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

 

개밥바라기



이화경




오전에 일과 관련된 몇 사람을 만난 뒤에도 이런저런 일에 시달렸던 그는 사무실에 놓인 소파에 웅크리고 두 시간 가까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오후 다섯 시쯤, 몸을 일으키고 나서도 한동안 의자에 꼼짝 못하고 앉아 있다가 산보라도 할 요량으로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마감은 돌아와서 하면 될 정도로 정리는 해 놓은 상태였다. 그는 회사의 현관 로비를 걸어 나와 회전식 출입문을 밀었다. 네 칸으로 된 출입문의 한 칸에 들어설 때마다, 그는 경미한 폐쇄공포증을 느끼곤 했다. 20년 가까이 들고났던 회사의 출입문에 갇혀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뱅뱅 도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게 스스로도 한심한 노릇이었지만 그는 출입문을 빠져나올 때마다 국경을 넘는 기분이 들었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잠깐 현기증이 일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짙은 스모그에 가려서 뿌옇게 흐려 있었다. 간혹 가로수를 흔드는 바람마저 가라앉은 대기를 휘젓기에는 힘이 부쳐 보였다. 진동 모드로 해 놓은 휴대폰이 사타구니 부근에서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순간 심장이 뛰었다. 여자에게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께가 따갑고 아리고 저릿거렸다. 일 년 넘도록 전화나 문자는커녕 기척조차 내지 않는 여자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자신을 비웃어 줄 시간도 없이 그는 격렬한 심계항진을 느꼈다. 바지 주머니에서 꺼내 내려다본 휴대폰의 문자가 흩어졌다. 그는 안경을 벗고 멀찌감치 휴대폰을 아래로 밀어내고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새벽에 병식이가 죽어 부렀단다. 씨발. 읍내 천지 장례식장에 모두 모여라.’ 고향 읍내에서 종묘상을 하고 있는 진구라는 동창 녀석이 보낸 문자를 내려다보면서 그는, 큭, 웃었다. 한 녀석의 죽음을 통보하는 문자를 보고 그는 웃었다. 반세기 가까이 살아 버린 이 나이에 친구의 죽음을 알리면서 씨발이라니. 그놈은 죽어서도 씨발이구나. 그는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잠시나마 여자의 전화를 기다렸던 자신의 무망한 기대를 발로 차듯이 욕을 뱉었다. 씨발.

그는 가까운 편의점에 들어가 담배 한 갑과 라이터를 샀다. 이십칠 년간 줄기차게 피워댔던 담배를 끊은 지 삼 년 만에 다시 집어든 담배였다. 금연초도, 금연침도, 금연 보조제도 없이 그는 어느 날 한 순간에 담배를 끊었다. 언젠가는 또 다시, 언제라도 또 다시,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를 부러 갖게 되면서, 그는 담배를 끊을 수 있었다. 너무 이른 나이도, 너무 늦은 나이도 아닌 친구의 느닷없는 부고를 받고 그는 다시 담배를 찾았지만, 담배를 입에 물고서도 한참을 라이터를 켜지 않았다.


그가 어릴 적 살았던 동네에 전기가 처음 들어오자 집집마다 5촉짜리 알전구를 달았다. 전깃불이 들어오고 며칠 뒤에 그와 친구들이 병식이네 골방에 모였다. 골방 천장에 매달린 5촉 알전구가 어미닭이 갓 낳은 초란처럼 따뜻하게 아이들의 머리통을 환하게 비췄다. 또래 여자아이들과 두꺼운 솜이불에 맨발을 묻어 두고서 어린 사내 녀석들은 호기를 부려 가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계집애들의 발가락들과 곰실곰실 닿을 때마다 어린 녀석들은 물 젖은 발가락에 전기가 흐른 것처럼 몰래몰래 몸을 부르르 털어댔었다. 더럽고 두꺼운 이불 안에서 발가락들끼리 문풍지를 흔들며 가는 바람처럼 저녁내 소란을 떨어댔다. 계집애들은 간지러워 죽겠다는 듯이 좁장한 어깻죽지를 움찔거리며 여닫이문 경첩에 손가락이 끼인 것처럼 끽끽거리며 웃어댔다.

막상 피우려고 하니 불을 붙일 성냥도 라이터도 없었다. 느닷없이 병식이가 이불에서 발을 쑥 빼고 벌떡 일어서더니 천장에 매달린 5촉 전구의 맨질맨질한 표면에 담배를 대고 뻑뻑 빨아댔다. 더운 콧김을 씩씩 불어대며 얼굴이 벌게지도록 담배를 빨아대도 불이 붙지 않자 병식이가 욕을 퍼부어댔다.

“아, 씨발, 담뱃불이 왜 이리 안 붙는다냐? 좆같네 씨발!”

