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이구아나

 

아내의 이구아나



김혜정




새벽 다섯 시. 일요일인데도 습관적으로 눈이 떠졌다. 검푸른 미명이 들어찬 방안은 더없이 고요했다. 어젯밤 분명히 아내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침대 모서리로 밀려나 있는 베개와 침대 시트의 혈흔만이 아내가 들고 난 자리라는 것을 소리 없이 말해주었다.  

어젯밤 동료들과 마신 술 탓인지 아내의 머리칼에서 나는 사향의 유혹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정해진 요일에만 관계를 해야 하는 것이 아내가 제시한 결혼 조건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매달리다시피 했다. 제발 한 번만. 안 돼. 그날이야. 아내의 매몰찬 어투에 슬그머니 오기가 났다. 어떻게 된 게 툭하면 그날이야? 아내는 전부터 월경통이 심했고 유산 후 월경 주기가 흐트러진 것을 알면서도 나는 찌그렁이를 부렸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돌아서는 아내를 우격다짐으로 침대 위에 쓰러뜨렸다.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아내의 귀에 대고 나는 사랑해, 라고 목젖이 달랑거리도록 말했다. 금기를 깨면 소금기둥이 된다니까. 전설 속 이야기의 엄중한 경고에 나는 금세 의기소침해졌다. 기수를 돌리려는 찰나, 아내가 내 몸 위로 올라왔다. 흘러내린 아내의 긴 머리칼이 내 가슴 위로 쏟아졌다. 나는 아내의 머리칼이 가슴에 닿는 가슬가슬한 감촉을 되도록 오래 음미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내의 유방이 리듬을 타고 팽창하자 페니스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아내의 머리칼은 사향노루 수컷의 하복부 향낭을 쪼개 말린 가루에서 난다는 향을 내 음낭에 불어넣기라도 하듯 내 몸을 타고내리며 질주를 계속했다. 그 황홀감은 오히려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마침내 나는 급류에 휘말리듯 곧 사정했고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잠결에 아내가 곁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생각지도 않은 보너스를 받은 것 같았다. 관계 후에도 잠은 따로 자는 것 또한 규약이었으니까. 나는 슬쩍 아내의 배 위에 다리를 올려놓았다. 탁, 하고 거칠게 다리를 밀쳐내는 아내의 손은 파충류의 표피처럼 차갑고 축축했다. 모처럼의 보너스를 날치기당한 박탈감을 주체하지 못한 채 나는 코고는 시늉을 했다.

잠의 부스러기를 털어내기 위해 나는 심호흡을 하고 기지개를 켰다. 관절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내일부터는 헬스장에라도 다녀야지, 다짐하며 두 손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몽롱했던 정신이 점차 또렷해졌다.

욕실을 향해 가다가 무심코 아내의 방 쪽을 돌아보았다. 방문이 빠끔 열려 있었다. 문을 잠그고 자는 건 아내의 습관인데 이상했다. 나는 조심조심 아내의 방 앞으로 갔다.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잠자는 아내의 방문을 함부로 열면 안 되는 것도 아내와 맺은 규약 중의 하나였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는 방문을 열었다.   

아내의 방은 비어 있었다. 가지런한 침구에는 아내가 들고 난 흔적이 없었다. 나는 조금 전, 곁에 아내가 없는 것을 확인했을 때와는 또 다른 허전함을 느꼈다. 혹시나 하고 욕실을 두드렸지만 역시 기척이 없었다. 꺼림칙한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오줌을 누었다. 오늘따라 오줌발은 유난히 길고 거셌다. 운동장이라도 몇 바퀴 돌려고 나갔을까? 하지만 아내는 운동은커녕 맨손체조도 하지 않는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대중탕은 병균의 집합소라고 여기는 아내가 목욕탕에 갔을 리 없었다. 더구나 요사이 며칠 동안 아내는 외출은 물론,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방에서 나오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 새벽에 아내가 외출해야 할 이유가 좀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하릴없이 담배를 물고 베란다로 나갔다가 발길에 채는 이물감에 등줄기가 서늘했다.

청록색을 띤 이구아나가 양배추를 아귀아귀 뜯어먹고 있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한 달 전에 놈은 스스로 꼬리를 자르고 감쪽같이 사라지지 않았던가. 그 사이에 놈은 오 센티미터는 더 자란 것 같았다. 고막 아래에 부풀어 오른 둥근 비늘이며 주둥이에 뿔처럼 튀어나온 덩어리가 늘어져 놈의 몰골은 더욱 흉측했다. 잘렸던 놈의 꼬리까지 울퉁불퉁하게 다시 자라 있었다.

놈이 종적을 감춘 후 아내는 매사에 의욕을 잃은 듯 시르죽어 지냈다. 나 또한 막상 놈이 보이지 않자 놈과 직접 맞대고 있을 때 느꼈던 불쾌감은 오히려 별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놈이 어딘가 훨씬 더 깊숙한 곳에 숨어서 내 혼을 야금야금 파먹는 것 같았다.

