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의 이야기

L의 이야기



이재웅




몇 주 전이었다. 나는 P형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자기 집에서 술자리가 벌어졌고, 또 박 모며, 김 모 등도 함께 있으니 시간이 나면 자신의 집에 들러 술 한 잔 하고 가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평소에도 그런 일로 서로의 집을 왕래하곤 했었다.

나는 마땅히 할 일이 없던 참이었다. 그러겠노라고 했다. 나는 옷을 갖춰 입었고, 슬리퍼를 꿰찬 다음 현관을 나섰다. 시간은 밤 열 시를 막 넘어서고 있었다. 둥근 달이 떠 있었고, 주인집의 개가 그 달을 보고 짖다가 멈췄다가 다시 짖곤 했다. 마당의 잔디는 검게 젖어 있었다. 간간이 팔월의 후텁지근한 바람이 얼굴을 덮어 왔다.

나는 걷고, 택시를 타고, 다시 걸어서 P형의 집으로 갔다.  

 

 

그곳에는 P형을 비롯해, 박 모, 김 모, 그리고 장 모와 L이 있었다. 그들은 거실의 낮은 식탁에 모여 앉아 있었고, 이미 적잖게 술을 마셔 모두가 붉은 얼굴이었다. 실내의 문이며 창문은 모두 열려 있었다. 선풍기가 덜덜거리며 돌아가고 있었고, 열대야 속에서 피어나는 술기운의 텁텁한 열기가 거실을 꽉 채우고 있었다.

나는 슬리퍼를 벗고, 거실로 올라섰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하지만 곧 그들은 더러는 다시 술잔을 입에 대고, 더러는 다시 도중에 끊었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식탁 앞으로 다가가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L과도 인사를 나누었으나,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조금 어색함을 느꼈다.

사실, 나는 현관에서 그를 발견했을 때부터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그 때까지 그와 별다른 친분이 없기 때문이었다.

나와 P형은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 온 사이였다. 당시 그는 내가 몸담고 있던 이념 학술 동아리의 선배이기도 했다. 박 모며, 김 모, 장 모도 알고 지낸 지가 사오 년씩은 되었다. 이에 비하면 L과의 교류는 무척 짧은 셈이었다. 그와 나는 올 봄에나 얼굴을 트고 지냈던 것이다. 또, 다른 멤버들과는 소위 이런저런 세미나며, 문화 행사며 하는 것에서 행사 집행부로, 또 논객으로 참여해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L과는 그럴 만한 기회가 없었다. 어쩌다 그런 행사의 뒤풀이에서나 만나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드문드문이었다. 결국, 그나 나나 서로에 대한 친밀감이 깊지 않았고, 그런 만큼 어색해 하는가 하면, 서로에 대해 줄곧 경어를 사용해 왔다.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나와는 달리 P형이며, 박 모, 김 모, 또 장 모는 이미 오래 전부터 L과 알고 지내 온 사이였다. 나에게 L을 소개했던 것도 그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L의 사생활까지도 제법 알고 있었고, L이 일찍 술자리를 뜬 날이면 어떤 씁쓸한 감상을 지닌 채로 L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L은 한때 꽤 촉망 받는 젊은 논객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더 이상 글도 쓰지 않고, 사람들과의 공식적인 교류도 모두 끊어 버린 모양이었다. 그저 어떤 술자리가 있으면 그 곳에 얼굴을 내밀어 술이나 몇 잔 얻어 먹고 돌아가는 게 고작이라는 것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무척 궁핍한 상태였다. 하지만 생계를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망가져도 너무 망가졌어.”

“응, 변해도 너무 변했지. 예전에는 주장도 강하고 입심이 그렇게 좋더니, 지금은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같잖아.”

“총기도 예전 같지 않아. 내가 예전에 뭘 좀 물었더니 에두아르트 푹스를 기억하지 못해서 에두, 에두 하고 얼버무리대.”

“그건 약과지. 동문서답도 많아. 일본에 대해 물으면 프랑스 어쩌고 하는 식이야.”

그들은 L이 그렇게 변해 버린 원인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들을 주고받았다. 그때에 그들이 가장 공감하는 것은 원만하지 못했던 결혼 생활과 그 후 뒤따른 이혼, 그리고 그 후유증이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L은 스물 후반쯤 결혼했다가 작년 말쯤 이혼한 모양이었다.

“이 자식이 술에 취해서 몸을 못 가누는 거야. 나도 뒤치다꺼리하다가 화가 나서 욕을 좀 해 줬지. 그랬더니 이 자식이 갑자기 깨진 병조각을 주워 들고는 한쪽 팔을 내밀더니 그어 버릴까? 그어 버릴까? 하고 위협하듯이 고함을 치는 거야. ……아주 자식이.”

그들은 또 L이 모 문화단체에서 한 자리를 얻으려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과정에서 인심도 잃게 되어 세상에 대한 마음이 아주 돌아섰다고도 했다. 그런가 하면 평소 나태한 기질과 예민한 감수성, 불규칙한 생활, 술과 담배를 유난히 좋아하는 것 등을 원인으로 꼽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그의 날카로운 정신을 갉아먹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말이 얼마나 옳은지 판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 역시 그의 변화하는 외양만으로도 그가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는 것은 감지할 수 있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에도 그는 썩 보기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다. 낯빛은 탁한 청빛을 띠었으며, 수염은 지저분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볼 살이 두툼했고, 손등에도 살이 올라 있었다. 그런데 몇 개월 사이에 그는 무엇엔가 심하게 시달린 사람처럼 살이 모두 말라붙어 버렸고, 살갗의 윤기도 죽어 버렸다. 머리에도 갑자기 흰머리가 잔뜩 늘었는가 하면, 두피가 언뜻언뜻 내비칠 정도로 빠져 버렸다. 몇 달 전만 해도 그의 두 눈에는 물기가 촉촉이 내려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생선비늘이 낀 것처럼 흐리멍텅했다. 몇 개월 사이에 그는 십 몇 년은 늙어 버린 듯했던 것이다.

P형이나 다른 멤버들도 이것을 알아채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또 그의 외모를 화제에 올렸다가, 더러는 이제 L이 논객으로서의 생명이 다한 것은 아닌가 하고 우려를 하기도 했다.

나는 그들의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L을 향한 어떤 동정과 아쉬움을 읽었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불편함과 경계심을 읽기도 했다. 그들의 어조에는 어쩐지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적들의 시선을 피해 몸을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부상병 하나를 곁에 둔 듯한 기분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술자리에서 L을 맞이하는 방식은 결코 호의적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안부 인사를 주고받기는 해도 그 다음이면 자신들이 추진하는 일과 또 만나는 사람에 대해 관심이 기울어지며, 자연히 대화도 그쪽으로 기울어지고, 그러면 L은 멀뚱히 앉아 그저 술을 마시다 담배를 태우다 또 술을 마시곤 하는 것이다. L에게 무엇인가를 묻지도 않고, 또 의견을 구하지도 않는다. 혹, 어쩌다 형식적으로 무엇을 묻는다 해도 관심 있게 귀 기울여 듣지도 않는다.

나는 그런 그들을 지켜보면서 한편으로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L에 대해 어떤 동정을 품곤 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본능적인 어떤 경계심을 품기도 했다.

