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문조

 

흑문조



김숨




1


이태 전 남편과 나는 집을 한 채 장만했다. 1980년대 초에 지은 단층 양옥이었다. 그 집을 장만하기 위해 대전의 부모님에게 이천사백만 원의 빚을 져야만 했다. 부모님의 간이나 심장, 폐라도 내다 판 심정이었다. 9월에 그 집으로 이사를 하였다. 이사하던 날 대전의 부모님은 올라오지 않았다. 집 대문과 현관문은 걱정이 될 만큼 낡고 허술했다. 대문은 그렇다 치고 현관문이라도 새로 바꾸어 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현관문 열쇠만 새로 바꾸었다. 먼저 부모님에게 진 빚부터 갚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전에 살던 사람들은 거울과 식칼을 버리고 갔다. 밤이 되어도 집이 낯설어 깊이 잠들지 못했다. 사방천지가 캄캄한 밤 경유지를 알지 못하는 낯선 버스에 남편과 나 둘만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득한 멀미까지 느껴졌다.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은 불처럼 타올랐다. 집 담벼락을 울울하게 뒤덮고 있던 담쟁이 잎들이 일제히 활활 타올랐던 것이다. 불꽃이 튀듯 담쟁이 잎들이 날리기도 했다. 남편은 공연히 담 밑에 서 있다가 뒷목 쪽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담 밑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느냐고 물어도 남편은 대답이 없었다. 유심히 관찰해 본 사람이나 알겠지만, 담쟁이줄기는 불화(火)자를 그리며 뻗어 나간다. 뿌리에서부터 불화(火)자를 그리며 줄기들이 뻗어 올라온다. 11월이 되자 담쟁이 잎들은 재처럼 스러져 갔다. 남편이 입은 화상도 그럭저럭 가라앉고 있었다.

가을 내내 담벼락에 넘쳐나던 불화(火)자가 무색하도록 그해 겨울은 몹시도 추웠다. 쩍쩍 금이 가기라도 하듯 손가락들이 시렸다. 탄식을 내지르면 안개처럼 입김이 피어올랐다. 일 년 중 밤의 길이가 가장 길다던 날 밤, 남편과 나는 후후 입김을 불어 집 안을 온통 안개로 뒤덮었다. 남편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안개 위로 둥둥 떠올랐다.

이사한 지 5개월쯤 지난 어느 날, 옆집에 살고 있다는 남자가 우리를 찾아오기도 했다. 옆집은 2층 양옥이었다. 남자는 아무리 못 돼도 예순 살은 되어 보였다. 보통 키에 보통 체구였으며 국립중고등학교의 서무과장만큼이나 무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자는 다짜고짜 우리에게 계단을 허물자고 말했다. 옆집과 우리 집은 골목 끝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는데 한계단을 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계단은 옆집 것이기도 했고 우리 집 것이기도 했다. 여덟 계단을 올라가 왼편으로 틀면 옆집 대문이 나왔고, 열세 계단을 곧장 올라가면 우리 집 대문이 나왔다. 우리는 남자에게 그렇게 하자고도, 그렇게 하지 말자고도 말하지 못했다. 계단을 허문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리가 선뜻 동의를 하지 않자 남자는 조용히 그의 집으로 돌아갔다. 옆집 대문이 끼이익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날도 남자는 우리를 찾아와 계단을 허물자고 말했다. 우리가 여전히 선뜻 동의하지 않자, 남자는 날마다 우리를 찾아왔다. 언제나 계단을 허물자는 말뿐이었다. 남자는 낮이고 밤이고 집에 있는 것 같았다. 2층 양옥인데도, 옆집에는 남자밖에는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남자밖에는 옆집 대문을 드나들지 않았다. 옆집에서는 어쩌다 티브이 소리만 들려올 뿐 사람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옆집이 1층과 2층을 합쳐 도대체 몇 개의 방을 그 안에 품고 있는지가 궁금하기도 했다. 하루는 남자와 계단에서 마주치기도 하였다. 남자는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고 나는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남자는 계단에서도 계단을 허물어야 한다는 말을 해 왔다.

봄이 되자 남편은 주말마다 집으로 손님들을 불러들였다. 문병객들처럼 불쑥불쑥 들이닥치는 손님들 때문에 나는 좀처럼 평온을 찾을 수 없었다. 손님들과 섞여 앉아 있는 남편을 손님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손님들이 돌아가고 난 뒤면, 나는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을 지우느라 고단하게 손과 발을 놀려야 했다. 아무리 얌전한 손님이라도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고 돌아갔다. 나는 창문이란 창문은 활짝 열어 공기 중에 남아 떠도는 손님들의 체취까지도 집 밖으로 몰아내야 직성이 풀렸다.