자꾸 이상한 꿈을 꿔. 무슨 꿈? 아니……. 말끝을 흐리는 아내를 채근했다. 왜? 나도 잘 모르겠어. 불길 속에서 포효하는 공룡을 보는 거야. 그 눈이 날더러 살려 달라고 하는 것 같았어. 근데 난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어……. 결국 나는 기다란 꼬챙이를 만들어 집안 구석구석을 헤집었다. 차라리 사방으로 시꺼멓게 꼬이는 바퀴벌레를 잡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서랍장과 장식장, 장롱까지 들어냈지만 허사였다. 아내는 자신의 면죄부인 양 매일 놈의 집 근처는 물론, 곳곳에 푸성귀를 놓아두면서 놈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한동안 놈이 불쑥 튀어나오는 상상을 하며 진저리를 쳤다. 한밤중에도 놈이 침대 위를 어슬렁거리는 꿈을 꾸었다. 밤마다 아내 모르게 양배추와 양파를, 브로콜리와 마늘을 바꿔치기하면서 놈이 영원히 사라지기를 바랐다. 독한 냄새에 질식이라도 한 모양이군, 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간신히 놈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놈이 다시 나타나다니. 왠지 놈이 사라졌던 것과 아내의 외출에 무슨 상관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 년 전 유산을 한 뒤로 아내는 일체의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만 고집했다. 몸무게가 십 킬로그램이나 줄어든 것도 문제였지만 말수가 줄고 신경이 몹시 날카로워졌다. 그런 아내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쉐프렐라홍콩, 천냥금, 마삭줄쟈스민, 인디아, 콤팩타, 고무나무 페페로미아, 파키라 같은, 물만 주면 잘 죽지 않는 화분을 사들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화초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아내가 어느 날인가 별안간 이구아나를 기르자고 했다. 그 징그러운 파충류를 집안에 두자는 거야? 징그럽기는, 얼마나 예쁜데. 온순하고…….

나는 이구아나든 뭐든 파충류라면 딱 질색이었다. 어렸을 때 개울에서 도마뱀을 보고 호기심에 슬쩍 손을 댔다가 기겁을 했다. 그 축축하고 이상한 느낌이라니. 차라리 금붕어를 기르자. 이구아나를 기르자고 하면서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던 아내는 금세 풀이 죽었다. 청거북이는 어때? 싫어. 그럼 햄스터. 싫어, 난 이구아나를 기르고 싶어.

둘만의 공간에 새로운 생명체가 들어오자 처음 얼마간은 나도 신기했다. 게다가 놈의 몰골이 볼수록 우스꽝스러워 시간 날 때마다 놈을 들여다보았다. 꼬리를 치켜들고 입을 벌리는 놈에게 다가가 목덜미를 쓸어주면서 온갖 아양까지 떨었다. 물론, 그것은 놈이 아닌, 아내의 환심을 사려는 거였다. 하지만 그 짓도 얼마 안 가서 시들해졌다. 이 녀석이 날 알아보는 것 같아. 아내는 수시로 놈을 핸들링하고 목욕시켰다. 갓난아이의 피부에 파우더를 발라주듯 놈의 표피에서 꼼꼼히 물기를 닦아냈다. 아, 보송보송해. 당신도 만져 볼래? 아내가 그럴 때마다 나는 흠칫하며 한 발짝 물러났다. 어머, 이 갈색 반점 좀 봐. 스트레스를 받아서 이렇지 뭐야. 그러게 혼자 오래 놔두면 안 되는 건데. 마트에 들르는 날에도 아내는 종종걸음을 쳤다. 장바구니는 반찬거리나 생필품보다 놈을 위한 용품들로 채워졌다. 냉장고에 가득 찬 상추, 당근, 브로콜리, 애호박은 놈의 먹이로 사용될 뿐 좀처럼 식탁에 오르지 않았다. 아내도 생야채를 먹기는 했지만 놈의 몫을 챙기고 남은 것을 조금 먹는 것에 불과했다. 나는 점차 그것들을 입에 대기조차 싫어졌다. 놈에게 사료를 먹이라는 내 말을 아내는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사료는 부족한 단백질과 칼슘 공급을 위한 이유식 정도로 족하다는 거였다.

놈은 아내의 지극정성 덕에 무럭무럭 크는 것 같았다. 삼사 년만 지나면 이 미터까지 자란대. 아내는 베란다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는 대형 사육장을 주문제작 했다. 베란다에 떡 버티고 있는 사육장을 보면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다. 놈을 몇 년씩이나 집에 두어야 한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하지만 놈으로 인해 아내가 활력을 되찾았다는 것에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바닥재로 신문지가 좋다고 수선을 피우던 아내는 며칠 안 가서 톱밥으로 갈아주었다. 신문지에서 나오는 잉크가 몸에 해롭대. 놈이 톱밥을 먹는 걸 본 아내는 다시 혀를 내둘렀다. 좀 비싸더라도 랩티바크로 바꿔야겠어. 자외선을 쬐어주어야 한다며 UVB등을, 스팟램프보다는 락히터가 놈의 건강에 이롭다며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치르고 사들였다. 놈이 편하게 쉴 곳이 있어야 한다며 나무 그늘을 만들어주었고 때때로 목줄을 매어 산책을 나갔다. 놈을 들여온 지 반 년쯤 지났을 때 아내는 아예 놈을 풀어 기르자고 했다. 머리카락 하나 떨어져 있는 것도 보아내지 못하는 아내였다. 저렇게 갇혀 있으니 얼마나 갑갑하겠어? 놈의 건강과 자유를 위해서 내 정신 건강에 위협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놈이 아무데나 똥을 내갈기는 꼴을 보아야 한다는 걸 용납할 수가 없었다. 가족인데 그 정도는 참아야지. 뭐, 가족? 난 이 녀석이 핏줄처럼 당기는 걸 느껴. 귀가 밝아서 깜짝깜짝 잘 놀라지, 따뜻한 거 좋아하지. 남하고 어울리는 거 싫어하고 자폐적인 것도 나랑 닮았어. 당신, 지금 제 정신이야? 결국 놈으로 인해 티격태격하는 일이 자주 생겼다.    

나는 놈을 노려보았다. 놈도 주황색 눈알을 불안하게 굴리면서 볏을 치세웠다. 나는 놈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주먹 쥔 손을 놈의 눈 가까이 대자 쉬잇, 소리까지 내며 기다란 장식 비늘까지 꼿꼿하게 세웠다. 나는 놈을 유인하기 위해 손을 폈다 오므렸다, 를 반복했다. 교활하게도 놈은 쉽사리 경계를 풀지 않았다. 나는 조금 전의 동작을 다시 보여 주면서 손가락을 흔들었다. 놈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왼손으로는 손가락을 흔들고 오른손으로 놈을 살짝 쓰다듬는 척했다. 놈이 발톱을 갉작이며 반항하는 터에 놈과의 신경전은 계속되었다. 나는 뜨거운 물을 받아다 놈의 욕조에 붓고 놈을 그 속에 넣었다. 놈은 거기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욕조에 손을 넣자 놈이 손을 타고 올라왔다. 이때다 싶어 나는 놈의 목을 만져주는 척하면서 놈의 목을 비틀었다. 순간 놈이 몸을 뒤트는데 손바닥에 감겨드는 감촉이 섬뜩했다. 손아귀에서 힘이 절로 풀렸다.

