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죽었어요?

 

누가 죽었어요?  



김하경




1


이순구와 윤상렬, 그리고 김기태는 경기도 이천의 한 마을에서 태어나 함께 자란 초등학교 동창 생이다. 어린 시절부터 단짝이었던 세 친구는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등을 거치는 동안 뿔뿔이 흩어져 소식이 끊어졌다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연락이 닿게 되었다. 스무 살 후반에 만나 다시 뭉치기 시작한 세 친구는 마흔 뒷줄에 접어든 오늘날까지 한결 같은 우정을 지켜 왔다.

 

 

그런데 얼마 전 순구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이천 고향에서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던 길에 그만 교통사고가 났다. 순구와 상렬은 가벼운 찰과상으로 그쳤지만, 기태는 깨어나지 않아 급히 서울의 종합병원으로 후송했으나 일주일이 넘도록 의식도 없이 코에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심장만 가볍게 뛰고 있었다. 기태네 가족들은 기태가 혹시나 기적처럼 깨어나지 않을까 애를 태우며 기다렸다. 순구와 상렬 역시 치료를 받은 뒤 곧장 생업에 복귀했지만 기태에 대한 걱정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열흘쯤 지난 어느 날 기태 형님이 두 친구를 불렀다. 기태의 가족들도 이미 다 모여 있었다. 

“다른 게 아니라…… 오늘 병원에서 뇌사 판정이 나왔어. 뇌가 완전히 다 죽었대. 뇌사는 사망 신고나 다름이 없다는군. 중요한 장기도 다 손상되었기 땜에 산소 호흡기를 하고 있어도 얼마 못 갈 거래. 그나마 심장이나 눈 장기 기증을 하려면 빨리 결정하라는 거야. 산소 호흡기를 뗄지 말지…….”

기태의 가족들은 이미 얘기가 끝난 모양인지 놀라지도 않고, 고개만 푹 숙이고 말이 없었다. 상렬과 순구는 처음 듣는 소리라 놀란 눈으로 멀뚱히 마주 바라보기만 했다.

“내 생각은 말야. 어차피 가망이 없다면 하루라도 빨리 떼는 게 낫지 않을까 싶네. 그래서 내가 먼저 그러자고 했네. 제수씨는 반대했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나. 기태네 애들이 내년부터 줄줄이 대학에 가야 하는데 어쩌겠나.”

기태 형님이야 저런 소리 할 만 했다. 5년 동안 치매 앓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니 지칠 대로 지쳤을 것이다. 돈도 돈이지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고 했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오죽하면 저런 말이 나올까. 충분히 이해가 갔다. 상렬과 순구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렬이나 순구나 다 내 동생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한 식구나 다름없는 사이니까, 기탄없이 말해 봐.”

친구라고 해도, 셋이 함께 차에 탔다가 둘만 멀쩡하게 살아남았으니 죄인 아닌 죄인인 셈이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입장이다. 하지만 순구는 아까부터 속이 거북했다. 아무리 가족도 아니고, 한 다리 건너 두 다리인 남이지만, 그래도 그렇지. 함께 보낸 세월을 생각하면 이럴 수는 없었다. 친구를 이대로 허망하게 보낼 수는 없었다. 가족들이 처한 어려운 현실은 알지만 그래도 서운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순구는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형님, 기적이라는 게 있잖습니까. 식물인간 중에도 살아난 사람도 있다는데, 만약에 기태가…….”

“기태는 식물인간이 아냐. 뇌사자야. 말 그대로 뇌가 죽은 거야. 식물인간은 뇌의 일부는 살아 있어서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뇌사는 달라. 뇌사자는 산소 호흡기를 달아도 2주일을 못 넘긴대.”

“그래도, 산소 호흡기를 떼는 건…… 막말로 살인이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런 말 나올 줄 알았어. 백 번 천 번도 더 생각했어. 혹시나 법에서 금지하는 건 아닐까, 조사도 해 보고. 사실 뇌사 판정은 쉽게 나오는 게 아니래. 절차도 까다롭고 결정내리기도 어렵다는군. 병원에서도 무슨 위원회라나, 그런 위원회에 속한 의사들 여러 명이 만장일치로 판정을 내린 거래. 그래서 법적으로도 아무 하자 없고.”

“하지만, 남은 가족들 심정을 생각해서라도, 좀 더 기다려 볼 수도 있지…….”