백세주를 두 병 사 들고 찾아온 손님도 있었다. 평일 오후라 남편은 직장에 나가고 집에는 나와 손님뿐이었다. 그녀는 백세주를 세 잔쯤 비우고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울음을 그쳐서는 내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녀에게는 더없이 절박한 질문들이었겠지만 지금에 와서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질문은 하나도 없다. 내가 그녀에게 해 주었던 대답들 역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녀가 평소에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좀처럼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울음을 그치더니 우리 집이 흑문조를 기르기에 좋은 집이라는 말을 해 주었다. 그녀가 가고 난 뒤 나는 혼자서 소리 없이 울었다. 내가 왜 울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녀가 반 병쯤 남기고 간 백세주를 마저 마시고 거실과 방마다 환하게 불을 밝혔다. 새를 기르고 싶다는 생각은 나는 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남편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굳이 물어 볼 필요까지 없었다. 흑문조라는 이름의 관상용 새가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흑. 문. 조.

늙고 병든 기사(棋士)의 창백한 손에 쥐어져 있는 검은 바둑돌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흑문조에 대해 남편에게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8월이 되자 집의 지하실이 귀뚜라미 천지가 되었다. 밤새 귀뚜라미들이 울었다. 근원적인 분노 같은 것이 귀뚜라미들의 울음에서 느껴졌다. 남편은 시멘트의 독성과 찌든 곰팡내, 칠흑 같은 어둠이 그런 광포한 울음을 울게 하는 것이라는 나름의 해석을 내렸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저토록 그악스럽게 울어대다니……. 남편은 공포에 질려했다. 지하실로 가려면 부엌을 통과해야만 했다. 부엌에 지하실로 통하는 외닫이 문이 나 있었다. 그 문을 꼭 닫아두는데도 귀뚜라미는 집 안으로까지 침입해 들어왔다. 부엌 개수대에서, 욕실 세면대에서, 신발장에서 불쑥 튀어 올라 나를 놀라게 했다. 전기밥통이나 냄비 속에서 폴짝 뛰어오르기도 했다. 어쩌다 귀뚜라미를 밟기도 했다. 귀뚜라미는 몸통이 으깨어진 뒤에도 명주실처럼 가느다란 다리들을 감전이라도 된 듯 부르르 떨었다. 그것이 또한 그토록 끔찍할 수 없었다.

8월도 다 갈 무렵, 대전의 부모님이 찾아왔다. 부모님은 살충제를 뿌려 귀뚜라미들을 멸살해 주었다. 어머니는 살충제를 뿌리고 한식경쯤 지나 지하실로 내려갔다. 질식해 죽은 귀뚜라미들을 빗자루로 쓸었다. 귀뚜라미를 쓸기 위해 사람의 몸이 구십 도로 기우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보았다. 아버지는 낮부터 소주를 한 병 비우고 잠들어 있었다. 낮잠에서 깨어나서는 전에 살던 사람들이 버리고 간 식칼을 갈아 주었다. 식칼에 슨 녹들이 쓰적쓰적 쓸려나갔다. 어머니는 죽은 귀뚜라미들을 마당 시멘트 바닥에 수북이 쌓아 놓고 불을 질렀다. 귀뚜라미들이 타닥타닥 타 들어갔다. 그 연기가 하필이면 옆집 쪽으로 불었다. 귀뚜라미들이 한 마리도 남김없이 타 들도록 옆집 남자는 다행히 잠잠했다. 

그렇게 일 년쯤이 지나자 찾아오는 손님들도 뜸해졌다. 나는 때때로 하루 종일 집에만 머물며 평온에 잠기기도 했다. 백세주를 사 들고 찾아왔던 손님은 여전히 전화기를 통해 내게 질문을 던져 왔고, 나는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그녀가 던진 질문을 까마득히 잊어 버렸다.  

뜬금없이 재산세 독촉장이 날아들었다. 전에 살던 사람 앞으로 온 독촉장이었다. 민방위 훈련 통지서도 날아들었다. 그것 역시 전에 살던 사람 앞으로 온 것이었다. 민방위 훈련 통지서가 날아들던 날, 웬 늙은 남자가 하루 종일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늙은 남자는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늙은 남자를 계단 밖으로 내쫓을 수도 없었다. 이미 말했듯, 계단은 우리 집의 것일 뿐만 아니라 옆집의 것이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옆집 남자가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다. 옆집 대문은 언제나 굳게 닫혀 있었다. 수도 검침원이 옆집 대문을 두드리다 돌아가기도 했다. 옆집 대문 앞에 이런저런 우편물들이 쌓였다. 우편물들의 대부분은 ‘김상우’ 앞으로 온 것들이었다. 김상우는 아무래도 옆집 남자의 이름이 분명했다. 밤이 되면 옆집은 저수지로 가라앉듯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종종 계단이 무너져 내리는 꿈을 꾸었다. 계단은 모래로 만들기라도 한 듯 걷잡을 수 없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문득 남자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남자는 도대체 어디를 간 걸까.     