느닷없이 조무래기들의 머리통 위로 쏟아지는 병식이의 욕설에 이불 속에서 어설픈 발장난으로 꼼지락거리며 간질거리는 야릇한 성적인 흥분을 느꼈던 아이들이 일시에 발을 거둬들였다. 아무리 바보라도 적어도 계집애들 앞에서는 그토록 야만적이고 무식한 욕을 뱉어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던 터인지라, 병식이의 예기치 않은 ‘씨발’에 사내 녀석들도 어안이 벙벙해져버렸다. 거기다가 ‘씨발’도 모자라 ‘좆’이라니. 그런데도 이상한 것은 병식이의 욕이 어쩐지 어설프고 어딘가 부족한 듯했던 어린 녀석들에게 일순간에 사내다움이 뭔지를 알려주는 신호탄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 뒤로 녀석들은 걸핏하면 병식이처럼 말끝마다 ‘씨발’을 붙여댔다. 하지만 어떤 녀석도 병식이만큼 걸쭉하고, 세고, 화끈하고, 살뜰하고, 애틋하고, 따뜻하고, 슬프고, 시의적절하게, 그 욕을 뱉지 못했다.

병식이는 학교에 같이 다니는 또래 녀석들보다 두 살이나 많았다. 고학년이 되어도 제 이름 석 자조차 쓸 줄 몰랐지만 병식이는 힘이 셌다. 지독한 고수머리에 키가 무척 컸던 병식이를 같은 반 녀석들은 아무도 형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머리가 모자란 것도 아닌데도 한글을 도무지 깨칠 줄 모르는 병식이를 그의 어머니는 학교에 더 이상 보내지 않았다. 이름조차 쓸 줄 몰랐지만 그렇다고 병식이가 바보였느냐면 또래 가운데 그 누구보다도 사리에 밝았고 마음을 살필 줄 아는 녀석이었다.

소아마비에 걸려 목발을 짚고 다니던 진구란 놈이 내세울 것이라곤 물구나무를 서대서 강해진 팔뚝밖에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헤아려 팔씨름을 하면 적당히 져 주고, 시근벌떡거리는 진구가 목발을 휘두르면 언제나 자신의 크고 단단한 등짝을 내어주고 묵묵히 맞아 주며 ‘씨발, 하나도 안 아프다’라고 씨억거리며 웃던 녀석도 병식이었다. 대나무 밭에서 반듯하게 자란 대나무를 잘라 낫으로 가지를 치고 솥에 쪄서 말려 그럴싸한 낚싯대를 만들어 질머리 밖 포구로 나가 물고기를 제일 많이 낚아 무논에 악머구리 끓듯 조잘대던 아이들의 배고픈 입을 채워주며 ‘씨발, 많이 처묵어라’라고 가뭄 든 논에 물 대며 기꺼워하는 다 늙은 농투성이처럼 말하던 녀석도 병식이었다. 집에 묶여 있던 소 한 마리씩 끌고 나와 마을 언덕에 풀 먹이러 나와 내처 자빠져 놀다가 배고프다고 아우성을 쳐대면 머루며 산딸기며 오디며 개암 열매를 곰처럼 따다가 먹이며 ‘씨발, 그렇게 맛나냐?’고 오져 하던 녀석도 병식이었다. 복숭아꽃 흐드러진 마당귀에 모깃불이 타고 뒤란 감나무 밑에서 양은솥에 팥죽을 쑤는 집을 언덕에 서서 귀신같이 알아내 반종일 악다구니 써대느라 밑구멍 빠진 여름 매미들처럼 헛헛한 빈 배를 움켜쥐는 아이들에게 눈을 끔뻑거리며 ‘씨발, 쬐매만 기다려, 내 갖다줄팅께’라고 향긋한 호언장담을 하던 녀석도 병식이었다. 팥죽을 쑨 뉘 집 식구들이 마당가 도래방석에 도란도란 모여 앉아 살부채로 모기와 더위를 쫓아내며 먹고 난 다음에 남은 죽을 장독대에 올려 놓은 것을 어떻게든 들고 와서 마을 앞 당산나무 아래서 호박꽃에 반딧불 잡아 꽃불 밝히며 밤늦도록 놀고 있는 조무래기들의 졸아든 배를 채워 주며 ‘씨발, 오지게들 처먹네’라고 휘파람처럼 욕을 날리던 녀석도 병식이었다.          

 

그는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 진입하는 팔 차선 도로로 접어들었다. 그는 양복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담배를 입에 물고 차 안의 라이터 꼭지를 눌렀다. 딸깍. 둥그런 열판에 불이 발갛게 단 라이터의 손잡이를 들고 불을 붙였다. 그는 한 모금을 깊게 빨았다. 빈 위장을 샅샅이 핥으며 담배연기가 퍼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약간의 현기가 일어 그는 이마를 짚었다. 한 손엔 담배를, 다른 한 손으론 이마를 짚다가 핸들을 놓는 바람에 차가 흔들렸다. 자동차 클랙슨 소리가 연거푸 뒤에서 들려왔다. 잠깐 동안에 그의 차가 차선에서 흔들거리는 것을 보고 뒤차가 경고음을 낸 것이었다. 그는 핸들을 다시 잡고 오른쪽 깜빡이를 넣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그는 다시 담배를 피웠다. 달리는 차들이 내는 속도 덕에 차체가 가끔씩 흔들렸다. 그는 담뱃재를 차내 재떨이에 털다가 고개를 빼 백미러를 들여다보았다. 스스로도 뜨악하기 그지없는 지치고 건조한 중년 사내의 얼굴이 거울에 비쳤다. 그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윤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꺼칠한 피부를 손아귀에 힘을 주어 잡아당겼다. 마치 가면을 떼어내려는 늙은 배우처럼.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단 한번도 고향을 찾지 않았다. 말뚝에 박아 놓고 찾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는 늙은 소 같은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았고, 버텼고, 견뎠다. 어떤 병에도 쓰러져서는 안 되었기에 금연을 하고, 술자리가 있으면 위벽을 보호하기 위해 미리 겔포스 엠 현탁액을 빨아먹고, 체중감량을 하기 위해 돈 안 드는 조깅을 하고, 컴퓨터 최신 매뉴얼을 익히고, 죽어도 혀에 감기지 않는 외국어를 배우고, 매일 국경을 넘는 심정으로 회사를 오가며 간신히 마흔 중반의 나이를 넘기느라 고향 따위는 어깨 너머로라도 돌아보지 않았다, 라고 하면 그건 반만의 진실일 터였다. 아버지를, 어머니를 기억하게 하는 고향이 싫었기 때문에 가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남은 반의 진실이었다. 병식이의 ‘씨발’처럼, 고향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에게 여과되지 않는 날것의 감정을 들쑤셨고, 그를 불편하게 했다. 