L도 이 모든 것을 전혀 모르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때로는 일찍 자리를 떠 버리곤 했다. 하지만 아주 때로는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술을 마시다, 또 옆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다 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 그의 얼굴과 눈은 가끔 어떤 호기심에 들떠 빛을 내는가 하면, 그 반대로 금세 졸린 표정이 되곤 했다. 또 무엇인가를 말하기 위해 입을 더듬거렸지만, 이내 체념한 듯 묵묵히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그는 술자리의 어떤 무료를 즐기는 듯도 했고, 반대로 온 힘을 다해 그것을 견디고 있는 듯도 했다.

나는 이제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L의 맞은편이었다.

내가 자리를 잡고 앉자, 박 모는 엉덩이를 슬금슬금 옮겨 자리를 넓혀 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잔 하나를 건넸다. 나는 그것을 받아 쥐었다. 그러자 그는 이번에는 술병을 들어 내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나는 그것을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았다.

“그건 어려운 일이지. 밑에서는 이런 저런 의견이 많지만, 정책을 추진하는 입장에서야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거니까.”

P형은 말했다. 그러자 장 모가 말했다.

“그래두 일방적이라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울 걸요. 걔네들 면면을 봐도 그건 뻔하지. 제 밥그릇 챙기기지, 그게 무슨…….”

나는 막 자리를 잡은 까닭에 대화의 중심을 알 수 없었다.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두 사람의 논지를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침묵한 채로 듣고만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잠시 더 계속되다가 끝이 났다. P형도 잔을 비우고, 장 모도 잔을 비운다.

그 후 대화는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것은 좀 전의 대화에 비하면 그다지 엄숙한 것도 아니었고, 또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멤버들은 어려운 시험을 마친 아이들처럼 홀가분하게 떠들어댔다. 나도 웃고, 농을 치고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L쪽을 보니, L은 술잔을 손에 쥔 채 묵상에라도 잠긴 것처럼 두 눈을 내리깔고 심각한 표정으로 무슨 생각엔가 잠겨 있었다. 나는 그제야 우리들이 실컷 웃고 떠드는 동안 L만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또 웃지도 않고, 소외된 그대로 평온을 유지한 채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분명 평소 L다운 처신이었다. 하지만 나는 전에도 가끔 그랬듯이 그날따라 또 어떤 동정이 일었다.

나는 농담이라도 한 마디 건네 볼까 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L이며 다른 멤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주저가 되고 또 귀찮아지는 것이었다. 나는 현관에서 그를 처음 발견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어떤 어색함을 다시금 느꼈다. 그런데 그것은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를 의식하는 분위기가 조금씩 번져나가고 그에 따라 웃음이며 말소리가 잦아들었던 것이다. 마침내는 모두가 침묵에 휩싸였다.

“자, L. 한 잔 하지.”

침묵의 끝에서, P형이 술병을 들고 L에게 술을 권했다. 그러자 L은 잠이라도 들었다가 깨어난 듯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술잔을 냉큼 비우고는 황송하다는 듯이 P형 앞에 술잔을 내미는 것이었다. P형은 묵묵히 술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그리고 무슨 안부라도 묻듯이, “요즘도 밤낚시를 자주 하나?” 하고 물었다. 그것은 언젠가 장 모가 L에게 “요즘 뭘 하며 지내?” 하고 물었을 때, L이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이 새로 이사한 집 근처에 얕은 천 하나가 흐르며, 그곳은 본래 2급 하천수여서 낚시가 금지지만, 그 감시가 허술해서 밤이면 몇몇 낚시꾼들이 그곳에 모여들며, 자신도 며칠 전부터 그 재미에 들렸노라고 장황하게 떠들어댄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P형은 그것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L은 이제 그때처럼 곧바로 답변하지 못하고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르다 발각된 사람처럼 당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물쭈물 하다가 갑자기, “취향의 문제니깐. 예술이라는 것도 요즘 시대엔 취향의 문제로 전락해 버리고, 또 우리의 삶도 그렇게 전락해 버리고. 취향이 절대적인 가치를 전복해 버린 형국이니깐.” 하고 엉뚱한 말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그 이후에도 그는 무슨 말인가를 두서없이 중얼거리다가 멈추고, 중얼거리다가 멈추고 했다.

그의 이러한 반응은 누구도 예측치 못한 것이었다. 모두가 한편으로는 기이하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L이 된 듯한 민망함을 느끼며 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다시 깊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으응, 그렇지. 그렇지.”

P형은 당황한 듯이, 그러나 어떤 매듭을 짓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듯이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딴청을 피우듯 술을 들이켰다. L은 자신이 맥락에 들어맞지 않는 말을 했고, 그 때문에 술자리가 한순간 서먹해진 것을 깨달은 눈치였다. 그래서 그는 계속 당황한 채로, 황급히 무슨 말인가를 덧붙이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저……. 저…….” 하며 말을 더듬으며 붉게 번들거리는 얼굴로 한순간 눈빛을 영롱하게 빛내다가는, 이내 체념하는 것이었다. 그는 술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가 다시 얼굴을 똑바로 세웠을 때, 피곤과 고뇌의 그늘이 얼굴 전체에 번져 있었다. 모두가 정적에 잠겼다.

“개구리가 우는구나.”

정적 속에서 박 모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감상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다른 멤버들은 한결같이 이미 열려 있는 베란다 쪽에 시선을 두고 귀를 기울였다. 과연 개구리 소리였다. 하지만 베란다의 풍경은 그저 암흑이었다.

“내 어렸을 적에는 개구리가 왜 저리 울어대는지 몰랐는데, 이제는 짝짓기 때문에 우는 것이란 걸 알지.”

장 모가 읊조리듯이 말했다.

“그걸 아니깐 때로는 내 어릴 적 풍경의 개구리 소리가 다 추해지는 거야.”

다른 멤버들은 그 말 속에서 어떤 공감되는 비극이라도 읽은 듯이 침착한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그 이후 잠시 동안 술자리에는 어떤 고요와 조심스러움이 깃들었다. 모두가 두어 마디 하다 입을 다물고, 두어 마디 하다 입을 다물고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자 술자리는 다시 밝아졌다. 이번에도 시시껄렁하고 유쾌한 이야기들이 오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이제 아무도 L을 신경 쓰지 않았고, L도 그것을 원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다가 십여 분이 지나자, 이제 대화는 좀 더 무거운 쪽으로 옮겨 갔다. 우리들의 목소리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때 우리들이 주고받았던 대화는 조금 거시적인 것들로, 일테면 사회나 시류와 같은 것이었다. 그것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를 어둡고 고통스럽게 했다. 그것은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우리들도 그것 앞에서는 마치 중심 잃은 배 위에 올라탄 듯한 현기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것 앞에서는 인간의 정의라는 것도 무가치한 것으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젊은 논객들답게 한편으로는 그것을 당연시했다. 또 더 나아가 삶과 사회에서 그것을 통찰해낼 수 있는 하나의 관념을 구한다는 것이 무척 어리석다고 여기고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향한 욕망을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어려운 일이지. 어느 시대에나……. 요즘 시대는 더더욱.”