순구가 또다시 토를 달고 나서려는데, 상렬이가 순구의 옆구리를 잡아 당겼다. 순구는 움찔 입을 다물었다.

“순구 네 마음을 모르는 게 아냐. 나도 네 마음하고 똑같네.”

형님이 울먹이자 모여 있던 가족들 모두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가족회의는 눈물바다가 되면서 끝이 났고,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기태의 산소 호흡기를 떼는 쪽으로 결정이 나고 말았다. 

문제는 장기 기증이었다. 가족들은 암묵적으로 동의했지만, 어른들이 나서 극구 반발했다. 기태라면 분명 장기를 기증하고도 남았겠지만 산 사람 맘대로 결정하게 되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성철 스님도 분명 거창한 다비식을 금지하는 유언을 남겼지만, 유언은 휴지 조각이 되지 않았던가. 주검이 살아남은 사람들의 손에 맡겨지면, 그때부터 그 주검은 죽은 자의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의 것이 되는 것이다. 기태의 장기 기증은 이렇게 해서 결국 안타깝게도 없었던 얘기가 되고 말았다.

이번에는 집안 어른들이 기태가 병원에서 죽게 할 수 없다고 우겼다. 객사하게 놔 두는 것보다는 집에서 임종을 맞게 하는 게 남은 가족의 도리가 아니겠냐. 산소 호흡기를 떼면 30분 안으로 숨이 끊어진다고 하니, 기태를 집에 데리고 온 다음에 산소 호흡기를 떼자는 것이었다. 결국 기태는 병원 침대에 누운 채, 산소 호흡기를 코에 꽂고 집으로 옮겨 왔다.

기태네 집안에서는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 장례식에 좋은 날과 시간까지 받아 왔고, 심지어 하관 시간까지 잡아 놓았다. 이렇게 장례 절차도 다 정해졌으니 그에 맞춰 산소 호흡기만 떼면 다 끝날 판이었다.



2


이윽고 그날이 왔다. 안방에 기태를 뉜 다음, 가족과 친지들은 기태의 주위를 빙 둘러앉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기태의 코에서 산소 호흡기를 떼어냈다. 여기저기서 가족들의 가벼운 흐느낌과 곡소리가 들려왔다.

마당에는 장의사에서 관이 벌써 도착해 있었다. 3일장을 치룰 계획으로 기태 친구들은 물론 동창들이 만든 상부계 회원들한테도 부고를 다 띄운 뒤였다. 이천의 친척들은 미리 연락 받고 도착했다. 집안 여자들과 이웃 아줌마 몇이 국을 끓인다, 고기를 삶는다, 전을 부친다, 분주하게 집안과 마당을 왔다갔다 했다. 

한 30분이 지났을까. 방안에서 가족들이 “아이고, 아이고” 하며 울부짖는 곡소리가 들려왔다. 기태가 숨을 거둔 모양이었다.

“세상에. 이제 진짜 세상 하직하나 봐요. 쯧쯧. 아직도 한참 좋을 나인데 아까워서 어쩌나.”

마당에서 일을 보던 여자들은 저마다 일손을 놓고 안방을 향해 혀를 끌끌 찼다.   

그런데 잠시 후 몇 분도 안 되어, 방안에서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거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여보!” 

“기태야!” 

모두들 깜짝 놀라서 일제히 방문 앞으로 몰려갔다. 사람들은 저마다 귓속말로 수군거렸다. 숨이 끊어졌던 기태가 다시 숨을 몰아쉰다는 것이었다.  

“의사들이 그러는데, 한 시간 반이 지나야 숨이 끊어진다고 했다는구먼.”

안방에서 나온 친척 아주머니 한 분이 이렇게 말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토요일이라, 연락을 받은 기태 친구들이 득달같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당에는 텐트가 쳐지고, 조화 다발까지 도착했다. 갑작스런 기태의 죽음에 관해 그간의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친구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저마다 한마디씩 이러쿵저러쿵 구시렁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직 죽지도 않는 사람의 부고를 띄우고 산사람 코에서 산소 호흡기를 떼 내다니. 너무 한 거 아냐?” 

“말이 좋아 뇌사지, 이건 살인이라구.”

기태 친구들의 떠드는 소리를 듣다 못한 친척 한 분이 끼여들었다.