마침내 흑문조를 보았다. 흰 플라스틱 횃대에 두 발을 내딛고 서 있는 흑문조를 보며 계단을 떠올렸다. 계단은 흑문조의 다리만큼이나 좁고 울퉁불퉁했으며 위태로웠다. 흑문조는 한참이 지나도 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흑문조가 들어 있는 새장을 손으로 툭 건드려 보았지만 여전히 횃대에 두 발을 내딛은 채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흑문조의 두 다리를 부러뜨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9월이 가고 10월이 가고 11월이 갔다.

옆집 남자가 또다시 우리를 찾아왔다. 남자는 못 보던 몇 달 사이에 십 년은 늙어 보였다. 몰라보게 살이 내려 있었고 얼굴은 꺼멓게 타 들어가 있었다. 남자는 간암으로 석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고 했다. 죽을 고비를 세 번이나 넘겼다고 했다. 매일 같이 찾아오던 옆집 남자를 영영 못 볼 수 없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죽음을 세 번씩이나 극복한 남자는 또다시 우리에게 계단을 허물자고 매달렸다. 남자가 구걸이라도 하듯 매달렸기 때문에 우리는 곤란해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어떻게든 계단을 허물어뜨려야 한다는 의지가 남자로부터 죽음을 세 번씩이나 극복해 내게 한 것이 아닐까. 남자는 매일같이 찾아왔고 여전히 계단을 허물자는 말뿐이었다. 옆집에는 여전히 남자밖에는 살지 않는 것 같았다. 그 큰 집에서 남자가 하루 종일 무엇을 하며 사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남자가 죽음을 세 번만이 아니라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을 극복했다고 해도 계단을 함부로 허물 수는 없었다. 계단을 허물면 옆집뿐만 아니라 옆집 전체가 무너져 내릴 수도 있었다. 무너져 내리지 않는다고 해도 두 집이 섬처럼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꼴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지상에서 우리 집 대문턱까지는 그 높이가 적어도 3미터는 되었다. 

어느 일요일인가, 남자는 허락도 없이 우리 집 거실에까지 쳐들어와 손님처럼 우두커니 서 있기도 했다. 귀신이라도 본 듯 깜짝 놀라 하는 우리에게 남자는 역시나 계단을 허물자는 말뿐이었다. 남자의 모습이 거실 벽에 걸어 놓은 거울에 고스란히 떠올라 있었다. 전에 살던 사람들이 버리고 간 거울이었다. 남자가 가고 난 뒤 남편은 거울을 뒤집어 걸었다. 거울이 벽을 향하도록 했다. 남자가 저지른 잘못한 것이라고는 거울 속에 잠시 담겼었던 것뿐이었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옆집 남자를 만나기도 했다. 지하철이 새절역과 증산역과 수색역과 월드컵경기장역과 마포구청역을 지나치는 내내 남자는 계단을 허물자는 얘기만 했다. 지하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남자와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남자는 다행히 망원역에서 내렸다. 나는 삼각지역까지 갔다. 남자는 망원역에서 내려야만 하는 피치 못할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삼각지역에서 내려야만 하는 피치 못할 이유가 있었던 것처럼. 그 피치 못할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전에 살던 사람 앞으로 재산세 독촉장이 또다시 날아들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바로 앞 빌라는 사람들이 이사를 가고 이사를 왔다. 밤마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개 짖는 소리, 티브이 소리, 싸우는 소리, 주차하는 소리 들로 시끄러웠다.

어쩌다 보니, 대전의 부모님께 진 빚을 아직 갚지 못하고 있었다.

  


2


1월 초, 보일러 기계가 밤새 말썽을 부렸다. 보일러 기계는 당장이라도 터져 버릴 듯 탱크 소리를 냈다. 옆집 남자에게도 그 소리가 들렸을 것이었다. 남편과 나는 김구이와 콩자반과 계란찜으로 아침을 먹고 보일러 기사를 불렀다. 보일러 기사는 집을 잘 찾지 못했다. 남편과 무려 다섯 통화나 하고 나서야 제대로 찾아올 수 있었다. 그날은 마침 남편이 근무하지 않는 토요일이었다. 보일러 기사는 대문을 부술 듯 흔들었다. 보일러 기사를 탓할 수만도 없었다. 집은 위치상 찾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집 주변에 이렇다 할 상징적인 건물이 없는 데다가 대로로부터도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집까지 오는 동안 거쳐야 하는 골목들은 더구나 비탈까지 졌다. 나는 보일러 기사에게 대문을 열어 주기 위해 마당으로 나갔다. 옆집 남자가 담 너머에 서서 우리 집 마당을 건너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밤새 잠을 못 잔 얼굴이었다. 남자는 대문을 열고 나와 계단을 한 층 한 층 무너뜨리기라도 하듯 밟으며 내려갔다.

보일러 기계는 부엌 아래 지하실에 있었다. 보일러 기사는 부엌을 통과해 냉기가 감도는 지하실로 내려갔다. 보일러 기사는 아무래도 보일러 배관에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는 진단을 내렸다. 남편과 내가 걱정했던 보일러 기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보일러 기사는 서두르는 태도로 출장비를 요구했다. 남편과 나는 어쨌든 출장비를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밤새 말썽을 부린 것이 보일러가 아니라 보일러 배관이었군.”

