으며 장난 전화임이 23시간 만에 밝혀졌다. 옆집 남자, 아니 살인범 정현철은 석 달 만에 다섯 명의 여자를 살해한 거라고 했다. 이곳에 이사 오기 전엔 강도를 가장해 두 명의 여대생을 죽였고 집을 지키던 가정부를 죽이기도 했다. 그냥 ‘화가 나서’ 죽인 거라고 했다. 그녀들이 어린 시절 자신을 학대했던 어머니 얼굴로 보였고 자신을 떠난 매정한 애인으로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화가 났다고 했다. 귀와 둔부를 모은 이유에 대해선 끝까지 함구했다. 시간(屍姦)을 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귀와 엉덩이에 성적으로 흥분한 것이 틀림없다고도 했다. 전문가들의 소견과 일반인들의 추측이 난무했다.

나는 배전실로 들어왔다. 도어맨과 벨맨의 출퇴근 사인은 배전실 한 켠에 마련된 탈의실과 체크카드를 사용해야 했다. 미스 리는 퇴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가 앉은 의자의 방석이 납작하게 눌려져 있었다.

미스 리의 책상 위엔 내가 사인한 몽타주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내게 사인을 받은 다음 그대로 둔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내 이름 석 자가 쓰여 있는 몽타주를 접어 바지 뒷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사무실 게시판에 붙여 놓았던 몽타주를 떼어 휴지통에 버렸다. 3시간 넘게 만든 몽타주는 세상에 나와 보지도 못한 채,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왔다. 불을 켜지 않은 채 침대 위에 누웠다. 심장의 쿵쿵거리는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베개를 편평하게 고르고 다시 누웠다. 건너편 간판이 꺼져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형광등을 켰다. 방이 환해졌고 그에 따라 갓 안에 갇혀 죽은 날벌레들이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공범은 없다. 그런데 왜 불안한 마음이 드는지 몰랐다. 

나는 몽타주가 담긴 종이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려 보았다. 보면 볼수록 그림 속의 남자 얼굴과 인상이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남자 목소리도 기억해내라면 기억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옆집은 조용했다. 침묵 가운데 째깍거리는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더 크게 들렸다. 나는 시계의 건전지를 빼냈다. 천장의 형광등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전등 스위치를 껐다. 냉장고의 소리가 저렇게 컸던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진 나는 냉장고의 콘센트를 뽑았다. 음식 따윈 버리면 그만이었고 미지근한 생수를 먹어도 상관없었다. 어디선가 양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위층에선 질질 끄는 듯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감았다. 옆집은 굳게 잠겨 있다. 노란 줄과 테이프로 가로막혀 있고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다. 아무도 없는 것이 분명한데 벽면 너머 501호에서 두런거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501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방 안 가득 여자의 귀와 입술과 눈알이 둥둥 떠다니고 있을 것 같았다. 샤워기에서 물줄기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전동칫솔 돌아가는 소리도 들렸다. 누군가 잠을 자려고 옷을 입고 있는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품을 하느라 ‘쩍’ 입을 여는 소리가 들렸고 텔레비전 뉴스의 앵커 목소리가 이명처럼 귓가를 울렸다. 

“공범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단독 범행인 것이 밝혀졌습니다. 나머지 사체들을 발굴  중입니다.”

그때 복도 저쪽 끝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먼 산에서 울리는 메아리처럼 처음엔 아주 아득하게 들렸다. 차츰 소리가 다가왔다. 한쪽 발을 질질 끄는 듯 소리는 불규칙했다. 두근거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세우고 어둠 속에 현관문을 조용히 응시했다. 조금씩 커지던 발소리가 문 앞에서 멈췄다. 손가락 끝이 차가워졌다. 정적이 흘렀다. 간신히 발에 힘을 주었다. 뒤꿈치를 들고 현관문 가까이까지 걸어갔다. 신발장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긴장하고 있었다. 나는 현관문에 붙은 볼록렌즈로 밖을 내다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서늘한 문에 귀를 갖다 댔다.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손잡이를 잡고 있던 손바닥에 땀이 고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밀었다. 복도의 센서가 켜져 있었다. 누군가 내 방문 앞에 서 있다가 급히 돌아간 것이 분명했다. 복도 중간에 있는 비상구 문이 닫히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나는 황급히 문을 닫았다. 그리곤 걸쇠 세 개를 모조리 잠갔다.

침대 위로 다시 올라가 몸을 눕혔다. 등을 구부린 후 무릎을 가슴까지 끌어 당겼다. 눈을 감았으나 정신은 점점 더 또렷해졌다. 나는 침대 끄트머리로 기어가 창문을 열었다. 밖을 내려다보았다. 가로등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그 아래 서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나는 커튼 사이로 눈만 내 놓고 남자를 오래도록 내려다보았다. 가로등 아래 남자는 내가 있는 오피스텔 창문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남자는 그렇게 한참 올려다보더니 뒤돌아 지하철역이 있는 도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나는 남자가 한쪽 발을 끌고 걷는지 오래도록 노려봤다. 그는 너무 느리게 걸어서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는 아주 천천히 걸었고 자주 뒤를 돌아봤다. 나는 커튼을 내렸다. 세운 무릎 위에 두 손을 얹어 놓고 앉아 어둠을 주시했다. 나는 손바닥으로 귀를 최대한 압박하여 막았다. 손가락이 머리카락을 건드릴 때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나는 침대 위로 천천히 쓰러져 누웠다. 눈을 감았다. 조금 있으니까 팔의 근육이 저려 왔다. 그러나 귀를 막은 손바닥을 떼지 않았다.《문장 웹진/200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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