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아이

 

골목의 아이



김유진




그리하여 도착한 골목의 어귀에서 마주친 것은 맹렬히 돌진하는 한 마리 코끼리였다. 먼 바다에서부터 밀려오는 해일, 정적을 부수는 기차의 기적소리 같은 난폭함으로 그는 앞발을 들어 대지를 내리찍었다. 몸체와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산산이 부서지는 상점의 진열장들, 가래를 뱉던 노파가 그의 왼쪽 뒷발에 짓밟히는 광경들을 보며, 나는 오줌을 지렸다. 무너진 돌담 위에 앉아 사타구니를 움켜쥐었다. 젖은 손을 가슴팍에 문질렀다. 가슴에 찍힌 손자국에서 지린내가 올라왔다. 그가 허공에 콧물을 내뿜으며 길 반대편으로 사라지자, 상점으로 몸을 숨겼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었다. 피로한 얼굴로 구겨진 땅을 밟았으나 펴지지 않았다. 늙은 개가 울었다.

 

 


여자는 쏟아지는 구토를 손으로 틀어막으며 노파를 향해 다가갔다.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든 길고양이들, 혈기왕성한 개들이 으깨진 노파의 뒤통수를 핥았다. 여자는 부서진 평상의 다리를 들어 짐승들을 물리쳤다. 훠이, 훠-이, 여자의 목소리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노파는 허공을 움켜쥔 채 말린 새우처럼 몸을 오그리고 있었다. 여자는 노파의 배 위로 올라타, 완벽하게 돌아간 머리통의 양 옆을 움켜쥐었다. 뼈와 뼈, 근육과 근육이 쓸리는 소리와 함께 노파의 부릅뜬 두 눈이 여자를 향했다. 사람들은 노파의 벌어진 입, 한가득 고인 침, 침과 함께 흘러내리는 부러진 이들을 보기 위하여 더욱 가까이 몰려들었다. 침은 여자의 손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여자는 노파의 얼굴이 제자리로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잡았던 손을 놓았다. 남자가 노파의 발목을 붙잡고 아래로 잡아 당겼다. 벗겨진 신발이 나뒹굴었다. 슬그머니 다가온 길짐승들이 떨어진 두피를 주웠다. 백발이 늘어진 살점을 입에 물고 골목 끝으로 달아났다. 서로 다퉜다.

여자가 노파의 배 위에서 내려오려 할 때였다. 갑자기 끼-익, 소리와 함께 노파의 머리가 다시 반대 방향으로 돌아갔다, 땅에 부딪혔다. 나는 탄성을 지르며 뒤로 물러나는 사람들을 뚫고 노파 앞으로 다가갔다. 여자는 용감했다. 그녀는 다시 노파의 배 위로 올라가 양쪽 귀를 잡고 힘껏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그러나 여자가 서서히 손을 놓자, 노파의 얼굴은 다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나는 용수철처럼 탄력적으로 돌아가는 노파의 목과 그 때마다 땅에 짓이겨지는 긴 코, 젖은 흙을 헤치며 지상으로 기어 나오는 지렁이처럼 조금씩 입 밖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푸른 혓바닥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여자가 여러 차례 되풀이할수록, 노파의 얼굴은 점토처럼 뭉개져갔다. 단단해진 머리통이 쿵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혀가 턱 끝에 닿아 덜렁거렸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여자의 얼굴은 당혹과 공포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결국 노인의 양쪽 귀를 붙잡은 채로 우스꽝스럽게 짓이겨진 죽음을 대면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아무도 선뜻 그녀를 돕지 않았다. 이윽고 여자는 울음을 터트렸다.

어어어엄마마아아아아아, 어어어엄마아아아아아아.

나는 그 광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배를 잡고 웃었다. 웃으며, 내가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우리의 울음과 웃음은 시취처럼 지독스럽게 골목 사이사이로 스며들어갔다. 모골이 송연해진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문을 걸어 잠갔다. 흩어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더욱 소리 높여 웃었다, 울었다, 웃었다, 울었다, 울었다.


