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유령, 문법

아빠, 유령, 문법



김주희




1


파란 원숭이는 멸종했다. 하지만 옛날에는 이 원숭이를 행운의 신으로 섬긴 부족국가도 있었다. 원래 부족 사람들은 왕을 신으로 섬겼다. 누가 심장마비로 죽으면 왕이 저주를 내렸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왕도 심장마비로 죽었다. 사람들은 신의 아들이 신이 되어 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한밤중 신의 아들, 왕자는 산속으로 달아났다. 나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살아 있는 것일까, 생각하면서. 그러던 어느 순간 왕자는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 세상의 모든 어둠이 온갖 출구를 막아 버린 듯한 밤의 숲. 산짐승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왕자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았다. 왕자가 고개를 숙였을 때 왕족만이 착용하는 가죽 허리띠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왕자는 높은 나뭇가지에 허리띠를 묶었다.  

 

 

‘만일 신이 있다면 나에게 출구를 가르쳐 줄 것이다.’

왕자가 목을 매달려는 바로 그 순간 어둠 저 편에서 파란 빛이 깜빡거렸다. 파란 빛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부드럽게 다가왔다. 온 몸이 파란 원숭이였다. 파란 원숭이는 허리띠가 매달린 나뭇가지를 긴 팔로 붙잡더니 다른 나뭇가지로 이동했다. 왕자는 원숭이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길이 보였다. 숲의 출구에서 원숭이는 부드러운 비행을 하며 되돌아갔다. 왕자는 돌아가서 부족 사람들에게 원숭이의 존재를 알렸다.

“숲속에는 파란 원숭이 모양을 하고 있는 신이 살고 있다. 그 신은 여러분이 출구를 잃어 버린 곳에서 간절히 원하면 갑자기 나타날 수도 있다. 살아만 있다면 원숭이 모양의 파란 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왕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렇게 외쳤다.

“지금까지 우리들의 신은 재앙도 내렸다. 하지만 나는 절대 그러지 않을 작정이다. 여러분이 불행해지는 건 무조건 여러분 탓이다!”

왕자의 말을 오늘날의 화법으로 바꿔보자. 얘들아, 세계에는 행운의 신만 있어!  


나는 아담을 보며 행운의 신, 파란 원숭이를 상상한다. 아담은 신이 아빠가 되는 순간을 이야기하는 중이다. 유아 잡지에서 아빠를 소재로 한 일러스트를 청탁 받은 후 이미지를 잡기 위해 ‘아빠, 아빠’ 속으로 중얼거렸더니 어느 순간 아담의 머릿속에 신이 떠올랐고, 공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고 한다.

“어때?”

나도 공상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아담의 질문에 대꾸를 하지 못했다.

“자, 다시 말할 테니까 잘 들어 봐. 야훼는 에덴동산에 창작물을 만들며 시간을 보내는 신이었어. 그러던 어느 날 대화할 수 있는 창작물을 만들어 보기로 했지. 바로 아담이야. 야훼의 창작품 중에서 아담이 가장 위대했어. 신과 소통을 할 수 있으니까. 야훼는 아담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에덴동산을 마음대로 다스리라고 했어. 그러던 어느 날 아담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에덴동산 한가운데 서서 중얼거리고 있었어. 야훼의 눈에는 아담의 뒷모습만 보였지. 아담이 뭘 하고 있었게?”

“자위행위?” 

“아니, 말로 시를 짓고 있었어. 주제는 신을 향한 아담의 무한애정이었지.” 

“태초에 근친상간이라도 이루어진 거야?”   

“아니, 신은 아담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어. 하지만 신이 볼 때 아름다운 에덴동산에 홀로 서 있는 아담의 뒷모습은 참 외로워 보였어. 그래서 아담이 외로운 나머지 가만히 서 있는 거라고 오해해 버렸지. 바로 이때 신은 이브를 만들기로 결심한 거야. 신이 두 번째로 아빠가 되는 순간이지.”

“그런 그림은 아빠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더 잘 그리지 않을까?”