나는 계속해서 아내의 휴대폰에 전화를 걸었다. 받을 수 없다는 멘트만 계속되었다.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커피를 타다가 문득, 아내가 등 뒤에서 팔을 감아오는 것을 느꼈다. 식전에 커피 먹지 말랬지? 어? 하고 돌아보는 순간 등이 서늘했다.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활공하는 잠자리처럼 아내의 잔영이 멀어져갔다. 챙그랑, 커피 잔이 손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깨진 컵의 파편을 치우고 쏟아진 커피를 닦는데 내가 할게, 아내가 행주를 앗아들었다. 가사라면 무엇이든 아내에게 슬쩍 넘겨주고는 리모컨을 들고 소파에 벌렁 드러누웠던, 무렴하고 게으른 남편. 허리를 굽힌 아내의 등에 비늘이 돋았다. 흡, 숨을 삼키는 순간 아내의 모습은 가뭇없고 흩어진 파편 위로 희끄무레한 불빛이 잘게 부서졌다. 다시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면서 아내의 잔을 꺼냈다. 난 블랙. 커피 잔을 들고 있는 아내의 희고 기다란 손을 바라보다 아내를 살짝 껴안곤 했다. 달콤한 키스의 상상도 식어버린 커피 앞에서는 싸늘한 여운으로 남을 뿐이었다.

거실을 서성이다 텔레비전을 켰지만 방송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욕실로 들어가 온수와 냉수를 번갈아가며 샤워를 했다. 무언가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지만 섣부른 노파심을 갖지 말자, 스스로를 다독였다. 팬티만 달랑 걸친 채 거울 속에 들어앉은 사내의 미간에 주름이 깊었다. 거울에 얼굴을 들이밀면서 입을 벌리자 누런 이 사이로 거뭇거뭇한 충치의 흔적이 흉물스러웠다. 이가 마모되어 이와 이 사이, 잇몸과 이 사이에 틈이 보였다. 그 틈으로 인해 찬물로 양치를 하면 이와 잇몸이 시렸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아내와 나 사이도 조금씩 벌어졌던 것이다. 일주일에 사나흘은 야근에, 최근에는 지방 취재다 뭐다 해서 부쩍 출장까지 잦았다. 아내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지도 꽤 오래 되었다. 거울 속 사내의 벗겨진 이마는 군데군데 흰 머리칼로 인해 더욱 추레했다. 아내의 매끈한 몸매와 투명한 살결이 떠오르면서 알 수 없는 소외감이 후드득 감겨들었다.

결혼 후 이 년 남짓, 아내와 나는 별 탈 없이 살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아내에게 기묘한 괴리감을 느끼곤 했다. 아내의 영혼이 아닌, 아내의 몸만 내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어딘가에 혼을 빠뜨리는 듯 무르춤한 시선. 뜨겁게 불이 붙었던 아내의 몸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얼음주머니처럼 차가워지는 것을 몇 번인가 경험했다. 보름 전 일만 해도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인기척이 나서 슬쩍 거실로 나가보았다. 아내가 거실의 붙박이장에서 무언가를 꺼내 입에 넣었다. 아내가 나 몰래 거실장 속에 무얼 감춰두고 먹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한밤중에 일어나 무언가를 먹는다면, 그것도 냉장고가 아니라 거실장에서 꺼내 먹는 거라면 뭔가 석연치 않았다. 혹 아내가 나 모르게 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가슴이 철렁했다. 아내가 입에 넣은 것이 이구아나의 사료라는 것을 확인하고도 나는 잘못 본 거겠지,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문제는 다음날 아침이었다. 이거 왜 꺼내 놨어? 뭐? 이 사료. 아내는 식탁 위에 놓인 사료 봉지를 들고 있었다. 사료? 당신이 꺼내 놓은 거 아냐? 아니. 이상하네? 거실장 속에 넣어둔 건데 왜 여기 나와 있지? 바닥에도 떨어져 있고. 인쥐가 있나 보지 뭐. 나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말하며 아내의 표정을 살폈다. 아내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역력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사료 봉지를 거실장 속에 넣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나는 무언가 예리한 것에 가슴을 찔린 것 같았다. 그날 저녁 퇴근해 돌아왔을 때 아내는 애호박을 날것으로 우적우적 씹어 먹고 있었다. 당신 뭐해? 아내는 내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런 아내가 딴 세상 사람인 양 낯설었다.

아내의 외박은 당혹스러웠다. 사고와 외도, 실상 그 둘의 차이는 없겠지만, 그 둘 중 하나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며 살을 파고드는 불안과 폭발적인 분노 사이에서 갈등하며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아무래도 외도 쪽은 아닌 것 같았다. 그 흔한 채팅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는 데다 외출이라고는 나와 함께 마트에 가는 정도로 만족하는 아내였으니까. 더구나 헤픈 성정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아내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외도의 의혹보다 덜 혹독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사고라면 연락이 올 거였다. 나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생각하기 위해, 또 그렇게 보이기 위해 표정을 가다듬고 거울을 보았다. 여느 때보다 더 섬세하게 면도를 하고 오래 샤워를 했다. 반듯하게 다려진 바지와 셔츠에서 아내의 야문 손끝이 느껴졌다. 나는 아내의 코트 옆에 걸린 가죽점퍼를 걸쳐 입고 출근을 서둘렀다. 

