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들의 타인

 

타인들의 타인

― 17세




하재영 




나는 부엌 식탁 아래 웅크려 앉아 있다. 불도 켜지 않고, 캄캄한 부엌, 식탁 아래. 나는 여기에서 음식을 먹는다. 하지만 내가 먹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단지 씹어 삼킬 무엇인지 모른다. 내가 먹는다고 생각하는 행위는 ‘먹다’가 아니라 ‘쑤셔 넣다’일지 모른다. 고로 나는, 씹어 삼킬 뭔가를, 입 속으로, 입 속으로, 꾸역꾸역 쑤셔 넣고 있는 중이다.

학원에서 돌아와 교복을 벗다가 옷핀이 없어진 것을 깨달았다. 옷핀. 터져 버린 호크와 올라가지 않는 지퍼 대신 스커트를 여며 주던 옷핀. 그 옷핀을 언제 잃어버린 걸까. 아니 그보다 교복이 불어나는 살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일 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십 킬로그램이 늘었다. 행인지 불행인지 키는 단 일 센티미터도 자라지 않았다. 늘어난 몸무게에 비례할 만큼 키가 컸다면 교복은 미니스커트가 되었겠으나 내 몸은 지금보다 덜 볼썽사나웠으리라. 블라우스를 입으면 단추와 단추 사이가 벌어진다. 옷핀으로 허술하게 고정한 치마 사이로는 살이 한 줌씩 삐져나온다. 그러나 나는 결코 새 교복을 맞추지 않으리라. 커다란 교복을 맞추는 건 예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의미와 같다.

방바닥을 더듬으며 옷핀을 찾다가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작고 못생기고 펑퍼짐한 여자 아이가 속옷차림으로 나를 마주보고 있었다. 날이라곤 하나도 없이 둥글둥글하기만 한 이목구비, 프랑크소시지처럼 짧고 퉁퉁한 팔, 임산부와 별다르지 않은 아랫배, 거기다 급격히 늘어난 체중으로 울퉁불퉁해진 피부까지. 그중에서도 최악은 가슴이다. 납작한 가슴에 살이 붙자 남자의 것이라고도 여자의 것이라고도 할 수 없는 희한한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의 가슴은 이목구비와 팔과 아랫배와 살갗의 흉측함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먹고 싶은 대로 처먹었으니 이런 얼굴, 이런 육체인 게 당연하다. 나는 거울 앞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팬티 바람으로 거울을 보다니 자학도 이처럼 가혹한 자학은 없다. 내 몸이 나를 모독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고개를 돌리고 싶지만 그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너무 추한 것과 너무 아름다운 것은 자기 의지만으로 눈을 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나는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건 내가 아냐. 저게 나일 리 없어. 나는 가스레인지에 끓는 냄비를 올려 둔 게 생각난 사람처럼 주방으로 달려갔다. 냉장고를 뒤졌다. 간식거리는 엄마가 몽땅 치우고 없었지만 씹을 건 얼마든지 있었다. 먹다 남은 국, 새로 담근 김치, 마른 반찬……. 나는 그것들을 몽땅 꺼내 들고 식탁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음식을 입에 우겨 넣었다. 미처 삼킬 새도 없이 밀어 넣고, 먼저 들어간 것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기도 전에 또 밀어 넣고. 국은 냄비째 들이부었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열세 살 봄, 아빠와 터울이 크게 지는 삼촌이 낯선 여자를 데려왔다. 그 여자, 참 많은 걸 가지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새까만 머리카락, 도자기인형처럼 희고 매끈한 피부, 커다란 눈과 그 눈에 어울리는 길고 풍성한 속눈썹까지. 그녀 앞에서 나는 불행했다. 그녀는 부드럽게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졌지만 나는 엄마를 닮아 부스스한 곱슬머리였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리만큼 희고 투명했지만 주근깨 가득한 내 얼굴은 여름 내내 쏘다닌 탓에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네가 채영이구나. 삼촌이 채영이 자랑 많이 했어. 책도 많이 읽고 아주 똑똑하다고.”

여자가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다가오자 분 냄새인지 향수 냄새인지, 나로선 도저히 구분할 수 없는 강렬한 향기로 어지럼증이 일었기 때문에. 그녀는 친밀감을 표시하려는 듯 내 손을 잡았다. 차갑지만 부드러운 손. 긴 손톱에는 은은하게 반짝이는 진주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나는 땀에 젖은 손바닥이 부끄러워 잡힌 손을 뺐다. 그래도 여자는 불쾌한 기색 없이 웃기만 했다.

홀린 듯이 여자를 바라보다 나는 소스라쳤다. 발. 그녀의 아름다움에 누를 끼치는 저토록 흉측한 발. 길게 다듬어진 손톱과 달리 발톱은 너무 짧아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투명한 스타킹 속의 엄지발톱은 어쩐 일인지 푸르죽죽한 빛을 띠었고 발가락은 마디가 불거져 울퉁불퉁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발을 가졌다니.    

차가 나오자 부모님은 여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해댔다. “부모님은 건강하시죠?” “남동생이 하나 있다고 했던가요?” “결혼해도 일은 계속할 거예요?” 어른들의 이야기란 어쩌면 이렇게 시시한 걸까. 지루해진 나는 삼촌의 손을 끌고 방으로 갔다. 그리고 밖에서 들을 새라 귓속말로 속삭였다.

“저 언니 누구야?”

“언니라니? 숙모라고 불러.”