그는 단 한번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단단한 호두처럼 요도에 들어찬 오줌을 여러 번에 걸쳐 힘들게 누고 내처 차를 몰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찾은 고향 읍내는 몸피만 좀 키웠을 뿐 발육이 부진한 어린애처럼 볼품없고 초라해 보였다. 읍내를 관통하는 도로를 조금 벗어나자 국도변에 진구 녀석이 일러준 천지 장례식장이 적막하게 놓여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 놓고도 그는 한참을 밖에 서성였다. 뜨거운 김을 뿜는 차대에 주차장의 웃자란 잡풀들이 스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는 담배를 연거푸 두 대를 피웠다. 악천후를 뚫고 온 것처럼 피곤이 몰려왔다. 그는 담배를 구두 밑창에 깔고 짓이긴 뒤 장례식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방학에 고향집에 가면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밀며 ‘씨발놈, 왔냐?’며 선홍색 잇바디를 왕창 드러내며 씩 웃던 병식이란 놈이 달려 나와 줄 것만 같았다.


“그 새끼, 술만 처먹으면 미친개가 되야서 저녁이고 새벽이고 할 것 읎시 경운기 몰고 온 동네방네 돌아댕김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지랄발광을 해댔써야. 씨발, 나 장개 보내주란 말이여 씨발, 나가 논밭이 없어, 좆이 없어, 니기미 씨발, 욕 해댐서, 굿도 그런 굿이 없었어야. 그 새끼, 소주 도꾸리 병을 나발 불고 댕김서 일메타 팔십이 넘은 그 큰 키로 겅중거리믄서, 곱슬머리 확 풀어헤치고 장개 보내달라고 악 써대믄, 아무도 못 말렸써야. 우리 아부지하고 사이좋게 논매다가도 수 틀리믄, 바로 형이라고 불름서 생까고 염병하고……, 그 새끼를 누가 말려……, 잉? 뭐라고? 해코지는 안 했냐고? 그 새끼가 해코지 할 만큼 배뽀가 센 놈이였냐, 은제…… 마흔 넘도록 장개도 못 가고 총각귀신이 될까 봐 그 지랄이였제. 불쌍한 새끼.”

못 쓰는 다리 대신 근질거리는 힘이 팔에만 뻗쳐서 오갈 데 없는 분노가 일면 목발로 괜히 병식이를 두들겨 패곤 했던 진구는 고향에서 그나마 사람 구실을 해내고 있다는 일말의 자부심이 묻어나는 목소리를 돋우면서 병식이에 대한 이야기를 문상 온 친구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병식이가 바보였느냐 하면 단연코 아니라는 것을 친구들은 다 알고 있었다. 철이 든다는 게 계절에 맞춰 농사를 짓는 법을 안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던가. 그렇다면 평생 논밭에 엎어져 살았던 병식이는 누구보다 철이 든 녀석이었을 것이다. 진구 말대로 병식이가 남자 구실을 할 수 없는 병신도 아니고, 처자식 정도는 너끈하게 먹여 살릴 수 있는 논밭도 살뜰하게 챙겨 놓았는데, 왜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장가를 못 갔는가에 대해서는 ‘장개 보내주란 말이여’에 다 함축되어 있음을 그는 진구와 다른 친구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병식이가 홀어머니를 얼마나 끔찍하게 모셨는지, 아들의 지극정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병식이의 어머니가 다른 자식들은 대처로 내보면서도 끝까지 모자란 놈이라는 것을 내세워 옆에 끼고 있으면서 종처럼 부려 먹었는지, 거꾸로 태어나서 뇌가 다친 팔푼이 도삼이란 놈도 필리핀 여자와 결혼한 마당에 사지육신 멀쩡하고 아랫도리 힘도 실한 병식이에게 짝을 맺어주지 않았는지, 그 소름끼치는 진실을 죽은 병식이만 빼고 다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녀석들의 말을 빌리면, 병식이가 알고 있는 여자의 전부인 어머니가 장가 보내 주지 않으면, 병식이는 죽어도 장가 갈 수 없었던 것이었다.         

