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

 

매듭



남상순



                      

1


식사를 마치고 출근을 위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설 때까지만 해도 할아버지의 여든네 번째 생신은 그냥 그렇게 끝나는 듯 보였다. 사실 말이 생신일 뿐 핑계 김에 그저 아침이나 같이 먹자는 게 그날 모임의 취지이기는 했다. 바쁜 시간이라 변변히 이야기 나눌 틈도 없이 음식을 나르면서 부산을 떨었지만 정작 여자들은 밥숟가락을 입에 대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남자들을 배웅해야 할 판이었다. 전화벨이 울린 것은 고모부가 먼저 가겠다며 현관에서 구두를 신고 있을 때였다. 공교롭게도 어머니가 수화기를 들었다.

 

 

“누구라고?”

노인네의 숨가쁜 음성이 자꾸만 높아졌다. 고모부는 어머니와 눈인사라도 나눌 요량으로 현관에 대기하듯 서 있었다.

“아이구매, 자네가 어쩐 일인가?”

엉거주춤 쪼그린 채 전화를 받던 어머니가 갑자기 무너지듯 주저앉더니 탄복이라도 한 듯 한 손으로 방바닥을 두드려댔다. 상을 다시 보려고 분주하게 움직이던 여자들이 무슨 영문인가 싶어 일손을 멈춘 채 멀뚱히 바라보았다. 잠시 후에 수화기를 놓은 어머니는 삼촌을 향해 대뜸 소리쳤다.

“저 앞 사거리로 얼릉 나가보시오.”

삼촌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거둘 새도 없이 어머니의 뒷말이 이어졌다.

“야들 숙모예요. 이 앞에 와 있다네요, 글쎄.”

그러면서 조급한 동작으로 주머니를 뒤져 담배 한 개비를 피워물었다. 눈자위는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고 입이 타는지 아랫입술에 연신 침을 발랐다.

“그 사람이 시아버지 생일날을 여태 기억하고 있었다니……”

“아이구, 그러게나 말이야.”

신기해하는 목소리, 무릎을 치듯 손바닥을 마주치는 소리, 이제는 됐구나,라는 식의 안도감 배인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자꾸만 터져나왔다.

사실 할아버지 생신이 아니더라도 숙모의 방문은 이미 예견된 일이기는 했다. 며칠 전부터 집안 분위기가 들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안방 문을 닫은 채 누군가와 오래오래 통화를 했고, 고모가 나타나 난데없이 점집에 가자고 어머니를 종용하는가 하면 이웃에 살던 당숙모는 ‘밀어붙이게’ 혹은 ‘자네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이 일을 매듭지을 수 있겠나?’ 하는 식의 뜻 모를 말을 어머니에게 수차례 거듭하다가 돌아갔다. 당숙모 말투에는 해묵은 숙제를 풀고자 하는 이의 비장한 열망 같은 게 담겨져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이와 같은 부추김에도 어머니는 사뭇 망설이는 눈치였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꾸만 후진을 반복하는 자동차처럼 회의적인 고갯짓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답답하게 옥죄었다. 그러다가 급기야 삼촌으로부터 “아, 애도 낳을 수 있어요. 이제 겨우 마흔넷이라는데요, 뭘.” 하는 의욕적인 말을 듣고는 마음을 단단히 굳힌 듯했다. 생각해보니 숙모는 정말 마흔넷이었다.

그런데 애도 낳을 수 있다며 그토록 허풍을 떨던 삼촌이 정작 숙모가 집앞까지 왔다는 말에는 얼굴을 조금 찡그리는 듯했다. 뿐만 아니라 선뜻 밖으로 나서지 않고 공연히 방안을 불안스레 서성이는 것이었다. 고모가 외투를 챙겨주며 강제로 밖으로 떠밀었을 때에는 좀 더 완강하게 뻗대었다.

“아니, 도대체 왜 이래여? 그 동안 이야기한 건 다 뭐라?”

어머니가 긴장된 표정으로 삼촌에게 소리를 지르다가 아이들이 말똥가리 눈으로 어른들을 주시하고 있음을 눈치채고는 멈칫했다. 눈도 멀고 귀도 먼 할아버지는 온갖 소동에도 불구하고 밥상 앞에 정물처럼 앉아서 입안에 든 음식물을 세월아 네월아 씹고 있었다.

“원래는 삼촌이 먼저 초대를 해서 디리왔어야 하는 거라. 속으로는 바래고 있었는데 말이 없으니 답답해하다가 이렇게 자기가 나서서 오겠다고 하는 거 아니라? 여자가 되어서 시상에……그 마음이 울매나 섭섭했겠어?”

어머니의 변사 말투 같은 슬픈 사설에 흥미로움과 호기심 섞인 긴장감으로 눈을 빛내던 젊은 여자들이 순식간에 감정이입이라도 이루어진 듯 “세상에!” 하면서 혀를 찼다. 땅이 꺼질 듯한 한숨소리, 탄식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삼촌의 양미간은 더욱 오므려졌다. 삼촌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그래도 안 되겠다는 듯 느닷없이 내 어깨를 떠밀었다.

“아, 새삼스럽게…… 네가 나가봐라.”

식구들이 하나같이 안 된다며 성화를 대었으나 삼촌의 고집을 꺾기는 힘들었다. 그동안 15년 넘게 부리던 고집을 하루아침에 바꾸자니 쑥스럽기는 할 테지. 삼촌에 대한 일방적인 너그러움도 여전했다.

“할 수 없다, 네가 나가봐라.”

고모의 채근에 학교 도서관에나 갈까 하던 나는 가방을 도로 내려놓으며 현관문을 밀고 나갔다. 하지만 계단을 내려가면서 이런 곤란한 심부름을 왜 하필 내가 해야 하나, 하는 불만이 치밀었고 구원을 청하듯 고모부를 쳐다보았다. 올해로 쉰이 넘은 그는 힘없이 팔을 들어 올려 빨리 가보라는 손짓으로 내 등을 떠밀 뿐이었다.