삼촌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녀를 가족들에게 보이고 자랑스러워하는 게 분명했다. 무좀 때문에 발가락양말을 신고 단신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키높이 구두를 고집하는 범상한 남자지만 그 순간 나는 삼촌에 관한 이전의 평가를 유예하기로 했다. 어쩌면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위대한 인물일지 몰랐다. 미인을 차지하는 수많은 남자들이 그렇듯이.

“숙…… 모?”

처음 불러 보는 호칭이 어색했다. 그래서 그녀가 돌아갈 때까지 입안으로만 우물거릴 뿐 한 번도 소리 내어 ‘숙모’라고 말하지 못했다. 단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 얼굴이 아름답고 발이 흉측한, 이상한 향기로 내 머리를 어질어질하게 한, 그리고 몇 달 뒤 나의 숙모가 된, 그녀는 발레리나였다.

나는 평범했다. 우연히 텔레비전의 예술 프로그램에서 〈백조의 호수〉를 본 게 발레를 감상한 경험의 전부고, 발끝으로 회전하는 발레리나를 서커스단의 곡예사 보듯 신기해하는, 그러다 지겨워지면 채널을 돌려 〈천사소녀 새롬이〉를 보는 그런 아이. 숙모는 평범하지 않았다, 일상생활을 할 때조차. 걸을 때는 발가락 끝을 먼저 내디뎠고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자세를 흩뜨리는 적이 없었다. 고개를 돌릴 때면 곧게 솟은 목선과 일자로 뻗은 쇄골이 선명히 드러났다. 그런 행동이 기를 쓰고 꾸며낸 거라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하지만 그 모든 건 오랜 시간을 거쳐 숙모의 몸에 밴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허리를 편 채 설거지를 하는 모습이, 무심히 텔레비전을 볼 때조차 수그러들지 않는 목선이, 그토록 우아하고 자연스러울 수 없을 테니까. 숙모처럼 되고 싶다. 질투도 일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그녀를 만난 뒤 나는 그 열망을 포기할 수 없었다. 열세 살, 내 가장 강렬한 바람이었다.

‘숙모’라는 호칭을 망설임 없이 발음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발레를 배우기 위해 숙모와 함께 무용실을 찾았다. 숙모를 따라간 곳에는 ‘(관인) 최여진 무용학원’이라는 간판이 있었다. 최여진 선생님은 숙모의 친구이면서, 어머니에게서 학원을 물려받은 젊은 원장이었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발레를 하는 사람은 모두 숙모처럼 아름다울 거라는 내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선생님은 키가 무척 작았다. 반에서 가장 앞줄에 앉는 나와 비슷하여 백오십 센티미터가 채 안 될 것 같았다. 너무 강말라서 말상인 얼굴이 더욱 길어 보였다. 사나워 보이는 인상은 어딘가 품위가 없었다. 훗날 숙모에게 들은 말인데 선생님은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였다 한다. 그러나 체격 조건 때문에 번번이 발레단 입단 오디션에 낙방했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지도자라는 것은 차선의 선택이었을까. 어쩌면 결코 되고 싶지 않았을지도. 나는 한눈에 그녀가 콤플렉스로 뭉쳐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왜냐하면 나 역시 결핍을 만성 질병처럼 끌어 안고 사는, 그녀와 같은 유형의 인간이니까.


여전히, 나는 속옷 차림으로 식탁 밑에 앉아 있다. 볼록 튀어나온 배를 어루만지며(사실은 어루만질 게 아니라 터트려 버리면 어떨까 생각하지만) 토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변기에 얼굴을 박고 검지와 중지를 목구멍 깊숙이 쑤셔 넣으면 음식들은 뭉개진 형태, 고약한 냄새로 식도를 역류하겠지. 참 이상하다. 방금까지 음식이었던 것이 어떻게 내 위로 들어가자마자 쓰레기에 다름 아닌 것들로 변해 버리는지. 그런데 나 왜 여기에 있지? 그래, 옷핀을 찾고 있었지. 그러다 거울을 보았지. 거울 속, 벌거벗은, 추한 몸. 요즘 들어 나는 더욱 자주 거울을 본다. 한 군데 정도는 예쁜 구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온 정신을 집중하여, 필사적으로.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노력은 늘 허사로 끝난다. 거울을 깨뜨리고 싶은 충동이 드는데도 자꾸 거울을 보는 이유는 뭘까? 자학이 습관이 된 인간이라서? 


예쁘지 않아서 슬펐던 적이 있었다.

내게는 연년생인 여동생이 있다. 어렸을 때는 동생과 노는 게 싫었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바보이기 때문이었다. 동생과 놀 때면 상황 설정부터 역할 분담, 심지어 적절한 대사까지 일일이 정해 주어야 했다.

“이제 야채가게 놀이할 거야. 언니가 주인이고 네가 손님이야. 이제 네가 가게로 들어와서 ‘뭐’와 ‘뭐’를 주세요, 라고 말하면 되는 거야. 쉽지?”

“쉬워, 쉬워.”

그러나 동생은 ‘뭐’라는 빈자리에 들어갈 단어조차 찾지 못하는 멍청이였다.

“뭐랑 뭐를 주세요.”

“이 바보야, 앵무새처럼 따라하지 말고 야채 이름을 대란 말이야. 오이나 당근 같은 거.”

“그럼…… 오이랑 당근 주세요.”

“내가 한 거 말고 딴 걸 해 봐.”

동생은 난처한 얼굴을 하고 “언니야, 오이랑 당근은 안 돼?”하고 물었다.