“새벽에도 병식이란 놈이 잠 안 자고 혼자 머리 꼭대기까지 소주를 채워 가지고 미쳐 날뛰었는갑드라. 맨정신에도 캄캄할 때 경운기 몰믄 위험한디, 술까지 처마신 상태에서 경운기를 몰고 읍내로 가는 삼십 리 길을 나섰는갑드라. 동네 떠나라가라고 소리소리 지름서 말이다. 그놈이 잘 쓰는, 씨발, 나 장개 보내 주란 말이여 씨발, 나가 논밭이 없어 좆이 없어 니기미 씨발!을 끝도 없이 뱉어냄시로 말이다. 은젠가 한번, 농번기 땐가, 아무튼, 읍내로 나갔등갑드라. 거기 딸기 다방인가 수박 다방인가, 이름도 요상한 다방에 들렀는디, 거그서 여우 겉은 계집애 하나를 봤는갑드라. 그날부텀, 날이면 날마다 그 다방에 들러 미스 정인가 뭔가 하는 아가씨를 무담시 보고만 오고, 보고만 오고 했는갑드라. 정작 미스 정인가 뭔가 하는 아가씨헌티는 지 감정을 제대로 표현도 못했는갑드라. 아무리 바보라도, 지가 낼 모레면 오십인디, 게우 스물을 넘겼을까 말까 한 어린 계집헌티 겔혼하자고 말을 할 수 있었을 꺼이냐. 다방에 들렀다가 집으로는 항꾼에 못 가고 가끔 나한테 와갖고는 한숨만 폭폭 쉬더란마다. 진구야, 이거이 뭐이끄나, 나가 숨이 맥혀 죽껐다, 씨발, 이런 것을 사랑이라고 허는 거이냐, 그럼시로 얼굴이 히여멀건해져갖꼬 꼭 죽겄는맹키로 앉았다 가곤 했어야. 그럴 때마다, 내가 병식이헌테, 씨발놈, 지랄허고 자빠졌네, 다 늙어서 먼 놈의 얼어 죽을 사랑 타령이냐고 퉁박을 줬다, 씨발. 새벽에 읍내로 뭣허러 오고 자펐겄냐. 문 닫힌 딸기 다방에 뭣허러 오고 자펐겄냐고. 경운기를 갈짓자로 몰다가 마주오던 트럭하고 완전히 정면 충돌해브러갖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피칠갑하고 누워 버린 거 아니냐.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던 장개도 못 가 보고, 씨발.”

거의 말끝마다 씨발을 추임새처럼 넣어 가며 병식이에 대한 타령조의 이야기를 하는 진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간질거리는 주갈에 연거푸 술잔을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다. ‘이거이 뭐이끄나, 나가 숨이 맥혀 죽껐다. 이런 것을 사랑이라고 하는 거이냐.’ 병식이의 말이 미늘처럼 목에 걸려 그는 술을 털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엄지에 아무리 힘을 줘도 일회용 라이터의 삽착 돌기가 뒤로 밀리지 않았다. 몇 번이고 뻑뻑한 돌기를 힘주어 밀어대던 그에게 건너편의 진구가 푸른 불꽃이 이는 지포 라이터를 내밀었다.

“불이 안 붙냐? 너 기억 안 나냐? 병식이가 전구에다 담뱃불 붙일라다가 안 된께 확 질르듯이 말했던 거? 너도 함 해 봐라. 아, 씨발, 담뱃불이 왜 이리 안 붙는다냐? 좆 같네 씨발!”

병식이의 전매 특허였던 욕을 내뱉는 늙은 진구의 소년 같은 쾌활한 목소리가 그의 어깨를 목발로 두드리는 것 같아 고개를 돌려 버렸다. 병식이네 골방에 몰래 숨어들어 뻐끔 담배를 배웠던 녀석들이 머리가 허옇게 세어 왁자지껄하게 화투패를 돌리고 있었다. 모두들 첫사랑도 해 보지 못한 그때에 그와 녀석들은 담배를 배우면 훌쩍 어른이 되어 여자와 멋진 사랑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었었다. 어깨 너머로 병식이의 영정이 보였다. 언제 적 사진이었을까. 십 년은 젊어 보이는 잘 생긴 병식이가 웃고 있었다.

조무래기 녀석들이 해결하지 못할 일을 앞에 두고 절절매고 있으면, 씨바꺼, 이 까짓것 하나 못 할까 보냐? 면서, 양 손바닥에 퉷퉷 침을 뱉어 가며 호기를 부리던 병식이가 그는 언제나 부러웠었다. ‘이거이 뭐이끄나, 나가 숨이 맥혀 죽껐다, 씨발, 이런 것을 사랑이라고 허는 거이냐.’ 사랑 때문에 숨이 막혀 죽겠다고 말했다던 병식이가 보고 싶었다. 병식아, 네가 사랑이라고 했냐? 그는 파도의 물마루에 올라앉은 것처럼 어지러워 눈을 감았다. 여자의 눈가에 가득한 장난기 많은 웃음이, 야무지게 다문 입술이, 동그랗고도 단정한 얼굴이, 가녀리면서도 완강한 고집이 느껴지던 어깨가, 그의 흰 머리카락을 자분자분 쓰다듬던 따뜻한 손이, 파르르 떨림이 고스란히 전달되던 가슴이 눈 깜짝할 새 또렷하게 떠올랐다.