2


사거리 한 귀퉁이 시티은행 앞에 숙모가 서 있는 게 보였다. 10여 년 만이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숙모는 행여 눈에 설기라도 할까 싶었던지 길 한가운데 서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자기가 거기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신호하고 있었다. 여전히 작은 몸피 때문인지 어깨를 옹송그리고 있는 모양이 애처로운 느낌을 자아냈다.

숙모와 내 눈이 마주쳤다. 이전보다 훌쩍 커버려 어른이 되었음에도 숙모 역시 나를 한눈에 알아보는 눈치였다. 나는 다가가 고개를 조금 숙이며 오셨어요, 하고 말했다. 그리고 숙모가 다른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말할 참이었다. 삼촌이 나오겠다는 걸 말리고 내가 나왔다. 내가 숙모를 마중하고 싶었다. 하지만 워낙 거짓말에 서투른 탓도 있지만 나와 마주친 것만으로도 대번에 눈매가 젖어버린 숙모를 보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상대방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서 있기만 했다. 나도 그도 지나간 일을 되새기고 있을 터였다.

“가요.”

나는 숙모의 등에 손을 대며 우리 집 방향 골목을 가리켰다. 그제야 숙모는 어떤 골똘한 생각에서 놓여난 듯 눈을 한번 감았다가 떴다. 그러고는 한 쪽 입꼬리가 삐뚜름하니 찢어지는 특유의 쓴웃음을 물었는데 악몽과도 같은 생각에서 깨어난 것에 대한 안도감의 표현인지 새로운 악몽이 시작될 것에 대비한 경계심의 작용인지를 나는 잘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앞장을 서 두어 걸음 걷다가 숙모와 나란히 걷기 위해 돌아보았다. 그런데 숙모는 한 걸음도 떼지 않은 채 내 쪽을 외면하며 서 있었다. 아랫입술은 꼭 깨문 채였다. 순간 그 쓴웃음의 의미가 확연히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숙모가 얼굴까지 붉히며 내뱉었다.

“기분 나빠, 정말.”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상대방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직설적이고 단도직입적인 언어습관은 여전했다. 나는 난감한 처지라 손바닥을 비벼대며 안절부절못했으나 곧 시치미를 떼기 위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요?”

“삼촌 말이야.”

숙모가 쌍꺼풀진 붉은 눈에 테두리를 만들고 노려보아서 나는 가슴을 누르며 괴로움을 참아야 했다. 불현듯 화가 치밀었다. 오십에 가까운 삼촌이었다. 그만한 나이가 되었으면 삶의 기반을 잡아 나 같은 조카들에게 때로는 도움도 주고 충고도 해 가며 삶의 여유를 즐겨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도움은 고사하고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형편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집으로 달려가 삼촌에게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며 대들고 싶었으나 지금으로서는 참는 도리밖에 없었다. 나는 변명조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삼촌이 나와야 하는 거였네. 난 엄마가 나가보라고 해서 반가운 마음에 앞뒤 생각 없이 뛰어나왔는데…… 우리 집 식구들, 원래 무뚝뚝해서 그런 생각 잘 못하잖아요. 가요, 얼른.”

나는 얼버무리며 숙모가 든 꾸러미를 빼앗다시피 받아들었다. 그리고 골목으로 잡아끌었다. 숙모는 못 이기는 척 따라왔으나 입은 한 발이나 나온 상태였다.

집안으로 들어갔더니 노인네들이 숙모를 맞이하며 하이구하이구 청승을 떨었다. 무슨 신파극의 한 대목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고약했다. 방안으로 들어간 숙모는 할아버지 앞에 서기 무섭게 무릎을 꺾으면서 엎드러졌다.

“아버님!”

그러자 여기저기서 혀 차는 소리, 대견해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마중 나간 사이 미리 말씀드렸는지 할아버지 표정도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숙모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흐느꼈고 다른 이들도 눈물을 찍어내거나 숙모의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야가, 작은 아라?”

할아버지는 메마른 입술을 딱 벌리고는 다물 줄을 몰랐다. 새로 차려진 상 앞에 가족들이 다시 둘러앉으며 자리를 잡으려는 순간 고모부와 오빠들, 오촌들이 출근을 위해 일어났다. 그들을 배웅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을 때 어머니가 숙모의 손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래, 아 하나만 디리고 달랑 둘이 살아여?”
숙모는 말없이 고개만 더욱 숙였다. 나 역시 숙모의 소식은 들은 적이 있었다. 삼촌과 이혼한 후 나이 지긋한 남자를 만났으나 얼마 못 살고 남자는 죽었다고 한다. 아이는 전처소생이고 지금은 이미 성장한 청년이라는 거였다. 다행히 남자가 남긴 돈이 있는 데다 아이는 남 같지 않게 숙모를 대한다고 한다.

“그래, 우선 밥이나 묵게.”

어머니가 얼른 숟가락을 쥐어주었다. 그러고는 어색하게 서 있는 삼촌에게 말했다.

“삼촌도 이리 와 앉아요.”

삼촌은 앉을 것 같더니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 듯 거실로 나갔다. 나는 삼촌이 아예 집밖으로 나가 어딘가로 달아나는 것은 아닌가, 계속 신경이 쓰였다.

  

3


두 사람의 결혼운은 이미 결혼식 날부터 점쳐졌다고 할 수 있다. 시골의 이웃한 마을에 살았으나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던 두 사람이 갑자기 결혼을 하게 된 것은 죽을 날을 받아놓은 숙모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막내딸이 혼인하는 것을 봐야만 편안히 눈을 감겠다는 늙은이의 막무가내식 고집 앞에서는 아무도 뭐라고 토를 달지 못했다.