박 모는 반쯤은 시큰둥하고, 또 반쯤은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에 우리는 무엇인가를 털어내고 싶다는 듯, 푸념조로 이런 저런 말을 보태었다. 거기에는 흔들리는 시대에 세상은 세상대로 우리들은 우리대로라는 반감도 없지 않았고, 또 얼마만큼은 자학 같은 것도 뒤섞여 있었다. 그 자학이란 우리들이 세상에 대해 무엇을 고민할 만한 자격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고민이라는 것도 하등 가치가 없다는, 그런 식의 것이었다.

“술맛 떨어져. 술맛.”

그런 분위기의 뒤에서, 장 모는 다시 한 번 분위기를 바꿔 보려는 듯 농담조로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나서서 정치 이야기를 했다가, 음악 이야기를 했다가, 미국의 어떤 팝가수가 세 명의 여자와 놀아나다가 언론에 발각된 이야기도 했다가 했다.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서 분위기는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되자, 이제 우리들은 우리들이 기획하고 있거나 혹은 이미 참여하고 있는 세미나나 문화 행사에 대해 이런 저런 말들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것은 우리들이 추진하고 있거나 당면한 사안인 만큼, 또 얼마만큼은 정책적인 판단력만을 요하는 만큼 구체적이고 명확한 것이었다. 더불어, 우리가 무엇엔가 참여해 활동할 수 있다는 자긍심에서 어떤 생기를 불러 일으킬 만한 화제들이었다. 우리들은 소풍을 앞둔 아이들처럼 들떠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의견을 주고받곤 했다. 특히 박 모는 당시 한 심포지엄의 주요 토론자로 초대를 받은 상태였는데, 그 심포지엄은 젊은 논객들이라면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행사여서 그 자신도 그 기쁨을 감추지 않고 은근히 자부하는가 하면, 다른 멤버들도 우정을 표하느라고 그의 말에 동조를 하고 또 부추기고 하였다. 유쾌한 웃음이 거실 안을 꽉 채웠다가 잦아들곤 했다. 나는 한편으로는 부러움에 젖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그만큼의 역량이 되지 못한다는 것에 착잡해졌지만, 궁극적으로는 즐거운 분위기에 동화되어 농담조로 빈정거리고, 웃고, 떠들면서 술을 마셨다. 그러다가 내 시선은 또 한 차례 L쪽에 머물렀다. 의도한 것이 아니었고, P형을 바라보다가 시선이 잠시 그쪽으로 흘러간 것이었다. 그것은 큰 나무 옆에 작은 바위가 웅크리고 있어 큰 나무를 보자면 작은 바위가 눈에 띄는 격이었다.

L은 모두가 웃고 떠드는 와중에 역시 앉아서 묵상에라도 잠긴 것처럼, 두 손으로 작은 술잔을 쥐고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그는 한편으로는 잠이 들어 버린 듯 했고 또 한편으로는 엄숙한 의식을 진행하고 있는 듯도 했다. 한편으로는 평온해 보였으나, 또 한편으로는 어떤 고뇌에 집중하고 있는 듯도 했다. 나는 이번에도 동정이 일었으나, 또한 어찌된 까닭인지 그와 소통할 수도 없고, 또 모두가 웃고 떠드는 중에 혼자서 침묵을 유지하며 술자리를 계속 지켜 가는 것에 떨떠름한 기분이 되기도 했다. 나라면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 버렸을 것이다. 나는 괜스레 착잡한 심정이 되어 술잔을 막 입에 가져갔다. 그런데 그때, 나는 L이 어떤 독기를 품은 도전적인 표정으로 두 눈을 천천히 치뜨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 그의 얼굴이 갑자기 하얘지고 밝아지면서 두 눈이 어떤 총기로 빛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그는 무슨 말인가를 하고픈 듯 입술을 실룩거렸다.

나는 그 순식간의 표정 변화가 기이해서 잠시 술잔을 거둔 채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찌된 까닭인지 그가 갑자기 캭! 하고 금속성의 기합을 내지른 후에 식탁을 들어 엎어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 기세를 느꼈다. 그래서 어떤 죄를 짓다 발각된 사람처럼 마음속이 움찔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는 치켜떴던 두 눈을 좀 전처럼 천천히 내리깔았다. 그리고 그에 따라 짧은 순간 두 눈동자에 서렸던 어떤 총기도 눈꺼풀에 서서히 덮여 갔다.

그는 다시금 무료한 안정을 되찾은 듯했다. 다시 고개가 숙여졌고 두 눈도 완전히 감겼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얼굴에 어렸던 강렬하고 환한 빛도 죽어 버렸다. 그것은 촛불의 죽음과도 같았다.

나는 다른 멤버들도 이것을 보았는가 하고,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 그래 왔듯이, 자신들이 당면한 과제와 또 처리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웃고 떠들고 할 뿐이었다. L은 그들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잊혀진 듯했다.

술자리는 새벽 세 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뒷정리가 있었고, 작별 인사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와 박 모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에 반해, 김 모와 장 모는 P형과 함께 좀 더 마시다가 하룻밤 신세를 지겠다고 했다. L은 그 사이에서 잠시 갈등하는 듯했다. 하지만 곧 자신도 자리를 뜨겠다고 했다. 그는 무엇인가를 무척 아쉬워하는 얼굴이었다.

나와 박 모, L은 P형의 집을 나섰다. 달은 먹구름에 가려져 있었고, 골목에는 검은 안개들이 음산하게 피어올라 있었다. 도시의 소음이 주택가의 지붕들 위로 날아왔다. 개구리 울음 소리도 여전했고, 밤공기는 미지근했다.

우리는 말없이 경사진 골목길을 따라 내려갔다. 나는 그때에 어렸을 적 개구리를 잡기 위해 긴 막대기를 들고 논두렁 사이를 가로질러 가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나는 당시 소심했기 때문에 실상 개구리를 때려잡을 수도 없었다. 오히려 크고 무늬가 흉측한 개구리를 보면 먼저 겁을 집어먹곤 했다. 그런데도 나는 나 역시 다른 아이들처럼 살생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어떤 오기를 품고 논둑길을 걷고 또 걸었었다. 개구리들은 첨벙거리며 논의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긴 막대기를 이쪽으로 휙, 저쪽으로 휙 하고 휘두르곤 했다.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고, 가슴은 요동치고 있었다. 그 혼란스런 감정이 이제는 너무 멀다.

“난 이쪽으로 가 봐야 해.”

우리가 주택가 골목의 사거리에 도착했을 때, 박 모가 말했다. 나는 그제야 상념에서 깨어나, “택시를 타지?” 하고 인사말처럼 물었다. 그러자 박 모는 “응, 택시를 타야지.” 하고 말했다.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그가 나아가야 할 골목 쪽을 잠시 쳐다보았다. 그곳은 무덤처럼 고요했고, 가로등 두어 개가 노란 불빛을 쏟아붓고 있었다.

“난 가! 그럼, 들어들 가. 난 가.”

박 모는 무엇인가를 떨치려는 듯 호쾌하게 말했다. 그리고 옆걸음을 치면서 손을 흔들더니, 이윽고 골목을 따라 똑바로 걸어 나가는 것이었다. 나와 L은 그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 우리 둘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L과 단 둘만 남겨지자, 나는 전에 느꼈던 어색함을 다시금 느꼈다. 골목길도 P형의 집에 갈 때보다도 서너 배는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전혀 낯모르는 사람들끼리도 동행할 때가 있는데 이것은 또 어떠냐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집이 먼가요?”