가스를 잠그고, 켜진 전열기구가 있는지 일일이 확인했는데도 엘리베이터가 서는 순간, 드라이기 코드를 꽂아놓고 나온 것 같아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이라도 집을 비울 때면 꼭 그렇게 재확인을 하는 아내에게 면박을 주곤 했다. 코드가 뽑혀져 있는 드라이기를 확인하고 욕실에서 나오는데, 인터폰이 울렸다. 황급히 인터폰을 들자 화면에 아파트 상가 슈퍼마켓 청년의 얼굴이 비쳤다.

“배달 왔습니다.”

“시킨 거 없는데요.”

“맥주 한 박스 시키셨잖아요?”

“안 시켰다니까요.”

“어? 맞는데…….”

고개를 갸우뚱하는 청년의 얼굴 옆으로 인터폰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이 기분으로는 도저히 출근을 해도 일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회사에는 몸이 아프다고 둘러댄 후 아내의 방으로 갔다. 아내의 몸이 빠져나간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가지런한 침구,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단정하게 놓인 화장품들이 아내의 부재를 확인시켜 줄 뿐이었다. 아내의 방이 더없이 낯설었다. 나는 맥없이 아내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엉덩이께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뜻밖에도, 이불 밑에 아내의 휴대폰이 있었다. 휴대폰에서 무언가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화초에 물을 주고 누렇게 뜬 이파리들을 잘라낸 후 신문과 잡지를 한데 모아 분리수거함에 넣었다. 그런 일을 하는 데에는 채 이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섬세하고 자상한 남편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광고 속의 모델처럼 빨래 건조대에서 수건과 속옷들을 걷어와 개켰다. 브래지어의 알록달록한 꽃무늬가 앙증맞았다. 그것과 세트인 팬티를 펼쳐놓고 그 안에 아내의 몸을 그려 넣었다. 매끈한 등과 잘록한 허리, 아내의 몸은 완벽한 곡선을 이루고 있었다. 그 곡선의 우아한 흔들림에 동요되어 가슴이 더 서늘했다.

아내의 휴대폰에 저장된 전호번호 목록은 없었다. 어제부터 내가 건 것 외에는 통화한 내역도 없었다. 무언가 더 아내의 흔적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화장대 서랍에는 수첩이나 메모지 한 장 없었다. 워낙 깔끔한 성격에 정리 벽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의도적인 가출이라는 단서로 충분했다. 옷장이며 신발장을 열어보았으나 아내가 무슨 옷을 입고, 어떤 가방을 들었으며 신발은 어떤 것을 신고 나갔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아내에게 이렇게 무심했구나 싶으니까 새삼 아내에게 미안했다. 아내의 부모님은 안 계시고 언니는 외국에 나가 있으니 하는 수 없다 해도 친구 전화번호 하나를 모르고 지냈다니. 게다가 유산 후 아내는 직장마저 그만두었다. 아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자괴감의 밑바닥에서 길고 어두운 터널이 보였다.

베란다로 흘러드는 저녁 햇살 속에서 나는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눈을 뜨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미세한 먼지의 부피, 스파트필름의 꽃잎이 열리는 움직임, 구아바의 열매가 벌어지는 모양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는 동안 입안이 타고 명치께가 무지근했다. 어쩌면 옛 친구의 갑작스런 부음을 듣고 고향에 내려갔는데 배가 끊겼을지도 몰랐다. 아내의 고향은 전라도 어느 소도시에서 배를 타고도 두 시간이나 들어가는 섬이라고 했다. 허둥대다 하필 휴대폰을 두고 나갔고, 경황이 없다 보면 연락을 못할 수도 있을 거였다. 혹 캐나다에 있다는 언니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전에도 한 번 아내는 연락 없이 늦게 들어온 적이 있었다. 언니가 다녀갔어. 그럼 나한테도 연락을 했어야지. 다음번에. 언제 또 오신다는데? 글쎄. 아내의 얼굴에 드리운 피로의 더께가 너무 두터워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그날처럼 피곤한 얼굴로 아내가 돌아오면 편히 쉴 수 있도록 청소와 빨래를 해두는 게 훨씬 현명한 거야. 나는 세제를 풀어 욕조와 욕실 바닥, 변기를 닦아내고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냈다. 청소기를 돌린 후 남아 있는 머리칼이나 음모는 아내가 했던 대로 테이프를 꾹꾹 눌러 제거했다. 진작 이랬다면 아내가 좋아했을 텐데,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나쁜 일이란 때로 삶의 어떤 부분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 않던가. 나는 짐짓 휘파람까지 불어가며 세탁물들을 챙겼다. 양말이며 셔츠, 아내가 요즘 입었던 옷가지들을 세탁기에 넣으려고 세탁기의 덮개를 열었다.

세탁기 속에 맥주병이 가득 차 있었다. 차곡차곡 쌓인 맥주병은 모두 빈 병이었다. 아침부터 맥주 배달을 온 청년에게 화를 냈던 것이 떠올랐다. 혹시나 해서 열어본 다용도실의 벽장에도 술병이 즐비했다. 소주병, 양주병, 와인병들로 가득 찬 벽장은 무슨 주류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조립식 식탁 밑의 싱크대 서랍장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온 집안의 문 달린 것들을 모조리 열어보았다. 그럴 듯하게 포장된 박스나 상자, 혹은 종이백과 비닐백 속에 고즈넉이 들어앉은 병들이 나를 향해 일제히 야유를 퍼붓는 것 같았다. 집안에 이렇게 많은 술병이 쌓이도록 모르고 있었다니. 뭔가에 뒤통수를 얻어맞긴 했는데 그것의 실체를 모를 때의 황당함이랄까. 괴이한 음모에 휘말린 것도 같았다. 별안간 술병들이 무슨 괴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비틀리고 오그라진 병들이 나를 향해 날을 세우고 달려들 것만 같았다. 실제로 나는 파편이 박힌 것처럼 살이 쑤시고 살갗이 쓰렸다.