그렇게 얼렁뚱땅 맺어진 신랑 신부가 긴장된 분위기에서 결혼서약을 할 때였다. 주례가 신부에게 신랑을 잘 섬기겠냐고 묻자 기상천외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음메 음메.”

느닷없는 소울음소리가 신부 입에서 노랫가락처럼 흘러나오자 사람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당연히 장난인 줄 알았다. 하지만 결혼식장에서까지 장난을 치다니. 그것도 신부가 되어서. 여기저기서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당황한 주례는 헛기침 몇 번으로 사태를 무마시키고는 다시 한번 물었다.

“신부는 신랑을 섬기겠는가?”

“음메, 음메.”

역시 대답은 같았다. 기가 막힐 노릇 앞에서 하객들 일부는 웃었고 일부는 얼굴을 찡그리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때 주례를 서준 이가 바로 중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다. 그 어른이 기지를 발휘하지 않았더라면 네 할아버지는 그야말로 얼굴 들고 다니지 못했을 게다. 집안 어른들은 틈만 나면 그 이야기를 했는데 기지라는 게 별다른 무엇은 아니었다.

“아, 이 신부는 그러니까, 소처럼 우직한 마음으로 신랑을 섬기겠답니다, 여러분!”

촌사람들이라 말귀가 어두웠던 탓일까. 잠시 괴괴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자 오촌 당숙이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고 그것이 계기가 되었는지 어쨌는지 하객들이 비로소 굳은 인상을 풀며 잔칫집 분위기를 냈다.

결혼식이 끝나고 호기심 많은 노인네 몇이 숙모에게 왜 소울음소리를 냈느냐고 묻자 숙모는 자기도 모르는 일이라며 얼굴을 붉혔다. 분명히 네에, 하고 신부답게 대답했는데 누군가 뒷목덜미를 쥐어박듯이 옥죄는 바람에 저절로 암소 울음이 튀어나왔다는 것이다.

문제는 결혼식 이후였다. 삼촌은 숙모를 여자로서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았다. 쳐다보는 것조차 싫어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라고 했다. 납득되지 않는 아들의 행동에 속을 끓이던 할아버지가 지게작대기를 들고 등짝을 후려치면 삼촌은 자기도 스스로를 어쩔 수 없다면서 도리어 울음을 터트렸다. 어떤 친척들은 쇠귀신이 씐 것 같다며 쑥덕거렸다.

그 쇠귀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집안의 붙박이 귀신이었다. 윗대 조상들조차 어쩌지 못했던 철천지원수에다 공포의 진드기였다. 종손 집안의 남자가 결혼을 하면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물론 남자가 반드시 집을 떠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벌써 몇 대째 그런 일들이 반복되어 왔다고 한다. 정말 섬뜩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할아버지 역시 젊은 날에는 집을 나가 마음껏 떠돌아다니다가 나이가 들어 기운이 다하자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집을 나가 있는 동안 할아버지는 어디서 무엇을 하였나? 그거야 할아버지 이외에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가끔 그것이 화제에 오른 적은 있었다. 사람들은 한결같은 말을 했다.

“하긴 뭘 해? 그냥 떠돌아다녔겠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야 너무나 분명했다. 할아버지는 방랑을 먹이 삼아야 성공할 수 있는 남다른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깨달음을 목표로 삼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집 나가 있는 동안 돈을 벌었거나 다른 여자를 만나 딴 살림을 차린 것도 아니었다. 빈손으로 나갔던 할아버지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삼촌은 그런 축에 끼일 듯 말 듯한 사람이었다. 집을 나가 객지를 떠돌았다는 점에서는 할아버지나 조상들과 비슷했고 어떻게든 돈을 모으려고 했다는 점에서는 달랐다.

결혼하고 나서 얼마 후에 삼촌은 서울로 도망을 쳤다. 이때 원조 방랑자였던 할아버지 태도는 퍽 의외였다. 숙모를 데리고 상경하여 보름 동안 여관 밥을 먹으면서 수소문을 거듭한 끝에 드디어 삼촌의 거처를 알아냈다. 삼촌은 자동차 정비소에서 정비공으로 일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삼촌을 발견하자마자 곁에 있던 때 묻은 나일론 끈으로 손목을 묶은 뒤에 정비소 천장에다 매달았다고 한다. 정비소 사장의 애원과 협박에도 끄떡없이 버티다가 다시는 아내를 버리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서야 풀어주었다.

삼촌을 단속하겠다는 핑계로 할아버지는 서울에 눌러앉았다. 얼마 후에 아이들 교육을 핑계로 우리 가족도 불려 올라왔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상황이고 보니 삼촌에게 우리 남매를 떠맡겨야겠다는 할아버지의 계산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뒤로도 두 번째, 세 번째 가출이 이어졌다. 할아버지는 그때마다 삼촌을 찾아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집안에 행사가 있었던 탓에 적지 않은 친척들이 모여들었다. 바쁜 시간이 지나고 조금 한가해졌을 무렵 집안 어른으로 통하던 할머니 한 분이 숙모 손을 잡고 쓰다듬으며 물었다.

“우째 여적 아가 없실까?”

노인네 딴에는 걱정이 되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했을 터이다. 삼촌이 아무리 도망다니느라 바빴다지만 결혼한 지 4년째로 접어들고 있었으니 그만 하면 애 만들 시간은 되고도 남았던 것이다. 사실 애라는 것은 부부관계가 위태로울 때 더 잘 생기는 애물단지라고 어른들이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때 숙모가 털어놓은 몇 마디는 놀라움을 넘어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결혼식장에서의 소울음소리는 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숙모가 말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요.”

처음에는 얌전한 색시의 모습 그대로 목소리가 침착하고 고왔다. 듣던 사람들은 멀뚱멀뚱 서로를 쳐다볼 뿐이었다. 모두들 각자의 하늘을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새치름해 있던 숙모가 돌발적인 행동을 했다. 갑자기 울먹울먹 윗입술이 떨리는가 싶더니 촌수도 모르는 할머니 치마폭을 향해 엎어져버린 것이었다.