나는 수준 차이 나는 동생과 노는 것보다 엄마 친구 아들인 성휘와 노는 것이 좋았다. 성휘가 놀러오면 저 바보는 떼어 버리고 우리끼리 놀자고 제안했다. 성휘는 나보다 똑똑했고 동생을 따돌리는 데도 더 적극적이었다. 우리는 숨바꼭질을 하자고 동생을 꼬드긴 뒤 옷장 안에 숨어 있는 동생을 내버려 두고 놀이터로 나가 버리거나, 놀이터에서 술래잡기를 할 테니 먼저 나가라고 말하고 현관문을 잠가 버렸다. 이 천재적인 방법들은 모두 성휘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일곱 살 생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나와 동생은 성휘의 집에 맡겨졌다. 왜 그날 그 집에서 자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다른 지방에 살던 할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졌기 때문인지, 부모님이 단둘이 여행을 갔기 때문인지. 아무튼 우리 자매는 성휘와 한 방에서 자게 되었다. 한밤, 나는 가슴을 옥죄이는 답답함 때문에 깼다. 정신을 차려보니 성휘가 나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어찌나 꼭 껴안았는지 가슴에 커다란 바위를 올려놓은 것처럼 숨이 막혔다. 밀쳐내려 했지만 성휘는 눈을 뜬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난 네가 좋아.”

별말도 아닌 것 같은데 “좋아”라는 그 말이 머릿속에서 자꾸자꾸 울렸다. 물수제비가 만들어낸 파장처럼 몇 번이나 반복되는 좋아, 좋아, 좋아의 물결. 내 인생을 통틀어, 그러니까 지난 칠년 간, 이토록 적극적인 표현을 한 남자아이는 없었다. 

“너도 나 좋아?”

나는 그냥 성휘랑 노는 게 즐거울 뿐인데 이런 것도 좋아한다고 말하는 걸까. 좋아한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왜 좋아?”하고 되물었다.

“예쁘니까.” 

어른들이 의례적으로 하는 칭찬을 제외하면 누군가로부터 예쁘다는 말을 들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기분이 좋아져 나는 그 아이의 호의에 보답하기로 했다.

“나도 네가 좋아.”

돌연 성휘가 내 입술에 자기 입술을 포개었다. 그 입맞춤은 부모님이 해 주는 것과 달랐다. 너무 세게 비벼 대는 바람에 입술이 아려 올 지경이었지만 싫거나 불쾌하진 않았다. 두 입술이 맞닿아 있는 동안 오줌이 마려울 때처럼 온몸에 찌릿찌릿 전율이 느껴졌다. 귀에서는 윙윙 바람 소리가 들렸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 움찔움찔 깨어났다. 그 느낌이 좋아서 성휘가 내 가슴과 배와 급기야 엄마가 ‘부끄러운 곳’이라고 했던 데를 어루만질 때도 가만히 있었다. 얼마 뒤 성휘의 가족은 지방으로 이사했다. 

그 아이를 다시 만난 건 열세 살 여름방학 때였다. 엄마가 성휘네와 함께 피서를 간다고 말한 그날부터 해후를 고대했지만 막상 만났을 때는 어색하기만 했다. 소년도 어른도 아닌 성휘는 어딘가 어정쩡해 보였다. 어린 성휘는 또랑또랑한 눈망울에 영리함이 어려 있는 아이였다. 때로 그 눈은 주체할 수 없는 장난기로 번뜩였는데 그 표정이 꽤 귀여웠다. 그러나 그해 여름의 성휘에게는 영리함도 장난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끊임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눈은 불안해 보였고 반듯했던 이목구비도 어쩐지 균형이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엄마, 성휘 얼굴이 이상해.”

내가 속삭이자 엄마는 “클 땐 다 그래, 성휘가 보기엔 너도 그럴 걸”이라고 대답했다. 엄마 말이 맞을지 몰랐다. 나는 더 이상 귀여운 일곱 살 계집아이가 아니었다. 새까맣게 그을린 탓에 삐쩍 마른 몸은 더욱 빈약해 보였고, 귓불 아래에서 뭉텅 잘린 어정쩡한 단발머리는 허공을 향해 이리저리 뻗쳐 있었다. 설상가상 나빠진 시력 때문에 두꺼운 안경까지 꼈다. 무엇보다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한 건 동생보다 키가 작다는 사실이었는데, 성휘네 부모님은 우리 가족을 만나자 내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오로지 동생만을 응시하는 무례한 행동으로 내 콤플렉스를 들쑤셨다.

“어머, 큰 애는 아주 처녀 티가 다 나네.”

“그 애가 작은 애야.”

엄마가 정정했다. 나는 성휘 부모님의 얼굴이 놀라움에서 경탄으로 변하는 것을 침울한 기분으로 관찰했다. 동생은 나보다 한 뼘이나 더 컸다. 게다가 열두 살밖에 안 된 주제에 봉긋한 가슴과 풍만한 엉덩이까지 가지고 있었다. 반면 내게는 여성으로서의 아무 징후도 없었다. 열세 살의 내가 가진 건 비쩍 마른, 불완전하고 볼품없는 몸뚱이뿐. 성휘와 내가 쭈뼛거리는 사이 동생은 긴 머리가 흐트러지는 것도 모르고 신이 나서 바닷가로 달려갔다. 성휘 아빠는 우리 부모님을 돌아보며 말했다.

“허, 크면 미스코리아 시켜야겠어.”