나는 길을 잃었던 최초의 순간을 더듬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들쥐를 뒤쫓던 순간이었을까, 쫓다가, 세탁소의 화분을 깨고 도망치던 때였을까, 돌담 위를 지나가는 쥐며느리들을 쓸어 모으던 순간, 손바닥에 박힌 유리 조각을 빼낼 때, 얇고 거친 민들레 잎사귀에 피를 닦아내던 순간, 날아가는 씨앗 반대편으로 떨어지는 해, 뒤로 숨는 그림자를 밟던 순간, 더러워진 운동화를 소매 끝으로 닦아내던 순간, 때에 전 소매 끝을 늘여 양쪽 겨드랑이 사이에 끼던 순간, 어둠이 몰려오는 소리에 놀라 골목길을 질주하던 순간, 주머니 속에 달그락거리는 동전 소리에 다시 놀라 더욱 빨리 뛰던 순간, 양쪽 구레나룻을 타고 땀이 흘러내리는 순간, 바람이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땀을 식혀주던 순간, 점멸하는 가로등의 숫자를 세다, 문득 새하얗게 머릿속이 지워지는 순간, 생각했다. 나는 언제부터 혼자였는가.


그는 군인이었다. 폐허가 된 상점, 찌그러진 통조림을 주워 주머니에 넣으며, 서양 배를 씨앗 째 씹어 먹고 있었다. 오른쪽 다리를 절었다. 오줌에 전 코르덴바지가 허벅지에 달라붙어 쓰라렸다. 그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배를 크게 베어 물었다. 과즙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향기로웠다. 나는 그의 입속에서 잘게 부서지는 흰 속살들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코를 파 입에 넣고 혀로 굴렸다. 배, 배가 고, 고프구나. 그는 다람쥐처럼 오른쪽 볼을 크게 부풀린 채 말을 더듬었다. 나는 대답 대신 만삭의 볼이 점차 줄어드는 것을 보며 애를 태웠다. 그가 배 꼭지를 멧비둘기를 향해 집어던진 후 내 어깨를 붙잡으며 눈을 맞췄다. 그의 왼쪽 입꼬리가 기형적으로 높게 올라갔다. 눈 밑에 경련이 일었다. 그의 얼굴은 말상이었다. 길고 강한 턱이 주억거렸다. 그는 주머니에서 거뭇한 나뭇잎이 든 비닐봉지와 얇은 종이 몇 장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얼마간의 잎들을 종이 위에 올려놓았다. 잎은 축축하고 서로 엉겨 붙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종이를 반으로 접어, 능숙하고 빠른 동작으로 침을 묻혀 말았다. 그는 같은 것을 하나 더 말아 나에게 주었다. 우리는 깨진 유리창 아래 쭈그리고 앉아, 유리 파편을 밟으며 연기를 들이마셨다. 있는 힘껏 내장 속으로 연기를 들이밀었다. 나는 안개에 둘러싸인 내면을 상상했다. 아침에 먹었던 두 쌍의 잠자리 날개가 안개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을 모습을 떠올렸다. 이름을 알 수 없었던 검은 나무 열매들이 뿌리를 내려 싹을 틔우고, 안개를 뚫고 자라나길 바랐다. 그가 다리를 주무르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혀로 불을 끄고 재를 삼켰다.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는 먼 곳에서 들려왔다. 그것은 비에 쓸려 내려간 무덤, 남겨진 비석처럼 형체는 없으되 흔적만이 남은 묘 주인의 이름처럼 모호했다. 그 자취를 밟고 자라나는 식물들, 풍화되어가는 비석에 새겨진 흐릿한 이름을 알아보기 위하여, 나는 차고 단단한 어둠을, 자명하게 느껴지는 그 질감을 더듬었다. 멀리 어둠 너머, 붉고 커다란 플라스틱 통이 아른대고 있었다. 통은 뜨는 해처럼 서서히 다가왔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살갗이 아려왔다. 크고 작은 고통들이 멀어진 정신을 끌어당겼다. 나는 고통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하여 바닥을 더듬어 보았다. 일말의 여지없이 손바닥을 찌르는 예민한 조각들, 그 틈을 헤집고 살을 파고드는 무수한 가루들, 마른 모래들이 햇빛에 타들어가듯 유리 조각들이 툭 툭 튀어올라 손등 위로 떨어졌다. 너덜너덜해진 손바닥을 보았다. 제법 큰 콜라병 조각이 손바닥 한가운데에 박혔으나, 빼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이 다만 꿈만 같았다.