아담의 정자들은 실용성이 없다. 아담은 여자와 성관계를 맺는 남자가 아니니까.

“나도 충분히 한 아이의 아빠가 될 수 있어. 꼭 정자 제공자만이 아빠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아담이 웃었다. 자살하려는 엄마 앞에서 방글방글 웃는 아기 같았다. 사실 그동안 나는 아담이 어딘가 모자란 인간처럼 보인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순수한 웃음을 보고 있자니 오히려 내가 모자란 인간처럼 보였다. 

“요즘 다른 사람의 기운이나 말에 쉽게 휩쓸린다고 해야 하나? 네가 신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도 머릿속으로 신을 상상하고 있었어. 파란 행운의 신.”

나는 행운의 신, 파란 원숭이 이야기를 아담에게 모두 들려 주었다.

“캐릭터는 좋아! 적재적소에 나타나 왕자에게 출구를 알려 준 파란 원숭이라니. 그런데 그 원숭이는 왜 왕자를 구해 준 거야?”

“우연히.”

“뭐야, 원숭이는 그냥 날아다녔을 뿐인데 우연히 길이 나왔다고? 이런! 정말 행운의 신이잖아!”

행운의 신은 파란 원숭이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속성은 변덕쟁이 어린애. 살고자 아등바등 발버둥치는 사람이 있으면 ‘흥!’ 하고 외면하기도 하는 행운의 신. 그 사람이 초조해할수록 키득키득 웃으면서 상황을 즐기다가 어느 순간 복권 당첨의 행운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엄청난 행운을 감당하지 못한 듯 가족은 해체되고, 남자는 거액의 사기까지 당한다. 남자가 절망 속에서 목숨을 끊는 순간 신은 해맑은 아이처럼 까르르르 웃는다.

“아!” 

아담의 머릿속에 극적인 장면이나 사고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어렸을 때 동시 숙제를 한 적이 있었어. 내용도 기억나. 내가 모르는 곳에 짱박힌 외톨이 코끼리 나무/ 물이 없어도 안 죽는 외톨이 코끼리 나무/ 하루하루 죽음을 조롱하는 외톨이 코끼리 나무. 상상해서 쓴 거였어. 그런데 어느 날 백과사전을 봤는데, 진짜로 코끼리 나무가 나오더라고. 더 놀라운 건 내 상상하고 똑같았다는 거지. 코끼리 나무는 몇 년 동안 물이 없어도 죽지 않는 내성을 갖고 있었어. 그 후 나는 모든 순간과 순간이 유기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게 됐어. 이 세상 어딘가에 정말 파란 원숭이가 존재하고 있을 거야. 그런데 왜 너는 오늘 멸종했다고 말해 버린 거야?”

이런 발상을 하는 게이가 현재 내 친구라고 생각하니까, 문득 외로워졌다.  

“뭐하는 거야? 빨리 스토리를 바꿔. 네 말 한 마디에 한 종의 운명이 달려 있다니까!”

“내일 파란 나비 원숭이 한 마리가 극적으로 발견될 것이다.”

얼떨결에 대답했다.

  

          

 2

                                     

아담과 우연히 재회한 날이 떠오른다. 석 달 전쯤 나는 두 손을 주머니에 푹 찔러 넣고 어두워진 거리를 걷고 있었다. 배가 고팠지만 혼자 밥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아는 사람이 지나갔으면 좋겠네, 생각하며 걸어가는데 맞은편에서 낯익은 사람이 오고 있었다. 오래 전 내 친구의 집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게이였다. 나는 그 게이를 눈앞에 있으면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런 정말 내 눈앞에 나타나다니!    

“안녕?”

아담이 한 손을 들어 올리며 인사했다.

“나 아담이야. 기억하니?”

나는 “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담은 성큼 한 발자국 다가왔다.

“밥 먹었어? 안 먹었으면 지금 나랑 같이 밥 먹으러 갈래?”

나는 얼떨결에 아담과 함께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아담은 내 대학 동기의 어릴 적 동네 친구였다. 아담은 종종 동네 술집에서 그 친구를 만났다. 나는 가끔 그 친구를 만나러 동네에 찾아갔다. 아담의 ‘종종’과 나의 ‘가끔’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면 ‘함께’라는 순간이 됐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우리는 4년 만에 만난 것이다.

