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있으십니까

 

쓸모있으십니까



안보윤




너는 삼겹살집 앞에서 춤을 추고 있다. 무표정한 얼굴이다. 꾹 다문 입술 아래로 턱이 복숭아씨처럼 동그랗게 도드라져 있다. 어디를 보고 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눈두덩이 새까맣게 보일 정도로 짙은 화장 때문이 아니라 네가 머리를 너무 흔들어대기 때문이다. 검고 긴 머리카락이 살아 있는 것처럼 집요하게 네 얼굴에 감긴다. 너는 몸보다 머리를 더 많이 흔들면서 춤을 춘다.

알록달록한 풍선문 옆으로 커다랗고 검은 스피커가 두 개 놓여 있다. 음악이 쉬지 않고 쾅쾅 울린다. 하나같이 비트가 빠른 곡들이다. 대박촌 삼겹살 일인분에 천구백 원, 개업기념 특별이벤트, 테이블 당 소주 한 병씩을 공짜로! 네 옆에 서 있는 동료가 마이크를 들고 외친다. 너는 머리를 흔든다. 음악도 동료의 목소리도 신경 쓰지 않는다. 풍선문에 네 머리칼이 마구 부딪친다. 네 가슴과 엉덩이를 겨우 감싼 빨간 비닐옷이 햇빛을 튕겨낸다. 환하지만 따뜻함은 조금도 느낄 수 없는 햇빛이다. 체감 온도가 영하 이십 도를 밑도는 한겨울이다. 십 센티는 족히 될 법한 네 구두굽 아래로 소복이 눈이 쌓여 있다.

너는 쉬지 않고 춤을 춘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상당히 오랜 시간이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대박촌 삼겹살 천구백 원을 부르짖는 네 동료의 목소리가 너덜너덜해져 있다. 너는 가끔 스피커 위에 놓인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는다. 땀과 파운데이션에 누렇게 전 수건이다. 나는 그 수건을 흘끔흘끔 바라보며 삼겹살을 먹는다. 가게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너의 가슴과 다리를 빠르게, 그러나 노골적으로 훑고 지나간다.

삼겹살집 안에 있는 사람들도 너를 본다. 빨간 엉덩이와 긴 다리, 위태로울 정도로 얇은 구두굽. 앉아서 보이는 것은 그 정도다. 허리 위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사람들은 너를 본다. 네가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빠듯한 핫팬츠 아래로 밀려나오는 엉덩이를 향해 건배하는 사람도 있다. 넌 먹는 게 왜 그리 시원찮니? 엄마가 적당히 익은 고기들을 내 앞으로 옮겨놓는다. 공짜로 받은 소주를 마시고 있던 누나가 신경질적으로 고기를 채 간다. 밀쳐진 잔이 왈칵 소주를 쏟는다.

―목구멍에 기름칠해서 먼지 빼야 하는 사람이 누군데 이래. 옷가게에 먼지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 일하다가 코를 풀면 새까만 코가 나온다구.

고기를 전부 기름장에 밀어 넣고 누나는 거푸 술을 마신다. 쏟아진 술이 누나의 소매를 적신다. 누나는 소매 닦을 생각도 않고 나를 노려본다. 나는 물수건을 들었다가 그냥 놓는다.

―하루 종일 서서 골빈 기집애들 비위 맞춰주고 월급 받아오면 고생했다 한 마디는 해야 하는 거 아냐? 서른둘이나 처먹은 동생 아직까지 뒷바라지해주는 게 누군데.

―식당은 김치가 맛있어야 잘 되는데 이건 영 별로네. 금방 망하겠다, 여기.

엄마가 괜히 딴소리를 하며 배추김치를 불판 위에 올린다. 금세 김치 타는 냄새가 풍긴다. 열댓 살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 하나가 다가온다. 불판 가는 손놀림이 능숙하다. 저런 핏덩이들도 나와서 돈을 버는데 너는 뭐 얼마나 잘난데 취직하겠다고 그 지랄이야, 지랄이. 식충이 같은 새끼. 누나가 거칠게 술잔을 내려놓는다.

―쟤들은 날도 추운데 왜 빨가벗고 춤을 춘다니, 정신 사나워 죽겠네.

엄마가 고춧가루 묻은 젓가락을 들어 네 엉덩이를 가리킨다. 말을 타는 것처럼 뒤로 내밀어진 엉덩이가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 핫팬츠 위아래로 엉덩이가 절반은 빠져나온 것 같다. 쯧쯧. 엄마가 짧게 혀를 찬다. 나는 한쪽 면이 새까맣게 타버린 김치를 뒤집는다. 미친년. 너를 돌아본 누나가 툭 내뱉는다.

노래방 손님들도 너를 그렇게 부르곤 했다.