발아래 붉은 통이 멈춰서 있었다.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말했다. 얜 뉘요. 나는 습관적으로 입을 벌렸으나 발화하지 못했다. 플라스틱 통 옆으로 뒤축이 구겨진 고무신과 개가죽처럼 늘어진 발목이 눈에 들어왔다. 눈을 부릅떴다. 어둠과 완벽히 동화된 목소리의 주인을 보고 싶었다. 생소하지만, 한번 들으면 누구든 보지 않고도 얼굴을 그려 보일 수 있을 법한 목소리, 고목의 나이테처럼 수백 가지의 층위를 가진 목소리, 그 가장 바깥에 위치한 몹시 부패되고 단단한 목소리, 지나던 금수들이 오줌을 누고, 그 위에 곰팡이가 피고, 누군가가 칼로 도려낸 듯한 목소리가 말했다. 넌 뉘냐. 나는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곱이 잔뜩 낀 눈을 내 얼굴 앞으로 바싹 갖다 대며 코를 킁킁거렸다. 동공을 감싼 누런 자위에 핏발이 잔뜩 서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뒤로 물러났다. 축 쳐진 입꼬리 양 옆으로 주름진 볼이 덜렁거렸다. 시큼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다리를 절뚝이며 군인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짚었다. 그에게 엄마, 라고 말했다. 나는 그 얼굴이 낯에 익었다.


그가 나를 거두었다. 나는 그를 통하여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는 이 골목의 잔반 수거인이었다. 그는 줄지어 늘어선 식당 뒷문에 놓인 잔반통을 거두어 비료 공장에 내다 팔아 이윤을 남겼다. 그는 나에게 계약된 식당의 목록과 각 식당 쪽문의 위치, 정해진 잔반 수거 시간들을 가르쳤다. 음식물을 말끔히 털어내는 요령, 잔반통 주변을 깨끗이 물로 씻어주는 예의, 무거운 잔반통을 효율적으로 끄는 방법들을 배웠다. 우리는 전설의 주인공이 돌을 끌고 절벽을 올라가듯, 잔반통을 끌고 골목을 누볐다. 길들, 잎맥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간 길들,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으면 영원히 알 수 없을 것 같은 숨어 있는 길들,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열려 있는 막다른 골목들을 지났다. 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골목의 길들이 모두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방인에게는 절대 열리지 않는 길들,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 없는 길들이 있었다. 어느 날 문득, 낯선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최소한의 방향감각만으로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그것은 내가 늘 다니던 길 근처 어디엔가 교묘히 숨어 있던 샛길들이었다. 그들은 어미의 치마 뒤로 숨는 어린 여자아이처럼 큰길 뒤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 익숙한 냄새에만 몸을 내어주고 농을 걸어왔다. 나는 자주 그 장난에 속아 길을 잃었다. 때문에 길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구획된 길의 크기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이 골목의 모든 것들이 그러한 방식으로 은밀했다. 그는 나와 함께 각각의 식당을 돌며, 나를 새로운 잔반 수거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들은 새로운 잔반 수거인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지만, 예의상 나의 머리통을 몇 번 토닥여주었다. 그들이 나에게 말했다. 대견하구나. 나는 처음 이 골목으로 들어왔을 때의 풍경을 기억하고 있었다. 무너졌던 돌담들, 부서진 진열장들, 깨진 유리창들은 어느새 말끔히 보수가 되어 있었다. 나는 목이 돌아간 노파의 시체 주위로 몰려들었던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공포와 혐오의 얼굴을 애써 숨기며 단단한 얼굴로 발을 돌리던 사람들의 얼굴과 지금의 온유하고 평화로운 모습들이 겹쳐보였다. 그와 나는 시간에 따라 구역을 나누었다. 그는 오전에, 나는 저녁에 잔반을 수거했다.