남편은 더 난감한 상황에 부닥쳤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배관공을 불러야 했지만 남편은 작은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점심때가 다 되도록 남편은 작은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남편은 이 집으로 이사를 온 뒤로 취미로 동판화를 배우고 있었다. 남편은 동판 위에 쓸데없는 선(線)들만 그어대고 있었다. 송곳처럼 뾰족한 것이 동판 위를 지나가는 소리가 정적뿐인 집 안에 떠돌았다. 그것은 가늘고 낮은 비명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작은방은 서북쪽으로 나앉아 있어서 대낮에도 형광등을 켜두어야 할 만큼 어둑하다. 내가 작은방의 문을 열었을 때 남편은 형광등도 켜지 않는 채 동판만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가로 20센티미터, 세로 15센티미터의 동판은 온통 남편이 그어 놓은 선들 천지였다. 무수한 선들을 통해 남편이 궁극에는 무엇을 그리고 싶어 하는지, 나는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점심에 구워 먹을 조기의 비늘을 긁어내다가 말고 배관공을 불렀다. 기껏 비늘을 벗겨낸 조기를 비밀봉지에 넣어 도로 냉동실에 처박아 버렸다. 냉동실은 지느러미를 잘라내고 비늘을 벗겨 낸 조기들로 넘쳐났다.

배관공은 부른 지 30분도 지나지 않아 들이닥쳤다. 위치를 묻는 전화 한 통 없이 용케도 이 집을 찾아온 것이었다. 계단 아래에 배관공이 몰고 온 은회색 봉고차가 세워져 있었다. 배관공은 사십대 중반쯤의 왜소한 남자였는데, 역삼각형 얼굴에 축 늘어진 녹색 잠바를 입고 있었다. 배관공의 한쪽 손에는 검은색 공공칠가방이 들려 있었다.

“터진 보일러 배관을 찾는 것이 문제이겠군요.”

배관공은 남편과 내가 지켜보는 앞에서 공공칠가방을 열어 보였다. 그 안에는 1970년대 식 소니 라디오처럼 묵중하고 둔탁하게 생긴 기계가 들어 있었다. 아마도 ‘물’의 기운을 감지하는 기계 같았는데, 남편도 나도 그 기계에 대해 별다른 호기심을 보이지 않았다. 배관공은 그 기계에 촉수처럼 달려 있는 장치를 바닥 가까이 들이대고서는 거실과 큰방, 작은방, 부엌, 욕실을 차례로 살피며 돌아다녔다. 남편이 그림자처럼 배관공의 뒤를 조용히 따라다녔다.