삼년 전에도 너는 춤을 추고 있었다. 공무원 시험에 연거푸 다섯 번 떨어진 내가 동네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특실을 포함해 방이 여섯 개뿐인 노래방이었다. 낮에는 바닥이 질척거릴 때까지 침을 뱉는 학생들이, 밤에는 술 취한 샐러리맨들이 손님으로 왔다. 급여도 일도 좋지 않았다. 노래방 수입은 대부분 술값에서 나왔다. 진열장 안 캔음료는 천 원에, 카운터 밑에 숨겨둔 캔맥주는 오천 원에 팔았다. 흙냄새 나는 눅눅한 뻥튀기를 나무바가지에 담아주기도 했다. 덕분에 노래방 손님들은 들어올 때도 나갈 때도 취해 있었다. 남녀공용화장실과 지하로 내려오는 계단은 토사물로 질펀했다. 나는 틈날 때마다 계단과 화장실에 락스물을 부었다. 만취한 샐러리맨들이 방을 채우면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도우미를 부르는 것도 내 일이었다. 너는 노래방에서 부르는 도우미들 중 가장 어리고 비쌌다.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쭉길쭉했지만 얼굴이 예쁜 것은 아니었다. 꼬리가 올라간 가느다란 눈과 꾹 다문 입술. 너의 무표정한 얼굴을 손님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너는 곰팡이가 올라오기 시작한 두꺼운 벽지를 마주보고 춤을 췄다.

너는 네 친구와 둘이 다녔다. 도우미를 세 명 불러도 꼭 둘만 왔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아기를 갖는 바람에 학교를 중퇴한 친구였다. 네 친구의 어린 남편은 나이트클럽에서, 네 친구는 노래방에서 아기 분유값을 벌고 있었다. 네 친구는 붙임성이 좋았다. 손님과 이차를 갈 때도 카운터에 들러 인사하는 걸 잊지 않았다. 오빠, 다음번에도 꼭 우리 불러줘야 돼, 오빠한텐 서비스 제대로 해줄 테니까. 네 친구의 꺼지다 만 배를 나는 잘 쳐다볼 수가 없었다. 서비스 같은 게 없더라도 나는 꼭 너와 네 친구를 불렀다.

너는 마이크를 잡는 법이 없었다. 노래를 하는 것은 네 친구였다. 너는 사람들에게 등을 돌린 채 오로지 춤만 췄다. 구석으로 밀려나 벽을 마주보고 혼자 출 때도 있었고 상의를 벗어던진 채 테이블 위로 올라가 춤출 때도 있었다. 노래가 어떤 것인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블루스가 나와도 너는 머리를 흔들어댔다. 팔을 길게 뻗고 너를 끌어안으려는 남자를 발로 차기도 했다. 미친년. 사람들은 마이크를 입에 댄 채 소리쳤다. 간혹 술 취한 남자가 네 머리채를 휘어잡고 문밖으로 쫓아내기도 했다. 터진 맥주 캔이 네 등으로 날아들었다. 온몸이 맥주로 흠뻑 젖어 나오는 일은 흔했다. 미친년, 미친년. 그래도 미친년인 덕분에 네가 이차에 나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네가 오는 날이면 나는 일부러 서비스 음료나 재떨이를 핑계로 방을 들락거렸다. 유리창에 코를 대고 방안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언제 어느 곳에서 보든 너는 항상 춤을 추고 있었다. 미친년. 나는 화장실 변기에 락스물을 끼얹으며 몰래 네 이름을 불렀다. 달리 부를 이름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너를 ‘미친년’이라고 가장 많이 부른 사람은 나인 듯도 했다.

어쨌든 너는 항상 춤을 추고 있었다. 노래방 마이크가 깡깡 울리고 빨갛고 노란 불빛들이 네 몸 위로 함부로 떨어졌다. 온기라고는 전혀 없는 차가운 불빛이었다.

―새로 다닐 학원은 정했어?

엄마가 새까맣게 탄 김치를 재떨이에 버리며 묻는다. 고기 몇 점이 내 밥그릇 위로 다시 옮겨진다. 나는 너무 익어 뻣뻣해진 고기를 씹는다. 고를 거 뭐 있어, 무조건 제일 싼 데로 정해. 누나가 퉁명스레 말한다.

―공무원 같은 거 필요 없으니까, 고기 집에서 불판이라도 갈면 더 좋고.

너는 밤이 깊도록 삼겹살집 앞에서 춤을 춘다. 술 취한 남자 둘이 가게 앞에서 소주병을 깨며 싸울 때조차 멈추지 않는다. 짙고 하얀 입김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선진아. 나는 큰소리로 너를 부른다. 계산을 끝낸 누나가 담배를 사겠다며 먼저 나가고 엄마는 아직 화장실에 있다. 선진아, 선진아! 네 동료가 엉킨 마이크 줄을 풀다 나를 흘끔 돌아본다.


*


―아무데서나 이름 부르지 마.

너는 딱 잘라 말한다. 춤출 땐 그런 촌스런 이름 안 쓴단 말야. 선진이가 촌스러워? 촌스럽다기보다 뭐랄까, 멍청해 보여. 아무튼 그 이름 부르지 마. 그럼 뭐라고 불러? 부르지 마, 무조건 부르지 마, 아는 척도 하지 마! 너는 파랗고 커다란 점퍼를 방바닥에 내던진다. 나는 점퍼를 주워 옷걸이로 간다. 네가 다시 스웨터를 벗어 바닥에 팽개친다. 끈 없는 실리콘 브래지어가 뚜껑처럼 네 가슴에 착 달라붙어 있다.

―배고파. 요 앞 편의점에서 햇반 두 개만 사와, 데워 달라고 하는 거 잊지 말고.