나는 처음, 잔반을 수거하기 위하여 국수를 파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을 때를 기억한다. 오랫동안 누적된 육수의 누린내가 진동했다. 참을 수 없는 허기가 몰려왔다. 구역질이 났다. 사람들을 헤치고 부엌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가장 깊은 곳, 붉은색으로 덧칠해진 낡은 쪽문을 열자, 막다른 골목이 나왔다. 등을 돌린 건물들 사이의 불빛도 없는 그 골목을 따라 각기 주인이 다른 잔반통들이 도열해 있었다. 두서없이 섞인 음식물들, 부패가 시작된 식재료들 냄새가 발광했다. 나는 미세한 달빛으로 잔반의 양을 가늠했다. 불어터진 국수, 멸치 대가리, 단물이 빠진 고기, 발효된 조미료 찌꺼기를 손끝으로 긁어, 끌고 온 잔반통에 옮겨 담았다. 내장에서 올라오는 구역질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잔반을 비워나갈수록, 가져온 잔반통의 무게는 한정 없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무게는 근심이 되어 마음에 쌓여갔다. 마지막 잔반통을 비우기 위하여 골목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암캐 한 마리와 마주쳤다. 그는 잔반통을 뒤지고 있었다. 종이 다른 새끼들이 주변에 떨어진 오물들을 핥았다. 그는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물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의 대치 상태는 퍽 오랜 시간 이어졌다. 우리는 잔반을 사이에 둔 경쟁자가 되어 서로를 노려보았다. 내가 잔반통을 향해 다가가자 그가 낮게 으르렁댔다. 나는 그가 이미 쟁취한 고깃덩어리를 빼앗을 생각이 없었지만, 그의 태도는 극단적이었다. 조약돌처럼 희고 검은 새끼들이 그의 앞으로 몰려나와 짖어대기 시작했다. 그는 금방이라도 내게 돌진할 기세로 몸을 숙이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나는 어둠속에서 현현히 빛나는 개의 눈을 보았다. 허겁지겁 쪽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문이 잘 열리지 않자, 울음이 터져 나왔다. 길을 잃고 헤맸던 수많은 낮과 밤, 허기와 추위, 죽은 비둘기를 밟고 지나는 자동차, 그 주검을 떼어내는 사내들보다도, 암캐가 더욱 무서웠다. 가늠할 수 없는 폭력성, 순수한 적의가 암캐에겐 있었다. 우리는 애초에 협상이 불가능했다. 나는 부술 듯한 기세로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희고 밝은 불빛 아래서 토악질을 했다. 누런 위액, 몇 알의 밥풀이 뚝뚝 떨어졌다.

우리의 전투는 내가 이 골목을 도망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의 자식들은 잔반을 주워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나는 무기를 들었다.


그의 아들은 말을 더듬었지만, 수다스러웠고 입이 험했다. 삼십 촉 전구 아래 상을 펴고 밥을 물에 말아 먹는 동안, 그는 쉴 새 없이 입을 놀렸다. 

어, 엄마, 내, 내가, 그때, 그, 뭐냐, 뱀, 뱀 대갈통을 주, 주먹으로 꽉 쥐었그덩, 근데, 아씨, 씨발, 이빨을 안 놓는 거야, 대, 대갈통이, 다, 다다다, 터졌는데, 키킥, 꼬마야, 너, 배, 뱀 본 적 있어, 없지, 씨-입 새끼, 키, 키킥, 어, 엄마, 엄마.

그는 문장의 처음과 끝에 습관적으로 엄마, 를 붙였다. 그의 습관은 나에게 암묵적인 강요처럼 느껴졌다. 제대로 된 호칭으로 노인을 호명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할수록, 단어는 낯설고 하찮게 느껴졌다. 거부감이 일었다. 나는 끝내 노파를 부를 만한 적절한 호칭을 찾지 못했다. 그는 손으로 갓김치를 집어 물에 불은 밥 위에 얹었다. 고춧가루가 뽀얀 물 위에 피처럼 번져나갔다. 나는 눅눅한 김을 씹어 먹었다.

그의 아들은 오래 전에 제대한 직업군인이었다. 바다 건너 남의 나라에서 사년 간 복무했다. 사년 간, 그는 벙어리처럼 지냈다고 했다. 말하지 못한 것들, 말해야 하는 것들이 화살촉처럼 단단하게 굳어갔다. 그는 주기적으로 발광했다. 사격에 능했다. 오년 복무를 지원했지만, 도중에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붉은 사슴을 사냥하기 위해 숲을 뒤지다 뱀에 물렸다.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일정한 직업 없이 골목을 떠돌았다. 못이 박힌 각목을 끌고 다니며 눈에 보이는 길짐승들을 잡아 족쳤다. 사람들은 그가 난폭하긴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특별했던 사년 간의 경험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했다. 나는 그가 바다를 건너 낯선 인종들 틈에서 어떻게 사년을 보냈는가에 대한 무용담을 머릿속으로 선연히 그려낼 수 있을 만큼 여러 차례 들어주었다. 그는 종종 그때 하지 못했던 말들을 나에게 퍼부었다. 내 멱살을 쥐고 흔들며, 속사포처럼 입을 놀렸다. 나는 그의 침을 얼굴로 받아내며 참고 견뎠다. 그러면, 그는 상으로 잎담배를 주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가 침묵을 지켰으므로, 우리는 화목할 수 있었다. 나는 연기를 들이마시며, 태어나기 이전의 과거와 죽음 이후의 먼 미래 사이를 오갔다. 그가 남은 재를 씹어 삼키고 무참히 침묵을 부수면 나의 환상도 깨졌다. 말은 다시 시작되었다. 말은 그의 무기이자 병이었다. 그가 난사하는 수많은 문장들 중 어느 것도 온전한 것은 없었다. 나는 그가 대단히 무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때에 전 런닝 위로 툭 튀어나온 쇄골이 앞뒤로 움직였다. 갈비뼈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가슴팍이 납작했다.