“할매요, 요즘에는 하늘 구경이라고는 통 못 해봤어요.”

그러고는 곧 무아지경의 통곡 속으로 빠져들었다. 울음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방안으로 모여들었다. 모두들 아연실색 할 말을 잃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경을 읽으면서 애꿎은 어머니의 손등을 마구 쥐어뜯는 이도 있었다. 손등이 아파도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못한 어머니는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그 시간을 견뎠다. 쇠귀신이 씌어도 단단히 씌었어. 누군가의 입에서 그런 탄식도 흘러나왔다. 

이후 말이 어떻게 부풀고 왜곡되었는지 숙모가 아직 처녀라는 말과 삼촌이 씨 없는 수박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집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우연히 그 소문을 들은 할아버지는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하신 것인지 할아버지는 새벽이면 일어나 남산으로 올라갔다. 그 위에서 서울특별시를 한참이나 내려다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일이 할아버지를 그리 오래 괴롭히지는 않았다. 삼촌이 소문에 저항이라도 하듯이 사무실 경리 아가씨와 연애를 하여 보란 듯이 임신을 시킨 것이다. 

그 뒷감당도 만만치 않았다. 어느 날 경리 아가씨의 큰 오빠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덩치가 크고 인상이 부리부리해서 삼촌이 뼈도 못 추리는 건 아닐까, 하던 걱정은 괜한 게 아니었다. 결국 삼촌은 위자료를 물어주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써야만 했다. 그 뒤로 경리 아가씨는 다시는 삼촌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삼촌은 손수건을 꺼내 카르랑거리며 두어 번 코를 풀었을 뿐 미련이나 아쉬움 따위는 드러내지 않았다. 

하늘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던 숙모는 더 이상 수모를 참지 않았다. 결국 삼촌은 이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방랑자 할아버지의 삶보다 더 치명적인 결과였다. 그런데 그렇게 헤어졌던 부부가 10여 년이 지난 지금 새삼스레 다시 합치겠다며 의기투합이라도 하려는 것이다. 나는 숙모도 삼촌도, 그것을 부추기는 사람들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4


상을 물리고 과일과 차를 날랐다. 커피보다는 잣을 띄운 생강차와 대추차가 주종이었다. 우리 집안 사람들은 열이 많은 체질이라 커피나 인삼차는 잘 안 마시는 편이었다.

“뭐 마실래요?”  

사실 주문도 없이 이것저것 미리 타놓고 나서 메뉴를 물어보는 것 자체가 손님에 대한 크나 큰 결례인지도 모른다. 일괄적으로 차를 타고 있던 큰올케를 도우면서도 나는 다른 생각에 몰두해 있느라고 세심하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숙모가 자기 몫을 두리번거리고도 선뜻 찻잔을 잡지 않았다. 큰올케가 반복해 물었을 때에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하는 전제를 깔면서 말했다. 

“저는 그냥 커피가 좋아요. 2대 2대 1.5로. 설탕이 한 숟가락 반이죠.”

혹시라도 재료 배합이 뒤섞일까 봐 그랬던지 숙모는 유난히 딱딱 끊어가며 발음을 정확히 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고는 겸연쩍은 양 이를 드러내며 부자연스럽게 웃었는데 자신의 행동이 우리 가족에게 어떻게 비춰질지를 미리 알고 있는 눈치였다. 알고 있어서 대충 신경이 쓰이기는 하지만 대추차나 생강차를 마시느니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지더라도 평소의 습관대로 커피를 마셔야겠다는 그런 웃음이었다. 방심하다가 물벼락을 호되게 맞은 큰올케는 자신의 무례와 무신경을 수습하느라고 진땀을 흘리면서 숙모 몫의 찻잔을 도로 챙겨 부엌으로 황황히 물러갔다. 숙모와 마주 앉아 있던 어머니가 영문을 몰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한참 동안의 웅성거림과 의미 없는 소란이 지나가고 난 뒤에야 어머니는 비로소 상황을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럼, 커피 마실 사램은 커피를 마시야지. 그기 그래 뵈도 몸에 그렇게 좋다민서? 노인들도 하루 한 잔씩 꾸준히 마시면 그렇게 오래 산대여.”

혓바닥으로 윗입술을 민첩하게 핥아가면서 설명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초조함 같은 게 배어 있었다. 애물단지 시동생에 대해 이제는 신물을 낼 만도 한데 그런 눈치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고, 어떻게 딱 부러지게 일거에 상황을 매듭지어버릴까, 하는 조급한 욕심으로 작고 가느다란 눈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앉아 있던 사람들이 추임새를 넣어 가며 일시에 맞장구를 쳤다. 소화가 안 되는 사람이 커피를 마시면 적당하게 위벽을 자극한다는 말도 누군가 덧붙였다. 넉넉하고 뭐든 용납하는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 차를 홀짝거리는 소리가 자발없이 들려와 신경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그 또한 무난하게 넘어갔다.  