미스코리아라니, 촌스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어렸을 땐 큰 애가 더 예쁘더니, 애들 얼굴은 수십 번도 더 바뀐다니까.”

성휘 엄마는 뭐가 재미있는지 호호 웃었다. 어른들은 어쩌면 저렇게 무신경한 존재들일까. 아이들은 들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들어도 무슨 뜻인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어느 쪽이든 용서할 수 없다.

훌쩍 높아진 파도가 밀려오자 순발력이 없는 동생은 그 물을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울상이 되었다. 쌤통이다. 나는 성휘를 돌아보았다. 예전처럼 그 아이가 공범자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성휘는 입을 반쯤 벌린 채 동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생은 폭포처럼 쏟아지는 사내아이의 눈빛을 모르는 건지,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는 건지, 갈기 긴 망아지처럼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바닷가를 뛰어다녔다. 동생의 움직임을 쫓아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려대는 성휘는 예전의 성휘가 아니었다. 성휘는 그러니까, 바보로 전락해 있었다.

이틀 일정 내내 성휘는 동생과 둘이만 놀고 싶어 안달이었다. 노골적으로 나를 따돌리는 그 아이 앞에서 나는 기품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무심한 표정으로 성휘를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동생은 냉담했다. 예전에 성휘가 못되게 굴던 일을 마음에 담아두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 아이는 원래 그랬다.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늘 나하고만 놀려고 했다. 동생의 그런 성격은 성휘에게도 불운이었겠지만 내게도 비극이었다. 동생이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통에 성휘는 나를 늘 불만스럽게 바라보았으니까.

동생은 모래밭에서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성휘가 살금살금 동생의 뒤로 다가가는 게 보였다.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나 너 좋아해!”

성휘가 동생을 와락 껴안았다. 동생은 기겁을 하고 성휘의 품에서 빠져 나가려고 바동거렸다.

“나 정말 너 좋아한다니까!”

허공을 휘젓던 동생의 손이 성휘의 뺨을 찰싹 때렸다. 성휘가 얼빠져 있는 사이 도망쳐 온 동생이 내 품에 안겨 울기 시작했다. 성휘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 때문에 일이 꼬였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을 뿐인데. 존재 자체만으로 훼방꾼 취급을 받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다. 그것이 열세 살 여름이 남긴 교훈이었다.


나는 사랑 받는 것에 목말라 했다. 열세 살, 그 우울한 여름부터. 아니 일곱 살, 처음으로 입을 맞췄던 순간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 불완전한 육체를 가지고 양수에 잠겨 있던 때부터. 사랑을 갈구하는 이유는 ‘결핍’이 아닐까. 그러나 나는 결핍을 앓을 만한 환경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들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으며 자란 편이었다. 결핍이란 선천적으로 내장되는 것인지 모른다, 유전적 질병처럼.

결핍감은 열등감을 낳고 열등감은 질투심을 낳는다. 늘 타인이 부러웠던 이유는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러움은 질투로, 증오로, 자기혐오로, 그 모습을 달리했으므로 누군가를 부러워하기 시작하면 마비된 판단력과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질투, 증오, 자기혐오는 같은 뿌리에서 비롯된 다른 모양의 열매 같다. 한 아버지의 씨를 가지고 다른 어머니의 배에서 태어난, 닮지 않은 사생아들.

부럽다 못해 미워진 사람은 동생만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모든 것을 부러워하다가, 질투하다가, 증오하다가, 종국에는 스스로를 혐오했다. 막대기 같은 몸을 가진 열세 살 때는 키가 크고 풍만한 육체를 가진 아이가 부러웠다. 살이 찌기 시작한 열일곱 살 때는 미풍에도 스러질 듯한 몸을 가진 아이가 부러웠다. 부러워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글씨를 잘 쓰는 아이나 오빠가 있는 아이조차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다는 이유로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발레를 배우면서 그런 증세는 더 심해졌다. (증세라는 표현이 적절할까? 돌이켜보면 내 질투심과 열등감은 병적인 데가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학원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달랐다. 단정하게 머리카락을 틀어 올린 아이들, 레오타드가 잘 어울리는 아이들, 그들 속에서 나는 평범하다 못해 열등했다. 사방이 거울인 무용실에서 어쩔 수 없는 비애감을 맛보았다. 무용실 거울에 비친 나는 여느 때보다 더 볼품없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레오타드는 밋밋한 육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여성의 징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몸, 유년은 가고 사춘기는 오지 않은 몸. 내 몸은 비극적이었다. 봉긋한 가슴도, 탐스러운 엉덩이도, 잘록한 허리도 없는 완전한 결핍.


열네 살 때 첫 콩쿠르에 나갔다. 화려한 무대 분장을 하고 클래식 튀튀를 입은 뒤 오랫동안 거울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얼굴에 반해 호수에 빠져죽은 나르시스처럼. 자아비판을 일삼게 했던 빈약한 몸은 튀튀에 잘 어울렸다. 고개를 돌려 내가 부러워했던 몸매의 소유자들을 봤다. 육감적인 가슴과 엉덩이를 가진 그들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가슴 선에 딱 맞게 재단된 상의 위로 삐져나오려는 커다란 유방, 허리에서 수직으로 펼쳐지는 치마 아래 드러난 실팍한 엉덩이, 아름답기커녕 민망하고 둔해 보이는 몸.