나는 남편과 배관공에게 집을 맡기고 외출했다. 이모들 중 한 명이 병원에 입원을 해 문병을 다녀와야 했다. 다른 날 문병을 가도 되었지만, 귀찮은 상황을 남편에게 떠넘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모가 입원해 있는 병원은 집에서 버스로 네 정거장밖에 안 되었다. 몇 년째 갑상선암을 앓아 온 이모는 버려진 듯 홀로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이모는 처참하게 야윈 몰골로 내게 뭐라고 뭐라고 물어왔다. 이모와 대전의 어머니는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죽음을 앞둔 어머니의 모습과 미리 마주한 것만 같아 나는 침울해졌다. 이모는 내게 자꾸만 뭐라고뭐라고 물어왔지만, 좀처럼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대답을 해 주지 못했다. 서둘러 문병을 끝내고 병원 앞 정원으로 나가 오래 앉아 있었다. 정원은 바위들과 사철나무들로 꾸며져 있었다. 검고 반들반들한 바위마다 환자복을 입은 늙은 남자들이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늙은 남자들은 마치 박제된 흑문조들 같았다. 옆집 남자를 꼭 닮은 늙은 남자도 있었다. 그 늙은 남자는 다행히도 잠들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새를 파는 상점에 들렀다. 나는 며칠 전부터 흑문조를 한 마리 기를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마침 내가 눈여겨 봐 둔 흑문조가 있었다. 그날 나는 될 수 있으면 새장과 함께 흑문조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흑문조를 사려던 계획을 접어야만 했다. 내가 마음에 들어 했던 흑문조의 왼다리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흑문조는 오른다리만으로 횃대 위에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횃대 아래로 떨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나는 쓸데없이 카나리아의 값만 물었다. 흑문조의 멀쩡하던 왼다리가 사라진 사연을 주인 여자에게 묻고 싶었지만, 나는 질문하는 것을 그리 즐겨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흑문조의 왼다리는 어쩌면 잿빛 깃털들 속에 감춰져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내가 집을 비운 동안 배관공은 작은방에 한 군데, 욕실에 한 군데의 구멍을 파 놓았다. 배관공은 가 버리고 집에는 남편 혼자 있었다. 남편은 배관공이 내일 다시 오기로 했다고 말했다. 터진 보일러 배관이 잘 찾아지지 않았다고, 남편은 배관공을 두둔이라도 하듯 말했다. 남편은 내게 세면대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의를 주기도 했다. 배관공이 세면대와 연결된 보일러 배관을 건드려 놓았기 때문에 배수가 원활하지 않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시멘트 먼지가 집 안 공기 중에 떠 다니고 있었다. 나는 슬쩍 작은방으로 들어가 동판을 들여다보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선들이 얽히고설켜 있었다. 한 개의 선 속에 무수한 선들이 겹쳐져 있기도 했다. 배관공이 구멍을 파는 동안 남편은 작은방에 틀어박혀 동판 위에 선들만 그어댄 것이 분명했다. 남편이 긋고자 하는 선이 단 한 개의 직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시멘트 먼지 속에서 마른국수를 삶고 멸치 국물을 끓였다. 멸치 국물에 국수를 말아 남편과 나누어 먹었다. 남편은 국수를 젓가락으로 건져 입으로 가져가며 내일 산행이 있다고 말했다. 오래 전부터 우인들과 북쪽의 산을 오르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고 말했다. 남편은 국수를 반이나 더 남기고 작은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채반에는 삶은 국수가 아직도 세 뭉치나 남아 있었다. 옆집 남자에게 국수를 한 그릇 가져다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남자는 어차피 계단을 허물자는 말만을 건네 올 것이 분명했다. 송곳 같은 것이 동판 위를 미끄러지는 소리가 또다시 집 안에 떠돌았다. 나는 티브이를 틀어 그 소리를 잠재웠다. 채널을 아무리 돌려도 티브이에서는 볼 만한 프로를 하지 않았다. 남편은 자정이 지나서야 작은방에서 나왔다. 채반에서는 삶은 국수가 까맣게 말라 가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침대로 올라가 천장을 바라보고 나란히 누웠다. 막 잠들려는 내게, 남편은 뜬금없이 배관공이 정직해 보인다고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그 말이 그다지 듣기에 좋지는 않았다. 어쩐지 남편이 나를 의심이 지나친 사람으로 몰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남편을 향해 등을 돌리고 누웠다. 8월이 되면 지하실은 귀뚜라미 천지가 되겠지……. 올해도,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귀뚜라미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면 대전의 부모님을 불러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대전의 부모님은 평생 당신들의 명의로 된 집 한 채 갖지 못하고 이 집 저 집을 옮겨 다니며 전세를 살고 있었다. 이태가 지나도록 부모님에게 진 빚 이천사백만 원 중에서 겨우 팔백만 원밖에는 갚지 못했다.

이튿날 배관공은 아침 일찍 늙은 남자를 한 명 데리고 들이닥쳤다. 남편은 날이 밝자마자 등산 가방을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배관공과 늙은 남자는 곡괭이 따위의 연장들을 부지런히 집 안으로 날랐다. 배관공은 어제 들고 왔던 공공칠가방을 또다시 들고 왔다. 나는 그 가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배관공에게 터진 보일러 배관은 언제쯤 찾을 수 있는지 물었다. 배관공은 터진 보일러 배관이 한 군데가 아닐 수도 있다는 대답만 해 왔다. 배관공은 터진 보일러 배관이 두 군데면 공사비 또한 두 배로 올려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공사비에 대해서라면 남편과 전날 이야기가 다 되었다고 했다. 남편이 전날 뜬금없이 보일러공이 정직해 보인다는 말을 왜 했는지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배관공은 늙은 남자에게 뭔가를 지시한 뒤 욕실에 들었다. 세면대 밑에 파 놓은 구멍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구멍을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30분이나 지나도록 배관공은 구멍 앞에서 꿈쩍을 하지 않았다. 늙은 남자는 아무래도 기술이 없어 보였다. 발소리를 울리며 부엌과 욕실만 두서없이 오갔다. 

나는 골목에 쓰레기를 버리고 왔다. 배관공이 몰고 온 은회색 봉고차가 계단 밑에 세워져 있었다. 남편과 나, 둘만 사는데도 날마다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쓰레기를 버리는 일만 아니라면 그래도 하루하루가 지금보다는 훨씬 편하지 않을까. 나는 계단을 오르다 말고 문득 고개를 틀어 북쪽을 바라보았다. 남편은 북쪽의 산을 한참 오르고 있을 것이었다. 북쪽의 산은 아파트들에 가려 봉우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북쪽의 산은 해발 7백 미터였다. 계단을 마저 올라가려는데 옆집 남자가 계단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마치 심판이라도 하듯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지금도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는 중인지도 몰랐다. 

내가 쓰레기를 버리고 오는 동안 배관공은 부엌 장판지를 들추고 구멍을 두 군데나 파헤쳐 놓았다. 배관공이 파헤쳐 놓은 구멍은 그렇게 해서 네 군데나 되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는지 배관공은 부엌과 욕실 사이에도 구멍을 파 놓았다. 저렇게 계속 구멍만 파대다가는 바닥이 구멍 천지가 되어 버리지 않을까.