과일을 우물거리던 할아버지가 손짓으로 삼촌을 부른 것은 그때였다. 다른 모든 것에는 까다롭고 제멋대로이지만 할아버지에게만은 턱없이 순종적인 삼촌이 얼른 노인네 곁으로 다가갔다. 할아버지는 나이 든 아들을 잠깐 연민 어린 눈으로 쳐다보더니 삼촌과 숙모의 손을 각각 끌어당겨 끈으로 묶듯이 서로에게 쥐어주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돌발 사태였다. 옛날처럼 천장에다 묶을 기력은 남아 있지 않지만 너희들이 철없이 구는 꼴은 더 이상 보지 못하겠다는 노인네 특유의 고집이 완강한 손짓을 통해 아득하게 느껴졌다. 아무도 맨정신이라고 믿지 않았던 할아버지의 그와 같은 노골적이고도 적나라한 행동에 가장 크게 반응한 이는 물론 어머니였다. 마치 어두운 세상이 환히 불 켜지는 것을 목도한 이처럼 턱없는 흥분과 열광이 아이구아이구, 소리에 뒤섞이며 흘러나왔다. 그런 어머니가 내 눈에는 오히려 숨이 깔딱거리며 넘어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그날의 주제가 아무래도 삼촌과 숙모의 재결합이고 보면 할아버지의 행동을 두고 단순히 노인네의 노망난 행동으로 치부해버릴 수 없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할아버지가 둘이 사이좋게 지내라는 뜻으로, 마치 어떻게 해야 제대로 손을 잡는 것인지 시범이라도 보이듯 당신의 양손을 소중하게 꽉 쥐어보여 주었을 때에는 나 또한 뒷덜미가 서늘해지는 충격 같은 것을 느꼈으니까. 게다가 외면하기만 하던 두 사람이 할 수 없이 서로에게 눈길을 주면서 할아버지의 기괴한 비책이 얼마간 효험을 드러내는 듯도 싶었다. 속악스러워 보이는 삼촌이 어깨를 움찔 떠는 것 같기도 해서 조금 불안했지만 다행히 성급하게 손을 빼내지는 않았다. 

나로 말하면 명백히 구경꾼의 입장이었다. 속으로는 한번 헤어졌으면 됐지 뭐하러 구질구질하게 다시 만나 못 보일 꼴을 보이는지 모르겠다며 울화를 삭이는 중이었다. 때문에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사춘기 아이들의 꼭두각시 장난인 것만 같아서 영 께름칙했다. 

부부가 살다가 헤어질 때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는 게 아닐까. 어떤 이유로든 툭하면 소박을 놓으면서 아내를 방치하는 남자는 흔치 않은 법이다. 게다가 그와 같은 수모를 당하고도 없던 일로 친 채 다시 살 수 있는 여자가 몇이나 될까. 쉰에 가까운 삼촌이 여전히 혼자라는 것이, 누군가 필요하다는 당위성이 아무리 간절하더라도 서로 맞지 않는 사람들을 얼렁뚱땅 끌어다 붙이는 것은 더 큰 불화나 불러올 뿐이었다.

사실 삼촌은 이혼 이후에 여러 여자와 살림을 산 적이 있었다. 모아놓은 돈이 조금 있어서 그것을 미끼로 여자를 사귀었지만 번번이 몇 년을 못 넘겼다. 그 중에는 삼촌에게 이런저런 명목으로 돈만 뜯어낸 뒤 달아난 여자도 있었다. 그 뒤에도 삼촌은 뭐가 문제인지를 모르는 채 여전히 좌충우돌이어서 나는 아무래도 삼촌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체질이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두 사람이 서로를 모욕하는 일은 없었으면 했다. 그것은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누구도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혐오스러우면서도 조마조마하게 두 사람을 지켜보면서 오늘 하루가 무난하게 지나가버렸으면 하고 있었다. 내가 있다고 무슨 대단한 보탬이 될 리도 없겠지만 일말의 걱정스러움을 떨치지 못해 취업 안 된 대학원생이라는 불안하고 한심스런 처지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못하는 거였다.

이제 남은 관심은 두 사람이 쥐어준 손을 얼마나 현명하게 내려놓느냐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 때문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방망이질을 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삼촌은 숙모의 손을 자기 앞으로 잡아당기는 척하면서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가급적이면 상대방이 장난으로 생각하도록 애쓰면서 소리쳤다.

“야, 커피가 좋기는 뭐가 좋으냐? 순 쓰기만 하던데.”

숙모가 얌전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커피를 달라고 했듯이 삼촌은 이런 말이야 예의로 따지면 안 하고 넘어가야 하지만, 하는 식의 어색함을 드러내면서도 끝내는 그 말을 내뱉었다. 옆으로 비스듬히 꿇어앉아 있어서 몸이 기우뚱하기는 했으나 숙모는 곧 몸의 균형을 잡았다.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의 찻잔을 엎지도 않았다. 그 후 숙모가 본능적인 동작으로 삼촌을 잠깐 노려보기는 했으나 무언가에 멈칫, 하더니 난데없이 픽, 웃었다. 고무공에서 바람이 빠지는 그런 웃음이었다. 삼촌도 숙모를 마주 보며 웃었다.

그 후 숙모의 표정은 눈에 띄게 편안해졌다. 눈가의 붉은 테두리도 사라졌다. 더 이상한 것은 삼촌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얼굴까지 찡그리며 마중 나가기를 한사코 꺼려서 기대에 부풀어 있던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더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 싶게 웃고 떠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대화 내용으로 치면 너절한 것뿐이었다. 내 생각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여러 사람을 집단으로 감복시킬 만한 추억이나 이야깃거리가 없었다. 숙모가 집안 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적이 없으니 이거다 싶은 공감대를 찾기도 힘들었다.

어쨌거나 돌연한 변화에 나는 신기한 생각이 들어 슬금슬금 가족들 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무언가 이 해명할 길 없는 들뜬 분위기에 속절없이 합류해버리겠다는 것보다는 의심하고 탐색할 목적이 더 강했다. 할아버지 뒤편에 앉아 귀를 기울였으나 노인네 특유의 쉬지근한 냄새만 맡아질 뿐 무엇을 발견해내기는 힘들었다. 나는 여전히 답답한 심정이었다.


5


오후 두 시쯤, 노래방에 가기 위해 여럿이 밖으로 나왔다. 나는 약속도 있고 해서 거기까지 따라갈 생각은 없었지만 가족들이 등을 떠미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묻어나오고 만 것이다. 둘이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들러리들은 살짝 빠져주라는 하나마나한 귀띔도 있었다.