너를 따라 엉거주춤 옷을 벗던 나는 다시 바지를 입는다. 네가 지갑에서 오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준다. 길모퉁이 편의점까지는 금방이다. 나는 머리를 숙이고 마구 달린다. 편의점 안에 들어가서야 점퍼도 없이 골목길을 달려왔다는 걸 깨닫는다. 콧김이 뜨겁고 턱이 덜덜 떨린다. 아르바이트생이 얼굴을 찌푸리며 카운터로 돌아온다. 정리하다 만 컵라면 박스가 진열대 앞에 흩어져 있다. 나는 몸이 더워질 때까지 천천히 편의점 안을 돈다. 라면 진열대가 여느 편의점보다 배는 크다. 벌써 정리를 끝내고 포개놓은 라면 박스의 종류만도 여러 개다. 나는 라면 진열대를 몇 번 훑어보고 햇반 두 개를 산다.

햇반이 전자레인지 안에서 돌아가는 동안 복권을 긁는다. 전부 꽝이다. 복권에서 때처럼 밀려나온 은박 껍데기가 소매 여기저기 붙어 있다. 로또를 살 걸 그랬나. 잠깐 후회한다. 로또를 사면 적어도 며칠 동안은 행복하다. 추첨공이 돌아가기 전까지 돈 쓸 궁리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나는 숫자 여섯 개를 고르는 그 시간을 견딜 수 없다. 나란히 놓인 숫자들의 작은 틈으로 순식간에 몇 십 억이 새어나간다.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나는 소매에 붙은 은박 껍데기를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뗀다. 뜨거운 햇반을 들고 뛰어오는 길 내내 엉성하고 허전한 기분이 든다. 귀가 떨어져나갈 것처럼 시리다.

좁고 긴 복도 오른쪽으로 고동색 나무문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네 방은 그 중에서도 가장 끝방이다. 꼭 모텔 같지. 복도를 걸을 때마다 너는 말했다. 방안은 모텔 쪽이 훨씬 좋지만 말야. 버릇처럼 일그러지는 너의 미간에 손을 대면 너는 매섭게 손등을 쳤다.

방은 확실히 모텔 쪽이 좋다. 네 방은 한눈에 실내를 파악할 수 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한 칸짜리 싱크대가 나온다. 가스레인지나 그릇 같은 것은 없다. 불투명한 유리를 씌운 창문이 정면에 하나. 오른쪽에 미니 냉장고가 놓인 앉은뱅이책상이, 왼쪽에 컴퓨터가 놓인 책상과 의자가 있다. 한 사람이 눕기도 버거울 만큼인 방바닥. 화장실문 옆에 놓인 철제 옷걸이. 수북이 쌓인 옷 때문에 화장실문은 반밖에 열리지 않는다. 화장실 또한 변기와 수도꼭지가 전부다. 몸을 구부리면 변기 모서리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좁다. 샤워를 하려면 몸을 꼿꼿이 세운 채 해야 한다.

네 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잠을 자는 것뿐이다. 햇빛에 한 번도 말려본 적 없는 축축한 이불이 구석에 뭉쳐 있거나 바닥에 퍼져 있다.

―이쪽 동네는 전부 이래. 그래도 여기가 제일 좋은 방이야, 안에 화장실도 있잖아. 빨래방이랑 편의점도 바로 앞이고. 버스 정류장도 가깝고.

너는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이 많았다.

―방에 있으면 옆방에서 섹스하는 소리가 다 들려, 꼭 내 옆에서 하는 것처럼.

그런 건 나도 매일 들어서 알고 있다. 각 방에 들어 있는 사람들은 섹스 아니면 싸움을 한다. 온갖 것이 깨지고 비명이 난무한 싸움보다는 차라리 섹스하는 소리가 마음이 편하다. 네 방에서 들리는 것은 대부분 신음소리다.

네 옆방에는 어린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산다. 간혹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 둘이 더 들락거리는데 그 애들까지 함께 사는 건지는 알 수 없다. 아이들의 섹스는 요란하다. 여자아이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비명을 질러댈 때도 있다. 너는 꼼짝도 않고 앉아서 여자아이 목소리를 심사한다. 저건 가짜야. 나는 네가 그것을 왜 가짜라고 하는지 알지 못한다. 진짜 비명소리는 말야, 훨씬 더 굵고 훨씬 더 이상해. 사람소리 같지도 않아. 너는 소리가 지나치게 오래 이어진다 싶으면 벽에다 구두를 던진다.

너는 팬티 바람으로 문을 연다. 뒤집힌 팬티 위쪽이 돌돌 말려 있다. 찬바람 때문에 허리와 젖가슴 근처에 잔뜩 소름이 돋는다. 나는 얼른 문을 닫고 들어간다. 햇반을 내려놓고 네가 바닥에 팽개쳐둔 실리콘 브래지어를 줍는다. 축축하고 끈적거리는 실리콘이 손등에 붙는다. 우묵한 부분에 땀 냄새가 배어 있다. 나는 싱크대에서 실리콘 브래지어를 물에 씻어 넌다. 무표정한 얼굴로 네가 소름 돋은 맨가슴을 긁는다. 너의 가슴께가 금세 붉어진다. 너는 미니 냉장고에서 참치 캔과 봉지김치를 꺼내 방 가운데 앉는다. 나도 네 앞에 마주앉는다. 발자국소리와 함께 옆방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쟤들 포르노 찍나봐.