 

“당신이 함께 떠나자고 한다면, 나는 갈 거예요.”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을 힘겹게 꺼내자,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여자가 말을 했다. 가자고? 싫어. 나는 아주 피로해. 그냥 쉬고 싶을 뿐이야, 라는 말 대신 어렵게 흘러나온 말은 엉뚱했다.

“가고 싶어.”

한참을 망설이다 말을 꺼내 놓고 그는 서둘러 함께 가지 못하는 이유를 늘어 놓았다. 그가 쏟아낸 말에 입이 얼어붙은 것처럼 여자는 굳은 표정으로 손가락으로 연거푸 탁자를 문질러댔다. 몇 분 동안, 그의 치부를 조이는 것만 같은 씁쓸한 침묵이 지나갔다. 여자는 그를 동정하지도, 그렇다고 비난하지도 않았다. 알아들었다고, 모든 것을 다 알아들었다고, 그러니 더 이상 해명할 수고를 하지 말라고 했다. 여자가 너무나 쉽게 그의 결론을 받아들이자 어리둥절했다. 이건 아니라고, 이렇게 무력하게 물러서서는 안 된다고, 바락바락 악을 써대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여자는 너무나 순순히 그가 힘들게 내린 결론을 받아들였다. 우습게도 무력감이 순식간에 창자가 뜨거워지는 묘한 질투로 바뀌었다. 그 없이 혼자 당당하게 살아갈 여자의 생에, 그가 없는 여자의 미래에, 그는 질투를 느꼈다. 이별은 그가 선언했지만, 이대로 정말 멀어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두려웠다. 목울대가 뻑뻑해지면서 눈물이 탁자 위로 투툭, 쏟아졌다. 마흔 살이 넘어 느끼는 슬픔 앞에서 한없이 무력했지만, 눈물이 온 몸을 적시는 따뜻한 여름비처럼 영혼을 위무하는 것을 그는 느꼈다. 여자는 그의 눈물 앞에서 고개를 돌렸다.

“끝까지 가고 싶다고요? 그건 거짓이에요. 당신은 그럴 힘도, 뜻도 없지.”

여자가 그에게 말했다. 여자의 그런 말을 들으면서 그는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그저 그의 변명을 듣고만 있던 여자 또한 이미 그런 결말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는 솔직하고 싶었다. 힘을 갖고 싶었다. 자신을 믿고 싶었다. 단 한 걸음일지라도 떼 놓고 싶었다. 그러나 꿈쩍하지 못하는 자신이 한없이 역겹기만 했다. 풀어헤치지 못하고 있는 것들, 머릿속에 윙윙거리고 있는 그 잊기 어려운 기억들을 쏟아 버리고 싶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를 사로잡고 있었던 생의 초라함과 비굴과 역겨움에 대해 말해 버리고 싶었다. 다 드러내고 싶었다. 아주 세세히, 아무 수식도 없이, 그냥 벌거벗겨진 채로 드러내고 나서 한없이 초라해진 다음에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시작마저 자신의 뜻대로 될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이미 알아 버린 지 오래였다. 그런 것들을 무모하게 시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다 알아 버린 뒤에, 모든 삶과 사랑의 진정성을 상실한 뒤에 그는 나자빠져 있었다. 그보다 더 솔직하고 민감한 여자가 이건 아니야, 더 이상 속여서는 안 돼, 라고 단정을 짓자 비로소 모든 게 분명해졌다. 

카페 밖을 나왔을 때, 여자는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사람들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그런 여자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는 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 그동안 그를 흔들어댔던 감정의 실체는 무엇이었던가. 사랑이라는 단어는 너무도 불투명하고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그는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신이 상대에게 온전히 수용되고 있으며, 상대의 무슨 행동이든 그에게 받아들여져서, 그저 두 몸을 지닌 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떨어져 있는 게 너무도 날카롭게 가슴을 할퀴어서 가슴에 피가 주르르 흐르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여자가 곁에 있어도 다 갖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고, 옆에 없으면 그 심연으로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만나는 동안에도 여자가 돌아갈 시간을 생각하면 놓고 싶지 않아서 손이 덜덜 떨렸다. 여자를 만나던 동안, 아침에 눈을 뜨면 여자 생각으로 그의 하루가 향기롭게 술렁거렸다. 여자가 그에게 준 하루하루가 영원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순간이었을 뿐이며 그 순간들은 의식을 채근해 힘들게 노력하지 않고는 유지되지 않았다. 타인들의 눈을 피해 만나 서로를 먹어치울 것 같이 격하게 섹스를 하고 나서도 그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갈증을 느껴야 했다. 점점 그 순간의 강렬함과 일상의 권태로운 반복 속에서 그는 지치기 시작했다. 어느 사이에 둘 사이에는 대화가 사라졌다. 서로의 일상을 묻는 무의미한 지껄임이, 있어야 할 대화를 대신했다. 그저 그런 불륜의 관계로 안착하고 난 다음에 그 관계를 지속시킨 것은 길짐승 같은 욕구에 불과했다.