나는 노파가 아들의 말에 대꾸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말을 무척 아끼는 편이었고, 어쩌면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인지도 몰랐다. 노파는 남은 밥알까지 깨끗하게 비우고, 상을 방 옆으로 밀어놓았다. 그는 아들의 닳고 닳은 양말을 기우거나 달력으로 겉을 싼 두꺼운 책을 꺼내 낮은 목소리로 읽으며 밤을 보냈다. 아들은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잠이 들 때까지 혼잣말을 했다. 적절한 층위의 두 목소리는 조화로웠다. 전구의 약한 불빛이 책을 든 노파의 손등을 비췄다. 누렇고 두꺼운 손톱, 까맣게 멍이 든 손톱들이 글자 위를 더듬었다.


그것은 거짓의 역사, 응징과 체벌의 기록이었다. 최초의 인간이 저지른 거짓의 역사, 대물림되는 저주, 그리고 그 피를 이어받은 거짓 속임수를 쓰는 갖가지 유형의 주인공들, 그들에게 내려지는 무수한 형벌들이 책 속에 있었다. 세상의 모든 우연과 필연들이 그들을 응징하는 도구로 동원되었다. 그들은 참수당하거나 불태워졌고, 혹은 영원히 살아남아 죽고 다시 태어나는 자신의 육신을 목도해야 했다. 읽어 내려가는 노인의 목소리는 결연했다. 처음 어둠속에서 들려왔던 옹골진 목소리 그 자체였다. 그들이 더욱 고통스럽고 끔찍한 벌을 받을수록, 그의 목소리는 단단해졌다. 나는 사지가 잘리고, 피를 토하며, 내장이 꺼내어지는 난잡한 삽화들을 그리며, 어둠속에서 수음을 했다.

 

언젠가 그의 고쟁이 속에서 이 골목의 세부도를 본 적이 있다. 네 귀퉁이와 접혀진 면이 닳아 너덜너덜해진 지도를, 그는 보물처럼 다루었다. 그는 붉은 펜으로 자신의 영역에 점을 찍어 놓았다. 그가 활동하는 영역은 골목의 크기만큼 넓었다. 모든 샛길들, 상점들, 집들이 있었다. 골목이 골목을 보호하듯 소용돌이치며 안으로 휘어진 길들, 그들이 낳은 크고 작은 집들이 그 안에 있었다. 골목은 모두 숫자로만 표기가 되어 있었다. 그 수는 백을 넘었다. 큰 길과 작은 길들을 구분하지 않고 균일한 숫자를 매겼다. 길에게 주어진 숫자에 따라 집과 상점들의 번지수가 부여되었다. 빈틈없이 들어찬 수많은 곡선과 직선, 면들은 지도라기보단 기하학적인 무늬의 벽지 같았다. 이 골목에 들어선 이후, 길을 찾는 것을 그만두었다. 마음속에서 안일함이 자라났다. 나는 병에 걸린 듯 길을 잃었지만, 조금만 걷다보면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안일함이 언제나 나를 제자리로 돌려놓아 주었다. 지도를 더듬으며, 그간 내가 잃어버렸던 길의 양상을 파악하려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내가 밟고 서 있는 집의 위치조차 알 수 없었다. 나는 모든 상황을 쉽게 받아들였다. 규칙적인 식사와 노동만으로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도를 접어 다시 노인의 고쟁이 주머니 안에 넣었다. 앞섶이 누렇게 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머리를 긁었다. 살비듬이 떨어져 눈처럼 어깨에 쌓였다.

혼자 남겨진 방안을 둘러보았다. 조악한 일회용 식기들, 변색된 김치통,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어둠 깊숙이 밀려나 있었다. 방바닥은 차고 습했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그 옆에 드러누웠다. 멀리서 그가 잔반통을 끌고 다가오는 듯 미세한 진동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불 가까이, 손을 쬐었다. 갓김치의 군내가 방안 공기를 좀먹었다. 잎담배를 피며 보았던 풍경들을 떠올리려 애썼다. 기이한 돌들이 우뚝 솟아오른 평야, 끝없는 모래사막 한가운데 말라죽은 과실나무 한그루, 동물의 뼈로 밭을 일군 심해를 떠올렸다. 척박하고 아름다웠다. 가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그곳이 나의 고향일 것이었다.