참치 캔 고리에 손가락을 끼우며 네가 말한다. 틱 소리가 울리더니 캔 고리가 힘없이 부러진다. 은색 뚜껑에 보일 듯 말 듯한 흠집이 생겼을 뿐이다. 너는 싱크대 서랍에서 칼을 꺼내 참치 캔 귀퉁이를 찍는다. 캉캉. 새된 소리가 네 목소리에 섞여 울린다.

―어젯밤에 창문을 열어놨었는데, 소리가 몽땅 들리더라구. 가끔 오는 남자애 둘 있잖아? 걔들이 캠코더로 찍는 모양이야. 가끔 출연도 하고.

캉캉. 네 손이 위태롭게 흔들린다. 빠끔히 뚫린 구멍 사이로 참치 기름이 배어나온다.

―얼마나 어설프게 대사를 하는지 웃겨 죽는 줄 알았다니까. 그렇게 찍어서 방값이나 나올까 몰라. 어차피 보증금도 없이 월세만 내는 거니까 상관없겠지만.

몇 번이나 빗나가던 칼이 구멍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캔 뚜껑이 둥그렇게 부푼다. 부러질 것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칼날 때문에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을 가린다. 칼자루를 쥔 네가 피식 웃는다. 무서워? 뚜껑에서 미끄러진 칼날이 핑 소리를 내며 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너는 일부러 칼날을 두 번 더 튕긴다. 핑핑. 나는 뒤로 물러난다. 네가 다시 구멍 사이로 칼날을 끼운다. 멀찌감치 떨어진 채로, 나는 햇반과 함께 편의점 앞 신문 거치대에서 뽑아 온 벼룩시장을 방바닥에 깐다. 

―근데 쟤네, 초등학생이야.

―어떻게 알아?

―보면 알지, 내가 여기서 몇 년을 살았는데. 저런 애들은 한 달 지나면 월세 못 내서 쫓겨나든가 옆집 털어서 도망가든가 둘 중 하나야. 아무렴 어때, 나도 저렇게 어렸음 좋겠다.

―저렇게 어리면, 다시 시작해보게?

너는 큰소리로 깔깔거리며 웃는다.

―시작하긴 뭘 시작해. 저 나이면 똑같이 옷 벗고 춤춰도 돈을 두 배로 받는다구.

캔 뚜껑이 쩍 벌어지며 참치 기름이 사방에 튄다. 너는 팔뚝에 튄 기름을 대충 혀로 핥는다. 참치 캔과 봉지김치를 가운데 두고 너와 나는 햇반을 먹는다. 햇반 윗부분이 벌써 꼬들꼬들하게 말라 있다.


*


―밀가루 세 포대랑 계란 다섯 판을 준다잖니. 뭘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참석해서 얘기만 들으면 무조건 공짜라는데 안 갈 사람이 어딨어. 그냥 그것만 받으러 간 거야, 처음에는. 그런데 가보니까 노래 자랑해서 일등한 사람 오만 원짜리 상품권도 주고, 차 대절해서 숯가마도 공짜로 데려가고 하더라고.

―그래서?

―넌 엄마가 집에서 하루 종일 빈둥빈둥 텔레비전 채널이나 돌리면서 지냈음 좋겠니? 다른 아줌마들처럼 수백만 원짜리 명품 걸치고 골프여행 다니겠다는 것도 아니고 반찬값이라도 벌까 해서 나갔다가 동네 마실 좀 다닌 건데.

―그런데?

―……그런데 듣다 보니까…… 저게, 물건이 아주 좋지 않니. 상어 연골에 유황에 좋은 건 다 들어가서 뼈에도 좋고 심장에도 좋고 죽은 피부도 전부 재생시켜 준다지 뭐니. 엄마 나이쯤 되면 길 가다 넘어져도 다리가 부러진다고. 관절은 쑤시지 몸 여기저기서 뼈가 툭툭 불거져 나오지. 정작 내가 쓰러지기라도 해봐, 고생하는 건 너 아니니. 거기다 저게 얼마나 좋은지 세 박스씩 한꺼번에 사가는 아줌마들도 있더라.

―그래서, 고작 계란 다섯 판 받아오고 백이십만 원짜리 약을 덜컥 사 왔다 이거야? 교환도 환불도 안 되는 저 잘나빠진 약을?

누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손바닥만 한 약상자가 거실 반대편으로 날아간다. 뒤이어 날아간 누나의 가방이 텔레비전 옆에 놓인 난화분과 함께 떨어진다. 난화분이 반으로 뚝 부러진다. 누나가 동강난 화분을 다시 바닥으로 내던진다. 검은 흙과 청자색 화분 파편이 사방으로 날린다. 떨어진 약상자를 찾아내 발뒤꿈치로 짓밟는다. 찢어진 누나의 스타킹 사이로 피가 배어나온다. 엄마가 재빨리 누나의 발밑에서 찌그러진 약상자를 빼낸다.

―엄마, 미쳤어? 미쳤냐구!