“젊은 사람들이 안 되겠네. 말조심 해야지. 가족들이 들으면 어쩌려구 그래? 집안 식구들인들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나? 오죽하면 그랬겠어? 남의 일이라고 너무 쉽게 말하면 안 되지.”

친구들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두 시간 쯤 지났을까. 다시 방안에서 “아이고…… 여보”, “아버지” “기태야!” 하는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제야 진짜 가나 보네. 지지리 복도 없는 사람 같으니라고. 뭐가 그리 급하다고…….”

마당에 있는 사람들은 방안을 향해 한마디씩 던졌다. 기태 친구들도 마지막 가는 친구를 하직하려는 듯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일제히 안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3분도 안 돼 또다시 방안이 소란해졌다.

“아니? 세상에 숨을 쉬네. 여보…….”

“아버지. 아버지.”

“기태야!” 

숨을 멈추었던 기태가 또다시 숨을 몰아쉬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정오도 지나고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좁은 마당은 불어나는 문상객들로 북적거렸다.

방안에서 기태의 임종을 지켜보려던 가족들은 가끔씩 방 밖으로 나오다가, 문상객들과 마주치면 하나같이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어쩔 줄 몰라 종종걸음을 쳤다.  

그 사이에도 기태는 몇 번이나 숨을 멈췄다 쉬었다를 반복했고, 그때마다 문상객들 역시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문상객들은 차츰 방안의 동요에 별로 개의치 않게 되었다. 소리가 들려도, 습관적으로 잠깐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죽을 듯 죽을 듯 죽지 않는 기태를 두고 여러 뒷말들이 오고갔다. 

“그놈 명줄 한번 질기네. 사람 목숨만큼 질긴 것도 없다더니, 말 그대로야!”

“얌마, 40 중반에 비명횡사하는 게 뭐가 질겨?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만 못하다는 말도 못 들었냐?”

“아니, 사람 목숨이 허망하다는 거야, 아님 질기다는 거야, 도대체 어느 쪽야?”

“우리 같은 중생이 어찌 그 깊은 뜻을 알겠습니까요?”

기태의 어릴 적 무용담도 입방아에 올랐다. 

“기태 그놈 쉽게 갈 놈 아냐. 어릴 때부터 유명한 독종 아니었냐? 누가 지꺼 조금이라도 손만 대도 눈깔에 독을 품고 덤비던 놈이야. 그런 독종이 호락호락 그냥 갈 거 같냐? 어림도 없지.”

“그게 언제더라. 홍수 크게 났을 때 있었잖아? 물이 엄청나게 불어나서 다리가 무너질까 무서워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는데, 누가 그랬더라? 어떤 미친놈이 다리에서 뛰어 내리기 시합하자고 했거든. 덩치 큰 6학년 형들도 다 꽁무니를 뺐는데, 갑자기 기태 놈이 뛰어 내리겠다고 다리 위에 올라갔잖아? 새카만 3학년짜리가 말야. 죽을라고 환장했냐며 다들 말리고 난리도 아니었지. 근데 기태는 말 안 듣고 순식간에 다리에서 확 뛰어내렸지. 그때 아마 다들 눈 감았을걸. 분명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야. 근데 그 새끼가 물 위로 올라와 손을 흔든 거 보고, 와 어찌나 다리가 후들거리던지. 그때 다들 그랬지. 기태 놈 명줄 하나는 질길 거라고. 죽었다 살아나면 오래 산다고. 안 그래?”


이윽고 주위가 어둑어둑해졌다. 장의사 주인이 근조등을 들고 마을 어귀에 하나, 골목 어귀에 하나, 그리고 대문 앞에 설치했다. 등이 환하게 불을 밝혔다. 정말 상갓집 같았다.

짓궂은 문상객 하나가 장의사 주인에게 다가가더니, 근조등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키득키득 웃었다.

“누가 죽었어요?”

머쓱해진 장의사 주인은 못 들은 척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사라졌다.

마당에도 언제 누가 가설했는지 전등이 대낮같이 환하게 켜졌다. 기다림에 지친 문상객들의 표정에 점점 짜증이 짙게 묻어났다. 상주도 없고, 영정 사진도 없고, 곡소리도 안 나는 상가 집에서 멀뚱멀뚱 모여 앉아 먼 산만 바라보고 앉으려니 좀이 쑤실 지경이었다.   

“이게 무슨 꼴이야? 산 사람을 앞에 뉘어 놓고 빨리빨리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는 꼴이니…….”