“어째 잘 찾아지지 않는군요.”

배관공이 또다시 작은방 문턱 쪽에 구멍을 파는 동안, 늙은 남자는 검은 고무장화를 신고 나타났다. 늙은 남자는 고무장화를 신고 집 안을 심란하게 돌아다녔다. 배관공이 늙은 남자에게 고무장화를 벗으라고 주의를 주었는데도 벗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 배관공은 늙은 남자를 당숙이라고 불렀다. 늙은 남자는 역시 기술이 없어 보였다. 배관공에게 방해가 될 정도로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곡괭이를 들고 쓸데없이 지하실만 들락거렸다. 

배관공이 파 놓은 구멍들 때문에 집 안에서의 내 동선은 엉망이 되었다. 집의 질서가 흐트러졌다. 고스란히 드러난 보일러 배관들을 바라보는 것도 곤혹스러웠다. 보일러 배관들은 하나같이 녹 뭉치가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집을 내게 맡기고 북쪽의 산을 오르고 있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배관공은 아예 욕실의 물건들을 모조리 욕실 밖에 내놓았다. 좌변기 아래의 타일을 깨고 구멍을 파기 시작했다. 목욕 바구니에서 귀뚜라미가 불쑥 뛰쳐나왔다. 귀뚜라미가 내 발 쪽으로 팔딱팔딱 뛰어왔다. 나는 소리를 내질렀다. 내 비명 소리를 듣고 늙은 남자가 나타났다. 고무장화 신은 발을 번쩍번쩍 들어 올리며 귀뚜라미를 쫓았다. 귀뚜라미를 향해 고무장화 신은 발을 내리밟았다. 귀뚜라미는 그러나 고무장화 신은 발이 자신을 짓뭉개려는 순간 폴짝 뛰어올랐다. 귀뚜라미는 늙은 남자를 놀리기라도 하듯 잘도 도망쳐 다녔다. 늙은 남자는 땀까지 흘리며 귀뚜라미를 쫓았다. 배관공은 구멍을 뚫느라 늙은 남자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마침내 늙은 남자의 고무장화 신은 발이 귀뚜라미를 정확하게 내리밟았다. 몸통이 으깨어진 귀뚜라미가 촉수와 다리를 바르르 떨고 있었다. 늙은 남자가 나를 보고는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듯 웃었다. 나는 도망치듯 큰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어쩌면 배관공도 기술이 없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곳곳에 구멍을 파 놓은 뒤 무책임하게 가 버리기라도 하면 어쩌는가.

터진 보일러 배관을 잘 찾지 못한다고 해서 배관공과 늙은 남자의 점심을 굶길 수는 없었다. 배관공과 늙은 남자에게 점심으로 중국 음식을 시켜 주었다. 마른국수라도 삶아 주고 싶어도 부엌에서 음식을 만든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배관공이 여기저기 구멍을 파느라 장판지를 들추어 놓은 데다가 깨진 시멘트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자장면 두 그릇을 시켰다. 배관공과 늙은 남자는 더러운 손으로 나무젓가락을 움켜쥐고는 자장면을 입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배관공은 뜬금없이 부엌 바닥에 심어진 보일러 배관을 전부 교체해야 할 거라는 충고를 했다. 보일러 배관들이 너무 낡아서 언제 또 이런 성가신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것이 배관공의 설명이었다. 늙은 남자는 허겁지겁 자장면을 먹으면서도 고무장화를 벗지 않았다. 고무장화를 벗지 않기 위해 엉거주춤한 자세로 쪼그려 앉아 있었다.

전화기가 울렸다. 심란하기도 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식탁이 놓여 있던 자리에 사람 머리만 한 구멍이 파였다. 구멍은 죽은 고슴도치의 시체처럼 보이기도 했다.

또다시 전화기가 울렸고 나는 여전히 심란하였지만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작년 어느 날인가 백세주를 두 병 사 들고 찾아왔던 손님이었다. 그녀는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내게 백세주를 들고 찾아왔던 날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그녀에게 해 주었던 대답이 무척이나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내 대답이 무척이나 따뜻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녀는 뒤늦어서야 내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뭔가 그녀에게 잘못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뭔가 잘못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만 전화를 끊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전화통화를 한 지 삼십 분이 다 되어 가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배관공이 정직해 보인다던 남편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쪽도 알겠지만…… 그쪽에게 늘 고마워하고 있어요.”