사거리에서 조금 멀어졌을 때, L이 먼저 입을 뗐다. 무척 침착한 음성이었다.

“조금, 조금 멉니다. 대로로 나가서 택시를 잡으면 됩니다.”

나는 역시 어색함을 느끼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를 힐끗 곁눈질 해 보았다. 그때 그는 무엇엔가 집중하는 듯한 표정으로 땅을 내려다보며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히 내딛고 있었다. 그때의 그는 어찌된 까닭인지 술자리에서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한마디로 무척 진중한 사람 같았다.

“집이 어디십니까?”

이번에는 내가 말을 건넸다.

“S동 쪽입니다. 여기서는 조금 멀지요. 그래도 걸으면 한 시간 안짝이지요.”

그는 말했다. 표정에도, 또 음성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우리는 다시 말없이 걸었다. 검은 안개는 소리 없이 흐르고, 우리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이 주택가의 골목 안에서 탁하게 울려 퍼졌다. 잠시 후 그가 다시 말을 건넸다. P형과는 언제부터 어떻게 알게 된 사이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대학 시절 선배였노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보낸 대학 시절 중 일부를 잠시 이야기했다.

“좋은 사람이지요.”

이야기 끝난 후, 나는 말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대학 시절 그가 나에게 고함을 내지르면서 내 얼굴에 책을 내던지던 기억을 떠올렸고, 말문이 막혀 더 이상의 말을 잊고 말았다. 나는 내가 술에 취한 것을 알았다.

“좋은 사람입니다.”

나는 얼버무리듯 말했다.

그 이후 우리는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대개가 신변잡기 같은 것으로 딱히 의미를 둘 만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 대화 속에서 나는 L과 부쩍 친밀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딱히 호의가 없는데도 그랬다. 우리는 골목을 빠져나와, 또 다른 골목을 향해 우측으로 꺾어 들었다.

“요즘은 왜 통 글을 안 쓰세요? 예전에는…….”

나는 골목으로 꺾어 들면서 물었다. 나는 큰 의미를 두지도 않았고, 또 조금 전까지 스스럼없이 말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쉽사리 말을 주고받으리라 하고 막연히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질문 뒤에는 오랜 침묵이 뒤따랐다. 나는 의아해져서 옆을 돌아보았다. 그는 전에 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묵묵히 걷고 있었다. 밤의 어둠이 그의 얼굴 위에 깊게 얼룩져 있었다.

“그것은 저……. 말하자면……. 그러니깐…….”

그는 한참 후에 무엇인가를 말하려 했다. 하지만 번번이 말문이 막히고, 얼굴에는 곤혹스러움이 피어올랐다. 

“뭐 굳이. 저는 그저…….”

나는 깊은 생각 없이 실언을 한 것 같아 엉거주춤 말했다. 그러자 그는 되레 미안해 하면서, “아니 뭐……. 별건 없구.” 하고 겸손하게 말했다. 우리 둘은 잠시 완강한 침묵에 사로잡혔다. 나도 걷고, 그도 걸을 뿐이었다. 나는 그 침묵을 떨쳐내 보려고 다른 말을 걸어 보나 어쩌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막 다른 질문을 던지려는 찰나, 그는 어떤 결심이라도 끝낸 것처럼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는 어렸을 적 시골에서 살았지요. 시골 태생입니다. 아주 외진 시골이지요. 가구 수도 별로 없구, 전화기도 중학교 입학할 때에야 두어 대 들어왔지요. 그런 시골입니다. 저는 거의 외톨백이처럼 지냈지요. 다른 이유는 없고, 가구 수가 적으니깐 제 또래가 없었던 겁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지요.”

그는 거기서 말을 잠깐 멈췄다가 다시 시작했다.

“하루는 묘정 옆에서 땅에 낙서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요. 지금 같은 여름이었습니다. 맑은 하늘에, 햇볕이 얼마나 강하게 쏟아지는지 낙서를 하다 고개를 들면 온 들판이 하얗게 물들어 가는 느낌이 들 정도였지요.

그날 묘정에는 저 외에도 독고몰 양반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 어른은 마을에서도 가장 늙은 축에 들었습니다. 그때 나이가 여든 후반 아니면 아흔쯤 되었을 겁니다. 그는 젊었을 적에 인물이 꽤 훤칠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흔 넘어선가, 쉰 넘어선가 몹쓸 병이 들었지요. 그 병명이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른들 역시 정확한 병명은 몰랐는데, 그저 문둥병이라고만 했지요. 실제로는 문둥병이 아니었는데, 다들 그렇게 부른 겁니다.

그 병은 독고몰 양반의 육체를 크게 비틀어 놓았습니다. 두 손이 독수리 발가락처럼 오그라 붙고, 입술도 한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가장 끔찍한 것은 두 눈이었지요. 그의 두 눈은 사시처럼 틀어져 버렸습니다. 그 정도가 심해서 한쪽 눈은 바깥쪽으로 흘러 버리고, 또 한쪽 눈은 아예 흰자위만 들어앉아 있었지요.

그 병이 들고 난 이후 그는 거의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내와 자식들이 그의 수족을 대신했지요. 

그가 다시 바깥출입을 하게 된 것은 일흔인가, 여든인가 넘어서였다고 해요. 그때에는 몰랐지만, 아마 내 생각에는 늙어간다는 것이 그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늙으면 부끄러움이나 추한 것에 대한 생각도 바뀌니까요. 물론, 그는 아마 대단한 용기를 내기도 했을 겁니다.”

L은 여기서 숨을 돌리듯 잠시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바깥출입이 잦아지면서 사람들은 그의 흉측한 몰골을 다시 볼 수 있었지요. 나와 여덟 살 터울이 지는 친형 말로는 그때 마을 사람들이 꽤 요란스럽게 수군거린 모양입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모두들 잠잠해졌지요. 그것은 우선은 그의 병이 어떤 전염성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피해를 볼 일이 없었기 때문이고, 또 마을 안에서는 모두가 그의 동생이자 친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는 독고몰 양반의 권위 때문인 듯한데, 그는 면내에서도 손꼽히는 부자에, 식자였지요. 어른들 말로는 그가 일제시대에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해요. 그건 지금으로 치면 박사 학위를 받는 것보다 더 대단한 것이었지요. 특히 아주 깡촌에서는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흉측한 몰골에도 마을 사람들의 존경심은 대단한 것이었지요. 모두가 어려워하면서도 그와 말 한마디 섞는 것을 아주 자랑스러워했다고 할까요?

그 당시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어른에 대해 어떠한 거부감이나 부담감도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추하다고 판단하거나 어떤 권위에 대한 존경심을 갖는다거나 하는 것이 적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어렸을 적부터 그와 자연스럽게 낯을 익혔기 때문이고, 또 한편으로는 어른들과는 달리 권위라는 것에 대해서도 눈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어른에 대한 어떤 경계와 조심성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요. 그것은 또 다른 맥락인데, 나는 마을 어른들이나 또 내 부모가 그를 대하는 태도 속에서 그것을 자연스럽게 익혀 갔던 것입니다. 나에게 그는 이렇다 저렇다 할 부담감이 없으면서도 막연히 높고 멀리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할까요? 그것은 평소 그의 행동거지나 옷차림이 남다른 것에서 연유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말수도 많지 않고, 웃지도 않고, 항상 조심스러운 처세를 취했지요. 그러면서도 이상한 권위와 절제가 느껴집니다. 또 옷차림은 항상 깨끗했는데, 그것은 들판의 흙먼지와 바람, 그리고 땀에 찌들린 마을의 다른 어른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었지요. 그는 반 신선과 같았습니다. 아마 여기에는 그가 부자에 식자인 신분이라는 것과 또 오랫동안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겠지요. 하지만 어떤 천성이 이미 시골 무지렁이들과는 다르게 구분지워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만큼 품위가 있었습니다.