튀튀에 어울리는 아름다움은 키만 자란 채 2차 성징은 나타나지 않은 소녀의 몸이다. 그 미숙함과 가녀림이야말로 발레리나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나는 그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내 몸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분장실에 있을 때도, 대기실에 있을 때도, 나를 따라다니는 시선을 느꼈다. 예쁘다고 수군거리는 소리도. 발레를 하기 전 삐쩍 마른 몸은 내게 가장 큰 콤플렉스였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나의 가늘고 긴 팔 다리와 좁은 어깨를 부러워했다. 물론 밋밋한 가슴과 엉덩이도.

조명이 꺼진 무대에 섰다. 첫 포즈를 잡자 강렬한 조명이 무대를 밝혔다. 너무 눈부셔 차라리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불빛. 모든 감각이 마비된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애써 정신을 차리고 객석을 봤다. 무대 위와 달리 그곳은 캄캄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수십 명의 관중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만은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관객의 시선이 느껴지자 오히려 긴장이 가시면서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내 몸 구석구석을 훑고 있는 그 시선들은 우호적이지도 친밀하지도 않았다. 작은 실수도 놓치지 않을 듯 예리한 눈빛들. 그러나 나는 그 시선 때문에 알았다, 그곳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바로 내가 주인공이라는 것을.   

그 무대에서 내가 어떻게 춤을 시작하고 끝냈는지, 실수를 했는지 안 했는지, 선생님이 지적하던 동작을 완벽하게 소화했는지 그렇지 못했는지, 이제는 잊어버렸다. 다만 무대 위에 있는 동안 행복했다는 것, 아다지오 풍의 작품이었는데도 춤추는 내내 신명이 났다는 것만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음악이 끝나고 박수와 환호 소리를 들었다. 갈채를 받는 건 타인이 나를 사랑한다고 느낄 때의 기분과 비슷했다. 

물과 햇빛을 필요로 하는 식물처럼 나는 늘 타인의 관심을 필요로 했다. 열세 살 여름, 내가 그토록 참담한 심정으로 성휘와 동생을 바라봤던 건 성휘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타인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좋아하기는커녕 훼방꾼처럼 여긴다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 다른 사람이 모두 나를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하다니, 남들은 공주병이라고 비난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자신감이 없어서, 타인에게 사랑받을 때만 나도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었던 거라고.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머릿속에서는 무대에 섰던 순간이 반복 재생되었다. 수업시간, 그때를 떠올리다 권태로운 표정으로 수업을 듣는 아이들을 보면 수학 공식이나 영어 문법에 목을 매는 그들이 가엾기까지 했다. 너희들이 긴장이나 흥분을 느끼는 것은 기껏해야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정도겠지, 하는 우월감. 무대에 서면서 얻은 게 있다면 스스로에 대한 호의(나르시시즘과는 다른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첫 콩쿠르 이후 내 실력은 빠르게 늘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는 학원의 선두그룹이었고, 전국 콩쿠르에서 여러 번 상을 탔으며,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열여섯, 중학교 삼학년 겨울, 그 아이가 나타났다. 변인아, 그 아이의 등장과 함께 가까스로 얻은 스스로에 대한 호의와 자신감은 믿기지 않을 만큼 간단히 깨져 버렸다. 중학교에 다니는 삼 년 내내 나는 키가 자라지 않을까 봐 불안해했지만 나보다 십 센티미터는 더 크고 몸무게는 더 적게 나가는 그 아이가 나타난 뒤 불안은 강박이 되었다. 매일 1.5리터짜리 우유를 한 통씩 마시고 키가 큰다는 영양제를 꼬박꼬박 먹어도 내 키는 백육십 센티미터에 채 못 미쳤다.

처음 인아가 학원에 온 날, 최여진 선생님은 들뜬 목소리로 낯간지러운 찬사를 해 댔다. 완벽하다고. 목선부터 발등 모양까지 발레하기에 적절한 체격이라고. 인아는, 발레를 하기 위해 태어난 게 틀림없다고. 선생님의 총애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나는 그 아이에 대한 멸시를 감추기 어려웠다. 아마도 그 아이가 ‘중학교 삼학년’때 무용을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용학원에서 중학교 삼학년은 갑자기 동기가 많아지는 학년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성적조차 안 되는 멍청이들이 예고라도 가보겠다고 대거 무용학원이나 미술학원으로 몰려드니까. 나는 그 시기 학원에 들어온 동기들을 마음속 깊이 경멸했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발레를 시작한 변인아는 나의 경쟁 상대가 못 되었다. 기본동작조차 서투른 그 아이를 나는 한 번도 위협적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사실 내가 그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선생님이 그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다. 선생님이 가진 편애의 기준은 확고했다. 외적인 미. 학원에도 간혹 키가 작거나 뚱뚱한(그래봐야 표준 체형이지만) 학생이 있긴 했다. 그들은 실력에 상관없이 선생님의 관심 밖이었다. 실력이야 연습해서 늘릴 수 있지만 노력만으로 타고난 몸매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선생님이 자신의 편애를 정당화하는 논리였다. 선생님뿐만이 아니었다. 콩쿠르에 나가면 체격 조건이 뛰어난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 일쯤 허다했다. 그러므로 키가 작거나 뚱뚱하면 어차피 패배자였다. 

변인아. 우리 학원의 날씬한 그룹 가운데서도 가장 마른 아이, 키만 자란 초등학생 같은 아이, 그 아이야말로 발레리나를 꿈꾸는 우리의 이상형이었다. 그러나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시기라고 해도 좋고 트집이라 해도 상관없다. 그 아이는 기형적일 만큼 얼굴이 작고 어설퍼 보일 만큼 팔 다리가 길다. 게다가 몸짓은 건조하고 밋밋하다. 열정? 노력? 변인아의 춤에서 그런 건 찾아볼 생각도 하지 말라지.