“4년 만이지? 그런데 참 묘하다.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들처럼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인사하다니.”

“저는 당신을 기억합니다. 당신도 저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아, 예! 다행이군요. 그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식사는 하셨는지요? 그럼, 이렇게 말할 걸 그랬나? 뭐, 외모에 발전이 없어서 한눈에 알아보겠던걸?”

아담은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한다고 했다. 나도 현재는 프리랜서라고 말했다. 정부보조금으로 월급을 받던 잡지사에서 인턴 과정이 끝나자마자 바로 해고됐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문장을 쓰지 않아도 되는 아르바이트만 골라서 한다는 것도.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지만 나는 우리가 다시 만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후 아담이 연락을 하면서 우리는 종종 만나는 사이가 됐다. 그리고 아담과 영화 한 편을 보고 돌아온 어느 날 밤 바로 그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나는 슬슬 직장을 알아보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쓰려고 했다. 그런데 쓸 수 없었다. 원인은 모르겠지만 단어와 단어 사이를 이어서 문장으로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문법에 맞는 문장이 들어 있었다. 처음 그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문장을 쓸 수 없었다. 나는 방바닥 여기저기에 메모지를 놓고 내킬 때마다 낙서 하듯이 단어를 적기 시작했다.

그 후 혼자 방 밖으로 나가는 일이 두려워졌다. 돌연한 불운인지 불행인지 모를 것들이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담을 만나러 가는 도중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아담이 만나자고 할 때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댔는데, 어느 날 핑계의 소재를 찾는 것이 지겨워졌다.

“사실은 혼자 밖에 나가기가 싫어. 약속 장소까지 혼자 가서 또 혼자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게 싫다고.” 나는 이렇게만 말했다. 우리가 마음까지 교류하는 사이는 아니라고 판단했으니까. 더 솔직히 말하자면 아담이 나의 어두운 부분을 감당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담은 내 말을 듣고 나더니 “뭐야, 결국 그런 이유였어?”라고 대답했다. 그 후 우리의 데이트는 아담이 내 방 앞에 와서 인터폰을 누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돌아올 때도 아담이 방 앞까지 바래다준다.

“아빠 하면 뭐가 떠올라? 딸들은 대개 아빠하고 좋은 추억이 있잖아.”

우리의 데이트 종착지, 내 방 앞에서 아담이 말했다.

“이 세상에 아빠가 될 수 없는 남자가 있듯이 아빠와 추억이 없는 딸도 있어.”

현관문을 소리 나게 쾅, 닫았다. 

“마음이 축축해.”

나는 침대에서 아담의 발자국 소리를 무기력하게 들으며 혼잣말을 했다. 아, 우울증 걸린 엄마의 자궁에 자리 잡은 태아 같아, 생각한 순간 우울, 고독 같은 마이너감성이 전염병처럼 마음을 지배해 버렸다. 이후 메모지에 적힌 단어는 낙태된 태아의 팔다리처럼 보였다.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충동적으로 옷장에 있는 옷을 꺼냈다. 그리고 봉에 허리띠를 매달았다. 이 방에서 목을 매달면 어떻게 될까. 과연 행운의 신이 나타날까? 행운의 신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스스로 내 공상을 조롱하고 있었다. 내일도 오늘과 다를 바 없는 하루가 시작되겠지, 생각하며 잠이 들었는데


                        

 3                                          


‘아빠!’

어제와 색다른 오늘이 펼쳐져 있어서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른다. 눈을 크게 뜨고 봐도 옷장 앞에 있는 존재는 분명히 아빠였다. 아빠는 추리닝 차림에 왼쪽 발에만 털신을 신고 있었다. 꿈을 꾸고 있는 건지도 몰라, 나는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틀었다. 아침 방송이 시작되고 있었다. 차들이 도로를 지나가는 소리도 들려왔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365일 가운데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현실처럼 생생한 꿈인지도 몰라, 나는 아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몇 차례 울리고, 휴대폰에서 “누구세요?”라고 묻는 아담의 졸린 목소리가 기어 나왔다.