아내의 휴대폰이 울리다 끊어졌다. 통화 버튼을 눌러 보았지만 착신이 차단된 번호였다. 기껏 뛰어갔는데 버스가 출발해버렸을 때처럼 허탈한 심정으로 휴대폰을 쥐고 있는데 이번에는 집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송은미 씨 댁이죠?”

아내의 이름은 송은희였다.

“예?”

“송은미 씨 댁 아닌가요?”

“아닌데요.”

“네에. 죄송…….”

전화를 끊으려는 여자에게 나는 혹 송은희를 찾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여자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재차 물었을 때에야 아니라고 했다. 아, 아뇨, 아니에요. 툭툭 부러지는 말마디를 갈무리하느라 여자의 숨이 허공에서 미끄러졌다. 저, 아내가 실종돼서 그러는데……. 뭐라구요? 황망해하는 여자의 목소리는 이미 아내를 알고 있다, 말하고 있었다. 나는 여자를 조르다시피 해서 간신히 만날 약속을 얻어냈다.

    

놈이 어둠 속에서 길게 늘여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놈 옆에 사료를 가져다놓았다. 가족 운운하며 끔찍이 아끼던 놈을 향한 아내의 느닷없는 적의는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한 달 전 늦은 밤이었는데, 나와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을 보던 아내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놈을 목욕시켰다. 나는 소파에 누워 요즘 한창 뜨는 개그 프로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은근히 마음이 삐뚜름해졌다. 개그 프로가 끝난 후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슬쩍 아내를 곁눈질했다. 기회를 보아 어깃장을 놓을 생각이었다. 베란다에 서 있는 아내의 손에 전지가위가 들려 있는 것을 보았지만 무심코 지나쳤다. 아내가 놈에게 가위를 겨누는 것을 본 것은 위성 채널의 낯 뜨거운 정사 장면 때문이었다. 포르노 비디오를 틀어놓고 부부관계를 한다는, 동료의 말이 은밀하게 귀를 간질였다. 텔레비전 앞으로 아내를 불러들일 구실을 찾는데 머쓱했다. 순간, 내가 손을 쓸 겨를도 없이 아내가 놈을 향해 가위를 내리쳤다. 아내의 몸이 균형감각을 잃고 비틀거리는 틈을 타 놈은 꼬리만 남긴 채 사라져버렸다. 흉물스럽게 늘어져 있는 놈의 꼬리가 꿈틀, 했다. 머리칼이 쭈뼛 서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처 놈의 집까지 부숴버린 아내는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찻집의 손님 중에 여자 혼자 앉아 있는 테이블은 하나밖에 없었다.

"조미라 씨?”

“네.”

“김영돈입니다.”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는 여자의 눈에는 노골적인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저, 혹시 S주간지 기자분이신가요?”

“네.”

“어떻게 저를?”

“잡지에서 이름을 봤어요.”

훔친 사탕이라도 입에 넣은 것처럼 여자의 눈빛이 산만하게 흐트러졌다. 주간지 기자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게 나로서도 조금 의아했다. 여자도 나도 말문을 여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은미, 언제 나갔어요?”

“사흘 전에요.”

“어디 아픈 덴 없었나요?”

나는 여자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처음 대면했을 때와는 달리 여자는 담담하게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런 여자에게서 나는 오히려 무언가 특별한 말을 듣게 되리라는 걸 직감했다.

“저…….” 

여자가 침묵하는 동안 나는 서너 대의 줄담배를 피웠다.

“어디서부터 말씀을 드려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아요. 하지만, 사실대로 말씀드리는 게 기자님이나 은미한테도 좋을 것 같아서……. 숨긴다고 해서 과거가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여자는 아내가 돌아올 경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내를 받아주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단서를 달았다. 나는 치한으로 몰린 용의자가 궁색한 알리바이를 대듯 아내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에 대해 어설프게 늘어놓았다. 여자는 한참을 더 망설이다 입을 떼었다.

“은희가 아니라 은미예요. 일란성 쌍둥이거든요. 은희는 죽었어요.”

“예?”

“이 년 전 화재 사건 기억하시죠? 그때…….”

“화재 사건이라면, 혹 미아리……?”

“네.” 

이 년 전, 일요일이었다. 나른한 잠의 미몽 속에서 뒤척이다 전화를 받았다. 도와주세요. 동생이 감금되어 있어요. 급해요. 누구시죠?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경찰에 신고를 하시는 것이……. 신고했지만 소용없어요. 거기 어디예요?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도착했을 때는 현장은 이미 화마가 할퀴고 간 후였다. 처참한 화염의 잔해 속에서 소방관들이 주검들을 실어냈고 경찰은 불구경 나온 주민들과 몰려든 기자들의 접근을 막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여자들이 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담배꽁초를 바닥에 떨어뜨려 불을 낸 거죠. 이는 여과 없이 다음 날 조간신문에 인쇄되었다. 며칠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화재 원인을 알 수 없다, 고 발표했지만 보도되지 않았다.

“실은, 은미와 저, 거기서 일했어요.”

지금은 자립공동체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지낸다는 여자의 말은 내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받은 그 어떤 충격보다도 더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이미 지옥의 문에 한 발을 디딘 것이나 다름없었다.   

“죽지 못해 살았어요. 감금당한 채…… 이모들의 감시로 마음 놓고 PC방도 못 가고, 생리 중에도…… 월급도 안 주고…… 도망치려고 했는데…….”

사고가 나기 며칠 전 아내와 여자는 도망을 치려다 잡혔고 알지 못하는 섬으로 가게 될 거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했다. 아내는 쌍둥이 언니에게 구해 달라,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경찰은 이미 포주들과 한통속이니까 기자한테 연락을 하라고. 그러면서 잡지에서 우연히 본 내 이름을 가르쳐 준 거였다.

“은미와 저는 가까스로 빠져나왔어요. 그런데 은미를 구하려고 왔던 은희는 그만 질식해서…….”