그 아이는 무성의하게 팔을 들었다 내리기만 해도 박수를 받았다. 긴 다리를 뻗어 아라베스크를 하면 아무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아도 칭찬을 들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혹평을 퍼부었다. 감정이 실려 있지 않은 기계적인 춤이라고. 그러나 내가 느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모르나 보았다. 칭찬에 인색한 선생님이지만 유독 인아에게만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아름답다고, 완벽하다고, 발레를 하기 위해 태어난 게 틀림없다고.

단체 레슨은 인아를 위한 개인 레슨이 되어갔다. 정규 레슨이 끝나고 작품 연습을 할 때면 선생님은 인아를 지도하느라 중요하지 않은 몇몇 학생들을 간과했다. 어느 작품 연습 시간 선생님이 내 차례를 빼 먹고 인아의 작품 음악을 틀었을 때 비참한 현실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중요하지 않은 학생’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선생님의 사랑을 잃어버렸다. 선생님은 알까, 내가 앞줄을 사수하기 위해 애쓰고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동작을 크게 했던 건 선생님의 관심을 끌어 보려는 고군분투였다는 걸. 사랑하는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처럼 애정을 구걸하는 사람은 비굴하다. 그러나 상처받는 것에 익숙해 타인의 관심을 체념하는 사람은 더 혐오스럽다.    


나는 여느 때처럼 앞줄 중앙에 섰다. 선생님의 시범이 잘 보이는 데다 여러 명이 그룹을 만들어 춤추더라도 가장 눈에 띄는 위치다. 한때는 쟁쟁한 선배들 때문에 엄두도 낼 수 없었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콩쿠르에서 여러 번 상을 타자 자연스럽게 내 자리로 정해진 곳이기도 하다. 물론 이 자리는 스스로 지키는 것이다. 남들보다 일찍 학원에 오고 누구보다 빨리 스트레칭을 끝내야 한다. 그래야 레슨이 시작하는 동시에 재빨리, 이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선생님은 뒷자리에 서 있던 인아의 손을 잡고 내 앞으로 왔다. 내 등을 가볍게 떠밀며 말했다. 

“뒤로 가.”

선생님이 학생들의 자리에 관여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므로, 나도 인아도 그리고 다른 학생들도 어리둥절했다.

“인아는 앞으로 이 자리에만 서, 선생님이 잘 볼 수 있게. 알았지?”

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자리를 차지하는 대신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뒷자리로 갔다.

“앞에 서, 네 자리잖아.”

내게 다가온 인아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왜 이 아이가 울상을 짓는지 알 수 없었다. 정말 울고 싶은 건 내가 아닌가. 나는 인아가 냉큼 그 자리를 차지하기 바랐다. 모든 사람들이 인아를 염치없는 아이라고 손가락질하길 원했다. 그러면 나는 삐뚤어진 편애에 희생당하는 피해자가 되겠지. 인아는 선생님의 사랑을 등에 업고 기세등등해 하는 거만한 아이가 될 테지.

“왜 저 애 눈치를 봐? 괜찮아, 내가 괜찮다잖아.”

나와 인아 사이에 끼어든 선생님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 애’가 바로 나였다. 그 자리에 있는데도 없는 사람으로 취급 받는 것만큼 굴욕적인 일이 또 있을까. 나는 그곳에 없는 사람, 혹은 있어서 거슬리는 사람, 훼방꾼, 그밖에도 온갖 나쁘고 성가신 것의 포괄이고 총체였다. 

“전 뒤에 설래요.”

선생님에게 거역하는 것은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우리였으므로, 인아의 건방진 대꾸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나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독선적인 선생님은 화를 낼 것이다. 몇 초 전 인아가 앞자리에 서기를 바랐던 것만큼이나 간절하게, 이제 나는 선생님이 그 아이에게 화를 내기 바랐다.

“그럼 그렇게 하자.”

내가 바라는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명예스럽지 못한 앞자리에 섰다. 인아는 고결한 뒷자리에 섰다. 레슨 내내 선생님은 한 번도 내 앞에 머무르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정규 레슨이 끝났다. 십 분의 휴식 시간 뒤 작품 연습이 시작될 것이다. 요즘 작품 연습을 할 때마다 마음이 상하는데 새로 받은 작품이 도통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별다른 테크닉을 요하지 않는, 초등학생이라면 모를까, 고등학생이 하기에는 수준이 낮은 작품. 이런 생각은 나만의 피해의식이 아니다. 선배들도, 동기들도, 왜 네가 그런 작품을 하냐고 의아해 했다. 그 작품, 실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첫 작품으로 하는 거 아니냐면서.

나는 토슈즈를 신었다. 견고한 나무로 만들어진 토슈즈는 발을 넣는 것만으로도 발가락을 짓이긴다. 발끝으로 일어서면 발톱 밑에 송곳을 찔러 넣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그런 상태에서 몸무게를 지탱하고 밸런스를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무게감이 상당해 가죽 슈즈를 신었을 때보다 곱절은 더 힘들다. 발은 상처로 만신창이가 되지만 공기가 통하지 않는 토슈즈를 신고 있으니 아물 리 없다. 피가 나고 물집이 생긴 자리는 땀으로 가득 찬 토슈즈 안에서 고스란히 곪아간다. 첫 작품을 받았을 때는 토슈즈를 신고 이 분이 넘는 작품을 해 내는 것이, 하이힐을 신고 마라톤을 하는 것만큼이나 요원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제 나는 고문 도 구 같던 토슈즈를 편하게 느낄 만큼 실력 있는 학생이 되었다.