“우리가 지금 꿈에서 전화 통화를 하는 거지?” 

“그대가 방금 내 꿈을 산산이 깨뜨렸잖아.”

“이게 꿈이 아니라면…… 지금 내 방에 이상한 게 와 있어!”

“뭐가 와?”

“아빠가 왔다니까!”

“에이, 놀랐잖아. 못된 딸이네. 아빠를 ‘이상한 거’라고 말하다니. 갑자기 올라오신 건가? 내가 없는 동안 아빠하고 좋은 시간 보내. 이 몸은 몇 시간 후면 이 나라를 뜨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어? 내가 말 안 했나? 형이 유럽으로 일주일 동안 출장을 간다잖아. 내가 달라붙어도 상관없는 모양이야. 사실, 형 쪽에서 은근히 달라붙어 주길 기대하고 있어. 내가 옆에 있어야만 비즈니스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봐.”   

“일주일씩이나? 가지 마! 왠지 이 모든 게 음모 같아!” 

“음모는 거시기에 난 털이 음모지. 이 기회에 아빠하고 화해해. 새벽까지 작업했더니 잠이 부족해. 좀 더 자야겠어.”   

아담은 전화를 끊었다. 

순간과 순간이 유기체적으로 이어져 있느니 어쩌니 하면서 공상 속 파란 원숭이를 현실의 동물이라고 확신하는 아담. 어제는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과 교류한다는 현실 때문에 나는 외로웠다. 그런데 오늘 내 방에서 비상식적인 상황에 처하고 보니 아담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현실이 행운처럼 여겨졌다. 이번에는 세상의 상식이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아담에게 다시 전화하지 않았다. 아빠를 딸의 방에 아침부터 나타나는 독특한 유령으로 소개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아빠는 너무 초라한 모습으로 왔어. 희끗희끗한 머리, 추리닝, 왼쪽 발에만 털신을 신고 있다니.

  

아빠는 물질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눈으로 볼 수 있지만 손으로 느낄 수는 없는 형상. 한 마디로 홀로그램 영상 같았다. 사라진 시간, 과거에 있었던 어떤 체험을 떠올릴 때 머릿속에 되살아나는 영상이 밖으로 나온 것 같았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아빠의 출현 이후 나는 당연하게 해 왔던 것들을 하지 못하고 있다. 씻은 후 속옷을 갈아입고 싶었으나 옷장 문을 열 수 없었던 것이다. 옷장 모서리 근처에서 서랍을 열면 홀로그램 아빠가 훼손될 것 같았고, 아빠를 통과해서 서랍을 열자니 왠지 근친상간을 저지르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결국 나는 ‘아빠가 옆으로 세 발자국 이동해야 내가 서랍에서 속옷을 꺼낼 수 있는데.’ 이런 심정을 담아 메모지에 ‘아빠, 옆, 세 발자국, 이동’이라고 적었다.

꼬르륵. 

밥 달라고 보채는 위라는 장기가 참 상황 파악 못하는 철없는 아이 같았다. 아빠의 시체 옆에서 밥을 먹는 딸이라면 비정상인 취급을 받겠지? 그런데 유령아빠를 세워 놓고 밥을 먹어도 정신 상태를 의심받을까? 어쨌든 유령은 낯선 존재다. 하지만 아빠는 낯익다. 낯설지만 낯익은 존재. 그래, 뉴 파파가 왔다고 생각하자. 하지만 아빠가 살아생전 모습으로 나타나서인지 ‘뉴 파파’라는 개념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면 홀로그램 전신 영정 사진이라고 생각하자. 그런데 나도 가만히 있고, 아빠도 움직이지 않으니 내 방이라는 공간에 시간이 정지해 버린 것 같았다. 물론, 내 방에도 시간은 흐른다. 내가 방금 뒤로 물러나 앉았을 때, 그 움직임만큼의 시간이 흘렀으니까. 하지만 아빠가 등장하면서 내 방이 세상의 다른 공간과 철저하게 분리된, 마치 내 방 모양의 우주처럼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자, 유령아빠 앞에서 밥을 먹어도 상관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나 참, 아빠가 무슨 행운의 신이야?”