그는 아주 공들여 그 관계의 모든 것을 세밀하게 살펴보고 유지하려고 노력했었다. 정성스럽게 오랫동안 아름다운 관계로 만들어 가려 한다고 여자에게도 몇 번을 말했다. 그럼에도 결과는 여자를 붙잡던 손을 놓고 말았다. 관습과 제도의 힘이 그렇게 만들었는가? 여자의 말처럼 가족제도에 순응하고 말았던가? 그가 사랑의 힘을 잘 믿지 않는 것 같다고 여자는 말했다. 아마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시월의 가을처럼 성숙했던 여자는 사랑에 정직하고, 그 사랑에 몸을 맡기고 통절하게 그 사랑을 관통하는 것이야말로 생의 본질에 가 닿는 길이라고 말했다. 여자는 그의 비겁함을 보았던 것일까. 여자는 ‘일상은 힘이 세다’는 말을 ‘염소는 힘이 세다’라고 빗대 말하곤 했다. 정말 그런 것이었을까?

그는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대단히 평화로웠다. 비로소 매듭을 지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이를 공짜로 먹는 게 아니었다면 이 이별마저 견딜 수 있을 게라고 짐짓 자신에게 여유까지 부려 가며 쏟아지는 햇빛에 하얗게 번쩍이는 도로를 내처 달렸다. 이미 언젠가는 닥치고 말 이별을 마음으로 예행연습한 까닭인가. 아니, 그보다는 돌아갈 수 있는 가정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정을 버리지 않는 남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빈약하고 편협한 어릴 적 각오를 개처럼 다시 물기 위해 그는 여자와 함께 올라탔던 위태로운 줄에서 내려와 버렸다. 여자에게는 끝내 그를 사로잡고 있었던 생의 초라함과 비굴과 역겨움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평생 사랑 타령을 하며 서로를 물고 할퀴고 찢어발겼다. 어머니가 살고 있던 양반 동네에 질그릇이나 토기를 만들어 바쳤던, 이름조차 없어서 그저 점(店)이라고만 불렀던 동네의 토기장이 아들이었던 아버지는, 그저 점놈에 불과했다. 점놈 주제에 벽유 마을의 양반집 처자를 넘보고 기어이 자신의 여자로 만들어 버린 아버지는 복수하듯이 어머니를 사랑하고 배신했으며, 버렸다가 찾아오곤 했다. 천한 점놈의 사랑에 목숨을 걸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어머니는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을 갈구했고, 끝내 붙잡히지 않는 사랑 때문에 이를 갈았다. 그는 그런 그들을 보며 사랑을 믿지 않았다. 그는 사랑이라는 것이 가장 싫었다. 그는 세상에서 사랑이 가장 무서웠다. 사랑은 목숨을 축내는 짓이고, 사랑은 모두를 파괴하는 짓이고, 사랑은 무엇보다 상처를 내는 짓이었다. 그는 사랑이 아니라면, 사랑만 아니라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만 개입되지 않으면, 다 괜찮다고 우격다짐을 하며 컸다.

아버지는 팔도에 여자를 한 명씩 두고 살았다. 그런 아버지를 죽어도 용서하지 못했던 어머니는 분노가 극에 달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머슴이 쓰던 도끼를 들고 나와 장롱을 부수고, 자고 있던 자식들의 옷을 벗겨, 마당 한 가운데 던져 놓고 석유를 부어 불을 질렀다. 벌겋게 타오르는 불빛에 개집에 자빠져 자고 있던 똥개가 뛰쳐나와 미쳐 날뛰면 그 개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어머니는 타오르는 불에 아낌없이 집어던지셨다. 평소에 어머니가 따뜻한 손바닥으로 다독이고 등을 쓸어주었던 그 개가 타는 노린내를 맡으며 어린 그는 부들부들 떨었다. 저 뜨겁고 무서운 불 속에 어머니가 던지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서 어린 그는 울 수조차 없었다.  

한 철에 한 번씩 집에 들르곤 하던 아버지는 올 때마다 청나라의 황제 칸처럼 어머니를 위무하기 위한 하사품을 잔뜩 싣고 왔다. 아버지는 겨울이면 나락도 아닌 벼 수백 가마 값에 맞먹는 모피 코트를 하사했다. 어머니는 이에 질세라 금싸라기 논밭 수 십 마지기를 팔아 생긴 돈을 가마니에 버선발로 쑤셔 넣은 뒤 머슴에게 지게 하고 모피 코트를 입고 대처에서 가장 크게 벌어지는 노름판으로 들어가 한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고 마작을 하며 돈을 아낌없이 탕진했다. 아버지는 여름이면 한산 모시 수십 필을 증여했고, 어머니는 풀을 빳빳이 먹인 한산 모시 한복을 차려입고 양산을 쓰고 나가 대처의 춤판에서 가장 잘 나가는 춤꾼의 손목을 부여잡고 모든 양춤을 섭렵한 뒤엔 그예 속곳 차림으로 돌아옴으로써 복수를 했다. 아버지는 봄가을이면 값비싼 양장 옷감 수십 필과 악어가죽 핸드백을 선물했다. 어머니는 대처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재단사가 만든 옷을 입고 나가 가장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 서방의 바람기를 잡는 살풀이를 하며 서방이 가져온 천에 귀신이 붙었다는 말에 주저 없이 입고 있던 옷마저 벗어주고 고쟁이 한 장만 차고 야밤에 집으로 스며들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아낌없이 증여하고, 탕진하고, 선물하고, 소비하면서, 각자의 생을, 그러나 함께, 동일한 방식으로, 생을 쓰고, 끝냈다. 아버지는 생애 마지막에 결국 어머니 옆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젊은 여자의 방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죽은 아버지의 주름진 목에는 울혈이 비쳤고, 눈꺼풀 주위에는 붉은 일혈점들이 몰려 있었고, 입술과 귓불과 손톱과 팔다리 끝이 시퍼렇게 변해 있었다. 누가 봐도 아버지는 교살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는 죽음의 이면을 들춰 보고 싶지 않았다. 늙은 남자를 목졸라 죽일 수밖에 없었을 젊은 여자의 치욕을 그는 어쩐지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차라리 그 여자가 대신 죽여준 것이 고맙기까지 했다. 생전에 끝내 아버지에게 다가갈 수 없고, 닿을 수 없었던 그 사이, 그 거리가 이제는 수억 광년의 거리보다, 그 사이보다, 더 멀어졌음을 그는 느꼈고, 일말의 안도감마저 느꼈다.