여하튼 간에, 그날 우리 두 사람은 묘정에 나와 있었지요. 나는 짧은 나뭇가지로 묘정 옆 땅바닥에서 낙서를 하고 있었고, 그는 묘정에 조용히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당시 그는 하얀 모시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는 종종 그 차림으로 그렇게 묘정에 나와 앉아 있곤 했지요. 그렇게 나와 앉아 빈 들판을 넋 놓고 바라보곤 했던 것입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것은 백년을 앞 둔 늙은이가, 또 죽음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늙은이가 마음의 정리를 위해 취할 수 있는 마지막 행동 같은 것이었지요.

당시 그는 평온한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깊은 짜증에 시달리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두 눈을 감듯이 뜨고 있었고, 오그라든 두 손은 소매 안에 감추고 있었지요. 당시 그가 그런 표정을 지은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건강이 무척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앞서 그가 죽음을 앞둔 늙은이라고 했는데, 사실이 그랬습니다. 노환의 현상이 분명하겠지만 그는 당시 여러 속병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마을 사람들은 그가 오늘 죽는다, 내일 죽는다 하고 수군거렸지요. 저도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주워들은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너무 어렸고, 그래서 죽음의 감각이라는 것도 저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묘정에 나와 있는 그 어른으로부터 죽음의 그늘을 느낄 수도 없었을 뿐더러, 그가 어떻게 죽음에 젖어들고 있는지도 헤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제가 당시 어렴풋이나마 보고 생각한 것은 아주 표면적이고 단편적인 것으로, 그가 늙고 아픈 몸을 이끌고 묘정에 나와 텅 빈 들판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와 그 옷이며 자세가 무척 정갈하다는 것이었지요. 그게 전부입니다. 우리는 단 몇 발자국이면 서로에게 맞닿을 거리였으면서도 실제로는 수십 리는 떨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아득한 간극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L은 거기서 다시 이야기를 멈췄다. 그리고 고뇌에 어린 표정으로 잠시 입술을 달싹거렸다. 나는 그의 표정에서 그가 그의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것이 조금 괴이했지만, 딱히 먼저 나서서 이야기를 잘라낼 수도 없어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잠시 후 그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묘정에 그렇게 나와 있었을 때, 한 사람이 우리가 있는 묘정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만동이라고,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외딴집에서 살았지요. 그때, 그는 마흔이 조금 넘은 나이였고 한 늙은 과부와 살림을 차려 살고 있었습니다. 그 과부는 몸에 약간 장애가 있었지요. 한쪽 팔이 구부러진 채 옆구리에 딱 들러붙고, 두 다리도 온전치 못해서 걸음을 걸을 때는 기우뚱거리며 한쪽 발을 마치 독일 병정이 행진이라도 하듯이 높이 들어올렸다가 내려놓곤 했습니다. 그 때 마을에서는 그 과부에 대해 여러 가지 소문이 돌았는데, 제가 지금까지 가장 명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 과부의 아버지가 그 과부를 내쫓듯이 만동이에게 맡겼다는 것이지요. 그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습니다.

그 여자의 인생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참 처참한 것이었지요. 일단 몸이 불편한 늙은 과부라는 것이 그렇고, 무엇보다도 만동이 같은 사내와 살림을 차렸다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만동이는 마흔이 족히 넘은 어른이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를 무슨 양반 무슨 양반 부르지 않고 그저 만동이, 만동이 하고 불렀지요. 그것은 그가 과부와 살림을 차리긴 했지만 정식으로 장가를 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그가 마을 안에서도 가장 미천하게 여겨졌기 때문이지요. 실상 그는 일자무식에, 술에 취하면 인사불성이 되곤 했지요. 또 정신 상태도 그다지 정상은 아니었습니다. 나도 그것을 본 적이 있지요. 하루는 태풍이 온 마을을 덮쳤습니다. 아주 순식간이었지요. 검은 구름이 풍차처럼 돌면서 순식간에 하늘을 집어 삼키더니 강풍이 불고, 장대 같은 빗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바람이 따귀를 올려붙이듯이 정면에서 달려들었지요. 저는 그때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들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저를 태풍 속에서 보호하느라고 저를 그들 사이에 두고 그들 자신도 강풍에 시달리면서도 제 양 손을 꽉 붙들고 있었지요. 우리는 그 상태로 산기슭을 돌아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산의 나무들이 천 자락처럼 울렁거렸지요. 저는 강풍과 빗물 때문에 고개를 똑바로 쳐들지 못하고 거의 맹인처럼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길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버지와 어머니가 동시에 멈춰 서는 것이었습니다. 숨을 거칠게 내쉬며 서둘다가 갑자기 멈춰 선 것입니다. 저는 의아해져서 겨우 고개를 쳐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수만 마리의 벌레들처럼 날아다니는 빗물 사이로 만동이를 보았지요. 그는 완전히 벌거벗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높이 뛰어오르거나 달리거나 넘어지거나 하면서 바람에 울렁이는 논 사이를 가로질러 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의 붉은 육체가 검푸른 들판을 제멋대로 헤집어 놓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는 그 상태로 흥분한 짐승처럼 고함을 내지르기도 했습니다. 그 소리는 얼마나 큰지 태풍에 울렁거리는 들판 전체가 쩌렁쩌렁 울리는 듯했지요.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떤 공포와 놀라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저 역시 그랬지요. 우리 세 사람은 얼어붙은 듯 제자리에 박혀 서서 그가 들판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지요. 그것은 제 생애에 몇 안 되는 희귀한 경험 중 하나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에게는 그조차도 주체할 수 없는 발작적인 조증 같은 것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다시 멈춰졌다. 하지만 몇 걸음 떼지 않아 다시 계속됐다.

“어쨌거나 그런 만동이입니다. 그리고 그는 마을길 저쪽에서 묘정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는 등에 지게를 짊어지고 있었지요. 지게 위의 짐은 덕석이었는데 줄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지게 지는 모습은 마을의 다른 어른들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통상 촌부들은 빈 지게일지라도 어떤 습관처럼 허리를 약간 굽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는 뻣뻣이 서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지게를 짊어졌다고 하기보다는 지게가 매달린 형국이라고 할까요? 그것은 아마도 그가 정신 상태가 약간 이상해서 농사짓는 요령 따위가 그의 몸에 달라붙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그는 유난히 덩치가 크고 힘이 좋았는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때 그의 뻣뻣한 자세에는 지게 짊어지는 요령쯤이야 육체의 힘으로 너끈히 극복할 수 있으며, 그래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런 도도함이 배어 있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평소 그의 성격이기도 했지요. 이제야 말이지만, 사실 그는 좀 도도한 성격인 것입니다. 일테면, 마을 어른들이 무슨 말인가를 건네면 그는 “흥, 고까짓 것.” 하고 투덜거리기를 잘 했지요. 인사를 하는 법도 없었고, 인사를 받는 법도 없었습니다.