쌀을 씻다가 아빠 쪽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유령인 줄 알면서도 생의 미련을 담고 있는 표정. 문득 아담의 수다에 등장했던 신이 떠올랐다. 사실 자신이 외로웠던 주제에 아담이 외로워한다고 오해했던 외톨이 신. 혹시 아빠가 나를 저승 세계로 데려가려고 온 것은 아닐까? 아, 이래서 ‘죽음을 맞이하다’라는 표현이 있는 거구나.

“나 데리러 왔어?”

아빠 쪽에서는 말이 없었다. 나는 밥솥의 취사 버튼을 누르고, 침대 앞에 웅크려 앉아 있었다.

“왜 아담에게 아빠가 유령이라고 말 안 했는지 이제 알겠어.”

밥상을 차린 후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아담의 눈에 아빠가 안 보이면 어떡해? 아담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겠지. 이건 버스와 지하철을 혼자 타기 싫어하는 것과 다른 문제라고. 아무리 쿨하고 명랑한 아담이라고 해도 내 얼굴을 보는 순간 우울해지겠지. 그러나 아담이라면 웃으면서 안녕이라고 말할 거야. 그 안녕은 내일 또 보자는 안녕이 아니야. 내일도 모레도 볼 수 없다는 안녕이야. 앞으로 너 혼자 잘 지내라는 그런 안녕.”

젓가락으로 반찬을 성의 없이 뒤적거리며 말을 이었다.  

“사실 나는 아담의 눈에 아빠가 안 보일까 봐 두려웠던 거야. 그래서 내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감정 플레이를 했어. 괜찮아, 유령이지만 아빠잖아, 라고. 이런 건 알게 모르게 아담에게서 배운 거지. 아빠가 보인다고 해도 문제야. 나는 아빠를 이상하고 촌스러운 유령으로 소개하고 싶지 않아. 결국 이 방에는 나만 있어야 한다는 건데.”

밥맛이 완전히 떨어져 버렸다. 지구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인간들 중에서 나만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 같았다.

“혹시 저 허리띠 때문이야? 내가 목을 매달기라도 할까 봐? 죽고 나더니 현실감이 없어졌구나. 저기에 어떻게 목을 매달아? 살아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유령은 유령의 세계에서. 우리 서로의 위치를 벗어나지 말자고. 아빠, 안녕히 가세요.”

나는 묵념하듯이 고개를 숙였다. 이쯤 되면 아빠가 돌아가고도 남았겠지, 생각하고 고갤 들었더니, 세상에 왜 유령아빠는 돌아가지 않는 것일까? 이 초자연적인 현상을 어떻게 끝내야 하지? 어쨌거나 당장 해야 할 일은 밥상 치우기. 나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방금 설거지를 끝냈다. 아빠는 여전히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 있겠지, 생각하고 바라봤는데  

 

  


변화가 생겨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아빠가 이동했다. 가만 보니 옷장 앞에 ‘아빠, 옆, 세 발자국, 이동’이라고 적힌 메모지가 놓여 있었다. 유령은 살아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대신 글자는 읽는 모양이었다. 나는 메모지와 펜을 갖고 와서 아빠 앞에 앉았다. 이제 아빠를 보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 가만히 메모지를 보다가 내가 적은 단어는 바로 이것.     