누나가 발작하듯 소리친다. 나는 조용히 방안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모자를 눌러쓰고 가방을 맨다.

―그렇게 돈이 쓰고 싶으면 저 새끼더러 벌어오라고 해, 내가 왜 시집도 못 가고 이런 집구석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데! 나도 좀 있음 마흔이야, 알아? 아냐구!

―그렇다고 약을 밟을 건 뭐니, 아깝게.

―엄마!

―니 동생 일만 해도 그래. 걔가 어디 놀러 다니니? 공부해서 좋은 데 취직하겠다고 애쓰는 애를 왜 맨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안달이. 걔라고 맘이 편하겠니? 누나가 동생 보듬어줄 생각은 안 하고 맨날 고기 집에서 불판이라도 닦으라는 둥, 돈을 벌어오라는 둥. 너 시집 못 가는 게 어디 걔 탓이니? 

―됐어, 이젠 정말 지긋지긋해! 난 나가버릴 테니까, 이딴 집 정말 나가버릴 테니까 둘이서 어디 잘 살아봐!

나는 벽에 바짝 붙어 거실을 빠져나온다. 화분의 검은 흙이 운동화 속까지 튀어 있다. 신발을 신는 동안 누나가 뒤에서 노려보는 것이 느껴진다. 남은 화분 반도막이 금방이라도 내 뒤통수로 날아올 것 같다. 나는 서둘러 집을 나온다.

학원에 갈 생각은 없다. 문제집이 가득 담긴 가방을 매고 나오는 것은 일종의 습관이다. 학원은 그만둔 지 오래다. 누나에게서 받은 학원비는 좋을 대로 쓴다. 봄부터 여름까지의 학원비는 너의 컴퓨터가, 여름부터 가을까지의 학원비는 너의 넉달 치 방세가, 가을부터 겨울까지의 학원비는 너의 휴대폰이 됐다. 이번 봄까지의 학원비는 그대로 있다. 네게 필요한 것이 뭔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에 쓸지 정하지 않아도 누나는 꼬박꼬박 학원비를 준다. 달마다 용돈과 식비도 준다. 누나는 숫자를 선택할 필요 없는 로또와 같다. 나는 돈 쓸 궁리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나는 너의 집으로 간다. 싸움 소리보다는 섹스하는 소리를 듣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다. 너는 집에 없다. 옆방 아이들 또한 나갔는지 다닥다닥 붙은 좁은 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


너는 손톱을 세워 아랫배를 긁는다. 얼음이 뱄나봐, 간지러워 미치겠어. 갈비뼈 아래부터 사타구니까지 손톱자국이 죽죽 그어져 있다. 좁쌀보다 더 작은 반점들이 군데군데 돋은 너의 배는 배꼽 속까지 새빨갛다. 다리 좀 긁어줘. 너는 주저앉아 다리를 내게 내민다. 너의 허벅지 색이 종아리와 현저히 다르다. 검게 부어오른 살갗에 붉은 반점이 돋아 허벅지가 풍선문처럼 알록달록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너의 허벅지를 긁는다. 아랫배와 허벅지 안쪽이 손톱자국으로 빽빽해진 다음에야 너는 긁기를 멈춘다.

컴퓨터가 낮고 음울한 소리를 내며 켜진다. 화면이 어지럽게 흔들린다. 산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 모양이야, 겉만 멀쩡하지 속은 다 썩었어. 왜 그런 거 있잖아, 중고 부품 조립해서 껍데기만 좋은 거 씌운 다음에 신상품이라고 속여 파는 컴퓨터. 너는 컴퓨터를 켤 때 유독 말이 많다. 모니터 위에 올려진 화상캠코더가 정확히 너의 가슴을 비춘다. 너는 한손으로 팬티를 끌어내리며 화면을 체크한다. 새빨간 배와 허벅지가 화면 속에서는 가슴과 마찬가지로 새하얗게 빛난다.

그래서 어쩔 거야? 너는 얼굴이 잡히지 않게끔 캠코더를 조정하며 묻는다. 가느다란 목과 어깨가 그림자도 없이 화면을 꽉 채운다. 너는 가슴이 최고조로 부풀어오른 부분에서 화면이 끊어지게 조정한 뒤 몸을 들썩여본다. 네가 움직일 때마다 건포도처럼 검은 유두가 화면에 언뜻언뜻 나타났다 사라진다.

―누나가 집 나간다고 했다면서. 그럼 이제 취직이라도 하는 거야?

―취직은 무슨.

나는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둘둘 말린 이불을 끌어온다. 네가 팽개쳐놓은 실리콘 브래지어가 이불 속에서 굴러나온다. 나는 실리콘 브래지어를 손등에 붙인다. 손등과 실리콘 브래지어와의 틈새가 금방 벌어진다. 모아 세운 양쪽 무릎 위에 다시 붙인다. 손등보다 둥그렇게 튀어나온 무릎에 훨씬 잘 달라붙는다. 나란히 솟아오른 것이 너의 가슴 같기도 하다. 나는 불룩 튀어나온 실리콘의 말랑말랑하고 축축한 중심을 쓰다듬는다.

―내가 취직할 필요 뭐 있어. 누나가 그런 소리 한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저렇게 난리쳐도 결국은 약값, 누나가 낼 거야.