나는 암캐를 보았던 마지막 날을 기억한다. 우리는 화합 불가능한 적이자, 선의의 경쟁자였고, 오랜 시간을 함께 다퉈온 암묵적 동지였다. 나는 성견이 된 그의 자식들의 얼굴을 모두 알고 있었다. 개의 시간은 인간보다 빨랐다. 흑백이 명확했던 털들은 성견이 되자 회색으로 뒤덮였다. 길에서 태어난 그들은 누구보다도 골목과 잘 어울렸다. 나는 무수한 전투의 시간들을 통하여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먹이 앞에서 거칠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것은 자연의 습성이었다. 우리는 모두 먹다버린 음식 찌꺼기를 구걸하는 족속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의 무기를 방어를 위해서만 사용했다. 나는 그들이 잔반으로 배를 채우는 것을 묵인했다.

노인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멀리서 잔반통을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콘크리트 바닥을 긁는 소리, 간헐적인 침묵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잔혹한 이미지가 뒤를 따랐다. 습관적으로 문밖으로 나서 그를 마중했다. 가득 찬 잔반통은 무게가 대단해 혼자서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잔반통을 대문 안쪽으로 옮기자, 그가 내 손을 내쳤다. 잔반통의 뚜껑을 열어보였다.

모두 여섯 마리였다. 두 마리는 머리가 없었다. 피에 젖은 회색 털이 자꾸 손에서 미끄러졌다. 노파는 한 마리씩 차례로 꺼내어 마당에 늘어놓았다. 뼈가 바스러져 형체가 사라진 짐승의 주검들이 전시되었다. 몸통에 박힌 못이 덜렁거렸다. 터져나오는 구토를 입으로 막았다. 노파는 나를 지나쳐 부엌으로 들어갔다. 쌀 씻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가 밤마다 읊어주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참담한 보복의 기록들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지난했던 과거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것이 얼마나 부박한 것이었으며, 일견 공포스러운 경험이었나 새삼스레 깨닫고 있었다. 악몽에서 깨어난 어린아이처럼 조바심이 일었다. 사라지지 않는 두려움들을 떼어내고 싶었다. 모든 현실화된 무서움에서 달아나고 싶었다. 이 골목으로 들어와 처음으로, 두고 온 고장과 그곳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 어떤 안온함도, 익숙함도 없었던 시간들, 단지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던 나의 방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곳에 있었다. 모두가 그곳에 있었다. 주차장 옆 공터, 낡은 텀블링 장, 뽑기를 함께 파는 노인이 있었다. 거대한 성벽처럼 철망이 둘러쳐진 그곳에서, 아이들은 텀블링을 타기 위해 줄을 섰다. 노인은 줄 선 아이들을 꼬드겨 뽑기를 덤으로 팔았다. 갖가지 모양의 틀을 펼쳐 보이며 승부욕을 자극했다. 아이들이 복잡한 무늬가 들어간 선박, 거대한 이빨을 가진 공룡 틀을 가리키면, 노인은 바늘을 내어주며 목울대로 웃었다.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지나치게 오래 산 사람들이 그렇듯, 성별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아이들은 그가 낡고 냄새나는 고쟁이와 굵은 고무줄이 들어간 스판 치마를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놓고 내기를 벌였다. 그들은 바짝 치켜 올린 고쟁이 아래, 노인의 늘어진 가슴을 만지기 위하여 쉰내가 나는 그의 몸에 팔을 두르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은 날벌레를 잡기 위해 몸을 웅크린 들고양이처럼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노인은 자신의 가슴을 만지고 도망가려는 사내아이들을 붙잡아 정수리에 만들던 뽑기를 붓거나, 한 움큼 침을 뱉었다. 아이들은 젖은 머리로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그를 통하여 치욕을 배웠다. 노인은 텀블링을 타고 있는 아이들을 이유 없이 내쫓기도 했고, 예약금을 돌려받으려는 아이들을 향해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때때로 아이들이 어른의 손을 잡고 올 때면, 한 두 방울 눈물로 동정을 샀다. 어른들은 종종 노인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보았으므로, 맥없이 돌아가는 날이 더 많았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그곳에서 이유 없는 무례와 부당함을 겪으며 적의를 키워나갔다. 노인은 밤이 되면 낮 동안 아이들이 벌여놓은 철망 사이사이를 촘촘히 메웠다. 멀리서 보면, 텀블링 장은 방어 태세를 갖춘 견고한 요새처럼 보였다.