어쨌건 간에, 그런 만동이가 나와 독고몰 양반 쪽으로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우리 앞을 지나쳐 가려 했지요. 그것은 뭐랄까, 우리를 애써 무시하려 한다기보다는 애초에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요? 그의 걸음걸이나 태도는 그만큼이나 당당하고 거침이 없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독고몰 양반 앞에서 그토록 안하무인격의 태도를 보일 수 있었던 사람은 만동이가 유일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른 마을 어른들은 통상 고개라도 숙이고 그 앞을 지나쳐 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는 우리 앞에서 멈춰 섰지요. 그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때까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실눈을 뜨고 있던 독고몰 양반이 힘없는 목소리로 그를 불러 세웠기 때문입니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때를 되돌아볼수록 어쩐지 독고몰 양반이 만동이에게 말을 건네고 싶어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그건 뭐랄까,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독고몰 양반이 죽음을 앞두고 평소 소통하지 못했던 것들과 소통해 보려 한다는, 그런 욕망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세월이 흐를수록 그런 느낌이 그 과거의 풍경에서부터 도드라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나 연민과는 거리가 먼 것이지요. 그건 아니었습니다. 왜냐면, 독고몰 양반이 만동이에게 말을 건넸을 때, 거기에는 만동이 못지않은 어떤 도도함이 묻어났기 때문입니다. 마치 지금 내가 너와 이렇게 말을 섞고 있어도 너와는 영원히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식의 어조 말입니다. 

“어딜 가는가?”

독고몰 양반은 만동이를 불러 세워 놓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만동이는 멈춰 서서는 “당산에 가요.” 하고 말했습니다. 당산은 마을 서쪽에 있는 야트막한 야산의 이름이었지요. 본래 지명은 알 수 없으나, 예전에 그 곳에 무당집이 있어서 그저 당산, 당산 하고 불렀고, 그것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대로 굳어진 이름이었습니다.

만동이는 아주 시큰둥했습니다. 뭐랄까요, 일이 바쁜데 누가 물으니 멈춰 서서 대답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어조랄까요? 그는 약간 성가셔하는 듯도 했고, 또 그 때문인지 약간은 시비를 거는 듯한 음성이었습니다. 독고몰 양반을 바라보는 얼굴에도 그것이 그대로 드러났지요. 그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내 머리 속에서는 어찌된 까닭인지 태풍이 부는 날 벌거벗은 채 들판을 가로지르던 만동이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또 그 뒤를 이어 몇 가지 단상이 떠올랐지요. 그 중의 하나는 그가 잔칫날 돼지를 때려잡던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시골에서는 누구의 회갑 잔치나 칠순 잔치면 돼지를 잡곤 했지요. 그때 그 일은 마을 안에서도 꽤 사내답다고 여겨지는 어른들에게 맡겨지곤 했습니다. 만동이도 그 중 하나였지요. 그런데 만동이의 경우에는, 단순히 사내답다고 여겨지는 기운 이상의 무엇인가가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굳이 말하자면, 살육 그 자체를 즐기는 어떤 잔인함이 배어 있다고 해야 할까요? 옆에서 지켜보면 그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하지만 그것은 그저 쾌락이라고만 지칭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해머를 높이 들어 올렸다가 돼지의 머리에 내려치는 그 순간, 만동이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것은 어떤 혼란스런 흥분과 분노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뭐랄까요, 한 사내가 쉽게 정복할 수 없는 산 정상을 오르는데, 산 정상에 올라서는 환희를 앞당겨 느끼면서도, 육체적 고통과 가쁜 호흡 때문에 짜증을 느끼고, 그러면서도 또 온 열정을 다 바쳐 한걸음씩 내딛는 형국이라고 할까요? 그것은 어린 저뿐만 아니라 마을 어른들도 느낀 것이었지요. 그래서 실제로 만동이가 해머질을 하게 되면, 사내답다 하는 어른들마저도 눈살을 찌푸리거나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 버렸지요. 만동이의 해머질은 온 힘을 짜내어 생명 자체를 짓이겨 버리는 행위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돼지의 목숨을 빼앗는 것과는 전혀 다른 영역의 감각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다른가 하고 물으면 저는 쉽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만동이의 해머질과 다른 사내답다 하는 어른들의 해머질에는 역시 묘한 이질감이 있었습니다.

만동이로 말하면, 그것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내답다 하는 어른들이 하나 둘 자리를 피하는 중에도, 해머질로 튀는 돼지의 피를 얼굴과 가슴에 온전히 받아 내면서, 지겨운 노동을 온 몸으로 밀쳐내듯이 해머질을 계속했지요. 그것은 처절하면서도 공포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때 묘정 한쪽에서 이러한 기억들을 순간적으로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어린이답지 않은 혐오와 경계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순간적이지만 그때 만동이가 어떤 사단을 내는 것은 아닌가 하고 과잉된 우려를 했던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요. 두 사람은 온 대지를 하얗게 물들일 듯한 뜨거운 땡볕 아래에서 태평스럽게 대화를 계속해 갈 따름입니다.

“당산에 뭐 하러 가나?”

독고몰 양반은 물었습니다. 그러자 만동이는 갑자기 기세가 약간 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물쭈물하더니 몸을 약간 비틀어 지게의 덕석을 내 비추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이걸 묻으러 가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제야 나와 독고몰 양반의 시선은 동시에 그가 짊어진 지게의 덕석 쪽으로 옮겨졌습니다. 만동이의 정면에 있던 독고몰 양반은 그 덕석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지요. 하지만 측면에 쪼그려 앉아 있던 저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시신을 둘둘 말은 덕석이었습니다. 나는 만동이가 몸을 살짝 틀었을 때, 시신의 머리와 그 머리에 짓눌린 하얀 손의 일부가 덕석의 한쪽 끝으로 내비춰져 있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나는 경악했지요. 덕석 옆으로 약간 삐져나온 하얀 손은 마치 흑백사진 위의 붉은 물감처럼 내 시선을 붙들어 매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뭔가?”

독고몰 양반은 역시 그 짐의 정체를 알지 못해 다시 물었지요. 그러자 만동이는 이제 얼버무리듯이 말했습니다.

“작것이 죽어 버렸습니다.”

그 말에 독고몰 양반은 그제야 그 짐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했습니다. 저도 그 시신의 임자가 누구인지를 알았습니다. 바로 만동이와 살림을 차렸던 늙은 과부였지요.

“작것이 죽어 버렸어요.”

만동이는 힘없는 목소리로 투덜거리듯이 반복했습니다.