아버지가 언제나 들고 다녔던 작은 가죽 가방 안에는 한시 시집 한 권과 몇 푼 들어 있지 않은 손지갑과 유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내 죽거든 높고도 높은 준봉에 올라가서 이승에 부렸던 버러지 같은 내 몸이, 내 살점이, 내 뼛가루가 지상에 한 점도 가라앉지 않게, 땅에 닿지 않게, 바람에 훨훨 날려서 단 한 점의 티끌도 남지 않게, 뿌려주도록 하라.’ 치졸하고 뻔뻔하고 후안무치하고 감상에 절은 유서를 읽으면서 그는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를 참아내느라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는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의 신원을 해결할 의욕도, 뜻도, 의지도 없었다. 그는 혼자서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했고 회사 직원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하게 장례를 치렀다. 어머니에게는 아버지가 목매달아 자살했다고만 일러주었고, 화장을 해서 뿌려 달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전했다. ‘그 망할 놈의 영감탱이를 죽어서도 지 맘대로 하게 내버려 둘까 보냐, 죽어서도 바람과 눈 맞아 천지에 떠돌게 내버려 둘까 보냐, 그리는 못한다’며 늙은 어머니는 포클레인 두 대를 앞세워 반나절 만에 아버지의 장지를 만들어 거기에 꽝꽝 묻어 버렸다. 장례 비용이며 장지 마련에 필요한 비용을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산다랑치 논마저 깨끗하게 팔아 치워 해결했다. 그는 죽어서도 편히 눕지 못하도록 아버지의 관을 세로로 세워 묻지는 않을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어머니의 마지막 포악을 무력하게 지켜보았다. 아버지를 묻고 보름 만에 어머니는 도끼에 맞은 장작처럼 풍을 맞아 쓰러졌고, 세 달 만에 명줄을 간단히 놓아 버렸다. 그는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 같은 남자와 ‘사랑밖엔 난 몰라’ 같은 여자를 화장해서 도시 근교의 납골당에 나란히 안치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랑을 했던 것일까. 그에게 그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무자비하게 할퀴었기에 너무나 야만적이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끝까지 서로를 버리지 못했기에 너무나 무분별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식들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했기에 너무나 이기적이어서 견디기 어렵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짓밟았기에 너무나 소름끼치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지극한 현실에서 발버둥쳤기에 너무나 세속적이고, 서로를 끝까지 버리지 못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처형했다는 점에서 너무나 종교적이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각자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다 해 보았다는 점에서 너무나 해방적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으로 태어난 그는 끝내 그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들끼리의 사랑 놀음에 아이들은 철저히 방치되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온전히 받을 수 없다고 여긴 어머니는 그 자리에 아들인 그를 들였다. 그가 성장하자 어머니는 아들을 지아비로, 애인으로, 지상에 남은 자기의 유일한 남자로 자신의 고유하고 은밀한 방에 들여앉혔다. 아버지로 가야 할 모든 것들이 그에게로 집중되고 투사되었다. 어머니가 사랑한 남자는 아버지였지만, 어머니가 사랑해야 할 남자는 아들인 그가 되었다. 아내를 사랑하게 되면 어머니를 사랑하지 못하게 될까 봐 그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줄 수가 없었다. 어머니를 사랑하게 되면 아내를 사랑하지 못하게 될까봐 그는 그 누구에게도 감정을 나누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내, 두 여자는 그가 동시에 사랑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는 그 두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두 여자를 위로했고, 두 여자를 상처 입혔다. 두 여자에게 얽매여 살고, 두 여자를 떠나지 않는 것만이, 두 여자를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여겼다. 그는 눈치만 보면서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두 여자 사이에 있었다. 자신의 가면에 익숙해지면서, 오로지 역할에만 충실해지면서, 그는 내면을 잃어 버렸고, 내면 따위는 돌아보지 않게 되었고, 종국에는 내면이 있는지조차 잊어 버렸다. 