“문상하러 왔지, 누가 저승사자 노릇할 줄 알았나?”

그랬다. 차마 할 짓이 아니었다. 멀뚱히 앉아서 친구가 죽기만 기다리는 짓은. 그렇다고 벌떡 일어나서 나갈 수도 없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지 모르니 정말 진퇴양난이었다.

“환장하겠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두들 좌불안석이었다.

그때 누군가 일어섰다. 

“자자. 어차피 죽을 놈은 죽고, 살 놈은 사는 거니까. 골치 아픈 건 다 잊고. 술이나 먹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마당 여기저기에 술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화투판까지 벌어졌다.

점차 문상객들은 기태가 숨을 쉬든 말든 개의치 않았다. 아니 기태의 일을 깡그리 잊은 듯 술에 취했고 화투에 빠졌다. 처음엔 조심스럽던 목소리가 점차 고함 소리로 바뀌고 웃음 소리까지 높아졌다.

까만 밤하늘에도 달이 뜨고 별이 총총해졌다.

근조등 불빛만이 혼자 졸고 있었다.


순우와 상렬이는 창고 겸 뒷방 앞에서 관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일일이 설명하고 대거리하기도 지쳤고, 하루 종일 똑같은 얘기를 수십 번 반복하는 것도 미칠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기태가 아직도 숨을 쉰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둘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을 피해 뒷걸음질치듯 슬그머니 뒷방 쪽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처음엔 서로 기태의 관 위에 앉겠다고 티격태격하던 두 친구는 결국 사이좋게 나란히 관을 깔고 그 위에 걸터앉았다.

“아무래도 우리가 잘못한 거 같애. 기태가 저렇게 죽기 싫어 버티는 거 보니까.”

“나도 그래. 죄인이 된 기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니가 말릴 때 나도 거들 걸 그랬나?”

“솔직히 넌 암말 안 하고 가만히 있는데 나 혼자 반대하니까 좀 그렇더라고. 나만 좋은 사람 될라고 생색내는 거 같고.”

“미안하다. 널 말린 게 후회가 된다. 널 말린 죄로 지금 이 벌을 받는 거 같애.”

“그때 우리 둘이 결사적으로 반대했으면 달라졌을지 몰라. 단 며칠이라도 더 살 수 있었을 거고, 죽더라도 명이 다 해서 죽었을 거 아냐? 단 며칠을 못 참고 그랬으니…… 벌 받아도 싸.”

술잔이 몇 순배 더 오고갔다. 하루 종일 기태 일로 신경이 곤두서 있었던 탓인지 둘은 술이 몇 잔 들어가자마자 긴장이 풀리면서 금방 취해 버렸다. 취기가 오르자 두 사람 사이에 말다툼이 잦아지고 시비가 붙었다. 분위기가 아슬아슬한 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들 같았다.

미리 정해 놓은 장례 절차가 엉망이 된 건 그렇다 치고 여기저기서 친구로서 그럴 수 있냐는 원망과 비난이 쏟아질 때는 죄책감과 후회로 미칠 지경이었다. 자신들이 한 짓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한번 그렇게 울화가 불끈불끈 솟으면 누군가에게 무슨 말이든 퍼붓지 않으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만만한 게 친구라고, 술기운을 빌어 엉뚱한 상대에게 할 말 못할 말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로 시비를 걸고 화풀이를 하다가,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근데 말야. 너 왜 내 옆구리까지 잡아당기며 말리고 지랄했냐? 너 혹시?”

“혹시 뭐?”

“기태가 그러더라. 너 마누라 몰래 주식하다가 돈 날렸다던데? 그래서 기태한테 천만 원만 빌려 달라고 통사정했다며? 혹시 너 그 꾼 돈 안 갚을라고 빨리 산소 호흡기 떼자고 그런 거냐?” 

“뭐야? 이 새끼가 미쳤나? 천만 원은 커녕 단돈 천 원도 꾼 적 없다. 기태가 한 달 뒤에 대출 받아 빌려주기로 했는데, 마침 그때 이후 주식이 뛰어올라서 몇 배로 뻥튀기 해 갖고 없던 일로 했는데 뭔 소리야?”

“아님 말고.”

“이 새끼가 돌았나? 그럼 넌? 너도 결사적으로 반대하진 않았잖아? 그냥 한번 해 본 소리처럼 알짱대기만 했잖아? 너야말로 겉으론 반대하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딴 꿍꿍이가 있었던 거 아냐?”