가까운 곳으로 가자는데도 삼촌은 한사코 안 된다며 차를 가져왔다. 그 때문에 시간이 애매해서 안 그래도 주저하던 두어 명이 빠졌고 또 몇은 자리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빠졌다. 결국 서너 명의 들러리들만 남게 되었는데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아줌마였다. 올케들과 고모는 숙모가 부담스러워할지도 모른다고 하여 일찌감치 제외되었다.  

문제는 차였다. 얼마 전에 새로 뽑았다는 2500cc급 SM5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 앞으로 매끄럽게 대령한 것까지는 무척 좋았다. 새 차라 그런지 때깔도 좋고 승차감도 괜찮았다. 그런데 삼촌이 재빨리 차에서 내리는 게 아무래도 이상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문이라도 열어주려나 기대하고 있었다. 웬 안 하던 짓? 하면서 입술을 삐죽였지만 귀엽게 돌변한 삼촌의 태도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감추지 못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삼촌이 나란히 서 있던 사람들한테 다짜고짜 꺼낸 한 마디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모두 신 벗고 타!”

나는 내 귀가 의심스러워 손가락으로 후벼보았다. 다른 이들도 영문을 몰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야?” “무슨 소리야?” 하나같이 가족적인 사명감이 앞서 노래방 행을 선택한 것일 뿐 대낮부터 노래가 부르고 싶어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랬으니 갑자기 왁자지껄 소란이 벌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몇 차례의 비명에 찬 항의와 야유, 빈정거림이 오간 뒤 결국 저마다 신을 벗고 차에 올라탔다. 숙모도 예외는 아니어서 앞자리에 타기는 했지만 구두를 벗어 삼촌에게 내주어야 했다. 삼촌은 그 신들을 일일이 트렁크로 가져가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차 안에는 허탈한 한숨과 비명이 난무했다.

차 바닥에는 난데없이 장판이 깔려져 있었다. 그것도 노란색으로 된 싸구려 장판이었다. 귀가 반듯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인테리어 가게로 찾아가 일부러 끊어 온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삼촌에게 품위 없이 새 차에다 왜 이런 것을 깔았는지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가벼운 추측만으로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차에 탄 사람치고 삼촌의 병적인 여러 습성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삼촌에게는 원래 있는 깔개를 더럽히는 것은 새 차를 더럽히는 것이고 곧 새 차를 망가뜨리는 행위였다. 삼촌이 생각하기에 장판은 걷어다가 씻기에도 좋은 물건일 터였다. 매일 저녁마다 집안 목욕탕으로 장판을 걷어가 솔을 이용해 빡빡 문지르며 씻어대는 삼촌의 모습을 눈앞에 떠올리고는 모두들 또 다시 죽어라고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차 안은 이래저래 흥분의 도가니였다. 어른들도 없으니 숙모 앞이든 말든 개의할 이유도 없었다. “자동차 회사에 신고하면 이런 사람에게는 자기네 차를 팔고 싶지 않다며 도로 끌고가버릴 뿐 아니라 신고자에게는 넉넉한 포상금을 나누어 줄 것”이라는 오촌 아주머니뻘 되는 이의 험담을 필두로, “어디 결벽증 걸린 사람 다 모아다 시합시키는 프로그램 같은 거 없나?” “오빠는 베개 위에도 장판을 깔고 자나?” “밥상 위에다가는 장판 안 까나?” 하는 고함에 찬 성토가 삼촌을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는 가운데 끝도 없이 반복되었다. 삼촌은 멋쩍은 듯 빈 코를 들이마시며 흠흠 헛기침소리를 냈지만 당장 장판을 걷어낼 용의는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앞자리로 주목하게 되었는데 숙모는 뭐가 좋은지 자꾸만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옛날 생각이 나서요.”

묻지도 않았는데 숙모가 뒤돌아보며 운을 떼었다.

“이 사람이 아직도 이러고 살 줄은 정말 몰랐어요. 옛날에는 당할 때마다 그렇게 화가 나더니, 지금은 너무 황당해서 웃기기만 해요. 참, 새 차에다가 노란 장판이라니……”

숙모가 또 다시 소리내어 웃었다. 그러자 바른 소리 잘 하고 입이 걸기로도 유명한, 숙모와 나이가 비슷한 종고모가 입술을 과장되게 삐죽대면서 맞장구를 쳤다.

“오빠는 평생 고생 좀 해야 돼. 늙어서도 그저 혼자 쌀 씻고 혼자 병원 가고 혼자 밥 먹으면서 외롭다고 찔찔거리고…… 남자들은 그래봐야 정신을 차린다니까. 언니야, 우리 오빠 두들겨패서라도 사람 좀 제대로 만들어봐라.”

종고모가 숙모의 등을 다정하게 툭 치고 나서는 진저리 난다는 듯 삼촌 쪽을 향해 팔을 내저었다. 우린 여기서 다 내릴 테니까 오빠 혼자 실컷 노래 부르고 와라, 하며 삼촌을 향해 빈정대기도 하였다. 숙모도 제법 흥이 난 것 같았다. 목소리에는 신바람이 들어가 있었다.

“이 사람, 옛날에 어땠는지 알아요? 고무장갑으로 쌀 씻으면 난리 나잖아요. 비위생적이라는 거지요. 게다가 화장실에서 샤워하고 나오잖아요? 잠깐 머리 말리는 사이에 개구리처럼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비명을 지르고 난리예요. 이 머리카락, 이 비눗물 좀 봐, 샴푸 통은 왜 제 자리에 갖다 놓지 않는 거지? 하면서요.”

숙모의 밉지 않은 고자질에 고기떼 만난 어부들처럼 여기저기가 또 한 차례 술렁거렸다. “웃기고 있네.” “그걸 가만 뒀어?” “나 같으면 당장……” 하는 식의 장난기 어린 호통과 성토가 웃음보따리가 되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팔을 걷어붙이는 시늉을 하는 이도 있었다. 과연 기 센 여자들이 모이니 한 마디씩만 떠들어대도 차가 들썩들썩 난파선처럼 흔들렸다.