내려봐내려봐내려봐. 너의 방에 처음 입장한 남자가 채팅창 가득 글자를 나열한다. 너는 가슴이 완전히 드러나게끔 천천히 캠코더를 내린다. 하나 더 누군가가 너의 방으로 들어온다. 너는 캠코더를 배꼽까지 내린다. 알몸채팅이라고 하지만 알몸인 것은 너뿐이다.

―좋네.

―뭐가?

―그렇게 쓸모없이 지내도 살 수 있으니까. 좋네, 아주.

말을 끝내고 너는 피식 웃는다. 아니 웃는 것 같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보이는 것은 너의 돌아앉은 등과 모니터 화면뿐이다. 나는 너의 방에 들어온 사람들과 똑같다. 네가 허락하는 만큼만 화면 속에서 너를 본다. 화면 속의 너는 벌써 배꼽 아래 무릎까지 몸을 전부 드러내고 있다. 얼굴과 발바닥을 제외한 모든 곳이 비친다. 그런데도 나는 뜨거운 햇반을 들고 골목길을 달리는 것처럼 허전하고 엉성한 기분이 든다.

내려봐가까이벌려봐.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간다. 두꺼운 막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의 명령대로 너는 움직인다. 다리를 교차시키거나 활짝 벌리거나 의자를 잡은 채 몸을 뒤로 돌려 엉덩이를 보이거나 하는 너의 움직임을 나도 가만히 바라본다. 가슴과 허리, 다리 사이를 쓰다듬는 네 손은 자연스럽지만 무표정하다. 한 사람이 더 들어오자 너는 제법 리드미컬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들이 잘도 산다니까.

너는 화면과 나를 번갈아보며 말한다. 의자에서 일어난 네가 요란하게 엉덩이를 흔든다. 풍선문 아래나 노래방 조명 속에서 춤을 출 때와 비슷하다. 옆에서 들리는 소리가 대박촌삼겹살일인분에천구백원,이든 만취한 샐러리맨이 부르는 당신의의미,이든 어둑한 방구석에 앉은 나의숨소리,이든 너는 상관하지 않는다. 너는 아무 소리도 듣지 않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몸을 움직인다. 채팅창으로 쏟아지는 주문이 더욱 복잡하고 길어진다. 반대로 한참동안 아무 글도 올라오지 않기도 한다.

네가 기묘한 자세로 몸을 뒤틀 때마다 나의 성기는 터진 풍선처럼 쭈그러든다. 양손으로 가슴을 꽉 움켜쥔 네가 캠코더에 몸을 바짝 붙인다. 뒤로 내민 엉덩이 아래 허벅지가 여전히 붉다. 내 성기가 건포도만큼 작아진다.

옆방과 이어진 얇은 벽에서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간격이 일정하고 아, 발음이 분명한 신음이다. 높낮이도 대개 비슷하다. 나는 이불로 건포도만 해진 성기를 숨긴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신음이 딱 끊긴다. 갑자기 여자아이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울린다. 건포도만 하던 성기가 삽시간에 주먹만큼 부풀어오른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나가지 마.

무료한 표정으로 포즈를 바꾸며 네가 말한다.

―나가봐야 넌 아무것도 못해.

예전에도 너는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너의 옆방에는 네 친구가 살았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아기를 갖는 바람에 학교를 중퇴한, 나이트클럽에서 아기 분유값을 버는 어린 남편을 가진, 너와 함께 노래방 도우미를 하던 네 친구. 무표정하게 춤만 추고 있는 너보다 네 친구가 노래방 도우미에 훨씬 잘 어울렸다. 네 친구는 사람들에게 미친년이라 불리지도 않았고 술 취한 남자에게 머리채를 잡혀 방에서 끌려나오는 일도 없었다. 네 친구는 상냥한 얼굴로 노래 선곡 버튼을 눌렀다. 스스럼없이 손님에게 몸을 붙여 별도의 팁을 받기도 했다. 쓰레기통에 맥주를 슬쩍 쏟아버리고 새 맥주를 시키는 것도, 휘어잡힌 너의 머리채를 풀어주는 것도 네 친구의 일이었다.

네 친구는 간혹 맥주 캔을 손에 들고 사라졌다. 화장실과는 정반대 방향. 좁고 지저분한 창고가 있는 쪽이었다. 네 친구가 사라졌을 때에도 너는 멈추지 않고 춤을 췄다. 대개 분위기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아무도 네게 시비를 걸지 않을 즈음이었다.

창고에는 쿠션이 찢어져 누런 솜이 비어져나온 소파와 오래된 노래방 기기가 쌓여 있었다. 보조의자와 때가 두껍게 낀 소화기, 음료수 박스, 책장이 다 떨어져나간 노래책. 가게 앞에 세웠다가 누가 담뱃불로 지져 구멍을 뚫어놓는 바람에 못 쓰게 된 풍선 간판도 있었다. 네 친구는 그 사이에 앉아서 맥주 캔에 젖을 짰다. 어둡고 눅눅한 창고에 네 친구의 드러난 젖가슴이 새하얗게 빛났다.