   

봉봉

 

방금 ‘봉봉’이 과거에서 내 방으로 날아 들어와 메모지 안으로 쏘옥 들어온 것 같았다. 글자를 배우기 전 나는 아빠의 얼굴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한밤중 누가 내 볼에 뽀뽀를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나는 아빠가 시공간을 뛰어넘는 마법의 장화를 신고 달려와 입맞춤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눈을 뜨면 다시는 아빠가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신에게 기도했다. 아빠와 함께 살게 해 주세요. 내 기도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졌다. 지방 소도시 병원에서 나는 아빠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 있는 아빠. 지하철 안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의식은 찾았지만 아빠의 몸은 언어 장애와 마비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아빠의 몸을 보며 이제 마법의 장화를 신을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바로 그때 아빠는 나를 보며 불분명한 발음으로 어떤 단어를 말하고 있었다. 내 뇌는 의미를 알 수 없으니, 언어의 제로 포인트, 침묵을 유지하라고 명령했다. 그 와중에 내 눈은 찡그린 채 웃고 있는 것 같은 아빠의 표정과 입모양을 뚫어져라 관찰했다. 그러자 뇌에서 “버엉벙”이라고 발음하는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버엉벙”을 빠르게 발음해 봤더니 어느 순간 이 말이 나왔다.

“봉봉?”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른손으로 냉장고를 가리켰다.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음료수 오렌지 봉봉이 하나 가득 들어 있었다. 오렌지 봉봉 캔 뚜껑을 따서 내밀었더니 아빠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내가 마시니까,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퇴원 후 아빠는 불분명한 발음이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했다. 그리고 나와 한방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왜 아빠는 한쪽 발에만 신발을 신었지?

저녁을 먹고, 화장실에 가고,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계속 생각했다. 그러다 그 장면이 떠올라 지금 아빠 앞에 앉아서 이렇게 노트에 문장을 쓰는 것이다. 과거에 들었던 말을 그대로 쓰고 있으니, 워드 입력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빠 앞에 노트를 놓는다. 여전히 유령아빠의 시선은 마네킹처럼 고정되어 있다.  

                       

내가 병에 안 걸렸다면 로맨틱한 아빠가 됐을 텐데            

 

아빠는 가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주먹으로 내 머리를 때린다거나, 액자를 집어던진다거나 소리를 지른다거나. 그런 일이 벌어진 날 나는 화가 풀릴 때까지 아빠를 유령 취급했다. 내 공상 속에서 유령아빠와 나는 같은 공간, 다른 시간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아빠를 완벽한 유령으로 만들었다. 비가 와서 진흙길은 질퍽질퍽했다. 나는 아빠가 우산을 쓰고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빠는 뒤뚱뒤뚱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정지해 버렸다. 나는 근처에 가서야 고무신 한 짝이 진흙탕 속에 빠져 있는 것을 보았다. 아빠는 내가 진흙탕 속에 빠진 신발을 꺼내 줄 거라고 기대했겠지만 나는 아빠를 유령 취급했다. 바로 내 뒤에 반 남자애들 몇 명이 따라오고 있었다. 

“아까, 애들이 나 걷는 거 따라하더라.”

그날 밤 아빠가 말했다. 나는 이불을 머리 위까지 뒤집어썼다. 

“내가 병에 안 걸렸다면 로맨틱한 아빠가 됐을 텐데.”

아빠는 지금 유령인데, 대답을 해 주면 내가 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려면 고무신을 신고 와야 하는데, 털신이라니. 한 시간 동안 생각하다가 결국 나는 사람이 유령의 속을 알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막 10시 30분이 지난 지금 나는 생각한다. 내 방은 유령의 속을 닮아 있다고. 여기는 원룸 건물이라서 옆방마다 사람이 살고 있다. 오늘도 몇 명의 사람들이 발자국 소리를 내며 내 방문 앞을 지나갔다. 그런데 아무도 모른다. 내가 유령아빠와 한방에 있다는 현실을. 나 역시 이 건물에 사는 사람을 마주치면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어 보일 것이다. 아는 사람과 나의 이야기라고 해도 이를 드러내지 않는 문장들처럼. 


작고 하얀 눈송이들이 나부끼는 20세기 어느 시골의 겨울밤. 한 남자가 왼쪽 발에만 털신을 신은 채 마당에 쓰러져 있다. 그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반신마비가 됐는데, 화장실에 가려고 밖으로 나왔다가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오른쪽 신발은 신지도 못한 채. 방안에 있었더라면 꿈을 꾸고 있었을 시각, 그는 홀로 어둠 속에서 생과 사를 넘나들고 있었다. 점점 더 많은 눈송이들이 경직되어 가는 그의 몸 위로 춤추듯 내려왔다.