은희는 죽고 은미는 살았다. 그 후 은미는 언니의 이름으로 살고 있다. 그 은미가 바로 나의 아내이다. 이 사실을 모두 인정해야 하는 것은 은미의 남편인 나의 의무이다. 나는 컴퓨터에 글자를 입력하듯 뇌리에 또박또박 새겨넣었다. 

“불은 왜 난 거죠?”

“글쎄요.”

여자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야 내가 취조하듯 물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아니라는 걸 변명하는 나를 도리어 여자가 위로했다.


미아리 집장촌 화재 사건이 있은 지 두 달쯤 지난 일요일이었다. 반 지하 방에서 잠을 자며 개개기에는 날씨가 너무 더웠다. 마침 ‘세계보도사진전’이 있다는 게 생각나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 들렀다. 대상 작품인, 영양실조에 걸린 한 살짜리 아이의 뼈만 남은 손가락이 절망에 빠진 엄마의 입술을 누르고 있는 사진이 가슴에 공명을 안겨주었다. 나는 한참 그 사진 앞을 떠나지 못했다. 다음 사진으로 시선을 옮기다 마침 나와 나란히 서 있던 여자와 몸이 부딪쳤다. 죄송합니다, 하고 비켜서는데 이상하게 전에도 한 번 똑같은 경험을 한 것 같았다. 그때부터 사진에 몰입이 되지 않았는데 공교롭게도 그런 일이 연이어 세 번이나 일어났다. 세 번째 부딪쳤을 때 그녀와 나는 서로 오래 바라보았다. 그녀의 젖은 듯 촉촉한 눈망울이 그윽했다. 그녀와 차라도 한 잔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다시 실수로 그녀의 발을 밟았을 때야 비로소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이거 너무 죄송해서 그냥 가면 안 될 것 같은데 차라도 한 잔 사게 해 주세요. 내가 말하자 그녀는 잠시 무슨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웃음을 머금었다.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웃음이었다. 그럴까요? 그녀의 한 마디에 내 기분은 고무공처럼 튀어 올랐다. 순간 통통 튀는 고무공에 작은 무늬 같은 게 어룽어룽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 머릿속에 부연 연기가 차오르고 아우성이 들려왔다. 나는 그 잔상의 편린들을 주워 모아 가까스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아냈다. 두 달 전 화재 사건 때 다급하게 걸려온 전화 속의 목소리였다. 얼토당토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녀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혹시 전에 저한테 전화한 적 있어요? 네? 어떤 사람하고 목소리가 비슷해서요. 네에. 그녀는 팔이 잘린 아버지 옷의 단추를 채워주는 아이가 담긴 흑백사진에 눈을 붙박고 있었다. 잠시 동안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건성으로 사진들을 보면서 목소리가 곱다느니, 성우가 될 생각은 없냐느니 하면서 그녀의 눈치를 살피는 데 급급했다.

그녀의 물색 민소매 티셔츠와 흰색 미니스커트는 한창 맹위를 떨치는 불볕더위마저 눅여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옷차림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긴 생머리가 좋았다. 고개라도 돌릴라 치면 그녀의 차르르한 머리에서 사향의 샴푸향이 배어났다. 머리는 언제부터 길렀어요? 언제부터라고 할 것도 없어요. 늘 길었거든요. 머리 감을 때 불편하지 않아요? 습관 돼서 그런지 전혀 못 느껴요. 곱슬머리에 대머리될 조짐까지 보이는 나는 긴 머리를 한 여자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있었다. 그쪽 머리가 어때서요? 남자 머리칼이 너무 뻣뻣한 거보다 낫죠. 이마도 시원스러운 게 좋잖아요. 곱슬머리에 대머리가 좋다는 여자가 있다니. 그녀는 지독한 열등감에 빠져 있는 슈렉을 건져준 피오나 공주나 다름없었다. 그것을 빌미삼아 나는 그녀에게 술을 사겠다고 했다.