네 옆방에서는 항상 싸움소리가 들렸다. 네가 풍선문 아래에서 춤추는 동안 네 친구는 어린 남편과 싸웠다. 밤새 나이트클럽에서 일하고 오전 시간 오토바이 택배를 하는 남편은 잠자는 시간을 쪼개 네 친구와 싸웠다. 싸움의 이유는 무궁무진했다. 어린 남편은 자신이 일하는 동안 네 친구가 무엇을 하는지를 무엇보다 궁금해했다. 네 친구는 아기가 깰까봐 밤새 휴대폰을 꺼놓고 잔다고 말했다. 어린 남편은 피곤과 불안에 찌든 얼굴로 일을 다녔다. 네 친구 또한 마찬가지인 얼굴로 노래방에 다녔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뒤 독서실을 핑계로 나는 네 방에서 살다시피 했다. 너는 네 친구와 노래방 도우미를 계속했다. 네 친구는 가끔 내게 방 열쇠를 맡겼다. 애기가 깰 리는 없지만, 이라고 네 친구는 말했다. 깰 리는 없지만 그래도 혹시 울음소리가 들리면 들어가 봐줘. 백일이 막 지난 아기는 밤새 한 번도 깨지 않고 잠을 잤다. 잠든 아기의 숨은 낮고 깊었다. 너무 깊어 금방이라도 멎을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자주 아기의 코밑에 손가락을 댔다. 아기 숨을 재다 네 친구 방에서 잠드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어느 새벽잠에서 깨보니 네 친구의 어린 남편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사방이 캄캄하고 조용했다.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어린 남편은 날이 밝을 때까지 꼼짝 않고 서서 네 친구를 기다렸다. 네 친구는 너와 함께 동틀 무렵에야 비틀거리며 방으로 돌아왔다. 어린 남편은 술에 취한 네 친구와 약에 취해 잠든 아기를 말없이 노려보았다. 네가 서둘러 나를 방에서 끌어냈다. 네 친구가 찢어질 것 같은 비명을 지른 건 그때였다.

―나가지 마!

너는 방에서 뛰쳐나가려는 나를 잡으며 소리쳤다.

―나가봐야 넌 아무것도 못해!


*


너구리 같기도 판다 같기도 한 인형이 매달려 있다. 누나의 열쇠고리 인형이다. 열쇠는 현관문 열쇠구멍에 꽂힌 채다. 인형 코가 하얗게 닳아 있다. 나는 오래도록 인형을 바라본다. 열쇠를 돌리자 잠금쇠 열리는 소리가 난다. 집은 텅 비어 있다.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이다. 누나는 회식을 해도 꼭 자정 전에 돌아온다. 나는 거실에 서서 전화를 건다. 난 화분이 있던 자리에 누나의 휴대폰이 놓여 있다. 빨간 불빛이 소리도 없이 깜빡인다.


*


도망친 거야. 너는 더 들어보지도 않고 말한다. 도망친 게 당연하잖아, 이번엔 거짓말이 아니었나 보네. 너의 얼굴이 밝다. 나는 자장면을 비비며 너를 유심히 본다. 너의 입가가 불필요하게 많이 떨린다. 목소리에도 일정한 리듬감이 있다. 누나가 집을 나간 것이 네게는 즐거운 일인가. 나는 의아해진다.

―집을 나간 건지는 아직 몰라. 무슨 일이 생긴 걸 수도 있고.

―현관문에 열쇠 꽂아놓고 갔다며.

―그렇긴 한데……

―옷이랑 화장품도 없지?

―……다른 물건은 전부 다 그대로 있어.

―옷이랑 화장품 없어졌으면 끝난 거야. 여자들은 그래, 그게 집 나갈 때 필요한 전부라고.

역시 너는 즐거워 보인다. 평소에 잘 먹지 않던 양파도 거침없이 집어먹는다. 네가 집는 양파는 유난히 새하얗다. 나는 단무지를 집어 자장면과 함께 비빈다. 단무지가 새까매진다.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어쩔 거야? 네가 방바닥에 깔린 벼룩시장을 발끝으로 툭툭 친다. 구인구직란. 칸마다 비슷비슷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취직할 거지? 네가 어쩐지 웃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나는 고개를 젓는다. 취직할 필요 뭐 있어, 뭐가 어쨌든 결국은 얼마 안 가 돌아올 텐데. 만약 안 돌아오면? 별로, 상관없어.

―그땐 여기서 너랑 살면 돼.