그녀는 또다시 내게 질문을 던져 왔다. 질문이 어려웠지만, 나는 이러저런 대답을 해 주었다. 그녀는 몇 마디 질문을 더 던진 뒤 기어이 내 대답을 듣고서야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그녀가 조금 전 내게 뭐라고 물어 왔던가. 나는 급격히 우울해졌다. 나는 배관공과 그가 데리고 온 늙은 남자를 당장이라도 집 밖으로 내쫓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가 전화통화를 하는 동안 배관공은 쌀통을 옮기고, 냉장고가 놓여 있던 자리에 세숫대야만 한 구멍을 파 놓았다. 배관공이 당숙, 당숙 하며 늙은 남자를 불렀지만 늙은 남자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늙은 남자는 아무런 기술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배관공이 나를 불러 구멍에 반 바가지 정도 차 오른 물을 보여 주었다.

“물이 새 나오는 것이 보이지요?”

배관공은 득의양양해했다. 포도나무 줄기 같은 보일러 배관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배관공은 냉장고를 들어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냉장고 밑을 지나가는 보일러 배관에서도 물이 새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배관공이 냉장고 문짝을 활짝 열더니 그 안의 김치통 따위를 밖으로 꺼냈다. 나는 마치 배관공이 내 복부라도 가르고 그 안의 위나 간, 폐 같은 장기라도 꺼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냉장고에서 꺼내 놓은 김치통 따위로 부엌 바닥은 엉망이 되었다. 배관공은 이참에 부엌 바닥에 깔린 보일러 배관들을 전부 교체할 것을 권유하였다. 배관공은 언제 또 보일러 배관이 터질지 모른다며 나를 또다시 겁주었다. 배관공과 늙은 남자가 협심을 해 냉장고를 옮겼다. 늙은 남자가 힘껏 냉장고를 미는 순간, 냉동실 문짝이 열리며 그 안의 쾅쾅 언 조기들이 쏟아졌다.

“당숙, 만선(滿船)이군요. 하하하.”

배관공이 늙은 남자를 바라보며 농담을 했다. 

나는 부엌에서 나와 큰방으로 들어가 꾸벅꾸벅 졸았다. 배관공이 큰방까지 쳐들어올까 봐 겁이 나기도 했다. 큰방의 바닥에까지 구멍을 뚫어 놓으면 이 집에서 내가 편하게 머물 곳이 없었다. 나는 문고리의 잠금 장치를 소리가 나지 않게 눌렀다. 그런데도 불안한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잠이 쏟아졌지만 침대로 올라가 눕지도 못했다. 배관공이 일부러 집 이곳저곳을 부수어 놓는 것은 아닌가. 수선만 떠는 늙은 남자까지 꼭 데리고 왔어야 했는가. 하루 만에 끝마칠 일을 이틀까지 연장한 것은 아닌가. 아직은 멀쩡한 보일러 배관들을 억지로 교체하려는 것은 아닌가. 대전의 부모님에게 전화를 넣고 싶었지만 선뜻 전화기가 들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렇지 않아도 가는귀가 먹어서 묻고 또 물어 올 것이다. 이 집을 팔고 다른 집으로 이사하라는 권유를 들을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미처 갚지 못한 빚도 마음에 걸렸다. 집과 배관공, 늙은 남자를 내게 떠맡기고 북쪽의 산으로 올라간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시멘트 바닥을 망치로 쿵 쿵 쿵 내리치는 소리가 부엌 쪽에서 들려왔다. 집 전체가 지진에라도 든 듯 흔들렸다. 잠깐 졸았을 뿐인데 꿈을 꾸었다. 내가 사려고 했던 흑문조가 꿈에 나타났다. 흑문조는 오른다리마저 잃고 허공에 떠 있었다. 허공에 떠 있기 위해 악착같이 날갯짓을 했는데 그래봤자 밥통만 한 새장 안이었다. 흑문조의 두 다리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 쥐의 짓이라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색 쥐가 흑문조의 오른다리를 뜯어먹었지요.”

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 훌쩍 고개를 돌렸다. 새를 파는 상점의 주인 여자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주인 여자의 벌어진 입에서 좁쌀 껍질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주인 여자는 흑문조를 사 가지 않은 내 행동을 원망하는 표정이었다. 흑문조가 오른다리마저 잃은 것이 내 탓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내가 흑문조를 사 가지 않아서란 말인가?

“홀딱 뜯어먹고 발톱만 남겨두었지 뭐예요.”

“…….”

“새는 머리가 나빠요. 새장 속에 들어서도 쥐한테 다리를 뜯겨 먹힌다니까요. 죄다 뜯어 먹히고 대가리만 달랑 남아 있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흑문조 값을 치르겠다고 주인 여자에게 말했다.

“어머나, 흑문조 값을요?”

주인 여자가 반색을 하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필이면 그 순간에 꿈에서 깨어났다.

나는 흑문조 값이 궁금했다. 그렇다고 흑문조 값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사려고 했던 흑문조 값은 2만5천 원이었다. 그렇지만 어쩐지 현실에서의 흑문조 값과 꿈속에서의 흑문조 값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두 다리를 쥐에게 홀딱 뜯어 먹힌 흑문조가 아닌가. 두 다리가 멀쩡히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흑문조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꿈속에서처럼 오른다리마저 사라지기 전에 흑문조를 사 와야 하지 않을까. 늙은 남자가 나를 부르는 듯한 소리를 들었지만 꼼짝을 하지 않았다.