내가 얼마나 한심한 인간이냐면요, 주말이면 쿰쿰한 반 지하 방에서 쥐 등짝만 한 침대에 누워 스무 시간 이상을 뒹군다니까요. 휴대폰은 꺼 놓구요. 어떻게 알았어요? 잡은 약속도 한 시간 전에 취소하죠? 그녀가 맞장구를 쳤다. 그런 의미에서 건배. 야밤에 일어나 컵라면이나 아이스크림 같은 걸 먹죠. 트림이나 꺽꺽해대다 다시 눕는 거예요. 그녀와 나는 다시 술잔을 부딪쳤다. 그거요, 일명 SAD(seasonal Affective Disorder)라는 건데요, 우리 몸이 받는 햇볕의 양이 줄어들면서 뇌가 멜라토닌의 과다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에 생기는 병이래요. 주로 겨울에 걸리는 건데 반 지하에서 살면 아무 때라도 걸리기 십상이죠. 아, 그렇구나. 그러니까 우리가 정서적이니 어쩌니 하는 것들이 실은 신체적인 현상이다, 그 말이네요? 혹시 그 병 치료제는 없어요? 이천오백 럭스 이상 밝기의 전구요. 그걸 구하느니 차라리 옥탑방으로 이사를 가는 게 쉬울 걸요. 그녀와 나는 그렇게 시답지 않은 이야기에 손바닥을 마주치면서 세 군데나 술집을 옮겨 다녔다. 그것은 그즈음 너무 밋밋해서 지루하기까지 한 일상에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술기운 때문에 더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녀와 뭔가 통하는 것이 있다고 느꼈다. 물론, 첫눈에 반했다거나 오랫동안 기다려온 바로 그 사람이다, 하는 강렬한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편안하고 느슨한 종류의 감정이었다. 이를 테면, 서로 다른 곳을 향해 흐르던 두 줄기의 시냇물이 어느 지점에서 만난 것 같았다고 할까. 그녀와 내가 섞여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날 맥주집에서 나왔을 때는 자정이 훌쩍 넘었고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와 내가 함께 여관에 간 이유가 그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헤어지기가 싫었던 거였다. 내가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을 때 그녀 또한 거부하지 않았다. 기이하게도 체온이 다를 뿐, 그녀와 나의 피부 감촉이 비슷했다. 우리 혹시 어렸을 때 시장 같은 데서 잃어버렸던 남매 아닐까요? 설마요. 처음 만났는데 새롭게 만났다기보다 오래 전에 알던 사람과 재회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죠? 그 후 한 달 가량 그녀와 나는 주말이면 만났다. 그러는 사이에 그녀의 부모님은 일찍이 돌아가셨고 몇 안 되는 일가붙이 역시 거의 왕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뿐인 언니마저 국제결혼을 해서 외국에 나가 산다는 그녀의 처지에 나는 연민을 느꼈다. 그래서 더욱 결혼 이야기를 쉽게 꺼낼 수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녀와 나는 결혼식이라는 형식적인 절차를 무시하자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면사포 대신 미사포를 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토요일 저녁 우리는 성장을 하고 성당에 가서 신자들 틈에 끼어 미사를 올리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했다. 신혼 여행지는 굳이 물색할 필요도 없었다. 공룡 박물관 어때요? 신혼여행인데 괜찮겠어요? 나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신부가 원하는 데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삼류 주간지의 말단기자로 촌지에나 의존해 연명하는 처지였다. 그녀 역시 치과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었지만 아직 자격증을 따지 못한 견습생에 불과했다. 예물이나 예단, 가구 같은 것에도 의미를 두지 않았으므로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는 일을 핑계 삼아 얼렁뚱땅 넘어갔다. 그녀가 각방을 써야 하며 일주일에 한 번만 잠자리를 해야 한다는, 말 같지도 않은 결혼 조건을 제시했을 때도 막상 결혼하면 달라지겠지 하며 예사로 들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날 이후 은미는 언니에 대한 자책감으로 날마다 술을 마셨어요. 그러다 결국 자살 기도까지 했는데 간신히 살아났죠. 그 후로 자꾸 공룡이 보인다고 했어요.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데……. 결혼한다는 소식만 전하고 연락이 없기에 잘 사는가 보다 했죠. 근데 엊그제, 사고 때 중상 입은 친구 병문안 갔다가 우연히 은미 소식을 들었어요. 며칠 전에 은미가 거길 다녀갔대요. 그 친구가 그러는데 은미가 좀 이상하더라는 거예요. 어떻게요? 이구아나가 사라졌다고요. 뜬금없이 언닐 찾아야겠다면서 일어서는데 넋이 나간 사람 같더래요.

아내가 치료를 받았다는 신경정신과 병원은 집에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나는 그곳을 단번에 찾아냈고 의사 또한 아내를 쉽게 기억해냈다.

“아이가 닻이 될 수도 있었는데, 왜 임신중절을 못하게 말리지 않았습니까?”

“중절이라뇨?”

자연 유산이 아니라 중절이라니. 나는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지만 그것이 분노인지 서글픔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또한 그것이 아내를 향한 것인지 나 자신을 향한 것인지도.

“원체 심약한 데다 중절 후에는 극도의 우울을 동반한 죄책감에 시달렸어요. 그런 경우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심리 같은 게 생기게 마련이죠. 전생에 집착을 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겁니다.”

“전생이요?”

“본인이 전생에 선녀였다는 거예요. 일종의 망상입니다만, 꿈이나 무의식 속에서 실제로 그런 걸 보게 됩니다.”

“예?”

“환자분의 일란성 쌍둥이 언니는 전생에 공룡이었고, 환자분은 선녀였다고 하더군요. 공룡을 사랑하게 된 선녀는 공룡과 결혼을 해서 천상에서 살고 싶어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인 천신에게 결혼을 허락받으러 갔더랍니다. 그런데…….”

신혼 여행지를 향해 가는 길 내내 마음은 마냥 설렜다. 차에서 내려 십여 분 정도 걷자 수억 년 동안 켜켜이 쌓여 있던 퇴적층이 바닷물에 씻기고 해풍에 깎이면서 생겼을 암굴, 상족암에 도착했다. 그 앞바다에는 멀리 사량도와 욕지도가, 가까이엔 주상절리로 생겨난 병풍바위와 젖섬이 그림처럼 떠 있었다.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한 해안 절벽이 연출하는 장관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내의 선택이 탁월했다는 생각을 했다. 중생대 백악기 무렵 이 일대가 거대공룡들의 군웅할거 무대였어. 갑자기 재앙이 밀어닥쳐 그들을 한순간에 휩쓸어 갔지. 아닌 게 아니라 망각의 세월 속에 묻혔던 그들이 역사의 무대에서 복원된 것처럼 생생했다. 물이 밀려 나가자 너럭바위 곳곳에 움푹 팬 구덩이 같은 발자국들이 어떤 것은 한 줄로 곧게, 또 어떤 것은 어지럽게 찍혀져 있었다. 어젯밤 공룡들이 이 지대를 떼지어 대거 이동해 갔어. 어젯밤에? 응. 아내는 그것을 마치 실제로 본 것처럼 얘기했다. 농담이라고 하기에는 아내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뿐만 아니라 아내는 공룡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공룡발자국 화석 안내판 앞에서 궁금증을 갖는 관광객들에게 아내는 전문 가이드 이상으로 자세히 설명했다. 조각류란 두 다리로 보행한 날개 달린 공룡을 말하며 수각류는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육식공룡, 그리고 용각류는 네 다리 보행인 초식공룡을 일컫는 거예요……. 탐방로 중앙 촛대바위 앞 티라노사우루스 공룡 모형 앞에서 아내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 같았다. 여기가 바로 공룡들의 무도장이야. 광란의 현장. 그들이 그토록 광란할 수밖에 없었던 건 갑자기 밀어닥친 재앙에서 생존하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이었어. 십자 모양의 해식동굴 안으로 들어서면서 아내의 걸음이 불안정했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냐. 그냥 돌아갈까? 아니. 기어이 선녀탕 앞까지 간 아내는 주저앉고 말았다. 여기 와 본 적이 있어. 여길 와 보다니? 아주 옛날에 여기서 목욕을 했던 기억이 나. 아득한 심연을 향해 무한정 자맥질하는 듯한 목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나는 몸에 한기가 끼치면서 사뭇 으스스하기까지 했다. 아내 역시 떨고 있었다. 나는 아내의 등을 떠밀다시피 해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아내는 차마 발이 안 떨어진다는 듯 몇 번인가 뒤를 돌아보았다. 허청허청한 아내의 걸음이 나는 못내 불안했다.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아내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닌 탓에 힘들어서 그러겠거니 했다. 저 소리……. 무슨 소리? 지축을 뒤흔드는 공룡의 발짝 소리.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저 발짝 소리가 내 몸 속에 숨겨진 무언가를 일깨워주는 것 같아. 아내는 밤새 무언가에 단단히 사로잡혀 있는 듯 수시로 가슴을 쥐어뜯었다. 그로 인해 신혼 첫날밤에 대한 내 기대는 완전히 깨지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아내는 밥을 먹지도 않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왜 밥맛이 없어? 아내는 내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우린 결국 찰나에 살고 있을 뿐인데……. 나는 아내에게 그만 돌아가자고 했다. 무언가 불길한 징후를 느꼈고, 그 때문에 조금 두려웠다.