“뭐? 꿍꿍이?”

“그래. 너 기태한테 니 가게 넘겨주면서, 권리금까지 다 받아 처먹었다면서?” 

“임마. 그건 기태가 장사가 잘 되니까, 나한테 미안해서 준 거야. 내가 싫다는데도 준 거라고…….”

“어쨌든 넌 친구한테 권리금까지 다 받아 챙긴 놈 아냐? 그런 놈이 무슨 친구냐?”

“뭐야? 이 새꺄!”

마침내 두 친구는 서로의 멱살까지 잡고 나뒹굴었다. 사람들이 몰려와 둘을 떼 낸 다음에서야 싸움은 끝이 났다. 아침이 되었을 때, 두 친구는 기태의 관 옆에 뒤엉켜 잠이 들어 있었다.


기태는 모두가 피곤에 지쳐 곤히 잠든 새벽에 혼자 숨을 거두었다. 하루 왼종일 그의 임종을 기다리던 가족들과 친구, 문상객들이 방안과 마당에 꽉꽉 들어찼건만, 막상 그의 임종을 지켜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근조등만이 그의 곁을 지켰을 뿐이었다. 기태는 그렇게 혼자 떠났다.

 


3


장례 일정을 두고 또 한 번 회오리가 일었다. 처음 예정한 대로 병원에서 퇴원한 날로부터 3일장을 치르자는 의견과 기태가 진짜 죽은 날로부터 3일장을 치러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심장이 뛰면 산 것이고 심장이 멈추면 죽은 것인가. 의식이 있으면 산 것이고 의식이 없으면 죽은 것인가. 갑자기 철학자라도 된 것처럼 논쟁은 삶과 죽음에 대한 정의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산소 호흡기를 떼는 것에 찬성하냐 반대하냐가 보이지 않는 논쟁의 중심에 놓여진 것은 분명했다.

이번엔 가족들과 집안 어른들이 밀렸다. 친지 대표의 목소리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결국 기태가 진짜 죽은 날로부터 3일장을 치르기로 결판이 났다. 점쟁이한테 받아 온 좋은 장례 날짜와 시간이 휴지조각이 되고 만 순간이었다.


드디어 출상 날 아침이 밝았다. 친지들 몇 명이 무거운 관을 양쪽에서 들고 대문 밖으로 운구하려는 순간이었다. 난데없이 회오리바람이 불더니, 사방에서 흙먼지가 일어나 일시에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눈앞이 뿌연 흙먼지로 뒤덮이는 바람에 눈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가족들과 친구들은 기태의 원혼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맴돌고 있다고 수군거렸다.

간신히 선산에 도착했을 때쯤 이십대 삼십대 장정들까지 모두 기진맥진해서 고목 쓰러지듯 넘어졌다. 

그런데 하관을 앞두고 제사 준비를 할 때였다.

이번에도 난데없는 돌개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 ‘콰다당’ 하고 순식간에 병풍이 뒤로 벌러덩 넘어져 버렸다. 제사상도 저만치 날아가고, 제물은 사방으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

장지까지 따라온 많은 문상객들은 차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떤 이는 다리가 후들거린다며 선산에서 마을까지 기다시피해서 겨우 내려왔다. 특히 산소 호흡기를 떼자고 의논하던 가족과 친구들은 두려움과 불안에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그 뒤 기태네 가족은 인천으로 이사를 했다.

기태의 첫 기일 때였다. 기태의 아내가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가끔 찾아가는 점집이 있는데 그 점집 무당이 말하기를, 기태가 제 가슴을 막 쥐어뜯으며 “숨이 막힌다. 숨이 막힌다.”면서 눈을 뒤집는다고 했다. 무당 말로는 산소 호흡기를 뗐기 때문에 그런다는 것이다.

그 뒤 순구와 상렬이는 만나기만 하면 기태 일로 싸웠다. 그때 산소 호흡기를 떼지 말았어야 했다는 둥, 집안 어른들이 아무리 반대했더라도 장기를 기증했어야 했다는 둥 하며 으르렁거렸다. 하기야 그랬더라면 지금쯤 기태는 누군가의 심장이 되어 펄떡펄떡 숨을 쉬고 있을지 모른다. 최소한 숨이 막힌다고 가슴을 쥐어짜지 않을지도 모른다.《문장 웹진/200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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