남자의 의식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을 때,

“홀로 있게 해서 미안해.”

21세기의 미래에서 음성 메시지가 시공간을 초월해서 남자에게 전송되었다. 남자는 혼미한 의식 상태에서 그것이 딸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아빠가 죽어가는 줄도 모른 채 방에서 자고 있는 딸. 그녀가 21세기에 자신의 방에서 보내는 메시지. 남자는 “죽어서라도 꼭 보러 가마”라고 답신을 보내다가 삶을 마감했다. 그래서 메시지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도중 삭제되고 말았다.  

   

11시 20분.

이제 나는 아빠가 한쪽 발에만 털신을 신고 온 이유를 알고 있다. 내가 오늘 음성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홀로 있게 해서 미안해.

내가 읽은 이 문장이 음성 메시지가 되어 과거로 전송되었던 것이다. 나의 음성 메시지는 시공간을 초월해서 아슬아슬하게 아빠에게 도착했다. 이렇게 유령아빠가 내 앞에 서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

사라진 시간의 저편을 보여주는 문장들. 노트를 보고 있으니 머릿속에 장면이 하나하나 스쳐지나갔다. 추억이 내 방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유령아빠와 함께 있는 현재는 언제나 다음 순간, 미래로 나아간다. 내 방에 과거, 현재, 미래가 묘하게 엮여 있었다. 오늘이 가기 전에 아빠를 시간의 저편, 과거로 보내 줘야 할 것 같았다. 유령에게는 현재와 미래가 어울리지 않으니까. 이제 내가 두 번 다시 노트에 기록된 시간 속에 존재할 수 없듯이.

“이제, 작별인사를 쓸 거야.” 

  

아빠, 안녕

 

쓰고 보니 ‘아’에는 공허함이, ‘빠’에는 외로움이, ‘안’에는 무기력이 들어 있었다. ‘녕’이라는 글자에서 비로소 작별의 의미가 보였다. 유령에게 공허, 외로움, 무기력을 전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문장에 사소한 변화를 주었다.


아빠, 안녕?

  

나는 아빠 앞에 노트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오른손을 살짝 들고 참 밝은 목소리로 문장을 읽었다. 한 순간 내 마음이 바뀌었다. 이제 나는 절대로 아빠를 저 먼 어제라는 시간 속으로 보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내 앞에 있는 것이 바로 유령아빠의 현재가 아닌가. 앞으로도 유령아빠와 같은 방을 쓰는 것, 뭐 어때? 뉴 파파잖아. 묘한 설렘마저 느껴졌다.



5


그러나 오늘 아침, 내 기대와는 다른 하루가 펼쳐져 있어서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다. 아빠는 하룻밤 꿈처럼 사라졌다. 내 메시지를 만남과 이별의 의미가 공존한 인사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유령답게 이별을 선택하고 시간의 저편으로 안녕히 가신 듯했다. 일단, 상식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봉에 걸어 놓은 허리띠를 풀고, 바닥에 흩어진 옷들을 옷장 안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나왔다. 아담이 외국에 있을 줄 알면서도 전화를 걸어 보았다. 신호가 가고 있는데, 마침 버스 한 대가 도착했다. 나는 기사 아저씨에게 고개 숙여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혹시라도 불행해질 때를 대비해서 미리 나 자신을 소개한 것이다. 기사 아저씨는 내가 버스에서 심장마비 같은 것으로 죽기라도 하면 가장 난처해질 사람이므로. 기사 아저씨는 껌을 씹다가 내 쪽을 바라보곤 고개만 까딱해 보였다.  

자리에 앉자 휴대폰에서 아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빠하고 좋은 시간 보냈어?”

“우리 아빠는 예전에 돌아가셨어.”

처음에는 유령아빠의 존재를 아담에게 말하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왜 내가 공상에만 빠져 있었는지도 친한 친구에게 수다 떨듯이 다 말해 버렸다. 아담은 침묵하더니 “음, 그래?”라고 말했다.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그럼,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시간을 보냈겠네?”