삼촌은 집중 포화를 받고도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가끔 신호에 걸려 급정거를 하면서 “그래도 내가 말이야 인마……” 하는 식으로 뒷머리를 긁적이곤 했지만 나름대로 꿋꿋하게 그 시간을 견디면서 버티고 있었다. 

차가 주차되고 나자 삼촌이 먼저 내려 트렁크로 가서 신을 일일이 꺼내왔다.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 입은 중년 신사가 양 손에 여자 신 한 켤레씩을 들고 바삐 움직이는 모습은 무슨 코미디의 한 장면처럼 우스꽝스러웠다. 대여섯 명이 자기 신을 찾느라고 좁은 차안에서 또 한 차례 소란이 일어났다.

“토끼 굴에 갇혔다가 드디어 햇빛 속으로 빠져나온 기분이네.”

“난 뚜껑이 고장 난 세탁기 안에 들어 있었던 느낌이야. 아, 이제야 살 것 같다.”

저마다 해방감에 만세를 부르고 기지개를 켰다. 차에서 먼저 내린 종고모는 “나는 돌아갈 때는 택시 타고 갈란다.” 하면서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6


들뜬 분위기는 계속 이어졌다. 노래방 대신 삼촌이 가끔 이용한다는 단란주점으로 들어가 커다란 홀을 빌렸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뒤섞여 노래하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노는 데라면 어디든 빠지지 않는 사람들이 모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훤한 대낮이었다. 어디서 그런 흥이 밀려오는지 술을 흘려가면서 함부로 잔을 부딪치는 게 아무래도 술깨나 취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삼촌은 노래하기보다는 술이나 안주가 부족한지를 살피면서 주문하기 바쁘고 날라온 것들을 먹어보고 평가하면서 이것저것 타박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몇몇 안주는 할 수 없이 주방으로 되돌아갔다.

“오빠야, 이제 고만 하고 이리 와서 노래 좀 해봐라.”

종고모의 채근에도 아랑곳없이 삼촌은 구경꾼처럼 구석자리에 앉아 손가락으로 양복 윗도리에 묻은 먼지만 톡톡 털어낼 뿐이었다. 마침내 종고모가 삼촌의 팔을 잡고 다짜고짜 무대 쪽으로 끌어냈다. 그러고는 두 팔을 벌려 잡은 채 억지로 춤추게 만들었다. 하지만 팔을 놓으면 삼촌은 물가에 처음 나간 어린아이처럼 어찌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면서 바보처럼 흐물흐물 웃기만 했다. 잠시 음악소리가 멎은 틈을 이용해 종고모가 숙모에게 소리를 질렀다.

“언니야, 우리 오빠 좀 바보 같지? 나도 이렇게 답답한데 언니는 오죽 하겠나?”

종고모의 얼굴은 열기 때문에 이미 불콰한 상태였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갑자기 눈을 빛내면서 숙모를 쳐다보았다. 뒤죽박죽 모두 본정신이 아닌 줄 알았더니 저마다 자기의 임무를 잊지 않은 그런 표정이어서 나는 조금 놀랐다. 숙모는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을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자기만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리는 눈치를 보이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 성격은 변하기 힘들다고 하잖아요.”

숙모는 겨우 그런 말을 하면서 모호하게 웃었다. 사람 성격이 웬만해서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겠는데 그래서 어떻다는 이야기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원래 지나치게 솔직한 데다 빡빡하기까지 한 사람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꽤나 편안해진 모양이었다. 그러는 사이 누군가 이것저것 눌러놓은 노래가 쉴 틈 없이 흘러나왔고 흥에 취한 사람들 탓에 결국 분위기 깨는 삼촌은 뒤로 밀려났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숙모가 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사람들과 어깨를 걸고 눈을 감은 채 노래에 흠뻑 취해 있었다. 음정이 높이 올라갈 때에는 가수처럼 팔을 앞으로 뻗어가면서 박자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종고모의 커다란 궁둥이가 관광버스 아줌마의 그것처럼 실룩실룩 신나게 흔들렸다. 저마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위아래도 없이 실컷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가끔 미혼인 내가 알지 못하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무언가를 쏟아내면서 묘하게 서로 공감하고 합심하는 분위기를 표현했는데 궁금한 나머지 은근슬쩍 끼어들기라도 하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하면서 밀쳐냈다. 

그때까지 술 한 잔도 하지 않은 삼촌은 슬그머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신경이 쓰이기는 했지만 화장실에 가겠거니 하면서 못 본 체했다. 가끔 번호를 눌러놓았다가 차례가 다가오면 나 역시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반응은 좋지 않았다. 내 딴에는 요즘 유행하고 있는 신나는 노래만 골라 신청해도 하나같이 분위기를 깬다면서 불만이 이만저만하지 않았다. “결혼도 안 하고 사회생활도 못 해본 네가 인생에 대해 뭘 알아?” 막말을 하면서 아예 마이크를 빼앗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쳇, 누가 사회생활 하기 싫어서 안 하나.” 나도 지지 않으려고 몰래 ‘우선 선곡’을 누르고는 끈덕지게 마이크를 가로채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1절도 다 부르지 못하고 쫓겨 내려왔다.