그러다가 그는 한 여자를 만났다. 그리고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묵은 살구나무 같은 그에게 봄볕에 돋아나는 새순처럼 사랑이 간지럽고도 황홀했다. 아바타 롤 플레잉 게임장 같은 가정과 직장에서 역할과 일이 자신이라고 여기던 그에게 사랑은 다른 자신을 보게 해 주었다. 여자를 사랑하면서 그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여자와 함께 있을 공간을 찾으면서, 함께 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애간장이 탈 때마다, 여자를 위해 지상에 방 한 칸이나마 마련해 주고 싶었다. 그 공간에 여자를 들여앉히고 싶었다. 아무도 보지 않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을, 비밀의 공간 속에 여자를 들여앉히면, 자신만의 여자가 될 것 같았다. 사랑하는 여자를 가두어 둘 영원한 감옥을 꿈꿔 보지 않은 사람은 사랑을 해 보지 않은 남자라는 말을 절절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습게도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여자를 사랑하면 언제나 집을 마련해 주던 아버지. 아버지는 평생 여자들을 위해 몇 채의 집을 세웠다가 부수었다. 아버지가 마련한 공간에서 여자들은 장미꽃처럼 피었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들인 집에 마지막까지 살다가 죽은 유일한 여자였다. 하지만 그는 여자에게 집은커녕 마음마저도 다 주지 못했다. 그는 결사적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나는 전부, 당신의 전부를 원해요. 그런데 당신은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가야 하고, 나는 그걸 인정해요. 아주 먼 훗날,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여자의 마지막 말이 귓전에 끈덕지게 맴돌았다. 그 역시 여자와 함께 있고 싶었고 그런 감정은 매우 끈질긴 것이었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면 한쪽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한 여자를 사랑했던가? 서로가 가야 할 길이 정해지고 난 순간, 사랑은 미혹이 가져다준 욕망과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여자와 헤어지고 나선 길은 눈부시게 환했다. 곧게 뻗어 있는 길은 또렷한 표지와 함께 그가 출발했던 그곳으로 그를 데려다 줄 것이었다. 사랑했던 것일까? 사랑은 가볍게 흔들려 날아가고 다만 섹스의 강렬한 흥분만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는 이후로 아주 건조해지거나, 어쩌면 또 다른 대상으로 이동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이라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가 믿고 의지해야 할 것은 제도, 관습,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 아이들의 재롱, 옆에 누워 있는 측은한 아내의 얼굴들 이런 것일 뿐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인정하고도 남아 있는 불안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불안 속에서 비죽이 고개를 드는 욕망은 대체 무엇인가? 모든 게 환하게 드러나 버린 순간, 미혹 속에 숨어 있던 관계의 끝을 보게 된 순간, 여자는 자신이 만들어 놓았던 환상 속의 실재 이상의 그라는 존재를 발가벗기고 나서 그에 대한 욕망을 버렸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혹은, 원래 그런 것인가. 밑바닥을 들여다보며 그는 자꾸 움츠러들었다. 그저 가만히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면서 모든 감정들이 빛바랜 무명처럼 닳아 버리길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둘의 영혼은 너무나 비슷한 색깔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 갈라놓는다고 떨어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을 품고 가는 심정으로 상대와 자신에게 다짐을 주고는 했던 말들이 가시 돋친 빈정거림으로 그의 귀에 쏟아졌다.

너는 나고, 나는 너라고? 그래서 우리는 하나라고?


그는 병식이의 출상을 지켜보지 못하고 떠났다. 어머니의 고향이었던 벽유 마을도, 아버지의 탯자리였던 점(店)도, 그리고 그 틈새에 존재했던 그의 거처도 돌아보지 않았다. 어떤 전제나 목적도 없이 온몸에 사랑의 화인을 아로새기고 생과 맞대결을 했던 사람들, 누가 더 끝까지 가 볼 수 있는가를 증명하듯이 살고 죽은 사람들, 그는 그들을 서둘러 떠나고 싶었다.

23번 국도를 거쳐 고속도로로 진입해서 주행을 하면서 그는 차의 계기판을 보았다. 온도 미터가 지나치게 높았다. 그는 갓길에 차를 세워 놓고 보닛을 열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를 손사래를 치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냉각용 고압호스가 찢어져 있었다. 아, 씨발. 그는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앞두고 욕을 뱉었다. 휴대폰으로 견인차를 불러 놓고 그는 차 안으로 들어갔다. 간밤에 퍼마신 술로 인한 숙취로 전신의 세포가 눌리는 것처럼 기력이 빠지면서 맥박이 느려지는 것을 그는 느꼈다. 그는 운전석의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누웠다. 여자가 떠난 뒤, 그는 여자 대신 매일 헛헛한 공허와 만나고 있었다. 끝내, 죽어서도, 상환하지 못할 부채처럼, 여자에 대한 미안함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내장을 훑었다가 스러지곤 했다. 쇄골 아랫녘이었을까, 아니면 단단한 갈비뼈 빗장 속이었을까, 단지 숨쉬기에만 소용이 닿을 뿐 오랫동안 처박아 두었던 심장이 한 대상만을 향해 펄떡거리며 숨가쁘게 몰고 가던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제는 아무 마음도 가지지 않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비겁하지만 가장 현실적으로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짐짓 억지를 부려 보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는 양팔을 엇갈려 가슴을 꽉 껴안았다.

견인차를 기다리면서 그는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초저녁 서쪽 하늘에 개밥바라기가 떠 있었다. 고향을 떠나 집으로 가는 길, 친구 녀석의 장례식에 왔다 돌아가는 길, 해가 저무는 길에, 마음이 물방개 재재거리며 놀다 떠나 버린 못물처럼 텅 비고 쓸쓸했다. 문장 웹진/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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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네집

왜 낭독서비스가 안되나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