그런 만동이의 태도에 독고몰 양반은 잠시 할 말을 잊은 듯했습니다. 그는 입을 꾹 다문 채로 그저 만동이를 멍하니 바라보았지요. 그런가 하면, 그는 어떤 복잡한 심사에 사로잡힌 듯도 했습니다. 그것은 얼굴 표정 때문인데, 그의 희고 주름 많은 얼굴은 어떤 근심과 짜증 섞인 귀찮음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것은 반쯤은 어떤 속병의 고통 때문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만동이가 묘정에 나타나기 전에도 그런 표정을 지었으니까요. 여하튼 간에, 그런 표정으로 독고몰 양반은 잠시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흐음하고 몸의 무엇인가를 밖으로 배출하듯이 숨을 내쉬더니, 이내 무엇인가를 체념한 듯이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그때 어린 나이이긴 했지만, 죽은 자에 대한 애도의 예와 장례 절차를 생각했던 듯합니다. 왜냐면, 어쩐지 독고몰 양반이 이보게 그래도 살을 맞대고 산 세월이 있는데 그 태도는 무엇이며, 장례 절차도 없이 지게로 내다 버리듯이 하는 경우가 어디 있는가 하고 타이르든가, 짐승 같은 놈이라고 일침을 놓든가 하리라고 막연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독고몰 양반이 마을에서도 가장 어른 축에 드는 데다가, 또한 식자인 것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겠지요.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부지불식간에 그런 선입견에 판단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독고몰 양반의 말이라는 것은, 기왕 당산에 묻으려거든 시신이 잘 썩을 만한 곳을 골라서 묻어야 한다는 것과 또 감쪽같이 묻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이해하실지 모르겠지만, 마치 만동이의 뜻에 충분히 동조한다는 듯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뒷흉이 없어.”

그는 결론을 내리듯 말했습니다. 그러자 만동이는 그 말에 약간 기운을 차린 듯이, 그래서 반쯤은 시건방지고 또 반쯤은 도도하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문제없어요. 깊이 파서, 깊이 파서 묻을 거니깐. 이건 쬐꼬만해서 조금만 파도 콱 묻혀 버리니깐.”

독고몰 양반은 그 말을 태연하게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자 잠시 시간을 두었다가, 해찰이라도 부리려는 듯 시선을 먼 곳에 두고는 “오늘은 덥네. 더워.” 하고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덧붙여, “더워서, 고되겠네.” 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만동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곳에는 뜨거운 태양이 불타오르고 있었고, 그 불의 덩어리에서부터 마치 희고 뜨거운 물이 흘러내리듯이 햇볕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만동이의 얼굴은 일그러졌지요. 하지만 그는 곧 머리를 똑바로 세우고 태연하고 당차게 말했습니다.

“흥, 더워봤자예요. 저 놈이 뜨거워봤자 꿈쩍도 안 해요. 안 고되요. 하나도.”

그러자 독고몰 양반은 이제 그런 만동이를 올려다보며, 역시 두 손을 소매 속에 감추고 정갈한 자세로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그리 된 겐가?”

그러자 만동이는 또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낸들 아나요. 늦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이렇게 뒈져 있지 뭐예요. 물을 달라고 그렇게 소리쳤는데도 대답이 없어서 방문을 열고 내다봤더니 마루에 엎뎌서 이렇게 뒈져 있어요.”

그 말에 독고몰 양반은 보지 않고도 모든 내막을 알겠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그리고 또 그는 무엇인가를 물었지요. 그러면 또 만동이는 뻣뻣하게 지게를 짊어진 채로 쌍스럽고 천연덕스럽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 중에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독고몰 양반이 이제 혼자로구만 하고 혼잣말 하듯이 말을 건네자, 만동이가 “흥, 혼자면 어때요. 이런 건 가랑이가 찢어졌으니깐 계집이라구 하는 거지. 이런 건 아무 쓸모가 없어요. 나 혼자서도 충분해요.” 하고 무엇을 호언장담하듯 말하는 것이었지요.”

L은 여기에서 잠시 이야기를 멈췄다. 그리고 자신으로서도 어찌해 볼 수 없는 혼란과 맞닥뜨린 것처럼, 하지만 그 혼란을 기꺼이 감수하고 앞으로 나아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표정으로 어떤 생각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입을 달싹거리다 다물고, 다시 입을 달싹거리다 다물고 했다. 나는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그를 배려한 것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의 이야기 속에서 한 이미지가 튀어나와 내 머리 속에 어른거렸기 때문이었다. 그 이미지는 늙은 과부의 손이었다. 그것은 내 머리 속에서 손목이 잘려 창백한 채로 해파리처럼 흐물거렸던 것이다.

“나는 그때에 어떤 공포에 질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내 의식이 머릿속의 이미지를 따라 떠돌고 있을 때, L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니, 공포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정확한 것은 극도의 혐오라고 할까요? 아니, 극도의 혐오가 담긴 경악이라고 할까요? 그것은 얼마만큼은 시신 자체에서 오는 경악일 것입니다. 저는 어쨌거나 어렸고, 또 그래서 그때까지 시신을 실제로 목격한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정말이지, 두 사람의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도 덕석에서 삐져나온 그 흰 손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지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 경악이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독고몰 양반과 만동의 태도에 관련된 것이었지요. 제가 보기에 그들은 너무도 태연하고 천연덕스러웠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들을 옆에서 지켜보면, 한 사람의 주검이 아니라 마치 썩은 가축의 살덩어리를 두고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아니, 그보다도 그들은 애초에 주검이라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그것을 명확히 이야기할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뭐랄까요? 늙은 과부의 인생이라는 것이 너무도 보잘것없고, 그녀가 한평생 살면서 감내했을 고통이라는 것도 전혀 무가치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나뭇가지를 쥔 채 땅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던 나는 그것 때문에 갑자기 어린이다운 생기를 모두 잃어 버렸을 정도였지요. 짧은 순간 그만한 어떤 감각이 제 몸을 완전히 훑고 지나간 것입니다.”