이주일이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으므로 나는 이제 자야 한다는 것을 의식 이전에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침대의 혈흔을 보자 가슴이 저릿했다. 죽지 못해 그 생활을 했는데 생리 때면 더 치욕스러웠어요. 은미는 안 하겠다고 버티다 죽도록 얻어맞기도 했죠. 나는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내 감정은 자주 극단으로 치달았다. 아내의 돌연한 실종과 예상치 못했던 아내의 과거는 여전히 낯설고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손님들이 두고 간 잡지를 보다가 어느 날 은미는 기자님이 쓴 글을 보게 된 거예요. 왠지 좋은 사람일 것 같다면서, 그런 사람하고 결혼하면 좋겠다고 했어요. 농담처럼요. 여자는 나에게 은미를 찾아야 한다고 애원하듯 말했다. 나는 산만하게 흩어진 인연의 조각들을 어떻게 이어 붙여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공룡과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가 선녀는 천신의 노여움을 사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부랴부랴 지상으로 내려왔지만 그때는 이미 지상이 빙하로 덮인 후였지요. 현대 정신의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최면술 같은 데서는 공룡에 대한 선녀의 애절한 마음이 현생에서 일란성쌍둥이로 태어나게 된 동인으로 봅니다. 그럼 이구아나는 뭘까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공룡에 대한 일종의 대체물이지요. 하지만 그것 역시 무의식의 작용일 뿐입니다.

진흙 속에 발을 빠뜨린 채 앞으로 나아가려고 허우적거리면서 몇 번이나 자다 깨다, 를 반복했다. 눈을 떠보면 옹색하게 몸을 구부린 채 누워 있었다. 아내가 없다는 사실, 어쩌면 다시 볼 수 없을 거라는 막막함이 동통을 불러일으켰다. 아내와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던 것이며 샤워 후 아내가 챙겨주던 속옷의 촉감, 대머리를 방지한다며 목덜미에서 정수리로 두피 마사지를 해주던 아내의 손길, 출근할 때면 현관에서 나누던 포옹까지 세세한 일들은 매순간 고통을 수반하고 떠올랐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던 날들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공룡이든 이구아나든, 그 어떤 악마의 아가리에 머리통이라도 내어주고 싶었다. 산부인과 의사는 아내의 중절이 세 번째였다고 했다. 머릿속에 염소표백제라도 뒤집어쓴 것 같은 느낌. 그 순간, 나는 인간이 얼마나 고독하고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혼몽한 의식 속에서 규칙적인 소리가 들렸다. 자명종의 초침소리는 아니었다. 숨소리, 그러나 사람의 숨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음습했다. 괴괴한 정적 속에서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무언가 스윽, 내 몸을 스쳤다. 차갑고 축축한 감촉, 등골이 오싹했다. 그러나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가슴을 욱죈 채 꼼짝없이 누워 놈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렸다. 은미는 불을 질러버릴 거라고 말하곤 했어요. 거기서 빠져나오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면서요. 막상 불이 나니까 은미는 자기가 불을 낸 거라며 미친 듯이 웃어댔어요. 그때 졸고 있었으면서……. 갑자기 밖에서 연기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우린 두려워서 소릴 질렀어요. 불길 속에서 누가 문을 열어줬어요. 그땐 몰랐는데 은희가…….    

얼마나 지났을까. 스삭스삭 놈이 멀어져가는 소리가 들렸다. 온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몸이 해저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동시에 걷잡을 수 없이 졸음이 쏟아졌다. 나는 서서히 잠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 열쇠로 현관문을 따는 소리가 났다. 아니, 지축을 흔드는 공룡의 발자국소리 같기도 하고 놈의 가뿐 숨소리 같기도 했다.

당신이야?

길게 혀를 내민 어둠이 내 목소리를 삼켜버리고 만 것일까. 사위는 더욱 깜깜해졌을 뿐,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점점 체온이 떨어지고 몸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내가 잠든 사이 내 몸에 등 비늘이 돋아나고 꼬리가 생겨날 것만 같았다. 나는 절대로 잠들면 안 되는 것이다. 사람마다 끔찍이 싫어하는 게 있대. 근데 그게 자기의 그림자라는 거야. 참, 우습지? 수억 년 늪을 휘돌아온, 지친 바람소리 같은 아내의 목소리가 쉬익 쉭 귀에 감겨들었다.문장 웹진/ 2007년 4월》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