너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진다. 너는 말없이 자장면을 먹는다. 양파는 더 이상 먹지 않는다. 자장면 씹는 소리가 좁은 방 안에 울린다. 나는 조용히 끈질기게 자장면을 먹는다. 빈 그릇에 검은 단무지만 세 개 남는다. 너는 자장면 그릇을 내려놓고 미니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낸다. 맥주 캔이 하나 둘 쌓여간다. 그릇을 문밖에 내놓고 싱크대에 서서 나는 너의 스타킹을 빤다. 싱크대에는 어차피 빨래비누 하나밖에 없다. 거품을 헹구려는데 네가 물끄러미 나를 본다. 문득 네 얼굴이 누나와 몹시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너는 춤을 춘다. 껍질이 거친 나무를 잘라 만든 지붕에 붉은 등이 걸려 있는 퓨전선술집 앞이다. 보도블록이 좁아 풍선문이 도로에 세워진다. 팔차선 도로에 차가 지나갈 때마다 풍선문이 휘청거린다. 너는 보도블록 끝에서 춤을 춘다. 너의 코앞으로 차들이 빠르게 지나친다. 선술집 안에는 사람이 가득하다. 자리를 못 잡은 나는 밖을 서성인다. 도로를 건너 맞은편 길에서 너를 본다. 너도 나를 본다. 네가 팽글팽글 돌기 시작한다. 허리에 달린 검은 술이 둥글게 퍼진다. 차들은 여전히 네 옆구리를, 팔꿈치를 빠르게 지나치고 있다. 세 바퀴를 돌 때 중형차의 백미러가 아슬아슬하게 너를 스쳐간다. 다섯 바퀴 일곱 바퀴가 넘어간다. 너는 계속해서 돈다. 열 바퀴가 넘어가자 마이크를 잡고 있던 네 동료가 말을 멈춘다. 열두 바퀴 열다섯 바퀴가 넘어간다. 네 허벅지만 바라보던 사람들이 머리카락에 가려진 네 얼굴을 보려 애쓴다. 열일곱 바퀴째에 너는 도로로 홱 튕겨나간다. 무언가의 중심에서 거세게 내쳐지는 것처럼 너는 도로 한복판으로 튕겨나간다. 네 동료가 비명을 지른다.

유치원 버스가 가까스로 멈춘다. 주저앉은 너의 얼굴이 온통 머리카락으로 덮여 있다. 버스기사의 욕설과 자동차 경적 소리가 요란하다. 풍선문 뒤 검은 스피커에서 울리던 음악이 뚝 멈춘다. 너는 도로에 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는다. 네 동료가 너를 보도블록으로 끌어올린다. 너는 눈을 감고 있다. 무표정한 얼굴이다.

나는 좁은 방에 앉아 너를 기다린다. 내 머릿속에서 네가 쉼없이 돈다. 검거나 붉은 술이 네 주위에 퍼진다. 팽글팽글 도는 너를 나는 기다린다. 밤이 깊도록 너는 돌아오지 않는다. 너의 휴대폰은 꺼져 있다. 자정이 넘어서야 나는 너를 찾으러 간다. 아니, 가려고 한다. 현관문을 닫고 나오려는데 뭔가가 손에 걸린다. 현관문 열쇠구멍에 열쇠 하나가 꽂혀 있다. 열쇠고리도 없는 너의 열쇠가.


*


나는 며칠이고 너를 기다린다. 너는 화장품과 옷조차 가져가지 않는다. 네 방에는 필요 없는 것들만 남아 있다. 그 속에 나도 있다. 나는 너에게 전화를 건다. 누나에게 걸기도 한다. 너인지 누나인지 정하지도 않고 습관적으로 번호를 누르기도 한다. 어느 쪽도 답이 없다.

컴퓨터가 낮고 음울한 소리를 내며 켜진다. 화면이 어지럽게 흔들린다. 모니터 위에 올려진 화상캠코더가 정확히 나의 가슴을 비춘다. 나는 한 손으로 자판을 두드리며 화면을 체크한다. 여러 번 가입과 결제를 거듭한 끝에 너의 방을 찾는다. 너는 그곳에 있다. 세 명의 남자와 함께다. 화면 속의 너는 벌써 배꼽 아래 무릎까지 몸을 전부 드러내고 있다. 얼굴과 발바닥을 제외한 모든 곳이 비친다. 내려봐가까이벌려봐.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간다. 두꺼운 막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의 명령대로 너는 움직인다. 너의 새하얀 허벅지를, 실제로는 풍선문처럼 알록달록할 너의 허벅지를 나는 오래도록 본다. 어서 와. 나는 채팅창을 두드린다. 느낌표도 마침표도 달지 않는다. 어서와어서와어서와 나는 캠코더를 조정해 나의 얼굴을 비춘다. 넓적해진 얼굴이 화면에 뜬다. 너는 나를 방에서 쫓아낸다.

나는 다시 너를 찾는다. 봄까지의 학원비를 전부 결제하는 데 쓴다. 너는 사라지고 없다. 캠코더가 건포도만큼 작아진 내 성기를 비추고 있다. 나는 더 이상 너를 찾지 못한다. 전화기를 든다. 네 휴대폰 번호는 이미 없는 번호다. 너와 누나의 번호를 나는 계속 누른다. 나는 은박 껍데기가 벗겨진 복권처럼 네 방 한복판에 버려져 있다. 너의 방에는 필요 없는 것들만 남아 있다.

나는 너를 기다린다. 누나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 외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나를 과연 어디다 써야 할까. 성기뿐 아니라 내가 통째로 쭈그러든다. 옆방과 이어진 얇은 벽에서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간격이 일정하고 아, 발음이 분명한 신음이다. 높낮이도 대개 비슷하다. 나는 건포도만큼 쭈그러든 채 신음소리를 듣는다. 나는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다. 어차피 나가봐야 나는 아무것도 못한다.문장 웹진/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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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강아지

끊임없이 소리를 내는 소라나팔은 내 귀의 달팽이관이 아니었을런지요. 제 속에서 터져나오는 과거의 상념들. 차가운 겨울 바람이 더욱 서늘해지는 오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