노인은 그물을 기우고 있었다. 그물망은 낡고 노후해, 자주 닳거나 찢어졌다. 아이들은 종종 텀블링을 타다 발이나 팔이 빠졌다. 그는 안쪽에 누런 털이 달린 고무신을 가지런히 벗어두고 그물 위로 올라갔다. 그가 지지대를 벗어나 그물 위에 발을 딛자, 텀블링 전체에 파문이 일었다. 달이 밝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엎드려 양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낮은 포복으로 서서히 찢어진 부위를 향해 진군했다. 손에 들린 실패가 덜덜 떨렸다. 그는 자주 균형을 잃어, 바닥에 턱을 찧거나, 실패에 꽂아두었던 바늘에 제 손을 찔렸다. 거리는 멀고멀었다. 그는 실패를 입에 물었다. 형체가 불분명한 그림자가 그의 등을 밀어주었다.

무장한 아이들이 텀블링과 가장 가까운 집 지붕 위로 속속 올라서고 있었다. 아이들은 둘씩 짝을 지어, 서로의 발판과 줄이 되어주었다. 그들은 일사분란하게 전열을 다듬었다. 누군가가 신호를 내리자, 일제히 노파를 향해 비비탄을 쏘기 시작했다. 노인은 쏟아지는 탄환에 화들짝 놀란 듯했다. 사정거리가 멀지 않았기에, 탄환의 위력은 대단했다. 노인은 살 속으로 박히는 비비탄을 맞으며 비명을 질렀다. 탄환을 피하기 위하여, 그는 텀블링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텀블링은 그의 무게와 속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반동을 주었다. 그는 공중으로 가뿐하게 튀어 올랐다가, 떨어지고, 다시 그 무게에 튕겨져 나갔다. 아이들 중 하나가 그 광경을 보고, 날고 있다, 고 소리쳤다. 그의 주머니에서 동전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뻥튀기처럼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아이들은 그 광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배를 잡고 웃었다. 총을 쏘는 속도를 높여, 그가 더욱 높이 날 수 있도록 도왔다. 노인이 그물망의 찢어진 틈으로 거꾸로 박힐 때까지, 사격은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가 정지 신호를 내렸다. 차고 무른 밤공기 위로 노인의 신음소리가 서서히 떠올랐다. 아이들은 텀블링 밖으로 드러난, 발작하는, 그리고 서서히 오그라드는 그의 몸통을 바라보았다. 노인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내밀었지만, 텀블링 그물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아이들은 자신들의 등을 어루만지며 다가오는 낯선 기척을 느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그것이 죽음의 얼굴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렸다. 옥수수 알 같은 아이들이 지붕 위에서 우수수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달빛을 받은 그들의 얼굴은, 순간 어른의 것처럼 차고 냉정했다. 발을 헛디뎌 나뒹구는 여덟 번째 아이를 버려둔 채 일군의 무장한 무리들은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몰래 집으로 돌아가, 그들의 방문을 열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이 들 때까지, 공포는 그들의 목덜미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바닥에 머리를 대고 꺽꺽대는 노파를 바라보았다. 그물망 사이로 터질 듯 튀어나온 그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입에 물었던 실패가 침에 젖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벌어진 입을 쉴 새 없이 오물거리며 신음을 내었다. 그의 신음소리는 언젠가 동네 어귀에서 엉덩이를 맞대고 신음하던 개들의 교성과 닮았다. 텀블링 위로 허리께까지 올라간 그의 치마와, 그 아래 벌어진 두 다리가 보였다. 가랑이 사이에 덧대어진 누런 가재수건 아래로 두툼한 지폐 뭉치가 달빛에 빛났다. 그의 양팔과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텀블링 아래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노파의 벌어진 입을 닫으며 흐느꼈다. 아아, 어머니. 어머니. 멀리서 누군가가 욕설을 퍼부으며 술병을 던졌다. 철망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졌다.