나는 어제 새로웠던 일상을 일목요연하게 들려 주었다. 단, ‘아빠’라는 주어는 생략했다. 소설의 인물을 대하듯 ‘그 사람’이라는 표현을 썼다. 나에게는 아빠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한낱 유령에 불과할 테니. 

“결국 내가 불렀던 거였어. 그 사람 앞에서 문장을 써 나가며 깨달았지. 내가 과거의 그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던 거야. 미래에서 보낸 메시지가 과거의 그 사람에게 전달되었던 거지. 과거, 미래, 현재가 묘하게 연결되어 있지?”

순간과 순간이 유기체적으로 이어져 있다고 확신하는 아담. 말하면서 나는 아담을 이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담이라는 소우주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자연적인 현상이 있으면 초자연적인 현상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사고를 전환하면 다른 세계가 보인다는 것, 정도를 겨우 터득한 정도다. 스쳐가는 풍경을 바라보다가 다음 정거장이 지하철역이라는 안내 방송을 듣자마자 바로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버스가 정차하자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나는 그 복작복작한 상황에서 아담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우르르 내린 사람들이 지하철역을 향해 마치 달리기 경주를 하듯이 달려 나갔다.

“여행은 어땠어?”

나는 전화통화를 하며 뛰었다. 아담의 여행 이야기는 들을 만한 것이 없었다. 여행을 가지 않았으니까. 나는 카드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찍고 지하 계단을 내려가서 열차 속으로 들어왔다. 아담은 “그놈의 잠 때문에”라는 말을 반복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어둠 속을 달리는 평일 아침의 지하철, 열차 안은 일하러 가는 사람들로 복작복작했다. 나는 열차 안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다가 방금 보았다. 바로 앞에서 양복 입은 남자가 이제 막 반으로 접은 신문 하단에 실려 있던 기사 한 줄을.


멸종 동물 파란나비 원숭이 베트남에서 발견!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고 싶었으나 남자는 신문을 갖고 내려 버렸다. 자리에 앉은 후 아담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본 기사 한 줄을 알려주려고 했다. 그런데 마침 아담이 다시 전화를 걸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어. 첫 번째, 그 아빠가 유령일 경우. 나는 유령이 살아 있는 사람과 글자로만 소통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어. 혹시 그런 예가 있나 해서 인터넷을 검색해 봤는데, 네가 세계 최초인 것 같아. 아빠는 딸이 주절거리는 소리도 다 들었을 거야. 유령아빠야말로 연기를 한 거지. 두 번째, 그 아빠가 유령이 아닐 경우. 유령아빠는, 너의 머릿속에서 나온 거지. 너는 환각을 본 거야. 어쨌든 중요한 건 아빠가 보였고, 그 분은 현재 살아 있지 않은 존재지만, 너는 그 경험을 통해 단어와 단어 사이를 다시 잇는 문장의 법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는 거야. 그럼 내 역할은 여기까지. 아직도 졸려. 더 자야겠어.”     

아담은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정말 아빠는 시간의 저편에서 왔을까? 아니면 내 환각일까? 나는 피식 웃었다. 어쩌면 아빠는 알 수 없는 저 먼 미래에서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빠, 유령, 문법.”

아주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했다. 그랬더니 뇌는 ‘이어져 있어! 이어져 있어!’라고 호들갑 떨며 반응했다. 철없는 위는 몸이 흥분 상태에 있다는 것만 알고 덩달아 꼬르륵 소리를 냈다. 그 와중에 입술은 오래 전 소년 아담이 쓴 동시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곳에 짱박힌 외톨이 코끼리 나무

물이 없어도 안 죽는 외톨이 코끼리 나무

하루하루 죽음을 조롱하는 외톨이 코끼리 나무


외톨이 코끼리 나무가 모르는 곳에 짱박힌 나

가만히 앉아 있어도 몸이 이동하는 일상의 신비 

오늘, 대중교통은 나를 싣고 세상을 달린다

 

《문장 웹진/200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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