첫 동작이 시작되는 위치에 섰다. 음악이 흐르자 카브리올과 애티튜드를 번갈아 하며 무용실 중앙으로 나갔다. 작품 초반, 숨이 찬 것도 아닌데 내 동작은 불성실했다. 거울 속, 무용실 뒤편, 인아의 모습이 비쳤다. 개인 연습을 하는 모양이었다. 흥, 그래봤자 어설픈 동작. 인아를 힐끔거리느라 내 몸짓은 점점 흐트러졌다. 요즘 인아는 열심이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무용실로 달려와 개인 연습에 몰두하는가 하면 지금처럼 다른 사람이 작품 연습을 할 때도 제 연습에만 전념하곤 한다. 

사랑 받는 학생이 되면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열심히 하는 걸까. 생각해 보면 선생님의 편애를 받던 중학생 시절, 나 역시 열성적으로 춤을 추지 않았던가. 무용이 좋기도 했지만 선생님이 내게 기울이는 정성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천대받는 학생이 되었을 때 삐뚤어져도 그건 내 탓이 아니지 않은가. 숙모의 말처럼 최여진 선생님은 웬만한 발레단의 솔리스트에게도 뒤지지 않을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녀가 무대 위의 갈채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인아는, 아마도 자신의 꿈을 대리만족시켜 줄 희망이겠지.

“그만!”

음악이 멈추고 선생님의 날카로운 고함이 무용실에 울려 퍼졌다. 사람들 모두, 제게 하는 말인 양 동작을 멈췄다. 혼자 연습에 열중하던 인아도, 토슈즈를 갈아 신던 윤선 언니도, 워밍업을 하던 소연 언니도. 사실 멈춰야 할 사람은 나인데.

“그만하고 나가, 그렇게 엉망으로 출 거면! 도대체 뭐가 불만이야? 너희 엄마가 사정사정해서 내가 네 작품비도 안 받고 작품 연습 시키는 거 몰라?”

나는 선생님이 누구에게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 아빠의 사업이 부도를 맞은 뒤 우리 집은 심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지만, 공납금도 제때 못주는 엄마가 작품비나 레슨비를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지만, 우리 학원에서 작품비도 못 낼 만큼 가난한 사람은 나밖에 없지만, 하지만 나는 선생님이 누구에게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 말고도 선생님에게 푸대접 받는 학생들이 더 있다. 우리 학년의 연희나 지수처럼 한눈에도 소질이 없어 보이는 아이들, 지현이 언니나 명화처럼 뚱뚱한 사람들. 내가 동기와 선배들을 함부로 분류하고 있다는 것은 안다. 뚱뚱한 사람, 재능 없는 사람, 노력하지 않는 사람…… 그러나 이것은 선생님의 분류법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어디에 들어가는지 궁금해 해 왔다. 혹시 나는 조금 다른 분류법이 적용되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이를테면 주는 것 없이 미운 아이 하는 식으로. 하지만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키도 땅딸막하고 작품비도 못 내는 학생이 선생님 눈에는 예뻐 보일 리 없을 것이다. 게다가 주제도 모르고 불만만 가득한 학생이라니.


공복감은 절망감에 비례하는가. 이 문제는 열일곱 살의 내게 일종의 철학적 난제다.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프니. 선생님의 편애가 심해지면서, 내가 ‘중요하지 않은 학생’이 되면서, 실력 없는 인아가 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그리고 나는 번번이 고배를 마시면서, 나는 먹을 것에 집착한다. 왜 ‘먹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먹는다는 행위가 주는 쾌감? 내게 그런 게 있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다. 발레를 시작한 열세 살 때부터 나는 먹는 것을 죄악시하는 분위기에서 자랐으니까.

학교에 도착하면 도시락부터 까먹는다. 그래도 아침 자율학습이 끝나고 조례를 할 때쯤이면 허기가 진다. 종이 울리자마자 구겨 신었던 실내화를 고쳐 신고 전속력으로 달리지만 매점은 늘 아비규환이다. 아이들은 줄도 서지 않고 가판대로 달려든다. 나는 덩치 큰 아이들에게 치여 뒤로 밀려나면서도 “아줌마, 새우깡이랑 약과, 콜라두요!”를 목이 터져라 외친다. 방과 후에는 거리에 즐비한 패스트푸드점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예전에는 햄버거와 콜라, 감자튀김이면 충분했는데 요즘은 거기다 치킨이며 사이드 메뉴까지 먹어도 포만감이 들지 않는다. 잔뜩 기름진 위는 후식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베스킨라빈스에 들른다. 점원은 4,5인분의 아이스크림을 혼자 먹어치우는 나를 보고 묘한 표정으로 웃는다. 

레슨이 끝나면 공복감에 쓰러질 것 같다. 선생님의 편애가 극성스러운 날일수록 허기는 더하다. 땀이 흥건한 연습복 위에 교복 재킷만 걸친 채 학원을 몰래 빠져 나간다. 밤 열 시, 패스트푸드점은 문을 닫지만 편의점이며 분식집은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다. 강도 높은 연습을 하고 나면 허기보다 갈증을 참는 게 더 힘들다. 편의점에 들러 생수와 라지 크기의 슬러시를 들이킨다.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만두, 순대와 라면을 해치우는 속도는 스스로도 놀랍다. 다 먹는 데 오 분도 걸리지 않으니까.