혀처럼 붉은 골목길을 지났다. 붉은 혀가 까맣게 타들어갈 때까지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들, 한데 모여 만두를 빚는 여인들, 백내장을 앓는 노인의 시선을 지났다. 매일 드나들었던 각기 다른 종류의 식당들, 창문 없는 벽돌집, 교묘히 선로를 바꾸는 좁은 골목길을 지났다. 이제야 너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젖은 길을 지나다, 안광을 번뜩이며 노파의 집 쪽으로 질주하는 한 마리 짐승을 보았다. 제 가지로 몸을 덧댄 나무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초목들이 일군 부락을 지났다. 자라나는 이끼를. 흙으로 돌아가기 직전의 나뭇잎들을 무자비하게 밟았다. 좁은 물길을 지났다. 나는 나뭇가지 꼭대기에 자라나는 연한 풀들을 뜯어먹는 노루들, 그들의 목을 물고 달아나는 늑대들, 얕은 물가의 물방개들과 쉽게 사랑에 빠졌다. 공기놀이를 하는 어린 소녀들, 그들을 괴롭히는 순진한 소년들과 사랑에 빠졌다. 실종된 아이들의 사진이 나붙은 골목을 지났다. 그들의 소소한 신상명세, 짐작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이 쓰인 그들의 이력을 읽어나갔다. 나는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길을 헤매는지 알고 있다. 그들을 찾는 다급한 발자국과 교묘하게 엇갈리며, 스스로를 고독과 궁핍에 몰아넣고 배회하고 있을 얼굴들, 자신이 지나쳐온 해와 달의 숫자를 손가락으로 세다가, 더 이상 손가락을 셀 수 없음을 깨닫고 체념하는 노루처럼 순한 그들의 얼굴을, 나는 알고 있다. 피로가 몰려왔다. 그들의 전단지를 잘게 찢어 입속에 넣었다. 그의 아들이 내게 물려주었던 잎담배가 그리웠다. 


매일 밤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어머니를 보았다. 각목으로 뼈가 으스러질 때까지 맞는 어머니, 짐승의 발에 밟혀 목이 부러진 어머니, 잔반통 가장 위, 버려진 음식물 위에 제물처럼 놓인 어머니의 머리통을 보았다. 살이 녹아내리고, 곤충들이 그 살들을 나누어 가지면, 어머니는 늙고 무력한 노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골목에서 보았던 모든 노인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콩을 입에 굴리는 노인, 두부를 파는 노인, 폐휴지를 등에 지고 다니는 노인, 볕을 쐬는 노인의 벌어진 입, 주변에 곧 떠날듯 맴도는 그들의 영혼을, 다시 태어난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하여 도착한 골목의 끝에서 마주친 것은 맹렬히 돌진하는 한 마리 코끼리였다. 먼 바다에서부터 밀려오는 해일, 정적을 부수는 기차의 기적소리 같은 난폭함으로 그는 앞발을 들어 대지를 내리찍었다. 나는 그를 알고 있었다. 비도 눈도 내리지 않는 곳, 코끼리가 유일한 재난인 골목의 나라, 그 익숙한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나의 어머니처럼 다가왔다. 아아 어머니, 어머니. 오랜 기억 속에 묵혀 두었던 그날을 떠올렸다. 차갑게 식어가는 어머니를 버려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독하며 안온한 나의 방으로 도망쳐 문을 잠갔다. 방은 수십 겹의 치맛자락처럼 나를 감싸주었다.

몸체와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산산이 부서지는 상점의 진열장들, 그의 오른쪽 다리가 내 머리를 짓밟고 지나가는 것을 보며 오줌을 지리는 한 소년이 있었다. 허옇게 버짐이 일어난 볼, 그 위를 횡단했던 눈물의 가지들, 때에 전 목덜미를 바라보았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그가 걸어온 수많은 낮과 밤의 길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멀어져가는 코끼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그리하여 나는 이 골목의 이정표가 되었다. 단단한 대지에 몸이 박힌 채, 얼굴만이 남아, 골목 앞에서 서성이는 수많은 길 잃은 아이들을 인도했다. 골목은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줄 것이었다. 골목은, 그들에게 스스로 울음을 그치는 법을 알려줄 것이며, 이 골목의 습성을 깨우칠 때쯤이면, 늙고 지친 얼굴로 목적지 없이 귀가하는 자신을 돌아보게 해줄 것이었다. 나는 살아온 날들을 반추하되 반성하지는 않았다. 눈만이 살아 남아, 어리고 늙은 모든 여행자들이 골목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을 목도했다. 나는 지복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었다.문장 웹진/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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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댓글 장난 아니네요. 소설의 부분이라서 그런 걸까요. 저는 확 와닿지 않는데요. 문장도 평이하구요. 단문이라 흡입력은 강해서 잘읽히는데 감동적이거나 그런건 별로 느끼기 어렵네요.