밖이 소란했다. 창문을 조금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배관공과 옆집 남자가 계단에 서서 큰소리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 둘은 담배까지 사이좋게 나누어 피우고 있었다. 옆집 남자가 배관공에게 뭐라고 뭐라고 떠들어댔다. 옆집 남자는 아무래도 계단을 허물어야 한다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옆집 남자는 왜 쓸데없이 배관공에게 그런 쓸데없는 말까지 하는가. 왜 계단을 허물어뜨리지 못해 저토록 안달복달을 하는가. 늙은 남자는 시멘트 포대를 등에 짊어지고 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시멘트 포대의 무게 때문에 늙은 남자의 몸은 앞쪽으로 꼬꾸라질 듯 기울어져 있었다. 더구나 무릎까지 올라오는 고무장화를 신고 계단에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이 힘겨워 보였다. 당장이라도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질 듯 비틀거리기까지 했지만, 배관공도 옆집 남자도 늙은 남자를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다. 배관공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늙은 남자를 흘끔흘끔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창문을 닫고 옷을 갈아입었다. 벌써 오후 다섯 시였다. 남편이 한참 북쪽의 산에서 내려오고 있을 시간이었다. 남편이 어쩐지 북쪽의 산에 함께 올랐던 우인들을 이끌고 집으로 들이닥칠 것만 같았다. 한동안 집에 손님이 뜸했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일부러 거실의 티브이를 켜 두었다. 딱히 신경을 쓴 것은 아닌데 성장을 한 꼴이 되었다. 전화기가 또다시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부엌 안을 슬쩍 들여다보았더니, 배관공이 세숫대야만 하게 파 놓은 구멍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구멍을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있었다. 체구에 비해 손이 기형적으로 커다래 보였다. 구근과도 같이 불거진 마디들 때문일 것이었다. 배관공이 정직해 보인다던 남편의 말이 또다시 떠올랐다. 배관공은 구멍으로 물이 흥건히 차 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나는 배관공에게 뭔가 질문을 던지고 싶었지만, 그 어떤 질문도 떠오르지 않았다.

늙은 남자는 작은방에 있었다. 배관공이 허투루 파 놓은 구멍들을 시멘트 반죽으로 메우고 있었다. 빨간 고무다라 그득 시멘트 반죽이 개어져 있었다. 늙은 남자는 시멘트 반죽을 퍼 구멍에 흘려 넣으며 나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내 달라진 옷차림을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옆집 남자가 가만가만 빗질을 하고 있는 계단을 내려갔다. 골목을 내려가다 말고 문득 뒤를 돌아다보았다. 옆집 남자는 여전히 계단을 쓸고 있었다.  

새를 파는 상점은 집에서 두 정거장 정도를 걸어가면 있었다. 나는 새들 속에서 내가 사려고 했던 흑문조를 찾았다. 흑문조는 횃대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흑문조가 날아오르기만을 기다렸지만 꼼짝을 하지 않았다. 지난번에 봤을 때 의심을 했던 것처럼, 흑문조가 정말로 왼다리를 잃었는지가 궁금했다.

“흑문조 값이 얼마지요?”

“2만 원에 줄게요.”

한 달 전에 물었을 때보다 무려 5천 원이나 깎인 값이었다. 그렇다면 5천 원은 쥐가 뜯어먹어 버린 왼다리에 해당하는 값인가.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주인 여자는 흑문조 값을 더 깎아 줄 수 있다고 했다.

“1만5천 원에 줄 테니 저 흑문조를 가져가요.”

그렇다면 꿈속에서처럼 오른다리마저 쥐에게 뜯어 먹혔다는 말인가. 새장을 손으로 툭 건드려보았지만 흑문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흑문조를 사겠어요?”

“다음에…… 다음에 사러 올게요…….”

나는 상점을 나왔다. 등 뒤에서 주인 여자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여자는 찌르르르 찌르르르 울었다. 그 울음소리는 내게 흑문조가 언제까지나 살아서 기다려 줄 것 같으냐는 소리로 들렸다.

등 너머에서 흑문조가 푸드덕 날아오르는 날갯짓 소리가 아득히 들려왔지만 나는 뒤를 돌아다보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북쪽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북쪽은 소실점처럼 멀기만 했다.
나는 집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3


내가 우려했던 대로 계단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 집과 옆집 대문 아래는 그대로 깎아지른 절벽이었다. 배관공이 계단 밑에 세워 놓았던 은회색 봉고차도 가 버리고 없었다. 남편이 집에 돌아왔는지, 돌아오지 않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우리 집도 옆집도 어둠 속으로 조용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 나이 마흔세 살이었다.

대전의 부모님에게 진 빚은 아직 다 갚지 못했다.《문장 웹진/200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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