식욕이 왕성해진 만큼 주머니는 가난해진다. 빤한 용돈으로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싶은 만큼 먹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학습지나 준비물을 사야 할 돈을 빼돌린다. 그러나 고작 몇 천원의 돈으로 나날이 더해가는 식탐을 충족할 수 없어, 급기야 값비싼 토슈즈 값을 떼어 먹는다. 매일 밤 부모님은 돈 때문에 싸우는데, 빚쟁이에게 시달리던 아빠는 며칠 전부터 행방이 묘연한데, 그리고 늘어난 체중 때문에 토슈즈는 빠른 속도로 망가지는데, 또, 낡은 토슈즈가 가진 부상의 위험을 뻔히 아는데, 그래도 먹고 싶어서, 너무너무 먹고 싶어서, 자꾸 돈을 떼어 먹는다.  


아마도 나, 식신(食神)의 주문에 걸린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음식에 탐닉할 수가. 배가 고프면 온 세상이 먹을 것으로 보여 괴로워. 허기를 채우고 나면 식욕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괴로워. 먹어도 괴롭고 먹지 않아도 괴로운 이 딜레마를 어쩌면 좋지? 포만감도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해. 노예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어. 나는 음식의 노예인걸. 먹고 싶어, 먹고 싶어. 이건 내 목소리가 아니야. 내 뱃속에 사는 누군가의 외침이야. 그 누군가는 똬리를 틀고 앉아 하루 종일 고함을 지르지. 밥을 달라고, 고기를 달라고, 과자를 달라고. 환청이 아냐. 고막이 터지도록 이렇게 내 귀를 울리는데 어떻게 이 소리가 환청이란 말이야. 비밀이 또 있어. 내가 먹은 음식은 뱃속에서 자기 번식을 해. 밥이, 치킨이, 아이스크림이, 새끼를 낳아. 그 새끼가 또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또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또……. 망할 것들. 이놈들이 언젠가 내 배를 터트릴 거야. 내버려 둘 수 없어.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먹은 것을 게워냈다. 길을 걸으며 침을 탁탁 뱉었다. 습관처럼 구토를 하면서 생긴 버릇이었다. 침조차 먹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차마 삼킬 수가 없었다. 내가 피둥피둥해질수록 선생님은 말라갔다. 나처럼 될까봐 겁이 나는 걸까? 흥, 하지만 나는 당신처럼 될까 봐 두려운걸. 당신은 알까? 수분이 빠져 쪼글쪼글해진 사과처럼 생기 없는 자기 모습이 얼마나 섬뜩한지. 그렇게 추한 몰골을 하고도 뚱뚱한 건 죄라고, 뼈만 남는 것이 아름다움이라고 다그치다니. 아, 또 머리가 희끈거리고 구역질이 나잖아.

위장이 뒤집히는 것 같아 무용실을 뛰쳐나갔다. 변기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자니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무용실로 돌아와 뒷자리에 섰다. 이제 나는 결코 앞자리에 서지 않는다. 이 자리가 편하다. 여기에 서면 아이들로 거울이 가려 내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까. 어쩌다 거울 속의 나와 눈이 마주치기도 한다. 그러면 타인의 알몸을 훔쳐 본 사람처럼 얼른 고개를 돌린다. 바뜨망을 하거나 팡세를 하는 그 무리 가운데 가장 키가 작은 사람이 나다. 가장 뚱뚱한 사람이 나다. 숨이 차올랐다. 늘어난 몸무게 때문에 간단한 동작조차 해 낼 수 없다. 알레그로는 숨이 가빠서 엄두도 내지 못한다. 버겁기는 아다지오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느린 템포의 안무에 맞춰 다리를 올리고 밸런스를 잡으면 허리에 살이 접혀 서 있기조차 힘들다. 한때 나는 그랑줴떼를 가장 잘 뛰는 학생이었다. 이제는 도약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땅으로 가라앉기 일쑤지만. 힘들게 점프를 뛰었다. 쿵! 다른 아이들처럼 사뿐히 바닥을 딛지 못해 착지와 동시에 바닥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얘, 애먼 마룻바닥이 무슨 죄니? 돼지 같은 게……. 마루 꺼지면 네가 물어낼 거야?” 

선생님이 고함을 질렀다. 몸무게에 관해 어떤 말을 들어도 상처받지 않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먹을 것을 앞에 두고 고민하지 않게 되면서부터가 아니었을까. 이제 나는 먹기 전에 번민하지 않는다. 먹은 뒤에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뭔가를 먹지 않으면 머리가 이상해지는 거 같다.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벌써 내 입은 뭔가를 오물거리고 있다. 씹는다는 행위가 이렇게 쾌락적일 줄이야.

내가 씹는 것은 음식이기도, 최여진 선생님이기도, 변인아이기도, 나 자신이기도 하다. 뭔가를 씹을 때, 그때만이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이 된다. 먹고 싶다, 먹고 싶다. 지독한 이 허기는 아주 오래 전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 사춘기, 혹은 유년, 아니면 유아기 때부터. 타인에게 사랑 받고 싶은 오랜 열망과 그 열망에서 비롯된 결핍감, 열등감, 질투심, 자기혐오. 나는 여전히 부엌 식탁 아래 웅크려 앉아 실은 그 모든 게 배고픔의 다른 이름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문장 웹진/2008년 1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