L은 여기에서 다시 이야기를 멈췄다. 그리고 고뇌에 잠긴 표정으로 갑자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때에 제가 궁극적으로 경악했던 것은 제 안의 강렬한 울림 때문이었지요. 이해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때에 제 내면에서는 저것이 인간이다! 저것이 인생이다! 하는 절규 같은 것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비참한 생이나 그들이 보여주는 비극적인 풍경 앞에서 제가 느끼는 공포나 연민보다 더 강렬한 것이었지요. 지금 돌이켜 보면 지독한 허무 같은 것이었습니다. 또, 그때에 제가 놀랐던 것은 제가 만동이나 독고몰 양반으로부터 비정하다거나 잔인하다거나 혹은 비상식적이라거나 하는 부정적인 감각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순결한 그 무엇, 일테면 죄와 선에 대해 천진난만한 아이들이나 취할 수 있는 순결한 무관심 같은 것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랄까요? 맑은 시냇물에 두 손이 적셔진 느낌이라고 할까요? 저는 당시 너무 어렸기 때문에 이 모든 감각을 체계화시키거나 언어화시켜서 느낀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 사실 그것은 그 자체의 성질상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요. 따라서 저는 이 만화경 같은 감각 앞에서, 극도의 혼란스러움을 느꼈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런데도 내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저것이 인간이다! 저것이 인생이다! 하고 절규가 터져 나온다는 것이었지요. 또, 그런가 하면 무의식적으로나마 어째서 이것이 가능한 것일까? 어째서 나는 이 비참함 앞에서 투명하기 이를 데 없는 순결함을 느끼는 것일까? 하고 반쯤은 경탄하듯이, 또 반쯤은 절규하듯이 묻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도 어린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지금도 의문입니다. 그래서 얼마만큼은 혹시 당시 그 인상이 마치 낙인이 찍히듯 내 내면에 새겨지고, 그 절규는 훗날 덧붙여진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묘정 앞에서 나뭇가지를 쥐고, 두 눈은 경악으로 벌어진 채 끊임없이 그 절규를 듣고 있던 제 어린 모습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그 일은 어제 일처럼 생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저는 분명 무엇인가에 크게 낙담해 버렸지요.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만동이와 독고몰 양반이 비정한 태도로 환기시키는 공포보다도 더 컸습니다.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아마 절망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 깊어서 어쩐지 희망이니, 구원이니 하는 말들도 그것에 비하면 너무도 간단하고 가볍게만 들립니다. 너무도 까마득한 절망이라고 할까요? 저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까닭인지 그렇게 다가옵니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만동과 독고몰 양반의 순결한 무관심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어찌된 까닭인지, 희망이니 구원이니 하는 것도 바라지 않을 듯한 것입니다. 마치 늙은 과부의 죽음 앞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듯 희망이니 구원이니 하는 것에 대해서도 태연할 듯합니다. 아니, 어쩐지 조롱할 듯합니다. 만동이가 그랬듯이 “흥, 고까짓 것.” 하고 코웃음을 칠 듯한 것입니다.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심지어 그 처참하게 늙은 과부마저도 그것을 바라지 않을 듯합니다. 그렇게 비참한 처지 속에서도 그들은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들은 사실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관념의 손도 그들에게 다가갈 수 없는 것입니다. 어린 제가 궁극적으로 느꼈던 것은 그것입니다. 그 불타는 듯한 도도함 말입니다. 절망으로나 겨우 껴안을 수 있는 그 도도함 말입니다. 저는 그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L은 그 부분에서 다시 이야기를 멈췄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더 말하려고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미간을 찌푸렸다가 다시 입술을 달싹거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깊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나는 이럴 경우에는 어찌 해야 하는가 알 수 없어 그저 묵묵히 걸음을 옮겨 나갔다. 그러자, 얼마큼 지나지 않아 L은 읊조리듯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하고 물었다. 나는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어 그저 옆모습을 지켜만 보았다. 그때에 그의 얼굴은 놀랍게도 어떤 번뇌를 뒤집어 쓴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또 다시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하는 말을 중얼거리듯이 반복하는 것이었다. 나는 얼마만큼은 당황스러웠고, 또 얼마만큼은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좋은지 알 수 없어 서먹한 대로 잠자코 있었다. 그러자, L은 이번에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저는 아직도 그 어린 시절의 절규를 잊지 못합니다.”

그 뒤에 L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웅얼거리다가, 고개를 흔들고, 또 작게 웅얼거리다가 고개를 흔들고 하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겨우 알아들은 말은 “……지난한 일입니다…….” 하는 말 뿐이었다.

마침내 L은 그 중얼거림마저도 멈추었다. 그리고 무엇엔가 완전히 지쳐 버린 듯 좀 전처럼 또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 한숨 뒤에 그가 또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려니 했다. 하지만 그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갑자기 깊은 피로와 슬픔에 잠겨 버린 듯했고, 침묵은 전에 없이 길었다. 

우리는 그 상태로 마지막 골목의 끝부분까지 나아갔다. 나는 그때에, 엉뚱하게도 하나의 광경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광경은 내가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것으로 한 건물이 붕괴된 후에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의 구조 과정을 다룬 것이었다. 그때 카메라는 롱 테이크 기법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리고 건물에 갇혔던 사람들은 마치 굶주린 새 새끼들이 먹이를 가져온 어미 새에게 한껏 입을 벌리듯, 콘크리트 더미에 선 구조대원들을 향해 미친 듯이 팔을 들어 올렸었다. 거기에는 아무런 질서도 없었고, 공포로 부풀려진 수많은 눈동자들과 자신을 먼저 내보내 달라는 고함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어째서 그 광경이 머릿속에 떠오르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광경의 무엇인가가 어떤 허무처럼 내 가슴에 맺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골목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대로변에 섰다. 가로등의 불빛은 새벽의 어둠과 엉켜 황갈색의 을씨년스러움을 도로 위에 흩뿌려 놓고 있었다. 가끔 바람이 불었다. 안개는 갓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흐느적거렸다.

“비가 올 것 같지요?”

갑자기 L이 말했다. 그리고 내가 옆을 돌아보았을 때,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먹구름에 덮여 온통 암흑이었다.

“글쎄요. 안개가 낀 다음 날에는 날씨가 맑다고도 하던데…….”

나는 자신 없이 대답했다.

L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는 주름지고 창백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자 그는 중얼거리듯이 “역시 어둡군요.” 하고 말했고, 잠깐 시간을 두었다가 또 다시 “어두워요.” 하고 말했다. 나는 말없이 그를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역시 어두웠다.

잠시 후 택시 한 대가 우리 앞에 멈추어 섰다.

“타시겠습니까?”

나는 L에게 먼저 권했다. 그러자 L은 갑자기 좀 전까지 보여 주었던 평온을 잃고, 당황해하며 “아닙니다. 아닙니다. 걸어가면 충분합니다. 가깝습니다. 가깝습니다.” 하고 손사래를 치는 것이었다. 마치 물건에 손을 대려다 발각된 좀도둑 같았다.

나는 그런 그가 다시금 기이하게 여겨졌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 L이 택시비가 부족해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쩐지 그런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한 순간 돈을 좀 쥐어 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는 또 내가 건네는 몇 푼의 돈을 순순히 받아 쥘 것 같지가 않았다. 어쩐지 얼뜬 행동 속에서도 그만한 자존심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그의 긴 이야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어찌된 까닭인지 알 수 없으나, 나는 그의 이야기 속에서 얼마만큼은 그의 투영된 모습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그것은 불타는 듯한 도도함이었다. 결국, 나는 한두 번 더 권하다가, 먼저 택시에 올랐다. 그리고 반쯤 열려진 차창으로 L을 건네 보았다. 그때 L은 쪽 마르고 피곤한 얼굴로 새벽의 도로 한 켠을 우두커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싶은 것을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어 잠자코 있었다. 잠시 후 택시는 출발했다. 나는 그제야 L을 향해 “다음에 뵙죠! 다음에!” 하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때에는 이미 택시가 조금 멀어져 있었고, 차창 안으로 밀려드는 바람소리며, 엔진 소리가 내 목소리를 삼켜 버렸다. L은 멀뚱히 내 쪽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점차 멀어졌고, 나중에는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윽고 택시는 도로의 한 가운데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새벽의 택시답게 어둠으로 뻥 뚫린 도로를 무서운 속도로 헤쳐 나갔다. 나는 그제야 등을 의자 깊숙이 기댔다. 그리고 어째서 L이 그토록 장황한 이야기를 한 것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 대답은 모호함 속에 숨어버리고, 술자리에서 그가 침묵하던 모습과 얼뜨게 답변하는 모습, 그리고 갑작스레 변하던 표정만이 떠올랐다. 어쩐지 두렵고 기묘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무엇을 물었던 그는 그 이야기만을 고집하지 않았을까, 그 이야기만이 지금의 그에게는 가장 절실한 무엇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어느덧 택시는 고가도로로 접어들고 있었다. 나는 술기운과 피곤에 젖은 시선을 차창 밖으로 건넸다. 바람은 눅눅했고, 창밖의 풍경은 거대한 물처럼 흐르고 또 흐를 뿐이었다.《문장 웹진/200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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