한참을 정신없이 놀다가 하나 둘 지쳤는지 자리에 와서 앉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삼촌은 돌아오지 않았으나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도 전남편이라고 숙모가 두리번두리번하더니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숙모도 삼촌도 이내 돌아오지 않았다. 궁금해진 김에 나도 밖으로 나가보았다. 카운터며 화장실을 기웃거려 보았으나 두 사람 모두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복도에 있는 커다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게 되었다. 놀랍게도 거기에 삼촌과 숙모가 서 있었다. 두 사람은 과일 노점상 앞에 서서 홍시를 나눠먹고 있었다. 감물이 양복에 떨어질세라 엉덩이를 한껏 뒤로 빼고 홍시를 먹는 삼촌의 모습은 조금 한심해 보였다. 나는 숙모가 눈치 채지 못하게 끼어들어 당장 자세를 교정해 주고 싶은 충동마저 느꼈다. 게다가 홍시의 맛인지 뭔지에 턱없이 몰두해 있는 게걸스런 표정도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찌된 노릇인지 두 사람 사이에는 더 이상 그런 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삼촌이 물이 줄줄 흐르는 홍시를 반으로 갈라서 내밀면 숙모가 그동안의 앙금이 깨끗이 증발해버린 표정으로 하나하나 받아서 천천히 핥아먹었다. 일말의 흥분이나 조금의 갈망조차도 없는 느긋한 모습에서는 오래 된 부부의 곰삭은 연륜 같은 것이 느껴져서 나는 차라리 뜨악한 기분이었다. 납득하기 어려운 그 장면을 뒤로 한 채 슬그머니 그곳을 빠져나왔다. 공연히 심사가 외롭고 울적해진 나는 한 시간 가량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7


며칠 후에 삼촌이 할아버지를 만나려고 집에 들렀다. 우선 밥부터 먹는다고 식탁에 앉으려는 참에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삼촌은 뭐가 그리 좋은지 유쾌한 목소리로 낄낄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무슨 즐거운 소식이라도 접한 사람 같았다.

“너도 갈 거냐? 그럼 만나서 같이 가자.”

그러다가 나는 전화를 끊을 즈음해서 그 상대가 숙모라는 것을 눈치 챘다. 나는 약간의 충격과 함께 속으로 참 이상한 사람들도 다 있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왕 잘 되어 가고 있는 거라면 마다할 까닭은 없었다. 안 그래도 삼촌이 혼자라는 사실이 가족들에게 점점 부담이 되어 가던 중이었다. 아무리 성격이 별나서 스스로 세탁하고 청소하고 밥 짓는 것을 즐긴다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언젠가 삼촌도 이제는 누군가와 같이 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최근에는 집에 혼자 들어가는 게 두려워 밖에서 실컷 놀다가 완전히 탈진할 지경이 되어서야 들어가는 일이 잦아졌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에는 내 마음도 좋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것은 삼촌의 행복이었다. 삼촌이 식사를 끝내자 나는 조바심이 나서 의자를 바싹 당겨 앉으며 물어보았다.

“두 분,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합치기로 했어요?”

그러자 삼촌은 너 아직도 모르냐?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벌써 날이라도 잡았나 싶어 아차 했다. 생각해보니 어제는 고모도 뭐가 다 이루어져서 이제는 안심이라는 눈치를 보이고 갔었다. 하지만 남의 이목이 있고 절차라는 게 필요한 법인데 설마 그 옛날처럼 얼렁뚱땅 되는 대로 아무 날이나 살림을 합치기로 한 것은 아니겠지? 나는 우려와 걱정이 담긴 눈초리로 삼촌의 표정을 관찰했다. 그런데 삼촌의 뒷말은 영 시들하고 김빠지는 내용이었다.

“숙모가 그러던데, 뭘 새삼스럽게 다시 합치느냐고.”

“네?”

허탈해져버린 나는 혹시 삼촌이 장난을 치나 하고 눈치를 살폈다. 장난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이상한 점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의기소침하지도 않았고 좌절감이 드러난 표정도 아니었다.

“그럼, 왜 전화가 온 거예요?”

“응, 그거. 며칠 있으면 친구놈이 딸을 여의는데 같이 가자고. 우린 그냥 친구처럼 지내기로 했어. 나도 그게 편하고 좋아.”

“친구요?”

자기네가 무슨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기를 밥 먹듯이 하는 이삼십대 청춘남녀라도 되나. 나는 어이가 없고 황당하여 그만 픽 웃어버렸다. 하기는 그 성격에 언감생심 누구랑 살 생각을 다 하다니 어림도 없지,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자 왠지 삼촌하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 곁으로 가서 대충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런데 내 말을 전해 듣는 어머니의 반응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뭔가 속았다는 뜻으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심정으로 분통을 터트려야 옳은데 이상할 만큼 담담하고 태연했다.

“다 잘 된 거라. 이제사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암 그렇고 말고를 연발했다. 나는 어머니가 무언가를 오해하거나 착각했다고 여겨져서 발을 구르면서 그게 아니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문득 지난번 당숙모가 “자네가 아니면 누가 이 일을 매듭지을 수 있겠나?” 하고 말하던 것을 떠올리고는 “이게 매듭이 지어진 거예요?” 물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시원하고 힘차게 끄덕이는 것이었다.

“매듭이 지어졌지. 사람은 뭣에든지 마음을 다하는 게 중요한 법이라. 결과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것이지. 인연이라는 기 울매나 많은 사람들이, 울매나 많은 공을 들여야 이루어지는지 아나? 그래서 질기고 무서운 기 인연이라는 거라. 그것을 이해한 것 같응께 니 삼촌도 비로소 어른이 되어 가는 중이다. 덕분에 어둡고 꿉꿉하던 집안이 이제는 이렇게 훤해졌잖애?”

어머니는 자기 말에 도취된 듯 빛나는 시선으로 허공을 응시하였다. 무언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으나 나는 여전히 답답했다. 매듭이 지어졌다면 언제 어떻게 지어졌다는 말일까.

“두 사람이 합칠 의향이 전혀 없다는데도?”

하나마나한 질문이 되리라고 짐작하면서도 나는 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느냐면서 쯧쯧 혀를 찼다. 숫제 나를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 취급이었다. 힘이 빠진 나는 투덜거리면서 내 방으로 돌아왔다. 이상하게도,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집안에서 나만 따돌림 당하고 있다는 얄궂은 느낌이 든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문장 웹진/ 2007년 8월》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